소요산(逍遙山, 587m)

 

산행일 : ‘12. 5. 1(화)

소재지 :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동과 포천시 신북면의 경계

산행코스 : 소요산역→매표소→자재암→하․중․상백운대→나한대→의상대(정상)→공주봉→옛절터→일주문→소요산역(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둘이서

 

특징 : 소요산은 아기자기한 암릉이 잘 발달된 산이다. ‘경기의 소금강(小金剛)’이라는 애칭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왔으나, 최근 경원선 전철(電鐵)이 개통되고부터는 주말(週末)뿐만 아니라 주중에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다. 전철의 종점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소요산 매표소

소요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먼저 동두천시에 있는 소요동까지 가야만 한다. 경원선 전철(동인천⇔소요산)의 종점(終點)이 소요산역이니 전철을 이용하면 될 것이다. 역사(驛舍)를 빠져나와 3번 국도(國道)를 건넌 후, 오른편으로 잠깐 걷다가 왼편에 보이는 음식점 골목으로 들어서면 얼마 안 있어 산으로 들어가는 포장도로와 만나게 된다.

 

 

소요산(자재암)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500m정도 들어가면 오른편에 주차장(駐車場)매표소가 보이고,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여기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이 메인(main)도로로서 곧바로 자재암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편 길로 들어서면 식당가를 들렀다가 다시 메인(main)도로와 만나게 된다. 음식점 주인들의 호객행위를 뒤로 하고 식당가를 통과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매표소(賣票所)’에 이르게 된다. 매표소에서 입장료 1천원을 내고 게이트(gate)를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매표소에서 10분쯤 걸으면 일주문이다. 소요산역에서 일주문까지는 25분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왼편에 쉼터가 보이고, 한전(韓電)에서 만들었다는 안내판이 붙어있는 샘터가 보인다. 이후로는 물을 구하기 어려우니, 낭패(狼狽)를 보지 않으려면 여기서 물을 보충(補充)해야 한다. 여름산행에서 물은 곧 생명, 가능하면 물은 충분한 양을 준비하는 게 좋다. 수도꼭지를 틀자 시원스럽게 물이 쏟아지는데, 물의 색깔이 뿌옇다. 아마 샘에다 소독약을 넣은 모양인데, 그냥 마시기에는 뭔가 께름칙하여 그냥 돌아서버린다.

 

 

샘터를 지나면 왼편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원효대사가 폭포 오른쪽 석등에 앉아 고행수도를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원효폭포(瀑布)이다. 비록 웅장(雄壯)하지도, 그렇다고 빼어나지도 않지만 나름대로 운치(韻致)는 있다.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서울 근교에서는 저만한 폭포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저 정도라면 배경(背景)으로 삼기에 충분할 것이다. 폭포의 오른편에는 깊지 않은 동혈(洞穴)이 보이고, 그 안에는 작은 돌부처가 모셔져 있다. 원효굴이란다.

 

 

 

원효폭포 앞의 속리교를 건너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 자연보호비 옆으로 난 계곡길을 따르면 의상대와 공주봉으로 가게 되고, 자재암은 왼편의 가파른 나무계단으로 올라서야 한다. 계단은 꽤나 높다. 그렇다고 헤아려볼 필요는 없다. 계단아래에 108계단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원효대사와 인연이 깊은 산, 그래서 불교의 백팔번뇌(百八煩惱)에서 모티브(motive)를 삼았나 보다. 그렇다면 얼마 후에 문(門)이 나타나겠지? 아니나 다를까 계단의 끝에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세워져 있고, 상단(上端)에 ‘해탈문(解脫門)’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보인다. 해탈문 옆의 원효대(臺)는 가장자리에 철제(鐵製) 난간을 둘러 자그마한 전망대(展望臺)를 만들어 놓았다.

 

 

 

 

해탈문에서 바닥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한 번 나무계단을 밟고 오르면, 병풍처럼 절벽으로 둘러싸인 협곡에 오롯이 숨어있는 자재암이 나타난다. 비좁은 벼랑에 터를 잡고 있는 암자(庵子)의 모습이 이채롭다.

* 자재암(自在庵, 향토유적 제8호), 신라 무열왕 1년(654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사찰의 이름은 자재암에서 소요사(고려 광종), 영원사(靈源寺, 고려 고종)을 거쳐 최종적으로 자재암(1907년)으로 굳어졌다. 문화재(文化財)로 보물 1211호인 ‘반야바라밀다심경약소(金剛般若波羅蜜多心經略疎)언해본’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성각, 나한전 등이 있으나 모두 1961년 이후에 세운 것들이다. 자재암에는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전설(傳說)이 전해 내려온다.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세속(世俗)의 인연을 맺은 뒤 수행(修行)의 일념으로 이곳을 찾아와 수행하다가 절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원효가 이곳에서 수행에 정진하고 있을 때, 관세음보살이 변신한 아름다운 여인이 유혹을 하였다고 한다. 설법(說法)으로 유혹을 물리친 원효는 이내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이었음을 깨닫고 더욱 수행에 정진하는 한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친견(親見)하고 자재무애(自在無碍)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절을 짓고 자재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청량폭포 방향에 각진 돌로 쌓아 놓은 벽면(壁面)이 보인다. 문 위에 ‘나한전(羅漢殿)’이라고 쓰여 있다. 옛날에는 굴의 끝에서 떨어지던 물방울을 받아먹는 재미로 드나들던 그저 평범한 동혈(洞穴)이었다. 그런데 자재암에서 입구를 돌로 쌓고 불전(佛殿)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나한전의 왼편 급경사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오른편으로 가면 선녀탕을 거쳐 나한대에 이르게 되고, 하백운대로 가려면 왼편의 계단으로 올라야 한다.(이정표 : 하백운대 0.6Km, 상백운대 1.0Km/ 선녀탕 0.65Km/ 자재암 50m)

 

 

 

자재암 뒤 갈림길에서 하백운대까지의 0.6Km구간이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이다.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것 같은 가파른 ‘깔딱고개’. 연이어 긴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경사(傾斜)가 급해 오르는데 애를 먹는다. 2~3번의 계단을 오르고 난 후, 앞을 가로막고 있는 암벽(巖壁)을 왼편으로 돌아 오르면 잘생긴 노송(老松)이 손님을 맞고 있는 전망대(展望臺)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상백운대와 나한대, 그리고 의상대와 공주봉이 시원스레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이 전망대는 주의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등산로에서 오른편으로 30m정도 비켜나 있기 때문이다. 전망대에서부터 하백운대까지는 경사가 거의 없는 밋밋한 능선이 이어진다.

 

 

 

 

 

하백운대부터는 능선길은 고속도로로 변한다. 경사(傾斜)도 심하지 않는데다가 흙길이라서 조망(眺望)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 하백운대에서는 건너편 나한대와 의상대, 공주봉 등 앞으로 가야할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하백운대 이정표 : 중백운대 0.4Km/ 자재암 0.65Km)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와 장난치며 걷다보면 이내 중백운대이다. 중백운대는 오래된 소나무(老松)들의 천국이다. 절벽(絶壁) 난간에 늘어서 있는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가지를 산 아래 자재암을 향해 길게 늘어뜨리고 있다. 아무래도 못다 떨친 인연이 못내 아쉬운가 보다.(중백운대 이정표 : 하백운대 0.37Km/ 중백운대 갈림길 0.29Km) 산책로처럼 생긴 흙길을 살살 걷노라면 나무들이 가슴에다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이 보인다. 굴참나무, 신갈나무, 팥배나무... 그러나 나무가 틀린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은 ‘옥에 티’이다. 누가 매달아 놓았는지 고마운 일이지만,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달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백운대를 거쳐 상백운대까지도 비교적 완만(緩慢)한 능선길이 계속된다. 맞은편 능선을 내다 볼 수 있는 너럭바위들이 간간히 보이니, 구태여 서두를 필요 없이 조망(眺望)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걷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간에 덕일봉 갈림길(이정표 : 덕일봉 0.7Km/ 중백운대 0.3Km/ 상백운대 0.Km3)과 선녀탕 갈림길(이정표 : 중백운 0.35Km/ 상백운 0.25Km/ 선녀탕 1.0Km)을 만나게 되나 이정표를 참고하면 길을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하백운대에서 중백운대를 거쳐 상백운대까지가 소요산 계곡의 왼편 능선이다. 상백운대를 지나면 소문난 ‘칼바위 능선’이다. 500m에 이르는 칼바위 능선을 오르내리는 릿지(ridge)는 소요산의 백미(白眉)다. 칼바위는 형태가 날카롭기도 하지만, 생김생김 또한 기이(奇異)하게 생겨서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바위틈에서 자란 나무들은 어느새 낙낙장송(落落長松)으로 변해 제법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칼바위 능선’이라는 이름만 듣고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바위가 크지도 않을뿐더러 암릉 또한 위험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굳이 우회(迂廻)로를 이용할 필요도 없다.

 

 

 

칼바위 능선이 끝나면 능선은 갑자기 급하게 아래로 뚝 떨어진다. 흙길이지만 길가에 쇠(鐵)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만큼 급하게 고도(高度)를 낮추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몸을 옆으로 세운 채로, 난간을 붙잡고 엉거주춤 내려가는 모습들이 재미있다. 선녀탕으로 내려가는 안부삼거리(이정표 : 칼바위 0.45Km/ 선녀탕입구 0.9Km/ 나한대 0.3Km)까지 내려오면 또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10분 정도 올라서면 드디어 나한대이다.

 

 

 

 

 

나한대에서 의상대로 가려면 먼저 길지 않은 안전(安全)로프를 타고 내려서야 한다. 의상대로 가는 능선은 바윗길이라서 조망(眺望)이 잘 트인다. 진행방향에 널따랗게 펼쳐지는 의상봉의 자태(姿態)가 자못 빼어나다. 비록 바윗길이지만 곳곳에 계단을 잘 만들어 놓았으니 안전(安全)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잠깐 한눈을 팔면서 의상봉의 풍광(風光)을 즐겨보면 어떨까? 진달래와 산벚꽃 들이 봉우리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안부에서 다시 길게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숨가쁘게 치고 오르면 드디어 소요산의 주봉(主峰)인 의상대이다. 순수한 바위봉우리인 정상의 한 가운데에, 검은 돌로 앙증스런 정상표지석을 만들어 놓았다. 정상에 오르면 바위봉우리의 특징대로 시원스레 조망(眺望)이 트인다. 동두천 시가지(市街地)가 보이고 남쪽으로 도봉산과 북한산, 수락산 등 서울 북부의 산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있다. 의상대에서 공주봉까지는 1.1km, 일주문까지는 1km의 거리이다.

 

 

 

 

 

의상대에서 잠깐 가파르게 내려선 산길은 오른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고 있다. 능선이 휘고 있는 것이다. 능선(稜線)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지만, 길은 바위의 위가 아닌, 능선 왼편의 바위벼랑 아래로 나있다. 능선을 만들어내고 있는 바위가 거칠 뿐만 아니라, 가슴에 담아둘만한 눈요깃거리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산길은 구태여 바윗길을 고집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바위능선이 끝나면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샘터 0.6Km/ 공주봉 0.45Km/ 의상대 0.75Km). 오른쪽은 곧장 ‘옛 절터’로 내려서는 길이며,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공주봉이 나온다. 공주봉으로 오르는 능선은 가파르기 짝이 없다. 얼마나 가파른지 그냥 일직선으로 길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좌우(左右)로 오고 감을 반복(反復)하면서 위로 오르게 하고 있을 정도이다. 길가에 설치해 놓은 철(鐵)난간의 도움을 받아보지만 크게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바윗길답게 오르는 길 곳곳에는 빼어난 전망대(展望臺)가 여럿 있다.

 

 

 

공주봉 정상은 넓은 분지(盆地)이다. 바윗길을 돌아 정상으로 올라왔기 때문에, 바위봉우리를 연상했겠지만, 의외에도 정상은 흙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남(南)쪽은 수직(垂直)의 바위벼랑이다.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난간에 설치해 놓은 목책(木柵) 앞에 서면, 동두천 시가지가 발밑에 깔려있는 것이 보인다. 그 맨 앞에 미제2사단(Camp Casey)이 있다. 내가 3년 동안 카투사(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로 근무하면서 미군(美軍)들과 같이 생활했던 곳이다. 난 신체(身體)의 생김새는 물론 언어(言語)와 문화(文化) 등 모든 것이 다른 그들과 어울리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많은 부분에서 좌절의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한국군의 계급은 병장에 불과했지만, 미군 계통에서의 내 계급은 상사(上士, First Sergeant)로서 본부중대에 배속된 카투사들을 인솔하는 책임자로 근무했었다. 따라서 난 많은 시간들을 카투사들의 권리를 대변하는데 할애(割愛)했었고, 좌절의 상처는 하나하나 가슴에 딱지(상처에서 피, 진물 따위가 나와 말라붙어 생긴 껍질)로 쌓여만 갔었다.

 

 

 

정상의 서쪽 부분에 정성들여 조성(造成)해 놓은 철쭉꽃밭 사이를 지나면 ‘옛 절터’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보인다. ‘하산 코스를 잘 고른 것 같네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흙길에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한 하산길은 무척 순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오른쪽에 있는 백운대와 의상대가 잘 보이는 전망대(展望臺)를 지나면서부터 길은 최악(最惡)으로 변해버린다(전망대 이정표 : 공주봉 0.35Km/ 구절터 0.58Km). 너덜길만으로는 부족했던지 엄청나게 가파르기까지 하다. 길가에 설치해 놓은 안전 지지대(支持臺)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내려설 수가 없을 정도이다.

 

 

 

 

30분 정도를 쩔쩔대며 내려서다보면 의상대아래 안부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다(이정표 : 일주문 0.4Km/ 공주봉 1.0Km/ 샘터 0.4Km). 삼거리 근처에 정성들여 쌓은 듯한 돌탑 2기(基)가 보이고, 그 뒤에서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가 경쾌하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본격적인 하산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소요산 주차장(원점회기)

삼거리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너른 공터가 보인다. ‘옛 절터’이다. 절터는 잔디로 잘 가꾸어 놓았고, 주변에는 벤치 등 쉼터를 깔끔하게 조성해 놓았다. 절터에서 아까 산행을 시작할 때 지나갔던 원효폭포 옆 삼거리 까지는 제법 운치(韻致)가 있는 계곡을 따라 길이 나있다. 계곡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산에 찾아왔지만 산은 오르지 않고,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만큼 무덥다는 얘기일 것이다.

 

축령산(祝靈山, 879m)-서리산(霜山, 832m)

 

산행일 : ‘12. 3. 10(토)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과 가평군 상면의 경계

산행코스 : 외방리 버스정류장→축령산 자연휴양림→수리바위→남이바위→축령산 정상→절골→억새밭 사거리→서리산→철쭉군락지→화채봉삼거리→서리산 간이목교→자연휴양림→외방리 버스정류장(산행시간 : 4시간50분)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함께

 

특징 : 축령산은 암릉으로 이루어진 산세도 볼만하지만, 숲속에 조성된 자연휴양림(自然休養林)이 있음으로 해서 더욱 유명해진 산이다. 잘 조성(造成)된 잣나무 숲속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삼림욕(森林浴)을 겸할 수도 있기 때문에 비교적 가족(家族)단위로 많이 찾고 있는 편이다. 옆에 위치한 서리산에 철쭉꽃이 만개하는 봄철에는 몰려드는 등산객들로 인해 몸살을 치르기도 한다.  

