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 14구간(대축-원부춘)
여행일 : ‘22. 10. 31(월)
소재지 : 경남 하동군 악양면·화개면 일원
여행코스 : 대축마을(1.8km)→동정호(2.2km)→평사리→입석마을(2.3km)→윗재→아랫재(3.6km)→원부춘마을(거리 및 시간 : 10.7km/ 실제는 11.04km를 4시간 1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대한민국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1,915m)은 3개 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남원·구례·함양·산청·하동)에 걸쳐있다. 또한 아흔아홉 계곡과 500여 개의 자연마을을 품는다. 그 지리산의 둘레를 걷기 길로 이은 게 ‘지리산 둘레길(현재 20개 읍·면, 100여 개의 마을을 지난다)’이다. 오늘은 14구간(원부춘-가탄)을 걷는다. 7개 코스(68km)로 이루어진 하동 권역의 다섯 번째 구간으로 거리는 8.5km(평사리 최참판댁을 둘러볼 경우 10.7km로 늘어난다) 밖에 되지 않으나 높이가 750m나 되는 고개를 오롯이 넘어야하기 때문에 난이도는 ‘상’으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토지의 주무대인 평사리를 둘러볼 수 있으니 능히 도전해 볼만하다.
▼ 들머리는 대축마을(하동군 악양면 축지리 945)
완주-순천고속도로 구례·화엄사 IC에서 내려와 19번 국도를 타고 하동방면으로 내려온다. ‘악양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악양동로’를 타고 올라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축마을에 이르게 된다. 둘레길 엠블럼과 벅수(원부춘 8.5㎞←대축→삼화실 16.7㎞)는 버스정류장 근처 느티나무 아래에 세워져 있다.
▼ 14구간의 특징은 코스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는 점이다. 하나는 ‘입석마을’을 거쳐 ‘아랫재’로 곧장 올라가는 방법으로 길이가 8.5km쯤 된다. 다른 하나는 소설 ‘토지(박경리가 썼다)’의 무대인 평사리에 들렀다가 아랫재로 올라가는 방법인데 이때는 길이가 10.7km로 늘어난다. 참! 둘레길 도반인 ‘몽중루’님은 평사리에서 ‘고소산성’으로 오른 다음 형제봉능선을 타고 ‘윗재’로 가는 방법을 추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GPX트랙을 찾을 수 없어 두 번째 방법으로 걷기로 했다.
▼ 악양천 쪽, 그러니까 백운산을 마주보며 걸어 나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이곳 악양면은 2009년 세계에서 111번째, 국내 5번째로 슬로시티 인증을 받았다. 그러니 서둘지 말고 느긋하게 걸어볼 일이다. 자연과 더불어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면서...
▼ 동구 밖 소공원의 마을 표지석은 한 길도 더 넘는다. ‘악양 대봉감 정보화마을’이라는 입간판도 눈에 띈다. 대축마을은 ‘대봉감’의 시배지로 전해진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대봉감과 대봉곶감은 전국 그 어떤 대봉감보다 우수한 크기와 맛을 자랑한단다. 하긴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을 올렸을 정도라니 이를 말이겠는가. 매년 11월 축제까지 열린다나?
▼ 소공원 앞에서 ‘축지교’를 건넌다. 초입에 벅수(원부춘 8.3㎞/ 대축 0.2㎞)가 세워져 있으니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 다리 아래로 흐르는 ‘악양천’은 거사봉과 시루봉 자락에서 시작해 하류 즈음에서 악양 들녘을 만들고 나서 섬진강으로 합류되는 길이 10.5km의 물줄기다. 천은 들녘 한가운데를 지나는 건 아니고 오른쪽 가장자리를 따라 느긋하게 흐른다.
▼ 다리를 건너면 정면에 이정표와 둘레길 안내판이 있다. 길은 여기서 두 갈래로 갈라진다. 왼쪽은 동정호와 최참판댁을 거치며 에두르는 길이고, 오른쪽은 입석마을을 향해 강둑으로 간다.
▼ 벅수의 방향표시도 둘이 아니라 ‘셋’이다. 기본인 빨강색 방향은 강둑을 따라 입석마을로 향한다. 우회로인 녹색은 평사리의 너른 들녘을 에둘러 간다. 두 길은 입석마을 바로 위에서 다시 만난다.
