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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83코스(복운리나눔숲 - 인주공단교차로)

 

여 행 일 : ‘26. 10. 16(금)

소 재 지 : 충남 당진시 송악읍·신평면 및 아산시 인주면 일원

여행코스 : 복운리 나눔숲→음섬포구→맷돌포선착장→삽교천방조제→인주공단교차로(거리/시간 : 15.1km, 실제는 삽교호관광지까지 11.35km를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집사람과 함께

 

특징 : ‘서해랑길’은 서쪽 바닷길을 말한다. 땅끝마을(전남 해남)에서 시작해 강화(인천)에 이르는 서해안의 해변길과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1,800km(109개 코스)의 걷기 여행길이다. 코리아둘레길(해파랑길·남파랑길·서해랑길·평화의길) 4면 중 가장 길며, 거치는 지자체만도 5개 광역에 기초가 26곳이나 되는 긴 여정이다.

 

▼ 09 : 20. 농어촌공사 부곡배수장(당신시 송악읍 복운리)

당진버스터미널에서 210번(구터미널↔변전소) 버스를 타고 오다 ‘이주단지’에서 내려야하는데 한 정거장을 더 가는 우를 범했다. 덕분에 몸 풀기 삼아 500m쯤 더 걸을 수밖에 없었고.

▼ 송악읍 복운리(이주단지)에서 삽교호관광지(신평면 운정리)까지 아산만과 접한 당진시의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내려오다 ‘삽교천방조제’를 건너 아산시로 간다. 볼거리로 넘치는 삽교호관광지가 자랑거리, 하지만 3,360m나 되는 ‘삽교천방조제’는 장애물로 꼽힌다.

▼ ‘부곡공단로’를 따라 남진(서해대교 방향)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왼쪽에 ‘아산만’을 끼고 걷는다.

▼ 서해대교와 행담도(行淡島)를 마주보며 걷는다. 행담도는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 일행이 도굴(남연군 분묘 도굴 사건, 1868년)을 감행하기 위해 본선(차이나호)을 정박시켰던 작전의 베이스캠프였다.

▼ 09 : 31. 첫 번째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이어서 ‘부곡공단로’를 따라 서진한다. 아산국가산업단지(부곡지구)의 기간도로(북부산업로)로 빠져나간다고 보면 되겠다.

▼ 09 : 38. 도심 속 Healing 공간인 ‘복운리나눔숲’에 이른다. 복권기금(산림청 녹색자금)의 지원을 받아 부곡산업단지 내 유휴지에 조성해놓은 소공원이다. 동서로 길쭉하게 숲이 조성되어있는데 공단에서 일하는 분들이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을 이용 산책하기 딱 좋겠다.

▼ 09 : 43. 서해랑길 안내도(당진 83코스)는 ‘복운리나눔숲’의 서쪽 출입구에 세워져 있다. 거리 15.2km에 난이도는 ‘매우 쉬움’. 서해대교·음섬포구·맷돌포구·삽교호관광지를 주요 볼거리고 꼽고 있다.

▼ 09 : 44. 북부산업로를 따라 남진(아산방향)하면서 83코스 답사를 시작한다.

▼ 09 : 47. ‘서해안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자마자 송악 IC로 올라가는 진입로가 길을 막는다.

▼ 서해랑길은 이 진입로를 따라간다. 차량통행이 빈번해서인지 횡단보도를 만드는 대신 ‘구레마을’쪽으로 에돌아가는 진입로 바깥쪽에 보행로를 따로 내놓았다. 참고로 ‘구레마을’은 ‘구례산’ 아래 바닷가에서 행담섬을 마주보던 마을이었다고 한다. ‘한나루’가던 사람들이 머물던 원(院) 터도 있었다나? 하지만 산업단지가 개발되면서 이름을 얻어왔을 것으로 여겨지는 ‘구례산’은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 09 : 53. 구레마을로 에돌아온 서해랑길은 다시 ‘북부산업로’로 올라선다. 송악 IC로 올라가는 저 진입로(아래 사진) 때문에 한참을 에돌아왔다.

▼ 이후부터는 ‘북부산업로’를 따라간다. 왼쪽은 ‘제1농장 방조제’, 둑은 온통 칡넝쿨로 뒤덮여있었다. 공생(共生)이라는 산림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주범이다. 하지만 역사의 바늘을 조금만 거꾸로 돌려보면 칡은 정말 고마운 식물이었다. 뿌리·줄기·잎·꽃 모두 요긴하게 쓰였다. 뿌리는 흉년에 부족한 식량을 대신했으며, 질긴 껍질은 삼태기를 비롯한 생활용구로 널리 이용됐다. ‘동의보감’은 칡꽃에 대한 효능도 적고 있다. 칡꽃과 소두화(팥꽃)를 같은 양으로 가루를 내어 먹으면 술을 마셔도 취할 줄 모른단다. 술을 좋아하는 나에게 딱 맞는 효능이 아닐까 싶다.

▼ 10 : 08. 바닷가에는 가교(假橋)가 놓여있었다. 송전탑을 건설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한 모양이다.

▼ 이즈음 아산만을 가로지르는 ‘서해대교’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바다 위에 우뚝 솟은 182m 높이의 주탑과 부드럽게 뻗은 사장교 케이블이 어우러져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미를 자랑한다.

▼ 하지만 둑길은 여전히 걸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포크레인이 둑길을 헤집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이 구간이 웃자란 잡초 때문에 걸을 수가 없더라는 후기를 보았는데, 누군가 당진구청에 민원이라도 넣었나 보다.

▼ 그렇다고 아산만의 아름다운 풍광을 놓칠 수야 없는 노릇. 헤집어진 흙 때문에 발이 푹푹 빠졌지만 둑길을 걷기로 했다.

▼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했던가? 덕분에 아산만과 서해대교를 다시 한 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은은한 한국적 조형미를 담았다는 ‘주탑’이 특히 눈길을 끈다. 전통 사찰의 당간지주 형상을 모티브로 설계했다나?

▼ 하지만 공사가 미치지 못한 구간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웃자란 잡초가 어른 키만큼이나 자랐으니 어쩌겠는가.

▼ 10 : 23. ‘음섬포구’에 이른다.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에 위치한 작고 한적한 포구인데, 서해랑길은 선착장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서해랑길에서 ‘볼거리’로 꼽고 있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쉼터에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 ‘음섬포구’의 음섬(陰島)은 진짜 섬은 아니다. 분명이 육지(마을이 들어앉은)인데도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흡사 섬처럼 보인다고 해서 지명에 ‘섬’자를 붙였다고 한다.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지금은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되어버렸지만.

▼ 음섬포구는 서해대교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조망 포인트로 꼽힌다. 포구 앞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서해바다와 함께 서해대교, 그리고 행담도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전망대까지 만들어놓은 이유일 것이다.

▼ 전망대에는 흔들의자까지 설치해 놓았다. 해가 질 무렵 서해대교를 배경으로 붉게 물드는 일몰 풍경이 일품이라더니 연인과 함께 느긋이 구경해보라는 모양이다.

▼ 음섬포구 부근은 ‘망둥어’가 잘 잡힌다고 했다. 그렇다면 저 어부의 투망 속에서는 지금 망둥어들이 발버둥치고 있겠지?

▼ 음섬포구 일대는 1979년 완공된 삽교천 방조제의 완공으로 조수가 약해지고 담수의 회류가 안 되어 바닷고기들의 먹이가 적어지자 어류들이 확 줄어들었다고 했다. 먼 바다로 조업을 나가고 있는 저 배들이 그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 10 : 29. ‘초대천 배수문(매산교)’을 건넌다. 초대천(草垈川)’은 송악읍 영천리 소재 오룡산에서 발원하여 신평면과 송악읍의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 흐르다 매산리·복운리 접경지에서 아산만으로 유입되는 길이 8.73km의 지방하천이다. 초반에 초대리(草垈里) 한 복판을 흐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들어간다. 방조제 위로 ‘매산해변길’이 나있다. 참! ‘초대천’의 중간쯤에서 송악읍(복운리)과 신평면(매산리)의 경계가 나뉜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 ‘민물장어’가 적힌 간판이 눈길을 끈다. 초대천에서 민물장어가 잘 잡힌다는 암시일지도 모르겠다. 옛 사람들은 가을에 국화전이나 국화술을 즐겼다. 살이 오른 추어탕을 먹으며 원기를 회복하기도 했다. 자꾸만 민물장어에 눈이 가는 이유이다.

▼ ‘매산해변길’을 따라간다. 아산만의 잔잔한 바다와 웅장한 서해대교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멋진 구간이다. 길가에 꽃밭까지 만들어놓아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진다.

