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이집트
여행일 : ‘20. 2. 21(금)-29(토)
세부 일정 : 카이로(1)→사카라→멤피스(야간열차 1박)→아스완(1)→아부심벨→콤옴보(1)→에드푸→룩소르(1)→후르가다(1)→카이로(1)
카이로 외곽, 기자(Giza)의 ’스핑크스(Sphinx)‘
특징 :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기원한 상상의 동물로 ’사람의 머리(지혜)‘와 ’사자의 몸(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왕의 권력을 상징한다. 동물의 왕 사자에 대한 숭배에서 비롯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나 성격이 달라진다. 이들 가운데 이집트 기자에 있는 제4왕조(BC 2560~BC 2450) ’카프라 왕 피라미드‘의 스핑크스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그리스 신화에서 스핑크스는 여성의 얼굴에 날개 돋친 사자 모습을 한 괴물로 그려진다. '아침에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이 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를 낸 뒤 못 맞추면 잡아먹었으나, 오이디푸스가 나타나 '사람은 어려서 네 발로 기고 커서는 두 발로 걸으나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으니 세 발이다'라고 풀자 스핑크스는 부끄러워하며 물속에 몸을 던져 죽어 버렸다고 한다.
▼ 피라미드를 모두 구경했으니 이젠 스핑크스로 향할 차례이다. 얼마 되지 않은 거리인데도 우린 버스로 이동했다. 패키지여행자만이 가질 수 있는 편안함이 아닐까 싶다.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서니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의자들이 오(伍)와 열(列)을 맞추어 펼쳐져 있다. 이집트의 다른 유적지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빛과 소리의 쇼(Sound and Light Show)‘가 펼쳐진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저 피라미드랑 스핑크스에 빛을 비추며 역사를 설명해주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 앞마당을 지나자 피라미드가 신전 너머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뒤에 보이는 피라미드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이다. 피라미드가 빌려왔다는 얼굴의 주인인 카프레왕의 피라미드는 각도를 조금 바꾸어야만 나타난다. 스핑크스가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에서 남동쪽으로 300m, 카프레 왕의 것에서는 정동향으로 4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 서쪽 웰다잉(Well Dying)의 땅 입구에 서서, 정동방을 바라보는 사람 얼굴(지혜)-사자의 몸(용맹) 석상은 동쪽 웰빙의 땅에 사는 백성들에겐 분명 희망이었을 것이다.
▼ 이렇게 관광객이 많은데 시장이 서지 않았을 리가 없다. 기념품과 의류 등을 진열해놓고 호객행위에 열심이었지만 관심을 끌만한 것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아부심벨 신전’과 ‘필레 신전’ 앞의 기념품 상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관광지들이 모두 오십보백보라고 보면 되겠다.
▼ 스핑크스를 만나기 위해서는 신전(Temple)을 지나야 한다. 누군가는 ‘카프레왕의 계곡신전(Valley temple of Khafre)’이라고 적고 있지만 우린 지도에 표기된 대로 ‘스핑크스 신전’으로 기억해 두자.
▼ 스핑크스 주변은 사람들로 넘친다. 조그만 틈새만 보여도 스핑크스가 들어간 인생샷을 건지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런데 그들의 생김새가 각기 다르다. 귓가에 맴돌다 흘러가는 언어들도 제각각이다.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 조금 더 들어가자 알몸을 드러낸 ‘스핑크스’가 눈앞에 펼쳐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저런 형상의 석상을 나라 안 곳곳에 세워왔다고 한다. 그 가운데 이곳 기자에 있는 스핑크스의 규모는 다른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석회암으로 되어 있는 자그마한 돌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서 만들었다는 저 스핑크스는 길이 57m에 높이가 20m. 얼굴 너비만 해도 4m나 되는 거상이다. 석상이라는 표현보다는 ‘건축물’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거대하다.
▼ 스핑크스를 누가 왜 세웠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들이 있다.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들을 지키는 일종의 수호신이라는 주장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스핑크스의 얼굴이 카프레 왕의 생전과 같다며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에 딸린 부속 조형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스핑크스의 의미를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기록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해두자. 아무튼 스핑크스와 관련된 다양한 학설들이 전문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확인된 것은 없다.
