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산(中元山, 800m)

 

산행일 : ‘12. 8. 18(토)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단월면의 경계

산행코스 : 주차장→남릉→중원산→암릉→신점리 갈림길→숯가마터→중원계곡→중원폭포→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 3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근 용문산과 도일봉 등의 산줄기에다 중원산을 합쳐, ‘경기의 금강산(金剛山)’이라고 불릴 정도로 웅장(雄壯)한 산세(山勢)를 자랑한다(그러나 다른 산들 보다 빼어난 점은 발견하기 힘들다). 산 자체의 볼거리보다는 중원산이 품고 있는 중원계곡과 용계계곡으로 인해 유명해진 산이다. 기암(奇巖)이 늘어선 계곡에는 중원폭포 등 수많은 폭포(瀑布)와 소(沼), 담(潭)이 널려 있기 때문에 여름철이면 수많은 피서객(避暑客)들이 찾아들고 있다. 거기다 경춘선 전철(電鐵) 개통으로 접근성까지 좋아진 후부터는 가족(家族)산행지로 부쩍 인기가 높아졌다. 산행과 물놀이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중원산주차장(용문면 중원리)

중부고속도로 하남 I.C를 빠져나와 45번 국도(國道 : 하남방향)를 이용하여 팔당대교(大橋)를 건넌 후, 6번 국도(횡성방향)를 따라 달리면 양평읍을 거쳐 용문면에 이르게 된다. 용문면 마룡교차로(交叉路 : 용문면 마룡리)에서 좌회전하여 341번 지방도(地方道)를 따라 달리다가, 중원천을 건너기 직전에 왼편 중원산로(路)로 접어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이 시작되는 중원산 주차장에 닿게 된다.

 

 

 

 

주차장에서 중원계곡방향으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 왼편 중원폭포 방향으로 100m쯤 진행하다 ‘하얀집 펜션’ 앞에서 왼편 산길로 접어든다. 비록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으나 산악회 리본들이 많이 걸려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길은 처음에는 경사(傾斜)가 가파르지도, 그렇다고 완만(緩慢)하지도 않게 이어진다. 주위는 온통 소나무 숲, 목재용(木材用)으로 쓸 만한 나무가 하나도 없이, 모두가 구불구불한 것이 순수한 토종 소나무인가 보다. 등산로 주변은 소나무 숲 외에도, 울창한 잣나무 숲이 자주 눈에 띈다. 이곳은 잣나무로 유명한 가평의 옆 동네인 것이다. 산길은 수북이 쌓인 솔가리로 인해 폭신폭신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어지는 솔숲을 따라 얼마간 걷다보면, 잣나무 숲 아래에서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다른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이정표 : 중원산1.99km/ 주차장0.52km)

 

 

 

삼거리를 지나면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르막이 끝나면 산길은 잠깐 동안 완만(緩慢)하게 변했다가, 또다시 산길은 가파르게 변해버린다. 산길은 그렇게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등산로 주변의 숲은 참나무들이 숫자를 늘려가더니 어느새 소나무보다 참나무들의 숫자가 더 많아져 버렸다. 산이 온통 짙은 운무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 외에는 볼 것이 없는 단조로운 산행이 되어버렸다.

 

 

 

비가 오락가락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일부러라도 맞추려는 듯이 숲은 온통 안개로 가득 차 있다.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이 나뭇잎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일행들의 배낭은 어느새 레인커버(rain cover)로 씌워져 있지만, 난 고집스럽게도 커버를 씌우지 않은 채로 산행을 계속한다. ‘운무(雲霧) 때문에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비(雨)만은 내리지 말아주소서!’ 비 때문에 사진촬영을 못하게 될까봐 안타까워하는 내 조바심을 감안하셨는지 산행을 끝마칠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산에 가득한 습기 때문인지 가는 길에 망태버섯의 고운 자태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중원산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이정표(里程標)를 만나게 된다. 이정표는 두 가지 형태(形態)인데, 같은 양평군에서 만들었지만 설치한 년도(年度)가 다른 탓인지 생김새가 각기 다르게 생겼다. 양평군에서 등산로 정비 등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痕迹)이 역력하지만, 이정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정표를 보고도 방향을 찾기가 힘들뿐더러, 적혀있는 거리도 들쑥날쑥 제 맘대로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산행을 시작해서 두 번째 만나게 되는 이정표(중원산1.44km/ 주차장1.06km)와 세 번째 이정표(중원산1.47km/ 주차장1.55km)이다. 두 번째 만난 이정표에서 한참을 더 걸었는데도 이정표 상의 거리는 더 멀어져 버린 것이다.

 

 

세 번째 이정표를 지나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두어 번 더 치고 오르면 짙게 낀 운무(雲霧)속에서 멋진 풍광(風光)이 선을 보인다. 옛날 神仙들이 살았다는 세외도원(世外桃園)이 이런 풍경(風景)이 아니었을까? 운무(雲霧)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풍경은 바위와 노송(老松)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그야말로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山水畵)이다. 그러나 하나 아쉬운 점은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신선경(神仙景)을 만들어내었던 운무가 이번에는 안타깝게도 조망(眺望)을 막고 있는 것이다

 

 

 

수십 길 바위절벽(絶壁) 위에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쪽의 신점리 방향으로 용트림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명품(名品)소나무이다. 아니 명품 중에서도 명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문득 용송(龍松)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다. 소나무의 생김새가 영락없이 용틀임을 연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괴산군에 있는 삼송리(청천面)에 가면 용송(龍松)이라고 불리는 왕소나무를 만나볼 수 있다. 그 소나무에 용송(龍松)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가, 나무줄기의 생김새가 마치 용(龍)이 꿈틀거리는 것과 같다고 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 중원산의 소나무도 용틀임의 자세를 보이고 있으니, 용송(龍松)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나무랄 일은 아닐 것이다.

 

 

 

용송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중원산 정상이다.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널따란 정상에 오르면 한쪽 귀퉁이에 세워진 커다란 정상석과 ‘중원산 정상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는 산행안내판이 등산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정상 주변에 나무들이 없기 때문에, 날씨가 좋은 날에는 용문산의 웅장한 산줄기가 시야(視野)에 가득하고, 도일봉이 손에 잡힐 듯 건너다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운무(雲霧)가 짙게 낀 오늘은 바로 앞의 봉우리까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상에는 이정표가 2개가 세워져 있는데, 한쪽 방향만 지시하고 있는 것이 다른 산에서 보아온 이정표와는 다른 점이다. 이정표 하나에 양방향을 표시했더라면, 2개를 세워야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이 지났다. 이정표 #1 : 중원리 등산로입구2.8km, 상현마을 등산로입구 2.9km), 이정표 #2 : 도일봉 6.63m, 싸리재 5.06Km, 중원리 등산로입구 3.49Km, 중원폭포 2.88Km, 신점리 조계골 4.23km

* 도교(道敎)에서 말하기를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일 년에 세 번(1월15일, 7월15일, 10월15일) 인간의 선악(善惡)을 살피는데, 이를 일컬어 삼원(三元)이라고 한다. 음력 1월15일(보름)을 상원(上元), 7월 보름은 중원(中元), 그리고 10월 보름은 하원(下元)이라고 부르는데, 이중 중원(中元)이 중원산(中元山)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근원(根源)이라는 설(說)이 있다. 옛날 인근 주민들이 중원에 해당되는 7월 보름날 이 산에 올라 산신령(山神靈)께 제(祭)를 올렸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원산 정상의 남서쪽 양사골에는 산신당(山神堂)을 비롯한 무속촌(巫俗村)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중원산 정상에서 싸리재로 가는 능선은 암릉으로,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이다. 암릉은 거대(巨大)하지도, 그렇다고 기괴(奇怪)하지도 않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바위와 소나무들이 멋진 앙상블(ensemble)을 펼쳐 보이는 능선은 걷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고 있다.

 

 

 

 

 

비록 바윗길이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조금만 위험하다싶으면 어김없이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쉬운 코스는 바위를 붙잡고 오르고, 그마저도 힘들다고 생각될 때에는 바위를 우회(迂廻)하면 된다. 능선을 걷다보면, 가끔 등산로 옆의 거대한 바위 위로 오를 수 있도록 매달아 놓은 로프가 보인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올라가 보는 것이 좋다. 오르는 바위마다 뛰어난 전망대(展望臺)이기 때문이다.

 

 

 

 

 

능선을 걷다보면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등산객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서로들 반갑게 인사말을 건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오가는 말은 ‘안녕하십니까?’와 ‘어디로 해서 오시는 겁니까?’의 단 두 마디뿐이다. 하긴 더 이상 무슨 얘기가 필요하겠는가. 오고가는 인사말이야 통과의례(通過儀禮)일 테고, 제일 궁금한 것은 앞으로 가야할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일 것이다. 그만큼 무더운 여름날의 산행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울퉁불퉁한 바위들로 가득한 능선길, 그렇다고 소름끼칠 듯이 위험하지도 않은 바윗길에서 약간의 스릴을 즐기다보면 등산로는 갑자기 고도(高度)를 뚝 떨어뜨려버린다. 가파른 암릉길을 로프에 의지해서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안부 사거리이다(이정표 : 신점리 조계골 3.5km/ 중원산 0.73km, 상현마을 등산로입구 3.53km/ 중원폭포 2.15m, 중원산등산로입구 2.76km/ 도일봉 5.96km, 싸리재 4.39km). 이곳 사거리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용문산 입구에 있는 신점리로 가게 되기 때문에, 중원폭포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중원계곡으로 내려서는 하산 길은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 거기다가 너덜길도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내려서기가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등산로 주변은 참나무 일색(一色), 비록 오래 묵지 않은 싱싱한 나무들이지만 하늘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우거져 있다. 싱싱한 참나무들은 여인들의 목걸이처럼 나뭇가지에 늘어져 있는 굵고 오래 묵은 다래넝쿨들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다.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넝쿨들을 훑어보지만 다래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10년쯤 전에 이곳에 왔을 때에는 배낭이 무거울 정도로 많이 땄었는데.... 하긴 한적(閑寂)함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인 유원지(遊園地)에서, 천연(天然)의 과일을 기대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을 것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30분 정도 내려서면 이정표(정상2.0km/ 중원폭포2.85km) 하나가 보이고, 이내 복원(復元)해 놓은 ‘숯 가마터’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숯을 구웠다고 한다(안내문). 중원산을 오르다보면 정상어림의 용송을 지나면서부터는 소나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대신 참나무들이 온통 산을 점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숯은 참나무로 구워낸 것을 상품(上品)으로 치는데, 참나무가 울창한 중원산에 숯가마가 있었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원산에서는 오래 묵은 아름드리 참나무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안부 갈림길에서 50분 남짓 내려서면 중원계곡과 만나면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이정표 : 중원산 8.495km, 싸리재 3.375Km/ 싸리봉 4.015Km/ 도일봉3.41km). 이곳에서 왼편은 싸리재나 도일봉으로 가게되고, 하산지점인 상현마을로 가려면 계곡을 따라 오른편으로 내려가야 한다. 암벽(巖壁)을 양옆에 끼고 이이지는 중원폭포 부근의 계곡과는 달리, 상류(上流)인 이곳은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냇가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계곡을 흐르는 물은 다른 계곡에 비해 양(量)도 많을 뿐더러, 거기다가 바닥에 깔린 돌 사이를 헤엄치고 다니는 송사리가 보일 정도로 수정처럼 투명하기까지 하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본다. 맑고 시원한 물의 유혹에 옷 벗을 시간까지도 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도일봉 갈림길에서 계곡을 따라 5분 정도 걷다보면 우렁찬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무테크로된 전망대 아래에서 3단(段)으로 이루어진 중원폭포를 만나게 된다. 비록 폭포의 높이는 10m도 채 안되지만, 기암절벽(奇巖絶壁)을 병풍(屛風)처럼 두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멋진 경관(景觀)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느 글에선가 중원폭포의 물줄기를 일컬어 ‘수줍은 처녀의 댕기 같다’고 표현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맞는 표현일 것이다. 계곡의 상류에 있는 폭포(瀑布 : 치마)를 보고 ‘여인의 치마’를 연상해 내었다면, 중원폭포의 물줄기도 여인의 모양새에서 찾는 것이 당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폭포의 물줄기 아래에는 넓고 깊은 못이 웅크리고 있다.

* 중원폭포는 비록 3단 폭포지만, 거의 누워 있는 형상이라서 물의 기세(氣勢)보다는 오히려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암벽(巖壁)이 더 인상적이다. 또 폭포의 물줄기 아래의 용소(龍沼)는 상당히 넓고 깊어서 물놀이를 하기에 제격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어른이고 아이이고 할 것 없이 서로 멋진 다이빙을 선보이느라 정신들이 없다. 마침 멋지게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멋진 폼으로 보아 다이빙 마니아(mania)가 아닌가 싶다.

 

 

 

 

물놀이를 하다가 잘못해서 물을 먹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꺼림칙하게 여기지만, 중원계곡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중원계곡의 물은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계곡이라고 하면 얼핏 사찰(寺刹)이나 기도원, 그리고 별장 등이 연상될 정도로 계곡의 곳곳에 갖가지 시설물(施設物)들이 널려있다. 그러나 이곳 중원계곡에는 그런 시설물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맑은 물과 푸른 숲만이 가득하다. 산자락을 뒤덮은 울창한 수림(樹林)과 기암괴석(奇巖怪石)을 에돌아 흐르는 옥수(玉水)만이 계곡에 가득할 따름이다.

 

 

 

산행날머리는 상현리 주차장

중원폭포에서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던 상현리 주차장까지는 30분 조금 넘게 더 걸어야 한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호젓한 등산로는 10분정도로 끝을 맺고, 나머지 구간은 수많은 펜션과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흡사 어느 유명한 관광지의 집단시설지구(集團施設地區)를 방불케 하고 있다. 귀경시간이 조금 여유롭다면 근처 식당에 들러 촌닭백숙을 먹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닭들을 얼마나 놓아 먹였는지, 이빨이 아플 정도로 육질(肉質)이 단단하다. 우리가 어릴 때 먹던 촌닭의 육질이 바로 이렇게 질겼었다. 제사(祭祀) 때나 맛볼 수 있던 촌닭의 맛을 떠올리다보면 난 어느새 고향마을에 가 있다. 그리고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어머니는 안채 마루에 앉아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다. 아마 나를 위해 칼국수를 만들려나 보다.

* 중원폭포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다 보면 ‘솔수펑이 펜션’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간판이 보인다. 요즘에 솔수펑이라는 낱말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솔숲이 있는 곳’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이지만 우리 곁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전이기 때문이다. 시설도 깔끔하게 현대식으로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다니 한번쯤 이용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솔수펑이라는 낱말 하나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대가는 충분할 테니까.

 

 

 

 

소리산(小理山, 480m)

 

산행일 : ‘12. 8. 4()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과 홍천군 서면의 경계

산행코스 : 석산교소향산장고개 등산로입구피난봉소리산445출세봉수리바위소리산 소금강(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소리산은 그다지 크거나 높은 산은 아니지만, 깎아지른 바위절벽과 기암괴석(奇巖怪石)이 특징인 산이다.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일컬어질 만큼 빼어난 경관에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까지 끼고 있어서 여름철이면 발붙일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빈다. 산행과 물놀이를 함께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산행시간이 짧은 게 흠이다.

 

 

산행들머리는 석산교

양평에서 홍천으로 넘어가는 6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단월면 소재지에서 좌회전, 팔봉산(홍천군 서면)방향의 70번 지방도를 옮긴 후, 이어서 가평군 설악면으로 이어지는 494번 지방도로로 들어서면 얼마 안가서 산행들머리인 석산교()에 이르게 된다.

 

 

 

 

 

494번 지방도(地方道) 상의 석산교() 근처에서 오른편 돌고개마을 입구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승용차나 간신히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비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100m쯤 들어가면 오른편 언덕위에 테라스(terrace)까지 갖춘 타워(elevation tower)형태의 건물이 보인다. 아까 들머리에서 보았던 소향산장인가 보다.(이정표 : 소리산 정상 1.6Km, 소금강 입구 3.4Km)

 

 

 

소향산장을 지나 산장을 지나자마자 만나게 되는 갈림길에서 소리산 정상으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왼편은 소리산 참숯 굽는 마을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고향 동네 뒤안길을 닮은 임도(林道)는 구불구불 휘어지면서 길게 이어진다. 길가에 보이는 묵밭은 온통 개망초와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났고, 산비탈에 널린 칡넝쿨들은 넝쿨마다 보라색 꽃술을 매달고 있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20분쯤 들어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 길찾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왼편의 논골재로 넘어가는 임도가 소리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임도보다 길이 잘 닦여있기 때문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잠깐 동안 걸으면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고갯마루에는 이정표(소리산 정상 0.54Km/ 소금강 입구 2.36Km/ 돌고개마을 입구 1.04Km)와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고갯마루에서 왼편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시작된다. 산길의 대부분은 경사(傾斜)가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데, 약간만 가파르다 싶으면 어김없이 로프를 매달아 놓았다. 등산로 주변은 신갈나무와 떡갈나무 그리고 철쭉나무가 대부분이다.

