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63코스(천북굴단지 - 궁리항)
여 행 일 : ‘24. 11. 9(토)
소 재 지 : 충남 보령시 천북면 및 홍성군 서부면 일원
여행코스 : 천북굴단지→홍성방조제→모산도공원→남당항→남당노을전망대→어사항→속동해안공원→궁리항(거리/시간 : 11.2km, 실제는 13.33km를 3시간 2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63코스를 걷는다. 8개로 이루어진 서천·보령·홍성 구간(56-63코스)의 마지막 코스이기도 한데, 홍성군의 해안선을 따라 북진하는 여정이다. 난이도는 별이 2개(전체 5개), 수월한 코스로 분류된다.
▼ 들머리는 천북굴단지 광장(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에서 내려와 갈산면소재지(상촌리)로 들어온다. 갈산교차로에서 와룡로(남당리방면)를 타고 4km, 이호삼거리에서 40번 국도(남당·천북방면)로 옮겨 12km쯤 내려오면 천북굴단지에 이르게 된다. 서해랑길(홍성 63코스) 안내도는 ‘굴단지광장’에 설치되어 있다.
▼ ‘천북굴단지’에서 홍성군의 서쪽 해안선을 따라 북진, ‘궁리항’까지 가는 11.2km짜리 여정으로, 남당항, 노을전망대, 홍성타워 등 곳곳에 볼거리가 널려있다. 도중에 들르는 포구에서 맛볼 수 있는 싱싱한 생선회는 여행의 또 다른 재미, 특히 어사항에서 구한 ‘칠게 튀김’은 별미 중의 별미였다.
▼ 광장은 지난주에 끝난 ‘굴 축제’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놓고 있었다. 천북면 지역에서 생산되는 굴의 뛰어난 맛을 전국에 알리기 위해 지난 2001년부터 열어온 축제이다. 굴은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수확하는 것을 최고로 치는데, 출하 초기에 맞추어 축제를 연다고 보면 되겠다.
▼ 천북항. 며칠 전, KBS-2TV ‘생생정보통’에서 이곳 천북굴단지가 소개됐었다. 어부는 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고, 그물망에 가득 든 튼실한 굴을 건져내며 웃음꽃을 활짝 피웠었다. 하나 더. 새벽이면 굴세척과 선별작업으로 분주한 이색적인 풍경과도 마주할 수 있단다.
▼ 10 : 23. 홍성방조제를 따라 북진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둑 위로 국도 40호선(홍보로)이 지나간다. 도로 양옆으로 인도를 따로 내놓았음은 물론이다.
▼ 천수만은 천북면 어민들의 보물 창고다. ‘바다의 보석’이라는 석화(石花)를 무럭무럭 키워내니 말이다. 서해의 갯벌과 만나 찬바람을 맞으며 자란 ‘천북 굴’은 탁월한 품질을 자랑한단다. 식감이 쫄깃쫄깃하고 향이 강해 보령 9미 중 하나로 꼽힌다.
▼ 오른쪽은 방조제를 막으면서 생긴 ‘홍성호’이다. 풍광이 뛰어난데다 붕어나 잉어의 입질이 좋아 낚시꾼들이 발길이 잦은 곳이다. 반면에 버려진 쓰레기와 불법어구로 인해 환경오염이라는 몸살을 앓고 있지만.
▼ 10 : 34. 홍성에서의 첫 만남은 ‘수룡항’이다. 포구에는 해양경찰의 ‘수룡동파출소’도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수룡동’마을은 홍성호의 안쪽 깊숙이에 있다. 그러니 홍성방조제로 인해 바닷길이 끊긴 어민들을 위해 새로 조성한 항구일 것이다.
▼ 이어서 ‘홍성교’를 건넌다. 홍성방조제는 ‘모산도’를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다. 배수갑문은 그중 남쪽 방조제의 북단에 위치한다. 그 배수갑문에 놓인 다리가 ‘홍성교’이다.
