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85코스(노양마을회관 버스정류장 - 평택항)
여 행 일 : ‘26. 10. 16(금)
소 재 지 : 충남 평택시 팽성읍·포승읍·현덕면 일원
여행코스 : 노양마을회관 버스정류장→평택국제대교→평택호예술공원→평택호관광단지→신영2리마을회관→평택항(거리/시간 : 23.9km, 실제는 평택호관광단지부터 역방향으로 15.19km를 4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집사람과 함께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평화의길)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 들머리는 평택항(평택시 포승읍 만호리)
85코스의 시점은 ‘노양리(팽성읍) 버스정류장’이지만 접근성을 감안 역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서해랑길(평택 86코스) 안내도는 ‘평택마린센터’ 앞에 세워져 있다. 사진은 86코스 답사(26.1.24) 때 찍은 것을 올렸다.

▼ 후반부에 현덕면의 너른 들녘을 누비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평택호(아산호)의 맑은 물길과 함께 걸으며 ‘평택 8경’의 주요 명소들을 눈에 담게 된다. 길이가 23.9km나 되는데다 낮다고는 하지만 마안산(112.8m)까지 넘어야하는데 난이도가 ‘보통’인 것은 의외이다.

▼ 08 : 35. 실제 출발지는 ‘평택호 관광단지(평택시 현덕면 권관리)’. 이틀을 연이어 걷고 있는 집사람의 체력을 감안 단축해서 걷기로 했다. 마침맞게 초반의 내륙 구간에 특별한 볼거리가 없어 부담 없이 생략할 수 있었다. 숙박지인 ‘안중읍’에서 7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82번 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

▼ 버스정류장 맞은편 ‘계두봉(44.1m)’ 자락에는 ‘보훈공원’이 있었다. 현충탑, 무공수훈자공적비, 6·25참전공적비, 3·1독립운동기념조형물 등 평택의 독립운동 및 호국의 역사를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여러 현충시설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 08 : 37. ‘평택호길’을 따라 동진(평택호예술공원 방향)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도로변, 평택호의 호반을 따라 산책로를 내놓았다. 하나 더. 85코스는 ‘경기둘레길(평택 45코스)’ 및 ‘평택섶길’과 경로가 대부분 일치한다. 때문에 세워놓지도 않은 서해랑길 이정표를 찾기보다는 ‘경기둘레길’ 이정표를 참조해가며 길을 찾아가야 한다.

▼ 이즈음 ‘아산만방조제’가 눈에 들어온다. 아산시 인주면과 평택시 현덕면을 잇는 길이 2,564m의 방조제로 만성적인 홍수와 가뭄, 바닷물 역류로 인한 염해를 방지하기 위해 1974년에 건설했다.

▼ 방조제는 ‘38번 국도(서해로)’가 지나간다. 익산평택고속도로도 숟가락을 살짝 얹었다. 길을 나서자마자 고가도로 아래를 연속으로 지나가는 이유이다.

▼ 08 : 47. 평택호 레저타운. 인공섬(원래부터 섬인지도 모르겠다) 주변에 오리배와 모터보트, 바나나보트 등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물 위에 떠 있는 형태의 선상카페가 운영되고 있어, 꼭 수상레저를 즐기지 않더라도 음료수를 마시며 호수 뷰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 호반을 따라가는 이 길은 ‘수변데크 소리길’로 불린다고 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다채로운 소리와 풍경을 즐길 수 있다는 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평택이 배출한 천재 국악인 지영희 선생의 해금산조를 비롯해 평택농악, 평택민요, 그리고 한국인에게 친숙한 동요 ‘노을’ 등 소리와 관련된 다양한 테마로 구간이 구성되어 있다.

▼ 반대편, ‘평택호관광단지’ 가림막에는 12간지(干支)를 그려 넣었다. 삭막할 수밖에 없는 공사현장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고나 할까? 운세 등 그림에 어울리는 읽을거리까지 챙겼더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조금은 아쉽다.

▼ 08 : 57. 뱃머리전망대. 아산만방조제가 축조되기 전, 이곳은 ‘고잔’이라는 어촌이었다. 당시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가는 배들이 모이던 나루터가 ‘노랑바위’였는데, 어민들은 이곳에서 무사 귀환과 만선을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곳에 뱃머리를 닮은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 뱃머리로 오르자 ‘아산만방조제’가 코앞으로 다가온다. 평택시와 아산시 사이에 놓인 저 방조제는 명칭 때문에 많은 갈등을 만들기도 했다. 경기에선 평택호, 충청에선 아산호로 부른 것이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이 ‘아산호기념탑’을 세우면서 ‘아산호’로 이름이 결정되는 듯했지만 1990년대 한국농어촌공사 평택지사가 호수를 관리하고 1994년 5월엔 교통부가 ‘평택호’로 명칭변경 고시를 하면서 ‘평택호’로 정해졌다. 하지만 명칭을 둘러싼 논란은 현재도 여전하다고 했다.

▼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서해선 철교가 끝 간 데 없이 뻗어나간다.

▼ 계속해서 ‘수변 데크길’을 따른다. 시원한 강바람과 물소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멋진 길이다. 거기에 사진이라는 볼거리까지 더해지니 걷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는 구간이라고 하겠다. 900여 점의 다채로운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데, 빈센트 만지(Vincent Manzi), 코요 타마키, 총위광, 이위, 임파 등 해외 초청 작가들의 글로벌한 시각도 살짝 엿볼 수 있다.

▼ 길가에는 여러 모양의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평택의 4대 소리, 즉 해금 모양의 의자에 앉아 버튼을 누르면 해금 연주가 귓가에 퍼지고, 상모의 선을 표현한 의자에선 흥겨운 평택농악을 들을 수 있는 ‘소리 의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저 ‘8음계 벤치’는 무슨 소리를 들려줄까?

▼ 09 : 10 한국 소리터, 평택농악과 지역 전통예술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설립된 복합 문화예술 공간이다. 국악의 대중화·현대화·세계화를 이끈 지영희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지영희 홀’, 평택농악마을, 한국근현대음악관 등이 들어서있다.

▼ 건물 앞에는 해금을 들고 있는 지영희(池瑛熙, 1908-1980)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평택 출신으로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의 명인이자 ‘근대 국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사라져 가던 민속음악을 기록하고 현대화하여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이끌어낸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 맞은편은 ‘평택호 예술공원’이 들어서 있다. 평택호의 탁 트인 호수 뷰를 바라보며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여유로운 산책까지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수변 문화공간이다.

▼ 평택은 부족한 산에 비해 풍부한 물줄기로 농업과 더불어 포구 상업이 발달했단다. 그래서 평택을 흐르는 물줄기는 평택시민의 뿌리이고 생명이며 미래일 수밖에 없단다. 진위천과 안성천이 합쳐지는 곳부터 ‘평택호’까지 평택을 지나는 구간(20km)을 뚝 떼어 ‘평택강’으로 선포식까지 치렀다나?

▼ 신진섭 작가의 ‘하모니’는 전통 국악기인 아쟁을 형상화한 소리의자이다. 버튼을 누르면 지영희 선생의 영혼이 담긴 아쟁 및 국악 관현악 선율이 흘러나온다. 부근에는 농악의 상모를 모티브로 제작한 ‘휘모리’ 의자도 있다.

▼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거칠고 단단한 바위를 깎아 아이를 임신했거나 혹은 아이를 포근하게 등에 업고 있는 어머니의 부드럽고 인자한 곡선을 시각화했다.

▼ 경기도 무형유산인 평택민요보존회에서는 예전 어민들이 사용하던 고기잡이배를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놓았다. 이를 통해 평택민요(어로요, 경기도 무형유산)에 담긴 어민들의 삶과 정서를 시각적으로 전한다나?

▼ ‘비단길’은 ‘동서 문화가 유통되는 길’이란 부제를 달았다. 통일신라시대 경주에서 출발해 당나라로 가던 교역로(실크로드)를 기반으로 조성된 역사·문화 도보길인데, 16개 코스(500리)로 이루어진 ‘평택섶길’ 중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다.

▼ ‘혜초기념비’도 눈에 띈다. 신라의 고승 혜초(慧超, 704-787)가 구법의 길을 떠나기 위해 ‘당은포(唐恩浦, 現 평택당진항)’에서 배를 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당나라에서 남인도 출신의 고승 금강지(金剛智)에게 밀교(密敎)를 배운 스님은, 광저우를 출발 인도를 비롯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등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일대를 돌아본 다음 5년간의 여행기를 기초로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썼다. 그나저나 올해 봄 ‘스리랑카’를 둘러보면서 들은 그의 행적을 소환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 09 : 18. 소리터 광장. 왼쪽은 실내 공연장인 ‘지영희 홀’과 연습실인 ‘두드림동’, 야외공연장인 ‘농악마을’은 지중해 연안에서나 볼법한 건물(붉은색 지붕이었더라면) 뒤에 돔 모양으로 앉아있다.

