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평화의길 11코스(신장남교 북단 - 숭의전)
여행일 : ‘25. 4. 5(토)
소재지 :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백학면·미산면 일원
여행코스 : 신장남교 북단→장남면 행정타운→사미천→석장천 징검다리→학곡리 고인돌→구미배수펌프장→아미2리→숭의전(거리/시간 : 16.6km, 실제는 13.65km를 3시간 4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드디어 ‘코리아둘레길’의 4,500km 전 구간이 완성됐다. 2009년부터 시작된 ‘코리아둘레길’은 2016년 해파랑길(동해), 2020년 남파랑길(남해), 2022년 서해랑길(서해)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2024년 9월, 마지막 구간인 DMZ 평화의길(이하 평화의길) 개통으로 ‘코리아둘레길’이 완성됐다. DMZ 일대를 따라 구축한 코스로, 자유롭게 방문하는 횡단노선과 민간인 통제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인 테마노선으로 구성된다.
▼ 들머리는 신장남교 북단(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수원·문산고속도로 월롱 IC에서 내려와 통일로(국도 1호선) 문산방면, ‘여우고개사거리’에서 율곡로(국고 37호선) 연천방면, ‘장남교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신장남교’를 건넌다. 평화의길 QR코드는 다리 북단 100m지점에 있는 평화누리길·경기둘레길 안내도에 붙어있다. 아래 사진은 100m쯤 더 가서 있는 소공원이다. 이곳의 평화의길 안내판에도 QR코드가 붙어있다.

▼ ‘신장남교’ 북단에서 ‘숭의전’까지 임진강 언저리를 따라 북동진하는 길이 16.6km의 여정. 협곡처럼 변한 임진강의 색다른 풍경을 옆구리에 끼고 걷는다는 게 장점. 거기다 고인돌과 적석총이라는 선사시대 유적까지 살펴 볼 수 있다. 첨부된 지도에서 임진강으로 흘러드는 서너 개의 하천 중 두 번째 하천과 지방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 09 : 03. 실제 출발지인 ‘석장천삼거리(백학면 전동리)’. 갈수록 굵어지는 빗줄기를 핑계로 코스를 단축하기로 했다. 사미천이나 석장천의 징검다리를 건너지 못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두 하천 사이의 둔치 구간이 만만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빗물에 잠긴 습지를 걷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 ‘전동교’를 건너면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전동리 앞 ‘석장천’에 놓인 다리로 장백로(372번 지방도)와 청정로(371번 지방도)를 잇는 소로가 이 다리를 지나간다. 참고로 ‘전동리(箭洞里)’는 삼국시대 초기 임진강 남쪽의 육계토성에서 주둔하던 군사들이 강 건너 대안에 있는 이곳에 과녁을 설치해 놓고 활을 쏘았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 끝난 후 자유의 땅이 된 곳이기도 하다.

▼ 석장천(石墻川). 연천군 왕징면 작동리에서 발원, 남동방향으로 흘러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길이 13.56km의 하천이다. 특별한 얘깃거리나 볼거리는 갖고 있지 못하다.

▼ 다리 건너에서 만난 ‘평화누리길’ 이정표. 원래의 평화누리길(평화의길 포함)은 이곳을 지나가지 않는다. 폭우로 인해 사미천이나 석장천이 물에 잠길 때 우회하는 코스로 이용될 따름이다. 그나저나 이정표는 종점인 숭의전까지의 거리를 13.2km로 적고 있었다. 16.6km인 11코스를 3.4km쯤 줄여 걷는다고 보면 되겠다.

▼ 탐방로는 석장천 물길을 따라 하류로 간다. 노곡제(蘆谷堤, 맞은편 제방은 ‘斗日堤’라 부르고 있었다) 위로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갈만한 길이 나있다.

▼ 왼쪽으로 펼쳐지는 ‘통구리·노곡리’ 들녘이 꽤 넓다. 그런데 들녘 곳곳이 노랗게 물들어 있는 게 아닌가. 잔디라도 재배하고 있는 모양이다.

