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산(425.7m)
산 행 일 : ‘21. 6. 1(수)
소 재 지 :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및 신동면
산행코스 : 강촌역→강촌하수처리장→방곡전망대→벌목지대→방아산→임도→풀무골→방곡1리(바일마을)→강촌역(소요시간 : 8.17km/ 3시간 20분)
함께한 사람들 : 산과 하늘
특징 : 춘천(강촌)에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산. 높지도 않은데다 육산이라서 산세가 보잘 것 없다. 방곡전망대와 벌목지대 말고는 조망까지도 트이지 않는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선지 이정표 등의 안전시설은 물론이고 등산로는 아예 손을 댄 흔적조차 없었다. 때문에 산행을 하는 동안 잡목과 가시넝쿨에 할퀴거나 찔리고 하다못해 따귀 서너 대 쯤은 맞을 각오를 해야만 한다. ‘봉 따먹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부러 찾아올 필요가 없는 산으로 꼽고 싶다.
▼ 산행들머리는 경춘선 전철 ‘강촌역’(춘천시 남산면 방곡리)
최군의 배려로 모처럼의 근교산행을 했다. 지방선거일이지만 사전투표로 대체하고 산행이나 하자는 것이다. 하나 더. 집사람의 불편한 무릎을 감안하여 산행거리가 짧은 자그마한 산을 골랐다. 그것도 미답(未踏)의 산으로. 그렇게 선정된 산이 강촌역 근처의 ‘방아산’이다.
▼ 강촌역을 들·날머리로 삼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정상과 임도 등에서 갈려나가는 길(희미하지만)이 보였지만, 이정표는 물론이고 지도에조차 표기가 되어있지 않아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 1번 출구(하나뿐이다)로 빠져나와 동쪽 방향, 그러니까 강촌유원지 쪽으로 걸으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반대 방향은 구곡폭포관광지와 봉화산으로 연결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 첫 번째 사거리에서 만난 이정표는 강촌역 주변의 가볼만한 곳을 잘 알려준다. 우리가 가고자하는 곳은 ‘방곡전망대’, 하지만 안내도는 길로 연결시키지는 않았다. 방향만 알려줄 테니 대충 알아서 가라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저 ‘Propose Stair’는 뭘 의미하는 걸까?
▼ ‘Propose Stair’는 전철역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이르는가 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꽃길’이 ‘Propose Stair’란 부제를 달았다. 하트모양의 문 아래는 계단을 ‘YES’와 ‘NO’로 나누어 놓았다. 세상은 온갖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그렇다고 사랑까지 따라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 사거리에서는 직진이다. 강촌은 ‘MT의 메카’로 꼽힌다. 아니 반강제인 MT가 꼭 아니더라도 젊은이들은 이곳을 스스럼없이 찾아온다. 오죽했으면 강촌역이 ‘사랑과 꿈과 낭만이 있는 경춘선’으로도 모자라 역사 전체를 ‘사랑’으로 도배해 놓았을까. 그래선지 주변은 온통 ‘액티비티’로 먹고사는 회사들 일색이었다. ‘산악오토바이’말고도 버기카, 깡통열차 등 액티비티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장비들을 진열해놓았는데, 서바이벌 게임도 가능하단다.
▼ 액티비티의 왕은 단연 ‘버기카’가 아닐까 싶다. 사막(페루 여행 때 나스카라인을 보러가던 도중 이카사막에서 타봤는데 스릴이 장난이 아니었다)만은 못해도, 냇가 모래사장과 자갈밭 등을 달리다보면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은 사륜오토바이인 ‘ATV’이다)
▼ ‘캠핑카’도 꽤 많이 보였다. 색다른 숙박을 원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 탐방로는 ‘바일교’를 건넌다.
▼ ‘강촌천(江村川)’은 남산면 수동리에서 시작해 북서방향으로 흐르다가 북한강으로 유입되는 길이 6.8km의 하천이다. 특별히 내세울만한 볼거리는 없다.
