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龍門山, 1,157m)

 

산행일 : ‘12. 5. 13(일)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옥천면의 경계

산행코스 : 용문사주차장→용문사→마당바위(계곡길)→중앙능선→용문산 정상→장군봉→상원사→용문사→용문산주차장(산행시간 : 6시간)

 

함께한 산악회 : 나홀로

 

특징 : 그동안 용문산은 산행지(山行地)보다는 수많은 전설(傳說)을 간직한 은행나무로 더 알려져 있었다. 정상을 군시설(軍施設)에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2007년의 정상 개방, 그리고 중앙선 전철(電鐵) 개통 등과 맞물려 최근에는 부쩍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암괴(巖塊)들이 첩첩(疊疊)이 쌓인 남릉과 주변의 깊은 계곡들은 다른 유명산에 비해 별로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용문사 주차장

6번 국도(國道/ 홍천방향)의 마룡교차로(交叉路, 용문면 마룡리)에서 내려와 341번 지방도를 이용하여 왼편 용문사방향으로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용문사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중앙선 전철(電鐵)을 타고 용문역까지 온 후, 용문역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용문사까지 들어오면 된다. 참고로 동서울터미널에서 용문역까지 35분 간격으로 직행버스가 다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직행버스는 중간 기착(寄着)지점을 들르는 지역의 ‘버스터미널’로 삼는다. 그 지역 안에서 운행하는 버스와 환승(換乘)시켜주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홍천으로 가는 직행버스는 용문을 거쳐 가면서도 버스터미널에는 들르지 않은 채로 큰길가에 손님들을 내려놓고 도망가 버린다. 길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물어 버스터미널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리가 얼마 떨어져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터미널에서 30분마다 운행되는 버스를 타고 용문사에 도착하니 길가에 행사용 천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양평 산나물축제(祝祭)’기간 이란다. 행사기간 동안에는 용문사 입장료(2천원)는 내지 않아도 된다니 운이 좋은 모양이다.

 

 

각종 산나물과 산나물을 재료로 만들어낸 제품들이 진열된 길을 따라 들어서면 오른편에 ‘친환경농산물 박물관(博物館)’이 보인다. 비록 서울에서 전철(電鐵)이 다니고는 있지만, 양평은 어쩔 수 없는 산골마을인 모양이다. ‘농산물박물관’이나 ‘산나물축제’라는 게, 산골마을이 아니고서는 그런 행사나 건물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지나자마자 만나게 되는 다리(橋)의 입구에 이정표가 세워져있다. 용문사 은행나무까지의 거리가 왼편 다리를 건너면 1Km, 건너지 않고 오른편으로 그냥 올라가면 1.1Km라고 한다. 당연히 널찍한 왼편의 메인(main)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다른 사찰(寺刹)에서는 볼 수 없던 낯선 풍경(風景)이 눈에 들어온다. 길가에 개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개울에는 꼬마들이 물놀이를 즐겨도 될 만큼 넉넉한 양의 물이 흐르고 있다.

 

 

 

잘 닦인 도로를 따라 들어서면, 진행방향에 그 자태(姿態)를 뽐내고 있는 우람한 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용문산이라는 산의 이름보다도 먼저 떠올리게 된다는 그 유명한 ‘용문사 은행나무’이다. 이 땅의 나무 가운데 가장 키가 크며, 가장 많은 전설(傳說)을 간직한 은행나무라고 한다. 은행나무는 이름에 걸맞게 우람하기 그지없다. 50m이상을 떨어지지 않고서는 카메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라면 그 크기를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용문사 은행나무, 나이가 1100살쯤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그 높이가 무려 42m에 둘레가 14m인 노거수(老巨樹)이다. 신라 경순왕 때 나라를 잃은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심었다고 하며, 일설(一說)에는 의상대사가 꽂아놓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나라에 큰 재난(災難)이 닥칠 경우에는 이 나무가 소리를 내어 알려주었다는 등 신령스런 나무로 인식되어 왔다. 조선 세종 때는 정삼품보다 더 높은 당상직첩(堂上職牒)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천연기념물(제30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은행나무 뒤의 돌계단을 오르면 천년고찰(千年古刹)이라는 용문사를 만날 수 있다. 그 동안 수많은 병란(兵亂)으로 인해 전각들이 불타버린 탓에 국보(國寶)급으로 지정된 문화재(文化財)는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삼아 고요히 앉아있는 전각(殿閣)들은 다른 어느 유명사찰에 뒤질 바가 아니다.