▼ 꽃을 감상하며 걸을 수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분홍 낮달맞이꽃’, 밤에 피는 여느 달맞이꽃들과는 달리 해가 떠있는 시간인 낮에 핀다. 은은한 향기가 있어 ‘향달맞이꽃’이라고도 불리지만 땅바닥까지 구부리는 게 싫어 향기를 맡아보지는 않았다.

▼ ‘쑥부쟁이’인줄 알았는데 앞에다 ‘미국’을 붙이란다. 같은 국화과지만 번식력이 너무 강해 환경부가 생태계 교란 야생식물로 지정했을 정도니 그다지 달가운 꽃은 아니다.

▼ 차가운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가 일주일 전이었다. 기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서둘러 추수를 마쳐야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지런한 농부는 이미 가을걷이를 마쳐버렸다.

▼ 10 : 42. 매산리의 뭍이 ‘Г’ 모양으로 꺾이는 지점에 ‘매산해안공원’이 있었다. 주차장과 작은 광장이 전부지만, 엄청난 ‘뷰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시답잖은 관광시설이 아닌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살린 공간이라고나 할까?

▼ 서해대교와 행담도, 탁 트인 서해 바다를 지척에서 조망할 수 있다. 해질녘 하늘과 바다가 물드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서해안의 대표적인 낙조(日沒) 명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 그게 자랑스러웠던지 큼지막하게 빗돌까지 세워놓았다.

▼ 신평면에서도 ‘음섬포구’에서 ‘삽교호관광지’까지의 해안길을 ‘오감만족 힐링투어’가 가능하다며 자랑하고 있었다.

▼ 뭍의 끝(串)에는 ‘해어름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해질녘의 어스름’이라는 이름처럼 아름다운 일몰과 뛰어난 경관으로 잘 알려진 레스토랑 겸 카페이다. 건물 전체가 통창 구조로 설계되어 있어 내부 어느 자리에 앉아도 탁 트인 바다와 갯벌, 그리고 붉게 물드는 노을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 바다와 맞닿아 있는 넓은 잔디밭과 야외 정원도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다양한 수목과 화초들이 자라고 있어 차를 마신 후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기 딱 좋다.

▼ 앗! ‘여왕머리 바위(女王頭)’ 닷! 앞서가던 집사람이 대만의 야유지질공원에서 본 고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Nefertiti, BC1370-1330) 여왕’을 닮았다던 바위를 들먹이고 있었다. 집사람과 함께 세계여행을 시작한지도 10년 여, 그동안 45개쯤의 나라를 둘러보았고 많은 것을 가슴에 담아왔다. 집사람의 입에서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저런 멘트가 그 증거다.

▼ 정원의 콘셉트는 크리스마스인 모양이다. 산타크로스와 사슴, 썰매, 북극곰 등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조형물들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 10 : 51. 다시 길을 이어나간다. 아까 신평면관광안내도에서 거론한 ‘음섬포구-삽교호관광지 해안코스(6.2km)’를 따라간다고 보면 되겠다.

▼ 이즈음 ‘개매기(‘개막이’의 사투리)’가 눈에 띈다.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밀물 때 그물을 쳐두었다가 썰물 때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전통 어로방식이다.

▼ 천연 모래사장도 형성되어 있었다. 맞다. 어선을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 이곳 매산리 모래해변은 어선들이 모이는 장소였다고 한다. 모래사장이라 배를 대 놔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더라나? ‘깔판포구’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모래사장에 잇댄 바닷가에 거적(깔판)을 넓게 깔아두고, 바다에서 잡아 온 꽃새우를 말렸던 모양이다.

▼ 계속해서 해안산책로를 따라간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경기도와 충청남도의 경계를 이루는 ‘아산만 방조제’가 희미하게나마 눈에 들어온다.

▼ 11 : 07. 방조제 축조와 도로 개설 등 무분별한 개발로 지형적 변화를 거치면서 옛 깔판포구의 천연 모래사장은 점차 사라지거나 축소되었다고 한다. 대신 부잔교(浮棧橋, 뜬다리)를 이용한 선착장이 들어서 있었다.

▼ 이곳에도 ‘개막이’가 쳐져 있었다. 아니 갯벌 곳곳에 쳐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 체험 프로그램이라도 운영하는가 보다. 하지만 ‘개막이 체험장’은 당진이 아닌 진도(접도어촌체험마을), 장흥(신리어촌체험마을), 완도(달도마을) 등 남해안 지역에 더 분포되어 있다. 당진을 포함한 태안, 서산 등의 서해안 어촌마을에서는 개막이 대신 돌을 쌓아 고기를 잡는 '독살(석방렴) 체험장'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 바닷가를 따라 깔끔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여유롭게 거닐기 딱 좋다.

▼ 11 : 15 – 11 : 31. 쉼터를 겸한 작은 공원도 눈에 띈다. 부잣집 정원을 연상시키는 조경이 눈길을 끄는데 파고라와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덕분에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다 갈 수 있었다.

▼ 이즈음 ‘삽교천방조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깔판마을’ 앞에는 코스모스 꽃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높은 가을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한들거리는 것이 영락없는 ‘가을의 전령’이다.

▼ 11 : 43. 아까도 얘기했듯이 신평면 일대는 삽교천방조제의 완공으로 어류들이 줄어들었다. 그 후 주민들은 백합 양식장에 전념했으나 삽교천방조제에서 밀어닥친 폐수로 인해 이마저 망쳐버렸다고 한다. 어민들이 드나들던 바닷길은 사라지고 어패류 세척장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 83코스에서는 서해랑길 이정표를 만날 수 없었다. 대신 ‘국가지점번호안내판’이 수시로 얼굴을 내민다. 바닷가를 따라가는 외길이니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대신 조수간만으로 인한 안전이 더 걱정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 맷돌포구에 가까워지자 ‘삽교호관광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11 : 51. ‘맷돌포구’에 이른다. ‘맷돌포’는 석화산 아래 아산만 변에 있는 고깃배가 정박하던 곳으로 예전에는 ‘매포’라고 불리었다. 물이 들어올 때는 뱃머리가 왼쪽(또는 오른쪽)으로 돌아가고, 물이 나갈 때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맷돌이 도는 것과 같다고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여졌단다.

▼ 꼬맹이 어선 여남은 척이 묶여있는 포구는 작고도 한적했다. 하지만 선착장은 두 개나 됐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여건을 감안 부잔교선착장을 하나 더 만들어 놓았다. 하긴 준치, 황강달이(황석어), 숭어 새끼(동어)가 많이 잡히던 옛 영화가 완전히 사라져버리기야 했겠는가.

▼ 맷돌포구도 ‘어촌뉴딜 300사업’의 도움을 받았었나 보다.

▼ 포구는 제법 큼지막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횟집은 물론이고 카페도 여럿 들어서 있다. 그 풍경이 잠깐이나마 옛 영화를 소환시켜준다. 서해대교가 놓이기 전 매산리에 속한 행담도 주민들은 육지로 드나들 때 이곳 매산포구를 이용했다고 한다. 1960년대 말까지는 부리포-운정포-맷돌포-한진항-인천항으로 항해하는 정기여객선의 중간 기착지이기도 했다. 수심이 얕아 전마선이라는 쪽배를 타고 나가서 여객선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지만(디지털당진문화대전에서 정리)

▼ 카페 홍보도 가지가지다. 커피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만 들어오라는 것일까?

▼ 이후부터는 ‘삽교호해안탐방로’를 따라간다. 아산만의 수려한 경관을 감상하며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1.5km짜리 명품 데크 산책로이다.

▼ 주인장이 직접 배를 몰아 잡아 올린 싱싱한 제철 자연산 회를 먹을 수 있다는 ‘서해범선’은 문이 닫혀있었다. 14개의 창문이 나있어 서해바다의 풍광을 마주하며 식사 할 수 있다는 곳이다.

▼ 계속해서 ‘삽교호해안탐방로’를 따라간다. 삽교호관광지를 전면에 두고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 12 : 11. 영롱한 진주를 머금고 있는 듯한 조형물. 아산만 일대와 삽교호에서 많이 잡히는 특산물인 ‘조개’를 형상화한 작품이란다. 주변은 작은 쉼터로 만들어놓았다.

▼ 탐방로는 상이한 두 풍경을 양쪽에 끼고 간다. 왼쪽에는 드넓은 아산만이,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논과 야산이 펼쳐진다.

▼ 바다 건너는 평택 땅이다. 아산만방조제와 평택당진항이 아스라이 바라보인다. 그보다 조금 위에 있는 ‘평택항’은 내일 걷게 될 85코스의 종점이기도 하다.

