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643)

서울둘레길 3코스(불암산역 화랑대역)

 

일 시 : ‘26. 8. 12()

소재지 : 서울시 노원구 일원

코 스 : 불암산역상계동나들이철쭉동산불암산전망대학도암 갈림길불암산 갈림길공릉산백세문화랑대역(거리/시간 : 6.9km+0.5km, 실제는 9.96km4시간에)

 

특징 :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21개 코스, 156.5km 규모의 순환형 트레일이다. 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고덕산·일자산·대모산·우면산·관악산·호암산·안양천·노을공원·봉산·북한산 등 서울을 둘러싼 자연과 도시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08 : 55. 불암산역(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지하철 4호선, 불암산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옛 이름은 당고개역’, 고개 근처에 무사안녕을 빌던 당집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불암산3부쯤 되는 산허리를 옆으로 째며 걷는다. 울창한 숲이 주는 포근함 속에서 여유롭게 걷을 수 있는 코스로 하늘을 품은 포근한 숲길이라는 테마를 갖고 있다. 난이도는 ’. 산길을 오르내리는 약간의 고단함은 감수해야 한다.

상계로50m쯤 걷다가 첫 사거리(아래 사진)에서 덕릉로124로 옮겨 불암산 방향으로 간다. 필자는 30m쯤 더 걷다가 덕릉로126가길을 따라 올라갔다. ‘자 모양으로 가느냐 아니면 자로 가느냐의 문제이지 거리나 시간의 차이는 거의 없다.

09 : 07. 10분 남짓 진행하면 상계동(나들이) 철쭉동산에 이른다. 2005년 불법경작지 정비를 시작으로 백철쭉·자산홍 등 3만 주를 식재하면서 틀을 갖췄고, 2021년에는 철쭉 사이로 산책로를 내고 전망대, 휴게쉼터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상계동 주민들이 자신의 뜨락처럼 드나든다고 했다. 가볍게 걸을 수 있도록 철쭉 사이로 산책로를 냈는가 하면, 서로 어울리며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휴게시설까지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철쭉이 만개한 봄철은 두말할 것도 없다.

09 : 12. 2코스에서 3코스로 변경됨을 알리는 시설물들은 철쭉동산의 끄트머리에 설치되어 있다. 이정표가 시점(화랑대역 6.9km)과 종점(당고개공원갈림길 5.4km, 이하 종점까지의 거리로 표기) 말고도 불암산역에서의 접근거리(500m)도 알려준다.

09 : 14. ‘경수사 계곡으로 내려가면서 3코스 답사가 시작된다. 2코스에 이어 3코스도 불암산 둘레길을 따라간다. ‘북한산둘레길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생긴 불암산둘레길은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정상과 산비탈을 타고 도는 하루길(10km)’과 공릉동 일대 역사·문화 중심의 나절길(8km)’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둘레길 3코스는 이중 하루길 일부 구간을 빌려 쓴다.

이 계곡은 높이 20m에 달하는 웅장한 불암폭포가 자랑거리다. 하지만 계곡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폭포의 장관도 사라지고 없겠다. 하긴 장마철이나 비가 내린 직후에 방문해야 거대한 암벽을 타고 쏟아지는 압도적인 폭포수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어서 나지막한 고개를 넘는다. ‘불암산에서 뻗어 나온 지능선이다. 여름의 열기가 한풀 꺾인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날이다. 이런 날, 숲속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걷는 건 축복이다. 나뭇잎을 흔들면서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능선에는 소공원이 들어서 있었다. 정자를 짓고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불암산도 조망되나 사진이 흐려 게재는 하지 않았다.

소공원 아래 공터는 어린이들 차지다. 아니 어른들을 위한 배드민턴장도 조성되어 있었다. kaka0map에는 넓은 마당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래선지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었다.

09 : 23. ‘경수사입구(이정표 : 종점까지 6.7km). ‘폭포()가 아름다운 절(景水寺)’이란 이름처럼 불암폭포의 물줄기를 가장 온전하게 볼 수 있는 조망처이다. 하지만 물줄기 없는 폭포에는 관심이 없어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주택가 가까이까지 내려가던 탐방로가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금방 평평한 길로 돌아오지만.

이후부터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평한 오솔길이 계속된다. 중간에 덕암초등학교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이정표 : 종점까지 6.4km)와 만나기도 한다.

3코스는 울창한 숲이 주는 포근함 속에서 여유롭게 걷을 수 있다는 게 장점으로 꼽힌다. 소문대로 산길은 무척 고왔다. 경사가 거의 없는 오솔길은 정비까지 잘 되어 있었다. 유유자적 거닐거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할 수도 있으니 이런 게 바로 힐링이 아닐까 싶다.

09 : 34. 쉼터용 정자가 있는 또 다른 능선에 올라선다. ‘경수사입구 직전의 고개보다 조금 더 굵어진 지능선이다. 해발 고도도 20m쯤 높아졌다.

이정표(종점까지 6.1km)가 불암산 등산로와 교차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렇듯 3코스는 불암산역에서 올라오는 길과 불암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간다.

탐방로는 크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불암산 자락을 옆으로 째며 작은 지능선을 수없이 오르내린다. 그러다보니 지능선과 지능선 사이에서 이렇게 뚝 떨어지기도 한다. 골짜기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09 : 37. 정암사 계곡을 건넌다. ‘정암사(사찰)’ 앞을 지나온 물줄기라서 그렇게 불러봤다.

화강암 바위와 소나무 숲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 등산객들의 쉼터이자 인근 주민들의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높다고 했다. 하지만 개울은 물기 한 점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메말랐다.

09 : 39. 개울가 도로(덕릉로94)를 따라 정암사(淨岩寺)’ 쪽으로 올라간다. 불암산 정상으로 가는 가장 대중적인 제5등산로(정암사 코스)이다. 100m쯤 올라가면 이정표(종점까지 5.7km)가 오른쪽 산자락을 가리킨다.

이즈음 타포니 바위(풍화바위)’를 만날 수 있다. 암석의 약한 부분이 비바람에 깎여 나가 벌집 모양의 구멍(타포니)이 뚫려있는데, 전체적인 생김새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근석으로 불리고 있었다. 풍요와 다산, 그리고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민간 성기숭배 신앙의 핵심 상징물인데, 얼마간 더 걸으면 또 다른 상징물인 여근석도 만나게 된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양기와 음기를 보완하고 있다고나 할까? 하나 더. 탐방로에서 살짝 비켜나있는데다 별도의 표지판이 없어 무심코 지나칠 수 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타포니바위을 지난 산길이 내리막으로 변한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가파르게 아래로 떨어진다.

이후부터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불암산은 거대한 암벽과 절벽, 그리고 울창한 수목이 어우러져 최상의 풍치를 자랑한다. 그 산허리를 가르는 서울둘레길 불암산 구간은 숲길을 걸으며 불암산의 기운을 듬뿍 받을 수 있는 명품 걷기길이다.

불암산은 바위와 돌이 많은 산세가 특징이다. 그래선지 누군가의 소원을 담아 아기자기하게 쌓아 올린 다양한 크기의 돌탑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09 : 51. 이정표(종점까지 5.3km)가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나비정원으로 연결됨을 알려준다.

안내판은 불암산 힐링타운 무장애숲길로 소개하고 있었다. 그 하단에 나비정원 (365일 살아있는 나비를 볼 수 있다)과 철쭉동산이 있고 말이다. 참고로 무장애숲길은 산림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산림 내 시설을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확충하는 방법이다. 가급적 주택가 주변 낮은 산자락에 경사가 완만한 길을 만드는 것으로, 산에 오르기 어려운 어르신과 장애인, 임산부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테크로드는 계단이 분명했다. 요 아래 어딘가에서 무장애길과 연결이 되나보다.

불암산은 강원도의 울창한 숲속에 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숲이 우거졌다. 걷는 내내 삼림욕을 한다고 봐도 된다.

09 : 55. ‘불암산 등산로와 교차되는 사거리. 이정표(종점까지 5.0km)가 둘레길에서 살짝 비켜난 곳에 불암산 전망대(35m 지점)’가 있다며 잠시 들렀다 가란다.