▼ 소고(小鼓)를 치며 상모(象毛)를 돌리고 있는 그림이 농악마을(국가무형유산인 ‘평택농악 공연을 위한)로 올라가는 계단임을 알려준다.

▼ 거대한 유리 피라미드 형태의 독특한 외관이 시그니처인 ‘평택호예술관’. 연중 다양한 미술·사진·문학 전시회가 열린다는데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 09 : 25. 평택예술관 옆으로 난 ‘후문’으로 나가면서 ‘서해랑길’을 이어간다. 얼핏 길이 막혀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해랑길 가이드리본이 길을 안내해준다.

▼ 도로(평택호2길)까지 150m쯤 되는 구간은 시멘트 포장길로 연결된다. 하지만 인적이 드문 탓인지 넝쿨식물에 포위되어 있었다.

▼ 09 : 28. 도로(평택호2길)로 내려선 다음 오른쪽(안중방면)으로 간다.

▼ 09 : 31 – 09 : 33. 250m쯤 더 걷다 첫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빠져나가 보았다. 그러자 평택호가 나온다. 호반에는 ‘평택강변 자전거도로’가 나있었다.

▼ 09 : 33.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이어간다. 참! 삼거리에 위험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있었다. 앞으로 300m는 위험구간이니 차량을 이용하거나 우회로를 이용하란다. 보행로가 따로 없으니 조심하라는 얘기일 것이다.

▼ 09 : 37. 기산리 입구(사거리)에서는 오른쪽이다. 서해랑길 안내판이 위험구간을 빠져나왔음을 알려준다.

▼ 길은 기산(岐山) 3리, 즉 원기산마을을 향해 간다. 남쪽으로 안성천 하류(평택호)가 바라보이고 큰 길에서 깊숙이 들어가 있다고 해서 ‘피난곶’이라 불리었다. 마을 앞 ‘기산들(또는 기산앞들)’은 일제강점기 전후에 간척됐다고 한다.

▼ 09 : 45. 원기산(기산3리) 마을회관. 탐방로는 마을회관 앞에서 ‘기산앞들’로 들어간다. 이후부터는 농로를 따라다닌다고 보면 되겠다.

▼ 잠시 후, ‘서해선’ 아래를 지난다. 고양시 일산역/대곡역과 홍성군 홍성역을 남북으로 연결하는 철도로, 한반도 서부지역의 새로운 교통축이자 물류 바이패스로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현재 수도권전철 구간과 일반 간선철도(복선전철) 구간으로 나뉘어 운영하고 있다.

▼ 기산앞들을 가로지른 ‘서해선’이 평택호를 향해 달려간다.

▼ 09 : 50. ‘대안4리’를 향해 가던 탐방로가 갑자기 방향을 트는 게 아닌가. 자전거 라이더는 잘만 달려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도대천’을 건너는 다리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 그래선지 ‘경기둘레길’에서 부랴부랴 이정표를 세워놓았다. 서해랑길을 숟가락을 얹었고.

▼ 들길은 기산앞들을 헤집으며 북진(안중방면)한다.

▼ 널디너른 들녘 한가운데 웬 양식장? 무엇을 기르는지 궁금했으나 인적을 찾을 수 없었다.

▼ 09 : 57. ‘익산평택고속도로’ 아래를 지나간다.

▼ 10 : 01. ‘도대천’에 놓인 다리(‘기산1교’인 듯)를 건넌다. 저 다리를 건너기 위해 400m를 더 걸어 왔다. 도대천(道垈川)은 평택시 현덕면 도대리 230(면도 102호)에서 발원해 기산리·대안리를 지나 안성천 최하류 지역으로 합류하는 길이 5.53km의 소하천이다.

▼ 낚시꾼들도 몇 눈에 띈다. 평택호에서 붕어와 잉어가 많이 잡힌다고 했는데, 지류인 이곳에서도 입질이 있는 모양이다.

▼ 10 : 06. 다리를 건넌 다음, 반대편 둑길을 따라 ‘익산평택고속도로’ 아래까지 되돌아간다. 이어서 농로를 따라 ‘구진개’ 들녘으로 들어간다. ‘대안2리(의경재)’를 바라보며 간다고 보면 되겠다.

▼ 마시멜로처럼 보이는 곤포사일리지가 널려있는 구진개 들녘은 무척 넓었다. 평택의 유이(唯二, 북쪽의 진위면도 산간이다)한 산간지역인 현덕면이 이럴 정도면 다른 지역은 대체 어떤 모습일지가 궁금해진다. 하긴 평택은 ‘골고루(平) 윤택하게(澤) 잘 사는 곳’이다. 산간지역까지도 저렇게 넓은 들녘이 들어앉았으니 다른 지역은 오죽하겠는가. 참고로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기문(記文, 四佳文集)에서 ‘삼도의 요충지로 사신과 빈객이 왕래하는 말굽 소리와 수레 소리가 엇갈린다’라고 했다. 다른 기문에서는 ‘나는 척박한 밭 한 뙈기가 평택에 있으니, 뒷날 만일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돌아가서 노년을 보내게 된다면 그곳에 가보겠다’며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 10 : 11. 300m남짓 걷다가 오른쪽 농로로 방향을 튼다.

▼ 이곳에는 방향표시를 바닥에 해놓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며 준비하던 시절, 바닥·돌·담벼락 등에 그려놓은 방향표시를 볼 때마다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노란색 화살표(Flecha Amarilla)와 가리비 조개껍데기(Vieira) 문양인데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아이디어였기 때문이다. 집사람의 체력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지만 트레킹을 하다 만나는 의외의 표식들은 옛 추억을 소환시켜준다.

▼ 구진개 들녘을 가로지르던 길은 산모퉁이(‘청주 한씨’ 추모관이 있다)를 돌아 ‘대안4리(구진개)’로 들어간다. 구진개 주변의 갯벌은 일제강점기부터 간척되다가 1974년 아산만방조제 준공으로 완성됐다. 어업에 의존하던 마을이 농촌마을로 탈바꿈한 것도 이 때였다.

▼ 10 : 28. 구진개(대안4리) 마을회관. 구진개(鳩津浦)는 아산만 어업의 대표적인 어항이었다. 마을 이름도 ‘갈매기 나루’라는 뜻의 ‘구진’ 또는 기러기나루라는 뜻의 ‘홍진(鴻津)’이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이른 봄이면 하얀 돛을 단 어선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 구진개는 ‘청주 한씨’ 세거지라고 했다. 3백 년의 역사를 자랑한단다.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도 ‘청주 한씨 세거비’다.

▼ 민중들의 문화유산이 풍부한 마을이라고 했다. 산신제를 지내왔는가 하면 ‘두레’도 성했던 모양이다. 동구 밖에 재현해 놓은 디딜방아와 연자방아는 그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디딜방아는 발로 디디어 공이의 상하 움직임을 통해 곡식을 찧거나 빻는 방아이고, 연자(硏子)방아는 말이나 소가 절구 위에 있는 돌을 끌어서 돌려 곡식을 찧거나 빻는 데 쓰는 방아이다.

▼ 마을을 관통한 ‘서해랑길’은 마안산 자락으로 파고든다.

▼ 10 : 38. ‘마안산’의 울창한 숲속으로 들어간다.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한다는 한로(寒露)가 지나서인지 숲이 진초록으로 변해있다. 아니 부지런한 놈들은 벌써 단풍색깔로 갈아입었다.

▼ 10 : 44. 마안산은 해발 112m-126m의 낮은 구릉형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산길도 가볍게 걷기 좋은 힐링 산책로라고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가파른 구간도 나타난다.

▼ 울창한 숲길은 짧고 완만한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고도를 높여간다. 탁 트인 뷰가 없으니 화려한 조망이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울창한 숲속을 호젓하게 걸으며 숲이 주는 아늑함과 조용함에 집중하는 데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 10 : 54. 마안산(馬鞍山, 112.8m) 정상. 원래 이름은 ‘망운대산’, 정월 대보름에 산 정상부에서 달맞이를 했다는 데서 유래됐단다. 그러다 해방 전후 산의 형세가 말의 안장을 닮았다면 ‘마안산‘으로 변경했다. 하나 더. 중국에도 ‘마안산’이 있다. 이백이 장강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익사했다는 유명한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 바로 마안산의 ‘차이스지(采石矶)’이며, 그의 묘소와 기념관도 이곳에 있어 ‘시의 도시(Poetry City)’라는 별칭까지 갖고 있을 정도다. 마안산이란 이름을 이백을 흠모하는 지역 선비들이 붙였을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은 이유이다.

▼ 마안산은 대동여지도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작은 산이다. 그런데도 ‘정상석’은 물론이고 ‘소원탑’을 세 개나 세워놓았다. 벤치를 놓아 쉬어갈 수 있도록 했음은 물론이다. 작지만 지역 주민들에게는 결코 작을 수 없는 산인 모양이다.