▼ 해안탐방로의 난간은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걸으면서 만날 수 있는 새들의 내력을 사진과 함께 게시해 놓았다.

▼ 지역주민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지역에서 잡히는 특산물들도 맛까지 곁들여가며 알려준다.

▼ 갯벌을 내려다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다. 갯벌에는 수많은 모래경단이 펼쳐지고 있었다. 게들이 열심히 먹이활동을 수행한 결과물이다. 모래 속에 있는 플랑크톤이나 유기물을 먹고 모래는 경단으로 만들어 치워 놓은 것이다.

▼ 삽교호관광지의 명물 ‘대관람차’가 부쩍 가까워졌다. 드넓은 아산만과 함께 평화로운 시골 논밭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고 해서 지역 주민들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논두렁 뷰 대관람차’로 꼽기도 한다.

▼ 12 : 20. 그러자 물고기 조형물이 길손을 반긴다. 수많은 알을 낳은 망둥어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 물 빠진 갯벌은 작은 수로들이 S자를 그리며 흐르다 하나가 되기도 하고 다시 수십 개의 작은 수로로 갈라져 바다로 향한다. 실핏줄처럼 연결된 수로에는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생명체들이 산다. 호미나 작은 삽으로 물 빠진 곳을 파헤치면 조개가 가득하다.

▼ 뒤돌아본 풍경. 테크로 된 ‘삽교호해변탐방로’를 따라 이곳으로 왔다.

▼ 진행 방향은 물론 ‘삽교호 관광지’이다.

▼ 바다 뷰와 낙조를 텐트 안에서도 감상할 수 있도록 ‘삽교호 캠핑장’도 만들어 놓았다. 공공 캠핑장이라서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고 한다.

▼ 짚트랙도 운영되고 있나보다. 그런데 필수 시설인 타워와 와이어로프가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뭘까? 관리사무실 문도 굳게 닫혀있었다.

▼ 물 빠진 갯벌에는 유람선이 드러누워 있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삽교천과 석문호 근해를 항해하고, 배 주변으로 몰려드는 갈매기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체험거리다.

▼ ‘전망데크’가 바다를 향해 뻗어나간다. 낮에는 서해대교와 바다 전망을 선사하고, 해 질 무렵이면 붉게 물드는 석양을 감상할 수 있는 ‘노을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 12 : 37. ‘삽교호관광지’로 들어간다. 서해바다와 인공호수, 황금 들녘과 각종 놀이공원이 한 곳에 어우러진 당진의 관문이자 국민관광지이다. 해군 퇴역군함을 활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삽교호함상공원과 해양안전과 해양생물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해양테마체험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 종합안내도. 삽교천방조제 건설로 형성된 호수와 서해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조성된 약 1만 평 규모의 친수 해양 테마공원이다. 넓은 잔디광장과 어린이놀이터까지 갖춰져 있어 가족나들이 장소로 이만한 곳도 없겠다.

▼ 서해랑길은 공원을 관통하며 여러 시설들을 구경시켜 준다. 첫 만남은 ‘초승달 조형물’이다. 삽교호에 얽힌 초승달 얘기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저녁이면 은은한 빛을 내기 때문에 서해바다의 낭만적인 밤 풍경을 완성시키는 데는 이만한 것도 없단다.

▼ 김영희 작가의 ‘풍요’라고 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돛단배의 형상을 모티브로 삼아, 삽교호의 푸른 기상과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비전을 역동적으로 표현했단다.

▼ 인공호수도 김영희 작가가 차지했다. 밀물 때가 되어 하부에 바닷물이 가득 차오르면, 마치 바다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듯한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고 해서 ‘태양의 창’이란 이름을 붙였단다. 저녁에는 포토 스팟으로 변한다고도 했다. 해가 지고 나면 조형물 내부의 발광체가 화려하게 빛을 발하며 몽환적인 야경을 연출한다나?

▼ 탐방로는 어린이놀이터, 농구장, 야외공연장 등 놀이시설들이 몰려있는 공간으로 넘어간다. 함상공원의 입구도 이곳에 있다.

▼ ‘모래시계 조형물’도 세워져 있었다. 시간의 영원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김영희 작가의 작품이란다.

▼ ‘고린도전서’는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전한다. 그러니 새벽기도조차 빠뜨리지 못하는 집사람이 그냥 지나칠 리가 있겠는가.

▼ 야외공연장에서는 지역 예술인들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 12 : 48. 바다공원을 빠져나와 ‘삽교천3길’로 올라선다. 이이서 삽교천방조제 방향으로 간다. 길가는 온통 횟집 천지다. 필자는 회를 좋아하지 않기에 국밥이나 중국집을 찾아봤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덕분에 점심을 ‘조개찜’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상한 것이 섞여있어서 썩 편치 않은 여행이 되고 말았다.

▼ 서해랑길은 ‘전망대종합어시장’을 지나 다시 바닷가로 간다.

▼ 12 : 53. 잠시 후, 삽교공원(삽교호 관광지 내 녹지)을 가운데 두고 에돌아간다. 바닷가를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 갯고랑 너머에는 ‘삽교호 함상공원’이 있다. 대양을 호령하던 군함이 명예로운 퇴역과 함께 해군·해병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이색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함정 내외부나 해군·해병의 주제별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항공기, 탱크 등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관심이 없어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 선착장도 눈에 들어온다. 꼬맹이 어선 몇 척도 매달려 있다. 관광지에 있는 횟집에 자연산 횟감을 대주는 배들일지도 모르겠다.

▼ 공원 중앙에는 ‘삽교천 유역 농업개발 기념탑’이 높이 솟아있었다. 1979년 10월 26일 서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행사로 기억되는 곳, 기념탑은 삽교천방조제 준공을 기념해 1980년 5월 1일 최규하 전 대통령이 건립했다. 머릿돌에 ‘1979년 10월 26일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 우람한 호수를 삽교호로 명명하고 준공했다.’라는 문구도 새겼다. 그러다 43년 뒤인 2023년 5월쯤 붕괴위험이 있다며 철거됐다가 2024년 초 높이 약 18.5m의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다.

▼ 모퉁이를 돌아서자 ‘삽교천방조제’가 얼굴을 내민다.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사이에 축조된 방조제로, 삽교천 하구에 3,360m 길이의 둑을 쌓아 인공담수호를 만들었다. 이 담수호의 조성으로 당진·아산·예산·홍성 등 4개 시·군의 관개용수가 해결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업·생활용수도 하루 4만 8000t이나 공급 가능해졌다고 한다.

▼ ‘삽교호관광지’는 서해랑길 지선인 ‘64-6코스’의 종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른 코스들과는 달리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방조제 초입의 가로등에 매달린 ‘종점’ 표지판이 이를 대신한다.

▼ 12 : 58. ‘삽교천방조제’에서 트레킹을 마치기로 했다. 내일도 85코스를 걸어야 하는데 집사람의 체력으로는 14km 이상 되는 코스를 연 이틀 걷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오늘은 11.35km를 3시간 30분에 걸었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둘만의 여행이어선지 느긋하게 걸었나 보다.

▼ 83코스 날머리인 ‘인주공단교차로(아산시 인주면 걸매리)’. 내일은 85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을 예정이다. 삽교호관광지에서 시내버스(600번)를 이용 이곳(인주면)으로 왔고, 인주역으로 이동해 열차를 타고 숙박지인 ‘안중읍’으로 가면 된다. 배차간격이 길다는 것은 흠, 그게 싫다면 택시를 부르면 될 일이다. 사진은 85코스 답사(25.12.28) 때 찍었다.

 

여행지 : 남인도(South India)–타밀나두(Tamil Nadu)-티루치라팔리(Tiruchirappalli)-스리 랑가나타 스와미 사원(Sri Ranganatha Swamy Temple)

 

여행일 : ‘26. 3. 23(월) - 3. 28(토)

 

세부 일정 : 첸나이→마하발리푸람→퐁디셰리→탄자부르→티루치라팔리→마두라이→코친

 

특징 : ’카베리 강‘과 ’콜리담 강(카베리강 지류)‘ 사이 ’스리랑감 섬‘에 위치한 사원. 인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힌두교 사원 복합단지로 정교하고 화려한 탑문(Gopuram)이 압도적인 장관을 선사한다. 힌두교의 최고신 중 하나인 비슈누의 화신 랑가나타(Ranganatha)를 주신으로 모신다. UNESCO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 남인도(South India), 5개 주(州)와 1개의 특별자치구(프랑스령이었던 ‘푸두체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가 진출해있는 ‘타밀나두(Tamil Nadu)’와 인도 향신료 특구 ‘케랄라(Kerala)’를 다녀왔다.

