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 남인도(South India)–퐁디셰리(Pondicherry)-오로빌(Auroville)
여행일 : ‘26. 3. 23(월) - 3. 28(토)
세부 일정 : 첸나이→마하발리푸람→퐁디셰리→탄자부르→마두라이→코친
특징 : 퐁디셰리 인근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대안적 생태계획 공동체이다. 1968년 인도의 영적 스승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 1872-1950)‘의 철학을 바탕으로 프랑스 출신의 ’미라 알파사(Mirra Alfassa, 1878-1973)‘에 의해 설립되었다. 국적·정치·종교·인종을 초월하여 인류의 평화와 조화로운 상생을 실험하는 독특한 대안 사회이다.
▼ 남인도(South India), 5개 주(州)와 1개의 특별자치구(프랑스령이었던 ‘푸두체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가 진출해있는 ‘타밀나두(Tamil Nadu)’와 인도 향신료특구 ‘케랄라(Kerala)’를 다녀왔다.

▼ 첸나이 남쪽 120Km쯤에 위치한 연방 직할지 ‘퐁디셰리(Pondicherry)’는 푸두체리(Puducherry)의 행정 중심지로 17세기에서 18세기 프랑스령 인도의 수도였다. 이후로도 비군사적 식민지로 영국령 인도 속에서 프랑스령으로 남아있었다.(지도에서 ‘쿠달로르’의 바로 위, 움푹 파인 부분).

▼ ‘오로빌(Auroville)’에 도착했다. 퐁디셰리에서 10km가량 떨어진 코로만델 해안 인근에 위치한 오로빌은 ‘이상적인 인간의 삶’을 실현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이다.

▼ ‘전망대 가는 길’ 지도. 방문자센터(Information·Exhibition)를 거쳐 가도록 동선(動線)이 짜여있는 모양이다.

▼ ‘방문자센터’로 가는 길. 다양한 안내판들이 길손을 반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곁눈질이라도 해가면서 걸어보자.

▼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와 ‘마더(The Mother=Mirra Alfassa)’가 ‘스리 오로빈도 아쉬람(Sri Aurobindo Ashram)’에서 수행한 통합 요가 연구에서 시작되었단다.

▼ ‘오르빌’은 1988년에 입법화되었나 보다. 단순한 물질적 표현이나 집단적인 인간 현상을 넘어서는 법안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부여된다나? 인간 의식 범위를 넘어선 무언가. 미래를 향한 화살과 같은 아이디어를 다루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오로빌 헌장’, ‘인류통합 메시지’ 등 다양한 안내판이 줄줄이 나타난다.

▼ 숲속으로 길이 나있다. 하지만 설립 초기에는 풀 한 포기 없던 메마르고 척박한 황무지였다고 한다. 주민들이 직접 수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울창한 생태 숲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 앗! 자전거가 열매 노릇도 하나보다. 맞다. 오로빌에서 자전거는 단순한 여가 수단이 아닌, 지속 가능한 생태마을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적인 교통수단이라고 했다. 방문자센터에서 저렴한 가격(일일/주간)으로 대여할 수 있다.

▼ 5분쯤 숲길을 걷다보면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에 이른다. 오로빌(Auroville)을 여행할 때 가장 먼저 들러야 하는 곳이자 꼭 거쳐 가야 하는 곳이다. 오로빌의 철학과 역사를 배우고, 하이라이트인 마트리만디르(Matrimandir) 전망대 입장권을 받을 수 있는 공식 장소이다.

▼ ‘방문자 센터(Visitor Center)’ 지도.

▼ 센터에서 만난 인도 젊은이들.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것이 꽤 많은가 보다. 한국 방문이 꿈이라며 이것저것 많이도 물어본다. 하긴 이 젊은이들에게 한국 방문은 동경의 대상일 수도 있겠다. 문득 비자가 나오지 않아 ‘Export consultation meeting’에 참석할 수 없다며 하소연하던 인도 상인이 떠오른다. 2012년일 것이다. 그만큼 한국 비자는 발급받기 어렵기로 소문나있다.

▼ 안으로 들어가자 ‘오로빌 헌장(Auroville Charter)’이 눈이 들어온다. 종교·정치·국적을 초월, 온 인류가 평화와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국제공동체를 지향하는 오로빌의 4대 헌장 전문을 게시해 놓았다.

▼ 오로빌의 정신적 뿌리인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Sri Aurobindo)’와 설립자인 그의 영적 동반자 ‘마더(The Mother, 미라 알파사)’의 생애 및 사진, 그리고 오로빌의 설립 배경, 역사, 비전을 담은 각종 영상과 자료들을 살펴볼 수 있다.

▼ 오로빌에 대해 빠른 시간 안에, 또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니 짬을 내볼 일이다. 영어가 서투른 필자는 처삼촌 벌초하듯 곁눈질로 살펴볼 수밖에 없었지만.

▼ 누가 뭐래도 오로빌의 얼굴마담은 ‘마트리만디르(Matrimandir)’이다. 그래선지 미니어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었다. 막대한 자본을 들여 만든 황금빛 원형구조물, 기능은 명상센터이다. 구체를 중심으로 주변에 꽃잎(Petals)처럼 생긴 12개의 거대한 구조물이 감싸고 있는 모양새이다. 이들 꽃잎은 각각 성실·겸손·감사·용기 등 ‘우주적 어머니’의 12가지 덕목을 상징하는 독립된 명상실로 채워져 있단다.

▼ 오로빌의 중심이자 영혼으로 불리는 거대 황금빛 명상 돔 ‘마트리만디르’의 구조와 긴 건축 과정, 그 안에 담긴 영적 진화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설명해 준다.

▼ 실제 건축물은 높이 29m에 직경이 36m인 타원형에 가까운 구체이다. 외벽은 금박을 입힌 수천 개의 원형 디스크(접시)로 뒤덮여 있어 땅에서 솟아오르는 거대한 황금 태양 혹은 우주적 알(卵)을 연상시킨다.

▼ 내부는 외부의 소음과 단절된 완벽한 침묵의 공간이라고 한다. 순백의 대리석으로 마감된 원형 홀에 12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다.

▼ 창립자인 ‘마더’가 직접 썼다는 축복 메시지와 서명. 1971년 2월 21일 새벽, ‘마트리만디르’ 건설의 시작을 알리는 초석이 놓이던 역사적 순간을 담았다. ‘마트리만드리’가 오르빌의 신성함에 대한 열망이 살아있는 상징이 되도록 하자나?