▼ 노곡제(蘆谷堤) 배수문. 제방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배수문(排水門)을 심심찮게 만난다. 홍수 때 임진강의 물이 농경지로 역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시설이다.

▼ 09 : 16. ‘노곡배수펌프장’이란다. 펌프를 이용해서까지 배수해야 할 경우도 심심찮게 생기는 모양이다. 그만큼 이 일대 들녘의 표고가 낮다는 얘기일 것이고 말이다.

▼ 09 : 23. 석장천 징검다리(이정표 : 숭의전 10.5km/ 장남교 5.7km). 이정표와 안내판 등 걷기 여행길의 잡다한 시설물들이 평화의길 정규 코스와 만났음을 알려준다.

▼ 집중 호우로 징검다리가 침수되었을 때는 우리가 걸어왔던 길로 우회하란다.

▼ 설사 징검다리를 건넌다고 해도 저 습지를 통과하는 게 만만찮아 보인다. 안내판도 하천의 하상(河床)을 이용하는 구간이니 기상정보와 징검다리 수위 변화를 반드시 확인하고 건너라고 적고 있었다.

▼ 다리를 건너오는 일행들이 의외로 말짱하다. 하지만 습지에 잠긴 물은 발목을 넘겼고, 미끄럽기까지 해서 넘어진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고 했다.

▼ 계속해서 제방을 따른다. 이곳부터는 감악산을 전방에 두고 걷는다고 했다. 하지만 빗줄기 때문인지 어디에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석장천이 임진강에 합류되는 ‘두물머리’에 이른다. 아니 바로 뒤에 ‘사미천’과 임진강이 합쳐지는 또 하나의 ‘두물머리’가 버티고 있으니 ‘세물머리’라고 하는 게 옳겠다. 저곳에서 두 물길을 흡수한 임진강은 주월리(파주시)와 원당리(연천군)의 산하를 굽이굽이 에돌아가며 서해로 흘러간다.

▼ 임진강의 커다란 여울이 조금 전의 ‘석장천’만큼이나 얕다. 강폭이 넓어서일 것이다. 맞다. 이 일대를 술탄(戌灘), 즉 ‘개여울’이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그 깊이가 개도 걸어서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얕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란다.

▼ ‘노곡리쉼터(이정표 : 숭의전 10.5km/ 장남교 5.7km)’는 걷기 여행자들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정자에 벤치는 기본, 운동기구에 화장실까지 갖췄다.

▼ 읽을거리도 빼놓지 않았다. 11코스(평화의길과는 달리 경기둘레길은 9코스, 평화누리길은 10코스이다)의 특징을 ‘소리도 풍경이 되는 길’이라며 스토리텔링까지 만들어놓았다. 강가로 내려가면 포근한 갈대숲 풍경이 반기는데, 바람에 순응하듯 느릿느릿 몸을 가누는 갈대들이 햇살의 기운에 따라 금빛이나 은빛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쓸데없는 자존심도 세우지 않고, 과시욕이나 과한 소유욕도 갖고 있지 않는 현자의 모습 같단다. 그 사이로 갈대를 흔드는 바람과 수면을 박차고 오르는 새들이 ‘소리’도 풍경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준다나?

▼ 하지만 ‘옥에 티’도 눈에 띈다. 장남교에서 숭의전지까지의 ‘연천 9코스’를 머리말로 적어놓고는 내용은 엉뚱하게도 신탄진역에서 시작해 고대산 줄기를 누비는 코스를 설명하고 있다. 하단에 이 구간에서 만나게 되는 사미천과 학곡리고인돌, 숭의전지 등을 첨부해 놓은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 이후부터는 ‘임진강’의 강둑을 따라간다. 잔디밭으로 가득하던 들녘이 언제부턴가 비닐하우스로 바뀌어 있다.

