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남인도(South India)–타밀나두(Tamil Nadu)-탄자부르(Thanjavur)-마라타 궁전(Maratha Palace)
여행일 : ‘26. 3. 23(월) - 3. 28(토)
세부 일정 : 첸나이→마하발리푸람→퐁디셰리→탄자부르→마두라이→코친
특징 : 탄자부르 중심부에 위치한 복합궁전. 16세기 나야카 왕조가 처음 건설을 시작했으며, 이후 17-19세기 탄자부르를 통치한 마라타 왕조에 의해 증축되었다. 현재는 왕실 후손들이 거주하는 일부 공간을 빼고는 박물관·미술관·도서관 등으로 개방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남인도(South India), 5개 주(州)와 1개의 특별자치구(프랑스령이었던 ‘푸두체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가 진출해있는 ‘타밀나두(Tamil Nadu)’와 인도 향신료특구 ‘케랄라(Kerala)’를 다녀왔다.

▼ 타밀나두(Tamil Nadu). 인도 남부의 대표적인 제조업 중심지로 자동차·전자·중공업 산업기반과 항만·물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타밀나두 주의 중심부(주도인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320Km 지점)에 위치한 ‘탄자부르’는 역사 깊은 고도(古都)로 과거 강력했던 중세 촐라제국의 수도였다. 당시 촐라제국은 인도 전역, 실론 일부, 몰디브, 래카다이브까지 지배했다.

▼ 버스에서 내려 ‘탄자부르’ 시가지를 걷는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탄자부르 궁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대로(이스트람파드 로드)’에서 버스가 멈췄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대형버스의 진입을 금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거나 말거나 여행자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덕분에 ‘올드 타운’을 걸어보는 기회를 얻었으니 새옹지마(塞翁之馬)라나?

▼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신도시에 가까웠다. 뭔가 인도에서만 볼 수 있는 건축물들이 늘어서있을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말이다. 아니 남인도 힌두 건축물의 상징인 ‘고푸람(gopuram)’을 눈에 담으며 작은 위로는 받을 수 있었다.

▼ 모닝커피 삼아 마셔보라는 가이드의 추천으로 ’차이(Chai)‘ 집에 들렀다. 홍차 찻잎에 우유, 설탕, 다양한 향신료를 넣고 함께 끓여낸 인도식 ’밀크 티‘인데, 커피에 길들여진 필자의 입맛에는 그저 그렇고 그랬다.

▼ 골목을 빠져나와 이번에는 ’이스트메인 스트리트‘를 따라간다. ‘탄자부르’는 익산시(전북)와 비슷한 규모(30만 명의 주민)의 중소도시다. 하지만 눈앞에는 우리나라의 읍(邑)에 가까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만큼 개발이 덜 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 남인도는 많은 면에서 북인도와 다르다. 가장 다른 것은 ‘언어’라 하겠다. ‘힌디’를 쓰는 북인도와는 달리 ‘타밀어’를 사용한다. 타밀어와 영어로만 쓰여 있는 안내판을 종종 만날 수 있는 이유다. 식당에서도 난(Naan)이 빠지지 않고 나오던 북인도와는 달리 남인도에서는 쌀밥 위주로 올라오고 있었다.

▼ 코끼리가 지켜주는 ‘탄자부르 궁전’ 정문. 문루에 ‘Complex’라는 단어가 추가됐다. 왕족의 거주 공간 말고도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 등이 함께 들어있는 ‘문화유산 단지’이기 때문이다. 궁전은 16세기 초반인 1534-35년 경 ‘나야크(Nayaka)’ 왕조가 처음 지었다. 문학과 예술, 특히 카르나틱 음악과 예술을 크게 장려하여 문화적 황금기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앞에서 거론하던 ‘촐라(Chola)’ 왕조는 인접한 ‘판디아(Pandya)’ 왕조의 공격을 받아 1279년에 이미 멸망한바 있다.

▼ 건물배치도. 동선(動線)으로 연결되지 않는지 18세기 후반 마라타 왕조의 세르포지 2세(Serfoji II)가 지었다는 ‘사르자 마디(Sarjah Mahdi)’는 찾아보지 못했다. 아니 왕족들이 살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현재 마라타 왕실의 후손인 ‘보슬레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니 말이다. 아무튼 이슬람 양식과 남인도 드라비다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높은 미나레트(첨탑)와 정교한 조각 등 볼만한 것이 꽤 많다고 했는데.

▼ 관광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각 건축물의 외형을 사진에 담아놓았다. 마라타 궁전은 총 8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명확한 표지판이 없어 길을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 궁전으로 가는 길. 담벼락을 민속화로 화려하게 치장해 놓았다.

▼ ‘탄자부르’는 찬란한 촐라·나야크·마라타 왕조의 문화유산과 강렬한 힌두교 신앙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이로 인해 연중 다채로운 힌두교 축제가 개최된다고 했다. 그 장면들을 그려놓았지 않나 싶다.

▼ 일기예보는 오늘 34도까지 올라간다고 했지만 매표소에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옷매무새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 표를 팔고 있었다.

▼ 입장권을 사서 안으로 들어간다.

▼ 아치형 문이 궁전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해준다. 입장료까지 받는 유적지라면 조금 더 깨끗하게 관리하면 어떨까?

▼ 천정의 조형물.

▼ 궁전 단지는 거대한 미로 같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현지 가이드는 이리 돌고 저리 틀면서 잘도 간다.

▼ 주 정부 고고학부 사무실이란다. 판매용 책자도 발간하나 보다.

▼ ‘탄자부르’ 소재 주요 관광지. 필자는 ‘브라하디스와라 사원’과 이곳 ‘마라타 궁전’만 둘러볼 수 있었다.

▼ 조금 더 들어가자 화려한 건축물이 눈앞에 펼쳐진다. ‘벨 타워(Bell Tower)’와 ‘아스널 타워(Arsenal Tower)’가 함께 눈에 들어오는 걸 보니 드디어 ‘마라타 궁전’으로 들어가는 가 보다.

▼ 문루에 ‘사라스와티 마할 도서관(Saraswathi Mahal Library)’이라고 적혀있었다. 나야크 왕조가 16세기에 세운 왕실 도서관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 중 하나이다. 17-19세기 마라타 왕조에 의해 확장되었으며, 특히 ‘라자 세르포지 2세(Raja Serfoji II, 재위 1787-1793)’가 유럽 등지에서 수많은 희귀 서적과 필사본을 수집하여 도서관의 기틀을 완성했다. 중세 및 고대 아시아의 지식을 담은 약 49,000권에서 60,000권 이상의 방대한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인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도서관(Most remarkable library of India)’으로 꼽기도 했다.

▼ 코끼리와 난디가 겹쳐있는 천장의 그림. 돋을새김과 채색을 결합한 독특한 양식이다. 아무튼 건물은 천정이나 벽면, 기둥 등을 화려하게 치장해 놓았다. 아라베스크 문양을 닮은 것 같기도 한데 들어가서는 안 되는 문양들이 눈에 띄어 헷갈리게 만든다.

▼ ‘왕실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건물에는 ‘Saraswati Mahal Library’라고 적혀있었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museum’ 표지판이 전부다. ‘도서관’은 대체 어디로 갔지?

▼ ‘사진촬영 금지’라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관리인까지 두고 있으니 눈요기로 끝마칠 수밖에 없었다. 참! 대가를 요구했지만 촬영이 허락되는 장소도 몇 군데 있었다.

▼ ‘사르포지 2세’가 통치하던 19세기 초반의 왕실유물들을 다양하게 전시해 놓았다. 그림과 서책 등도 전시되어 있었으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참! 박물관과 붙어있는 ‘사라스와티 마할 도서관’은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했다. 종려나무 잎에 기록된 3만여 종이 넘는 필사본을 저장하고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왕실에서 사용하던 물건들이 아닐까 싶다. ‘나야크 궁전’은 1674년 ‘마라타 왕조’가 탄자부르 지역을 점령한 후 왕실의 공식 거처가 되었다. 참고로 ‘마라타 왕조(제국 또는 연맹)’는 1674년부터 1818년까지 인도 아대륙(亞大陸)을 지배하던 강력한 힌두교 국가이다. 쇠퇴해가던 무굴제국에 맞서 인도 중부 데칸 고원을 중심으로 성장했으며, 한때 무굴제국의 수도 델리를 점령하는 등 사실상 인도의 패권을 장악했다.

▼ 이동 중에 만난 벽화. 힌두 양식으로 그려져 있다. 왕실 접견실(Court Hall)인 ‘두르바 홀(Durbar Hall)’로 가는 중이었지 싶다.

▼ ‘두르바 홀’은 입장이 허락되지 않아 그냥 통과했다. 그렇다고 소개까지 생략할 수야 없는 노릇. 인터넷에서 사진을 구해왔다. ‘두르바 홀’은 25개의 거대한 일루파이(Iluppai) 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는 웅장한 아치형 천장과 벽면 전체가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다. 힌두교 신(시바, 비슈누, 인드라 등)을 묘사한 점토 스투코(Stucco) 조각상이 벽면을 채우고 있으며, 라마야나 서사의 명장면 등 선명한 색감의 탄자부르 벽화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 밖으로 빠져나오니 ‘사라스와티 마할 도서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구경 못한 아쉬움을 글로서나마 달래보라는 모양이다. 참고로 ‘사라스와티(Saraswati)’는 힌두교에서 지식·학문·예술·음악·언어를 관장하는 지혜의 여신이다.

