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길 10코스(리비교 남단 – 신장남교 북단)
여행일 : ‘25. 3. 15(토)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적성면 및 연천군 장남면 일원
여행코스 : 리비교 거점센터→자장리 마을회관→두지나루(황포돛배)→장남교 북단(거리/시간 : 9.6km, 실제는 10.29km를 2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드디어 ‘코리아둘레길’의 4,500km 전 구간이 완성됐다. 2009년부터 시작된 ‘코리아둘레길’은 2016년 해파랑길(동해), 2020년 남파랑길(남해), 2022년 서해랑길(서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24년 9월, 마지막 구간인 ‘DMZ 평화의길(이하 ’평화의길‘) 개통으로 ‘코리아둘레길’이 완성됐다. DMZ 일대를 따라 구축한 코스로, 자유롭게 방문하는 횡단노선과 민간인 통제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인 테마노선으로 구성된다.
▼ 들머리는 리비교 거점센터(파주시 파평면 장파리)
수원·문산고속도로 월롱 IC에서 내려와 통일로(국도 1호선) 문산방면, ‘여우고개사거리’에서 율곡로(국고 37호선)로 옮겨 연천방면으로 올라오면 ‘리비사거리’에 이르게 된다. 평화의길 안내판(인증 QR코드)은 리비교 남단과 리비사거리 중간에 세워져 있다.

▼ ‘리비교’에서 ‘장남교’까지 임진강 언저리를 따라 북동진하는 길이 9.6km의 여정. 두지나루의 ‘황포돛배’를 빼면 특별한 얘깃거리나 볼거리는 없다. 하나 더. 두루누비 안내지도에 ‘시점’으로 표기되어 있는 ‘리비교 거점센터(10코스 시점)’는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도 알아두자.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았다.

▼ 이곳도 ‘대북전단 살포’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모양이다. 하긴 위험물이라는 핑계로 북한에서 총이라도 쏘아댈 경우 그 피해는 오롯이 주민들에게 돌아갈 테니 어디 그냥 넘길 일이겠는가.

▼ ‘리비중사 추모비’가 근처에 있는 모양인데 눈에 띄지는 않았다. ‘조지 리비(George D. Libby)’중사는 1950년 7월 20일 대전전투 당시 자신을 희생해 사단 병력을 철수시키는 데 공헌한 미 제24사단 전투공병대대 소속 군인이다. 그는 산악철수가 불가능한 부상병들을 차량에 태워 철수하면서 북한군의 사격을 받아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등 전진이 불가한 상황에 부닥쳤다. 이때 철수하는 포병 M-5 포차를 세워 부상병들을 옮겨 실은 다음, 기관단총으로 도로 주변의 적을 제압하며 철수작전을 이어갔다. 포차 운전병을 자기 몸으로 감싼 뒤 전속력으로 달리게 한 뒤, 길가의 부상병들까지 태워 철수하던 중 많은 총상을 입고 전사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6·25전쟁 최초로 미국의 최고 무공훈장 ‘Medal Honor’를 받았다.

▼ 10 : 33. 리비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한때 기지촌으로 번영을 누리던 추억 속의 옛 고을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이곳 장파리는 한국전쟁과 미군주둔, 통일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현대사를 가장 솔직하게 보여주는 곳으로 알려진다.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1959) TV 드라마 형제의 강(1996) 봄날은 간다(1997) 등의 화면에서나 보던 50~60년대 도회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거리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 장파리의 또 다른 이름인 ‘장마루’는 지형이 ‘마루처럼 길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을은 6.25전쟁 전에는 임진강변 긴 언덕에 들어앉은 가난에 찌든 벽촌이었다. 그러다 6.25전쟁이 마을을 확 바꿔 놓았다. 전쟁 직후 임진강 건너 DMZ 인근 JSA(공동경비구역)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부대 복귀나 휴가를 위해 들르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군들이 음식점, 다방, 여관, 술집, 클럽 등에서 달러를 사용하면서 장파리에서는 동네 강아지도 달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1970년대 미군이 철수하면서 과거의 번영은 사라졌고, 현재는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로 남아있다.

