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64-6코스(합덕수리민속박물관 - 삽교호함상공원)
여 행 일 : ‘25. 3. 8(토 )
소 재 지 : 충남 당진시 합덕읍·우강면·신평면 일원
여행코스 : 합덕수리민속박물관→솔뫼성지→신촌교회→신촌제2교→소들쉼터→남원천→삽교호호수공원→삽교호함상공원(거리/시간 : 17.2km, 실제는 ‘솔뫼성지’부터 16.33km를 4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남파랑·서해랑·평화누리)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오늘은 창리항에서 삽교호 함상공원으로 연결되는 64코스의 지선(총 6개) 중 마지막 구간을 걷는다.
▼ 들머리는 합덕수리박물관(충남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
익산평택고속도로(평택-부여) 예산추사고택 IC에서 내려와 예당평야로(32번 국도, 당진방면)를 타고 0.7km쯤 올라오다 ‘신택교차로’에서 ‘오신로’로 옮겨 5km쯤 들어오면 ‘합덕수리민속박물관’에 이른다. 서해랑길(당진 64-6코스) 안내도는 박물관 마당에 설치되어 있다.

▼ 합덕수리박물관에서 시작 내포의 너른 들녘을 누비면서 삽교호로 가는 17.2km짜리 구간. 망망대해, 아니 망망대지를 끝 간 데 없이 걷다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지만, 후반부에 만나는 삽교호의 아름다운 풍광이 그 보상을 넉넉히 해준다. 난이도는 별이 2개(전체 5개), 솔뫼성지와 삽교호호수공원이 주요 볼거리로 꼽힌다.

▼ 08 : 50. 실제 출발지인 ‘합덕버스터미널’. 17.2km짜리 코스이니 결코 길지는 않다. 하지만 3km쯤 줄여서 걷기로 했다. ‘서해랑’이란 브랜드에도 걸맞지 않는 시가지를 걷는 것 보다는 ‘한국의 베들레헴’으로 알려지는 ‘솔뫼성지’를 조금 더 알뜰하게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 이정표가 지금 걷고 있는 구간이 ‘버그네 순례길’임을 알려준다. 성지순례는 신앙을 굳건히 하고 삶을 돌아보면서 걷는 회개의 여정이다. 성경 속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대표적인데, 한국에도 그와 비슷한 ‘버그네 순례길’이 있다.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솔뫼성지’부터 조선 제5대 교구장인 다블뤼 주교 유적지가 있는 ‘신리성지’까지 13.3km구간이다.

▼ 08 : 50. ‘덕평로’를 따라 북진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100m쯤 걷다가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갈려나가는 ‘솔뫼로’로 옮긴다. 그곳에 ‘순례(巡禮)’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버그내를 중심으로 한 내포지역은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었다. 버그내 장터와 합덕방죽을 걸어가는 순교여정과 순교자들의 발자취가 기록으로 남아있기도 하단다. 오랜 역사를 두고 스며있는 내포사람들의 애환과 진리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교자들의 신앙심을 떠올리며 걸어보라는 모양이다.

▼ 종교인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성지순례가 요즘은 일반화되었다. 꼭 종교인이 아니어도 온전히 자신의 걸음에 의지하며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여행자들은 종교를 넘어 삶을 살아갈 희망과 이유를 얻는다. 조형물 속의 군상들이 너나없이 배낭을 둘러메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 ‘순례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어 종교를 떠나 천주교 역사, 종교의 형식 등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솔뫼성지만 순례하는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한국 천주교의 중요한 성전 가운데 하나인 ‘합덕성당’까지의 도보순례, 1866년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손자선 성인의 생가가 있는 ‘신리성지(손자선 생가, 기념 성당 등)’까지의 도보순례 등이 추가로 운영된단다. 다리품만 조금 더 팔면 천주교 초기 순교자로 ‘내포의 사도’라 불렸던 이존창의 생가 터와 성당이 있는 ‘여사울 성지’, 하 발바라 등 32명의 순교자를 기념하는 ‘공세리성지(성지, 공세리 성당 등)’도 둘러볼 수 있단다.