▼ 스핑크스는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아니 아직도 라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모래 속에서 발굴될 당시부터 사자의 앞발 부분과 뒤꼬리 부분 등은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되어 있었다니 말이다. 근래에는 스핑크스의 보수공사 도중 어깨 부분에서 300㎏이나 되는 두 덩어리의 큰 돌이 떨어지기도 했단다. 더욱이 원래부터 노출되어 있던 스핑크스의 머리는 현재 없어진 부분이 많다고 한다. 원래의 머리에는 왕관이 쓰여져 있었다는데 지금은 볼 수가 없고, 앞이마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코브라가 조각돼 있었는데 그것 역시 겨우 꼬리 부분만 남아 있는 정도이다. 얼굴에는 턱수염이 붙어 있었는데 그것도 지금은 떼어지고 없다.
▼ 스핑크스는 두 앞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있다. 가까이 갈 수 없어 확인할 수 없었지만 저 다리 사이에는 ‘투트모세 4세(Thutmose IV, BC 1400~1390 재위)’의 석비(石碑)가 있다고 한다. 비문에 따르면 청년 시절 전차대장으로 복무하던 투트모세 4세가 사냥을 나갔다가 머리까지 모래에 파묻혀 있던 스핑크스 옆에서 설핏 잠이 들고 말았다. 꿈속에서 그는 스핑크스로부터 '이 모래를 제거하면 너를 왕으로 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눈을 뜬 투트모세 4세가 부하들을 불러 모래를 모두 걷어냈고, 그 덕분에 투트모세는 후에 파라오가 되었다고 한다.
▼ ‘투트모세 4세’의 석비(빌려온 사진이다)
▼ 스핑크스의 얼굴은 수천 년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머리의 코브라 장식과 코, 수염 부분은 아예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하였을 당시 프랑스 군인들이 대포 쏘는 훈련을 하면서 그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이한 외모에 놀란 아랍인들이 ‘공포의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그의 얼굴에 대포를 쏘았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두 주장 모두 확실한 근거가 없으니 그냥 흘려듣는 게 좋겠다. 그나저나 이 거대한 스핑크스가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어왔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 이곳 ‘호르 엠 아케르(이집트인들이 불러온 스핑크스의 다른 이름)’ 역시 소문난 놀이터이다. 그러니 마음 놓고 놀아보자. 놀이의 주 종목은 ‘앵글 맞추기’이다. 높이 20m에 몸길이가 70m나 되는 저 석상과 뽀뽀도 하고, 안경 씌우기도 하며, 호루스의 분신이자 태양신인 ‘호르 엠 아케르’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 이곳에서 우리 부부는 낯선 풍경과 맞닥뜨렸다. 현지 여성이 사진을 찍고 있는 집사람 옆으로 다가오더니 촬영 각도 등을 코치하는 것이다. 거기서 그쳤더라면 이집트인들의 친절함에 감탄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집사람의 핸드폰을 낚아채더니 스핑크스를 배경에 넣어 셔터를 눌러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손을 내민다. 수고한 대가를 달라는 것이다. 1달러짜리 몇 장 쥐어주면 그만이겠지만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게 꼭 기분나빠할 일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아래와 같은 인생샷을 어떻게 건질 수 있었겠는가.
▼ 대피라미드 남쪽에는 독특한 모양의 건물이 하나 서 있다. ‘태양의 배 박물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배 모양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급조한 조립식 건물 같다든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더욱이 여러 개의 피라미드가 몰려있는 주변 경관과는 전혀 조화가 되지 않는다. 그래선지 조금은 뜬금없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이 건물이 배 모양으로 지어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애초에 ‘태양의 배’라는 중요한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서 세워졌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집트 신화에서는 태양의 신 ‘라(La)’가 우주를 여행할 때 태양의 배를 이용한다고 했다. 이에 따라 쿠푸왕도 죽은 뒤 하늘을 여행할 때 사용하기 위한 배를 만들어 피라미드의 옆에 묻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50년대에 이르러 이 배가 발견되었고, 발굴·복원 과정을 거친 다음 전시하고 있는 곳이 ‘태양의 배 박물관’이다.