 

 

산행들머리는 축령산 자연휴양림(自然休養林)

상봉-춘천간 전철 마석역에서 내려, 축령산으로 가는 30-4번 군내버스로 갈아타고 30분 정도 들어가면, 축령산 자연휴양림(休養林) 입구인 외방리에 도착하게 된다. 참고로 잠실역 9번 출구에서 출발하는 8000-2번 광역버스를 이용하면 지하철보다 더 빠르고(소요시간 40분) 편하게(정거장 3개 경유) 마석(驛)에 도착할 수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산행이 시작되는 ‘축령산 자연휴양림까지는 음식점과 펜션(pension)들이 즐비한 2차선 도로를 따라 10분 정도를 더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인도(人道) 위를 걷다보면 느닷없이 ’마귀 할매 바위‘ 안내판(案內板) 하나가 눈에 띈다. 축령산의 홍구세굴에서 기도하던 홍판서(判書)의 꿈에 신선이 나타나 ’마을을 수호하고 마을에 복(福)을 내려주는 바위‘를 찾아보라고 하더란다. 다행이 마귀할멈보다 더 빨리 캐내라는 단서(端緖)를 지킨 덕분에 홍판서의 가문(家門)과 이 마을에 큰 복을 받았다는 설화(說話)가 전해져 내려온단다. 바위가 있음직한 곳을 두리번 거려보았지만 바위를 찾지 못했는데, 산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발견할 수 있었다. 도로 가운데에서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자그마한 바위라서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름 있는 바위는 무조건 클 것이라는 내 편견(偏見)을 되돌아보는 계기(契機)가 되었다.

 

 

 

축령산 산행은 자연휴양림(입장료 1천원)을 통해서만 할 수 있다. 자연휴양림 매표소(賣票所)를 지나자마자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으로 가면 관리사무소(管理事務所)를 지나 서리산으로 가게 되고, 축령산으로 가려면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갈림길에 커다란 이정표(이정표 : 축령산 3.19Km/ 서리산 2.68Km)가 세워져 있으니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오른편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들어서면, 겨울철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이 온통 짙은 녹음으로 뒤덮여있다. 늘 푸른 나무인 잣나무가 우거진 숲속길이기 때문이다. 이 부근이 잣나무의 본고장임을 증명(證明)이라도 하려는 걸까? 참고로 축령산 동편에는 약 150ha의 잣나무 단지가 있는데, '축령 백림'이라 하며 전국 제일의 잣 생산지이다.

*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이정표(里程標)는 조금 특이(特異)하다. 우리가 다른 산에서 흔하게 보아오던 이정표들과는 달리 꼭대기에다 자신의 위치(位置)를 알리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이다. 지도(地圖) 한 장 달랑 들고 산을 찾아온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다른 지방자치단체(地自體)에서도 등산로를 정비(整備)할 때 벤치마킹(benchmarking)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연휴양림의 시설물(施設物 : 통나무집과 체육시설 등)들 사이로 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임도(林道)를 따라 들어가면 주차장이 나온다.(아마 제1주차장일 것이다), 주차장의 한쪽 귀퉁이에 커다란 산행안내도와 이정표(축령산 정상 2.74Km/ 서리산 장상 2.64Km/ 매표소 0.5Km)가 세워져 있는데, 등산로는 그 사이로 열리고 있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잣나무 일색, 흙길에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한 산길은 걷기에 무척 편하다. 그러다가 저만큼에 암벽약수터의 이정표(제1주차장 0.6Km/ 축령산 정상 2.14Km, 남이바위 1.42Km, 수리바위 0.47Km))가 보이면서 길은 너덜길로 변해버린다.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은 오동나무 비슷한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참나무 일색으로 바뀌어져 버린다.

 

 

 

암벽약수터을 지나면서 시작되는 통나무 계단으로 만들어진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치고 오르면 서릉(西稜) 위로 올라서게 된다. 능선의 안부는 힘들게 올라온 이들이 쉬기에 안성맞춤인 지점이다. 마침 한쪽 귀퉁이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만한 바위까지 보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쉼터이다.(이정표 : 제1주차장 0.75Km/ 축령산 정상 1.99Km, 남이바위 1.27Km, 수리바위 0.32Km)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게 연결되지만 오른쪽 방향은 거의 절벽(絶壁)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혹 나타나는 바윗길, 그리 험하지 않은데도 자꾸만 정체(停滯)현상을 빚고 있다. 바윗길에 서투른 사람들이 쉽게 나아가질 못하는 이유에서다. 기업은행산악회, 광진구청산악회 등 오늘따라 직장산악회들이 부쩍 많이 보이는데, 직장산악회 회원들은 대부분 산행경험(經驗)이 적어서 바윗길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홍구세굴에서 올라오는 능선삼거리(이정표 : 제1주차장 1.38Km/ 축령산 정상 1.35Km, 남이바위 0.63Km/ 홍구세굴 0.64m)를 지나고 나서 끝내는 참지 못하고 왼편 암벽(巖壁)을 치고 오르니 진행방향의 나뭇가지 사이로 우뚝 솟은 거대한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독수리의 머리 부분을 쏙 빼다 닮았다는 수리바위이다. 수리바위는 축령산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다.(이정표 : 정상 1.7km, 남이바위 0.95Km/ 주차장 1.67km)

 

 

수리바위 위에 올라서면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시원스럽게 열린다. 운악산과 철마산, 천마산이 눈에 들어온다. 비록 흐린 날씨 탓에 희미하지만 끝도 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겹겹이 쌓인 산들이 끊임없이 밀려오고 있다. 독수리의 날갯죽지 어림의 바위틈에서 명품(名品)소나무 한 그루가 인고(忍苦)의 세월을 버티면서 그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능선을 걸어오면서 느낀 점은 소나무 종류는 어쩌다 간간히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숫자가 적은 것이 흠(欠)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보이는 소나무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노송(老松)들이기 때문이다. 참나무들에 포위당해 있으면서도 결코 꿇리지 않고 군계일학(群鷄一鶴)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수리바위를 지나면서 산길은 전형적인 암릉으로 변한다. 능선의 왼편은 비록 경사(傾斜)가 가파르지만 전형적인 흙산, 오른편은 아찔한 바위 벼랑으로 되어 있다. 심심찮게 나타나는 암릉이 조금이라도 위험하다싶으면, 어김없이 로프가 매달려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아마추어 산악인들이 많은 탓에 산행속도는 지지부진(遲遲不進)하기만 하다. 로프에 매달려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주춤거리기만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수리바위에서 남이바위까지 평소에는 40분이면 충분한 거리이지만, 오늘은 벌써 1시간을 넘기고 있다. 참다못해 수리바위 밑에서 오른편 바위 벼랑을 기웃거려 본다. 그리고 조금은 위험(危險)하지만 남이바위로 오르는 바윗길을 찾아내고야 만다. 덕분에 쉽게 남이바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여성들은 혼자서는 오르기에 벅찬 코스이니 삼가는 게 좋을 것이다. 남이바위 위는 먼저 올라온 사람들로 인해 발붙일 틈이 없을 정도이다.(이정표 : 제1주차장 2.05Km/ 축령산 정상 0.72Km)

* 남이바위, 조선 세조 때의 명장이었던 남이장군의 숨결이 어린 곳이다. 그는 한성(漢城)의 동북방 요충지(要衝地)인 이 바위 위에서 지형지물을 익혔다고 전해진다. 장군이 휴식을 취하면서 팔을 걸었다는 팔걸이 모양의 바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설화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북한이라는 좌충우돌(左衝右突)형의 실체를 곁에 두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그가 보여준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이 꼭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남이바위부터 정상까지는 칼날 같은 바위능선을 타고 가게 된다. 가파르고 뾰쪽한 능선길이다. 오른쪽 벼랑은 수십 길 절벽(絶壁)이지만 추락방지를 위한 밧줄이 매어져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길은 바위벼랑을 타는 쾌감도 좋지만, 시야(視野)가 툭 트여있기 때문에 조망(眺望)을 즐기는 재미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이다. 암릉이 끝나면서 만나게 되는 헬기장에 이르면 축령산의 정상이 보인다.

* 칼날처럼 솟은 짧은 암릉을 지나다보면 진행방향 오른편의 산자락 아래에 짙은 초록색으로 빛나는 숲이 보인다. 가평 행현리의 ‘축령 백림(祝靈柏林)’이다. 가평8경의 하나인 축령백림은 잣나무 숲이다. 해방 전후(前後) 산기슭에 심은 잣나무 묘목들이 60여년이 지난 지금은 아름드리 잣나무 숲으로 변해서, 지금은 후손(後孫)들의 삼림욕장과 자연휴양림으로 이용되고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축령산’이란 이름의 산이 두 곳이 있다. 이곳 축령산(886m) 외에도 전남 장성과 전북 고창의 경계에 있는 축령산(620.5m)이 나머지 하나이다. 두 산은 이름 이외에도 모두 성공적인 인공조림(人工造林)지라는 것으로도 닮았다. 편백나무와 삼나무숲으로 유명한 장성 축령산은 ‘한국의 조림왕(造林王)’이라 불리는 임종국(1915~1987) 선생이 한국 최고 밀도(密度)로 가꾸어 놓았다. 지금은 후손들이 삼림휴양지와 청소년 자연 체험장(體驗場)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외국인들에게까지도 각광(脚光)을 받고 있다고 한다.

 

 

 

 

 

 

 

 

태극기(太極旗)가 휘날리는 축령산 정상에는 돌탑(cairn)과 삼각점, 그리고 조망 안내판(眺望 案內板)이 세워져 있다. 저 태극기는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이 지역 주민 24명을 기리기 위해 1997년에 남양주시의 모 산악회에서 내 걸었다고 한다. 게양대 근처에서 사위를 휘둘러보는 조망은 막힘이 없다. 사방(四方)이 막힘없이 뚫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비록 짙은 구름으로 인해 희미하지만, 날씨만 맑다면 경기 오악 중의 하나인 운악산과 청계산, 그리고 명지산과 연인산, 대금산, 화악산 등 주변의 명산(名山)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인파(人波)로 인한 지체(遲滯)현상 때문에 정상까지 의외로 많은 시간(2시간20분)이 소요되었다.(정상의 이정표 : 서리산(철쭉동산) 2.87Km, 휴양림내 주차장 2.86km/ 휴양림내 주차장(지나온 길) 2.74Km) 홍구세굴 1.99Km)

* 축령산으로 사냥을 왔던 이성계가 짐승을 한 마리도 못 잡자, 몰이꾼의 제언(提言)에 따라 산 정상에서 산신령(山神靈)에게 고사(告祀)를 지내게 되었고, 그 덕분으로 멧돼지를 포획한 모양이다. 그 이후로 ‘고사를 올린 산’이라 해 축령산(祝靈山)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원이름은 ‘비령산’인데, ‘빌 축’자가 새김으로 읽는 이두(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로 적는 표기법)였는데 일제강점기 때부터 이를 모르고 축령산으로 써왔다고 한다.

 

 

 

정상에서 절고개까지 내려오는 길은 아직도 겨울이 한창이다. 최근 내린 폭설(暴雪)이 두텁게 쌓여있기 때문이다. 눈길은 미끄럽기 한량없고, 거기에다 경사(傾斜)까지 가파르다보니 내려서는 발걸음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덕분에 길가에 매어진 로프에는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이 사람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행여나 미끄러질세라 로프를 붙잡은 손목들마다 힘줄들이 불끈 솟아오르고 있다.

 

 

 

 

축령산 정상에서 30분 조금 못되게 내려오면 절고개에 닿게 된다. 이곳이 축령산과 서리산이 나뉘는 분기점(分岐點)이다. 절골에서는 길이 넷으로 나뉜다. 왼편은 잔디광장을 거쳐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고, 비록 이정표에는 없지만 오른쪽으로 가면 가평군 행현리(임초리)로 내려서게 된다. 서리산으로 가려면 물론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된다. 만일 축령산을 상징하는 잣나무 숲속을 걷고 싶다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하산하는 것이 좋다. 이 길에는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하늘 높이 솟아 있기 때문이다. 가평 행현리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도 마찬가지로 잣나무 숲이다.(이정표 : 자연휴양림 제1주차장은 2.18km, 잔디광장 0.72Km/ 서리산 정상은 2.19km/ 축령산 정상 0.68Km)

 

 

절골사거리에서 서리봉을 향해 능선으로 올라선다. 축령산과 서리산의 사이는 3㎞정도 떨어져있지만 1시간 이내에 주파(走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절골 좌우 언덕만 다소 가파를 뿐, 대부분의 능선이 가볍게 산책(散策)하는 기분으로 걸을 수 있을 만큼 무난하기 때문에 걷기에 조금도 부담이 없다. 절골을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널따란 헬기장을 만나게 된다. 오늘같이 눈길이거나 흙탕길인 날에는 점심식사를 하기에 적당한 지점이다. 헬기장을 내려서면 억새밭사거리이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전망대(展望臺)를 거쳐 휴양림에 이르게 되고, ‘아침고요 수목원’를 들러보고 싶은 사람들은 오른편 행현리 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억새밭 사거리 이정표 : 서리산 정상 1.71Km/ 축령산 정상 1.15Km/ 전망대 0.71Km/ 행현리 5.70Km)

 

 

 

억새밭 사거리에서 맞은편 바위에 매달린 로프를 잡고 오르며 서리산으로 향한다. 고저(高低)의 차(差)가 크지 않은 능선의 주변은 온통 울울창창한 잣나무들로 가득하다. 낭만적(浪漫的)이고 사색(思索)하기에 적당한 호젓한 산길이다. 그러다가 서리산의 아래에 도착하면, 갑자기 능선이 가파르게 변하면서 주변의 나무들도 잣나무에서 참나무로 함께 변한다. 서리산으로 오르는 양지쪽 길은 최악(最惡)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녹은 눈(雪)과 진흙이 어우러져 만든 흙탕길이 심하게 질퍽거리기 때문에 걷기가 무척 사나운 것이다.

 

 

 

 

 

진창길을 올라서면 무인(無人)산불감시탑이 나타나고, 그 뒤의 헬기장 너머로 조그만 돌탑과 정상표지석이 보인다. 서리산 정상은 조망(眺望)이 시원하다고 얘기하긴 어렵다. 그러나 서리산의 명물(名物)인 철쭉동산을 원거리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서리봉 정상 이정표 : 축령봉 정상 2.87Km, 제1주차장 3.04Km/ 화채봉 0.76Km, 철쭉동산 정상 0.35Km)

*서리산은 일년(1年) 내내 서리(霜)가 서려있는 산이라 해서 서리산 또는 상산(霜山)이라 불린다. 급경사(急傾斜)로 이루어진 산의 북서쪽이 항상 응달이 져서 서리가 내리면 쉽게 녹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리봉 정상에서 화채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철쭉동산이라고 부른다. 이 철쭉동산의 매력(魅力)은 뭐니 뭐니 해도 철쭉터널(tunnel)이다. 철쭉나무의 키가 어른들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크면서도 밀집(密集)되어 있어서, 철쭉나무 아래에 기다란 터널(tunnel)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봄철에 오면 그야말로 환상적(幻想的)이겠네요’ 역시 여자들은 아름다움에 민감(敏感)한 모양이다. 터널을 보자마자 집사람이 꽃길을 유추(類推)해 내고 있으니 말이다. 철쭉동산에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보다나은 조망을 위해서 전망테크까지 만들어 놓았다.

* 서리산의 철쭉동산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자생(自生) 철쭉 군락지다. 높이 2~3m 되는 철쭉이 어른이 지나갈 만큼 커다란 연분홍색 꽃 터널을 만들어낸다. 철쭉은 매년 5월 중순쯤 만개(滿開)해 절정을 이루는데, ‘축령산 철쭉제’도 이맘때 열리고 있다.

