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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5코스(사가정역 - 광나루역)

 

일 시 : ‘26. 10. 5(월)

소재지 : 서울시 중랑구 및 광진구 일원

코 스 : 사가정역→깔딱고개 쉼터→용마산5보루→아차산→아차산 해맞이공원→아차산 어울림공원→광나루역(거리/시간 : 4.6km+1.6km, 실제는 8.23km를 3시간 40분에)

 

특징 :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21개 코스, 156.5km 규모의 순환형 트레일이다. 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고덕산·일자산·대모산·우면산·관악산·호암산·안양천·노을공원·봉산·북한산 등 서울을 둘러싼 자연과 도시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 09 : 50. 들머리는 사가정역(중랑구 면목동)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사가정(四佳亭)’은 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용마산 부근에서 정자를 짓고 살았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사가정’이란 호(號)처럼 정자 주변에 자신이 좋아하는 매화·연꽃·해당화·대나무 등을 심어두고 즐겨 감상했다나?

▼ 용마산과 아차산의 능선을 따라 걸으며 서울의 수려한 경관과 삼국시대의 역사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이다. 난이도는 ‘중’. 길이(4.6km)는 짧으나 사가정역에서 시점(깔딱고개 쉼터)까지의 접근거리가 1.6km, 그것도 가파른 오르막길이라는 것은 부담이다.

▼ 09 : 50. ‘사가정로’를 따라 동진(용마터널 방향)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 09 : 57. 도심 속 쉼터인 ‘사가정공원’. 어린이놀이터를 비롯해 피크닉장, 다목적광장, 자연형 계류(냇가) 등을 조성 구민들에게 쾌적한 힐링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용마산 등산로의 거점답게 단체로 몸을 풀고 있는 등산객들도 눈에 띈다.

▼ 10: 04. 공원을 지나자 계단 길이 시작된다. 초입의 이정표가 5코스 시점인 ‘깔딱고개 쉼터’까지 550m나 남아있다고 겁부터 준다. 그것도 구간 전체가 계단이니 자칫 ‘서울둘레길’과 만나기도 전부터 기운이 다 빠져버릴 수도 있겠다.

▼ 10 : 11. 용마제일약수터. 물은 흘러나오나 마실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 계단 길은 이후로도 한참이나 더 계속된다.

▼ 자녀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무한대라고 했던가?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텐데 딸까지 등에 업었다.

▼ 10 : 22.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깔딱고개 쉼터’가 있는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정표(광나루역 4.6km/ 화랑대역 7.7km, 이하 ‘종점까지’로 표시)가 사가정역에서의 접근거리가 1.6km임을 알려준다.

▼ 4코스와 5코스의 경계임을 알려주는 시설물들은 ‘쉼터’ 맞은편에 세워져 있었다. 완주 인증을 받으려면 21개 코스에 있는 스탬프 28개를 모두 찍어야 하니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 ‘깔딱고개’를 오르면서 5코스 답사를 시작한다. 깔딱고개란 너무 가파르고 힘겨워서 오를 때 숨이 깔딱거릴(넘어갈) 정도로 고된 고개나 비탈길을 뜻한다. 그러니 저 가파른 계단길이 끝도 없이 놓여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그렇다고 겁부터 먹지는 말자. 속도만 조금 떨어뜨리면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올라가면서 만나는 ‘전망대’도 작은 위로가 된다. 난간에 서자 백운대·보현봉·비봉 등을 거느린 북한산으로도 모자라다는 듯, 북악산·인왕산·안산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경사가 하도 가파르다보니 계단 놓기도 쉽지 않았나보다. 요리조리 몸을 비틀어가며 힘겹게 고도를 높여간다.

▼ 또 다른 전망대를 만났다. 이번에도 역시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가며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 탁 트인 한강의 물줄기와 함께 서울 동남권과 하남시의 스카이라인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 10 : 37. ‘깔딱고개’의 끝. 계단의 수는 570개라고 한다. 안내판은 계단을 오르면서 90kcal의 열량을 소모시켰고, 이로 인해 수명이 35분 정도 늘어났다며 너스레를 떤다.

▼ 이후부터는 전형적인 능선 길이 이어진다. 가파르지 않은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고 보면 되겠다.

▼ 용마산은 나무가 많다며 육산(肉山)으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는 암릉과 바위가 많고 경사가 가파른 골산(骨山)의 성격을 띠고 있다. 덕분에 곳곳에서 시야가 열리면서 멋진 풍경화를 펼쳐 놓는다.

▼ 10 : 43. 안내판이 저 계단의 위에 ‘용마산 5보루’가 있다고 알려준다. ‘보루(堡壘)’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소규모 성곽이나 요새를 말한다. 삼국시대 때 고구려에서 쌓은 7개의 보루가 용마산 능선에 분포되어 있다.

▼ 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계 확보를 위한 ‘고지 선점’이 필수다. 용마산 5보루도 해발 316.3m의 봉우리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은 헬기장으로 변해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 이름(堡壘)에 걸맞게 뛰어난 조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북의 드넓은 시가지가 발아래로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 발상의 전환? 길을 내면서 나온 돌들을 허투루 버려두지 않았다. 나무 밑동을 두른 돌담을 쌓는데 활용한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우리가 눈발이라면’이 적힌 시판도 눈에 띈다.

▼ 10 : 50. 해발 342m의 고지는 ‘제2헬기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울퉁불퉁한데다 바위까지 널려있어 헬기장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 이정표(종점까지 3.9km)가 오른쪽 600m지점에 ‘용마산’이 있음을 알려준다.

▼ 평균에 못 미치는 5코스의 길이(4.6km)를 감안 ‘용마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정상 조금 못미처에서 아래로 뚝 떨어지기도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 10 : 56. 아차산과 용마산을 잇는 해발 327.3m의 주능선에 위치한 ‘제3헬기장’. ‘용마산 4보루’가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둘레는 263m, 용마산 일대 보루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했다. 하지만 성벽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숲으로 둘러싸인 탓에 조망도 허락되지 않았다.

▼ 안내판은 용마산과 아차산 일대의 보루들이 사적 제455호(아차산 일대 보루군)로 지정·보호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아차산(5), 용마산(7), 망우산(1), 홍련봉(2), 시루봉(1), 수락산(1) 등에 총 17개의 보루가 분포되어 있다.

▼ 잠시 후 바윗길을 만난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용마산은 굵직한 암릉과 암반이 많아 산세가 다부지다. 1961년 이후 수도권의 건축 석재를 캐던 거대한 채석장이 있었고, 그게 요즘은 용마폭포공원으로 변해 밤낮으로 시민들을 맞이한다.

▼ 이곳은 조망의 명소이기도 하다. 서울의 새로운 Landmark로 굳어진 ‘롯데타워’를 배경삼아 인생샷을 노려볼만한 곳으로 꼽히기도 한다.

▼ 조금 더 걷자 쉼터를 겸한 야외 체육시설(일명 산스장)이 맞는다.

▼ 11 : 03. 용마산(龍馬山, 348m) 정상. 한강을 감싸는 보배로운 산으로 삼국시대 때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래선지 정상석 뒷면에 ‘고구려의 기상’이라고 적어놓았다. 하나 더. ‘용마’에 얽힌 사연도 들어보도록 하자. 용마산 자락에서 큰 장군이 될 만한 아기가 태어났던 모양이다. 하지만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한 부모가 아기를 죽였고, 그러자 산에서 주인을 잃은 용마가 나와 슬피 울다가 어디론가 날아갔다나? 옛날에는 집안에 힘이 센 장사가 태어나면 가족 모두를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고 한다.

▼ 맨 꼭대기에는 1910년에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토 측량 기준점 중 하나인 ‘용마산 대삼각본점(서울 미래유산 제196호)’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인증사진을 저렇게 찍나?

▼ 시야는 꼭대기 근처에서 열리고 있었다.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 서울 북동부를 에워싸고 있는 수려한 산줄기가 파노라마로 이어진다.

▼ 중랑구에서 가장 높은 산답게 정상은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 이들을 노리는 노점상까지 들어섰을 정도다.

▼ 11 : 31. ‘제2헬기장’으로 되돌아와 길을 이어나간다. 그러자 ‘아차산전망대(Google Map의 표기)’가 잠시 들렀다가란다.

▼ 난간에 서자 굽이도는 한강과 함께 하남시 일원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서울 동남권과 롯데월드타워가 포함된 잠실 일대(사진은 생략)가 펼쳐진다.