▼ 10 : 40. 서해랑길에서 살짝 비켜나있지만 ‘모산도(茅山島)’의 꼭대기에 올라가보기로 했다. 조망의 명소이니 꼭 들러보라던 지인의 권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보너스로 ‘홍성방조제준공탑’도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 ‘홍성교’에서 150m쯤 북진하다보면, 도로변에 쳐놓은 철책을 1m쯤 띄운 다음 사철나무 숲 사이로 길을 만들어놓았다.
▼ 10 : 43. 지인의 말대로 산마루에는 전망대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그만큼 조망에 자신이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이곳은 모산도(茅山島), 이름처럼 산으로 이루어졌고 이곳은 그 꼭대기다. 하지만 고도계는 기껏 42m를 찍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주위가 제로 레벨이어서 사방으로 시야가 툭 트이는 것이다.
▼ 방조제 끝에는 최근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다는 ‘천북 굴단지’가 놓여있다. 이를 가운데 두고 홍성호와 천수만이 한꺼번에 펼쳐진다.
▼ ‘홍성호’는 금리천(錦里川)의 하구역에 둑을 쌓아 만든 담수호이다. 아름다운 호수로 입소문을 탔지만 아쉽게도 역광이 망쳐버렸다. 참고로 금리천은 은하면(홍성군) 장곡리에서 발원 금국리·학산리·금곡리(결성면)를 지나 성남리에서 서해로 합류하는 길이 7.2km의 지방하천이다.
▼ ‘방조제준공탑’. 1991-2001년, 보령·홍성지구 대단위 농업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보령방조제와 홍성방조제를 쌓았다. 이로 인해 만들어진 인공호수가 보령호와 홍성호이다. 이곳이 홍성인데도 ‘보령·홍성방조제준공탑’인 이유다. 참! 옆에 풍력발전기도 세워져 있었으나 얘깃거리가 없어 생략했다.
▼ 진입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김자 결성현감 승전지비(金滋 結城縣監 勝戰址碑)’를 만났다. 이곳 모산도(혹은 모산포)는 왜구의 노략질이 잦은 곳이었단다. 빗돌은 조선 태종 8년(1408) 결성현감 김자가 왜구를 크게 물리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빗돌에 적힌 결성현은 지금의 홍성군 결성면이다. ‘홍성’이라는 지명은 홍주와 결성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 10 : 51. 다시 만난 국도.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간다. 바닷가를 따라 ‘모산도공원’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 널찍한 주차장 앞 솔숲에 쉼터 겸 정자가 놓여 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가 아른거린다. 예전 이곳은 ‘모산도(茅山島)’라는 섬이었다. 금리천이 황해와 만나는 지점에 방조제를 쌓으면서 육지가 되었다.
▼ 공원에서의 조망도 빼어난 편이다. 천북굴단지에서 남당항까지 천수만의 너른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천북이 굴 구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다면, 반대편에 위치한 남당항(사진)은 대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 10 : 54. 다시 길을 나선다. 이번에는 홍성호의 북쪽 방조제이다. 홍성방조제는 남·북 방조제를 합칠 경우 1,856m나 된다. 올망졸망한 섬들로 수놓인 천수만이 없었더라면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긴 방조제다.
▼ 천수만은 세계적 철새 도래지이다. 기러기·독수리 등 다양한 철새들이 찾아오는 중요한 생태적 거점으로 알려져 있다. 저 고니(?) 무리는 그중 선발대일까?
▼ 11 : 02. 홍성방조제는 북단에 있는 ‘신리교차로’에서 끝을 맺는다.
▼ 홍성군은 이정표를 조금 다르게 운용하고 있었다. 종점과 시점을 중심으로 인근의 주요 지점을 끼워 넣던 다른 지자체들과는 달리, 시·종점은 하단의 지도에만 표시하고 날개부분에는 주요 지점들을 적어 넣었다.
▼ 이후부터는 ‘남당항’을 바라보며 간다. 도로는 ‘홍보로’에서 ‘남당관광로’로 바뀐다.