 

 

 

철쭉동산을 지나면서 산행은 이제 마무리로 접어든다. 철쭉동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철쭉동산에서 휴양림 방향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이내 화채봉삼거리이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는 사전정보를 참고해서 화채봉을 들르지 않고 서둘러 제2주차장을 향해 하산길을 재촉한다.(이정표 : 서리봉 정상 0.67Km, 철쪽동산 정상 0.49Km/ 화채봉 0.09Km/ 제2주차장 1.89Km)

 

 

 

화채봉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는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이 이어지는데, 또다시 산길은 최악(最惡)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질퍽거리는 진창길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넘어지지 마세요. 잘못하면 버스 운전사가 승차(乘車)를 거부할 수도 있으니까요’라며 던지는 농담에 ‘살그머니 타면 된다.’는 집사람의 애교스런 대꾸로 위안거리를 삼으며 서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려딛는다. 그렇게 20분 정도 내려오면 시멘트포장도로로 건너가는 간이목교(木橋)가 보인다.(간이목교 이정표 : 서리산 정상 1.24Km, 철쭉동산 정상 1.04Km/ 전망대(시멘트 포장 임도) 0.86Km/ 제1주차장(시멘트포장 임도) 1.8Km)

 

 

 

산행날머리는 축령산자연휴양림(原點回歸)

갈지자를 만들면서 고도(高度)를 낮추고 있는 임도를 따라 내려오면 이내 아침에 산행 들머리로 삼았던 축령산 자연휴양림에 이르게 된다. 축령산은 산악인들이 매년 년초(年初)에 지내는 산신제인 시산제(始山祭)를 지내는 명소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아마 산의 이름이 고사(告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성계도 이 산의 정상에서 고사를 지냈다는 설화(說話)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장소를 찾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휴양림 관리사무소를 지나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오는 길에도 시산제(始山祭)를 지내고 있는 그룹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무의도 (舞衣島), 호룡곡산(虎龍谷山, 264m)-국사봉(國師峯, 236m)

 

산행일 : ‘11. 12. 17()

소재지 : 인천시 중구 무의동(무의도)

산행코스 : 광명항호룡곡산하나개유원지구름다리국사봉전망바위큰무리마을 (산행시간 : 3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단둘이서

 

특징 : 무의도(舞衣島)는 마치 옷이 춤추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종대교와 인천대교가 생긴 이후로는 서울에서 1~2시간 정도면 갈 수 있고, 등산(登山)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이 있기 때문에,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기려는 여행객(旅行客)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 12일 일정으로 열린 知識財産(지식재산)포럼(Forum), 우리 회사에서 주관하는 행사라 참가자들도 격려(激勵)할 겸해서 리조트가 있는 영종도로 향했다. 둘째날인 토요일 일정의 진행은 관계자들에게 맡기고 난 집사람과 함께 영종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무의도를 향해 승용차를 몬다. 무의도에 있는 호룡곡산을 오르기 위해서이다. 전에 두 번이나 올랐었지만 사진(寫眞) 기록이 없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더 오르려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나와 함께 산행을 하는 집사람도 어제 저녁에 리조트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

 

 

 

무의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영종도의 한쪽 귀퉁이에 있는 잠진도 선착장까지 들어가야 한다. 올림픽대로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영종도까지 들어온 후, 신불 I.C에서 빠져나와 해안선(海岸線)도로(영종해안 남로)를 따라 달리다가 대매도량교를 지나서 왼편 잠진도길로 접어들면 이내 잠진도 선착장에 이르게 된다. 산행들머리인 큰무리 선착장까지 가기 위해서는 왕복 승선권(乘船券)부터 구입해야한다. 자동차는 2만원부터 크기에 따라 다르고, 사람은 어른 기준 3천원이다. 배는 30분마다 출항(出港)하고 있으니 구태여 시간을 알아갈 필요는 없다.

 

 

무의도는 정박해 있는 배 너머로 섬이 바라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승선(乘船) 완료와 동시에 배가 움직였고 뱃머리를 돌리는 가 싶더니 배는 벌써 무의도에 도착해 있다. 5분도 되지 않은 허무한 뱃길(배 삯은 왕복 3천원). 무의도 큰무리 선착장에 도착하면 섬내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 중에서 무의도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광명항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실어다주기 위해서이다.

 

 

 

산행들머리는 무의도의 남쪽에 위치한 광명항()

오늘 산행은 호룡곡산에서 국사봉까지의 종주산행이다. 그 출발점은 무의도의 최남단(最南端)인 광명항(). 큰무리선착장을 출발한 버스는 10분이 채 못 되어 광명항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광명항은 섬주민들에게 샘꾸미로도 불리는 작은 어항으로, 버스에서 내리면 우선 항구(港口)를 감싸고 있는 방파제(防波堤)가 눈에 들어오고, 왼편에는 소무의도가 건너다보인다. 소무의도를 본섬인 무의도와 연결시켜 주고 있는 다리가 멋진 풍경(風景)을 만들어내고 있다. 저 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이곳 광명항에서 소무의도까지 배로 들어다녔었다.

 

 

한적한 어촌으로 생각했던 광명항에는 제법 멋들어진 팬션(pension)들이 여럿 보인다. 시대의 조류에 따라 이곳도 변하고 있음일 것이다. 마을 초입(初入)에 호룡곡산 등산로 팻말이 서있다. 등산로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작은 배나무 밭이 보인다. ‘무슨 나무일까요?’ 배나무라고 말해주었는데도 집사람은 계속해서 두리번거리고 있다. ‘행여나 떨어진 배의 흔적이라도 있을까 해서요.’ 쉽게 내뱉는 내말이 영 믿기지 않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여필종부(女必從夫)로고 했는데..., 내가 시대의 변함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산행을 시작하고 한 20여분 정도 지나면 호룡곡산 정상하나개유원지갈림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이고, 표지판을 지나서 조금 더 오르면 바다 쪽으로 툭 트인 조망대(眺望臺, 쉼터)가 나온다. 조망대에 올라서면 저 멀리 서해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작은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소무의도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놓여 있다.

 

 

 

 

 

조망대를 지나 정상까지는 갈참나무와 물푸레나무의 군락(群落)이 계속된다. 잎이 다 져버린 나무들은 가지만 앙상하고, 빈 가지사이에 푸른 하늘이 걸려있다. 정상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또 하나의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호룡곡산 정상과 하나개유원지로 나뉘는 길이다. 이 길은 주민들이 관광객을 위해 조성해 놓은 길로서 환상의 도로라고 불리고 있다.

 

 

정상 가까이에서 잠깐 너덜바위지대를 만나게 된다. 경사(傾斜)가 조금 있고, 로프가 매어져있지만 로프의 도움 없이도 쉽게 오를 수 있을 정도이다. 너덜바위지대를 지나면 곧 정상이다. 광명항에서 호룡곡산 정상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1시간 남짓 걸렸다. 정상에 서면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풍광(風光)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호룡곡산 정상은 전망대(展望臺)이다. 전망대는 넓게 정돈돼 있고 벤치까지 마련되어 있다.

 

 

 

 

산행거리가 짧으니 시간에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구태여 걸음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잠시 벤치에 앉아 하늘과 바다에 넋을 빼앗겨본다. 동쪽 발아래에 소무의도가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다. 저 멀리 인천대교와 인천항은 물론, 서산반도까지 희미하게나마 시야(視野)에 들어오고 있다. 북쪽 발아래에는 하나개해수욕장과 실미도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에는 자그만 섬들이 돛단배 마냥 파도에 밀려 떠다니고 있다.

 

 

 

호룡곡산에서 국사봉으로 가는 길은 둘로 나뉜다. 정상 바로 밑의 국사봉을 가리키는 팻말(이정표 : 국사봉 2.4)을 따르는 길이 그 하나이고, 또 하나는 하나개유원지를 들렀다가 다시 국사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왼편의 하나개유원지 방향으로 내려선다.

 

 

 

 

하나개 유원지 방향으로 내려서면 바위지대를 자주 만나게 된다. 호룡곡산이나 국사봉이 흙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바위지대를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은데도, 이 능선(稜線)은 제법 암릉이 잘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서해(西海)의 알프스(Alps)’라는 팻말까지 의젓하게 달고 있다. 그러나 이건 조금 심한 게 아닐까? ‘영남알프스’, ‘충북알프스’, ‘전북알프스등등 우리나라의 여러 산릉(山稜)에 알프스라는 이름을 붙인 곳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이정도의 암릉에 까지 알프스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심한 것 같다. 암릉의 특성대로 이 길을 따라 내려오는 동안에는 바다 조망이 계속 이어진다.

 

 

 

 

서해의 알프스(Alps)’ 팻말에서 암릉을 우회하여 내려가면 호랑(虎狼)바위를 만나게 된다. 호랑바위는 호랑이를 닮았다고 하는데도 내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으니 웬일일까? 바위 앞에 세워진 팻말에는 이 바위에 얽힌 전설을 적어 놓고 있다. 옛날 어부와 호랑이가 서로 해치지 않기로 산신령께 약속하고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배고픈 호랑이가 그만 어부를 잡아먹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노한 산신령이 호랑이 머리를 지팡이로 내리치자, 호랑이가 바위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아마 호랑바위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나보다. 작은 나뭇가지 여러 개를 세워 바위를 괴고 있다. 마치 백지장(白紙張)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호랑바위를 지나면 해변 인근에 조성된 자연휴양림(自然休養林)으로 내려가게 된다. 휴양림 안에 있는 자연생태관찰로의 곳곳에는 나무의 유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생태해설(生態解說)판을 세워 놓았다. 소로(小路)로 이루어진 관찰로(觀察路)를 벗어나면 이내 하나개 유원지(遊園地)의 뒤편에 이르게 된다.

 

 

 

유원지는 철조망을 둘러 사람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철조망을 따라 5분 정도 걸으면 하나개 유원지의 정문에 닿게 된다. 그런데 유원지에 들어가려면 입장료(入場料, 2천원)를 내야 한다고 한다. ‘볼 것도 없는데 그냥 가지요아내의 말마따나 해수욕장 한 쪽 귀퉁이에 자리 잡고 있다는 천국의 계단세트장 한 번 보려고 입장료까지 내가면서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입장료(入場料)에는 해수욕장의 갯벌에서 조개를 채취할 수 있는 체험비용(體驗費用도 포함되어 있다지만, 이 추운 겨울날에 과연 어느 누가 선뜻 바닷가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나개유원지 정문에서 큰무리선착장 방향으로 1Km 정도 걸어 나오면 도로(道路) 위에 놓여 있는 구름다리가 보인다. 호룡곡산과 국사봉을 잇는 다리이다. 이곳에서 왼편 언덕으로 오르면 최신식(最新式) 간이 화장실까지 갖춘 쉼터이다. 국사봉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구름다리에서 왼편으로 접어들면 너른 분지 위에 인위적으로 조성(造成)된 벚꽃군락지가 보이고, 그 너머에 있는 국사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벚나무 밑을 통과하고 나면 잘 정돈된 등산로를 지키고 있는 '쭉쭉' 하늘로 솟은 소나무들이 반긴다. 국사봉 오르는 길은 호룡곡산만 못하다. 경사진 길이 힘겨운데도, 주변 경관(景觀)이 변화를 주지 못해 심심하기 때문이다.

 

 

 

 

숲길로 접어들면 곧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너덜지대라고 하기엔 옹색한 자갈밭이다. 자갈밭과 흙길이 반복되는 오르막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로프가 매어진 가파른 암반(巖盤)지대가 나온다. 바위에 올라서면 왼편에 하나개유원지와, 오른편의 실미도가 잘 조망된다.

 

 

 

암반(巖盤)지대에서 잠깐 내려섰다가 다시 한 번 치고 오르면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 곧바로 진행하면 실미도와 큰무리선착장으로 가게 된다. 오른편에 보이는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나무계단을 오르면 이내 국사봉 정상이다. 국사봉 정상도 호룡곡산과 마찬가지로 나무테크로 전망대(展望臺)를 만들어 놓았다. 쉼터로까지 이용하라는 듯 중앙에 평상까지 만들어 놓았다. 정상표지석은 나무테크 아래에 숨어있기 때문에 모르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듯 싶다.

 

 

 

 

국사봉 정상에 오르면 호룡곡산과는 또 다른 해변 풍광이 펼쳐진다. 눈앞에는 광활한 서해(西海)가 펼쳐지고, 왼편 발아래에는 무의도를 대표하는 관광명소(觀光名所)인 하나개해수욕장의 백사장이 하얗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그 오른편에 실미도가 바라보인다. 지금이 겨울철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매섭다.

 

 

 

 

 

국사봉에서 큰무리선착장까지의 하산 길은 아늑한 흙길이다. 우선 정상에서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큰무리선착장 방향으로 진행하면 얼마안가 또 하나의 전망(展望)테크가 보인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실미도는 일품이다. 테크에 설치된 조망도(眺望圖)를 따라 눈으로 짚어나간다. 대이작도와 소이작도 덕적도 등등...

 

 

 

 

전망(展望)테크에서 보드라운 흙길을 얼마간 걸으면 왼편에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냉큼 바위 위로 올라선다. 그리고 나에게도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다. 바위 위로 오르면 눈앞에 펼쳐지는 멋진 풍광(風光), 발아래에 실미도가 뚜렷하고 그 너머에는 멀리 대이작도와 소이작도 덕적도까지 보인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큰무리선착장 너머로 영종도의 국제공항이 넓게 펼쳐지고 있다. 섬산행의 매력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주변 경관(景觀)에 대한 조망(眺望)일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큰무리선착장(船着場)

전망바위에서 큰무리마을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흙길이다. 곳곳에 경사(傾斜)가 가파른 내리막길도 보이지만 내려서는데는 그다지 부담이 없을 정도이다. 주변은 갈참나무와 물푸레나무의 군락(群落), 20여분을 걸어내려오면 진행방향의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큰무리 마을이 내다보인다. 큰무리마을에서 선착장으로 가는 도로의 우측에 펼쳐지는 갯벌, 물이 빠진 광활한 갯벌은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고려산((高麗山, 436m)-혈구산(穴口山, 466m)

 

산행일 : ‘11. 10. 23(일)

소재지 :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내가면, 선원면, 하점면의 경계

산행코스 : 미꾸지고개(산화고개)→낙조봉→고려산(436m)→고비고개→혈구산(466m)→선원면 냉정리(산행시간 : 6시간)

함께한 산악회 : 산오래

 

특징 : 고려산과 혈구산은 높이는 낮지만 아기자기하게 이어지는 능선(稜線)길은 트레킹코스로 최상(最上)이다. 전형적인 흙산(肉山)의 빛깔고운 황톳길에다가 고저(高低)까지도 그리 크지 않으니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막론하고 산행을 하는데 조금도 무리가 없다. 거기다 산행을 끝내고 강화도의 명물인 밴댕이회 한 접시 시켜놓고 반주(飯酒)라도 한 잔 걸친다면 이보다 더한 호사(豪奢)가 그 어디에 있으랴...

