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마산(龍馬山, 596m)

 

산행코스 : 산곡초등학교 입구검단산갈림길능선안부고추봉용마산광지원리갈림길어진마을 버스정류장(산행시간 : 2시간50)

소재지 : 경기도 하남시와 광주시 남종면의 경계

산행일 : ‘14. 2. 2()

같이한 산악회 : 큰아들과 함께

 

특색 : 용마산이라는 이름을 갖은 산은 전국에 꽤 많은 편이다. 가깝게는 광진구에 있는 아차산의 최고봉인 용마산 외에도 동작구 대방동에도 또 하나가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제천시 한수면, 창원시 마산합포구에도 또 다른 용마산이 있다. 그 용마산이 경기도 하남시와 광주시 사이에도 있다. 비록 인근에 있는 검단산의 유명세(有名稅)에 가려 알려지지 않은 편이지만 산길의 숲이 짙고 흙이 부드러워 산행하기가 좋은 산이다. 거기다가 조망(眺望)도 뛰어난 편이니 꼭 검단산을 잇는 종주산행이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올라볼만한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산곡초등학교 입구 버스정류장

용마산은 서울 근교에 위치한 산이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하남시에 있는 검단산을 기점으로 삼아 버스 노선을 찾아보면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는 산곡초등학교 입구, 서울에서 이곳까지 다니는 버스는 112, 지하철 5,8호선 천호역 6번 출구에서 버스를 타면 35분 정도 후에 버스 차고지의 바로 직전 정류장인 산곡초등학교 입구(하남시 상산곡동)에 도착하게 된다.

 

 

 

버스에서 내리면 건너편에 ‘()잡초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4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횡단보도를 건넌 후, 이 건물의 오른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행이 시작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등산로는 처음의 도로(道路)와 확연히 구분이 된다. 기존의 도로를 도로와 등산로로 나눈 후에, 등산로의 양 옆을 쇠파이프로 예쁘게 난간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등산로를 따라 쭉 올라가면 왼편에 산곡초등학교가 나타난다. 운동장과 건물이 보이는데 우리가 늘 보아오던 도심(都心)의 학교에 비하면 왜소한 모습이다. 그러나 그 왜소함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웬일일까? 아마 한적하면서도 소담스러운 정경들이 내가 어렸을 때 다녔던 학교의 풍경을 닮아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어서 나타나는 장승들과 눈을 맞추고 나면 산불감시초소이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는 방증일 것이다. 감시초소를 지나서 얼마간 더 오르면 이번에는 어린이 천문대가 나타난다. ‘! 송파 천문대네?’ 같이 산행을 하고 있는 큰애의 말마따나 천문대의 이름이 송파, 하남 어린이천문대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2003년 연세대학교 산하로 출범한 어린이천문대의 하나로 이곳은 2013에 개관하였다고 한다. 이곳 외에도 일산과 분당, 그리고 동탄, 의왕, 별내에도 있다고 하니 소재지와 천문대의 이름 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천문대에서 얼마간 더 오르면 포장도로는 끝을 맺고, 전형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산길은 호젓하기 이를 데가 없다. 검단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이 코스를 선호하지 않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호젓한 산길을 즐기면서 잠시 걸으면 산길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지금까지는 평지와 다름없는 반반한 길이었는데, 처음으로 오르막길이 나타난 것이다. 들머리에 들어서서 15분 남짓 되는 지점이다.

 

 

오르막길의 시작은 침목(枕木)으로 된 계단이다. 이어서 나타나는 것은 돌계단, 오르막의 경사(傾斜)가 약한 편은 아니지만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마 모처럼 큰애와 함께하고 있는 즐거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길가에 정성들여 쌓은 돌탑이 하나 보인다. 아마 장수탑일 것이다.

 

 

 

계단을 밟고 올라선지 15, 그러니까 산행을 시작하고 35분쯤 지나면 첫 번째 갈림길이 나타난다. ‘119구호지점 표시목(1-1 : 산곡초교에서 1.3Km 지점)’에는 양쪽 길 모두 검단산 정상으로 가게 되고, 거리 또한 2.4Km로 같단다. 다만 오른편으로 진행할 경우 검단산에서 용마산으로 연결되는 능선 상의 송전탑(0.6Km)을 경유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2~3분 후에 또 다른 삼거리가 나타난다. 비록 이정표는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송전탑(送電塔)으로 올라가게 되고, 오른편으로 올라가면 능선상의 또 다른 지점으로 올라서게 된다. 만일 용마산 하나만 오르고, 시간까지 단축하고 싶은 경우에는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으면 길의 상황은 지금까지와는 딴판으로 변해버린다. 오솔길로 변한 산길은 오르막의 경사(傾斜)가 무척 심해질뿐더러 길의 상태도 무척 거칠어진다. 산행시간에 쫒기지만 않는다면 이 코스보다는 아까 갈림길에서 송전탑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이용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싶다. ‘구호지점 표시목에서 18분 정도를 힘들게 치고 오르면 드디어 능선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능선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질퍽이고 있는 길의 풍경이다. 조금 전까지 내렸던 비로 인해 산길이 온통 진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흙산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특성이다. 능선에 올라선 후에는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왼편은 검단산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산길이 비록 질퍽이고 있지만, 걷는 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능선의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해진 탓일 것이다. 용마산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드는 산길이다. 오르내림이 크지 않는 전형적인 흙길이 마치 우리가 어릴 때 동무들과 뛰놀던 뒷동산 같아서 일 것이다.

 

 

 

작은 봉우리 두어 개를 오르내리면 한 그루의 잘생긴 노송(老松)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전형적인 흙산(肉山)에서 의외의 바위봉우리도 만나게 된다. 산길은 암봉 앞에서 왼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키고 있지만 이를 따르지 않고 바위를 잡고 위로 올라선다. 바위 위로 올라서면 전망대(展望臺)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계(視界)는 열리지 않는다. 안개가 자욱한 탓에 10m만 떨어져도 사물을 분간할 수가 없는 탓이다.

 

 

 

 

전망대를 지나서 다시 하나의 봉우리를 넘은 후, 비탈길을 다시 치고 오르면 고추봉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잡목(雜木) 때문에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 고추봉 정상은 별다른 특징이 없이 그저 그렇고 그런 산봉우리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정표(용마산 1.62Km, 엄미1리 버스정류장 4.46Km, 벌봉 9.58Km/ 하남 공영차고지 2Km/ 검단산 2.1Km) 하나만이 외롭게 정상표지석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참고로 고추봉은 두리봉이라는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 능선 안부에서 이곳까지는 22,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15분이 지났다.

 

 

 

 

고추봉를 출발하면 또 다시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능선을 따라 난 길은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한 편이다. 그러나 걷기는 쉽지 않다. 길이 무척 질퍽이고 있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만난 이색적인 풍경, ‘! 강아지를 닮았네?’ 아니라는 큰애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거북이를 빼다 박았다. 역시 사람은 감정이 있는 동물인 모양이다. 선입견(先入見)의 차이가 똑 같은 사물을 다른 형상으로 보이게 만드니 말이다.

 

 

또 하나의 볼거리인 거대한 나무, 마치 용마산을 지켜주는 버팀목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거대한 외양(外樣)은 위엄(威嚴)까지 있어 보이고, 밖으로 돌출된 나무뿌리는 건강미가 넘쳐 보인다. 용마산의 버팀목을 하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안개는 걷힐 줄 모르고 있다. 아니 차라리 더욱 짙어지고 있는 것 같다. 고추봉을 지나서 용마산에 이르는 능선을 걷다보면 왼편으로는 한강이 그리고 오른편에는 중부고속도로가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아니다. 짙은 안개로 둘러싸인 탓에 아무것도 바라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저 앞만 보고 걸을 수밖에 없다. 고추봉을 출발한지 40분 정도가 지나면 삼성1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정표 : 용마산 정상 0.02Km, 엄미1리 버스정류장 2.86Km, 벌봉 7.98Km/ 삼성12.4Km/ 고추봉(두리봉) 1.6Km, 검단산 3.7Km) 하나를 분가시키고 나서 드디어 용마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꽤 넓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외에도 삼각점(이천 21)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괜찮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드넓은 팔당호 뒤로 정암산과 해협산, 그 너머 용문산 등 첩첩이 쌓인 산줄기가 펼쳐진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산의 형태조차도 찾아볼 수 없다. 짙은 안개가 산하(山河)를 삼켜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용마산은 거문봉이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참길향토문화지명연구소에 따르면 일자봉(日紫峰)이 정확한 이름이라고 한다. 또 아까 지나온 고추봉도 갑성봉이 정확한 이름이란다.(한국의 산하)

 

 

 

 

용마산 정상에서부터는 본격적인 하산이 시작된다. 정상에서 50m쯤 내려오면 각화사로 내려가는 길(이정표 : 엄미1리 버스정류장 2.79Km, 광지원리 4.97Km, 벌봉 7.91Km/ 각화사 1.47Km, 삼성1리 버스정류장 2.75Km, 삼성2리 마을회관 2.86Km/ 용마산 정상 0.05Km, 고추봉(두리봉) 1.67Km, 검단산 3.77Km)이 왼편으로 갈려나가고, 다시 20분쯤 더 걸으면 이번에는 어진마을 갈림길(이정표 : 엄미1리 버스정류장 2.07Km, 광지원리 4.25Km, 벌봉 7.19Km/ 어진마을 버스정류장 2Km/ 용마산 0.77Km, 고추봉(두리봉) 2.39Km, 검단산 4.49Km)을 오른편으로 분가시킨다.

 

 

 

어진마을 갈림길에서 다시 10분쯤 더 걸으면 또 다시 길이 두 갈래(이정표 : 엄미1리 버스정류장 1.61Km, 은고개 버스정류장 2.23Km, 벌봉 6.73Km/ 희망봉 0.52Km, 광지원리(중부농협) 3.79Km, 벌봉 10.39Km/ 용마산 1.23Km, 고추봉(두리봉) 2.85Km, 검단산 4.95Km)로 나뉜다. 이곳에서 어느 곳으로 내려가더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조금 더 길게 산행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들은 광지원리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그렇다면 남한산으로 종주산행을 하려는 사람들은 어느 방향으로 진행해야 될까? 어느 방향으로 진행하더라도 남한산(벌봉)에 이를 수 있으니 본인의 취향에 따라 결정하면 될 것이다.

 

 

 

 

 

 

길게 산행을 이을 이유가 없어 오른편 엄미리 방향으로 내려선다. 중부고속도로 쪽을 향해 내려와 송전탑을 지나면 엄미리 버스정류장1.25Km 남겨놓은 지점에서 길이 왼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튼다. 건너편 산봉우리가 마을에서 제()를 지내는 곳이라서 통행을 금지(禁止)하고 있기 때문이다(마을의 안내판 참조). 그런데 이곳에 기발한 안내판 하나가 보인다. ‘미리 주문하세요. 정성을 다하겠습니다.’고 쓰인 문구 아래에 식당 이름들이 줄줄이 적혀있다. 이게 바로 요즘의 화두(話頭)발상(發想)의 전환(轉換)’이 아닐까 싶다. 손님들의 유치하려는 목적도 있겠지만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원하는 음식을 금방 먹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그들의 생각이 신선하기만 하다 

 

 

 

 

이어서 무덤가를 돌아 내려오면 시멘트포장 임도를 만나게 되고, 잣나무 군락이 보이는가 싶더니 곧바로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군락이 나타난다.

 

 

 

산행날머리는 엄미1리 버스정류장

바닥에 두텁게 깔려있는 낙엽들을 밟으며 부드러운 촉감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전원주택형의 가옥들이 늘어선 마을에 이르게 되고, 이어서 중부고속도로 아래로 난 지하통로를 통과하고 나면 43번 국도를 만나게 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43번 국도와 처음으로 만나는 지점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지선버스(13번 또는 13-2)를 타고 나오면 된다. 참고로 서울까지 나오려면 지선버스를 이용하기 보다는 중간에서 간선버스로 환승하는 것이 좋다. 시간을 30분 가까이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지원리 갈림길에서 25, 용마산에서는 50분 정도가 걸렸다.

 

 

 

 

 

 

고령산(高靈山, 622m)

 

산행일 : ‘13. 11. 30()

소재지 : 경기 양주시 백석읍, 장흥면과 파주시 광탄면의 경계

산행코스 : 보광사 버스정류장보광사고령산(앵자봉)형제봉갈림길기산보루성크라운제과연수원(산행시간 : 3시간40)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둘이서

 

: 고령산은 경기 북서지역에서 감악산(675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라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대중교통이 수월치 않아 접근(接近)이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부근에 군부대(軍部隊)가 밀집해있어서 대부분 지역의 출입을 통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지맥(枝脈 : 오두지맥)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찾기 시작하더니 최근 지자체에서 등산로를 정비한 뒤로는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보광사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다소 가파르지만, 대부분의 걷기 편한 흙길이기 때문에 크게 부담 없이 오르내릴 수 있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특히 입구에 천년고찰인 보광사를 끼고 있어 가족단위(家族單位) 산행지로 추천할 만 하다.

(**)오두지맥(鰲頭枝脈), 한북정맥 상의 한강봉(475m)과 첼봉(521m) 사이에서 서쪽으로 분기(分岐)하여 통일전망대가 있는 오두산에서 그 숨을 다하는 도상(圖上)거리 39.9Km의 산줄기이다. 산줄기에 포함된 주요 산으로는 고령산, 개명산, 월롱산, 보현산을 들 수가 있다.

 

 

산행들머리는 보광사 입구 버스정류장

고령산은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이기 때문에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하다. 지하철 3호선구파발역 1번 출구와 2번 출구 사이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333번 버스(30분 간격으로 운행)를 타면 30분 후에는 산행들머리인 보광사 앞 정류장에 이르게 된다.

 

 

 

정류장에서 보광사를 향해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어가는 길은 두 갈래이나 오른편 길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차량을 갖고 오지 않은 사람들은 곧장 올라가면 된다. 들어가는 입구는 거의 유원지(遊園地) 수준, 꽤나 많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이곳을 날머리로 삼았을 때에는 구태여 도시락을 싸오지 않아도 좋을 듯 싶다.

 

 

 

정류장에서 10분쯤 걸어들어가면 **)보광사(普光寺)에 이르게 된다. 보광사 경내로 들어서면 먼저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찰인데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전각(殿閣)들이 들어차 있는 것이다. 지나가는 상식으로 주워들었던 절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그래 영조대왕의 모친인 숙빈 최씨의 능참사찰(陵參寺刹)이 보광사이었고, 그 사찰이 양주의 고령산 자락에 있다고 했었다. 그래서 조선왕조가 이 사찰에 많은 재물을 시주했었나 보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전각들 사이로 어렴풋이 나타나는 높이 12.5m의 호국대불(護國大佛)이 어색하게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닌지 모르겠다.

(**)보광사(普光寺), 경기도만 해도 과천시와 남양주시 화도읍에 같은 이름의 절이 있는 등 우리나라에는 보광사(普光寺)’라는 이름의 사찰(寺刹)이 꽤 많다. 그러나 창건(創建) 연대가 밝혀진 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찰이 파주시 고령산 기슭의 보광사라고 한다. 봉선사의 말사(末寺)인 고령산 보광사는 894(신라 진성여왕 8) 왕명에 따라 도선국사가 비보사찰(裨補寺刹)로 창건했다고 한다. 그 후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버린 것을 1622(조선 광해군 4) 등 여러번에 걸쳐 중건했고, 1740(영조 16)에는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淑嬪崔氏)의 묘소인 소령원(昭寧園 : 사적 제358)의 기복사(祈福寺), 즉 원찰(願刹)로 삼았다. 몇 년 전에 TV에서 인기리에 방영된바 있는 드라마 동이의 주인공인 동이의 위패(位牌)를 모신 사찰인 것이다. 현재 어실각(御室閣)에 숙빈 최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러나 사찰의 크기나 오래된 역사에 비해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文化財)는 보잘 것이 없다. 국보급은 없고 경기도 유형문화재인 대웅전(83)과 범종(158)이 있을 따름이다.

 

 

 

보광사 담벼락을 왼편에 끼고 뒤로 돌아서면 울창한 전나무 숲을 만나게 된다. 숲 앞으로 난 임도(林道)로 들어서기 전에 오른편에 산행안내도가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으니 오늘 답사(踏査)하려는 코스를 미리 머릿속에 집어넣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곳 지자체(地方自治團體)인 파주시에서 만든 탓에 자기들 관할인 파주지역의 등산로만 그려 놓은 것이 아쉽지만 말이다.

 

 

임도를 따라 짧게 들어서면 임도는 왼편에 다른 임도를 하나 더 새끼를 친다. 정상으로 가려면 가지를 친 왼편 길로 들어서야 한다. 입구에 이정표(고령산·도솔암 800m)가 세워져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왼편으로 들어서면 조금 후에는 보광사의 호국대불 뒤편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게 되고, 조금 더 올라가면, 그러니까 보광사에서 10분쯤 되는 지점에서 산길은 임도를 벗어나 왼편 산비탈로 향한다.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에 도솔암으로 가는 등산로를 폐쇄(閉鎖)하였으니 이정표가 가리키는 등산로를 따르라고 적혀있다. 별수 없이 도솔암을 들러보려던 마음을 접고 만다. 등산로를 막은 이유가 있을 터인데도 무턱대고 올라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행여 스님들의 정진에 지장이라도 초래한다면 산을 찾지 않은 것만도 못할 테니까 말이다.

 

 

 

 

 

산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은 시작부터 가파르다. 들어선지 2~3분쯤 후에 만나는 물기 한 점 없는 메마른 계곡을 건너자마자 한없이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나는 유일하게 힘든 코스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가파른 오르막 구간마다 빼놓지 않고 로프를 매어놓았다는 것이다. 거기다 중간 중간마다 쉼터까지 만들어 놓았다.

 

 

 

로프에 의지해가며 5분쯤 힘겹게 오르면 장의자까지 갖춘 쉼터가 나타난다. 아직은 버틸만한데 무슨 쉼터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필요한 기우(杞憂)였다는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오르막길은 첫 번째 만났던 오르막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른데다가 그 길이 또한 길기 때문이다.

 

 

 

첫 번째 쉼터에서 15분쯤 되는 거리에 두 번째 쉼터(이정표 : 정상 0.4Km/ 보광사 0.7Km), 그리고 다시 한 번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면 7분 후에는 세 번째 쉼터에 이르게 된다. 세 번째 쉼터를 지나면 산길은 가파름을 상당히 누그러뜨린다.