길가에 탤런트 최불암(崔佛岩) 선생의 자작(불암산이여!)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최불암의 본명은 최영한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곁에 남은 어린 영한이 무탈하게 자라길 기도하며 받아온 새 이름이 불암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차마 부를 수 없는 큰 이름이라며 간직만 하고 있었는데, 그가 배우로 데뷔하면서 세상에 내놓게 되었단다. 어머니는 시인 박인환이 세월이 가면을 즉석에서 지어낸 곳으로도 유명한, 문화예술인들의 단골집 명동 은성주점의 주인이었다.(사진 상태가 좋지 않아 인터넷에서 빌려왔다)

전망대는 불암산 힐링타운에 속한 시설 중 하나다. 전망대 말고도 나비정원·생태학습관·카페 포레스트·산림치유센터·사계절정원·힐링가든·유아숲체험장 등 볼거리와 즐길거리, 쉴거리를 두루 갖추었다.

불암산 전망대는 날개를 펼친 나비 형상으로 디자인되었다. 높이 10m의 무장애 전망대로 중앙에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며, 양옆으로는 완만한 곡선형 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어 세 방향에서 자유롭게 오르내릴 수 있다. 보행 약자를 배려한 독창적인 설계로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단다.

꼭대기층은 조망의 명소이다. 탁 트인 360도 파노라마 view를 자랑한다. 불암산 자락은 물론이고 인근의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과 노원구 시가지, 멀리로는 초안산, 남산, 관악산, 청계산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

탐방객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조망도를 세워 실물과 대조해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수락산과 도봉산.

반대 방향에는 불암산(佛巖山, 508m)이 있다. 산꼭대기의 큰 바위가 송낙(승려들이 쓰는 모자)을 쓴 부처님의 모습을 닮았다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암벽 등반의 명소로 필자도 초보이던 집사람을 어깨로 받쳐가며 암벽을 탔던 기억이 있다.

10 : 03.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길을 이어간다. 힐링타운에 속해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망대 바로 아래에 배드민턴장까지 낀 체육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후로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간다.

오늘은 철망 울타리와 함께 가는 구간이 유난히 많았다. 학교 등 인접시설에 피해를 주는 행동을 말아달라는 안내판도 심심찮게 매달려 있었다. 맞다. 어쨌든 산길에선 조용히 다니는 것이 좋다.

두어 곳에 낙석 위험구간이라는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바위와 돌이 많은데다 경사까지 가파른 곳에 길을 내다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10 : 15. 그렇게 10분 남짓 진행했을까 기묘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넓적바위라는데 등산객들은 대부분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여근석(여근바위)’으로 여긴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지만 여성의 은밀한 부위를 떠올리게 만드는 형상이 가장 뇌리에 남기 때문이다. 아무튼 기기묘묘한 생김새로 보아 옛날에는 아들 낳기를 바라는 여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100m 남짓 더 걸었을까 길이 둘로 나뉘고 있었다. 이정표는 없지만 왼쪽은 학도암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불암산 7등산로)이다. 물론 서울둘레길은 직진이다.

이즈음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소나무는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 하나다. 그런 이점을 지자체가 놓칠 리가 없다. 벤치에 평상, 심지어는 선베드 형태의 야외벤치까지 놓아 시민들의 쉼터로 조성해 놓았다.

화장실도 눈에 띈다. 서울둘레길의 가장 큰 장점은 심심찮게 화장실을 만난다는 점이다. 숲속에 들어선 예쁜 화장실은 상상만으로도 낭만 넘치는 멋진 풍경이 된다.

10 : 20. 몇 걸음 더 걸으면 학도암 갈림길(이정표 : 종점까지 4.2km)’. 서울둘레길은 도로를 가로질러 맞은편 산자락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300m쯤 다리품을 더 팔면 조선 왕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절간이 있다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도로를 따라 5분 남짓 올라갔을까 학도암(鶴到庵)’이 얼굴을 내민다. 주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학이 날아와 놀았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계단을 오르면 작은 문(), 허리만 굽힐 게 아니라 마음까지 비우라며 하심(下心)’이란 문패를 내걸었다.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불교의 핵심 수행 자세이다.

학도암1624(인조 2) 무공(無空) 화상이 불암산의 한 암자를 현재 위치로 옮겨오면서 시작된다. 이후 6·25 전쟁으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수차례의 중건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대웅전, 약사전(동굴법당), 삼성각 등의 전각이 있다.

대웅전 뒤편 암벽에는 높이 13.4m의 거대한 마애관음보살좌상(磨崖觀音菩薩坐像)이 새겨져있다. 이 마애불상은 1870년대에 명성황후(明成皇后)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화승(畵僧)과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던 왕실 석공들이 제작에 참여했다나?

명성황후가 왕의 사랑, 자녀 출산, 자녀의 성공이라는 세 가지 소원을 빌었는데 이게 모두 이루어졌다는 믿거나 말거나식 이야기도 있다. 명성황후는 41녀를 두었으나 순종을 제외한 자녀들은 모두 어릴 때 요절했고, 순종 또한 말로가 별로였기에 하는 말이다.

10 : 39. 사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진행한다.

초입에 노원둘레산천길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노원구의 수려한 자연경관(산과 하천)과 유서 깊은 역사·문화유산을 하나로 연결한 도보여행 길로, 모두 6개 코스 45.8km로 이루어져 있다. 노원의 산(수락산, 불암산)과 천(중랑천, 당현천, 묵동천)을 중심으로 유적지와 숲길을 탐방한다고 보면 되겠다.

이후의 길은 무척 고왔다. 보드라운 흙길이 경사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경계를 나누고 있는 나무 울타리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중간에 탐방객들이 지나다닐 수 있게 틈을 내주기는 했다. 임야 소유주(개인)가 자신의 토지경계를 나타내기 위해 설치한 시설들이란다.

전 코스에서도 얘기했듯이 산행은 인생을 닮았다. 굴곡지게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나타내기라도 하려는 듯 산길은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10 : 54. ‘백사마을에 이른다. 아니, 백사마을 뒤쪽 산자락이라고 하는 게 옳겠다. 노원구 중계본동에 위치한 백사마을은 한때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유명했다. 1967년 용산, 청계천, 안암동 일대 판자촌에서 강제 이주당한 도시 서민들이 불암산 자락에 천막을 짓고 살면서 마을이 시작되었다. 1971년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묶이면서 건물 증개축이 제한되었고, 이로 인해 서울에서 보기 드문 60-70년대식 달동네 풍경이 최근까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과거 지번인 104번지가 자연스레 백사란 지명으로 변했다.

백사마을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막혀있었다. 백사마을이 재개발된다더니 공사가 시작되었나 보다. 45,854평의 대지에 지하 9-지상 35층의 건물이 26(3,178가구)나 들어서는 대단위 공사장이니 어찌 통행을 막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길은 막혔어도 쉼터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주민들이 등산객이나 걷기여행자들로 바뀌어 있었지만. 이정표(종점까지 3.5km)도 정상(2.9km 지점)으로 올라가는 방향만 가리키고 있었다.

쉼터 아래는 텃밭이 꽤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그런데 경작금지라는 팻말과 현수막을 어지럽다 싶을 정도로 많이 설치해놓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텃밭에는 각종 작물들이 잘만 자라고 있었지만.

쉼터를 지나면서 길은 오름짓을 시작한다.

그러다 끝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긴 나무계단으로 변해버린다. 3코스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아닐까 싶다.

11 : 04.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산꼭대기(해발 171m)에 올라설 수 있었다. 삼각점(성동 342)이 지키는 정상에는 벤치 2개가 놓여있었다. 올라오느라 고생했으니 잠시 쉬다 가라는 모양이다.

내리막으로 변한 산길을 몇 걸음 더 걷자 불암산 갈림길’. 이정표(종점까지 3.0km)가 불암산 정상(3.0Km 지점)으로 올라가는 길(불암산 9등산로)이 나뉨을 알려준다.

이후부터는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그건 그렇고, 탐방객의 숫자가 부쩍 늘어났다. 둘레길 걷기여행자들에 불암산 등산객들이 합쳐졌음이리라. 덕분에 고요했던 숲속이 오히려 활기찬 분위기로 바뀌었다.

11 : 07. 100m쯤 더 걸었을까 앞서가던 집사람이 오른쪽을 가리킨다. 이정표(종점까지 2.9km)가 가리키는 불암산 종합스타디움방향에 뭔가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30m쯤 들어가는 곳에 인사바위가 숨어 있었다. 마치 허리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는 바위다.