▼ 둘로 나뉘는 둘레길 상황은 안내판으로도 만들어 내걸었다. 지도는 그 거리까지 적었다. 너른 들녘을 에두르는 왼쪽 길이 4km로 오른쪽보다 1.7km 더 길다. 하지만 동정호와 토지의 산실인 평사리를 눈에 담을 수 있으니 다리품을 조금 더 팔만하지 않겠는가.
▼ 왼편으로 방향을 틀자 길은 또 다시 나뉜다. 이때 직진 방향에 놓인 평사리가 아름다운 풍경화를 만들어 놓는다. 들녘과 산등성이가 풍경을 위아래로 나눈 것이나, 반듯하고 질서정연한 논과 산등성이가 만드는 자연스러운 곡선의 대비도 느낌이 좋다. 널디너른 들녘에는 벼 대신 마시멜로처럼 생긴 곤포 사일리지만 곳곳에 쌓여 있다.
▼ 둘레길은 악양천의 둑길을 따라 ‘농업용수 공급 취수장’까지 간다. 아니 공사 중이어선지 제방의 아래로 길이 나있었다.
▼ 취수장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이번에는 평사리 들녘을 가로지른다. 평사리는 변한 때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단다. 마을 앞 섬진강에 배가 오가던 시절에는 외부와 문물을 교류하는 창구의 역할도 수행했단다. 특히 지리산의 품에 아늑하게 안긴데다, 마을 앞에 엄청나게 너른 들녘이 펼쳐져 있어, 큰 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다.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될 수 있었던 이유이다.
▼ 물이 넘나든다고 해서 ‘무딤이들’이라고도 불리는 널디너른 들녘이다. 저 들녘은 또 섬진강 500리 물길이 부려놓은 가장 너른 들이기도 하다. 이 너른 들이 사람을 불러들였고, 그렇게 모여든 사람들이 촌락을 이루며 문화를 만들어냈다. 추수가 끝나 텅 비어버린 들녘은 83만평이라는 수치보다도 훨씬 더 넓어져 있었다.
▼ 동정호에 가까워지자 형제봉 능선이 더욱 또렷해진다. 신선대에 놓인 출렁다리가 그 자태를 드러내는가 하면, 맨 왼쪽에서는 하동의 또 다른 명소로 자리를 굳히고 있는 ‘스타웨이 스카이워크’가 자신도 보아달라며 얼굴을 내민다.
▼ 들녘 한가운데, 키 작은 잡목 숲이 섬처럼 자리한 곳에 소나무 두 그루가 사이좋게 우뚝 서있다. 토지 속 주인공 서희와 길상이를 연상시킨다는 ‘부부송(夫婦松)’이다. 가을이면 누런 들녘과 푸른 소나무의 조화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고 해서 사진작가들의 단골 모델이 되기도 한단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5분, 허수아비의 할 일이 사라져버린 빈 들녘을 따라 걷다보면 그 끄트머리에서 ‘동정호(洞庭湖)’와 만난다. 동정호는 자연 습지를 복원한 생태공원의 호수다. 하동군 악양면(岳陽面)이 중국(호남성)에 있는 악양(岳陽)과 지명이 같은데 착안해 그 동네 호수의 이름을 살짝 빌려왔다. 옛날 나당 연합군을 이끌고 온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이곳을 보고 고향 땅에 있는 못과 닮았다며 ‘동정호’라 불렀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 호숫가 느린 우체통은 하동을 상징하는 두꺼비 조형물이 지킨다. 언뜻 보면 개구리처럼 보이는데 사실 동정호 주변은 두꺼비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란다. 이렇듯 동정호는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진다. 이런 점에 착안한 하동군은 동정호 일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했다. 호수 중앙에 인공 섬을 만들었는가 하면, 수변 덱과 전망대, 사랑의 출렁다리 등을 만들어 산책할 수 있는 힐링공간으로 조성했다. 참! 혹자는 악양루에 앉아 푸른 가을하늘 아래 동정호 물가에 내려앉은 가을을 즐겨보라고 했다. 소상팔경(瀟湘八景) 중 하나인 동정추월(洞庭秋月), 즉 가을 날 동정호에 휘영청 떠오른 하늘의 달과 수면에 비친 달을 떠올리면서...