 

 

 

 

세 번째 쉼터에서 5분쯤 더 오르면 형제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왼편에 형제봉(개명산으로 표기된 지도도 있다)이 보이는데, 군부대(軍部隊) 시설을 왕관처럼 머리 위에다 뒤집어쓰고 있다. 물론 고령산 정상은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능선에 올라서면 고령산(앵무봉) 정상은 금방이다. 2~3분 후에는 폐 헬기장에 올라서게 되고, 다시 5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정상인 것이다. 앵무봉(鶯鵡峰)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이정표(개명산 형제봉 2.1Km, 수리봉 2.4Km, 돌고개유원지 2.1Km/ 기산리 안고령, 마장저수지 2.6Km)그리고 산행안내도 등 여느 산에서나 보게 되는 시설물 외에도 정자(亭子 : 四角)와 국기봉이 세워져 있는 것이 특이하다. 도시 근교의 산이기 때문에 공원(公園)의 역할까지 겸하게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정상표지석이다. 여느 건물의 머릿돌을 닮은 정상석이 하나 바닥에 납작하게 누워있고, 그 위에다 산행안내판을 세워 놓은 것이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색적인 풍경이다. 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10분이 조금 못 걸렸다.

 

 

 

 

 

 

듣던 것과는 달리 앵무봉 정상의 조망(眺望)은 별로이다. 남동쪽에 도봉산과 사패산 자락, 그리고 북동쪽에는 불곡산이 보인다고 하지만 연무(煙霧)에 가려 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 꼭 연무가 아니더라도 조망은 별로일 것 같다. 정상을 둘러싸고 있는 잡목(雜木)들로 인해 산군(山群)들의 아랫도리가 성큼 잘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행여나 조금이나마 나을까봐 맞은편에 건너편 헬기장에 가봤지만 시야(視野)가 막히기는 매일반이었다.

 

 

말머리고개로 산행을 이어가려면 아까 올라왔던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하산로 입구 그러니까 정자의 바로 아래에서 아까 올라왔던 길로 진행하지 말고 왼편으로 내려가라는 것이다. 아까 올라왔던 길로 내려갈 경우에는 군부대(軍部隊)가 주둔하고 있는 형제봉으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산길은 정상에서 급하게 고도(高度)를 낮춘 다음에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이 이어진다. 길가에 참호들끼리 연결되는 이동통로가 보이고, 지뢰(地雷)가 매설되었던 지역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진 것을 보면 최근까지 군사지역이었던 모양이다.

 

 

 

정상을 내려선지 7분쯤 되었을까 헬기장(수리봉 2.1Km, 말머리고개 3.9Km/ 앵무봉 329m)이 하나 나온다. 오른편에 산봉우리 하나가 어렴풋이 보인다. 묵직한 시설물(施設物)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형제봉일 것이다. 헬기장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이정표(수리봉 2.0Km, 말머리고개 3.7Km/ 대원정사 1.5Km, 돌고개유원지 2.7Km/ 앵무봉 500m) 옆의 나뭇가지에 매어져 있는 또 다른 이정표에 노루밭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면 오래전에 이곳이 노루들의 놀이터였던 모양이다. 대원정사 갈림길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그러니까 헬기장에서 5분쯤 되는 거리에 또 하나의 갈림길(이정표 : 돌고개유원지 1.4Km, 대원정사 2.6Km/ 앵무봉 754m)이 있다. 그런데 이곳의 이정표는 문제가 있다. 첫 번째 문제는 주능선인 수리봉으로 가는 방향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점이다. 이정표가 제 몫을 다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장흥수요산악회에서 붙여놓은 안내판의 하단에 누군가가 매직펜(magic pen)으로 말머리고개 진행방향을 표시해 놓았다. 두 번째 문제는 대원정사와 돌고개유원지의 거리가 뒤바뀌어 있는 것이다. 이왕에 이정표를 만들 바에는 제대로 만들어 줄 것을 이 지역 지자체에 바래본다. 이곳에서는 이정표를 무시하고 주능선을 따라 곧바로 진행하면 된다.

 

 

 

 

 

이정표가 엉망인 갈림길을 지나 8분쯤 걸으면 바윗길이 시작된다. 오늘 산행에서 유일한 바위구간이다. 바윗길을 따라 5분쯤 더 걸으면 오른편이 날카로운 절벽(絶壁)으로 이루어진 바위봉(이정표 : 석현리 1.0Km/ 고령산 1.7Km) 위에 올라서게 된다. 고령산에서 가장 조망(眺望)이 뛰어나다는 전망대이다. 이 바위봉은 조망 외에도 멋진 풍광(風光)까지 연출한다. 수십 길 높이의 바위벼랑 틈새를 비집고 들어선 소나무들이 바위절벽과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잘 그린 풍경화(風景畵)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봉우리 위로 올라서면 도봉산과 북한산이 지척이다. 도봉에서 솟구친 산줄기가 백운대에서 다시 한 번 솟구친 후에 오른편의 들녘으로 잦아든다 

 

 

 

 

 

전망대를 출발해 8분쯤 걸으면 돌고개유원지 갈림길(이정표 : 수리봉 1.3Km/ 돌고개유원지 1.4Km/ 앵무봉 1.1Km)이 나오고, 곧이어 산길은 오른편으로 급하게 휜다. 그런데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고령산 1.5Km, 수리봉 1.3Km/ 앵무봉 1.3Km)가 또 문제다. 고령산의 정상이 앵무봉인데도, 이정표는 고령산을 앵무봉의 반대 방향으로 지시하고 있다. 갑자기 고령산이 두 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다행이도 누군가가 이정표의 빈 여백에 말머리고개 고령산 가는 길 아님이라고 써 놓았다. 만일 메모를 보지 못했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했을 것이다. 배려 깊은 친절에 감사해하며 산행을 이어간다.

 

 

 

 

 

 

헷갈리는 이정표에서 20분쯤 지나면 또 하나의 이정표(고령산 0.8Km, 기산리 2.3Km/ 석현리 2.5Km/ 앵무봉 2.0Km)가 등산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정표만 봐서는 대체 어디로 가야만 제대로 가게 되는지를 분간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행이 이정표 아래에 매달려 있는 장흥수요산악회의 안내판 하단에 그려진 간이지도가 그런 고민을 해결해 준다. 수리봉과 말머리고개, 그리고 앵무봉의 방향을 화살표를 이용해 제대로 표시해 놓은 것이다. 말머리고개로 이어지는 능선은 작은 봉우리들을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계속된다. 그러나 힘은 들지 않는다. 산길이 순하기 때문이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흙길은 걷기에 편하고, 산길이 비록 봉우리들을 끊임없이 오르내리지만 그 봉우리들이 작기 때문에 조금도 힘이 들지 않는 것이다. 이런 길에서는 구태여 서둘러 걸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느림보의 미학이라도 추구해보면 어떨까. 아름다운 얘기 한 자락 끄집어내서 집사람과 도란거리며 산행을 이어간다. 그 얘기는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기산보루성까지 25분 동안이나 계속된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면 왼편에 비록 허물어졌으나 아직까지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성벽(城壁)이 나타난다. 바로 **)기산보루성(基山堡壘城)의 북쪽 성벽이다. 그 옛날 성을 지키던 병사들이 분주히 움직였을 성곽은 지금은 그 흔적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폐허(廢墟)가 되어 있다. 겨우 기산유원지 상가번영회에서 세운 기산보루성에 대한 안내판이 옛날 이곳에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보루성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기산보루성이 양주시에 소재한 다른 보루성들에 비해 그 규모는 작지만 형태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고 하는데, 깔끔하게 복원(復元)해 놓으면 어떨까 싶다. 보루성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파주벌판이 거침없이 펼쳐지고 있고, 개명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군사시설도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기산보루성(基山堡壘城), 기산보루성은 양주시에 산재한 보루성(돌이나 흙으로 쌓은 진지)의 하나다. 보루성의 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출토된 토기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남쪽으로 13m 정도와 북쪽으로 4m 길이의 성벽이 남아 있고, 성안에 웅덩이가 남아있다. 이곳이 봉수대(봉화대)로 쓰였을 것이라 추측한다고 한다(기산유원지 상가번영회에서 세운 안내판).

 

 

 

 

 

 

 

기산보루성에서 급하게 고도(高度)를 낮춘 산길은 잠시 편하게 이어진다. 가끔 눈에 띄는 군() 벙커(bunker)들을 눈요기 삼아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벙커를 지난 산길이 갑자기 가파르게 변한다. 뭔가에 의지하지 않고는 내려설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길가에 굵은 안전로프가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가파르게 내려선 산길은 또 다시 가파르게 위로 향한다. 그러나 내려온 것에 비할 바는 아니어서 힘들이지 않고도 맞은편 삼각점봉에 올라설 수 있다. 삼각점과 삼각점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봉우리이다. 기산보루성에서 20분 조금 넘게 걸렸다.

 

 

 

 

 

 

 

산행날머리는 크라운제과연수원 앞(말머리고개)

삼각점봉을 지나서도 산길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길 위에는 낙엽(落葉)이 수북하고, 가파른 구간에는 어김없이 안전로프가 메어져 있다. 거기다 군인들의 참호(塹壕)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군인들이 주둔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계속해서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던 이정표가 그냥 마무리 짓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능선이 말머리고개로 뚝 떨어지는 지점에 세워진 이정표(송추유스호스텔 기산리 0.4Km/ 고령산 1.0Km)에 표기된 고령산까지의 거리가 얼토당토않은 것이다. 이정표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짧게 내려서면 임도(林道)에 이르게 되고. 임도를 따라 잠깐 걸으면 산행이 종료되는 말머리고개 크라운제과 연수원의 정문이다. 삼각점봉에서 20분 정도 걸렸다.

 

 

 

도일봉(道一峰, 863.7m)

 

산행일 : ‘13. 8. 31()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과 용문면의 경계

산행코스 : 중원리 버스종점중원폭포도일봉 갈림길도일봉중원계곡치마폭포중원폭포중원리 버스종점(산행시간 : 4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도일봉은 중원계곡을 가운데 두고 중원산과 마주보고 있는 산이다. 정상어림은 암릉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거기에다 깊고 아늑한 느낌이 일품인 골짜기까지 끼고 있어 여름철 산행지로 안성맞춤이지만, 접근성(接近性)이 떨어진 탓에 그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었다. 그러나 중앙선 전철(電鐵)이 개통되면서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더니 요즘 같은 피서철에는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홍역을 치를 정도라고 한다. 휴일 운행하는 중앙선 전철이 그 증거이다. 역을 하나 둘 지나면서 늘어나는 등산객들이, 열차가 서울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열차를 가득 매워버리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등산열차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중원리 버스종점

먼저 중앙선 전철(電鐵)을 이용하여 용문역까지 온다. 다음은 용문역에서 도보로 7~8분 거리에 있는 용문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중원리로 들어가는 군내버스를 타면 된다. 이때 알아두어야 할 점은 중원리로 들어가는 버스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만일 910분 버스를 놓쳤을 경우에는 택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다음에 출발하는 11시 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산행을 마친 후 용문으로 되돌아 나오는 버스를 타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군내버스는 중원2리 마을회관 앞에서 승객들을 내려준 후, 바로 회차(廻車)하여 용문터미널로 돌아간다. 이곳 종점(終點)에서 중원계곡 주차장까지는 10분 이상을 더 걸어야 한다. 가는 길에 왼편에 들머리 하나가 보이지만 무시하고 지나가면 된다. 중원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이기 때문이다. ‘중원산 갈림길을 지나 한참을 더 올라가면 왼편에 널따란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공간(駐車空間) 외에도 휴식용 의자와 깔끔한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으니 이곳에서 산행준비를 하고 출발하는 게 좋다. 참고로 이곳 말고도 이 위에 주차장 하나가 더 있지만, 주차공간이 협소하니 승용차를 가지고 온 사람들은 이곳에다 주차를 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주차장을 나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포장도로를 따라 200m쯤 걸으면 오른편에 덕천사 갈림길이 보이나 이를 무시하고 직진한다. 거리표시 없는 이정표(중원계곡, 주차장)가 보이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갈림길에서 2분쯤 더 걸으면 오른편에 폭포아래 하얀집 펜션이 보이고 이어서 왼편으로 중원산 갈림길이 나온다. 중원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곳을 들머리로 삼으니 참고할 일이다. 도일봉의 들머리는 중원폭포를 지나서 갈려나가니 중원폭포로 간다고 생각하며 진행하면 된다. 위편에 있는 주차장(이정표 : 중원폭포 0.47Km, 중원산 3.31Km, 도일봉 4.095Km)을 지나면 금방 중원계곡을 만나게 되고, 개울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木橋)를 건너면서 산길로 접어들게 된다. 주차장을 지나면서 주위의 풍경이 확연히 달라진다. 그렇게나 많던 펜션이나 음식점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중원계곡의 자연미가 뛰어난 것은 상류에 시설물(施設物)이 없기 때문이다. 산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찰(寺刹)이나 기도원, 민가(民家)들이 전무하다. 오직 맑은 물과 푸른 숲만 가득한 것이다. 덕분에 울창한 수림(樹林)이 가득한 계곡은 한적(閑寂)하면서도 시원하다. 중원계곡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이다.

 

 

 

 

중원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계곡과 함께 나란히 난 산길은 거친 돌이 깔려있어서 걷는 데는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다리를 지나면 산사태를 막기 위해 쌓은 시설이 보인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살짝 물굽이를 따라 돌면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계단(이정표 : 도일봉 3.845Km, 중원산 2.88Km)이 나온다. 계단의 아래가 중원폭포(瀑布)이다. 중원계곡의 백미(白眉)는 뭐니 뭐니 해도 중원폭포이다. 수영장처럼 드넓은 소()와 아담한 폭포를 거느린 중원폭포는 주변이 깎아지른 벼랑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풍광(風光)이 빼어난 편이다. 그래서 봄, 여름, 가을, 겨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특히 여름철이면 피서객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룬다. 아직은 피서철이 지나지 않은 탓인지, 이제 겨우 10시를 넘긴 아침나절인데도 폭포에는 벌써부터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주차장에서 중원폭포는 불과 1내외, 20분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보니 피서객들이 찾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다. 그나저나 폭포 옆의 암벽(巖壁)에 수영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이 걸려있지만 그들의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이다. 폭포 앞에 놓인 나무계단을 따라 오르면 폭포의 전모(全貌)가 드러난다. 폭포는 와폭(臥瀑)의 형태이다. 물줄기가 서너 번 이리저리 구불대가가, 마지막으로 넓은 웅덩이로 떨어지고 있다.

 

 

 

 

 

중원폭포를 넘어선다. 널찍한 담()을 바라보며 물줄기를 건너자마자 거짓말처럼 주위가 조용해진다. 심산(深山)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 깊은 골짜기에 들면 울창한 숲과 시원스런 물소리가 넋을 잃게 만든다. 돌다리와 징검다리를 건너다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은 우리네 마음까지도 맑게 정화(淨化)시켜 주는 모양이다. 이런 즐거움 때문에 산을 고집하는지도 모르겠다. 중원폭포를 지나 짙은 숲 속의 계곡을 따라 5분쯤 들어가면 왼쪽으로 중원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정표 : 중원산 2.48Km/ 싸리재 3.375Km. 싸리봉 4.415Km, 중원산 8.495Km, 도일봉 3.41Km)이 나타난다. 도일봉으로 가려면 계곡길을 계속 따르면 된다.

 

 

 

 

 

 

중원폭포에서 계곡을 따라 20분 정도를 더 들어가면 오른편에 도일봉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정표 : 도일봉 2.7Km/ 싸리재 2.67Km, 도일봉 2.86Km, 중원산 7.78Km/ 중원폭포 1.1Km, 중원리 등산로입구 1.72Km)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어느 방향으로 진행해도 도일봉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진행하면 될 일이다. 곧바로 정상에 오른 후, 싸리재 방면의 능선을 타고가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 왼편 중원계곡으로 하산을 할 수도 있고, 그 반대방향으로 진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산행시간이 짧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싸리재까지 연장해도 될 일이다. 다만 여름철이라면 먼저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사람들이 뜸한 물가에서 오붓한 휴식시간을 즐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도일봉 갈림길에서 중원계곡을 벗어나 오른편 지계곡으로 들어선다. 곧장 정상으로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인적이 뜸한 곳에서 물놀이를 즐기기 위해서이다. 지계곡은 중원계곡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좁아졌으나 검푸른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유난히 곱게 느껴진다. 이어지는 작은 계곡은 원시적(原始的)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산길은 지계곡 옆을 따르며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다가 왼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튼다. 이곳에 이정표(중원폭포 1.2Km/ 도일봉 1.1Km)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그 거리표시가 참으로 뜬금없다. 중원폭포에서 도일봉까지는 대략 약 3.8Km, 그런데 이정표에는 2.6Km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다. 벌써 정상에 다 올라온 것으로 생각했던 집사람은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끊임없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하긴 가파른 오르막길을 1.5Km가까이 더 걸은 샘이니 얼마나 지루했을까 싶다.

 

 

 

 

산길은 왼편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급경사(急傾斜) 오르막길로 변한다. 그런데 그 가파름이 장난이 아니다. 얼마나 가파르던지 곧장 위로 오르지를 못하고, 지그재그로 갈지()자를 쓰고 나서야 겨우겨우 고도를 높여갈 수 있을 정도이다. 울창한 나무들이 만들어낸 숲속 터널은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는다. 그저 앞사람의 발꿈치만 보며 걸을 수밖에 없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뜬금없는 이정표에서 500m쯤 급경사(急傾斜)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능선 위에 올라서게 된다. 능선마루에 올라서는 순간 산 너머에서 불어온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와 가슴팍을 흥건히 적신 땀을 씻어준다. 능선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안내판이 하나 세워져 있다. 아무리 봐도 위험해 보이지 않는 흙길인데도, ‘위험지역임을 알리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바윗길이 시작되고, 그 바윗길은 고도(高度)를 높여갈수록 바위의 굵기가 커지다가 나중에는 세미클라이밍(semi-climbing) 수준까지 올라가니 말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이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이다. 갈수록 그 굵기가 커지는 바위들은 종내는 바위를 잡고 오르게 만들고 있다. 클라이밍의 스릴(thrill)을 느낄 수 있는 멋진 구간인 것이다. 암벽등반이 서툰 사람들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김없이 우회로(迂廻路)가 잘 나있기 때문이다. 이 구간을 오르다가 만일 커다란 바위가 앞을 가로막을 경우에는 구태여 우회하지 말고 곧장 치고 올라볼 것을 권하고 싶다. 크랙 (crack)이 잘 발달된 바위는 위로 올라서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바윗길을 걷는데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구태여 발걸음을 서두르지 말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바윗길의 특징대로 시야(視野)가 시원스럽게 트이니, 조망(眺望)을 실컷 즐겨보라는 얘기이다. 또 하나는 바윗길에서의 안전(安全)을 위해서이다. 아무리 위험성이 적다고 해도 바윗길에서의 조심은 필수라는 의미이다. 바위에 올라서면 맞은편에 위치한 중원산이 바로 코앞이고, 그 왼편에 마치 사발을 엎어 놓은 것 같이 뽈록하게 솟아있는 산은 어쩌면 추읍산이 아닐까 싶다.