▼ ‘매운탕 촌’ 조형물. 주말 트레킹 때 ‘장파리’를 지나간다는 얘기에 벗은 ‘장파리에서 매운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했다. 이른 시간에도 문을 여니 시간에 구애받지 말고 매운탕에 소주 한잔 걸쳐보라면서 말이다. 트레킹이 건강을 넘어 웰빙으로 승화된다나?

▼ ‘저걸 보고도 들어갈 마음이 생기나요?’ 이석암 작가님은 단칼에 거절이다. 음식은 정성이라고 했는데, 저런 안내판을 보고도 그런 마음을 기대할 수 있겠느냐면서 말이다. 물론 나처럼 개의치 않는 여행자들도 많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저런 안내판은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10 : 36. 평화의길은 공연장을 연상시키는 철제 구조물 앞에서 왼쪽으로 간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위에서 얘기하던 풍경들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철제구조물 뒤 붉은 지붕 건물이 ‘라스트 찬스’)

▼ 3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라스트 찬스(Last chance)’도 그중 하나다.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미군 클럽으로, 미군들은 DMZ으로 연결된 리비교를 건너 휴가나 외출시에 라스트 찬스 등 장파리 일대 클럽을 이용했단다. 미군홀로 사용될 때의 벽면과 구조가 남아 있는 등 미군 주둔에 따라 형성된 지역적 특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해서 경기도문화재(제8호)로 등록됐다.(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 다른 분의 것을 빌려왔다)

▼ 미군들이 리비교를 건너 장파리로 들어오면 맨 처음 접하는 클럽이 ‘라스트 찬스’였다. 그래서 ‘퍼스트 찬스(First chance)’라고도 불렀단다. 부대로 복귀할 때는 외출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즐기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노래를 불렀던 이들의 이름도 회자된다. 무명 시절의 조용필을 비롯해 initials만 대도 알아차릴 수 있는 유명 가수들이 이곳에서 노래를 불렀단다.

▼ 10 : 40. 옛 모습을 추억해 볼 수 있다는 마을 안길까지 둘러보고 싶었으나 시간이 빠듯하다는 집사람의 채근에 쫓겨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율곡로 아래로 난 굴다리를 통과한다.

▼ 10 : 42. ‘카페마루’까지는 율곡로와 함께 간다. 왼편, 그러니까 임진강변의 너른 들녘에는 비닐하우스가 한가득이다. 하긴 요즘은 농촌도 경제성과 효율성을 최고의 선으로 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 10코스는 평화누리길(9코스)의 이정표가 많은 도움이 된다. ‘평화의길’과 마찬가지로 ‘장남교’를 종점으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 경기둘레길(8코스)이 동행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탐방로는 널디너른 임진강변의 충적평야를 가로지르며 나아간다. 친환경 쌀과 장단콩, 개성인삼 같은 특산품들이 생산되는 들녘이다. 특히 우렁이농법으로 공동 생산하는 ‘경기추청미’는 ‘친환경장마루촌’이라는 상표로 출하되는데, 그 품질을 인정받아 전량 주문·판매될 정도로 수도권에서 인기가 높단다.

▼ 들녘에서 철새들이 남겨진 알곡을 쪼아 먹고 있었다. 최근 보아오던 새떼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철새가 머문다 함은 자연이 잘 살아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과 연결된 존재이다. 자연이 잘 살아있어야 인간도 살 수 있다. 자연을 다시 살리려면 자연을 온전히 느끼고 사랑하는 감수성을 살려야 한다.

▼ 트레킹을 마친 뒤 총무님이 재두루미 사진을 찍었느냐고 물어온다. 그 흔한 기러기인줄로만 알고 사진조차 찍지 않았는데 귀하신 몸(천연기념물)이었던가 보다. 그녀가 보내준 사진을 올려본다.