* 용문사(龍門寺), 진덕여왕 3년(649년) 원효(元曉)대사가 창건, 진성여왕 때 도선국사(道詵國師), 고려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하는 등 중 ·개수를 거듭해 오다가, 세종 29년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원찰로 삼으면서 대대적으로 중건하였다. 1907년 일본군(倭軍)의 병화와 6 ·25전쟁 때 파괴되어, 현재의 건물들은 최근에 다시 중건한 것들이다. 문화재로는 정지국사(正智國師)부도 및 탑비(보물 531호)와 금동관음보살좌상(경기도 유형문화재 172호), 그리고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수령이 1,1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있다.

 

 

 

용문사에서 좌측의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 5분 정도를 걸으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상원사/마당바위 갈림길(이정표 : 용문산 정상 3130m/ 상원사 1780m/ 용문사 280m)이다. 왼편의 상원사코스는 상원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절고개에서 남릉을 타고 정상으로 가게 되고, 오른편 계곡으로 들어서면 마당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상원사코스가 마당바위코스보다 오르기도 쉬울뿐더러 시간도 30분 정도 단축된다.

 

 

 

마당바위 방향의 계곡으로 들어서면, 길은 평탄치 않은 산행을 예고라도 하려는 듯이 발동작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 길은 온통 돌투성이, 크고 작은 바위 위를 걷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담을 느낄 필요까지는 없다. 계곡을 가로지를 때에는 어김없이 다리가 놓여있고, 벼랑을 치고 오르기라도 할라치면 자연석을 쌓아 계단을 만들었거나.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았다.

 

 

 

등산로는 울창한 숲과 계곡으로 이어진다. 한여름처럼 무더운 초여름 날씨인데도 이곳은 시원하기만 하다. 나무그늘과 바위를 돌아 흐르는 맑은 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숲과 맑은 물을 스쳐 지나온 바람이라면 당연히 시원할 것이다. 용문산은 물이 많아 한 번도 계곡(溪谷) 물이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계곡을 덮고 있는 푸른 숲은 고요하기만 한데, 발아래 계곡은 소란을 떨고 있다. 바위들을 휘감고 돌다가 지쳐서, 마지못해 바위를 넘다가 굴러 떨어지는 물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이 조금 지나면 계곡의 한 가운데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보인다. 바로 마당바위이다. 커다란 바위의 윗면이 평평하게 생겼는데, 10여명이 둘러앉으면 꽉 찰 정도여서 생각했던 것 보다는 상당히 왜소(矮小)하다.

 

 

 

마당바위에서 100m 정도 더 올라가면 통행을 금지(禁止)한다는 안내판이 보이면서 길은 왼편 사면(斜面)으로 향하고 있다(이정표 : 용문사 정상 1.55Km). 남릉으로 오르는 너덜길이다. 아마 오늘 산행 중에서 제일 힘든 구간일 것이다. 많이 가파른데다가 너덜길이라서 비록 안전로프나 난간을 설치해 놓았다고는 하나 힘들기는 매 한가지이다. 오르는 중에 만난 어느 아주머니는 얼굴 표정이 아예 사색(死色)이다. 낭군이 아무리 재촉해도 제자리에 멈춘 채로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하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니 어쩔 것인가?

 

 

 

 

40분 이상을 가파른 너덜길과 씨름하다보면 드디어 능선안부에 오르게 된다. 아까 헤어졌던 상원사코스와 다시 만나게 되는 지점이다(이정표 : 상원사 2.4km/ 용문산 정상 0.9Km/ 용문산 2.1Km, 마당바위 600m). 이곳에서 부터는 본격적으로 암릉이 시작된다.