▼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 사회, 20% 이상은 초고령 사회로 구분한다. 작년 말, 행정안전부는 우리나라도 12월 23일부로 초고령사회에 도달했다고 발표했었다.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가 1,024만 4,550명으로, 전체 주민등록 인구(5,122만 1,286명)의 20.0%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저런 노인복지 시설이 카페보다도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를 그냥 흘려듣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 당진시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버그네 순례길’이다. 그래선지 도로변의 담벼락까지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종교 사진들을 게시에 걷기여행자들에게 또 다른 감회를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 2014년 8월 15일.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요 행사 장소인 이곳 당진 솔뫼성지(폐막 미사는 서산 해미읍성에서 열렸다)를 방문해 전 세계인의 이목을 당진으로 집중시켰다. 담벼락에는 당시의 행사장면을 담은 사진들을 게시하고 있다.

▼ 09 : 04. 우강면(牛江面) 행정타운은 황소를 얼굴마담으로 내걸었다. ‘우강’은 ‘우평강문(牛坪江門)’ 즉 우평포(牛坪浦)와 강문포(江門浦)의 합성어이다. 이중 ‘우평’이란 지명은 소 모양의 돌 두 개가 바다 섬 중에 돌출했다가 매몰되었다는 데서 유래했는데, 이를 형상화시킨 모양이다.

▼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도시답게 버스정류장도 예술적으로 꾸몄다.

▼ 09 : 13. 솔뫼교차로. 육교 아래로는 ‘면천로’가 지나간다. 지방도(70번)이지만 자동차전용도로이다.

▼ 09 : 15. - 10 : 10. 솔뫼성지. ‘솔+뫼’란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그러니 솔뫼에 위치한 성스러운 땅으로 보면 되겠다. 1821년 8월 21일 한국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탄생했으며, 박해를 피해 할아버지 김택현을 따라 용인 한덕동(현 골배마실)으로 이사 갈 때인 일곱 살까지 살았다. 뿐만 아니라 김대건 신부님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한현(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1846년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이기도 하다.

▼ 김대건 신부의 생가를 중심으로 김대건 신부의 동상 및 기념관,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 경당, 기억과 희망(대성전+이춘만미술관), 솔뫼아레나, 소나무숲, 십자가의 길, 성모 칠고동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 첫 만남은 ‘기억과 희망’이다. 2021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禧年, 특별히 기념하는 해)을 맞아 신부님과 동료 순교자들이 남긴 위대한 신앙의 유산과 삶의 가치를 이어받기 위해 만든 건축물로 대성전과 예술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디자인은 뮈텔 주교(제8대 조선대목구장)의 사목 표어인 ‘피어라, 순교자의 꽃들아!’에서 영감을 받아 장미꽃을 형상화했단다.

▼ ‘기억과 희망 (Memory and hope)의 대성전’. 미사가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모자이크로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특징이다.

▼ 이춘만 미술관. 성경 말씀을 조각하는 이춘만(크리스티나)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작가의 브론즈 조각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사진은 올리지 않았지만 김대건 신부의 집안을 소개하는 공간도 있었다. 4대에 걸친 순교자들 이름을 조형물로 만들고 가계도를 설명해 놓았다.

▼ 밖으로 나오니 ‘거룩한 탄생’이라는 작은 경당이 눈에 띈다. 처마에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이라는 누가복음(2:13-14)의 문구를 적어놓은 걸 보면, 이곳 솔뫼성지가 ‘한국의 베들레헴’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상도 보인다. 솔뫼성지를 방문했을 당시 한복을 차려입은 소녀로부터 꽃을 받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단다. 시선을 조금 넓히면 교황님의 족흔(足痕·발자국 문양)도 눈에 담을 수 있다.

▼ 조형물을 담은 토피어리도 만들어 놓았다. 프란치스코 교황, 김대건 신부, 남녀 어린이들이 손을 잡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 ‘성모칠고 동산’이란다. 성모칠고(聖母七苦)란 성모 마리아가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받았던 7가지 슬픔과 고통을 말한다. 제1고 시메온의 예언(루카 2,34-35), 제2고 이집트로 피신(마태 2. 13-15), 제3고 예수님을 성전에서 읽으심(루카 2,41-50), 제4고 예수님 십자가를 짊(요한 19,17), 제5고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요한 19,28-30), 제6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림(마르 15,42-45), 제7고 예수님 무덤에 묻히심(마르 15,46-47) 등인데, 이춘만(크리스티나) 작가가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놓았다.