▼ 자신의 의식을 찾아가는 ‘명상의 방’. 정중앙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크리스탈 유리 구체(지름 70cm)가 놓여 있다고 한다. 천장 중앙의 개구부를 통해 들어오는 단 하나의 자연 햇빛 줄기가 정확히 이 크리스탈 구체를 수직으로 내리쬐도록 설계되어 있어, 밤이나 흐린 날을 제외하면 이 빛줄기 하나만이 방 전체를 은은하게 밝히며 집중과 명상을 돕는 역할을 수행한단다.

▼ ‘마트리만디르’에 하나하나 붙여놓은 원반인 듯.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크다.

▼ 방문자센터 외관. 오로빌의 건물들은 하나하나가 예술품이라며 예찬하는 이도 있었다. 하나같이 독특하고 창조적이며, 또 자연을 그대로 살려냈다는 것이다. 오로빌 주민 중 가장 많은 숫자가 ‘건축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부연 설명도 있었다. 건축가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자신들의 꿈과 개성을 담아 마음껏 집을 지어 지금처럼 특색 있는 마을을 만들 수 있었다나?

▼ 방문자센터의 야외 광장에는 booth 몇 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Well Paper(버려지는 종이를 생활용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체험인 듯), Svaram(인도의 다양한 악기들을 이용한 사운드테라피를 경험할 수 있는 곳) 등 모든 방문이나 체험을 원할 경우 소정의 돈을 받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 Bird Park, Sound Journey, Svaram Sound Garden라고 예외이겠는가.

▼ 방문자센터 주변에는 여행자들이 쉬어가기 딱 좋은 카페가 들어서 있었다. 오로빌 주민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친환경 제품, 수공예품, 서적 등을 판매하는 상점도 눈에 띈다. 수익금은 오로빌 기금으로 쓰인다고 했다. 공동체적 성격이 강해서 다들 오로빌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고 있다나? 참! 1년 이상 봉사활동을 해야 오로빌 거주 자격이 주어진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 카페가 있어선지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도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다. ‘인도’이지만 전혀 ‘인도’답지 않은 풍경이다.

▼ 오로빌이 물질과 정신을 잇는 ‘다리’라는 얘기일 것이다. 다양한 문화의 구도자들이 만나 내면의 진실과 외면의 노력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추구하는 곳이란다. 그런 삶에 동참하라는 홍보문구이겠지만 편하디 편한 속세에 익숙해진 필자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일 따름이다.

▼ 독창적인 정수 시스템으로 만들어낸 ‘생명의 물(Living Water)’이라고 했다. 활성탄, 침전물 필터, 역삼투압(RO) 등을 활용해 박테리아, 바이러스, 중금속 등의 오염원을 완벽히 제거한단다. 단순한 화학적·물리적 정수를 넘어 정수과정에서 손실된 물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바이오 다이나미제이션(Bio-dynamisation)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나?

▼ 오로빌 관련 비디오를 시청한 뒤, 통행증(‘마트리만디르 전망대’까지 갈 수 있는)을 발급받아 길을 나선다. 전망대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15분 정도 걸린다. 오늘처럼 무더운 날에는 무료로 운행되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 우리는 걷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나라도 더 눈에 담아보고 싶은 욕심에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데 이까짓 더위쯤 못 참겠는가. 하나 더. 무더위에 지쳐 돌아올 때는 셔틀 버스를 이용했다.

▼ ‘반얀트리(Banyan Tree)’가 눈길을 끈다. 가지가 다시 뿌리를 내려 성장하는 반얀트리는 멀리서 보면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작은 숲 같다. 반얀나무는 남인도의 시간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인도인들은 ‘살아있는 사당’으로 여기기도 해서, 신앙과 일상의 쉼터를 이어주는 공간이 되어준단다. 신목이면서도 동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우리나라의 ‘당산나무’쯤으로 여기면 되겠다.

▼ 흙길을 걷는다. 오로빌 마을의 길은 아스팔트가 아닌 흙으로 되어 있어 맨 발로 걷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인도는 인도답게 덥다. 고로 목이 탄다. 생수 한 병쯤 들고 나오지 않은 무지를 후회하며 걸었다.

▼ 나무뿌리 조형물. ‘쉿!’. 명상의 요람에 다가가고 있느니 조용히 해달라는 메시지일 수도 있겠다.

▼ ‘마티르만디르 전망대(Matrimandir View Point)’에 도착했다. 황금빛 돔 형태의 명상센터를 0.5km쯤 떨어진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이다. 마트리만디르의 외관만 볼 수 있는 점은 흠. 황금 돔 내부에 들어가 명상이라도 하려면 최소 3-4일 전에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한단다. 명상 수련이야 그렇다 쳐도 내부 사진 몇 장쯤은 찍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마트리 만디르(Matrimandir)’는 오로빌 정중앙에 위치한 황금빛 구체 모양의 대형 명상센터이다. 스리 오로빈도의 영적 파트너이자 공동체에서 ‘어머니(The Mother)’로 추앙받는 ‘미라 알파사(Mirra Alfassa)’의 비전을 바탕으로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건축가 ‘앙리 로제(Roger Anger)’가 설계했다. 특정 종교나 신을 숭배하는 사원이 아닌 인류의 통합과 내면의 평화를 위한 침묵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 지름 36m에 높이가 29m인 거대한 타원형 구체이다. 외벽이 수많은 황금빛 원반 디스크로 뒤덮여 있어 오늘처럼 맑은 날에는 햇빛을 반사시키며 눈부시게 빛난다. 조명을 배제시킨 돔 내부는 온통 하얀 대리석으로 꾸며진 원형 명상실이 공중에 떠 있는 형태로 설계되어 있단다.

▼ 2021년 기준 53개국 출신 3,300여 명이 ‘오로빌’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35명 안팎의 한국인도 머물고 있단다. 그 한국인에 포함되지는 못하지만 분위기만은 집사람에게 전이가 되었나보다. 동심으로 돌아가 황금 구슬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느라 정신이 없다.

▼ 아까 방문자센터에서 눈여겨보던 창립자인 ‘마더’가 직접 썼다는 축복 메시지가 이곳에도 있었다. ‘마티르 만디르’가 오로빌의 신성을 향한 열망의 살아있는 상징이 되도록 하십시오.

▼ 이밖에도 꽤 많은 안내판들이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무더위 탓에 일일이 읽어보는 것은 사양하기로 했다. 이곳으로 오면서 읽거나 들었던 오로빌에 대한 기억의 조각들을 옮겨본다. ‘오로빌’은 국적, 인종, 종교, 계급에 관계없이 모두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이상향이다. 모두에게 필요한 물자를 무료로 배급하고 교육의 기회도 무료로 부여한다. 학력이나 자격증이 없어도 누구나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다.