▼ 박물관 앞에는 판석 모양의 바윗돌이 쌓여있었다. ‘태양의 배’가 묻혀있던 구덩이를 덮었던 판석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태양의 배는 1954년 대피라미드 남쪽면의 모래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는 도중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석회암으로 뚜껑을 덮은 길이 31m, 깊이 3.5m의 구덩이가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 각 부분으로 나뉘어 분해되어 있던 배가 들어 있었단다. 당시에 발견된 ‘제1 태양의 배’가 현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 박물관 안으로 입장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추가비용을 내야한다. 그래선지 여행사에서는 이걸 선택 관광으로 돌려놓았다. 많은 여행자들이 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리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런 우는 범하기에는 안에서 전시되고 있는 배가 너무 중요한 고고학적 유물이다. ‘태양의 배’라고 불리는 이 유물은 무려 4500년 전에 만들어진, 길이가 40미터가 넘는 거대한 목재 선박이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아래 사진을 살펴보면 신발에 포대 같은 것을 덧씌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발에 묻어있는 흙먼지가 건물 안에서 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 박물관답게 내부는 ‘태양의 배’에 관한 유물과 각종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출토 당시의 사진도 빼놓지 않았다.
▼ 태양의 배가 발견된 구덩이도 복원되어 있다.
▼ ‘태양의 배’를 미니어처로 제작 전시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당시에 타고 다녔을 법한 여러 종류의 배들도 전시되어 있다.
▼ 자료 전시실을 지나 태양의 배를 직접 대면하면 먼저 선박의 엄청난 규모에 감탄하게 된다. 그리곤 도저히 4500년 전에 만들어진 배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훌륭한 보존 상태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최고급 레바논 삼나무로 제작된 이 거대한 배는 일종의 상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자들의 주장이다. 수심이 그다지 깊지 않은 나일강에서는 굳이 이렇게 거대한 선박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뿐더러, 운용하기도 힘들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말이다.
▼ 전시되고 있는 배는 ‘제1 태양의 배’라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죽으면 태양신 라에게 융합이 되고, 파라오의 혼(魂)은 배를 타고 천공을 항행하는 것으로 믿어 졌다. 그런데 신화는 ‘태양의 배’에 주간용 배 ‘마아네제트’와 야간용 배 ‘메세케테트’의 두 종류가 있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또 다른 ‘태양의 배’가 존재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일부 학자들이 주장한 이 가설은 기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그로부터 약 30년이 지난 1987년 일본의 와세다 대학 조사팀에 의해 기존 구덩이 서쪽에서 ‘제2의 태양의 배’가 묻혀있는 또 다른 구덩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제1 태양의 배와 같은 레바논 삼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구덩이 안에 들어간 수분으로 인해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았던 이 배는 첨단기술이 발달한 최근(2012년)에야 발굴되어 현재 보존처리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단다.
▼ 일각에서는 이 선박이 원양 항해에 실제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단순히 상징으로 배를 만들었다면 굳이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건조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최근에는 실제로 이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로 활용될 수 있는 고왕국 시대의 선착장 유적이 홍해의 해안에서 발견되기도 했단다. 뿐만 아니라 왕의 지시로 탐험대가 머나먼 이국까지 갔다가 귀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고왕국 시대의 기록들도 있단다. 이런 자료들은 태양의 배가 실제로 원양항해에 사용되었거나, 적어도 실제로 사용되던 선박을 모델로 해서 만든 것일 가능성에 한층 더 무게를 실어준다.
▼ ‘태양의 배’는 10년 이상의 세월에 걸쳐 재조립·복원되었다. 그런 산고를 거친 뒤에야 세상에 얼굴을 내민 선박에는 쿠푸 왕의 후계자 제데프라(Djedefra)의 이름이 적혀있다고 한다. 제드프라 왕이 선왕 쿠푸를 위해 매장한 것으로 추정하는 근거이다.
♧ 에필로그(epilogue), 계단식 피라미드가 만들어질 무렵, 다시 말해 ‘대피라미드’보다도 100년이나 앞서서 만들어진 ‘스핑크스’는 ‘지평선에 있는 수호신 호루스’라는 의미를 지닌 ‘호르 엠 아케르’로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수천 년 동안이나 불려왔다. 호루스는 이집트 9신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신들 간의 갈등을 매듭지어 현세를 밝게 해주는 국왕신으로, 이집트 6000년 역사 중 이 나라의 리더들이 늘 표방해왔다. ‘호루스의 이름으로’ 문명을 만들고 태평성대를 도모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2000년도 더 지난 후의 이방인들 눈에는 그저 괴물(Sphinks)로만 보였던 모양이다. 테베(룩소르)의 돌산에 살면서 ‘아침 네 다리, 낮 두 다리, 밤 세 다리’라는 스핑크스 수수께끼를 낸 뒤 틀리면 잡아먹어버렸다는 가장 악질적인 괴물로 둔갑시켜 버린 것을 보면 말이다. 또 사나운 묘지기로 평가절하 시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 비속적 호칭 ‘스핑크스’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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