 

 

 

산행들머리는 하점면 망월리의 미꾸지고개

올림픽대로에 이어 48번 국도(國道/ 강화방향)를 따라 강화대교를 건너면, 강화읍에 이르게 된다. 강화읍을 통과한 후 계속해서 48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보면 ‘강화 119구조대’를 지나서 ‘푸른미르 아파트’가 보인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길을 바꾸어 들어서면 얼마 안 있어 ‘신상리 보건진료소’가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한 번 왼편으로 접어들면 조금 후 미꾸지고개에 도달하게 된다. 미꾸지고개는 해발(海拔)이 30m, 고개라 하지만 살짝 솟은 오르막에 불과하다. 주민들에게는 산화고개로 더 익숙한 고개인데, 예전에는 고개 턱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산행은 고개에 있는 산화휴게소 맞은편, 소나무 아래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고려산은 전형적이 흙산(肉山), 발바닥에 닿는 감촉이 매우 부드럽다. 고저(高低)가 별로 없는 넓고 한적한 길이 계속 이어지다가, 5분정도 지나면 우측 사면이 울창한 소나무 숲(松林)인 구간으로 바뀐다. 바닥에 소나무 낙엽이 두툼하게 깔려 있어 폭신폭신하기 이를 데가 없다. 코끝을 스치는 이 향기는 아마도 혹자(或者)들이 이야기하는 피톤치드일 것이다. 그렇게도 몸에 좋다고 알려진....(들머리 이정표 : 고려산 5.1Km/ 낙조봉 2.6Km/ 적석사 2.2Km)

 

 

 

서너 차례의 오르막을 지나면 주위가 트이는 전망바위에 도착하게 된다. 일명 내가저수지로 불리는 고려지와, 건너편에 오늘 우리가 걸어야할 퇴모산 능선이 마주 보인다. 들머리와 날머리가 같지는 않지만 거의 360도 돌아오는 길이다. 전망바위에 올라선 곰곰이... 뭘 그리 곰곰이 생각할 게 있는지 그의 옆모습에서 사뭇 진지(眞摯)함이 묻어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대략 40분 정도 지나면 제법 봉우리다운 봉우리 위로 올라서게 된다. 오르는 길가에는 탐스럽게 핀 억새꽃들이 출렁이고 있다. 오늘 산행의 주요 포인트인 억새와의 첫 만남이 시작되는 것이다. 봉우리 위로 올라서면 일망무제(一望無題)의 조망(眺望)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곳을 낙조봉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나 이 봉우리는 고려산의 주능선 상에 있는 이름 없는 하나의 봉우리일 따름이다(암봉(巖峰)으로 표기하고 있는 지도도 있다.) 진짜 낙조봉은 고려산 방향으로 아직 한 굽이 너머에 우뚝 솟아 있다. 봉우리 위에서 바라보는 서남쪽 조망은 매우 뛰어나다. 내가저수지 뒤로 해명산-낙가산-상봉산으로 이어지는 석모도가 보이고, 북쪽의 황금들녘에는 누렇게 익은 벼들이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연무가(煙霧) 짙기 때문에 시야(視野)가 시원스럽게 열리지 않지만, 만일 쾌청한 날씨였다면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석모도를 배경삼아, 바람 따라 너울거리는 억새가 만들어내는 풍광(風光)은 자못 빼어날 것이다.

 

 

 

 

 

암봉부터 낙조봉까지는 시야(視野)가 확 트여 조망도 괜찮지만 곳곳이 억새군락을 이루고 있어 분위기가 사뭇 좋은 편이다. 능선은 고저(高低)가 심하지 않다. 말 그대로 유유히 걷다보면 조금 후에 낙조봉에 올라서게 된다. 봉우리 위에 올라서면, 오늘 우리가 걷게 될 고려산-고비고개-혈구산-퇴모산 줄기가 활처럼 휘어지면서 한눈에 들어오고 있다.(이정표 : 고려산 2.7Km/ 적석사 0.4Km/ 망월리 2.6Km)

 

 

 

 

고려산에 와서 만일 낙조대를 들러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사를 하면서 김치를 먹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만큼 낙조대에서 바라보는 서해(西海)의 조망(眺望)이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이기 때문이다. 낙조봉에서 낙조대로 가려면 오른편 능선으로 내려서야한다.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잘 닦인 길을 내려서다 보면, 방금 지나온 암봉이 오른쪽 건너편에서 위용(威容)을 자랑하고 있다.

 

 

 

원래 낙조봉에서 바라보는 서해(西海)의 일몰(日沒)은 강화팔경 중의 하나일 정도로 장관(壯觀)이란다. 그러나 혹자(或者)는 해가 지는 각도(角度)에 따라서는 낙조봉의 일몰보다 낙조대의 일몰이 더 좋을 때도 있다고들 말한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는 나그네들이야 그저 그러느니 할 따름... 낙조대는 깔끔하게 나무테크를 깔아 놓았다. 나무테크는 낙조봉 방향에 안치되어 있는 석불(石佛)에 불공을 드릴 수 있도록 적절하게 공간을 배치해 놓았다. 온 정성을 다하여 부처님께 절을 하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우리의 일행인 솔피네이다. 시집가게 해 달라고 빌었단다. 만일 시집을 못 가게 될 경우에는 이곳의 부처님은 영험(靈驗)하지 않다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닐 것이란다. ‘가까운 시일 안에 시집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나!‘ 겁먹은 부처님이 도와줄 것인데 걱정할 게 무엇이 있으랴... 낙조대의 난간에 서면 고려저수지가 발밑에 펼쳐지고, 그 뒤에는 석모도를 등에 얹은 서해바다이다. 아쉽게도 짙은 연무 때문에 파도가 넘실거리며 밀려오는 광경은 눈에 잡히지 않는다.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면서 장엄(莊嚴)한 노을이라도 맞을 수 있다면, 어쩌면 작은 소망(所望) 하나쯤은 자연스레 이루어지고도 남을 것이다. 이곳 고려산의 낙조대는 선운산의 낙조대, 내변산의 낙조대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낙조 전망대(落照 展望臺)’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동해안에 위치한 정동진의 반대쪽에 있다고 해서 ‘정서진’이라고도 불린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日沒), 서해(西海)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저녁노을이 하도 아름다워서 ‘강화(江華)8경(八景)’ 가운데서도 으뜸으로 꼽는단다.

 

 

 

 

낙조대(落照臺)에서 잘 다듬어 놓은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적석사이다. 적석사 앞마당에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서있다. 부부목(夫婦木)이라고 부른단다. 마치 두 부부가 손을 맞잡고 대웅전의 부처님을 향해 합장을 하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이다.

* 적석사(積石寺) : 고구려(高句麗) 장수왕(長壽王) 4년에 천축국사(天竺祖師)가 고려산 정상 오련지(五蓮池)에서 발견한 다섯 송이의 연꽃(蓮花)를 공중에 날렸는데, 이 꽃들이 떨어진 곳마다 절을 세웠는데, 그 중 빨간 연꽃(赤蓮)이 떨어진 낙조봉(落照峰)아래에다 세운 절이 적련사(赤蓮寺)다. 이 적련사가 적석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퇴락한 사찰로 근세까지 근근이 명맥만 이어오다가, 최근(19세기 末)에 들어 불사(佛事)를 일으켜 현재의 규모를 갖게 되었다. 문화재(文化財)로는 지방유형문화재 38호인 적석사 사적비(積石寺 史蹟碑)가 있다.

 

 

 

낙조봉(落照峰)에서 고려산을 향해 내려서는 길은 억새밭이다. 정상에서 하나둘 보이던 억새의 농도(濃度)가 점점 짙어지더니, 어느새 군락지(群落地)로 변해있다. 남쪽 사면(斜面)에 밀집되어 있는 억새꽃들이 만들어내는 은빛 축제(祝祭)가 한창이다. 이곳의 억새는 30년 전에 났던 산불이 만들어낸 작품이란다. 그렇다면 나쁜 일이라고 해서, 꼭 나쁜 결과만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는 꼭 인간사회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고... 억새밭이 끝날 무렵이면 적석사에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다. 적석사에서 이곳은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200m, 이런 편한 길을 놔두고 난 낙조봉으로 되돌아 올라갔다가 이곳으로 오는 수고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낙조대로 함께 내려간 솔피네가, 낙조봉 정상에다 벗어놓았던 그녀의 배낭을 회수해야만 했기 때문이다.(적석사 갈림길 이정표 : 고려산 2.4Km/ 망월리(미꾸지고개) 3.1Km/ 적석사 0.2Km/ 낙조봉 0.5Km)

 

 

낙조대를 떠나 고려산으로 향하는 능선을 걷다보면 널찍한 바위들이 널려있는 것이 보인다. 바로 고인돌군(支石墓群)이다.‘세계문화유산(世界文化遺産) 고인돌’이라는 설명이 붙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고인돌들 마다 깨진 상흔(傷痕)을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원형(原形)이 많이 손상되었을 성 싶다. 그냥 무심코 지나갔더라면 과연 저 방위덩이들이 고인돌인지를 알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고인돌천국이다. 전 세계에서 확인된 고인돌 약 55,000여 기(基) 중 26,000여 기(基)가 우리나라에 분포되어 있단다. 이는 전 세계 지석묘(支石墓)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유독 우리나라에 집중(集中)되어 있는 이유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란다.

* 강화 고천리 고인돌(支石墓,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6호) : 강화도 일원에는 약 120기(基)에 달하는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는데, 그중 수십 기(基)가 이곳 고려산의 주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인돌 분포 평균 고도(高度)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의 북방식(北方式) 고인돌 무덤 1기는 완벽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 외의 고인돌 무덤은 오랜 시간동안 자연적(自然的)인 붕괴가 이루어져 원형이 많이 훼손(毁損)되어 있다.

 

 

 

 

 

고인돌 군락을 지나면 곧이어 기괴(奇怪)하게 생긴 소나무들이 들어찬 솔밭에 도착하게 된다. 명품송(名品松)이라고 불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잘생긴 소나무들이다. 바닷바람에 실려 오는 솔향기에 취해 코를 벌름거리다보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고려산이 우뚝 솟아있다. 능선의 왼쪽 사면(斜面)에는 전망테크가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봄철에 진달래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진달래 능선 아래에는 누렇게 익은 벼들로 가득 찬 황금들녘이 펼쳐지고 있다.

 

 

 

 

고려산과 혈구산의 특징은 진달래와 억새, 그리고 고인돌을 들 수 있다.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봄철에 이곳을 찾았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이겠지만, 가을에 찾더라도 세 가지 특징 중 하나인 억새꽃 잔치는 볼 수 있으니 헛다리품을 팔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로 붐비는 봄철보다야 호젓한 지금이 더 좋을 수도 있을 것이고...

 

 

 

말끔하게 정비된 데크길을 따라 걷다보면 이내 고려산 정상이다. 그러나 고려산 정상은 올라갈 수가 없다. 군부대(軍部隊)가 자리를 꿰차고 있기 때문이다. 레이더시설을 비롯한 철탑(鐵塔)들이 위압적(威壓的)이기 때문에, 굳이 ‘출입금지’ 팻말을 매달아 놓지 않아도, 성큼 다가가기에 부담스러울 정도이다.

* 고려산(高麗山) : 옛 이름은 오련산(五蓮山)이었는데, 고려시대 때 몽고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천도한 후 고려산(高麗山)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단다. 고구려 장수왕 4년에 중국 동진의 천축조사가 이 산에 올라 다섯 색상의 연꽃이 피어 있는 오련지를 발견하고, 이 연꽃들을 하늘에 날렸고, 그 꽃들이 떨어진 곳에 다섯 개의 절(寺刹)을 세웠단다. 적련사(赤蓮寺 적석사)와 백련사(白蓮寺), 청련사(靑蓮寺), 황련사(黃蓮寺), 흑련사(黑蓮寺) 등인데, 현재는 백련사와 청련사 그리고 적석사만이 남아있다.

 

 

 

 

 

군부대의 담벼락을 싸고돌아 혈구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먼저 백련사와 청련사로 나뉘는 갈림길에서는 청련사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나무테크 길을 지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군부대의 뒤편 울타리 아랫니다. 이곳 갈림길에서는 청련사를 버리고 고비고개로 진행해야 한다. (청련사 갈림길 이정표 : 청련사 1.5Km/ 고비고개 1.3Km/ 고려산 정상 0.3Km)

 

 

 

 

청련사 갈림길에서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을 한동안 구르듯 내려오면, 작은 고갯마루가 마중을 나온다. 고비고개(나래현)이다. 이 고개는 강화읍과 외포를 연결하는 고갯마루로서 통행하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평소에는 한적(閑寂)하고 적막(寂寞)하기 이를 데가 없다.

 

 

 

고비고개의 도로(道路)를 벗어나 숲을 뚫고 뻗은 오솔길로 들어선다. 곧이어 길은 가파르게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르고 있다. 정상으로 이어진 가장 짧은 길이니 당연히 경사(傾斜)도 그만큼 급할 것이다. 고비고개에서 혈구산까지는 세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한참 오르면 첫 번째 봉우리이다. 이곳부터는 길은 순해진다.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봉우리, 조그만 오르막이라도 싫은 사람은 왼편으로 우회(迂回)하면 된다. ‘느림보의 미학(美學)’ 이런 길에서는 애써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 피톤치드 향이 가득한 길이니 구태여 서두를 필요 없이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걸어보자. 그리고 옛 노래 한 소절이라도 좋으니 콧노래도 흥얼거려보자.

 

 

 

3봉을 우회한 후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이곳에서는 우회(迂廻)하지 말고 곧바로 정상으로 올라야 하기 때문이다. 우회할 경우에는 시간도 더 걸리고, 오르막 경사(傾斜)도 꽤나 심하다. 느긋하게 걷던 오솔길에서 벗어나 한차례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숲을 벗어나면서 이내 정상에 서게 된다. 시야(視野)가 한꺼번에 열리는 곳, 정상은 억새들의 군무(群舞)가 펼쳐지고 있다. 억새꽃 너머로 파란 하늘이 쏟아지고 있다.

 

 

 

혈구산의 뾰쪽하게 도드라진 정상은 암반(巖盤)이 깔려있다. 덕분에 정상에서의 조망은 명품이다. 북쪽에는 오늘 지나온 고려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아스라이 보이는 것은 아마 북녘 땅일 것이다. 동쪽에는 강화읍과 그 너머엔 김포평야, 남쪽에는 마니산이 우뚝 솟아있다. 우리가 가야할 능선은 서쪽 석모도를 향해 쭉 뻗어있다. 정상 일대에는 억새밭이 고르게 분포(分布)되어 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억새들의 물결이 석모도를 허공에 띄우고 넘실거리는 파도(波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혈구산 정상은 은빛 파도(波濤)가 넘실거린다. 정상부의 억새는 드문드문 분포(分布)되어 있기 때문에, 억새만 떼어놓고 보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 규모나 밀도(密度)가 다른 억새 명산(名山)들에 비해 한참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바다와 같이 겹쳐놓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산이 만들어 낸 가을 풍광(風光)과, 작은 돛단배인양 물결 따라 흔들리고 있는 작은 섬 몇 개를 겹쳐놓으면, 혈구산의 가을은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화(風景畵)로 변해버린다.

 

 

 

 

혈구산에서 왼편 능선을 따라 하산을 서두른다. 퇴모산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빠듯할뿐더러, 특별한 볼거리도 없는 능선을 꼭 밟아야만할 뚜렷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혈구산에서 안양대학교 방향으로 내려서는 하산(下山) 길은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파르다.

 

 

 

산행날머리는 선원면 냉정리 선원주유소 앞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이내 길은 다시 순해진다. 멋스런 소나무들이 늘어선 숲을 지나다보면 코끝을 스치는 솔향, 거기다 두텁게 쌓인 소나무 낙엽(落葉) 위를 걷는 발걸음은 포근하기만 하다. 밋밋한 능선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오래 이어진다. 이처럼 편안한 길에서는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걸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콧노래 몇 번 흥얼거리며 걷다 보면 어느덧 오늘 산행이 마감되는 냉정리에 도착하게 된다.

 

 

불곡산(佛谷山·465m)

 

산행일 : ‘11. 10. 2(일)

소재지 :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과 산북동의 경계

산행코스 : 대교아파트→악어바위 능선→임꺽정봉→암봉(왕복)→상투봉→상봉(정상)→유양초등학교(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경원선이 전철(電鐵)로 바뀌면서부터 수도권에서도 손쉽게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산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전철로 닿을 수 있는 산들 중에서도 불곡산처럼 아기자기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산은 드물다. 암릉이 동서로 길게 이어져 있어서, 비록 산의 높이와 규모는 작지만 스릴만은 ‘만점짜리’로 느낄 수 있다. 

 

 

 

산행들머리는 백석읍 대교아파트 버스정류장

양주역 2번 출구 건너편에서 32-1번 버스를 이용하여 백석읍의 대교아파트(불곡산입구)까지 간다(약10분 소요). 대교아파트 맞은편의 등산안내판 옆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들어서자마자 어디선가 유행가(流行歌)가락이 들려온다. 등산로 곁에 있는 복숭아 과수원에서 서비스용으로 들려주는 모양인데, 거의 소음공해(騷音公害)에 가까울 정도로 시끄럽다. 진행방향 저 멀리에 임꺽정봉의 암벽(巖壁)이 우람하게 펼쳐지고 있다.