▼ ‘아트 갤러리’로 가는 길에 동상 하나가 눈에 띈다. 한 손에 낫을 들고 어깨에는 벼를 메고 있는 농부를 형상화했다. 농업에 대한 경의를 나타내기 위해 제작되었다나?

▼ ‘아트 갤러리’ 입구‘. 궁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이기도 하다. 첨탑이나 발코니 등 사라센과 인도의 건축 양식을 합쳐놓은 모양새이다. 하지만 촌스럽다 싶은 외부 채색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탄자부르를 대표하는 문화재에 걸맞게 치장했으면 어떨까 싶다.

▼ ’벨 타워‘ 하부. 아치형 돌기둥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다. 오른쪽은 수조(水槽)로 보이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벨 타워(Bell Tower). 현대의 고층 빌딩을 연상시키는 7층 높이의 사각형 탑이다. 정각마다 기계식 종을 울리거나 소라껍데기를 불어 탄자부르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탑 역할을 수행했었단다. 하나 더. 탑으로 올라가는 것은 막고 있었다.

▼ 내부(아트갤러리)로 들어가자 건물과 벽으로 둘러싸인 ‘중정(中庭)’이 나온다. 사분할(四分割)의 이슬람식 정원인 ‘차르바그(Charbagh)’로 보이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 뜨락으로 내려서자 ‘무기고 탑(Guduragopuram / Arsenal Tower)’이 한 눈 가득 차오른다. 힌두 사원의 탑문인 ‘고푸람’이나 본당 탑인 ‘비마나’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피라미드 형태를 하고 있다. 8층 구조로 높이가 192피트(약 58.5m)에 이르는데, 과거 왕조들이 무기와 탄약을 보관하고 군사지휘소 및 전망대로 사용했단다.

▼ 16세기 나야카 왕조가 처음 지었고, 이후 마라타 왕조를 거치며 확장되었는데, 상층부는 최고의 전망대로 알려진다. 탄자부르 시내는 물론이고 세계문화유산인 ‘브리하디스와라 사원’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단다. 하지만 이 또한 올라가 볼 수 없었다.

▼ 정원을 둘러싼 일부 건물은 회랑을 갖추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힌두교와 관련된 석상들을 진열해 놓았다.

▼ ‘나타라자 홀(Nataraja Hall)’은 ‘궁전 미술관(Art Gallery)’의 핵심 전시실이다. 주변 지역 사원 등에서 발굴되거나 보존되어 온 고대 힌두교 신상들을 모아놓은 전시 공간이다.

▼ 나타라자(Nataraja)는 산스크리트어 ‘Nata(춤추는)’와 ‘Raja(왕)’의 합성어로 ‘시바 신’을 의미한다. 시바가 우주의 리듬과 끊임없는 순환(생성과 소멸)을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홀에는 11세기 촐라 시대부터 19세기 마라타 시대까지 제작된 30여 점의 다양한 나타라자 청동상 및 여신 시바카미(우마) 상이 전시되어 있다

▼ 가이드는 신들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중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청동상들의 가슴을 살펴보라고 했다. 유방 한 쪽이 없는 청동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나? 그래도 의심은 남는다. 남성도 여성도 아니라면 결혼을 어떻게 했으며 또 가네샤 같은 시바가 낳은 신들은 뭐란 말인가.

▼ 남인도 예술의 백미(白眉)라는 ‘춤추는 시바 상’. 보면 볼수록 정교하면서도 세련됐다. 한 손에는 창조의 소리를 내는 북을, 다른 한 손에는 파괴를 뜻하는 불꽃을 든 채 힌두교에서 말하는 창조, 보존, 파괴 등 우주의 순환을 역동적인 춤으로 표현한다.

▼ 이번에는 왕이 접견실로 사용하던 ‘나약크 두르바 홀(Nayak's Durbar Hall - Bronze Images)’로 들어간다. 현판의 ‘Bronze Images’라는 문구가 청동 조각상이 전시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 홀은 우선 거대했다. 통치자 앞에 선 신하의 기부터 죽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화려함도 빼놓을 수 없다. 상단과 천정을 그림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채워 넣었다. 탄자부르 지역을 지배하던 역대 제왕들의 위세를 실감케 하는 꾸밈새라 하겠다. 참고로 남인도를 오랫동안 통치해오던 ‘촐라왕조’가 쇠퇴한 후, 15세기에 나야크 왕조가 탄자부르를 중심으로 성장하며 세력을 확장했다. 나야크 왕조는 마두라이의 ‘미낙시 암만사원(Meenakshi Amman Temple)’을 건설했을 정도로 위세를 떨쳤다. 17세기에 이르러는 ‘마라타 왕국’이 뒤를 잇는다. 무굴 제국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인도대륙의 새로운 맹주로 떠올랐을 정도로 강성한 나라였다. 이후 영국과의 세 차례 전쟁(마라타 전쟁) 끝에 멸망했지만.

▼ 홀 정면에는 ‘사르포지 2세(Serfoji II, 재위 1798-1832))’의 대리석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19세기 초까지 마라타 왕국을 다스린 위대한 통치자이자 학문과 예술의 후원자로 유명한 인물이다. 영국(동인도회사)의 개입으로 정치적 권력은 제한적이었으나, 교육·의학·행정 등 다방면에서 현대적인 개혁을 이끌며 인도의 근대화를 촉진했다. 하지만 동상이 유럽풍의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은 눈에 거슬렸다.

▼ 홀은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었다. 벽을 따라 9-13세기 촐라왕조와 16-18세기의 나야크 왕조 때 제작된 청동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 하나같이 힌두교와 관련된 작품들이다. 인도의 뛰어난 청동 주조기술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도자기 제품 일색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생활용품들까지도 청동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특이하다.

▼ ‘라자라잔(Raja rajan)’의 황금빛 동상이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촐라왕국의 위대한 황제인 ‘라자라자 1세(Rajaraja I, 재위 985-1014)’를 일컫는데, 타밀어 ‘왕들 중의 왕’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남인도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하고 위대했던 군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 ‘나약크 두르바 홀’을 끝으로 ‘마라타 왕궁’ 투어가 끝났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남아 회랑의 석상들을 한 번 더 살펴보기로 했다. 관광객이라곤 우리 일행 뿐, 덕분에 방해 받지 않고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 ‘비크샤타나(Bhikshatana)’라고 했다. 힌두교의 주신인 시바(Shiva)가 세속의 집착을 버리고 구걸하며 떠돌아다니는 ‘최고의 거지(Supreme Beggar)’ 혹은 ‘고행자’의 모습이다. 그런 시바가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모양새이다. 발품을 조금만 더 팔면 힌두의 삼위일체 신(브라흐마, 비슈누, 시바)들이 부각되기 전, 베다 시대부터 태양신으로 숭배되던 ‘수리야(Surya)’도 눈에 담을 수 있다.

▼ 부처님도 눈에 띈다. 힌두교에서는 비슈누의 화신(Avatar) 중 하나로 여긴단다. 참고로 인도에서 불교가 발생하고 한때 크게 번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인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족 종교이자 주류 종교는 단연 힌두교이다. 반면에 불교는 점차 쇠퇴하여 현재 인도 내에서는 소수 종교에 속하며, 오히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등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어 크게 발전했다.

▼ ‘중정(中庭)’을 빠져나오다 작은 신당을 만났다. ‘시바’가 타고 다닌다는 ‘난디(Nandi)’와 시바의 상징인 ‘링감(Lingam)’과 ‘요니(Yoni)’를 모셔놓았다.

▼ ‘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찍었노라.’ 여행의 정석대로 집사람과 함께 메인 건축물 앞에 서본다.

▼ 현지 가이드 ‘Mr. Ajay Singh’의 배려로 멋진 호텔에서 머무는 호사를 누렸다. 탄자부르 구(Thanjavur district) 쿰바코남(Kumbakonam)에 위치한 4성급 친환경 헤리티지 리조트인 ‘인데코 호텔 스와미말라이(INDeco Hotels Swamimalai)’이다. 아래 사진은 본관인 ‘민트 궁전(Mint Palace)’이다. 1737년 첸나이에 지어진 라자스탄·라지푸트 스타일의 건축물이다. 라자스탄의 장인들이 조각한 돌과 기둥, 목재를 첸나이로 가져와 쌓아 올려 만들었다고 한다. 궁전이 위치한 거리가 정부 조폐창(Mint)으로 이어져 있어 ‘민트 궁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 건물 외벽에 안내판을 세워 ‘민트궁전’의 내력을 전해준다. 궁전은 마드라스(現 첸나이)의 공식 금화 주조가 ‘카스투르찬드 다가(Kasturchand Daga)’의 소유였다. 2010년 도시개발로 철거 위기에 처하자 인데코 호텔 그룹의 설립자 ‘스티브 보르지아(Steve Borgia)’가 매입하여 원래 모습대로 이전·복원시켜 놓았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유네스코(UNESCO)로부터 특별 공로인증서까지 받았단다.