▼ 잠깐 쉬었다가자는 몽중루 작가님의 제안으로 들렀던 ‘카페 솔뫼’. 한 잔만 주문(집사람이 마시지 않겠다고 해서)한 우리 부부에게 나누어 마시라며 여벌의 잔까지 갖다 줄 정도로 친절했다. 덕분에 느림의 미학을 노래하며 여유로움을 한껏 즐기다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릴 초대하고 커피 값까지 치러주신 작가님은 신용카드를 분실하는 불상사를 초래했다. 회수까지는 제대로 했는데, 패스포드가 아닌 주머니 속에 임시로 넣었다가 트레킹을 하면서 흘려버렸다나?

▼ 이제 성지로 들어가 볼 차례다. 초입에 돌대문을 설치해 놓았다.

▼ 안으로 들어서니 ‘솔뫼 아레나’ 반긴다. 아레나(arena)의 어원은 ‘모래’, 또는 ‘모래사장’이다. 투기장 안에 모래를 깔고 검투사나 맹수의 피로 더러워지면 모래를 그 위에 끼얹으면서 계속 진행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실내경기장이나 공연장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래선지 ‘솔뫼 아레나’도 커다란 무대와 관람석을 갖추고 있었다.

▼ ‘솔뫼 아레나’는 김대건 신부와 밀사들이 합정동 새남터 한강 모래사장에서 순교한 것을 형상화 한 건축물이다. 12사도상은 가톨릭교회가 12사도로부터 이어져왔다는 김대건 신부의 마지막 회유문을 근거로 제작된 작품이다.

▼ 김대건 신부 생가. 1906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순교 60주년을 맞아 당시 합덕 성당의 주임신부였던 크램프 신부가 주위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생가 터를 고증했고, 1946년 순교 100주년을 맞아 동상과 함께 순교 기념비를 세우면서 소나무 군락지를 중심으로 성지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 후 정부와 문화재위원의 검증 작업을 거쳐 1998년 충청남도 문화재 제146호로 지정받았으며, 2004년에 생가 안채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솔뫼성지 방문을 앞두고 국가 사적지 529호(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로 지정받기도 했다.

▼ 생가 기둥에는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신부님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시선이 머무는 마당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기도문이 적힌 빗돌도 눈에 띈다. 교황님처럼 김대건 신부님께 기도를 드려보라는 모양이다. 참고로 김대건 신부는 골배마실에서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가 1845년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그 해 10월 귀국한다. 귀국 후 용인 일대에서 사목을 하다가 1846년 9월 국문 효수형을 받고 새남터에서 26세의 나이로 순교하셨다. 이후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방문 때 성인 품위에 오르게 된다. 하나 더. 김대건 신부님은 ‘2021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4년부터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와 일치하는 역사적 인물들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해오고 있는데, 2012년에는 다산 정약용(탄신 250주년), 2013년 구암 허준(동의보감 간행 400주년)이 선정된 바 있다.

▼ ‘솔뫼’라는 이름처럼 성지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절두산 성지 등 다른 성지들에서도 흔히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박해당하다 순교한 사람들의 꿋꿋한 믿음과 기개를 나타내는 상징이라고나 할까? ‘뫼’의 맨 꼭대기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동상을 모셔놓았다. 반듯한 몸매와 가지런한 옷매무시가 선구자의 기풍을 드러낸다. ‘순교 복자비’도 눈에 띈다.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기념한다고 했으니 1946년에 세웠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 옆의 ‘성인비’와 함께 성지가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조성되고 성역화 되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 이곳의 소나무는 조성을 위해 이식한 게 아닌, 300년 전부터 서식하던 나무들이라고 한다. 한국 천주교의 역사를 모두 보며 살아왔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의미 있는 숲을 그냥 내버려두었을 리 만무하다. 빙 둘러 내놓은 산책로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배치했고, 순례 온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기도드리고 있는 광경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 십자가의 길이 시작됨을 알리는 ‘십자고상’. ‘십자가의 길(Stations of the Cross)’이란 예수가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진 사실을 기억하며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기도의 길이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고 무덤에 묻히기까지 그리스도 수난의 마지막 사건들을 묘사한 14장면의 연속 그림(또는 조각)을 차례로 돌면서 기도를 드린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이어서 각 처의 주문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차례로 드린다.

