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산(白雲山, 904m)-도마치봉(道馬峙峰, 937m)
산행일 : ‘15. 2. 21(토)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과 강원도 철원군 사내면의 경계
산행코스 : 광덕고개→백운산→삼각봉→도마치봉→향적봉→흥룡봉→백운계곡→흥룡사→주차장(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오늘 산행은 한북정맥(漢北正脈)을 따라 걷게 된다. 백운산과 도마치봉이 한북정맥의 산줄기가 빚어놓은 수많은 산봉우리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광덕고개에서 도마치봉까지 이르는 산줄기에는 이들 외에도 수많은 봉우리들이 있다. 그러나 봉우리 사이의 골이 깊지 않기 때문에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이어갈 수 있다. 거기다 광덕고개의 해발(海拔)이 620m로, 백운산을 오르기 위해 높여야 하는 고도(高度)가 300m가 채 안되니 오늘 산행은 공으로 먹는 산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구간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으로서 볼거리가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향적봉에서 흥룡봉 사이의 능선은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볼거리에 목마른 등산객들의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길가에는 수많은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이 널려있고, 밧줄에 매달려 오르내리는 바윗길은 스릴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 산행들머리는 광덕고개(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광덕리)
서울에서 47번 국도를 따라 김화방면으로 달리다보면 도평교차로(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 교차로를 빠져나오자마자 만나게 되는 도평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372번 지방도로 옮겨 들어가면 찻길은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한없이 구불대다가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를 이루는 광덕고개에 올라서게 된다. 광덕고개는 캐러멜 고개라고도 불린다. 한국전쟁 당시 험하고 구불구불한 이 고개를 넘던 미군 지프 운전병이 피로에 지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상관이 운전병에게 캐러멜을 건네줬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또 다른 이름은 ‘카멜고개’다. 낙타(camel) 등처럼 굴곡이 심해서 ‘카멜고개’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이 또한 미군들이 지어낸 이름이 아닐까 싶다. 광덕고개에는 언제부턴가 매일 장이 서기 시작했다. 인근 주민들이 고개 꼭대기까지 올라와 산나물과 약초(藥草)를 팔기 시작하던 것이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늘어나면서 아예 상설시장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오늘 같이 눈발이 날리는 날에도 문을 닫은 집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얼마나 호황을 누리고 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상가(商街) 앞을 지나 산자락으로 놓인 철계단을 오르면서 오늘 산행이 시작된다. 이어서 나타나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짧게 치고 오르면 ‘한북정맥 등산안내도’와 이정표(백운산 정상 3.1Km/ 광덕고개 0.1Km)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터에 올라서게 된다.
▼ 산길은 완만(緩慢)하게 이어진다. 백운산까지의 거리가 3Km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높여야 할 고도(高度)는 300m가 채 안되니 구태여 서두를 이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길이가 짧고 나머지 대부분의 구간은 완만하다는 얘기일 따름이다. 산길은 구경거리도 없다. 거기다 능선에 가득한 참나무들 때문에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는다. 육산(肉山)의 전형적인 특징일 것이다.
▼ 강원도와 경기도를 양 옆구리에 끼고 이어지는 능선은 경사(傾斜)가 없는 반면에 산자락은 가파르기 짝이 없다. 그래도 명색이 **)한북정맥인지라 일반 산줄기들과는 무언가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 한북정맥(漢北正脈)이란 강원과 함남도의 도계를 이루는 평강군에 위치한 백두대간의 추가령(楸哥嶺)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한강과 임진강의 강구(江口)에 이르는 약 170Km의 산줄기 이름이다. 이 산줄기는 동쪽으로 회양·화천·가평·남양주, 서쪽으로 평강·철원·포천·양주 등의 경계를 이루는데 자연히 동쪽은 한강 유역이고 서쪽은 임진강 유역이 된다. 이 산줄기에는 백암산(白巖山), 적근산(赤根山), 대성산(大成山), 광덕산(廣德山), 백운산(白雲山), 국망봉(國望峰), 청계산(淸溪山), 운악산(雲岳山), 도봉산(道峰山), 현달산(峴達山) 등 내로라하는 명산들이 많다.