▼ 호텔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인 ‘뮤지엄 호텔’이었다. 호텔 안에 ‘스티브 보르지아’가 수집한 방대한 개인 컬렉션을 전시해 놓았다. ‘스티브 보르지아 인도 유산 박물관(Steve Borgia Indian Heritage Museum)’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는데, 미국박물관협회(AAM)의 인증을 받은 인도 유일의 호텔박물관이라고 한다.

▼ 수백 년 된 골동품 가구, 영국 식민지시절의 시계와 팬, 수동 카메라, 영사기 등 인도의 찬란한 민간 역사를 보여주는 방대한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다.

▼ 그렇게나 많은 컬렉션을 갖고도 뭔가 허전했던 모양이다. 그림이나 패널을 이용해 다양한 정보들을 전해주고 있었다.

▼ 정해진 전시실뿐만 아니라 호텔의 정원, 산책로, 객실 복도, 심지어는 레스토랑 입구까지 모든 동선이 고미술품으로 채워져 있다. ‘침묵의 갤러리(Silent Gallery)’라고나 할까?

▼ 힌두교와 관련된 그림들도 한 몫 톡톡히 한다.

▼ 가이드는 호텔이 남인도 시골마을의 전통 건축과 문화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했다. 단순한 숙박을 넘어 인도 전통의 삶을 체험해볼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란다.

▼ 인도 독립운동의 영웅 ‘수바스 찬드라 보스(Subhas Chandra Bose, 1897-1945)’가 갇혀있었다는 ‘중앙교도소’도 재현해 놓았다. 그가 차고 있던 실제 수갑과 감옥 의자, 구 마드라스 중앙 교도소의 거대한 문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독특한 유물들을 구경할 수 있다.

▼ 벽에 그려놓은 민속화도 눈에 띈다.

▼ 실물 크기의 전사 및 무용수 조각상, 웅장한 아이야나르(Aiyanar) 점토 말, 힌두교 신들의 정교한 테라코타(점토) 조각상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 호텔의 역사는 쿰바코남의 작은 마을 ‘티마쿠디(Thimakkudy)’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대 기술과 신성한 비율을 고수하며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전통 청동 축제 우상(Bronze Idols) 제조지로 유명한 곳이다. 1906년 ‘스리 스리니바사 아이어’가 건물을 지어 그의 후손들이 살아왔다. 1990년 저택은 스티브 보르지아 소유로 넘어갔고, INDeco Hotels Swamimalai라는 이름의 웅장한 빌라로 변신했다.

▼ 전체적인 구조는 남인도 전통 가옥인 ‘아그라하람(Agraharam)’ 스타일을 복원했단다. ‘아그라하람’이란 힌두교 브라만(사제) 계층이 모여 살던 주거구역을 뜻하는데, 도로 양쪽에 집들이 줄지어 있고 중앙에 사원이 위치한 모습이 마치 사원을 둘러싼 ‘화환’과 같다는 데서 유래했다.

▼ 가네슈 신이 지켜주는 야외무대. 가네슈(Ganesha, 가네샤)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장애물을 없애주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신이다. 결혼식장으로 인기가 높은 호텔이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 호텔은 ‘친환경 헤리티지’로 입소문을 탔다. 헤리티지(Heritage)는 ’인류가 오랜 기간 역사 속에서 만들어 온 유산이나 전통‘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래선지 오랜 세월 동안 보존되어 온 탄조르 양식의 가옥들이 울창한 숲과 자연환경에 둘러싸여 있었다.

▼ 캐논볼트리 (Cannonball Tree) 꽃. 인도에서는 꽃의 입체적인 수술 상단부 생김새가 흡사 머리를 쳐든 성스러운 뱀(Naga)이 힌두교의 시바 신을 상징하는 ’링감‘을 보호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나갈링감(Nagalingam)'이라 부르며 신성시한다.

▼ 디티야 2세(Ditya II, 942-971) 흉상. ‘아디타 카리카란(Aditha Karikalan)’으로도 불리는데 10세기 중엽 남인도를 지배한 촐라 제국의 황태자이자 공동 통치자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군주 중 한 명인 라자라자 1세의 친형이기도 하다. 체부르 전투(Battle of Chevur)에서 판디아의 국왕 비라판디야를 추격 끝에 참수하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며 제국의 영토를 크게 넓혔으나 암살당했고, 이는 라자라자 1세가 즉위하여 촐라 제국의 황금기를 여는 계기가 된다.

▼ 힌두교 신인 ‘무루간(Murugan)’인 듯. 전쟁, 승리, 지혜를 관장하는 군신(軍神)이다. 남인도 등 타밀족 문화권에서는 ‘타밀의 신(Tamizh Kadavul)’이라 불릴 만큼 절대적인 숭배를 받는다.

▼ 아침 산책을 나가니 종업원이 쌀가루로 ‘랑골리(Rangoli)’를 그리고 있었다. 집안에 행운과 복을 불러오고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문양이다. 찾아오는 이들을 따뜻하게 환영한다는 의사표시이기도 하다.

▼ 운 좋게도 인도의 전통 혼례식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어제 밤늦게 호텔에 도착했을 때 음악에 맞춰 격렬하게 춤추며 노래하던 그룹이다. 인도의 전통 결혼식은 최소 3일에서 많으면 5일 이상 지속되는 성대하고 화려한 지역 공동체의 축제라더니 맞는 모양이다.

▼ 화려하게 치장한 신랑이 이동을 한다. 신부가 있는 식장으로 향하는 의식인 모양인데, 원래는 화려하게 장식된 백마나 마차, 또는 코끼리를 타고 간다고 가이드가 귀띔해준다.

▼ 잘 차려입은 신랑의 친구들과 친척들이 전통 악기 연주에 맞춰 춤을 추며 동행하고 있었다. 인도의 전통 결혼식은 초대받은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와서 함께 음식을 즐기고 축하하는 오픈형 축제 형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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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4코스(화랑대역 - 사가정역)
일 시 : ‘26. 8. 19(토)
소재지 : 서울시 노원구 및 중랑구 일원
코 스 : 화랑대역→신내어울공원→신내역→양원역→중랑캠핑숲→망우역사문화공원→깔딱고개쉼터→사가정역(거리/시간 : 7.7km+1.6km, 실제는 10.27km를 3시간 20분에)
특징 :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21개 코스, 156.5km 규모의 순환형 트레일이다. 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고덕산·일자산·대모산·우면산·관악산·호암산·안양천·노을공원·봉산·북한산 등 서울을 둘러싼 자연과 도시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 09 : 31. 들머리는 화랑대역(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2000년 6호선 ’화랑대역‘으로 문을 열어 2010년 경춘선이 폐지될 때까지는 800m가량 떨어져 있는 경춘선의 ‘화랑대역’과 동명(同名) 이역(異驛)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 도심의 편리함과 깊은 숲속의 자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신내동·망우동 등 시가지를 누비다 중간지점에서 ‘망우산’의 울창한 숲속으로 파고든다. 난이도는 ‘하’. 유유자적 걷다가 망우묘지공원의 선현들이 전하는 충혼과 문화의 향기를 음미해 볼 일이다.

▼ 화랑대역 맞은편, ‘공릉동근린공원’의 서쪽 출입구에 3코스에서 4코스로 넘어감을 알리는 각종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 09 : 35. ‘묵동천(墨洞川)’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답사를 시작한다. 신내동 일대에서 발원 중랑천으로 흘러드는 길이 5.5km의 지방하천인데, 개울을 가운데 두고 걷기길과 자전거길이 좌우로 나있다. 참고로 묵동은 ‘먹(墨)’을 만들던 마을이란 뜻이다. 때문에 순우리말로 ‘먹골천’이라 부르기도 한다. 신내천, 태릉천, 화랑천으로도 불린단다.

▼ 아날로그적 낭만을 불러일으키는 징검다리. 동네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터였고, 동네 어머니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정겨운 빨래터였다. 설렘의 공간이기도 했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속 소년과 소녀가 꼭 아니더라도 징검다리는 순수한 첫사랑과 성장의 은유로 남아 있다.

▼ 09 : 40. ‘묵동IC교(또는 묵동IC 진입램프교)’ 아래를 지나간다. 그런데 처마에 ‘두물다리’라고 적어놓은 이유는 뭘까?

▼ 아니나 다를까 다리 아래를 지나자마자 두 물길이 합쳐지고 있었다. 탐방로는 계속해서 ‘묵동천’의 본류를 따라간다. ‘봉화산역’ 방향이다.

▼ 왼쪽은 공릉동 육군사관학교(태릉골프장) 인근에서 발원하는 지류이다. 저 둔치를 따라 600m쯤 올라가면 ‘화랑대 철도공원’이 나온다.

▼ 안전의식의 승리. 기습 폭우에도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

▼ 09 : 47. 북부간선도로 아래를 지난다.

▼ 매일 1만 톤의 물을 ‘묵동천’으로 방류한단다. 과거 ‘묵동천’은 주변지역 개발로 인해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 되면서 악취와 수질악화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었었다. 하지만 2021년, 2년여의 복원 사업을 거쳐 사계절 내내 깨끗한 물이 흐르는 주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 산란기 물고기들이 상류로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여울형 어도(물고기 길)를 설치하고 하천 자생초화를 심어 자연 복원력을 높였다. 하천의 문지기라는 ‘왜가리’가 아예 터를 잡고 살아가는 이유일 것이다.