▼ 다리를 건너자 새로 건설된 ‘403번 지방도’가 나온다. 하지만 가드레일을 둘러 진입을 막고 있었다. 등산로로 연결되는 도로(강촌하수처리장 진입로)가 맞은편으로 나있는데도 말이다. 이때는 본능대로 움직이는 게 옳다. 그냥 가드레일을 넘어버리는...
▼ 가드레일을 넘고 나서도 문제였다. 횡단보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이 근처에는 횡단보도 자체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그나마 차량통행이 뜸해서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 ‘강촌하수처리장’의 진입로를 따라 올라간다.
▼ 200m쯤 올라갔을까 등산로가 나타났다. 산자락으로 계단이 놓여있는 데다 이정표(전망대 0.2㎞)까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초입의 저 돌탑은 뭘 의미하는 걸까? 안전 기원용이 아닌 조경용이었으면 좋겠다.
▼ 산길은 가파르다. 아니 무지막지하게 가팔랐다. 시작부터 기를 죽이고 싶었던가 보다. 통나무계단이라도 놓여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그렇다고 너무 기죽지는 말자. 속도만 조금 떨어뜨리면 그만이니 말이다. 그러면 주변 풍광을 살펴보는 여유도 생길 것이다. 이때 붉게 익어가는 산딸기가 넝쿨째 눈에 들어온다.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인...
▼ 저 움막은 대체 누가 살고 있을까? 설마 무속인(巫俗人)? 에이~ 저 가냘픈 몸매의 방아산이 무속인에게까지 나눠줄 기(氣)를 갖고 있기나 할까?
▼ 산길은 고집쟁이였다. 경사가 누그러지지를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가팔라졌다.
▼ 그 가파름은 통나무계단으로도 배겨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왔다갔다 ‘갈 지(之)’자를 쓰고 나서야 겨우겨우 고도를 높여간다.
▼ 산으로 들어선지 15분, 악전고투 끝에 올라선 능선에는 벤치가 놓여 있었다. 올라오느라 고생했으니 잠시 쉬어가라는 모양이다.
▼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자 전망 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아까 역전 사거리에서 눈여겨봤던 ‘방곡전망대’이다.
▼ 전망대에 서면 내로라하는 주변의 산들이 이곳을 주시한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강촌과 강선봉. 오른쪽 아래는 옛 강촌역, 지금은 ‘레일 바이크’ 역으로 사용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아서라! 요즘은 1년마다 바뀐단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여유조차 사라져버렸다던 어느 시인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
▼ 시선을 조금 옮기자 ‘봉화산’이 나도 있단다. 곁에 있던 최 君이 그 옆의 봉우리 이름 하나를 들먹이더니, ‘미답’이라며 나중에 별도로 일정을 잡아보겠다고 했는데 무슨 산인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칠십 줄에 들어서면서 건망증이 부쩍 심해졌다.
▼ 삼거리로 되돌아오니 아까는 무심코 지나쳤던 이정표(하수처리장 0.2㎞/ 전망대)가 반긴다. 방아산 유일(아니 들머리에도 세워져있었으니 ‘有二’다)의 이정표다. 그런데도 방아산 방향이 텅 비어있는 게 아닌가. 희미하게나마 길이 나있는데도 말이다. 방아산이 가볼만한 산이 아니라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 산길은 이제 능선을 탄다. 인적이 드물어선지 능선이 온통 잡목과 넝쿨식물로 한 가득이다. 때문에 길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길의 흔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 할퀴거나 찔리는 건 기본, 싸대기 서너 대쯤은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이럴 때는 그저 능선이 부드럽고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다는데 위안을 삼아가며 걸어볼 일이다. 하지만 그 오르내림이 반복해서 이어지기 때문에 은근한 끈기를 요구한다.
▼ 좌회전, 우회전, 직진 같은 설명은 하지 않겠다. 이정표 등의 시설물은 물론이고, 뚜렷한 지형지물조차 없으니 어디서 방향을 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저 능선의 방향을 확인 한 다음, 길의 흔적을 찾아가며 진행할 따름이다.