▼ 11 : 39. 용마산과 아차산을 잇는 능선의 안부. 이정표(종점까지 3.6km)가 오른쪽으로 ‘서울시 테마산책길(긴고랑공원)’이 갈려나감을 알려준다. 서울 시민들이 도심 속에서 자연과 문화를 즐기며 걸을 수 있도록 선정한 도보길로, 총 150개 코스(연장 428.3km)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의 매력적인 풍경과 이야기를 담아 총 5가지 테마로 나뉘어 운영된다.

▼ 시판에 둘레길 지도를 끼워 넣은 ‘구리시’의 지혜가 돋보인다.

▼ 한껏 여유부리며 내려오던 능선은 테마산책길을 기점으로 오르막으로 변한다. 용마산에서 아차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지 싶다.

▼ 11 : 45. 아차산 4보루. 475년(장수왕 63) 고구려가 한강 유역에 진출한 후 551년 백제·신라 연합군에 의해 물러날 때까지 사용한 전초기지로 아차산 북쪽 봉우리에 걸터앉아 있다. 용마산과 아차산을 답사하면서 만난 보루 중 유일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통제하기 위해 구축한 아차산 일대의 보루군 중 핵심이라고 했다. 둘레는 249m 내외로, 아차산 3보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래선지 보루 위로 내놓은 80m 남짓의 길이 무척 길어보였다.

▼ 산성에서나 볼 법한 ‘치(雉)’도 갖고 있었다. 이름처럼 꿩(雉)이 자기 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듯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다각도에서 감시하고 효과적으로 격퇴하기 위한 시설이 ‘치’이다. 그러니 이름만 보루이지 산성과 다름없다고 보면 되겠다.

▼ 복원을 마쳤으니 자랑도 해야지 않겠는가. 4보루의 이력과 출토 유물을 적은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 다시 길을 이어나간다. 길가 풍경은 시장바닥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길은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길가에 놓아둔 벤치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아차산이 도심 공원을 산책하듯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 맞다. 아차산 등산은 ‘서울시 테마산책길’에 꼽혔을 정도로 수월하다. 참고로 서울시 테마산책길은 숲이 좋은 길(75개소), 전망이 좋은 길(23개소), 역사문화길(24개소), 한강·하천이 좋은 길(23개소), 계곡이 좋은 길(5개소) 등 다섯 가지 테마로 분류된다.

▼ 아차산도 육산(흙산)이라기보다는 골산(바위산)에 가깝다. 덕분에 심심찮게 바윗길을 만난다. 기형의 바위들을 눈에 담아가며 걷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 12 : 00. 아차산의 정상 조금 못미처에서 길이 나뉘고 있었다. 이정표(종점까지 3.0km)는 왼쪽 산비탈을 가리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상을 에둘러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상을 빼먹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 50m쯤 올라가자 아차산(峨嵯山, 295.7m) 정상이다. 여기서 ‘아차’는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의 줄임말이다. 명종이 홍계관의 점괘가 귀신같다는 얘길 듣고 궤짝 안에 쥐 한 마리를 숨겨놓고 안에 몇 마리가 들어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홍계관이 ‘다섯 마리’라고 하더란다.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든 임금이 사형을 명했고, 혹시나 해서 배를 갈라보니 새끼 네 마리가 들어 있더라나? 아차! 했지만 홍계관은 이미 죽고 난 후였다. 본래는 ‘아단산(阿旦山)’이었는데 말년에 이성계가 ‘이단(李旦)’으로 이름을 고치자 백성들이 피휘(避諱) 전통에 따라 글자 모양이 유사한 ‘또 차(且)’ 자를 썼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현대에 이르러 산의 형세를 뜻하는 한자인 峨嵯山으로 변했다.

▼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아차산은 용마봉(348m)과 망우현(282m)을 아우르는 산군이었다. 요즘은 용마산, 망우산으로 나누어 부르는 추세라고 한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높이는 낮지만 손꼽히는 개방감과 아름다운 한강 River View를 자랑한다. 한강 너머의 하남시와 예봉산·검단산의 산세가 어우러지는 자연 풍경도 함께 펼쳐진다.

▼ 아차산 정상은 ‘아차산 3보루’를 겸한다. 성벽 둘레는 450m, 아차산 보루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 12 : 06 – 12 : 26. 정상 근처에서 간식을 즐긴 다음 다시 길을 나섰다. 벤치는 앉을자리가 없었지만 널찍한 바위가 곳곳에 널려있어 편히 쉬다 갈 수 있었다.

▼ 잠시 후 만난 전망대. 이곳도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볼 수 있도록 했다.

▼ 서울 도심은 물론이고 인왕산, 안산, 남산, 관악산 등 이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12 : 31. 그렇게 5분 남짓 걸었을까 길이 나뉘고 있었다. 이정표(종점까지 2.6km)는 계속해서 능선을 타란다. 왼쪽은 범굴사와 ‘아차산 2보루’로 가는 길이다.

▼ 잠시 후 만난 전망대는 분재처럼 예쁜 노송을 품었다. 이번에는 조망도 대신 아차산·용마산 등산안내도를 세워놓았다. 지도에 표시된 ‘아차산 명품소나무 1호’가 저 노송인 모양이다. 아무튼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아까 아차산 정상 근처에서 만났던 전망대와 거의 비슷했다.

▼ 12 : 38. 해발 267.2m의 작은 봉우리 정상부에 위치한 ‘아차산 5보루’는 스치듯 지나간다. 보루가 통일신라 들어 기능을 상실하자 무덤을 썼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울타리를 둘러 출입을 막고 있었다.

▼ 12 : 40. 조금 더 걸으면 ‘아차산 1보루’이다. 아차산 보루군 중 가장 남쪽 해발 252.4m 봉우리에 자리하고 있다.

▼ 둘레는 123m,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룬다. 얼핏 흙으로 된 언덕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보루 위와 아래로 길이 나있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진행하면 된다.

▼ 1보루는 조망의 명소이기도 하다.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구리시, 강동구 일대, 남한산성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새해 해돋이 명소로도 사랑받는다고 한다.

▼ 몇 걸음 더 걷자 또 하나의 전망대가 반긴다. 이처럼 용마산과 아차산은 골산의 특징대로 곳곳에서 시야가 열린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몇 곳에 전망대를 세워놓았다.

▼ 난간에 서면 한강과 이를 둘러싼 시가지, 그리고 검단산의 수려한 경관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12 : 46. 아차산의 명소 중 하나인 ‘해맞이공원(또는 광장)’. 탁 트인 한강과 서울 도심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완만한데다 접근성까지 좋아 매년 새해 첫날이면 수많은 시민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찾는다.

▼ 2000년 첫날? ‘밀레니엄 버그’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던 필자와는 달리 광진구청장은 뭔가 이룰 꿈에 벅차있었나 보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갈 때 컴퓨터가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00')만 인식하여 2000년을 1900년으로 혼동하고 오작동을 일으킨다는 ‘전산 오류’ 문제로 전 세계가 골머리를 썩였었다. 필자도 관련 업계·연구소 등과 함께 1999년 내내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점철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니 마지막 날 밤을 어떻게 편히 잘 수 있었겠는가.

▼ 이곳에도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 볼 수 있게 했음은 물론이다.

▼ 해맞이공원은 높이가 200m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울 동부권에서 가장 탁 트인 파노라마 한강 뷰와 도시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 명소로 꼽힌다. 굽이쳐 흐르는 한강 줄기와 함께 시그니처 뷰인 롯데월드타워가 정면으로 다가온다.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 공원에서 내려가는 길도 환상적인 뷰를 보여준다. 조금 전 전망대에서 보던 풍경들을 마주보며 걷는 행복한 구간이다.

▼ 서울둘레길 5코스는 ‘구리둘레길’과 함께 쓴다. 곳곳에서 구리둘레길 시설물들을 만나게 됨은 물론이다.

▼ 12 : 55. 고구려정 갈림길. 아차산에서 ‘기(氣)’가 가장 왕성하다는 ‘고구려정’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나뉘나 이정표(종점까지 1.9km)에 나타나있지 않아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떨어져가는 ‘기’를 조금이나마 보충해볼까 했는데 말이다.

▼ 12 : 58. 이번에는 ‘아차산성’으로 가는 길이 나뉜다. 이정표(종점까지 1.7km)는 아차산성을 비켜가라고 지시한다.