11 : 11 11 : 28. 이번에는 전망대를 겸한 쉼터다. 서울둘레길은 이런 쉼터를 곳곳에 만들어 자연스럽게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필자 부부도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어갈 수 있었다.

난간에 서면 남양주의 아파트 숲과 천마산, 예봉산 등 경기 동북권의 아름다운 산세를 조망할 수 있다.

능선을 따라 격식을 갖춘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한국전력 인재개발원에서 세운 모양이다. 필자가 젊던 시절 체육대회 참석을 위해 매년 찾아왔던 곳이기도 하다.

앙증맞은 꽃밭. 누군가가 화초를 심어놓았나 보다. 오가는 사람들이 행여나 밟을세라 손가락 2개 크기의 팻말까지 세웠다.

11 : 45. 또 다른 쉼터. 조망이 터지지 않기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탐방로 양쪽 모두에 울타리가 쳐져있다. 왼쪽은 문화재 보호구역(태릉), 그리고 오른쪽은 군사시설 보호구역(군부대)에서 설치했단다.

11 : 54. 마지막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니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세면대 아래에 있는 안심 비상벨을 누르라는 음성 안내가 들려온다. 하나 더. 최근 설치된 안심 화장실에는 버튼을 누르기 힘든 긴박한 순간에도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등의 비명을 지르면 단어를 자동 인식하여 신고가 접수되는 음성인식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는데, 이곳은 어쩐지 모르겠다.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에는 흙먼지털이기가 기다린다. 맞다. 옷과 신발에 묻은 흙이나 먼지는 몰라도 해충(진드기 등)은 꼭 제거해야 할 대상이다

12 : 03. 탐방로가 포장길로 바뀌었다. 그래서일까? 뛰어가는 사람까지 눈에 들어온다.

12 : 05. 숲의 향기에 취해 걷다 보니 어느새 산길의 끄트머리인 공릉산백세문에 이른다. 2009년에 세워진 이 문은 ‘3km의 흙길로 조성된 공릉산길을 오르면 100세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건강과 장수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이후부터는 노원로를 따라간다. 왕복 6차선의 널따란 도로지만 아파트 경계 숲과 굵직한 가로수 사이로 인도가 나있어 흡사 울창한 숲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12 : 19. 화랑대사거리. ‘서울둘레길은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오른쪽으로 간다. 하지만 왼쪽에 있는 화랑대 철도공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던 옛 화랑대역이 화랑대 철도공원으로 탈바꿈했다는 걸 아는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하나 더. 1939년 여름(7.25) 경춘선의 첫 경적이 울렸다. 우리 민족자본으로 만든 최초의 철도 시설이다. 성북역(현 광운대역)부터 춘천역까지 24개 역을 지나는 87.3km의 노선은 서울 도심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던 교통수단이자 수많은 이들의 낭만이 깃든 길이었다.

화랑대 철도공원투어는 경춘선 숲길을 따라가면서 시작된다. 과거 기차가 다니던 폐 철길 주변에 나무를 심어 숲의 형태로 가꾼 산책로로 탈바꿈시켰다. 시민들이 걸으며 휴식할 수 있는 도심 속 숲 정원이라고나 할까? 기존 철로도 그대로 놓아두었음은 물론이다. 2010년 겨울(12.20) 마지막 열차 운행을 끝으로 경춘선은 폐선됐다. 기존의 낡은 단선 철도가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서울 도심의 전철 운행이 늘어나면서 경원선이 포화상태에 이른다. 이에 복선전철화를 계기로 경춘선의 기점을 중앙선 상봉역으로 변경하여 서울 진입구간의 병목현상을 해결했다. 한동안 버려져오던 철길은 2013년부터 공원화를 거쳤다.

200m쯤 들어갔을까 철도공원이 얼굴을 내민다. ‘경춘선 운행 구간이 바뀌며 문을 닫았던 화랑대역은 현재 화랑대 철도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옛 전차를 복원하고 철길 위에 산책로를 조성했다. 그런데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노원 수제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역사(驛舍)1939년에 지었다. 87년의 세월을 살아남았으나 외관은 평범했다. 삿갓 모양의 건물은 비대칭의 삼각형을 이루는 박공지붕이 특징이다. 지금까지 서울에 남아 있는 유일한 간이역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화랑대역의 수행업무를 간직한 채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개통 당시에는 태릉역(泰陵驛)’이었다. 인근의 문정왕후 능인 태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958년 옆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의 별칭을 따서 화랑대역이 되었다. 하나 더. 2000년 서울 지하철 6호선이 개통되면서 근처에 새로 지어진 지하철역에 이름마저 빼앗겨버렸다.

은하철도 999’에나 나올 법한 저 열차는 1642500km나 달린 베테랑 미카 증기기관차라고 한다. 어린이대공원에 있던 것을 옮겨왔단다. 오래 전 경춘선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 철길 위를 디젤기관차가 무궁화호 객차를 끌고 달렸다. 낭만적인 통기타 소리와 계란, 사이다로 대변되던 대성리, 청평, 강촌행 대학생 MT 열차가 바로 이 시절의 무궁화호였다. 하지만 2010년 복선전철화 개통 이후 일반 지하철과 같은 전동차가 운행을 시작했고, 2012년부터는 국내 최초의 2층 객석을 갖춘 준고속 좌석형 급행열차인 ‘ITX-청춘이 투입되어 용산역과 춘천역을 빠르게 연결한다.

뒤에 붙어있는 객차에는 익스프레스 노원 바이 미라쥬가 들어섰다. 이름 그대로 기차 콘셉트로 꾸며진 레스토랑이다. 유럽풍 특급열차의 화려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정교한 문양과 샹들리에와 소품이 곳곳에 채워졌다. 해안철도 배경의 콘셉트 아트(미디어 화면)로 꾸며놓은 창문도 돋보인다. 파스타, 리조또, 스테이크, 샐러드 등 메뉴도 다양했다. 하지만 반주로 제격인 맥주(통상적인 모든 주류)를 판매하지 않아 이용하지는 않았다.

1951년 일본에서 제작되어 부산 철도차량공작창에서 조립하였다는 협궤열차(혀기-1)가 객차 2량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수인선(수원-남인천)과 수려선(수원-여주) 구간을 달리며 서민들의 발이 되어주던 추억의 열차이다. 참고로 협궤열차란 선로 간격이 일반 표준궤(1,435mm)보다 좁은 762mm의 협궤철도를 달린다. 차체 폭도 2.28m로 매우 슬림하고 아담한 것이 특징이다.

노면전차는 체코 프라하에서 운행하고 있던 트램(Tram)을 들여왔다. 1899년 대한제국 고종 때 전차개통식부터 1968년 운행 종료시까지 사용하던 전차와 비슷한 모형이란다. 현재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게시하지 않았지만 무상 기증받았다는 히로시마 노면전차와 우리나라 최초의 노면전차 실물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화랑대역 400m 구간에 조성된 노원불빛정원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진기한 동식물 등 다양한 조형물들이 숲속에 가득하다. 밤에 오면 저 조형물들이 LED 불빛으로 채워지면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단다.

육군사관학교 앞의 기마 화랑상’. 화강암 지대석 위에 화강암 대좌를 설치하고 그 위에 말을 타고 창을 든 청동 화랑상을 설치하였다.

전국 유명 34개 브루어리(Brewery)가 참여하여 200여 종의 수제맥주를 선보인다. 안주삼아 지역 시장상인들이 내놓는 대표 푸드도 맛볼 수 있다. 여흥은 서울뮤직위크와 협력하여 보여주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공연으로 삼으면 되겠다.

캠맥광장이란다. 왼쪽은 신선한 크래프트 맥주를 직접 양조하는 Brewery 부스, 오른쪽에는 Food 부스가 일렬로 늘어서 있다. 필자도 650cc 짜리 하나를 챙겨들고 행사장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늘막 텐트도 눈에 띈다. 다른 축제장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일행끼리 오순도순 둘러앉아 맥주를 마실 수 있으니 이 아니 좋을 손가.

에코광장의 주인공은 노원 브랜드 페어이다. 관내 소상공인들의 디저트, 수공예품 등을 전시·판매하는 살거리 구역이다.