▼ 다리 아래를 지나자마자 ‘묵동천’을 건넌다. 이정표(깔딱고개쉼터 6.6km/ 화랑대역 1.1km, 이하 ‘종점까지의 거리’로 표시)가 방향을 알려주니 길이 헷갈릴 일은 없다.

▼ 계속해서 ‘묵동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왼쪽 둔치에서 오른쪽 둔치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 오리 가족도 둥지를 틀었다. 묵동천의 생태계가 그만큼 좋아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 09 : 52. ‘신내로’로 올라선다. 이제 도심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 지선인 ‘신내로18길’을 건넌다.

▼ ‘서울둘레길’은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정비가 잘 되어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정표와 리본 말고도, 숲길형·도심형·지주형 표지판, 스티커 등 각종 시설물들이 방향을 알려 준다. 그래도 2%쯤 부족했나보다. 4코스에서는 ‘동판’ 하나가 더 추가되고 있었다.

▼ 횡단보도를 건넌 탐방로는 곧장 ‘신내어울공원(이정표 : 종점까지 6.3km)’으로 들어간다.

▼ 그 초입에 ‘서울둘레길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었다. 4코스는 완주 인증을 위한 스탬프를 하나 더 찍어야 한다는 얘기다.

▼ 공원 숲길을 400m쯤 걷는다. 약간은 엉성해 보이는 숲속에 벤치 몇 개가 놓여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공원이지만, 운동시설 하나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겠다. 여럿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뜻의 순우리말 ‘어울’에 걸맞은 꾸밈새라 하겠다.

▼ 10 : 00. 공원을 빠져나오면 ‘구(舊)신내교’ 남단. ‘어울공원길’을 횡단한 다음 ‘신내로16길’을 따라 동진한다.

▼ 10 : 02. ‘신내LPG충전소’ 앞에서 ‘ㄱ’자 모양으로 도로를 연이어 건넌 다음 ‘용마산로136길’을 따라간다. 타고 온 도로를 계속해서 따라가는 모양새인데, 도로 이름만 ‘용마산로136길’로 바뀌었다. 아니 보도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뀌었다.

▼ 10 : 07. 지하철 6호선과 수도권전철 경춘선의 환승역인 ‘신내역’. ‘신내’라는 역 이름과는 달리 실제 행정구역상 부지는 ‘망우본동’이다. 6호선의 종착역이자 유일한 지상역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 10 : 12. 양원지구공원관리사무소 앞(삼거리)에서 우회전 한다.

▼ 이어서 ‘양원역로’를 따라 남진한다. ‘양원역’ 방향이다.

▼ 10 : 17. ‘성당은 고딕이나 로마네스크 양식’이라는 선입견을 깨버린 ‘양원성당’. 전통적인 성당 양식에서 벗어나 직선과 모던함이 강조된 깔끔한 현대식으로 지어졌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다면체 구조의 건물 외관도 특이하다. 자연광과 조명이 조화를 이루는 내부 구조도 볼만하다했는데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 33)’. 수난과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고별 담화의 일부인데, 갈등과 불안, 경제적 어려움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한 전 세계 청년들에게 부활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 깊은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Seoul 2027)’의 공식 주제로 선정했다.

▼ 10 : 18. 다온공원. 도로변 자투리땅을 활용한 쌈지공원인데, 이밖에도 신내어울공원, 이화공원 등 4코스를 걷다보면 이런 소공원을 두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 10 : 21. ‘송곡관광고등학교’를 스치듯 지나 경의중앙선 굴다리를 통과한다. 이즈음 망우역사문화공원에 잠들어 계신 선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김봉성, 서병호, 김영랑 등 조국 광복을 위해 애쓰신 애국자들의 약력이 적힌 깃발을 걸어놓았다.

▼ 어둡고 침침했던 굴다리가 쾌적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송곡여자고등학교 미술반 학생들이 양원마을의 전설을 벽화로 그려 넣었단다. 그렇다면 건원릉 자리를 정하고 돌아가는 태조 이성계의 행렬도일 것이다.

▼ 굴다리를 빠져나오자마자 ‘ㄱ’자 모양으로 연이어 도로를 건넌다. 그런 다음 ‘송림길’을 따라 ‘양원역’쪽으로 간다.

▼ 양원역. 경의·중앙선 노선 중 서울특별시 구간의 시작역이다. 지명인 ‘양원(養源)’은 ‘양원수’라는 우물에서 유래했다. 태조 이성계가 건원릉 자리를 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망우리고개에서 우물물을 마셨는데 뛰어난 물맛에 반해 이름까지 지어주었다나?

▼ 10 : 25. 양원역 앞에서 도로(망우로87길)를 가로지른 다음, 오른쪽(중랑캠핑숲 방향)으로 간다.

▼ 양원역 맞은편에 있는 ‘서울씨티교회’ 담장. ‘자넷 현(Janet Hyun)’의 그림으로 도배를 했다. 하나님의 마음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표현주의 화가이자 프로페틱 아티스트(Prophetic Artist, 예언적 예술가)이다.

▼ 10 : 27. 50m쯤 진행했을까 ‘중랑캠핑숲(이정표 : 종점까지 4.3km)’이 반긴다. 가족단위 피크닉과 청소년 문화를 주제로 한 생태공원이다. 도심에서의 뛰어난 접근성이 자랑거리로 꼽힌다.

▼ 5만4천 평이나 되는 넓은 면적에 건강한 숲을 주제로 한 가족캠핑장, 어린이놀이터, 나들이마당, 숲속도서관, 생태학습존 등이 조성되어 있다.

▼ 어린이 놀이터. 물놀이장도 함께 들어서 있었다.

▼ 가족캠핑장 쪽으로 올라간다.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도심형 오토캠핑장으로 평일 퇴근 후에도 가볍게 방문해 캠핑과 바비큐를 즐길 수 있다. 텐트 설치가 가능한 캠핑 사이트와 장비 없이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지캠핑(Easy Camping) 옵션이 마련되어 있다.

▼ 10 : 36. 언덕 위 삼거리(이정표 : 종점까지 4.0km)에서 왼쪽으로 간다. 고개를 넘으면 ‘가족캠핑장’. 탐방로는 ‘망우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탄다.

▼ 과수원 단지를 지났다싶으면 곧이어 산길이 시작된다. 포장길이라서 신선한 맛은 떨어지지만.

▼ 조금 더 굵은 능선으로 올라섰다. 이정표(종점까지 3.8km)가 왼쪽으로 200m쯤 떨어진 곳에 전망대가 있다며 잠시 들렀다가란다.

▼ 울창한 숲속을 헤집으며 나아가는 길은 무척 고왔다. 맨발로 걸어도 될 만큼 폭신폭신한데다 경사까지 없는 것이다. 산책삼아 걷다보면 콧노래가 저절로 나오겠다.

▼ 10 : 40. 그 끄트머리에 데크 전망대가 있었다. 정자와 평상, 벤치를 놓고 ‘아카시아 쉼터’라는 이름표까지 떡하니 붙여놓았다.

▼ 난간에 서자 신내동 아파트단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 10 : 44.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이어간다. 그러자 ‘도토리쉼터’가 공부도 할 겸해서 잠시 쉬어가란다. 굴참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 떡갈나무, 신갈나무 등등 생김새는 비슷비슷하지만 구분이 가능하다나?

▼ 탐방로는 참나무로 가득한 능선을 따라간다. 조금 전 배운 상식을 바탕으로 참나무를 구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어설픈 상식으로는 나무의 생김새와 안내판에 적힌 특징들을 Matching시킬 수가 없었다.

▼ 10 : 50. 신이 내렸다는 ‘신내암(神內岩)’. 산의 신령한 기운이 서려 있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신성시되어 왔단다.

▼ 10 : 52. ‘망우로91길’로 내려서니 도로변에 커다란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하나 더. 구리시와의 경계가 가까운지 이정표(종점까지 3.3km)가 ‘구리둘레길’과 함께 쓰고 있었다. 구리둘레길 안내도도 눈에 띈다.

▼ 10 : 54. 잠시 후 망우로(국도) 위에 놓인 ‘육교’를 건넌다.

▼ 다리 아래로는 왕복 6차선의 ‘6번 국도’가 지나간다. 인천역에서 시작 서울·구리·남양주·양평·횡성·평창을 거쳐 강릉시 연곡교차로까지 한반도의 허리를 횡단한다.

▼ 다리를 건너자마자 회전교차로. 문자조형물이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 이후부터는 ‘사색의 길(망우순환로)’을 따라간다. 과거 공동묘지였던 공간을 울창한 숲속 산책로로 탈바꿈시켰다. 경사가 완만하고 정비가 잘 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다.