▼ 그렇다고 아차산성을 빼먹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오르막길을 잠시 오르자 ‘아차산성(阿且山城, 사적 제234호)’이 반긴다. 해발 200-285m 고지, 한강 유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한강 유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대립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 산성은 출입을 막고 있었다. 성은 286년(백제 책계왕 1) 고구려의 침입을 대비해 쌓았다고 했다. 당시는 ‘아단성(阿旦城)’으로 불리었는데, 백제 개로왕(蓋鹵王)이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전사한 비극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신라와의 전투 중 온달 장군이 전사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 문화생태 탐방 때는 문을 열기도 하는 모양이다.

▼ 13 : 08. ‘서울둘레길’로 합류하기 위해 샛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나름대로 길이 나 있어 어렵지 않게 둘레길에 합류할 수 있었다.

▼ 13 : 18. 서울둘레길로 내려섰다.

▼ Kopi Bali? 인도네시아어로 ‘커피’를 뜻하는 Kopi와 지명인 ‘Bali’의 합성어로, 발리 고산지대의 화산재 토양에서 자라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의 명품 커피를 말한다. Premium Cafe라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나보다.

▼ 13 : 31. 아차산관리사무소. 등산객들을 위한 안내와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곳으로 공중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 관리사무소 앞에 서울둘레길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신 종점인 ‘광나루역’에는 스탬프보관함이 없었다.

▼ 서울의 아침이 시작되는 아차산에서 동북아를 호령하던 고구려의 기상과 혼을 이어받아 광진구민이 꽃피우리라.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그가 품은 웅대한 혼이 성큼 다가온다. 옆의 팻말은 아차산(성)의 한자 표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 12 : 33. 아차산 숲길을 빠져나오면 ‘영화사로’. 서울둘레길은 영화사로를 따라 남진(워커힐 방향)한다. 아차산 자락에 위치한 고찰 영화사(永華寺)에서 길의 이름을 따왔다.

▼ 아차산 등산로 입구. 아차산 종합안내도와 역사유적, 동행숲길 등 다양한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다.

▼ 아차산 어울림광장. 아차산을 찾는 등산객들과 지역 주민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조성된 열린 광장이자 정원이다.

▼ 어울림정원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20년이 지나 노후화된 ‘아차산 생태공원’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여 2023년 새로운 이름(어울림정원)과 여섯 가지(바람·장미·향기·와당·소리·돌) 테마로 재탄생시킨 자연친화적 시민 휴식공간이다.

▼ 고구려 영양왕 대의 명장 온달장군은 590년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이북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해 출정했다가 아단성(阿旦城) 전투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한다. 그런데 온달의 관을 운구하려 하자 땅에서 움직이지 않았는데, 뒤늦게 달려온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생사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라고 달래자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는 애절한 설화가 이 지역에 전해져온다. 그래선지 공원에 온달장군과 평강공주로 여겨지는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 공원에는 ‘숲속 도서관’이 들어서 있었다. 책을 읽으며 동시에 완벽한 휴식과 힐링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문화 공간이다.

▼ 아차산 여가센터도 들어서 있었다. 기존 생태자료실을 리모델링하여 조성한 숲속 힐링 및 커뮤니티 공간이다. 숲길 걷기와 명상, 요가, 다도, 아로마 테라피 등 다양한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단다.

▼ 역사문화홍보관은 시설개선을 한다며 문을 닫아걸었다.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아차산의 역사적 가치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13 : 45. 공원 투어를 마치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도로(영화사로) 왼쪽에 널찍하니 데크길이 나있다.

▼ 뒤돌아본 어울림정원.

▼ 13 : 47. ‘워커힐로’를 횡단한 다음, 맞은편 숲(이정표 : 종점까지 700m)속으로 들어간다. 별도의 명칭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파고라와 벤치 등 공원처럼 잘 꾸며 놓았다.

▼ 숲속에는 광진구에서 운영하는 ‘자투리 텃밭’이 있었다. 구민들의 건강한 여가 활동을 위한 대표적인 도심 속 주말농장으로 세대별로 손바닥만한 자투리땅(개인 6㎡/ 단체 15㎡)이 배분된다고 했다. 아무튼 ‘나만큼 너도 소’, ‘정채원 편식하지마’, ‘승아 맛있게 먹자’ 등 가족 팻말에 적힌 예쁜 이름들을 읽으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 자투리텃밭은 도심 내 방치된 유휴 토지를 정비하여 조성한 소규모 도시형 경작 공간이다. 주말농장처럼 먼 외곽으로 나가지 않고도 집 근처 생활권에서 친환경 작물을 직접 재배할 수 있어 주민들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 텃밭을 지나 마을 안길로 들어간다. 흔하디흔한 골목길을 홍보용으로 탈바꿈시켜놓은 광진구청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담장 곳곳에 감성적인 글귀나 안내 문구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산책로의 정취를 더해준다.

▼ 소문난 맛집도 꽤 여럿 들어서 있었다. 외부 벽면에 방송 출연 사실을 알리는 홍보 현수막이 걸려있어 등산객들의 관심을 끌게 만든다.

▼ 광장중학교 담벼락도 지역의 역사를 전하는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광장동과 구의동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강을 둘러싼 치열한 영토 전쟁이 벌어졌던 고대사의 중심지이자, 조선시대 교통의 요충지였다.

▼ 14 : 00. 골목을 빠져나와 마주하는 ‘천호대로’를 따라 동진(한강 방향)한다.

▼ 14 : 02. 광나루역에 도착하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5코스와 6코스의 경계가 ‘광나루역 2번 출구이지만 이를 알리는 시설물은 어느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아무튼 오늘은 8.23km를 3시간 40분에 걸었다. 원 코스는 4.6km, 여기에 접근거리(1.6km)를 더해봐야 6.2km에 불과하지만 용마산 정상과 아차산성, 아차산 어울림공원 등을 둘러보느라 2km 정도를 더 걸었다.

 

여행지 : 남인도(South India)–타밀나두(Tamil Nadu)-탄자부르(Thanjavur)-마라타 궁전(Maratha Palace)

 

여행일 : ‘26. 3. 23(월) - 3. 28(토)

 

세부 일정 : 첸나이→마하발리푸람→퐁디셰리→탄자부르→마두라이→코친

 

특징 : 탄자부르 중심부에 위치한 복합궁전. 16세기 나야카 왕조가 처음 건설을 시작했으며, 이후 17-19세기 탄자부르를 통치한 마라타 왕조에 의해 증축되었다. 현재는 왕실 후손들이 거주하는 일부 공간을 빼고는 박물관·미술관·도서관 등으로 개방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남인도(South India), 5개 주(州)와 1개의 특별자치구(프랑스령이었던 ‘푸두체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가 진출해있는 ‘타밀나두(Tamil Nadu)’와 인도 향신료특구 ‘케랄라(Kerala)’를 다녀왔다.

▼ 타밀나두(Tamil Nadu). 인도 남부의 대표적인 제조업 중심지로 자동차·전자·중공업 산업기반과 항만·물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타밀나두 주의 중심부(주도인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320Km 지점)에 위치한 ‘탄자부르’는 역사 깊은 고도(古都)로 과거 강력했던 중세 촐라제국의 수도였다. 당시 촐라제국은 인도 전역, 실론 일부, 몰디브, 래카다이브까지 지배했다.

▼ 버스에서 내려 ‘탄자부르’ 시가지를 걷는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탄자부르 궁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대로(이스트람파드 로드)’에서 버스가 멈췄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대형버스의 진입을 금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거나 말거나 여행자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덕분에 ‘올드 타운’을 걸어보는 기회를 얻었으니 새옹지마(塞翁之馬)라나?

▼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신도시에 가까웠다. 뭔가 인도에서만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이 늘어서있을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말이다. 아니 남인도 힌두 건축물의 상징인 ‘고푸람(gopuram)’을 눈에 담으며 작은 위로는 받을 수 있었다.

▼ 모닝커피 삼아 마셔보라는 가이드의 추천으로 ’차이(Chai)‘ 집에 들렀다. 홍차 찻잎에 우유, 설탕, 다양한 향신료를 넣고 함께 끓여낸 인도식 ’밀크 티‘인데, 커피에 길들여진 필자의 입맛에는 그저 그렇고 그랬다.

▼ 골목을 빠져나와 이번에는 ’이스트메인 스트리트‘를 따라간다. ‘탄자부르’는 익산시(전북)와 비슷한 규모(30만 명의 주민)의 중소도시다. 하지만 눈앞에는 우리나라의 읍(邑)에 가까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만큼 개발이 덜 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 남인도는 많은 면에서 북인도와 다르다. 가장 다른 것은 ‘언어’라 하겠다. ‘힌디’를 쓰는 북인도와는 달리 ‘타밀어’를 사용한다. 타밀어와 영어로만 쓰여 있는 안내판을 종종 만날 수 있는 이유다. 식당에서도 난(Naan)이 빠지지 않고 나오던 북인도와는 달리 남인도에서는 쌀밥 위주로 올라오고 있었다.