▼ 타밀나두 주의 중심부, 카베리 강 연안에 자리 잡고 있는 ‘티루치라팔리(탄자부르 서쪽 60km 지점)’는 오랜 역사와 찬란한 힌두교 사원으로 유명한 남인도의 문화·종교 중심지이다.

▼ 예정에 없던 ‘스리 랑가나타 스와미 사원(이하 ‘스리랑감 사원’)’을 방문했다. 탄자부르에서 60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잠정 목록)에 등재된 문화재가 있다는데 어찌 들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리랑감 사원’은 예배가 가능한 힌두교 사원 중 세계 최대 규모(약 156에이커)라고 했다. 그래선지 고푸람(Gopuram)이 성문(城門) 역할을 있었다.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고푸람의 안과 밖이 모두 상가와 주거지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 스리랑감(사원) 평면도. 스리랑감에서 도시는 사분할 된 우주적 만다라로 표현된다고 했다. 일곱 개 층의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각각의 벽마다 점점 작아지는 ‘고프람’이 있다. 이중 안쪽의 4개 벽(아래 지도)은 사원, 밖의 3개는 상가와 주거지역 기능을 담당한단다.

▼ 고푸람이 하도 높아서 사진을 나누어 찍을 수밖에 없었다. 스리랑감 사원은 산스크리트어 Sri(신성한)와 Ranganatha(비슈누 신의 누운 형태이자 ‘연극이 펼쳐지는 우주 무대의 주인’이라는 뜻), swamy(주인)의 합성어이다. 그러니 우주 무대의 주인인 ‘비슈누 신’을 모시는 신성한 사원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 남인도 힌두사원의 건축 양식인 ‘고푸람(Gopuram)’이 화려함을 자랑한다. 고푸람은 힌두 사원마다 높게 솟은 사각형의 탑(門樓)이다. 외벽에 수많은 신을 조각한 뒤 원색으로 아름답게 치장해 놨다. 우리나라 절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천왕문’쯤으로 여기면 되지 않을까 싶다.

▼ 첫 번째 문인 ‘라자고프람 (Rajagopuram)’의 뒷모습(단지 안에서 찍은). 사원 남쪽가장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탑문(塔門)으로 ‘Raja(왕)’라는 이름처럼 엄청난 등치를 자랑한다. 13층이나 되는 고푸람은 멀리서도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압도한다. 가이드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탑으로 꼽힌다고 했다.

▼ 힌두교 사원은 고푸람의 크기로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높이가 73m에 이른다니 사원의 규모가 대체 얼마나 클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1987년 완공된 이 탑에는 1만개 이상의 조각상과 장식이 만들어져있다고 한다. 수백 년 동안 미완성 상태로 있다가, 힌두교 수도원 단체인 아호빌라 무트(Ahobila Mutt)의 지원을 받아 1987년에 최종 완공되었다.

▼ 사원으로 들어가다 보면 신들에게 선물하는 꽃을 파는 노점이나 가게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 정자를 닮은 문. 저것도 ‘고푸람’에 포함되나? 아무튼 남쪽 진입로는 순례자의 약 70-75%가 선택하는 가장 대중적인 길이라고 했다.

▼ 단지 내부는 ‘오토 릭샤(Auto Rickshaw)’, 흔히 ‘툭툭(Tuk-Tuk)’이라 불리는 삼륜차가 운행되고 있었다.

▼ 인도의 인구는 2026년 기준 약 14억 6,100만 명이라고 했다. 중국을 제치고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 1위에 올라 있다. 거기다 ‘스리랑감’은 단순한 힌두교 사원이 아니라 상가, 주거지역, 신전이 함께 어우러지는 ‘복합단지’이다. 그래선지 사원 안으로 들어왔는데도 거리 전체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 두 번째 문은 ‘남쪽 제2 고푸람(South 2nd Gopuram)’ 또는 ‘랑가랑가 고푸람(Ranga Ranga Gopuram)’으로 불린다고 했다. ‘라자고푸람’에서 상점과 주거지가 있는 구역을 지나자 얼굴을 내민다.

▼ 7층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마다 중앙의 신(God) 조각상을 비롯해 다채롭고 화려한 신화 속 인물들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 인도는 과일의 천국이라고 했다. 독특한 기후 덕분에 당도가 높고 이국적인 과일들이 가득하단다.

▼ 좌우로 갈려나가는 골목 중 하나. 주거지역으로 연결되나 보다. 스리랑감 사원 복합단지는 신이 모셔진 성소를 중앙에 두고 두껍고 거대한 성벽으로 형성된 직사각형 구역들이 둘러싸고 있다. 복합 단지의 안쪽 네 구역은 사원을 구성하고, 바깥쪽 세 구역은 주거지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사원과 주거지의 경계가 모호해져 사원만을 ‘스리랑감’이라 부르기도 한다.

▼ 사원으로 가는 길. 그늘막이 천정이 씌워져 있었다.

▼ 남쪽 세 번째 문(탑문)인 7층의 ‘카르티카이 고푸람(Karthikai Gopuram)’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 ‘카르티카이 고푸람’은 그늘막으로 인해 구경할 수 없었다. 그저 벽면에 모셔놓은 신상만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참고로 ‘카르티카이 고푸람’은 사원의 7개 동심원 구역(프라카람) 중 세 번째 구역(Enclosure)의 남쪽 진입로에 자리하고 있다. 힌두교의 신성한 별자리에서 이름을 땄으며 남쪽 축을 따라 성소로 들어가는 주요 관문이다.

▼ 사원도시(Temple City)의 활기찬 풍경. 상가는 물론이고 순례자들을 위한 편의시설과 숙박업소 등이 밀집해 있다.

▼ 남쪽 네 번째 동심원 울타리(Prakara)에 위치한 출입문(고푸람)은 ‘쿠라트 알바르 고푸람(Koorathazhwan Gopuram)’이다. 스리 바이슈나비즘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라마누자’의 수제자인 ‘쿠라트 알바르(Koorathazhwan)’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비슈누파를 탄압하던 촐라 왕의 종교적 박해로부터 스승인 라마누자와 사원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두 눈을 바친 인물로, 교인들로부터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의 상징으로 추앙받는다.

▼ 화려하고 정교한 드라비다 양식의 조각과 신화 속 인물, 신들의 스투코(석회) 조각상들이 다채로운 색상으로 덮여 있다. 문루에 적혀 있는 타밀어는 ‘스리랑감’이라고 했다.

▼ ‘쿠라트 알바르 고푸람’의 뒷모습(사원 안에서 바라본). 화려한 드라비다 양식의 수직 건축미를 자랑한다.

▼ 줌으로 조금 당겨봤다. 현지 신도들은 눈병이나 건강에 문제가 있을 때 저 탑문이나 그의 신전(탑문 왼쪽 건물)을 찾아 기도를 올리기도 한단다.

▼ ‘쿠라트 알바르 고푸람’을 지나면 ‘비슈누 신’의 탈것을 모신 유명한 ‘가루다 만다팜(Garuda Mandapam)’이 있다. 입구를 지키는 저 출입문이 ‘가루다 만다파 고푸람(Garuda Mandapa Gopuram)’일지도 모르겠다.

▼ ‘쿠라트 알바르 고푸람’을 경계로 신전(神殿)이 시작된다. 신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때문에 사원 안에서는 누구나 맨발로 걸어야 한다. 그런데 맨발로 걷는 인도인들의 표정이 참 행복해 보인다. 태양열로 뜨거울 대로 뜨거워진 바닥이 발을 대기조차 힘든데도 말이다. 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희열이 그런 뜨거움조차 잊게 만드는 모양이다. 하지만 신앙이 다른 이방인들로서는 그저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버거울 따름이다.

▼ 첨부된 지도에는 ‘가루다 만다팜(Garuda Mandapam)’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마하발리푸람’이나 ‘탄자부르’에서 들렀던 유적지들과는 달리 건물의 용도를 알 수 있는 그 어떤 안내판도 붙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루다(Garuda)’는 유지와 심판의 신인 비슈누(Vishnu)가 타고 다니는 신성한 새(神鳥)이자 힘과 용기의 신이다. 주로 인간의 몸통에 독수리의 머리, 부리, 날개, 발톱을 가진 반인반조(半人半鳥)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힌두 신화에서 신이 타고 다니는 신성한 동물(Vahana) 중 하나로, 악을 제거하고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비슈누 신’을 등에 태우고 우주를 자유롭게 오간다.