맥주&뮤직 광장에는 Brewery 말고도 공연장이 있었다. 10회 서울뮤직위크와 연계하여 운영하는 아바타트리 스테이지라고 한다.

12 : 57. 철도공원 투어를 마친 다음, 다시 서울둘레길을 이어간다. 화랑대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고서도 한참을 더 걸아야 종점인 화랑대역에 이를 수 있다.

화랑대사거리부터 화랑대역 사이에는 공릉동근린공원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꿈나르샤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 공릉동의 대표적인 꿈마을 청소년 축제라고 한다.

13 : 05. ‘공릉동근린공원의 서쪽 입구에 3코스에서 4코스로 변경됨을 알리는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늘은 9.96km4시간에 걸었다. 정규 코스는 6.9km이지만 불암산역에서의 접근거리 및 학도암과 화랑대철도공원을 둘러보느라 3km를 더 걸은 모양이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중략-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 드라마 미생속 주인공 장그래의 바둑 사부(남종수)가 전한 명대사로 의욕만 앞서고 몸이 따라주지 않아 쉽게 지치고 무너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입니다. 그가 말한 이루고 싶은 뭔가가 있지는 않지만 고희를 넘긴 나이에는 튼튼한 체력이 필요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트레킹에 나섰고 오늘도 집사람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서울둘레길 2코스(불암산역  불암산역)

 

일 시 : ‘26. 8. 5()

소재지 : 서울시 노원구 일원

코 스 : 불암산역당고개갈림길거인손바닥바위학림사갈림길동막골덕릉고개상계동나들이철쭉동산불암산역(거리/시간 : 5.4km+1.2km, 실제는 7.37km 3시간 30분에)

 

특징 :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21개 코스, 156.5km 규모의 순환형 트레일이다. 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고덕산·일자산·대모산·우면산·관악산·호암산·안양천·노을공원·봉산·북한산 등 서울을 둘러싼 자연과 도시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09 : 15. 불암산역(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지하철 4호선, 불암산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옛 이름은 당고개역’, 고개 근처에 무사안녕을 빌던 당집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불암산역을 출발, 수락산과 불암산의 3부쯤 되는 산허리를 자 모양으로 돈 다음 다시 불암산역으로 되돌아오는 코스이다. 크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으로 분류되나 속도만 조금 떨어뜨리면 부담 없이 마칠 수 있다.

 09 : 15. ‘상계로를 따라 서·남진(상계역 방향)하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고가철도를 왼쪽에 두고 간다고 보면 되겠다.

 09 : 19. 수락산 등산로의 기점이 되는 당고개 공원’. 상계 3·4동 주민자치회에서 주관하는 어울림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당고개공원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덕암정(德巖亭)’. 조선시대 문인 서계 박세당 선생의 시판 등이 걸려 있다.

 덕암정 맞은편에서 산길이 열린다. 산길은 계단을 놓아야만 했을 정도로 무척 가팔랐다. 당고개공원의 해발고도는 45m, 반면에 1코스와 2코스 경계지점인 당고개 갈림길 160m나 된다. 450m를 걷는 동안 고도를 115m나 높이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09 : 38. 1코스 종점이자 2코스의 시점인 당고개 갈림길’. 이정표가 2코스 종점인 상계동나들이 철쭉동산(이하 종점으로 표기)’까지의 거리를 5.4km로 적고 있다. 여기에 불암산역에서 시점(당고개갈림길)까지의 접근거리 0.7km와 종점(상계동나들이철쭉동산)에서 불암산역까지의 접근거리 0.5km를 더하면 2코스는 6.6km를 걷게 된다.

 2코스는 급하게 고도를 낮추면서 시작된다.

 계단을 내려서면 오르내림이 없는 반반한 길이 이어진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나선형의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한 번 더 뚝 떨어진다.

 등산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수월한 내리막(안락)이 있었으니 가파른 오르막(시련)이 나올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숨을 고를 수 있는 평탄한 길이 빠질 리가 없다. 거기에 손을 담글 수 있는 개울까지 보태주니 이 아니 행복할 손가.

 09 : 50. 집채만 한 바위가 거인 손바닥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암석이 물리적·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으면 표면에 벌집이나 동굴 모양의 수많은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된다. ‘타포니(Tafoni)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게 손바닥을 닮았던 모양이다.

 옛날 수락산에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산속의 동식물들을 보호해 주던 거인이 살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주변이 개발되면서 수락산이 파괴되고 정겨운 마을 공동체가 해체되자 수락산을 버리고 떠나갔다나?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훼손되어가는 자연이 안타까워 만들어낸 이야기일 터다.

 탐방로는 전형적인 오솔길의 형태를 보인다. 도심 속 일상을 벗어나 자연을 만끽하며 거닐기에 딱 좋은 산길이다.

 작은 지능선 위에서 사거리(이정표 : 종점까지 5km)를 만났다. 이렇듯 2코스는 불암산역에서 올라오는 길과 수락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을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간다.

 탐방로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수락산 산자락을 옆으로 째며 작은 지능선을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푸른 나무 사이로 드는 햇살, 바스락거리는 흙길. 조용한 사색과 여유가 있는 낭만의 길이다.

 10 : 00. 안내판이 복천암(사찰)’이 있으니 정숙 보행을 해달란다. 길가에는 언제 달았는지도 모를 낡은 연등이 매달려 있었다. 이왕에 보시를 한 불심이니, 새것으로 교체까지 해주면 어떨까 싶다.

 복천암부터는 데크 길이 계속되고 있었다. 산비탈에 길을 내다보니 오솔길마저도 만들기가 수월치 않았던 모양이다.

 가끔은 숲이 열리고 있었다. 온전치는 않지만 솔가지 사이로 불암산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안전은 현대인들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다. ‘서울둘레길도 이들의 관심을 방관하지 않았다. 탐방로 곳곳에 지능형 CCTV’를 설치해 시민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10 : 09. 산속 화장실도 안심화장실이란다. ‘112 비상통화 시스템을 갖췄다.

 공중화장실 근처에서 개울을 건넜다. ‘장마철이 지났다는 기상청 발표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개울은 건천(乾川)에 가까웠다. 징검다리가 놓인 걸 보면 계곡도 깊지 않은 모양이다.

 울창한 나무그늘 아래로 맑은 물줄기가 흘러간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삼복더위에 탁족(濯足)하기에는 부족함이 없겠다.

 개울을 건너자 산길이 가팔라졌다. 지자체도 그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길가에 벤치를 놓아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10 : 15. ‘덕릉로129가길로 올라선다. 이정표(종점까지 4.1km) 학림사로 연결되는 길임을 알려준다.

 이 길은 수락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겸한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등산안내도까지 세워놓았다.

 10 : 16. 탐방로는 학림사 쪽으로 50m쯤 올라가다 반대편 산자락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30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천년고찰, 특히 초의선사와 추사(김정희)가 해붕대사를 모시고 공()과 각()을 주제로 열띤 법거량(法擧量)을 펼쳤던 곳인데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을해년(1815) 겨울, 눈길을 헤치며 해붕선사를 찾아가던 추사의 마음으로 100m쯤 올라갔을까? 경내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약사전(藥師殿)’이 얼굴을 내민다. ‘학림사 연혁을 적은 안내판도 눈에 띈다. 하지만 추사나 초의선사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이곳에서 주석하셨다는 해붕선사에 대한 얘기까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100m쯤 더 들어가니 학림사가 산비탈에 기대듯 들어앉아 있다. 비탈을 깎아 계단식 터를 만들고 전각들을 들어앉혔다. ! 수락산 등산로는 절간 앞(아래 사진에서 물통이 놓인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갈려나가고 있었다.

 일주문을 겸하는 해탈문(解脫門)’. 속세를 벗어나 불교의 진리세계인 불국정토로 들어선다는 종교적 의미를 담은 문이다. 그래선지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꾸준한 선행과 실천을 상징)와 사자를 탄 문수동자(지혜를 상징)가 좌우에서 내방객을 맞이한다. 하나 더. 벽에 사천왕상을 그려 넣은 걸 보면 천왕문(天王門)’까지도 겸하는 모양이다.