▼ 백색의 모자상. 쪽진 머리에 치마저고리 차림인 성모님이 역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데,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의 자태며 천진난만한 아가의 모습이다. 그동안 유럽이나 중남미 등 해외여행을 해오면서 현지화 된 성모님들을 심심찮게 만났었다. 그리고 이색적인 풍경에 늘 부러워했었는데, 요즘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다는 게 반갑고도 즐겁다.

▼ 대전교구 역사관(옛 김대건 신부 기념관). 김대건 신부와 밀사들이 조선 입국을 위해 탔던 라파엘호(하느님이 보호하신다는 뜻으로 페레올 주교가 명명)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여 건축했단다. 서해 폭풍우에 라파엘호가 돛이 찢기고 키까지 부러져 망망대해에 있는 수반과 같이 방향성을 모두 잃었지만 성모님의 도움으로 조선에 입국할 수 있었음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 안에는 그동안 모은 김대건 신부와 솔뫼성지의 역사 자료를 대중에 공개하고 있었다. 김대건 신부 가문의 순교자 연보를 적고, 그에 맞춰 대전교구 연보를 하단에 적어 넣었다. 이름은 ‘대전교구 역사관’이지만 내용물은 대부분 김대건 신부의 얘기들로 채워져 있다는 얘기다. 신부님의 가문과 순교자들을 소개하는가 하면, 신부님의 육필도 보여준다.

▼ 맞은편 전시장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10주년 및 대전교구 역사관 개관을 기념하는 ‘천주 신앙의 못자리 & 묏자리’ 사진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문희 초대작가가 대전교구에 속한 순교성지들을 걸으며 성자와 순교자들을 만났던 순간들을 담았다고 한다. 그곳이 곧 천주신앙의 못자리이고 묏자리라는 것이다.

▼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뜻을 담아 지었다는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의 집’이다. 교황님은 고민이 생길 때마다 성모님께 문제의 매듭을 풀어 해결해 주시길 청원했다고 한다. 봉헌 초라도 올리고 싶었는데 너무 지체되었다는 집사람의 채근에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 10 : 10. ‘솔뫼성지’ 투어를 마치고 다시 길을 나선다. 성지 대문에서 동쪽으로 100m 남짓 걸으면 평야지대가 드넓게 펼쳐진다. 서해랑길은 그 들녘을 가로지르며 나아간다.

▼ 농로는 심심찮게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그렇다고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행여 길이라도 나뉠라치면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워놓았다.

▼ 그림으로 표현해놓은 이정표가 이색적이다. 가야 할 ‘삽교호 자전거터미널’에서 ‘자전거’를 쏙 빼고 대신 그림으로 채워 넣었다. 반대 방향의 ‘솔뫼성지’는 누가 봐도 ‘김대건 신부님’이 분명하다.

▼ 10 : 15. 잠시 후 도착한 구릉지에는 ‘우강교회(이정표 : 삽교호자전거터미널 11.03km/ 솔뫼성지 0.89km)’가 있었다. 이곳 송산리는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우강면 대부분이 높이 10m 내외의 간척평야인 점을 감안하면 특이하다 하겠다. 그런 야산에 소나무가 많이 자란다고 해서 ‘송산(松山)’이란 지명이 붙여졌다. 솔뫼·비석골·갯말·북넹기·당살미 등 16개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는데, 이곳은 ‘솔뫼’ 마을이지 싶다.

▼ 마을을 빠져나오자 길이 2차선으로 활짝 넓어졌다. 그 길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들녘을 꿰뚫으며 나아간다. 들판이 넓으니 벼의 수확도 남다를 것은 당연. 길가에 들어선 무시무시하게 커다란 저 미곡처리장이 그 증거다.