▼ 하지만 입구의 돌기둥에는 ‘가루다’ 대신 ‘코끼리’가 새겨져 있었다. 코끼리는 ‘가네샤(Ganesha)’를 상징하는 동물 아닌가? 지혜와 행운, 풍요, 거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장애물까지 모두 없애준다는 그 인기 만점의 신 말이다.

▼ ‘만다팜(Mandapam)’은 공공 의식, 예배, 춤, 그리고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사원 전면에 지어진 기둥이 있는 홀(정자)을 말한다. 넓은 통로와 조화롭게 배치된 기둥들로 마치 극장처럼 꾸며놓았다. 힌두교의 주요 성소인 ‘가르바그리하(Garbhagriha, 본전)’로 진입하기 전에 거쳐 가는 공간이라고 한다. 그건 그렇고 신전은 신자들로 넘치고 있었다. 집사람에게 세계 일주를 시켜주겠다며 해외여행을 나선지도 15년. 그동안 수많은 성당과 교회, 모스크를 둘러봤었다. 하지만 이곳처럼 진한 사람 냄새는 없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인도의 힌두사원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이 들끓는다.

▼ 만다팜을 받치는 수많은 돌기둥들은 힌두교 세계관과 철학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돌로 새긴 경전‘의 역할을 한다. 춤추는 요정, 신화 속 인물 등 정교한 문양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신도들이 어두운 성소로 나아가기 전, 기둥에 새겨진 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속세의 잡념을 버리고 영적인 세계로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시각적 매개체이다.

▼ 과거 글을 읽지 못하던 평범한 신도들은 만다팜 기둥의 입체적인 부조를 보며 힌두 경전의 내용과 도덕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전수받았다고 한다.

▼ 신도들이 본전의 주신을 배알하기(Darshan) 전에 모여서 마음을 정돈하고 의식을 준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위에 지친 신도들에게는 잠시나마 쉬는 게 더 중요했을 것이다.

▼ ‘세샤라야르 만다팜(Sesharayar Mandapam)’은 비자야나가라 왕조가 지었다고 했다. 이 홀은 북쪽 끝의 기둥에 새겨진 40마리의 뛰어오르는 동물 조각상으로 유명하다. 거대한 돌기둥에 기수를 태운 야생마가 역동적으로 새겨져 있다. 사나운 호랑이의 머리를 짓밟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계획에 없었던 유적지를 찾아갔는지라 무슨 볼거리가 있는지조차 몰랐었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에서 사진을 빌려왔다

▼ 밖으로 나오면 부속 신전들을 만나게 된다. 그 수가 무려 50개에 이른단다. 거기에 성스러운 연못도 9개나 된다니 ‘스리랑감 사원’이 얼마나 큰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 UNESCO는 스리랑감 사원의 기원을 BC 3세기부터 AD 4-5세기까지의 상감시대(Sangam Age)로 보고 있었다. 이후 촐라·판디아·호이살라·비자야나가라 등의 왕조를 거치면서 확장 및 개·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단다.

▼ 사원은 넓은데다 사당(Temple)과 만다팜(Mandapam)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하지만 힌두교 신자들은 헷갈리지도 않는 듯 잘만 찾아다닌다.

▼ 이름조차 확인 못한 고푸람. 스리랑감 사원의 볼거리는 드라비다 건축양식의 ‘고푸람’이 단연 돋보인다. 남녀 신, 서사시 속 인물, 신화 속 동물들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는데, 생동감 넘치는 색상과 정교한 조각이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만든다. 스리랑감 사원에는 저런 고푸람이 21개나 되며, 개개의 탑은 저마다 독특한 특징과 조화로운 디자인을 자랑한다.

▼ 불볕더위에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진 대리석 바닥은 숫제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부리나케 지성소의 입구로 여겨지는 열주홀로 들어서고 본다.

▼ 스리랑감 사원은 비자야나가라 왕조(1336-1565) 때 만들어진 천 개의 ‘기둥’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천주홀(千柱室, Garbhagriha)’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름과는 달리 실제 기둥의 수는 953개라고 한다.

▼ 사원은 기둥과 내력벽만 있는 개방형의 필로티(Piloti) 구조이다. 수백 개의 기둥이 줄을 지어 늘어서있다. 바닥에 앉아 쉬거나 잠을 자고 있는 신자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하루 종일, 아니 며칠을 머물면서 기도를 드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 지성소 안에는 ‘거대한 뱀(Ananta Shesha)’에 기대어 있는 ‘비슈누 신상(Ranganatha)’이 모셔져 있다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스리랑카에서 인도, 그리고 스리랑감까지 이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구경할 수는 없었다. 신상이 모셔진 가장 안쪽의 지성소는 힌두교도(Hindus only)만 입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이방인들은 아르다(Ardha), 마하(Maha), 칼리아나(Kalyana) 같은 만다팜(Mandapam)이나 둘러볼 수밖에. 참고로 ‘스리랑감 사원’은 현재도 매일 제사와 의식이 엄격하게 거행되는 ‘살아있는 사원’이다. 이교도의 지성소 출입이 금지되는 이유이다.

▼ 홀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벽화를 만난다. 약초와 식물성 염료를 사용해서 그린 ‘프레스코화’라는데 당시의 문화와 전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림을 통해 힌두 이야기를 들려주고 도덕적 교훈을 가르쳐준다고 보면 되겠다.

▼ 타밀어로 ‘나이두 커플’이라고 적혀있단다. 스리랑감 사원을 후원하고 기부한 나야크 왕과 왕비(커플)의 조각상인 모양이다.

▼ 저것은 또 무슨 신이지? 이번이 두 번째 인도 나들이이지만 처음으로 보는 형상이다. 맞다. 힌두교의 신은 시공을 초월한다고 했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창조되고 있으며, 새로운 신이 미래에 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 사람들에게 힌두교는 그들의 생활 자체라는 얘기다. 그러니 힌두교도도 아닌 필자에게 신의 정체가 무에 그리 중요하겠는가.

▼ 뭔가를 팔고 있는 것 같은데 묻는 것이 귀찮아 그냥 지나쳐버렸다.

▼ 남인도 지역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 문두(Mundu 또는 Veshti)는 남인도(특히 케랄라와 타밀나두 주) 남성들이 허리에 둘러 입는 전통 치마 형태의 천이다. 일반적인 도티와 달리 다리 사이로 천을 빼지 않고 일자로 감싸며, 날씨가 덥거나 활동할 때는 천의 아랫부분을 위로 접어 허리에 묶어 반바지처럼 입기도 한다.

▼ 무더위는 이방인들만 지치게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 ‘스리 하누만 신사(Sri Hanuman Temple)’라고 한다. 힌두교의 원숭이 신이자 힘과 헌신의 상징인 하누만(Hanuman)을 모시는 모양이다. 라마야나 신화 속에서 하누만은 비슈누의 화신인 라마 왕을 극진히 모신다. 때문에 비슈누 사원 안에서 지성소를 수호하거나 바라보는 형태로 하누만 신사를 짓기도 한단다.

▼ 사원 구역을 빠져나오는데 가이드가 옥상으로 올라가 볼 것을 권했다. 사원과 도시가 합쳐진 ‘스리랑감 사원’이 너무 넓기 때문에 한눈에 살펴보기 위해서는 ‘옥상전망대(Roof Viewpoint)’가 제격이라는 것이다. 물론 약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만 한다.

▼ 맞다. 옥상은 사원을 둘러싼 7개의 동심원 벽과 그 위에 솟아오른 21개의 화려한 탑(고푸람)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최고의 ‘viewpoint’였다. 하지만 바닥이 너무 뜨거운 것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뒤꿈치로 서서 사진을 있는 저 인도 청년이 그 증거이다.

▼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탑 중 하나인 73m 높이의 '라자가푸람'도 선명하게 보인다.

▼ 21개 고푸람 중 유일하게 백색으로 칠해진 ‘벨라이 고푸람(Vellai Gopuram)’도 눈에 담을 수 있다. 사원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무희의 애국심이 깃든 성스러운 탑문이다. 1323년 이슬람 델리 술탄국 군대가 사원을 침략하여 황금 신상(Namperumal)을 약탈하려 했다. 이때 신상을 대피시킬 시간을 벌기 위해, 사원의 무희(Devadasi)였던 벨라야말이 이슬람 사령관 앞에서 밤새 춤을 추며 유혹했고, 사령관을 사원 동쪽 고프람 꼭대기로 유인한 뒤 밀어서 떨어뜨려 처단했단다. 자신 역시 비슈누 신의 이름을 외치며 탑 아래로 투신하여 정절과 신앙을 지켰다나?