▼ 남북분단의 산물이던 임진강 하류의 철책들과는 달리 이곳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설치했단다.

▼ 10 : 42. 이정표가 제방을 벗어나란다. 그리고는 농로(청정로 53번길)를 따라 ‘샛터’로 가란다.

▼ ‘연천둘레길’이란다. 평화의길, 평화누리길, 경기둘레길로도 부족했던지 트레일 하나를 더 보탰다.

▼ 노곡양수장. 노곡리 들녘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대단위 시설이다. 하지만 갈수기(渴水期)에 북한의 황강댐에서 적정량의 물을 흘려보내지 않을 경우에는 그 효능이 뚝 떨어지는 모양이다. 이를 대비해 펌프 흡입로를 강 속 깊이 설치했다나?

▼ 개성주악커피. 개성의 향토 음식인 주악(우메기)을 커피와 함께 판다는 얘기일 것이다. 참고로 ‘주악’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소를 넣고 송편처럼 만들어 기름에 지진 뒤 조청·꿀 등을 이용해 약과처럼 즙청한 한과의 일종이다.

▼ 09 : 57. 요기조기 기웃거리며 걷다보면 어느덧 ‘371번 지방도(청정로)’로 올라선다. 그리고는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 농로로 내려간다. 버스정류장은 이곳을 ‘새터’로 적고 있었다. 노곡리(蘆谷里)에 속한 자연부락 중 하나이다.

▼ ‘신망리순대국’ 왼쪽으로 난 농로(청정로 52번길)로 들어간다. 참고로 371번 지방도(남쪽 방향)를 따라 300m쯤 가면 임진강에 놓인 ‘비룡대교’가 나온다. 하지만 평화의길은 들녘을 가로지르며 임진강변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 아직도 ‘여관’이란 이름표를 내건 숙박시설이 존재한다는 게 놀랍다. 모텔이나 러브텔로도 모자라 ‘호텔’로까지 둔갑까지 시키는 마당에 보무도 당당히 옛 이름을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 외진 곳까지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기는 할까?

▼ 몇 걸음 더 걸으면 이번에는 음식점. 그것도 엄청나게 큰 규모이다. 풍천장어 구이를 안주삼아 얼큰하게 마신 뒤, 조금 전의 여관에서 하룻밤 묵어가면 딱 좋겠다.

▼ 10 : 06. 평화의길을 인도해 온 ‘청정로 52번길’은 2차선 도로인 ‘노아로’를 만나면서 그 임무를 마친다. 평화의길은 노아로(이정표 : 숭의전 8.3km/ 장남교 7.9km)를 횡단해 임진강 제방으로 올라간다.

▼ 이후부터는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제방(안내판은 ‘학곡제’로 적고 있었다)을 따라간다.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면 되겠다.

▼ 이즈음 ‘비룡대교’를 눈에 담을 수 있다. 파주시(적성면) 주월리와 연천군(백학면) 노곡리를 잇는 길이 440m의 다리다. 보병 제25사단의 상징인 ‘비룡’에서 다리 이름을 따왔는데, 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6.25전쟁 중이던 1953년 미군 공병대가 건설한 틸교(Teal bridge)가 있었다고 한다.

▼ 노곡리에도 고기잡이를 업으로 삼는 주민들이 있는 모양이다. 하나 더. 한국전쟁 이전까지 요 어디쯤에 ‘술탄포구’가 있었다고 했다. 설사 그 포구겠는가 만은 강화나 서해안 등지에서 올라온 새우젓과 소금배들이 물물교환 하던 옛 풍경을 살짝 떠올려 본다.

▼ 양쪽 강안(江岸)이 확연히 다른 풍경을 보이기에 카메라에 담아봤다. 연천 쪽에는 ‘배수문’이 들어서 있는데, 반대편(파주)에는 기능이 반대인 ‘(가월)양수장’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임진강과 들녘의 높이가 엇비슷한 연천은 제방을 쌓아 물을 관리할 수밖에 없는데 반해, 지대가 높은 파주는 양수시설만으로도 물을 관리할 수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경작금지 경고판. 그러거나 말거나 철책 밖 둔치에는 농작물이 심어져 있었다.