 

 

 

들머리에 들어서서 약 5분 정도 걸으면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왼편으로 가면 임꺽정봉 정상(1.4Km), 오른편은 악어바위(1.4Km)라고 적혀있다. 고민은 잠깐이면 충분하다. 불곡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소위 ‘악어능선’의 명물바위 순례이니, 발걸음은 당연히 오른편으로 옮겨야 않겠는가 말이다. 물론 악어능선으로 진행할 경우 임꺽정봉 정상까지 약 1Km를 더 걸어야 한다.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어 예비군 훈련장을 통과하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 등산객들을 맞이한다. 바람결에 짙은 솔향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향에는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가 넘치도록 가득 담겨있을 것이다. 오늘 산행은 서서히 걸어도 4시간이면 충분하고, 거기에다 서울에서 가깝기까지 하니 구태여 길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여유로운 산행을 즐기면서 저 귀한 피톤치드를 가득 담아가보자.

 

 

 

 

본격적인 암릉이 시작되면서 명품(名品)바위들이 차례로 그 자태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선을 보이는 것은 남근(男根)바위, 바위 아래를 지나가며 던지는 진철이의 조크(joke) ‘성님! 산막타가 생각나네요.’ ‘산막타? 그 사람은 이름이 ’안 남근‘이니 저 바위에다 연관시키지 마시게나.’ 이어서 나타나는 복주머니 바위, 임꺽정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이 능선에는 악어바위를 위시해서, 복주머니바위, 코끼리바위, 공깃돌바위 등등 재미있게 생긴 바위들이 참으로 많다.

 

 

 

 

코끼리바위는 커다란 코끼리의 머리와 코 모양이다. 공깃돌바위는 둥그런 모양의 큰 바윗돌, 임꺽정이 가지고 놀았을까? 나타나는 바위들의 이름표를 보고 그 형상을 그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악어능선은 바위들로 이어지고 있어 ‘위험 구간’으로 분류되기 한다. 지금이야 곳곳에 안전시설을 설치해 놓아 초보자들도 다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리찌 마니아’들이나 다니던 코스였다.

 

 

 

이름표를 달고 잇는 수많은 바위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은 아무래도 악어바위일 것이다. 선명한 악어가죽 문양에다 생김새도 마치 기어오르는 악어처럼 바위에 붙어 있다. 그래서일까? 지도에는 이름도 나와 있지 않은 이 능선이 등산객들 사이에 ‘악어능선’이라고 불리고 있다. 누가 여자들을 보고 약하다고 했을까? 바위를 잡고 오르기가 만만치 않은데도 성큼 바위에 매달리고 있다. 뒤이어 나타나는 위험코스에서도 이 여성의 모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악어능선이 끝나면 상투봉에서 넘어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다. 이곳에서 바윗결을 잡고 조금만 더 오르면 드디어 임꺽정봉 정상이다. 임꺽정봉 정상은 의외로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표지석 옆을 거대한 바위가 지키고 있다. 간혹 ‘암벽등반 마니아’들이 바위위로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크랙이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상에서 바라본 암봉(巖峰), 로프를 이용해 서쪽방향으로 내려서면 암봉이다. 암봉은 한 개의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되어 있고, 상부는 20~30이 둘러앉아 점심상을 차려도 될 정도로 평평하고 널따랗다. 암봉의 서쪽 사면(斜面)은 불곡산에서 가장 길고 가파른 직벽(直壁)형 슬래브(slab)이다. 7년 전, 한북정맥을 답사할 당시에는 40m 높이의 슬래브에 로프만 달랑 걸쳐 있었다. 지금은 계단을 설치해 놓아서 등산객들의 안전을 돕고 있지만, 마니아들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다. 스릴을 느껴보지 못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바위봉우리인 임꺽정봉에서 바윗길을 따라 내려서면, 상투봉 아래에 까지 잠깐 동안 흙길이 이어지다가, 상투봉 근처에 이르면 또다시 험한 바윗길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 암릉은 상봉(일명 투구봉)을 내려설 때까지 계속된다.

 

 

 

 

불곡산 주능선은 온통 암릉으로 되어 있다. 구간마다 아찔한 곳이 있으나 안전(安全)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암릉의 일반적인 특징이 빼어난 자태이지만, 임꺽정봉에서 상투봉을 거쳐 상봉에 이르는 구간이 특히 재미있다. 기기묘묘(奇奇妙妙)한 화강암과 소나무가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불곡산은 봉우리마다 올라갔다 떨어지는 코스가 깊고 가파르다. 암반(巖盤) 하나를 간신히 올랐다 싶으면 바로 다른 암반이 기다린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불곡산 산행의 백미(白眉)는 온갖 모양의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어 눈을 즐겁게 해준다는 것이다.

 

 

 

 

 

5년 전까지만 해도 이 코스는 아주 험준한 길이었다. 그래서 마음 약한 사람들은 우회로를 이용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다시 찾은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많이 변해 있다. 겹겹으로 설치된 안전(安全)시설들은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불문하고 누구나 쉽게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이다.

 

 

 

상투봉, 상봉도 상투봉도 모두 우람한 바위덩어리이다. 도봉산이나 북한산, 수락산 등 서울 근교의 어떤 암봉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안전제일... 상투봉 근처에서 바위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여자분이었는데 헬기까지 출동한 것을 보면 많이 다치신 모양이다.

 

 

 

 

 

 

10월의 초입, 때는 바야흐로 산이 붉게 물들어가는 계절이다. 이곳 불곡산도 서서이 붉고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다. 불국산(佛國山)이라고도 불리는 불곡산은 불교와 관련된 이름 같지만 실은 산기슭에 우거진 회양목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 온 계곡이 회양목으로 붉게 물든다고 해서 불곡산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불곡은 '붉은 골짜기'를 그대로 쓴 것이다.

 

 

 

 

불곡산 정상인 상봉의 압권은 거침없는 조망이다. 사방으로 시야가 터져있고. 북쪽으로 감악산과 마차산, 동두천 주변이 한눈에 든다. 남쪽은 사패산과 도봉산 줄기가 실루엣으로 살아나 절경이다. 그 옆을 장식한 수락산과 불암산 산맥도 눈앞이다.

 

 

 

 

하산길 등산로는 마주 오는 사람이 있으면 어께가 부딪힐 정도로 좁게 이어진다. 그러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뚜렷하고, 경사가 완만하기 때문에 마음 편히 느긋하게 걸을 수 있다. 능선 길을 걷다보면 가끔 보루(堡壘)가 나타난다. 돌로 쌓은 작은 초소(哨所)로서 적의 동태를 감시하거나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것이란다. 그 수가 9개란다. 아마 그만큼 이곳이 군사적(軍事的)으로 중요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밋밋한 흙길을 한참 걸어 내려가면, 철탑 부근에서 마사토 구간으로 변한다. 이곳에서 다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양쪽 다 유양초등학교 부근으로 내려서게 되지만, 난 왼편 길로 접어든다. 가능하면 양주시청 가까이로 내려설 요량으로... 그러나 왼편 길은 사유지를 통과해야 되고, 또한 토지주인이 통행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오른편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산행날머리는 유양초등학교

왼편 길로 내려서면 동덕여대 총장을 지냈다는 분의 묘의 앞을 지나게 된다. 잘 가꾸어진 묘를 지나면 얼마 안 있어 오른편에 조그만 정자 하나가 보이더니 갑자기 개인 저택의 정원에 내려서게 된다. 고풍스런 정원을 빠져 나오면 오른편에 오늘 산행이 마감되는 유양초등학교가 보인다.

 

 

마니산(摩尼山 469m)

 

 

산행일 : ‘11. 9. 23(금)

소재지 : 인천직할시 강화군 화도면

산행코스 : 마니산주차장(관광휴게소)→매점→314봉→참성단→마니산 정상→암릉구간→함허동천 갈림길→정수사→정수사 앞 도로 (산행시간 : 4시간 )

 

함께한 산악회 : 부청시청 윤주영선생과 함께

 

 

특징 :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참성단(塹城壇)을 세웠을 만큼 예로부터 신령스럽게 받들어온 산이다. 마니산은 빼어난 산세(山勢)와 멋진 조망(眺望) 덕분에 등산객들과 탐방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망뿐만 아니라 멋진 바위능선까지 갖추고 있어 다양한 산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근처에 조상들의 흔적이 담긴 볼거리가 많아 유적답사(遺蹟踏査)를 겸한 가족(家族) 산행지로 적격이다.

 

 

 

산행들머리는 화도면 상방리의 마니산입구 주차장(駐車場)

김포시에서 지방도로 356호 지방도를 타고 양촌면과 대곶면을 지나서 초지대교를 이용하는 게 마니산으로 가는 가장 편리한 길이다. 초지대교를 건너 길상면 소재지인 온수리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산행들머리인 화도면 상방리에 다다르게 된다. 산행은 주차장의 마니산 방향 귀퉁이에 있는 관광휴게소에서 시작된다.

 

 

매표소를 지나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서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개미허리와 918계단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편은 밋밋한 능선인 단군로를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오른편 단군로는 경사(傾斜)가 완만하지만 700m를 더 다리품을 팔아야만 정상에 도달할 수가 있다. 어디로 가야할 지를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데, 다리 건너에 있던 아저씨가 선뜻 다리를 건너오란다. 아마 매점 주인인 모양이다. 현지(現地) 주민이 권하는데 무엇을 망설이랴? 서슴없이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완만(緩慢)한 경사(傾斜)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깔끔하게 정비가 되어있다. 바닥을 돌을 촘촘히 심어 놓았는가 하면, 등산로의 가장자리는 로프를 매어놓아, 붙잡고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단군로로 이름 지어진 이 능선길은 918계단으로 이어지는 계단길에 비해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호젓한 숲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여유로운 산행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참나무 숲이 적당하게 우거지고 경사 또한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 30분쯤 걸으면 쉼터가 마련된 언덕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쉼터에서 314봉까지는 급경사(急傾斜) 오르막길과 힘겨루기를 해야만 한다. 숨이 턱에 찰 정도로 힘들지만 다행이 오름길은 그리 길지 않다. 마니산 북서쪽 능선 상의 하나의 봉우리인 314봉에 올라서면, 서해바다가 눈앞에 펼쳐지고 바다 건너 석모도의 해명산과 낙가산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남동쪽으로는 저 멀리 참성단과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314봉에서 등산로는 왼편으로 굽으며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이후 약수터길 갈림목까지는 탄탄대로. 경사도 완만하게 이어져 산책로를 걷는 느낌이 든다. 걷는 길에 가끔 만나게 되는 조망대(眺望臺)를 그냥 지나치지 말자. 광활하게 펼쳐지는 서해바다와 바다안개 사이를 떠다니는 섬들이 만들어내는 몽환적(夢幻的)인 풍광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약수터 갈림길에서 능선마루인 465봉에 올라서는 구간은 새로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나무테크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의 들머리에 ‘삼칠이계단’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만만치 않은 경사(傾斜), 계단이 설치되지 않았을 때에는 오르는 사람들이 애를 먹었을 것 같다. 나무계단 중간에는 등산객들을 위해 전망대(展望臺)까지 만들어 놓았다. 물론 신도와 시도, 모도를 표시한 조망도(眺望圖)도...

 

 

 

 

 

까마득한 나무계단을 오르고 나면, 강화도의 사방팔방이 모두 보인다. 영종도, 무의도, 실미도, 신도, 시도, 모도 등 많은 섬들이 이곳이 서해임을 증명하고 있다.

 

 

 

참성단이 보이는 바위능선에 올라서면 힘겨운 과정은 끝난 셈이나 다름없다. 좌우로 펼쳐지는 조망을 즐기면서 암릉 구간을 오른다. 길지 않은 급경사(急傾斜) 구간을 올라서면 참성단에 이르게 된다. 참성단은 철조망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고, 오르는 계단 입구에 문이 나있다. 철문을 지나 세월 흔적을 더듬으며 마지막 계단을 올라서면 '한울님 빛 되어 내리시는 신성한 곳' 참성단이다

 

 

 

마니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塹城壇 :사적 136호), 개국시조인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쌓았다고 전해지는 5593m² 면적의 제단(祭壇)이다. 한반도의 가운데에 위치한 마니산의 참성단은 한라산 백록담과 백두산 천지까지의 거리가 똑같다고 한다. 개천절에 단군의 제사가 열리고 있으며, 전국체육대회가 열릴 때에는 대회에서 사용할 성화(聖火)를 이곳에서 붙여오고 있다. 그동안 등산객들이 참성단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참성단 둘레에 울타리를 설치하고 출입을 통제해 왔으나, 등산객과 관광객들의 참성단 개방 요구가 날로 거세지자 올 8월1일부터 개방하고 있단다. 참성단에는 수령 200년 된 소사나무((천연기념물 502호)가 있다. 소사나무는 강화도 지역에서 자생하는 나무여서 마니산 주변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가운데 하나이지만, 마니산 정상인 참성단 돌 축대 위에 서 있는 한 그루의 소사나무는 더없이 장관이다. 참성단 소사나무는 흙 한 줌이 고작인 참성단 돌 틈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장한 나무다.

 

 

 

참성단에서 살짝 안부로 내려섰다가 올라서면 헬기장이다. 이곳에 摩尼山(마니산)이라고 쓰인 나무 기둥이 세워져 있다. 이곳의 높이는 455m이지만, 마니산의 높이는 469.4m이니 분명히 이곳은 정상이 아닐 터인데..., 지도에 마니산으로 표기된 지점도 이곳이 아니라, 이곳에서 약 1.2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헬기장에는 정상표시 나무기둥 외에도, 참성단을 소개하는 그림판도 세워져 있다. 발 아래로는 짙푸른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석모도와 장봉도며 멀리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으로 비행기가 내려앉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버스를 타고 건너온 초지진대교도 보이고, 동남쪽으로는 인천시까지도 보인다.

 

 

 

헬기장에서 내리막길로 내려서면 얼마 안 있어 1716년 강화유수였던 최석항이 지었다는 '塹城壇重修碑(참성단중수비)'가 보인다. 바위의 수직면(垂直面)에 새겨진 비문의 곁에는 한글로 해석을 해놓은 안내판이 서있다. 중수비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암릉이 시작된다. 암릉을 만들어내고 있는 근육질의 바위들이 마치 든든한 성곽(城郭)처럼 느껴짐은, 이곳이 강화가 항몽(抗蒙)의 유적지였음을 떠올림과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산길은 바윗길로 이어진다. 길은 바위봉우리를 비켜 우회(迂回)시키고 있지만, 난 굳이 바위에 매달려본다. 바위 봉우리를 넘는 길이 그리 위험하지도 않을뿐더러 바위봉우리 위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능선에서 바라보는 세상과는 또 다른 세상이기 때문이다. 바위 난간에 걸터앉아 고개를 돌려보니 바다는 끝 간 데 없이 아득히 물러나고, 온몸으로 태양을 품은 갯벌은 캔버스 위의 덜 마른 유화 같다. 진행방향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바윗길. 암릉은 오랜 세월 견고하게 쌓은 성곽(城郭)처럼 산을 남북으로 갈라놓고 있다.

 

 

 

 

 

바다를 따라 펼쳐진 바윗길은 그야말로 환상적(幻想的)이다. 햇빛에 산란되어 반짝이는 바다와, 오르락내리락 아기자기하게 펼쳐지는 능선.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기암괴석(奇巖怪石)과 청초한 소나무 등은 여유롭지 않은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이곳을 찾아온 내 열정(熱情)을 보상하기에 충분했다.

