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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 남인도(South India)타밀나두(Tamil Nadu)-탄자부르(Thanjavur)-브리하디스와라 사원(Brihadisvara Temple)

 

여행일 : ‘26. 3. 23() - 3. 28()

 

세부 일정 : 첸나이마하발리푸람퐁디셰리탄자부르마두라이코친

 

특징 : 11세기 초 촐라왕조의 라자라자 1가 세운 힌두교 사원. 드라비다 건축양식의 걸작이자 최고 정점으로 꼽히며, 66m 높이의 거대한 탑(Vimana)과 정교한 석조 조각들이 장관을 이룬다. ‘촐라왕조의 대사원들(Great Living Chola Temples)’이란 이름으로 후기 촐라시대의 다른 사원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남인도(South India), 5개 주() 1개의 특별자치구(프랑스령이었던 푸두체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가 진출해있는 타밀나두(Tamil Nadu)’와 인도 향신료특구 케랄라(Kerala)’를 다녀왔다.

 타밀나두(Tamil Nadu). 인도 남부의 대표적인 제조업 중심지로 자동차·전자·중공업 산업기반과 항만·물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타밀나두 주의 중심부(주도인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320Km 지점)에 위치한 탄자부르는 역사 깊은 고도(古都)로 과거 강력했던 중세 촐라제국의 수도였다. 당시 촐라제국은 인도 전역, 실론 일부, 몰디브, 래카다이브까지 지배했다.

 브리하디스와라 사원(Brihadisvara Temple)’의 동쪽 입구. ’Brihadisvara‘는 산스크리트어 브리하트(Brihat, 위대한)’ 이스와라(Isvara, 최고신)’의 합성어라고 한다. 주신인 우주의 위대한 지배자 시바 신에게 받쳐진 신전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사원 조감도. 가로 120m 세로가 240m의 부지에 15개의 건축물이 있다. 본전인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말고도 6개의 부속 신전(shrine)이 더 있음을 알 수 있다.

 탑문을 통해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이 문은 마라타 게이트(Maratha Gate)’로 불린다. 17-19세기 이 지역을 통치하던 마라타 왕조가 기존 사원 외곽에 방어용 성벽을 쌓아 요새화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추가된 정문이다. 그건 그렇고 경비초소에 힌두 신상이 들어앉았다. 자리를 빼앗긴 경비원은 간이 의자, 그것도 뙤약볕 아래로 쫓겨나 있었다.

 튼튼하게 쌓아올린 성벽이 신()과 속()을 구분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었는지 성벽 아래로 해자(垓字)까지 둘러놓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성벽이 이중으로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문인 케랄란타칸 고푸람(Keralantakan Gopuram)’. 10세기 사원을 처음 건축한 촐라 왕조의 라자라자 1(Rajaraja I)’가 체라 왕조(케랄라 지역)와의 전쟁 승리를 기념해 세운 사원 정문이다. 참고로 케랄란타칸은 이 사원을 지은 라자라자 1의 별칭 중 하나라고 한다.

 케랄란타칸 고푸람 상부. 첫 번째 문과의 사이가 너무 좁아서 상하로 나누어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각양각색으로 묘사된 시바 상들이 현란하기 짝이 없다.

 케랄란타칸 고푸람 뒷면. ‘고푸람(Gopuram)’이란 힌두교 사원 건축에서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커다란 출입문 또는 탑문을 말한다. 후기로 갈수록 본당 건물보다도 고푸람을 더 크게 지음으로써 사원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삼았다.

 케랄란타칸 고푸람 안내판. 코푸람 대신 티루바살(Tiruvasal)’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타밀어로 신성한 문(Sacred Gate)’을 의미한다니,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을 얼마만큼 신성시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문인 라자라잔 고푸람(Rajarajan Gopuram)’은 그 자체만도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크기도 크기지만 문루에 새겨진 각종 문양들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거대한 돌에 각양각색으로 새겨놓은 시바 신의 춤추는 모습이다. 유연한 자세로 자유롭게 춤을 추는 시바 신의 모습은 어쩐지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힌두사원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라자라잔 고푸람 앞에 신발 보관소가 있는데, 혼잡해서인지 현지인들은 입구에다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던지고 갔다. 하지만 자칫 신발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가이드의 귀띔이 있었기에 신발장에다 넣어두기로 했다. 몇 푼의 보관료까지 물어가면서. ‘영혼의 자유를 지향하는 인도에서 신발 하나까지도 놓지 못하는 이방이라고나 할까?

 라자라잔 고푸람은 신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그래선지 3개의 문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왕의 이름에 걸맞는 자태라 하겠다. 아치형 입구 양옆에는 석조 경비병,  드바라팔라(Dvarapala)’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슴이 봉긋한 저 경비병이 드워팔리카(Dwarapalika, 여성 수문장)로 보이는 것은 나 혼자만의 오해일까?

 3개 층으로 나누어진 문루는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주로 시바와 파르바티(Parvati)의 결혼, 마르칸데야(Markandeya)를 보호하는 시바, 아르주나(Arjuna)가 시바 신으로부터 파슈파티 아스트라(신성한 무기)를 받은 장면 등 시바의 생애를 묘사한 조각들이라고 한다.

 라자라잔 고푸람 뒷면.

 경내로 들어가면 화강암과 벽돌로 지은 브리하디스와라 사원(本殿)’이 반긴다. 드라비다 양식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내부에 시바 신을 모시는 성소(聖所)가 있다. 드라비다 양식(Dravidian style)이란 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인도 남부에서 크게 번성한 전통 힌두교 사원 건축양식을 말한다. 북인도의 나가라(Nagara) 양식이 부드러운 곡선형 탑을 강조하는 반면, 남인도의 드라비다 양식은 웅장한 피라미드형 탑과 정교한 원색 조각상이 빽빽하게 들어찬 화려한 구조를 자랑한다.

 본전인 브리하디스와라 사원과 예닐곱 개의 부속 신전을 회랑(回廊)이 둘러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회랑은 정교하게 조각된 수많은 석조 기둥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어 압도적인 공간감과 대칭미를 자랑한다. 가이드는 저 회랑 역시 드라비다 건축 양식의 걸작으로 꼽힌다고 했다.

 반대편 회랑. 회랑 내부를 따라 걷다보면 시바 링가(Shiva Linga)’ 무리와 나야카(Nayaka) 왕조 시대의 다채로운 벽화들을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얻지 못했던 필자는 이를 놓치고 말았다.