▼ 10 : 52. 오른쪽으로 방향을 꺾는가 싶더니 ‘자장로(17번길)’로 올라간다. 이어서 왼쪽(북쪽), 그러니까 ‘장좌리’ 쪽으로 간다.

▼ ‘기운목장’인데 젖소를 42마리나 기른다고 했다. HACCP 인증을 받은 업체라니 시설관리를 제대로 해오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조금 전 마주쳤던 ‘상수원보호지역’ 경고판이 자꾸만 오버랩되는 이유는 뭘까?

▼ 닷새 후면 완연한 봄으로 진입한다는 춘분(春分)이다. 그래선지 들녘 곳곳에서 부지런한 농부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늘을 심나보다고 했더니 집사람이 양파라고 바로잡아 준다. 신기하다. 양파나 마늘이나 그게 그건데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 10 : 55. 잠시 후, 탐방로가 자장로(17번길)와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는 이름조차 없는 농로를 따라 들어간다. 숨 가쁘게 파평면을 달려온 ‘평화의길’은 이곳에서 ‘적성면(積城面)’에게 바톤을 넘겨준다. 이어서 장좌리(長佐里)와 자장리(紫長里), 두지리(斗只里)를 거쳐 ‘연천군’으로 넘어간다.

▼ 이후부터는 장좌리의 들녘을 누빈다. 야트막한 산과 산들 사이, 산골짜기에 들어선 손바닥만 한 들녘들을 헤집으며 나간다고 보면 되겠다. 하나 더. 장좌리는 동·서·북 삼면을 임진강이 휘돌아가는 모양새이다. 그 너머에는 고랑포구와 삼국시대에 쌓았다는 ‘연천호로고루’가 있다. 장좌리 쪽 강가에는 궁예가 쉬었고 왕건이 다녀갔다는 ‘칠송정(七松亭) 터도 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풍경들이 여럿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평화의길은 임진강으로 가지를 않고 장좌리 내륙을 관통한다.

▼ 그러다보니 곳곳에서 산모롱이를 돌게 되고, 또한 여러 곳에서 길이 나뉜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럴 때마다 경기둘레길과 평화누리길 이정표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준다. 거기다 곁방살이로 들어온 ‘평화의길’까지 힘을 보태니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가 없다.

▼ 11 : 16. 꼬불대는 고갯길을 올라 해발 54m의 나지막한 고개를 넘기도 한다. 장좌리와 자장리의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인데 특별한 볼거리나 이야깃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

▼ 고개를 넘어 ‘자장리(紫長里)’로 들어간다.

▼ 고개 너머에는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었다. 임진강을 북쪽에 끼고 들어선 자장리는 자연마을로 검은들·나루턱·대추나무골·불근바치·샘말·식현·아랫불근바치·영채이·큰말 등을 두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디를 이르는지는 눈치조차 챌 수 없었다. 요즘은 옛 이름 찾기가 유행이라고 했다. 찾아낸 이름은 표석으로 만들어 동구 밖에 세우는 게 대세라고도 했다. 하지만 이곳 파주에서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 비닐하우스에서 살고는 있지만 풍류만은 차고도 넘친답니다. 옹기와 목각, 바람개비 등 각가지 조형물들을 이용해 동화나라로 만들어놓았다.

▼ 11 : 21. ‘자장로’로 올라서서 왼쪽(북동쪽)으로 간다. 이정표(장남교 6.2km/ 율곡습지공원 12.1km)가 1/3쯤 걸어왔음을 알려준다. 하나 더. 오른쪽은 율곡로의 ‘답곡교차로’로 연결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11 : 25. 자장로 걷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4분쯤 지나 이름조차 희한한 ‘듸링거리길’로 내려서기 때문이다. 참고로 ‘듸링’은 오래 전부터 불리어온 지명이라고 했다. 기록으로 전해지지는 않지만 옛 이름을 찾자는 의미에서 붙여놓았단다. 그래서일까? 길가 정자는 ‘평화누리길 자장리 쉼터’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 쉼터는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래선지 일행들이 간식이라도 먹고 가자며 정자로 들어간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계속해서 걷기로 했다. 그동안은 막걸리로 요기도 할 겸해서 쉬곤 했었는데, 최근 술을 끊은 뒤부터는 떡으로 요기를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떡이야 걸어가면서도 먹을 수 있으니 구태여 앉아서 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 탐방로는 ‘자장4교(수로에 놓인)’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는 둑길을 따라 ‘자장마을’로 간다.

