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남인도(South India)–타밀나두(Tamil Nadu)-티루치라팔리(Tiruchirappalli)-스리 랑가나타 스와미 사원(Sri Ranganatha Swamy Temple)
여행일 : ‘26. 3. 23(월) - 3. 28(토)
세부 일정 : 첸나이→마하발리푸람→퐁디셰리→탄자부르→티루치라팔리→마두라이→코친
특징 : ’카베리 강‘과 ’콜리담 강(카베리강 지류)‘ 사이 ’스리랑감 섬‘에 위치한 사원. 인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힌두교 사원 복합단지로 정교하고 화려한 탑문(Gopuram)이 압도적인 장관을 선사한다. 힌두교의 최고신 중 하나인 비슈누의 화신 랑가나타(Ranganatha)를 주신으로 모신다. UNESCO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 남인도(South India), 5개 주(州)와 1개의 특별자치구(프랑스령이었던 ‘푸두체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가 진출해있는 ‘타밀나두(Tamil Nadu)’와 인도 향신료 특구 ‘케랄라(Kerala)’를 다녀왔다.

▼ 타밀나두 주의 중심부, 카베리 강 연안에 자리 잡고 있는 ‘티루치라팔리(탄자부르 서쪽 60km 지점)’는 오랜 역사와 찬란한 힌두교 사원으로 유명한 남인도의 문화·종교 중심지이다.

▼ 예정에 없던 ‘스리 랑가나타 스와미 사원(이하 ‘스리랑감 사원’)’을 방문했다. 탄자부르에서 60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잠정 목록)에 등재된 문화재가 있다는데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리랑감 사원’은 예배가 가능한 힌두교 사원 중 세계 최대 규모(약 156에이커)라고 했다. 그래선지 고푸람(Gopuram)이 성문(城門) 역할을 있었다.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고푸람의 안과 밖이 모두 상가와 주거지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 스리랑감(사원) 평면도. 스리랑감에서 도시는 사분할 된 우주적 만다라로 표현된다고 했다. 일곱 개 층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각각의 벽마다 점점 작아지는 ‘고프람’이 있다. 이중 안쪽의 4개 벽(아래 지도)은 사원, 밖의 3개는 상가와 주거지역 기능을 담당한단다.

▼ 고푸람이 하도 높아서 사진을 나누어 찍을 수밖에 없었다. 스리랑감 사원은 산스크리트어 Sri(신성한)와 Ranganatha(비슈누 신의 누운 형태이자 ‘연극이 펼쳐지는 우주 무대의 주인’이라는 뜻), swamy(주인)의 합성어이다. 그러니 우주 무대의 주인인 ‘비슈누 신’을 모시는 신성한 사원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 남인도 힌두사원의 건축 양식인 ‘고푸람(Gopuram)’이 화려함을 자랑한다. 고푸람은 힌두 사원마다 높게 솟은 사각형의 탑(門樓)이다. 외벽에 수많은 신을 조각한 뒤 원색으로 아름답게 치장해 놨다. 우리나라 절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천왕문’쯤으로 여기면 되지 않을까 싶다.

▼ 첫 번째 문인 ‘라자고프람 (Rajagopuram)’의 뒷모습(단지 안에서 찍은). 사원 남쪽가장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탑문(塔門)으로 ‘Raja(왕)’라는 이름처럼 엄청난 등치를 자랑한다. 13층이나 되는 고푸람은 멀리서도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압도한다. 가이드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꼽힌다고 했다.

▼ 힌두교 사원은 고푸람의 크기로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높이가 73m에 이른다니 사원의 규모가 대체 얼마나 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1987년 완공된 이 탑에는 1만개 이상의 조각상과 장식이 만들어져있다고 한다. 수백 년 동안 미완성 상태로 있다가, 힌두교 수도원 단체인 아호빌라 무트(Ahobila Mutt)의 지원을 받아 1987년에 최종 완공되었다.

▼ 사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신들에게 선물하는 꽃을 파는 노점이나 가게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 정자를 닮은 문. 저것도 ‘고푸람’에 포함되나? 아무튼 남쪽 진입로는 순례자의 약 70-75%가 선택하는 가장 대중적인 길이라고 했다.

▼ 단지 내부는 ‘오토 릭샤(Auto Rickshaw)’, 흔히 ‘툭툭(Tuk-Tuk)’이라 불리는 삼륜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 인도의 인구는 2026년 기준 약 14억 6,100만 명이라고 했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 1위에 올라 있다. 거기다 ‘스리랑감’은 단순한 힌두교 사원이 아니라 상가, 주거지역, 신전이 함께 어우러지는 ‘복합단지’이다. 그래선지 사원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거리 전체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 두 번째 문은 ‘남쪽 제2 고푸람(South 2nd Gopuram)’ 또는 ‘랑가랑가 고푸람(Ranga Ranga Gopuram)’으로 불린다고 했다. ‘라자고푸람’에서 상점과 주거지가 있는 구역을 지나자 얼굴을 내민다.

▼ 7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마다 중앙의 신(God) 조각상을 비롯해 다채롭고 화려한 신화 속 인물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 인도는 과일의 천국이라고 했다. 독특한 기후 덕분에 당도가 높고 이국적인 과일들이 가득하단다.

▼ 좌우로 갈려나가는 골목 중 하나. 주거지역으로 연결되나 보다. 스리랑감 사원 복합단지는 신이 모셔진 성소를 중앙에 두고 두껍고 거대한 성벽으로 형성된 직사각형 구역들이 둘러싸고 있다. 복합 단지의 안쪽 네 구역은 사원을 구성하고, 바깥쪽 세 구역은 주거지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사원과 주거지의 경계가 모호해져 사원만을 ‘스리랑감’이라 부르기도 한다.

▼ 사원으로 가는 길. 그늘막이 천정이 씌워져 있었다.

▼ 남쪽 세 번째 문(탑문)인 7층의 ‘카르티카이 고푸람(Karthikai Gopuram)’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 ‘카르티카이 고푸람’은 그늘막으로 인해 구경할 수 없었다. 그저 벽면에 모셔놓은 신상만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참고로 ‘카르티카이 고푸람’은 사원의 7개 동심원 구역(프라카람) 중 세 번째 구역(Enclosure)의 남쪽 진입로에 자리하고 있다. 힌두교의 신성한 별자리에서 이름을 땄으며 남쪽 축을 따라 성소로 들어가는 주요 관문이다.

▼ 사원도시(Temple City)의 활기찬 풍경. 상가는 물론이고 순례자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숙박업소 등이 밀집해 있다.

▼ 남쪽 네 번째 동심원 울타리(Prakara)에 위치한 출입문(고푸람)은 ‘쿠라트 알바르 고푸람(Koorathazhwan Gopuram)’이다. 스리 바이슈나비즘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라마누자’의 수제자인 ‘쿠라트 알바르(Koorathazhwan)’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비슈누파를 탄압하던 촐라 왕의 종교적 박해로부터 스승인 라마누자와 사원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두 눈을 바친 인물로, 교인들로부터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의 상징으로 추앙받는다.

▼ 화려하고 정교한 드라비다 양식의 조각과 신화 속 인물, 신들의 스투코(석회) 조각상들이 다채로운 색상으로 덮여 있다. 문루에 적혀 있는 타밀어는 ‘스리랑감’이라고 했다.

▼ ‘쿠라트 알바르 고푸람’의 뒷모습(사원 안에서 바라본). 화려한 드라비다 양식의 수직 건축미를 자랑한다.

▼ 줌으로 조금 당겨봤다. 현지 신도들은 눈병이나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 저 탑문이나 그의 신전(탑문 왼쪽 건물)을 찾아 기도를 올리기도 한단다.

▼ ‘쿠라트 알바르 고푸람’을 지나면 ‘비슈누 신’의 탈것을 모신 유명한 ‘가루다 만다팜(Garuda Mandapam)’이 있다. 입구를 지키는 저 출입문이 ‘가루다 만다파 고푸람(Garuda Mandapa Gopuram)’일지도 모르겠다.

▼ ‘쿠라트 알바르 고푸람’을 경계로 신전(神殿)이 시작된다. 신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때문에 사원 안에서는 누구나 맨발로 걸어야 한다. 그런데 맨발로 걷는 인도인들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인다. 태양열로 뜨거울 대로 뜨거워진 바닥이 발을 대기조차 힘든데도 말이다. 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희열이 그런 뜨거움조차 잊게 만드는 모양이다. 하지만 신앙이 다른 이방인들로서는 그저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버거울 따름이다.