 해탈문을 거쳐 청학루로 이어지는 108 계단에는 눈, , 입을 막고 있는 익살스러운 원숭이 석상 네 쌍이 세워져 있었다. 중생들에게 <사악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불교적 수행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단다. 마지막 원숭이는 만세를 부르는 형상이다. 모든 번뇌를 이겨내고 해탈한데 대한 환희의 발현이라나?

 번뇌를 이겨낸 발길은 청학루(靑鶴樓)’로 이어진다. 학포지란(鶴抱之卵, 학이 알을 품은)의 형국이라는 절간 유래를 살짝 비틀어 이름으로 삼았다. 참고로 학림사(鶴林寺) 671(문무왕 11) 원효대사가 창건했다. 고려 공민왕 때 나옹이 절을 중수하고 머물렀을 정도로 성세를 누렸으나 1597(선조 30) 정유재란 때 병화로 소실되었다. 1624(인조 2) 무공(無空)이 중수하고 이후로도 여려 중·보수가 이루어지면서 오늘에 이른다. 대웅전과 설법전(청학루), 오백나한전, 삼성각, 약사전, 선불장(選佛場) 등의 전각으로 이루어져있으며, 학림사석불좌상과 학림사삼신불괘불도 등의 서울시 지정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정서라도 깨뜨릴까 싶어 염불소리로 낭랑한 대웅전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아니, 약사전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집사람 때문에 어느 하나 꼼꼼히 살펴보지를 못했다. 옛 현인(賢人)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해붕대사가 하룻밤을 머물다 가는 추사에게 내렸다는 계송(偈頌)으로 대신해본다. <당신은 집 밖으로 나가고 나는 집안에 앉아있네. 집 밖에 무엇이 있겠냐마는 집안에도 본디 불조차 없다>

 10 : 32. 서울둘레길(이정표 : 종점까지 4.0km)로 되돌아와 다시 길을 나선다.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갈 경우 불암산역에 이른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잠시지만 산길이 급하다싶을 정도로 고도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경사가 심한 곳에는 침목 계단을 놓아 안전을 도모했다.

 10 : 38. 그러다 만난 개울에는 다리를 놓여 있었다. 중간에 널찍하니 공간을 만들고 쉼터를 들어앉힌 특이한 다리다

 이후부터는 개울을 따라간다. 수량은 비록 작지만 오뉴월 물놀이에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10 : 42. 탐방로에서 조금 비켜나있지만 약수터도 이용할 수 있다. 이정표(종점까지 3.8km) 150m쯤 떨어진 곳에 수암샘약수터가 있음을 알려준다.

 10 : 44. 작은 체육공원(‘石泉약수 근처)이 있는 삼거리. 이정표(종점까지 3.7km)가 이제 그만 능선으로 올라가란다. 계속해서 내려갈 경우 석천공원을 거쳐 불암산역(1.2km)’으로 연결된다.

 이후부터는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나무계단 두 개가 연이어 나타난다.

 10 : 50. 그렇게 50m쯤 고도(高度)를 높였을까 잠시지만 길이 평탄해지고 있었다.

 2코스는 수락산 자락을 옆으로 째면서 간다. 때문에 작은 지능선을 수없이 오르내린다.

 그러다보니 지능선과 지능선 사이에서 이렇게 뚝 떨어지기도 한다. 골짜기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산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수월하게 내려왔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

 11 : 07. 고도를 낮추다보면 만나게 되는 동막골 체육공원’. 숲속 곳곳에 정자와 벤치, 운동시설들을 배치했다. 참고로 동막골은 동쪽 주막(막사)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포천지역 사람들은 한양(서울)을 오갈 때 수락산 동편 길을 이용해 덕릉고개를 넘었다. 당시 장수원의 동쪽인 이 길목에 음식을 파는 주막과 막사가 있었는데, 나그네들이 동쪽에 있는 막()’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옹기나 독을 짓는 막사(가마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동쪽이 산으로 꽉 막힌 골짜기 형태라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공원을 빠져나오면 동막골(이정표 : 종점까지 2.8 km)’이다. 골짜기가 깊고 숲이 무성한 동막골은 일찌감치 유원지로 개발되었다. 때문에 동막골유원지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동안 행락시설은 모두 철거되고 대신 도심형 자연휴양림인 수락 휴 유아숲 체럼장 같은 공공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탐방로는 이제 덕릉로145을 따라간다. 2코스의 또 다른 특징은 차도를 걸어야하는 구간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너무 당황하지는 말자. 이정표만 잘 살펴본다면 길이 헷갈릴 일은 없다.

 멋쟁이 담벼락. 녹음 짙은 숲으로 채워 넣어 흡사 울창한 숲속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11 : 16. 도시외곽순환고속도로 아래. 이정표(종점까지 2.4km)가 산자락을 가리킨다.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가면 불암산역(1km)으로 연결된다.

 산길은 급할 것 없다는 듯이 느긋하게 고도를 높여간다.

 11 : 28. 능선 조금 못미처의 첫 삼거리. 이정표(종점까지 2.0km)가 수락산 정상(4km)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뉨을 알려준다.

 11 : 30. 잠시 후 능선(이정표 : 종점까지 1.8km)으로 올라섰다. 수락산과 불암산을 잇는 등산로가 능선을 따라 나있다. 젊은 시절 ···을 종주하면서 걸었던 추억의 옛길이다.

 11 : 33. 덕릉고개. 서울과 경기(남양주시)를 나누는 고갯마루이자 불암산과 수락산을 잇는 능선의 안부이기도 하다. ‘덕릉이란 지명은 요 아래 있는 선조(宣祖)의 친부인 덕흥대원군 묘에서 유래했다. 선조는 아버지의 무덤을 왕릉인 덕릉(德陵)’으로 추존하려 했으나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이에 선조는 동대문 밖의 나무장수들에게 덕릉을 넘어왔다고 말하는 사람의 땔감을 비싸게 사주고 술까지 대접하도록 했다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덕릉으로 부르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애물덩어리로 취급되는 임금이지만 효심 하나만은 깊었던 모양이다.

 신작로(新作路, 덕릉로)가 나면서 끊겼던 덕릉고개는 현재 생태육교가 놓여있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파헤쳤던 능선을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다시 이어놓았다고나 할까? 생태육교를 건너면 ‘T’자형 삼거리(이정표 : 종점까지 1.7km), 서울둘레길은 오른쪽으로 간다. ! 반대 방향은 불암산 정상으로 연결된다는 것도 기억해 두자.

 서울둘레길은 이제 불암산 둘레길을 따라간다. 2010 북한산둘레길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로 생긴 불암산둘레길은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정상과 산비탈을 타고 도는 하루길(10km)’과 공릉동 일대 역사·문화 중심의 나절길(8km)’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둘레길 2코스는 이중 하루길의 일부(1코스) 구간을 빌려 쓴다.

 11 : 40. ‘연인바위란다. 바위의 생김새를 이용해 스토리텔링을 해놓았다. 사람 모양의 바위가 둘로 나누어져 서로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서로 포옹하고 있는 것 같다나?

 이름처럼 바위 둘이 애틋한 정을 달래고 있다. 생김새도 사람의 형상을 쏙 빼다 닮았다. 얼마나 그립고 애틋했으면 저렇게도 딱 붙어있을까 싶다.

 불암산 구간은 수락산보다 상대적으로 경사가 적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산책삼아 걷기에 딱 좋은 구간이다.

 설악산의 여심폭포를 떠올리게 만드는 벼랑이 있어 카메라에 담아봤다. 비라도 내릴라치면 비슷한 풍경을 만들어 낼 것 같아서이다. 바위틈에서는 물도 떨어지고 있었다. 생수병 하나쯤은 금방 채울 수 있겠다.

 불암산(佛巖山)’도 산이다. 그것도 높이가 508m나 된다. 수락산보다 경사가 적다고는 해도 만만히 볼 일은 아니다. 가끔은 가파른 오르내림을 만나기도 한다.

 11 : 45. 밋밋한 흙길을 걸어온데 대한 보상이라도 주려는 듯 느닷없이 거대한 바위벼랑이 나타난다. 그 벼랑 위에는 데크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난간에 서자 우측으로 도봉산의 봉우리들과 한북정맥 산줄기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발아래로는 도시외곽순환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마음 놓고 달려대는 차량들이 내지르는 굉음이 이곳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11 : 45  12 : 05. 전망대는 벤치를 놓아두지 않았다. 안전 등 뭔가를 이유로 쉼터 기능을 배제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주변이 바위로 되어있어 쉬어가기 딱 좋았다. 덕분에 우리 부부도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다 갈 수 있었다.