 

 

 

 

남릉은 계단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겹도록 계단의 숫자와 싸워야 하는 까닭에 지겹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신록(新綠)으로 물들어가는 산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에 흥이 실릴 만도 하건만, 너덜길을 올라오면서 지친 육신(肉身)은 기운이 빠져버린 지 이미 오래이다.

 

 

 

남릉은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지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능선의 바위들은 하얀 빛깔의 차돌이기 때문에 붙잡고 올라가기가 용이한 편이다. 조금만 험하다싶으면 어김없이 우회로(迂廻路)를 만들어 놓았지만 가급적이면 릿지를 이용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끔 시야(視野)가 트이는 바위에라도 올라설라치면, 용문산이 왕관을 쓰고 있는 제왕(帝王)의 위엄을 보이고 있다.

 

 

 

 

남릉에서 릿지로 한 시간 정도 스릴을 즐기다보면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삼거리(이정표 : 정상 110m/ 장군봉 1400m/ 용문사 3300m)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려면 맞은편에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왼편은 장군봉과 백운봉으로 가는 길이다. ‘시원한 막걸리나 아이스크림 있습니다.’ 왁자지껄한 속에서도 뚜렷하게 들려오는 이유는 그만큼 남릉을 올라오면서 갈증에 시달렸음이리라...

 

 

 

삼거리에서 또다시 지긋지긋한 계단을 밟고 오른다. 여기까지 오느라 가진 힘을 다 쏟아버린 탓에 부쩍 더 힘들다. 어렵게 오른 정상은 10평도 채 안 될 정도로 비좁다. 주위가 군부대(軍部隊)인 탓일 것이다. 정상이 좁은 탓인지 정상의 주위에 정자와 ‘테크 쉼터’ 등 쉴만한 공간이 많이 눈에 띈다. 용문산 정상은 2007년 이전까지는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금단(禁斷)의 지역이었지만 양평군과 공군 제8145부대가 협의 끝에 개방하기로 하면서 사람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정상에 올라서면 정상표지석의 곁을 지키고 있는 현대식 조형물(造形物)이 이채롭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조각가(彫刻家)인 이재훈씨의 작품이라고 한다. 조형물은 은행나무 잎 두 개를 형상화(形象化)시키면서 그 가운데에 ‘용문산 가섭봉’이라고 새겨 놓았다. 이 조형물은 규장각(奎章閣)에 소장중인 '지평현 여지도(1882년 발행)'에 ‘용문산 가섭봉’이라고 표기된 것을 근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이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답게 뛰어나다고 하지만, 안개가 자욱한 날씨 탓에 시야(視野)가 트이지 않는다.

 

 

 

장군봉으로 가려면 아까 정상으로 오를 때 만났던 ‘나무계단(階段) 시작지점’의 삼거리에서,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곳에서 장군봉과 백운봉을 연결시켜주는 서릉(西稜)까지의 1Km정도 되는 구간은 산의 8부 능선쯤 되는 허리(斜面)를 째면서 이어진다. 이 구간은 간혹 너덜길을 만나기도 하지만 경사(傾斜)가 거의 없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군부대(軍部隊)를 우회(迂廻)하는 구간이라서 오른편에는 군부대의 철조망이 심심찮게 보인다.

 

 

 

우회구간이 끝나면서 만나게 되는 서릉위의 삼거리에서 이정표(용문산(우측) 1.0Km/ 상원사 3.0Km, 백운봉 3.6Km)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방향표시를 이해할 수가 없다. 길이 세 갈래이고, 오른편 능선으로 길이 뚜렷한데도 이정표에는 방향표시가 없는 것이다. 궁금증에 올라가보면 조그만 봉우리가 나오고 군부대(軍部隊)의 철조망이 능선을 막고 있다. 등산로는 철조망 아래로 나 있는데, 아마 군부대로 오르는 차도(車道)까지 연결되는 모양이다. 봉우리에서는 장군봉과 함왕봉, 백운봉을 잇는 서릉이 뚜렷하게 조망(眺望)된다. 날씨만 맑다면 북서쪽에 위치한 유명산은 듬성듬성 벗겨져 있는 머리까지 보일 것이다.