▼ 백운산 정상까지 약 800m쯤 남겨놓은 지점에서 보기 힘든 귀물(貴物)을 만났다. 나무 두 그루의 중간이 하나로 합쳐져 있는 것이다. 그것도 종(種) 자체가 다른 소나무와 참나무가 합쳐져 있다. 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의 줄기가 맞닿아 한 나무줄기로 합쳐져 자라는 현상을 ‘연리목(連理木)’이라 일컫는다. 그렇다면 이 나무들을 ‘연리목’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것도 다문화(多文化)이다. 비록 이 나무들은 중간에 맞닿았다가 다시 헤어지고 있지만 말이다.
▼ 광덕고개를 출발한지 1시간쯤 지나면 암릉구간을 만나게 된다. 어찌 보면 암릉이라고 부르기가 낯부끄러울 정도로 빈약하기 짝이 없지만 눈요깃거리가 되는 바위들을 만날 수 있고, 또 어떤 곳에서는 밧줄을 붙잡아야만 하는 곳도 있다. 아마 백운산 구간에서는 가장 뛰어난 구간이 아닐까 싶다. 암릉이 끝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왼편으로 난 ‘무학봉 갈림길’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백운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광덕고개를 출발한지 1시간2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 널따란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백운산 정상에는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백운산 등산안내도, 그리고 이정표(삼각봉 0.93Km/ 흥룡산 4.14Km/ 광덕고개 3.20Km)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백운산 정상에서 산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흥룡사로 내려가는 길과 계속해서 한북정맥을 타는 길이다.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오늘 산행의 날머리로 정한 흥룡사로 내려가기는 매한가지이나 난 한북정맥을 조금 더 타다가 도마치봉에서 하산할 것을 권하고 싶다. 향적봉과 흥룡봉이라는 걸출한 봉우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운산 정상은 조망(眺望)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정상에 서면 북쪽으로는 광덕산이, 남쪽으로는 국망봉이, 그리고 동쪽으로는 명지산과 화악산이 뚜렷하게 보인다고 한다. 허나 아쉽게도 오늘은 눈보라 때문에 시계(視界)가 거의 제로(zero)에 가깝다. 조금 전에 걸어온 능선과 다음에 이어갈 능선을 제외하고는 어디가 어디인지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하기만 하다.
▼ 삼각봉으로 가는 길은 백운산을 오를 때보다 더욱 완만하다. 백운산과 삼각봉의 높이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볼거리가 없기는 매한가지이다. 그저 부러진 나무들이 만들어낸 아치(arch) 아래에서 포즈(pose)를 잡아보거나, 길가에 만들어 놓은 쉼터에서 한숨을 돌리다가 다시 걷는 평범한 산행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산행이 지루해진다 싶을 즈음이면 삼각봉에 올라서게 된다. 백운산에서 삼각봉까지는 25분 정도가 걸렸다.
▼ 말뚝모양으로 생긴 작은 정상표지석과 이정표(도마치봉 1.17Km/ 백운산 정상 0.93Km)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각봉 정상은 아무런 특징도 보여주지 못한다. 거기다 주변이 잡목(雜木)들로 둘러싸여 있는 탓에 조망(眺望)까지도 트이지 않는다. 다들 멈추지 않고 곧장 통과해버리는 이유일 것이다.