▼ 보도블록, 그것도 고급스런 블록을 깔아놓은 구간도 보인다. 트레일을 조성하는데 공을 많이 들인 모양이다. 하나 더. 제방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방송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이 임진강의 수위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접경지역임을 알려주는 풍경이지 싶다.

▼ 10 : 22. 노곡리(蘆谷里)와 학곡리(鶴谷里)의 경계로 여겨지는 지점. 이정표가 강변으로 내려가란다. 하지만 안내판은 우천시에는 출입을 금지한다고 적고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리기라도하면 물에 잠긴다는 얘기일 것이다.

▼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초입에 대문을 만들어놓았다. 그러니 통과한 다음 다시 문을 닫아두는 에티켓을 발휘해 보자.

▼ 잠시지만 임진강의 둔치를 따라간다. 제방에 기대듯 길을 내놓았다.

▼ 강변은 갈대밭이 평원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노곡(蘆谷)이란 지명은 임진강변에 갈대가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했다. 지명의 유래를 되새겨 볼 수 있는 풍경이라고나 할까?

▼ 10 : 32. 또 다른 대문이 이제 그만 둔치를 벗어나란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왼쪽은 학곡마을을 관통하는 코스, 직진하면 학곡마을을 에둘러간다. 오른쪽으로 가면 강 건너 ‘율포리 뱃터’를 눈에 담을 수 있다.

▼ 평화의길과 경기둘레길 이정표는 왼쪽에 있는 ‘학곡마을’을 가리킨다. 하지만 평화누리길은 곧장 직진하라는 게 아닌가. 거기다 두루누비에서 배포한 트랙까지도 직진하라니 걷기 여행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 정답은 ‘왼쪽’이다. 마을을 관통해야만 11코스의 명소 중 하나인 ‘학곡리 고인돌’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 탐방로는 마을 안길을 지나간다. 이곳 학곡리(鶴谷里)는 학이 많이 날아와 깃들던 철새도래지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자연마을로 돌마돌(石戶洞), 뒷골, 매미터, 맹강골(孟江洞), 미역골(沐浴洞), 와간이(臥看洞), 해골(鶴谷) 등을 두고 있는데, 이곳은 ‘돌마돌(石戶洞)’이지 싶다.

▼ 학곡마을의 내노라는 볼거리 ‘고인돌’은 마을안길 중간쯤에서 만날 수 있었다. 민가 한 채쯤 들어갈 만한 공터에 고인돌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맞다. 이 고인돌은 예전엔 어느 집 뒷마당에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 집을 헐어내고 마당에 고인돌만 남겨 놓은 상태다. 때문에 마당 둘레에는 여전히 다른 주택들이 남아 있다. 여기서 팁 하나. 우리나라는 고인돌이 많기로 유명하다. 전 세계 고인돌 중 약 40%가 한반도 곳곳에 분포해 있다. 고창·화순·강화 등이 고인돌이 많은 지역으로 꼽히는데, 연천도 그들 지역 못지않다고 한다. 13곳에 31기의 고인돌이 분포해 있는데, 오늘 그중 하나를 만난 것이다.

▼ ‘학곡리 고인돌(支石墓, 경기도기념물 제158호)’은 땅 위에 4개의 받침돌로 석실(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큰 상석(덮개돌)을 올려놓는 탁자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덮개돌의 길이가 2.8m(너비는 2.7m)라니 아담한 크기라 하겠다. 이는 자그마한 부족이 이 지역에서 거주했음을 추정케 해준다. 고인돌이라는 게 본디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이었다니 말이다.