 

 

 

서릉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순하다. 경사(傾斜)도 완만(緩慢)할뿐더러 바닥이 고운 흙길이어서 걷기가 무척 편하다. 자연스레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까지 생긴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참나무 군락(群落), 연록의 잎사귀들이 점점 푸르름의 농도(濃度)를 더해가고 있다. 비린내가 날 것 같던 새순들이 어느새 어른스러워져 버린 것이다. 사물을 즐기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장군봉에 올라서게 된다.(이정표 : 백운봉 2180m/ 상원사 2130m/ 용문산 정상 1510m)

 

 

 

장군봉 정상은 능선 상에서 조금 튀어나온 흙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이다. 봉우리를 지키고 있는 정상표지석이 아니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별다른 특징(特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산길은 정상표지석 앞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맞은편의 서릉을 계속 따르면 백운봉으로 가게 되고, 상원사는 이곳에서 왼편 능선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상원사까지의 하산길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경사(傾斜)가 가파르다. 뭔가에 의지하지 않고 내려서기 힘든 곳에는 안전로프나 쇠(鐵)난간을 곳곳에 설치하여 놓았다. 아무리 내려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어지는 가파른 내리막길은 짜증이 날 정도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면 가끔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용문산의 산세(山勢)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던 산길이 왼편으로 90도 이상으로 방향을 틀면 진행방향에 상원사의 전각(殿閣)들이 눈에 들어온다(이정표 : 용문사 1.9Km/ 장군봉 2.19Km/ 백운봉 5.39Km). 자연석으로 만든 돌계단을 밟고 오르면 만나게 되는 상원사는 한마디로 말해 싱싱하다.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듯, 전각들마다 단청(丹靑) 색깔이 뚜렷하고, 아직 단청을 입히지도 않은 전각도 보인다. 상원사에 들르면 대웅전(大雄殿) 앞에 있는 샘물을 꼭 마셔보길 권하다. 감로수(甘露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청량(淸凉)하고 감미롭기 때문이다.

* 상원사(上院寺), 창건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발견된 유물(遺物)들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보우가 그리고 조선 초기에는 무학이 이곳에 잠시 머물며 수도했다고 전하나, 그보다는 1458년에 해인사의 대장경(大藏經)을 보관했던 것이 더 역사적 의미가 클 것이다. 지금의 전각(殿閣)들은 6.25 전쟁 때 불타버린 것들을 1969년 이후 다시 복원한 것들이다.

 

 

 

상원사를 빠져나오면 왼편 숲속으로 작은 오솔길이 나있다. 용문사로 가는 길이다. 들머리에 세워진 ‘119 구조지점 표시 말뚝’에 용문사까지의 거리가 2.1Km로 적혀있는데, 아까 상원사로 들어가기 전에 보았던 이정표(1.9Km)와 맞지 않는다. 용문사방향으로 더 걸었는데도 오히려 거리가 더 늘어나버린 것이다. 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정표를 참고해서 산행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보통이니, 정비(整備)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용문사까지의 2.1Km구간(區間)은 그다지 멀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미 5시간 가까이를 걸어온 사람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구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등산로가 산의 허리(斜面)를 따라 이어지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절고개로 올라가는 길이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다는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용문산주차장(원점회귀 산행)

상원사를 출발해서 1시간 가까이를 걸으면 절고개(이정표 : 상원사 1150m/ 용문사 910m/ 용문산 정상 2030m) 위에 올라서게 된다. 안부 삼거리인 절고개에서 왼편 길은 용문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남릉이고, 용문사로 가려면 맞은편 내리막길로 진행해야 한다. 경사(傾斜)가 심한 내리막길을 얼마간 내려서면 이내 아침에 용문산을 오르면서 헤어졌던 삼거리가 나온다. 이어서 계곡의 건너편 숲 사이로 용문사의 전각(殿閣)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의 산행이 종료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