▼ 코끼리가 지켜주는 ‘탄자부르 궁전’ 정문. 문루에 ‘Complex’라는 단어가 추가됐다. 왕족의 거주 공간 말고도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이 함께 들어있는 ‘문화유산 단지’이기 때문이다. 궁전은 16세기 초반인 1534-35년 경 ‘나야크(Nayaka)’ 왕조가 처음 지었다. 문학과 예술, 특히 카르나틱 음악과 예술을 크게 장려하여 문화적 황금기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앞에서 거론하던 ‘촐라(Chola)’ 왕조는 인접한 ‘판디아(Pandya)’ 왕조의 공격을 받아 1279년에 이미 멸망한바 있다.

▼ 건물배치도. 동선(動線)으로 연결되지 않는지 18세기 후반 마라타 왕조의 세르포지 2세(Serfoji II)가 지었다는 ‘사르자 마디(Sarjah Mahdi)’는 찾아보지 못했다. 아니 왕족들이 살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현재 마라타 왕실의 후손인 ‘보슬레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니 말이다. 아무튼 이슬람 양식과 남인도 드라비다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높은 미나레트(첨탑)와 정교한 조각 등 볼만한 것이 꽤 많다고 했는데.

▼ 관광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건축물의 외형을 사진에 담아놓았다. 마라타 궁전은 총 8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명확한 표지판이 없어 길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 궁전으로 가는 길. 담벼락을 민속화로 화려하게 치장해 놓았다.

▼ ‘탄자부르’는 찬란한 촐라·나야크·마라타 왕조의 문화유산과 강렬한 힌두교 신앙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이로 인해 연중 다채로운 힌두교 축제가 개최된다고 했다. 그 장면들을 그려놓았지 않나 싶다.

▼ 일기예보는 오늘 34도까지 올라간다고 했지만 매표소에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옷매무새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표를 팔고 있었다.

▼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간다.

▼ 아치형 문이 궁전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입장료까지 받는 유적지라면 조금 더 깨끗하게 관리하면 어떨까?

▼ 천정의 조형물.

▼ 궁전 단지는 거대한 미로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현지 가이드는 이리 돌고 저리 틀면서 잘도 간다.

▼ 주 정부 고고학부 사무실이란다. 판매용 책자도 발간하나 보다.

▼ ‘탄자부르’ 소재 주요 관광지. 필자는 ‘브라하디스와라 사원’과 이곳 ‘마라타 궁전’만 둘러볼 수 있었다.

▼ 조금 더 들어가자 화려한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벨 타워(Bell Tower)’와 ‘아스널 타워(Arsenal Tower)’가 함께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드디어 ‘마라타 궁전’으로 들어가는 가 보다.

▼ 문루에 ‘사라스와티 마할 도서관(Saraswathi Mahal Library)’이라고 적혀있었다. 나야크 왕조가 16세기에 세운 왕실 도서관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 중 하나이다. 17-19세기 마라타 왕조에 의해 확장되었으며, 특히 ‘라자 세르포지 2세(Raja Serfoji II, 재위 1787-1793)’가 유럽 등지에서 수많은 희귀 서적과 필사본을 수집하여 도서관의 기틀을 완성했다. 중세 및 고대 아시아의 지식을 담은 약 49,000권에서 60,000권 이상의 방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인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도서관(Most remarkable library of India)’으로 꼽기도 했다.

▼ 코끼리와 난디가 겹쳐있는 천장의 그림. 돋을새김과 채색을 결합한 독특한 양식이다. 아무튼 건물은 천정이나 벽면, 기둥 등을 화려하게 치장해 놓았다. 아라베스크 문양을 닮은 것 같기도 한데 들어가서는 안 되는 문양들이 눈에 띄어 헷갈리게 만든다.

▼ ‘왕실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건물에는 ‘Saraswati Mahal Library’라고 적혀있었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museum’ 표지판이 전부다. ‘도서관’은 대체 어디로 갔지?

▼ ‘사진촬영 금지’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관리인까지 두고 있으니 눈요기로 끝마칠 수밖에 없었다. 참! 대가를 요구했지만 촬영이 허락되는 장소도 몇 군데 있었다.

▼ ‘사르포지 2세’가 통치하던 19세기 초반의 왕실유물들을 다양하게 전시해 놓았다. 그림과 서책 등도 전시되어 있었으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참! 박물관과 붙어있는 ‘사라스와티 마할 도서관’은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했다. 종려나무 잎에 기록된 3만여 종이 넘는 필사본을 저장하고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왕실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아닐까 싶다. ‘나야크 궁전’은 1674년 ‘마라타 왕조’가 탄자부르 지역을 점령한 후 왕실의 공식 거처가 되었다. 참고로 ‘마라타 왕조(제국 또는 연맹)’는 1674년부터 1818년까지 인도 아대륙(亞大陸)을 지배하던 강력한 힌두교 국가이다. 쇠퇴해가던 무굴제국에 맞서 인도 중부 데칸 고원을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한때 무굴제국의 수도 델리를 점령하는 등 사실상 인도의 패권을 장악했다.

▼ 이동 중에 만난 벽화. 힌두 양식으로 그려져 있다. 왕실 접견실(Court Hall)인 ‘두르바 홀(Durbar Hall)’로 가는 중이었지 싶다.

▼ ‘두르바 홀’은 입장이 허락되지 않아 그냥 통과했다. 그렇다고 소개까지 생략할 수야 없는 노릇. 인터넷에서 사진을 구해왔다. ‘두르바 홀’은 25개의 거대한 일루파이(Iluppai) 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는 웅장한 아치형 천장과 벽면 전체가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힌두교 신(시바, 비슈누, 인드라 등)을 묘사한 점토 스투코(Stucco) 조각상이 벽면을 채우고 있으며, 라마야나 서사의 명장면 등 선명한 색감의 탄자부르 벽화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 밖으로 빠져나오니 ‘사라스와티 마할 도서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구경 못한 아쉬움을 글로서나마 달래보라는 모양이다. 참고로 ‘사라스와티(Saraswati)’는 힌두교에서 지식·학문·예술·음악·언어를 관장하는 지혜의 여신이다.

▼ ‘아트 갤러리’로 가는 길에 동상 하나가 눈에 띈다. 한 손에 낫을 들고 어깨에는 벼를 메고 있는 농부를 형상화했다. 농업에 대한 경의를 나타내기 위해 제작되었다나?

▼ ‘아트 갤러리’ 입구‘. 궁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첨탑이나 발코니 등 사라센과 인도의 건축 양식을 합쳐놓은 모양새이다. 하지만 촌스럽다 싶은 외부 채색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탄자부르를 대표하는 문화재에 걸맞게 치장했으면 어떨까 싶다.

▼ ’벨 타워‘ 하부. 아치형 돌기둥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오른쪽은 수조(水槽)로 보이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벨 타워(Bell Tower). 현대의 고층 빌딩을 연상시키는 7층 높이의 사각형 탑이다. 정각마다 기계식 종을 울리거나 소라껍데기를 불어 탄자부르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탑 역할을 수행했었단다. 하나 더. 탑으로 올라가는 것은 막고 있었다.

▼ 내부(아트갤러리)로 들어가자 건물과 벽으로 둘러싸인 ‘중정(中庭)’이 나온다. 사분할(四分割)의 이슬람식 정원인 ‘차르바그(Charbagh)’로 보이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뜨락으로 내려서자 ‘무기고 탑(Guduragopuram / Arsenal Tower)’이 한 눈 가득 차오른다. 힌두 사원의 탑문인 ‘고푸람’이나 본당 탑인 ‘비마나’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피라미드 형태를 하고 있다. 8층 구조로 높이가 192피트(약 58.5m)에 이르는데, 과거 왕조들이 무기와 탄약을 보관하고 군사지휘소 및 전망대로 사용했단다.

▼ 16세기 나야카 왕조가 처음 지었고, 이후 마라타 왕조를 거치며 확장되었는데, 상층부는 최고의 전망대로 알려진다. 탄자부르 시내는 물론이고 세계문화유산인 ‘브리하디스와라 사원’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단다. 하지만 이 또한 올라가 볼 수 없었다.

▼ 정원을 둘러싼 일부 건물은 회랑을 갖추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힌두교와 관련된 석상들을 진열해 놓았다.