▼ 이때 천수만에서 ‘죽도’가 떠오른다. 5년도 더 전에 다녀왔지만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한 섬이다. 이름처럼 대나무가 많았던 섬, 두 개의 섬이 육계사주(陸繫砂洲)로 연결되어 있던 섬이다. 당시 기억을 잠시 빌려보자. <전망대에 오르면 하늘이 반, 바다가 반이다. 높이에 비해 전망이 시원하다는 얘기다. 천수만에 동동 떠있는 죽도는 자신보다 작은 11개의 섬을 거느린다. 올망졸망 새끼 섬들이 부러운 듯 그리운 듯 죽도를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일부 섬은 물이 들고 남에 따라 가느다란 모래 띠로 이어졌다 끊어지기도 한단다. 이왕에 시작했으니 한걸음 더 나가보자. 본섬의 서쪽에는 큰달섬과 작은달섬, 충태섬이 내려다보이고, 북쪽 방향으로 띠섬(모도), 멍대기(명덕도), 오가리(큰오가도와 작은오가도), 전재기(전도) 등이 늘어서 있다. 또, 남쪽 끝섬으로는 지마녀, 움마녀, 제일 북쪽 섬으로 꼬장마녀 등이 있다. 마녀의 뜻은 만조시간이 긴 섬이라는 의미이며, 꼬장은 ‘끝장’ 즉, 제일 북쪽의 끝을 의미한단다.>
▼ 시선을 조금 옮기면 육지의 맨 끝을 장식하고 있는 ‘꽃섬’이 눈에 들어온다. 지인으로부터 꼭 들러보라던 명소 중 하나이다.
▼ 11 : 14. 작은 동네(‘소섬마을’일 것이다)를 횡단하자 또 다시 바다가 나왔다. 왼쪽 끄트머리에 있는 ‘꽃섬’부터 일단 둘러보기로 했다.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빌던 당산(堂山)이었던 곳이다.
▼ ‘당산’이란 이름에 걸맞게 굵직한 팽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제단 등 제사를 지낸 흔적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 탐방로는 이제 바닷가를 따라 북진한다. 물 빠진 갯가를 따라 걷는 해안길은 정면에 남당항을 놓고 길을 이어간다.
▼ 왼쪽으로는 천수만이 드넓게 펼쳐진다. 천수만(淺水灣)은 안면도와 충청남도 해안선에 둘러싸인 만이다. 서산시·보령시·태안군·홍성군 등 4개 시군에 접하고 있으며 항구도 수십 개에 이른다.
▼ 11 : 27. ‘남당항(南塘港)’에 이른다. 서부면 남당리에 있는 국가어항으로 ‘남당’이란 지명은 조선 영조 때 학자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이 낙향하여 이곳에 살게 되면서 그의 호에서 따왔다고 한다. 송시열·권상하의 학통을 이어 정통 주자학을 계승·발전시켰으나, 변화하는 시대(당시는 실학자들의 사회개혁론이 제기되던 시기였다)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해양분수공원’이다. 남당항의 거대한 광장 한가운데 음악과 분수쇼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바닥 분수와 형형색색 무지갯빛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여름철이면 저곳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단다. 바닥분수에서 팡팡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물줄기를 흠뻑 맞은 아이들이 사방팔방 물총을 쏘아대며 물놀이를 즐긴단다.
▼ 국내 최초의 ‘해양형 네트 어드벤처’라고 한다. 팡팡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면 두 눈에 천수만이 가득 담긴다나? 튀어 올라 가까운 죽도도 보고, 한 번 더 높이 튀어 오르면 저 너머의 안면도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안에서는 아이들 두엇이 탄탄한 그물네트를 발판삼아 통통 튀어 오르고 있었다. ‘위아래 위위아래’ 박자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이 신기롭기까지 했다.
▼ 길은 방파제에 기대듯 내놓았다. 바닥을 형형색색의 꽃들로 채워 넣어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한다. 하지만 분수 주변에 있다는 트릭아트는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아니 있는 줄도 몰랐다. 일류의 포토죤이라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I ♡ NAMDANG’. 이렇게 공들여서 포구를 꾸몄으니 사랑받을 만도 하겠다.