▼ 첨부된 지도에는 ‘가루다 만다팜(Garuda Mandapam)’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마하발리푸람’이나 ‘탄자부르’에서 들렀던 유적지들과는 달리 건물의 용도를 알 수 있는 그 어떤 안내판도 붙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루다(Garuda)’는 유지와 심판의 신인 비슈누(Vishnu)가 타고 다니는 신성한 새(神鳥)이자 힘과 용기의 신이다. 주로 인간의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 부리, 날개, 발톱을 가진 반인반조(半人半鳥)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힌두 신화에서 신이 타고 다니는 신성한 동물(Vahana) 중 하나로, 악을 제거하고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비슈누 신’을 등에 태우고 우주를 자유롭게 오간다.

▼ 하지만 입구의 돌기둥에는 ‘가루다’ 대신 ‘코끼리’가 새겨져 있었다. 코끼리는 ‘가네샤(Ganesha)’를 상징하는 동물 아닌가? 지혜와 행운, 풍요, 거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장애물까지 모두 없애준다는 그 인기 만점의 신 말이다.

▼ ‘만다팜(Mandapam)’은 공공 의식, 예배, 춤, 그리고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사원 전면에 지어진 기둥이 있는 홀(정자)을 말한다. 넓은 통로와 조화롭게 배치된 기둥들로 마치 극장처럼 꾸며놓았다. 힌두교의 주요 성소인 ‘가르바그리하(Garbhagriha, 본전)’로 진입하기 전에 거쳐 가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신전은 신자들로 넘치고 있었다. 집사람에게 세계 일주를 시켜주겠다며 해외여행을 나선지도 15년. 그동안 수많은 성당과 교회, 모스크를 둘러봤었다. 하지만 이곳처럼 진한 사람 냄새는 없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인도의 힌두사원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들끓는다.

▼ 만다팜을 받치는 수많은 돌기둥들은 힌두교 세계관과 철학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돌로 새긴 경전‘의 역할을 한다. 춤추는 요정, 신화 속 인물 등 정교한 문양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신도들이 어두운 성소로 나아가기 전, 기둥에 새겨진 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세의 잡념을 버리고 영적인 세계로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시각적 매개체이다.

▼ 과거 글을 읽지 못하던 평범한 신도들은 만다팜 기둥의 입체적인 부조를 보며 힌두 경전의 내용과 도덕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전수받았다고 한다.

▼ 신도들이 본전의 주신을 배알하기(Darshan) 전에 모여서 마음을 정돈하고 의식을 준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위에 지친 신도들에게는 잠시나마 쉬는 게 더 중요했을 것이다.

▼ ‘세샤라야르 만다팜(Sesharayar Mandapam)’은 비자야나가라 왕조가 지었다고 했다. 이 홀은 북쪽 끝의 기둥에 새겨진 40마리의 뛰어오르는 동물 조각상으로 유명하다. 거대한 돌기둥에 기수를 태운 야생마가 역동적으로 새겨져 있다. 사나운 호랑이의 머리를 짓밟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계획에 없었던 유적지를 찾아갔는지라 무슨 볼거리가 있는지조차 몰랐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에서 사진을 빌려왔다

▼ 밖으로 나오면 부속 신전들을 만나게 된다. 그 수가 무려 50개에 이른단다. 거기에 성스러운 연못도 9개나 된다니 ‘스리랑감 사원’이 얼마나 큰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 UNESCO는 스리랑감 사원의 기원을 BC 3세기부터 AD 4-5세기까지의 상감시대(Sangam Age)로 보고 있었다. 이후 촐라·판디아·호이살라·비자야나가라 등의 왕조를 거치면서 확장 및 개·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단다.

▼ 사원은 넓은데다 사당(Temple)과 만다팜(Mandapam)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하지만 힌두교 신자들은 헷갈리지도 않는 듯 잘만 찾아다닌다.

▼ 이름조차 확인 못한 고푸람. 스리랑감 사원의 볼거리는 드라비다 건축양식의 ‘고푸람’이 단연 돋보인다. 남녀 신, 서사시 속 인물, 신화 속 동물들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는데, 생동감 넘치는 색상과 정교한 조각이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만든다. 스리랑감 사원에는 저런 고푸람이 21개나 되며, 개개의 탑은 저마다 독특한 특징과 조화로운 디자인을 자랑한다.

▼ 불볕더위에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진 대리석 바닥은 숫제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부리나케 지성소의 입구로 여겨지는 열주홀로 들어서고 본다.

▼ 스리랑감 사원은 비자야나가라 왕조(1336-1565) 때 만들어진 천 개의 ‘기둥’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천주홀(千柱室, Garbhagriha)’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름과는 달리 실제 기둥의 수는 953개라고 한다.

▼ 사원은 기둥과 내력벽만 있는 개방형의 필로티(Piloti) 구조이다. 수백 개의 기둥이 줄을 지어 늘어서있다. 바닥에 앉아 쉬거나 잠을 자고 있는 신자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하루 종일, 아니 며칠을 머물면서 기도를 드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 지성소 안에는 ‘거대한 뱀(Ananta Shesha)’에 기대어 있는 ‘비슈누 신상(Ranganatha)’이 모셔져 있다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스리랑카에서 인도, 그리고 스리랑감까지 이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구경할 수는 없었다. 신상이 모셔진 가장 안쪽의 지성소는 힌두교도(Hindus only)만 입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이방인들은 아르다(Ardha), 마하(Maha), 칼리아나(Kalyana) 같은 만다팜(Mandapam)이나 둘러볼 수밖에. 참고로 ‘스리랑감 사원’은 현재도 매일 제사와 의식이 엄격하게 거행되는 ‘살아있는 사원’이다. 이교도의 지성소 출입이 금지되는 이유이다.

▼ 홀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벽화를 만난다. 약초와 식물성 염료를 사용해서 그린 ‘프레스코화’라는데 당시의 문화와 전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림을 통해 힌두 이야기를 들려주고 도덕적 교훈을 가르쳐준다고 보면 되겠다.

▼ 타밀어로 ‘나이두 커플’이라고 적혀있단다. 스리랑감 사원을 후원하고 기부한 나야크 왕과 왕비(커플)의 조각상인 모양이다.

▼ 저것은 또 무슨 신이지? 이번이 두 번째 인도 나들이이지만 처음으로 보는 형상이다. 맞다. 힌두교의 신은 시공을 초월한다고 했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창조되고 있으며, 새로운 신이 미래에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 사람들에게 힌두교는 그들의 생활 자체라는 얘기다. 그러니 힌두교도도 아닌 필자에게 신의 정체가 무에 그리 중요하겠는가.

▼ 뭔가를 팔고 있는 것 같은데 묻는 것이 귀찮아 그냥 지나쳐버렸다.

▼ 남인도 지역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 문두(Mundu 또는 Veshti)는 남인도(특히 케랄라와 타밀나두 주) 남성들이 허리에 둘러 입는 전통 치마 형태의 천이다. 일반적인 도티와 달리 다리 사이로 천을 빼지 않고 일자로 감싸며, 날씨가 덥거나 활동할 때는 천의 아랫부분을 위로 접어 허리에 묶어 반바지처럼 입기도 한다.

▼ 무더위는 이방인들만 지치게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 ‘스리 하누만 신사(Sri Hanuman Temple)’라고 한다. 힌두교의 원숭이 신이자 힘과 헌신의 상징인 하누만(Hanuman)을 모시는 모양이다. 라마야나 신화 속에서 하누만은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 왕을 극진히 모신다. 때문에 비슈누 사원 안에서 지성소를 수호하거나 바라보는 형태로 하누만 신사를 짓기도 한단다.

▼ 사원 구역을 빠져나오는데 가이드가 옥상으로 올라가 볼 것을 권했다. 사원과 도시가 합쳐진 ‘스리랑감 사원’이 너무 넓기 때문에 한눈에 살펴보기 위해서는 ‘옥상전망대(Roof Viewpoint)’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물론 약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한다.