▼ 들녘은 가고 또 가도 끝이 나오지 않는다. 맞다. 이곳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곡창지대 중 하나이다. ‘해나루쌀’이 생산되는데 우리나라 탁구계를 대표하는 삐약이 ‘신유빈’이 광고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 10 : 30. 그런 망망 대지를 바라보며 걷길 15분. 작은 개울이 앞을 가로막는다. 자전거길은 다리(삽교호자전거터미널 9.86km/ 솔뫼성지 1.9km)를 건넌 다음 2차선 도로(평야2로)를 따라 왼쪽으로 간다. 하지만 서해랑길은 다리 앞에서 왼쪽 농로를 따라간다. 서해랑길의 가이드리본이 펄럭이고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길은 ‘공포리(孔浦里)’로 들어간다. 평야의 한가운데에 들어앉은 마을인데, 350년 전 공씨(孔氏)가 갯뚝을 막아서 농경지를 간척했다하여 공개, 공개원 등으로 불리다가 공포(孔浦)가 되었다.

▼ ‘끝 간 데가 없다.’는 이런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이곳은 아산만에서 조류에 의해 밀려온 간석지성 해안 충적지가 드넓게 분포한다. ‘소들강문(牛坪江門) 평야’라고 불리는 ‘갯땅’인데, 경지 정리가 잘된 저평한 기하학적 패턴의 경작지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진다.

▼ 10 : 53. 서해랑길은 ‘신촌교회’를 만나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교회 이름을 보니 ‘신촌리(新村里)’에 들어섰나보다. 아무튼 길은 이제 왼쪽에 수로를 끼고 간다.

▼ 경칩(驚蟄)이 지나선지 날씨가 확 풀렸고, 부지런한 농부는 일 년 농사 준비로 분주하다. 옛말에 ‘곡식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다. 그렇다면 부지런한 저 농부의 올 농사는 틀림없이 풍년일 것이다.

▼ 11 : 04. 정겨운 농촌 풍경을 벗 삼아 900m쯤 걷다보면 ‘신촌2교’가 나온다.

▼ 다리에서 바라본 ‘공포천’ 풍경. ‘소들강문 평야’가 넓어서인지 꽤 크고 수량도 풍부했다.

▼ ‘소들강문’ 평야를 헤집는 들길은 끝날 줄을 모르고 계속된다. 똑 같은 풍경이 계속되기에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구간이다. 참고로 옛날 이 지역은 소머리 모양의 돌 2개가 솟아올랐다가 가라앉아 넓은 들이 되었다고 한다. ‘소들’이라는 이름은 이 설화에서 유래했다. 소는 예로부터 부와 성실함의 상징으로 쓰여 왔다. 그만큼 잘 사는 고장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 11 : 25. 드디어 삽교호에 닿았다. ‘소들섬’을 마주보는 제방에 ‘삽교호 수위관측소’가 설치되어 있다.

▼ 몇 걸음 더 걷지 않아 이번에는 ‘소들 쉼터’에 이른다. 삽교호의 명물인 ‘소들섬’을 마주보는 둔치에 만들어놓은 쉼터이다. 참고로 ‘소들섬’은 17만㎡ 크기로 1973년 삽교천지구 대단위사업 이후 모래가 쌓이면서 생긴 섬이다. 충남 북부권의 이름 없는 섬으로 남아 있다가 2016년부터 섬 명명 운동을 시작해 2019년 9월 13일 우강면민 한마당 행사 때 이름을 확정했다. 이름은 충남의 대표 곡창지대인 소들강문(牛坪江門) 평야에서 따왔다. 2022년 1월28일 야생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철새도래지이기도 하다.

▼ 코리아트레일 등 전국의 수많은 걷기 여행길을 답사하면서 곳곳에서 ‘자전거길’을 만났었다. ‘국토종주자전거길’을 중심축에 두고 많은 지자체들이 주민들의 건강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자전거길을 냈다. 그만큼 자전거로 일상생활을 즐기는 동호인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당진이라고 뒷짐 지고 있었겠는가. 삽교호 언저리를 따라 자전거길을 내고 ‘삽교호 자전거길’이라 이름 붙였다. 동호인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자전거길 중 하나이다.