 

 

 

 

 

 

참나무 숲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거대한 암벽(巖壁)이 앞을 가로막는다. 드디어 소리산의 암릉이 시작되는 것이다. 암벽을 우회(迂廻)하여 위로 오르면, 산길은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비록 쉽지 않은 가파른 오름길이지만, 주변을 살피는 일을 빼먹어서는 안 되는 구간이다. 가끔 오른편 나무사이에 얼핏 내다보이는 바위가 빼어난 전망대(展望臺)이기 때문이다.

 

 

 

 

시원스레 시야(視野(가 열리는 바위위에서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다가 다시 길을 나서면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된다. 오르는 사람들을 위해 로프가 메어져 있는데, 정상 가까이에 있는 로프는 오른편에 보이는 바위벼랑과의 경계선(境界線)까지 겸하고 있다. 바위벼랑을 장식하고 있는 고사목(枯死木) 너머로 석산리 풍경(風景)이 선명하게 펼쳐지고 있다.

 

 

 

소리산 정상은 대여섯 평 남짓한 흙으로 이루어진 분지(盆地), 커다란 바위가 하나가 누군가 일부러 옮겨 놓기라고 한 듯이 놓여있고, 그 옆에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정상에서는 사방으로 조망(眺望)이 트인다. 특히 저 멀리로 보이는 문례마을의 조망이 압권(壓卷)이다. 마을은 아늑하니 정겨움이 묻어나오고, 주변의 다랭이 논들이 만들어내는 곡선(曲線)이 무척 아름답다. 소리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는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정상의 이정표 : 고로쇠마을 930m/ 소금강 1,900m)

 

 

 

 

정상에서 소금강 입구로 하산하려면 올라왔던 길의 반대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하산길 오른편은 수십 길의 바위 절벽(絶壁)으로 이루어져 있다. 곳곳에 위험표시판이 세워져 있을 정도로 위험한 구간이지만, 절벽에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는다면 괜찮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정상에서 수리바위까지의 구간이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이다. 오른편 절벽을 만들어내고 있는 바위들의 기기묘묘(奇奇妙妙)한 생김새가 볼만할뿐더러, 나이든 노송(老松)들과 어우러지는 풍경은 잘 그린 한 폭의 동양화(東洋畵)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소리산의 암릉은 아담하면서도 섬세한 풍경(風景)이 보는 사람들의 넋을 잃게 만든다. 절벽(絶壁) 사이사이에는 사철 푸른 소나무가 서 있어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만든다. 설악산의 빼어난 자태(姿態)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정상에서 20분 정도 내려오면 이정표에 바람굴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보인다. 길을 벗어나 왼쪽 산비탈에 보이는 바위무더기 근처에 있는 모양이나, 구태여 찾아볼 필요는 없다. 나보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바람이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전에 보은에 있는 구병산에 올랐을 때 제대로 된 풍혈(風穴)을 보았기 때문에 시시껄렁한 바람굴 가지고는 내 흥미(興味)를 자극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바람굴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출세봉이라고 쓰인 이정표(소리봉 정상 834m/ 소금강)가 보인다. ‘이 봉우리에 오르면 출세(出世)를 하게 된다는 의미일까?’ 출세봉은 결코 봉우리라고 부를 수 없는 능선상의 한 지점일 따름이다.

 

 

 

 

출세봉에서 10분 조금 못되게 더 내려오면 소리산에서 가장 뛰어난 풍광(風光)을 자랑한다는 수리바위이다(이정표 : 소리산 정상1,150m/ 소금강). 소리산은 이 산의 암벽(巖壁)에 매가 살았다고 해서, 수리산이라고 불리다가 소리산으로 음()이 변했다고 한다. 그만큼 매와 인연이 깊은 산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수리바위는 산 아래에서 이 바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그 생김새가 매의 부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소리산 소금강유원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전망대(展望臺)이다.

 

 

 

 

 

수리바위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서서면 능선안부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돌고개마을 2.68Km/ 소금강입구 0.72Km/ 소리산 정상 1.09Km). 왼편은 돌고개 마을로 이어지니, 소금강유원지로 내려가려면 오른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안부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짙은 숲속에 웅크리고 있는 계곡을 만나게 된다. 물기가 별로 없는 계곡을 따라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자그만 폭포(瀑布)가 선을 보이고 있다. 폭포라고 부리기에는 많이 왜소(矮小)하지만, 워낙 폭포가 없는 계곡이다 보니, 저런 규모도 폭포로 대접을 하지 않을 수 없나보다.

 

 

 

 

 

물이 별로 흐르지 않는 계곡을 따라 10분 조금 넘게 걸어 내려오면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스러워지면서 제법 물줄기가 굵은 계곡과 만나게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곳에서 이정표(정상 1,793m/ 선녀탕 50m)에 속아 왼편으로 들어가 보지만, 금방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그리고 하나같이 에이 속았다라는 말을 내뱉는다. 선녀탕은 결코 소()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조금만 물 웅덩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선녀탕에서 소금강까지 이어지는 계곡은 천혜(天惠)의 피서지(避暑地)이다. 물은 깊지도, 그렇다고 얕지도 않다. 가장 깊은 곳이 어른의 허리어림 정도이니 물놀이하기에 딱 좋다. 거기에다 물이 너무 차지도 않으니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길지 않은 계곡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산행날머리는 소금강유원지(遊園地)

선녀탕 삼거리에서 소금강입구까지는 금방이다. 사람들로 넘치는 계곡이 끝나고 석산천의 징검다리를 건너면 산행이 종료되는 소금강유원지이다. 여름 한 철 장사라는 소금강유원지는 차량들과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도로 양편에 줄지어 늘어선 차량들로 인해, 지나다니는 차량들은 일방통행만 가능하고, 조그만 공간이라도 있을라치면 어김없이 텐트가 쳐져 있다. 장내 정리를 위해 경찰까지 파견할 정도이니 그 혼잡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에서 소금강유원지까지는 1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중미산(仲美山, 834m) - 삼태봉(三台峰, 684m) - 통방산(通方山, 650m)

 

산행일 : ‘12. 7. 28(토)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서종면의 경계

산행코스 : 서너치고개→중미산→절터고개→삼태봉→통방산→천안리(산행시간 : 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유명산과 서너치고개를 사이에 두고 솟아 있는 중미산은 그동안 유명산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으나, 중미산자연휴양림이 조성된 이후부터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서너치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할 경우 정상까지 오르는데 40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태봉, 또는 통방산까지 연결해서 산행을 즐기는 편이다. 입산에서 하산까지의 거리를 모두 합쳐도 10Km가 채 안되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서너치고개

양평에서 37번 국도를 타고 청평방향으로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중미산자연휴양림(自然休養林)으로 들어가는 길과 갈리는 중미산삼거리에 이를 수 있다. 이곳에서 구불구불한 산간도로를 따라 힘겹게 오르면 이내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오늘 산행이 시작되는 서너치고개이다. 서너치고개는 웬만한 도심(都心)의 식당가(食堂街)가 무색할 정도로 수많은 포장마차들이 도로의 양편에 늘어서 있다. 그만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 중의 하나인 유명산의 산행들머리가 이곳인데다가, 요즘에는 중미산을 찾는 사람들까지 부쩍 늘어났으니 응당 사람들로 붐빌 만도 하다.

* 서너치고개, 고갯마루에서 하늘을 보면 겨우 서너 치 정도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서너치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구전(口傳) 설화(說話) 외에도, 다른 전설(傳說) 하나가 더 전해져 내려온다. 오랜 옛날 신선(神仙)이 남한강에서 잡은 고기를 갖고 장락(설악면)으로 가기위해 이 고개를 넘고 있는데, 갑자기 물고기가 살아나서, 즉 선어(鮮魚)가 되어서 소구니산을 넘어 유명산 뒤로 산에 날아가 내렸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물고기가 내려앉은 산을 어비산(漁飛山), 그리고 이 고개는 물고기가 살아난 고개라고 해서 선어치(鮮魚峙)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산행은 고갯마루에서 양평 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위치한 ‘국도관리사무소 제설자재(除雪資材) 보관시설’ 건물의 왼편으로 난 산길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산길은 초입에서 잠깐 완만(緩慢)하다가 이내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해버린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15분 정도 치고 오르면, 지붕만 남아있는 낡은 건물을 만나게 된다. 지붕 하단(下端)의 생김새를 볼 때, 건물을 지을 때부터 지붕만 만들었고, 지붕아래에 참호(塹壕)를 파고 경계근무를 하던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 폐건물을 지나면서 산길은 잠깐 동안 완만하게 이어진다.

 

 

 

완만(緩慢)한 산길을 따라 10분 조금 못되게 걷다보면 또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이번 오르막길은 가파를 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에 바윗길까지 끼고 있는 구간이다. 로프까지 매달아 놓은 바윗길은 조금 힘들 따름이지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 바윗길이 끝나고 정상으로 향하는 흙길을 걷다보면 이해하기 힘든 이정표(정상 30m/ 하산 2.1Km/ 입산금지) 하나가 보인다. 서너치고개에서 정상까지의 거리가 800m로 알고 있는데, 하산 지점이 어디인지를 표시하지도 않은 채로, 밑도 끝도 없이 하산까지의 거리가 2.1Km라고 적어 놓은 것이다.

 

 

 

 

이정표에서 맞은편에 보이는 바위 봉우리가 중미산 정상이다. ‘지방자치제(地方自治制) 때문에 예산 낭비(浪費)가 많은 것 같네요’ 집사람의 지적한대로 정상에는 정상석이 두 개나 세워져 있다. 검은 오석(烏石)으로 된 정상석은 양평군에서 세운 것이고, 가평군에서도 막대기처럼 길쭉한 사각의 정상석을 세워 놓았다. 예산 낭비는 정상석 뿐만이 아니다. 산길을 걷다가 만나게 되는 이정표까지도 지자체마다 제각기 따로 만들어 놓았다. 거기다 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은 이정표에 적혀있는 거리표시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인접(隣接)지자체’들끼리는 사안(事案)별로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사소한 것들부터 협조를 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미산 정상에는 정상석 외에도 삼각점과 이정표(선어치고개 800m/ 삼태봉 4.7Km)가 세워져 있다. 바위 봉우리인지라 날씨만 맑으면 조망(眺望)이 뛰어나겠지만, 짙은 운무(雲霧)로 둘러싸인 산하(山河)는 가까이에 있는 유명산마저도 시야(視野)에 들어오지 않는다. 서너치고개에서 정상까지는 40분이면 오를 수 있다.

 

 

 

중미산에서 삼태봉으로 가려면 올라왔던 길의 반대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이정표가 방향을 표시하고 있을뿐더러 산길이 뚜렷하기 때문에 길을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바위 사면(斜面)길을 따라 5분이 조금 못되게 진행하면 가일리 갈림길(이정표 : 가일리 1.8Km/ 절터고개 1.6Km/ 정상 0.2Km)을 지나치게 되고, 이어지는 평탄한 산길은 철쭉나무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완만(緩慢)한 경사(傾斜)의 내리막길을 20분 가까이 내려서면 제법 험한 바윗길이 나타난다. 이 바윗길에는 안전시설이 전혀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우회(迂廻)하는 게 바람직하다. 바윗길을 우회하다보면 곳곳에서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기형(奇形)의 나무들을 만나게 된다. 척박한 곳에서 고난(苦難)한 삶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으면 저렇게 몸을 비비꼬고 있을까? 나무들로부터 삶의 지혜를 배우면서 바위지대를 우회하여 길게 내려서면 절터고개에 이르게 된다. 절터고개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고개라고 하면 능선을 가로지르는 지점을 말하는데, 이곳은 삼거리(이정표 : 삼태봉 2.9Km/ 방일리 전위골 2.4Km/ 중미산 정상 1.8Km)인 것이다.

 

 

 

 

 

절터고개의 미스터리(mystery)는 금방 해소(解消)가 된다. 절터고개를 지나 100m가 채 안 되는 지점에서 다시 삼거리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삼거리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자칫하면 길을 잃을 염려가 있으니 주의(注意)를 요한다. 왼편은 명달리로 내려가는 하산길이고, 삼태봉으로 가려면 오른편 길로 가야하는데, 왼편길이 훨씬 더 또렷하게 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주의를 소홀히 한 덕분에 명달리로 잘못 내려서게 되었고, 무지무지하게 가파른 내리막길을 200m이상이나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우(愚)를 범하고야 말았다.

 

 

 

명달리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서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삼태봉과 중미산의 중간 지점(이정표 : 삼태봉 2.3Km/ 중미산 2.4Km)에서 ‘리츠칼튼 컨트리클럽’이라는 골프장을 만나게 된다. 산길은 골프장을 오른편에 끼고 꽤 길게 이어진다.

 

 

 

골프장을 지나면 왼편에 잣나무 조림지(造林地)가 나타난다. 이곳이 가평인데도 잣나무가 통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었는데, 드디어 잣나무 숲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잣나무 숲은 금방 끝나버렸다가 하산지점인 천안리 부근에서 다시 나타나게 된다. 잣나무 숲이 끝나면서 능선의 왼편 사면(斜面)이 훤하게 트인다. 간벌(間伐)을 한 탓이다. 덕분에 왼편 숲 사이로 삼태봉이 얼핏 내다보이는데, 제법 날카롭게 서 있는 것이 겁부터 나게 만들고 있다.

 

 

 

간벌 덕분으로 트인 명달리쪽 조망(眺望)을 즐기면서 걷다보면 싸리나무 숲이 마중 나온다. 경사(傾斜)까지 그리 가파르지 않으니 구태여 길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길가에 핀 야생화를 구경하면서 느긋이 진행하다보면 주변은 다시 참나무 일색으로 변해버린다.

 

 

 

 

참나무 숲을 만나면서 길은 서서히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산길은 바위지대를 짧게 통과시킨 후에 삼거리(이정표 : 삼태봉 정상 0.1Km/ 통방산 1.15Km, 맹달리(정곡사) 3.84Km/ 중미산 4.79Km)에 올려놓는다. 이곳에서 통방산으로 가려면 왼편 100m쯤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삼태봉에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 내려와, 이곳 삼거리에서 오른편 길로 진행해야 한다.

 

 

 

봉우리의 생김새가 '농기구인 삼태기를 꼭 닮았다‘는 삼태봉 정상도 중미산과 마찬가지로 별로 넓지 않은 바위봉우리이다. 거대한 고사목(枯死木) 한 그루가 버티고 있는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정상표지석의 빗돌은 사라져버리고 받침대만이 을씨년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정상에 서면 통방산과 명달리 쪽의 조망(眺望)이 툭 트여있지만, 오늘따라 운무(雲霧)가 자욱한 탓에 어렴풋이 내다보일 따름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정상의 이정표 : 통방산 1.4Km/ 명달리 등산로 입구 2.78Km/ 명달숲속학교 1.1Km)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오른편 통방산 가는 길로 접어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바위 위를 통과한다고 해도 그다지 위험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냥 오른쪽으로 우회(迂廻)해 버린다. 바위 위로 올라선다고 해도 특별한 재미나 볼거리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삼거리를 출발한지 10분이 채 안되어서 시야(視野)가 툭 트이면서 널찍한 바위 위로 올라서게 된다. 통방산과 명달리 방향이 잘 조망되는 뛰어난 전망대(展望臺)이다.(이정표 : 중미산 4.79Km/ 통방산 1.0Km)

 

 

 

 

전망바위에서부터 가파른 암릉길이 시작된다. 다행히 곳곳에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았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려서기가 만만치 않은 코스이다. ‘쫒으려고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조심조심 걸으세요.’ 조심스럽게 바윗길을 내려서는데 전방(前方)이 소란스럽다. 산길 근처에 말벌이 있었던 모양이고, 위협을 느낀 말벌들이 일행을 공격한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이 벌에 쏘였는데, 눈가를 쏘인 사람은 벌써부터 마비현상이 오는 모양이다. 그때 난 진정한 현자(賢者)를 보았다. 벌에 쏘인 곳을 귀찮은 내색 없이 열심히 빨아주고 있는 사람을 본 것이다. 벌에 쏘인 곳이 등이라면 몰라도 눈 근처까지 빨아주는, 보통사람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광경(光景)이었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중간에서 이정표(통방산 0.5Km/ 삼태봉 0.5Km) 하나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나타나는 평탄한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더 진행하면 바위지대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안전로프를 붙잡고 암반(巖盤)위로 올라서서 5분 정도 더 걸으면 천안리 갈림길(이정표 : 통방산 0.1Km/ 천안리 2.5Km/ 삼태봉 0.9Km)을 만나게 된다. 통방산에서 천안리로 내려가는 코스는 두 가지가 있다. 정상에서 이곳으로 되돌아와 오른편으로 내려가는 방법과, 통방산을 통과한 후에 만나게 되는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는 방법이다.