▼ 맞다. 옥상은 사원을 둘러싼 7개의 동심원 벽과 그 위에 솟아오른 21개의 화려한 탑(고푸람)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viewpoint’였다. 하지만 바닥이 너무 뜨거운 것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뒤꿈치로 서서 사진을 있는 저 인도 청년이 그 증거이다.

▼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탑 중 하나인 73m 높이의 '라자가푸람'도 선명하게 보인다.

▼ 21개 고푸람 중 유일하게 백색으로 칠해진 ‘벨라이 고푸람(Vellai Gopuram)’도 눈에 담을 수 있다. 사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무희의 애국심이 깃든 성스러운 탑문이다. 1323년 이슬람 델리 술탄국 군대가 사원을 침략하여 황금 신상(Namperumal)을 약탈하려 했다. 이때 신상을 대피시킬 시간을 벌기 위해, 사원의 무희(Devadasi)였던 벨라야말이 이슬람 사령관 앞에서 밤새 춤을 추며 유혹했고, 사령관을 사원 동쪽 고프람 꼭대기로 유인한 뒤 밀어서 떨어뜨려 처단했단다. 자신 역시 비슈누 신의 이름을 외치며 탑 아래로 투신하여 정절과 신앙을 지켰다나?

▼ 옥상이라고 해도 주변을 압도할 만큼 높지는 않아 사원단지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원의 전모를 가늠해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스리랑감 사원’은 비슈누 신의 여덟 거처 중 하나인 곳으로 비슈누 신자들에게는 가장 신성한 순례지로 받아들여진다. 북부의 바라나시가 시바의 성지, 서부의 드와르카(Dwarka)가 크리슈나의 성지이듯이. 무려 156에이커에 이르는 크기도 만만찮다. 티베트 라사의 포탈라궁,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페루의 마추픽추, 바티칸시티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 꼽히기도 한다.

▼ 비슈누 신이 안치된 본전 성소의 지붕 ‘황금 비마나(Vimana)’를 가까이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상단부(박공) ‘비슈누 신’의 원초적이고 신성한 형상인 파라바수데바(Paravasudeva)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나?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바닥이 하도 뜨거워서 ‘viewpoint’까지 다가갈 엄두를 못 냈기 때문이다. 본전 성소의 입장이 불허되는 이교도들에게는 유일한 조망처인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에서 사진을 빌려왔다.

▼ ‘라자 고푸람’을 빠져나가면서 투어는 종료된다. 스리랑감 사원은 하나의 본당만 가지고 있는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자급자족형의 미니 도시라는 게 특이했다. 예배 장소인 동시에 지역 주민들의 생활공간 역할도 한다. 단지 안에는 시장, 신들을 모신 사당, 승려 숙소, 주택 등 다양한 공간이 있었다.

▼ 밖으로 빠져나오니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수식어부터가 ‘Mahatma(위대한 영혼)’인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발길을 잠시 멈추고 위대한 영혼에 경의를 드려본다.

▼ ‘당신이 어떤 세상을 보고 싶든, 당신 스스로가 먼저 그렇게 변하십시오.’ 간디의 핵심 철학이니 타밀어라고 해서 못 알아들을 것도 없다.

▼ 타밀나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초가집 스타일의 로컬 레스토랑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쿠라이 카다이(Koorai Kadai)’라고 하는데, 타밀어로 ‘Koorai’는 마른 나뭇가지와 짚을 엮어 만든 초가지붕을 ‘Kadai’는 상점이나 식당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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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5코스(사가정역 - 광나루역)
일 시 : ‘26. 10. 5(월)
소재지 : 서울시 중랑구 및 광진구 일원
코 스 : 사가정역→깔딱고개 쉼터→용마산5보루→아차산→아차산 해맞이공원→아차산 어울림공원→광나루역(거리/시간 : 4.6km+1.6km, 실제는 8.23km를 3시간 40분에)
특징 :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21개 코스, 156.5km 규모의 순환형 트레일이다. 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고덕산·일자산·대모산·우면산·관악산·호암산·안양천·노을공원·봉산·북한산 등 서울을 둘러싼 자연과 도시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 09 : 50. 들머리는 사가정역(중랑구 면목동)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사가정(四佳亭)’은 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용마산 부근에서 정자를 짓고 살았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사가정’이란 호(號)처럼 정자 주변에 자신이 좋아하는 매화·연꽃·해당화·대나무 등을 심어두고 즐겨 감상했다나?

▼ 용마산과 아차산의 능선을 따라 걸으며 서울의 수려한 경관과 삼국시대의 역사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이다. 난이도는 ‘중’. 길이(4.6km)는 짧으나 사가정역에서 시점(깔딱고개 쉼터)까지의 접근거리가 1.6km, 그것도 가파른 오르막길이라는 것은 부담이다.

▼ 09 : 50. ‘사가정로’를 따라 동진(용마터널 방향)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 09 : 57. 도심 속 쉼터인 ‘사가정공원’. 어린이놀이터를 비롯해 피크닉장, 다목적광장, 자연형 계류(냇가) 등을 조성 구민들에게 쾌적한 힐링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용마산 등산로의 거점답게 단체로 몸을 풀고 있는 등산객들도 눈에 띈다.

▼ 10: 04. 공원을 지나자 계단 길이 시작된다. 초입의 이정표가 5코스 시점인 ‘깔딱고개 쉼터’까지 550m나 남아있다고 겁부터 준다. 그것도 구간 전체가 계단이니 자칫 ‘서울둘레길’과 만나기도 전부터 기운이 다 빠져버릴 수도 있겠다.

▼ 10 : 11. 용마제일약수터. 물은 흘러나오나 마실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 계단 길은 이후로도 한참이나 더 계속된다.

▼ 자녀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무한대라고 했던가?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텐데 딸까지 등에 업었다.

▼ 10 : 22.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깔딱고개 쉼터’가 있는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정표(광나루역 4.6km/ 화랑대역 7.7km, 이하 ‘종점까지’로 표시)가 사가정역에서의 접근거리가 1.6km임을 알려준다.

▼ 4코스와 5코스의 경계임을 알려주는 시설물들은 ‘쉼터’ 맞은편에 세워져 있었다. 완주 인증을 받으려면 21개 코스에 있는 스탬프 28개를 모두 찍어야 하니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 ‘깔딱고개’를 오르면서 5코스 답사를 시작한다. 깔딱고개란 너무 가파르고 힘겨워서 오를 때 숨이 깔딱거릴(넘어갈) 정도로 고된 고개나 비탈길을 뜻한다. 그러니 저 가파른 계단길이 끝도 없이 놓여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그렇다고 겁부터 먹지는 말자. 속도만 조금 떨어뜨리면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올라가면서 만나는 ‘전망대’도 작은 위로가 된다. 난간에 서자 백운대·보현봉·비봉 등을 거느린 북한산으로도 모자라다는 듯, 북악산·인왕산·안산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경사가 하도 가파르다보니 계단 놓기도 쉽지 않았나보다. 요리조리 몸을 비틀어가며 힘겹게 고도를 높여간다.

▼ 또 다른 전망대를 만났다. 이번에도 역시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가며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 탁 트인 한강의 물줄기와 함께 서울 동남권과 하남시의 스카이라인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 10 : 37. ‘깔딱고개’의 끝. 계단의 수는 570개라고 한다. 안내판은 계단을 오르면서 90kcal의 열량을 소모시켰고, 이로 인해 수명이 35분 정도 늘어났다며 너스레를 떤다.

▼ 이후부터는 전형적인 능선 길이 이어진다. 가파르지 않은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고 보면 되겠다.

▼ 용마산은 나무가 많다며 육산(肉山)으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는 암릉과 바위가 많고 경사가 가파른 골산(骨山)의 성격을 띠고 있다. 덕분에 곳곳에서 시야가 열리면서 멋진 풍경화를 펼쳐 놓는다.

▼ 10 : 43. 안내판이 저 계단의 위에 ‘용마산 5보루’가 있다고 알려준다. ‘보루(堡壘)’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소규모 성곽이나 요새를 말한다. 삼국시대 때 고구려에서 쌓은 7개의 보루가 용마산 능선에 분포되어 있다.