 브리하디스와라 사원(本殿)’의 앞에 난디 만다팜(Nandi Mandapam)’이 있었다. 시바 신의 탈것(Vahana)인 신성한 황소 난디(Nandi)’의 조각상을 모셔둔 전각이다. 주성소에 있는 시바의 상징인 링가(Lingham)’를 정면에서 바라보도록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의 정면에 배치해 놓았다.

 사원 본전은 11세기 촐라왕조 시대에 지어졌다. 하지만 난디를 감싸고 있는 이 화려한 만다팜 구조물은 16-17세기 나야카(Nayaka) 왕조 시대에 추가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천정에는 마라타왕조 시대의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난디상은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 바위를 깎아 만들었단다. 가로 약 6m, 높이 약 4m 크기이며 무게는 약 25톤에 달한다.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난디상이라고 한다.

 난디 상 앞에서는 힌두교 사두(sadhu)가 끊임없이 힌두 주문을 중얼거린다. 웃통을 벗은 채 음유시인이 노래하듯 암송하고 있다. 울타리 너머는 난디에게 공양물을 바치려는 신도들로 붐빈다. 저마다 가져온 공양물을 두 손으로 받들고 기도를 올리며 사두에게 건네준다. 사두는 건네받은 공양물 중 꽃은 난디 상에 뿌리고 다른 공양물은 난디상 주변에 걸어 놓거나 밑에 놓아둔다.

 난디 만다팜 안내판. ‘난디 상이 원래의 것이 아니라 나야카(Nayaka) 시대에 새로 만들어졌음을 알려준다.

 신도들은 이제 시바 신에게 경배하기 위해 비마나로 향한다. 비마나(vimana)란 힌두 사원의 가장 신성한 장소인 성소(Garbhagriha)’와 그 위에 솟아오른 높은 탑 구조를 의미한다. 높이 66미터에 달하는 비마나는 시바신이 거처를 하고 있다는 카일라스 산(Mt. Kailasa)을 유추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만다팜(mandapam)’으로 들어간다. 사원의 입구와 본전(성소) 사이에 위치한 기둥이 있는 커다란 홀(hall), 성소인 가르바그리하(Garbhagriha)’로 들어가기 전 신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준비하고, 종교 의식을 치르거나, 찬가와 전통 무용을 바치던 공공 집회 공간이다.

 입구 근처에서 칼라 바이라바(Kala Bhairava)’로 여겨지는 신상을 만날 수 있었다. 주신인 시바(Shiva)의 가장 강력하고 두려운 분노의 화신(아바타)으로 신자들은 시간의 파괴자이자 죽음을 정복한 자로 숭배한다. 산스크리트어 ‘Bhairava(무시무시한 자)’ ‘Kala(시간 또는 검은색)’의 합성어이다.

 락슈미(Lakshmi)’로 여겨지는 신상도 눈에 띈다. 부와 번영, 행운,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여신 중 한 명이다. 힌두교의 주신 중 하나인 비슈누의 배우자이며, 물질적인 풍요뿐만 아니라 영적인 성취와 번영까지도 상징한다.

 천정에 매달린 저 고리의 정체는 뭐지? 보초를 서고 있는 비둘기에게 물어봤지만 마이동풍이다.

 이젠 내부를 둘러볼 차례이다. 여러 개 홀과 복도(무카 만다파, 마하 만다파, 아르다 만두파)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비마나로 이어진다. 하지만 어두컴컴해서인지 특별한 볼거리를 만나지는 못했다. 아니 불덩어리처럼 뜨거운 마당을 걷는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취해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성소인 가르바그리하(Garbhagriha)에는 5미터 높이의 링감(lingam, 시바 신을 상징하는 남성 성기 모양의 기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힌두교도들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눈요기조차 못했다. 참고로 가르바그리하(Garbhagriha)’란 힌두 사원의 중심에 있는 가장 신성한 탑 내부의 성소(지성소)를 뜻한다. 산스크리트어 가르바(Garbha, 자궁)’ 그리하(Griha, )’의 합성어이다. 신도들이 이 공간을 바라보거나 돌면서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남을 상징한다.

 그 아쉬움을 아르티 거울(Aarti Mirror)’로 달래본다. 성소(Garbhagriha) 내 신상 뒤나 주변에 배치하는 거울이니 시바 신의 링감을 상념으로라도 품고 있을 줄 누가 알겠는가. 참고로 아르티(Aarti)’는 힌두교의 가장 대표적인 예배(푸자) 형태로, 신에게 불()을 바치며 찬양하는 의식이다.

 아쉬움을 안고 성소를 빠져나온다. 남쪽 출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출구 양쪽에도 드바라팔라(Dvarapala)’가 배치되어 있었다. 힌두교 사원의 출입구를 지키는 수문장이다. 우리나라 사찰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강역사나’ ‘사천왕은 이 드바라팔라 문화가 동아시아로 건너와 토착화된 형태다. 하지만 무섭디무서운 금강역사와는 달리 드바라팔라는 애교스러운 표정으로 손님을 맞는다.

 높이가 66m에 이른다는 화강암으로 만든 비나마(본당)는 흡사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다. 촐라왕조(846-1270) 985년에 왕위를 계승한 라자라자 1 때부터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는 카웨리 강 부근의 작은 왕국에서 군대를 육성해 북쪽의 찰루키아와 체라, 그리고 남쪽의 판디아 왕조를 물리치고 스리랑카까지 정복해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브리하디스와라 사원도 이 시기에 축조됐다고 한다.

 비마나(本殿) 상부는 13층의 피라미드 형태로 각 층마다 조각 장식을 하였으며, 직선적인 윤곽으로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맨 꼭대기에 올려놓은 시카라(sikhara, 힌두사원의 첨탑)’는 무게가 81.3톤이나 된다고 했다. 실로 엄청난 무게다. 천 년도 전, 기중기나 운송장비가 없던 시절에 저렇게 무거운 돌을 저 높은 곳까지 어떻게 올렸을까? 가이드는 경사로를 가설해서 끌어올렸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인원과 물자가 동원되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생긴 석조사원은 전체가 아름다운 조각으로 새겨져 있어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준다. 눈요깃거리만 놓고 본다면 단순한 바윗덩어리에 불과한 피라미드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나다.