▼ 11 : 01 – 11 : 15. 중랑 망우공간. 망우역사문화공원 내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이자 공원의 거점 역할을 하는 Landmark이다. 단순한 관리동을 넘어 방문객들이 자연 속에서 사색하고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인물들을 기릴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 열린 문화·전시 공간인 1층 미디어홀에는 망우역사문화공원의 약력과 공원에 잠들어 있는 대한민국 근현대사 위인들의 이름을 나열해 놓았다. 공원을 축소시킨 미니어처도 눈에 띈다. 주요 시설은 물론 위인들의 묘소 위치를 시각적으로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 안중근 의사 흉상. 신내동 성당에 세워졌던 것을 망우역사문화공원이 새롭게 정비되면서 이곳에 잠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기리고자 이전 설치했단다. 참고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아직 찾지 못한 채 효창공원 3의사 묘역에 가묘(假墓)가 있을 뿐이다.

▼ 2층 전시실에서는 한용운·이중섭·박인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참고로 2026년은 한용운 시집 ‘님의 침묵’ 발간 100주년이자 이중섭 탄생 110주년 및 서거 70주기, 박인환 탄생 100주년 및 서거 70주기를 맞이하는 뜻깊은 해이다.

▼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의 삶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 속에서 불꽃같은 집념과 숭고한 지조로 점철됐다. 1919년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식을 주도했으며, 서대문형무소 수감 시절에는 일부 대표들이 유약한 모습을 보이자 호통을 치며 기개를 북돋우기도 했다. 친한 벗이었던 최남선, 이광수 등이 변절하자, 길에서 만나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내가 알던 사람은 이미 죽었다’며 인연을 끊었을 만큼 지조에 엄격했다.

▼ 박인환(朴寅煥, 1926-1956)은 전쟁 직후의 황폐한 폐허 속에서도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명동 거리를 누비며 도시적 고독과 시린 낭만을 노래하던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 시인이다. 탤런트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문화예술인들의 단골집 명동 ’은성주점‘에서 지었다는 ‘세월이 가면’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아내를 향한 애틋한 순애보로 점철된 삶을 산 인물이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극한의 시련 속에서도 예술적 혼을 불태웠으며,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절절한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 11 : 15. 전시관을 빠져나와 다시 길을 이어간다.

▼ 몇 걸음 걷지 않아 만나는 ‘망우문화마당’에서는 Busking 공연을 하고 있었다.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무명가수들이었지만 그들이 부르는 노래솜씨만큼은 여느 유명가수들에 뒤질 게 없었다. 열 명 남짓의 청중이 전부인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 곳곳에서 ‘사잇길’이 갈려나가고 있었다. 과거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리며 어둡고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던 공간을 지자체가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산책로로 정비하면서 탄생했다.

▼ 사잇길은 경계를 허무는 ‘사이’의 길이다. 이름 그대로 무덤과 무덤 사이, 삶과 죽음의 사이, 과거와 오늘의 사이를 걸으며 역사와 인생을 사색하고 경계를 넘나든다는 인문학적 의미를 담았다.

▼ 11 : 19. 박인환 묘역 입구.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지만 그가 남긴 시들은 아직도 시린 낭만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다.

▼ 독립운동가 서동일(徐東日, 1893-1965) 선생의 묘역 입구. 일제강점기 중국 북경을 중심으로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다물단(多勿團)’ 등에서 활약하며 무력 독립운동과 군자금 모집에 헌신한 인물이다.

▼ 망우역사문화공원에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이끌어간 유명인사 80여 명이 잠들어 있다.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일반 시민의 묘도 7,000여 기에 이른단다. 그렇다고 무시하지는 말자. 기회를 얻지 못했을 따름이지 개개인은 여느 유명인사에 뒤지지 않을 능력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 이중섭 화백과 독립운동가 오재영(吳哉泳, 1897-1948) 선생은 입구를 같이 쓰고 있었다. 오재영 선생은 일제강점기 의열단의 첫 번째 무장 투쟁이었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사건을 막후에서 지원한 숨은 조력자이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김영랑(1903-1950) 시인의 묘역은 직접 둘러봤다. 본명은 김윤식(金允植),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순수 서정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 지자체는 지역상권 마케팅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시설 현대화로 쾌적한 쇼핑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며 ‘동원골목시장’에 들렀다 가란다.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시장의 위치를 담은 지도까지 그려 넣었음은 물론이다.

▼ 종점인 깔딱고개 근처에서는 ‘사가정시장’ 안내판으로 바뀐다. 그게 기억에 남았던 필자 부부가 트레킹 후 사가정시장을 들러봤으니 마케팅의 위력이라고나 할까?

▼ 제이레빗(J Rabbit)의 대표곡 ‘좋은 일이 있을 거야’는 지치고 복잡한 일상 속에서 따뜻한 위로와 긍정의 에너지를 전하는 메시지다.

▼ 11 : 25 – 11 : 37. ‘사색의 길’ 장점은 곳곳에 벤치를 놓아두었다는 점이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과 영혼의 여백을 되찾기에 이만한 공간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필자 부부도 영혼의 여백까지는 아니었지만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다 갈 수 있었다.

▼ ‘국민 강녕탑’이란다. 용마산, 아차산, 망우산 일대를 돌며 산속 쓰레기를 주워 온 최고학 옹이 국민 모두의 평안과 건강(강녕, 康寧)을 기원하는 염원을 담아 오랫동안 홀로 쌓아 올렸단다.

▼ 11 : 54. 사색의길 서쪽 구간에 자리한 ‘중랑전망대’에 이른다. 서울 시내와 이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산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하단에 커다란 태극문양을 그려 넣어 단순한 전망대를 넘어 ‘역사를 상징하는 공간’임을 암시해준다.

▼ 원목 데크로 마감된 안정감 있는 2층 구조로 설계되었다. 30인 이상의 관람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탠드식 휴게공간을 만들고, 층별로 전망대를 나누어 다양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 난간에 서면 서울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를 둘러싸고 있는 산들도 뛰어난 볼거리다. 맨 오른쪽은 불암산, 이어서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이 차례로 솟구쳐 오른다.

▼ 시선을 조금 옮기자 북한산이 우람한 산세를 자랑하고 있다. 불·수·도·북. 45km를 1박2일에 걸쳐 쉬지 않고 오르내리던 기억이 새롭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패산을 포함해 ‘불수사도북(강북 5산)’으로 부르고 있다나?

▼ 다시 길을 이어간다. 그러자 야구인 이영민(李榮敏, 1905-1954)의 묘역 입구가 나온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의 베이브 루스‘라 불리며 명성을 떨친 한국 야구 역사의 원조 스타플레이어이다. 1958년부터 매년 고교 최고의 타자에게 ’이영민 타격상‘이 수여되어오고 있다.

▼ 차중락(車重樂, 1942-1968)은 1960년대 대한민국 음악계를 풍미한 원조 ‘오빠 부대’의 주역이자 레전드 가수이다. 1963년 한국 록의 선구적인 밴드인 키보이스의 리드 보컬로 데뷔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는 별명을 얻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 소문난 역사문화공원답게 산꼭대기 어림까지 공중화장실이 지어져 있었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망우(산)삼거리’가 반긴다. 중랑둘레길·등산로 안내도는 ‘북카페’도 적어 넣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북카페는 보이지 않았다.

▼ 삼거리는 ‘용마산 동행길’의 입구이기도 하다. 보행약자들도 용마산에서 산림욕을 즐기며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된 무장애 숲길이다.

▼ 12 : 10. 용마산 스카이워크. 숲과 도심의 전경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중랑구의 새로운 산책 명소다. ‘하늘 위의 고공 길’답게 160m의 산책로가 최대 10m 높이로 아찔하게 띄워져 있어, 걸을 때 주변 나무들의 상단부와 눈높이를 맞추며 걷는 재미가 있다.

▼ 가장 높은 곳에는 서울의 산줄기와 도심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하트 모양의 전망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놓았다. 하나 더. 다른 스카이워크들과는 달리 유리 대신 자연 친화적인 목재 데크로 바닥을 깔아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 2층 전망공간에서 바라본 풍경. 남산 서울타워를 포함해 봉화산, 도봉산, 북한산으로 이어지는 서울의 산줄기와 서울 시내의 멋진 풍광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불암산과 수락산, 도봉산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 12 : 15. 다시 길을 이어간다. 고도를 232m까지 끌어올리던 산길은 망우산의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다시 고도를 낮춘다.

▼ 12 : 25. 4코스(망우·용마산 코스)의 종점이자 5코스(아차산 코스)의 시점이 되는 ‘깔딱고개 쉼터’에 이르면서 4코스 답사는 끝난다.

▼ 경계 지점임을 알리는 각종 시설들은 깔딱고개로 오르는 계단 초입에 세워놓았다.

▼ 이정표(광나루역 4.6km/ 화랑대역 7.7km)가 접근지점인 사가정역까지의 거리를 1.6km로 적고 있다. 다음 구간(5코스)을 시작할 때 고생깨나 하겠다.

▼ 사가정역으로 내려가는 계단.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서울둘레길은 5코스의 난이도를 ‘중’으로 꼽는다. 길이가 4.6km에 불과하지만 깔딱고개 쉼터에서 아차산(용마산 5보루) 방향으로 놓인 570개의 나무계단을 올라가야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 계단까지 합친다면 5코스의 난이도는 ‘상’을 넘어 ‘최상’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 12 : 38. 이름 없는 약수터.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으나 음용은 불가능하단다.