▼ 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계 확보를 위한 ‘고지 선점’이 필수다. 용마산 5보루도 해발 316.3m의 봉우리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은 헬기장으로 변해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 이름(堡壘)에 걸맞게 뛰어난 조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북의 드넓은 시가지가 발아래로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 발상의 전환? 길을 내면서 나온 돌들을 허투루 버려두지 않았다. 나무 밑동을 두른 돌담을 쌓는데 활용한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우리가 눈발이라면’이 적힌 시판도 눈에 띈다.

▼ 10 : 50. 해발 342m의 고지는 ‘제2헬기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울퉁불퉁한데다 바위까지 널려있어 헬기장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 이정표(종점까지 3.9km)가 오른쪽 600m지점에 ‘용마산’이 있음을 알려준다.

▼ 평균에 못 미치는 5코스의 길이(4.6km)를 감안 ‘용마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정상 조금 못미처에서 아래로 뚝 떨어지기도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 10 : 56. 아차산과 용마산을 잇는 해발 327.3m의 주능선에 위치한 ‘제3헬기장’. ‘용마산 4보루’가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둘레는 263m, 용마산 일대 보루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했다. 하지만 성벽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숲으로 둘러싸인 탓에 조망도 허락되지 않았다.

▼ 안내판은 용마산과 아차산 일대의 보루들이 사적 제455호(아차산 일대 보루군)로 지정·보호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아차산(5), 용마산(7), 망우산(1), 홍련봉(2), 시루봉(1), 수락산(1) 등에 총 17개의 보루가 분포되어 있다.

▼ 잠시 후 바윗길을 만난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용마산은 굵직한 암릉과 암반이 많아 산세가 다부지다. 1961년 이후 수도권의 건축 석재를 캐던 거대한 채석장이 있었고, 그게 요즘은 용마폭포공원으로 변해 밤낮으로 시민들을 맞이한다.

▼ 이곳은 조망의 명소이기도 하다. 서울의 새로운 Landmark로 굳어진 ‘롯데타워’를 배경삼아 인생샷을 노려볼만한 곳으로 꼽히기도 한다.

▼ 조금 더 걷자 쉼터를 겸한 야외 체육시설(일명 산스장)이 맞는다.

▼ 11 : 03. 용마산(龍馬山, 348m) 정상. 한강을 감싸는 보배로운 산으로 삼국시대 때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래선지 정상석 뒷면에 ‘고구려의 기상’이라고 적어놓았다. 하나 더. ‘용마’에 얽힌 사연도 들어보도록 하자. 용마산 자락에서 큰 장군이 될 만한 아기가 태어났던 모양이다. 하지만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한 부모가 아기를 죽였고, 그러자 산에서 주인을 잃은 용마가 나와 슬피 울다가 어디론가 날아갔다나? 옛날에는 집안에 힘이 센 장사가 태어나면 가족 모두를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고 한다.

▼ 맨 꼭대기에는 1910년에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토 측량 기준점 중 하나인 ‘용마산 대삼각본점(서울 미래유산 제196호)’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인증사진을 저렇게 찍나?

▼ 시야는 꼭대기 근처에서 열리고 있었다.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 서울 북동부를 에워싸고 있는 수려한 산줄기가 파노라마로 이어진다.

▼ 중랑구에서 가장 높은 산답게 정상은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 이들을 노리는 노점상까지 들어섰을 정도다.

▼ 11 : 31. ‘제2헬기장’으로 되돌아와 길을 이어나간다. 그러자 ‘아차산전망대(Google Map의 표기)’가 잠시 들렀다가란다.

▼ 난간에 서자 굽이도는 한강과 함께 하남시 일원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서울 동남권과 롯데월드타워가 포함된 잠실 일대(사진은 생략)가 펼쳐진다.

▼ 11 : 39. 용마산과 아차산을 잇는 능선의 안부. 이정표(종점까지 3.6km)가 오른쪽으로 ‘서울시 테마산책길(긴고랑공원)’이 갈려나감을 알려준다. 서울 시민들이 도심 속에서 자연과 문화를 즐기며 걸을 수 있도록 선정한 도보길로, 총 150개 코스(연장 428.3km)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의 매력적인 풍경과 이야기를 담아 총 5가지 테마로 나뉘어 운영된다.

▼ 시판에 둘레길 지도를 끼워 넣은 ‘구리시’의 지혜가 돋보인다.

▼ 한껏 여유부리며 내려오던 능선은 테마산책길을 기점으로 오르막으로 변한다. 용마산에서 아차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지 싶다.

▼ 11 : 45. 아차산 4보루. 475년(장수왕 63) 고구려가 한강 유역에 진출한 후 551년 백제·신라 연합군에 의해 물러날 때까지 사용한 전초기지로 아차산 북쪽 봉우리에 걸터앉아 있다. 용마산과 아차산을 답사하면서 만난 보루 중 유일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통제하기 위해 구축한 아차산 일대의 보루군 중 핵심이라고 했다. 둘레는 249m 내외로, 아차산 3보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래선지 보루 위로 내놓은 80m 남짓의 길이 무척 길어보였다.

▼ 산성에서나 볼 법한 ‘치(雉)’도 갖고 있었다. 이름처럼 꿩(雉)이 자기 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듯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다각도에서 감시하고 효과적으로 격퇴하기 위한 시설이 ‘치’이다. 그러니 이름만 보루이지 산성과 다름없다고 보면 되겠다.

▼ 복원을 마쳤으니 자랑도 해야지 않겠는가. 4보루의 이력과 출토 유물을 적은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 다시 길을 이어나간다. 길가 풍경은 시장바닥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길은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길가에 놓아둔 벤치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아차산이 도심 공원을 산책하듯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 맞다. 아차산 등산은 ‘서울시 테마산책길’에 꼽혔을 정도로 수월하다. 참고로 서울시 테마산책길은 숲이 좋은 길(75개소), 전망이 좋은 길(23개소), 역사문화길(24개소), 한강·하천이 좋은 길(23개소), 계곡이 좋은 길(5개소) 등 다섯 가지 테마로 분류된다.

▼ 아차산도 육산(흙산)이라기보다는 골산(바위산)에 가깝다. 덕분에 심심찮게 바윗길을 만난다. 기형의 바위들을 눈에 담아가며 걷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 12 : 00. 아차산의 정상 조금 못미처에서 길이 나뉘고 있었다. 이정표(종점까지 3.0km)는 왼쪽 산비탈을 가리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상을 에둘러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상을 빼먹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 50m쯤 올라가자 아차산(峨嵯山, 295.7m) 정상이다. 여기서 ‘아차’는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의 줄임말이다. 명종이 홍계관의 점괘가 귀신같다는 얘길 듣고 궤짝 안에 쥐 한 마리를 숨겨놓고 안에 몇 마리가 들어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홍계관이 ‘다섯 마리’라고 하더란다.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든 임금이 사형을 명했고, 혹시나 해서 배를 갈라보니 새끼 네 마리가 들어 있더라나? 아차! 했지만 홍계관은 이미 죽고 난 후였다. 본래는 ‘아단산(阿旦山)’이었는데 말년에 이성계가 ‘이단(李旦)’으로 이름을 고치자 백성들이 피휘(避諱) 전통에 따라 글자 모양이 유사한 ‘또 차(且)’ 자를 썼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현대에 이르러 산의 형세를 뜻하는 한자인 峨嵯山으로 변했다.

▼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아차산은 용마봉(348m)과 망우현(282m)을 아우르는 산군이었다. 요즘은 용마산, 망우산으로 나누어 부르는 추세라고 한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높이는 낮지만 손꼽히는 개방감과 아름다운 한강 River View를 자랑한다. 한강 너머의 하남시와 예봉산·검단산의 산세가 어우러지는 자연 풍경도 함께 펼쳐진다.

▼ 아차산 정상은 ‘아차산 3보루’를 겸한다. 성벽 둘레는 450m, 아차산 보루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 12 : 06 – 12 : 26. 정상 근처에서 간식을 즐긴 다음 다시 길을 나섰다. 벤치는 앉을자리가 없었지만 널찍한 바위가 곳곳에 널려있어 편히 쉬다 갈 수 있었다.

▼ 잠시 후 만난 전망대. 이곳도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볼 수 있도록 했다.

▼ 서울 도심은 물론이고 인왕산, 안산, 남산, 관악산 등 이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12 : 31. 그렇게 5분 남짓 걸었을까 길이 나뉘고 있었다. 이정표(종점까지 2.6km)는 계속해서 능선을 타란다. 왼쪽은 범굴사와 ‘아차산 2보루’로 가는 길이다.