▼ ‘나타라자 홀(Nataraja Hall)’은 ‘궁전 미술관(Art Gallery)’의 핵심 전시실이다. 주변 지역 사원 등에서 발굴되거나 보존되어 온 고대 힌두교 신상들을 모아놓은 전시 공간이다.

▼ 나타라자(Nataraja)는 산스크리트어 ‘Nata(춤추는)’와 ‘Raja(왕)’의 합성어로 ‘시바 신’을 의미한다. 시바가 우주의 리듬과 끊임없는 순환(생성과 소멸)을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홀에는 11세기 촐라 시대부터 19세기 마라타 시대까지 제작된 30여 점의 다양한 나타라자 청동상 및 여신 시바카미(우마) 상이 전시되어 있다

▼ 가이드는 신들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청동상들의 가슴을 살펴보라고 했다. 유방 한 쪽이 없는 청동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나? 그래도 의심은 남는다.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면 결혼을 어떻게 했으며 또 가네샤 같은 시바가 낳은 신들은 뭐란 말인가.

▼ 남인도 예술의 백미(白眉)라는 ‘춤추는 시바 상’. 보면 볼수록 정교하면서도 세련됐다. 한 손에는 창조의 소리를 내는 북을, 다른 한 손에는 파괴를 뜻하는 불꽃을 든 채 힌두교에서 말하는 창조, 보존, 파괴 등 우주의 순환을 역동적인 춤으로 표현한다.

▼ 이번에는 왕이 접견실로 사용하던 ‘나약크 두르바 홀(Nayak's Durbar Hall - Bronze Images)’로 들어간다. 현판의 ‘Bronze Images’라는 문구가 청동 조각상이 전시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 홀은 우선 거대했다. 통치자 앞에 선 신하의 기부터 죽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화려함도 빼놓을 수 없다. 상단과 천정을 그림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채워 넣었다. 탄자부르 지역을 지배하던 역대 제왕들의 위세를 실감케 하는 꾸밈새라 하겠다. 참고로 남인도를 오랫동안 통치해오던 ‘촐라왕조’가 쇠퇴한 후, 15세기에 나야크 왕조가 탄자부르를 중심으로 성장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나야크 왕조는 마두라이의 ‘미낙시 암만사원(Meenakshi Amman Temple)’을 건설했을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17세기에 이르러는 ‘마라타 왕국’이 뒤를 잇는다. 무굴 제국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인도대륙의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을 정도로 강성한 나라였다. 이후 영국과의 세 차례 전쟁(마라타 전쟁) 끝에 멸망했지만.

▼ 홀 정면에는 ‘사르포지 2세(Serfoji II, 재위 1798-1832))’의 대리석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19세기 초까지 마라타 왕국을 다스린 위대한 통치자이자 학문과 예술의 후원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영국(동인도회사)의 개입으로 정치적 권력은 제한적이었으나, 교육·의학·행정 등 다방면에서 현대적인 개혁을 이끌며 인도의 근대화를 촉진했다. 하지만 동상이 유럽풍의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은 눈에 거슬렸다.

▼ 홀은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벽을 따라 9-13세기 촐라왕조와 16-18세기의 나야크 왕조 때 제작된 청동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 하나같이 힌두교와 관련된 작품들이다. 인도의 뛰어난 청동 주조기술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도자기 제품 일색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생활용품들까지도 청동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특이하다.

▼ ‘라자라잔(Raja rajan)’의 황금빛 동상이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촐라왕국의 위대한 황제인 ‘라자라자 1세(Rajaraja I, 재위 985-1014)’를 일컫는데, 타밀어 ‘왕들 중의 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남인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위대했던 군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 ‘나약크 두르바 홀’을 끝으로 ‘마라타 왕궁’ 투어가 끝났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남아 회랑의 석상들을 한 번 더 살펴보기로 했다. 관광객이라곤 우리 일행 뿐, 덕분에 방해 받지 않고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 ‘비크샤타나(Bhikshatana)’라고 했다. 힌두교의 주신인 시바(Shiva)가 세속의 집착을 버리고 구걸하며 떠돌아다니는 ‘최고의 거지(Supreme Beggar)’ 혹은 ‘고행자’의 모습이다. 그런 시바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양새이다. 발품을 조금만 더 팔면 힌두의 삼위일체 신(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들이 부각되기 전, 베다 시대부터 태양신으로 숭배되던 ‘수리야(Surya)’도 눈에 담을 수 있다.

▼ 부처님도 눈에 띈다. 힌두교에서는 비슈누의 화신(Avatar) 중 하나로 여긴단다. 참고로 인도에서 불교가 발생하고 한때 크게 번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인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 종교이자 주류 종교는 단연 힌두교이다. 반면에 불교는 점차 쇠퇴하여 현재 인도 내에서는 소수 종교에 속하며, 오히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크게 발전했다.

▼ ‘중정(中庭)’을 빠져나오다 작은 신당을 만났다. ‘시바’가 타고 다닌다는 ‘난디(Nandi)’와 시바의 상징인 ‘링감(Lingam)’과 ‘요니(Yoni)’를 모셔놓았다.

▼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찍었노라.’ 여행의 정석대로 집사람과 함께 메인 건축물 앞에 서본다.

▼ 현지 가이드 ‘Mr. Ajay Singh’의 배려로 멋진 호텔에서 머무는 호사를 누렸다. 탄자부르 구(Thanjavur district) 쿰바코남(Kumbakonam)에 위치한 4성급 친환경 헤리티지 리조트인 ‘인데코 호텔 스와미말라이(INDeco Hotels Swamimalai)’이다. 아래 사진은 본관인 ‘민트 궁전(Mint Palace)’이다. 1737년 첸나이에 지어진 라자스탄·라지푸트 스타일의 건축물이다. 라자스탄의 장인들이 조각한 돌과 기둥, 목재를 첸나이로 가져와 쌓아 올려 만들었다고 한다. 궁전이 위치한 거리가 정부 조폐창(Mint)으로 이어져 있어 ‘민트 궁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 건물 외벽에 안내판을 세워 ‘민트궁전’의 내력을 전해준다. 궁전은 마드라스(現 첸나이)의 공식 금화 주조가 ‘카스투르찬드 다가(Kasturchand Daga)’의 소유였다. 2010년 도시개발로 철거 위기에 처하자 인데코 호텔 그룹의 설립자 ‘스티브 보르지아(Steve Borgia)’가 매입하여 원래 모습대로 이전·복원시켜 놓았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유네스코(UNESCO)로부터 특별 공로인증서까지 받았단다.

▼ 호텔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인 ‘뮤지엄 호텔’이었다. 호텔 안에 ‘스티브 보르지아’가 수집한 방대한 개인 컬렉션을 전시해 놓았다. ‘스티브 보르지아 인도 유산 박물관(Steve Borgia Indian Heritage Museum)’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는데, 미국박물관협회(AAM)의 인증을 받은 인도 유일의 호텔박물관이라고 한다.

▼ 수백 년 된 골동품 가구, 영국 식민지시절의 시계와 팬, 수동 카메라, 영사기 등 인도의 찬란한 민간 역사를 보여주는 방대한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 그렇게나 많은 컬렉션을 갖고도 뭔가 허전했던 모양이다. 그림이나 패널을 이용해 다양한 정보들을 전해주고 있었다.

▼ 정해진 전시실뿐만 아니라 호텔의 정원, 산책로, 객실 복도, 심지어는 레스토랑 입구까지 모든 동선이 고미술품으로 채워져 있다. ‘침묵의 갤러리(Silent Gallery)’라고나 할까?

▼ 힌두교와 관련된 그림들도 한 몫 톡톡히 한다.

▼ 가이드는 호텔이 남인도 시골마을의 전통 건축과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했다. 단순한 숙박을 넘어 인도 전통의 삶을 체험해볼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란다.

▼ 인도 독립운동의 영웅 ‘수바스 찬드라 보스(Subhas Chandra Bose, 1897-1945)’가 갇혀있었다는 ‘중앙교도소’도 재현해 놓았다. 그가 차고 있던 실제 수갑과 감옥 의자, 구 마드라스 중앙 교도소의 거대한 문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독특한 유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 벽에 그려놓은 민속화도 눈에 띈다.