 이젠 경내를 둘러볼 차례다. 동서 중심축을 따라 2개의 고푸람, 난디 사당, 2개의 만다파(예배당), 안타라라(전실), 비나마(본당)가 일직선상으로 늘어서 있다. 이들을 아름다운 회랑이 둘러싸고, 그 사이사이에 ‘Shrine’이나 ‘Mandapa’ 같은 부속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첫 만남은 가네샤 사당(Ganesha Shrine)’이다. 지혜와 번영의 신이자 시바와 파르바티의 아들인 가네샤(Ganesha)를 모시는 사당으로 18세기 말 마라타 왕조의 사라보예 왕(Serfoji II)’이 세웠다.

 안에 가네샤 신상을 모셨다는데 저 아저씨가 하도 오래 기도를 하는 탓에 사진을 찍는데 실패했다.

 카루부르 데바 사당(Karuvur Devar Shrine)’은 내부 사진만 올린다. ‘카루부르 데바는 남인도 힌두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영적 스승이자 시인, 연금술사였다. 타밀어 찬가인 티루비사이파(Tiruvisaippa)’를 지어 바친 아홉 명의 사제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수브라흐마냐 사당(Subrahmanyam Shrine). 전쟁의 신인 무루간(Murugan)을 모시는 사당으로 16-17세기 나야크 왕조(Nayak dynasty) 때 지어졌다. 참고로 수브라흐마냐는 시바 신의 둘째 아들이다.

 드라비다 건축과 조각 예술의 최고 정점으로 꼽힌다. 외벽과 기둥 전체가 미려한 석조 조각으로 뒤덮여 있다. 신화 속 무루간이 타고 다니는 공작새(바하나)와 무루간의 다양한 무기, 영웅적 모습을 외벽에 입체적으로 조각해 놓았다.

 수브라흐마냐 사당 입구. 사당으로 들어가는 만다팜(Mandapam) 기둥들에 물고기나 신화 속 동물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는데 문이 닫혀있어 구경할 수는 없었다.

 나타라자 만다파(Nataraja Mandapa). 춤추는 시바 신인 나타라자를 모시기 위해 후대에 추가로 건립된 전용 예배당(hall)이다.

 찬디케스와라 사당(Chandikeshwara Shrine). 시바 신의 가장 충직한 수행자이자 박티(Bhakti) 운동의 성인인 찬디케스와라에게 헌정된 사당이다. 라자라자 1세가 안뜰에 세운 유일한 사당으로 촐라건축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시바 사원을 방문한 신도들은 마지막에 찬디케스와라 사당을 찾아 예배를 마무리 한다. 본당(비마나)과 연결되었나 싶을 정도로 붙어있는 이유이다. 어린 찬데슈바라가 모래로 시바의 상징인 링감을 만들고 우유를 바치며 명상에 잠겨 있었는데, 화가 난 아버지가 이를 발로 차 부수자 격분하여 아버지의 다리를 잘랐다는 전설이 있다. 그의 절대적인 헌신에 감동한 시바 신이 현신하여 그를 축복하고 내 사원에 오는 모든 신도는 너를 거쳐 가야 한다며 사원 관리자의 지위를 주었기 때문이다. 신도들은 사원에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당 앞에서 손뼉을 치거나 옷자락을 터는 행위를 한단다.

 이쯤해서 투어를 마치기로 했다. 이밖에도 바라히(Varahi, 멧돼지 머리의 여신), 암만(Amman, 시바의 아내인 파르바티를 모신다) 등의 사당(shrine)과 두어 개의 예배당(Mandapa)을 더 둘러보았음은 물론이다.

 라자라잔 고푸람(Rajarajan Gopuram)’을 빠져나가면서 투어를 종료한다. ! 이왕에 왔으니 힌두교의 기초 상식 하나쯤 알고 가자. 힌두교에서는 브라흐마(창조), 비슈누(유지와 보존), 시바(파괴) 삼주신 중 시바가 가장 인기가 많다고 했다. 다른 종교는 창조신이 가장 강력하면서도 인기가 높은데, 힌두교는 파괴의 신이 더 인기가 높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파괴란 창조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마치 대홍수 이후 세계가 재건되었듯.

 

여행지 : 남인도(South India)퐁디셰리(Pondicherry)-오로빌(Auroville)

 

여행일 : ‘26. 3. 23() - 3. 28()

 

세부 일정 : 첸나이마하발리푸람퐁디셰리탄자부르마두라이코친

 

특징 : 퐁디셰리 인근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대안적 생태계획 공동체이다. 1968년 인도의 영적 스승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 1872-1950)‘의 철학을 바탕으로 프랑스 출신의 미라 알파사(Mirra Alfassa, 1878-1973)‘에 의해 설립되었다. 국적·정치·종교·인종을 초월하여 인류의 평화와 조화로운 상생을 실험하는 독특한 대안 사회이다.

 

 남인도(South India), 5개 주() 1개의 특별자치구(프랑스령이었던 푸두체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가 진출해있는 타밀나두(Tamil Nadu)’와 인도 향신료특구 케랄라(Kerala)’를 다녀왔다.

 첸나이 남쪽 120Km쯤에 위치한 연방 직할지 퐁디셰리(Pondicherry)’는 푸두체리(Puducherry)의 행정 중심지로 17세기에서 18세기 프랑스령 인도의 수도였다. 이후로도 비군사적 식민지로 영국령 인도 속에서 프랑스령으로 남아있었다.(지도에서 쿠달로르의 바로 위, 움푹 파인 부분).

 오로빌(Auroville)’에 도착했다. 퐁디셰리에서 10km가량 떨어진 코로만델 해안 인근에 위치한 오로빌은 이상적인 인간의 삶을 실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이다.

 전망대 가는 길 지도. 방문자센터(Information·Exhibition)를 거쳐 가도록 동선(動線)이 짜여있는 모양이다.

 방문자센터로 가는 길. 다양한 안내판들이 길손을 반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곁눈질이라도 해가면서 걸어보자.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 마더(The Mother=Mirra Alfassa)’ 스리 오로빈도 아쉬람(Sri Aurobindo Ashram)’에서 수행한 통합 요가 연구에서 시작되었단다.

 오르빌 1988년에 입법화되었나 보다. 단순한 물질적 표현이나 집단적인 인간 현상을 넘어서는 법안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부여된다나? 인간 의식 범위를 넘어선 무언가. 미래를 향한 화살과 같은 아이디어를 다루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오로빌 헌장’, ‘인류통합 메시지 등 다양한 안내판이 줄줄이 나타난다.