▼ 잠시 후 만난 전망대는 분재처럼 예쁜 노송을 품었다. 이번에는 조망도 대신 아차산·용마산 등산안내도를 세워놓았다. 지도에 표시된 ‘아차산 명품소나무 1호’가 저 노송인 모양이다. 아무튼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아까 아차산 정상 근처에서 만났던 전망대와 거의 비슷했다.

▼ 12 : 38. 해발 267.2m의 작은 봉우리 정상부에 위치한 ‘아차산 5보루’는 스치듯 지나간다. 보루가 통일신라 들어 기능을 상실하자 무덤을 썼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울타리를 둘러 출입을 막고 있었다.

▼ 12 : 40. 조금 더 걸으면 ‘아차산 1보루’이다. 아차산 보루군 중 가장 남쪽 해발 252.4m 봉우리에 자리하고 있다.

▼ 둘레는 123m,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룬다. 얼핏 흙으로 된 언덕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보루 위와 아래로 길이 나있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진행하면 된다.

▼ 1보루는 조망의 명소이기도 하다.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구리시, 강동구 일대, 남한산성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새해 해돋이 명소로도 사랑받는다고 한다.

▼ 몇 걸음 더 걷자 또 하나의 전망대가 반긴다. 이처럼 용마산과 아차산은 골산의 특징대로 곳곳에서 시야가 열린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몇 곳에 전망대를 세워놓았다.

▼ 난간에 서면 한강과 이를 둘러싼 시가지, 그리고 검단산의 수려한 경관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12 : 46. 아차산의 명소 중 하나인 ‘해맞이공원(또는 광장)’. 탁 트인 한강과 서울 도심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완만한데다 접근성까지 좋아 매년 새해 첫날이면 수많은 시민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찾는다.

▼ 2000년 첫날? ‘밀레니엄 버그’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던 필자와는 달리 광진구청장은 뭔가 이룰 꿈에 벅차있었나 보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갈 때 컴퓨터가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00')만 인식하여 2000년을 1900년으로 혼동하고 오작동을 일으킨다는 ‘전산 오류’ 문제로 전 세계가 골머리를 썩였었다. 필자도 관련 업계·연구소 등과 함께 1999년 내내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점철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니 마지막 날 밤을 어떻게 편히 잘 수 있었겠는가.

▼ 이곳에도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 볼 수 있게 했음은 물론이다.

▼ 해맞이공원은 높이가 200m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울 동부권에서 가장 탁 트인 파노라마 한강 뷰와 도시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 명소로 꼽힌다. 굽이쳐 흐르는 한강 줄기와 함께 시그니처 뷰인 롯데월드타워가 정면으로 다가온다.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 공원에서 내려가는 길도 환상적인 뷰를 보여준다. 조금 전 전망대에서 보던 풍경들을 마주보며 걷는 행복한 구간이다.

▼ 서울둘레길 5코스는 ‘구리둘레길’과 함께 쓴다. 곳곳에서 구리둘레길 시설물들을 만나게 됨은 물론이다.

▼ 12 : 55. 고구려정 갈림길. 아차산에서 ‘기(氣)’가 가장 왕성하다는 ‘고구려정’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나뉘나 이정표(종점까지 1.9km)에 나타나있지 않아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떨어져가는 ‘기’를 조금이나마 보충해볼까 했는데 말이다.

▼ 12 : 58. 이번에는 ‘아차산성’으로 가는 길이 나뉜다. 이정표(종점까지 1.7km)는 아차산성을 비켜가라고 지시한다.

▼ 그렇다고 아차산성을 빼먹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오르막길을 잠시 오르자 ‘아차산성(阿且山城, 사적 제234호)’이 반긴다. 해발 200-285m 고지, 한강 유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한강 유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대립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 산성은 출입을 막고 있었다. 성은 286년(백제 책계왕 1) 고구려의 침입을 대비해 쌓았다고 했다. 당시는 ‘아단성(阿旦城)’으로 불리었는데, 백제 개로왕(蓋鹵王)이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전사한 비극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신라와의 전투 중 온달 장군이 전사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 문화생태 탐방 때는 문을 열기도 하는 모양이다.

▼ 13 : 08. ‘서울둘레길’로 합류하기 위해 샛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나름대로 길이 나 있어 어렵지 않게 둘레길에 합류할 수 있었다.

▼ 13 : 18. 서울둘레길로 내려섰다.

▼ Kopi Bali? 인도네시아어로 ‘커피’를 뜻하는 Kopi와 지명인 ‘Bali’의 합성어로, 발리 고산지대의 화산재 토양에서 자라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의 명품 커피를 말한다. Premium Cafe라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나보다.

▼ 13 : 31. 아차산관리사무소. 등산객들을 위한 안내와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곳으로 공중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 관리사무소 앞에 서울둘레길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신 종점인 ‘광나루역’에는 스탬프보관함이 없었다.

▼ 서울의 아침이 시작되는 아차산에서 동북아를 호령하던 고구려의 기상과 혼을 이어받아 광진구민이 꽃피우리라.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그가 품은 웅대한 혼이 성큼 다가온다. 옆의 팻말은 아차산(성)의 한자 표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 12 : 33. 아차산 숲길을 빠져나오면 ‘영화사로’. 서울둘레길은 영화사로를 따라 남진(워커힐 방향)한다. 아차산 자락에 위치한 고찰 영화사(永華寺)에서 길의 이름을 따왔다.

▼ 아차산 등산로 입구. 아차산 종합안내도와 역사유적, 동행숲길 등 다양한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다.

▼ 아차산 어울림광장. 아차산을 찾는 등산객들과 지역 주민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조성된 열린 광장이자 정원이다.

▼ 어울림정원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20년이 지나 노후화된 ‘아차산 생태공원’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여 2023년 새로운 이름(어울림정원)과 여섯 가지(바람·장미·향기·와당·소리·돌) 테마로 재탄생시킨 자연친화적 시민 휴식공간이다.

▼ 고구려 영양왕 대의 명장 온달장군은 590년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이북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해 출정했다가 아단성(阿旦城) 전투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한다. 그런데 온달의 관을 운구하려 하자 땅에서 움직이지 않았는데, 뒤늦게 달려온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생사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라고 달래자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는 애절한 설화가 이 지역에 전해져온다. 그래선지 공원에 온달장군과 평강공주로 여겨지는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 공원에는 ‘숲속 도서관’이 들어서 있었다. 책을 읽으며 동시에 완벽한 휴식과 힐링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문화 공간이다.

▼ 아차산 여가센터도 들어서 있었다. 기존 생태자료실을 리모델링하여 조성한 숲속 힐링 및 커뮤니티 공간이다. 숲길 걷기와 명상, 요가, 다도, 아로마 테라피 등 다양한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단다.

▼ 역사문화홍보관은 시설개선을 한다며 문을 닫아걸었다.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아차산의 역사적 가치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13 : 45. 공원 투어를 마치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도로(영화사로) 왼쪽에 널찍하니 데크길이 나있다.

▼ 뒤돌아본 어울림정원.

▼ 13 : 47. ‘워커힐로’를 횡단한 다음, 맞은편 숲(이정표 : 종점까지 700m)속으로 들어간다. 별도의 명칭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파고라와 벤치 등 공원처럼 잘 꾸며 놓았다.

▼ 숲속에는 광진구에서 운영하는 ‘자투리 텃밭’이 있었다. 구민들의 건강한 여가 활동을 위한 대표적인 도심 속 주말농장으로 세대별로 손바닥만한 자투리땅(개인 6㎡/ 단체 15㎡)이 배분된다고 했다. 아무튼 ‘나만큼 너도 소’, ‘정채원 편식하지마’, ‘승아 맛있게 먹자’ 등 가족 팻말에 적힌 예쁜 이름들을 읽으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 자투리텃밭은 도심 내 방치된 유휴 토지를 정비하여 조성한 소규모 도시형 경작 공간이다. 주말농장처럼 먼 외곽으로 나가지 않고도 집 근처 생활권에서 친환경 작물을 직접 재배할 수 있어 주민들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 텃밭을 지나 마을 안길로 들어간다. 흔하디흔한 골목길을 홍보용으로 탈바꿈시켜놓은 광진구청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담장 곳곳에 감성적인 글귀나 안내 문구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산책로의 정취를 더해준다.