▼ 이제 평사리로 갈 차례다. 동정호를 빠져나오는데 들녘 너머 악양면을 둘러싼 산세가 선명하다. 신성봉·형제봉·거사봉·시루봉 등 1000m 수준의 봉우리들이 어깨동무를 한 것처럼 길게 이어지면서 파노라마를 펼쳐놓는다. 그 사이 잘록한 부분이 묵계로 넘어가는 ‘회남재’일 것이다.
▼ 조금 더 걸어 ‘1003번 지방도’로 올라서면 ‘최참판댁’ 버스정류장이 반긴다. 둘레길은 저곳에서 차도를 타고 입석마을로 간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곧장 직진해 볼 것을 권한다. 우리나라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토지’의 주무대인 ‘평사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 도로를 건너 ‘평사리’로 향했다. 그러자 ‘최참판댁’으로 들어가는 길목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길손을 맞는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주무대라는 부제를 달고서. ‘토지’는 박경리 작가가 26년간의 집필기간을 걸쳐 완성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문학이다. 소설은 대한제국이 수립되는 1897년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를 배경으로 하여 역사적 흐름을 폭넓게 가져간다. 작품 속 시간적 배경이 길다보니 공간적 배경도 장대하다. 최참판댁이 위치한 이곳 평사리 일대에서 시작해 진주·통영·경성과 만주의 용정∙신경∙하얼빈 및 일본 동경 등으로 확대돼 간다. 우리나라 근대사 속 민초들의 삶과 사회∙경제적 변동의 역사를 생생하게 살려냈다는 점에서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마을 앞 주차장에는 지역 특산품들을 펼쳐놓았다. 그중에서도 대봉이 단연 눈길을 끈다. 악양의 대봉감은 굵기로 유명하다. 최상품은 감 하나에 460g이 넘고, 제일 작은 것도 250g이나 나간다고 한다. 수확한 지 10일에서 20일이면 홍시로 먹을 수 있고, 곶감으로도 인기가 있는데 비타민 A와 C가 풍부한 영양 간식이란다.
▼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여느 유명 관광지에 못지않다. ‘토지’가 국민 애독서를 넘어 드라마로까지 제작되자, 그 현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러자 하동군은 소설 속의 ‘최참판댁’을 실제인 양 지어놓았다. 마을에서 살던 이들의 초가삼간도 가상을 벗어나 현실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결과 최참판댁은 하나의 마을로 구성되어 구경거리와 먹거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 소정의 돈을 내야만 마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맞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조금 한산하지만 예전에는 연 입장객이 2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실존이 아닌 소설 속 공간에 불과한데도 찾아오는 이유는 대체 뭘까? 길에서 만난 어느 여행자는 이렇게 말했다. 소설 속 스토리가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러자 그 공간이 어떻게 펼쳐져 있는지를 한번쯤 보고 싶어졌다나?
▼ 소설이 현실이 된 ‘평사리’는 평일인데도 꽤 많은 관광객들이 오가고 있었다. 옷이나 기념품, 특산품 등을 파는 가게는 물론이고 식당들도 손님맞이에 분주한 모습이다.
▼ 상호는 대부분 ‘서희’나 ‘길상이’ 등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왔다. 대신 음식점은 ‘사랑채’와 ‘별채’ 같은 최참판댁 건물들을 간판으로 내걸고 있었다.
▼ 저 우물은 길상이를 흠모하던 불쌍한 봉순이가 물을 깃던 우물일지도 모르겠다.
▼ 가장 먼저 들러볼 곳은 ‘박경리문학관’이다. 소설 ‘토지’의 모티브가 된 ‘평사리’에 마련된 작가를 기리는 공간이다.(작가의 고향인 통영과 토지 4·5부를 집필한 원주에서도 이와 비슷한 공간을 만나볼 수 있었다)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작가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의 위대한 작가이다. ‘토지’외에도 ‘불신시대’, ‘시장과 전장’, ‘김약국의 딸들’ 등 수많은 작품들을 집필했는데, 부조리한 사회의 비판, 인간소외에 대한 저항, 인간의 존엄과 사랑에 대한 절대적 믿음 등을 담아냈다고 평가된다.