 

 

 

 

 

 

암릉을 치고 오르다보면 정상 조금 못미처에 있는 작은 봉우리인 830봉에 올라서게 된다. ‘무인산불감시탑이 서있는 이 봉우리에서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이정표가 왼편으로 내려가는 길(이정표 : 중원폭포 3.8Km, 중원리 등산로입구 4.42Km) 하나를 지시하고 있다. 아마 우리가 올라왔던 바윗길을 우회(迂廻)시키는 산길인 모양이다. 이곳에서 도일봉은 금방이다. 능선을 따라 조금 걷다가 나무계단을 밟고 암벽(巖壁) 위로 오르면 드디어 도일봉 정상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암벽에는 석이버섯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부지런한 영철군()이 냉큼 암벽에 들어붙더니 따기 시작한다. 아마 우리 집사람에게 주려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버섯을 받아든 집사람의 얼굴표정은 싱글벙글, 그 표정은 산행을 마칠 때까지 계속되었다.

 

 

 

도일봉 정상은 평범한 헬기장이다. 정상에는 자연석으로 만든 정상표지석이 서있고, 그 양쪽은 빛바랜 산행안내판과 소방서의 구호지점표시목이 지키고 있다. 정상 한쪽에 툭 튀어 오른 바위에 올라섰다. 바위는 키 작은 산봉들을 향해 호령하는 장대(將臺)였다.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주변의 산줄기가 시원스럽게 조망(眺望)되는 것이다. 동쪽에서 주변을 압도하려는 듯이 웅장하게 솟구친 봉우리가 용문산이다. 용문산과 이어진 능선에는 귀엽게 생긴 백운봉이 뾰쪽하게 솟아있다. 중원산은 손을 뻗으면 금방 닿을 것 같이 가깝고, 그 아래를 흐르는 중원계곡은 곧게 흐르지를 못하고, 기약 없이 구불거린다. 시선(視線)을 남쪽으로 돌리면 단월면과 용문면 시가지(市街地)가 펼쳐진다. 중원폭포 위의 갈림길에서 정상까지는 2.7Km, 1시간40분 정도가 걸린다.

 

 

 

 

 

하산은 싸리재 방향의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내려서는 지점에 이정표(중원폭포 3.97Km, 중원리 등산로입구 4.58Km, 싸리재 1.57Km, 중원산 6.69Km)가 방향을 알려주니 길을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이정표에 싸리재나 중원산까지 거리표시를 해 놓을 것을 보면, 산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체력에 따라 하산지점을 선택하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이정표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파른 바윗길로 변한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비록 커다란 바위로 이루어진 가파른 바윗길이지만 로프와 철()난간 등 안전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10분 남짓 내려서면 암릉이 끝을 맺는 능선안부에서 산길이 두 갈래(이정표 : 중원폭포 3.76Km, 중원리 등산로입구 4.27Km/ 싸리재 1.36Km, 중원산 6.48Km/ 도일봉 0.21Km)로 나뉜다. 싸리재까지 능선을 더 타다가 중원계곡으로 내려서는 방법도 있으나, 우리 일행은 곧장 중원계곡으로 내려서기로 한다. 싸리재까지 가는 길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원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경사(傾斜)가 가파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비록 허리를 곧추세우고는 내려서기가 어려울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다고는 하나, 길게 매어 놓은 안전로프를 붙잡고 내려서면 되기 때문이다. 능선에서 중원계곡까지는 1Km정도, 20분 남짓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그러나 만일 가을에 이곳을 찾았다면 의외로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구간이다. 내려오는 길에 맛있는 먹거리가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원시(原始)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숲에는 나무마다 수많은 다래넝쿨을 매달고 있다. 그리고 그 다래넝쿨에는 이제 막 익기 시작하는 다래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손이 미치는 곳에 매달린 열매만 땄는데도 여성분들의 주전부리용으로는 충분할 정도였다.

 

 

 

 

중원계곡에 이르면 길이 두 갈래(이정표 : 중원폭포 2.74Km, 중원리 등산로입구 3.35Km/ 싸리재 1.035Km, 도릴봉 2.6Km, 중원산 6.1Km/ 도일봉 1.23Km)로 나뉜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가면 싸리재, 명경지수(明鏡止水)로 소문난 중원계곡은 싸리재에서 발원(發源)한다. 도일봉과 중원산을 양옆으로 거느리며 20리 물길을 만들어 낸다. 중원계곡은 끼고 있는 산들이 그리 높지 않은데도 수량은 엄청나게 풍부하다. 그래서 곳곳에다 소()와 담(), 그리고 무명의 폭포(瀑布)들을 만들어 놓고 있다. 산행날머리인 중원리 주차장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중원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하산길은 중원계곡과 나란히 나있다. 단풍나무와 상수리나무가 군락(群落)을 이룬 숲길을 통과하면 와폭(臥瀑) 하나가 나타난다. 치마폭포이다. 협곡(峽谷)은 아침에 산행을 시작하면서 보았던 중원폭포 외에도 또 하나의 멋진 폭포(瀑布)를 빚어 놓았다. 깊숙한 계곡(溪谷), 그래서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에다 말이다. 사람들은 이름까지도 치마폭포라는 은근한 낱말을 붙여 놓았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치마를 들썩이고 있는 여인은 만났다고 가정해보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다. 높이 2m에 폭이 4m 정도. 폭포라는 이름을 붙기에는 다소 왜소(矮小)하지만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모습은 가히 일품이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치면서 생기는 하얀 포말이 마치 치마를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해서 치마폭포라는 이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치마폭포를 지나 계곡을 따라 내려서는 길은 울퉁불퉁한 돌밭이다. 하긴 계곡가로 난 길이 돌밭이 아닐 수는 없을 것이다. 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은 크고 작은 수많은 폭포(瀑布), 그리고 소()와 담()을 만들어낸다. 아직은 무더위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계절, 당연히 냇가로 내려가 물속으로 뛰어들고 본다. 물론 옷을 입은 채로다. 냇물은 마치 빙하(氷河) 녹은 물처럼 차갑다. 비록 물속에 오래 앉아있을 수는 없지만 들락거리며 가을에 쫓겨 가고 있는 여름의 끝자락을 배웅해준다. 치마폭포 위의 갈림길에서 30분 남짓이면 아침에 도일봉으로 올랐던 갈림길에 이르게 된다  

 

 

 

하산길에 다시 들른 중원폭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옹기종기 모여 발을 담그고 있는 일행들이 있는가 하면, 젊은이들은 폭포 위 바위 위에서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물속으로 다이빙을 한다. 다이빙해도 머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물이 깊다는 증거일 것이다. 혼잡에 질려 머물기를 포기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혼잡보다는 정적속의 산행을 즐기기 때문이다.  

 

서운산(瑞雲山, 547.7m)

 

산행일 : ‘13. 6. 1(토)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과 금광면, 그리고 충북 진천군 백곡면의 경계

산행코스 : 청룡사주차장→청룡사→은적암→서운산 정상→서봉→탕흉대→서운산성→좌성사→청룡사→바우덕이 사당→청룡사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둘이서

 

특징 : 바위가 거의 없고 비교적 부드러운 산세(山勢)에다 소나무와 활엽수가 산행 내내 이어진다. 거기다 높이까지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에 가족단위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편이다. 고찰(古刹)인 청룡사와 석남사가 있어서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로 삼을 수 있고, 또한 남사당 거주지와 서운산성 등 역사적 흔적(痕迹)들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청룡사 주차장(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평택제천고속도로: 남안성 I.C에서 내려와 23번 지방도 천안 방향으로 달리면 미양농공단지와 가나안산업단지를 거쳐 상장교차로(交叉路 : 입장면 상장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34번 국도로 옮겨 약 6Km쯤 달리면 청룡저수지를 만나게 되는데, 만나는 지점에 있는 삼거리(현대 오일뱅크 앞)에서 좌회전하여 1Km남짓 들어가면 산행이 시작되는 청룡사 주차장이다. 주차장(2013년 6월부터 주차요금을 받은 다는 예고문이 붙어 있었다)을 빠져나와 청룡사 방향으로 향하면 금방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의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빗돌(碑石)이 하나 서있다. ‘청룡사사적비(靑龍寺事蹟碑 : 경기도유형문화재 124호)’라고 한다. 사적비란 본래 어떠한 사건에 관련된 사실이나 자취를 기록한 빗돌을 말한다. 이 빗돌은 청룡사의 중수(重修 : 1721년)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인데, 나옹이 절을 중창할 때의 일과, 그 뒤 조선 숙종 때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을 중건(重建)한 사실 등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육안(肉眼)으로는 글자의 식별(識別)이 불가능했다. 이곳 삼거리에서 청룡사는 왼편으로 가야하고, 바우덕이 사당을 다녀오고 싶을 경우에는 오른편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삼거리에서 청룡사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연결된다. 도로의 가에 ‘주차금지’라고 쓰인 안내판들이 즐비하게 늘어 서있는 것이 보인다. 사찰(寺刹)에 용무가 있어 찾아오는 차량들의 통행을 막지 말아달라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도로의 한쪽 면은 이미 자동차들로 빽빽이 들어차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찌됐든 간에 나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인심(人心)들을 보는 것 같아 입안이 씁쓸하다. 주차장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200m 정도에 불과하다. 건강을 위해서 산을 찾아온 사람들이 이 정도 거리를 걷지 않으려면 뭣 때문에 기를 쓰고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청룡사는 도로와 함께 흐르고 있는 계곡의 건너편에 다소곳이 앉아있다. 서운산의 산세(山勢)와 잘 어우러지는 청룡사(靑龍寺)는 고려 때 지어진 오래된 사찰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수백 년은 족히 넘겼음직한 층층나무 한 그루가 절 앞에서 인왕상(仁王像)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사실 청룡사에는 절을 지킨다는 천왕문이나 금강문이 없다. 절을 지킨다는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청룡사에서는 천왕문이나 금강문 대신에 대웅전의 추녀 끝에 매달려 있다. 추녀 끝에다 금강역사상을 그려 넣은 것이다. 청룡사는 처음에는 대장암이라는 이름이었으나 나옹화상이 중창할 때, 상서로운 기운(瑞氣)의 구름(雲)을 타고 청룡이 내려오는 광경을 보고는 이름을 청룡사로 바꾸고, 산의 이름 또한 서운산이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 청룡사(靑龍寺). 고려 원종 6년인 1265년에 명본(明本)이 창건하여 대장암(大藏庵)이라고 부르다가, 공민왕 13년인 1364년에 나옹이 크게 중창하고 이름을 청룡사로 개칭했다. 청룡사라는 이름은 불도를 일으킬 절터를 찾아다니던 나옹이 이곳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청룡을 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배불뚝이 소나무와 허리를 뒤튼 소나무를 기둥으로 세운 대웅전이 보물 제824호로 지정되어 있고, 이밖에도 동종(銅鍾 : 보물 제11-4호)과 청룡사영산회괘불탱(靑龍寺靈山會掛佛幀 : 보물 제1257호), 청룡사감로탱(보물 제1302호), 청룡사금동관음보살좌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70호), 청룡사삼층석탑(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9호)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청룡사를 빠져나와 서운산으로 향한다. 절을 지나서도 길의 폭은 그다지 좁아지지 않는다. 비록 아스팔트포장에서 비포장(非鋪裝)으로 바뀌었지만 차량(車輛)이 통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이다. 이 길의 끄트머리에 은적암과 좌성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아무리 높은 곳에 위치한 절일지라도, 차량이 올라가지 못하는 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그만큼 편함을 우선시하는 사회로 변한 것이다. 청룡사를 출발하고 한 5분쯤 걸었나 싶으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좌성사로 가는 길이고, 은적암으로 가고 싶으면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오른편으로 들어서자마자 단풍나무 터널이 길손을 맞이한다. 청룡사에서 갈림길까지도 가로수는 단풍나무였다. 그러나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햇빛이 완벽하게 차단될 정도로 단풍나무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서운산은 가을이 제격일 것 같네요.’ 집사람의 말에 문득 만산홍록(滿山紅綠)의 서운산을 그려본다. 단풍으로 붉게 물든 만추(晩秋)의 서운산 자태는 한마디로 빼어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길가뿐만이 아니라 서운산 곳곳에는 그만큼 단풍나무가 많았다.

 

 

 

갈림길에서 2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공들여 쌓은 돌탑 몇 개가 있는 작은 쉼터(이정표 : 은적암 0.4Km, 정상 1.3Km/ 청룡사 1.4Km)에 이르게 된다. 돌탑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돌이 많은 계곡 옆으로 길이 나있는 탓인지 몰라도 크고 작은 돌탑들이 곳곳에 늘어서 있다. 돌탑은 원래 민초(民草)들의 삶이다. 민초의 소박한 소원들이 하나 둘 쌓여 돌탑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돌탑들에는 얼마나 많은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깃들어 있을까? 이곳에 조금 못 미쳐서부터 길가의 풍경이 확연히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왼편에는 산자락, 그리고 오른편에 농경지(農耕地)를 끼고 걸었지만, 이제부터 산속 오름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주위의 나무들도 어느 샌가 참나무들로 바뀌어 있다. 쉼터에서 은적암까지는 10분 정도면 이르게 된다. 널따란 도로를 따라 오르던 길이 언젠가부터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왼편의 도로 외에도 오른편에 보이는 능선을 따라 오솔길이 나있는 것이다.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오른편 능선길을 이용한다. 산을 오르내리는 묘미(妙味)는 뭐니 뭐니 해도 오솔길이 제격이기 때문일 것이다.

 

 

 

좌성사 갈림길을 출발한지 30분 정도가 지나면 숲이 훤히 트이면서 은적암(隱寂庵)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은적(隱寂)이라는 어감(語感)과는 달리 이 부근에서 가장 밝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정상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곳에서 숨을 고르는 휴식공간으로 이용하고 있다. 창건(創建)된 지 벌써 600년이 훌쩍 지나버린 은적암은 그 오랜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 작고, 초라하다. 절 앞에 세워진 안내판이 아니라면 민가(民家)의 여염집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3칸(間)짜리 법당(法堂)은 요사(寮舍)를 겸하고 있는 모양이고, 산신각(山神閣)으로 보이는 작은 전각(殿閣) 한 채가 전부이다. 물론 단청(丹靑)도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암자에는 소문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선수(仙水)라고 불리는 유명한 약수(藥水)이다. 안내판에 이성계도 물맛을 보고 감탄했다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물맛이 좋긴 좋은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물맛은 청량하면서도 달았다.

 

 

 

 

 

 

은적암에서 길은 두 갈래(이정표 : 정상 900m/ 정상 930m/ 청룡사 1.8Km)로 나뉜다, 그러나 어디로 갈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정상에 올라가기는 매 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더 걷고 싶은 욕심에 정상까지의 거리가 조금 더 먼 오른쪽 길을 택한다. 은적암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서운산의 특징인 ‘가족끼리 오르기에 좋은 산’의 이미지가 퇴색해질 정도는 아니다. 그저 걷는 속도를 조금만 늦춘다면 어린아이들도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 정도인 것이다.

 

 

 

 

은적암에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치고오르면 아까 은적암에서 헤어졌던 산길이 다시 합쳐지는 사거리(이정표 : 정상 0.6Km/ 좌성사 1.2Km/ 청룡사 1.8Km/ 은적암 0.4Km)에 이르게 된다. 사거리에서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적당하게 섞여있는 능선을 다시 한 번 치고 오르면 ‘탕흉대 갈림길(이정표 : 정상 0.3Km/ 탕흉대 1.4Km. 은적암 0.6Km)’이고, 이어서 왼편에 정자(亭子)하나가 보인다. 조망(眺望)이 트이는 곳이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올라가봐야 할 일이다. 정자에 올라서면 발아래 안성들판이 펼쳐진다. 그리고 안성들녘 뒤로는 칠장산 등 금북정맥이 야트막하면서도 기운차게 흐르고 있다.

 

 

 

 

 

 

 

 

정자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헬기장에 올라서게 된다. 헬기장에서 또 다시 조망(眺望)이 트인다. 안성들녘 대신에 이번에는 청룡호가 발아래에 깔려있고, 호수 뒤로는 난다 긴다 하는 중부 내륙의 명산(名山)들이 파노라마(panorama)처럼 펼쳐진다. 푸른 용(龍)이 승천했다는 영험(靈驗)한 호수로 알려진 청룡호가 작게 느껴지는 것이 의외이다. 논두렁 사이에 파놓은 방죽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듯 싶다.

 

 

 

헬기장에서 조금만 더 가면 ‘엽돈재 갈림길(이정표 : 정상 0.2Km/ 엽돈재 5.3Km/ 정자 0.2Km)’이다. 갈림길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길이 엽돈재로 가는 길인데, 휴식년제로 묶여 현재는 통행이 금지되고 있다. 엽돈재는 **금북정맥의 한 지점인데, 정맥을 답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난감한 구간일 듯 싶다. 이곳에서 만난 금북정맥은 서운산 정상 바로 못미처에 있는 삼거리(이정표 : 정상 0.1Km/ 배티고개, 석남사/ 청룡사 2.5Km)에서 이번에는 배티고개로 이어진다.

(**)금북정맥(錦北正脈),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시작된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안성의 칠장산(七長山)에서 금북·한남으로 갈라진다. 칠장산(七長山)에서 시작된 금북정맥의 산세는 태안반도 지령산(知靈山)에서 산세를 끝내는데 그 길이가 약 240㎞에 이른다. 주요 산으로는 성거산(聖居山), 광덕산(廣德山), 오서산, 수덕산, 가야산, 팔봉산 등이 있다. 참고로 산줄기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므로 금북정맥이라 한 것인데 북서쪽 안성천·삽교천을 아우르고, 남쪽으로 길게 이어진 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이 바로 금강이므로 금강 북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옛 산맥 이름이다.