 

 

 

 

 

통방산의 정상은 서너 평쯤 되는 흙으로 된 분지(盆地), 한 가운데에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양수-408, 1988-복구), 그리고 서툴게 쌓아올린 돌탑(石塔)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잡목에 둘러싸인 정상은 조망(眺望)을 허용하지 않는다. 통방산 정상은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하는 대신에, 행정낭비의 극치를 적나라(赤裸裸)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쪽 귀퉁이에 세워진 이정표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만났던 이정표들은 양평군과 가평군에서 제각각 설치해 놓았는데, 이곳의 이정표는 누군가가 두 개를 한꺼번에 합쳐 놓았다. 그런데 같은 코스의 거리가 서로 다르게 표시되어 있는 것이다. 삼태봉에서 통방산 정상까지는 30분이 조금 더 걸린다.

 

 

 

 

통방산 정상에서 북릉을 따라 10분쯤 진행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그런데 이정표가 조금 이상하다. 천안리로 내려가는 길과 나뉘는 삼거리인데도, 이정표(명달리 정곡사 1.88Km/ 통방산 0.7Km)에는 천안리 표시가 눈에 띄지 않는다. 양평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인데, 천안리가 다른 지자체(가평군)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서 일부러(?) 빼먹은 것이다. 전형적인 지역 이기주의(利己主義)에 배알이 뒤틀려온다. 이럴 때는 욕설(辱說)이라도 내 뱉어야 하지 않을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누군가가 매직펜(magic pen)으로 천안리 진행방향을 표시해 놓았다.

 

 

 

천안리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은 한마디로 곱다. 순수한 황톳길에다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기 때문에 내려서는데 조금도 부담이 없다. 길가의 나무들은 처음에는 온통 참나무 일색이다. 그러다가 천안리를 1.2Km 남겨놓은 지점(이정표 : 천안리 1.2Km/ 통방산 0.7Km)을 지나면서 주변에 잣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천안리에 가까워지면서(이정표 : 천안리 0.7Km/ 통방산 1.2Km)부터는 온통 잣나무 숲으로 변해 버린다. 천안리가 가평군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잣나무가 너무 많아서인지 아니면 지반(地盤)이 너무 약해서인지는 몰라도, 숲에는 뿌리째 뽑혀 넘어져있는 잣나무들이 꽤나 많이 널려 있다.

 

 

산행날머리는 천안리

잣나무 숲길을 걸을 때 가장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은 발아래가 너무 포근하다는 것이다. 황톳길 위에 부드러운 솔가리가 수북이 쌓여있으니 폭신폭신하기가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다. 거기다 코끝을 스치며 흐르는 솔향, 저 내음 속에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그득할 것이다.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걷기만 해도 건강에 이로운데, 보너스로 피톤치드까지 듬뿍 챙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솔향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새 잣나무 숲이 끝나면서 임도에 내려서게 되게 된다. 임도를 따라 300m만 걸어 나가면 천안리이다. 임도(林道)와 나란히 계곡(벽계천)이 이어지고 있으니 마음 내키는 곳에 내려가 땀을 씻고 산행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으면 될 일이다. 통방산에서 천안리까지 내려오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하다.

 

 

매봉(929m) - 칼봉산(900m)

 

산행일 : ‘12. 7. 21(토)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하면과 가평읍의 경계

산행코스 : 마일리 국수당→우정고개→매봉→회목고개→칼봉산→용추계곡→용추계곡 주차장(산행시간 : 6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고원산악회

 

특징 : 매봉과 칼봉산은 바로 곁에 있는 연인산의 유명세(有名稅)에 가려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덕분에 산 전체가 온통 원시(原始)의 상태로 유지되고 있어, 조용히 산행을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산이다. 다만 들머리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경반계곡과 용추계곡의 진입거리가 너무 길다는 불편함이 있으니 참고해야 할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마일리 국수당

46번 경춘국도(京春國道/ 춘천방향)를 타고가다 하천 I.C(청평면 하천리)에서 37번 국도로 옮긴 후, 조종천을 끼고 포천방향으로 달리다보면 가평군 상면소재지(面所在地)인 현리에 이르게 된다. 현리에서 마일천을 끼고 이어지는 군도(郡道 : 연인산로)를 따라 들어가면 연인산수련원을 거쳐 산행들머리인 마일리 국수당에 이르게 된다.

* 국수당, 국사당(國師堂)이라고도 불리며 마을을 수호하는 동신(洞神)을 모시는 마을의 제당(祭堂)이다. 대체로 마을의 뒤쪽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데, 때로는 무당(巫堂)들의 기도처로 이용되기도 한다. 옛날 이곳에 국가의 안녕(安寧)을 비는 제사를 올리던 성황당(城隍堂_이 있었다고 해서 국수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마일리 국수당(國師堂)의 주차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등산안내도이다. 그다지 넓지 않은 주차장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주차장에서 자동차가 들어왔던 도로의 맞은편에 보이는 임도(林道)를 따라 들어서며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이정표(우정능선을 이용해 연인산 정상까지 5.9km/ 연인능선을 이용해 연인산 정상까지 5,0km/ 현리 7.8km)가 세워져 있으니 길을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국수당을 출발해서 10분 조금 넘게 걸으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 길은 사유지(私有地)로 들어가는 진입로인 듯 철제문(鐵製門)으로 굳게 닫혀있는데, 오른편도 역시 차단기(遮斷機)로 길을 막았다. 다만 ‘차량 진입금지’라고 쓰인 팻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다행이도 오른편 길은 사람의 통행이 가능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차단기를 지나면서 길은 계곡으로 접어든다. 계곡을 따라 잠시 오르면 임도(林道)를 벗어나 오른편 숲으로 들어서야만 한다. ‘산악차량 통행과 호우로 자연경관이 훼손되어 생태계 복원을 위하여 폐쇄, 우측 등산로 이용’이라는 안내판이 임도의 통행(通行)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등산로 곁에 보이는 계곡에는 크고 작은 폭포(瀑布)들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엊그제까지 줄기차게 내렸던 비가 만들어 놓은 작품(作品)일 것이다.

 

 

 

생태계 복원을 위해 임시로 만든 산길은 원시(原始)의 숲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직까지 사람의 손때가 덜 탔기 때문일 것이다. 30분 가까이 숲길을 오르면 아까 헤어졌던 임도와 다시 만나게 되고, 임도를 따라 다시 10분 가까이 오르면 해발 622m인 우정고개에 올라서게 된다. 우정고개까지 올라오는 산길은 거칠지만 경사(傾斜)가 가파르지 않기 때문에 오르는데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은 편이다.

* 우정고개, 원래는 전패고개라고 불리던 가평읍 승안리와 북면 백둔리 사람들이 하면(下面) 마일리를 넘나들 때 이용하던 고갯마루이다. 전패라는 지명(地名)은 후고구려의 궁예가 패전(敗戰) 후 얼마동안 이곳에 군대(軍隊)를 주둔시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다가 1999년 가평군 지명위원회에서 전패라는 지명이 혐오스러운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전패봉을 우정봉으로 바꾸면서 이곳 전패고개도 우정고개로 바꾸었다고 한다.

 

 

 

 

우정고개에서 길은 네 갈래로 나뉜다. 마일리와 용추폭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임도이고, 연인산과 매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전형적인 산길이다.(이정표 : 매봉 2.2km/ 연인산의 우정능선 코스 4.3Km/ 용추휴양소 주차장 10.2Km, 연인산 연인능선코스 3.4Km/ 마일리(국수당) 1.6Km). 고갯마루에서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어른의 키만큼이나 웃자란 억새들이 길손을 맞이한다. 가을철에 이곳을 찾는 다면 하얀 억새꽃들이 장관(壯觀)을 이룰 것 같다. 매봉으로 향하는 산길은 방화선을 따라 이어진다. 방화선을 가득 메우고 있는 억새를 헤치며 20분 남짓 오르면 헬기장이 마중 나온다.

 

 

 

 

 

헬기장을 지나 방화선을 따라 이어지는 능선은 이름 없는 작은 봉우리를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짧게 내려섰다가 길고 가파르게 오르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헬기장을 출발해서 20분 정도를 오르내리다보면 국수당에서 우정고개를 거치지 않고 매봉산으로 곧장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이정표 : 우정고개 1.5Km/ 매봉 0.8Km/ 국수당 1.5Km).

 

 

 

 

국수당 갈림길에서 또 다시 방화선 길을 따라 10분 남짓 오르내리면 자그마한 봉우리 위에서 또 다른 이정표(우정고개 1.9Km/ 동막골 2.7Km/ 매봉 0.4Km) 하나를 만나게 된다. 마일리의 동막골에서 곧장 매봉으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이다.

 

 

 

동막골삼거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더욱 가팔라진다. 고도(高度)가 높아지면서 크기를 줄여가던 억새는 어느새 무릎 아래까지 내려가 있어서 걷기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동막골 삼거리에서 10분 정도를 힘들게 치고 오르면 헬기장 위로 올라서게 되는데, 맞은편의 짙게 우거진 참나무 숲 위로 무인산불감시탑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곳이 매봉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공자가 지은 논어(論語)의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말이다. 이를 확대해 보면 어진 사람은 몸가짐이 진중하고 심덕(心德)이 두터워, 그 마음이 산과 비슷하므로 자연히 산을 좋아한다고 해석(解釋)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이 이를 증명(證明)하는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산에서는 저렇게 예의바르지 않고는 결코 무사하게 산행을 마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매봉의 정상은 열 평도 채 못 되는 좁다란 분지(盆地), 그나마 절반은 무인산불감시탑에게 빼앗겨 버렸다. 말뚝 모양의 볼품없는 정상표지석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상은 잡목(雜木)에 둘러싸여 있어 조망(眺望)을 일절 허락하지 않는다. 정상의 이정표((깃대봉 1.9Km/ 회목고개 1.3Km, 칼봉산 22Km/ 우정고개 2.3km)

 

 

매봉에서 회목고개로 진행하려면 방화선(防火線)을 벗어나 왼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아마도 방화선은 깃대봉을 거쳐 대금산 방향으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경사(傾斜)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다보면 다양한 숲의 변화를 느껴볼 수 있다. 참나무 일색이던 산길이 철쭉군락으로 변하더니만, 어느새 일본이깔나무(落葉松)으로 변해있다. 이곳이 철쭉으로 유명한 연인산 권역(圈域)이니 철쭉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가평군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잣나무는 한그루도 보이지 않고 난데없는 낙엽송 군락이 펼쳐지는 것은 의외이다.

 

 

 

‘철쭉나무가 너무 크네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이곳의 철쭉나무는 어른의 키를 훨씬 넘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좌우(左右)는 물론이고 머리 위까지 온통 철쭉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철쭉나무들이 밀집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꽃의 화사함은 다른 곳에 비해 뒤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나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꽃이 만개(滿開)하더라도 나뭇가지에 듬성듬성 붙어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봉을 출발한지 30분이 조금 못되면 회목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회목고개는 하면(下面) 경반리와 가평읍 승안리 사람들이 넘나들던 오지(奧地)의 고갯마루였으나, 현재는 임도(林道)가 잘 닦여 있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우정고개를 거쳐 국수당에 이르게 되며, 오른편은 경반리로 내려가는 길이다.(회목고개 이정표 : 칼봉 1.0Km/ 매봉 1.4Km/ 국수당 6.6Km/ 경반리 경반사)

* 회목고개의 경반리 방향에 거대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늠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고, 그 곁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느티나무 앞에 네모로 각진 반반한 바위가 놓여있는 것을 보면, 바위를 제단(祭壇)으로 삼아 느티나무에 제사(祭祀)를 지내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단 옆에 세워진 ‘국선왕’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여기서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경반사라는 사찰(寺刹)에서 ‘국선왕’이라는 신(神)을 모시는 제단인 것이다.

 

 

회목고개로 내려왔던 길의 반대방향 능선으로 오르면서 칼봉을 향한 산행이 이어진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자그마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기묘한 바위가 나타난다. 널찍한 몸통에 머리를 내민 모습이 영락없는 거북이의 형상이다.

 

 

 

거북이를 닮은 바위를 지나면서 길은 더욱 가팔라지고, 바위의 숫자도 점점 많아진다. 칼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이곳 외에도 전국(全國) 여러 곳에 있으며, 하나 같이 날카롭게 치솟은 봉우리의 형상(形象)을 하고 있다. 날카롭게 치솟다보니 대부분의 칼봉들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데, 비록 다른 곳에 비해 뒤지기는 하지만 이곳도 칼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바위가 많은 것이다.

 

 

 

척박(瘠薄)한 바위 위에서 지난(至難)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무들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회목고개를 출발한지 40분 만에 칼봉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의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한쪽 귀퉁이에 이정표(용추휴양소 6.6Km/ 매봉 2.4Km)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다른 볼거리는 없다. 주변이 잡목(雜木)들이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조망(眺望) 또한 일절 없다.

 

 

 

이정표에는 능선을 따라 진행하도록 표시가 되어있지만, 조금 더 빨리 용추계곡으로 내려가고 싶을 경우에는 왼편의 지능선으로 내려서면 된다. 다만 이정표에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주의 깊게 진입로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하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 등산객들이 잘 이용하지 않는 코스인지 원시(原始)의 숲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길가에는 수령(樹齡)이 오래된 참나무들이 그득하고, 더 이상 삶을 지탱해내지 못한 나무들이 마치 잘 다듬은 조각품(彫刻品)인양 고상한 자세로 널려있다.

 

 

 

 

한여름 무더위에 지쳐, 이제 그만 걷고 물속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어질 즈음에, 저만큼 아래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계곡 옆의 임도(林道)에 내려서게 된다(정상에서 20분 정도 소요). 임도는 왼편에 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엊그제까지 쏟아졌던 폭우(暴雨)로 인해 물이 불어난 계곡은 깊고 거세게 흐르고 있다. 무작정 물속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이른데도 무심한 임도는 계곡을 가로지르고 있다. 물속에 퐁당 빠지기는 이르니, 우선 물속에 발이라도 담가보라는 배려인가 보다.

* 용추계곡(龍湫溪谷), 연인산에서 시작해 칼봉과 노적봉 사이를 지나 가평읍 승안리의 용추폭포까지 이르는 약 10km의 청정 계곡이다. 용추폭포와 와룡추, 고실탄 등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 9곳이라고 해서 용추구곡(龍湫九谷)이라고도 불린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일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네 번이나 계속된다. 산행대장의 말을 빌리자면, 계곡을 건널 때는 등산화를 신은 채로 건너는 것이 옳다고 하지만, 다들 신발을 벗어들고 있다. 산에 대한 정보가 충분한 산행대장과는 달리 트레킹화를 준비해 온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거친 물살을 피해 계곡을 건너다보니 시간이 지체(遲滯)되는데다가, 등산화를 벗었다가 다시 신기를 반복(反復)하다보니 예상외로 시간이 많이 흘러버린다.