▼ 지리산 자락을 배경삼은 문학관에서의 조망은 뛰어나다. 오른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앞으로는 누런 들녘이 넉넉하게 펼쳐진다. 풍요의 상징이어야 할 저 들녘을 소설(토지)은 수탈의 공간으로 그려놓는다. 다른 한편으론 그것을 이겨내며 해방을 맞이하는 이미지로 그려진다. 독자들이 이곳 평사리를 꼭 한번 와보고 싶은 곳으로 꼽는 이유이다.
▼ 내부는 박경리 작가의 삶에 초점을 맞춘 전시로 기획됐다고 한다. 작가가 생전에 집필 할 때 사용하던 유품과 그가 남긴 글귀 등이 전시되어 있단다. 하지만 난 마당에 펼쳐놓은 작가의 원고지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평사리를 들르지 않고 입석마을로 곧장 진행해버린 다른 일행들을 쫓아가려면 뛰어가도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서이다.
▼ 다음 방문지는 ‘최참판댁’이다. 구중궁궐을 연상시킬 정도로 커다란 저택이지만, 사실 ‘토지’ 속 최참판은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이다. 그러니 저 집도 소설을 극화시키기 위해 꾸며놓은 가상의 공간일 따름이다. 그렇다고 들어가 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록 소설 속 얘기지만 주인공들이 살아가며 흩뿌려놓은 삶의 편린(片鱗)이 녹아있는데...
▼ 저 사랑채는 최치수가 기거했다. 서희의 아버지이자 최참판가의 당주였던 그는 매사에 냉소적이고 신경질적이며 여자를 믿지 않는다. 별당아씨가 김환과 도망가자 추적했고, 최참판가의 재산을 차지하려 유혹하는 귀녀의 음모를 눈치 채고 강포수와 결혼시키려하나 김평산에게 살해되고 만다.
▼ ‘안채’는 여성들의 공간으로 안주인인 안방마님과 며느리, 여자 하인 등이 기거하는 공간이다. 최치수의 어머니이자 서희의 할머니인 안방마님 윤씨부인은 최참판가의 실질적 가장이다.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낳은 김환을 하인으로 곁에 두며, 별당아씨와의 불륜을 용인한다. 조준구의 장기 거주에 불안을 느껴 비밀리에 서희에게 금·은괴를 남겨주고 호열자로 죽는데, 이 자금이 서희가 재기하는데 발판을 만들어준다.
▼ ‘뒷채’는 연로하신 부모가 안채와 사랑채를 아들 부부에게 넘겨주고 은퇴하며 머무르는 공간으로 부엌과 서고 등이 딸려 있다.
▼ ‘별당채’는 그 집안 딸들이 기거하며 신부수업을 받는 공간이다. 별당아씨는 최치수의 둘째 부인이자 서희의 생모로 냉정한 남편에게 외면당하다가 이부 시동생 김환과 사랑에 빠져 도피한 후 묘향산 근처에서 죽는다. 그녀의 딸인 서희는 가족을 모두 잃고 조준구에게 재산을 빼앗기자 길상 등과 함께 용정으로 이주, 길상과 결혼해 두 아들 환국·윤국을 얻고 귀향하여 평사리 땅을 되찾는다. 그리고 은밀하게 항일운동을 하면서 지리산의 젊은이들을 돕고, 평사리 사람들의 정신적인 지주로 살아간다.