 

 

 

 

 

배티고개 갈림길에서 정상까지는 쉼터로 조성(造成)되어 있다. 울창한 참나무 숲으로 뒤덮인 길가에는 곳곳에 벤치와 식탁(食卓)들을 설치해 휴식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런 곳에는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막걸리를 파는 사람들이다. 서운산 정상도 역시 막걸리를 잔술로 파는 상인들이 지키고 있다. 서운산의 정상은 좀 싱겁다는 느낌이다. 웬만한 산들의 정상은 정상 부근에서 변화를 주고 난 다음에 정상에 이르게 한다. 즉 깔딱 고개나 험준한 바윗길 등의 난관을 거치고 난 후에야 정상에 올라서게 만드는데, 이곳 서운산은 엽돈재 갈림길을 지나면서부터 밋밋한 분지(盆地)로 이어지다가, 어느 한 지점을 정상이라고 정해버린 느낌인 것이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이 약간 넘게 걸렸다.

 

 

 

서운산 정상은 나무 데크로 전망대(展望臺)를 만들어 놓았다. 데크의 한쪽은 기괴(奇怪)한 바위들과 제멋대로 생긴 노송(老松)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쪽 면에 나무 데크로 앉을 자리를 만들어 놓았는데, 정상표지판은 앉을자리의 뒤편에다 세워 놓았다. 어쩌면 앉은 채로 정상정복 인증사진(認證寫眞)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산이 아닐까 싶다. 전망대의 난간에 서면 거침없이 시야(視野)가 트인다. 안성시의 너른 들녘이 펼쳐지는데, 어른거리는 가스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할 수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저 난간에 세워진 경관 안내판을 보며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멀리 충북 진천 쪽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아까 지나왔던 ‘탕흉대(蕩胸臺) 갈림길’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탕흉대 방향으로 진행한다. 등산로 주변은 소나무 숲과 참나무 숲이 번갈아가면서 나타나는데, 길은 산책로처럼 여유롭다. 탕흉대 갈림길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청룡사 갈림길(이정표 : 탕흉대 0.9Km/ 청룡사 2.2Km/ 정상 0.6Km)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자그마한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되는데 이곳이 바로 서봉(542.8m)이다. 서봉 정상은 삼각점 외에는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는다. 거기다가 조망(眺望) 또한 좋지 않다. 정상에서 청룡사로 내려가는 길은 크게 보아 두 개의 코스가 있다. 정상에서 은적암을 거쳐 곧장 청룡사로 내려가는 코스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좌성사를 거쳐 청룡사로 내려가는 코스이다. 이 둘 중에서 난 좌성사를 거치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좌성사를 거치는 코스가 거리도 더 멀뿐만 아니라, 걷기만 해도 건강에 좋다는 소나무 숲길을 실컷 거닐 수 있기 때문이다. 길가에 늘어선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마치 군무(群舞)를 추는 것 같다. 하나같이 기괴하게 생긴 소나무들이 몸을 비비 꼬꼬 있는 광경(光景)이 마치 춤을 추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소나무숲길은 탕흉대로 가는 길 외에도 좌성사 내려가는 길, 그리고 좌성사에서 청룡사로 내려가는 능선에서도 계속된다.

 

 

 

 

산길은 굴피나무와 굴참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길이다. 거기다 가끔 조릿대가 보이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철쭉이 군락(群落)을 이루기도 한다. 길은 온통 부드러운 흙길인데, 걷는 속도를 떨어뜨리며 주위로 시선을 돌려보면 이름 모를 들꽃들이 눈에 들어온다. 저물어가는 봄날을 아쉬워하며 마지막 교태(嬌態)를 부리고 있는 모양이다.

 

 

 

 

서봉을 지나면 좌성사로 내려가는 갈림길 두 곳(이정표 #1 : 탕흉대 0.4Km/ 좌성사 1.0Km/ 정상 1.0Km, 이정표 #2 : 탕흉대 0.1Km/ 좌성사 0.2Km/ 정상 1.4Km)을 지나게 된다. 제멋대로 자란 노송(老松)들 천지인 구간을 지나면, 이번에는 온통 참나무들이 능선을 독차지하고 있다. 산길은 능선안부에서 잠깐 고도(高度)를 낮추었다가 다시 위로 향하면서 뽈록하니 봉우리 하나를 만들어 놓는다. 바로 탕흉대(蕩胸臺)이다.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30분이 조금 못 걸렸다.

 

 

 

탕흉대(蕩胸臺)는 ‘가슴을 씻어내는 곳’이라는 의미로 예로부터 시원스런 조망(眺望)터를 이르는 지명(地名)이라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탕흉대의 조망은 뛰어나다. 탕흉대에 올라서면 안성의 너른 들녘이 발아래에 펼쳐지는데, 날씨가 좋을 경우에는 안성과 평택은 물론 천안까지도 눈에 들어온다고 한다. 탕흉대의 한 복판에 있는 바위에 탕흉대(蕩胸臺)라고 쓰인 글씨가 아직까지도 선명한데, 탕흉(蕩胸)이란 ‘가슴이 시원하다’, ‘가슴이 후련하다’ 혹은 ‘가슴속 답답함을 쓸어버린다.’는 뜻이며, 대(臺)란 ‘높고 평평한 곳’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좌성사로 내려가는 길은 탕흉대에서 나뉜다(이정표 : 좌성사 0.3Km/ 정상 1.7Km). 경사(傾斜)가 별로 없는 산길을 따라 100m 조금 넘게 내려오면 왼편에 정자(서운정) 하나가 보이고, 석조여래입상(향토유적 제43호)은 그 옆에 보이는 암벽(巖壁)의 아래에 있다. 여래입상 바로 아래에는 ‘서운산성(山城)’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이 바로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의병장이었던 홍계남 장군이 방어전을 펼쳤다는 서운산성의 지휘본부인 장대(將臺)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흙으로 쌓은 서운산성은 성 안에서 나온 유물의 연대 측정 결과 삼국시대에 축조(築造)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발 535m에서 460m까지 골짜기처럼 비탈진 사면(斜面)을 삼태기 모양으로 둘러쌓았다고 하지만 세월이 흐른 탓에 산성(山城)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저 산성터임을 알려주는 입간판을 보고 이곳이 옛 산성터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이정표 : 좌성사 0.2Km/ 정상 1.3Km)

 

 

 

 

 

 

 

산성터에서 200m 정도를 더 내려오면 좌성사이다. 좌성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서 창건연대는 100년이 채 안 되는 기도도량인데, 누가 지었는지는 불확실하다고 한다. 그래도 창건에 따른 설화(說話) 한 토막 정도는 가지고 있다. 어느 할머니가 기존의 약천암 자리에서 정성들여 불공을 드린 후에 손녀의 불치병이 낫자 그 보답으로 이 사찰(寺刹)을 건립했다는 것이다. 성인이 앉을만한 자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좌성사는 비록 자그마한 절이지만 이름에 걸맞게 조망(眺望)은 그만이다. 이렇게 한적하면서도 조망이 뛰어나니 성인이 자리를 잡을만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좌성사를 빠져나와 차량이 다니는 임도(林道)를 따라 100m쯤 걸으면 오른편 능선으로 산길이 열린다. 들머리에 산악회의 리본들이 매달려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꽤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는 길이다. 능선을 가득 메운 소나무 숲길은 건강에 좋다는 피톤치드가 넘쳐나서 좋고, 울창한 참나무 숲길은 싱그러운 나뭇잎이 향긋해서 좋다. 거기다가 발바닥의 감촉이 여간 폭신폭신한 게 아니다. 산길이 바위나 돌이 일절 눈에 띄지 않는 흙길로 이루어진 것이다.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산길을 따라 30분 가까이 걷다보면, 산길은 갑자기 급하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서는데 힘들 정도는 아니다. 바닥이 흙길이라서 무릎에 지장을 주지 않는 것이다. 20분 가까이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청룡사가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면 청룡사이다. 청룡사에 가까워지자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한다. 사찰 주위가 온통 음식점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명색이 보물을 5점이나 가지고 있는 천년고찰(千年古刹)이니 집단시설지구를 만들어 음식점들을 한군데로 모았으면 어떨까 싶다.

 

 

 

청룡사 초입, 사적비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다리를 건너 부도밭을 지나면 바우덕이를 기리는 사당(祠堂)이 있다. 이곳이 바로 남사당패들이 살았다는 불당골이다. 남사당패들은 겨울이면 대처에서 돌아와 불당골에 머물면서 절의 허드렛일을 거들어주고 밥을 얻어먹었다고 한다. 바우덕이는 남사당패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적인 여성 꼭두쇠이다. 바우덕이라는 이름은 바위틈에서 주운 아이라서 그리 불렀다는 설과, 이름이 박우덕, 또는 김암덕(金岩德)이라서 그리 불렀다는 설이 있다. 아무튼 꼭두쇠는 남사당패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말인데, 남사당패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남자들로 이루어진 패거리에서 여자의 몸으로 꼭두쇠가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일 것이다. 거기다 그녀의 나이가 열다섯 살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니 그녀의 용모나 기예(技藝)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아깝게도 그녀는 전국을 유랑하다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청룡사 근처에 묻혔다.

 

 

 

 

 

한글 현판이 걸려 있는 바우덕이 사당은 한마디로 귀엽다는 느낌이다. 사당 옆에는 상모를 벗어 손에 쥐고 팔을 늘어뜨린 채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아담한 바우덕이 동상이 서 있다. 청룡사는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의 무대가 되기도 했고, 특히 조선 후기 남자 사당(藝人)으로 이루어져 남사당패라 불리는 유랑(流浪) 예인(藝人) 집단이 겨울이면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남사당패는 겨울이면 이 곳 청룡사에 둥지를 틀고 기예(技藝)를 연마하고, 봄이 되면 청룡사에서 발급해 준 패를 들고 안성 장터를 중심으로 전국을 떠돌며 민중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고 한다.

 

 

 

매곡산(梅谷山, 507m)

 

산행일 : ‘13. 4. 27(토)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산행코스 : 문호리(문호교회)→전망대→푯대봉(364m)→무궁화공원묘지→매곡산→공원묘지→도장1리(산행시간 : 3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전형적인 흙산(肉山)인 매곡산은 특별한 볼거리는 차지하고라도 조망(眺望)까지도 신통치 않은 산이다. 따라서 전문적인 등산마니아(mania)들 외에는 찾는 이들이 드문 편이다. 그러나 매곡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푯대봉은 한번쯤 들러도 괜찮을 것이다. 두물머리 조망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푯대봉만 둘러보기에는 산행시간이 너무 짧은 것이 단점,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족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서 매곡산까지 산행을 연장해 보지만, 괜한 짓을 했다고 후회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이곳 지자체에서도 푯대봉에는 전망대(展望臺)까지 만들어 놓았지만 이후부터는 이정표 하나도 세워 놓지 않았다.

 

 

산행들머리는 운호교회

중앙선 전철 양수리역에서 내려, 시내버스(8-4번)를 이용하면 산행이 시작되는 문호리까지 갈 수가 있다. 버스에서 내려 352번 지방도를 따라 정배리(수능리)방향으로 조금만 걸으면 도로 오른편에 문호교회가 나온다. 등산로는 문호교회 못미처의 대주공인중계사사무소의 옆 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나, 잠깐 짬을 내어 문호교회를 둘러볼 것을 권하고 싶다. 문호교회는 100년도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길가에다 번듯하게 새로 세운 커다란 교회당(敎會堂)의 오른편 언덕 위에 오래된 건물 하나가 보인다. ‘한돌성전’이라고 불리는 옛 교회당이다. 이곳 문호리(옛이름은 무내리)는 조선시대에는 아주 번화한 곳이었다고 한다. 뱃길이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당시에 ‘무내미 나루터’가 도성(都城)이었던 경성으로 들어가는 관문(關門)이었기 때문이다. 나루터를 중심으로 주막(酒幕)과 여관이 즐비하여 ‘작은 서울’이라고 불리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포교(布敎)를 위해 선교사(宣敎師)들이 이곳을 찾았을 것이고, 그 선교사가 곽안련(Charles Allen Clark)이었다. 그가 신자들과 함께 2.5평짜리 건물을 지은(1906년) 것이 문호교회의 시초이다. 1911년에는 183명이 예배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건물의 규모가 커졌으나, 6.25동란 때 불타버렸고, 지금의 한돌성전은 1955년에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대주공인중계사사무소의 옆길로 들어서면 오른편 산비탈에 설치된 철계단이 보인다. 계단 앞에는 등산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계단에서 50m만 더 오르면 능선위(이정표 : 푯대봉 2.83Km/ 등산로 입구 0.05Km)로 올라서게 된다.

 

 

 

 

 

능선에 올라서면 길은 순해진다. 부드러운 흙길에다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니 걷기에 무척 편하다. 거기다 주변이 온통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솔가리(소나무 落葉)가 길 위에 수북하게 쌓여있어 폭신폭신하기까지 할 정도이다. 소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phytoncide)에 코끝을 킁킁거리며 고개하나를 넘으면 체육공원(푯대봉 2.39Km/ 문호4리 0.13Km/ 문호2리 2.21Km/ 등산로 입구 0.49Km)이 나온다. 체육기구들을 설치하느라 공을 들인 것 같지만, 아쉽게도 이용하는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차라리 동네 주변에 세웠으면 어떨까 싶다.

 

 

 

 

체육공원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행이도 오르막길은 길지 않다. 오르막길이 끝나면 길가에 늘어선 진달래의 개체수가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진달래군락으로 알려진 구간에 들어선 모양이다. 그러다가 오른편에 훤하게 트인다. 첫 번째 만나는 포토-죤(Photo Zone)이다. 양수리와 북한강이 잘 조망(眺望)되는 곳이다. 북한강 너머에는 운길산과 예봉산, 그리고 검단산이 버티고 있다.(부근의 이정표 : 푯대봉 0.67Km/ 등산로 입구 2.21Km)

 

 

 

 

 

 

 

 

 

첫 번째 포토-죤(Photo Zone)에서 진달래 꽃길을 따라 조금 더 걸으면 또 하나의 이정표(푯대봉 0.13Km/ 등산로 입구 2.75Km)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진달래 군락(群落)은 끝을 맺는다.

 

 

 

이정표를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오르막길을 잠깐 치고 오르면 푯대봉 정상이다. 푯대봉엔 정상표지석과 삼각점, 그리고 포토-죤(Photo Zone)이라는 이름표를 단 조망(眺望)테크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오른편의 나무에 ‘푯대봉 354m'라고 쓰인 나무판자가 눈에 들어온다. 정상표지석이 세워지기 전에 이곳을 지키고 있던 정상표지판이었나 보다. 포토-죤(Photo Zone)에 서면 북한강과 건너편 문안산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또한 두물머리와 예봉산 그리고 운길산이 선명한 것은 물론이다. 들머리에서 푯대봉까지는 2.88Km, 대략 1시간 남짓 걸린다.

 

 

 

 

 

푯대봉을 지나면서부터 능선은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면서 이어진다. 산길은 푯대봉에 올라올 때보다는 훨씬 흐릿하지만 길을 못 찾을 정도는 아니다. 310봉 등 왼편으로 제법 또렷한 지능선이 분기(分岐)하고 있으나 개의치 말고 주능선을 따라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은 능선은 꽤 오랫동안 이어진다. 능선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밋밋하다.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는 전형적인 흙산인지라 볼거리가 일절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능선을 온통 참나무들이 포위하고 있기 때문에 조망(眺望)까지도 트이지 않는다. 그나마 가끔 눈에 띄는 진달래꽃이나, 나뭇가지 끝을 간질이며 나오고 있는 연녹색 이파리들로 위안을 삼으며 걸을 따름이다.

 

 

 

 

푯대봉을 출발해서 40분 정도가 지나면 공원묘지로 내려가는 임도(林道)가 있는 안부에 이르게 된다. 오른편에 보이는 광활한 산사면(山斜面)을 온통 묘지(墓地)들이 차지하고 있다. 무궁화공원묘지라고 한다.

 

 

 

공원묘지 안부에서는 임도를 따르지 말고 곧장 능선을 치고 올라야 한다. 산길은 능선의 한가운데를 가르고 있는 공원묘지의 경계를 따라 이어진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10분 조금 못되게 치고 오르면 공원묘지의 정상부에 이르게 된다. 정상부의 조망은 뛰어나다. 용문산과 유명산, 그리고 중미산 등 첩첩이 쌓인 산군(山群)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을 오르다보면 이해하기 힘든 안내판 하나가 보인다. 분묘(墳墓)의 위치를 알려주려는 모양인데 소재지를 기흥으로 적어 놓았다. 여기는 양평군(서종면)인데도 말이다. 아마 기흥에 있던 분묘를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공원묘지의 상부에서 매곡산 방향을 바라보면 높다란 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501봉으로서, 정상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정상은 그 너머에 있다. 오르막이 길지 않은 501봉을 넘은 후,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한 번 치고 오르면 이내 매곡산 정상이다. 공원묘지 안부에서 이곳까지는 30분 남짓 걸린다.

 

 

매곡산 정상은 10평도 넘을 정도로 제법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은 나무들을 제거하는 등 정비를 한 흔적이 뚜렷하지만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어느 등산마니아(mania)들이 매달아 놓은 코팅지만이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을 따름이다. 푯대봉과는 달리 이곳 매곡산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 조망(眺望)까지도 트이지 않은 정상에서 오래 머물 이유가 없기 때문에 하산 길을 재촉한다. 날머리를 도장리로 잡고, 가는 길에 연화봉을 거치기 위해 왔던 길로 되돌아 나온다. 연화봉으로 가는 능선이 아까 지나왔던 501봉에서 왼편으로 분기(分岐)하기 때문이다. 501봉 조금 못미처서 자리를 잡고 점심상을 편다. 그러나 다들 밥은 뒷전이고 술부터 주고받는다. 역시 땀을 흠뻑 흘린 뒤에는 술이 제 맛인 모양이다.

 

 

 

산행날머리는 도장리의 도장교(橋)앞 버스정류장

501봉에서 연화봉으로 가는 지능선을 포기하고 그냥 공원묘지로 내려선다. 연화봉으로 가는 산길의 흔적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무작정 치고 내려가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여성분들을 위해서 모험을 삼가기로 한 것이다. 묘원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저만큼에 도장교가 보인다. 매곡산에서 도장교까지는 1시간 정도가 걸린다.

 

 

 

 

오늘도 부지런한 집사람은 산나물을 제법 많이 채취했다. 고사리와 원추리, 그리고 고추나물이다. 덕분에 우리 집 세 식구는 또 한 번 향긋한 봄의 향을 맛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유명산(有明山, 862m)

 

산행일 : ‘12. 12. 29()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과 가평군 설악면의 경계

산행코스 : 유명산 버스종점자연휴양림산책로유명산입구지계곡유명산휴양림(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최영철군

 

특징 : 사방으로 산줄기가 이어져 있어 제법 규모가 있는 산처럼 느껴지나 사실은 능선이 완만(緩慢)하고 부드러워서 어린이이나 노약자들도 별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따라서 온 가족이 함께 등반하기에 좋은 산이다. 산 자체만 가지고는 별로 볼만한 것이 없고, 대신 자연휴양림과 계곡, 그리고 가을철의 억새풀밭으로 알려진 곳이다.