▼ 가끔은 요런 코팅지가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 바닥에 떨어져서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그건 그렇고 울창한 숲이 따가운 햇살을 막아준다. 하지만 시야까지 막아버린 탓에 나무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때문에 가야할 방향을 찾는 게 만만찮다.
▼ ‘앗! 너희들 거기서 뭐하는 거야?’ 하지만 집사람은 그걸 보고 낯붉히는 내가 더 문제란다.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나?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 오늘도 난 무학대사에게 한수 배운다.
▼ 60~70년대 산림녹화용으로 각광받던 ‘싸리나무’다. 개구쟁이 시절에는 회초리용으로만 알았고, 더 자라서는 빗자루용으로만 여기던 나무이기도 하다. 그런 싸리나무가 자줏빛 꽃망울을 활짝 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작은 꽃이 올망졸망 달린 모양새에 반해 카메라를 들이밀어 봤다.
▼ 길을 인도하는 최군의 진행 속도가 무척 더디다. 길 찾기가 힘들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집사람의 무릎을 배려해 일부러 천천히 걷고 있을 것이다. 아니 바쁘게 살아온 일상을 산에서까지 적용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겠다. 주 5일을 죽어라고 고생했으니 휴일만이라도 자신을 보듬고 다독여야지 않겠는가.
▼ 이마에서 흘린 땀만큼, 아니 헉헉거리며 내뱉은 거친 숨결만큼 새로운 기운이 들어왔나 보다.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코가 뻥 뚫리고 목이 편안해진다. 이런 게 바로 ‘피톤치드’의 효능일 것이다. 참! 길이 헷갈릴 때는 주변을 잘 살펴보자. 자주는 아니지만 이런 리본들이 눈에 띄기도 할 것이다.
▼ 가끔은 요런 비탈길을 만나기도 한다. 아픈 무릎 때문에 쩔쩔매는 집사람보다, 이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최군의 시선이 더 애처롭다. 이런 게 바로 산악인의 우정?
▼ 산은 굴곡진 인생과 같아 오르내림이 반복된다고 했다. 그러니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면 이에 상응하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날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일 것이다. 그래 쉬운 산이 어디 있으랴. 조금 편한 산은 있을지라도 쉬운 산은 결코 없다는 얘기도 있지 않겠는가.
▼ 산으로 들어선지 1시간 50분. 집사람이 지쳤나보다. 최군은 또 이를 알아차렸고... 앞서가던 두 사람이 배낭을 벗고 앉는다. 삼복더위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는 6월의 열기를 산들바람이 식혀준다. 무더위까지는 아니어선지 금세 시원해진다. 덕분에 우린 이곳(어딘지는 모르겠고, 높이인 ‘352m봉’으로 해두자)에서 30분이나 쉬어갈 수 있었다.
▼ 잠시 후 벌목 지대를 만났다. 방아산에서 가장 멋진 ‘뷰’를 보여주는 곳이다. 벌목(伐木), 산으로서는 아픔이겠지만 이를 찾는 인간들에게는 눈의 호사를 선사한다.
▼ 진행 방향에는 오늘의 주인공인 ‘방아산(맨 왼쪽 봉우리)’이 놓여있다.
▼ 319m까지 떨어졌던 능선은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독야청청 소나무’라고 했던가? 민둥산으로 변한 능선에 살아남은 소나무 세 그루가 외롭다. 외로움에 지친 두 그루는 이미 숨이 끊어졌고.
▼ 뒤돌아볼라치면 삼악산의 준봉들이 헌걸차게 솟아오른다. 삼악좌봉, 등선봉, 청운봉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강선봉을 한가운데 놓고 왼편은 검봉산, 오른편은 삼악좌봉이 늘어선다. 창촌농공단지도 눈에 들어옴은 물론이다.