▼ 별당 앞은 ‘연못’ 차지다. 별당아씨를 연모한 구천의 마음과 구천을 향한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간절함이 녹아 있는 별당아씨의 연못이다. 신분은 달랐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이를 극복하고 사랑의 연을 맺은 스토리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모양이다. 사랑·소망·무병장수를 염원하며 던진 동전이 절구통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 ‘토지’의 첫 장면은 평사리 들판에서 8월 한가위에 사물놀이하며 가을 추수를 주민들이 즐기는 걸로 시작된다. 마지막 장면은 ‘최참판댁’이 장식한다. 별당에서 주인공 서희가 일제로부터 독립 해방 소식을 들으며 소설을 끝을 맺는다. 소설처럼 별당을 마지막으로 최참판댁을 빠져나와 소설 속 마을을 둘러봤다. 마을은 칠성이네, 김평산네, 김훈장댁 등 14동의 한옥으로 구성됐다. 초가집은 TV 드라마 세트장으로도 활용된단다. 그래선지 용이네·두만네·월선네 등의 집들이 실제 사람이 살 수 있을 만큼의 크기로 지어졌다. 참! 김훈장댁과 김평산네는 한옥스테이도 할 수 있다고 했다. 1일 숙박료(평일 기준 30,000원에서 35,000원 사이)도 쌈지막하니 여유가 있다면 하룻밤 묵어가도 좋겠다.
▼ 최참판댁 입구는 최참판댁과 마을에서 촬영됐던 드라마나 영화로 도배되어 있었다. 하나, 둘... 열, 스물까지 헤아리다 지쳐 그만두었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조선총잡이·해를 품은 달·옥룡이 나르샤·꽃들의 전쟁·구름이 그린 달빛·역적 등등
▼ ‘토지장터’를 횡단해 마을을 빠져나왔다. 초가인 주막과 대장간 난전 등의 상가가 줄지어 있지만 평일이어선지 장이 서지 않아 한산했다. 참고로 평사리를 둘러보는 데는 20분이 걸렸다.
▼ 평사리를 둘러봤으니 이제 둘레길로 되돌아가야 한다. 아까 평사리로 들어오면서 횡단했던 1003번 지방도이다. 하지만 난 장터를 지나 마을 뒤편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앱의 도움을 받아가며 탐방로를 찾아나간다.
▼ 그렇게 4분쯤 걸어 대촌마을 근처(벅수 : 입석 0.9㎞/ 대축 3.1㎞)에서 둘레길을 만났다.
▼ 둘레길은 감나무 밭 사이를 헤집는다. 어른 주먹보다도 큰 감이 나뭇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대봉감은 ‘과실 중의 으뜸은 감이요, 감 중의 으뜸은 대봉감’이라 할 정도로 색깔과 모양이 아름답고 감칠맛이 난다. 악양면은 삼면이 둘러싸인 분지형으로 바람의 피해가 적고, 겨울이 따뜻해서 품질이 우수한 대봉감을 생산하기 적격이란다. 감칠 나는 맛과 색깔, 아름다운 모양이 뛰어나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까지 됐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10분, 감나무 사이로 한참을 오르면 입석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다시 만난다. 이곳도 지리산둘레길 안내도를 세워놓았다. 하지만 벅수(원부춘 6㎞/ 대축 2.3㎞)는 평사리로 가는 방향을 빼먹었다. 역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이 헷갈리기 딱 좋은 곳이다.
▼ 길은 계속 오르막이다. 보문사 표지석이 서 있는 Y자 갈림길에서는 오른쪽 위로 간다.
▼ 뒤라도 돌아볼라치면 섬진강이 살짝 얼굴을 내민다. ‘입석 상저수지’ 부근에서는 평사리 들녘과 칠성봉, 섬진강 건너 광양 백운산과 억불봉까지도 눈에 담을 수 있다.
▼ 고개를 들자 이번에는 형제봉(1115.5m)이 우뚝 선 모습으로 나타난다. 최근에 새로 놓았다는 출렁다리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둘레길에서 조금 비켜나 있으나 한번쯤 들러볼만한 곳이다. 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 들녘과 섬진강 비경, 섬진강 건너 우뚝 솟은 백운산의 자태까지 한꺼번에 눈에 담는다는 게 어디 그리 흔하겠는가.
▼ 저 감밭은 제주도처럼 긴 막대기로 입구를 막았다. 제주도의 막대기(정낭)는 그 숫자로 주인의 근황을 나타낸다. 막대기 하나는 금방 돌아오고, 둘은 저녁, 셋은 멀리 여행을 떠났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나저나 ‘감에 손대지 말라’는 메시지일 거라는 내 설명에, 함께 걷던 이가 요즘 누가 농작물에 손대냐며 언성을 높인다. 내 생각도 같다. 하지만 아무리 당부해도 꼭 손을 대는 이들이 있으니 문제 아니겠는가. 언젠가 농작물 절취에 견디다 못한 마을주민들이 둘레길을 막아버린 곳도 만나지 않았던가.