 

 

산행들머리는 유명산 자원휴양림 버스종점

양평에서 37번 국도를 타고 청평방향으로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중미산자연휴양림(自然休養林)으로 들어가는 길과 갈리는 중미산삼거리에 이를 수 있다. 이곳에서 구불구불한 산간도로를 따라 힘겹게 *서너치고개에 올라섰다가 다시 내려서면 유명산 자연휴양림의 입구에 있는 버스종점이다. 참고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청량리 역사(驛舍) 앞에서 광역버스(1330-7)를 이용하거나, 양평버스터미널 또는 가평군 설악터미널에서 군내버스로 환승(換乘)하는 방법 등이 있다. 그중 가장 편한 방법은 서울(잠실)에서 30분 간격으로 왕복(往復) 운행하는 7000번 광역버스(진흥고속)을 이용하여 설악면소재지까지 온 후, 유명산휴양림으로 가는 군내버스(1시간 간격으로 운행)로 갈아타는 것이다.

(**) 서너치 고개, 양쪽의 산이 높고 골이 깊은 탓에 하늘이 서너 치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들으면 들을수록 재미있는 이름이다. 우리나라 곳곳의 지명(地名)들이 대개 이런 식으로 지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저런 이름을 지을 수 있는 재치와 익살을 겸비한 우리 선현(先賢)들에게 자연스럽게 고개가 수그려진다.

 

 

 

버스 종점에서 산행이 시작되는 유명산 자연휴양림으로 가려면 맞은편에 보이는 도로로 진행해야 한다. 도로를 따라 잠깐 걸으면 매표소(입장료는 1천원이나 겨울철에는 무료로 개방된다)가 보이고, 이어서 '**용문산자연휴양림'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 유명산 자연휴양림(自然休養林),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에서 1989년에 개장했으며,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가평의 대표적인 휴양림(休養林)이다. 구역 면적은 892, 1일 최대 수용인원은 3,000, 최적(最適) 인원은 2,000명이라고 한다. 입구지계곡 안쪽으로 조성(造成)되었으며, 참나무류가 많은 천연림 지대와 낙엽송, 잣나무 등을 심어놓은 인공림 지대가 함께 어우러져 풍광(風光)이 뛰어나다. 휴양림에는 체력단련장, 삼림욕장, 오토캠핑장, 캠프파이어장, 다목적광장 등의 편의시설과 임간수련장, 유리온실, 눈썰매장, 야생화단지, 2.6의 순환도로 등이 구비되어 있다고 한다.

 

 

 

 

 

휴양림관리소 옆의 잘 가꾸어진 쉼터를 지나서, 아치(arch)형 나무다리를 통과하고 나면 왼편으로 산행 들머리(이정표 : 정상 2Km, 산책로 0.4Km/ 주차장 0.4Km, 관리사무소 0.5Km)가 열린다. 버스 종점에서 약 20분 정도 거리이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400m의 산길은 자연휴양림의 산책로(散策路)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으니 다목적 산길인 모양이다.

 

 

 

 

본격적인 산행은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숲으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낙엽송 숲은 얼마나 울창하게 우거졌던지 하늘이 가려져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60년대 조림(造林)한 나무들인데 지금은 무성하게 자라서 원시림(原始林)을 방불케 하고 있다. 낙엽송이 우거진 오솔길로 들어서면 완만(緩慢)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최근에 간벌(間伐)을 했었는지 반듯반듯한 통나무를 가지런히 쌓아 놓은 것이 보인다. 등산로는 가장자리를 따라 로프를 매어 놓는 등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도록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걷기 편한 산책로를 15분 정도 쉬엄쉬엄 오르면 사거리(이정표 : 정상 1.6Km/ 유명계곡, 박쥐소 산책로 1Km/ 숲속의 집 1.6Km)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산책로는 위로 오르는 것을 포기하면서, 방향을 틀어 좌우(左右)에 위치한 유명계곡()와 숲속의 집()로 연결시킨다.

 

 

 

 

 

사거리에서부터 산길은 조금씩 가파르게 변한다. 그렇다고 코에서 땅 냄새가 난다거나 코가 땅에 닿을 것 같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거기가다 길가에 굵직한 동아줄이 매어져 있으니 힘든 사람들은 동아줄을 붙잡고 오르면 될 일이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20분 정도 치고 오르면 울창한 잣나무 숲이 나타난다. 이곳 가평이 잣의 주산지라는 것을 실감나게 하는 순간이다. 잣나무 숲 아래를 10분 정도 더 오르면 바위능선 입구라고 쓰인 119의 구조지점 표시목(정상 0.7Km/ 주차장 1.3Km) 하나가 보인다.

 

 

 

 

구호지점 표시목을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바윗길로 변한다. 그러나 바윗길이라고 해서 험하지도 않을뿐더러, 약간만 경사(傾斜)가 급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로프를 매달아 놓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정도이다. 바윗길에 접어들면서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은 어느새 참나무로 바뀌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앙상한 참나무 가지 사이로 건너편 산자락이 내다보인다. 산의 아랫도리를 휘감고 있는 운무(雲霧)가 가히 환상적(幻想的)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또 다시 잠깐 나타나는 잣나무 숲을 지나면 이번에는 산길 주변은 온통 참나무들 천지이다. 오래 묵은 괴목(怪木)들을 구경하면서 산행을 잇다보면 어느새 유명산 정상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가에는 온통 상고대가 활짝 피어있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산객은 눈이 호사(豪士)를 누리는 순간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이 지났다.

 

 

 

 

 

 

드넓은 구릉(丘陵)으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정상표지석이 한 가운데에 세워져있고, 표지석 한쪽으론 그간 유명산에 올라왔던 사람들이 주변의 돌들을 모아 만든 돌무더기들이 서 있다. 능선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씩 드문드문 박혀 있어 이국적(異國的)인 느낌을 풍기고 있다. 정상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나 거리표시가 없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 대신에 119에서 세운 구호지점 표시목(계곡 1.6Km/ 주차장 2.0Km)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 유명산의 원래의 이름은 마유산(馬遊山)이다. 옛 문헌(文獻 : 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산 정상에서 말을 길렀다고 해서 마유산이라고 불렀다는 기록(記錄)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도에는 이름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1973년 엠포르산악회가 국토 자오선 종주를 하던 중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산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산악회 대원 중 홍일점 여성대원이었던 진유명이라는 여성의 이름을 따서 유명산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드넓은 구릉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금방 여기까지 올라온 보람이 느껴진다. 사통팔달(四通八達)로 조망(眺望)이 터지고 있는 것이다. 먼저 남쪽의 대머리처럼 정상 부분이 훌러덩 벗겨진 것은 대부산으로,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마니아들이 활공장으로 이용하는 곳이다. 또한 대부산으로 이어진 임도 길은 산악자전거 마니아들은 물론 오프로드를 즐기는 사람들도 즐겨 찾곤 한다. 서쪽으로는 소구니산이 가깝게 보이고, 이어서 청계산이 건너다보인다. 시야(視野)를 조금 더 넓히면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이 펼쳐진다. 시선을 올려 위쪽을 쳐다보면 선어치 고개 너머 중미산과 들판 넘어 멀리 북한강과 청평호()가 아스라이 나타난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장마에 물고기가 이곳까지 넘나들었다는 어비산과 용문산 일대, 시선(視線)을 깔면 골골이 흘러내리는 계곡 물줄기가 한 가닥 실처럼 가늘게 보인다.

 

 

 

하산을 어비산 쪽을 향해 내려가다가 합수(合水)지점에서부터 입구지계곡을 따라 휴양림까지 내려가기로 한다. 이정표가 서있는 곳에서 왼편으로 접어들면 먼저 억새밭이 마중을 나온다. 그러다가 노송(老松) 군락(群落)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파르게 변한다. 경사(傾斜)가 하도 가파르다 보니 곳곳에 밧줄이 설치돼 있고, 가파른 내리막에서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산사태를 줄이기 위해 갈지()자로 길을 만들어 놓았다. 아마도 입구지계곡을 들머리로 삼았더라면 정상까지 오르기 위해선 어지간히 땀을 흘려야 했을 것 같다.

 

 

 

 

 

앞서가던 최군이 냇가로 내려가더니 주섬주섬 자리를 챙긴다. 아마도 점심때가 되었다는 신호인 모양이고, 요기나 하고 가자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잠깐의 자리 잡음은 요기가 아니고 진수성찬(珍羞盛饌)이 되어버렸다. 산에서 버너를 켜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오늘 같이 눈이 수북이 쌓인 날에는 괜찮을 것이라고 자위를 하면서 불판에 고기를 굽기 시작한 것이다. 그나저나 산에서 구워먹는 차돌박이는 경이(驚異) 그 자체였다. 거기다가 반주까지 곁들이니 이보다 더 초호화판 산행이 어디 있겠는가.

 

 

 

계곡을 만나고 얼마 안 있으면 합수(合水)지점(이정표 : **어비산 정상 1.5Km/ 유명산 정상 1.5Km/ 가일리 매표소 2.9Km)이다. 합수지점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 계곡을 따르면 어비산으로 가게 되고, 휴양림으로 내려가려면 계속해서 계곡을 따르면 된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길은 너덜지대가 대부분이라 발목을 접질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곳곳이 미끄러운 만큼 주의를 요하는 곳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계곡을 감상하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라고 생각한다면 너덜지대 까지도 즐길 만할 것이다. 정상에서 합수지점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린다.

(**) 어비산, 아주 오랜 옛날에 한 신선(神仙)이 남한강에서 고기를 낚아 가평군 설악면의 장락으로 가는 길에 선어치고개를 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죽었던 물고기가 갑자기 살아나더니(선어 : 鮮魚)’, 소구니 산을 넘어 유명산 뒤의 산으로 날아가 내려앉더라는 것이다. 그 후부터 그 고개 이름을 선어치 고개’, 물고기가 내려앉은 산을 어비산(魚飛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부터는 입구지계곡이라고 불리는 계곡이다. 용문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입구지천으로 흘러내려와 유명산계곡을 지나서 북한강으로 흘러간다. 입구지계곡은 물줄기를 편안하게 모아 소() 하나를 만들어 놓고 마당소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마당소니 용소니 박쥐소니 하는 이름은 대표로 호칭되는 것일 뿐이고, 실제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담()과 소()들이 구슬을 꿰어놓은 듯이 이어진다. 마당소는 그 크기도 크기지만, 그 물줄기가 맑고 푸른 것으로 더 유명하다. 그러나 겨울철인 지금은 두꺼운 얼음으로 뒤덮여있기 때문에, 맑다 못해 옥색치마를 걸친 것 같다는 물줄기는 구경할 수도 없다. 휴양림은 마당소를 지나서도 1시간 정도를 더 걸어내려가야만 한다.

 

 

 

계곡을 내려가다 보면 가끔 기암괴석을 이룬 작은 봉우리들이 멋진 자태를 드러낸다. 이런 바위 봉우리에는 인고(忍苦)의 세월을 거치면서 스스로 아름다워진 소나무가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로 만들 수 없는 기암괴석들과 굽이치는 계곡의 유연한 춤사위는 지루함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기지개 활짝 켜고 자연휴양림이 만들어주는 최고의 청정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켜 보자. 속이 시원하게 뻥 뚫릴 것이다.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 양편에는 기암절벽(奇巖絶壁)이 늘어서 있고 나무도 울창하다. 군데군데 작은 소()와 담()이 암반(巖盤)과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낸다. 다만 하나 아쉬운 것 있다면 폭포(瀑布)가 눈에 띄지 않는 다는 것이다. 길을 걷다보면 가끔 다래나무 줄기가 늘어진 곳을 지나게 되는데, 나도 몰래 입가에 군침이 돈다. 봄에 피어나는 연한 새순하며, 가을이면 주렁주렁 열리는 녹황색 열매가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다.

 

 

 

 

상류에서 깔끔하고 소박(素朴)한 모습을 띠었던 계곡은 내려갈수록 점점 빼어남까지 갖추어간다. 계곡은 활엽수들이 울창하게 뒤덮고 있고, 산길은 계곡 바로 옆으로 나 있어 계곡 전체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행운(幸運)까지 부여받는다. 길가에서 가끔 만나게 되는 단풍나무들은 생명을 다한 나뭇잎들이 삭풍(朔風)에 몸을 떨며 마지막 붉음을 자랑하고 있다.

 

 

 

산행날머리는 유명산자연휴양림(원점회귀)

수많은 소()와 담(), 그리고 계곡가의 절벽(絶壁)들을 감상하며 내려오다 보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자연휴양림(自然休養林)이 보인다. 산행은 자연휴양림에 도착하면서 끝을 맺는다. 유명산자연휴양림은 울창한 숲과 맑은 물, 그리고 빼어난 계곡이 어우러진 휴양림으로 알려져 있다.

 

 

 

칠장산(七長山, 491.2m)-칠현산(七賢山 515.7m)

 

산행일 : ‘12. 12. 19()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삼죽면죽산면과 충북 광혜원면의 경계

산행코스 : 옥정재(320m)고라니봉무이산(462m)덕성산(519m)칠현산(516m)부부탑칠장산(492m)칠장사(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그냥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흙산이다. 흙산의 특색대로 산 자체만으로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고, 또한 능선이 온통 울창한 수림(樹林)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는다. 대간(大幹)이나 정맥(正脈) 답사(踏査)를 이어가는 산꾼들이나 그저 산이 있어 산을 찾는다.’고 말하는 수준의 산꾼들 외에는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산이다. 다만 칠장산은 칠장사라라는 천년 고찰(古刹)을 끼고 있고, 또한 정상까지의 거리가 짧으면서도 가파르지 않기 때문에 가족끼리 산책삼아 찾아볼만한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를 가르고 있는 고갯마루인 옥정재

평택-제천고속도로 북진천 I.C에서 내려오자마자 만나게 되는 17번 국도를 무시하고, 그냥 진행하면 얼마 안 있어 미호천() 앞에서 마장삼거리(이월면 신월리)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17번 지방도로 잠깐 달리다가, 대막삼거리(이월면 송림리)에서 이번에는 좌회전하여 302번 지방도로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이 시작되는 옥정재에 이르게 된다. 해발 320m의 옥정재는 경기도(안성시 금광면)와 충청북도(진천군 이월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갯마루이다.

 

 

 

옥정재의 오른편은 절개지(cutting area , 切開地) 벼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곧바로 능선으로 붙는 것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등산로의 들머리는 안성방향으로 50m정도 내려간 지점에서 능선의 왼쪽 비탈로 우회(迂廻)하도록 되어 있다.

 

 

 

 

산길은 비탈의 아랫자락으로 난 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다가 이내 오른편 사면(斜面)을 치고 오르도록 되어 있다. 사면을 치고 오르는 산길은 거칠기 짝이 없다. 길이 좁을 뿐만 아니라 가파르기까지 하기 때문에 길가에 매어놓은 안전(安全)로프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혹시 미끄러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큰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까다로운 비탈길을 10분 정도 치고 오르면 이내 **금북정맥의 주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능선에 올라서면 오른편에 긴 나뭇가지를 여러 개 쓰러뜨려 놓은 것이 보인다. 아무래도 등산객들의 통행을 막으려는 묵시적(黙示的)인 표현인가 보다.

(**)금북정맥(錦北正脈), 백두대간의 속리산에서 시작된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안성의 칠장산(七長山)에서 금북·한남으로 갈라진다. 칠장산(七長山)에서 시작된 금북정맥의 산세는 태안반도 지령산(知靈山)에서 산세를 끝내는데 그 길이가 약 240에 이른다. 주요 산으로는 성거산(聖居山), 광덕산(廣德山), 오서산, 수덕산, 가야산, 팔봉산 등이 있다. 참고로 산줄기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므로 금북정맥이라 한 것인데 북서쪽 안성천·삽교천을 아우르고, 남쪽으로 길게 이어진 사면을 따라 흐르는 물이 바로 금강이므로 금강 북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옛 산맥 이름이다.

 

 

 

 

산길에는 눈이 군데군데 보인다. 요 며칠 따뜻한 기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잔설(殘雪)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아무리 따뜻하다고 해도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길가에 보이는 나무들은 대부분 참나무, 떨어진 낙엽(落葉)들이 길 위에 수북하게 쌓여있다. 그 낙엽 위에 잔설이 남아있기 때문에 여간 미끄러운 게 아니다. 나뭇잎이 다 지고 빈 나뭇가지만 남아있는 산길을 20분 정도 걸으면 고라니봉에 이르게 된다. 고라니봉은 봉우리라기보다는 차라리 능선위의 한 지점으로 보인다. 능선 상의 약간 뽈록하게 치솟은 지점에 엉성한 필체(筆體)고라니봉이라고 쓰인 나무로 만든 표지판이 하나 꽂혀 있을 따름이다.

 

 

 

고라니봉을 지나서도 주변 환경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이어진다. 참나무들 천지인 능선은 계속해서 자그마한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다가 30분 정도 지나면 돌탑이 있는 안부에 이른다. 이어서 10분쯤 더 걸으면 금북정맥의 마룻금에서 약간 비켜나 있는, 무이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봉우리 위로 올라서게 된다. 봉우리 위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100m쯤 진행하면 무이산 정상이다. 제법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무이산 정상에는 검은 돌(烏石)으로 만든 자그마한 정상표지석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정상에서는 천룡CC와 광혜원 쪽이 조망(眺望)되나 잡목(雜木)들 때문에 선명하지는 않다.

 

 

 

 

 

무이산을 지나서 덕성산까지 이어지는 능선도 전과 다름없는 풍경(風景)이 계속된다. 능선은 여전히 참나무들로 둘러싸여 조망(眺望)을 허락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타나는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는 여정(旅程)은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무이산을 출발해서 2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사장골 정상이라고 쓰인 노란 아크릴(acrylic)판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이곳 지명이 사장골인 것은 알겠지만, 아무리 봐도 정상(봉우리)은 아닌 것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고 있다. 이어서 10분 정도가 지나면 무티고개, 그리고 30분 정도를 더 걸으면 덕성산 갈림길(이정표 : 병무관 3.5Km/ 무수마을 2.2Km, 옥정재 6.29Km/ 칠장사 5.2Km)을 만나게 된다. 참고로 이 구간에서는 의미 없는 이정표(#1 : 옥정재 6.27Km, 사장골 정상 3.27Km/ 칠현산 정상 2.36Km, #2 : 옥정재 6.91Km, 사장골 정상 3.8Km/ 칠현산 정상 1.72Km)를 두 개 만나게 된다.