▼ 덮개돌은 ‘현무암’을 사용했다. 제주의 바닷가에서나 보던 바위인데, 이곳 연천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하나 더. 가장자리에서 중앙부로 가면서 완만하게 파인 모양새가 특이했다. 그게 세숫대야처럼 빗물을 담았다. 때문에 풍년이나 자식 낳기를 빌며 파놓았다는 알구멍(性穴)은 살펴볼 수 없었다.

▼ 10 : 43. 마을안길을 벗어나 ‘노아로’로 나왔다. 오는 도중 아까 헤어졌던 ‘평화누리길’을 다시 만났지만, 마을안길이 끝나기도 전에 탐방로와 헤어져 도로로 빠져나왔다. 때문에 돌마돌(石戶洞) 마을의 또 다른 볼거리라는 벽화는 놓쳐버렸다. 새와 짐승, 꽃으로도 부족해 월북시인 박세영의 시(임진강)까지 적혀있다는데 아쉬운 일이라 하겠다.

▼ ‘학곡리 버스정류장’은 이 마을 자랑거리인 ‘고인돌’을 담았다. 참! 앞서 걸었던 어느 여행자(마을 초입에서 두루누비의 트랙을 따랐던)는 이 그림을 보고나서야 길을 잘못 들었었음을 알았다고 했다. 덕분에 청동기시대의 유적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며 연천군청 담당자의 재치를 칭찬하고 있었다.

▼ 10 : 48.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정표가 도로를 벗어나란다. 그리고는 임진강의 제방을 따라가란다. ‘학곡리적석총’으로 연결되는 길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초입에 세워져 있다.

▼ 강변에 늘어선 버드나무가 그럴 듯한 풍모를 자랑한다. 하지만 썩 좋지 않은 풍경도 눈에 띈다. 경작을 금지한다는 경고판이 무색하게도 둔치에는 농작물이 심어져 있었다.

▼ 10 : 52. ‘학곡리 적석총’은 멀지 않은 곳에 누워 있었다. 강변 언덕에 검은 돌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얼핏 길가에서 흔히 보는 돌무더기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단순히 돌을 모아다 쌓아놓은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 ‘학곡리 적석총(積石寵, 경기도 기념물 제212호)은 삼국시대 유적이다. 백제의 건국과 관련된 무덤으로 추정된다나? 그래선지 물에 씻겨 둥글게 모가 깎인 강돌들이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검게 변색되어 있다. 만만찮은 세월이 흘렀다는 증거이리라. 유물로는 평저호(平底壺), 구슬, 골제(骨製) 장신구, 청동환(靑銅環), 철제 낫(鐵鎌), 청동방울(靑銅鈴), 타날문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 무덤은 적석부의 붕괴와 유수로 인한 침식을 막기 위해 강 쪽의 구릉지 말단부에 일정한 크기의 강돌을 보강했다고 한다. 그 위의 자연 구릉에 기대어 돌을 쌓은 다음, 구릉 정상부에 무덤방을 앉히고 다시 강돌을 쌓아 마무리했단다. 안내판은 원래 크기를 25x10m로 적고 있었다. 하지만 잦은 강물의 침범과 주변 개발로 파괴되면서 무덤의 상당 부분이 유실되었을 것이란다.

▼ 11 : 00. 다시 길을 나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아로‘의 ’자유로 CC’ 입구로 내려선다.

▼ ‘새둥지마을’이 잠시 들렀다 가란다. 백학면 ‘구미리(九尾里)’의 또 다른 이름으로 풍성한 농사 수확체험과 팜스테이를 통해 농촌의 넉넉한 인심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20년 전만해도 민간인출입통제선 지역이었던 덕분에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고 청정 자원이 다양한 편이다.

▼ 이후부터는 ‘노아로’를 따라간다. ‘학곡리’를 지나온 노아로는 ‘학곡교’를 건너고 수우리고개(水月峴)를 넘어 ‘구미리’로 간다. 임진강의 ‘수우리 소(沼)’ 위에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 고개에는 ‘몽생미셸 펜션’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여행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해온 ‘몽생미셸’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해태상이 문지기로 나섰다. 건물도 몽생미셸과 조금도 닮지 않았다. 그저 마당에 화장실까지 딸린 평화누리길 (학곡리)쉼터를 만들어놓았기에 잠시 들렀다 갈 따름이다.