▼ 실물 크기의 전사 및 무용수 조각상, 웅장한 아이야나르(Aiyanar) 점토 말, 힌두교 신들의 정교한 테라코타(점토) 조각상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 호텔의 역사는 쿰바코남의 작은 마을 ‘티마쿠디(Thimakkudy)’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대 기술과 신성한 비율을 고수하며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전통 청동 축제 우상(Bronze Idols) 제조지로 유명한 곳이다. 1906년 ‘스리 스리니바사 아이어’가 건물을 지어 그의 후손들이 살아왔다. 1990년 저택은 스티브 보르지아 소유로 넘어갔고, INDeco Hotels Swamimalai라는 이름의 웅장한 빌라로 변신했다.

▼ 전체적인 구조는 남인도 전통 가옥인 ‘아그라하람(Agraharam)’ 스타일을 복원했단다. ‘아그라하람’이란 힌두교 브라만(사제) 계층이 모여 살던 주거구역을 뜻하는데, 도로 양쪽에 집들이 줄지어 있고 중앙에 사원이 위치한 모습이 마치 사원을 둘러싼 ‘화환’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

▼ 가네슈 신이 지켜주는 야외무대. 가네슈(Ganesha, 가네샤)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장애물을 없애주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신이다. 결혼식장으로 인기가 높은 호텔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호텔은 ‘친환경 헤리티지’로 입소문을 탔다. 헤리티지(Heritage)는 ’인류가 오랜 기간 역사 속에서 만들어 온 유산이나 전통‘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래선지 오랜 세월 동안 보존되어 온 탄조르 양식의 가옥들이 울창한 숲과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있었다.

▼ 캐논볼트리 (Cannonball Tree) 꽃. 인도에서는 꽃의 입체적인 수술 상단부 생김새가 흡사 머리를 쳐든 성스러운 뱀(Naga)이 힌두교의 시바 신을 상징하는 ’링감‘을 보호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나갈링감(Nagalingam)'이라 부르며 신성시한다.

▼ 디티야 2세(Ditya II, 942-971) 흉상. ‘아디타 카리카란(Aditha Karikalan)’으로도 불리는데 10세기 중엽 남인도를 지배한 촐라 제국의 황태자이자 공동 통치자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 중 한 명인 라자라자 1세의 친형이기도 하다. 체부르 전투(Battle of Chevur)에서 판디아의 국왕 비라판디야를 추격 끝에 참수하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제국의 영토를 크게 넓혔으나 암살당했고, 이는 라자라자 1세가 즉위하여 촐라 제국의 황금기를 여는 계기가 된다.

▼ 힌두교 신인 ‘무루간(Murugan)’인 듯. 전쟁, 승리, 지혜를 관장하는 군신(軍神)이다. 남인도 등 타밀족 문화권에서는 ‘타밀의 신(Tamizh Kadavul)’이라 불릴 만큼 절대적인 숭배를 받는다.

▼ 아침 산책을 나가니 종업원이 쌀가루로 ‘랑골리(Rangoli)’를 그리고 있었다. 집안에 행운과 복을 불러오고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문양이다. 찾아오는 이들을 따뜻하게 환영한다는 의사표시이기도 하다.

▼ 운 좋게도 인도의 전통 혼례식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제 밤늦게 호텔에 도착했을 때 음악에 맞춰 격렬하게 춤추며 노래하던 그룹이다. 인도의 전통 결혼식은 최소 3일에서 많으면 5일 이상 지속되는 성대하고 화려한 지역 공동체의 축제라더니 맞는 모양이다.

▼ 화려하게 치장한 신랑이 이동을 한다. 신부가 있는 식장으로 향하는 의식인 모양인데, 원래는 화려하게 장식된 백마나 마차, 또는 코끼리를 타고 간다고 가이드가 귀띔해준다.

▼ 잘 차려입은 신랑의 친구들과 친척들이 전통 악기 연주에 맞춰 춤을 추며 동행하고 있었다. 인도의 전통 결혼식은 초대받은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와서 함께 음식을 즐기고 축하하는 오픈형 축제 형식이라고 한다.

서울둘레길 4코스(화랑대역 - 사가정역)

 

일 시 : ‘26. 8. 19(토)

소재지 : 서울시 노원구 및 중랑구 일원

코 스 : 화랑대역→신내어울공원→신내역→양원역→중랑캠핑숲→망우역사문화공원→깔딱고개쉼터→사가정역(거리/시간 : 7.7km+1.6km, 실제는 10.27km를 3시간 20분에)

 

특징 :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21개 코스, 156.5km 규모의 순환형 트레일이다. 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고덕산·일자산·대모산·우면산·관악산·호암산·안양천·노을공원·봉산·북한산 등 서울을 둘러싼 자연과 도시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 09 : 31. 들머리는 화랑대역(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2000년 6호선 ’화랑대역‘으로 문을 열어 2010년 경춘선이 폐지될 때까지는 800m가량 떨어져 있는 경춘선의 ‘화랑대역’과 동명(同名) 이역(異驛)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 도심의 편리함과 깊은 숲속의 자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신내동·망우동 등 시가지를 누비다 중간지점에서 ‘망우산’의 울창한 숲속으로 파고든다. 난이도는 ‘하’. 유유자적 걷다가 망우묘지공원의 선현들이 전하는 충혼과 문화의 향기를 음미해 볼 일이다.

▼ 화랑대역 맞은편, ‘공릉동근린공원’의 서쪽 출입구에 3코스에서 4코스로 넘어감을 알리는 각종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 09 : 35. ‘묵동천(墨洞川)’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답사를 시작한다. 신내동 일대에서 발원 중랑천으로 흘러드는 길이 5.5km의 지방하천인데, 개울을 가운데 두고 걷기길과 자전거길이 좌우로 나있다. 참고로 묵동은 ‘먹(墨)’을 만들던 마을이란 뜻이다. 때문에 순우리말로 ‘먹골천’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내천, 태릉천, 화랑천으로도 불린단다.

▼ 아날로그적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징검다리. 동네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터였고, 동네 어머니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정겨운 빨래터였다. 설렘의 공간이기도 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속 소년과 소녀가 꼭 아니더라도 징검다리는 순수한 첫사랑과 성장의 은유로 남아 있다.

▼ 09 : 40. ‘묵동IC교(또는 묵동IC 진입램프교)’ 아래를 지나간다. 그런데 처마에 ‘두물다리’라고 적어놓은 이유는 뭘까?

▼ 아니나 다를까 다리 아래를 지나자마자 두 물길이 합쳐지고 있었다. 탐방로는 계속해서 ‘묵동천’의 본류를 따라간다. ‘봉화산역’ 방향이다.

▼ 왼쪽은 공릉동 육군사관학교(태릉골프장) 인근에서 발원하는 지류이다. 저 둔치를 따라 600m쯤 올라가면 ‘화랑대 철도공원’이 나온다.

▼ 안전의식의 승리. 기습 폭우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 09 : 47. 북부간선도로 아래를 지난다.

▼ 매일 1만 톤의 물을 ‘묵동천’으로 방류한단다. 과거 ‘묵동천’은 주변지역 개발로 인해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 되면서 악취와 수질악화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었었다. 하지만 2021년, 2년여의 복원 사업을 거쳐 사계절 내내 깨끗한 물이 흐르는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 산란기 물고기들이 상류로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여울형 어도(물고기 길)를 설치하고 하천 자생초화를 심어 자연 복원력을 높였다. 하천의 문지기라는 ‘왜가리’가 아예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 다리 아래를 지나자마자 ‘묵동천’을 건넌다. 이정표(깔딱고개쉼터 6.6km/ 화랑대역 1.1km, 이하 ‘종점까지의 거리’로 표시)가 방향을 알려주니 길이 헷갈릴 일은 없다.

▼ 계속해서 ‘묵동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왼쪽 둔치에서 오른쪽 둔치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 오리 가족도 둥지를 틀었다. 묵동천의 생태계가 그만큼 좋아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 09 : 52. ‘신내로’로 올라선다. 이제 도심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 지선인 ‘신내로18길’을 건넌다.

▼ ‘서울둘레길’은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정비가 잘 되어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정표와 리본 말고도, 숲길형·도심형·지주형 표지판, 스티커 등 각종 시설물들이 방향을 알려 준다. 그래도 2%쯤 부족했나보다. 4코스에서는 ‘동판’ 하나가 더 추가되고 있었다.

▼ 횡단보도를 건넌 탐방로는 곧장 ‘신내어울공원(이정표 : 종점까지 6.3km)’으로 들어간다.

▼ 그 초입에 ‘서울둘레길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었다. 4코스는 완주 인증을 위한 스탬프를 하나 더 찍어야 한다는 얘기다.