▼ 11 : 33. 농수로 다리를 건넌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국사로’로 올라선다. 마을 뒷산이라 할 수 있는 ‘국사봉(國祠峰, 150m)’에서 얻어온 이름이지 싶다.

▼ 농번기를 맞아선지 농기계와 유난히도 자주 마주쳤다. ‘코리아트레일’은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다. 마을 사람들이 들일 나가던, 옆 마을에 일보러 가던, 장보러 가던 길들을 모아 연결했을 뿐이다. 지역 주민은 낯선 나그네에게 길을 열어주었고, 지자체는 나그네가 헤매지 않도록 안내판과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니 우리 같은 걷기여행자들보다 농기계가 먼저 지나가야 한다.

▼ 11 : 40.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10분 만에 ‘자장리(紫長里)’에 도착했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검은들, 샘말, 큰말 등 9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진 법정 동리이다. 하지만 이곳이 어느 부락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나 더. ‘자장’이란 임진강변에 붉은 찰흙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했다.

▼ 경로당을 겸한 마을회관도 ‘자장리’라는 간판을 달았을 뿐이다. 어렵게 만난 인연이니 마을 이력 정도는 알려주는 것도 괜찮을 텐데 말이다.

▼ 마을 지도가 그려진 안내판에서도 그런 정보는 얻어낼 수 없었다. ‘초원마을’이란 브랜드를 내건 체험시설들만 줄줄이 늘어놓았다. 함께 세워놓은 평화누리자전거길 안내도와 이정표(장남교 4.9km/ 율곡습지공원 14.1km)도 마찬가지다.

▼ 판자 담벼락이 예술적이다. Soffio d' Amore, Illumina la mente, di Luce e Porta Pace 등 이탈리아어를 적어 미적 감각에 감성을 보탰다. 사랑의 숨소리, 마음을 비추고, 거기에 빛과 평화의 문이라니 이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는 언어의 마술인가.

▼ 들어왔던 반대방향으로 빠져나가면서 트레킹을 이어간다. 자장리 마을을 지나면 임진강이랑 서서히 가까워진다. 그나저나 중앙선까지 그어놓은 자전거길이 흡사 자동차도로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 잘 지어진 저 한옥은 마을에서 운영하고 있는 ‘체험장’이라고 했다. 숙식도 가능하단다.

▼ 썩 편치 않은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태양광발전소가 농경지에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를 더구나 무공해로 생산한다니 누가 뭐라 하겠는가마는 농경지에 들어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 왼쪽으로 임진강이 흐르고, 그 남쪽 언덕에 자장리 들녘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 때로는 탐방로가 산모롱이를 에돌아가기도 한다. 능선 너머는 임진강이 흘러간다.

▼ 봄은 봄인가 보다. 냉이가 나왔다며 집사람의 손놀림이 바빠지는 걸 보면 말이다. 저 냉이는 다음 주 내내 우리 집 밥상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그런 봄날을 즐기며 한갓지게 걷고 있으니 이 아니 행복할 손가.

▼ 12 : 08. 커다란 비닐하우스 시설단지를 지나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 12 : 11. 굴다리 앞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율곡로(국도 37호선)’로 올라서게 된다. 국도 가장자리를 따라 탐방로를 따로 내놓았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방금 지나온 비닐하우스와 함께 임진강이 눈에 들어온다. 임진강 건너 저 어디쯤에 ‘고랑포 나루’가 있을 것이다. 삼국이 임진강변을 쟁패하던 시대, 고구려는 고랑포 위 절벽에 호로고루 성채를 건설했다. 서기 978년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이 나루를 건너지 못하고 언덕배기에 묻혔다. 1968년 1월 19일에는 북한 특수부대원 32명이 청와대를 목표로 얼어붙은 고랑포 여울목을 건넜다. 속칭 김신조 부대다.