▼ 12 : 52. 사가정공원. 공원 곳곳에 운동기구, 어린이 놀이터(그네, 미끄럼틀), 피크닉 테이블이 배치되어 있어 가족단위 휴식처로 제격이겠다.

▼ 13 : 02. 서울지하철 사가정역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오늘은 10.27km를 3시간 20분에 걸었다. 정규 코스는 7.7km지만 사가정역까지의 접근거리와 구경거리를 찾아 헤맨 거리를 보태니 2.6km나 늘어났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마음이 즐거우면 기쁨으로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는데 마음이 슬프면 얼마 가지도 못해서 피곤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냥 걸어서 가는 것이고 체력이 받쳐주지만, 마음에 따라 가까운 길도 먼 길을 온 것처럼 힘들고 먼 길도 가까운 길을 온 것처럼 힘들지 않다는 얘기일 것입니다. 집사람은 기분 좋은 말로 늘 즐거움을 줍니다. 배려하고 이해하며 나를 챙겨줍니다. 그런 집사람과 함께 오늘도 걸었습니다. 그러니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10km 넘게 걸었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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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3코스(불암산역 – 화랑대역)
일 시 : ‘26. 8. 12(토)
소재지 : 서울시 노원구 일원
코 스 : 불암산역→상계동나들이철쭉동산→불암산전망대→학도암 갈림길→불암산 갈림길→공릉산백세문→화랑대역(거리/시간 : 6.9km+0.5km, 실제는 9.96km를 4시간에)
특징 :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21개 코스, 156.5km 규모의 순환형 트레일이다. 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고덕산·일자산·대모산·우면산·관악산·호암산·안양천·노을공원·봉산·북한산 등 서울을 둘러싼 자연과 도시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 08 : 55. 불암산역(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지하철 4호선, 불암산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옛 이름은 ‘당고개역’, 고개 근처에 무사안녕을 빌던 당집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 ‘불암산’의 3부쯤 되는 산허리를 옆으로 째며 걷는다. 울창한 숲이 주는 포근함 속에서 여유롭게 걷을 수 있는 코스로 ‘하늘을 품은 포근한 숲길’이라는 테마를 갖고 있다. 난이도는 ‘중’. 산길을 오르내리는 약간의 고단함은 감수해야 한다.

▼ ‘상계로’를 50m쯤 걷다가 첫 사거리(아래 사진)에서 ‘덕릉로124길’로 옮겨 불암산 방향으로 간다. 필자는 30m쯤 더 걷다가 ‘덕릉로126가길’을 따라 올라갔다. ‘ㄱ’자 모양으로 가느냐 아니면 ‘ㄴ’자로 가느냐의 문제이지 거리나 시간의 차이는 거의 없다.

▼ 09 : 07. 10분 남짓 진행하면 ‘상계동(나들이) 철쭉동산’에 이른다. 2005년 불법경작지 정비를 시작으로 백철쭉·자산홍 등 3만 주를 식재하면서 틀을 갖췄고, 2021년에는 철쭉 사이로 산책로를 내고 전망대, 휴게쉼터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 상계동 주민들이 자신의 뜨락처럼 드나든다고 했다. 가볍게 걸을 수 있도록 철쭉 사이로 산책로를 냈는가 하면, 서로 어울리며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휴게시설까지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철쭉이 만개한 봄철은 두말할 것도 없다.

▼ 09 : 12. 2코스에서 3코스로 변경됨을 알리는 시설물들은 ‘철쭉동산’의 끄트머리에 설치되어 있다. 이정표가 시점(화랑대역 6.9km)과 종점(당고개공원갈림길 5.4km, 이하 ‘종점까지의 거리’로 표기) 말고도 ‘불암산역’에서의 접근거리(500m)도 알려준다.

▼ 09 : 14. ‘경수사 계곡’으로 내려가면서 3코스 답사가 시작된다. 2코스에 이어 3코스도 ‘불암산 둘레길’을 따라간다. ‘북한산둘레길’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생긴 ‘불암산둘레길’은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정상과 산비탈을 타고 도는 ‘하루길(10km)’과 공릉동 일대 역사·문화 중심의 나절길(8km)’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둘레길 3코스는 이중 하루길 일부 구간을 빌려 쓴다.

▼ 이 계곡은 높이 20m에 달하는 웅장한 ‘불암폭포’가 자랑거리다. 하지만 계곡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폭포의 장관도 사라지고 없겠다. 하긴 장마철이나 비가 내린 직후에 방문해야 거대한 암벽을 타고 쏟아지는 압도적인 폭포수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 이어서 나지막한 고개를 넘는다. ‘불암산’에서 뻗어 나온 지능선이다. 여름의 열기가 한풀 꺾인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날이다. 이런 날, 숲속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걷는 건 축복이다. 나뭇잎을 흔들면서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능선에는 소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정자를 짓고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불암산’도 조망되나 사진이 흐려 게재는 하지 않았다.

▼ 소공원 아래 공터는 어린이들 차지다. 아니 어른들을 위한 ‘배드민턴장’도 조성되어 있었다. kaka0map에는 ‘넓은 마당’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래선지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 09 : 23. ‘경수사’ 입구(이정표 : 종점까지 6.7km). ‘폭포(물)가 아름다운 절(景水寺)’이란 이름처럼 ’불암폭포’의 물줄기를 가장 온전하게 볼 수 있는 조망처이다. 하지만 물줄기 없는 폭포에는 관심이 없어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 주택가 가까이까지 내려가던 탐방로가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금방 평평한 길로 돌아오지만.

▼ 이후부터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평한 오솔길이 계속된다. 중간에 ‘덕암초등학교’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이정표 : 종점까지 6.4km)와 만나기도 한다.

▼ 3코스는 울창한 숲이 주는 포근함 속에서 여유롭게 걷을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소문대로 산길은 무척 고왔다. 경사가 거의 없는 오솔길은 정비까지 잘 되어 있었다. 유유자적 거닐거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도 있으니 이런 게 바로 힐링이 아닐까 싶다.

▼ 09 : 34. 쉼터용 정자가 있는 또 다른 능선에 올라선다. ‘경수사’ 입구 직전의 고개보다 조금 더 굵어진 지능선이다. 해발 고도도 20m쯤 높아졌다.

▼ 이정표(종점까지 6.1km)가 불암산 등산로와 교차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렇듯 3코스는 불암산역에서 올라오는 길과 불암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간다.

▼ 탐방로는 크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불암산 자락을 옆으로 째며 작은 지능선을 수없이 오르내린다. 그러다보니 지능선과 지능선 사이에서 이렇게 뚝 떨어지기도 한다. 골짜기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09 : 37. 정암사 계곡을 건넌다. ‘정암사(사찰)’ 앞을 지나온 물줄기라서 그렇게 불러봤다.

▼ 화강암 바위와 소나무 숲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 등산객들의 쉼터이자 인근 주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높다고 했다. 하지만 개울은 물기 한 점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메말랐다.

▼ 09 : 39. 개울가 도로(덕릉로94길)를 따라 ‘정암사(淨岩寺)’ 쪽으로 올라간다. 불암산 정상으로 가는 가장 대중적인 제5등산로(정암사 코스)이다. 100m쯤 올라가면 이정표(종점까지 5.7km)가 오른쪽 산자락을 가리킨다.

▼ 이즈음 ‘타포니 바위(풍화바위)’를 만날 수 있다. 암석의 약한 부분이 비바람에 깎여 나가 벌집 모양의 구멍(타포니)이 뚫려있는데, 전체적인 생김새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근석’으로 불리고 있었다. 풍요와 다산, 그리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민간 성기숭배 신앙의 핵심 상징물인데, 얼마간 더 걸으면 또 다른 상징물인 ‘여근석’도 만나게 된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양기와 음기를 보완하고 있다고나 할까? 하나 더. 탐방로에서 살짝 비켜나있는데다 별도의 표지판이 없어 무심코 지나칠 수 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 ‘타포니바위’을 지난 산길이 내리막으로 변한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가파르게 아래로 떨어진다.

▼ 이후부터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불암산’은 거대한 암벽과 절벽, 그리고 울창한 수목이 어우러져 최상의 풍치를 자랑한다. 그 산허리를 가르는 서울둘레길 불암산 구간은 숲길을 걸으며 불암산의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는 명품 걷기길이다.

▼ 불암산은 바위와 돌이 많은 산세가 특징이다. 그래선지 누군가의 소원을 담아 아기자기하게 쌓아 올린 다양한 크기의 돌탑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 09 : 51. 이정표(종점까지 5.3km)가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나비정원’으로 연결됨을 알려준다.

▼ 안내판은 ‘불암산 힐링타운 무장애숲길’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 하단에 나비정원 (365일 살아있는 나비를 볼 수 있다)과 철쭉동산이 있고 말이다. 참고로 ‘무장애숲길’은 산림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산림 내 시설을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확충하는 방법이다. 가급적 주택가 주변 낮은 산자락에 경사가 완만한 길을 만드는 것으로, 산에 오르기 어려운 어르신과 장애인, 임산부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테크로드는 계단이 분명했다. 요 아래 어딘가에서 무장애길과 연결이 되나보다.

▼ 불암산은 강원도의 울창한 숲속에 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 걷는 내내 삼림욕을 한다고 봐도 된다.