 

 

 

 

 

 

 

 

덕성산 갈림길에서 오른편(병무관 방향)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 금방 덕성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정도가 지났다. 열 평 남짓한 덕성산 정상에는 제법 커다란 돌탑(cairn) 세 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고, 자그마한 정상표지석은 돌탑의 앞에서 제단(祭壇)마냥 자리 잡고 있다. 꽤 운치가 있는 풍경(風景)이다. 그리고 돌탑의 옆에는 등산안내도와 이정표(칠장사 5.3Km/ 무술 2.4Km/ 병무관 3.5Km)가 보인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정표 하단(下壇)‘**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무슨 이유일까?

(**) 언젠가 TV에서 전설의 고향이란 극() 본 일이 있었다. 그 극()의 제목이 아마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었을 것이다. 내용인즉 저승사자의 실수로 잘못 데려간 추천석이라는 진천사람을 이승으로 다시 되돌려 보내는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episode)를 극화(劇化)한 내용으로 기억된다. 용인에 사는 사람의 몸으로 다시 살아난 진천사람을 놓고, 양가(兩家) 자손들이 서로 모시겠다고 하자 고을의 원님이 내린 판결이 바로 생거용인, 사거진천이었을 것이다. ‘남은 여생(餘生)을 진천에서 살다가, 죽으면 제사(祭祀)는 용인에서 모시라라는 내용일지니, 저 이정표는 틀림없이 진천군에서 세웠을 것이고, 진천이 죽었던 사람이 다시 깨어나도 돌아와 살기를 원할 만큼 좋다는 것을 홍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할 것이다. 농담 한마디 나 같으면 양쪽 집을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았겠다.’ 마누라가 한명보다는 두 명이 더 좋지 않을까?

 

 

 

 

 

덕성산에서 칠현산은 의외로 가깝다. 또한 능선이 산과 산으로 연결됨에도 불구하고 그 골이 깊지 않아서 별 어려움 없이 진행할 수 있다. 덕성산을 출발해서 25분 남짓 걸으면, 자연석(自然石)에 하얀 페인트로 지명을 표시해 놓은 공림정상(이정표 : 칠현산 정상 0.48Km/ 칠장사 3.34Km/ 덕성산 1.3Km)’을 지나게 되고, 이어서 15분 정도를 더 걸으면 널따란 헬기장이 보이고, 칠현산 정상은 헬기장에서 지척이다. 참고로 그동안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를 이루어오던 능선은 덕성산을 지나면서 양쪽 다 경기도 땅으로 변한다.

 

 

 

 

 

 

 

 

 

칠현산 정상도 역시 돌탑 두 개가 운치(韻致) 있게 앉아있는데, 아까 지나온 덕성산과는 달리 이곳의 정상표지석은 돌탑의 앞이 아닌 돌탑의 한 가운데에 박혀 있다. 그리고 이정표(칠장사 2.86Km/ 명적암 1.1Km/ 덕성산 1.58Km)119구호지점 표시목((1-2 : 칠장산 3.5Km/ 덕성산 1.8Km)이 주변에 세워져 있다. 아까 덕성산에서 정상표지석이 놓여있던 자리에는 삼각점이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칠현산을 지나면서 등산로 주변의 풍경이 많이 변한다. 우선 참나무 일색이던 나무들 틈에 밤나무들이 꽤 많이 섞여 있는 것이, 가을철에 산을 찾을 경우에는 알밤 줍는 재미도 제법 쏠쏠할 것 같다. 그리고 산길의 폭이 많이 넓어졌고, 또 길이 반질반질할 정도로 잘 다져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이곳 칠현산과 칠장산을 잇는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명적암에서 칠현산을 거쳐 칠장산으로 갔다가 칠장사로 하산하던지, 아니면 그 반대방향으로 진행하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는 얘기이다.

 

 

능선을 걷다보면 왼편의 나뭇가지 사이로 안성베네스트 GC가 내다 보인다.

 

 

칠현산에서 잠깐 완만(緩慢)하게 이어지던 산길은 갑자기 고도(高度)를 급하게 떨어뜨린다. 덕분에 게으른 산꾼도 더 이상은 못 버티고 아이젠(Eisen)을 착용하고 만다. 얼어붙은 빙판(氷板)길이 너무나 미끄럽기 때문이다. 칠현산에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20분 정도 내려오면 안부에 커다란 돌탑(石塔)이 하나 보인다. ‘칠순비 부부탑이란다. ‘차라리 노후용(老後用) 전원주택이 있는 홍천에다 칠순탑을 새로 쌓는 게 어떻겠는지요.’ 우리 부부의 나이가 칠순이 되는 해에 이곳 칠순탑을 다시 한 번 찾아보자는 내 얘기를 듣자마자 집사람이 하는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칠순탑에 의미가 있다면 우리가 머물 집 주위에 새로 하나 쌓으면 될 일인 것이다.

 

 

 

가파르고도 길게 고도(高度)를 낮추던 산길은 부부탑을 지나면서 다시 가파르게 위를 향하고 있다. 부부탑이 있던 안부에서 10분 정도 올라서면 널따란 헬기장에 이르게 되고, 헬기장을 통과하지 않고 왼쪽으로 우회(迂廻)한 후, 군데군데 바위가 많은 능선 길을 걷다보면 15분 정도가 흐른 후에는 칠장사 하산로가 있는 안부 사거리(이정표 : 칠장산 정상 0.45Km, 둘레길/ 칠장사 주차장 0.92Km/ 칠현산)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오른편은 칠장사, 맞은편은 칠장산, 그리고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왼편으로 내려가면 금광면 삼흥리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정표를 자세히 보면 둘레길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이는 칠장산 주변에 조성한 산책로를 말하는 것이다. 둘레길 중에서도 칠장사에서 ‘3정맥 분기점바로 아래의 고갯마루를 지나 죽산면으로 넘어가는 길을 ‘**어사 박문수길이라고 부른다.

(**)이 길은 옛날 충청도에서 한양으로 오고 갈 때 지나다니던 작은 오솔길인데,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과거(科擧)를 보러갈 때 이 길을 지나갔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나 보다. 박문수는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도중에 칠장사에 묵으며 나한전에 기도를 드렸는데, 부처님이 꿈속에서 나타나 그에게 준 7줄의 시구(詩句)몽중등과시(夢中登科詩)’를 활용해서 장원급제(壯元及第)를 하였다고 한다. 그 후로 이 길이 유명해졌다. 그의 부모가 자손을 얻지 못하자 이곳 칠장사에서 문수보살에게 100일 동안 치성(致誠)을 드린 후에 아들을 점지 받았고, 그래서 이름도 문수로 지었다고 하니 박문수와 칠장사는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없는 인연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꿈속에까지 나타나 시제(試題)를 주었을 것이고... 참고로 박문수가 치성을 드릴 때 바쳤던 공양물(供養物)이 조청유과이었는데, 그 후부터 조청유과는 칠장사 나한전의 대표 공양물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御使 朴文秀 夢中登科詩

落照吐紅掛碧山 (낙조토홍괘벽산)

토하는 듯 넘어가는 붉은 빛은 푸른 산에 걸려있고

問津行客鞭應急 (문진행객편응급)

나루를 찾는 나그네의 독촉은 응당 급해지고

尋寺歸僧杖不閒 (심사귀승장불한)

절로 돌아가는 스님의 지팡이는 한가롭지 않으며

放牧園中牛帶影 (방목원중우대영)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의 그림자는 허리가운데로 들어가고

望夫臺上妾低鬟 (망부대상첩저환)

댓돌위에서 서방을 기다리는 아낙의 쪽이 뒤로 젖혀지며

蒼煙古木溪南里 (창연고목계남리)

고목으로 저녁 짓는 푸른 연기가 남쪽마을 계곡으로 올라가고

위의 부처님이 알려준 시구(詩句)에다 박문수가 아래의 한 줄을 더 덧붙였다.

短髮樵童弄苖還 (단발초동농적환)

나무를 하는 떠꺼머리총각이 즐거운 듯이 풀피리를 불며 돌아간다.

 

 

 

 

삼거리에서 칠장산 방향으로 200m쯤 올라가면 이정표(3정맥분기점 30m/ 칠장산 정상 0.26Km/ 칠장사 주차장 0.92Km) 하나가 보인다.‘ 삼정맥(三正脈) 분기점(分岐點)’이 가리키고 있는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수많은 산악회 리본들이다. 그만큼 이곳을 찾은 산악회들이 많았다는 얘기이고, 그 이유는 이곳 분기점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삼정맥(三正脈) 분기점(分岐點)이라고는 호남정맥과 금남정맥 그리고 호남금남정맥이 분기되는 주화산(전북 완주군 소양면 소재)과 이곳 칠장산 뿐이니 그만큼 의미 있는 땅이라고 보아도 틀린 얘기가 아닐 것이다.

 

 

하나 막상 만나본 분기점 자체는 그 봉우리가 갖고 있는 중요한 의미와는 달리 지극히 평범하고 조그만 둔덕의 모습이다. 그저 수더분하게 생긴 둔덕 위에 삼정맥분기점 이정표(칠장산 정상, 한남정맥/ 신대마을 2.4Km, 한남금북정맥/ 칠장사 주차장 1.14Km, 금북정맥)와 장의자 2, 그리고 삼정맥에 대한 해설판이 세워져 있을 따름이다. 이곳 분기점에서 이정표 뒤로 가면 한남금북정맥 마룻금이고, 왼편으로 진행할 경우에는 한남정맥, 그리고 금북정맥은 조금 전에 지나왔던 능선이다.

 

 

 

삼정맥분기점에서 한남정맥 마룻금을 밟고 5분쯤 올라가면 금방 칠장산 정상이다. 칠장산 정상은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널따란 분지(盆地)로서, 북쪽 끄트머리에 정상표지석이 앉아있는데, 그 크기는 널따란 분지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왜소(矮小)하다. 정상에는 소방서에서 세운 구호지점 표시목(1-1 : 칠현산 정상 3.5Km/ 관해봉 1.0Km)이 이정표를 대신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4시간30, 칠현산을 출발한지는 1시간 정도가 지났다.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막힘없이 시야(視野)가 트인다. 정상에 서면 북동으로 관모봉과 늑배고개가 조망(眺望)되고 남으로는 칠현산과 멀리 덕성산이 하늘아래에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삼거리에서 칠장사로 내려가는 하산 길(어사 박문수길)은 산죽(山竹)이 지천이다. 바닥은 산죽, 그리고 머리 위에는 하늘을 가리고 있는 울창한 수림(樹林)이 하산길 내내 같이한다. 길은 넓고, 거기다 조금만 가팔라도 어김없이 계단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어린이나 노약자들도 쉽게 산을 오르내릴 수 있을 정도이다.

 

 

 

산행날머리는 칠장사주차장

삼거리를 출발해서 15분 정도 내려오면 왼편에 칠장사가 보이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다시 오른편 산비탈로 오르도록 되어 있다(이정표 : 칠장사 주차장 0.56Km/ 칠장산 정상 0.81Km/ 칠장사). 그러나 구태여 곧바로 주차장으로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천년고찰(千年古刹)이라는 칠장사를 둘러보지 않고 그냥 간다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전각(殿閣)들을 둘러보고 사찰(寺刹)을 빠져나오면 금방 주차장이다. 주차장 옆의 매점에 들러 따뜻한 어묵 국물로 몸을 녹이면 하루의 산행이 끝을 맺게 된다.

* 칠장사(七長寺), 선덕여왕 5(BC 636)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고려 초기에 혜소국사(慧炤國師)가 현재의 비각(碑閣) 자리인 백련암(白蓮庵)에서 수도할 때 찾아왔던 7명의 악인을 교화하여, 7인 모두가 도를 깨달아 칠현(七賢)이 되었으므로 산의 이름을 칠현산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한때(1674) 세도가에게 산을 빼앗기고, 승려들이 모두 흩어져서 잠시 빈 절이 되었던 것을 숙종 30(1704)에 대법당과 대청루를 고쳐 짓고 영조 원년(1725)에 선지 대사가 원통전을 세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비각 내에 보존되어 있는 보물 제488호의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 오불회괘불탱(보물 296), 인목왕후어필(보물 1627), 봉업사 석불여래입상(石彫如來立像, 보물 제983), 그리고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대웅전(114), 천왕문 내의 소조사천왕상(115) 등 귀중한 문화재들이 많다. 참고로 조선시대 명종 때 임꺽정이 스승 병해 스님과 함께 10여년간 머물던 사찰(寺刹)이며, 벽초 홍명희의 역사소설 임꺽정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대웅전(大雄殿), 전각 자체는 지방유형문화재에 불과한데, 그 안에 모시고 있는 오불회괘불탱(七長寺五佛會掛佛幀)은 국보(296)이다. 전각(殿閣)은 삼단구도로서 상단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석가불·노사불, 중단은 아미타불·약사불, 하단은 지장보살·관음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의 오른편 옆쪽에 봉업사 석불입상(石佛立像)과 거북이 모양을 한 거북바위가 놓여 있다. 그중에서도 봉업사지(寺址) 석조여래입상(石彫如來立像, 보물 제983)이 눈길을 끈다. 이 불상은 원래 '봉업사지'에 있던 것을 죽산중학교로 옮겼다가, 다시 현재의 칠장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석불입상은, 조각(彫刻) 기법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불상과 광배(光背)’를 하나의 화강암에 담아냈다.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 보물 제488)

 

 

종자산(種子山, 643m)

 

산행일 : ‘12. 10. 1(월)

소재지 : 경기도 포천군 관인면과 연천군 연천읍의 경계

산행코스 : 늘거리(해 뜨는 마을)→종자바위→종자산→590봉→삼거리(중리저수지 1.75Km 지점)→중리저수지(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이웃 보개산(寶盖山)의 28개 봉우리 가운데 가장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서, 종자산(種子山)이라는 이름은 ‘아주 오랜 옛날 천지(天地)가 개벽(開闢)으로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 산의 정상이 마치 종지그릇을 뒤집어 놓은 형상처럼 조금 남아 있었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현지 안내판). 바위가 많은 산이라서 산행이 어려울 것 같지만 보기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산행들머리는 늘거리 ‘해 뜨는 마을’ 표지석

경기도 포천시가지를 지나 43번 국도(國道 : 철원방향)로 북진(北進)하면 영중면 ‘38선 휴게소’이다. 휴게소 앞의 영중교(橋)를 건너 신장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37번 국도(전곡방향)로 6km쯤 들어가면 오가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87번 국도(철원방향)를 따라 북진하면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영로교(橋)가 나오고, 곧 이어 산행들머리인 ‘늘거리 마을’에 이르게 된다.

 

 

 

늘거리마을에서 왼편에 보이는 종자산 방향으로 난 농로(農路)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종자산은 중리마을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이곳 늘거리에서 오른 후 중리저수지로 내려가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기 때문이다. 들머리에 ‘해 뜨는 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니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참고로 연천군 쪽과 늘거리 옆에 있는 문암마을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폐쇄되어 이용할 수 없다. 농로(農路)를 따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왼편으로 급하게 꺾이면서 오른편에 울창한 ‘밤 과수원’이 보인다(이정표 : 종자산 정상 1.55Km). 과수원에서 넘어온 밤나무의 가지에서 떨어진 듯, 포장도로 위에도 밤송이와 밤톨들이 꽤나 많이 떨어져 있다. 산행 중에 주전부리나 해볼까 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밤톨 몇 알을 주워보려는데 뭔가가 앞에 보인다. ‘밤과 은행을 줍지 말라’는 경고(警告)판이다.

 

 

 

 

밤 과수원을 끼고 잠깐 걸으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 종자산 정상으로 가려면 왼편에 보이는 물기 하나 없는 계곡(乾川)을 건넌 후, 곧바로 능선을 치고 올라야 한다. 오른편에 보이는 길은 널따란 것을 보아 과수원에서 사용하는 농로로 보이기 때문이다(이곳도 등산로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계곡을 오른편에 끼고 이어지는 능선은, 처음에는 완만(緩慢)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경사(傾斜)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참나무 일색이지만 어쩌다 한 그루씩 섞여있는 밤나무들이 주전부리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부지런한 집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길가에 떨어진 밤을 줍느라 정신이 없다. ‘산행 시간이 널널하니 급할 것이 없잖아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오늘 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한숨 자고가고 될 정도로 넉넉하다. 거기다 능선의 밤나무들은 틀림없이 주인이 없을 테고, 그러니 주운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도 역시 그녀의 ‘밤 줍기 행사’에 자연스레 동참하고 본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쯤 되면 갑자기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지형지세(地形地勢)로 보아 곧바로 능선을 치고 오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지만, 산의 사면(斜面)으로 난 길의 흔적이 더 뚜렷하기 때문에 길의 선택이 어렵다. 고민 끝에 왼편 사면길로 들어서는 일행을 따라 진행해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길가의 바위벼랑 아래에 벌통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아 이 길은 등산로가 아니고 양봉(養蜂)을 위해서 다니는 길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서기에는 꽤 먼 거리를 온 탓에, 그냥 눈짐작으로 방향을 잡아 치고 오르기로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우리와 같은 코스로 들어왔다면 뒤돌아 나가라고 권하고 싶다. 그냥 위로 치고 오를 경우에 나타나는 너덜지대는, 길도 없을뿐더러 경사(傾斜)까지 가파르기 때문이다. 조금만 잘못하면 돌맹이들이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뒤따라 오르는 사람들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

 

 

 

길이 아니기는 매 한가지이지만 오른편에 보이는 능선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굴러 떨어지는 돌의 위험이라도 피해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임시방편(臨時方便)으로 선택한 코스가 우리에게 큰 행운(幸運)을 불러다 주었다. 바위로 이루어진 능선은 여자들이 붙잡고 오르기에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오르는 바위마다 뛰어난 전망대(展望臺)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거친 숨도 돌릴 겸 잠깐 고개를 돌려보면 영중면(面)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강씨봉과 청계산 등 한북정맥 산릉(山稜)이 마치 병풍(屛風)처럼 펼쳐지고 있다.