▼ 박라연 시인의 시비(詩碑)도 눈에 띈다. 그런데 이 지역 출신의 많은 시인들을 제키고 전남(보성군) 출신의 여류시인 시를 새긴 이유가 뭘까? ‘삽교천에서’라는 시가 이곳 삽교호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했다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 ‘소들섬’은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선지 소들섬의 사계를 안내판에 담아 보여주고 있었다.

▼ 철새도래지이니 철새 사진이 빠질 리가 없다. 소들섬은 한강 하구와 함께 국내에서 중요한 철새 도래지 중 하나로 꼽힌다. 매년 겨울 큰고니·청둥오리·기러기·흰뺨검둥오리 등 다양한 철새들이 이곳에서 월동한다.

▼ ‘소들섬 지키기’는 다양한 단체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해오고 있다. 우강초등학교 환경동아리 ‘환경의사회’도 그중 하나인데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개최한 ‘제19회 이곳만을 꼭 지키자’ 시민공모전에서 환경부장관상까지 수상했단다. 나이 어린 친구들인데도 환경정화활동과 캠페인, 야생동물보호구역지정 청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나?

▼ ‘소들 쉼터’라는 이름값이라도 하려는 듯, 소들섬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썩 편치 않은 풍경도 펼쳐진다. 새들의 낙원이라는 섬에 송전철탑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전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따라서 발전소는 어디엔가 지어져야하고, 생산된 전기는 저런 철탑들을 따라 현대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철새들에게는 목숨까지 위협받는 시설이겠지만 인간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시설인 것이다. 둘 모두가 공존하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 워메~ 섬 아닌겨? 철새가 떼를 이룬 게 영락없는 섬이다. 하긴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을 정도이니 어련하겠는가. 육지의 일정한 지역 또는 물이 가까운 육지에서 서식하는 생물을 위한 피난지 또는 보호구역으로 보존과 보호를 위해 유지되는 구역 말이다. 멸종 위기종, 보호 대상 종, 수렵금지 종 등이 포함된다.

▼ 겨울철마다 다양한 철새들이 ‘소들섬’을 찾는다고 했다. 매년 50만 마리 이상의 철새들이 찾아온단다. 흰꼬리수리, 큰고니, 수달, 수원청개구리 등 10여종의 1, 2급 멸종위기종 및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야생생물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철새들은 주로 3월 중순까지 소들강문(예당) 평야에서 머물다 시베리아로 돌아가는데, 잠시 머무는 동안 볍씨를 먹이로 공급하는 일이 겨울 철새들의 건강 유지와 지역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단다.

▼ 11 : 35. 파천수로 배수갑문. Open street map은 이곳을 ‘공포천(孔浦川)’으로 적고 있었다. 우강면 강문리에서 발원 공포리를 거쳐 부장리에서 남원천에 유입되는 길이 2.7km의 하천이다. 소들강문(牛坪江門)의 드넓은 평야지대를 흐르므로 경사가 거의 없다는 게 특징이란다.

▼ 공포천의 배수지. 웬만한 국가하천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다.

▼ 서해랑길은 이제 삽교호의 제방을 따라간다. 둑 위로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넓이로 길이 나있다. 그래선지 자동차와 자전거, 그리고 도보 여행자들이 함께 쓰고 있었다.

▼ 왼쪽으로는 소들강문평야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부장리(富長里)의 들녘이 펼쳐진다. 풍요로움의 상징이라고나 할까? 원뚝이 길다(長)고 했으니 들녘이 넓은 것은 당연. 그러니 부자들 또한 많을 게 아닌가. 부촌(富村)에 ‘길 장(長)’을 더해 ‘부장(富長)’이 되었다고 한다.

▼ 오른쪽에는 ‘삽교호(揷橋湖)’가 있다. 당진, 아산, 예산, 홍성 4개 시군의 농경지와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개발된 인공호수이다. 국민관광지로도 개발되어 있으며 백로, 왜가리 등 철새들의 서식지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 11 : 52. 둑길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오래 이어졌다. ‘이제 그만~’을 서너 번쯤 되뇌었을까? 드디어 ‘남원천(南院川)’의 하구역에 도착했다.