 

 

 

헬기장에서 지도상의 정상까지는 약 1.2km 거리,. 아기자기하면서도 조망이 뛰어난 암릉구간의 바위와 바위를 이어 건너다보면 어느덧 지도(地圖)에 정상이라고 표시된 지점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는 정상 표지석은 물론 이정표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 강화사람들은 이곳을 정상으로 여기지 않나보다. 그만큼 참성단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지도와는 별개로 참성단 제단 옆 헬기장에 정상표지목(頂上 標識木)을 세워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능선의 끝. 바로 밑이 동막 해수욕장을 접한 바다였고, 저 멀리 인천시가지가 희미하게 바라보인다. 마니산에서 바라본 강화도 풍경은 낯설다. 바다를 낀 산에서 바라보는 너른 바다가 제일 인상적이지만, 그 반대쪽으로 보이는 정경(情景) 역시 낯선 만큼 매력적이다. 아직 황량한 논밭과 군데군데 보이는 산. 대부분의 산 정상에 오르면 그 밑으로 보이는 것이 대부분 그 산 덩어리 자체요, 멀리 보이는 것이 논이었건만 마니산에서는 그 밑의 농경지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산 따라 길 따라 정수사(淨水寺) 방면으로 내려가는 길도 자못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바윗길을 조심스레 내려서다가 뒤돌아보면, 하얀 너럭바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모양이 꼭 천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길 같다. 저래서 마니산이 영산(靈山)으로 불리나 보다.

 

 

 

 

봉우리 사이로 경기만(京畿灣)과 영종도 주변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도면 쪽 갯벌이 해무 속에서 희미하게 펼쳐진다. 강화도 갯벌은 세계 5대 갯벌에 랭크될 정도로 이미 세계적인 명소. 그 자체만으로 천연기념물 415호로 지정된 생태계의 보고다. 옅은 연무사이로 수많은 물줄기들이 모세혈관처럼 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갯벌은 온통 회색 파스텔톤을 뿌려 놓은 듯하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강화에서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라는 표현을 썼나보다. 그만큼 갯벌은 이곳 주민들의 삶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정수사 앞 도로

암릉이 끝나면 산길은 갑자기 급격한 내리막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 길지 않은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능선안부인 진달래능선 고갯마루에 닿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함허동천, 정수사로 가려면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오른편 사면(斜面) 길로 10분 정도 내려서면 정수사가 보인다. 천년역사의 거대한 사찰을 예상했지만 정수사는 예상 외로 작고 초라했다. 그래서인지 중창을 하기 위해 기와불사가 한창이었다. 정수사까지 아스팔트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니 승용차를 이용하여 귀가하면 된다.

 

 

 

 

정수사(淨水寺), 639년(선덕왕 8) 회정대사(懷正大師)가 마니산의 참성단(塹星壇)을 참배한 다음 이곳의 지세가 불제자의 삼매정수(三昧精修)에 적당하다고 판단되어 정수사(精修寺)를 창건했다. 조선 세종 때 함허(涵虛)가 중창한 다음, 법당 서쪽에서 맑은 샘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을 정수사(淨水寺)로 바꾸었단다. 문화재로는 법당(보물 제161호)가 있다.

 

 

수리산(修理山, 475m)

 

산행일 : ‘11. 7. 17(일)

소재지 :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와 군포시, 안산시의 경계

산행코스 : 성결대학교→관모봉→수리산(태을봉)→바위능선→고개사거리→병목안유원지(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산본이나 군포시에서 보면 독수리를 닮았다고 해서 수리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편리한 교통망 때문에(전철 산본역, 수리산역, 대야미역, 안양역, 금정역, 명학역 등에서 내려 도보로 20여분 정도면 등산로에 닿는다.) 군포·안양·안산뿐 아니라 인근 수도권 주민들로부터도 각광 받고 있다. 맑은 날 산 정상에 오르면 서해 인천 송도신도시와 수원시가지까지 볼 수 있다. 수리산은 산세가 험하지 않아 어린이들이나 여성들에게도 큰 부담이 없다. 또한 산행 초입부터 송림이 울창해 상쾌한 느낌을 준다. 울울창창한 숲길을 걷기 때문에 자외선 노출이 우려되어 야외활동을 꺼리는 여성들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안양시 만안구 안양8동의 성결대학교 정문

지하철 1호선 명학역 1번 출구를 나와 육교를 건너면 ‘명학공원’이 나온다. 공원을 지난 후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성결대학교를 향해 걷다가, 대학 정문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또 하나의 게이트(후문)가 보인다. 후문의 경비실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함께 걷고 있는 회원들은 모두 7명, 사당역에서 만난 다우악과 블루엔젤, 그리고 명학역에 내리니 코스모스 모녀와 진철이, 종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성결대학교 정문 오른편으로 난 소로를 따라 들어서면 우선 시멘트 계단이 나타난다. 계단을 올라 조그만 개울을 건너면 ‘봉수정 약수터(명상의 숲)’이다. 진철이가 약수터 앞의 정자(亭子)에 막걸리를 펼쳐 놓는다. 아마 배낭의 무게를 줄여보려는 얄팍한 계략(?)인 모양이다. 아니면 가뜩이나 약한 다리품을 막걸리 기운을 빌어 극복해보려는 의도일지도... 이때 폴스카이로부터 전화, 성결대학교 근처에 와 있단다. 그럼 오늘 산행인원은 8명이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숫자, 같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걷기에는 최적(最適)의 인원일 것이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면 제일먼저 침엽수림이 산꾼들을 맞이한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자태가 자못 의젓하다. 걷는 도중 ‘명상의 숲’이라고 적힌 팻말을 자주 만나게 된다. 침엽수들이 넘치도록 보내주는 피톤치드를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서서히 걸으며 충분히 담아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서서히 걷다보면 응당 사색은 따라올 것이니까 말이다. 도심생활에서 찌든, 폐부속의 찌꺼기까지 씻어내 주려는 듯, 피톤치드를 듬뿍 머금은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상큼하다. 가슴을 활짝 펴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가슴 밑바닥까지 서늘해진다. 그러고 난 후에 서서히 걷기 시작한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등산로 왼편이 시원스레 트이고 있다. 붉은 빛 나는 차돌바위가 만들어낸 천연(天然)의 전망대(展望臺)이다. 바위에 올라서면 왼편에 삼성산과 관악산, 그리고 오른편으로 청계산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선다. 산 아래에는 안양, 과천, 의왕시에 꽉 들어찬 아파트들이 마치 성냥갑같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비온 뒤끝의 프리미엄(premium)으로 염곡동의 유통단지까지도 보이고 있다.

 

 

 

등산로에는 침엽수에서 떨어진 솔잎들이 두텁게 내려 앉아있다.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듯 폭신폭신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런 호사도 잠시, 등산로는 이내 급경사 오르막길로 변해버린다. 관모봉까지 가파른 오름길의 연속이다. 다행이 경사가 급한 곳에는 로프와 철제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오름길에서 30분 정도 다리품을 팔다보면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능선에 올라서면 길은 갑자기 고와진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새 관모봉이다. 바위로 이루어진 관모봉 정상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오늘은 제헌절, 국경일이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내내 휘날리고 있었겠지만... 관모봉(冠帽峰)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뛰어나다. 발아래에는 동쪽으로 달려가고 있는 외곽순환도로가 또렷하고, 그 뒤로는 모락산, 청계산, 광교산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헌걸차다. 왼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관악산과 삼성산도 한눈에 잡힌다.

 

 

 

태을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산길이 아니라 마치 산책로 같은 느낌이다. 그만큼 정비가 잘 되어있다는 얘기이다. 깔끔한 흙길이 3m도 넘게 잘 닦여있고, 길가에는 20~30년생 소나무들이 울창하다. 간혹 조림을 한 듯 단풍나무도 심심찮게 무리를 지어 있다.

 

 

관모봉을 지나서 만나게 되는 첫 봉우리는 수리산 최고봉인 태을봉(太乙峰)이다. 군포시의 진산인 태을봉은 최고봉임에도 불구하고 조망은 시원찮다. 그러나 실망은 금물, 정상에서 200m 정도 더 진행하면 조망테크가 설치되어 있으니 그곳에서 눈을 즐기면 되기 때문이다. 조망테크에 서면 군포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멀리 시화호까지 눈에 들어온다.

 

 

 

태을봉에서 슬기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수리산에서 가장 스릴이 있는 구간이다. 노란바위를 중심으로 암릉구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비록 짧기는 하지만... 그 정도조차도 위험하다고 생각된다면 우회로를 택하면 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행들을 우회시키고 암릉위로 올라선다. 젊은 블루엔젤은 언제 올라왔는지 이미 저만큼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암릉을 걷다보면 왼편으로 산본시가지(市街地)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암릉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잡는다. 태을봉 어림에서 둘러앉고 싶은 마음을 참고 여기까지 내려온 것은, 위험구간인 암릉구간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점심에 곁들이는 반주(飯酒)이지만 ‘산과 하늘’의 반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칡술, 더덕술에 막걸리와 소주, 얼린 맥주까지, 아니나 다를까 배낭에서 나오는 술들은 다양하기도 하다. 폴스카이가 가져온 ‘복분자주(覆盆子酒)’는 그의 부인이 내게 전하라고 보내준 것인데도, 블루엔젤이 욕심을 내고 있다. 아서라! 젊은이들에게는 큰 약효가 없는 술이느니라...

 

 

암릉구간이 끝나는 지점인 안부 사거리에서 오른편 ‘제2 만남의 광장’으로 내려선다. 오늘 같이 무더운 날에는 체력소모가 많기 때문에, 오래 걷는 것은 오히려 건강을 해치기 쉽기 때문이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이내 산길은 고와진다. 산의 허리를 감으며 이어지는 등산로는 경사가 완만할뿐더러, 길 주변에 울울창창하게 늘어선 침엽수들로 인해 상쾌하기 그지없다. 오늘 새벽까지 내린 비 탓일까? 코끝으로 전해져 오는 짙은 소나무 향이 진하다.

 

 

 

소나무에서 내품는 피톤치드향이 마음에 든다면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 우거진 소나무들이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만남의 광장에는 운동기구 외에도 나무 의자들이 설치되어 있으니까... 특히 오른편 개울에는 손끝이 시릴 정도로 차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니 잠깐 쭈그리고 앉아 탁족(濯足)이라도 해볼 일이다. 역시 부지런한 코스모스님 모녀, 어느새 개울가에서 물장난을 하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진철이와 다우악도 냇가로 내려서서 신발을 벗고 있다.

 

 

 

 

만남의 광장을 지나면서 길은 등산로라기보다 차라리 산책로에 가까울 정도로 넓고 고르게 잘 닦여있다. 길가에는 나무 해설판도 심심찮게 매달려 있고, 공들여 쌓은 돌탑들도 보인다. 산을 내려서면 병목안유원지, 계곡을 따라 형성된 유원지는 사람들로 넘치고 있다.

 

 

 

 

산행 날머리는 병목안유원지

최경환 성지를 지나 조금 더 내려선 후 음식점으로 들어선다. 전에 몇 번인가 들러본 적이 있다는 진철이가 추천하는 집이다. 음식점은 계곡을 끼고 양 옆으로 평상을 만들어 놓고 손님을 맞는데 규모가 장난이 아니다. 다우악 말로는 이곳보다 더 큰 음식점들이 많다고 하지만, 난 이보다 더 큰 음식점은 본 일이 없다. 옻닭과 닭백숙을 안주삼아 소주... 우린 얼큰하게 취한 뒤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 최경환 성지(안양 제5경) : 안양 9동 ‘담배촌’에 조성된 천주교의 순례지. 최경환(1805~1839년)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의 아버지로 담배촌에 정착해 천주 신앙을 전파하다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순교했다.

 

 

 

 

검단산(黔丹山, 657m)

 

 

산행코스 : 애니메이션고등학교→유길준선생 묘역→585봉(전망대)→검단산 정상→약수터→현충탑→애니메이션고교(산행시간 : 순수 산행시간만 4시간)

 

소재지 : 경기도 하남시 천현동과 광주시 남종면의 경계

산행일 : ‘11. 6. 19(일)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색 : 서울 근교의 산들은 대부분 악산(惡山)인데 반해, 검단산은 순수한 육산(肉山, 흙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덕분에 산이 온통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여름산행지로 적합하다. 다만 산에 물이 적기 때문에 산행을 마친 후에 마음 놓고 씻을 수 없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된다. 산에 오르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하남과 서울의 시가지(市街地)가 자못 장쾌하게 펼쳐진다.

 

 

 

산행들머리는 하남시 창우동 애니메이션고등학교

잠실역이나 천호역에서 30-3번 시내버스를 타면 하남시가지를 거쳐 산행들머리인 애니메이션고등학교 입구에 내려준다. 애니메이션고등학교를 왼편에 끼고 돌아 들어가면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진입로 양편에는 아웃도어 매장들 외에도 음식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물이나 음식물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산의 초입에 있는 검단쉼터에서 다시 한 번 준비물을 점검한 후 산행을 시작한다. 잣나무와 밤나무가 많은 길을 지나면 구당 유길준선생의 묘소를 만나게 된다. 유길준은 김옥균·박영효 등과 함께 활동한 구한말(舊韓末)의 대표적인 개화사상가로, 일본과 미국에서 수학하고 돌아와 서구(西歐)의 신문물(新文物)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했던 인물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0분 정도 흘렀다.

 

 

 

 

묘역(墓域)에서 오른편으로 올라붙어 가파른 된비알을 치고 오르면, 15분 후에는 능선안부에 닿게 된다. 안부에는 의자 몇 개를 설치해 놓아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공터 한쪽 귀퉁이에는 이동식 간이주점, 막걸리와 간단한 음료수를 팔고 있다. 이런 간이주점은 산행을 마칠 때까지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었다.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저 머루인데요. 어디쯤이세요?’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그녀도 검단산을 오르고 있는 중이란다. 정상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그새를 못 참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만큼 많이 보고 싶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그녀를 만나본지가 벌써 3년 이상 되었으니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들도 다들 기대에 부푼 표정들이다.

 

 

 

쉼터에서부터는 급경사(急傾斜)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파른 경사(傾斜)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듯, 나무계단과 돌계단을 번갈아 만들어 놓았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밟으며 오르길 한참,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이면 왼편으로 숲이 열린다. 전망바위이다. 검단산을 통틀어 가장 전망이 좋은 곳 중의 하나이다. 북쪽으로 강 건너 예봉산이 손에 잡힐 듯하고, 북서쪽으로는 미사리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한강의 유장한 흐름이 장관이다.

 

 

 

 

 

 

 

전망바위에서 가파른 능선을 따라 한참을 더 오르면 왼편에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전망대(展望臺)가 보인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팔당댐과 두물머리가 눈앞으로 가깝게 다가온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풍경은 운길산 수종사보다 한 수 위로 보인다. 전망대에서 50m쯤 더 걸으면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성냥갑(匣) 같은 아파트들의 일렬로 늘어서있다. 우리나라에서만이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진행방향으로 검단산의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검단산 정상에 닿으려면 전망대에서 다시 30분 정도 비지땀을 흘려야한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능선의 폭이 넓어지고, 곳곳에 등산객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아 쉬고 있다. 오늘 같이 무더운 날은 산에 오르는 것도 하나의 피서법일 것이다. 흐르는 땀을 개의치 않아서 좋을 것이고, 특히 능선이나 계곡을 따라 불어오는 산들바람이라도 맞을라치면 세상의 모든 행복이 모두 자기 것으로 보일 정도이니 말이다. 널따란 헬기장을 지나서 조금 더 오르면, 100평도 더되는 널따란 공터인 정상이다. 헬기장으로 조성된 정상의 동쪽 끝에는 허리높이의 정상표지석과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망원경은 아마 한강의 두물머리를 조망하라는 배려일 것이다. 남한강과 북한강, 팔당호, 팔당댐이 어우러진 양수리 일대가 커다란 ‘물의 나라(水國)’를 만들며 장관을 이루고 있다.