▼ 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을 사랑하자는 얘기일 것이다.

▼ 10 : 55.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도 가파른 급경사보다 완만하고 평탄한 숲길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선지 어린이들이 낀 가족단위 등산객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 11 : 06. kakaomap은 요 어림을 ‘뫼너머고개’로 표기하고 있었다. 고갯마루 좌우로 길이 나 있으며, ‘서해랑길’은 계단을 이용해 길을 이어간다.

▼ 산길은 평탄하면서도 넓었다. 바닥도 황톳길이 대부분이다. 그래선지 맨발로 걷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 숲이 울창해서인지 조망은 허락되지 않고 있었다. 아니 묘역이 있는 곳에서 딱 한번 숲이 열리면서 ‘평택호’가 내다보였다. 그마저도 숲이 아랫자락을 왕창 잘라 먹어버렸지만.

▼ 조명시설(태양광 패널을 이용)까지 갖춘 ‘산스장(산+헬스장)’도 여럿 눈에 띈다.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음은 물론이다.

▼ 생명을 다한 저 첼로(cello)는 의도적인 조형물? 누군가가 허리를 댕강 잘라버렸다.

▼ 11 : 20. 작지만 조각공원도 조성되어 있었다. 김석환 작가의 ‘아 고구려 - 말달리자’라는 작품이라는데, ‘마안산’이 말의 안장을 닮았다는데 착안 작품에 고구려의 기상을 담았단다. 또 다른 작품이 있을까봐 숲속을 기웃거려봤지만 더 이상은 찾을 수 없었다.

▼ 11 : 22. 대안3리(큰박골)의 ‘마안산 입구’. 대안리와 신왕리 경계에 위치한 나지막한 고개로 ‘벌이랑꿀이랑’이란 카페 옆에 화장실에 먼지털이기까지 갖춘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다. 주차장으로도 모자라 도로변에까지 차를 세워둔 걸 보면 ‘마안산’의 인기를 대충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 ‘현덕로’를 따라 동진(안중방면)하며 길을 이어간다.

▼ 11 : 24. ‘여선재(餘禪齋)’. 서양화를 전공한 행위예술가 김석환 씨가 3년여 공사 끝에 2001년에 완공했다는 카페 겸 갤러리다. ‘여유로움(餘)이 남아 풍요를 얻고, 고요함(禪)이 넘쳐 평온을 찾는 곳’이란 뜻을 담았다나?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은 형상으로 된 외벽 조각부터 내부 고구려 벽화 재현까지 작가의 손을 거친 여선재는 자유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마음을 담아낸 건축물로 소개되어 있었다.

▼ 김석환 작가는 전위예술가(퍼포먼스 아티스트)이다. ‘반(半) 만신’이 돼야 작품 활동이 가능해진다는 분야다.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신이 실려야하고 혼이 실려야 한다는 뜻이다. 범인은 작품 의도를 알아차릴 수 없다는 얘기도 된다. 마당에 설치해놓은 그의 작품 앞에서 서성이다가 발길을 돌렸던 이유이다.

▼ 창고형 건물 옆에도 조각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안내가 없어 작가나 작품 의도는 알 수가 없었다.

▼ 11 : 30. 오른쪽으로 갈려나가는 지선(신왕1길)으로 옮긴다. 평택호를 바라보며 간다고 보면 되겠다.

▼ 11 : 46. 평택호반. 호숫가를 따라 널찍하니 ‘자전거길’이 나있다. ‘마안산을 넘어온 서해랑길이나 경기둘레길과는 달리 자전거길은 호숫가를 따라왔던 모양이다. 맞다. ’평택호의 남북 호반을 누비는 ‘평택강 자전거도로’는 강북·강남·강동으로 나뉜다. 이중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구간, 즉 안성천과 진위천이 만나는 지점부터 평택강 하류까지의 구간은 ‘평택강북자전거길’로 불린다.

▼ 뒤라도 돌아볼라치면 조금 전 올랐던 ‘마안산’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마안산 말고도 곳곳에서 산봉우리가 솟아오른다. ‘평택(平澤)’이란 지명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지만 평택의 유이한 산간지역인 현덕면의 참모습이다. 참고로 평택은 해발고도 100m 이하의 낮은 지형이 대부분이다. 확 트인 평지가 보편화된 데다, 연못이 많아 ‘平澤’이라 불리었다.

▼ 11 : 48. 신왕1 배수문. 신왕1리(마두마을 및 와촌마을) 들녘의 배수와 침수 방지를 담당하는 시설물로 도보 여행자들에게는 주요 기점이 된다.

▼ 11 : 49 – 12 : 04. 배수문 근처에는 작은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덕분에 아침에 편의점에서 구입한 간식을 먹으며 푹 쉬다 갈 수 있었다.

▼ 12 : 07. 다시 길을 나선다. 200m쯤 걸었을까 이번에는 자전거 쉼터가 반긴다. 파고라와 벤치,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되어 있다.

▼ ‘신왕2리(신왕골)’ 앞 방조제로 여겨지는 둑길을 따라간다. 100m 조금 못되게 더 걸었을까 ‘신왕2배수문’ 근처에 ‘신왕포구 나루터’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다.

▼ 물의 고장 평택은 예로부터 나루와 포구가 많았다고 한다. 신왕나루는 안성천 하류를 대표하던 나루였다. ‘신흥포(新興浦)’나 ‘당포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광덕현에서 평택현이나 아산현으로 건너가는 창구였다. 1974년 아산만방조제가 건설되기 전에는 팽성읍 노양리 경양포와 아산의 백석포로 건너가는 나루뿐 아니라 안성천 하류의 어항으로도 큰 역할을 했다. 아산만 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수명을 다하였고 지금은 조형물을 통해 옛 포구였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 방조제 끄트머리서 길이 다리 모양으로 변하고 있었다. 호수와 맞댄 산자락이 가팔라서 길을 낼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 12 : 17. 호수를 향해 뚝 튀어나간 전망대도 만들어놓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신왕포구’ 대신 평택호의 아름다운 경관이라도 실컷 담아가라는 모양이다.

▼ 난간에 서자 평택호가 펼쳐진다. 하지만 자랑거리인 물안개는 구경할 수 없었다. 이래(李來, 1362-1416)가 읊은 풍경(짙은 그늘이 땅을 덮고 구름이 비를 끌어오니, 김이 공중에 서리듯 물 위에 연기가 끼었다)을 떠올리며 잔뜩 기해했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계속해서 길을 이어간다. 새로 놓은 길이라선지 주변을 공원처럼 잘 꾸며놓았다. 쉬엄쉬엄 모퉁이를 돌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평택국제대교가 놓여있다.

▼ 12 : 31. 평택국제대교 아래에는 화장실까지 갖춘 자전거쉼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 ‘평택호에 수를 놓다’는 평택국제대교(평택호 횡단도로) 개통과 함께 평택호 주변에 조성된 아름다운 자전거도로, 전망공원, 산책로 등의 빼어난 풍광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공사에 투입된 기술과 안전, 환경에 대한 자랑도 3가지 ‘수’자를 빌어 하고 있었다.

▼ 이젠 국제대교 위로 올라갈 차례이다. 다리 높이는 30m, 반면에 바닥은 4m에 불과하다. 그러니 등산하는 기분으로 올라가야만 한다.

▼ 12 : 39. ‘평택국제대교’는 팽성읍과 현덕면을 최단 거리로 연결하는 길이 1.35km의 왕복 4차선 다리다. 5m 폭의 통행로(보행과 자전거 겸용)가 나있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다.

▼ 안성천(安城川). 안성시 일대에서 발원 평택시를 거쳐 아산만(평택호)으로 흘러드는 길이 76km의 국가하천으로 강(江)이 아닌 천(川)으로 끝나는 하천 중에서 가장 길고 유역 면적도 가장 넓다. 평택에서는 진위천과 안성천이 만나는 지점부터 하류까지를 ‘평택강’으로 부르기도 한다.

▼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몸과 마음이 지친 일상 속에서 이보다 더 나은 위로와 격려가 또 어디 있을까.

▼ 13 : 02. 국제대교 동단에서 호숫가로 내려간다. 그렇다고 ‘세종평택로(43번 국도)’를 횡단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 이정표가 ‘경기둘레길’과 헤어짐을 알려준다. 경기둘레길(45코스)은 호수가 아닌 내륙 쪽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0.7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신대2리 마을회관’에서 종료된다.

▼ 13 : 12. 반면에 서해랑길은 ‘세종평택로’를 따라 남쪽(아산방면)으로 간다. 방음벽 아래로 임도가 나있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국도 아래 굴다리를 통과한다.

▼ 이후부터는 ‘계양로’를 따라 ‘노양1리’로 간다. 이즈음 각양각색의 보트들을 눈에 담을 수 있다. 평택호의 내수면 어업이 활성화되어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 13 : 21. 농어촌공사 노양양수장 앞 버스정류장(공식 이름은 ‘노양리마을회관’ 버스정류장). 이곳에서 1215번 버스를 타고 평택터미널로 나갔다.