 

 

 

주변의 경관(景觀)에 한눈팔면서 암릉을 오르다보면 거대한 바위절벽(絶壁)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절벽 앞에는 의자가 놓여있는데, 등받이는 벼랑이 대신하고 있다. 머리에 고깔을 쓴 모양으로 오뚝이 서있는 형상이라는 종자(種子)바위인 모양이다. 종자바위의 오른편 벼랑 아래로 뚜렷한 등산로가 보인다. 아까 만났던 갈림길에서 제대로 진행했을 경우, ‘바위굴 성’을 거쳐 이곳으로 올라오게 된다. 벤치에 앉아 아쉬움에 입맛을 다셔본다. 길을 잘못 접어든 덕분에 ‘바위굴 성’이라는 볼거리를 놓쳐버린 것이 못내 서운해서이다.

* 못가 본 서운함을 어느 선답자의 느낌으로 위로를 삼아본다. <낑낑거리고 올라간 곳에 엄청난 크기의 바위벽이 버티고 있다. 땅만 보고 걷다가는 모르고 지나칠 정도의 거리, 오른쪽 구석에서 동쪽을 향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벽. 바위벽은 처마를 이루어 굴의 모습,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물, 물은 물보라를 치며 폭포를 이루고 있다. 가(可)히 장관(壯觀)! 누군가가 프라스틱 물통을 놓아두었다. 물은 통을 두드리고 있고 물통은 물의 매를 맞고 울고 있다. 쿵다닥딱딱, 콩더덕콩떡!>

 

 

 

종자바위에부터 본격적인 암릉산행이 시작된다. 흙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수한 바윗길은, 거칠고 가파르지만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다. 조금만 험하다싶으면 어김없이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파른 암릉길을 오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들 것이다. 그러나 종자산의 암릉을 오르는 일은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능선의 곳곳이 뛰어난 전망대라서 조금도 힘들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만큼 주변에 눈요깃거리가 넘쳐난다는 의미이다. 능선을 오르다가 만나게 되는 바위들은, 아무 것이나 올라도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눈앞에 보이는 보장산과 그 너머에 늘어선 한북정맥 등 산릉은 물론이려니와, 굽이굽이 흐르는 한탄강과 한탄강 주변의 평야(平野)가 시원스럽다.

 

 

 

 

 

눈요기를 즐기면서 30분 정도 바윗길을 치고 오르면 주능선에 이르게 되고, 주능선에서부터 길은 갑자기 고와진다. 바윗길이 사라지면서 갑자기 흙길로 변해버린 것이다. 사라져버린 바윗길의 서운함을 달래주려는 것인지, 갑자기 어마어마한 바위절벽이 왼편에 등장한다. 수백 길 높이의 벼랑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산 아래에서 바라볼 때 펼쳐지던 바위벼랑이 바로 이곳인 모양이다. 물론 걷고 있는 능선의 왼편도 바위벼랑으로 되어 있다. 정상으로 향하려면 벼랑 위를 걸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다시 한 번 한북정맥의 산들이 반갑다고 손짓하고 있다.

 

 

 

 

 

늙은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주능선, 바위절벽 위를 잠깐 걸으면 정상에 닿게 된다. 종자산 정상은 바위봉우리이지만 맨 꼭대기는 의외로 5평쯤 되는 흙으로 이루어진 길쭉한 분지(盆地)이다. 한 가운데에는 산의 높이에 비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커다란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그 곁을 산행안내판과 삼각점이 지키고 있다. 정상표지석의 뒷면에는 조선후기의 문신이었던 남구만의 싯구(詩句)가 적혀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로 시작되는 시조(時調)의 내용이 종자산을 읊은 것이 아닌 것을 보면, 아마 남구만이 이곳 포천에서 태어났던지, 아니면 이곳에서 벼슬을 살았었나 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이 지났다.

 

 

 

 

정상에 올라서면 조망(眺望)이 시원스럽다. 사방으로 막힘이 없이 시계(視界)가 열린다. 동쪽 멀리 명성산이 우뚝하고, 그 뒤로 광덕산과 백운산, 그리고 청계산을 낀 한북정맥이 아스라이 보인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한탄강이 급할 것 없다는 듯이 굽이돌며 한가하게 흐르고 있다. 북쪽 방면은 정상표지석의 맞은편에 있는 바위벼랑 위에서 가장 잘 조망된다. 지장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뚜렷하고, 지장산의 오른편에 서있는 관인봉 능선은 중리저수지로 빠져들고 있다.

 

 

 

종자산에는 이름에 관한 전설(傳說)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오랫동안 아기를 얻지 못하던 삼대독자(三代獨子)가 이 산의 바위굴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다음 건강한 사내아이를 얻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기도 덕에 ‘씨앗을 얻었다‘하여 산의 이름을 ’씨앗산‘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글쟁이가 글 배운 값을 하느라고 ’씨(種)를 이을 아들(子)을 얻었다‘는 뜻으로 종자산(種子山)이라 개명(改名)하였다고 한다. 그 기도를 드렸던 굴이 ’바위굴 성‘인데 길을 잘못 든 덕분에 둘러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해 버렸다.

 

 

 

 

하산을 중리저수지 쪽으로 하려면 지장산의 정상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이정표 : 중리저수지 3.32Km). 이정표의 대부분이 지장산이 아니라 중리저수지로 표기(表記)되어 있으니 별다른 어려움 없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상에서 급하게 떨어진 능선은 이후부터는 고저(高低)의 차가 거의 없이 오르내림을 계속하며 길게 이어진다.

 

 

 

 

 

지장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조망(眺望)이 뛰어난 바위 능선이 자주 나타난다. 늙은 소나무와 바위가 서로 어우러지며 멋진 풍경(風景)을 연출해 내고 있다. 그러나 바위능선의 610봉에서 끝을 맺고, 나머지 구간은 참나무들로 둘러싸인 그저 그렇고 그런 산길일 따름이다.

 

 

 

암릉이 끝나고서도 550봉, 590봉 등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산행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 오르내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비록 봉우리들은 여러 개이지만 오르내리는 고저(高低)의 차가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길까지 흙길이니 산책을 하는 느낌으로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능선을 걷다보면 오른편에 탈출로가 2번(이정표 #1 : 중리저수지 2.49Km/ 중3리 마을회관/ 종자산 정상 0.83Km, 이졍표 #2 : 중리저수지 2.33Km/ 중3리 마을회관 1,5Km/ 종자산 정상 0.99Km) 보이지만 그냥 지나쳐야 한다. 중3리 마을회관으로 내려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길게 이어지는 능선이 지루할 즈음이면 쉼터로 조성된 봉우리(이정표 : 중리저수지 2.08Km/ 종자산정상 1.24Km)에 올라서게 되고, 봉우리를 내려서서 조금만 더 걸으면 능선 안부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중리저수지 1.75Km/ 종자산 정상 1.57Km/ 지장산). 왼편은 지장산으로 향하는 능선이고 중리저수지로 가려면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틀면 싸리나무가 빼곡한 능선이다. 널따란 평원(平原)으로 이루어진 분지에는 싸리나무 외에도 억새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눈이 생각지도 않은 호사(豪奢)를 누리는 것이다.

 

 

 

 

 

싸리나무 평원을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급하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힘들어할 등산객들을 위해서 친절하게도 길가에 안전로프를 길게 매어 놓았다. ‘팻말이 방향을 잘못 표시하고 있네요.’ 등산로를 따라 곳곳에 매달아 놓은 방향표시판이 집사람의 눈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모양이다. 매달린 표시판의 방향이 정상을 향하기도 했다가, 어떤 때는 중리저수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산로가 워낙 뚜렷하기에 망정이지, 그녀의 말마따나 길을 혼동(混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산행날머리는 중리저수지 위의 주차장

참나무 숲 사이로 언뜻언뜻 나타나는 관인봉을 음미하면서 내려서다보면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숲을 지나서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이 지났다. 주어진 산행 종료시간까지는 아직도 2시간이나 남았다. 덕분에 준비해온 도시락도 먹지를 못했다. 오른편에 언덕위에 보이는 밤나무 아래로 올라가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즐긴다. 그리고는 떨어진 산밤 줍기, 우리 부부는 한 되도 더 되게 밤을 주울 수 있었다. 밤나무 밭이 중리저수지 바로 위이기 때문에 산행이 종료되는 주차장까지는 금방이다.

 

 

 

 

천마산(天摩山, 812.4m)

 

산행일 : ‘12. 9. 29()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과 진접읍의 경계

산행코스 : 수진사입구천마의 집주능선 안부정상뾰쪽봉깔딱고개야영장심신훈련장천마산관리소(산행시간 : 3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둘이서

 

특징 : 통기타로 몸살을 앓던 70-80학번(學番)들에게 강촌과 함께 인기를 끌었던 산이다. 그들은 산기슭 야영장에 자리를 잡고, 통기타와 야외전축을 켜고 노래와 춤을 추며 놀았었다.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버린 지금은 시대의 흐름에 밀려나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도, 의외로 아직까지 수도권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만큼 숲이 우거지고 식생(植生 : vegetation)이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망루(望樓)처럼 우뚝 솟구친 정상에 오르면 서울과 경기 일원의 어지간한 산봉은 죄다 들어올 만큼 장쾌한 조망(眺望)을 선사한다.

* 천마산이라는 이름은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에 의해 지어졌다는 전설(傳說)이 있다. 사냥을 나온 이성계가 높고 험한 산세를 보고 난 뒤에 이 산은 매우 높아 손이 석 자만 더 길었으면 가히 하늘을 만질 수 있겠다(手長三尺可摩天)’고 한 데서 천마산(하늘을 만질 수 있는 산)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산행들머리는 호평 수진사 입구

청량리나 경동시장, 석계역, 잠실역 등에서 다니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잠실역의 출발할 경우에는 9번 출구에서 출발하는 1000번 버스를 타고 호평 중흥아파트, 호안마을까지 온 후, 165번 시내버스로 환승(換乘)하여 수진사 방향으로 들어가면 10분도 되기 전에 산행들머리인 천마산 입구에 이를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천마산 방향에 수진사의 이정표를 대신하고 있는 커다란 빗돌 하나가 보인다. 바로 산행들머리로서 왼편으로 가면 수진사, 천마산은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들머리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수진사를 둘러보고 싶은데도 망설여지는 것은, 도심(都心)의 건물들 사이에 앉아있는 전각(殿閣)들이 왠지 거북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고민을 접고 수진사로 접어든다. 들머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백만이 넘는 신도를 자랑하는 총화종이라는 종단(宗團)에서 얼굴마담으로 내놓은 사찰(寺刹)이라니 뭔가 볼거리가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그러나 수진사는 비좁은 터에 커다란 전각들 서너 채만 답답하게 앉아 있을 뿐, 볼만한 구경거리는 없었다.

* 수진사(修進寺), 대한불교 총화종(總和宗) 소속 사찰(寺刹), 종단인 총화종의 역사가 채 50년이 못 되었음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사찰의 역사 또한 일천하다. 대한불교총화종은 우리나라 불교 18개 종단 중의 하나로서 1969년 최득연(崔得淵)스님이 창립하였다. 원효사상계에 속한 종파(宗派)로서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을 소의경전(所依經典 : 각 종파에서 근본으로 삼는 경전)으로 삼는다. 소속 사찰이 전국에 667개에 달하고 있으며, 1천여 명의 승려와 12십만이 넘는 신도수를 자랑하는 큰 종파이다. 문화재로는 조상경(造像經 : 불상을 조성할 때에 지켜야할 의식과 절차를 적어 놓은 책자)과 현수제승법수(賢首諸乘法數 : 일종의 불교 용어사전) 등 경기도 지방문화재 2점을 보유하고 있다.

 

 

 

 

수진사에서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오른편 포장도로(鋪裝道路)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이 도로는 천마의 집위에 있는 능선 안부까지 이어지는데, 자동차 통행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인지 널따랄 뿐만 아니라,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기 때문에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가 있다. 산행을 시작되자마자 의아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추석 전날임에도 불구하고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천마산이 도심(都心) 근교(近郊)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산책(散策) 삼아 올라도 좋을 만큼 산이 낮고 유순(柔順)하기 때문인가 보다.

 

 

 

산행이 시작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천마산 군립공원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커다란 문을 만나게 된다. 지도상에 매표소라고 표기된 지점인데 지금은 화장실을 갖춘 쉼터로 조성되어 있다. 쉼터 주변에 조형품 몇 개가 보이는 것을 보면. 평소에 설치미술 전시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가 보다.(이정표 : 천마산 정상 2.6Km/ 호평동 등산로 입구 461m)

 

 

 

매표소 조금 위에 위치한 상명여대 생활관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계곡을 건너는 지점에서 이정표(천마의 집 866m/ 호평동 등산로입구 891m)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뉘게 되는데,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천마의 집앞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체력을 감안해서 코스를 선택하면 될 것이다. 참고로 산책 삼아서 천마산을 찾은 사람들이라면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 오르는 게 좋을 것이다. 왼편의 계곡길은 초심자들에게는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0분 정도가 지났다.

 

 

 

왼편으로 접어들면 등산로는 계곡을 옆에 끼고 오르도록 되어 있다. 등산로 주변은 참나무와 잣나무가 적당히 어우러지는데,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너덜길은 걷기가 만만치 않을 정도로 제법 험하다. 중간에 체육시설을 갖춘 쉼터와 엉성하게 쌓아 놓은 돌탑 몇 기()를 지나고 나면 아까 헤어졌던 도로와 다시 만나게 된다. 도로의 건너편에는 서울시 청소년 심신수련장천마의 집이 보인다.(이정표 : 천마의 집 15m/ 천마산 정상 1568m/ 호평동 등산로입구 1361m)

 

 

 

천마의 집앞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능선 안부에 이르게 된다. 이 고갯마루는 남양주시청에서 조성한 둘레길인 사릉 다산길코스와 만나는 지점이다. 고갯마루에서 포장도로와 헤어진 후,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천마산 정상으로 향한다. 능선으로 들어서면 왜 천마산을 군립공원이라고 부르는지 실감하게 된다. 등산로를 깔끔하게 정비한 것은 기본이고, 길가에는 곳곳에 벤치를 만들어 쉼터를 조성해 놓았다. 거기에다 쉼터마다 시구(詩句)가 새겨진 표지판을 세워 놓았다. 맹목적으로 산행만 할 것이 아니라 예술(藝術)의 숨결도 함께 느껴보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고갯마루의 이정표 : 오남리 호수공원 5.5Km/ 천마산 정상 1.21Km). 산행을 시작한지 45분이 지났다.

 

 

 

 

 

고갯마루에서 천마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대부분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잠깐 완만(緩慢)하다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해버린다. 그러나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기 때문에 오르기에는 별로 어렵지 않다. 조금이라도 경사(傾斜)가 심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통나무 계단이나 로프 등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허리를 구부린다. 살림꾼 기질로 다져진 집사람의 눈에 바닥에 떨어져있는 도토리가 눈에 띈 모양이다.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는 먹지 않는다고 하네요.’ 다람쥐의 먹이를 주워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내 나무람에 대한 대꾸이다. 그녀의 대꾸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 부지런한 집사람이 있기에 우리 집 밥상은 언제나 풍요롭다. 어디를 가든지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가족들의 먹거리를 챙기고 보기 때문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참나무들로 인해 햇볕 한 점 들어오지 않던 숲을 20분 정도 걷다보면, 갑자기 숲 사이가 뻥 뚫리면서 진행방향의 산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유일하게 만난 헬기장이다. 헬기장에 올라서니 낯선 풍경(風景)이 눈에 들어온다. 한쪽 귀퉁이에 텐트가 쳐져 있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 비박(주변이라는 ‘Bi’과 감시라는 의미인 ‘Wache’의 합성어)을 하면서 쳐 놓은 텐트인 모양인데, 천마산은 비박을 하는데 별다른 제한이 없는 산인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상어림에서도 비박 에어리어(area)가 눈에 띄었고, 그 곳에는 비박장소임을 알려주는 표지판까지 붙어있었다.

 

 

 

 

헬기장을 지나면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이 구간도 역시 가파른 곳에는 어김없이 통나무계단이나 로프를 설치해 놓았다. 천마산의 하이라이트(highlight)라는 임꺽정바위가 가까워지기 때문인지 군데군데 수시로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거대한 암벽(巖壁)이 앞을 가로막는다. 꺽정바위로서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이다. 바위 아래에는 위험지역 안내판까지 세워져 있지만, 노약자(老弱者)만 아니라면 위험할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옛날에 임꺽정이라는 의적이 이곳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는 하지만 개연성(蓋然性)은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역사적 고증까지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예를 들면 임꺽정이 이 바위를 이용해 무엇을 했다.’와 같은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필요하지 않을까?

 

 

 

 

밧줄을 부여잡고 바위 위로 올라서면 이번에는 더 큰 암벽(巖壁)이 앞을 가로막는다. 이번의 암벽은 로프만 가지고는 오르기에 부대꼈나 보다. 나무테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길이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바위가 꺽정바위인지를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단(下段)의 바위일까? 아니면 상단(上段)일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둘을 합하여 꺽정바위로 부르는 것일까? 이왕에 꺽정바위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안내판 하나라도 세워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무계단을 밟고 암벽 위로 오르면 시야(視野)가 시원스럽게 열린다. 산행을 시작했던 호평동의 아파트들이 마치 성냥갑을 세워 놓은 것처럼 늘어서 있고, 그 뒤에는 불암산과 수락산이 도봉산과 북한산을 배경삼아 다소곳이 앉아있다. 한마디로 멋진 전망대(展望臺)인 것이다. 마침 암벽위에 벤치까지 설치되어 있으니 구태여 발걸음을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멋진 경관(景觀)을 만난다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꺽정바위 전망대에서 정상까지는 금방이다. 전망대를 뒤로하고 산행을 이으면 채 5분이 못되어 공원관리소 갈림길과 만나게 되고(이정표 : 정상 0.14Km/ 관리사무소 2.78Km/ 호평동 2.70Km), 천마산 정상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하게 된다. 하산길을 공원관리사무소로 잡을 경우에는 정상에서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나와 맞은편에 보이는 능선으로 내려서야 한다.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암릉길이니 위험한 바윗길을 걷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오른편의 우회로(迂廻路)를 이용해야 한다. 암릉은 소름끼칠 정도로 위험스럽지는 않지만 짜릿한 긴장감을 주기에는 충분할 정도이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속담(俗談)이 있다. 지금 암릉 위를 걷고 있는 집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뒤를 따르던 어느 남성분이 끝내는 뒤돌아서고 말 정도로 위태로운 길이건만, 집사람은 겁도 없이 잘만 걷고 있다. 그만큼 암릉산행에 이골이 났다는 의미일 것이다.