 

 

 

 

 

 

부지런히 정상에 올랐지만 머루님이 보이지 않는다. 다들 어디로 갔는지 나와 함께 올라온 다른 일행들까지도 보이지 않으니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핸드폰에게 신세를 져본다. 내가 방금 올라왔던 길목이란다. 왜 못 보고 지나쳤을까? 아마도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지레짐작에 그녀를 그냥 지나쳐버렸다 보다. 아니면 너무 예쁘게 변해버린 그녀를 알아볼 수 없었던지... 그동안 마음 졸여오던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소견이 이렇게도 그녀를 예쁘고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나보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난 후, 하산을 서두른다. 이미 점심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머루님의 제안에 따라 산곡초등학교로 내려가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현충탑 방향으로 내려선다. 계단을 내려서서 조금 더 진행하면 가파르고 긴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만약 거리가 짧다는 메리트(merit)에 이끌려 이 코스를 선택해서 올라오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힘든 구간일 듯싶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서 너덜겅근처에서 산허리를 돌면 제법 널따란 공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도 곳곳에 자리를 펴고 둘러앉은 등산객들이 장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우리 일행도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펼친다. ‘점심 준비 안 해오기를 아주 잘했네 그랴~’ 모 공기업(公企業)의 부사장으로 있는 내 친구 바우君의 말마따나 푸짐한 상차림이 펼쳐지고 있다. 평소부터 푸짐하기로 소문난 자매님들이니 오죽하겠는가마는, 오늘따라 구름나그네님네 아주머님께서도 맛있는 부침개를 만들어 보내주셨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구름나그네님이 준비한 양주 한 병이 전부이다. 오늘은 결코 술을 마시지 않겠다는 내 다짐이 무너진 것이 제일 큰 원인일 것이다.

 

 

 

 

 

 

1시간이 넘도록 여유롭게 점심을 먹은 후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다시 이어지는 하산길도 역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아까의 내리막길만은 못하지만... 무릎도 보호할 겸 쉬엄쉬엄 내려가다 보면 어느덧 약수터(藥水)에 다다르게 된다. 잠시 발걸음을 약수로 목을 축인다. 물맛도 괜찮을뿐더러 청량하기까지 하니 상품(上品)의 약수임에 틀림없다. 약수터에서는 서쪽 방향으로 시원스레 시야(視野)가 열린다. 하남의 아파트들 사이로 미사리조정경기장이 마치 활주로처럼 길게 뻗어있다.

 

 

 

 

산행날머리는 애니메이션고등학교(원점회기)

약수터에서부터는 완만한 경사의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참나무 일색이던 등산로 주변이 어느새 소나무로 바뀌더니, 이내 일본이깔나무(落葉松)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공중을 향해 길게 뻗어있다. 현충탑을 지나면서 등산로 주변은 채소를 파는 노점상들이 점령하고 있다. 산을 빠져나오면 구수한 냄새로 등산객들을 유혹하고 있는 음식점들이 늘어서있고, 조금 더 내려오면 산행을 시작했던 애니메이션고등학교이다.

 

 

 

 

 

오늘 산행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50세가 넘은 장년들이다. 장년은 건강에 신경이 쓰이는 나이이다. 산을 오르면서 건강도 챙기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만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스포츠인가. 6월 22일자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688> 중에서 마음에 다가오는 일부를 옮겨본다.

『오늘날 한국의 중년남자들이 처절하게 생존에 시달리면서도 그나마 목숨을 유지하는 것은 한국에 산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해발 1000m 내외의 산들이 등산하기에는 최적이다. 나무와 약초가 있고 계곡물이 흐르는 산들이다. 3,000m를 넘어가는 산은 춥기만 하고 사람을 압도한다. 3,000m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죽은 산'이다. 미국의 로키산맥은 너무 웅장하여 사람을 압도한다. 사람이 놀 수 있는 산이 아니다. 한국은 적당히 놀기에 좋은 '살아 있는 산'이 국토의 70%나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믄 등산 천국의 지리를 갖추었다. 이는 천혜의 축복이다. 한국이 아무리 지지고 볶더라도 망하지(?) 않는 이유는 산에서 에너지를 얻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운두산(雲頭山, 696m)-깃대봉(624m)

 

 

산행코스 : 청평역→가루게(청구아파트)→약수터→잣나무삼거리→깃대봉(624m)→은두봉→파워고개→파워계곡→운수리 (산행시간 : 쉬어가며 6시간40분, 제대로 걸을 경우에는 4시간30분이면 가능)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과 상면의 경계

산행일 : ‘11. 6. 16(목)

함께한 산악회 : 산두레

 

 

특징 : 청평역 앞에 우뚝 솟은 깃대봉과 운두봉은 인적(人跡)이 뜸해서 호젓한 산이다. 청평역이 전철로 바뀐 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산행을 마칠 때까지 마주친 등산객들이 채 10명이 안될 정도로 아직은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다.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숲이 우거진 등산로는 여름철에도 걷기에는 좋지만, 산행을 마치고 흘린 땀을 씻을만한 물이 넉넉지 않은 것이 흠이다. 또한 산행을 시작할 때와 마칠 때, 대중교통(大衆交通)을 이용하는 곳까지가 거리가 너무 멀기(20~30분) 때문에 여름산행지로는 권하고 싶지 않은 곳이다.

 

 

 

산행들머리는 경춘선 청평역

경춘선 복선전철 상봉역에서 05:10부터 23:00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춘천행 전철을 타고가다 청평역에서 하차(下車)한다.(참고로 청평역에는 급행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역사(驛舍)를 빠져나와, 광장에서 산행준비를 하다보면 도로 건너 맞은편에 고층아파트가 보인다. 청구아파트와 청마루아파트이다. 아파트 뒤로 보이는 산이 오늘 우리가 오르게 될 깃대봉이다. 아파트 뒤에 있는 약수터에서 산행이 시작되므로, 아파트를 바라보며 진행할 방향을 잡는다면 길을 잃을 걱정은 없다.

 

 

 

청구아파트 앞을 지나 뒷길로 들어서면 삼거리가 나온다. 왼편은 심오암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편은 체육공원이자 약수터로 가는 길이다. 우리는 체육공원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물을 보충해야할 필요가 없을 경우에는 심오암으로 진행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약수터에는 운동기구 여러 개가 설치되어 있고, 휴식시설로 예쁘장한 정자(亭子)를 지어 놓았다. 가슴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약수는 수량(水量)이 풍부할 뿐더러, 맛까지 달콤하다. 약수터 주변에 물을 받으러 온 사람들도 눈에 띈다. 이런 시골에서 길어다 먹는 물로 간택(揀擇)되었다면 물맛은 이미 보증된 것, 숨도 쉬지 않고 두 바가지를 벌컥벌컥 들이 마신 후에야 자리를 뜬다.

 

 

 

약수터옆으로 올라서서 정자의 뒤편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서면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등산로 주변에는 아직 덜 자란 잣나무들, 이곳 가평이 ‘잣의 고장’임을 실감나게 해주는 들머리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첫 번째로 만나는 고개, 이곳에서 왼편으로 접어들어야 깃대봉으로 오를 수 있다. 그러나 등산로는 철조망으로 꽁꽁 닫혀있다. 이정표(깃대봉 3.44Km/ 청평중학교 1.8Km)까지 세워 놓았는데... 남의 땅(私有地)에 주인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등산로를 개설한 행정당국이나, 자기 땅이라고 철조망으로 꽁꽁 둘러싼 속 좁은 개인,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는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까 선두에 서는 게 아녀~’ 철조망에 부딪혀 돌아서는 선두그룹을 보며 혀를 차는 일행, 그의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는 몇 걸음 덜 걸은데 대한 행복감(幸福感)일까? 이정표에서 10m쯤 못 미치는 지점에서 왼편으로 새로운 등산로가 나 있다. 오른편에는 못난이 철조망이 등산로를 따라 나란히 달리고 있다. 철조망이 끝나면 얼마 안 있어 능선 사거리 안부에 닿게 된다. 왼편의 길은 심오암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오늘은 번개산행, 산두레 윤부장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선두와 후미(後尾)를 따로 두지 않고 함께 걷는 게 번개산행의 매력’이란다. 그래서인지 후미의 기척이 조금이라도 멀어질라치면 어김없이 휴식이다. 하긴 전철(電鐵)이 오가는 서울 근교(近郊)산행이니 시간도 넉넉할 것이고, 그럼 굳이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거기에 맞춰 나도 ‘느림보의 미학(美學)을 추구하며 옮기는 발걸음에 思索의 나래를 펼쳐본다.

◎ 사색 #1

오늘 내가 걷고 있는 산(山)길도 수많은 종류의 길 중의 하나이다. 길은 소통(疏通)과 교류(交流)를 여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리고 저쪽 한 켠에 있는 사람들을 이쪽의 너른 무대로 다가서게 만든다. 그 길은 구름다리로 하늘에 떠 있기도 하고, 오늘 내가 걷고 있는 이 길과 같이 山과 山을 잇기도 한다.

 

 

 

능선 안부를 지나면서 등산로는 서서히 경사(傾斜)가 심해지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아도 무더운 여름 날씨에 경사까지 가파르다보니 숨쉬기조차 힘겨울 정도이다. 이마에 흐르던 땀방울은 윗옷을 온통 적셔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고, 이제는 아예 팬티까지 축축하니 젖어온다. 다행이 내 바지는 검정색상(色相), 속옷이 밖으로 비칠 염려는 없다. 휴~~~

◎ 사색 #2

역사에는 길을 만드는 왕조(王朝)가 있었는가 하면, 성(城)을 쌓는 제국(帝國)도 있었다. 로마는 길을 뚫었고,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아포리즘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길은 열림이었고 소통이었으니까... 중국의 진(秦)나라는 만리장성이라는 성을 쌓았다. 우주선에서도 식별이 되는 지구위의 가장 장대한 구조물(構造物)인... 그러나 성은 갇힘이요 닫힘이다. 한 곳은 열었고, 한 곳은 닫았다. 길을 만든 로마와 성을 쌓은 진나라가, 어떤 치적(治績)과 번영이 장구(長久)한 세월을 보내면서 살아남았는지를 역사는 말한다. 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진실이다. 

 

 

 

등산로 주변에는 군(軍)의 작전용 참호 환풍구가 자주 보인다. 아마 이 근처에 군대(軍隊)가 주둔했던 모양이고, 어쩌면 그 시절에는 이곳의 통행도 불가능 했을 것이다. 정돈되지 않은 산길 좌우에 늘어선 참나무의 잎사귀 들이 바람이 간지러운지 바르르 흔들린다. 급경사 오름길을 오르느라 흘리는 땀방울은 방울방울이라는 개념을 벗어나 아예 빗방울이 흘러내리듯 흐르고 있다. 얼굴을 지나치기가 버거운지 아님 귀찮아선지, 얼굴을 건너뛰고 아예 땅으로 직행...

◎ 사색 #3

능선이 오른편으로 휘고 있다. 맞은편에서 한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모두의 입에서는 한결 같은 탄성 ‘아, 시원하다’ 이어지는 오르막, 정말 힘들다. 전문산악인이나 일반등산객, 산을 오르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고행(苦行)길이다. 다만 그 힘든 고행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전문산악인이 일반산악인보다 강할 따름...

 

 

 

약수터에서 쉬지 않고 한 시간 가까이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면 깃대봉 정상 1.5Km라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후부터 등산로는 완만한 경사로 변한다. 다음 주 22일이 하지(夏至)이니 무덥다는 소서(小暑)는 7월 초(初)일 것이다. 그럼 아직은 여름철 무더위라고 부르기에는 조금은 무리... ‘일기예보에서 오늘 기온이 30도가 넘는다던데요’ 왜 이리 무덥냐며 짜증을 부리는 나에게 돌아오는 집사람의 점잖은 충고이다. 아! 그래서 이리도 무더운가보다. 더위는 벽(壁)에 걸린 달력과는 상관없이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나보다.

 

 

 

고저(高低)가 심하지 않은 능선을 오르내리다 보면 무인 산불감시탑이 있는 헬기장에 닿는다. 지형도상의 깃대봉(623.6m)이다. 이정표에는 깃대봉까지 1.1Km가 남았다고 적혀있다. 조금 있다가 오르게 될 깃대봉에 세워진 정상석에 표기된 숫자가 이 봉우리의 등고선(等高線) 높이이다. 이곳이 시비(是非)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지점이라는 얘기이다. 깃대봉 조금 못미처에서 왼편의 숲 사이로 청평댐이 얼핏 나타나더니만,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다. 멀리서 바라보는 청평댐은 제법 풍치(風致)가 있으련만, 짙은 숲으로 둘러싸인 능선은 좀처럼 조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무인산물감시탑을 지나 능선을 30여분 걸으면 이내 깃대봉 정상이다. 정상의 북쪽 귀퉁이에 네모난 기둥형태의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허리가 동강나 있는 걸 보면, 누군가 이 정상석이 많이 못마땅했었나보다. 이 정상석은 정상석에 표기된 숫자 때문에 말썽이다. 정상석에 표시된 숫자는 623.6m, 이곳의 실제 높이는 643m인데도 623.6m로 표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계(高度計)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정상석을 무인산불감시탑이 있는 헬기장으로 옮기던지, 아니면 정상석에 적혀있는 숫자를 643m으로 고치는 방안을 고민해보길 권하고 싶다. 이곳 행정관청인 가평군에게...

 

 

 

운두봉으로 가기 위해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한얼산기도원 갈림길에서 운두봉까지는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운두봉에 오를 수 있다.

◎ 사색 #4

오늘 차를 타고 달려온 길이, 아니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이, 그런 열림과 소통의 길이라 생각한다면 너무 지나친 추론(推論)일까? 조금 오버한들 어떠하리오... 난 지금 내가 좋아하는 산을 오르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음이요. 이 길은 산정(山頂)과 나를 잇는 하나의 소통과 교류의 통로인 것을...

 

 

 

 

한얼산기도원 갈림길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면 제법 운치(韻致) 있는 바위지대가 나온다. 등산객을 위해서인지 땅을 평평하게 고른 흔적도 보이고, 주변의 나무들도 정리를 해서 조망(眺望)도 확보해 놓았다. 조망을 찾아 남쪽으로 몇 걸음을 옮기니 암벽(巖壁)이 나온다. 암벽 아래(下段)에 빨간 페인트로 십자가를 그려 놓았다. 아마도 개신교 신자들이 기도처로 이용하고 있나 보다. 어쩌면 요 아래에 ‘한얼기도원’이 있을 것이다.

 

 

 

◎ 사색 #5

살다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해진 때가 있다. 뭔지 모를 욕구가 이따금씩 불기둥처럼 치밀어 오르는가 하면, 가슴 깊숙한 곳에는 단단한 응어리가 맺혀 있는 듯하다. 가슴속의 그 응어리를 죄다 밖으로 쏟아내고 싶다. 활화산처럼 분출시켜버리고 싶다. 나 자신을 옭아맨 도시의 삭막함과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한시바삐 벗어나고 싶다. 그럴 때마다 난, 山이 그리워진다. 아니 사무치도록 그립다.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산길을 걷고 있는 것이고, 산은 어느새 내 품안의 모든 것을 말없이 다독거리며 껴안아주고 있다.