▼ 공원 숲길을 400m쯤 걷는다. 약간은 엉성해 보이는 숲속에 벤치 몇 개가 놓여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공원이지만, 운동시설 하나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겠다. 여럿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뜻의 순우리말 ‘어울’에 걸맞은 꾸밈새라 하겠다.

▼ 10 : 00. 공원을 빠져나오면 ‘구(舊)신내교’ 남단. ‘어울공원길’을 횡단한 다음 ‘신내로16길’을 따라 동진한다.

▼ 10 : 02. ‘신내LPG충전소’ 앞에서 ‘ㄱ’자 모양으로 도로를 연이어 건넌 다음 ‘용마산로136길’을 따라간다. 타고 온 도로를 계속해서 따라가는 모양새인데, 도로 이름만 ‘용마산로136길’로 바뀌었다. 아니 보도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뀌었다.

▼ 10 : 07. 지하철 6호선과 수도권전철 경춘선의 환승역인 ‘신내역’. ‘신내’라는 역 이름과는 달리 실제 행정구역상 부지는 ‘망우본동’이다. 6호선의 종착역이자 유일한 지상역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 10 : 12. 양원지구공원관리사무소 앞(삼거리)에서 우회전 한다.

▼ 이어서 ‘양원역로’를 따라 남진한다. ‘양원역’ 방향이다.

▼ 10 : 17. ‘성당은 고딕이나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는 선입견을 깨버린 ‘양원성당’. 전통적인 성당 양식에서 벗어나 직선과 모던함이 강조된 깔끔한 현대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다면체 구조의 건물 외관도 특이하다. 자연광과 조명이 조화를 이루는 내부 구조도 볼만하다했는데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 수난과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고별 담화의 일부인데, 갈등과 불안, 경제적 어려움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한 전 세계 청년들에게 부활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 깊은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Seoul 2027)’의 공식 주제로 선정했다.

▼ 10 : 18. 다온공원. 도로변 자투리땅을 활용한 쌈지공원인데, 이밖에도 신내어울공원, 이화공원 등 4코스를 걷다보면 이런 소공원을 두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 10 : 21. ‘송곡관광고등학교’를 스치듯 지나 경의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한다. 이즈음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들어 계신 선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김봉성, 서병호, 김영랑 등 조국 광복을 위해 애쓰신 애국자들의 약력이 적힌 깃발을 걸어놓았다.

▼ 어둡고 침침했던 굴다리가 쾌적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송곡여자고등학교 미술반 학생들이 양원마을의 전설을 벽화로 그려 넣었단다. 그렇다면 건원릉 자리를 정하고 돌아가는 태조 이성계의 행렬도일 것이다.

▼ 굴다리를 빠져나오자마자 ‘ㄱ’자 모양으로 연이어 도로를 건넌다. 그런 다음 ‘송림길’을 따라 ‘양원역’쪽으로 간다.

▼ 양원역. 경의·중앙선 노선 중 서울특별시 구간의 시작역이다. 지명인 ‘양원(養源)’은 ‘양원수’라는 우물에서 유래했다. 태조 이성계가 건원릉 자리를 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망우리고개에서 우물물을 마셨는데 뛰어난 물맛에 반해 이름까지 지어주었다나?

▼ 10 : 25. 양원역 앞에서 도로(망우로87길)를 가로지른 다음, 오른쪽(중랑캠핑숲 방향)으로 간다.

▼ 양원역 맞은편에 있는 ‘서울씨티교회’ 담장. ‘자넷 현(Janet Hyun)’의 그림으로 도배를 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표현주의 화가이자 프로페틱 아티스트(Prophetic Artist, 예언적 예술가)이다.

▼ 10 : 27. 50m쯤 진행했을까 ‘중랑캠핑숲(이정표 : 종점까지 4.3km)’이 반긴다. 가족단위 피크닉과 청소년 문화를 주제로 한 생태공원이다. 도심에서의 뛰어난 접근성이 자랑거리로 꼽힌다.

▼ 5만4천 평이나 되는 넓은 면적에 건강한 숲을 주제로 한 가족캠핑장, 어린이놀이터, 나들이마당, 숲속도서관, 생태학습존 등이 조성되어 있다.

▼ 어린이 놀이터. 물놀이장도 함께 들어서 있었다.

▼ 가족캠핑장 쪽으로 올라간다.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도심형 오토캠핑장으로 평일 퇴근 후에도 가볍게 방문해 캠핑과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 텐트 설치가 가능한 캠핑 사이트와 장비 없이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지캠핑(Easy Camping) 옵션이 마련되어 있다.

▼ 10 : 36. 언덕 위 삼거리(이정표 : 종점까지 4.0km)에서 왼쪽으로 간다. 고개를 넘으면 ‘가족캠핑장’. 탐방로는 ‘망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탄다.

▼ 과수원 단지를 지났다싶으면 곧이어 산길이 시작된다. 포장길이라서 신선한 맛은 떨어지지만.

▼ 조금 더 굵은 능선으로 올라섰다. 이정표(종점까지 3.8km)가 왼쪽으로 200m쯤 떨어진 곳에 전망대가 있다며 잠시 들렀다가란다.

▼ 울창한 숲속을 헤집으며 나아가는 길은 무척 고왔다. 맨발로 걸어도 될 만큼 폭신폭신한데다 경사까지 없는 것이다. 산책삼아 걷다보면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겠다.

▼ 10 : 40. 그 끄트머리에 데크 전망대가 있었다. 정자와 평상, 벤치를 놓고 ‘아카시아 쉼터’라는 이름표까지 떡하니 붙여놓았다.

▼ 난간에 서자 신내동 아파트단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 10 : 44.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이어간다. 그러자 ‘도토리쉼터’가 공부도 할 겸해서 잠시 쉬어가란다.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 떡갈나무, 신갈나무 등등 생김새는 비슷비슷하지만 구분이 가능하다나?

▼ 탐방로는 참나무로 가득한 능선을 따라간다. 조금 전 배운 상식을 바탕으로 참나무를 구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어설픈 상식으로는 나무의 생김새와 안내판에 적힌 특징들을 Matching시킬 수가 없었다.

▼ 10 : 50. 신이 내렸다는 ‘신내암(神內岩)’. 산의 신령한 기운이 서려 있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신성시되어 왔단다.

▼ 10 : 52. ‘망우로91길’로 내려서니 도로변에 커다란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하나 더. 구리시와의 경계가 가까운지 이정표(종점까지 3.3km)가 ‘구리둘레길’과 함께 쓰고 있었다. 구리둘레길 안내도도 눈에 띈다.

▼ 10 : 54. 잠시 후 망우로(국도) 위에 놓인 ‘육교’를 건넌다.

▼ 다리 아래로는 왕복 6차선의 ‘6번 국도’가 지나간다. 인천역에서 시작 서울·구리·남양주·양평·횡성·평창을 거쳐 강릉시 연곡교차로까지 한반도의 허리를 횡단한다.

▼ 다리를 건너자마자 회전교차로. 문자조형물이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 이후부터는 ‘사색의 길(망우순환로)’을 따라간다. 과거 공동묘지였던 공간을 울창한 숲속 산책로로 탈바꿈시켰다. 경사가 완만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 11 : 01 – 11 : 15. 중랑 망우공간. 망우역사문화공원 내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이자 공원의 거점 역할을 하는 Landmark이다. 단순한 관리동을 넘어 방문객들이 자연 속에서 사색하고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인물들을 기릴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 열린 문화·전시 공간인 1층 미디어홀에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약력과 공원에 잠들어 있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위인들의 이름을 나열해 놓았다. 공원을 축소시킨 미니어처도 눈에 띈다. 주요 시설은 물론 위인들의 묘소 위치를 시각적으로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 안중근 의사 흉상. 신내동 성당에 세워졌던 것을 망우역사문화공원이 새롭게 정비되면서 이곳에 잠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기리고자 이전 설치했단다. 참고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한 채 효창공원 3의사 묘역에 가묘(假墓)가 있을 뿐이다.

▼ 2층 전시실에서는 한용운·이중섭·박인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참고로 2026년은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발간 100주년이자 이중섭 탄생 110주년 및 서거 70주기, 박인환 탄생 100주년 및 서거 70주기를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의 삶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 속에서 불꽃같은 집념과 숭고한 지조로 점철됐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식을 주도했으며, 서대문형무소 수감 시절에는 일부 대표들이 유약한 모습을 보이자 호통을 치며 기개를 북돋우기도 했다. 친한 벗이었던 최남선, 이광수 등이 변절하자, 길에서 만나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내가 알던 사람은 이미 죽었다’며 인연을 끊었을 만큼 지조에 엄격했다.