▼ 옥상이라고 해도 주변을 압도할 만큼 높지는 않아 사원단지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원의 전모를 가늠해보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스리랑감 사원’은 비슈누 신의 여덟 거처 중 하나인 곳으로 비슈누 신자들에게는 가장 신성한 순례지로 받아들여진다. 북부의 바라나시가 시바의 성지, 서부의 드와르카(Dwarka)가 크리슈나의 성지이듯이. 무려 156에이커에 이르는 크기도 만만찮다. 티베트 라사의 포탈라궁,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페루의 마추픽추, 바티칸시티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으로 꼽히기도 한다.

▼ 비슈누 신이 안치된 본전 성소의 지붕 ‘황금 비마나(Vimana)’를 가까이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상단부(박공) ‘비슈누 신’의 원초적이고 신성한 형상인 파라바수데바(Paravasudeva)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나?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바닥이 하도 뜨거워서 ‘viewpoint’까지 다가갈 엄두를 못 냈기 때문이다. 본전 성소의 입장이 불허되는 이교도들에게는 유일한 조망처인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에서 사진을 빌려왔다.

▼ ‘라자 고푸람’을 빠져나가면서 투어는 종료된다. 스리랑감 사원은 하나의 본당만 가지고 있는 다른 사원들과는 달리 자급자족형의 미니 도시라는 게 특이했다. 예배 장소인 동시에 지역 주민들의 생활공간 역할도 한다. 단지 안에는 시장, 신들을 모신 사당, 승려 숙소, 주택 등 다양한 공간이 있었다.

▼ 밖으로 빠져나오니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수식어부터가 ‘Mahatma(위대한 영혼)’인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발길을 잠시 멈추고 위대한 영혼에 경의를 드려본다.

▼ ‘당신이 어떤 세상을 보고 싶든, 당신 스스로가 먼저 그렇게 변하십시오.’ 간디의 핵심 철학이니 타밀어라고 해서 못 알아들을 것도 없다.

▼ 타밀나두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초가집 스타일의 로컬 레스토랑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쿠라이 카다이(Koorai Kadai)’라고 하는데, 타밀어로 ‘Koorai’는 마른 나뭇가지와 짚을 엮어 만든 초가지붕을 ‘Kadai’는 상점이나 식당을 뜻한다.

 

서울둘레길 5코스(사가정역 - 광나루역)

 

일 시 : ‘26. 10. 5(월)

소재지 : 서울시 중랑구 및 광진구 일원

코 스 : 사가정역→깔딱고개 쉼터→용마산5보루→아차산→아차산 해맞이공원→아차산 어울림공원→광나루역(거리/시간 : 4.6km+1.6km, 실제는 8.23km를 3시간 40분에)

 

특징 :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21개 코스, 156.5km 규모의 순환형 트레일이다. 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고덕산·일자산·대모산·우면산·관악산·호암산·안양천·노을공원·봉산·북한산 등 서울을 둘러싼 자연과 도시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 09 : 50. 들머리는 사가정역(중랑구 면목동)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 4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사가정(四佳亭)’은 조선 전기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이 용마산 부근에서 정자를 짓고 살았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사가정’이란 호(號)처럼 정자 주변에 자신이 좋아하는 매화·연꽃·해당화·대나무 등을 심어두고 즐겨 감상했다나?

▼ 용마산과 아차산의 능선을 따라 걸으며 서울의 수려한 경관과 삼국시대의 역사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이다. 난이도는 ‘중’. 길이(4.6km)는 짧으나 사가정역에서 시점(깔딱고개 쉼터)까지의 접근거리가 1.6km, 그것도 가파른 오르막길이라는 것은 부담이다.

▼ 09 : 50. ‘사가정로’를 따라 동진(용마터널 방향)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 09 : 57. 도심 속 쉼터인 ‘사가정공원’. 어린이놀이터를 비롯해 피크닉장, 다목적광장, 자연형 계류(냇가) 등을 조성 구민들에게 쾌적한 힐링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용마산 등산로의 거점답게 단체로 몸을 풀고 있는 등산객들도 눈에 띈다.

▼ 10: 04. 공원을 지나자 계단 길이 시작된다. 초입의 이정표가 5코스 시점인 ‘깔딱고개 쉼터’까지 550m나 남아있다고 겁부터 준다. 그것도 구간 전체가 계단이니 자칫 ‘서울둘레길’과 만나기도 전부터 기운이 다 빠져버릴 수도 있겠다.

▼ 10 : 11. 용마제일약수터. 물은 흘러나오나 마실 수 없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 계단 길은 이후로도 한참이나 더 계속된다.

▼ 자녀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무한대라고 했던가?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텐데 딸까지 등에 업었다.

▼ 10 : 22.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깔딱고개 쉼터’가 있는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정표(광나루역 4.6km/ 화랑대역 7.7km, 이하 ‘종점까지’로 표시)가 사가정역에서의 접근거리가 1.6km임을 알려준다.

▼ 4코스와 5코스의 경계임을 알려주는 시설물들은 ‘쉼터’ 맞은편에 세워져 있었다. 완주 인증을 받으려면 21개 코스에 있는 스탬프 28개를 모두 찍어야 하니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 ‘깔딱고개’를 오르면서 5코스 답사를 시작한다. 깔딱고개란 너무 가파르고 힘겨워서 오를 때 숨이 깔딱거릴(넘어갈) 정도로 고된 고개나 비탈길을 뜻한다. 그러니 저 가파른 계단길이 끝도 없이 놓여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그렇다고 겁부터 먹지는 말자. 속도만 조금 떨어뜨리면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올라가면서 만나는 ‘전망대’도 작은 위로가 된다. 난간에 서자 백운대·보현봉·비봉 등을 거느린 북한산으로도 모자라다는 듯, 북악산·인왕산·안산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경사가 하도 가파르다보니 계단 놓기도 쉽지 않았나보다. 요리조리 몸을 비틀어가며 힘겹게 고도를 높여간다.

▼ 또 다른 전망대를 만났다. 이번에도 역시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가며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 탁 트인 한강의 물줄기와 함께 서울 동남권과 하남시의 스카이라인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 10 : 37. ‘깔딱고개’의 끝. 계단의 수는 570개라고 한다. 안내판은 계단을 오르면서 90kcal의 열량을 소모시켰고, 이로 인해 수명이 35분 정도 늘어났다며 너스레를 떤다.

▼ 이후부터는 전형적인 능선 길이 이어진다. 가파르지 않은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고 보면 되겠다.

▼ 용마산은 나무가 많다며 육산(肉山)으로 분류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는 암릉과 바위가 많고 경사가 가파른 골산(骨山)의 성격을 띠고 있다. 덕분에 곳곳에서 시야가 열리면서 멋진 풍경화를 펼쳐 놓는다.

▼ 10 : 43. 안내판이 저 계단의 위에 ‘용마산 5보루’가 있다고 알려준다. ‘보루(堡壘)’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소규모 성곽이나 요새를 말한다. 삼국시대 때 고구려에서 쌓은 7개의 보루가 용마산 능선에 분포되어 있다.

▼ 적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계 확보를 위한 ‘고지 선점’이 필수다. 용마산 5보루도 해발 316.3m의 봉우리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은 헬기장으로 변해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다.

▼ 이름(堡壘)에 걸맞게 뛰어난 조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북의 드넓은 시가지가 발아래로 일목요연하게 펼쳐진다.

▼ 발상의 전환? 길을 내면서 나온 돌들을 허투루 버려두지 않았다. 나무 밑동을 두른 돌담을 쌓는데 활용한 것이다. 안도현 시인의 ‘우리가 눈발이라면’이 적힌 시판도 눈에 띈다.

▼ 10 : 50. 해발 342m의 고지는 ‘제2헬기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울퉁불퉁한데다 바위까지 널려있어 헬기장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 이정표(종점까지 3.9km)가 오른쪽 600m지점에 ‘용마산’이 있음을 알려준다.

▼ 평균에 못 미치는 5코스의 길이(4.6km)를 감안 ‘용마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정상 조금 못미처에서 아래로 뚝 떨어지기도 하지만 큰 어려움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 10 : 56. 아차산과 용마산을 잇는 해발 327.3m의 주능선에 위치한 ‘제3헬기장’. ‘용마산 4보루’가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둘레는 263m, 용마산 일대 보루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했다. 하지만 성벽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고, 숲으로 둘러싸인 탓에 조망도 허락되지 않았다.

▼ 안내판은 용마산과 아차산 일대의 보루들이 사적 제455호(아차산 일대 보루군)로 지정·보호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아차산(5), 용마산(7), 망우산(1), 홍련봉(2), 시루봉(1), 수락산(1) 등에 총 17개의 보루가 분포되어 있다.