 숲속으로 길이 나있다. 하지만 설립 초기에는 풀 한 포기 없던 메마르고 척박한 황무지였다고 한다. 주민들이 직접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생태 숲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 자전거가 열매 노릇도 하나보다. 맞다. 오로빌에서 자전거는 단순한 여가 수단이 아닌, 지속 가능한 생태마을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교통수단이라고 했다. 방문자센터에서 저렴한 가격(일일/주간)으로 대여할 수 있다.

 5분쯤 숲길을 걷다보면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에 이른다. 오로빌(Auroville)을 여행할 때 가장 먼저 들러야 하는 곳이자 꼭 거쳐 가야 하는 곳이다. 오로빌의 철학과 역사를 배우고, 하이라이트인 마트리만디르(Matrimandir) 전망대 입장권을 받을 수 있는 공식 장소이다.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 지도.

 센터에서 만난 인도 젊은이들.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이 꽤 많은가 보다. 한국 방문이 꿈이라며 이것저것 많이도 물어본다. 하긴 이 젊은이들에게 한국 방문은 동경의 대상일 수도 있겠다. 문득 비자가 나오지 않아 ‘Export consultation meeting’에 참석할 수 없다며 하소연하던 인도 상인이 떠오른다. 2012년일 것이다. 그만큼 한국 비자는 발급받기 어렵기로 소문나있다.

 안으로 들어가자 오로빌 헌장(Auroville Charter)’이 눈이 들어온다. 종교·정치·국적을 초월, 온 인류가 평화와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국제공동체를 지향하는 오로빌의 4대 헌장 전문을 게시해 놓았다.

 오로빌의 정신적 뿌리인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와 설립자인 그의 영적 동반자 마더(The Mother, 미라 알파사)’의 생애 및 사진, 그리고 오로빌의 설립 배경, 역사, 비전을 담은 각종 영상과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다.

 오로빌에 대해 빠른 시간 안에, 또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니 짬을 내볼 일이다. 영어가 서투른 필자는 처삼촌 벌초하듯 곁눈질로 살펴볼 수밖에 없었지만.

 누가 뭐래도 오로빌의 얼굴마담은 마트리만디르(Matrimandir)’이다. 그래선지 미니어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었다. 막대한 자본을 들여 만든 황금빛 원형구조물, 기능은 명상센터이다. 구체를 중심으로 주변에 꽃잎(Petals)처럼 생긴 12개의 거대한 구조물이 감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들 꽃잎은 각각 성실·겸손·감사·용기 등 우주적 어머니 12가지 덕목을 상징하는 독립된 명상실로 채워져 있단다.

 오로빌의 중심이자 영혼으로 불리는 거대 황금빛 명상 돔 마트리만디르의 구조와 긴 건축 과정, 그 안에 담긴 영적 진화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설명해 준다.

 실제 건축물은 높이 29m에 직경이 36m인 타원형에 가까운 구체이다. 외벽은 금박을 입힌 수천 개의 원형 디스크(접시)로 뒤덮여 있어 땅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황금 태양 혹은 우주적 알()을 연상시킨다.

 내부는 외부의 소음과 단절된 완벽한 침묵의 공간이라고 한다. 순백의 대리석으로 마감된 원형 홀에 12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창립자인 마더가 직접 썼다는 축복 메시지와 서명. 1971 2 21일 새벽, ‘마트리만디르 건설의 시작을 알리는 초석이 놓이던 역사적 순간을 담았다. ‘마트리만드리가 오르빌의 신성함에 대한 열망이 살아있는 상징이 되도록 하자나?

 자신의 의식을 찾아가는 명상의 방’. 정중앙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크리스탈 유리 구체(지름 70cm)가 놓여 있다고 한다. 천장 중앙의 개구부를 통해 들어오는 단 하나의 자연 햇빛 줄기가 정확히 이 크리스탈 구체를 수직으로 내리쬐도록 설계되어 있어, 밤이나 흐린 날을 제외하면 이 빛줄기 하나만이 방 전체를 은은하게 밝히며 집중과 명상을 돕는 역할을 수행한단다.

 마트리만디르에 하나하나 붙여놓은 원반인 듯.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크다.

 방문자센터 외관. 오로빌의 건물들은 하나하나가 예술품이라며 예찬하는 이도 있었다. 하나같이 독특하고 창조적이며, 또 자연을 그대로 살려냈다는 것이다. 오로빌 주민 중 가장 많은 숫자가 건축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부연 설명도 있었다. 건축가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들의 꿈과 개성을 담아 마음껏 집을 지어 지금처럼 특색 있는 마을을 만들 수 있었다나?

 방문자센터의 야외 광장에는 booth 몇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Well Paper(버려지는 종이를 생활용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체험인 듯), Svaram(인도의 다양한 악기들을 이용한 사운드테라피를 경험할 수 있는 곳) 등 모든 방문이나 체험을 원할 경우 소정의 돈을 받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Bird Park, Sound Journey, Svaram Sound Garden라고 예외이겠는가.

 방문자센터 주변에는 여행자들이 쉬어가기 딱 좋은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오로빌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친환경 제품, 수공예품, 서적 등을 판매하는 상점도 눈에 띈다. 수익금은 오로빌 기금으로 쓰인다고 했다. 공동체적 성격이 강해서 다들 오로빌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고 있다나? ! 1년 이상 봉사활동을 해야 오로빌 거주 자격이 주어진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카페가 있어선지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도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 ‘인도이지만 전혀 인도답지 않은 풍경이다.

 오로빌이 물질과 정신을 잇는 다리라는 얘기일 것이다. 다양한 문화의 구도자들이 만나 내면의 진실과 외면의 노력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추구하는 곳이란다. 그런 삶에 동참하라는 홍보문구이겠지만 편하디 편한 속세에 익숙해진 필자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일 따름이다.

 독창적인 정수 시스템으로 만들어낸 생명의 물(Living Water)’이라고 했다. 활성탄, 침전물 필터, 역삼투압(RO) 등을 활용해 박테리아, 바이러스, 중금속 등의 오염원을 완벽히 제거한단다. 단순한 화학적·물리적 정수를 넘어 정수과정에서 손실된 물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바이오 다이나미제이션(Bio-dynamisation)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나?

 오로빌 관련 비디오를 시청한 뒤, 통행증(‘마트리만디르 전망대까지 갈 수 있는)을 발급받아 길을 나선다. 전망대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오늘처럼 무더운 날에는 무료로 운행되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우리는 걷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나라도 더 눈에 담아보고 싶은 욕심에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데 이까짓 더위쯤 못 참겠는가. 하나 더. 무더위에 지쳐 돌아올 때는 셔틀 버스를 이용했다.