▼ 작은 광장도 눈에 띈다. 방파제에 잇댄 작은 공간을 만들었으나, 힘들게 만들었을 그 공간은 여백으로 남겨두었다. 그 공간을 채우는 것은 여행자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비우듯 채워져 있는 공간에서 문득 도(道)까지 떠올렸다면 나만의 오해일까?
▼ 감각적인 멋이 뚝뚝 떨어지는 새조개 형상의 의자. 평생을 꽃띠로 살고자 하는 집사람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 정박되어 있는 배는 별로 없지만, 남당항은 현제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지 어선이 70척 이상이어야 지정받을 수 있다니, 천수만에서 가장 큰 어항으로 보면 되겠다.
▼ 홍성군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홍성 서해랑길 63코스 걷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남당항 분수공원에서 출발 5km를 왕복하는 행사인데, 반려견과 함께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참가자에게는 기념품까지 준다고 한다.
▼ 길은 자연스레 남당항 수산시장으로 이어진다.
▼ 상가는 횟집 일색이다. 활어회에 해물탕, 칼국수 등 메뉴도 다양하지만 ‘새조개’를 팔지 않는 집은 찾아볼 수가 없다. 하긴 ‘새조개 축제’까지 열리는 곳이니 어련하겠는가. 축제 때는 살이 통통하고 맛이 좋기로 이름난 천수만 새조개를 맛보러 전국 각지에서 미식가들이 몰려온단다.
▼ 상가 앞 조형물. 카메라를 들이대는데 상인 두엇이 담소를 나누다가 뭐처럼 생겼냐며 물어온다. ‘꽃게 발?’ 땡! 하며 도리질을 하는 그녀. 그리고는 남당항을 유명하게 만든 게 ‘새조개 축제’였다고 알려준다. 맞다. ‘남당항’은 겨울 새조개 고장의 대명사로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 10분 거리에 있는 ’죽도‘로 들어가는 여객선 선착장. 남당항에서 죽도까지는 40인승 홍주호가 하루 5회 왕복한다. 토·일요일과 공휴일엔 오전 10시 한 차례 추가 운항하고, 죽도에서 나오는 마지막 배는 오후 5시다.
▼ 11 : 43. 수산시장 뒤(이정표 : 종점까지 6.7km)에 이르면 남당항 구경은 끝난다. 활처럼 바다로 휘어나간 방파제 입구이기도 한데, 서해랑길은 또 다시 바닷가를 따라 북진한다. 고운 모래가 깔려있는 해안은 웬만한 해수욕장은 저리가라다.
▼ 홍성에는 해수욕장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4년 전쯤 거친 돌부리만 가득했던 저곳에 많은 모래를 쏟아 부어 인공해변을 만들었단다. 모험이라 할 수 있는데 저렇게 모래가 유실되지 않고 남아있으니 성공한 셈이다. 오히려 바닷물이 드나든 자국까지 부드럽게 나있는 게 천연의 모래사장이 전혀 부럽지 않게 됐다.
▼ 11 : 53. ’남당 노을전망대‘이다. 바다로 휘어진 길모퉁이에서 딱 그 모양대로 곡선을 그리며 돌출된 해상 전망대다. 금빛 모래사장 위로 붉은색 다리를 놓고 그 끄트머리에 전망대를 들어앉혔는데, 해질 무렵이면 천수만 바다와 물기 촉촉한 갯벌까지 한꺼번에 붉은 기운에 휩싸인다고 했다.