▼ 소문난 맛집도 꽤 여럿 들어서 있었다. 외부 벽면에 방송 출연 사실을 알리는 홍보 현수막이 걸려있어 등산객들의 관심을 끌게 만든다.

▼ 광장중학교 담벼락도 지역의 역사를 전하는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광장동과 구의동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강을 둘러싼 치열한 영토 전쟁이 벌어졌던 고대사의 중심지이자, 조선시대 교통의 요충지였다.

▼ 14 : 00. 골목을 빠져나와 마주하는 ‘천호대로’를 따라 동진(한강 방향)한다.

▼ 14 : 02. 광나루역에 도착하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5코스와 6코스의 경계가 ‘광나루역 2번 출구이지만 이를 알리는 시설물은 어느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아무튼 오늘은 8.23km를 3시간 40분에 걸었다. 원 코스는 4.6km, 여기에 접근거리(1.6km)를 더해봐야 6.2km에 불과하지만 용마산 정상과 아차산성, 아차산 어울림공원 등을 둘러보느라 2km 정도를 더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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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 남인도(South India)–타밀나두(Tamil Nadu)-탄자부르(Thanjavur)-마라타 궁전(Maratha Palace)
여행일 : ‘26. 3. 23(월) - 3. 28(토)
세부 일정 : 첸나이→마하발리푸람→퐁디셰리→탄자부르→마두라이→코친
특징 : 탄자부르 중심부에 위치한 복합궁전. 16세기 나야카 왕조가 처음 건설을 시작했으며, 이후 17-19세기 탄자부르를 통치한 마라타 왕조에 의해 증축되었다. 현재는 왕실 후손들이 거주하는 일부 공간을 빼고는 박물관·미술관·도서관 등으로 개방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남인도(South India), 5개 주(州)와 1개의 특별자치구(프랑스령이었던 ‘푸두체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가 진출해있는 ‘타밀나두(Tamil Nadu)’와 인도 향신료특구 ‘케랄라(Kerala)’를 다녀왔다.

▼ 타밀나두(Tamil Nadu). 인도 남부의 대표적인 제조업 중심지로 자동차·전자·중공업 산업기반과 항만·물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타밀나두 주의 중심부(주도인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320Km 지점)에 위치한 ‘탄자부르’는 역사 깊은 고도(古都)로 과거 강력했던 중세 촐라제국의 수도였다. 당시 촐라제국은 인도 전역, 실론 일부, 몰디브, 래카다이브까지 지배했다.

▼ 버스에서 내려 ‘탄자부르’ 시가지를 걷는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탄자부르 궁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대로(이스트람파드 로드)’에서 버스가 멈췄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대형버스의 진입을 금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거나 말거나 여행자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덕분에 ‘올드 타운’을 걸어보는 기회를 얻었으니 새옹지마(塞翁之馬)라나?

▼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신도시에 가까웠다. 뭔가 인도에서만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이 늘어서있을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말이다. 아니 남인도 힌두 건축물의 상징인 ‘고푸람(gopuram)’을 눈에 담으며 작은 위로는 받을 수 있었다.

▼ 모닝커피 삼아 마셔보라는 가이드의 추천으로 ’차이(Chai)‘ 집에 들렀다. 홍차 찻잎에 우유, 설탕, 다양한 향신료를 넣고 함께 끓여낸 인도식 ’밀크 티‘인데, 커피에 길들여진 필자의 입맛에는 그저 그렇고 그랬다.

▼ 골목을 빠져나와 이번에는 ’이스트메인 스트리트‘를 따라간다. ‘탄자부르’는 익산시(전북)와 비슷한 규모(30만 명의 주민)의 중소도시다. 하지만 눈앞에는 우리나라의 읍(邑)에 가까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만큼 개발이 덜 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 남인도는 많은 면에서 북인도와 다르다. 가장 다른 것은 ‘언어’라 하겠다. ‘힌디’를 쓰는 북인도와는 달리 ‘타밀어’를 사용한다. 타밀어와 영어로만 쓰여 있는 안내판을 종종 만날 수 있는 이유다. 식당에서도 난(Naan)이 빠지지 않고 나오던 북인도와는 달리 남인도에서는 쌀밥 위주로 올라오고 있었다.

▼ 코끼리가 지켜주는 ‘탄자부르 궁전’ 정문. 문루에 ‘Complex’라는 단어가 추가됐다. 왕족의 거주 공간 말고도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이 함께 들어있는 ‘문화유산 단지’이기 때문이다. 궁전은 16세기 초반인 1534-35년 경 ‘나야크(Nayaka)’ 왕조가 처음 지었다. 문학과 예술, 특히 카르나틱 음악과 예술을 크게 장려하여 문화적 황금기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앞에서 거론하던 ‘촐라(Chola)’ 왕조는 인접한 ‘판디아(Pandya)’ 왕조의 공격을 받아 1279년에 이미 멸망한바 있다.

▼ 건물배치도. 동선(動線)으로 연결되지 않는지 18세기 후반 마라타 왕조의 세르포지 2세(Serfoji II)가 지었다는 ‘사르자 마디(Sarjah Mahdi)’는 찾아보지 못했다. 아니 왕족들이 살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현재 마라타 왕실의 후손인 ‘보슬레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니 말이다. 아무튼 이슬람 양식과 남인도 드라비다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높은 미나레트(첨탑)와 정교한 조각 등 볼만한 것이 꽤 많다고 했는데.

▼ 관광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건축물의 외형을 사진에 담아놓았다. 마라타 궁전은 총 8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명확한 표지판이 없어 길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 궁전으로 가는 길. 담벼락을 민속화로 화려하게 치장해 놓았다.

▼ ‘탄자부르’는 찬란한 촐라·나야크·마라타 왕조의 문화유산과 강렬한 힌두교 신앙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이로 인해 연중 다채로운 힌두교 축제가 개최된다고 했다. 그 장면들을 그려놓았지 않나 싶다.

▼ 일기예보는 오늘 34도까지 올라간다고 했지만 매표소에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옷매무새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표를 팔고 있었다.

▼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간다.

▼ 아치형 문이 궁전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입장료까지 받는 유적지라면 조금 더 깨끗하게 관리하면 어떨까?

▼ 천정의 조형물.

▼ 궁전 단지는 거대한 미로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현지 가이드는 이리 돌고 저리 틀면서 잘도 간다.

▼ 주 정부 고고학부 사무실이란다. 판매용 책자도 발간하나 보다.

▼ ‘탄자부르’ 소재 주요 관광지. 필자는 ‘브라하디스와라 사원’과 이곳 ‘마라타 궁전’만 둘러볼 수 있었다.

▼ 조금 더 들어가자 화려한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벨 타워(Bell Tower)’와 ‘아스널 타워(Arsenal Tower)’가 함께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드디어 ‘마라타 궁전’으로 들어가는 가 보다.

▼ 문루에 ‘사라스와티 마할 도서관(Saraswathi Mahal Library)’이라고 적혀있었다. 나야크 왕조가 16세기에 세운 왕실 도서관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 중 하나이다. 17-19세기 마라타 왕조에 의해 확장되었으며, 특히 ‘라자 세르포지 2세(Raja Serfoji II, 재위 1787-1793)’가 유럽 등지에서 수많은 희귀 서적과 필사본을 수집하여 도서관의 기틀을 완성했다. 중세 및 고대 아시아의 지식을 담은 약 49,000권에서 60,000권 이상의 방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인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도서관(Most remarkable library of India)’으로 꼽기도 했다.

▼ 코끼리와 난디가 겹쳐있는 천장의 그림. 돋을새김과 채색을 결합한 독특한 양식이다. 아무튼 건물은 천정이나 벽면, 기둥 등을 화려하게 치장해 놓았다. 아라베스크 문양을 닮은 것 같기도 한데 들어가서는 안 되는 문양들이 눈에 띄어 헷갈리게 만든다.

▼ ‘왕실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건물에는 ‘Saraswati Mahal Library’라고 적혀있었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museum’ 표지판이 전부다. ‘도서관’은 대체 어디로 갔지?