 반얀트리(Banyan Tree)’가 눈길을 끈다. 가지가 다시 뿌리를 내려 성장하는 반얀트리는 멀리서 보면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작은 숲 같다. 반얀나무는 남인도의 시간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인도인들은 살아있는 사당으로 여기기도 해서, 신앙과 일상의 쉼터를 이어주는 공간이 되어준단다. 신목이면서도 동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의 당산나무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흙길을 걷는다. 오로빌 마을의 길은 아스팔트가 아닌 흙으로 되어 있어 맨 발로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인도는 인도답게 덥다. 고로 목이 탄다. 생수 한 병쯤 들고 나오지 않은 무지를 후회하며 걸었다.

 나무뿌리 조형물. ‘!’. 명상의 요람에 다가가고 있느니 조용히 해달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겠다.

 마티르만디르 전망대(Matrimandir View Point)’에 도착했다. 황금빛 돔 형태의 명상센터를 0.5km쯤 떨어진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이다. 마트리만디르의 외관만 볼 수 있는 점은 흠. 황금 돔 내부에 들어가 명상이라도 하려면 최소 3-4일 전에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한단다. 명상 수련이야 그렇다 쳐도 내부 사진 몇 장쯤은 찍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트리 만디르(Matrimandir)’는 오로빌 정중앙에 위치한 황금빛 구체 모양의 대형 명상센터이다. 스리 오로빈도의 영적 파트너이자 공동체에서 어머니(The Mother)’로 추앙받는 미라 알파사(Mirra Alfassa)’의 비전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건축가 앙리 로제(Roger Anger)’가 설계했다. 특정 종교나 신을 숭배하는 사원이 아닌 인류의 통합과 내면의 평화를 위한 침묵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름 36m에 높이가 29m인 거대한 타원형 구체이다. 외벽이 수많은 황금빛 원반 디스크로 뒤덮여 있어 오늘처럼 맑은 날에는 햇빛을 반사시키며 눈부시게 빛난다. 조명을 배제시킨 돔 내부는 온통 하얀 대리석으로 꾸며진 원형 명상실이 공중에 떠 있는 형태로 설계되어 있단다.

 2021년 기준 53개국 출신 3,300여 명이 오로빌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35명 안팎의 한국인도 머물고 있단다. 그 한국인에 포함되지는 못하지만 분위기만은 집사람에게 전이가 되었나보다. 동심으로 돌아가 황금 구슬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느라 정신이 없다.

 아까 방문자센터에서 눈여겨보던 창립자인 마더가 직접 썼다는 축복 메시지가 이곳에도 있었다. ‘마티르 만디르가 오로빌의 신성을 향한 열망의 살아있는 상징이 되도록 하십시오.

 이밖에도 꽤 많은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무더위 탓에 일일이 읽어보는 것은 사양하기로 했다. 이곳으로 오면서 읽거나 들었던 오로빌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을 옮겨본다. ‘오로빌은 국적, 인종, 종교, 계급에 관계없이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이상향이다. 모두에게 필요한 물자를 무료로 배급하고 교육의 기회도 무료로 부여한다. 학력이나 자격증이 없어도 누구나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

 58년 전인 1968 2 28 오로빌의 착공식이 열렸다. 124개국에서 2명씩 참석했고 이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가져온 흙을 묻었다. 이에 앞서 유네스코는 1966년 오로빌의 탄생을 지지하는 총회 결의문을 채택했다. 오로빌이 문화 종교 인종의 차이를 극복하고 인류의 단합을 추구하는 유엔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해서다.

 오로빌 마을은 뭐든지 자연으로 돌아가 있다고 했다. 현대인들은 웰빙스럽게 살아가겠다며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간다. 하지만 이곳 오로빌 마을은 그 자체가 천연의 웰빙 마을이란다.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고, 자연으로 되돌리고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전기는 태양이나 바람에서 얻고, 먹을 것과 물은 땅에서 얻으며, 맑은 공기와 새소리는 나무와 숲에서, 물건들은 기계가 아닌 사람들의 손에서 직접 만들고 쓰이고 있단다.

 마티르 만디르 1971년 주춧돌을 놓은 것을 시작으로 약 37년의 공사를 거쳐 2008년에 최종 완공되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마트리만디르를 둘러싸고 있는 호수(해자)를 새롭게 단장시키려는 듯 토목공사로 분주하다.

서울둘레길 6코스(광나루역  고덕역)

 

일 시 : ‘26. 8. 15()

소재지 : 서울시 광진구 및 강동구 일원

코 스 : 광나루역광진교한강공원(광나루)암사동유적암사정수장고덕산샘터근린공원명일공원입구고덕역(거리/시간 : 9.3km+0.2km, 실제는 11.24km 3시간 40분에)

 

특징 :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21개 코스, 156.5km 규모의 순환형 트레일이다. 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고덕산·일자산·대모산·우면산·관악산·호암산·안양천·노을공원·봉산·북한산 등 서울을 둘러싼 자연과 도시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08 : 10. 들머리는 광나루역(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2번 출구가 서울둘레길‘ 6코스(고덕산길)의 시작지점(始點)이다. ! 비 소식이 있어서 급경사 산길이 많은 2-5코스를 건너뛰고 6코스를 먼저 걷기로 했다. 비가 내릴 경우 급경사 산길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는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광나루역에서 고덕역까지 강동구의 산하(山河), 즉 한강 고수부지(광나루 수변공원)와 고덕산 산길을 걷는 편안한 코스이다. 거기에 시간을 조금 내면 암사동 선사시대 유적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08 : 10. ‘아차산로를 건너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이어서 아차산로를 왼쪽에 끼고 구리(워커힐) 쪽으로 간다.

 광나루정원. 회색 펜스에 갇혀있던 유휴 부지가 푸름 가득한 주민 여가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왕벚나무 등 20여 종의 교목과 수국과 장미 등의 관목을 심어 계절마다 변화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단다. 부지 안에 청소년센터 같은 광진구의 공공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첫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황포돛배 조형물 가벽이 길손을 인도해준다.

 광진교로 가는 길목에는 너븐나루 정원을 조성해 놓았다. ’너븐나루는 강폭이 넓다는 광나루의 순 우리말이다. 나루터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오브제를 설치하고, 타일 벽면에는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에 수록된 광진(廣津)’과 혜촌 김학수의 광나루의 옛 전경을 담아놓았다. 아차산과 한강의 수려한 옛 풍경을 떠올려보라는 모양이다.