 

 

 

 

주어진 여섯 시간 안에 주차장에 도착하지 못할 것이 확실해지자 걷는 것 자체가 짜증스러워지더니, 아름답다고 소문난 용추계곡까지도 성에 차지 않는다. 가고 또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임도는 지겹기만 한데, 피서(避暑)철을 맞아 몰려든 차량들을 비켜가며 걷는 것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렇게도 아름답다는 용추계곡이 성에 차지 않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용추계곡 주차장

용추계곡에 내려서서 얼마간 걷다가 만난 첫 번째 이정표에 용추휴양소까지의 거리가 4.5Km로 적혀있다. 그러니까 용추계곡에 내려선 지점에서 용추휴양소까지는 대략 5Km정도 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5Km도 너무 먼데 우리가 타고온 버스는 1Km이상을 더 내려간 지점에 주차되어 있다. 피서(避暑)철에는 버스의 통행이 제한되기 때문이란다. 집사람의 걸음걸이가 절뚝거리기 시작한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계곡가로 난 임도(林道)만 2시간 가까이를 걸었으니 그녀의 다리에 무리가 온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다음부터는 시간 계산 잘 하세요!’ 날이 선 그녀의 지청구가 아니더라도, 당분간은 나도 5시간 이상 소요되는 산행은 삼갈 것이다. 지금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니까 말이다.

 

 

곡달산(鵠達山, 628m)

 

산행일 : ‘12. 7. 14(토)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산행코스 : 솔고개→547봉→정상→한우재(산행시간 : 2시간40분)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곡달산은 그리 높지 않을뿐더러, 딱히 내세울 만한 것도 없는 산이다. 당연히 벽계구곡(蘗溪九曲)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웃의 통방산의 명성(名聲)에 기대어 명목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덕분에 찾는 사람들이 드물어 원시(原始)의 숲이 잘 보존되고 있고, 희귀식물이 다수(多數) 자생(自生)하고 있다고 한다(경기도의 생태계 조사 결과).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듯, 인기 없는 산이 생태계를 지켜냈다고 볼 수 있다.

 

 

산행들머리는 37번 국도의 솔고개 쉼터

46번 경춘국도(京春國道/ 춘천방향)를 타고가다 청평면소재지(面所在地)로 들어가기 직전에 오른편 37번 국도(양평방향)로 접어들어 신청평대교(大橋)를 건너 설악면 방향으로 10km 조금 못되게 들어가면 산행이 시작되는 솔고개 마루에 이르게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우선 청평버스터미널까지 온 후, 유명산방향으로 가는 군내버스(32-26)나 청심국제병원으로 가는 광역버스(1330-5)를 이용하여 솔고개까지 가면 된다. 그러나 배차(配車) 간격이 길기 때문에 사전에 출발시간을 챙겨보는 것이 필수 일 것이다.

 

 

솔고개 삼거리에 내리면 먼저 나무테크로 만든 산뜻한 전망대(展望臺)와 설악면의 심벌(symbol)로 보이는 조형물(造形物 : ‘깨끗하고 살기 좋은 설악’이라고 적혀있다)이 눈에 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건너편 민가(民家) 두어 채가 전부인 전망대는 그냥 지나치는 것이 좋다. 호기심에 끌려 올라갔다가는 실망만 안고 내려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삼거리의 곡달산 방향의 코너에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고, 그 한쪽 귀퉁이를 산행안내도(案內圖)가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산행안내도는 곡달산의 높이가 630m이고, 이곳에서 정상까지의 거리가 3.1Km라는 것을 빼고는 산행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어설픈 지도(地圖)일 뿐이다.

 

 

 

 

주차장의 곡달산 쪽에 있는 식당(솔고개 한우전문점)의 뒤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 주변에 주막들이 꽤 여럿 보인다. 아마 솔고개를 산행기점으로 삼는 사람들이 꽤 되는 모양이다. 산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잣나무이다. 등산로 주변이 온통 잣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곡달산이 가평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오늘 산행은 웰빙(well-being)산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건강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나무가 소나무류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산행거리까지 짧으니 구태여 서두를 필요가 없다. 산책을 나온 듯이 한가롭게 발걸음을 옮기며 산길로 접어든다.

 

 

 

 

식당의 오른편 숲길(林道)로 들어서서 잠깐 걸으면 임도가 오른편으로 휜다. 이곳에서 임도를 벗어나 맞은편 산비탈을 치고 오르면 얼마 안 있어 무덤이 있는 능선 위로 오르게 된다. 임도를 벗어나지 않고 계속 진행하더라도 능선안부를 거친 후, 무덤에 이를 수 있다.

 

 

 

무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지점에서 첫 번째 이정표(솔고개 0.6Km/ 정상 1.9Km)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이정표가 이상하다. 아까 보았던 산행안내도에는 정상까지의 거리가 3.1Km이었는데, 어느새 2.5Km로 줄어들어 버린 것이다. 이런 난센스(nonsense)는 하산길에 만나게 되는 이정표에서 또 다시 발견하게 된다. 모든 시설을 가평군에서 설치한 것 같은데도, 시설물(施設物)마다 거리표시가 제각각으로 적혀 있는 것이다. 이정표를 지나면서 산길은 경사(傾斜)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더 치고 오르면 전망대로 불러도 좋을 만큼 조망(眺望)이 잘 터지는 송전탑(送電塔) 뒤의 언덕위로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청평호(湖)가 선을 보이기 시작한다.

 

 

 

 

 

송전탑에서부터 바윗길이 시작되지만 너덜길 수준으로, 위험을 느낄만한 정도는 아니다. 20분 정도를 가파른 오르막길과 힘겹게 싸우다보면 제1봉이다.

 

 

 

 

 

1봉은 소나무가 빼곡한 바위봉우리로서 북쪽으로 조망(眺望)이 시원스럽게 터진다. 건너편에는 장락산맥이 기다랗게 늘어서 있고, 산자락 아래에는 로마(Roma)에서나 볼 법한 통일교의 건물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왼편에는 청평호반이 리아스(rias)식 해안(海岸)을 만들어 내고 있다.

 

 

 

 

1봉에서 2봉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예쁘장하게 생긴 노송(老松) 사이로 골프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곡달산의 양 옆을 ‘프리스틴벨리 골프장’과 ‘마이다스벨리 골프장’이 둘러싸고 있으니, 아마도 저건 프리스틴벨리 골프장일 것이다.

 

 

 

1봉에서 가파르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리던 산길은 10m 정도 높이의 바위 지대를 통과하고 나서야 안부에 이르게 만든다. 바위를 잡고 내려서기가 만만치는 않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위험하지도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안부에서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 조금 못되게 치고 오르면 547m 높이의 제2봉이다. 2봉으로 오르는 길에 간혹 조망(眺望)이 시원스레 트이는 곳이 보이나, 막상 참나무로 둘러싸인 2봉에서는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

 

 

 

 

 

 

 

 

2봉에서 정상까지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밋밋한 능선 길이다. 2봉에서 10분 남짓 철쭉군락(群落) 사이로 난 평탄한 능선길을 지나면 제3봉이고, 이어서 참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5분마다 4봉과 5봉을 만나게 된다. 5봉에서 다시 바윗길을 따라 10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드디어 곡달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이 조금 더 지났으나, 점심시간을 뺀 순수 산행시간은 대략 1시간4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정상은 다섯 평쯤 되는 돌멩이로 뒤덮인 분지(盆地), 한가운데에 검은색의 정상표지석이 서 있고, 이정표(솔고개 2.5Km/ 금강사 방향 0.7Km/ 한우재 1.2Km)는 솔고개에서 올라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가평군에서 세운 정상표지석의 뒷면에 ‘좋은 산행 되십시오’라는 문구(文句)가 보인다. 다른 산에서는 본적이 없던 축원(祝願)이어선지 느낌이 살갑기 그지없다. 지역을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한 가평군청 관계자들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를 드려본다.

 

 

 

 

정상은 주변 조망(眺望)이 트이지도 않고, 특별한 볼거리도 없기 때문에 오래 머물지 않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정상에서 한우재로 내려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금강사를 들렀다가 한우재로 나갈 수가 있고, 능선을 따라 곧바로 한우재로 내려가는 방법도 있다. 오늘 산행을 리드하고 있는 최군(君)은 서슴없이 능선으로 방향을 잡는다. 금강사를 들릴 경우, 괜히 한우재까지 걸어 나가는데 다리품만 더 팔뿐이고, 가슴에 담아둘만한 특별한 볼거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웅전(大雄殿)은 기와도 얹지 못한 채 쇠락해가고 있고, 허름한 요사(寮舍)채와 컨테이너 박스 서너 개가 전부라니 당연히 볼거리가 없을 것이다. 다만 벽계구곡(蘗溪九曲)의 주인장격인 이항노의 시비(詩碑)를 못 보는 것이 못내 서운하나 그 시비 또한 세운지 얼마 되지 않는 다는 얘기에 그런 마음까지도 금방 접어버린다. 정상에서 한우재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기 그지없다. ‘힘들어도 이쪽으로 올라왔더라면 짧은 시간에 정상에 도착했겠네요.’ 집사람의 말도 일리는 있으나 그렇지 않아도 짧은 코스인데 구태여 시간을 더 단축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 금강사, 곡달산은 조선말(朝鮮末) 위정척사론자(衛正斥邪論者)였던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 1792~1868)가 제자들과 함께 공부를 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공부했다는 장소가 바로 금강사이다. 금강사의 요사(寮舍)채 앞에 세워진 화서시비(華西詩碑)를 읽어보면 금강사의 옛 이름이 ‘곡암(鵠庵)’ 또는 ‘고달암(高達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상을 출발해서 10분 정도 원시(原始)의 숲을 헤치며 내려오면 이정표(한우재 0.75Km/ 정상 0.35Km)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 이정표도 앞서 올라올 때 보았던 이정표들과 마찬가지로 어설프기 그지없다. 정상에서 본 이정표와 거리표시를 다르게 적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부터 산길은 경사(傾斜)도 완만(緩慢)해지고, 바닥까지 보드라운 흙길로 바뀐다. 거기에다 낙엽까지 수북이 쌓여있어서 폭신폭신하기까지 하니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나름대로 변하고 있는 주변의 풍물(風物)을 감상하며 한껏 여유를 부려본다.

 

 

 

 

산행날머리는 한우재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호젓한 능선길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변화를 느낄 수가 없다. 다만 조그만 변화라도 찾아보라면 등산로 주변의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의 수종(樹種)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나무 천지이던 능선에 점점 소나무의 개체수(個體數, population)가 늘어나더니만 어느새 길가는 온통 잣나무로 뒤덮여 있다. 가평은 역시 잣나무의 본고향인 것이다. 잣나무 숲을 벗어나면 잘 지어진 전원주택(田園住宅)이 보이고, 그 아래가 오늘 산행이 마무리되는 한우재이다. 귀경(歸京)길에는 청평으로 돌아 나올 필요가 없다. 우선 한우재에서 설악면소재지로 나간 후, 설악면소재지에서 서울을 왕복(往復) 운행하는 7000번 광역버스(진흥고속)을 이용한다면 조금 더 편하게 서울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7000번 버스는 중간에 다른 기착지(寄着地)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잠실까지 실어다 준다.

 

 

 

 

 

 

설악면소재지에 내려서 일행들과 헤어지기가 서운할 경우에는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설악골’이라는 음식점에 들어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우선 서울근교의 소문난 음식점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시설이 깔끔하다. 그리고 멋쟁이 주인장(중형승용차 값보다 비싼 오토바이를 두 대나 갖고 있을 정도로...)은 무척 친절하고, 주문했던 닭백숙은 담백하면서도 맛깔스러웠다. 거기다 하나 더, 갖가지 화초(花草)들로 둘러싸인 정자(亭子)에서 음식을 먹으며 담소(談笑)를 나누는 멋은 결코 도시 주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일 것이다.

 

 

 

정신 나간 목련, 멋쟁이 주인장의 말마따나 정신이 없어도 한참이나 없는 모양이다. 꽃이 지고 계절(季節)이 바뀐 지가 언제인데 이제야 꽃봉오리를 열고 있으니 말이다.

 

 

 

보납산 (寶納山, 330m), 물안산(443m)


산행코스 : 가평터미널→가평교→보광사 입구→보납산→물안산→개곡리 주을길 (산행시간 : 점심시간 포함 여유로운 5시간)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산행일 : ‘09. 11. 1 (일)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색 : 북한강변에 위치한 가평읍의 앞동산, 바위산이라고 하나 바위를 흙으로 묻고 있는 형상으로, 곳곳에 암반이 흙을 뚫고 융기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대부분의 등산로가 암릉 위로 나 있어, 낙엽이 두텁게 쌓인 바윗길은 굴곡이 보이지 않아 걷기에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산행들머리는 읍내 8리, 자라목 마을

보납산을 가려면 가평경찰서에서 우회전, 약 100미터 전방에 있는 가평교를 건너야한다. 가평교를 건너면 읍내8리 자라목마을 표석과 보납산 등산안내도가 있다.

 

가평천 길을 따라서 걸다가, 보납산휴게소(왕벌매정)을 앞에서 우측 골목으로 들어선다.

 

 

 

보광사 입구의 삼거리이정표(보납산정상 600m, 보납산정상 1.1km, 보광사 600m)

이곳에서 왼편으로 가면 직접 보납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급경사 길이고, 오른편 포장된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보광사, 운동 시설이 있는 삼거리를 거쳐, 보납산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곧바로 보납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급경사 바윗길

 

 

조금만 경사가 심하다 싶으면 안전로프를 매어 놓았다. 그리고, 등산로 주변에는 심심찮게 원통의자들이 설치되어 있다.

 

 

보납산 오름길의 전망대, 이곳에서는 가평시가지와 북한강이 잘 조망된다.

 

 

 

보납산 정상

서너평 됨직한 정상에는, 정상석(보납산 해발 330m, 뒤: 가평명보산악회건립 1996.9.1)과 표시없는 삼각점, 지적삼각점인식표석이 있다.

조선 4대 서예가 중 한명인 한석봉이 약 2년 동안 이곳 가평군수를 지냈는데, 그의 호를 石峯이라 지을 정도로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이 산을 좋아했단다. 임기를 마치고 가평을 떠나면서 그가 좋아하던 이 산에 벼룻돌 등 보물을 묻어 두었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며, 산 이름도 寶納山이 되었단다.

 

 

 

 

정상에서는 가평읍과 북한강, 그리고 가평 산하의 일부가 조망된다. 오늘은 아침까지도 비가 내렸기에 시원하게 뚫린 조망을 기대했는데, 가스가 덜 걷혔는지 시계는 시원치 않다.

 

 

북한강의 요철모양 만곡부 사행천(曲流), 언듯 영월의 동강변에 서 있는 느낌이다.

 

 

강촌방향 전망장소를 지나서 삼거리를 지나간다. 물안산을 가려면 우측 ‘읍내 8리’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깜빡 방향을 잘못 잡은 우린 개곡리 방향으로 진행했으니 20여분의 아르바이트는 필수...

 

 

 

‘인생은 塞翁之馬’ 길 잘못드는 바람에 우린 오늘 산행에서 제일 빼어난 암릉에 매달려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안전시설이 설치된 우측의 경사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 체력단련장, 보광사를 거쳐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다. 물안산은 북동쪽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이정표에서는 물안산을 찾아볼 수 없다. 대충 방향으로 미루어 짐작하면서 ‘강변산책로’라고 적힌 방향으로 진행...

오늘 답사하는 보납산은 가평군에 있는 산이고, 가평군은 잣으로 소문난 고장... 잣고을 가평답게 잣나무가 무성하다. 잣 한톨이라도 건져볼까 땅바닥에 딩굴고 있는 솔방울을 살펴보지만 모두 꽝이다... ^^_*

 

 

체력단련장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다시 삼거리... 이곳에서는 개곡리 방향(밑에 물안산 2800m 표시가 있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유일하게 볼수 있는 물안산 표기이었을 성 싶다)으로 진행해야한다. 이정표<개곡리주을길 5.5km, 개곡리 4.7km, 강변산책로 하산 1.2km, 보납산 정상 500m>

 

 

 

물안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자연과 인공의 양면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편은 참나무 숲이 자연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고, 왼편은 잣나무 조림지역... 인공의 첫째는 경제성일지니 그 경제성의 결과가 잣나무 조림이었을 것이다.

 

 

오르막길을 올라서 암릉을 지나면 돌탑이 있는 분기봉 삼거리에 도착한다. 삼거리 이정표 <마루산 1km, 보납골입구 2.7km, 물안산 1.7km, 개곡리 3.1km, 주을길 3.9km, 보납산 2.2km> 마루봉은 별로 의미를 주지 못하는 봉우리인지라 다녀오는 것을 생략...

 

 

 

 

로프구간을 포함, 암릉으로 이어지는 길을 오르락내리락 몇 차례 반복하다보면 물안산에 닿는다.