 탐방로는 바위절벽 아래로 이어진다. 수직의 바위벼랑에 기대듯 계단을 놓았다.

 절벽 아래는 채석장 터이다.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서울의 주요 석조건축과 토목사업을 위해 바위를 캐던 현장이다. 산림 복구로 현재는 울창한 숲으로 되돌아와 있지만 인간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던 아픈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안내판은 작은 채석장으로 적고 있었다. 1코스에 있는 채석장과 구별하기 위한 작명이지 싶다. 1코스의 것보다 규모가 한참이나 작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방치하듯 놓아둔 바위덩어리가 가히 예술이다. 저걸 보고 추상예술(Abstract Art)이라고 하나?

 벼랑에는 채석을 하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었다. 벼랑은 단단하기로 유명한 화강암이다. 조선시대 궁궐의 대명사인 경복궁 경회루의 주춧돌이 불암산의 돌이다. 뿐만 아니라 문정왕후의 태릉, 명종의 강릉 등 조선왕릉을 장식하고 있는 혼유석, 병풍석, 난간석 역시 불암산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돌탑을 쌓아올렸는가 하면 돌담을 두른 공간도 눈에 띈다. 돌을 채굴하던 거친 공간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려는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길을 이어간다. 전형적인 육산(肉山)인데도 거대한 바위들이 산자락에 널려있다시피 했다.

 이즈음 타포니 현상의 바위들을 만날 수 있다. 아까 수락산에서 만났던 거인손바닥 바위에 견줄 수는 없지만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하다.

 바위가 오랜 세월 지질학적 풍화작용을 겪으면 벌집이나 해골,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처럼 구멍이 숭숭 뚫리는 형상으로 변한다. 그런데 요건 손가락을 닮았다. 아까 2코스를 시작하면서 만났던 거인 손가락바위를 쏙 빼다 닮았다.

 이후로도 길은 크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길은 사색을 즐기며 걸어도 좋을 만큼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경사가 심하다싶으면 나무계단을 놓았고, 미끄러운 곳에는 어김없이 야자매트를 깔아놓았다. 힘은 들지만 안전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다는 얘기다.

 수락산 구간과 마찬가지로 불암산 구간도 작은 지능선을 수없이 넘나든다.

 12 : 23. 그렇게 지능선 두어 개를 넘자 물기 하나 없는 건천(乾川)’이 나타난다. 200m쯤 떨어진 곳에 칠성암(사찰)’이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종점까지 900m)도 눈에 띈다.

 잠시지만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위에서 얘기한 건천을 오른쪽에 끼고 내려간다고 보면 되겠다.

 12 : 27. 이정표(종점까지 0.8km)가 다시 오솔길로 들어가란다.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갈 경우 불암산역(0.9km)로 연결된다.

 산길은 완만한 오름짓을 한다. ‘도시와 자연을 잇는 생태길이라는 2코스의 테마에 걸맞게 울창한 숲속을 느긋하게 오른다.

 12 : 32. 탐방로가 거대한 바위를 에돌아가고 있었다. 앞서 다녀간 이들이 마당바위로 적고 있는 지점이다.

 상부는 일부러 깎아놓은 것처럼 평평했다. 무리지어 쉬어가도 될 만큼 공간도 넓었다. 나무 난간을 두르고 벤치를 놓아 쉼터로 만들어 놓은 이유일 것이다.

 또 다시 나타나는 오르막길. 1코스에 이어 2코스도 난이도가 으로 분류된다. 앞서 다녀간 이들도 둘레길이니 순할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라고 했다. 오르내림이 가파른데다 그 폭도 상당히 크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이에 겁을 잔뜩 먹은 우리 부부는 오뉴월 삼복더위가 끝날 때까지 답사를 기다려야만 했다. 7월 말 1코스를 걸으면서 무더위에 무척 고생을 했던 기억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종점을 코앞에 두었는데도 버겁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급경사 오르내림이 많이 있었지만 까짓 속도만 조금 떨어뜨리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12 : 38. 주상절리를 닮은 바위가 누워있다. 얼핏 시멘트 구조물 같기도 한데, 바위가 옳다면 주상절리가 분명하다.

 12 : 40. 울창한 숲 너머로 민가가 엿보이는가 싶더니 숲속 작은 공원이 꾸며져 있었다. 짙은 그늘 아래 벤치를 놓았는가 하면 공들여 쌓아올린 돌탑도 눈에 띈다.

 잠시지만 덕릉로126사길을 따라간다. 불암산 자락에 위치한 대표적인 달동네 중 하나인 희망촌이 아닐까 싶다. 1960-1970년대 도심 철거민들이 이주해 오면서 형성된 정착촌으로, 인근의 중계동 백사마을과 함께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달동네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희망촌은 무허가 건축물이 전체의 90%를 차지한다고 했다. 토지는 서울시나 산림청 소유인 국공유지가 절반에 가깝단다. 집은 있지만 땅이 없는 특이한 소유구조와 40도에 이르는 급경사지, 거기에 자연녹지라는 용도규제까지 겹치면서 많은 집들이 저렇게 변했다. 지붕 너머로 나타나는 수락산의 아름다운 자태처럼 하루 빨리 재개발이 되어 행복이 넘치는 마을로 변했으면 좋겠다.

 12 : 43. 골목길을 100m쯤 걸었을까 탐방로는 숲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숲속은 공원으로 꾸며놓았다. 짙은 그늘 아래 벤치와 평상을 놓아 주민들의 쉼터로 만들었다.

 산자락에는 철망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야생 멧돼지가 출몰할 수 있으며 대처법까지 게시해 놓았다.

 몇 걸음 더 걸으면 상계동(나들이) 철쭉동산이다. 2005년 불법경작지 정비를 시작으로 백철쭉·자산홍 등 3만 주를 식재하면서 틀을 갖췄고, 2021년에는 철쭉 사이로 산책로를 내고 전망대, 휴게쉼터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설치했다.

 상계동 주민들은 자신의 뜨락처럼 드나든다고 했다. 가볍게 걸을 수 있도록 철쭉 사이로 산책로를 냈는가 하면, 서로 어울리며 담소를 나눌 수 있도록 휴게시설까지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철쭉이 만개한 봄철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좋은 편이다. 지대가 낮은 탓에 아파트 숲에 많은 부분이 가려버리기는 했지만 도봉산의 헌걸찬 암릉을 눈에 담을 수 있다.

 12 : 52. 철쭉동산 끄트머리에 있는 종점에는 코스가 변경됨을 알리는 여러 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정표(화랑대역 6.9km/ 당고개공원갈림길 5.4km)가 접근 지점인 불암산역까지 500m쯤 떨어져 있음을 알려준다.

 불암산역으로 가는 길. 철쭉동산 아래서 덕릉로124, 덕릉로126가길을 연이어 타고 가면 된다.

 13 : 10. 지하철 4호선 불암산역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오늘은 7.37km 3시간 30분에 걸었다. 정규 코스(5.4km)에 시점과 종점까지의 접근거리(1.2km), 그리고 학림사까지 다녀온 거리를 합쳤다.

 오늘도 집사람이 함께 해줬습니다. 덕분에 서로를 도와가는 가운데 사랑을 한층 더 키울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집사람을 선택한 것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움직인 그녀만의 특별한 장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그녀도 나만의 특별한 점이 있어 저를 선택했을 것입니다. 옛 현인들은 세상 어디에도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살아갑니다. 퍼즐처럼 서로의 빈자리를 채우며 살아가는 것이 부부가 아닐까요?

 

여행지 : 남인도(South India)타밀나두(Tamil Nadu)-탄자부르(Thanjavur)-브리하디스와라 사원(Brihadisvara Temple)

 

여행일 : ‘26. 3. 23() - 3. 28()

 

세부 일정 : 첸나이마하발리푸람퐁디셰리탄자부르마두라이코친

 

특징 : 11세기 초 촐라왕조의 라자라자 1가 세운 힌두교 사원. 드라비다 건축양식의 걸작이자 최고 정점으로 꼽히며, 66m 높이의 거대한 탑(Vimana)과 정교한 석조 조각들이 장관을 이룬다. ‘촐라왕조의 대사원들(Great Living Chola Temples)’이란 이름으로 후기 촐라시대의 다른 사원들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남인도(South India), 5개 주() 1개의 특별자치구(프랑스령이었던 푸두체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가 진출해있는 타밀나두(Tamil Nadu)’와 인도 향신료특구 케랄라(Kerala)’를 다녀왔다.