▼ ‘남원천교’를 건넌다. 지역주민 및 자전거라이더들의 편의를 위해 만든 다리로 사람과 자전거, 농기계만 다니는 걸 원칙으로 한다. 그렇다고 통행을 금지시키지는 않아 다리를 건너는 차량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 초입에 야생동물 보호지역 출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동물전염병(AI) 예방을 위해서라는데 금지 기간(12월-2월)이 끝나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트레킹을 도중에 그만 둘 수도 있었겠다.

▼ 남원천은 면천면 ‘몽산’의 남쪽 계곡에서 발원, 순성면·신평면·우강면의 들녘을 적셔주며 동진하다 우강면 부장리에서 남원포(南院浦)를 지나 삽교천으로 유입되는 23.24km 길이의 하천이다.

▼ 삽교호의 둑길을 따르는 기나긴 여정이 또 다시 시작된다.

▼ 이 구간에서는 세월, 아니 물고기를 낚는 강태공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잡초와 잡목으로 뒤덮인 둔치 곳곳에 낚시꾼들이 들어앉았다. 하지만 썩 보기 좋은 풍경은 아니었다. 취미생활을 즐기는 거야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주변에 널린 쓰레기들은 꼭 저들이 버린 게 아닐지라도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 양·배수장은 간척지의 필수 시설이다. 그래선지 요런 시설을 두어 곳이나 만날 수 있었다. 삽교호로 연결되는 수로의 끄트머리마다 배수장이 설치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 12 : 19. 호수의 폭이 바다처럼 넓어졌다. 호숫가에는 작은 선착장도 만들어져 있다. 삽교천방조제에 가까워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 12 : 23. 운정양수장. 1979년에 착공 1983년에 준공된 전천후 농업생산기반시설로, 당진 지역의 농경지 1만4500㏊에 물을 공급해준다.

▼ 12 : 29. ‘ㄷ’자 모양으로 양수장을 돌아서면 ‘삽교호 호수공원’이 맞는다. 2만5천 평이나 되는 삽교호 둔치에 조성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다목적마당·야구장·파크골프장·어린이놀이터·생태습지·잔디광장 등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한마디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다양한 운동시설이 어우러진, 휴식과 운동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보면 되겠다.

▼ 야구장은 인조 잔디에 라이트시설까지 갖췄다. 그런데 텅 비어있는 이유는 뭘까?

▼ 모퉁이를 돌아서면 2층 정자인 ‘삽교정’. 서해랑길은 이곳에서 왼쪽으로 간다. 그렇다고 곧장 진행해버리는 우는 범하지 말자. 오른쪽으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새들 쉼터’라는 구경거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 ‘새들 쉼터’는 ‘함께 어울리다’를 주제로 삼았다고 한다. 생태를 체험하고 자연과 소통하며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그걸 표현이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삽교호에 풍부한 붕어를 조형물로 만들어 포토 죤으로 삼았다. 소통의 분위기를 조금 더 느껴보고 싶다면 호숫가 선착장으로 내려가 볼 일이다.

▼ ‘새들 쉼터’의 ‘새들’은 ‘새롭게 생긴 들’이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백제 때는 ‘신평’으로 불리었단다. 산으로 형성되어 있던 지역이 천지개벽으로 넓은 평야와 갯벌로 변한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나?

▼ 일렁이는 물결 위를 춤추며 떠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나룻배와 종이배 벤치도 배치했다. 벤치에 앉아 고요한 물 위로 떠오르는 그리운 추억들을 되새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보라나?

▼ ‘삽교정’으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왼쪽으로 간다. 공원의 한가운데를 지나간다고 보면 되겠다.

▼ ‘파크골프’도 골프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모양이다. ‘나이스 샷!’을 외치는 탄성의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파크골프는 작은 공간에서 짧은 코스를 걸으며 공을 치기 때문에 필드를 쉽게 조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9개의 홀로 구성되는데 간단한 규칙과 적당한 운동량 덕분에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각광받는다.

▼ 조금 더 걷자 ‘조각 공원’이 잠시 들렀다가란다. 잔디광장에 신다혜 작가의 ‘달토끼’, 최상근 작가의 ‘꿈나무’. 박만철 작가의 ‘어울림’ 등 많은 조각품들을 전시해 놓았다.

