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산(角山, 416m)
산행일 : ‘18. 7. 9(월)
소재지 : 경남 사천시 대방동·선구동·동서동·동림동 일원
산행코스 : 사천시 문화예술회관→약수터→송신탑→각산전망대→봉수대→각산정상→각산산성→대방사→대방 케이블카정류장(산행시간 : 2시간10분)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육산(肉山)의 전형적인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산이다. 특별히 눈에 담을 만한 산세를 갖고 있지 않다는 얘기이다. 거기다 높이가 416m에 불과해서 종주를 한다고 해도 3㎞만 걸으면 끝이다. 그저 정상에서의 조망과 보드라운 흙길이 장점이라고 보면 되겠다. 전국에 있는 산을 다 올라보겠다는 사람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볼 필요가 없겠다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이 산이 뜨고 있다고 한다. 전국에서 가장 길다는 케이블카가 이 산의 정상까지 연결된 이후로는 정상이 아예 저잣거리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천시에서는 산을 아예 도심공원(都心公園)으로 바꾸어버렸다. 전망대와 데크로드 등 등산로 정비는 물론이고, 봉수대와 각산산성도 복원해 놓았다. 곳곳에 체육시설을 들어앉혔음은 물론이다. 그러다보니 운동 삼아 수시로 오르는 사천시민들 말고도 외지에서 찾아오는 등산객들의 숫자가 차츰 늘어가고 있는 추세란다.
▼ 산행들머리는 사천문화예술회관(사천시 동림동 190)
남해고속도로 사천 IC에서 내려와 3번 국도를 타고 남해방면으로 달리다가 대방교차로(사천시 대방동)에서 77번 국도로 옮긴 다음, 조금 더 들어가면 각산사거리(사천시 대방동)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삼천포대교로를 타면 잠시 후 사천문화예술회관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 아래 사진은 들머리 근처의 쉼터에 세워진 등산안내도이다. 이 부근에서 시작되는 6개 코스 가운데 5개의 코스가 이곳 문화예술회관에서 출발하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제1코스‘는 각산약수터와 전망대를 거쳐 정상을 찍은 후, 대방사로 내려오는 총 길이 3.12㎞의 종주코스이다. 소요시간은 1시간40분으로 적혀있다. 등산치고는 너무 짧지 않나 싶다.
▼ 주차장의 뒤편의 계단을 잠시 오르자 산자락으로 연결되는 돌계단이 나온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로 보면 되겠다.
▼ 가파른 계단을 잠시 오르자 운동기구 몇 점을 갖춘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엄청나게 큰 노거수(老巨樹) 아래에는 자그만 샘까지 파놓았다. 바가지까지 놓여 있는 걸로 보아 마시라는 모양이지만 그렇다고 냉큼 들여 마실 수는 없다.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게 왠지 께름칙했기 때문이다. 이정표(약수터 0.92㎞, 송신탑 1.37㎞, 정상 1.97㎞)와 등산안내도 외에도 등산시 유의사항과 등산로마다의 보행수 및 소요되는 칼로리의 양까지 적어 놓았다. 사천시에서는 이곳 각산을 도심(都心)의 체육공원쯤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 시작부터 조망이 터지는 걸 보면 오늘 산행은 복이 있나 보다. 삼천포 시가지가 널따랗게 펼쳐진다. 이곳도 역시 아파트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모양새이다.
▼ 산길은 일단 곱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까지도 완만하다. 육산의 전형적이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거기다 등산로의 정비까지도 잘 되어 있다. 조금이라도 경사가 가팔라졌다 싶으면 어김없이 계단을 만들어놓았다. 심심찮게 나타나는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빠짐없이 세워져 있음은 물론이다.
▼ 도심의 산답게 꽤나 많은 갈림길을 만들어낸다. 그 첫 번째는 ’동림보호수‘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이정표 : 정상↑ 1.67㎞/ 동림보호수→ 0.25㎞/ 문화예술회관↓ 0.3㎞). 이어서 ’관음사갈림길‘(이정표 : 용운사↓ 0.85㎞/ 관음사← 0.65㎞/ 문화예술회관↓ 0.65㎞)과 ’용운사갈림길‘(이정표 : 약수터↑ 0.22㎞, 정상 1.27㎞/ 용운사← 0.64㎞/ 문화예술회관↓ 0.7㎞), ’임도변체육시설 갈림길‘(이정표 : 약수터↑ 0.13㎞, 정상 1.17㎞/ 임도변체육시설→ 0.5㎞/ 문화예술회관↓ 0.8㎞) 등이 줄줄이 나타난다.
▼ 그렇게 잠시 올라가니 각산 약수터(이정표 : 정상 1.06㎞, 송신탑 0.5㎞/ 문화예술회관 0.92㎞)가 나온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만이다. 거대한 체육단지의 안에 들어앉은 약수터는 두 개의 단(段)으로 나뉘어져 있다. 쇠파이프를 통해 물줄기를 내뿜고 있는 상부는 식수용이 분명하고 하부는 대야를 놓아둔 것으로 보아 운동을 하고 난 뒤에 땀을 씻는 곳인 모양이다. 아무튼 약수터 주변은 먼지 한 톨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청소가 잘되어 있다. 많은 시민들이 만남의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약수터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아니 버거울 정도라고 하는 게 옳은 표현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가파른 곳마다 계단을 깔아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곳에서는 속도만 조금 떨어뜨리면 된다. 쉬엄쉬엄 오르다보면 이까짓 것 정도야 어디 힘들다는 축에나 들어가겠는가. 참! 약수터의 바로 위에서 ’용운사방면 갈림길‘(이정표 : 정상↑ 0.97㎞, 송신탑 0.37㎞/ 용운사방면← 0.78㎞/ 문화예술회관↓ 1.03㎞)을 만난다는 걸 깜빡 잊을 뻔했다.