▼ 도마치봉으로 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이는 그만큼 다시 올라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산길은 의외로 수월했다. 일단 가파르게 떨어진 다음에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이 길고 완만한 오름길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이 길도 역시 구경거리가 없기는 매한가지이다. 그저 앞만 바라보고 걷다가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도마치봉 정상이다. 삼각봉에서 30분이 조금 못 걸렸다. 도마치봉에 이르니 궁금증 하나가 고개를 내민다. 왜 도마치봉이 백운산에 포함된 부속 봉우리 중의 하나로 전락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도마치봉(937m)의 높이가 백운산(904m)보다 오히려 더 높은데도 말이다. 봉우리와 봉우리들을 연결하는 골의 깊이가 얕아서 독립된 산으로 볼 수 없었다면 백운산으로 통칭한 뒤에 두 봉우리를 정상과 주봉으로 구분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때의 정상은 도마치봉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 헬기장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널따란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이정표(흥룡봉 2.0Km/ 국망봉 6.65Km/ 백운산 정상 2.10Km) 외에도 한북정맥 안내도가 하나 더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 안내도가 문제다. 안내도의 상단에 광덕산이라고 적어 놓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를 본 집사람이 여기가 무슨 산이냐고 물어온다. 생뚱맞은 그녀의 궁금증에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안내도는 현재의 위치를 버젓이 광덕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거기다 한술 더 떠 설명문에다는 광덕산을 아예 광던산이라고까지 적어 놓았다. 이런 것을 보고 ‘없는 것만도 못하다’라고 말하는가 보다. 참고로 도마치봉(道馬峙峰)에서 말하는 도마치(道馬峙)란 도마치봉의 남쪽 도마봉에서 한북정맥을 벗어난 화악지맥 상의 고갯마루를 이르는 이름이다. 이 고갯마루는 교통이 발달되기 전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사람들이 강원도 화천 사창리장을 가기 위해 넘나들던 우마차용 고개였다고 한다. 그래서 도(道)와 도를 왕래하는 고개라는 뜻에서 ‘도마치’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궁예와의 관련설을 드는 이들도 있다. 태봉의 궁예가 명성산 전투에서 왕건과 싸우다 패하여 도망할 때 이 산 부근을 경유하게 되었는데, 산길이 너무 험해 모두 말에서 내려 걸어서 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엉망이다. 눈이 내리고 있어서 시계(視界)가 거의 제로 (zero) 수준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긴 날씨가 도와준다고 해서 조망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지만 말이다. 정상이 잡목(雜木)에 빙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산행후기를 보면 잡목 위로 볼만한 것은 다 보인다고 적고 있다. 도마치봉에서는 국망봉, 그리고 국망봉에서 가리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눈앞에 보이고, 신로령에서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밋밋한 능선이 의미 있게 손짓한다고 말이다.
▼ 정상에서 산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곧장 능선을 탈 경우 한북정맥을 따라 국망봉으로 이어지므로, 흥룡사로 하산하고자 할 경우에는 오른편의 지능선으로 내려서야 한다. 하산 길은 초입부터 가파르게 시작된다. 그리고 그 길은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이어지기 때문에 한쪽 편이 거의 벼랑 수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구간에서 로프 등 안전시설이 보이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안전에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을 정도로 위험천만한 곳에다는 철난간(鐵欄杆)을 설치해 놓았다는 점이다. 하긴 철난간이 없었더라면 그 구간을 통과할 수도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 남근(男根)바위라는 어설픈 이름을 붙였다가 집사람에게 ‘심미안(審美眼)’이 전무하다는 지청구만 들은 바위
▼ 집사람의 말이 강아지가 먹이를 달라는 형상이란다. 물론 난 아니올시다. 내가 보기엔 그녀의 눈도 심미안을 이야기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 수북하게 쌓인 눈 때문에 가뜩이나 미끄러운 사면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다 보면 어느덧 안부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정상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채 1Km도 못되는데 35분 정도가 걸렸다. 그만큼 조심스레 내려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엉금엉금 긴 것만은 아니다. 내려오는 길 주변에 볼만한 눈요깃거리가 많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눈이 내리는 탓에 비록 먼 곳의 조망(眺望)까지 기대할 순 없지만, 길가에 널린 기이(奇異)하게 생긴 바위들과 소나무들과 잘 어울리는 암봉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것이다.
▼ 안부삼거리(이정표 : 흥룡사 4.05Km/ 흥룡사 3.46Km/ 도마치봉 0.87Km)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능선을 타는 길과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진행해도 흥룡사에 이르게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다만 짜릿한 스릴(thrill)을 만끽해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능선을 타고 곧장 진행하는 것이 좋다. 이 구간이 도마치봉의 백미(白眉)로서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초심자(初心者)들에게는 계곡으로 내려설 것을 권하고 싶다. 삼거리에서 고민을 하고 있던 선두대장도 계곡으로 내려서는 코스를 선택했다고 한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일절 러셀(russell : 선두에 서서 눈을 쳐내어 길을 다지면서 나아가는 일)이 되어있지 않아 고민하는 그를 보고 헤어졌는데, 일행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자기가 조금 더 고생을 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던 모양이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제법 암릉산행에 익숙한 집사람까지도 내 도움이 없이는 내려오기 힘든 구간이 몇 곳 있을 정도로 바윗길이 험했기 때문이다.