▼ ‘사진촬영 금지’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관리인까지 두고 있으니 눈요기로 끝마칠 수밖에 없었다. 참! 대가를 요구했지만 촬영이 허락되는 장소도 몇 군데 있었다.

▼ ‘사르포지 2세’가 통치하던 19세기 초반의 왕실유물들을 다양하게 전시해 놓았다. 그림과 서책 등도 전시되어 있었으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참! 박물관과 붙어있는 ‘사라스와티 마할 도서관’은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했다. 종려나무 잎에 기록된 3만여 종이 넘는 필사본을 저장하고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왕실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아닐까 싶다. ‘나야크 궁전’은 1674년 ‘마라타 왕조’가 탄자부르 지역을 점령한 후 왕실의 공식 거처가 되었다. 참고로 ‘마라타 왕조(제국 또는 연맹)’는 1674년부터 1818년까지 인도 아대륙(亞大陸)을 지배하던 강력한 힌두교 국가이다. 쇠퇴해가던 무굴제국에 맞서 인도 중부 데칸 고원을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한때 무굴제국의 수도 델리를 점령하는 등 사실상 인도의 패권을 장악했다.

▼ 이동 중에 만난 벽화. 힌두 양식으로 그려져 있다. 왕실 접견실(Court Hall)인 ‘두르바 홀(Durbar Hall)’로 가는 중이었지 싶다.

▼ ‘두르바 홀’은 입장이 허락되지 않아 그냥 통과했다. 그렇다고 소개까지 생략할 수야 없는 노릇. 인터넷에서 사진을 구해왔다. ‘두르바 홀’은 25개의 거대한 일루파이(Iluppai) 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는 웅장한 아치형 천장과 벽면 전체가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힌두교 신(시바, 비슈누, 인드라 등)을 묘사한 점토 스투코(Stucco) 조각상이 벽면을 채우고 있으며, 라마야나 서사의 명장면 등 선명한 색감의 탄자부르 벽화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 밖으로 빠져나오니 ‘사라스와티 마할 도서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구경 못한 아쉬움을 글로서나마 달래보라는 모양이다. 참고로 ‘사라스와티(Saraswati)’는 힌두교에서 지식·학문·예술·음악·언어를 관장하는 지혜의 여신이다.

▼ ‘아트 갤러리’로 가는 길에 동상 하나가 눈에 띈다. 한 손에 낫을 들고 어깨에는 벼를 메고 있는 농부를 형상화했다. 농업에 대한 경의를 나타내기 위해 제작되었다나?

▼ ‘아트 갤러리’ 입구‘. 궁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첨탑이나 발코니 등 사라센과 인도의 건축 양식을 합쳐놓은 모양새이다. 하지만 촌스럽다 싶은 외부 채색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탄자부르를 대표하는 문화재에 걸맞게 치장했으면 어떨까 싶다.

▼ ’벨 타워‘ 하부. 아치형 돌기둥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오른쪽은 수조(水槽)로 보이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벨 타워(Bell Tower). 현대의 고층 빌딩을 연상시키는 7층 높이의 사각형 탑이다. 정각마다 기계식 종을 울리거나 소라껍데기를 불어 탄자부르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탑 역할을 수행했었단다. 하나 더. 탑으로 올라가는 것은 막고 있었다.

▼ 내부(아트갤러리)로 들어가자 건물과 벽으로 둘러싸인 ‘중정(中庭)’이 나온다. 사분할(四分割)의 이슬람식 정원인 ‘차르바그(Charbagh)’로 보이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뜨락으로 내려서자 ‘무기고 탑(Guduragopuram / Arsenal Tower)’이 한 눈 가득 차오른다. 힌두 사원의 탑문인 ‘고푸람’이나 본당 탑인 ‘비마나’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피라미드 형태를 하고 있다. 8층 구조로 높이가 192피트(약 58.5m)에 이르는데, 과거 왕조들이 무기와 탄약을 보관하고 군사지휘소 및 전망대로 사용했단다.

▼ 16세기 나야카 왕조가 처음 지었고, 이후 마라타 왕조를 거치며 확장되었는데, 상층부는 최고의 전망대로 알려진다. 탄자부르 시내는 물론이고 세계문화유산인 ‘브리하디스와라 사원’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단다. 하지만 이 또한 올라가 볼 수 없었다.

▼ 정원을 둘러싼 일부 건물은 회랑을 갖추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힌두교와 관련된 석상들을 진열해 놓았다.

▼ ‘나타라자 홀(Nataraja Hall)’은 ‘궁전 미술관(Art Gallery)’의 핵심 전시실이다. 주변 지역 사원 등에서 발굴되거나 보존되어 온 고대 힌두교 신상들을 모아놓은 전시 공간이다.

▼ 나타라자(Nataraja)는 산스크리트어 ‘Nata(춤추는)’와 ‘Raja(왕)’의 합성어로 ‘시바 신’을 의미한다. 시바가 우주의 리듬과 끊임없는 순환(생성과 소멸)을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홀에는 11세기 촐라 시대부터 19세기 마라타 시대까지 제작된 30여 점의 다양한 나타라자 청동상 및 여신 시바카미(우마) 상이 전시되어 있다

▼ 가이드는 신들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청동상들의 가슴을 살펴보라고 했다. 유방 한 쪽이 없는 청동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나? 그래도 의심은 남는다.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면 결혼을 어떻게 했으며 또 가네샤 같은 시바가 낳은 신들은 뭐란 말인가.

▼ 남인도 예술의 백미(白眉)라는 ‘춤추는 시바 상’. 보면 볼수록 정교하면서도 세련됐다. 한 손에는 창조의 소리를 내는 북을, 다른 한 손에는 파괴를 뜻하는 불꽃을 든 채 힌두교에서 말하는 창조, 보존, 파괴 등 우주의 순환을 역동적인 춤으로 표현한다.

▼ 이번에는 왕이 접견실로 사용하던 ‘나약크 두르바 홀(Nayak's Durbar Hall - Bronze Images)’로 들어간다. 현판의 ‘Bronze Images’라는 문구가 청동 조각상이 전시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 홀은 우선 거대했다. 통치자 앞에 선 신하의 기부터 죽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화려함도 빼놓을 수 없다. 상단과 천정을 그림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채워 넣었다. 탄자부르 지역을 지배하던 역대 제왕들의 위세를 실감케 하는 꾸밈새라 하겠다. 참고로 남인도를 오랫동안 통치해오던 ‘촐라왕조’가 쇠퇴한 후, 15세기에 나야크 왕조가 탄자부르를 중심으로 성장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나야크 왕조는 마두라이의 ‘미낙시 암만사원(Meenakshi Amman Temple)’을 건설했을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17세기에 이르러는 ‘마라타 왕국’이 뒤를 잇는다. 무굴 제국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인도대륙의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을 정도로 강성한 나라였다. 이후 영국과의 세 차례 전쟁(마라타 전쟁) 끝에 멸망했지만.

▼ 홀 정면에는 ‘사르포지 2세(Serfoji II, 재위 1798-1832))’의 대리석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19세기 초까지 마라타 왕국을 다스린 위대한 통치자이자 학문과 예술의 후원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영국(동인도회사)의 개입으로 정치적 권력은 제한적이었으나, 교육·의학·행정 등 다방면에서 현대적인 개혁을 이끌며 인도의 근대화를 촉진했다. 하지만 동상이 유럽풍의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은 눈에 거슬렸다.

▼ 홀은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벽을 따라 9-13세기 촐라왕조와 16-18세기의 나야크 왕조 때 제작된 청동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 하나같이 힌두교와 관련된 작품들이다. 인도의 뛰어난 청동 주조기술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도자기 제품 일색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생활용품들까지도 청동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특이하다.

▼ ‘라자라잔(Raja rajan)’의 황금빛 동상이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촐라왕국의 위대한 황제인 ‘라자라자 1세(Rajaraja I, 재위 985-1014)’를 일컫는데, 타밀어 ‘왕들 중의 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남인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위대했던 군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 ‘나약크 두르바 홀’을 끝으로 ‘마라타 왕궁’ 투어가 끝났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남아 회랑의 석상들을 한 번 더 살펴보기로 했다. 관광객이라곤 우리 일행 뿐, 덕분에 방해 받지 않고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 ‘비크샤타나(Bhikshatana)’라고 했다. 힌두교의 주신인 시바(Shiva)가 세속의 집착을 버리고 구걸하며 떠돌아다니는 ‘최고의 거지(Supreme Beggar)’ 혹은 ‘고행자’의 모습이다. 그런 시바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양새이다. 발품을 조금만 더 팔면 힌두의 삼위일체 신(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들이 부각되기 전, 베다 시대부터 태양신으로 숭배되던 ‘수리야(Surya)’도 눈에 담을 수 있다.