▼ 13 : 23. ‘노양마을 쉼터’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수로교통의 요지 ‘경양포’가 있던 마을로 ‘둔포천’이 ‘안성천’과 만나는 언저리에 작은 쉼터가 만들어져 있다. 서해랑길 안내판(평택 85코스)은 쉼터에 세워져있다. 그나저나 오늘은 15.19km를 4시간 30분에 걸었다. 오붓한 둘만의 여행이라서 느긋하게 걸었던 모양이다.

▼ 인생은 오르내림의 반복이라고 했습니다. 아니 오르막길을 넘어 다시 오르막길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둘이 함께 걸으면 힘들어도 힘을 낼 수 있답니다. 그런 길을 함께 하는 것이 부부가 아닐까요? 윤종신의 ‘오르막길’에 딱 어울리는 오늘이었습니다. <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불 때만 저 먼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길/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그리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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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83코스(복운리나눔숲 - 인주공단교차로)
여 행 일 : ‘26. 10. 16(금)
소 재 지 : 충남 당진시 송악읍·신평면 및 아산시 인주면 일원
여행코스 : 복운리 나눔숲→음섬포구→맷돌포선착장→삽교천방조제→인주공단교차로(거리/시간 : 15.1km, 실제는 삽교호관광지까지 11.35km를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집사람과 함께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평화의길)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 09 : 20. 농어촌공사 부곡배수장(당신시 송악읍 복운리)
당진버스터미널에서 210번(구터미널↔변전소) 버스를 타고 오다 ‘이주단지’에서 내려야하는데 한 정거장을 더 가는 우를 범했다. 덕분에 몸 풀기 삼아 500m쯤 더 걸을 수밖에 없었고.

▼ 송악읍 복운리(이주단지)에서 삽교호관광지(신평면 운정리)까지 아산만과 접한 당진시의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내려오다 ‘삽교천방조제’를 건너 아산시로 간다. 볼거리로 넘치는 삽교호관광지가 자랑거리, 하지만 3,360m나 되는 ‘삽교천방조제’는 장애물로 꼽힌다.

▼ ‘부곡공단로’를 따라 남진(서해대교 방향)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왼쪽에 ‘아산만’을 끼고 걷는다.

▼ 서해대교와 행담도(行淡島)를 마주보며 걷는다. 행담도는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 일행이 도굴(남연군 분묘 도굴 사건, 1868년)을 감행하기 위해 본선(차이나호)을 정박시켰던 작전의 베이스캠프였다.

▼ 09 : 31. 첫 번째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서 ‘부곡공단로’를 따라 서진한다. 아산국가산업단지(부곡지구)의 기간도로(북부산업로)로 빠져나간다고 보면 되겠다.

▼ 09 : 38. 도심 속 Healing 공간인 ‘복운리나눔숲’에 이른다.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자금)의 지원을 받아 부곡산업단지 내 유휴지에 조성해놓은 소공원이다. 동서로 길쭉하게 숲이 조성되어있는데 공단에서 일하는 분들이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을 이용 산책하기 딱 좋겠다.

▼ 09 : 43. 서해랑길 안내도(당진 83코스)는 ‘복운리나눔숲’의 서쪽 출입구에 세워져 있다. 거리 15.2km에 난이도는 ‘매우 쉬움’. 서해대교·음섬포구·맷돌포구·삽교호관광지를 주요 볼거리고 꼽고 있다.

▼ 09 : 44. 북부산업로를 따라 남진(아산방향)하면서 83코스 답사를 시작한다.

▼ 09 : 47. ‘서해안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자마자 송악 IC로 올라가는 진입로가 길을 막는다.

▼ 서해랑길은 이 진입로를 따라간다. 차량통행이 빈번해서인지 횡단보도를 만드는 대신 ‘구레마을’쪽으로 에돌아가는 진입로 바깥쪽에 보행로를 따로 내놓았다. 참고로 ‘구레마을’은 ‘구례산’ 아래 바닷가에서 행담섬을 마주보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한나루’가던 사람들이 머물던 원(院) 터도 있었다나? 하지만 산업단지가 개발되면서 이름을 얻어왔을 것으로 여겨지는 ‘구례산’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 09 : 53. 구레마을로 에돌아온 서해랑길은 다시 ‘북부산업로’로 올라선다. 송악 IC로 올라가는 저 진입로(아래 사진) 때문에 한참을 에돌아왔다.

▼ 이후부터는 ‘북부산업로’를 따라간다. 왼쪽은 ‘제1농장 방조제’, 둑은 온통 칡넝쿨로 뒤덮여있었다. 공생(共生)이라는 산림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하지만 역사의 바늘을 조금만 거꾸로 돌려보면 칡은 정말 고마운 식물이었다. 뿌리·줄기·잎·꽃 모두 요긴하게 쓰였다. 뿌리는 흉년에 부족한 식량을 대신했으며, 질긴 껍질은 삼태기를 비롯한 생활용구로 널리 이용됐다. ‘동의보감’은 칡꽃에 대한 효능도 적고 있다. 칡꽃과 소두화(팥꽃)를 같은 양으로 가루를 내어 먹으면 술을 마셔도 취할 줄 모른단다.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효능이 아닐까 싶다.

▼ 10 : 08. 바닷가에는 가교(假橋)가 놓여있었다. 송전탑을 건설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모양이다.

▼ 이즈음 아산만을 가로지르는 ‘서해대교’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바다 위에 우뚝 솟은 182m 높이의 주탑과 부드럽게 뻗은 사장교 케이블이 어우러져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미를 자랑한다.

▼ 하지만 둑길은 여전히 걸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포크레인이 둑길을 헤집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이 구간이 웃자란 잡초 때문에 걸을 수가 없더라는 후기를 보았는데, 누군가 당진구청에 민원이라도 넣었나 보다.

▼ 그렇다고 아산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놓칠 수야 없는 노릇. 헤집어진 흙 때문에 발이 푹푹 빠졌지만 둑길을 걷기로 했다.

▼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던가? 덕분에 아산만과 서해대교를 다시 한 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은은한 한국적 조형미를 담았다는 ‘주탑’이 특히 눈길을 끈다. 전통 사찰의 당간지주 형상을 모티브로 설계했다나?

▼ 하지만 공사가 미치지 못한 구간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웃자란 잡초가 어른 키만큼이나 자랐으니 어쩌겠는가.

▼ 10 : 23. ‘음섬포구’에 이른다.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에 위치한 작고 한적한 포구인데, 서해랑길은 선착장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서해랑길에서 ‘볼거리’로 꼽고 있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쉼터에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 ‘음섬포구’의 음섬(陰島)은 진짜 섬은 아니다. 분명이 육지(마을이 들어앉은)인데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흡사 섬처럼 보인다고 해서 지명에 ‘섬’자를 붙였다고 한다.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버렸지만.

▼ 음섬포구는 서해대교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조망 포인트로 꼽힌다. 포구 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서해바다와 함께 서해대교, 그리고 행담도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전망대까지 만들어놓은 이유일 것이다.

▼ 전망대에는 흔들의자까지 설치해 놓았다. 해가 질 무렵 서해대교를 배경으로 붉게 물드는 일몰 풍경이 일품이라더니 연인과 함께 느긋이 구경해보라는 모양이다.

▼ 음섬포구 부근은 ‘망둥어’가 잘 잡힌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 어부의 투망 속에서는 지금 망둥어들이 발버둥치고 있겠지?

▼ 음섬포구 일대는 1979년 완공된 삽교천 방조제의 완공으로 조수가 약해지고 담수의 회류가 안 되어 바닷고기들의 먹이가 적어지자 어류들이 확 줄어들었다고 했다. 먼 바다로 조업을 나가고 있는 저 배들이 그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 10 : 29. ‘초대천 배수문(매산교)’을 건넌다. 초대천(草垈川)’은 송악읍 영천리 소재 오룡산에서 발원하여 신평면과 송악읍의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 흐르다 매산리·복운리 접경지에서 아산만으로 유입되는 길이 8.73km의 지방하천이다. 초반에 초대리(草垈里) 한 복판을 흐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들어간다. 방조제 위로 ‘매산해변길’이 나있다. 참! ‘초대천’의 중간쯤에서 송악읍(복운리)과 신평면(매산리)의 경계가 나뉜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 ‘민물장어’가 적힌 간판이 눈길을 끈다. 초대천에서 민물장어가 잘 잡힌다는 암시일지도 모르겠다. 옛 사람들은 가을에 국화전이나 국화술을 즐겼다. 살이 오른 추어탕을 먹으며 원기를 회복하기도 했다. 자꾸만 민물장어에 눈이 가는 이유이다.

▼ ‘매산해변길’을 따라간다. 아산만의 잔잔한 바다와 웅장한 서해대교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멋진 구간이다. 길가에 꽃밭까지 만들어놓아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진다.