 08 : 21. 광진교 북단. 1936년에 개통된 광진교는 한강대교와 함께 한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꼽힌다. 교통량 증가와 구조물의 노후 등으로 1994년 철거되었다가 2003년 총연장 1,056m의 새로운 다리를 놓았다.

 코스가 변경됨을 알리는 시설물들은 광진교 북단에 세워놓았다. 오늘 걷게 될 6코스는 9.3km,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6코스의 시작지점은 광나루역이다.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출구를 피하다보니 500m나 떨어져있는 이곳까지 옮겨왔나 보다.

 광진교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도 눈에 띈다. 한강에 놓인 다리 중 두 번째로 오래된 광진교는 광진구 광장동과 강동구 천호동을 잇는다. 참고로 광나루는 예부터 충주를 거쳐 동래로 또는 원주를 거쳐 동해안으로 빠지는 요충지였다. 1920년대에는 화물차나 버스를 발동기선에 실어 도강했다. 하지만 1930년을 전후 해 교통량이 격증하면서 체증이 심해졌고, 홍수라도 날라치면 교통이 두절되어 그 불편함을 헤아릴 수 없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놓인 다리가 광진교이다. 하나 더.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폭파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서쪽 난간을 따라 난 보행로를 따라간다. 2009 4차로 중 2차로를 축소하고, 3m이던 보행로 폭을 10m로 확대하면서 길가에 녹지 공간을 조성했다. 덕분에 나그네들은 숫제 숲속을 거니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다리를 건널 수 있다.

 중간 중간에는 발코니형의 전망대도 만들어놓았다. 한강을 건넌다는 본연의 기능을 넘어, 휴식을 취하면서 탁 트인 한강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발아래로 흘러가는 한강은 물론이고 롯데타워 등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 어디쯤에 지는 해라도 올려놓을라치면 화려한 풍경화로 변할 게 틀림없다.

 그래선지 서울 밤풍경이 잘 조망되는 곳이라는 안내판까지 세워놓았다. 참고로 광진교는 차량 중심의 다른 한강 다리들과는 달리 걷고 싶은 다리라는 콘셉트로 조성됐다. 시멘트덩어리인 상판을 숲으로 바꾼 것이다. 거기다 너덧 개의 전망대까지 배치해 다리는 삭막하다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렸다.

 그 화룡점정(畵龍點睛) 광진교 8번가가 아닐까 싶다. UFO가 한강위에 떠 있는 듯한 형상의 특별한 View 명소로, 바닥에 강화유리가 깔려있어 360도 파노라마 한강 View 말고도 한강 위를 걷는 듯한 짜릿함까지 선사한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주요장면에도 등장했다는데 건너편(신호등 있는 횡단보도가 있었지만)에 입구가 있어 들러보지는 않았다. 참고로 광진교 8번가는 다리 아래에 매달아놓은 전망대이다. 일본 도쿄의 레인보우 브리지와 프랑스 파리의 비라켕 다리, 그리고 이곳 광진교에만 있는 세계에서 단 3개뿐인 이색적인 전망대라고 한다.

 남단에 가까워지자 또 다시 녹지공간이 나타났다. 한강 다리 중 유일하게 교량 위에 대규모로 조성된 보행자 중심의 초록빛 휴식 공간이다.

 발코니형의 전망대도 만들어놓았음은 물론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방해 없이 편안하게 앉아 롯데타워와 천호대교 등 탁 트인 한강 View를 감상할 수 있다.

 08 : 37. 남단(올림픽도로 상부) 직전, 한강공원(광나루)으로 내려간다. 초입의 이정표(종점까지 7.8km)가 방향을 알려준다.

 08 : 40. 한강공원으로 내려선 다음 보행로를 따라 북진한다. 둔치에 자전거도로와 보행로가 어깨를 맞대고 나있다.

 영탁1호 숲이란다. 가수 영탁의 데뷔 16주년(2021 10 16)을 맞아 팬클럽 오구와탁과 팬덤 내사람들이 서울환경연합과 함께 조성한 스타 숲이다.

 이번에는 자전거 공원이다. 국내 최초의 자전거 테마공원으로 자전거 레이싱 경기장, 이색자전거 체험장 등 자전거 관련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자전거를 빌려 공원 내 이색 트랙이나 한강변 도로에서 라이딩을 즐길 수도 있다. 약간의 대여료를 내야하지만.

 줄지어 늘어선 아치형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구조물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넝쿨장미가 꽃이라도 피울라치면 또 하나의 멋진 볼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연이어 나타나는 자전거공원과 장미공원의 뒤는 드론공원이 받치고 있었다. 별도의 비행 승인 없이 12kg 이하의 취미용 드론을 날릴 수 있는 드론 전용의 공간이다.

 보행로는 걷는 사람보다 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맞다. 한강공원은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러닝 명소로 알려진다. 탁 트인 시야와 잘 정비된 평탄한 코스 덕분에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모든 Runner들에게 인기가 높다.

 오른쪽에는 물놀이장이 들어섰다. 최대 수심이 1m라니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겠다.

 광나루 한강공원길은 꽤 오래 이어지고 있었다. 오른쪽은 체육시설 단지인 듯. 테니스·축구·농구·족구 경기장이 연이어 나타나고, 반면에 지대가 낮은 왼쪽에는 울창한 숲이 들어섰다.

 미루나무 산책로(가로수길)는 한강의 도시적인 풍경과 자연 친화적인 정취가 어우러진 숨은 명소로 알려진다. 줄지어 곧게 뻗은 가로수가 대칭을 이루고 있어 인생 샷을 노리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높은 미루나무 사이로 노을빛이 스며들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니 일몰 시간에 맞춰 찾아가보면 어떨까?

 암사동 일대의 하천 습지가 생태·경관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난생 처음 피클볼(Pickleball)’이라는 운동도 곁눈질할 수 있었다. 테니스와 배드민턴, 탁구의 요소를 결합한 혁신적인 라켓 스포츠라고 한다.

 09 : 07. 한강공원을 벗어나 암사나들목으로 빠져나간다. 초입에 이정표(종점까지 6.1km)가 세워져 있다.

 부근 둔치에는 암사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강가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대신 흙과 자갈을 깔아 자연형 강기슭으로 탈바꿈시켰단다.