 타밀나두(Tamil Nadu). 인도 남부의 대표적인 제조업 중심지로 자동차·전자·중공업 산업기반과 항만·물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타밀나두 주의 중심부(주도인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320Km 지점)에 위치한 탄자부르는 역사 깊은 고도(古都)로 과거 강력했던 중세 촐라제국의 수도였다. 당시 촐라제국은 인도 전역, 실론 일부, 몰디브, 래카다이브까지 지배했다.

 브리하디스와라 사원(Brihadisvara Temple)’의 동쪽 입구. ’Brihadisvara‘는 산스크리트어 브리하트(Brihat, 위대한)’ 이스와라(Isvara, 최고신)’의 합성어라고 한다. 주신인 우주의 위대한 지배자 시바 신에게 받쳐진 신전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사원 조감도. 가로 120m 세로가 240m의 부지에 15개의 건축물이 있다. 본전인 브리하디스와라 사원 말고도 6개의 부속 신전(shrine)이 더 있음을 알 수 있다.

 탑문을 통해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이 문은 마라타 게이트(Maratha Gate)’로 불린다. 17-19세기 이 지역을 통치하던 마라타 왕조가 기존 사원 외곽에 방어용 성벽을 쌓아 요새화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추가된 정문이다. 그건 그렇고 경비초소에 힌두 신상이 들어앉았다. 자리를 빼앗긴 경비원은 간이 의자, 그것도 뙤약볕 아래로 쫓겨나 있었다.

 튼튼하게 쌓아올린 성벽이 신()과 속()을 구분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었는지 성벽 아래로 해자(垓字)까지 둘러놓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성벽이 이중으로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문인 케랄란타칸 고푸람(Keralantakan Gopuram)’. 10세기 사원을 처음 건축한 촐라 왕조의 라자라자 1(Rajaraja I)’가 체라 왕조(케랄라 지역)와의 전쟁 승리를 기념해 세운 사원 정문이다. 참고로 케랄란타칸은 이 사원을 지은 라자라자 1의 별칭 중 하나라고 한다.

 케랄란타칸 고푸람 상부. 첫 번째 문과의 사이가 너무 좁아서 상하로 나누어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각양각색으로 묘사된 시바 상들이 현란하기 짝이 없다.

 케랄란타칸 고푸람 뒷면. ‘고푸람(Gopuram)’이란 힌두교 사원 건축에서 외부와 내부를 연결하는 커다란 출입문 또는 탑문을 말한다. 후기로 갈수록 본당 건물보다도 고푸람을 더 크게 지음으로써 사원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삼았다.

 케랄란타칸 고푸람 안내판. 코푸람 대신 티루바살(Tiruvasal)’이란 용어를 쓰고 있다. 타밀어로 신성한 문(Sacred Gate)’을 의미한다니,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을 얼마만큼 신성시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문인 라자라잔 고푸람(Rajarajan Gopuram)’은 그 자체만도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크기도 크기지만 문루에 새겨진 각종 문양들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거대한 돌에 각양각색으로 새겨놓은 시바 신의 춤추는 모습이다. 유연한 자세로 자유롭게 춤을 추는 시바 신의 모습은 어쩐지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준다.

 힌두사원에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한다. 라자라잔 고푸람 앞에 신발 보관소가 있는데, 혼잡해서인지 현지인들은 입구에다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던지고 갔다. 하지만 자칫 신발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가이드의 귀띔이 있었기에 신발장에다 넣어두기로 했다. 몇 푼의 보관료까지 물어가면서. ‘영혼의 자유를 지향하는 인도에서 신발 하나까지도 놓지 못하는 이방이라고나 할까?

 라자라잔 고푸람은 신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그래선지 3개의 문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왕의 이름에 걸맞는 자태라 하겠다. 아치형 입구 양옆에는 석조 경비병,  드바라팔라(Dvarapala)’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슴이 봉긋한 저 경비병이 드워팔리카(Dwarapalika, 여성 수문장)로 보이는 것은 나 혼자만의 오해일까?

 3개 층으로 나누어진 문루는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 주로 시바와 파르바티(Parvati)의 결혼, 마르칸데야(Markandeya)를 보호하는 시바, 아르주나(Arjuna)가 시바 신으로부터 파슈파티 아스트라(신성한 무기)를 받은 장면 등 시바의 생애를 묘사한 조각들이라고 한다.

 라자라잔 고푸람 뒷면.

 경내로 들어가면 화강암과 벽돌로 지은 브리하디스와라 사원(本殿)’이 반긴다. 드라비다 양식의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로 내부에 시바 신을 모시는 성소(聖所)가 있다. 드라비다 양식(Dravidian style)이란 7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인도 남부에서 크게 번성한 전통 힌두교 사원 건축양식을 말한다. 북인도의 나가라(Nagara) 양식이 부드러운 곡선형 탑을 강조하는 반면, 남인도의 드라비다 양식은 웅장한 피라미드형 탑과 정교한 원색 조각상이 빽빽하게 들어찬 화려한 구조를 자랑한다.

 본전인 브리하디스와라 사원과 예닐곱 개의 부속 신전을 회랑(回廊)이 둘러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회랑은 정교하게 조각된 수많은 석조 기둥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어 압도적인 공간감과 대칭미를 자랑한다. 가이드는 저 회랑 역시 드라비다 건축 양식의 걸작으로 꼽힌다고 했다.

 반대편 회랑. 회랑 내부를 따라 걷다보면 시바 링가(Shiva Linga)’ 무리와 나야카(Nayaka) 왕조 시대의 다채로운 벽화들을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얻지 못했던 필자는 이를 놓치고 말았다.

 브리하디스와라 사원(本殿)’의 앞에 난디 만다팜(Nandi Mandapam)’이 있었다. 시바 신의 탈것(Vahana)인 신성한 황소 난디(Nandi)’의 조각상을 모셔둔 전각이다. 주성소에 있는 시바의 상징인 링가(Lingham)’를 정면에서 바라보도록 브리하디스와라 사원의 정면에 배치해 놓았다.

 사원 본전은 11세기 촐라왕조 시대에 지어졌다. 하지만 난디를 감싸고 있는 이 화려한 만다팜 구조물은 16-17세기 나야카(Nayaka) 왕조 시대에 추가로 건설되었다고 한다. 천정에는 마라타왕조 시대의 화려한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난디상은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 바위를 깎아 만들었단다. 가로 약 6m, 높이 약 4m 크기이며 무게는 약 25톤에 달한다.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난디상이라고 한다.

 난디 상 앞에서는 힌두교 사두(sadhu)가 끊임없이 힌두 주문을 중얼거린다. 웃통을 벗은 채 음유시인이 노래하듯 암송하고 있다. 울타리 너머는 난디에게 공양물을 바치려는 신도들로 붐빈다. 저마다 가져온 공양물을 두 손으로 받들고 기도를 올리며 사두에게 건네준다. 사두는 건네받은 공양물 중 꽃은 난디 상에 뿌리고 다른 공양물은 난디상 주변에 걸어 놓거나 밑에 놓아둔다.

 난디 만다팜 안내판. ‘난디 상이 원래의 것이 아니라 나야카(Nayaka) 시대에 새로 만들어졌음을 알려준다.

 신도들은 이제 시바 신에게 경배하기 위해 비마나로 향한다. 비마나(vimana)란 힌두 사원의 가장 신성한 장소인 성소(Garbhagriha)’와 그 위에 솟아오른 높은 탑 구조를 의미한다. 높이 66미터에 달하는 비마나는 시바신이 거처를 하고 있다는 카일라스 산(Mt. Kailasa)을 유추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만다팜(mandapam)’으로 들어간다. 사원의 입구와 본전(성소) 사이에 위치한 기둥이 있는 커다란 홀(hall), 성소인 가르바그리하(Garbhagriha)’로 들어가기 전 신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준비하고, 종교 의식을 치르거나, 찬가와 전통 무용을 바치던 공공 집회 공간이다.