▼ 안부삼거리에서 그다지 험하지 않은 오르막길을 10분 조금 못되게 치고 오르면 향적봉이다. 좁은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향적봉’이라는 이름표를 단 이정표(흥룡봉 1.6Km/ 흥룡사 3.14Km/ 도마치봉 1.19Km)와 ‘119 구호표지목(1-5)’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정상에는 이들 외에도 ‘위험경고판’ 하나가 더 눈에 띈다. 흥룡봉 방향이 매우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초심자(初心者)들은 오른편에 보이는 흥룡사 방향으로 내려서지 않을까 싶다.
▼ 흥룡봉으로 가는 산길은 생각보다는 험하지 않다.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능선에 바윗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다지 험하지도 않은데다가 안전로프 등을 매어놓아 오르내리는데 별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위험경고판이 과장광고였던 모양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쉴 무렵쯤 되면 로프에 온몸을 의지하지 않고는 오를 엄두를 못 낼 정도로 가파른 바윗길이 나타나고, 이어서 조금 후에는 가파른 내리막 바윗길이 시작된다.
▼ 위험지역에 들어서기 바로 직전에 뛰어난 바위 전망대(展望臺)를 만난다. 노송(老松)이 만들어낸 액자(額子) 속에 집사람을 넣어본다. 풍경화가 그려졌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눈 때문에 그러질 못하니 차선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환하게 웃는 그녀가 오늘따라 더 사랑스럽게 보이는 건 아름다운 풍경화가 만들어낸 조화이리라.
▼ 앞서가던 집사람이 안절부절 못하는 게 보인다. 가슴부위의 높이로 매어진 밧줄이 느슨해서 중심을 못 잡겠다는 것이다. 다가가 보니 그녀의 말이 맞다. 이런 밧줄을 무턱대고 잡았다가는 몸이 중심을 잃고 돌아버리게 된다. 중심을 잃은 몸은 자칫 잘못하다간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불러일으키게 되고 말이다. 이후부터 산행은 내가 먼저 안전하게 아래로 내려선 후에 집사람을 도와 아래로 내려설 수 있도록 하면서 진행된다.
▼ 가뜩이나 경사(傾斜)가 가파른 바윗길에 눈까지 쌓여있기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그저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짜릿한 스릴의 연속이다.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따라 공포냐 아니면 쾌감이냐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얘기이다. 젊은이들이라면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들에게 이 코스를 권하고 싶다. 남자의 도움 없이는 쉽게 통과할 수 없는 이 코스를 지나려면 잡아주고 밀어주는 ‘스킨십(skinship)‘은 기본이다. 거기다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운동신경도 뛰어나다.’ 등의 ‘립 서비스(lip-service)’까지 적절하게 섞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런 뒤에는 10년 이상을 사귄 연인들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되어 있을 테고 말이다.
▼ 위험지역을 내려서면 또 다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바윗길로 연결되는데다가 꽤 길게 이어지기 때문에 봉우리 위에 오르고 난 후에 내려갈 일이 걱정되는 구간이다. 이는 조금 전에 내려섰던 구간이 그만큼 험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 오르막의 끄트머리가 바로 흥룡봉이다. 향적봉에서 흥룡봉까지는 50분 가까이 걸렸다. 1.6Km의 거리임을 감안할 때 꽤 많은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 또한 조심해서 오르내리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음이다.
▼ 서너 평 남짓한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흥룡봉’이라는 이름표를 단 이정표(흥룡사 2.44Km/ 도마치봉 1.98Km)와 누군가가 걸어놓은 정상표지판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한북정맥을 종주하는 사람들 사이에 풍광이 멋지다는 입소문을 탄 흥룡봉은 조망 또한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한북정맥이 장벽처럼 눈앞에 우뚝 솟고 그 뒤로 경기 제1봉인 화악산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눈 때문에 방금 전에 지나온 능선만 간신이 눈에 들어올 따름이다.