▼ 09 : 55. ‘불암산 등산로’와 교차되는 사거리. 이정표(종점까지 5.0km)가 둘레길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불암산 전망대(35m 지점)’가 있다며 잠시 들렀다 가란다.

▼ 길가에 탤런트 최불암(崔佛岩) 선생의 자작(불암산이여!)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최불암의 본명은 최영한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곁에 남은 어린 영한이 무탈하게 자라길 기도하며 받아온 새 이름이 ‘불암’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차마 부를 수 없는 큰 이름이라며 간직만 하고 있었는데, 그가 배우로 데뷔하면서 세상에 내놓게 되었단다. 어머니는 시인 박인환이 ’세월이 가면‘을 즉석에서 지어낸 곳으로도 유명한, 문화예술인들의 단골집 명동 ’은성주점‘의 주인이었다.(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 인터넷에서 빌려왔다)

▼ 전망대는 ‘불암산 힐링타운’에 속한 시설 중 하나다. 전망대 말고도 나비정원·생태학습관·카페 포레스트·산림치유센터·사계절정원·힐링가든·유아숲체험장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 쉴거리를 두루 갖추었다.

▼ ‘불암산 전망대’는 날개를 펼친 나비 형상으로 디자인되었다. 높이 10m의 무장애 전망대로 중앙에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며, 양옆으로는 완만한 곡선형 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어 세 방향에서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다. 보행 약자를 배려한 독창적인 설계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단다.

▼ 꼭대기층은 조망의 명소이다. 탁 트인 360도 파노라마 view를 자랑한다. 불암산 자락은 물론이고 인근의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과 노원구 시가지, 멀리로는 초안산, 남산, 관악산, 청계산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

▼ 탐방객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 수락산과 도봉산.

▼ 반대 방향에는 불암산(佛巖山, 508m)이 있다. 산꼭대기의 큰 바위가 송낙(승려들이 쓰는 모자)을 쓴 부처님의 모습을 닮았다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암벽 등반의 명소로 필자도 초보이던 집사람을 어깨로 받쳐가며 암벽을 탔던 기억이 있다.

▼ 10 : 03.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길을 이어간다. 힐링타운에 속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망대 바로 아래에 배드민턴장까지 낀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 이후로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간다.

▼ 오늘은 철망 울타리와 함께 가는 구간이 유난히 많았다. 학교 등 인접시설에 피해를 주는 행동을 말아달라는 안내판도 심심찮게 매달려 있었다. 맞다. 어쨌든 산길에선 조용히 다니는 것이 좋다.

▼ 두어 곳에 ‘낙석 위험구간’이라는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바위와 돌이 많은데다 경사까지 가파른 곳에 길을 내다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 10 : 15. 그렇게 10분 남짓 진행했을까 기묘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넓적바위’라는데 등산객들은 대부분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여근석(여근바위)’으로 여긴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지만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떠올리게 만드는 형상이 가장 뇌리에 남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기묘묘한 생김새로 보아 옛날에는 아들 낳기를 바라는 여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 100m 남짓 더 걸었을까 길이 둘로 나뉘고 있었다. 이정표는 없지만 왼쪽은 ‘학도암’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불암산 7등산로)이다. 물론 ‘서울둘레길’은 직진이다.

▼ 이즈음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소나무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 하나다. 그런 이점을 지자체가 놓칠 리가 없다. 벤치에 평상, 심지어는 선베드 형태의 야외벤치까지 놓아 시민들의 쉼터로 조성해 놓았다.

▼ 화장실도 눈에 띈다. 서울둘레길의 가장 큰 장점은 심심찮게 화장실을 만난다는 점이다. 숲속에 들어선 예쁜 화장실은 상상만으로도 낭만 넘치는 멋진 풍경이 된다.

▼ 10 : 20. 몇 걸음 더 걸으면 ‘학도암 갈림길(이정표 : 종점까지 4.2km)’. 서울둘레길은 도로를 가로질러 맞은편 산자락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300m쯤 다리품을 더 팔면 조선 왕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절간이 있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 도로를 따라 5분 남짓 올라갔을까 ‘학도암(鶴到庵)’이 얼굴을 내민다. 주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학이 날아와 놀았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 계단을 오르면 작은 문(門), 허리만 굽힐 게 아니라 마음까지 비우라며 ‘하심(下心)’이란 문패를 내걸었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불교의 핵심 수행 자세이다.

▼ ‘학도암’은 1624년(인조 2년) 무공(無空) 화상이 불암산의 한 암자를 현재 위치로 옮겨오면서 시작된다. 이후 6·25 전쟁으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수차례의 중건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대웅전, 약사전(동굴법당), 삼성각 등의 전각이 있다.

▼ 대웅전 뒤편 암벽에는 높이 13.4m의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좌상(磨崖觀音菩薩坐像)이 새겨져있다. 이 마애불상은 1870년대에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화승(畵僧)과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던 왕실 석공들이 제작에 참여했다나?

▼ 명성황후가 왕의 사랑, 자녀 출산, 자녀의 성공이라는 세 가지 소원을 빌었는데 이게 모두 이루어졌다는 믿거나 말거나식 이야기도 있다. 명성황후는 4남1녀를 두었으나 순종을 제외한 자녀들은 모두 어릴 때 요절했고, 순종 또한 말로가 별로였기에 하는 말이다.

▼ 10 : 39. 사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진행한다.

▼ 초입에 ‘노원둘레산천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노원구의 수려한 자연경관(산과 하천)과 유서 깊은 역사·문화유산을 하나로 연결한 도보여행 길로, 모두 6개 코스 45.8km로 이루어져 있다. 노원의 산(수락산, 불암산)과 천(중랑천, 당현천, 묵동천)을 중심으로 유적지와 숲길을 탐방한다고 보면 되겠다.

▼ 이후의 길은 무척 고왔다. 보드라운 흙길이 경사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 경계를 나누고 있는 나무 울타리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중간에 탐방객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틈을 내주기는 했다. 임야 소유주(개인)가 자신의 토지경계를 나타내기 위해 설치한 시설들이란다.

▼ 전 코스에서도 얘기했듯이 산행은 인생을 닮았다. 굴곡지게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나타내기라도 하려는 듯 산길은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 10 : 54. ‘백사마을’에 이른다. 아니, 백사마을 뒤쪽 산자락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노원구 중계본동에 위치한 ‘백사마을’은 한때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유명했다. 1967년 용산, 청계천, 안암동 일대 판자촌에서 강제 이주당한 도시 서민들이 불암산 자락에 천막을 짓고 살면서 마을이 시작되었다. 1971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이면서 건물 증개축이 제한되었고, 이로 인해 서울에서 보기 드문 60-70년대식 달동네 풍경이 최근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과거 지번인 ‘산 104번지’가 자연스레 ‘백사’란 지명으로 변했다.

▼ 백사마을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막혀있었다. 백사마을이 재개발된다더니 공사가 시작되었나 보다. 4만5,854평의 대지에 지하 9층-지상 35층의 건물이 26개(3,178가구)나 들어서는 대단위 공사장이니 어찌 통행을 막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길은 막혔어도 쉼터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주민들이 등산객이나 걷기여행자들로 바뀌어 있었지만. 이정표(종점까지 3.5km)도 정상(2.9km 지점)으로 올라가는 방향만 가리키고 있었다.

▼ 쉼터 아래는 텃밭이 꽤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그런데 ‘경작금지’라는 팻말과 현수막을 어지럽다 싶을 정도로 많이 설치해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텃밭에는 각종 작물들이 잘만 자라고 있었지만.

▼ 쉼터를 지나면서 길은 오름짓을 시작한다.

▼ 그러다 끝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긴 나무계단으로 변해버린다. 3코스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아닐까 싶다.

▼ 11 : 04.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산꼭대기(해발 171m)에 올라설 수 있었다. 삼각점(성동 342)이 지키는 정상에는 벤치 2개가 놓여있었다. 올라오느라 고생했으니 잠시 쉬다 가라는 모양이다.

▼ 내리막으로 변한 산길을 몇 걸음 더 걷자 ‘불암산 갈림길’. 이정표(종점까지 3.0km)가 불암산 정상(3.0Km 지점)으로 올라가는 길(불암산 9등산로)이 나뉨을 알려준다.

▼ 이후부터는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그건 그렇고, 탐방객의 숫자가 부쩍 늘어났다. 둘레길 걷기여행자들에 불암산 등산객들이 합쳐졌음이리라. 덕분에 고요했던 숲속이 오히려 활기찬 분위기로 바뀌었다.

▼ 11 : 07. 100m쯤 더 걸었을까 앞서가던 집사람이 오른쪽을 가리킨다. 이정표(종점까지 2.9km)가 가리키는 ‘불암산 종합스타디움’ 방향에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 아니나 다를까 30m쯤 들어가는 곳에 ‘인사바위’가 숨어 있었다. 마치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는 바위다.

▼ 11 : 11 – 11 : 28. 이번에는 전망대를 겸한 쉼터다. 서울둘레길은 이런 쉼터를 곳곳에 만들어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필자 부부도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어갈 수 있었다.

▼ 난간에 서면 남양주의 아파트 숲과 천마산, 예봉산 등 경기 동북권의 아름다운 산세를 조망할 수 있다.