 

 

 

 

운두봉 정상은 50평이 족히 넘을 듯한 헬기장이다. 깃대봉과는 달리 이곳에는 남쪽 귀퉁이에 정상표지석이 서있다. 이곳도 역시 네모난 말뚝 모양의 돌기동이다. 이곳 운두봉(雲頭峰)도 정상석의 높이가 잘못 표기되었다고 해서 시빗거리가 되고 있다. 정상석이 서있는 이곳은 고도가 678.4m란다. 정상석에 표기된 697m는 조금 전에 지나온 봉우리의 높이란다. 행정청의 비상식적인 행위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산행들머리에서부터 이곳에 올 때까지 만난 모든 이정표(里程標)에는 정상의 지명(地名)을 ‘은두봉’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정상표지석에는 ‘운두산’이라고 떠억 하니 적어놓았다. 초등학생들도 하지 않을 낯부끄러운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은두봉에서 파워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무지막지한 급경사(急傾斜), 발을 헛짚을 경우에는 큰 부상이 염려될 정도로 가파르다. 거기다 가뭄 탓에 먼지까지 풀석풀석 일고 있다. 10분 정도를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능선 안부에 도착한다. 바로 파워고개이다. 이곳에서 맞은편으로 직진하면 축령산으로 가게 된다. 오늘 우리가 걸어온 능선을 일컬어 ‘축령단맥’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단맥은 여기서 축령산을 거쳐 천마지맥의 주금산까지 이어진다.

* 축령단맥 : 한북정맥이 운악산을 지나 수원산 어깨에서 한줄기를 내어 천마지맥을 만들고, 천마지맥 주금산 독바위 직전의 795m봉(암봉)에서 한줄기를 만들어 서리산, 축령산, 은두봉, 깃대봉을 지나 46번 국도상 은고개를 통과하여 115m봉을 올랐다 내려서서 조종천변 안말에서 끝이 나는 산줄기를 말한다. 도상거리 약 23.1㎞ (접근 약4㎞, 단맥19.1㎞)로, 발걸음이 빠른 사람은 하루면 족히 완주할 수 있는 거리이다.

 

 

 

파워고개에서 다시 한 번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야만 파워계곡에 닿게 된다. 발아래에 이는 흙먼지는 마치 안개처럼 자욱하게 피어오르는데, 행여나 미끄러질까 조심스레 내려서는 걸음걸음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급경사 내리막길이 그리 길지는 않다는 것이다. 고진감래(苦盡甘來), 그 끝에는 걷기에 좋은 흙길이 마중 나온다.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사색 #6

6월의 산은 힘차다. 진록의 나뭇잎은 젊은이들의 알통마냥 힘으로 넘쳐난다.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맑고 고와, 차라리 싱그러웠던 봄이 엊그제 같은데... 화사한 빛으로 봄을 만끽하던 산함박은 꽃봉오리를 닫아버린지 오래지만, 어느새 철 이른 개벌취가 꽃봉오리를 열고 산속의 나그네를 손짓하고 있다.

 

 

 

 

‘자 계곡에 발을 좀 담그고 내려갑시다. 산행에서 맛볼 수 있는 행복(幸福) 중의 하나랍니다.’ 집사람과 체육관 동지인 영선씨를 모시고 계곡으로 내려선다. 에게~~ 사진 속의 영선씨 표정은 차라리 허망하다는 표정이 맞을 것이다. 거기에는 개울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적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물은 우리가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로 맑고 시원했다. 거기다 셋이서 씻고도 남을 정도로 물은 충분했다.

 

 

 

 

산행날머리는 수동면소재지인 운수리

산을 벗어나면 깔끔하게 잘 지어진 건물들 몇 채가 있는 펜션(pension)지구가 보인다. 펜션지구 바로 밑에는 이곳을 산행 들머리로 삼을 때, 이정표로 삼아야할 원적사가 있다. 원적사는 볼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식수도 구할 수 없다는 선답자(先踏者)의 충고에 따라 들어가 보는 것을 포기하고 서울까지 타고나갈 버스 정류장이 있는 수동면소재지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원적사입구에서 수동면소재지까지의 2Km정도 되는 시멘트 포장도로는 그야말로 고난의 길이다. 길가에 심심찮게 보이는 뽕나무에 매달려 오디를 따먹는 재미는 있지만, 그 재미가 결코 오뉴월 뙤약볕의 고통까지 없애주지는 못하니까 말이다. 참고로 수동면에서 마석까지 버스로 나간 후, 마석에서 급행전철을 이용 상봉역까지 가는 방법이, 가장 빠르고 가장 편하게 서울로 나가는 방법이다.

 

 

 

 

◎ 사색 #7

오늘은 남는 것이 시간이니 구태여 서두르지 말자. 비록 옹색하다 싶을 정도로 빈약한 숲이라도 만난다면, 아무 생각 말고 그냥 쉬어가 보자. 숲 한 가운데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꼭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지 않아도 더위는 멀찌감치 달아나 버린다. 매년 지나쳐 버리면 부담스럽다 생각되는 어느 날, 나는 산을 찾았고, 산에서 또 하나의 나를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호명산(虎鳴山, 632m)

 

 

산행코스 : 상천역→호명호수→장자터고개→기차봉→호명산→체육공원→안전유원지→청평역 (산행시간 : 쉬어가며 5시간40분)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산행일 : ‘11. 6. 5(일)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청평역 앞에 솟은 호명산은 전형적인 열차산행지로 오래 전부터 인기 있던 산이다. 그러나 운행간격이 커서 찾기에 조금은 부담스러웠으나, 최근 경춘선이 전철로 바뀌면서 서울의 근교산(近郊山)으로 바뀌어 버렸다. 산에 오르며 조종천과 청평호(湖)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호반 풍경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에 나들이 삼아 찾아볼만한 산이다. 특히 산 위의 숨어있는 인공호수인 호명호수는, 주변 풍광(風光)과 어우러져 신비감까지 선사해 준다. 

 

 

 

산행들머리는 경춘선 상천역

경춘선 복선전철 상봉역에서 05:10부터 23:00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춘천행 전철을 타고가다 상천역에서 하차(下車)한다.(참고로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인 상천역과 청평역에는 급행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역 앞에 나오자마자 종보가 내미는 샘플용 양주 한 병, ‘아~흐~' 아무래도 오늘 산행은 행복으로 넘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상천역을 빠져나온 후, 역전광장(驛前廣場) 끄트머리에 보이는 지하차도(地下車道)를 통과하여 상천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상천역에서 300m쯤 걸어 들어가면 삼거리에 허름한 포장마차가 보인다. 호명산 산행은 이곳에서 오른편 길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이정표 : 상천역 300m/ 상천리 마을회관 400m/ 호명호수 3.1Km, 호명산 7.0Km). 물론 상천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서 호명산으로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삼거리에서 먼지가 풀썩이는 길을 따라 200m쯤 걸어 들어가면 산의 초입, 호명산 정상까지 6.8Km가 남았다는 이정표가 찾는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인증샷 하나! 오늘 참석인원은 10명, 회원이 5명에 비회원이 5명이다. ‘5:5’ 혹자(或者)는 5:5를 보고 ‘황금비율’이라고도 하지만, 동호인산악회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아니올시다’가 분명하다. 산행에 참여한 회원들이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비회원들을 포섭하여 나온 종보君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산행을 시작한다. 하긴 오늘 참석한 비회원들이 ‘산과 하늘’에 가입만 해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테니까 말이다.

 

 

상천역에서 호명호수까지는 3.6Km 넉넉잡아 2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다. 등산로는 흙길에다가 경사까지 완만하기 때문에 걷기에 무척 편하다. 등산로 초입에는 들어서면 진한 잣나무 향이 코끝을 스친다. 길가에는 썩어가고 있는 잣나무 열매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아마 작년에 떨어진 것인가 보다.

 

 

상천역에서 1Km,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해서 700m정도를 걸으면 삼거리가 보인다. 상천리 마을회관을 경유해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은 어느새 참나무 일색으로 바뀌어 있다. 앞에 가는 진철이가 목이 타는 모양이다. 물이 아닌 막걸리가 고파서... 그러나 아직은 그의 간절한 염원을 풀어줄 수가 없다. 준비해온 ‘얼음 막걸리’가 아직은 녹지 않은 채로 있기 때문이다. ‘안 힘들어요?’ 코스모스의 걱정스런 질문에 악마구리의 퉁명스런 대답 ‘무지 많이 힘들어요.’ 몸살감기로 못나올 것을 겨우 나왔다는 악마구리의 컨디션이 영 좋지 않은가 보다. 오늘 산행은 비회원들이 앞장, 그 뒤를 회원들이 쫒아가는 형태다. 아무래도 젊은 비회원들의 체력과 장년층인 회원들의 체력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막바지 오르막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얼려온 막걸리가 대충 녹았기 때문이다. 안주는 코스모스가 준비해온 부침개... 진철의 입에서는 이미 침이 흐르고 있는데, 오늘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는 종보는 술을 사양하고 있다. 저 술꾼이 얼마나 마셨기에 저 정도일까????  로프까지 매어진 급경사(急傾斜) 오르막길에서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이면 이름 없는 봉우리(갈매봉 서릉 삼거리)위에 올라서게 된다. 널따란 분지(盆地)인 봉우리 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모두 상천역에서 올라왔거나 상천역으로 내려갈 사람들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명산을 오를 때 상천역을 기점(起點)이나 종점(終點)으로 삼는 사람들이 흔치 않았는데, 아마 경춘선 전철(電鐵)이 개통된 이후의 바뀐 풍경중 하나일 것이다. 이곳에서 호명호수까지는 0.5Km, 호명산 정상까지는 4.5Km가 남았다.

 

 

 

 

무명봉 위에 올라서면 맞은편 진행방향에 호명호수의 제방(堤坊)이 거대한 성벽(城壁)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한국수력원자력(주) 사택 옆으로 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오른편에 이곳 양수발전소에서 조성한 미로공원이 보인다. 정자와 산책로 등 편의시설들이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다. 때는 바야흐로 점심시간... 아스팔트 도로(道路)위에 자리를 펴고 점심상을 펼친다. 족발에 막걸리, 소주 등등... 동호인 산악회의 장점대로 풍요로운 상차림이었다. 다만 흠이 있다면 술이 조금 부족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주당(酒黨)인 나에게는...

 

 

 

인공호수(人工湖水)인 호명호(虎鳴湖)는 산상(山上)에 있는 호수로서,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호수는 양수발전소(pumping-up electric power station , 揚水發電所)의 상부댐(上部dam)이다. 그러니까 저녁에 청평호의 물을 끌어올려 이곳에 모아 놓았다가 다음날 낮에 청평호로 다시 내려 보내면서 전기(電氣)를 생산하는 것이다.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다가 최근 일반인에게 전면 개방되면서 등산객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 호명호수 : 1980년 청평양수발전소 건립과 함께 해발 535m 위에 만든 인공호수로서 한강변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가평8경 중 제2경으로 선정되어 있다. 1988년 가평팔경 지정 당시에는 ‘호명호수’, 2005년 ‘천지연’으로 개명(改名)됐다가 다시 ‘호명호수’로 다시 개명된바 있다. 이곳에는 84만3000여㎡ 규모의 하늘정원과 조각공원, 전망데크, 산책로 등이 조성돼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호명호수의 제방을 건너면 ‘장자터 고개’이다. ‘장자터 고개’에도 정자(亭子)와 벤치 등 편의시설을 잘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곧장 내려가면 청평호반인 복장리에 닿게 된다. 우리가 가려고 하는 호명산 정상은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 이곳에서 호명산 정상까지는 3.6Km, 청평역은 6.2Km가 남았다, 상천역에서 여기까지가 3.8Km이니 우리는 오늘 총 10Km를 걷게 되는 것이다.

 

 

 

경사가 완만한 계단을 밟으며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깔끔한 전망대가 눈길을 끈다. 호명호수를 조망하라고 만들어 놓은 모양이지만, 제방을 지나오면서 바라본 경치가 한결 더 뛰어나기에 오래 머물지 않고 곧장 갈 길을 재촉한다.

 

 

 

 

장자터 고개에서 이어지는 등산로는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초입에 보이던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일본이깔나무(落葉松)들은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주위는 온통 갈참나무 천지이다. 햇빛 한 점 스며들기 힘들 정도로 우거진 숲길을 걸으며 ‘홀딱 벗어’새의 유머가 넘치는 울음소리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기차봉 정상이다. 기차봉은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돌무더기 외에는, 아무런 특징을 보여주지 못하는 능선상에 조그맣게 솟아오른 한 지점일 뿐이다.(이정표 : 호명호수 2Km/ 호명산 1.6Km)

 

 

 

 

 

 

 

기차봉에서 호명산 정상까지의 오르고 내리며 이어지는 능선은 흙길과 너덜길이 번갈아가며 나타난다. 경사가 조금 심하다 싶으면 나무계단이나 안전로프를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1.6Km를 걸으면 드디어 호명산 정상에 이르게 된다.

 

 

 

 

 

호명산 정상은 수백 명이 한꺼번에 머물러도 될 만큼 널찍한 공터이다. 북서쪽 가장자리에 커다란 정상 표지석이 서 있고, 그 옆을 산행안내판이 지켜주고 있다. 정상에 서면 조망이 시원스럽다. 남쪽으로는 화야산의 뾰루봉이 지척에 보이고, 그 너머로 용문산이 넘실거리고 있다. 서북쪽으로는 깃대봉이 선명하다. 그리고 북쪽에는 땀 흘리며 걸어온 능선이 발아래 누워 있고, 그 너머에는 저 멀리 명지산과 화악산 등 경기도의 고봉(高峰)들이 하늘금을 만들어 내고 있다.

* 호명산의 ‘호명(虎鳴)’은 옛날에 호랑이가 많아 그 울음소리가 마을까지 들려와서 호명산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설과, 건너편 뾰루봉 사이를 흐르는 북한강물이 청평댐이 들어서기 전 빠른 물살로 나는 소리가 호랑이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해 범울이가 됐고, 범울이를 한자로 옮겨 호명(虎鳴)이 됐다는 설이 있으나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정상에서 조종천으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急傾斜), 얼마나 경사가 심한지 길 가장자리에 매어놓은 로프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내려서기가 힘들 정도이다. 한북정맥에서 갈라져 나와 호명산에서 불끈 용트림을 한 능선이, 갑자기 조종천으로 잠기고 있으니 당연히 가파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632m의 높이(高度)를 한꺼번에 낮추어야 하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흙길이라서 무릎에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1km쯤 내려서면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잘생긴 전망대(展望臺)가 보인다. 청평댐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조성된 곳이다. 가슴을 열어본다. 청평 호반(湖畔)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이 열린 가슴속으로 성큼 들어선다.

 

 

 

 

 

전망대에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따라 600m정도 내려오면 운동기구와 샘이 있는 쉼터가 보인다. 쉼터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한 번 급경사로 된 계단을 밟고 내려서면 드디어 산길은 끝을 맺는다. 산이 끝나는 지점에 ‘산악 안전사고의 절반이 등반 중 실족・추락으로 발생’이라고 머리말을 적어 놓은 산행안내판이 서있다. 산을 나서면 잠시 조종천의 뚝방길을 걸어야 한다. 길가의 뽕나무에 오디가 무르익어가고 있다. 부지런한 종보는 어느새 나무에 들어붙어 있다.

 

 

 

 

 

 

 

산행날머리는 청평역

산행을 끝내기 위해서는 조종천을 건너야만 한다. 뚝방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하여 청평교를 건너야하나, 우기(雨期)가 아닐 경우에는 안전유원지로 곧바로 건너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이용하면 된다. 일부는 철판, 나머지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들어진 징검다리는 비가 많이 올 경우 물에 잠긴다. 조종천 건너에 있는 안전유원지는 옛날에는 대학생들로부터 MT 장소로 사랑을 받았지만 지금은 廢墟로 변해있다. 아마 시대의 변화에 적응을 못한 탓일 것이다. 청평역 못미처에 있는 식당에 들러 닭도리탕 두 개에 주인의 추천메뉴인 민물매운탕 하나를 시켜놓고 둘러앉는다. 산에서 땀을 많이 흘렸던 탓인지 술이 술술 잘도 넘어간다. 덕분에 난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도통 기억이 없다. 기억에 남는 것은 단 하나... ‘앞으로는 근교산행 자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