▼ 흥룡봉에서 50m쯤 내려서면 헬기장이 나오고 이어지는 산길은 큰 어려움 없이 이어진다. 산길이 비록 가파르지만 내려서기 힘들 정도는 아니고, 거기다 길가에 안전로프까지 매어놓아 별 어려움 없이 내려설 수 있다. 아까 흥룡봉에 오를 때 가슴 졸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웃음이 날 정도이다. 그러다가 20분 정도 후에는 널따란 공터로 이루어진 649m봉(이정표 : 흥룡사 1.77Km/ 등산로 아님/ 도마치봉 2.65Km)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에 갈림길이 하나 보이나 이를 무시하고 오른편 능선을 따른다. 포천소방서에서 비닐테이프까지 쳐가면서 길을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 산길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고 나서도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소나무가 간간히 섞여있는 능선에는 아직도 참나무가 대부분이고, 산길은 경사(傾斜)가 조금 더 가팔라졌을 따름이지 여전히 흙길이다. 그러다가 10분쯤 후, 그러니까 흥룡사를 1Km쯤 남겨놓은 지점에서 산길은 다시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이곳도 역시 포천소방서에서 다른 방향을 막아 놓았다. 이어서 더욱 가팔라진 산길을 따라 4분쯤 더 내려서면 백운계곡이다.
▼ 백운계곡은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 받는 곳이다. 백운계곡을 끼고 있는 주변의 산들이 대부분 흙산이기 때문에 수림(樹林)이 울창하고 계곡이 발달했지만, 한편으론 하얀 화강암들이 여러 곳에서 암반(巖盤)을 이루고 있고, 깎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들을 계곡의 곳곳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계곡을 건너는데 앞서가던 집사람이 ‘119의 구호지점표시목(1-3)’을 가리킨다. ‘폭포’라고 적혀있는 것을 본 모양이다. 계곡으로 내려가니 비스듬하게 누운 암반(巖盤)이 보이고, 그 위로 물이 흐르고 있다. 그저 헛웃음만 날 따름이다. 이 정도가 폭포(瀑布)로 분류된다면 어느 물길 하나 폭포가 아닌 것이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 계곡을 지나면서 산길은 임도(林道)로 변한다. 계곡 옆으로 난 임도는 한마디로 멋지다. 석판(石板)처럼 납작한 돌들이 깔려 있는 고즈넉한 산길이 마치 고궁(古宮)에라도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잘 닦여 있는 것이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잠시 후에는 ‘백운2교’(이정표 : 흥룡사 0.26Km/ 백운산 정상 3.68Km/ 향적봉 2.57Km)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난 산길 하나를 볼 수 있다. 아까 안부삼거리에서 계곡으로 내려섰을 경우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 산행날머리는 흥룡사(백운계곡) 주차장
백운2교를 지나면 얼마 후에는 또 다른 다리인 ‘백운1교’를 건너게 되고, 이어서 오른편에 사찰(寺刹) 하나가 나타난다. 천년고찰(千年古刹)로 알려졌지만 고찰의 냄새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흥룡사이다. 사찰을 둘러보고 난 후 계단을 내려서면 주차장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정확히 5시간이 걸렸다. 물론 쉬지 않고 걸은 시간이다. 다만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느라 걷는 속도가 다소 늦어졌음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 흥룡사(興龍寺)는 신라 말 도선(道詵:827∼898)이 내원사(內院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이다. 창건 설화에 따르면 도선이 절터를 정하려고 나무로 세 마리의 새를 깎아 날려 보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백운산에 앉아 그곳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1786년(정조 10)에 태천(泰天)이 중건한 뒤 이름을 백운사(白雲寺)라고 고쳤으며, 1922년 설하(渫河)가 대웅전을 중수하고 흑룡사(黑龍寺)라고 고쳤다가 곧 현재의 이름인 흥룡사로 바꾸었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웅전 등 법당이 4동에 이르는 규모 있는 사찰이었으나 전란으로 소진된 뒤 현재는 새로 지은 전각(殿閣)들인 36평의 대웅전과 요사(寮舍)를 겸한 당우(堂宇), 그리고 삼성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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