▼ 능선을 따라 격식을 갖춘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한국전력 인재개발원에서 세운 모양이다. 필자가 젊던 시절 체육대회 참석을 위해 매년 찾아왔던 곳이기도 하다.

▼ 앙증맞은 꽃밭. 누군가가 화초를 심어놓았나 보다. 오가는 사람들이 행여나 밟을세라 손가락 2개 크기의 팻말까지 세웠다.

▼ 11 : 45. 또 다른 쉼터. 조망이 터지지 않기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 이번에는 탐방로 양쪽 모두에 울타리가 쳐져있다. 왼쪽은 문화재 보호구역(태릉), 그리고 오른쪽은 군사시설 보호구역(군부대)에서 설치했단다.

▼ 11 : 54. 마지막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니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세면대 아래에 있는 안심 비상벨을 누르라는 음성 안내가 들려온다. 하나 더. 최근 설치된 안심 화장실에는 버튼을 누르기 힘든 긴박한 순간에도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등의 비명을 지르면 단어를 자동 인식하여 신고가 접수되는 음성인식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는데, 이곳은 어쩐지 모르겠다.

▼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에는 흙먼지털이기가 기다린다. 맞다. 옷과 신발에 묻은 흙이나 먼지는 몰라도 해충(진드기 등)은 꼭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 12 : 03. 탐방로가 포장길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뛰어가는 사람까지 눈에 들어온다.

▼ 12 : 05. 숲의 향기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산길의 끄트머리인 ‘공릉산백세문’에 이른다. 2009년에 세워진 이 문은 ‘3km의 흙길로 조성된 공릉산길을 오르면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건강과 장수의 염원을 담고 있다.

▼ 이후부터는 ‘노원로’를 따라간다. 왕복 6차선의 널따란 도로지만 아파트 경계 숲과 굵직한 가로수 사이로 인도가 나있어 흡사 울창한 숲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 12 : 19. 화랑대사거리. ‘서울둘레길’은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오른쪽으로 간다. 하지만 왼쪽에 있는 ‘화랑대 철도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던 옛 화랑대역이 ‘화랑대 철도공원’으로 탈바꿈했다는 걸 아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하나 더. 1939년 여름(7.25) 경춘선의 첫 경적이 울렸다. 우리 민족자본으로 만든 최초의 철도 시설이다. 성북역(현 광운대역)부터 춘천역까지 24개 역을 지나는 87.3km의 노선은 서울 도심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던 교통수단이자 수많은 이들의 낭만이 깃든 길이었다.

▼ ‘화랑대 철도공원’ 투어는 ‘경춘선 숲길’을 따라가면서 시작된다. 과거 기차가 다니던 폐 철길 주변에 나무를 심어 ‘숲의 형태로 가꾼 산책로’로 탈바꿈시켰다. 시민들이 걸으며 휴식할 수 있는 ‘도심 속 숲 정원’이라고나 할까? 기존 철로도 그대로 놓아두었음은 물론이다. 2010년 겨울(12.20)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경춘선은 폐선됐다. 기존의 낡은 단선 철도가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서울 도심의 전철 운행이 늘어나면서 경원선이 포화상태에 이른다. 이에 복선전철화를 계기로 경춘선의 기점을 중앙선 상봉역으로 변경하여 서울 진입구간의 병목현상을 해결했다. 한동안 버려져오던 철길은 2013년부터 공원화를 거쳤다.

▼ 200m쯤 들어갔을까 ‘철도공원’이 얼굴을 내민다. ‘경춘선 운행 구간이 바뀌며 문을 닫았던 ‘화랑대역’은 현재 ‘화랑대 철도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옛 전차를 복원하고 철길 위에 산책로를 조성했다. 그런데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노원 수제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 역사(驛舍)는 1939년에 지었다. 87년의 세월을 살아남았으나 외관은 평범했다. 삿갓 모양의 건물은 비대칭의 삼각형을 이루는 박공지붕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간이역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화랑대역의 수행업무를 간직한 채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 개통 당시에는 ‘태릉역(泰陵驛)’이었다. 인근의 문정왕후 능인 태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58년 옆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의 별칭을 따서 ‘화랑대역’이 되었다. 하나 더. 2000년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개통되면서 근처에 새로 지어진 지하철역에 이름마저 빼앗겨버렸다.

▼ ‘은하철도 999’에나 나올 법한 저 열차는 164만2500km나 달린 베테랑 미카 증기기관차라고 한다. 어린이대공원에 있던 것을 옮겨왔단다. 오래 전 경춘선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철길 위를 디젤기관차가 무궁화호 객차를 끌고 달렸다. 낭만적인 통기타 소리와 계란, 사이다로 대변되던 대성리, 청평, 강촌행 대학생 MT 열차가 바로 이 시절의 무궁화호였다. 하지만 2010년 복선전철화 개통 이후 일반 지하철과 같은 전동차가 운행을 시작했고, 2012년부터는 국내 최초의 2층 객석을 갖춘 준고속 좌석형 급행열차인 ‘ITX-청춘’이 투입되어 용산역과 춘천역을 빠르게 연결한다.

▼ 뒤에 붙어있는 객차에는 ‘익스프레스 노원 바이 미라쥬’가 들어섰다. 이름 그대로 기차 콘셉트로 꾸며진 레스토랑이다. 유럽풍 특급열차의 화려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정교한 문양과 샹들리에와 소품이 곳곳에 채워졌다. 해안철도 배경의 콘셉트 아트(미디어 화면)로 꾸며놓은 창문도 돋보인다. 파스타, 리조또, 스테이크, 샐러드 등 메뉴도 다양했다. 하지만 반주로 제격인 맥주(통상적인 모든 주류)를 판매하지 않아 이용하지는 않았다.

▼ 1951년 일본에서 제작되어 ‘부산 철도차량공작창’에서 조립하였다는 협궤열차(혀기-1형)가 객차 2량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수인선(수원-남인천)과 수려선(수원-여주) 구간을 달리며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던 추억의 열차이다. 참고로 협궤열차란 선로 간격이 일반 표준궤(1,435mm)보다 좁은 762mm의 협궤철도를 달린다. 차체 폭도 2.28m로 매우 슬림하고 아담한 것이 특징이다.

▼ 노면전차는 체코 프라하에서 운행하고 있던 트램(Tram)을 들여왔다. 1899년 대한제국 고종 때 전차개통식부터 1968년 운행 종료시까지 사용하던 전차와 비슷한 모형이란다. 현재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게시하지 않았지만 무상 기증받았다는 히로시마 노면전차와 우리나라 최초의 노면전차 실물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 화랑대역 400m 구간에 조성된 ‘노원불빛정원’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진기한 동식물 등 다양한 조형물들이 숲속에 가득하다. 밤에 오면 저 조형물들이 LED 불빛으로 채워지면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단다.

▼ 육군사관학교 앞의 ‘기마 화랑상’. 화강암 지대석 위에 화강암 대좌를 설치하고 그 위에 말을 타고 창을 든 청동 화랑상을 설치하였다.

▼ 전국 유명 34개 브루어리(Brewery)가 참여하여 200여 종의 수제맥주를 선보인다. 안주삼아 지역 시장상인들이 내놓는 대표 푸드도 맛볼 수 있다. 여흥은 서울뮤직위크와 협력하여 보여주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공연으로 삼으면 되겠다.

▼ ‘캠맥광장’이란다. 왼쪽은 신선한 크래프트 맥주를 직접 양조하는 Brewery 부스, 오른쪽에는 Food 부스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필자도 650cc 짜리 하나를 챙겨들고 행사장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 그늘막 텐트도 눈에 띈다. 다른 축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일행끼리 오순도순 둘러앉아 맥주를 마실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을 손가.

▼ ‘에코광장’의 주인공은 ‘노원 브랜드 페어’이다. 관내 소상공인들의 디저트, 수공예품 등을 전시·판매하는 살거리 구역이다.

▼ ‘맥주&뮤직 광장’에는 Brewery 말고도 공연장이 있었다. 제10회 서울뮤직위크와 연계하여 운영하는 아바타트리 스테이지라고 한다.

▼ 12 : 57. 철도공원 투어를 마친 다음, 다시 ‘서울둘레길’을 이어간다. 화랑대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서도 한참을 더 걸아야 종점인 ‘화랑대역’에 이를 수 있다.

▼ 화랑대사거리부터 화랑대역 사이에는 ‘공릉동근린공원’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꿈나르샤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공릉동의 대표적인 꿈마을 청소년 축제라고 한다.

▼ 13 : 05. ‘공릉동근린공원’의 서쪽 입구에 3코스에서 4코스로 변경됨을 알리는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은 9.96km를 4시간에 걸었다. 정규 코스는 6.9km이지만 불암산역에서의 접근거리 및 학도암과 화랑대철도공원을 둘러보느라 3km를 더 걸은 모양이다.

▼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중략-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 드라마 ‘미생’ 속 주인공 장그래의 바둑 사부(남종수)가 전한 명대사로 의욕만 앞서고 몸이 따라주지 않아 쉽게 지치고 무너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입니다. 그가 말한 이루고 싶은 뭔가가 있지는 않지만 고희를 넘긴 나이에는 튼튼한 체력이 필요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트레킹에 나섰고 오늘도 집사람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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