 한강의 강둑으로는 올림픽대로가 지나간다. 그 아래에 암거(暗渠)를 뚫어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건 그렇고 문설주에 그어놓은 저 수위 측정 눈금의 용도는 무엇일까?

 굴다리를 빠져나오면 선사로’,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선사로를 따라 토끼굴입구까지 간다. 여기서 토끼굴은 올림픽대로 아래로 난 통로를 말한다. 지금이야 차량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넓어졌지만 옛날에는 높이가 낮고 폭도 좁았다고 한다. 그 통로를 웅크리고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토끼가 굴을 파고 드나드는 것 같다고 하여 시민들이 친숙하게 토끼굴이라고 불렀다.

 09 : 13. ‘토끼굴입구 교차로에서 오른쪽(고덕로)으로 간다. 길가 유휴부지는 도시 텃밭으로 꾸며져 있었다. 구민들이 도심 속에서 농업을 체험하고 싱싱한 먹거리를 직접 기를 수 있도록 매년 분양되는 공공 주말농장이다.

 텃밭은 친환경을 고집한다고 했다. 화학비료, 합성농약,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3() 농법으로 운영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이용이 금지된단다.

 09 : 20. ‘선사사거리에서는 왼쪽(올림픽로)으로 간다. ‘암사동유적 방향이다.

 이후부터는 올림픽로를 따라간다. 삼성교에서 서원마을회관까지 이어지는 도로인데 올림픽 주경기장 앞을 지나간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올림픽로 선사로 가는 길로도 불리는 모양이다. 길가 선사초등학교 담벼락에 안내도를 세워놓았다.

 선사초등학교는 담벼락을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나 보다. 암사동의 역사갤러리를 비롯해 암사동의 역사, 명소 등 다양한 안내판을 걸어놓았다.

 암사동유적이 가까워지면서 도로변이 예술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도로변 벽면을 통째로 김은선 작가의 작품을 채워 넣었다. 추상적인 이미지로 유명한 화가이다.

 방치되어 오던 유휴공간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개방형 쉼터로 탈바꿈시켰다. 산책이나 라이딩을 하다가 잠시 쉬어가기 딱 좋은 장소이다.

 09 : 35  09 : 58. 암사동 유적(사적 제267). 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6000년 전) 유적지인데 마당에 움집 모양의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암사동유적의 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하는 소망움집이란다.

 박물관을 중심으로 복원된 움집과 백제 주거지 터, 그리고 발굴이나 수렵 같은 각종 체험장이 들어서 있다. ! 암사동유적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 중 마을단위로는 최대라고 했다. 당시 생활모습을 살필 수 있는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 신석기인의 문화를 추측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단다.

 안으로 들어가자 울창한 송림이 길손을 맞는다. 설마 신석기시대에 심기야 했겠는가마는 어른 허리통만큼이나 굵직굵직한 소나무들이 유적지의 유구(悠久)한 역사를 말해주는 듯 했다.

 신석기시대 선인들이 살던 움집(억새로 지붕을 올렸다)이 재현되어 있다. 움집은 하나 둘이 아니고 숫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서울에 생긴 가장 오래된 마을이자 한반도 젖줄인 한강 유역에 형성된 가장 큰 신석기시대 마을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선사유적박물관.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대표 빗살무늬토기 문양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국내·외의 다양한 토기도 전시하고 있다.

 기후변화, 한강의 생태환경, 신석기마을, 기술·도구, 토기문화 등 동선(動線)을 따라가며 다양한 전시물들을 만날 수 있다.

 한강유역에 정착하여 생활한 신석기 인들의 모습과 신석기시대 한강 고유의 동식물,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다양한 도구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실제 움집터를 관람할 수 있도록 보존처리 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8년쯤 전 튀르키예에 들렀을 때 트로이의 유적이 9개 층으로 나뉘어 있는 걸 보고 그 유구한 역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한 시대 도시유적 위에 다음 시대 도시유적이 잇달아 쌓여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곳 암사동유적도 9개까지는 아니지만 6개나 되는 문화층이 확인되었단다. 맨 아래는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신석기문화층, 그 위로 민토기·돌도끼·청동화살촉이 발견된 청동기문화층, 백제토기와 건물자리가 나타난 삼국시대문화층이 연이어 나타나더라나?

 수렵 사진을 게시했지만 암사동유적은 한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어로와 채집 생활을 했다. 어로 활동을 하는 밀랍 인형도 만들어놓았음은 물론이다.

 책에서나 보아오던 빗살무늬 토기를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3열 빗금, 5열 빗금, 손톱으로 눌러 새긴 듯한 반원, 끝이 둥근 무언가로 찍어 누른 듯한 작은 점들, ‘V’자를 여러 개 겹친 듯한 문양 등등. 하나 더. 한반도는 빗살무늬토기 문화의 원조로 꼽히기도 한다. 암사동 유적지를 포함한 한반도 중서부에서 빗살무늬토기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은 문양의 토기가 나왔단다.

 09 : 58. 선사유적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탐방로는 계속해서 올림픽로를 따라간다.

 10 : 05. ‘서원마을회관이 있는 회전교차로(이정표 : 종점까지 4.4km)’에서는 2시 방향이다.

 10 : 07. 150m쯤 더 걷다가 양재대로 진입로 아래로 난 굴다리로 들어간다. 이정표(종점까지 4.2km)가 방향을 알려준다.

 양재대로 아래를 지났다싶으면 또 다시 굴다리. 양재대로 진입로 아래로 뚫렸는데, 이번에는 둘이나 된다.

 10 : 15. 올림픽대로(이정표 : 종점까지 3.7km)로 올라섰다. 그렇다고 대로를 따라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탐방로는 곧장 산속으로 파고든다.

 산길은 제법 가팔랐다. 하지만 오르막 구간이 짧기 때문에 산책삼아 시나브로 올라가면 된다.

 오두막처럼 지어놓은 트리전망대’. 큰 나무를 베지 않고 그대로 살려 중앙에 둔 채 데크 구조물을 설치하여,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트리하우스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망대에 오르자 올림픽대로와 한강, 그리고 구리암사대교와 구리시 일대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고덕산 구간에서 가장 빼어난 조망 명소 중 하나이다.

 10 : 22. 반대방향으로 내려가 올림픽대로와 마주한다. 탐방로는 90도로 방향을 틀어 암사아리수정수센터로 간다. 이정표(종점까지 3.4km)가 방향을 알려준다.