▼ 조금 전 간식 타임을 즐겼던 ‘352m봉’이다. 참! 319m까지 떨어지던 안부에 대한 설명을 깜빡 빼먹을 뻔했다. 오른편 발아래로 나있는 임도를 비탈진 오솔길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 맞은편 능선(해발 389m)에 올라서니 코팅지가 왼쪽으로 갈 것을 지시한다.
▼ 정상으로 가는 길도 여전히 희미했다. 누군가는 ‘적막하지 않으면 산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그렇다면 서울 근교의 산들은 이미 산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그만큼 서울 근교의 산들이 사람들로 붐빈다는 얘기다. 강촌역을 아우르는 삼악산, 봉화산, 검봉산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방아산만은 전자에 속했다. 산행을 마칠 때까지 우리 세 사람 외에는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 5분쯤 더 걸어 오른 방아산(425.7m)은 특별할 게 하나도 없었다. 도톰하게 솟아오른 능산 상의 한 지점이라고나 할까? 거기다 정상석은 물론이고 그 흔한 이정표도 눈에 띄지 않는다. 삼각점(춘천321)만 아니었으면 정상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 정상석이 없는 덕분에 낯익은 리본들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세상의 봉우리란 봉우리는 모두 올라보겠다는 그네들도 이곳을 다녀간 모양이다. 문정남·심용보·김신원... ‘만산회(萬山會)’라는 모임의 이름처럼 1만 산은 기본, 2만·3만을 향해 각자의 산행을 이어가는 분들이다. 횟수에 연연하지 않는 나이지만 지난달에는 ‘문정남’선생의 ‘23,456산 등정(4,500일 산행)’ 기념 산행을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내노라는 산객들은 물론이고, 산을 주제로 시를 쓰는 ‘김운남’시인(저서인 ‘三千山 詩塔을 위하여’를 선물 받았다)과 취재차 나온 ‘월간 山’지 ‘신준범’기자도 함께했었다.
▼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반대편 능선을 탄다.
▼ 이때 시야가 열리면서 봉화산과 검봉산, 강선봉 등 아까 벌목지에서 바라보던 풍경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아니 아까보다 훨씬 더 넓어졌다.
▼ 하산 길, 쏟아지듯 떨어지는 내리막길을 만나기도 한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누군가의 배려로 밧줄이 매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 그렇게 10분쯤 걸어 임도에 내려설 수 있었다. 어디서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하산을 시작한다.
▼ 앞서가던 두 사람이 길가 풀숲을 뒤지는 게 보인다. 뭔가 대단한 것을 만났다는 얘기일 것이다.
▼ 집사람의 표현에 의하면 숫제 ‘산딸기 밭’이다. 산딸기는 복분자(覆盆子)라 불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또 이걸 장복하고 소변을 보면 오강이 뒤집힌다고도 했다. 그래서일까? 집사람이 딴 산딸기가 그녀의 입보다는 내 입으로 더 많이 들어온다. 아무렴 어떻겠는가. 새콤달콤한데다 정력까지 증진시켜준다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 따고 또 따도 산딸기는 줄어들지를 몰랐다. ‘산딸기 잼을 만들어도 되겠다.’는 집사람의 호들갑이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이해가 갈지 모르겠다.
▼ 임도는 무척 고왔다. 시멘트 포장구간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흙길, 그것도 돌멩이가 없는 보드라운 흙길이 계속된다.
▼ 걷는 게 편하면 눈이 자유로워지는 법이다. 그러자 각양각색의 들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고들빼기도 그중 하나다. 쌉쌀한 맛이 일품인 나물로만 알고 있었는데, 저렇게 예쁜 꽃을 피우다니 이 얼마나 신기한가.
▼ 이왕 올리는 김에 ‘붓꽃’도... 서양 이름인 ‘아이리스’는 무지개란 뜻을 품는다. 그러니 저 꽃에서, 비 내린 뒤에 보는 무지개처럼 ‘기쁜 소식’이 찾아올 것을 기대해도 좋겠다.