▼ 잠시 후 바윗길을 만난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용마산은 굵직한 암릉과 암반이 많아 산세가 다부지다. 1961년 이후 수도권의 건축 석재를 캐던 거대한 채석장이 있었고, 그게 요즘은 용마폭포공원으로 변해 밤낮으로 시민들을 맞이한다.

▼ 이곳은 조망의 명소이기도 하다. 서울의 새로운 Landmark로 굳어진 ‘롯데타워’를 배경삼아 인생샷을 노려볼만한 곳으로 꼽히기도 한다.

▼ 조금 더 걷자 쉼터를 겸한 야외 체육시설(일명 산스장)이 맞는다.

▼ 11 : 03. 용마산(龍馬山, 348m) 정상. 한강을 감싸는 보배로운 산으로 삼국시대 때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래선지 정상석 뒷면에 ‘고구려의 기상’이라고 적어놓았다. 하나 더. ‘용마’에 얽힌 사연도 들어보도록 하자. 용마산 자락에서 큰 장군이 될 만한 아기가 태어났던 모양이다. 하지만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한 부모가 아기를 죽였고, 그러자 산에서 주인을 잃은 용마가 나와 슬피 울다가 어디론가 날아갔다나? 옛날에는 집안에 힘이 센 장사가 태어나면 가족 모두를 역적으로 몰아 죽였다고 한다.

▼ 맨 꼭대기에는 1910년에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토 측량 기준점 중 하나인 ‘용마산 대삼각본점(서울 미래유산 제196호)’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인증사진을 저렇게 찍나?

▼ 시야는 꼭대기 근처에서 열리고 있었다. 북한산과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 등 서울 북동부를 에워싸고 있는 수려한 산줄기가 파노라마로 이어진다.

▼ 중랑구에서 가장 높은 산답게 정상은 사람들로 들끓고 있었다. 이들을 노리는 노점상까지 들어섰을 정도다.

▼ 11 : 31. ‘제2헬기장’으로 되돌아와 길을 이어나간다. 그러자 ‘아차산전망대(Google Map의 표기)’가 잠시 들렀다가란다.

▼ 난간에 서자 굽이도는 한강과 함께 하남시 일원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시선을 조금 옮기자 이번에는 서울 동남권과 롯데월드타워가 포함된 잠실 일대(사진은 생략)가 펼쳐진다.

▼ 11 : 39. 용마산과 아차산을 잇는 능선의 안부. 이정표(종점까지 3.6km)가 오른쪽으로 ‘서울시 테마산책길(긴고랑공원)’이 갈려나감을 알려준다. 서울 시민들이 도심 속에서 자연과 문화를 즐기며 걸을 수 있도록 선정한 도보길로, 총 150개 코스(연장 428.3km)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의 매력적인 풍경과 이야기를 담아 총 5가지 테마로 나뉘어 운영된다.

▼ 시판에 둘레길 지도를 끼워 넣은 ‘구리시’의 지혜가 돋보인다.

▼ 한껏 여유부리며 내려오던 능선은 테마산책길을 기점으로 오르막으로 변한다. 용마산에서 아차산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지 싶다.

▼ 11 : 45. 아차산 4보루. 475년(장수왕 63) 고구려가 한강 유역에 진출한 후 551년 백제·신라 연합군에 의해 물러날 때까지 사용한 전초기지로 아차산 북쪽 봉우리에 걸터앉아 있다. 용마산과 아차산을 답사하면서 만난 보루 중 유일하게 복원되어 있었다.

▼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통제하기 위해 구축한 아차산 일대의 보루군 중 핵심이라고 했다. 둘레는 249m 내외로, 아차산 3보루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래선지 보루 위로 내놓은 80m 남짓의 길이 무척 길어보였다.

▼ 산성에서나 볼 법한 ‘치(雉)’도 갖고 있었다. 이름처럼 꿩(雉)이 자기 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듯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다각도에서 감시하고 효과적으로 격퇴하기 위한 시설이 ‘치’이다. 그러니 이름만 보루이지 산성과 다름없다고 보면 되겠다.

▼ 복원을 마쳤으니 자랑도 해야지 않겠는가. 4보루의 이력과 출토 유물을 적은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 다시 길을 이어나간다. 길가 풍경은 시장바닥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길은 오가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길가에 놓아둔 벤치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다. 아차산이 도심 공원을 산책하듯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 맞다. 아차산 등산은 ‘서울시 테마산책길’에 꼽혔을 정도로 수월하다. 참고로 서울시 테마산책길은 숲이 좋은 길(75개소), 전망이 좋은 길(23개소), 역사문화길(24개소), 한강·하천이 좋은 길(23개소), 계곡이 좋은 길(5개소) 등 다섯 가지 테마로 분류된다.

▼ 아차산도 육산(흙산)이라기보다는 골산(바위산)에 가깝다. 덕분에 심심찮게 바윗길을 만난다. 기형의 바위들을 눈에 담아가며 걷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 12 : 00. 아차산의 정상 조금 못미처에서 길이 나뉘고 있었다. 이정표(종점까지 3.0km)는 왼쪽 산비탈을 가리킨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상을 에둘러가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상을 빼먹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 50m쯤 올라가자 아차산(峨嵯山, 295.7m) 정상이다. 여기서 ‘아차’는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의 줄임말이다. 명종이 홍계관의 점괘가 귀신같다는 얘길 듣고 궤짝 안에 쥐 한 마리를 숨겨놓고 안에 몇 마리가 들어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홍계관이 ‘다섯 마리’라고 하더란다.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든 임금이 사형을 명했고, 혹시나 해서 배를 갈라보니 새끼 네 마리가 들어 있더라나? 아차! 했지만 홍계관은 이미 죽고 난 후였다. 본래는 ‘아단산(阿旦山)’이었는데 말년에 이성계가 ‘이단(李旦)’으로 이름을 고치자 백성들이 피휘(避諱) 전통에 따라 글자 모양이 유사한 ‘또 차(且)’ 자를 썼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현대에 이르러 산의 형세를 뜻하는 한자인 峨嵯山으로 변했다.

▼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안내판을 세워놓았다. 아차산은 용마봉(348m)과 망우현(282m)을 아우르는 산군이었다. 요즘은 용마산, 망우산으로 나누어 부르는 추세라고 한다.

▼ 정상에서의 조망은 일품이다. 높이는 낮지만 손꼽히는 개방감과 아름다운 한강 River View를 자랑한다. 한강 너머의 하남시와 예봉산·검단산의 산세가 어우러지는 자연 풍경도 함께 펼쳐진다.

▼ 아차산 정상은 ‘아차산 3보루’를 겸한다. 성벽 둘레는 450m, 아차산 보루군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 12 : 06 – 12 : 26. 정상 근처에서 간식을 즐긴 다음 다시 길을 나섰다. 벤치는 앉을자리가 없었지만 널찍한 바위가 곳곳에 널려있어 편히 쉬다 갈 수 있었다.

▼ 잠시 후 만난 전망대. 이곳도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볼 수 있도록 했다.

▼ 서울 도심은 물론이고 인왕산, 안산, 남산, 관악산 등 이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12 : 31. 그렇게 5분 남짓 걸었을까 길이 나뉘고 있었다. 이정표(종점까지 2.6km)는 계속해서 능선을 타란다. 왼쪽은 범굴사와 ‘아차산 2보루’로 가는 길이다.

▼ 잠시 후 만난 전망대는 분재처럼 예쁜 노송을 품었다. 이번에는 조망도 대신 아차산·용마산 등산안내도를 세워놓았다. 지도에 표시된 ‘아차산 명품소나무 1호’가 저 노송인 모양이다. 아무튼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아까 아차산 정상 근처에서 만났던 전망대와 거의 비슷했다.

▼ 12 : 38. 해발 267.2m의 작은 봉우리 정상부에 위치한 ‘아차산 5보루’는 스치듯 지나간다. 보루가 통일신라 들어 기능을 상실하자 무덤을 썼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울타리를 둘러 출입을 막고 있었다.

▼ 12 : 40. 조금 더 걸으면 ‘아차산 1보루’이다. 아차산 보루군 중 가장 남쪽 해발 252.4m 봉우리에 자리하고 있다.

▼ 둘레는 123m, 남북으로 긴 타원형을 이룬다. 얼핏 흙으로 된 언덕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보루 위와 아래로 길이 나있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진행하면 된다.

▼ 1보루는 조망의 명소이기도 하다.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구리시, 강동구 일대, 남한산성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새해 해돋이 명소로도 사랑받는다고 한다.

▼ 몇 걸음 더 걷자 또 하나의 전망대가 반긴다. 이처럼 용마산과 아차산은 골산의 특징대로 곳곳에서 시야가 열린다. 그중에서도 뛰어난 몇 곳에 전망대를 세워놓았다.