▼ 가파른 콘크리트 임도가 계속된다.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지형이지만,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풍경이 그럴 틈을 주지 않는다.
▼ 최참판댁에서 35분. 쉼터(벅수 : 원부춘 4.9㎞/ 대축 3.6㎞)를 만났다. 굵은 서어나무 그늘에 평상과 벤치를 놓았는가 하면, 바로 아래엔 화장실까지 들어앉혔다. 참! 완주 인증을 위한 스탬프보관함도 이곳에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 일이다.
▼ 100m쯤 더 올라가면 삼거리(벅수 : 원부춘 4.8㎞), 둘레길은 이곳에서 산자락으로 들어선다. 고단한 행군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핸드폰의 앱은 이곳의 높이를 245m로 찍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고도를 500m나 높여야 한다.
▼ 산책로 수준으로 이어오던 둘레길이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산길로 변한다. 그러니 가파를 수밖에 없다. 곳곳에 침목계단을 놓았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참! ‘토지’ 속 최참판댁 별당아씨는 구천이와 함께 지리산으로 숨어든다. 그렇다면 숨 헐떡이며 오르던 그네들이, 이 길 어디쯤의 바위 턱에 앉아 가쁜 숨을 내 쉬었을 수도 있겠다.
▼ 산길은 울창한 서어나무 숲을 지난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저 숲은 고단한 행군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주면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 이파리를 다 떨구어버린 북녘의 나무들은 빈가지만 허공에 매달렸지만, 남녘의 지리산은 이제야 단풍이 무르익는다.
▼ 서어나무의 하얀 뿌리가 맹수의 발톱처럼 대지를 파고든다. 남세스럽게도 아랫도리를 뽀얗게 드러낸 것이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했다.
▼ 저 바위는 ‘말바위’라고 했다. 그런데 요리조리 살펴봐도 말의 형상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문제다. 무학대사는 부처와 돼지의 눈을 빌어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 했다. 지천명을 넘긴지 스무 해나 지났건만 아직도 내 수양은 멀었나보다.
▼ 시간이 지날수록 산길은 허리를 곧추세운다. 산길 주변의 바위도 그 숫자를 늘려간다. 그러다가 사면에 길게 누워 있는 상사바위를 지나면 하늘이 살짝 열리면서 형제봉에서 흘러내린 능선이 그 자태를 드러낸다.
▼ 쉼터에서 50분(트레킹을 시작한지는 2시간 20분)만에 형제봉 능선의 안부인 ‘윗재(해발 621m)’에 올라섰다. 이곳은 지리산둘레길과 지리산등산로가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오른쪽 능선을 타면 신선대를 거쳐 형제봉, 왼쪽은 신성봉을 거쳐 고소산성으로 연결된다. 둘레길은 직진하다 오른쪽으로 형제봉의 북서면 능선을 휘감아 돈다.
▼ 이름표까지 떡하니 단 벅수는 이제 날머리까지 3.7km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 산행을 이어간다. 하지만 고개를 넘었다고 해서 하산은 아니다. 이후로도 산 사면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참! 윗재 부근에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좁새바위 전망대’가 있다고 했는데 찾아보지는 못했다. 아니 당시는 그런 전망대가 있는 줄도 몰랐다.
▼ 바위의 숫자가 부쩍 늘었다. 몸집도 아까보다 훨씬 더 부풀렸다. 산길은 그런 바위의 아랫도리를 에도는가 하면, 또 어떤 곳에서는 사이를 헤집는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위태롭게 걷기도 한다. 하지만 위험한 곳은 돌로 쌓아 길을 넓혔으니, 너무 걱정할 일은 아니다.
▼ 그렇게 40분쯤 오르다보면 어느덧 ‘아랫재’에 이른다. 옛날 입석마을과 원부춘마을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라고 했다. 글쎄다. 조금만 에두르면 되는데 구태여 이렇게 높은 고개를 넘을 필요가 있었을까?