▼ 꽃을 감상하며 걸을 수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분홍 낮달맞이꽃’, 밤에 피는 여느 달맞이꽃들과는 달리 해가 떠있는 시간인 낮에 핀다. 은은한 향기가 있어 ‘향달맞이꽃’이라고도 불리지만 땅바닥까지 구부리는 게 싫어 향기를 맡아보지는 않았다.

▼ ‘쑥부쟁이’인줄 알았는데 앞에다 ‘미국’을 붙이란다. 같은 국화과지만 번식력이 너무 강해 환경부가 생태계 교란 야생식물로 지정했을 정도니 그다지 달가운 꽃은 아니다.

▼ 차가운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가 일주일 전이었다.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서둘러 추수를 마쳐야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지런한 농부는 이미 가을걷이를 마쳐버렸다.

▼ 10 : 42. 매산리의 뭍이 ‘Г’ 모양으로 꺾이는 지점에 ‘매산해안공원’이 있었다. 주차장과 작은 광장이 전부지만, 엄청난 ‘뷰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시답잖은 관광시설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살린 공간이라고나 할까?

▼ 서해대교와 행담도, 탁 트인 서해 바다를 지척에서 조망할 수 있다. 해질녘 하늘과 바다가 물드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서해안의 대표적인 낙조(日沒) 명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 그게 자랑스러웠던지 큼지막하게 빗돌까지 세워놓았다.

▼ 신평면에서도 ‘음섬포구’에서 ‘삽교호관광지’까지의 해안길을 ‘오감만족 힐링투어’가 가능하다며 자랑하고 있었다.

▼ 뭍의 끝(串)에는 ‘해어름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해질녘의 어스름’이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일몰과 뛰어난 경관으로 잘 알려진 레스토랑 겸 카페이다. 건물 전체가 통창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내부 어느 자리에 앉아도 탁 트인 바다와 갯벌, 그리고 붉게 물드는 노을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 바다와 맞닿아 있는 넓은 잔디밭과 야외 정원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다양한 수목과 화초들이 자라고 있어 차를 마신 후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기 딱 좋다.

▼ 앗! ‘여왕머리 바위(女王頭)’ 닷! 앞서가던 집사람이 대만의 야유지질공원에서 본 고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Nefertiti, BC1370-1330) 여왕’을 닮았다던 바위를 들먹이고 있었다. 집사람과 함께 세계여행을 시작한지도 10년 여, 그동안 45개쯤의 나라를 둘러보았고 많은 것을 가슴에 담아왔다. 집사람의 입에서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저런 멘트가 그 증거다.

▼ 정원의 콘셉트는 크리스마스인 모양이다. 산타크로스와 사슴, 썰매, 북극곰 등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조형물들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 10 : 51. 다시 길을 이어나간다. 아까 신평면관광안내도에서 거론한 ‘음섬포구-삽교호관광지 해안코스(6.2km)’를 따라간다고 보면 되겠다.

▼ 이즈음 ‘개매기(‘개막이’의 사투리)’가 눈에 띈다.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밀물 때 그물을 쳐두었다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전통 어로방식이다.

▼ 천연 모래사장도 형성되어 있었다. 맞다. 어선을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 이곳 매산리 모래해변은 어선들이 모이는 장소였다고 한다. 모래사장이라 배를 대 놔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더라나? ‘깔판포구’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모래사장에 잇댄 바닷가에 거적(깔판)을 넓게 깔아두고, 바다에서 잡아 온 꽃새우를 말렸던 모양이다.

▼ 계속해서 해안산책로를 따라간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아산만 방조제’가 희미하게나마 눈에 들어온다.

▼ 11 : 07. 방조제 축조와 도로 개설 등 무분별한 개발로 지형적 변화를 거치면서 옛 깔판포구의 천연 모래사장은 점차 사라지거나 축소되었다고 한다. 대신 부잔교(浮棧橋, 뜬다리)를 이용한 선착장이 들어서 있었다.

▼ 이곳에도 ‘개막이’가 쳐져 있었다. 아니 갯벌 곳곳에 쳐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 체험 프로그램이라도 운영하는가 보다. 하지만 ‘개막이 체험장’은 당진이 아닌 진도(접도어촌체험마을), 장흥(신리어촌체험마을), 완도(달도마을) 등 남해안 지역에 더 분포되어 있다. 당진을 포함한 태안, 서산 등의 서해안 어촌마을에서는 개막이 대신 돌을 쌓아 고기를 잡는 '독살(석방렴) 체험장'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 바닷가를 따라 깔끔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거닐기 딱 좋다.

▼ 11 : 15 – 11 : 31. 쉼터를 겸한 작은 공원도 눈에 띈다. 부잣집 정원을 연상시키는 조경이 눈길을 끄는데 파고라와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덕분에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다 갈 수 있었다.

▼ 이즈음 ‘삽교천방조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깔판마을’ 앞에는 코스모스 꽃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높은 가을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한들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가을의 전령’이다.

▼ 11 : 43. 아까도 얘기했듯이 신평면 일대는 삽교천방조제의 완공으로 어류들이 줄어들었다. 그 후 주민들은 백합 양식장에 전념했으나 삽교천방조제에서 밀어닥친 폐수로 인해 이마저 망쳐버렸다고 한다. 어민들이 드나들던 바닷길은 사라지고 어패류 세척장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 83코스에서는 서해랑길 이정표를 만날 수 없었다. 대신 ‘국가지점번호안내판’이 수시로 얼굴을 내민다. 바닷가를 따라가는 외길이니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대신 조수간만으로 인한 안전이 더 걱정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 맷돌포구에 가까워지자 ‘삽교호관광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11 : 51. ‘맷돌포구’에 이른다. ‘맷돌포’는 석화산 아래 아산만 변에 있는 고깃배가 정박하던 곳으로 예전에는 ‘매포’라고 불리었다. 물이 들어올 때는 뱃머리가 왼쪽(또는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물이 나갈 때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맷돌이 도는 것과 같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단다.

▼ 꼬맹이 어선 여남은 척이 묶여있는 포구는 작고도 한적했다. 하지만 선착장은 두 개나 됐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여건을 감안 부잔교선착장을 하나 더 만들어 놓았다. 하긴 준치, 황강달이(황석어), 숭어 새끼(동어)가 많이 잡히던 옛 영화가 완전히 사라져버리기야 했겠는가.

▼ 맷돌포구도 ‘어촌뉴딜 300사업’의 도움을 받았었나 보다.

▼ 포구는 제법 큼지막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횟집은 물론이고 카페도 여럿 들어서 있다. 그 풍경이 잠깐이나마 옛 영화를 소환시켜준다. 서해대교가 놓이기 전 매산리에 속한 행담도 주민들은 육지로 드나들 때 이곳 매산포구를 이용했다고 한다. 1960년대 말까지는 부리포-운정포-맷돌포-한진항-인천항으로 항해하는 정기여객선의 중간 기착지이기도 했다. 수심이 얕아 전마선이라는 쪽배를 타고 나가서 여객선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지만(디지털당진문화대전에서 정리)

▼ 카페 홍보도 가지가지다. 커피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만 들어오라는 것일까?

▼ 이후부터는 ‘삽교호해안탐방로’를 따라간다. 아산만의 수려한 경관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1.5km짜리 명품 데크 산책로이다.

▼ 주인장이 직접 배를 몰아 잡아 올린 싱싱한 제철 자연산 회를 먹을 수 있다는 ‘서해범선’은 문이 닫혀있었다. 14개의 창문이 나있어 서해바다의 풍광을 마주하며 식사 할 수 있다는 곳이다.

▼ 계속해서 ‘삽교호해안탐방로’를 따라간다. 삽교호관광지를 전면에 두고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 12 : 11. 영롱한 진주를 머금고 있는 듯한 조형물. 아산만 일대와 삽교호에서 많이 잡히는 특산물인 ‘조개’를 형상화한 작품이란다. 주변은 작은 쉼터로 만들어놓았다.

▼ 탐방로는 상이한 두 풍경을 양쪽에 끼고 간다. 왼쪽에는 드넓은 아산만이,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논과 야산이 펼쳐진다.

▼ 바다 건너는 평택 땅이다. 아산만방조제와 평택당진항이 아스라이 바라보인다. 그보다 조금 위에 있는 ‘평택항’은 내일 걷게 될 85코스의 종점이기도 하다.

▼ 해안탐방로의 난간은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걸으면서 만날 수 있는 새들의 내력을 사진과 함께 게시해 놓았다.

▼ 지역주민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지역에서 잡히는 특산물들도 맛까지 곁들여가며 알려준다.

▼ 갯벌을 내려다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갯벌에는 수많은 모래경단이 펼쳐지고 있었다. 게들이 열심히 먹이활동을 수행한 결과물이다. 모래 속에 있는 플랑크톤이나 유기물을 먹고 모래는 경단으로 만들어 치워 놓은 것이다.