▼ 빨간 사과의 형상을 담은 전용환 작가의 ‘공간-하나로부터’는 평면 공간을 3차원 형태인 생성-결실의 열매 ‘사과’로 시각화 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자연의 소리’, ‘마주하기’, ‘도시산책Ⅱ’ 등의 조각상이 자연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 12 : 48. 예쁘게 단장된 주차장을 마지막으로 ‘호수공원’은 끝난다. 그리고는 삽교천길을 따라 ‘삽교호관광지’로 간다. 이때 풋살경기장과 족구장, 농구장 등이 들어서있는 생활체육공원을 스치듯 지나가기도 한다.

▼ 삽교대교를 지나면서 길은 분위기가 확 바뀐다. 체육공원이라는 느낌이 강했던 조금 전과는 달리, 유원지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는 것이다. 벚나무 가로수까지도 아름드리로 바뀌어 상춘객을 불러 모으기에 딱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12 : 56. 월드아트 서커스. 중국식 서커스 공연장으로 링체조, 실타래돌리기, 무용, 공중곡예, 모자묘기, 이인체조, 오토바이묘기 등의 묘기를 보여준단다. 주중 1회(14:00), 주말 3회(11:00, 14:00, 16:00) 공연(1시간)한다고 했는데 작년 12월 25일부로 중단됐단다. 문에는 올 4월1일부터 새롭고 멋진 공연을 보여주겠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 신평 잠령탑(新平 蠶靈塔). 양잠업이 성행하던 1960-70년대의 산업유산으로, 당진 일대의 잠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육성되던 시기, 잠업을 권장하기 위해 1967년 신평면의 망객산 정상에 세운 빗돌이다. 잠업이 쇠퇴하고 뽕나무밭을 갈아엎어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되면서 2000년대 운정리 삽교천으로 이전했다.

▼ 13 : 02. 호수와 바다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삽교호관광지’는 볼거리와 먹거리, 즐길 거리가 가득하다. 서해와 인공호수, 황금 들녘과 각종 놀이공원이 한곳에 모여 있다. 하지만 범위가 워낙 넓기 때문에 자전거터미널에서 자전거를 대여해 둘러보는 게 편할 수도 있다.

▼ 유명 관광지답게 길가는 먹거리로 넘쳐난다. 서해의 싱싱한 해산물을 직접 골라 맛볼 수 있는 어시장과 회센터, 서해 갯벌에서 채취한 갖가지 조개를 숯불에 구워 먹는 조개구이 전문점 등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매년 10월이면 조개구이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불꽃놀이, 수산물 깜짝경매, 맨손 물고기 잡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단다.

▼ 삽교천유역농업개발기념탑. 1979년 10월 26일 서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행사로 기억되는 곳, 기념탑은 삽교천방조제 준공을 기념해 1980년 5월 1일 최규하 전 대통령이 건립했다. 머릿돌에 ‘1979년 10월 26일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 우람한 호수를 삽교호로 명명하고 준공했다.’라는 문구도 새겼다. 그러다 43년 뒤인 2023년 5월쯤 붕괴위험이 있다며 철거됐었는데 최근 다시 세운 모양이다.

▼ ‘삽교호 함상공원’. 대양을 호령하던 군함이 명예로운 퇴역과 함께 해군·해병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함정 내외부나 해군·해병의 주제별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항공기, 탱크 등도 살펴볼 수 있단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후일 83코스를 답사할 때 들러볼 요량이다.

▼ 함상공원 뒤로는 아산만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그것도 잘 그린 그림으로다.

▼ 13 : 12. 삽교천방조제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사이에 축조된 방조제로, 삽교천 하구에 3,360m 길이의 둑을 쌓아 인공담수호를 만들었다. 이 담수호의 조성으로 당진·아산·예산·홍성 등 4개 시·군의 관개용수가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업·생활용수도 하루 4만 8000t이나 공급 가능해졌다고 한다.

▼ 64-6코스는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완주인증 QR도 눈에 띄지 않는다. 방조제 초입의 가로등에 매달린 ‘종점’ 표지판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할 따름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16.33km를 4시간 10분에 걸었다. 솔뫼성지와 삽교호호수공원을 둘러보면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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