▼ 12 : 18. 탐방로가 국도변을 벗어나 언덕으로 올라가는 임도로 옮긴다. 그리고는 가파른 오름짓으로 고도를 20m 이상 끌어올린다.

▼ 율곡로는 자동차 전용도로라서 보행자의 접근을 엄격히 금지한다. 중앙 분리대로도 모자라 가드 레일까지 설치해 놓은 것이 그 증거다.

▼ 12 : 24. 고갯마루를 넘으면 평화누리길 ‘두지리 쉼터’가 반긴다. 쉼터 앞에서 길이 나뉘는데 평화의길은 쉼터를 경유하도록 나있다.

▼ 나물은 우리만 캤던 게 아닌가 보다. 10코스만 걷겠다면서 ‘리비사거리’까지 산악회 버스로 이동한 일행 둘이 오는 도중에 캤다며 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 내려가는 길은 무척 가팔랐다. 지자체에서도 그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침목계단으로도 모자라 밧줄난간까지 설치해 놓았다.

▼ 12 : 29 – 12 : 42. 탐방로는 ‘두지나루’로 연결된다. 리비사거리를 출발한지 1시간 50분 만이다. 두지나루는 북녘 땅에서 시작한 물길 사이로 남과 북을 잇는 황포돛배가 힘차게 오가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포구다. 반세기 넘게 왕래가 끊겼던 황포돛배는 2004년 복원돼 일부 구간을 운행하기 시작,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임진강을 일반인에게 유일하게 구경시키고 있다.

▼ 나루터 초입에 평화의길(10코스)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평화누리길 이정표(장남교 2.2km/ 율곡습지공원 16.3km)는 그냥 지나치란다. 그렇다고 황포돛배로 유명한 10코스의 핫 플레이스 ‘두지나루’를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잠깐의 망설임도 없어 나루터로 들어가고 본다. 참고로 ‘두지’라는 지명은 땅 모양이 ‘뒤주’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했단다.

▼ 첫 만남은 ‘황포돛배’이다. 한때는 임진강의 거친 물길을 오르내렸을 돛단배를 입구에 전시해 놓았다. 조선시대의 황포돛배는 지금의 상암동에 있던 한강 마포나루에서, 서해에서 생산한 소금이며 생선, 젓갈 등의 물건을 싣고 임진강 상류로 가는 마지막 포구였던 고랑포구까지 약 50여 킬로미터의 강줄기를 따라 운행했다고 한다. 쉬지 않고 가면 15시간 걸리는데, 보름까지 걸리는 게 보통이었다나? 21개의 포구를 들러 물건을 싣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데다 임진강이 서해의 조수 영향을 받기 때문이란다.

▼ 매표소. 배 삯은 성인 기준으로 만원, 최대 승선인원이 45명인데 문제는 최소한 8명은 타야 출발한다는 점이다. 자칫 부지하세월로 기다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두지리 선착장(두지나루터)에서 고랑포구(자장리)를 돌아 선착장으로 원점 회귀하는 코스로 40쯤 걸린다.

▼ 그 기다림이 오래갈 것 같으면 매표소 뒤 ‘카페’로 가면 될 일이다. 커피에 수제 전통차는 물론이고 서브 메뉴로 와플까지 내놓는다. 야외 테이블도 갖추고 있어 임진강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길 수도 있다.