▼ 삽교호관광지의 명물 ‘대관람차’가 부쩍 가까워졌다. 드넓은 아산만과 함께 평화로운 시골 논밭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고 해서 지역 주민들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논두렁 뷰 대관람차’로 꼽기도 한다.

▼ 12 : 20. 그러자 물고기 조형물이 길손을 반긴다. 수많은 알을 낳은 망둥어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 물 빠진 갯벌은 작은 수로들이 S자를 그리며 흐르다 하나가 되기도 하고 다시 수십 개의 작은 수로로 갈라져 바다로 향한다. 실핏줄처럼 연결된 수로에는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생명체들이 산다. 호미나 작은 삽으로 물 빠진 곳을 파헤치면 조개가 가득하다.

▼ 뒤돌아본 풍경. 테크로 된 ‘삽교호해변탐방로’를 따라 이곳으로 왔다.

▼ 진행 방향은 물론 ‘삽교호 관광지’이다.

▼ 바다 뷰와 낙조를 텐트 안에서도 감상할 수 있도록 ‘삽교호 캠핑장’도 만들어 놓았다. 공공 캠핑장이라서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고 한다.

▼ 짚트랙도 운영되고 있나보다. 그런데 필수 시설인 타워와 와이어로프가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뭘까? 관리사무실 문도 굳게 닫혀있었다.

▼ 물 빠진 갯벌에는 유람선이 드러누워 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삽교천과 석문호 근해를 항해하고, 배 주변으로 몰려드는 갈매기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체험거리다.

▼ ‘전망데크’가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다. 낮에는 서해대교와 바다 전망을 선사하고, 해 질 무렵이면 붉게 물드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노을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 12 : 37. ‘삽교호관광지’로 들어간다. 서해바다와 인공호수, 황금 들녘과 각종 놀이공원이 한 곳에 어우러진 당진의 관문이자 국민관광지이다. 해군 퇴역군함을 활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삽교호함상공원과 해양안전과 해양생물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해양테마체험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 종합안내도. 삽교천방조제 건설로 형성된 호수와 서해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조성된 약 1만 평 규모의 친수 해양 테마공원이다. 넓은 잔디광장과 어린이놀이터까지 갖춰져 있어 가족나들이 장소로 이만한 곳도 없겠다.

▼ 서해랑길은 공원을 관통하며 여러 시설들을 구경시켜 준다. 첫 만남은 ‘초승달 조형물’이다. 삽교호에 얽힌 초승달 얘기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저녁이면 은은한 빛을 내기 때문에 서해바다의 낭만적인 밤 풍경을 완성시키는 데는 이만한 것도 없단다.

▼ 김영희 작가의 ‘풍요’라고 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돛단배의 형상을 모티브로 삼아, 삽교호의 푸른 기상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비전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단다.

▼ 인공호수도 김영희 작가가 차지했다. 밀물 때가 되어 하부에 바닷물이 가득 차오르면, 마치 바다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듯한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고 해서 ‘태양의 창’이란 이름을 붙였단다. 저녁에는 포토 스팟으로 변한다고도 했다. 해가 지고 나면 조형물 내부의 발광체가 화려하게 빛을 발하며 몽환적인 야경을 연출한다나?

▼ 탐방로는 어린이놀이터, 농구장, 야외공연장 등 놀이시설들이 몰려있는 공간으로 넘어간다. 함상공원의 입구도 이곳에 있다.

▼ ‘모래시계 조형물’도 세워져 있었다. 시간의 영원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김영희 작가의 작품이란다.

▼ ‘고린도전서’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전한다. 그러니 새벽기도조차 빠뜨리지 못하는 집사람이 그냥 지나칠 리가 있겠는가.

▼ 야외공연장에서는 지역 예술인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 12 : 48. 바다공원을 빠져나와 ‘삽교천3길’로 올라선다. 이이서 삽교천방조제 방향으로 간다. 길가는 온통 횟집 천지다. 필자는 회를 좋아하지 않기에 국밥이나 중국집을 찾아봤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덕분에 점심을 ‘조개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상한 것이 섞여있어서 썩 편치 않은 여행이 되고 말았다.

▼ 서해랑길은 ‘전망대종합어시장’을 지나 다시 바닷가로 간다.

▼ 12 : 53. 잠시 후, 삽교공원(삽교호 관광지 내 녹지)을 가운데 두고 에돌아간다. 바닷가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 갯고랑 너머에는 ‘삽교호 함상공원’이 있다. 대양을 호령하던 군함이 명예로운 퇴역과 함께 해군·해병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함정 내외부나 해군·해병의 주제별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항공기, 탱크 등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관심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 선착장도 눈에 들어온다. 꼬맹이 어선 몇 척도 매달려 있다. 관광지에 있는 횟집에 자연산 횟감을 대주는 배들일지도 모르겠다.

▼ 공원 중앙에는 ‘삽교천 유역 농업개발 기념탑’이 높이 솟아있었다. 1979년 10월 26일 서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행사로 기억되는 곳, 기념탑은 삽교천방조제 준공을 기념해 1980년 5월 1일 최규하 전 대통령이 건립했다. 머릿돌에 ‘1979년 10월 26일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 우람한 호수를 삽교호로 명명하고 준공했다.’라는 문구도 새겼다. 그러다 43년 뒤인 2023년 5월쯤 붕괴위험이 있다며 철거됐다가 2024년 초 높이 약 18.5m의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삽교천방조제’가 얼굴을 내민다.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사이에 축조된 방조제로, 삽교천 하구에 3,360m 길이의 둑을 쌓아 인공담수호를 만들었다. 이 담수호의 조성으로 당진·아산·예산·홍성 등 4개 시·군의 관개용수가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업·생활용수도 하루 4만 8000t이나 공급 가능해졌다고 한다.

▼ ‘삽교호관광지’는 서해랑길 지선인 ‘64-6코스’의 종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코스들과는 달리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방조제 초입의 가로등에 매달린 ‘종점’ 표지판이 이를 대신한다.

▼ 12 : 58. ‘삽교천방조제’에서 트레킹을 마치기로 했다. 내일도 85코스를 걸어야 하는데 집사람의 체력으로는 14km 이상 되는 코스를 연 이틀 걷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은 11.35km를 3시간 30분에 걸었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둘만의 여행이어선지 느긋하게 걸었나 보다.

▼ 83코스 날머리인 ‘인주공단교차로(아산시 인주면 걸매리)’. 내일은 85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을 예정이다. 삽교호관광지에서 시내버스(600번)를 이용 이곳(인주면)으로 왔고, 인주역으로 이동해 열차를 타고 숙박지인 ‘안중읍’으로 가면 된다. 배차간격이 길다는 것은 흠, 그게 싫다면 택시를 부르면 될 일이다. 사진은 85코스 답사(25.12.28) 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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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 남인도(South India)–타밀나두(Tamil Nadu)-티루치라팔리(Tiruchirappalli)-스리 랑가나타 스와미 사원(Sri Ranganatha Swamy Temple)
여행일 : ‘26. 3. 23(월) - 3. 28(토)
세부 일정 : 첸나이→마하발리푸람→퐁디셰리→탄자부르→티루치라팔리→마두라이→코친
특징 : ’카베리 강‘과 ’콜리담 강(카베리강 지류)‘ 사이 ’스리랑감 섬‘에 위치한 사원. 인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힌두교 사원 복합단지로 정교하고 화려한 탑문(Gopuram)이 압도적인 장관을 선사한다. 힌두교의 최고신 중 하나인 비슈누의 화신 랑가나타(Ranganatha)를 주신으로 모신다. UNESCO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 남인도(South India), 5개 주(州)와 1개의 특별자치구(프랑스령이었던 ‘푸두체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가 진출해있는 ‘타밀나두(Tamil Nadu)’와 인도 향신료 특구 ‘케랄라(Kerala)’를 다녀왔다.

▼ 타밀나두 주의 중심부, 카베리 강 연안에 자리 잡고 있는 ‘티루치라팔리(탄자부르 서쪽 60km 지점)’는 오랜 역사와 찬란한 힌두교 사원으로 유명한 남인도의 문화·종교 중심지이다.

▼ 예정에 없던 ‘스리 랑가나타 스와미 사원(이하 ‘스리랑감 사원’)’을 방문했다. 탄자부르에서 60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잠정 목록)에 등재된 문화재가 있다는데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리랑감 사원’은 예배가 가능한 힌두교 사원 중 세계 최대 규모(약 156에이커)라고 했다. 그래선지 고푸람(Gopuram)이 성문(城門) 역할을 있었다.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고푸람의 안과 밖이 모두 상가와 주거지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 스리랑감(사원) 평면도. 스리랑감에서 도시는 사분할 된 우주적 만다라로 표현된다고 했다. 일곱 개 층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각각의 벽마다 점점 작아지는 ‘고프람’이 있다. 이중 안쪽의 4개 벽(아래 지도)은 사원, 밖의 3개는 상가와 주거지역 기능을 담당한단다.