▼ 58년 전인 1968년 2월 28일 ‘오로빌’의 착공식이 열렸다. 124개국에서 2명씩 참석했고 이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가져온 흙을 묻었다. 이에 앞서 유네스코는 1966년 오로빌의 탄생을 지지하는 총회 결의문을 채택했다. 오로빌이 문화 종교 인종의 차이를 극복하고 인류의 단합을 추구하는 유엔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해서다.

▼ 오로빌 마을은 뭐든지 자연으로 돌아가 있다고 했다. 현대인들은 ‘웰빙’스럽게 살아가겠다며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바꾸어간다. 하지만 이곳 오로빌 마을은 그 자체가 천연의 ‘웰빙 마을’이란다.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고, 자연으로 되돌리고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전기는 태양이나 바람에서 얻고, 먹을 것과 물은 땅에서 얻으며, 맑은 공기와 새소리는 나무와 숲에서, 물건들은 기계가 아닌 사람들의 손에서 직접 만들고 쓰이고 있단다.

▼ ‘마티르 만디르’는 1971년 주춧돌을 놓은 것을 시작으로 약 37년의 공사를 거쳐 2008년에 최종 완공되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마트리만디르를 둘러싸고 있는 호수(해자)를 새롭게 단장시키려는 듯 토목공사로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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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6코스(광나루역 – 고덕역)
일 시 : ‘26. 8. 15(토)
소재지 : 서울시 광진구 및 강동구 일원
코 스 : 광나루역→광진교→한강공원(광나루)→암사동유적→암사정수장→고덕산→샘터근린공원→명일공원입구→고덕역(거리/시간 : 9.3km+0.2km, 실제는 11.24km를 3시간 40분에)
특징 : 서울 외곽을 따라 조성된 21개 코스, 156.5km 규모의 순환형 트레일이다. 도봉산·수락산·불암산·망우산·아차산·고덕산·일자산·대모산·우면산·관악산·호암산·안양천·노을공원·봉산·북한산 등 서울을 둘러싼 자연과 도시가 하나의 길로 연결되어 있다.
▼ 08 : 10. 들머리는 광나루역(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2번 출구가 ’서울둘레길‘ 6코스(고덕산길)의 시작지점(始點)이다. 참! 비 소식이 있어서 급경사 산길이 많은 2-5코스를 건너뛰고 6코스를 먼저 걷기로 했다. 비가 내릴 경우 급경사 산길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는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 광나루역에서 고덕역까지 강동구의 산하(山河), 즉 한강 고수부지(광나루 수변공원)와 고덕산 산길을 걷는 편안한 코스이다. 거기에 시간을 조금 내면 암사동 선사시대 유적까지 함께 둘러볼 수 있다.

▼ 08 : 10. ‘아차산로’를 건너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이어서 ‘아차산로’를 왼쪽에 끼고 구리(워커힐) 쪽으로 간다.

▼ 광나루정원. 회색 펜스에 갇혀있던 유휴 부지가 푸름 가득한 주민 여가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왕벚나무 등 20여 종의 교목과 수국과 장미 등의 관목을 심어 계절마다 변화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단다. 부지 안에 ‘청소년센터’ 같은 광진구의 공공시설들이 들어서 있었다.

▼ 첫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황포돛배 조형물 가벽이 길손을 인도해준다.

▼ 광진교로 가는 길목에는 ‘너븐나루 정원’을 조성해 놓았다. ’너븐나루’는 강폭이 넓다는 ‘광나루’의 순 우리말이다. 나루터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오브제를 설치하고, 타일 벽면에는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에 수록된 ‘광진(廣津)’과 혜촌 김학수의 ‘광나루의 옛 전경’을 담아놓았다. 아차산과 한강의 수려한 옛 풍경을 떠올려보라는 모양이다.

▼ 08 : 21. 광진교 북단. 1936년에 개통된 ‘광진교’는 한강대교와 함께 한강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꼽힌다. 교통량 증가와 구조물의 노후 등으로 1994년 철거되었다가 2003년 총연장 1,056m의 새로운 다리를 놓았다.

▼ 코스가 변경됨을 알리는 시설물들은 광진교 북단에 세워놓았다. 오늘 걷게 될 6코스는 9.3km, 위에서도 얘기했듯이 6코스의 시작지점은 ‘광나루역’이다. 사람들로 붐비는 지하철 출구를 피하다보니 500m나 떨어져있는 이곳까지 옮겨왔나 보다.

▼ ‘광진교’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도 눈에 띈다. 한강에 놓인 다리 중 두 번째로 오래된 ‘광진교’는 광진구 광장동과 강동구 천호동을 잇는다. 참고로 ‘광나루’는 예부터 충주를 거쳐 동래로 또는 원주를 거쳐 동해안으로 빠지는 요충지였다. 1920년대에는 화물차나 버스를 발동기선에 실어 도강했다. 하지만 1930년을 전후 해 교통량이 격증하면서 체증이 심해졌고, 홍수라도 날라치면 교통이 두절되어 그 불편함을 헤아릴 수 없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놓인 다리가 ‘광진교’이다. 하나 더.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폭파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 서쪽 난간을 따라 난 ‘보행로’를 따라간다. 2009년 4차로 중 2차로를 축소하고, 3m이던 보행로 폭을 10m로 확대하면서 길가에 녹지 공간을 조성했다. 덕분에 나그네들은 숫제 숲속을 거니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다리를 건널 수 있다.

▼ 중간 중간에는 발코니형의 전망대도 만들어놓았다. 한강을 건넌다는 본연의 기능을 넘어, 휴식을 취하면서 탁 트인 한강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 발아래로 흘러가는 한강은 물론이고 롯데타워 등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저 어디쯤에 지는 해라도 올려놓을라치면 화려한 풍경화로 변할 게 틀림없다.

▼ 그래선지 ‘서울 밤풍경’이 잘 조망되는 곳이라는 안내판까지 세워놓았다. 참고로 광진교는 차량 중심의 다른 한강 다리들과는 달리 ’걷고 싶은 다리‘라는 콘셉트로 조성됐다. 시멘트덩어리인 ‘상판’을 숲으로 바꾼 것이다. 거기다 너덧 개의 전망대까지 배치해 ‘다리는 삭막하다’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렸다.