▼ 박인환(朴寅煥, 1926-1956)은 전쟁 직후의 황폐한 폐허 속에서도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명동 거리를 누비며 도시적 고독과 시린 낭만을 노래하던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 시인이다.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문화예술인들의 단골집 명동 ’은성주점‘에서 지었다는 ‘세월이 가면’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아내를 향한 애틋한 순애보로 점철된 삶을 산 인물이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극한의 시련 속에서도 예술적 혼을 불태웠으며,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절절한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 11 : 15. 전시관을 빠져나와 다시 길을 이어간다.

▼ 몇 걸음 걷지 않아 만나는 ‘망우문화마당’에서는 Busking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무명가수들이었지만 그들이 부르는 노래솜씨만큼은 여느 유명가수들에 뒤질 게 없었다. 열 명 남짓의 청중이 전부인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 곳곳에서 ‘사잇길’이 갈려나가고 있었다. 과거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리며 어둡고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던 공간을 지자체가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산책로로 정비하면서 탄생했다.

▼ 사잇길은 경계를 허무는 ‘사이’의 길이다. 이름 그대로 무덤과 무덤 사이, 삶과 죽음의 사이, 과거와 오늘의 사이를 걸으며 역사와 인생을 사색하고 경계를 넘나든다는 인문학적 의미를 담았다.

▼ 11 : 19. 박인환 묘역 입구.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가 남긴 시들은 아직도 시린 낭만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 독립운동가 서동일(徐東日, 1893-1965) 선생의 묘역 입구. 일제강점기 중국 북경을 중심으로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다물단(多勿團)’ 등에서 활약하며 무력 독립운동과 군자금 모집에 헌신한 인물이다.

▼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이끌어간 유명인사 80여 명이 잠들어 있다.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반 시민의 묘도 7,000여 기에 이른단다. 그렇다고 무시하지는 말자. 기회를 얻지 못했을 따름이지 개개인은 여느 유명인사에 뒤지지 않을 능력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 이중섭 화백과 독립운동가 오재영(吳哉泳, 1897-1948) 선생은 입구를 같이 쓰고 있었다. 오재영 선생은 일제강점기 의열단의 첫 번째 무장 투쟁이었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사건을 막후에서 지원한 숨은 조력자이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김영랑(1903-1950) 시인의 묘역은 직접 둘러봤다. 본명은 김윤식(金允植),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순수 서정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 지자체는 지역상권 마케팅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시설 현대화로 쾌적한 쇼핑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며 ‘동원골목시장’에 들렀다 가란다.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시장의 위치를 담은 지도까지 그려 넣었음은 물론이다.

▼ 종점인 깔딱고개 근처에서는 ‘사가정시장’ 안내판으로 바뀐다. 그게 기억에 남았던 필자 부부가 트레킹 후 사가정시장을 들러봤으니 마케팅의 위력이라고나 할까?

▼ 제이레빗(J Rabbit)의 대표곡 ‘좋은 일이 있을 거야’는 지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따뜻한 위로와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는 메시지다.

▼ 11 : 25 – 11 : 37. ‘사색의 길’ 장점은 곳곳에 벤치를 놓아두었다는 점이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과 영혼의 여백을 되찾기에 이만한 공간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필자 부부도 영혼의 여백까지는 아니었지만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다 갈 수 있었다.

▼ ‘국민 강녕탑’이란다. 용마산, 아차산, 망우산 일대를 돌며 산속 쓰레기를 주워 온 최고학 옹이 국민 모두의 평안과 건강(강녕, 康寧)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아 오랫동안 홀로 쌓아 올렸단다.

▼ 11 : 54. 사색의길 서쪽 구간에 자리한 ‘중랑전망대’에 이른다. 서울 시내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산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하단에 커다란 태극문양을 그려 넣어 단순한 전망대를 넘어 ‘역사를 상징하는 공간’임을 암시해준다.

▼ 원목 데크로 마감된 안정감 있는 2층 구조로 설계되었다. 30인 이상의 관람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탠드식 휴게공간을 만들고, 층별로 전망대를 나누어 다양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 난간에 서면 서울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뛰어난 볼거리다. 맨 오른쪽은 불암산, 이어서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이 차례로 솟구쳐 오른다.

▼ 시선을 조금 옮기자 북한산이 우람한 산세를 자랑하고 있다. 불·수·도·북. 45km를 1박2일에 걸쳐 쉬지 않고 오르내리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패산을 포함해 ‘불수사도북(강북 5산)’으로 부르고 있다나?

▼ 다시 길을 이어간다. 그러자 야구인 이영민(李榮敏, 1905-1954)의 묘역 입구가 나온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의 베이브 루스‘라 불리며 명성을 떨친 한국 야구 역사의 원조 스타플레이어이다. 1958년부터 매년 고교 최고의 타자에게 ’이영민 타격상‘이 수여되어오고 있다.

▼ 차중락(車重樂, 1942-1968)은 1960년대 대한민국 음악계를 풍미한 원조 ‘오빠 부대’의 주역이자 레전드 가수이다. 1963년 한국 록의 선구적인 밴드인 키보이스의 리드 보컬로 데뷔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별명을 얻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 소문난 역사문화공원답게 산꼭대기 어림까지 공중화장실이 지어져 있었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망우(산)삼거리’가 반긴다. 중랑둘레길·등산로 안내도는 ‘북카페’도 적어 넣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북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 삼거리는 ‘용마산 동행길’의 입구이기도 하다. 보행약자들도 용마산에서 산림욕을 즐기며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된 무장애 숲길이다.

▼ 12 : 10. 용마산 스카이워크. 숲과 도심의 전경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중랑구의 새로운 산책 명소다. ‘하늘 위의 고공 길’답게 160m의 산책로가 최대 10m 높이로 아찔하게 띄워져 있어, 걸을 때 주변 나무들의 상단부와 눈높이를 맞추며 걷는 재미가 있다.

▼ 가장 높은 곳에는 서울의 산줄기와 도심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하트 모양의 전망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놓았다. 하나 더. 다른 스카이워크들과는 달리 유리 대신 자연 친화적인 목재 데크로 바닥을 깔아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 2층 전망공간에서 바라본 풍경. 남산 서울타워를 포함해 봉화산, 도봉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산줄기와 서울 시내의 멋진 풍광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불암산과 수락산, 도봉산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 12 : 15. 다시 길을 이어간다. 고도를 232m까지 끌어올리던 산길은 망우산의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다시 고도를 낮춘다.

▼ 12 : 25. 4코스(망우·용마산 코스)의 종점이자 5코스(아차산 코스)의 시점이 되는 ‘깔딱고개 쉼터’에 이르면서 4코스 답사는 끝난다.

▼ 경계 지점임을 알리는 각종 시설들은 깔딱고개로 오르는 계단 초입에 세워놓았다.

▼ 이정표(광나루역 4.6km/ 화랑대역 7.7km)가 접근지점인 사가정역까지의 거리를 1.6km로 적고 있다. 다음 구간(5코스)을 시작할 때 고생깨나 하겠다.

▼ 사가정역으로 내려가는 계단.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서울둘레길은 5코스의 난이도를 ‘중’으로 꼽는다. 길이가 4.6km에 불과하지만 깔딱고개 쉼터에서 아차산(용마산 5보루) 방향으로 놓인 570개의 나무계단을 올라가야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 계단까지 합친다면 5코스의 난이도는 ‘상’을 넘어 ‘최상’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 12 : 38. 이름 없는 약수터.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나 음용은 불가능하단다.

▼ 12 : 52. 사가정공원. 공원 곳곳에 운동기구, 어린이 놀이터(그네, 미끄럼틀), 피크닉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어 가족단위 휴식처로 제격이겠다.

▼ 13 : 02. 서울지하철 사가정역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10.27km를 3시간 20분에 걸었다. 정규 코스는 7.7km지만 사가정역까지의 접근거리와 구경거리를 찾아 헤맨 거리를 보태니 2.6km나 늘어났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마음이 즐거우면 기쁨으로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는데 마음이 슬프면 얼마 가지도 못해서 피곤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냥 걸어서 가는 것이고 체력이 받쳐주지만, 마음에 따라 가까운 길도 먼 길을 온 것처럼 힘들고 먼 길도 가까운 길을 온 것처럼 힘들지 않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집사람은 기분 좋은 말로 늘 즐거움을 줍니다. 배려하고 이해하며 나를 챙겨줍니다. 그런 집사람과 함께 오늘도 걸었습니다. 그러니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0km 넘게 걸었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