 10 : 25. 암사정수장 정문 앞에서 산속으로 파고든다. 이정표(종점까지 3.3km)와 함께 서울둘레길 안내판을 세워놓았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서울둘레길은 이제 강동 고덕산길(암사정수장명일공원 입구)’을 따라간다. 서울시 테마산책길인 고덕산길에 더부살이하는 모양이다.

 산길은 이번에도 상당히 가팔랐다. 하지만 능선까지의 거리가 200m에 불과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었다.

 10 : 31  10 : 57. 능선(이정표 : 종점까지 3.0km)에 올라선다. 벤치 두어 개가 놓여있는 안부는 쉼터로 딱 좋았다. 덕분에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어갈 수 있었다.

 이정표가 10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고덕산 정상이 있으니 잠시 다녀오란다.

 고덕산(高德山, 86.3m) 정상은 데크 전망대로 꾸며져 있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가하면 지적 삼각점(서울 240)도 눈에 띈다.

 조망은 뛰어난 편이다. 발아래로 흘러가는 한강은 물론이고 그 너머의 구리시가지까지 탁 트인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서울과 경기를 잇는 고덕·토평대교와 강동대교는 덤이다.

 시민들을 위한 배려도 돋보인다. ‘조망도를 설치해 실물과 대비해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2006년 서울시에서 선정한 우수 조망명소로 뽑히기도 했단다.

 10 : 57. 점심 대용인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우고 난 뒤에야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잠시 후, 삼각점이 설치된 작은 봉우리 위로 올라섰다. 고덕산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고덕산 정상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곳이다. 고려 말 절의충신 이양중 공이 조선 개국 후 관직을 거부하고 이 산자락에 은둔해 절개를 지켰던 모양이다. 그의 높은 인격과 덕성을 기려 후인들이 高德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가끔은 가파른 구간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고덕산 자체가 해발 100m 미만의 완만한 구릉지라서 대부분 구간은 오르내림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완만하다. 가벼운 산책이나 트레킹 코스로 딱 좋겠다.

 강동 그린웨이는 강동구의 여러 근린공원과 숲길을 하나로 이어놓았다고 했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과 자연 황토길이 매력이란다.

 11 : 11. 가파르게 떨어지던 산길이 아리수로61(이정표 : 종점까지 2.4km)’로 내려선다.

 이즈음 고덕동 고인돌을 만날 수 있었다. 청동기시대(기원전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개석식(무지석식) 고인돌이다. 받침돌이 없고 큰 덮개돌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탐방로는 길(아리수로61)을 가로질러 맞은편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초입에 서울둘레길(6코스) 안내도를 세워놓았다.

 잠시 후,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는다. 그 꼭대기에 쉼터를 만들어놓았다. 신효섭 시인의 시 언젠가가 적힌 시판도 눈에 띈다.

 계속해서 능선을 타고가도 되겠건만 탐방로는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었다.

 11 : 17. 그곳에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인 산운(汕耘) 장도빈(張道斌, 1888-1963) 선생의 묘비를 만났다. 고덕산 가족묘지에 모셔졌다가 2000년에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었는데 그의 역사적 발자취를 기억하기 위해 묘비는 남겨두었나 보다. 선생은 신민회 활동, 대한매일신보 주필, 단국대학교 설립 등 굵직한 항일·교육 업적을 남긴 영웅이다.

 묘비 부근(이정표 : 종점까지 2.1km)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이번에는 무장애 데크길을 따라간다.

 이후부터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진다. 그러다 아리수로를 향한 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11 : 27. ‘아리수로로 내려선다. 한강의 옛 이름이자 서울시 수돗물 브랜드인 아리수에서 이름을 따왔다. 실제로 도로 중간에 암사아리수정수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11 : 32. ‘아리수로(강일교 방향)’를 따라가다 샘터근린공원교차로에서 대각선으로 가로지른다.

 주민 편의시설인 샘터배드민턴장. 옆에는 족구장도 있었다.

 11 : 37. 탐방로는 배드민턴장 앞(이정표 : 종점까지 1.3km)에서 산속으로 파고든다. 샘터근린공원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잠시 후, 또 하나의 트리하우스를 만났다. 정글 영화나 동화책에 나올 법한 독특한 나무 위의 집이다.

 탐방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나지막한 동산 형태로 공원이 이루어져 있어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 코스로 딱 좋다.

 샘터근린공원 2010 9,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곤파스로 인해 재탄생했단다. 샘터공원 내 아까시나무 등 약 1,600그루가 쓰러지는 큰 피해를 입었는데,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강동 아름숲을 새로 조성했다나?

 11 : 47. 방죽근린공원과 샘터근린공원을 잇는 생태육교를 건넌다. 도로(동남로82)를 내면서 끊겼던 능선을 다시 이어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그게 동물에게는 안전한 이동통로가 되고 공원 이용자들에게는 친환경 보행환경을 제공해 준다.

 이후로도 산길은 한참이나 더 계속된다. 고층 아파트와 도심 빌딩 숲 사이에 이런 울창한 녹지 공간이 숨어 있는 강동구는 축복받은 땅이다. 서울둘레길을 걷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방죽근린공원에는 턱이 없는 무장애 데크길이 놓여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울둘레길은 흙길을 고집하며 간다.

 11 : 57. 방죽근린공원을 벗어나 주택가(이정표 : 종점까지 300m)로 내려선다.

 방죽근린공원은 백제 개로왕이 쌓은 방죽()’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물이 밀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의 풍납동 일대까지 길게 방죽을 쌓았는데, 이 거대한 방죽이 지나가던 나지막한 구릉지대의 마을을 방죽말이라 불렀던 모양이다.

 공원 입구에는 소규모 Sports Complex가 들어서 있었다.

 이후부터는 고덕로(광나루한강공원 토끼굴 입구강일동 강일리버파크 10단지)’를 따라간다.

 12 : 06. ‘명일공원 입구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코스가 변경됨을 알리는 시설물들이 이곳에 있다.

 완주 인증은 스탬프북에 21개 코스에 있는 스탬프 28개를 모두 찍거나 QR코드를 통해 모바일로 진행하면 된다.

 지하철 5호선 고덕역까지는 조금 더 걸어야만 했다. 명일공원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고덕로를 따라가면 된다.

 12 : 13. 고덕역 4번 출입구. 명일공원에서 240m쯤 떨어져 있다. 오늘은 11.24km 3시간 40분에 걸었다. 암사동 선사유적 등을 둘러보느라 2km쯤 더 걸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