▼ 옆에서 본 노을전망대. 길이 102m에 높이가 13m나 되는 다리는 곡선의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한다.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있어 걸을라치면 마치 하늘과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 바다 품은 작은 섬 그러나 천지가 선경인 섬, 죽도. 그 ’죽도‘를 ’죽도‘록 사랑하란다. 맞다. 내가 기억하는 죽도는 사랑받기에 충분한 섬이었다. 참고로 죽도는 홍성군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일한 섬이다. 천수만(淺水灣)의 고요한 물결 위에 떠있 듯 자리한 본섬을 11개의 꼬맹이 섬들이 호위하는 모양새인데 그 자태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덕분에 낭만과 자연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또 다른 기억을 소환해보자. 죽도는 눈을 들이대는 곳마다 세외선경이 펼쳐졌었다. 꾸며놓은 솜씨도 최고였다. 그중에서도 옹팡섬·동바지·담깨비 등의 조망대에서 만난 캐릭터들은 백미였다. 최영·한용운·김좌진 등 홍성이 낳은 인물들을 모셨다. 그중에서도 ‘담깨비조망대’에서 만난 김좌진(金佐鎭, 1889-1930) 장군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본군을 대파했던 청산리대첩의 주역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군이 아닌 공산주의자 박상실(朴尙實)의 흉탄에 맞아 순국했다. 나라보다 이념을 더 중요시하는 공산주의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하는 확실한 이유일 것이다.
▼ 전망대를 빠져나와 다시 북진한다. 어느 기자는 이 구간을 ‘임해관광도로’로 적고 있었다. 그래선지 뷰가 좋은 카페나 음식점이 유난히도 많이 눈에 띈다. 이 구간 어디서나 천수만 바다와 그 너머 안면도가 눈에 쏙 들어오기에 가능할 것이다.
▼ 12 : 06. 눈의 호사를 누리며 걷다보면 어느덧 ‘어사항(於沙港)’에 이른다. 천수만에 기대어 살아가는 전형적인 어촌이다. 앞에는 물고기가 많은 천수만이 있고, 주변 모래밭이 넓어 ‘어사’라는 명칭이 생겼단다.
▼ 어사항 초입에서 만난 카페, 젊은이들로 붐비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화려하게 치장된 여느 카페들과는 달리 단순하면서도 넓은 창으로 노을을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 더 특이한 것은 최고의 로큰롤 앨범으로 꼽히는 비틀스의 8집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를 상호로 내건 것이다.
▼ 밖에는 비틀즈의 11번째이자 마지막 음반인 ‘Abbey road’를 사진으로 제작 게시해 놓았다. 비틀즈의 음악 세계로 들어서는 가장 탁월한 시작점이 되어준 마지막 앨범으로 평가받는 앨범이다.
▼ 12 : 09 – 12 : 18. ‘어사항’은 인근 남당항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다. 하지만 이곳 또한 대하집산지다. 새조개도 흔하게 맛볼 수 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온통 ‘칠게’만 들어왔고, 그걸 튀김으로 부탁해서 챙겨왔다. 도반 한 분이 ‘연태 고량주’를 병째로 주겠다는데, 이만한 안주가 또 어디 있겠는가.
▼ 이후부터는 ‘홍성스카이타워’를 전면에 두고 간다.
▼ 12 : 22 - 12 : 51. ‘어사리 노을공원’. 어사항 근처의 바닷가에 위치한 작은 공원으로 산책로와 정자, 전망대, 광장 및 운동시설을 갖추고 있다. 우리에게는 아까 어사항에서 구입한 칠게 튀김에 반주를 곁들일 수 있는 좋은 쉼터가 되어주었다.
▼ 노을공원의 하이라이트는 두 남녀가 행복한 모습으로 소중한 약속을 하는 모습을 담은 ‘조형물(행복한 시간)이다. ’투조‘기법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낮에는 푸른 하늘빛을 담고 저녁에는 노을로 붉게 물드는 남녀의 얼굴을 보여준단다. 연인들이 바다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하늘빛을 담은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존도 만들어놓았다.
▼ 남당항의 노을전망대보다 낮기는 하지만 이곳에도 ‘노을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게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전망대 끝에 또 하나의 대를 세워 시야를 넓혔다. 천혜의 자원인 천수만 노을을 조금 더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 전망대답게 멋진 조망이 펼쳐진다. 천수만과 그 건너 안면도가 은밀한 속살까지 내보여준다.
▼ 진행방향에는 홍성스카이타워가 놓여있다. 그 뒤에서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는 건 ‘궁리항’일 것이다.
▼ 홍성군의 관광안내판은 ‘12경’을 꼽는다. 거기에 5품(한우·김·새우젓·친환경농산물·한돈)과 3미(한우구이·대하구이·새조개 샤브샤브)를 추가하고 있었다.