 

 

보납산과 물안산에는 유난히도 위험표지판이 많다. 주의하지 않으면 다칠(輕傷) 수도 있다는 정도로 보면 될 듯... 오늘 산행중에 바위에서 미끄러지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약간의 상채기만 생겼던 게 그 반증일 것이다

 

 

 

물안산 오르기 전의 이정표

막상 물안산으로 연결되는 안부의 이정표에는 물안산이 보이지 않는다. 소홀의 극치... 물안산 정상 을 다녀와서 하산은 개곡리 주을길 2,5 km 방향으로 진행

 

 

이정표 뒤, 물안산 정상으로 가는 길의 출입금지 팻말

이곳을 지나서 올라야만 물안산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데도 출입금지라니, 이건 너무 생뚱맞은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출입금지 위에 적힌 글귀를 보면 ‘안전 확인’... 글귀로 보아 아마 건설현장에서 사용하는 안전용 간판을 산에다 옮겨 놓은 모양이다.

 

 

물안산 정상 오름길은 암릉구간...


 

물안산은 마루산 북동방향에 위치한 岩峯으로, 정상에는 표지석 대신 나무판을 예쁘게 다듬어 만든 정상표지판이 매달려있다.

 

 

정상에서는 북한강 쪽으로 조망이 열려있는데, 오늘은 가스 때문에 멀리 보이지는 않는다.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강, 좌측에 우뚝 솟은 산은 계관산(?), 그리고 우측엔 검봉산 등이 늘어서 있을 것이다. 그 너머에도 산, 산, 산~ 하긴 거기는 강원도이니까...

 

 

물안산 정상에서 오른편으로 사람이 통과하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의 구멍이 뻥 뚫린 바위가 있다. 동굴 안으로는 밧줄이 설치되어 있고... 동굴을 통과하면 정상에 오를 때 지나갔던 길과 만나게 된다.

 

 

 

하산은 초반부터 밧줄이 설치된 가파른 내리막길...

 

 

주을고개

삼거리이정표<개곡리 주을길 2.0km, 개곡리 1.2km, 보납산 정상 4.0km,119표시(보납산-11)>와 등산로 푯말이 있다. 이정표가 설치된 주을고개에서 오른편 계곡리 주을길 방향으로 진행

 

 

산행 날머리는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인 줄길리 버스 종점

 

 

 

양자산((楊子山, 710m) - 앵자봉(鶯子峰, 667m)

 

산행일 : ‘12. 6. 9(토)

소재지 : 경기도 여주군 산북면, 양평군 강하면, 광주시 곤지암읍의 경계

산행코스 : 하품2리(주어마을) 주차장→양자산→주어고개→앵자봉→하품2리(산행시간 : 5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 및 집사람 후배

 

특징 : 한강(漢江) 이남의 경기지역에 소재한 산중에서 가장 높다. 전형적인 흙산(肉山)으로 산세(山勢)가 부드럽고, 거기에다 수도권에 근접(近接)해 있어서 주말산행 코스로 잘 알려진 산이다. 도로에서의 접근성이 뛰어나지만 하나 아쉬운 것은 군내(郡內)버스의 운행횟수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가족이나 동호인들끼리 어울려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산행들머리는 산북면 하품2리 주어마을 주차장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I.C를 빠져나와 곤지암읍 시가지를 통과한 후, 98번 지방도를 이용해서 양평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산북면소재지(面所在地)인 상품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 상품초등학교 앞의 상품교차로(交叉路)에서 좌회전하여 주어로를 따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이 시작되는 하품2리의 주어마을 주차장에 닿게 된다. 여주군 산북면 하품2리 주어마을은 여주군의 최고 오지(奧地)마을이다. 이 지역은 산림자원(山林資源)을 바탕으로 하는 관광산업(펜션이나 식당)을 주업(主業)으로 하고 있다. 우측에 있는 양자산과 좌측의 앵자봉이 병풍처럼 마을을 편안하게 둘러싸고 있는 특성(特性)을 잘 살린 것이다. 주어마을 주차장(駐車場)에 도착하면, 마을주차장이 이렇게 넓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부터 든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화장실하며, 널따란 주차장에 대형버스를 위한 차선까지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觀光客)들이 꽤나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주차장에 세워져있는 산행안내도(A코스, 앵자봉 3.3km/ B코스, 양자산-앵자봉 4.2km/ C코스, 양자산 3km) 앞에서 오늘 답사(踏査)할 코스를 정하는 것까지는 서울 인근의 다른 어느 산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산행들머리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주어고개 방향으로 100m쯤 올라가다 만난 주민에게 물어보니 들머리는 주차장 맞은편의 다리(橋)건너에 있다고 한다. 다시 주차장으로 되돌아와 자세히 살펴본 후에야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다리 입구에 세워진 산행안내판을 광고용 플레카드(placard)가 가리고 있어서 우리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 산비탈을 치고 오른다. 아까 우리와 비슷한 시간에 산행을 시작한 여성분들이 올랐던 길이다. 들머리 표시도 보이지 않는데다가 길의 흔적(痕迹)까지 희미해서 무모한 아주머니들이라고 혀를 찼었는데, 그 길을 따라 우리도 산행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산비탈을 짧게 치고 지능선에 올라서면 산길은 200m 정도 평평하게 이어지다가 갑자기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가파른 오름길에 힘들어할 사람들을 위해 길가에 난간을 세우고 밧줄을 매어 놓았다. 등산로 주변은 짙은 참나무 숲으로 덮여있기 때문에 조망(眺望)이 있을 리가 없다. 그저 땅에 코를 박고서 위를 향해 발걸음을 떼어 놓을 따름이다.

 

 

 

가파른 오름길을 30분 정도 치고 오르면 산길은 갑자기 경사(傾斜)를 떨어뜨리는데, 길가에는 아담한 벤치가 놓여있다. 올라오느라 고생했으니 잠깐이나마 쉬어가라는 배려(配慮)인 모양이다. 그러나 우린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우리보다 앞에 출발했던 아주머니들이 벤치 2개를 모두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평평한 산길을 10분 정도 더 걸으면 ‘밀양 박공’ 묘(墓) 앞에서 또 다른 벤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산의 산길은 능선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밀양 박공’ 묘지(墓地)를 뒤로하고 얼마간 더 걸으면 봉우리 하나가 나오는데, 산길은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사면(斜面)을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이런 지름길은 산행을 하는 동안 몇 번 더 만나게 된다. 서슴없이 지름길을 따라 진행하는 것은, 어차피 봉우리를 넘더라도 지름길과 다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사면길을 통과하여 다시 능선에 붙으면 얼마 안 있어 이정표(양자산 정상 2.3Km) 하나가 보이고, 5분 정도 더 걸으면 벤치 3개가 놓여있는 쉼터에 이르게 된다. 쉼터 오른편에는 대형 안내판이 서 있으나 벽면은 텅 비어있다. 시설물(施設物)을 만들기만 했지 그동안 정비(整備)를 해오지 않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참고로 양자산과 앵자봉에서 만나게 되는 이정표 상의 거리는 믿을 것이 못된다. 이정표마다 거리가 제각각 따로 노는 등, 시간과 거리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양자산을 오르는 길은 간혹 급경사(急傾斜)를 이루는 구간도 있지만, 대체로 부드러운 흙길이라서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다. 부드러운 흙길을 여유롭게 거닐다보면 억새풀이 가득한 헬기장을 만나게 된다. 부지런한 집사람의 발걸음이 갑자기 바빠진다. ‘좀 늦었네요.’ 쇠어버린 고사리 줄기를 내려놓으며 내뱉는 그녀의 체념어린 목소리에 공감(共感)이 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아마도 나또한 밥상에서 만나게 될 산나물을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산길은 변화가 없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짙은 숲에 포위된 산길인지라 조망(眺望)은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주변의 풍물(風物)마저도 변화가 없다. 그저 녹음이 짙은 참나무 숲만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다.

 

 

 

 

헬기장을 지나 조금만 더 오르면, 길의 왼편에 멋지게 자란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나타난다. 밑에서부터 4개의 굵은 줄기가 뻗어 올랐는데, 그중 옆으로 누운 가지 하나는 잘라져 있고, 나머지 3개의 줄기만 하늘을 향해 기개를 자랑하고 있다. 소나무를 지나 15분 정도 더 오르면 두 번째 헬기장이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또 하나의 헬기장에 닿게 된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이정표가 보이지 않아서 헷갈리기 쉬우니 지도(地圖)를 꺼내보고 방향을 잡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오른편 헬기장으로 연결되는 길은 하품1리에서 각시봉을 거쳐 올라오는 길이므로, 정상으로 가려면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양자산과 앵자봉의 능선을 걷다보면 수많은 헬기장을 만나게 된다. 다른 산에서는 엄두를 못 낼 정도로 그 숫자가 많다.

 

 

 

이곳 삼거리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또 하나의 삼거리(이정표 : 성덕리 3.6Km/ 정상 0.1Km/ 산북면)가 나타난다. 그런데 이정표의 산북면 방향은 공란으로 남겨 놓았다. 아무리 광주시에서 만든 이정표라고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處事)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런 상황들은 산행을 마칠 때까지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는데, 빨리 고쳐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곳 양자산과 앵자봉은 광주시와 여주군, 그리고 양평군이 맞물려 있는 산이다. 산에 시설물(施設物)을 세울 때 집단이기주의(集團利己主義)를 버리고, 인근 지자체(地自體)들끼리 상호 협조하여 일을 처리한다면 여러 가지 면에서 좋지 않을까 싶다. 우선 동일한 곳에 동일한 시설물들을 설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국민들의 혈세(血稅)가 낭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시설물의 표시(表示)가 제각기 따로 놀지 않게 되므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혼동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덕리 갈림길에서 정상까지는 금방이다. 양자산 정상은 10평 남짓한 분지(盆地)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의 한쪽 귀퉁이에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 양자산의 유래가 적힌 입석(立石)과 등산안내도, 그리고 긴 의자와 태양열을 이용한 디지털 방송설비 등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정상은 한마디로 혼란스럽다. 각기 다른 관청(官廳)들이 경쟁적으로 시설물들을 만든 탓에 중복(重複)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가까이 지났다. 정상은 잡목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평소에도 조망(眺望)이 별로이겠지만, 오늘은 안개까지 짙게 끼어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양자산은 산의 형상이 소(牛)처럼 생겼다고 해서 한때는 ‘소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단다. 그러나 어느 분의 글에서 본 ‘버드나무와 관련된 추론(推論)’이 가장 가슴에 와 닿는다. 버드나무가 많은 양평에서 양자산을 바라볼라치면, 항상 남한강변(江邊)의 버드나무와 겹쳐 보이기 때문에 버드나무 양(楊)자를 넣어서 양자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오직 버드나무가 많았으면 버드나무가 즐비하다는 뜻인 양평(楊平)이라는 지명을 얻었을까...

 

 

 

양자산 정상에서 앵자봉을 가려면 광주시에서 세워놓은 이정표(성덕2리 4.0Km/ 동오리 2.0Km)가 지시하는 동오리 방향 또는 다른 이정표(하품1리 3.8Km/ 하품2리 3.4Km)의 하품2리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 길은 양자산과 앵자봉을 나누고 있는 주어고개를 지나게 된다. 동오리 방향의 산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탓인지 길을 헤치고 나가기가 힘들 정도로 철쭉과 진달래나무들이 우거져 있다. 양자산 정상에서 남서쪽 앵자봉 방면으로 3분 정도 내려서면 시야(視野)가 트이는 665봉이 나온다. 평소 같으면 북쪽방면으로 남한강과 함께 예봉산과 운길산이 보이겠지만 안개가 짙게 낀 산하(山河)는 그런 조망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다만 정상에서 백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만이 희미하게 나타나고 있을 따름이다.

 

 

 

정상에서 600m정도 내려오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동오리 1.4Km/ 정상 0.6Km). 오른쪽은 양평군의 동오리로 내려가는 길이니, 앵자봉으로 가려면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동오리 갈림길을 지나면서 산길은 급작스레 고도(高度)를 낮추기 시작한다. 가파른 경사를 이기지 못한 산길은 갈지자를 만들다가, 이마저도 힘이 드는 지 끝내는 길가에 매어놓은 로프를 의지하게 만들고야 만다.

 

 

 

급하게 고도를 떨어뜨리던 산길이 평온을 찾을 즈음이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이정표(양자산 정상 1.2Km/ 앵자봉 정상 2.4Km) 하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얼마간 더 걸으면 2개의 이정표(양자산 정상 1.4Km/ 앵자봉 정상 2.7Km), (양자산 정상 2.4Km/ 앵자봉 정상 2.7Km)를 더 만나게 되는데, 보는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분명히 200m를 더 걸어왔는데도 가야할 행자봉 정상이 더 멀어져 버린 것이다. 비록 이정표를 설치한 관청(官廳)의 이름은 표시해 놓지 않았지만, 같은 관청에서 만든 것이 확실한데도 이런 엉터리 이정표를 세워 놓은 것이다.

 

 

 

말도 되지 않는 이정표를 지나 얼마간 더 걸으면 좁은 고갯마루에 내려서게 된다. 옛날 양평의 동오리 주민들이 여주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었다는 주어고개이다. 이곳 주어고개의 이정표도 엉터리이다. 왼쪽에 하품2리, 오른편에는 강하면, 그리고 지나온 방향에는 양자산이 표시되어 있는데, 앵자봉 방향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는 것이다. 양자산과 앵자봉을 잇는 산행을 하는 등산객들이 의외로 많으니 이정표를 정비(整備)해 주었으면 좋겠다. 덕분에 ‘길 찾기에 서툰 집사람’은 하품2리 방향으로 한참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우(愚)를 범하고야 말았다.

 

 

고갯마루에서 맞은편 비탈을 치고 오르면서 앵자봉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앵자봉으로 가는 길은 처음에는 완만(緩慢)한 오르막길이다. 능선길 왼편은 경제림(經濟林) 조성을 위해 벌목(伐木)을 했는지 개활지(開豁地)가 광활하게 펼쳐지고 있다. 덕분에 등산로가 햇빛이 완전히 노출되기 때문에 여름산행의 코스로는 어울리지 않는 코스가 되어버렸다.

 

 

 

앵자봉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가팔라지면서 산행은 힘들어진다. 산길이 내리막길이 없이 끊임없이 오르고 또 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오르면 벤치가 있는 쉼터에 닿게 된다. 벤치 앞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에서 떨어져 나온 표시판은 정상까지 0.9Km가 남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믿을 것이 못된다. 이곳에서 한참을 더 가야 만나게 되는 헬기장에 세워진 이정표에는, 정상까지의 거리가 0.8Km라고 표기(表記)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 도착해보면 나중에 본 이정표가 옳다는 것을 알게 된다.

 

 

 

쉼터를 지나 한참(20분 정도)을 더 오르면 송전철탑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 억새풀이 가득한 헬기장에 이르게 된다(이정표 : 양자산 3시간/ 천진암 입구 3.5Km/ 앵자봉 0.8Km).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뉘는데, 오른편은 천진암에서 올라오는 길이고, 앵자봉으로 가려면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앵자봉(鶯子峰)은 천주교신자들에게 널리 사랑받고 있는 산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천주교(Catholic)가 전파되었던 천진암이 앵자봉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현재 천진암 일원은 천주교 성지(聖地)로 조성되어 있다. 초기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살며 전교(傳敎)활동을 하였다함은 앵자봉이 숨어 살아도 좋을 만큼 산이 깊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앵자봉으로 들어서면 마치 심산유곡(深山幽谷)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산이 깊다.

 

 

헬기장을 뒤로하고 잠깐 더 걸으면 또 하나의 헬기장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2분 정도 더 가면 다시 우산봉의 봉우리에 만들어진 헬기장, 숫제 헬기장의 천국인 것이다. 앵자봉은 앵자지맥(鶯子枝脈) 상의 한 지점이다. 이곳 앵자봉 정상에서 지맥(枝脈)을 따라 북진(北進)하면 해협산과 정암산, 반대로 오늘 걷게 될 건업리방향의 능선을 따라 남진(南進)하면 천덕봉과 해룡산으로 가게 된다. 지맥을 벗어나 서쪽 방향의 능선을 따라가면 관산, 무갑산이 나온다. 물론 양자산은 동쪽 방향이다.

* 앵자지맥(鶯子枝脈), 한남정맥(韓南正脈 :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시작된 한남금북정맥이 안성의 칠장산(금북정맥이 나뉜다)을 거친 후, 김포의 문수산까지 이어지는 180km의 산줄기)상에 있는 문수봉(403m, 용인)에서 분기되어 독조봉(독조지맥과 나뉨)을 거친 후, 천덕봉과 앵자봉, 그리고 정암산을 지나서 양수리 앞 남한강에서 생을 마감하는 도상(圖上)거리 60Km의 산줄기이다.