 

 

 

 

바윗길에서 짜릿한 스릴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정상이다.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의 한 가운데에는 이정표가 두 개가 세워져 있다. 하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말뚝 모양의 빗돌이고, 또 하나는 상단(上段)이 싹둑 잘려나간 피라미드(pyramid)모양의 빗돌이다. 정상표지석의 옆에 세워진 국기봉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천마산 정상에서는 하산코스는 네 갈래이지만, 이중 세 곳만 이용할 수 있다. 보광사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폐쇄되어 있기 때문이다.(정상의 이정표 : 관리사무소 2.92Km/ 호평동 2.93Km/ 샘터 0.28Km, 보광사는 폐쇄)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 정도가 지났다.

 

 

 

 

정상은 시야가 사통팔달로 열리고 있다. 북쪽에는 철마산과 주금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만들어내는 봉우리들이 줄지어 도열(堵列)해 있고, 그 뒤에는 운악산 명지산 화악산이 버티고 있다. 동쪽에는 이성계가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서리산과 축령산이 지척(咫尺)이고, 남쪽에는 마치고개에서 마석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정상에서 바라본 멸도봉, 철마산으로 능선을 이어가거나 보광사로 하산코스를 잡을 경우에는 저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정상을 둘러보고 만났던 관리사무소갈림길로 되돌아 나온다. 하산코스를 관리사무소 방향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으면 50m가 채 안되어서 마차고개로 가는 길과 나뉘는 삼거리를 만난다(이정표 : 관리사무소 2.74Km/ 마차고개 3.60Km/ 정상 0.18Km). 관리사무소는 왼편에 보이는 능선을 따라 곧장 내려가면 된다.

 

 

 

갈림길에서 관리사무소 방향으로 난 능선은 암릉이다. 덕분에 조망(眺望)이 일품이다. 절벽은 아닐지라도 바닥이 바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시야(視野)를 가로막을 나무들이 없기 때문이다. 마석시가지와 천마산스키장을 감상하며 내려가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그러나 조망을 즐기는 것도 잠시 갑자기 아찔한 절벽(絶壁)이 앞을 가로막는다. 20~30m 절벽에는 쇠로 발판을 만들고, 로프를 매달아 놓았지만 위태롭기는 매 한가지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회로(迂廻路)가 없다는 것이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내려설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위험한 코스이다.

 

 

 

절벽을 내려오면 흙길이 나타나지만 경사(傾斜)가 가파르기 때문에 내려서기가 만만지 않다. 거기다가 가끔 나타나는 바위절벽은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두 번의 묵현리 갈림길(이정표 #1 : 묵현리 2.53Km/ 관리사무소 2.3Km/ 천마산 정상 559m, 이정표 #2 : 묵현리 1.64Km/ 관리사무소 2.20Km/ 정상 0.72Km)를 지나면 진행방향에 바위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뾰족봉이다.

 

 

 

 

절벽에 늘어져 있는 밧줄을 붙잡고 뾰쪽봉에 오르면 또 다시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백석시가지가 발아래에 깔려있는 것은 물론이고, 오른편 마차고개로 이어지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의 왼편에 보이는 스키장은 천마산스키장이고, 건너편에 보이는 다른 하나는 아마 백봉에 조성했다는 스키장일 것이다.

 

 

 

뾰쪽봉에서 이어지는 능선도 가파르기는 매 일반이다. 물론 바윗길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그러나 아까 지나왔던 절벽(絶壁)이나 가파름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졌다. 정상을 출발한지 50분 정도가 지나면 의자를 갖춘 쉼터로 조성된 안부사거리에 이르게 된다.(이정표 : 가곡리 3.80Km/ 약수터 0.43Km, 관리사무소 1.49Km/ 정상 1.43Km). 정상에서 여기까지 1.43Km에 불과한데도 한 시간 가까이나 걸린 것은 아마 암릉길을 오르내리는 것이 조심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천마산은 우리 꽃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깊은 사랑과 주목을 받고 있는 산이다. 야생화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우리 꽃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양주시에서 천마산에 쏟아 붓는 정성 또한 지극하다. 우리 꽃 군락지 조성을 위해 등산로 주변에 금계국, 벌개미취, 범부채 등 우리 꽃을 심고 가꾸는데 정성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깔딱고개에서 관리사무소로 가려면 오른편에 보이는 나무계단을 밟고 내려서야 한다. 보통 나무테크 계단은 바윗길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곳은 흙길인데도 나무테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 의외이다. 아마 가파른 경사(傾斜)를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배겨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약수터 하나가 보인다. 물이 넘치고는 있지만 옹달샘 형태인지라 냉큼 마시기에는 망설여지는 약수터이다. 약수터 옆에 붙어있는 수질분석표에 적합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보이지만 선뜻 마시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약수터를 지나면서 길은 순하게 변한다. 흙길에 경사까지 완만하니 걷기가 여간 편한 게 아니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10분 정도를 걷다보면 널따란 쉼터를 만나게 된다. 정자와 약수터 그리고 공연장까지 갖춘 청소년 심신 수련장이다.(이정표 : 관리사무소 1.06Km/ 깔딱고개 0.43Km, 정상 1.86Km)

 

 

 

심신수련장을 지나고서도 한참을 내려가야만 관리사무소에 이를 수 있다. 길게 이어지는 길이 다소 지루하기는 하지만 주변의 우거진 숲으로 인해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 산책로이다. 길이 넓고도 곱기 때문에 함께 걷고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기에 좋으니, 못다 한 이야기가 있거들랑 망설이지 말고 꺼내보자. 청량한 솔바람과 함께 주고받다 보면 그동안 쌓였던 앙금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릴 것이다.

 

 

 

심신수련장에서 10분 정도를 걸어 내려오면 음식점을 겸한 산중 주막(酒幕)이 보이고, 또 다시 10분 정도를 더 걸으면 현수교(suspension bridge, 懸垂橋)를 만나게 된다. ‘왜 만들었을까요?’ 어느 젊은이의 말마따나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지가 궁금한 위치에 현수교가 만들어져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피해야할 다른 사물(事物)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찍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꼬드기기 위해서인가보다.’ 현수교를 지나 다시 5분쯤 걸어내려가면 이내 관리사무소가 나온다. 현수교 근처는 밤나무 군락지(群落地), 올해는 밤이 풍년이라는 소문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밤을 줍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인다.

 

 

 

 

산행날머리는 공원관리사무소

주차장을 겸하고 있는 관리사무소에서 산행은 끝나지만 걸어야 할 길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서울로 나가는 버스는 마석까지 나가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소 앞에 세워진 천마산 군립공원이라고 쓴 큰 기둥 문을 벗어나면 마석에서 나오는 구()도로와 만나게 된다. 여기서 오른쪽 서울 방향으로 200m 걸어내려가면 천마산입구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마석휴게소 앞의 쉼터휴게소 정류장까지 나가서 서울로 가는 광역버스로 환승(換乘)해도 되지만 운행간격이 길기 때문에 걸어 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20분 정도만 걸으면 정류장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쉼터휴게소에서 서울로 나가는 광역버스는 여러 개의 노선이 있지만, 잠실로 갈 경우에는 M2316 광역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무갑산((武甲山, 581.7m)

 

산행일 : ‘12. 9. 2(일)

소재지 :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과 곤지암읍의 경계

산행코스 : 무갑리→무갑사→무갑산 정상→웃고개 갈림길→계곡→무갑리(산행시간 : 3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가족 산행

 

특징 : 무갑산과은 600m가 채 안될 정도로 나지막하지만 숲이 울창하고 골이 깊기 때문에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산이다. 전형적인 흙산(肉山)이라서 걷기가 편하고, 골짜기에 흐르는 개울물은 맑고 시원하다. 서울에서 가까울 뿐만 아니라, 거기다가 산행을 끝낸 후에는 시원한 개울가에서 물놀이까지 겸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家族) 산행지로 추천할만하다.

 

산행들머리는 무갑리 마을회관

3번국도 광주 I.C에서 내려와 338 지방도를 타고 퇴촌읍 방향으로 들어간다. 무갑천(武甲川)을 건너기 직전(直前) 325 지방도를 만나는 지점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도로(道路:무갑로)를 따라 들어가면 산행이 시작되는 무갑리에 이르게 된다. 무갑리 마을회관 앞에 제법 널따란 주차장이 있으니 가지고간 차량을 이곳에 세워둔 후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참고로 내비게이션을 이용할 경우에는 무갑사를 입력하면 무난하다. 무갑리를 입력하는 게 보통이겠지만 지번(地番)을 모를 경우에는 엉뚱한 곳으로 가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무갑리 1번지를 입력한 탓에, 우리는 퇴촌면을 지나 무갑산의 반대편까지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와야하는 불상사(不祥事)를 겪어야만 했다.

 

 

 

마을회관의 왼편으로 난 골목길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골목 입구에 이정표(무갑산 2.40Km, 관산 7.25Km, 앵자봉 9.50Km)가 세워져 있으니 들머리를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마을회관을 지나자마자 길이 갑자기 좁아진다. 마치 밭두렁 같은 느낌이 들겠지만 개의치 말고 진행하면 된다. 조금만 더 걸어 올라가면 커다란 4각(四角)의 바위로 축대(築臺)를 쌓은 전원주택 옆에서 무갑사로 올라가는 본래의 길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무갑사로 올라가는 길가에는 고풍(古風)스런 한옥(韓屋)들과 예쁘장한 전원주택(田園住宅)들이 자주 눈에 띈다. 무인경비시스템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외지(外地) 사람들이 주말 별장으로 이용하고 있는 모양이다. 잘 지어진 주택들을 감상하면서 20분 정도 걸으면 무갑사(武甲寺)에 도착하게 된다.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寺刹)인 무갑사는 별로 오래된 절은 아닌 것 같다. 마당조차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좁은 터에 자리 잡은 사찰에 들어서면, 맨 먼저 극락전(極樂殿)이 눈에 들어오는데 건물의 외양(外樣)이 눈에 익숙하지가 않다. 우리가 늘 보아오던 단청(丹靑)이 화려한 전각(殿閣)이 아니라, 시멘트로 지어진 이층짜리 건물에 머리만 기와를 얹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갑사 오른편에 보이는 산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무갑사 오른편에 ‘정상’이란 팻말과,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산으로 들어서면 우선 원시(原始)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등산로 주변에는 미끈하게 자란 낙엽송(落葉松:일본이깔나무)이 늘어서있고, 길가에 우거진 넝쿨식물들은 사람들의 통행을 어렵게 만들 정도이다. 등산로의 옆에 보이는 개울에는 철조망이 처져있고, 주민들의 식수(食水)로 이용되고 있으니 개울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다.

 

 

 

 

개울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木橋)가 예쁘다. 이 지역을 관리하는 광주시에서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역력하다. 등산로도 잘 정비되어 있을뿐더러, 계곡에서 능선을 올라붙은 지점이나, 중요한 갈림길에는 어김없이 벤치와 이정표를 설치해 놓았다. 특히 이정표는 그 규격과 표기 내용을 통일시켰음은 물론, 꼭 필요한 곳에 설치하는 세심한 배려(配慮)가 돋보인다.

 

 

 

▼ 두 번째 개울을 건넌 후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통나무계단과 로프 등 등산객을 배려하는 시설들이 돋보이는 오르막길을 30분 정도 치고 오르면 지능선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안부에는 이정표(무갑산 1.0Km, 관산 5.85Km, 앵자봉 8.10Km/ 무갑사 0.71Km, 무갑리 마을회관 1.40Km)외에도 벤치가 만들어져 있으니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오르막길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잠깐 쉬면서 에너지를 재충전한다면, 이어지는 산행은 생각보다 쉬워질지도 모른다.

 

 

 

 

 

 

 

능선안부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경사(傾斜)가 무척 가파르다. 아마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힘든 구간을 한꺼번에 치고 오르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다. 산을 오르다보면 간혹 쉬어가라며 만들어 놓은 벤치들이 보이는데, 의외로 벤치를 설치한 곳의 조망(眺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벤치에 앉으면 맞은편 관산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가파른 능선길을 쉬엄쉬엄 오를 경우, 안부쉼터를 출발해서 40분 정도가 지나면 정상근처의 주능선 삼거리에 올라서게 된다. 선월리(신광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다. 삼거리는 서너 평쯤 되는 공터로 이루어졌는데 한쪽 귀퉁이에 안테나시설과 컨테이너 박스가 보인다. 그러나 이 시설은 없는 것만 못한 것 같다. 얼마나 오랫동안 관리를 안했는지 녹(綠)이 두텁게 슬은 철판(鐵板)이 차라리 흉물스러울 정도이기 때문이다.(이정표 : 무갑산 0.12Km, 관산 4.97Km, 앵자봉 7.22Km/ 무갑사 1.59Km, 무갑리 마을회관 2.28Km/ 선월리 신광사 1.30Km)

 

 

 

 

컨테이너 박스에서 잠깐 아래로 떨어졌다가 맞은편 능선으로 오르면 이내 무갑산 정상이다. 무갑산 정상은 10평 쯤 되는 흙으로 이루어진 분지(盆地), 관산 쪽은 반반한 바위로 되어있어 여러 사람이 앉아서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먼저 무갑사에서 올라오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직사각형 정상표지석이 눈에 띈다. 그리고 분지의 양 옆에는 주변 산군(山群)들과 광주시내에 대한 조망(眺望)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무갑산(武甲山)'은 산의 생김새가 갑옷을 입은 모습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참고로 언젠가 ‘임진왜란 때 항복을 거부한 무인들이 은둔하였던 곳’이라는 글을 본적이 있는데, 관련 자료는 확인해 볼 수가 없었다. 내 생각에는 무갑산의 어원(語源)을 산 아래에 있는 ‘무갑리’ 마을에서 찾고 싶다. 무갑산은 이름이 붙여진데 대한 뚜렷한 자료가 없지만, 무갑리의 지명에 대한 자료는 찾아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무갑리의 옛 지명(地名)은 ‘무래비’였고, 수복리(水伏里)라고도 표기했던 것을 보면(*광주문화원 기록), 무갑산도 물에서 유래된 이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우선 팔당호 주변의 예봉산과 운길산 그리고 검단산과 문안산, 해협산 등이 잘 조망(眺望)된다. 날이 더 좋으면 천마산과 축령산 등도 보인다지만, 오늘은 연무(煙霧) 때문에 시야(視野)가 흐린 탓에 그저 어림짐작만 해볼 수 있을 따름이다. 북동쪽에는 양자산과 앵자봉이 바로 지척이고,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은 용문산과 백운봉일 것이다.

 

 

 

산 정상에서 만나는 식탁(食卓)이라니... 무갑산을 관리하는 광주시에서 얼마만큼 정성을 들이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들의 배려에 마음속으로나마 감사를 드려본다.

 

 

하산은 무갑사 방향의 입구에 세워진 이정목(里程木)이 가리키고 있는 학동리 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잠깐 내려오면 조망(眺望)이 시원스럽게 트이는 전망대(展望臺)가 나온다. 마침 벤치까지 놓여있으니 서두르지 말고 잠시 쉬었다 가보자. 양자산과 앵자봉 등 주변의 산군(山群)들의 조망도 뛰어나지만, 주변에 빽빽하게 들어찬 소나무 숲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은 되었음직한 아름드리 노송(老松)들의 이파리를 간질이며 달려오는 바람결에는 어느 샌가 솔향이 듬뿍 담겨져 있다. 물론 그 속에는 사람들의 건강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도 넉넉하게 들어있을 것이다.

 

 

 

 

 

 

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비록 가파르지만 험하지는 않다. 정상어림의 어설픈 바위지대를 제외하고는 전형적인 황토흙길 인데다, 조금만 경사(傾斜)가 가팔라도 어김없이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잠깐 내려오면 신월리(감로사)갈림길(이정표 : 관산 4.66Km, 앵자봉 6.91Km/ 무갑산 0.19Km, 무갑사 1.90Km, 무갑리 마을회관 2.59Km/ 신월리 감로사 1.05Km)이 나오고, 10분쯤 후에는 헬기장을 지나게 된다.

 

 

 

 

헬기장을 지나서도 산길은 계속해서 가파르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그러나 경사(傾斜)가 가파른 구간마다 안전로프가 메어져 있기 때문에 내려서는데 부담은 없다. 거기에다 길가에 심심찮게 벤치까지 보이니 서두를 필요 없이 쉬엄쉬엄 내려가면 될 일이다. 그래봐야 정상에서 웃고개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이면 충분하다. 웃고개는 사거리로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학동리가 나오고, 왼편으로 진행하면 무갑리로 내려가게 된다. 만약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가 짧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맞은편 능선으로 진행하면 된다. 관산이나 앵자봉 방향으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이정표 : 무갑리 마을회관 3.68Km/ 학동리 1.18Km/ 관산 4.04Km, 앵자봉 6.29Km, 곤지암읍 신립장군묘 7.19Km/ 무갑산 0.81Km, 무갑사 2.52Km, 무갑리 마을회관 3.01Km)

 

 

 

 

웃고개에서 무갑리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그러나 이 구간도 안전로프와 통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20분 정도 내려오면 계곡을 만나게 되는데, 진행해야할 길을 고르는데 고민되는 지점이다. 계곡으로 내려서는 오른편 길은 사람의 흔적도 희미할뿐더러 거칠기까지 한데, 왼편 길은 뚜렷하지만 산을 다시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왼편으로 진행하는 것이 맞다. 오른편 계곡길은 지름길이기는 하지만 잡목(雜木)이 우거져있어 걷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계곡으로 내려서면서 고난(苦難)이 시작된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등산로에는 넝쿨식물 등 온갖 잡목들이 들어차 있어 걷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사정없이 뺨을 때리는 잔가지는 차라리 약과, 가시넝쿨에 긁히고 찔려본 사람들만이 그 고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0여분 이상을 원시(原始)의 숲에서 헤매다보면 개울 건너에서 본래의 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건국대학교연습림’이라고 적힌 간판(看板)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오른편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게 된다. 아까 웃고개에서 하산을 하지 않고 계속해서 능선을 탓을 경우, 관산 정상을 거쳐 이곳으로 내려오게 된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 넓이의 길은 별장(別莊)처럼 멋진 나무집과, 표고버섯 재배장을 지나서도 지루하게 계속 이어진다.

 

 

 

산행날머리는 무갑리 마을회관(원점회귀)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지겹게 느껴지지만, 오른편 언덕 아래에 개울이 보여 다소나마 위안을 받게 된다.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이 내다보일 정도로 개울물이 맑다. 그 때문에 여름철이면 피서(避暑)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모양이다. 개울에는 무리를 지어 둘러앉은 피서객들이 자주 눈에 띄고, 어쩌다 도로변에 자그마한 공터라도 보일라치면 어김없이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웃재를 출발해서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으면 무갑리 마을회관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