▼ 12 : 55. 다시 길을 나선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또 하나의 횟집타운이 조성되어 있었다. 생선을 공급해줄 포구도 없는데 말이다. 유난히도 해안선이 짧은 홍성의 특징이지 싶다. 실제 홍성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남당항‘을 얘기하면 금방 ’거기가 홍성이었어?‘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로 바다를 접한 면이 짧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홍성의 해변은 북쪽 궁리항에서 남쪽 홍성방조제까지 약 10km에 불과하다.
▼ 이곳은 저녁노을의 명소. 먹거리에 눈요기를 보태라는 듯, 바닷가에 테라스 모양의 공간을 만들고 식탁까지 배치했다.
▼ 13 : 00. ’어사교(이정표 : 종점까지 4.1km)‘를 건넌다. 어사지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하천을 건너는 다리이다. 어사리를 달려온 서해랑길은 이 다리를 기점으로 ‘거차리’에 바톤을 넘겨준다.
▼ 저것은 현대식 독살? ‘독살’은 해변에 돌담을 쌓아 들물 때 들어온 물고기를 썰물 때 잡는 원시어로 방법이다. 일종의 돌 그물인 셈이다. 그런데 요즘은 부표를 매단 그물이 독담을 대신하는 모양이다.
▼ 서해랑길은 이제 ‘남당항로’를 따라간다. 2차선의 도로변을 따라 자전거길이 잘 나있다.
▼ 앗! ‘화살나무’도 열매를 맺는가 보다. 난생 처음 마주한 상황이니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
▼ ‘연새골 선착장’이 있는 이곳은 400m쯤 되는 해안선을 따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상점이나 펜션이 일절 없는 조용한 해변공원이다. 그러니 삭막한 도로변을 떠나 잠시지만 숲길을 걸어보자.
▼ 해안선을 따라 걷다 보면 멋진 풍차가 반긴다. 근처 숲에는 원두막도 들어서 있다. 가족단위의 피크닉을 즐기기에 딱 좋은 장소로 하겠다.
▼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조금 전 지나온 ‘어사리노을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오른편에는 천수만 놓여있다.
▼ ‘13 : 13. 연새골선착장 진입로를 이용해 남당항로’로 다시 올라왔다. 150m쯤 더 걸으면 바닷가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나나, 우리 부부는 계속해서 도로를 따르기로 했다. 조금 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풍경이 펼쳐질 게 뻔했기 때문이다.
▼ 어민들에게 갯벌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그러니 그 일터로 가는 길은 잘 닦여 있어야만 한다.
▼ 13 : 25. 그렇게 잠시 걸으면 ‘속동해양공원(이정표 : 종점까지 2.5km)’이 얼굴을 내민다. 참! 오다가 만난 ‘두리팜’이란 건물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두리+농장?, 부부가 두 자녀와 함께 농산물을 길러, 중간 유통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농장이라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 ‘속동마을’에서 만났으니 응당 ‘속동 선착장’이겠지?
▼ 서해랑길은 이제 ’속동해안공원‘의 산책로를 따라간다. 500m쯤 되는 바닷가를 따라 좁고 길게 공원을 만들어놓았다.
▼ 이즈음 ’모섬‘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육지와 연결되어있다.
▼ 13 : 39. 길은 ’상황교‘ 아래 나무다리를 지나 ’홍성스카이타워‘로 향한다. 옛 속동전망대가 있던 자리에 새로 지어진 65m 높이의 타워는 기세도 당당하다. 올해 5월에 문을 열었는데도 이미 홍성의 랜드 마크로 자리를 잡았단다.
▼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면 죽도부터 멀리 안면도까지 천수만의 풍경이 두 눈에 와락 안겨 온다. 하지만 아래층에 있다는 실내전망대는 들러보지 못했다. 투명 강화유리가 깔린 ‘스카이워크’가 있어, 아드레날린이 확 솟구치는 아찔한 스릴을 즐길 수도 있다는데 말이다. 어쩌겠는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 ’모도‘가 발아래 놓여있는가 하면, 호수를 닮은 천수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일렬로 늘어선 것처럼 보였던 죽도와 이에 딸린 섬들이 앞뒤로 입체감을 드러낸다. 천수만 너머로는 남북으로 길쭉하게 태안반도가 뻗어 있다. 높이만 살짝 바뀌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풍광이다.