▼ 11 : 08. 수우리고개를 넘자 이정표(숭의전 4.3km/ 장남교 11.9km)가 오른쪽을 가리킨다.

▼ 도로를 벗어나 또 다시 임진강의 제방을 따르라는 것이다.

▼ 저런 바위절벽이 가로막고 있기에 잠시나마 ‘노아로’를 따라 에돌아왔다고 보면 되겠다.

▼ 탐방로는 이제 제방(九尾堤)을 따라간다. 그런데 담장처럼 평면 위에 제방을 쌓아올렸던 노곡리나 학곡리와는 달리 이곳은 왼편이 제방의 상부와 높이가 거의 같다. 반대로 임진강은 푹 꺼진 것이 영락없는 협곡이다.

▼ 11 : 16. 잠시 후, 이번에는 풍차가 반긴다. 탑 모양의 원통형 건물을 짓고 상부에 날개를 매달았다. 하지만 네덜란드처럼 방앗간 모양은 아니다. 오히려 이슬람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첨탑(minaret, 이슬람 건축에서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탑)을 닮았다. 중간쯤에는 신도들에게 기도시간을 알려주던 ‘아잔(adhan)’을 했을 법한 난간도 만들어놓았다.

▼ ‘밤나무집매운탕’ 주인장은 본채도 돌멩이로 지었다. 그래서일까? 쌓아올린 돌멩이 하나하나마다 풍파에 시달려온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 고풍스런 멋을 폭폭 풍긴다. 최근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폭삭 속았수다’를 보면서 옛집들 몇이 눈길을 끌었는데, 이곳도 그에 뒤떨어지지 않는 멋을 지니고 있었다.

▼ 강 건너 저 건물은 ‘율포양수장’이 아닐까 싶다. 협곡(峽谷)처럼 생긴 바위벼랑에 양수시설이 흡사 제비집처럼 매달렸다. 아무튼 파주의 들녘은 임진강의 수면보다 높아도 한참이나 높은가 보다.

▼ 11 : 23. 구미배수펌프장. 둑에는 배수문이 있었다. 왼쪽은 구미리 ‘새둥지마을’이다. 나지막한 산들을 병풍삼고 임진강을 뜨락삼은 아늑한 산간마을로, 오염되지 않은 청정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농업자원과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덕분에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여건을 구비하고 있단다.

▼ 11 : 31. ‘리버사이드펜션’ 앞에서 제방을 벗어난다. 그리고는 들녘으로 들어간다.

▼ 길은 ‘해쌀팜토리 복합곡물가공센터’ 앞으로 이어간다. ‘팜토리’는 팜(farm)과 팩토리(factory)를 합친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개인 농장의 전용 도정공장쯤으로 여기면 될 것 같다. 인근 농경지에서 수확한 경기미품종의 벼를 건조·도정·포장하여 판매하는 곳 말이다.

▼ 11 : 41. 들녘을 지나 ‘노아로’로 올라섰다. 오는 도중 종점인 숭의전까지 2.4km가 남았음을 알리는 이정표도 만날 수 있었다.

▼ 또 다시 ‘노아로’를 따라간다. 11코스는 이처럼 노아로와 유난히도 자주 만나고 있었다. 11코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노곡리, 학곡리, 구미리, 아미리 등을 잇는 간선도로라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 빗속에서도 꽃망울을 활짝 열었다. 제비꽃인줄 알았는데, 집사람이 ‘소래풀’이라고 알려준다. 꽃말이 ‘변함없는 사랑’이니 자신을 쏙 빼닮았지 않았느냐면서 말이다.

▼ 11 : 50. 승마체험장은 스치듯 지나간다.