▼ 부처님도 눈에 띈다. 힌두교에서는 비슈누의 화신(Avatar) 중 하나로 여긴단다. 참고로 인도에서 불교가 발생하고 한때 크게 번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인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 종교이자 주류 종교는 단연 힌두교이다. 반면에 불교는 점차 쇠퇴하여 현재 인도 내에서는 소수 종교에 속하며, 오히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크게 발전했다.

▼ ‘중정(中庭)’을 빠져나오다 작은 신당을 만났다. ‘시바’가 타고 다닌다는 ‘난디(Nandi)’와 시바의 상징인 ‘링감(Lingam)’과 ‘요니(Yoni)’를 모셔놓았다.

▼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찍었노라.’ 여행의 정석대로 집사람과 함께 메인 건축물 앞에 서본다.

▼ 현지 가이드 ‘Mr. Ajay Singh’의 배려로 멋진 호텔에서 머무는 호사를 누렸다. 탄자부르 구(Thanjavur district) 쿰바코남(Kumbakonam)에 위치한 4성급 친환경 헤리티지 리조트인 ‘인데코 호텔 스와미말라이(INDeco Hotels Swamimalai)’이다. 아래 사진은 본관인 ‘민트 궁전(Mint Palace)’이다. 1737년 첸나이에 지어진 라자스탄·라지푸트 스타일의 건축물이다. 라자스탄의 장인들이 조각한 돌과 기둥, 목재를 첸나이로 가져와 쌓아 올려 만들었다고 한다. 궁전이 위치한 거리가 정부 조폐창(Mint)으로 이어져 있어 ‘민트 궁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 건물 외벽에 안내판을 세워 ‘민트궁전’의 내력을 전해준다. 궁전은 마드라스(現 첸나이)의 공식 금화 주조가 ‘카스투르찬드 다가(Kasturchand Daga)’의 소유였다. 2010년 도시개발로 철거 위기에 처하자 인데코 호텔 그룹의 설립자 ‘스티브 보르지아(Steve Borgia)’가 매입하여 원래 모습대로 이전·복원시켜 놓았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유네스코(UNESCO)로부터 특별 공로인증서까지 받았단다.

▼ 호텔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인 ‘뮤지엄 호텔’이었다. 호텔 안에 ‘스티브 보르지아’가 수집한 방대한 개인 컬렉션을 전시해 놓았다. ‘스티브 보르지아 인도 유산 박물관(Steve Borgia Indian Heritage Museum)’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는데, 미국박물관협회(AAM)의 인증을 받은 인도 유일의 호텔박물관이라고 한다.

▼ 수백 년 된 골동품 가구, 영국 식민지시절의 시계와 팬, 수동 카메라, 영사기 등 인도의 찬란한 민간 역사를 보여주는 방대한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 그렇게나 많은 컬렉션을 갖고도 뭔가 허전했던 모양이다. 그림이나 패널을 이용해 다양한 정보들을 전해주고 있었다.

▼ 정해진 전시실뿐만 아니라 호텔의 정원, 산책로, 객실 복도, 심지어는 레스토랑 입구까지 모든 동선이 고미술품으로 채워져 있다. ‘침묵의 갤러리(Silent Gallery)’라고나 할까?

▼ 힌두교와 관련된 그림들도 한 몫 톡톡히 한다.

▼ 가이드는 호텔이 남인도 시골마을의 전통 건축과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했다. 단순한 숙박을 넘어 인도 전통의 삶을 체험해볼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란다.

▼ 인도 독립운동의 영웅 ‘수바스 찬드라 보스(Subhas Chandra Bose, 1897-1945)’가 갇혀있었다는 ‘중앙교도소’도 재현해 놓았다. 그가 차고 있던 실제 수갑과 감옥 의자, 구 마드라스 중앙 교도소의 거대한 문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독특한 유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 벽에 그려놓은 민속화도 눈에 띈다.

▼ 실물 크기의 전사 및 무용수 조각상, 웅장한 아이야나르(Aiyanar) 점토 말, 힌두교 신들의 정교한 테라코타(점토) 조각상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 호텔의 역사는 쿰바코남의 작은 마을 ‘티마쿠디(Thimakkudy)’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대 기술과 신성한 비율을 고수하며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전통 청동 축제 우상(Bronze Idols) 제조지로 유명한 곳이다. 1906년 ‘스리 스리니바사 아이어’가 건물을 지어 그의 후손들이 살아왔다. 1990년 저택은 스티브 보르지아 소유로 넘어갔고, INDeco Hotels Swamimalai라는 이름의 웅장한 빌라로 변신했다.

▼ 전체적인 구조는 남인도 전통 가옥인 ‘아그라하람(Agraharam)’ 스타일을 복원했단다. ‘아그라하람’이란 힌두교 브라만(사제) 계층이 모여 살던 주거구역을 뜻하는데, 도로 양쪽에 집들이 줄지어 있고 중앙에 사원이 위치한 모습이 마치 사원을 둘러싼 ‘화환’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

▼ 가네슈 신이 지켜주는 야외무대. 가네슈(Ganesha, 가네샤)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장애물을 없애주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신이다. 결혼식장으로 인기가 높은 호텔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호텔은 ‘친환경 헤리티지’로 입소문을 탔다. 헤리티지(Heritage)는 ’인류가 오랜 기간 역사 속에서 만들어 온 유산이나 전통‘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래선지 오랜 세월 동안 보존되어 온 탄조르 양식의 가옥들이 울창한 숲과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있었다.

▼ 캐논볼트리 (Cannonball Tree) 꽃. 인도에서는 꽃의 입체적인 수술 상단부 생김새가 흡사 머리를 쳐든 성스러운 뱀(Naga)이 힌두교의 시바 신을 상징하는 ’링감‘을 보호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나갈링감(Nagalingam)'이라 부르며 신성시한다.

▼ 디티야 2세(Ditya II, 942-971) 흉상. ‘아디타 카리카란(Aditha Karikalan)’으로도 불리는데 10세기 중엽 남인도를 지배한 촐라 제국의 황태자이자 공동 통치자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 중 한 명인 라자라자 1세의 친형이기도 하다. 체부르 전투(Battle of Chevur)에서 판디아의 국왕 비라판디야를 추격 끝에 참수하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제국의 영토를 크게 넓혔으나 암살당했고, 이는 라자라자 1세가 즉위하여 촐라 제국의 황금기를 여는 계기가 된다.

▼ 힌두교 신인 ‘무루간(Murugan)’인 듯. 전쟁, 승리, 지혜를 관장하는 군신(軍神)이다. 남인도 등 타밀족 문화권에서는 ‘타밀의 신(Tamizh Kadavul)’이라 불릴 만큼 절대적인 숭배를 받는다.

▼ 아침 산책을 나가니 종업원이 쌀가루로 ‘랑골리(Rangoli)’를 그리고 있었다. 집안에 행운과 복을 불러오고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문양이다. 찾아오는 이들을 따뜻하게 환영한다는 의사표시이기도 하다.

▼ 운 좋게도 인도의 전통 혼례식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제 밤늦게 호텔에 도착했을 때 음악에 맞춰 격렬하게 춤추며 노래하던 그룹이다. 인도의 전통 결혼식은 최소 3일에서 많으면 5일 이상 지속되는 성대하고 화려한 지역 공동체의 축제라더니 맞는 모양이다.

▼ 화려하게 치장한 신랑이 이동을 한다. 신부가 있는 식장으로 향하는 의식인 모양인데, 원래는 화려하게 장식된 백마나 마차, 또는 코끼리를 타고 간다고 가이드가 귀띔해준다.

▼ 잘 차려입은 신랑의 친구들과 친척들이 전통 악기 연주에 맞춰 춤을 추며 동행하고 있었다. 인도의 전통 결혼식은 초대받은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와서 함께 음식을 즐기고 축하하는 오픈형 축제 형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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