▼ 그 화룡점정(畵龍點睛)은 ‘광진교 8번가’가 아닐까 싶다. UFO가 한강위에 떠 있는 듯한 형상의 특별한 View 명소로, 바닥에 강화유리가 깔려있어 360도 파노라마 한강 View 말고도 한강 위를 걷는 듯한 짜릿함까지 선사한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주요장면에도 등장했다는데 건너편(신호등 있는 횡단보도가 있었지만)에 입구가 있어 들러보지는 않았다. 참고로 ‘광진교 8번가’는 다리 아래에 매달아놓은 전망대이다. 일본 도쿄의 레인보우 브리지와 프랑스 파리의 비라켕 다리, 그리고 이곳 광진교에만 있는 세계에서 단 3개뿐인 이색적인 전망대라고 한다.

▼ 남단에 가까워지자 또 다시 녹지공간이 나타났다. 한강 다리 중 유일하게 교량 위에 대규모로 조성된 보행자 중심의 초록빛 휴식 공간이다.

▼ 발코니형의 전망대도 만들어놓았음은 물론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방해 없이 편안하게 앉아 롯데타워와 천호대교 등 탁 트인 한강 View를 감상할 수 있다.

▼ 08 : 37. 남단(올림픽도로 상부) 직전, 한강공원(광나루)으로 내려간다. 초입의 이정표(종점까지 7.8km)가 방향을 알려준다.

▼ 08 : 40. 한강공원으로 내려선 다음 보행로를 따라 북진한다. 둔치에 자전거도로와 보행로가 어깨를 맞대고 나있다.

▼ ‘영탁1호 숲’이란다. 가수 영탁의 데뷔 16주년(2021년 10월 16일)을 맞아 팬클럽 ‘오구와탁’과 팬덤 ‘내사람들’이 서울환경연합과 함께 조성한 스타 숲이다.

▼ 이번에는 ‘자전거 공원’이다. 국내 최초의 자전거 테마공원으로 자전거 레이싱 경기장, 이색자전거 체험장 등 자전거 관련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자전거를 빌려 공원 내 이색 트랙이나 한강변 도로에서 라이딩을 즐길 수도 있다. 약간의 대여료를 내야하지만.

▼ 줄지어 늘어선 아치형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구조물을 타고 올라가고 있는 넝쿨장미가 꽃이라도 피울라치면 또 하나의 멋진 볼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 연이어 나타나는 자전거공원과 장미공원의 뒤는 ‘드론공원’이 받치고 있었다. 별도의 비행 승인 없이 12kg 이하의 취미용 드론을 날릴 수 있는 드론 전용의 공간이다.

▼ 보행로는 걷는 사람보다 뛰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맞다. 한강공원은 서울에서 가장 인기 있는 러닝 명소로 알려진다. 탁 트인 시야와 잘 정비된 평탄한 코스 덕분에 초보자부터 숙련자까지 모든 Runner들에게 인기가 높다.

▼ 오른쪽에는 물놀이장이 들어섰다. 최대 수심이 1m라니 어린이들이 마음 놓고 물놀이를 즐길 수 있겠다.

▼ ‘광나루 한강공원길’은 꽤 오래 이어지고 있었다. 오른쪽은 체육시설 단지인 듯. 테니스·축구·농구·족구 경기장이 연이어 나타나고, 반면에 지대가 낮은 왼쪽에는 울창한 숲이 들어섰다.

▼ 미루나무 산책로(가로수길)는 한강의 도시적인 풍경과 자연 친화적인 정취가 어우러진 숨은 명소로 알려진다. 줄지어 곧게 뻗은 가로수가 대칭을 이루고 있어 인생 샷을 노리는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높은 미루나무 사이로 노을빛이 스며들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해준다니 일몰 시간에 맞춰 찾아가보면 어떨까?

▼ 암사동 일대의 하천 습지가 생태·경관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 난생 처음 ‘피클볼(Pickleball)’이라는 운동도 곁눈질할 수 있었다. 테니스와 배드민턴, 탁구의 요소를 결합한 혁신적인 라켓 스포츠라고 한다.

▼ 09 : 07. 한강공원을 벗어나 ‘암사나들목’으로 빠져나간다. 초입에 이정표(종점까지 6.1km)가 세워져 있다.

▼ 부근 둔치에는 ‘암사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강가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대신 흙과 자갈을 깔아 자연형 강기슭으로 탈바꿈시켰단다.

▼ 한강의 강둑으로는 ‘올림픽대로’가 지나간다. 그 아래에 암거(暗渠)를 뚫어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건 그렇고 문설주에 그어놓은 저 수위 측정 눈금의 용도는 무엇일까?

▼ 굴다리를 빠져나오면 ‘선사로’,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선사로’를 따라 ‘토끼굴입구’까지 간다. 여기서 ‘토끼굴’은 올림픽대로 아래로 난 통로를 말한다. 지금이야 차량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넓어졌지만 옛날에는 높이가 낮고 폭도 좁았다고 한다. 그 통로를 웅크리고 지나가는 모습이 마치 토끼가 굴을 파고 드나드는 것 같다고 하여 시민들이 친숙하게 ‘토끼굴’이라고 불렀다.

▼ 09 : 13. ‘토끼굴입구 교차로’에서 오른쪽(고덕로)으로 간다. 길가 유휴부지는 ‘도시 텃밭’으로 꾸며져 있었다. 구민들이 도심 속에서 농업을 체험하고 싱싱한 먹거리를 직접 기를 수 있도록 매년 분양되는 공공 주말농장이다.

▼ 텃밭은 친환경을 고집한다고 했다. 화학비료, 합성농약, 비닐을 사용하지 않는 ‘3무(無) 농법’으로 운영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이용이 금지된단다.

▼ 09 : 20. ‘선사사거리’에서는 왼쪽(올림픽로)으로 간다. ‘암사동유적’ 방향이다.

▼ 이후부터는 ‘올림픽로’를 따라간다. 삼성교에서 서원마을회관까지 이어지는 도로인데 올림픽 주경기장 앞을 지나간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 ‘올림픽로’는 ‘선사로 가는 길’로도 불리는 모양이다. 길가 선사초등학교 담벼락에 안내도를 세워놓았다.

▼ 선사초등학교는 담벼락을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나 보다. 암사동의 역사갤러리를 비롯해 암사동의 역사, 명소 등 다양한 안내판을 걸어놓았다.

▼ ‘암사동유적’이 가까워지면서 도로변이 예술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도로변 벽면을 통째로 김은선 작가의 작품을 채워 넣었다. 추상적인 이미지로 유명한 화가이다.