▼ 11 : 57. ‘약대산(藥大山) 고개’를 넘는다. 임진강 옆 산비탈에 약수가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고갯마루에는 미산면에 들어서고 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맞다. 백학면을 달려온 평화의길은 이 고개에서 미산면에 바톤을 넘겨준다.

▼ 12 : 01. 내려오는 길에 만나게 되는 ‘크리스탈 빌리지’. 수익형(또는 별장형) 전원주택단지라는데 kakaomap에는 온통 개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애완견 동반 펜션으로 특화된 단지가 아닐까 싶다.

▼ 12 : 04. 잠시 후, 이번에는 ‘Studio 330’이란 촬영장 앞을 지나간다. 1100평 스튜디오 2개를 갖추고 영화나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광고,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포맷의 촬영이 가능한 곳이라고 했다.

▼ 12 : 07. 고개를 내려오면 ‘아미1교 삼거리’이다. 지금껏 함께 걸어온 ‘노아로’와 ‘숭의전로’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오른쪽(전곡 방면)으로 간다. 왼쪽은 백학면의 행정타운(두일리)으로 연결된다는 것도 기억해두자.

▼ 아미2리 마을회관. 세계적인 K-Pop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팬덤 ‘아미’와 이름이 같아 더 주목을 받는 마을이다. 실제로 마을 주민들은 멤버 진이 훈련소에 입소할 때 연천군이 지켜줄 테니 힘내라는 메시지를 담은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 촬영산업의 후방산업은 ‘밥차’였던 모양이다. 139, 330, 331 같은 대형 스튜디오들이 없었더라면 저런 음식산업은 들어설 일이 없었을 것이다.

▼ ‘의자’도 멋진 소품이 될 수 있는가 보다. 작다면 작은 배려였겠지만 길의 풍모를 한결 돋보이게 만드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 12 : 17. ‘임진강폭포랜드(아미원)’란다. 한옥스타일의 3층 건물과 폭포가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는 한식 전문점이다. 1층에 베이커리 카페도 들어서 있다니 꼭 식사가 아니더라도 잠깐 들러볼만 하겠다.

▼ 아미원 앞에서 ‘논골교’라는 예쁜 다리를 건넌다. 상판이야 여느 다리와 다름없지만 아치형의 아름다운 교각이 카메라를 들이대게 만든다.

▼ 12 : 22. 숭의전 주차장. 널찍한데다 깔끔한 화장실까지 딸려있어 트레킹을 마친 후 뒷정리하기에 딱 좋다.

▼ 몇 걸음 더 걸으면 ‘버스정류장’이다. 숭의전의 사하촌이라 할 수도 있는 마을 앞 주차장에 경기둘레길 10코스(평화누리길 11코스 포함)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평화의길 QR코드는 셋방살이답게 이 안내도의 하단에 살짝 붙여놓았다.

▼ 12 : 25. 버스정류장 바로 위에서 숭의전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뉜다. 그 초입에 어수정(御水井)이 있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王建, 877-943)이 물을 마셨다는 우물이다.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 때 철원과 개성을 오가는 길에 이곳에서 쉬어가면서 물을 마셨다나? 그나저나 물맛이 좋은지 커다란 생수통 여럿에다 물을 담고 있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 홍살문을 지나 숭의전으로 올라간다. 홍살문 옆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져 있었다. 안에 있는 ‘숭의전’이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 할 정도로 존귀한 시설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참! 숭의전은 12코스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트레킹은 이쯤에서 끝내면 된다. 하지만 해외여행 때문에 다음 구간을 참여할 수 없어 미리 다녀오기로 했다.

▼ 숭의전으로 올라가는 도중, 임진강으로 내려가는 샛길도 만날 수 있었다. 예전에는 평화의길이 저곳으로 내려갔었던 모양이다.