 

 

 

우산봉에서 잠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맞은편 능선으로 치고 오르면 이내 앵자봉 정상이다. 제법 너른 분지(盆地)로 된 앵자봉 정상에 올라서면 화강암 정상표지석과 함께 조망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안개가 옅어지더니 어렴풋이나마 주위가 조망되기 시작한다. 동쪽 방면으로는 양자산이 가깝고, 서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아마 관산과 무갑산일 것이다.

* 앵자봉(鶯子峰)은 산의 생김새가 꾀꼬리가 알(卵)을 품고 있는 모양이라고 해서 꾀꼬리봉이라고 불리다가 한자로 표기할 때 앵자봉이 되었다는 설(說)이 있다. 한편 각시봉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웃에 있는 양자산을 신랑으로 삼아 한 쌍의 부부(夫婦)로 만들었나 보다. 부부가 함께 오르면 부부금슬(夫婦琴瑟)이 좋아진다는 전설(傳說)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오늘 산행은 집사람과 함께 하고 있으니 산행지를 제대로 선택했나보다. 참고로 요즘은 각시봉이 이사를 갔다. 앵자봉이 아니라 양자산의 남동릉에 있는 봉우리를 각시봉(693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앵자봉 정상에서 하품2리로 원점회귀(原點回歸)를 하기 위해서는 건업리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자그마한 이정표(1.6Km) 하나가 건업리 방향을 알려주고 있으니 길을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곳 이정표도 믿을 것은 못된다. 원래 4Km 가까이 되는 건업리(남이고개)까지의 거리가 턱도 없어 짧게 표기되어 있는 것이다.

 

 

 

남이고개 방향으로 내려서면 송전철탑(送電鐵塔) 아래를 지나가게 되고, 정상에서 20분 정도 되는 거리에는 멋진 전망대(展望臺)가 있다. 주변의 소나무들과 절묘(絶妙)하게 어우러지고 있는 이곳은 ‘기업바위’라고 불리는 곳으로, 앵자봉 제1의 명소(名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른편 발아래에는 ‘렉스필드 골프장’의 푸른 초원(草原)이 넓게 펼쳐지고 있다.

* 기업바위, 옛날 하품리에 터를 잡고 살던 한씨(韓氏) 장수가 전쟁에 패하여 도망쳐올 때 이 바위를 기어서 넘었다는 전설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기업바위 전망대’에서 왼쪽으로 돌아 나무계단을 내려선 후, 10분 정도를 더 걸으면 층층이 쌓여있는 바위위에서 기품(氣品)있게 자라고 있는 명품(名品) 소나무를 만나게 된다.

 

 

 

층층바위를 지나면서 등산로는 가파르게 고도(高度)를 낮추어가다가 오른편으로 건업리로 내려가는 길과 나뉘고(이정표 : 건업리 남이고개 2.14Km/ 앵자봉 1.49Km/ 상품리 2.3Km), 이어서 3분 정도 더 걸으면 오른편에 소망수양관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보인다. 소망수양관의 안내판(부근에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알리는)을 지나서 잠시 내려오면 나무벤치가 있는 쉼터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나무벤치 뒤로 희미하게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품2리로 내려서는 길은 조금 더 내려가야 하니 혼동(混同)해서는 안 된다.

 

 

 

 

산행날머리는 하품2리(원점회귀)

쉼터에서 왼편 능선으로 내려서면서 고난(苦難)의 행군(行軍)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제법 또렷하던 등산로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희미해지더니 결국에는 길의 흔적(痕迹)이 사라져버린다. 자꾸 길의 흔적을 놓치는 집사람을 뒤에 세우고 앞장서서 내려서보지만, 1년에 1~2명이나 다니는 길인지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잔가지들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20분 정도 길을 찾아 헤매다보면 짙은 숲속 한가운데에 고즈넉이 앉아있는 산막(山幕) 1채가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면 드디어 오늘의 산행이 종료되는 하품2리에 닿게 된다.

 

 

 

 

 

 

추읍산(趨揖山 : 538m)

 

산행일 : ‘12. 6. 2(토)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개군면의 경계

산행코스 : 원덕역→두레마을입구→정상→약수터→삼성리(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추읍산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어느 코스로 오르더라도 정상까지는 2시간이면 족하다. 거기다가 중앙선 전철의 개통으로 인해 접근성도 좋아져서 자연히 시간에 여유가 생긴다. 만일 봄이나 가을철에 이곳을 찾을 경우에는 자투리시간을 이용해서 인근 산수유(山茱萸)마을을 둘러볼 것을 권하고 싶다. 산의 주변에 산수유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산 남서쪽 내리와 남동쪽 주읍리 일원은 수령이 400~500년 된 산수유(山茱萸)나무 1만5,0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는 산수유마을로 유명하다. 

 

 

산행들머리는 원덕역

중앙선 전철(電鐵) 원덕역에서 내려, 역사(驛舍)를 빠져나오면 건물의 왼편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잠깐 멈춰 서서 오늘의 산행코스를 마음속으로 정한 뒤에 산행을 시작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광장(廣場) 건너편 도로를 따라 원덕마을로 걸어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광장의 끄트머리 도로변에 ‘추읍산 1.4Km'라고 쓰인 이정표가 지시하는 데로 진행하면 된다.

 

 

회사 승용차에서 내리니 원덕역 광장(廣場)이 텅 비어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광장에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광장의 한쪽 귀퉁이에 있는 느티나무아래 쉼터에 10여명 정도 되는 등산객들이 웅성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아마 내가 찾는 얼굴들이 하나도 안보이기 때문에 든 느낌일 것이다. 1박2일 일정의 ‘IMT(intelligence mechatronics) 워크숍(workshop)'이 열린 홍천의 ‘대명리조트’가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서 조금 일찍 도착했나보다.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해서 역사(驛舍)를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산행안내도 앞에 서서 오늘 답사(踏査)하게 될 코스를 머릿속에 새겨 넣는다. 약속시간에 맞추어 집사람과 집사람 후배가 보이고, 얼마 안 있어 새댁인 은결이, 그리고 뒤를 이어 또 다른 새댁인 취우님과 신랑, 맨 마지막으로 악마구리가 나타났을 때에는 약속시간보다 30분이 훌쩍 지나버렸다. ‘뭐라고 한소리 할까요?’ 그러나 지금까지 늦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 감안되어서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추읍산에는 영지버섯이 많으니 눈을 크게 뜰 것!’ 아까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 동네 이장님께 얻은 정보를 전달한다. 거기다 며칠 전에는 어느 등산객이 산삼(山蔘)을 캤었다는 알토란같은 정보와 함께... 듣고 있는 일행들의 눈망울이 갑자기 초롱초롱하게 빛나 보이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마을을 지나는 길에 산에서 마실 막걸리부터 사고 본다. 요즘 건강에 좋다며 막걸리에 맛을 들이고 있는 집사람이 냉큼 삶은 계란부터 집어 든다. 막걸리에는 계란이 찰떡궁합이란다. 그러나 이 계란은 산행을 끝마치고 식당에서 뒤풀이를 할 때에 마신 소주 안주로 사용되었으니 막걸리보다는 소주에 더 궁합이 맞는 모양이다.

 

 

 

마을을 통과하고 나면 곧바로 흑천(黑川)이다. 흑천은 덕촌리와 마룡리에서 흘러오던 물이 연수리에 이르러 큰 물줄기를 만드는데, 바닥에 검은 돌이 깔려 있어서 물빛이 검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길은 흑천의 왼편 제방(堤防)을 따라 나 있다. 농업용수 확보를 위해 만든 보(洑)에 갇혀있는 흑천은 제법 널따랗다. 거기다 깊기까지 한지 냇가에는 낚시를 즐기고 있는 강태공(姜太公)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산행은 두레마을 방향의 흑천을 건너는 것으로 시작된다. 흑천을 가로지르는 잠수교(潛水橋)를 건너서 50m정도 더 걸으면 오른편에 이정표(추읍산 정상 1.45Km/ 원덕역 1.44Km)와 산행안내도가 보인다. 이곳에서 두레마을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진행하면 ‘추읍산 삼림욕장’을 거쳐 정상으로 가게 되고, 곧장 정상으로 올라가고 싶다면 왼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 된다. ‘양평군이 가난한 모양이네요’ 누군가의 말마따나 방향을 틀자마자 만나게 되는 다리의 나무상판은 조잡(粗雜)하기 이를 데 없고, 거기에다 다리를 지탱하기 위해 만든 콘크리트 받침대의 넓이와 맞지도 않는다. 받침대보다 한참 적은 상판을 올려놓은 것이다.

 

 

 

 

 

흑천의 오른편을 따라 잠깐 이어지던 길이 오른편 숲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길은 초입부터 가파르기 이를 데가 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 가파름이 오래지 않아 끝난다는 것이다. 그 가파른 기세(氣勢)에 질려버렸는지 취우님이 멈춰 서서 스틱을 챙기고 있다. 그러나 스틱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는지 그녀는 산행을 마칠 때까지 힘들어하는 기색(氣色)이 역력했다. 아마 그동안 산행을 제대로 못했었나 보다. 하긴 아직까지는 신혼(新婚)이라며 우긴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가파른, 그러나 그 가파름이 금방 끝나서 다행인 산길이 끝나고 능선(稜線)에 올라서면 길은 순해진다. 조금 전에 정비를 끝낸 것 같은 보드라운 흙길은 폭신하기까지 하고,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은 피톤치드(phytoncide)가 넘쳐난다고 하는 소나무이다. 자연스럽게 오늘 산행의 콘셉트(concept)가 웰빙(well-being)산행으로 자리를 잡아버린다. 산행시간이 짧아 부담이 없는데다가 건강에 좋다는 피톤치드까지 실컷 담아갈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거기에다 하나 더, 날씨까지 도와주고 있다. TV에서 그렇게도 겁을 주던 날씨가 의외로 선선해서 산행하기에 알맞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완만한 경사(傾斜)의 구릉(丘陵)을 따라 조금씩 고도(高度)를 높여가다보면 조그만 공터에 놓여있는 벤치가 보인다. 쉼터 역할을 하고 있는 전망대(展望臺)이다. 벤치 앞에 서면 원덕역 일원이 시원하게 조망(眺望)된다. 처음으로 시야(視野)가 트이는 곳이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잠깐이나마 쉬어가고 볼 일이다.

 

 

 

쉼터를 지나자마자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삼림욕장 0.2Km, 원덕역 5.2Km/ 원덕역 2.2Km). 이정표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곧장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으로 가게 되고, 오른편은 삼림욕장(森林浴場)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삼림욕장 갈림길에서 40m쯤 더 올라가면 또 다시 약수터로 내려가는 길과 나뉘는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이정표 : 약수터 1.4Km/ 정상 0.8Km/ 원덕역 2.24Km). 이어서 점점 가팔라지는 오름길을 400m정도 더 오르면 다시 내리의 산수유축제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정상 0.45Km/ 내리행사장 1.5Km/ 원덕역 2.44Km)를 만나게 된다. 비록 길은 자주 나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양평군에서 설치한 이정표가 곳곳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내리행사장 갈림길에서부터 산길은 급하게 고도(高度)를 높인다. 가파르기 이를 데 없는 산길은 끝내는 갈지(之)자를 만들면서 서서히 위로 향하고 있다. 가파른 오르막을 배겨내지 못하고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드디어 주능선의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이정표 정상170m/ 내리 등산로입구 1.97Km/ 용문(중성) 등산로 입구 2.43Km). 만일 산행 날머리를 원덕역으로 잡고, 거기에다 올라왔던 길을 또다시 밟고 싶지 않을 경우에는, 이곳 삼거리에서 ‘용문(중산) 등산로 입구’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능선안부에서 짙은 숲을 뚫고 오르면 이내 헬기장이 나오고, 헬기장 건너편이 추읍산 정상이다. 별로 넓지 않은 정상의 한가운데엔 정상표지석이 서있고, 그 뒤엔 산행안내판, 그리고 맞은편에는 ‘무인(無人)산불감시탑’이 세워져 있다. 비좁은 정상을 감안했는지 ‘무인산불감시탑’의 옆에 나무테크로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40분이 조금 더 지났다.

 

 

 

 

추읍산(趨揖山), 북쪽에 위치한 용문산을 바라보며 읍(揖)하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추읍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칠읍산(七邑山)이 있는데, 이 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양평, 개군, 옥천, 강상, 지제, 용문, 청운 등 일곱 고을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정상에서는 한강기맥의 일원인 용문산과 중원산, 도일봉이 잘 보이고, 여주군에 속한 고래산과 앵자봉, 양자산까지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그러나 연무(煙霧)에 둘러싸인 산하(山河)는 그 자태를 선뜻 내보이지 않고, 미지인 채로 남겨둘 것을 고집하고 있다. 그저 양평 들 너머에서 제멋대로 구불거리며 흐르고 있는 남한강 줄기만이 아련하게 눈에 들어오고 있을 따름이다.

 

 

 

정상을 둘러보고 나면 배가 출출해질 시간이니 당연히 점심상 차릴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게 될 것이다. 추읍산에서 점심상 차리기에 가장 좋은 곳은 정상과 헬기장 사이의 숲속을 꼽고 싶다. 물론 정상에 설치된 평상(平床)이나 헬기장도 좋겠지만, 오늘 같은 뙤약볕(여름날에 강하게 내리쬐는 몹시 뜨거운 볕) 아래에서는 그늘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40대 아줌마들과 함께 산행을 하면 점심상이 풍요(豊饒)롭다.’ 산악인들 사이에 회자(膾炙)되고 있는 말대로 40대 여성들이 주축인 점심상은 이곳이 산의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진수성찬(珍羞盛饌)이다. 갖가지 반찬을 안주삼아 마시는 막걸리는 그야말로 술술 잘도 넘어간다.

 

 

 

점심을 마치고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이 길지도 않을뿐더러, 추읍산이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인지라 귀가시간에 구애(拘礙)를 받을 필요도 없다. 당연히 오고가는 얘기가 많아질 수밖에 없고, 의사전달이 제대로 안될 경우에는 아예 멈추어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 슬로우 시티(Slow City), 이게 바로 느림보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갑자기 산행은 요즘 현대인들이 자주 던지는 화두(話頭)를 몸소 실천해보는 산행으로 변해간다. 하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 그러나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조금도 지장을 주지 못하고 있다. 혹시 조그만 난관(難關) 정도로는 결코 즐거움을 추구하는 마음들을 막을 수 없다는 반증(反證)이 아닐까?

 

 

 

추읍산 정상에서 700m 정도 내려오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약수터 0.2Km/ 약수터 갈림길 0.65Km/ 내리․원덕역 3.44Km). 이곳에서는 약수터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200m쯤 더 내려오면 돌무더기에 둘러싸인 약수터가 보이는데, 아무도 물을 마실 생각을 않고 있다. 옹달샘 모양으로 생긴 웅덩이에 고인 물을 냉큼 마시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한 모양이다.(약수터 이정표 : 정상 0.9Km/ 중성 0.8Km). 약수터 옆의 쉼터에 서면 나무 숲 사이로 원덕역 부근이 눈에 잘 들어온다.

 

 

 

 

 

약수터를 지나면서 길은 고와진다. 길바닥에 깔린 ‘황토 흙’은 부드럽기만 하고, 넓어진 길은 팔짱을 끼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을 만큼 여유롭다. 거기에다 하늘이 보이지 않은 정도로 울창하게 우거진 숲이라니... 산길은 짙은 참나무 숲 아래로 이어지다가 일본이깔나무(落葉松)숲 사이를 헤치며 나가더니, 이번에는 오만가지 나무들이 뒤엉킨 숲을 뚫고 지나간다.

 

 

 

 

 

 

산행날머리는 원덕역(원점회귀)

녹음이 짙은 숲을 헤치다보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중앙선 전철(電鐵)의 선로(線路)를 받치고 있는 육중한 시멘트 기둥들이 보인다. 다리 아래에서 잠깐 쉬며 남겨온 과일들을 먹고, 흑천을 건너는 길에 탁족(濯足)도 즐기면서 원덕역으로 향한다. 흑천을 건너 제방위로 난 농로를 따라 걷는 귀환(歸還)길은 한마디로 고역이다. 제방(堤防)에 심어진 가로수(街路樹)들이 덜 자란 탓에 그늘을 만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쉬었다 갈 겸해서 길옆의 간이음식점으로 들어선다. 비록 비닐하우스이지만 대신할만한 음식점(飮食店)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만든 두부와 파전을 안주삼아 뒤풀이를 끝내고 농로(農路)를 따라 10분정도 걸어 나오면 오늘의 산행이 종료되는 원덕역이다.