▼ 방치되어 오던 유휴공간은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한 개방형 쉼터로 탈바꿈시켰다. 산책이나 라이딩을 하다가 잠시 쉬어가기 딱 좋은 장소이다.

▼ 09 : 35 – 09 : 58. 암사동 유적(사적 제267호). 한강유역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6000년 전) 유적지인데 마당에 움집 모양의 조형물을 세워놓았다. 암사동유적의 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원하는 ‘소망움집’이란다.

▼ 박물관을 중심으로 복원된 ‘움집’과 백제 주거지 터, 그리고 발굴이나 수렵 같은 각종 체험장이 들어서 있다. 참! 암사동유적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적 중 마을단위로는 최대라고 했다. 당시 생활모습을 살필 수 있는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 신석기인의 문화를 추측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단다.

▼ 안으로 들어가자 울창한 송림이 길손을 맞는다. 설마 신석기시대에 심기야 했겠는가마는 어른 허리통만큼이나 굵직굵직한 소나무들이 유적지의 ‘유구(悠久)한 역사’를 말해주는 듯 했다.

▼ 신석기시대 선인들이 살던 움집(억새로 지붕을 올렸다)이 재현되어 있다. 움집은 하나 둘이 아니고 숫제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서울에 생긴 가장 오래된 마을이자 한반도 젖줄인 한강 유역에 형성된 가장 큰 신석기시대 마을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 선사유적박물관.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대표 빗살무늬토기 문양의 다양함과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국내·외의 다양한 토기도 전시하고 있다.

▼ 기후변화, 한강의 생태환경, 신석기마을, 기술·도구, 토기문화 등 동선(動線)을 따라가며 다양한 전시물들을 만날 수 있다.

▼ 한강유역에 정착하여 생활한 신석기 인들의 모습과 신석기시대 한강 고유의 동식물,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사용하였던 다양한 도구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실제 움집터를 관람할 수 있도록 보존처리 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 8년쯤 전 튀르키예에 들렀을 때 ‘트로이’의 유적이 9개 층으로 나뉘어 있는 걸 보고 그 유구한 역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한 시대 도시유적 위에 다음 시대 도시유적이 잇달아 쌓여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곳 암사동유적도 9개까지는 아니지만 6개나 되는 문화층이 확인되었단다. 맨 아래는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된 신석기문화층, 그 위로 민토기·돌도끼·청동화살촉이 발견된 청동기문화층, 백제토기와 건물자리가 나타난 삼국시대문화층이 연이어 나타나더라나?

▼ 수렵 사진을 게시했지만 암사동유적은 한강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어로와 채집 생활을 했다. 어로 활동을 하는 밀랍 인형도 만들어놓았음은 물론이다.

▼ 책에서나 보아오던 ‘빗살무늬 토기’를 실컷 구경할 수 있었다. 3열 빗금, 5열 빗금, 손톱으로 눌러 새긴 듯한 반원, 끝이 둥근 무언가로 찍어 누른 듯한 작은 점들, ‘V’자를 여러 개 겹친 듯한 문양 등등. 하나 더. 한반도는 빗살무늬토기 문화의 ‘원조’로 꼽히기도 한다. 암사동 유적지를 포함한 한반도 중서부에서 빗살무늬토기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완성도가 높은 문양의 토기가 나왔단다.

▼ 09 : 58. 선사유적박물관 투어를 마치고 다시 길을 이어간다. 탐방로는 계속해서 ‘올림픽로’를 따라간다.

▼ 10 : 05. ‘서원마을회관’이 있는 ‘회전교차로(이정표 : 종점까지 4.4km)’에서는 2시 방향이다.

▼ 10 : 07. 150m쯤 더 걷다가 양재대로 진입로 아래로 난 굴다리로 들어간다. 이정표(종점까지 4.2km)가 방향을 알려준다.

▼ 양재대로 아래를 지났다싶으면 또 다시 굴다리. 양재대로 진입로 아래로 뚫렸는데, 이번에는 둘이나 된다.

▼ 10 : 15. 올림픽대로(이정표 : 종점까지 3.7km)로 올라섰다. 그렇다고 대로를 따라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탐방로는 곧장 산속으로 파고든다.

▼ 산길은 제법 가팔랐다. 하지만 오르막 구간이 짧기 때문에 산책삼아 시나브로 올라가면 된다.

▼ 오두막처럼 지어놓은 ‘트리전망대’. 큰 나무를 베지 않고 그대로 살려 중앙에 둔 채 데크 구조물을 설치하여,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트리하우스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 전망대에 오르자 올림픽대로와 한강, 그리고 구리암사대교와 구리시 일대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고덕산 구간에서 가장 빼어난 조망 명소 중 하나이다.

▼ 10 : 22. 반대방향으로 내려가 ‘올림픽대로’와 마주한다. 탐방로는 90도로 방향을 틀어 ‘암사아리수정수센터’로 간다. 이정표(종점까지 3.4km)가 방향을 알려준다.

▼ 10 : 25. 암사정수장 정문 앞에서 산속으로 파고든다. 이정표(종점까지 3.3km)와 함께 서울둘레길 안내판을 세워놓았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 서울둘레길은 이제 ‘강동 고덕산길(암사정수장↔명일공원 입구)’을 따라간다. 서울시 테마산책길인 ‘고덕산길’에 더부살이하는 모양이다.

▼ 산길은 이번에도 상당히 가팔랐다. 하지만 능선까지의 거리가 200m에 불과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었다.

▼ 10 : 31 – 10 : 57. 능선(이정표 : 종점까지 3.0km)에 올라선다. 벤치 두어 개가 놓여있는 안부는 쉼터로 딱 좋았다. 덕분에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푹 쉬어갈 수 있었다.

▼ 이정표가 10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고덕산’ 정상이 있으니 잠시 다녀오란다.

▼ 고덕산(高德山, 86.3m) 정상은 데크 전망대로 꾸며져 있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가하면 지적 삼각점(서울 240)도 눈에 띈다.

▼ 조망은 뛰어난 편이다. 발아래로 흘러가는 한강은 물론이고 그 너머의 구리시가지까지 탁 트인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서울과 경기를 잇는 고덕·토평대교와 강동대교는 덤이다.

▼ 시민들을 위한 배려도 돋보인다. ‘조망도’를 설치해 실물과 대비해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 2006년 서울시에서 선정한 ‘우수 조망명소’로 뽑히기도 했단다.