▼ 12 : 29 – 12 : 44. 숭의전(崇義殿, 사적 제223호)에 도착했다. 숭의전은 태조 왕건(王建)을 비롯해 고려를 부흥시킨 4명의 왕과 충신 16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왕건의 원찰이었던 앙암사(仰巖寺)가 있었던 곳에 1397년(조선 태조 6년)에 전조(前朝)인 고려 태조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을 건립한 것이 시초이다. 사라진 왕조의 지도층을 회유할 목적으로 사당을 지었지 않나 싶다.

▼ 중심 건물인 숭의전(崇義殿)은 고려 태조·현종·문종·원종 등 4명의 왕 위패를 모신 정전(正殿)이다. 1397년 귀의군(歸義君) 왕우(王瑀)에게 이 지역의 봉토를 주고 머물면서 고려 태조의 묘를 세우도록 했다. 정종 때인 1399년 숭의전 건물을 짓고 고려 태조와 8왕(혜종·현종·원종·충렬왕·성종·경종·문종·공민왕)의 제사를 받들도록 했다. 그러나 세종 때인 1425년 예법에 제후는 5묘를 세워야 하는데 고려의 8위는 부당하다 하여 태조·현종·문종·원종 4위만을 받들도록 했다.

▼ 숭의전에서는 매년 4월과 10월 춘·추계 대제(연천군 향토문화재 제25호)가 봉행된다고 했다. 그중 25년도 춘계대제가 내일(4월6일) 열린단다. 그래선지 수많은 제기들이 때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배신청(陪臣廳)’은 고려조의 충신 16명(복지겸·홍유·신숭겸·유금필·배현경·서희·강감찬·윤관·김부식·김취려·조충·김방경·안우·이방실·김득배·정몽주)의 위패를 모신다. 이밖에도 숭의전을 청소하거나 공사할 때 위패를 잠시 모셔 두는 ‘이안청(移安廳)’, 제례 때 사용할 제수를 준비하고 제기를 보관하는 ‘전사청(典祀廳)’, 제례 때 사용하는 향·축·폐 등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제례 준비를 하며 머무는 ‘앙암제(仰巖齊)’ 등의 부속건물이 있다.

▼ 숭의전은 글로서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숭의전의 내력과 제례 등을 담은 안내판 10여 개를 앞마당에 세워놓았다.

▼ 숭의전 앞의 수령이 600년도 더 되었다는 느티나무 두 그루도 주요 볼거리다. 장승처럼 우뚝 서서 숭의전을 지키고 있는데, 사연까지 담았다니 능히 가슴에 담아둘 만하지 않겠는가. 조선 문종 2년 왕씨 자손이 심었는데, 이 나무에 까치가 모여들면 마을에 경사가 나고, 까마귀들이 모여들면 틀림없이 초상이 난다나?

▼ 숭의전 앞을 지나자 평화누리길 11코스(임진적벽길)의 출발 지점임을 알리는 아치형 게이트가 세워져 있었다. 경기둘레길의 연천구간안내판과 스탬프보관함도 이곳에 설치해 놓았다. 버스정류장에서 끝을 맺는 평화의길과는 달리 두 길은 이곳을 시·종점으로 삼는다는 얘기일 것이다. 아무튼 오늘은 13.65km를 3시간 40분에 걸었다. 걷는 내내 비가 내렸던 점을 감안하면 적당한 속도로 걸었다고 보면 되겠다.

▼ 오늘도 역시 집사람이 함께 해주었다. 우리 부부의 나이를 합하면 100년 하고도 절반에 가까워진다. 최근의 화두인 100세 시대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바람직한 삶을 살고 있을까? 집사람은 어떨지 몰라도 내 대답은 ‘예스’이다. 아직까지는 왕성하게 걸을 수 있고, 또 그것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즐거워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게 빈고(貧苦), 병고(病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 등 노년에 겪는다는 네 가지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노년을 괴롭게 하는 네 가지 고통의 가장 첫 시작이 ‘할 일 없음’에서 비롯된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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