 

 

용문산((龍門山, 1,157m)

 

산행일 : ‘12. 5. 13(일)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옥천면의 경계

산행코스 : 용문사주차장→용문사→마당바위(계곡길)→중앙능선→용문산 정상→장군봉→상원사→용문사→용문산주차장(산행시간 : 6시간)

 

함께한 산악회 : 나홀로

 

특징 : 그동안 용문산은 산행지(山行地)보다는 수많은 전설(傳說)을 간직한 은행나무로 더 알려져 있었다. 정상을 군시설(軍施設)에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2007년의 정상 개방, 그리고 중앙선 전철(電鐵) 개통 등과 맞물려 최근에는 부쩍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암괴(巖塊)들이 첩첩(疊疊)이 쌓인 남릉과 주변의 깊은 계곡들은 다른 유명산에 비해 별로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용문사 주차장

6번 국도(國道/ 홍천방향)의 마룡교차로(交叉路, 용문면 마룡리)에서 내려와 341번 지방도를 이용하여 왼편 용문사방향으로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용문사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중앙선 전철(電鐵)을 타고 용문역까지 온 후, 용문역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용문사까지 들어오면 된다. 참고로 동서울터미널에서 용문역까지 35분 간격으로 직행버스가 다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직행버스는 중간 기착(寄着)지점을 들르는 지역의 ‘버스터미널’로 삼는다. 그 지역 안에서 운행하는 버스와 환승(換乘)시켜주기 위해서이다. 그런데도 홍천으로 가는 직행버스는 용문을 거쳐 가면서도 버스터미널에는 들르지 않은 채로 큰길가에 손님들을 내려놓고 도망가 버린다. 길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물어 버스터미널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당황스러웠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리가 얼마 떨어져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터미널에서 30분마다 운행되는 버스를 타고 용문사에 도착하니 길가에 행사용 천막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양평 산나물축제(祝祭)’기간 이란다. 행사기간 동안에는 용문사 입장료(2천원)는 내지 않아도 된다니 운이 좋은 모양이다.

 

 

각종 산나물과 산나물을 재료로 만들어낸 제품들이 진열된 길을 따라 들어서면 오른편에 ‘친환경농산물 박물관(博物館)’이 보인다. 비록 서울에서 전철(電鐵)이 다니고는 있지만, 양평은 어쩔 수 없는 산골마을인 모양이다. ‘농산물박물관’이나 ‘산나물축제’라는 게, 산골마을이 아니고서는 그런 행사나 건물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박물관을 지나자마자 만나게 되는 다리(橋)의 입구에 이정표가 세워져있다. 용문사 은행나무까지의 거리가 왼편 다리를 건너면 1Km, 건너지 않고 오른편으로 그냥 올라가면 1.1Km라고 한다. 당연히 널찍한 왼편의 메인(main)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다른 사찰(寺刹)에서는 볼 수 없던 낯선 풍경(風景)이 눈에 들어온다. 길가에 개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개울에는 꼬마들이 물놀이를 즐겨도 될 만큼 넉넉한 양의 물이 흐르고 있다.

 

 

 

잘 닦인 도로를 따라 들어서면, 진행방향에 그 자태(姿態)를 뽐내고 있는 우람한 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용문산이라는 산의 이름보다도 먼저 떠올리게 된다는 그 유명한 ‘용문사 은행나무’이다. 이 땅의 나무 가운데 가장 키가 크며, 가장 많은 전설(傳說)을 간직한 은행나무라고 한다. 은행나무는 이름에 걸맞게 우람하기 그지없다. 50m이상을 떨어지지 않고서는 카메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라면 그 크기를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용문사 은행나무, 나이가 1100살쯤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그 높이가 무려 42m에 둘레가 14m인 노거수(老巨樹)이다. 신라 경순왕 때 나라를 잃은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심었다고 하며, 일설(一說)에는 의상대사가 꽂아놓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나라에 큰 재난(災難)이 닥칠 경우에는 이 나무가 소리를 내어 알려주었다는 등 신령스런 나무로 인식되어 왔다. 조선 세종 때는 정삼품보다 더 높은 당상직첩(堂上職牒)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천연기념물(제30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은행나무 뒤의 돌계단을 오르면 천년고찰(千年古刹)이라는 용문사를 만날 수 있다. 그 동안 수많은 병란(兵亂)으로 인해 전각들이 불타버린 탓에 국보(國寶)급으로 지정된 문화재(文化財)는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수려한 자연경관을 배경삼아 고요히 앉아있는 전각(殿閣)들은 다른 어느 유명사찰에 뒤질 바가 아니다.

* 용문사(龍門寺), 진덕여왕 3년(649년) 원효(元曉)대사가 창건, 진성여왕 때 도선국사(道詵國師), 고려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하는 등 중 ·개수를 거듭해 오다가, 세종 29년 수양대군이 어머니인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의 원찰로 삼으면서 대대적으로 중건하였다. 1907년 일본군(倭軍)의 병화와 6 ·25전쟁 때 파괴되어, 현재의 건물들은 최근에 다시 중건한 것들이다. 문화재로는 정지국사(正智國師)부도 및 탑비(보물 531호)와 금동관음보살좌상(경기도 유형문화재 172호), 그리고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수령이 1,100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있다.

 

 

 

용문사에서 좌측의 다리를 건너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 5분 정도를 걸으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상원사/마당바위 갈림길(이정표 : 용문산 정상 3130m/ 상원사 1780m/ 용문사 280m)이다. 왼편의 상원사코스는 상원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인 절고개에서 남릉을 타고 정상으로 가게 되고, 오른편 계곡으로 들어서면 마당바위를 거쳐 정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상원사코스가 마당바위코스보다 오르기도 쉬울뿐더러 시간도 30분 정도 단축된다.

 

 

 

마당바위 방향의 계곡으로 들어서면, 길은 평탄치 않은 산행을 예고라도 하려는 듯이 발동작을 부자연스럽게 만들고 있다. 길은 온통 돌투성이, 크고 작은 바위 위를 걷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담을 느낄 필요까지는 없다. 계곡을 가로지를 때에는 어김없이 다리가 놓여있고, 벼랑을 치고 오르기라도 할라치면 자연석을 쌓아 계단을 만들었거나.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았다.

 

 

 

등산로는 울창한 숲과 계곡으로 이어진다. 한여름처럼 무더운 초여름 날씨인데도 이곳은 시원하기만 하다. 나무그늘과 바위를 돌아 흐르는 맑은 물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숲과 맑은 물을 스쳐 지나온 바람이라면 당연히 시원할 것이다. 용문산은 물이 많아 한 번도 계곡(溪谷) 물이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계곡을 덮고 있는 푸른 숲은 고요하기만 한데, 발아래 계곡은 소란을 떨고 있다. 바위들을 휘감고 돌다가 지쳐서, 마지못해 바위를 넘다가 굴러 떨어지는 물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이 조금 지나면 계곡의 한 가운데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보인다. 바로 마당바위이다. 커다란 바위의 윗면이 평평하게 생겼는데, 10여명이 둘러앉으면 꽉 찰 정도여서 생각했던 것 보다는 상당히 왜소(矮小)하다.

 

 

 

마당바위에서 100m 정도 더 올라가면 통행을 금지(禁止)한다는 안내판이 보이면서 길은 왼편 사면(斜面)으로 향하고 있다(이정표 : 용문사 정상 1.55Km). 남릉으로 오르는 너덜길이다. 아마 오늘 산행 중에서 제일 힘든 구간일 것이다. 많이 가파른데다가 너덜길이라서 비록 안전로프나 난간을 설치해 놓았다고는 하나 힘들기는 매 한가지이다. 오르는 중에 만난 어느 아주머니는 얼굴 표정이 아예 사색(死色)이다. 낭군이 아무리 재촉해도 제자리에 멈춘 채로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하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니 어쩔 것인가?

 

 

 

 

40분 이상을 가파른 너덜길과 씨름하다보면 드디어 능선안부에 오르게 된다. 아까 헤어졌던 상원사코스와 다시 만나게 되는 지점이다(이정표 : 상원사 2.4km/ 용문산 정상 0.9Km/ 용문산 2.1Km, 마당바위 600m). 이곳에서 부터는 본격적으로 암릉이 시작된다.

 

 

 

 

남릉은 계단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겹도록 계단의 숫자와 싸워야 하는 까닭에 지겹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신록(新綠)으로 물들어가는 산길을 따라 걷는 발걸음에 흥이 실릴 만도 하건만, 너덜길을 올라오면서 지친 육신(肉身)은 기운이 빠져버린 지 이미 오래이다.

 

 

 

남릉은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지고 있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능선의 바위들은 하얀 빛깔의 차돌이기 때문에 붙잡고 올라가기가 용이한 편이다. 조금만 험하다싶으면 어김없이 우회로(迂廻路)를 만들어 놓았지만 가급적이면 릿지를 이용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가끔 시야(視野)가 트이는 바위에라도 올라설라치면, 용문산이 왕관을 쓰고 있는 제왕(帝王)의 위엄을 보이고 있다.

 

 

 

 

남릉에서 릿지로 한 시간 정도 스릴을 즐기다보면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삼거리(이정표 : 정상 110m/ 장군봉 1400m/ 용문사 3300m)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려면 맞은편에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왼편은 장군봉과 백운봉으로 가는 길이다. ‘시원한 막걸리나 아이스크림 있습니다.’ 왁자지껄한 속에서도 뚜렷하게 들려오는 이유는 그만큼 남릉을 올라오면서 갈증에 시달렸음이리라...

 

 

 

삼거리에서 또다시 지긋지긋한 계단을 밟고 오른다. 여기까지 오느라 가진 힘을 다 쏟아버린 탓에 부쩍 더 힘들다. 어렵게 오른 정상은 10평도 채 안 될 정도로 비좁다. 주위가 군부대(軍部隊)인 탓일 것이다. 정상이 좁은 탓인지 정상의 주위에 정자와 ‘테크 쉼터’ 등 쉴만한 공간이 많이 눈에 띈다. 용문산 정상은 2007년 이전까지는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금단(禁斷)의 지역이었지만 양평군과 공군 제8145부대가 협의 끝에 개방하기로 하면서 사람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정상에 올라서면 정상표지석의 곁을 지키고 있는 현대식 조형물(造形物)이 이채롭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조각가(彫刻家)인 이재훈씨의 작품이라고 한다. 조형물은 은행나무 잎 두 개를 형상화(形象化)시키면서 그 가운데에 ‘용문산 가섭봉’이라고 새겨 놓았다. 이 조형물은 규장각(奎章閣)에 소장중인 '지평현 여지도(1882년 발행)'에 ‘용문산 가섭봉’이라고 표기된 것을 근거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이 경기도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답게 뛰어나다고 하지만, 안개가 자욱한 날씨 탓에 시야(視野)가 트이지 않는다.

 

 

 

장군봉으로 가려면 아까 정상으로 오를 때 만났던 ‘나무계단(階段) 시작지점’의 삼거리에서,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곳에서 장군봉과 백운봉을 연결시켜주는 서릉(西稜)까지의 1Km정도 되는 구간은 산의 8부 능선쯤 되는 허리(斜面)를 째면서 이어진다. 이 구간은 간혹 너덜길을 만나기도 하지만 경사(傾斜)가 거의 없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구간이다. 군부대(軍部隊)를 우회(迂廻)하는 구간이라서 오른편에는 군부대의 철조망이 심심찮게 보인다.

 

 

 

우회구간이 끝나면서 만나게 되는 서릉위의 삼거리에서 이정표(용문산(우측) 1.0Km/ 상원사 3.0Km, 백운봉 3.6Km) 하나를 만나게 되는데, 방향표시를 이해할 수가 없다. 길이 세 갈래이고, 오른편 능선으로 길이 뚜렷한데도 이정표에는 방향표시가 없는 것이다. 궁금증에 올라가보면 조그만 봉우리가 나오고 군부대(軍部隊)의 철조망이 능선을 막고 있다. 등산로는 철조망 아래로 나 있는데, 아마 군부대로 오르는 차도(車道)까지 연결되는 모양이다. 봉우리에서는 장군봉과 함왕봉, 백운봉을 잇는 서릉이 뚜렷하게 조망(眺望)된다. 날씨만 맑다면 북서쪽에 위치한 유명산은 듬성듬성 벗겨져 있는 머리까지 보일 것이다.

 

 

 

서릉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순하다. 경사(傾斜)도 완만(緩慢)할뿐더러 바닥이 고운 흙길이어서 걷기가 무척 편하다. 자연스레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까지 생긴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참나무 군락(群落), 연록의 잎사귀들이 점점 푸르름의 농도(濃度)를 더해가고 있다. 비린내가 날 것 같던 새순들이 어느새 어른스러워져 버린 것이다. 사물을 즐기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장군봉에 올라서게 된다.(이정표 : 백운봉 2180m/ 상원사 2130m/ 용문산 정상 1510m)

 

 

 

장군봉 정상은 능선 상에서 조금 튀어나온 흙으로 이루어진 봉우리이다. 봉우리를 지키고 있는 정상표지석이 아니라면,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별다른 특징(特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산길은 정상표지석 앞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맞은편의 서릉을 계속 따르면 백운봉으로 가게 되고, 상원사는 이곳에서 왼편 능선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상원사까지의 하산길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경사(傾斜)가 가파르다. 뭔가에 의지하지 않고 내려서기 힘든 곳에는 안전로프나 쇠(鐵)난간을 곳곳에 설치하여 놓았다. 아무리 내려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어지는 가파른 내리막길은 짜증이 날 정도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면 가끔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용문산의 산세(山勢)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던 산길이 왼편으로 90도 이상으로 방향을 틀면 진행방향에 상원사의 전각(殿閣)들이 눈에 들어온다(이정표 : 용문사 1.9Km/ 장군봉 2.19Km/ 백운봉 5.39Km). 자연석으로 만든 돌계단을 밟고 오르면 만나게 되는 상원사는 한마디로 말해 싱싱하다.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듯, 전각들마다 단청(丹靑) 색깔이 뚜렷하고, 아직 단청을 입히지도 않은 전각도 보인다. 상원사에 들르면 대웅전(大雄殿) 앞에 있는 샘물을 꼭 마셔보길 권하다. 감로수(甘露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청량(淸凉)하고 감미롭기 때문이다.

* 상원사(上院寺), 창건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발견된 유물(遺物)들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보우가 그리고 조선 초기에는 무학이 이곳에 잠시 머물며 수도했다고 전하나, 그보다는 1458년에 해인사의 대장경(大藏經)을 보관했던 것이 더 역사적 의미가 클 것이다. 지금의 전각(殿閣)들은 6.25 전쟁 때 불타버린 것들을 1969년 이후 다시 복원한 것들이다.

 

 

 

상원사를 빠져나오면 왼편 숲속으로 작은 오솔길이 나있다. 용문사로 가는 길이다. 들머리에 세워진 ‘119 구조지점 표시 말뚝’에 용문사까지의 거리가 2.1Km로 적혀있는데, 아까 상원사로 들어가기 전에 보았던 이정표(1.9Km)와 맞지 않는다. 용문사방향으로 더 걸었는데도 오히려 거리가 더 늘어나버린 것이다. 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정표를 참고해서 산행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보통이니, 정비(整備)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용문사까지의 2.1Km구간(區間)은 그다지 멀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미 5시간 가까이를 걸어온 사람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구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등산로가 산의 허리(斜面)를 따라 이어지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절고개로 올라가는 길이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다는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용문산주차장(원점회귀 산행)

상원사를 출발해서 1시간 가까이를 걸으면 절고개(이정표 : 상원사 1150m/ 용문사 910m/ 용문산 정상 2030m) 위에 올라서게 된다. 안부 삼거리인 절고개에서 왼편 길은 용문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남릉이고, 용문사로 가려면 맞은편 내리막길로 진행해야 한다. 경사(傾斜)가 심한 내리막길을 얼마간 내려서면 이내 아침에 용문산을 오르면서 헤어졌던 삼거리가 나온다. 이어서 계곡의 건너편 숲 사이로 용문사의 전각(殿閣)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의 산행이 종료되는 것이다.