▼ 이번의 벅수(원부춘 2.4㎞)는 이름표가 없었다. 어디로 뻗어나가는 능선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14코스(대축-원부춘)에서 가장 높은 지점(해발 747m)임은 분명하다.
▼ 이제 하산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저 길은 칠순을 넘긴 나에게는 버티기 힘든 고역이다. 퇴행성관절염으로 신음하는 내 무릎으로서는 가파른 경사의 너덜길이 길어도 너무 길기 때문이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주변 풍광이 그나마 위안이 되어준다고나 할까?
▼ 숲은 단풍이 한창이다. 14구간(대축-원부춘) 전체로 보면 단풍이 많지 않은데 이곳은 노랗고 빨갛게 물오른 단풍이 늦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가을의 진수라는 단풍이 올라올 때보다 훨씬 더 짙어진 것이다. ‘가을 단풍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단풍이니 서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핏빛에 풍덩 빠져보면 어떨까?
▼ 숲은 잎이 아기 손바닥처럼 작아 흔히 애기단풍으로 부르는 단풍나무가 주를 이룬다. 타오르듯 새빨간 단풍잎이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보기 좋다.
▼ 단풍 숲이 끝나자 주변의 풍광도 볼품이 없어진다. 그렇다고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돌너덜길도 함께 끝나면서 이후부터는 흙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 아랫재에서 1시간. 드디어 ‘원부춘’ 마을에 도착했다. 뒤로는 형제봉이 받쳐주고 아래쪽으로는 섬진강이 굽이쳐 흐르며 강 건너 백운산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 잡아 이름 그대로 풍요롭고(富) 따뜻한 봄날(春) 같은 동네다. 다른 한편으론 고려 때 한유한(韓惟漢)이 최충헌에게서 벗어나 숨어 두문불출한 곳이라 하여 ‘불출동(不出洞)’, 절(원강사)이 있고 부처가 날만 하다 하여 ‘불출동(佛出洞)’ 또는 ‘부처동’, 형제봉에 붙어 있다고 ‘부치동’ 등 이름도 다양한 산골마을이다.
▼ 하늘 아래 첫 집은 실용성 위주로 꾸며져 있었다. 식수는 계곡에서 뽑아온 듯하고, 작은 박스들을 연결해 텃밭을 만들었다. 한 평의 땅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산골마을의 형편을 보는 듯하다.
▼ 마을에 들어섰는데도 길은 여전히 기세가 사납다. 가파르기 짝이 없는 산비탈에 마을이 들어서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원부춘마을 주민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나 보다. 산 중턱. 그것도 가파른 비탈에 들어앉은 지형에 맞게 높다랗게 축대를 쌓은 다음 그 위에다 건물을 올렸다.
▼ 날머리는 ‘원부춘’마을(하동군 화개면 부춘리 326-2)
마을안길을 빠져나오면 트레킹이 종료되는 마을회관이다. 구간의 시·종점을 알리는 엠블럼(emblem)은 벅수(대축 8.7㎞←원부춘→가탄 13.2㎞)와 함께 마을회관 앞에 세워져 있다. 그건 그렇고 오늘은 11.04km를 걸었다. 소설 ‘토지’의 산실인 ‘평사리 최참판댁’을 다녀오느라 2km 남짓 더 걸었다. 소요시간은 4시간 10분. 높이가 750m나 되는 형제봉 능선을 넘느라 고생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에필로그(epilogue), 14구간(대축-원부춘)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평사리’이다.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토지’의 배경지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60년에 가까운 시간과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지역을 펼쳐놓지만 시작과 끝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박경리 작가는 작품을 탈고할 때까지 평사리를 방문한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단 한번 진주여고 시절 이곳 출신 선배와 함께 평사리를 방문했던 기억이 머릿속 한켠에 남아있을 뿐이었단다. ‘토지’를 구상하던 중 공간적 배경에 만석꾼이 있어야할 정도로 넓은 평야가 있어야 한다는 점, 작품에 사투리(작가에게 익숙한)와 같은 문화적 요소를 녹여내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하다가, 넓은 논밭이 있던 평사리를 기억해내고 ‘토지’의 배경지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후 최참판댁에서 열린 행사 때 평사리를 찾았다가 상상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지역의 모습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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