▼ 시선을 조금 비틀자 이번에는 궁리항 쪽의 해안선이 눈에 들어온다. 홍성의 해안은 궁리항에서 홍성방조제까지 이어진다. 관광지로 제법 알려진 남당항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소박한 갯마을들이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가 바다와 육지가 조화를 이루는 해넘이를 보여준다나?
▼ 타워에서 내려오니 ‘서해랑길 쉼터’가 눈에 띈다. 홍성군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코리아둘레길 쉼터운영 및 지역관광자원 연계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됐다더니 그 일환으로 만들어놓은 모양이다. 어반스케치 트래킹 체험인 ‘나만의 노을 남기기’, ‘남당플로깅’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한다고 했다.
▼ 13 : 48. 서해랑길은 이제 ‘남당항로’를 따라간다. 하지만 우린 바닷가를 따라 내놓은 데크로드를 따르기로 했다. 눈, 아니 가슴에 담을만한 구경거리라도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 13 : 50. 꼬맹이 무인도인 ‘모섬’은 데크 로드로 연결되고 있었다. 간월암이 바라보이는 섬의 꼭대기까지 산책이 가능하단다. 하지만 간식을 먹느라 여유시간을 다 써버린 탓에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 13 : 55. ‘모도’ 앞에서 방향을 튼 길은 ‘남당항로’까지 다시 데려다준다.
▼ 이 구간에도 해안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캠크닉(캠핑과 피크닉의 합성어) 성지로 알려지는 곳이다. 그래선지 텐트는 물론이고 캠핑카도 여럿 눈에 띄었다. 간이 캠핑 테이블과 의자를 펴고 노을을 감상하려는 이들일 것이다.
▼ 잠시 후, 서해랑길은 해안도로를 벗어나 바닷가로 간다. 해안선을 따라 축대를 쌓고 산책로를 내놓았다.
▼ 궁리항의 끄트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저 산봉우리는 ‘풍섬’이라고 했다. 개발 바람을 맞아 이미 육지가 되어버렸지만.
▼ 14 : 17. ‘궁리항’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한적한 어촌 마을인 궁리포구는 광활하게 펼쳐진 갯벌이 평화롭다. 기다란 방파제로 연결된 선착장에는 갓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싣고 온 고깃배가 수시로 들어온다. 하나 더. 궁리포구에도 새로운 명소가 생겼다. 바다 위에 ‘놀궁리(’궁리항‘에서 놀자?) 해상파크’를 만들어 색다른 낙조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 궁리어판장은 낚시질하는 사람들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머리에 얹고 있었다. 이곳 궁리포구가 가족단위 낚시터로 그만이라는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 서해랑길(서산 64코스) 안내도는 ‘보령해양경찰서 궁리파출소’의 뒤쪽에 세워져 있었다. 오늘은 3시간 20분을 걸었다. 앱이 13.33km를 찍고 있으니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서해랑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북 굴밭 따라가며 영그는 맛깔스런 추억. 서해랑길 62코스(충청수영성-천북굴단지) (1) | 2024.11.25 |
---|---|
토정(이지함) 선생의 애민정신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서해랑길 60코스(대천해변-깊은골버스정류장) (6) | 2024.10.28 |
무장포에서 한국판 ‘모세의 기적’을 엿보다. 서해랑길 59코스(춘장대해변-대천해변) (19) | 2024.10.07 |
밀가루처럼 보드라운 규사해변을 따라 북진하다. 서해랑길 58코스(선도리해변-춘장대해변) (24) | 2024.09.02 |
서천갯벌, 그리고 꼬맹이 섬들과 나란히 걷다. 서해랑길 57코스(와석마을-선도리해변) (0) | 2024.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