▼ 난간에 서면 한강과 이를 둘러싼 시가지, 그리고 검단산의 수려한 경관까지 한눈에 쏙 들어온다.

▼ 12 : 46. 아차산의 명소 중 하나인 ‘해맞이공원(또는 광장)’. 탁 트인 한강과 서울 도심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완만한데다 접근성까지 좋아 매년 새해 첫날이면 수많은 시민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찾는다.

▼ 2000년 첫날? ‘밀레니엄 버그’ 때문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던 필자와는 달리 광진구청장은 뭔가 이룰 꿈에 벅차있었나 보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갈 때 컴퓨터가 연도의 마지막 두 자리('00')만 인식하여 2000년을 1900년으로 혼동하고 오작동을 일으킨다는 ‘전산 오류’ 문제로 전 세계가 골머리를 썩였었다. 필자도 관련 업계·연구소 등과 함께 1999년 내내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점철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니 마지막 날 밤을 어떻게 편히 잘 수 있었겠는가.

▼ 이곳에도 전망대를 만들어놓았다.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 볼 수 있게 했음은 물론이다.

▼ 해맞이공원은 높이가 200m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울 동부권에서 가장 탁 트인 파노라마 한강 뷰와 도시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조망 명소로 꼽힌다. 굽이쳐 흐르는 한강 줄기와 함께 시그니처 뷰인 롯데월드타워가 정면으로 다가온다. 떠오르는 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 공원에서 내려가는 길도 환상적인 뷰를 보여준다. 조금 전 전망대에서 보던 풍경들을 마주보며 걷는 행복한 구간이다.

▼ 서울둘레길 5코스는 ‘구리둘레길’과 함께 쓴다. 곳곳에서 구리둘레길 시설물들을 만나게 됨은 물론이다.

▼ 12 : 55. 고구려정 갈림길. 아차산에서 ‘기(氣)’가 가장 왕성하다는 ‘고구려정’으로 가는 길이 오른쪽으로 나뉘나 이정표(종점까지 1.9km)에 나타나있지 않아 그냥 지나쳐버리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흐르는 세월과 함께 떨어져가는 ‘기’를 조금이나마 보충해볼까 했는데 말이다.

▼ 12 : 58. 이번에는 ‘아차산성’으로 가는 길이 나뉜다. 이정표(종점까지 1.7km)는 아차산성을 비켜가라고 지시한다.

▼ 그렇다고 아차산성을 빼먹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오르막길을 잠시 오르자 ‘아차산성(阿且山城, 사적 제234호)’이 반긴다. 해발 200-285m 고지, 한강 유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한강 유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대립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 산성은 출입을 막고 있었다. 성은 286년(백제 책계왕 1) 고구려의 침입을 대비해 쌓았다고 했다. 당시는 ‘아단성(阿旦城)’으로 불리었는데, 백제 개로왕(蓋鹵王)이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전사한 비극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신라와의 전투 중 온달 장군이 전사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 문화생태 탐방 때는 문을 열기도 하는 모양이다.

▼ 13 : 08. ‘서울둘레길’로 합류하기 위해 샛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나름대로 길이 나 있어 어렵지 않게 둘레길에 합류할 수 있었다.

▼ 13 : 18. 서울둘레길로 내려섰다.

▼ Kopi Bali? 인도네시아어로 ‘커피’를 뜻하는 Kopi와 지명인 ‘Bali’의 합성어로, 발리 고산지대의 화산재 토양에서 자라 독특한 풍미를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의 명품 커피를 말한다. Premium Cafe라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나보다.

▼ 13 : 31. 아차산관리사무소. 등산객들을 위한 안내와 시설 관리를 담당하는 곳으로 공중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 관리사무소 앞에 서울둘레길 스탬프보관함이 설치되어 있었다. 대신 종점인 ‘광나루역’에는 스탬프보관함이 없었다.

▼ 서울의 아침이 시작되는 아차산에서 동북아를 호령하던 고구려의 기상과 혼을 이어받아 광진구민이 꽃피우리라.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그가 품은 웅대한 혼이 성큼 다가온다. 옆의 팻말은 아차산(성)의 한자 표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 12 : 33. 아차산 숲길을 빠져나오면 ‘영화사로’. 서울둘레길은 영화사로를 따라 남진(워커힐 방향)한다. 아차산 자락에 위치한 고찰 영화사(永華寺)에서 길의 이름을 따왔다.

▼ 아차산 등산로 입구. 아차산 종합안내도와 역사유적, 동행숲길 등 다양한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다.

▼ 아차산 어울림광장. 아차산을 찾는 등산객들과 지역 주민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조성된 열린 광장이자 정원이다.

▼ 어울림정원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20년이 지나 노후화된 ‘아차산 생태공원’을 대대적으로 리뉴얼하여 2023년 새로운 이름(어울림정원)과 여섯 가지(바람·장미·향기·와당·소리·돌) 테마로 재탄생시킨 자연친화적 시민 휴식공간이다.

▼ 고구려 영양왕 대의 명장 온달장군은 590년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이북의 옛 땅을 되찾기 위해 출정했다가 아단성(阿旦城) 전투에서 신라군의 화살에 맞아 전사한다. 그런데 온달의 관을 운구하려 하자 땅에서 움직이지 않았는데, 뒤늦게 달려온 평강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생사가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라고 달래자 비로소 관이 움직였다는 애절한 설화가 이 지역에 전해져온다. 그래선지 공원에 온달장군과 평강공주로 여겨지는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 공원에는 ‘숲속 도서관’이 들어서 있었다. 책을 읽으며 동시에 완벽한 휴식과 힐링을 즐길 수 있는 특별한 문화 공간이다.

▼ 아차산 여가센터도 들어서 있었다. 기존 생태자료실을 리모델링하여 조성한 숲속 힐링 및 커뮤니티 공간이다. 숲길 걷기와 명상, 요가, 다도, 아로마 테라피 등 다양한 산림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단다.

▼ 역사문화홍보관은 시설개선을 한다며 문을 닫아걸었다.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아차산의 역사적 가치와 고구려, 백제, 신라의 문화유산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13 : 45. 공원 투어를 마치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도로(영화사로) 왼쪽에 널찍하니 데크길이 나있다.

▼ 뒤돌아본 어울림정원.

▼ 13 : 47. ‘워커힐로’를 횡단한 다음, 맞은편 숲(이정표 : 종점까지 700m)속으로 들어간다. 별도의 명칭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파고라와 벤치 등 공원처럼 잘 꾸며 놓았다.

▼ 숲속에는 광진구에서 운영하는 ‘자투리 텃밭’이 있었다. 구민들의 건강한 여가 활동을 위한 대표적인 도심 속 주말농장으로 세대별로 손바닥만한 자투리땅(개인 6㎡/ 단체 15㎡)이 배분된다고 했다. 아무튼 ‘나만큼 너도 소’, ‘정채원 편식하지마’, ‘승아 맛있게 먹자’ 등 가족 팻말에 적힌 예쁜 이름들을 읽으며 걷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 자투리텃밭은 도심 내 방치된 유휴 토지를 정비하여 조성한 소규모 도시형 경작 공간이다. 주말농장처럼 먼 외곽으로 나가지 않고도 집 근처 생활권에서 친환경 작물을 직접 재배할 수 있어 주민들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 텃밭을 지나 마을 안길로 들어간다. 흔하디흔한 골목길을 홍보용으로 탈바꿈시켜놓은 광진구청의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담장 곳곳에 감성적인 글귀나 안내 문구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산책로의 정취를 더해준다.

▼ 소문난 맛집도 꽤 여럿 들어서 있었다. 외부 벽면에 방송 출연 사실을 알리는 홍보 현수막이 걸려있어 등산객들의 관심을 끌게 만든다.

▼ 광장중학교 담벼락도 지역의 역사를 전하는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광장동과 구의동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강을 둘러싼 치열한 영토 전쟁이 벌어졌던 고대사의 중심지이자, 조선시대 교통의 요충지였다.

▼ 14 : 00. 골목을 빠져나와 마주하는 ‘천호대로’를 따라 동진(한강 방향)한다.

▼ 14 : 02. 광나루역에 도착하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5코스와 6코스의 경계가 ‘광나루역 2번 출구이지만 이를 알리는 시설물은 어느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아무튼 오늘은 8.23km를 3시간 40분에 걸었다. 원 코스는 4.6km, 여기에 접근거리(1.6km)를 더해봐야 6.2km에 불과하지만 용마산 정상과 아차산성, 아차산 어울림공원 등을 둘러보느라 2km 정도를 더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