 

 

운악산(雲岳山, 936m)

 

산행일 : ‘12. 5. 6()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하면과 포천군 일동면의 경계

산행코스 : 주차장일주문눈썹바위병풍바위미륵바위망경대정상(동봉)정상(서봉)절고개현등사주차장(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나홀로

 

특징 : 운악산은 경기 5(五嶽 : 화악산, 관악산, 감악산, 송악산, 운악산) 중에서도 가장 수려(秀麗)한 산으로 꼽히며, 서울에서 가까운 이점(利點)으로 인해 수도권지역의 등산객들로부터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경기의 금강(金剛)으로 불릴 만큼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잘 발달되어 있고, 운악(雲岳 : 높이 솟구친 암봉들이 구름을 뚫을 듯하다)이라는 이름을 만들어 냈듯이, 만경대를 중심으로 곳곳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絶壁)들이 널려있다. 또한, 단애(斷崖)와 절벽으로 이루어진 능선은 뛰어난 조망(眺望)을 자랑한다.

 

 

산행들머리는 하판리 현등사입구 주차장

북한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46번 국도(國道/ 가평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청평면소재지(面所在地)를 지나 청평검문소에서 좌회전, 37번 국도를 이용하여 상면 연하교차로까지 들어간다. 이어서 오른편에 보이는 387번 지방도(地方道/ 일동면방향)로 옮겨 더 들어가면, 하면소재지(현리)를 거친 후, 산행이 시작되는 하판리에 이르게 된다(현리에서 6Km, 청평에서 약 20Km). 청평검문소에서 하판리까지는 북한강의 지류인 조종천이 함께 한다. 조종천 유역(流域)은 환경부와 환경단체들이 이곳만은 살리자라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를 내걸고 자연생태계 보전지구로 지정해 놓은 곳이다. 지방도에서 조종천을 가로지르는 운악교()를 건너면 민박촌과 주차장이다. 음식점이 늘어서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참고로 청량리역 환승센터에서 1330-44를 타면 약 2시간 후에 현등사 앞에 닿을 수 있다. 강남에서는 잠실역에서 8002번 광역버스를 이용 마석역까지 온 후, 이곳에서 1330-44번으로 환승하면 편할 것이다.

 

 

200m정도 되는 음식점 골목을 통과하면 곧바로 매표소(賣票所)이다. 음식점 외에도 민박(民泊 : 팬션)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모양이다. 매표소를 통과하면 왼편에 운악산을 노래한 시비(詩碑)가 세워져있고, 그 옆을 운악산 산행안내도가 지키고 있다. 현등사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일주문이 지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일주문 주변에는 잣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지금 있는 잣나무들은 모두 식재(植栽)된 것이지만, 원래부터 가평 운악산 지역에는 잣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10분쯤 올라가면 오른편 길가에 이정표(里程標 : 하판리 안내소 470m/ 현등사 1.3Km, 운악산 정상 2.94Km/ 운악산 정상(망경로 방향) 2.61Km)가 서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에서 어디로 진행하더라도 정상으로 갈 수가 있지만, 오른편의 만경대코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현등사로 가는 길보다 운악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코스이기 때문이다. 이정표 뒤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으로 들어서면 먼저 능선을 향해 길게 늘어선 통나무 계단이 길손을 맞는다. 매끈하게 잘 다듬은 통나무를 밟으며 능선에 올라서면 길은 수월해 진다. 경사(傾斜)도 완만(緩慢)할뿐더러, 포근포근한 흙길이기 때문에 걷기에 여간 편한 게 아니다. 마침 지금은 신록(新綠)의 계절, 등산로 주변의 신갈나무들이 연녹색으로 빛나고 있다. 싱싱한 잎사귀들에서는 비린내가 날 정도로 싱그러운데,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침 시간에 구애(拘礙)받을 일도 없으니 여유롭게 걸어보자.

 

 

 

신록(新綠)으로 물든 신갈나무 숲속을 걷다보면 이정표(하판리 안내소 1.32Km/ 운악산 정상 1.9Km/ 하판리 안내소 1.11Km)가 보인다. 아까 능선으로 올라왔던 지점에서 현등사 방향으로 조금 더 진행하다가, 오른편 능선으로 치고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다. 삼거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경사(傾斜)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바닥은 흙길, 아직도 바윗길은 나타날 줄을 모른다. 운악산의 악()자를 떠올리니 작은 실망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능선에 올라서서 얼마간 걷다보면 길바닥은 마사토로 변한다. 화강암은 풍화(風化)작용에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풍화작용으로 푸석푸석해진 화강암을 썩은 바위또는 석비례라고 한다. 지질용어로는 새프롤라이트(saprolite)’이다. 이 새프롤라이트가 토양화(土壤化)한 것이 마사토인 것이다. 덕분에 길은 많이 미끄럽다.

눈썹바위

 

 

 

눈썹바위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바윗길이 시작되니까. 눈썹바위를 왼편으로 돌아 오르면 능선 안부 조금 못미처에 또 하나의 이정표(하판리 안내소 1.88Km/ 운악산 정상 1.55Km/ 하판리 안내소 1.53Km)가 보인다. 현등사 근처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는 삼거리이다. 능선 안부에 올라서면 왼편에 정상으로 향하는 바윗길이 보이지만, 오른편에 보이는 눈썹바위 상부를 잠깐 올라본 후에 정상으로 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봉우리 위로 올라서면 건너편에 남북으로 뻗어있는 명지산-연인산-대검산의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눈썹바위 위에서의 조망

 

 

눈썹바위 위의 안부에서 정상으로 가려면 왼편에 보이는 암릉을 올라서야 한다. 암릉의 위는 또다시 흙길, 산길은 녹음 짙은 신갈나무 숲속을 뚫고 지나가고 있다. 정상을 1.48Km 남겨 놓은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쉼터에서 쉬며 땀도 식히기도 하고, 우주선을 닮은 바위에 잠시 한눈도 팔아본다. 그리고 길을 막고 있는 슬랩(slab)에서 는 릿지(ridge) 흉내를 내본다.

 

 

 

 

 

슬랩을 올라서면 봉우리 앞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곧바로 직진해서 봉우리를 넘어도 되나,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봉우리이기 때문에 왼편 우회(迂廻)로를 선택한다. 산행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봉우리를 왼편으로 돌아 반대편 안부에 이르면 오른편에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전망대(展望臺)가 보인다. 전망대 위로 오르면 전면에 거대한 암벽(巖壁)이 병풍(屛風)처럼 펼쳐지고 있다. 운악산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景觀)이라는 병풍바위이다. 병풍바위는 모양뿐만 아니라 바위의 빗금, 바위 색깔, 바위틈의 나무 등이 서로 어울리며 그려낸 진경산수(眞景山水), 고풍(古風)스런 12폭 병풍이다. 수십, 아니 수백 개의 바위가 키순으로 서 있는데, 바위들마다 머리위에는 어김없이 한두 그루의 소나무를 키우고 있다.

병풍바위

 

 

 

병풍바위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도 가파르기 짝이 없는 바윗길이다. 쇠파이프로 된 난간만으로는 위로 오르기가 힘들었던지 바닥에 철근으로 발 디딤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가끔씩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면 아찔해지지만 멋진 경치는 더해만 간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면 제법 너른 암반(巖盤)위로 올라서게 되고, 이곳에서는 미륵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미륵바위 이정표 : 정상(동봉) 0.69Km, 철사다리 0.3Km/ 눈썹바위 0.9Km). 운악산에서 가장 빼어난 봉우리를 꼽으라고 한다면 난 서슴없이 미륵바위를 꼽을 것이다. 어디서나 후천개벽의 내세에 대한 민중의 염원이 미륵(彌勒)’이라는 이름으로 자리한다. 어쩌면 이 근처에 살던 옛사람들도 이 산을 오르내리다가 이 바위를 보며, 진정한 미륵세상이 열리길 두 손 모아 빌었으리라. 미륵바위의 왼편에는 아까 본 병풍바위가 옆구리를 살짝 내밀고 있다.

 

 

미륵바위

 

 

 

 

미륵바위 조망처를 지나면서 산길은 다시 흙길로 변하면서 능선위로 올려놓는다. 능선 안부의 이정표(운악산 정상 260m/ 하판리 안내소 2.82Km)에서 길은 직각(直角)으로 휘면서 다시 암릉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발아래 협곡(峽谷), 협곡을 만들고 있는 능선의 날등에는 아름답고 수려(秀麗)한 단애(斷崖)가 줄을 잇는다. 높이를 알 수 없는 엄청난 단애, 깊은 협곡, 단애를 점점이 수놓고 있는 소나무들이 한 폭의 산수화(山水畵)를 그려내고 있다.

 

 

 

가파른 암릉을 4개의 발을 이용해 치고 올라선 후, 앞을 가로막는 암벽에 매어진 쇠()로프를 잡고 위태롭게 오른편으로 돌면, 이번에는 쇠()로 만든 다리()를 건넌 후에 철계단을 통해 위로 오르게 만든다(철사다리 이정표 : 정상(동봉) 0.39,Km 서봉 1.09Km/ 미륵바위 0.3Km). 그런 다음 다시 한 번 가파른 바윗길을 치고 오르면 만경대이다. 만경대에 올라서면 동쪽이 시원스레 트이고 있다.

 

 

망경대에서의 조망

 

 

만경대에서 로프를 이용해 아래로 내려섰다가 다시 맞은편 계단으로 올라서면 드디어 동봉 정상이다(이정표 : 하판리 3.35Km, 현등사 1.64Km/ 하판리(망경로 하산) 3.08Km/ 포천시 운악휴게소). 족구게임을 해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널찍한 정상의 한 복판에는, 가평군에서 설치한 정상표지석이 운악산 비로봉(毘盧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서있다. 그런데 높이가 937.5m여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아까 매표소에 세워진 산행안내도에서 본 높이보다 2m가량이 더 높은 것이다. 무슨 이유일인지 궁금하겠지만 알고 보면 간단하다. 포천시가 정상표지석을 세우기 위해 실측(實測)을 했더니 서봉(西峰) 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바위 꼭대기의 높이가 지금까지 알려진 935.5보다 2높은 937.5로 나타났다고 한다.(연합뉴스 20061020일자 뉴스). 이왕에 실측까지 했다면 지도(地圖)나 다른 표지판 등, 높이와 관련된 것들 모두를 정비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동봉(東峰)은 전망대라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시원스레 조망(眺望)이 트인다. 남동쪽으로 멀리 용문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수원산, 죽엽산 등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 산줄기가 서남쪽으로 가늠되는 등 전망(展望)이 좋다.

동봉 정상

 

 

동봉에서 서봉으로 이어지는 700m 정도의 능선은 굴곡(屈曲)이 거의 없는 밋밋한 능선이다. 능선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군락(群落)을 이루며 흐드러지게 피어 꽃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봄기운에 취해 도착한 서봉은 조금 전에 지나온 동봉만은 못해도 제법 널따란 공터로 이루어졌다. 봉우리 한 가운데에는 높이를 935.5m로 표기한 커다란 정상표지석이 서있고, 그 옆을 예사롭지 않은 이정표(하산길(신선대, 무지치폭포) 2.43Km)/ 동봉(절고개)/ 망경대(2코스)) 지키고 있다. 포천시에서 세운 이정표인 모양인데, 가평군 방향의 하산길은 거리표시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矛盾)은 가평군에서 세운 이정표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가평군에서 설치한 이정표도, 하나같이 포천시로 내려가는 길은 방향표시만 되어있지 거리표시가 없는 것이다. 인근 지자체(地自體)간의 불협화음(不協和音)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서봉 정상

서봉에서 바라본 동봉

 

 

서봉에서 다시 동봉으로 돌아와 하산을 서두른다. 절고개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나무계단으로부터 시작된다. 계단에서 서봉의 전모(全貌)가 가장 잘 조망되니, 무작정 내려서지 말고 풍광(風光)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내려서고 볼 일이다. 계단의 아래에는 등산객들을 위해 나무평상(平床)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운악산 정상 160m/ 하판리 3.19Km, 현등사 1.48Km/ 포천시 대원사). 포천방향의 대원사로 가려면 오른쪽으로 내려 가야하고, 절고개는 곧바로 진행하면 된다.

계단에서 바라본 서봉

 

 

 

절고개를 향해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急傾斜)와 완경사(緩傾斜)가 번갈아 나타나며 고도(高度)를 낮추어 준다. 진달래꽃이 만발한 능선을 잠깐 걷다보면 진행방향에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이고, 그 아래에 전망대(展望臺)가 만들어져 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왼편 능선에 남근(男根)바위가 푸른 숲 사이로 뾰쪽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성기(性器)를 꼭 빼다 박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뾰쪽하게 솟아오른 머리 부분은 참 잘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남근바위

 

 

 

전망대(展望臺)를 지나 조금 더 걷다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안부사거리에 이르게 된다. 바로 절고개이다.(이정표 : 운악산 정상 640m/ 아기봉 2.7Km, 상면 봉수리 3.8Km/ 하판리 2.71Km, 현등사 1Km/ 포천시 대원사) 이곳에서 오른편은 대원사, 곧바로 진행하면 상면 상수리에 이르게 된다. 현등사로 가려면 물론 왼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절고개에서 현등사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기 이를 데가 없다. 내려서기가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너덜지대를 지나면 왼편에 코끼리 바위가 보인다. 코끼리의 이마와 코 부분인데, 실물(實物)을 쏙 빼다 닮았다. 코끼리 바위를 지나면 길은 바윗길로 변한다. 험하거나 그렇다고 높지도 않은데, 아까 산을 오를 때 보다 더 조심스러운 것은 왜일까? 안전(安全)시설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조심하면 사고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코끼리바위

 

 

급경사(急傾斜) 너덜지대는 물기 한 점 없이 메마른 계곡을 건너면서 평평해진다. 그리고 얼마 후에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 부도탑(浮屠塔)이 보이는 곳으로 진행하면 현등사, 그냥 곧바로 주차장으로 가고 싶다면 오른쪽 길로 내려서면 된다.(이정표 : 하판리 안내소 1.85Km/ 현등사 150m/ 운악산 정상(절고개 방향) 1.5Km)

 

 

현등사 방향으로 진행하면 잠시 뒤에 높다란 축대(築臺) 위에 세워진 고색창연(古色蒼然)한 건물이 보인다. 천년고찰로 알려진 현등사이다. 왼편에는 누각(樓閣)처럼 생긴 전각(殿閣)이 보이는데 단청(丹靑)도 입히지 않는 것이 아마 새로 짓고 있는 모양이다. 축대 위로 올라서면 대웅전을 대신하고 있는 극락전이 보이고, 그 뒤에 늘어선 노송(老松)들이 눈을 즐겁게 해준다. 노송 너머 멀리 운악산의 화강암 영봉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

* 현등사(懸燈寺), 신라 법흥왕(法興王) 때에 포교를 위해 인도에서 온 승려 마라하미(摩羅訶彌)를 위해 창건했다. 고려 희종(熙宗) 때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재건하면서 현등사라 불렀다고 한다. 현존 건물들로는 극락전(極樂殿)과 보광전(普光殿), 지장전, 삼성각 등이 있는데, 국보(國寶)급 문화재(文化財)는 없고,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3호인 삼층석탑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7호인 지진탑이 있다. 보조국사가 폐허화한 불우(佛宇)를 발견했을 때, 불우는 비록 황폐했지만 석등(石燈)은 여전히 밝게 비치고 있었으므로, '현등(懸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산행날머리는 현등사앞 주차장(원점회귀)

현등사 경내(境內)를 벗어나려면 가파른 108계단을 내려선 후 계단의 끝을 장식하고 있는 불이문(不二門)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 불이문은 절에 이르는 3문 중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으로, ‘불이(不二)’는 진리(眞理)는 본래 하나라는 뜻으로 붙인다고 한다. 이 문을 통해야만 불교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에 이르기 때문에 해탈문(解脫門)이라고 한다. 108계단을 내려와 불이문을 통과했으니 그럼 난 해탈(解脫)을 했다는 말인가?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현등사에서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길은 흙길과 시멘트포장 길이 반반인 숲길이다. 현등사계곡이 오른편에 나타났다 왼편에 나타났다가를 반복하고 있다. 길가에 민영환바위의 내력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보이나, 글씨는 끝내 발견하지 못하고 걸음을 재촉한다.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를 즐기며 걷다보면 저만큼에 일주문이 보이고, 매표소를 벗어나면 또다시 세속의 한복판으로 들어서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