▼ 10 : 57. 점심 대용인 막걸리 한 병을 다 비우고 난 뒤에야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 잠시 후, 삼각점이 설치된 작은 봉우리 위로 올라섰다. 고덕산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고덕산’ 정상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곳이다. 고려 말 절의충신 이양중 공이 조선 개국 후 관직을 거부하고 이 산자락에 은둔해 절개를 지켰던 모양이다. 그의 높은 인격과 덕성을 기려 후인들이 ‘高德’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가끔은 가파른 구간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고덕산 자체가 해발 100m 미만의 완만한 구릉지라서 대부분 구간은 오르내림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완만하다. 가벼운 산책이나 트레킹 코스로 딱 좋겠다.

▼ ‘강동 그린웨이’는 강동구의 여러 근린공원과 숲길을 하나로 이어놓았다고 했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과 자연 황토길이 매력이란다.

▼ 11 : 11. 가파르게 떨어지던 산길이 ‘아리수로61길(이정표 : 종점까지 2.4km)’로 내려선다.

▼ 이즈음 ‘고덕동 고인돌’을 만날 수 있었다. 청동기시대(기원전 10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개석식(무지석식) 고인돌이다. 받침돌이 없고 큰 덮개돌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 탐방로는 길(아리수로61길)을 가로질러 맞은편 산자락으로 파고든다. 초입에 서울둘레길(6코스) 안내도를 세워놓았다.

▼ 잠시 후,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는다. 그 꼭대기에 쉼터를 만들어놓았다. 신효섭 시인의 시 ‘언젠가’가 적힌 시판도 눈에 띈다.

▼ 계속해서 능선을 타고가도 되겠건만 탐방로는 급전직하로 떨어지고 있었다.

▼ 11 : 17. 그곳에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인 산운(汕耘) 장도빈(張道斌, 1888-1963) 선생의 묘비를 만났다. 고덕산 가족묘지에 모셔졌다가 2000년에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었는데 그의 역사적 발자취를 기억하기 위해 묘비는 남겨두었나 보다. 선생은 신민회 활동, 대한매일신보 주필, 단국대학교 설립 등 굵직한 항일·교육 업적을 남긴 영웅이다.

▼ 묘비 부근(이정표 : 종점까지 2.1km)에서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이번에는 무장애 데크길을 따라간다.

▼ 이후부터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이어진다. 그러다 ‘아리수로’를 향한 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 11 : 27. ‘아리수로’로 내려선다. 한강의 옛 이름이자 서울시 수돗물 브랜드인 ‘아리수’에서 이름을 따왔다. 실제로 도로 중간에 ‘암사아리수정수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 11 : 32. ‘아리수로(강일교 방향)’를 따라가다 ‘샘터근린공원교차로’에서 대각선으로 가로지른다.

▼ 주민 편의시설인 샘터배드민턴장. 옆에는 족구장도 있었다.

▼ 11 : 37. 탐방로는 배드민턴장 앞(이정표 : 종점까지 1.3km)에서 산속으로 파고든다. 샘터근린공원으로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다.

▼ 잠시 후, 또 하나의 ‘트리하우스’를 만났다. 정글 영화나 동화책에 나올 법한 독특한 나무 위의 집이다.

▼ 탐방로는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나지막한 동산 형태로 공원이 이루어져 있어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 코스로 딱 좋다.

▼ ‘샘터근린공원’은 2010년 9월,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곤파스로 인해 재탄생했단다. 샘터공원 내 아까시나무 등 약 1,600그루가 쓰러지는 큰 피해를 입었는데,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강동 아름숲’을 새로 조성했다나?

▼ 11 : 47. 방죽근린공원과 샘터근린공원을 잇는 ‘생태육교’를 건넌다. 도로(동남로82길)를 내면서 끊겼던 능선을 다시 이어놓았다고 보면 되겠다. 그게 동물에게는 안전한 이동통로가 되고 공원 이용자들에게는 친환경 보행환경을 제공해 준다.

▼ 이후로도 산길은 한참이나 더 계속된다. 고층 아파트와 도심 빌딩 숲 사이에 이런 울창한 녹지 공간이 숨어 있는 강동구는 축복받은 땅이다. 서울둘레길을 걷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 방죽근린공원에는 턱이 없는 무장애 데크길이 놓여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울둘레길은 흙길을 고집하며 간다.

▼ 11 : 57. 방죽근린공원을 벗어나 주택가(이정표 : 종점까지 300m)로 내려선다.

▼ 방죽근린공원은 백제 개로왕이 쌓은 ‘방죽(둑)’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물이 밀려드는 것을 막기 위해 현재의 풍납동 일대까지 길게 방죽을 쌓았는데, 이 거대한 방죽이 지나가던 나지막한 구릉지대의 마을을 ‘방죽말’이라 불렀던 모양이다.

▼ 공원 입구에는 소규모 Sports Complex가 들어서 있었다.

▼ 이후부터는 ‘고덕로(광나루한강공원 토끼굴 입구↔강일동 강일리버파크 10단지)’를 따라간다.

▼ 12 : 06. ‘명일공원’ 입구에 이르면서 트레킹이 종료된다. 코스가 변경됨을 알리는 시설물들이 이곳에 있다.

▼ 완주 인증은 스탬프북에 21개 코스에 있는 스탬프 28개를 모두 찍거나 QR코드를 통해 모바일로 진행하면 된다.

▼ 지하철 5호선 ‘고덕역’까지는 조금 더 걸어야만 했다. 명일공원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넌 다음 고덕로를 따라가면 된다.

▼ 12 : 13. 고덕역 4번 출입구. 명일공원에서 240m쯤 떨어져 있다. 오늘은 11.24km를 3시간 40분에 걸었다. 암사동 선사유적 등을 둘러보느라 2km쯤 더 걸었나 보다.

| 속세를 떠나지 않은 옛사람의 길, 도심 품은 숲길을 걷다. 서울둘레길 1코스(도봉산역-불암산역) (0) | 2026.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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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 남인도(South India)–마하발리푸람(Mahabalipuram)-아르주나의 고행(Arjuna’s Penance)
여행일 : ‘26. 3. 23(월) - 3. 28(토)
세부 일정 : 첸나이→마하발리푸람→퐁디세리→탄자부르→마두라이→코친
특징 : 높이 15m에 길이가 27m나 되는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조각 작품.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harata)‘의 내용을 새긴 것으로 그 정교함과 예술성이 뛰어나다. ’아르주나의 고행‘이란 힌두교 영웅 아르주나가 신에게 강력한 무기를 얻기 위해 한 혹독한 수련을 말한다.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Group of Monuments at Mahabalipuram)’에 포함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 남인도(South India), 5개 주(州)와 1개의 특별자치구(프랑스령이었던 ‘푸두체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현대차가 진출해있는 ‘타밀나두(Tamil Nadu)’와 인도 향신료특구 ‘케랄라(Kerala)’를 다녀왔다.