▼ 고푸람이 하도 높아서 사진을 나누어 찍을 수밖에 없었다. 스리랑감 사원은 산스크리트어 Sri(신성한)와 Ranganatha(비슈누 신의 누운 형태이자 ‘연극이 펼쳐지는 우주 무대의 주인’이라는 뜻), swamy(주인)의 합성어이다. 그러니 우주 무대의 주인인 ‘비슈누 신’을 모시는 신성한 사원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 남인도 힌두사원의 건축 양식인 ‘고푸람(Gopuram)’이 화려함을 자랑한다. 고푸람은 힌두 사원마다 높게 솟은 사각형의 탑(門樓)이다. 외벽에 수많은 신을 조각한 뒤 원색으로 아름답게 치장해 놨다. 우리나라 절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천왕문’쯤으로 여기면 되지 않을까 싶다.

▼ 첫 번째 문인 ‘라자고프람 (Rajagopuram)’의 뒷모습(단지 안에서 찍은). 사원 남쪽가장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탑문(塔門)으로 ‘Raja(왕)’라는 이름처럼 엄청난 등치를 자랑한다. 13층이나 되는 고푸람은 멀리서도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압도한다. 가이드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꼽힌다고 했다.

▼ 힌두교 사원은 고푸람의 크기로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높이가 73m에 이른다니 사원의 규모가 대체 얼마나 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1987년 완공된 이 탑에는 1만개 이상의 조각상과 장식이 만들어져있다고 한다. 수백 년 동안 미완성 상태로 있다가, 힌두교 수도원 단체인 아호빌라 무트(Ahobila Mutt)의 지원을 받아 1987년에 최종 완공되었다.

▼ 사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신들에게 선물하는 꽃을 파는 노점이나 가게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 정자를 닮은 문. 저것도 ‘고푸람’에 포함되나? 아무튼 남쪽 진입로는 순례자의 약 70-75%가 선택하는 가장 대중적인 길이라고 했다.

▼ 단지 내부는 ‘오토 릭샤(Auto Rickshaw)’, 흔히 ‘툭툭(Tuk-Tuk)’이라 불리는 삼륜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 인도의 인구는 2026년 기준 약 14억 6,100만 명이라고 했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 1위에 올라 있다. 거기다 ‘스리랑감’은 단순한 힌두교 사원이 아니라 상가, 주거지역, 신전이 함께 어우러지는 ‘복합단지’이다. 그래선지 사원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거리 전체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 두 번째 문은 ‘남쪽 제2 고푸람(South 2nd Gopuram)’ 또는 ‘랑가랑가 고푸람(Ranga Ranga Gopuram)’으로 불린다고 했다. ‘라자고푸람’에서 상점과 주거지가 있는 구역을 지나자 얼굴을 내민다.

▼ 7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마다 중앙의 신(God) 조각상을 비롯해 다채롭고 화려한 신화 속 인물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 인도는 과일의 천국이라고 했다. 독특한 기후 덕분에 당도가 높고 이국적인 과일들이 가득하단다.

▼ 좌우로 갈려나가는 골목 중 하나. 주거지역으로 연결되나 보다. 스리랑감 사원 복합단지는 신이 모셔진 성소를 중앙에 두고 두껍고 거대한 성벽으로 형성된 직사각형 구역들이 둘러싸고 있다. 복합 단지의 안쪽 네 구역은 사원을 구성하고, 바깥쪽 세 구역은 주거지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사원과 주거지의 경계가 모호해져 사원만을 ‘스리랑감’이라 부르기도 한다.

▼ 사원으로 가는 길. 그늘막이 천정이 씌워져 있었다.

▼ 남쪽 세 번째 문(탑문)인 7층의 ‘카르티카이 고푸람(Karthikai Gopuram)’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 ‘카르티카이 고푸람’은 그늘막으로 인해 구경할 수 없었다. 그저 벽면에 모셔놓은 신상만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참고로 ‘카르티카이 고푸람’은 사원의 7개 동심원 구역(프라카람) 중 세 번째 구역(Enclosure)의 남쪽 진입로에 자리하고 있다. 힌두교의 신성한 별자리에서 이름을 땄으며 남쪽 축을 따라 성소로 들어가는 주요 관문이다.

▼ 사원도시(Temple City)의 활기찬 풍경. 상가는 물론이고 순례자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숙박업소 등이 밀집해 있다.

▼ 남쪽 네 번째 동심원 울타리(Prakara)에 위치한 출입문(고푸람)은 ‘쿠라트 알바르 고푸람(Koorathazhwan Gopuram)’이다. 스리 바이슈나비즘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라마누자’의 수제자인 ‘쿠라트 알바르(Koorathazhwan)’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비슈누파를 탄압하던 촐라 왕의 종교적 박해로부터 스승인 라마누자와 사원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두 눈을 바친 인물로, 교인들로부터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의 상징으로 추앙받는다.

▼ 화려하고 정교한 드라비다 양식의 조각과 신화 속 인물, 신들의 스투코(석회) 조각상들이 다채로운 색상으로 덮여 있다. 문루에 적혀 있는 타밀어는 ‘스리랑감’이라고 했다.

▼ ‘쿠라트 알바르 고푸람’의 뒷모습(사원 안에서 바라본). 화려한 드라비다 양식의 수직 건축미를 자랑한다.

▼ 줌으로 조금 당겨봤다. 현지 신도들은 눈병이나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 저 탑문이나 그의 신전(탑문 왼쪽 건물)을 찾아 기도를 올리기도 한단다.

▼ ‘쿠라트 알바르 고푸람’을 지나면 ‘비슈누 신’의 탈것을 모신 유명한 ‘가루다 만다팜(Garuda Mandapam)’이 있다. 입구를 지키는 저 출입문이 ‘가루다 만다파 고푸람(Garuda Mandapa Gopuram)’일지도 모르겠다.

▼ ‘쿠라트 알바르 고푸람’을 경계로 신전(神殿)이 시작된다. 신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때문에 사원 안에서는 누구나 맨발로 걸어야 한다. 그런데 맨발로 걷는 인도인들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인다. 태양열로 뜨거울 대로 뜨거워진 바닥이 발을 대기조차 힘든데도 말이다. 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희열이 그런 뜨거움조차 잊게 만드는 모양이다. 하지만 신앙이 다른 이방인들로서는 그저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버거울 따름이다.

▼ 첨부된 지도에는 ‘가루다 만다팜(Garuda Mandapam)’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마하발리푸람’이나 ‘탄자부르’에서 들렀던 유적지들과는 달리 건물의 용도를 알 수 있는 그 어떤 안내판도 붙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루다(Garuda)’는 유지와 심판의 신인 비슈누(Vishnu)가 타고 다니는 신성한 새(神鳥)이자 힘과 용기의 신이다. 주로 인간의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 부리, 날개, 발톱을 가진 반인반조(半人半鳥)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힌두 신화에서 신이 타고 다니는 신성한 동물(Vahana) 중 하나로, 악을 제거하고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비슈누 신’을 등에 태우고 우주를 자유롭게 오간다.

▼ 하지만 입구의 돌기둥에는 ‘가루다’ 대신 ‘코끼리’가 새겨져 있었다. 코끼리는 ‘가네샤(Ganesha)’를 상징하는 동물 아닌가? 지혜와 행운, 풍요, 거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장애물까지 모두 없애준다는 그 인기 만점의 신 말이다.

▼ ‘만다팜(Mandapam)’은 공공 의식, 예배, 춤, 그리고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사원 전면에 지어진 기둥이 있는 홀(정자)을 말한다. 넓은 통로와 조화롭게 배치된 기둥들로 마치 극장처럼 꾸며놓았다. 힌두교의 주요 성소인 ‘가르바그리하(Garbhagriha, 본전)’로 진입하기 전에 거쳐 가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신전은 신자들로 넘치고 있었다. 집사람에게 세계 일주를 시켜주겠다며 해외여행을 나선지도 15년. 그동안 수많은 성당과 교회, 모스크를 둘러봤었다. 하지만 이곳처럼 진한 사람 냄새는 없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인도의 힌두사원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들끓는다.

▼ 만다팜을 받치는 수많은 돌기둥들은 힌두교 세계관과 철학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돌로 새긴 경전‘의 역할을 한다. 춤추는 요정, 신화 속 인물 등 정교한 문양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신도들이 어두운 성소로 나아가기 전, 기둥에 새겨진 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세의 잡념을 버리고 영적인 세계로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시각적 매개체이다.

▼ 과거 글을 읽지 못하던 평범한 신도들은 만다팜 기둥의 입체적인 부조를 보며 힌두 경전의 내용과 도덕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전수받았다고 한다.

▼ 신도들이 본전의 주신을 배알하기(Darshan) 전에 모여서 마음을 정돈하고 의식을 준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위에 지친 신도들에게는 잠시나마 쉬는 게 더 중요했을 것이다.