 입구 근처에서 칼라 바이라바(Kala Bhairava)’로 여겨지는 신상을 만날 수 있었다. 주신인 시바(Shiva)의 가장 강력하고 두려운 분노의 화신(아바타)으로 신자들은 시간의 파괴자이자 죽음을 정복한 자로 숭배한다. 산스크리트어 ‘Bhairava(무시무시한 자)’ ‘Kala(시간 또는 검은색)’의 합성어이다.

 락슈미(Lakshmi)’로 여겨지는 신상도 눈에 띈다. 부와 번영, 행운, 아름다움을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여신 중 한 명이다. 힌두교의 주신 중 하나인 비슈누의 배우자이며, 물질적인 풍요뿐만 아니라 영적인 성취와 번영까지도 상징한다.

 천정에 매달린 저 고리의 정체는 뭐지? 보초를 서고 있는 비둘기에게 물어봤지만 마이동풍이다.

 이젠 내부를 둘러볼 차례이다. 여러 개 홀과 복도(무카 만다파, 마하 만다파, 아르다 만두파)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비마나로 이어진다. 하지만 어두컴컴해서인지 특별한 볼거리를 만나지는 못했다. 아니 불덩어리처럼 뜨거운 마당을 걷는 고통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취해 놓쳤는지도 모르겠다.

 성소인 가르바그리하(Garbhagriha)에는 5미터 높이의 링감(lingam, 시바 신을 상징하는 남성 성기 모양의 기둥)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힌두교도들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눈요기조차 못했다. 참고로 가르바그리하(Garbhagriha)’란 힌두 사원의 중심에 있는 가장 신성한 탑 내부의 성소(지성소)를 뜻한다. 산스크리트어 가르바(Garbha, 자궁)’ 그리하(Griha, )’의 합성어이다. 신도들이 이 공간을 바라보거나 돌면서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남을 상징한다.

 그 아쉬움을 아르티 거울(Aarti Mirror)’로 달래본다. 성소(Garbhagriha) 내 신상 뒤나 주변에 배치하는 거울이니 시바 신의 링감을 상념으로라도 품고 있을 줄 누가 알겠는가. 참고로 아르티(Aarti)’는 힌두교의 가장 대표적인 예배(푸자) 형태로, 신에게 불()을 바치며 찬양하는 의식이다.

 아쉬움을 안고 성소를 빠져나온다. 남쪽 출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출구 양쪽에도 드바라팔라(Dvarapala)’가 배치되어 있었다. 힌두교 사원의 출입구를 지키는 수문장이다. 우리나라 사찰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강역사나’ ‘사천왕은 이 드바라팔라 문화가 동아시아로 건너와 토착화된 형태다. 하지만 무섭디무서운 금강역사와는 달리 드바라팔라는 애교스러운 표정으로 손님을 맞는다.

 높이가 66m에 이른다는 화강암으로 만든 비나마(본당)는 흡사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다. 촐라왕조(846-1270) 985년에 왕위를 계승한 라자라자 1 때부터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는 카웨리 강 부근의 작은 왕국에서 군대를 육성해 북쪽의 찰루키아와 체라, 그리고 남쪽의 판디아 왕조를 물리치고 스리랑카까지 정복해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브리하디스와라 사원도 이 시기에 축조됐다고 한다.

 비마나(本殿) 상부는 13층의 피라미드 형태로 각 층마다 조각 장식을 하였으며, 직선적인 윤곽으로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맨 꼭대기에 올려놓은 시카라(sikhara, 힌두사원의 첨탑)’는 무게가 81.3톤이나 된다고 했다. 실로 엄청난 무게다. 천 년도 전, 기중기나 운송장비가 없던 시절에 저렇게 무거운 돌을 저 높은 곳까지 어떻게 올렸을까? 가이드는 경사로를 가설해서 끌어올렸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인원과 물자가 동원되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생긴 석조사원은 전체가 아름다운 조각으로 새겨져 있어 뛰어난 조형미를 보여준다. 눈요깃거리만 놓고 본다면 단순한 바윗덩어리에 불과한 피라미드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나다.

 이젠 경내를 둘러볼 차례다. 동서 중심축을 따라 2개의 고푸람, 난디 사당, 2개의 만다파(예배당), 안타라라(전실), 비나마(본당)가 일직선상으로 늘어서 있다. 이들을 아름다운 회랑이 둘러싸고, 그 사이사이에 ‘Shrine’이나 ‘Mandapa’ 같은 부속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첫 만남은 가네샤 사당(Ganesha Shrine)’이다. 지혜와 번영의 신이자 시바와 파르바티의 아들인 가네샤(Ganesha)를 모시는 사당으로 18세기 말 마라타 왕조의 사라보예 왕(Serfoji II)’이 세웠다.

 안에 가네샤 신상을 모셨다는데 저 아저씨가 하도 오래 기도를 하는 탓에 사진을 찍는데 실패했다.

 카루부르 데바 사당(Karuvur Devar Shrine)’은 내부 사진만 올린다. ‘카루부르 데바는 남인도 힌두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영적 스승이자 시인, 연금술사였다. 타밀어 찬가인 티루비사이파(Tiruvisaippa)’를 지어 바친 아홉 명의 사제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수브라흐마냐 사당(Subrahmanyam Shrine). 전쟁의 신인 무루간(Murugan)을 모시는 사당으로 16-17세기 나야크 왕조(Nayak dynasty) 때 지어졌다. 참고로 수브라흐마냐는 시바 신의 둘째 아들이다.

 드라비다 건축과 조각 예술의 최고 정점으로 꼽힌다. 외벽과 기둥 전체가 미려한 석조 조각으로 뒤덮여 있다. 신화 속 무루간이 타고 다니는 공작새(바하나)와 무루간의 다양한 무기, 영웅적 모습을 외벽에 입체적으로 조각해 놓았다.

 수브라흐마냐 사당 입구. 사당으로 들어가는 만다팜(Mandapam) 기둥들에 물고기나 신화 속 동물들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는데 문이 닫혀있어 구경할 수는 없었다.

 나타라자 만다파(Nataraja Mandapa). 춤추는 시바 신인 나타라자를 모시기 위해 후대에 추가로 건립된 전용 예배당(hall)이다.

 찬디케스와라 사당(Chandikeshwara Shrine). 시바 신의 가장 충직한 수행자이자 박티(Bhakti) 운동의 성인인 찬디케스와라에게 헌정된 사당이다. 라자라자 1세가 안뜰에 세운 유일한 사당으로 촐라건축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준다.

 시바 사원을 방문한 신도들은 마지막에 찬디케스와라 사당을 찾아 예배를 마무리 한다. 본당(비마나)과 연결되었나 싶을 정도로 붙어있는 이유이다. 어린 찬데슈바라가 모래로 시바의 상징인 링감을 만들고 우유를 바치며 명상에 잠겨 있었는데, 화가 난 아버지가 이를 발로 차 부수자 격분하여 아버지의 다리를 잘랐다는 전설이 있다. 그의 절대적인 헌신에 감동한 시바 신이 현신하여 그를 축복하고 내 사원에 오는 모든 신도는 너를 거쳐 가야 한다며 사원 관리자의 지위를 주었기 때문이다. 신도들은 사원에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당 앞에서 손뼉을 치거나 옷자락을 터는 행위를 한단다.

 이쯤해서 투어를 마치기로 했다. 이밖에도 바라히(Varahi, 멧돼지 머리의 여신), 암만(Amman, 시바의 아내인 파르바티를 모신다) 등의 사당(shrine)과 두어 개의 예배당(Mandapa)을 더 둘러보았음은 물론이다.

 라자라잔 고푸람(Rajarajan Gopuram)’을 빠져나가면서 투어를 종료한다. ! 이왕에 왔으니 힌두교의 기초 상식 하나쯤 알고 가자. 힌두교에서는 브라흐마(창조), 비슈누(유지와 보존), 시바(파괴) 삼주신 중 시바가 가장 인기가 많다고 했다. 다른 종교는 창조신이 가장 강력하면서도 인기가 높은데, 힌두교는 파괴의 신이 더 인기가 높다는 것이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파괴란 창조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마치 대홍수 이후 세계가 재건되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