▼ 타밀나두(Tamil Nadu). 인도 남부의 대표적인 제조업 중심지로 자동차와 전자, 중공업 산업기반과 항만·물류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마하발리푸람(Mahabalipuram)’은 주도(州都)인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60km쯤 떨어진 벵골만 연안의 작은 항구도시다. 팔라바왕조의 중심지 중 하나였으며 무역과 해상활동이 활발했었다. 이로 이해 불교와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다양한 건축물들이 세워져있다.(지도에서 칸치푸람의 오른쪽 바닷가).

▼ ‘마하발리푸람’ 유적지 지도(인터넷에서 얻어왔다)
1. 마말라 헤리티지 호텔 2. 아르주나의 고행 3.크리슈나 만다람 동굴 4. 아룰미구 스리 스탈라 사야나 페루말 템플 5. 마하발리푸람 버스 정거장 6. 바라하 동굴 7. 가네샤 라타 사원 8. 크리슈나의 버터볼 9. 이스와라 사원, 불꽃의 눈, 제3의 눈 사원 10. 판차 라타스 11. 해안 사원

▼ 세 번째 만남은 ‘아르주나의 고행’이다. 거대한 암벽에 힌두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장면과 갠지스 강의 하강 신화를 묘사했는데, 단일 부조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신과 인간, 동물 등 1,150개가 넘는 조각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어 인도 석조 예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Group of Monuments at Mahabalipuram)’ 안내도. 판차 라타스(Pancha Rathas), 아르쥬나 고행(Arjuna's Penance), 해안 사원(Shore Temple), 바하라(Varaha)나 크리슈나(Krishna) 같은 동굴사원(Cave Temples) 등을 포함한다.

▼ 안내판. 힌두교의 위대한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키라타르주나(Kiratarjuna)’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단다. ‘아르주나’와 그의 형제들은 쿠루왕국을 둘러싼 ‘쿠루크셰트라 전쟁’을 맞이하게 된다. 사촌이자 적인 ‘카우라바’ 형제들이 너무 강해서 ‘아르주나’는 신의 무기를 구해 그들에게 대적하려 했다. 그리고 시바 신을 만족시키는 엄격한 고행을 거쳐 ‘파슈파타 아스트라’라는 강력한 신의 무기를 받는다. 하지만 위력이 너무 커서 실제 전투에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나?

▼ 바위산 전체가 부조로 덮여있다. 정교한 조각 솜씨도 솜씨지만 그 거대함에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높이 15m, 폭 27m의 바위를 깎아 인도의 신화를 새겨 넣었다고 한다. 시바 신에게 물을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 소원을 성취하고자 고행하는 사람의 모습 등이 자연스럽게 조각돼 있다.

▼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원숭이 상’이다. 이밖에도 많은 원숭이 상이 아르주나의 고행 장면과 함께 조각되어 있었다. 조각 속 원숭이들은 성자의 모습을 따라 하거나 평화롭게 이를 잡아주는 등 해학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상을 표현하고 있다.

▼ 가운데 움푹 파인 부분은 ‘갠지스 강’을, 양쪽 바위는 갠지스 강의 언덕을 상징한단다. 또한 상반부는 신들의 천상계를 하반부는 인간과 동물의 세계인 지상을 의미하는데 수많은 신·사람·동물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을 새겼다. 남인도에는 유독 조각 예술작품이 많이 남아있는데 그 근원을 이곳 ‘아르주나의 고행’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 코끼리 상이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실물 크기인데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코끼리 상으로 평가 받고 있단다. 그 앞에는 고행이라도 하는 듯 원숭이 두 마리가 경건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벌을 서는 모양새의 고양이 상도 눈에 띈다. 고양이 앞에는 쥐도 조각되어 있었다. 아르주나처럼 고행을 하다가 시바 신이 잠시 눈을 돌릴 때면 쥐들을 잡아먹는 고양이와 그런 고양이에게 살려달라고 비는 쥐라나? 경건할 수밖에 없는 수행에 위트를 살짝 얹어놓는 센스가 돋보인다.

▼ 왼쪽 바위, 한 다리로 서있는 형상이 ‘마하바라타’의 주인공 ‘아르주나’이다. ‘시바 신’에게 ‘파수파타(Pasupata)’라는 강력한 무기를 얻기 위해 고행하는 중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 고행한 만큼 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하게 마른 아르주나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살려냈다. 그게 마음에 들었던지 왼쪽에 있는 ‘시바 신’이 한 손을 펼쳐 보인다. 원하는 것을 주겠다는 표현일 수도 있겠다.

▼ 위아래로 파인 부분에는 ‘강가의 여신상’이 차지했다. ‘강가 강의 하강’을 주장하는 근원으로, 이 설은 ‘아르주나’가 아닌 ‘바하지라타’가 시바 신에게 ‘강가(Ghanga)신’으로 하여금 갠지스(Ghanges) 강을 지상으로 흐르게 하여 자신들의 죄업을 씻어주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고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실제로 비라도 내릴라치면 바위틈을 통해 빗물이 흐르면서 영락없는 강(江)의 형상이 만들어진단다.

▼ ‘아르주나의 고행’ 옆에는 미완성의 석굴사원이 있었다. 구굴지도는 ‘판차 판다바 동굴 사원(Pancha Pandava Cave Temple)’라고 적으며 마하발리푸람에서 가장 큰 암각 동굴사원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참고로 ‘판차 판다바(Pancha Pandavas)’는 산스크리트어로 ‘다섯 명의 판두 후예들’이라는 뜻이다.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영웅 형제를 가리킨다.

▼ 안내판은 그저 ‘크리슈나 만다파’의 북쪽에 있는 ‘미완성 석굴사원’이라고만 적었다. ‘파라메스와라바르만 1세(ParamesvaravarmanⅠ, 672-700년)’ 때 만들어졌는데, 정면 홀 뒤쪽에 석굴 사당이 있는가 하면, 미완성이지만 순례자를 위한 통로까지 갖춘 독특한 구조라고 한다.

▼ 정면(파사드)에는 팔라바 건축의 전형적인 스타일인 앉아 있는 사자 모양의 기단(Yyala)을 가진 기둥 6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얼핏 그리스의 신전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나만의 오해일까?