▼ ‘세샤라야르 만다팜(Sesharayar Mandapam)’은 비자야나가라 왕조가 지었다고 했다. 이 홀은 북쪽 끝의 기둥에 새겨진 40마리의 뛰어오르는 동물 조각상으로 유명하다. 거대한 돌기둥에 기수를 태운 야생마가 역동적으로 새겨져 있다. 사나운 호랑이의 머리를 짓밟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계획에 없었던 유적지를 찾아갔는지라 무슨 볼거리가 있는지조차 몰랐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에서 사진을 빌려왔다

▼ 밖으로 나오면 부속 신전들을 만나게 된다. 그 수가 무려 50개에 이른단다. 거기에 성스러운 연못도 9개나 된다니 ‘스리랑감 사원’이 얼마나 큰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 UNESCO는 스리랑감 사원의 기원을 BC 3세기부터 AD 4-5세기까지의 상감시대(Sangam Age)로 보고 있었다. 이후 촐라·판디아·호이살라·비자야나가라 등의 왕조를 거치면서 확장 및 개·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단다.

▼ 사원은 넓은데다 사당(Temple)과 만다팜(Mandapam)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하지만 힌두교 신자들은 헷갈리지도 않는 듯 잘만 찾아다닌다.

▼ 이름조차 확인 못한 고푸람. 스리랑감 사원의 볼거리는 드라비다 건축양식의 ‘고푸람’이 단연 돋보인다. 남녀 신, 서사시 속 인물, 신화 속 동물들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는데, 생동감 넘치는 색상과 정교한 조각이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만든다. 스리랑감 사원에는 저런 고푸람이 21개나 되며, 개개의 탑은 저마다 독특한 특징과 조화로운 디자인을 자랑한다.

▼ 불볕더위에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진 대리석 바닥은 숫제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부리나케 지성소의 입구로 여겨지는 열주홀로 들어서고 본다.

▼ 스리랑감 사원은 비자야나가라 왕조(1336-1565) 때 만들어진 천 개의 ‘기둥’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천주홀(千柱室, Garbhagriha)’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름과는 달리 실제 기둥의 수는 953개라고 한다.

▼ 사원은 기둥과 내력벽만 있는 개방형의 필로티(Piloti) 구조이다. 수백 개의 기둥이 줄을 지어 늘어서있다. 바닥에 앉아 쉬거나 잠을 자고 있는 신자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하루 종일, 아니 며칠을 머물면서 기도를 드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 지성소 안에는 ‘거대한 뱀(Ananta Shesha)’에 기대어 있는 ‘비슈누 신상(Ranganatha)’이 모셔져 있다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스리랑카에서 인도, 그리고 스리랑감까지 이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구경할 수는 없었다. 신상이 모셔진 가장 안쪽의 지성소는 힌두교도(Hindus only)만 입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이방인들은 아르다(Ardha), 마하(Maha), 칼리아나(Kalyana) 같은 만다팜(Mandapam)이나 둘러볼 수밖에. 참고로 ‘스리랑감 사원’은 현재도 매일 제사와 의식이 엄격하게 거행되는 ‘살아있는 사원’이다. 이교도의 지성소 출입이 금지되는 이유이다.

▼ 홀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벽화를 만난다. 약초와 식물성 염료를 사용해서 그린 ‘프레스코화’라는데 당시의 문화와 전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림을 통해 힌두 이야기를 들려주고 도덕적 교훈을 가르쳐준다고 보면 되겠다.

▼ 타밀어로 ‘나이두 커플’이라고 적혀있단다. 스리랑감 사원을 후원하고 기부한 나야크 왕과 왕비(커플)의 조각상인 모양이다.

▼ 저것은 또 무슨 신이지? 이번이 두 번째 인도 나들이이지만 처음으로 보는 형상이다. 맞다. 힌두교의 신은 시공을 초월한다고 했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창조되고 있으며, 새로운 신이 미래에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 사람들에게 힌두교는 그들의 생활 자체라는 얘기다. 그러니 힌두교도도 아닌 필자에게 신의 정체가 무에 그리 중요하겠는가.

▼ 뭔가를 팔고 있는 것 같은데 묻는 것이 귀찮아 그냥 지나쳐버렸다.

▼ 남인도 지역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 문두(Mundu 또는 Veshti)는 남인도(특히 케랄라와 타밀나두 주) 남성들이 허리에 둘러 입는 전통 치마 형태의 천이다. 일반적인 도티와 달리 다리 사이로 천을 빼지 않고 일자로 감싸며, 날씨가 덥거나 활동할 때는 천의 아랫부분을 위로 접어 허리에 묶어 반바지처럼 입기도 한다.

▼ 무더위는 이방인들만 지치게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 ‘스리 하누만 신사(Sri Hanuman Temple)’라고 한다. 힌두교의 원숭이 신이자 힘과 헌신의 상징인 하누만(Hanuman)을 모시는 모양이다. 라마야나 신화 속에서 하누만은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 왕을 극진히 모신다. 때문에 비슈누 사원 안에서 지성소를 수호하거나 바라보는 형태로 하누만 신사를 짓기도 한단다.

▼ 사원 구역을 빠져나오는데 가이드가 옥상으로 올라가 볼 것을 권했다. 사원과 도시가 합쳐진 ‘스리랑감 사원’이 너무 넓기 때문에 한눈에 살펴보기 위해서는 ‘옥상전망대(Roof Viewpoint)’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물론 약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한다.

▼ 맞다. 옥상은 사원을 둘러싼 7개의 동심원 벽과 그 위에 솟아오른 21개의 화려한 탑(고푸람)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viewpoint’였다. 하지만 바닥이 너무 뜨거운 것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뒤꿈치로 서서 사진을 있는 저 인도 청년이 그 증거이다.

▼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탑 중 하나인 73m 높이의 '라자가푸람'도 선명하게 보인다.

▼ 21개 고푸람 중 유일하게 백색으로 칠해진 ‘벨라이 고푸람(Vellai Gopuram)’도 눈에 담을 수 있다. 사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무희의 애국심이 깃든 성스러운 탑문이다. 1323년 이슬람 델리 술탄국 군대가 사원을 침략하여 황금 신상(Namperumal)을 약탈하려 했다. 이때 신상을 대피시킬 시간을 벌기 위해, 사원의 무희(Devadasi)였던 벨라야말이 이슬람 사령관 앞에서 밤새 춤을 추며 유혹했고, 사령관을 사원 동쪽 고프람 꼭대기로 유인한 뒤 밀어서 떨어뜨려 처단했단다. 자신 역시 비슈누 신의 이름을 외치며 탑 아래로 투신하여 정절과 신앙을 지켰다나?

▼ 옥상이라고 해도 주변을 압도할 만큼 높지는 않아 사원단지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원의 전모를 가늠해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스리랑감 사원’은 비슈누 신의 여덟 거처 중 하나인 곳으로 비슈누 신자들에게는 가장 신성한 순례지로 받아들여진다. 북부의 바라나시가 시바의 성지, 서부의 드와르카(Dwarka)가 크리슈나의 성지이듯이. 무려 156에이커에 이르는 크기도 만만찮다. 티베트 라사의 포탈라궁,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페루의 마추픽추, 바티칸시티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 꼽히기도 한다.

▼ 비슈누 신이 안치된 본전 성소의 지붕 ‘황금 비마나(Vimana)’를 가까이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상단부(박공) ‘비슈누 신’의 원초적이고 신성한 형상인 파라바수데바(Paravasudeva)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나?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바닥이 하도 뜨거워서 ‘viewpoint’까지 다가갈 엄두를 못 냈기 때문이다. 본전 성소의 입장이 불허되는 이교도들에게는 유일한 조망처인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에서 사진을 빌려왔다.

▼ ‘라자 고푸람’을 빠져나가면서 투어는 종료된다. 스리랑감 사원은 하나의 본당만 가지고 있는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자급자족형의 미니 도시라는 게 특이했다. 예배 장소인 동시에 지역 주민들의 생활공간 역할도 한다. 단지 안에는 시장, 신들을 모신 사당, 승려 숙소, 주택 등 다양한 공간이 있었다.

▼ 밖으로 빠져나오니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수식어부터가 ‘Mahatma(위대한 영혼)’인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발길을 잠시 멈추고 위대한 영혼에 경의를 드려본다.

▼ ‘당신이 어떤 세상을 보고 싶든, 당신 스스로가 먼저 그렇게 변하십시오.’ 간디의 핵심 철학이니 타밀어라고 해서 못 알아들을 것도 없다.

▼ 타밀나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초가집 스타일의 로컬 레스토랑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쿠라이 카다이(Koorai Kadai)’라고 하는데, 타밀어로 ‘Koorai’는 마른 나뭇가지와 짚을 엮어 만든 초가지붕을 ‘Kadai’는 상점이나 식당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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