▼ 요건 국화과의 여러해살이 풀인 ‘마가렛’이다. 데이지라 생각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귀가 후 검색해보니 이름도 생소한 ‘마가렛’이란다. 꽃말은 ‘진실한 사랑’, 집사람을 향한 내 마음이라고나 할까?
▼ 봄꽃이 져간다고는 하지만 무공해 산골에 벌통 하나 없겠는가. 그런데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올 봄이던가? 언론을 떠들썩하게 달구었던 ‘꿀벌 연쇄 실종사건’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
▼ 임도로 내려선지 40분. 첫 민가를 만났다. 아니 재래식 참숯공장인데, 숯을 굽고 난 가마를 찜질방으로 활용하는 모양이다.(안내판은 ‘강촌 전통숯가마·찜질’이라 적고 있었다) 원적외선 찜질도 하고 끝난 후에는 삼겹살 파티까지 할 수 있다니 한번쯤 들러볼 만도 하겠다. 우리 일행이야 닭갈비에 더 관심이 많았지만...
▼ ‘드문드문’이지만 민가가 모이기 시작한다. 동구 밖 느티나무의 거대한 몸집은 작지만 마을의 역사까지 작지는 않다는 걸 알려준다. 맞다. ‘풀무골’이란 지명의 유래가 된 ‘대장간’이 오래 전부터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까 그 찜질방이 마을의 역사를 물려받은 셈이 된다. 숯가마에 불을 지필 때 지금도 ‘풀무’를 사용할지 누가 알겠는가.
▼ 탐방로는 이제 농로를 따른다. 5일 후면 망종(芒種), 모내기가 시작된다는 계절이다. 하지만 부지런한 농부들은 이미 모내기를 끝마쳤다.
▼ 모내기가 끝난 논은 이제 오리의 놀이터가 됐다. ‘오리 농법’의 한 단면일지도 모르겠다. 논에 오리를 방사하여 잡초를 방제하고 오리 배설물을 비료자원으로 활용하는 농사법 말이다. 친환경 쌀 생산은 물론 오리고기로 부수입까지 올릴 수 있단다.
▼ 15분쯤 더 걸어 도착한 ‘방곡1리(方谷1里, 버스정류장 뒤로 마을회관이 보인다)’, 그런데 마을 표지석은 ‘바일마을’로 적고 있었다. 바일? 이 마을의 옛 이름이라는데, 대체 무슨 내력을 지녔기에 저런 생뚱맞은 이름이 생겼을까?
▼ 이후부터는 301번 지방도를 탄다. 차선이 여섯 개나 되지만 인도가 따로 만들어져 있어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음미하며 걸어볼 일이다. 강선봉과 등선봉, 청운봉 등 서슬 시퍼런 암릉들이 그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으니 말이다.
▼ 출발지에서도 얘기했듯이 강촌은 대학생들의 MT장소로 유명하다.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액티비티 시설이 많이 들어설 건 어쩌면 당연. 42m의 높이라는 저 번지점프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6년 전인가?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14,15층 높이의 저 번지점프대에서 그대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었다. 5m 깊이의 물로 떨어져 다행히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 날머리도 강촌역
사랑과 낭만으로 특화된 ‘강촌역’은 강가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하지만 경춘선이 복선화되면서 이제 강촌이 아니라 산촌으로 옮겨졌다. 강촌역에 가까워졌는데도 그 유명한 ‘강촌유원지’가 코빼기도 안 보이는 이유다. 그럼 허기진 우리의 배는 이디서 채워볼 까나? 그건 그렇고 오늘은 8.17km를 3시간 20분에 걸었다. 산행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빨리 걸은 셈이다. 반면에 그만큼 산길이 편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 유원지까지 내려갈 필요는 없었다. ‘강촌 우미닭갈비’, 저렇게 예쁜 포토죤까지 만들어놓았는데 더 찾아봐야 뭐하겠는가. 이집의 메인메뉴인 ‘숯불닭갈비’는 술안주로 제격이었는데, 매콤한 닭갈비를 ‘치즈 퐁듀(cheese fondue)’에 찍어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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