▼ 동굴 안에는 4개의 기둥과 2개의 벽기둥이 있는 두 번째 줄이 있는 긴 방이 있다. ‘미완성 동굴사원’이라는 설명답게 거칠기 짝이 없었다.

▼ 두 번째 베란다 뒤쪽에는 벽감으로 둘러싸인 작은 방이 있다. 이 방을 정사각형 평면으로 조각하고 그 뒤에 순례를 위한 통로(Circumambulatory path)를 만들려는 의도를 추정해 볼 수 있단다. 이는 고대 건축공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된다고도 했다.

▼ 참! ‘판차 판다바’에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크리슈나 만다람(Krishna Mandapam, 아래 사진)’이라는 석굴사원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도 들러보지를 못했다. 자세한 위치를 몰라 가이드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마하바라타’ 부조의 매력에 푹 빠져 물어보는 것 자체를 깜빡해버렸다. 힌두교의 중요한 신인 ‘크리슈나(비슈누의 아바타라)’에게 바쳐진 사원으로 연민과 사랑을 상징한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어쩌겠는가. 철저하게 준비를 못해간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에서 구해왔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인 ‘크리슈나 만다람’은 내부 부조가 볼만하다고 했다. 크리슈나의 생애(아래 사진)와 크리슈나가 폭풍우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바르단 산을 들어 올리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고 한다. 이 사진도 인터넷에서 구해왔다.

▼ 근처에 있는 ‘크리슈나의 버터볼’로 간다. ‘아르주나의 고행’에서 북쪽으로 100m 정도만 걸어가면 된다.

▼ 크리슈나의 버터볼 (Krishna's Butterball). 크리슈나가 떨어뜨린 버터 덩어리라고 해서 인도인들이 신성시하고 있는 바위다. 때문에 영국인들에 의해 바위를 끌어내리려는 시도까지 있었다고 한다. 마드라스 주지사가 코끼리 일곱 마리를 동원해봤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알려진다. 그러자 ‘크리슈나의 버터볼’을 신격화하는 분위기는 더욱 높아졌고, 일부 인도인들은 신이 이 바위를 가져다 놓았다고 믿을 정도란다.

▼ 경사진 바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둥근 바위로, 높이 6미터에 너비 5미터, 무게가 250톤이나 된다고 한다. 안내판은 현지인들이 ‘크리슈나의 버터볼’이라 부르지만 크리슈나 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적고 있었다.

▼ 우리나라에 ‘설악산 흔들바위’가 있다면 인도에는 ‘크리슈나의 버터볼’이 있다.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 교황청이 공인한 카톨릭 성지인 ‘첸나이 성 도마 성당’과 함께 첸나이의 주요 관광 상품으로 꼽힌다.

▼ 옆에서 보면 조금은 안정감 있게 서있다.

▼ 바람만 조금 불어도 굴러 떨어질 것 같으니 여행객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 된다. 인생샷 하나 건지겠다며 들고, 밀고, 받치는 등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느라 정신들이 없다.

▼ 받치고 있는 장면을 연출하려고 했는데 솜씨가 별로여서 살짝 빗나가버렸다.

▼ 가이드에게 부탁해서 그나마 나은 구도를 연출해 볼 수 있었다.

▼ ‘크리슈나의 버터볼’ 옆 바윗길. 저 바위틈을 지나자마자 ‘트리무르티 석굴사원(Trimurti rockcut Cave Temple)’을 만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필자는 있는 줄도 몰랐다. 7-8세기 팔라바 왕조 시대의 대표적인 ‘바위 절개(Rock-cut)’ 사원이라는데 아쉬운 일이다.

▼ ‘트리무르티 석굴사원’은 하나의 석굴에 신을 셋이나 모시는 독특한 구조라고 했다. 힌두교의 삼위일체 신인 브라흐마(창조의 신), 비슈누(보존의 신), 시바(파괴의 신)에게 봉헌되었단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에 포함되어 있다. 사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에서 구해왔다.

▼ ‘크리슈나의 버터볼’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오른쪽 저만큼에 ‘신전’ 하나가 보인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고 했다. 새로운 앎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찾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누비안(Nubian)’이라는 염소로 여겨지는데, 관광객들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가이드인 Mr. Ajay Singh은 남인도 주민들은 힌두교 교리에 엄격하다고 했다. 그래선지 여행을 하는 동안 식탁에서 육류는 구경도 못했다. 심지어는 아침식사 때 계란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저 염소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이다.

▼ 다가가보니 ‘가네샤 라타(Ganesha Ratha)’라는 7세기 팔라바 왕조 시대의 석조 사원이 있었다. 분홍색 화강암 암반을 통째로 깎아 만든 독창적인 모놀리스(Monolith, 단일 암석을 깎아 만든) 건축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마하발리푸람 기념물군’에 포함되어 있다.

▼ 비문에 새겨진 ‘아티안타카마 팔라베스와람((Atyantakama Pallavesvaram)’이란 이름으로 알려진다고 했다. ‘아티안타카마’는 ‘파라메스와라바르만 1세(Paramesvaravarman I, 672-700)’의 칭호(별칭)였단다. 하나 더. 팔라베스와람이 ‘팔라바 왕조의 시바 신’이란 뜻이니 아티안타카마(파라메스바라바르만 1세) 왕이 세운 팔라바의 시바 사원이라고 보면 되겠다.

▼ 원래는 시바 신의 상징인 ‘시바 링가(Shiva Linga)’를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원래 있던 시바 링가가 사라졌고, 1880년대에는 지역 주민들이 코끼리 신인 가네샤 상을 사원 내부에 새로 안치하면서 오늘날의 ‘가네샤 라타’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단다.

▼ 마하발리푸람에 위치한 10개의 라타 중 유일하게 상부 장식(Finials)까지 완공되었다고 한다. 직사각형 기초 위에 피라미드 형태의 지붕이 얹어진 구조다. 이 독특한 양식은 후대 남인도 사원 건축의 상징인 거대한 출입문 탑 ‘고푸람(Gopuram)’ 디자인의 초기 프로토타입(prototype, 원형)으로 평가받는다고 했다.

▼ 인근의 다른 ‘라타(전차형 사원)’들과는 달리 현재까지도 매일 푸자(Pooja, 예배)가 열린다고 했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 자리를 지키고 있던 힌두교 사제가 살짝 비켜주는 매너를 보여주시기도 했다.

▼ 유적지를 빠져나오는 길. 현대식으로 지어진 힌두교 사원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출입문 탑 ‘고푸람(Gopuram)’을 바라보며 조금 전 들렀던 ‘가네샤 라타’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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