▼ 카페에서 바라본 풍경. 커다란 표석이 이곳이 ‘두지나루’임을 알려준다. 다들 ‘황포돛배’로 알고 있지만 실은 임진강변에 위치한 ‘두지나루터’인 것이다. 참고로 국토가 분단되기 전, 큰 배는 이곳보다 조금 하류에 위치한 고랑포까지 운행했었다고 한다. 반면에 작은 배는 ‘안협’까지 다닐 수 있었다니, 이곳 두지나루는 황포돛배가 제격이었겠다.

▼ 나루터 진입로. 대전차방호시설이 없는 것으로 보아 민통선과 엔간치 떨어져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취수탑도 잠깐의 볼거리로 충분하다. 외벽에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임진적벽도(臨津赤壁圖)’를 그려 넣었다.

▼ 물양장을 장식하고 있는 조형물. 제목은 ‘황포돛배’인데 하나같이 하얀 돛을 달고 있다. 그나저나 물양장은 ‘강나루’답지 않게 꽤나 널찍했다. 하긴 60여 년 전만 해도 이곳 두지나루는 서해의 해산물을 비롯한 각종 농산물이 돛배에 실려 왔다고 하지 않던가. 남과 북이 나뉘고 임진강 자체가 사람 통행을 가로막는 민통선이 되면서 그 풍경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말이다.

▼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가는 주민들도 꽤 되는 모양이다. 꼬맹이지만 대여섯 척의 어선이 출어를 기다리고 있었다.

▼ 지붕에 올린 황포 돛이 바람에 펄럭인다. 파주 유일의 뱃길 관광 체험인 임진강 황포돛배는 조선시대의 주요 운송수단이었던 황포돛배를 재현한 유람선이다. 저 배를 타면 분단 이후 수십 년간 베일에 싸여 있던 임진강을 유람하며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거북바위를 지나 임진강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높이 10미터의 자장리 적벽을 지나는데, 60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수직무늬의 절벽 아래쪽이 밀물과 썰물의 영향으로 선명한 가로줄무늬가 생겨 신비롭기까지 하다나?

▼ 12 : 42. 눈이 호사를 누렸으니 이제 다시 길을 나설 차례다.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한없이 구불거리는 시골길을 따라 간다.

▼ 느닷없는 산신령. 요 근처 어딘가에 산신당이라도 지으려고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듯 길가에 내팽개쳐 있다.

▼ 12 : 29. 자동차 길은 ‘율곡로’ 아래로 난 굴다리로 들어간다. 하지만 평화의길은 데크길을 따라 왼쪽 언덕으로 올라간다. 참고로 굴다리를 통과하면 ‘두지리 매운탕촌’이 만난다고 했다. 참게와 민물새우를 바탕삼아 메기, 빠가사리로 맛을 더한다는 시원한 민물매운탕이 그리운 사람들은 잠시 다녀와도 좋겠다.

▼ 언덕에는 평화누리길 쉼터가 있었다. 뒤에는 짓다가 그만둔 건물이 덩그러니 방치되고 있었다.

▼ 탐방로는 이제 임진강 둑길을 따라간다. 장남교를 바라보며 간다고 보면 되겠다. 오른쪽에는 베이커리 카페인 ‘삼성당’이 있다.

▼ 539m 길이의 ‘신장남교’는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와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를 잇는다. 기존의 장남교가 장마 때만 되면 수시로 물에 잠기는 탓에 새로 만들었다. 장남교에 ‘새로울 신(新)’를 보탠 이유이다. 2012년 9월, 건설과정에서 콘크리트 상판이 무너져 근로자 2명이 숨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 12 : 49. 장남교 교각아래서 데크길을 이용해 장남교로 진입한다. 오른쪽은 파주어촌계에서 운영하는 민물고기 직판장이다.

▼ 뿌듯한 마음으로 ‘신장남교’를 건넌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북녘 땅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평화의길을 걸어오면서 임진강철교, 통일대교, 전진교, 리비교 등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여럿 만났었다. 그러나 다리를 건너보기는 처음이다. 남북 평화통일로 가는 듯 그만큼 감회가 새롭다는 얘기다.

▼ 황포돛배가 길을 나서고 있는 ‘두지나루’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저 배는 잠시 후 겸재 정선의 ‘임진적벽도’를 떠올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난다고 했다. 참고로 임진강에는 적벽이 11개가 있다고 했다. 북한 쪽에 7~8개가, 남한 쪽에 서너 개가 형성돼 있다나?

▼ 줌으로 당겨봤다. 그러자 ‘임진적벽도’가 선명해진다. 황포돛배에 올라 겸재(謙齋)의 시선으로 임진적벽을 둘러보고 싶었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집사람의 채근에 쫓겨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했다. 마냥 고운 풍경만 눈에 담을 수는 없었나 보다. JTBC의 사건반장에나 나올법한 현장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자동차 바퀴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타이어가 도로변에 나뒹굴고 있는 것이다. 재생타이어를 사용했을 때 발생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데 생각할수록 아찔하기만 하다. 달리는 차량에서 저런 타이어가 튕겨져 나올 경우 자칫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다리 아래, 임진강 둔치에는 ‘캠핑 브릿지’라는 야영장이 들어서 있었다. 그 뒤로는 원당리의 들녘이 드넓게 펼쳐진다. 하나 더. 들녘 너머에 삼국시대의 고구려 성곽인 ‘연천 호로고루(瓠蘆古壘)’와 임진강을 통한 물자교류 중심 역할을 하던 나루터 ‘고랑포구(高浪浦口)’가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캠핑용 테이블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모습이 정겹기 짝이 없다. 저런 한갓진 삶에서 가족애가 생겨날 것이고, 그 가족애가 삭막한 도심의 아귀다툼을 배겨낼 수 있게 만들 것이다.

▼ 13 : 10. 신장남교 북단. 다리를 건너면 연천군(장남면) 땅이다. 파주시 권역의 임진강 언저리를 숨가쁘게 달려온 평화의길이 신장남교에서 연천군에 바톤을 넘겨준 것이다.

▼ 13 : 16. ‘술이흘로’를 따라 장남면 쪽으로 간다. 100m 조금 넘게 걷자 도로변에 소공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평화의길 등의 시·종점임을 알리는 각종 시설물들을 세워놓았는가 하면, 벤치를 놓고 몇 가지 운동기구까지 배치했다.

▼ 평화누리길 10코스(고랑포길)의 시점임을 알리는 아치형 게이트를 중심으로 이정표(숭의전 16.2km/ 율곡습지공원 18.5km), 10코스안내도 등 많은 시설들을 세워놓았다. 길을 함께 쓰고 있는 ‘평화의길’과 ‘경기둘레길’에서도 안내판이나 스탬프보관함 등 몇 가지 시설들을 보탰다.

▼ 평화의길 완주인증 QR코드는 세 트레일이 함께 쓰는 안내도에 부착되어 있었다.

▼ 하지만 산악회에서는 ‘술이홀로’를 따라 100m 남짓 더 걸어오란다. 참고로 ‘술이홀로’는 파주시(파주읍) 봉암리 ‘주라위삼거리’에서 연천군(장남면) 원당리에서 끝나는 도로다. 파주시의 삼국시대 명칭인 술이홀현(述爾忽縣)에서 이름을 따왔다.

▼ 13 : 21. 잠시 후, 또 다른 소공원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10코스는 10.29km를 2시간 40분에 걸었다. 아니 9코스까지 함께 걸었으니 오늘은 17.44km를 4시간 20분에 걸었다. 두지나루를 둘러보느라 지체됐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 이곳은 정자와 벤치로는 모자라다는 듯 화장실까지 갖추었다. 그보다도 더 눈길을 끄는 것은 평화의 염원을 담은 조형물이었다. 서울까지가 46km인데 반해 개성은 25km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정표가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 하루라도 빨리 평화통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 평화의길 안내판은 이곳에 세워놓았다.(아까는 이정표만 있었다) 완주인증 QR코드도 붙어있다. 이곳에서도 인증이 가능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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