▼ 길을 가다보면 돌탑도 보인다.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씩 올려놓았을 돌맹이들이 제법 큰 규모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작은 바램들이 모여 만들어낸 큰 소망이랄까. ’티끌 모아 태산‘이란 속담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에야 송신탑으로 연결되는 임도(이정표 : 송신탑(종점) 0.1㎞/ 삼소원 5.7㎞)에 올라선다. 약수터를 출발한지 20분 만이다. 임도의 오른편에는 헬기장이 만들어져 있다. 송신탑 근처에 터가 나지 않아 이곳에다 만들어놓았나 보다.
▼ 임도는 송신탑(送信塔)들이 무리지어 있는 곳에서 끝을 맺는다. 짙은 안개 사이로 나타나는 송신탑들이 나름대로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올라오는 내내 괴롭히던 빗줄기가 좋은 일도 하는가 보다. 보통 때였다면 흉물로 보였을 수도 있는 철제 괴물들을 저리도 예쁜 모습으로 둔갑을 시켰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지사(人生之事)를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이곳에는 ’각산 MTB 도로‘가 그려진 안내판이 세워져있다. 5.2㎞에 이르는 임도를 MTB와 겸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송신탑 근처에는 정자(亭子)가 지어져 있다. 정자에 올라서도 조망은 터지지 않는다. 이곳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했으니 잠시 쉬어가라는 배려용인가 보다.
▼ 이후부터는 능선을 탄다. 경사가 거의 없는 편안한 산길이 이어진다.
▼ 그렇게 작은 언덕 하나를 넘자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산 전체를 감시할 수 있는 곳에 세우는 시설이니 이곳의 조망이 뛰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런 이점을 살리려는지 한켠에 타워(tower) 모양으로 생긴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나무로 만들다보니 튼튼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안전을 위해 35명 이상은 한꺼번에 오르지 말라는 경고판이 세워진 걸 보면 말이다.
▼ 전망대에 오르니 전망안내도가 세 개나 세워져 있다. 창선·삼천포대교를 낀 삼천포 앞바다가 그려진 안내도를 가운데에 놓고 왼편에는 와룡산이 조망되는 그림, 그리고 오른편에는 남해대교와 지리산이 그려져 있다. 망원경도 보인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조금 더 꼼꼼히 살펴보라는 모양이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이다. 짙게 낀 구름으로 인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전망대에서 길은 두 갈래(이정표 : 숲길↖/ 데크킬↗)로 나뉜다. 산허리를 따르는 숲길을 버리고 데크길을 따르기로 한다. 능선을 따른다는 게 마음에 들어서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헤집으며 난 길은 상큼하기 짝이 없다. 하도 울창하다보니 우중인데도 불구하고 솔향이 짙은 것이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길은 다시 합쳐진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대방사 갈림길’(이정표 : 봉화대↑ 0.20㎞/ 대방사← 1.01㎞/ 문화예술회관↓ 1.85㎞)을 만든다. 사각의 정자가 지어진 것 말고는 특별한 게 없으나 대방사로 내려가는 길이 갈린다는 것만큼은 꼭 기억해 두자. 정상에서 각산산성으로 내려가는 길의 들머리를 찾지 못했을 경우에는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 대방사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 정상으로 향한다. 200m쯤 진행했을까 진행방향에 거미줄처럼 얽힌 모양새의 데크계단이 나타난다. 그래선지 초입에 세워진 이정표들까지도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나타나있는 지명들이 중구난방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 계단의 곳곳에는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의자는 물론 탁자까지 세팅한 멋진 쉼터이다.
▼ 계단의 끄트머리쯤에 이르자 초가(草家)가 나타난다. ‘각산봉수대’를 관리하던 봉수군(烽燧軍)의 생활상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복원(2017년) 해놓은 ‘봉수군 막사 터’라고 한다. 아궁이 시설을 갖춘 막사 외에도 창고로 여겨지는 건물 한 동을 더 지어놓았다. 발굴조사에서 실제로 확인된 곳에다 지었다는데 다른 봉수대 건물지에서는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아무튼 당시 봉수군. 즉 조선시대 일곱 가지 천대받는 구실아치인 칠반천역(七般賤役) 중 하나로 알려진 봉수군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아닐까 싶다.
▼ 문헌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봉수제(烽燧制)가 군사적 목적으로 시행된 것은 삼국시대였다. 하지만 그 제도가 확립된 시기는 고려시대로 봐야 한다. 1149년(의종 3)부터 법으로 정하여 실시했기 때문이다. 봉수대(烽燧臺)에서 기거하면서 후망(候望)과 봉수(烽燧)를 수행하는 요원들이 봉수군(烽燧軍)이다. 봉화군(烽火軍) 또는 봉졸(烽卒)·봉군(烽軍)·봉화간(烽火干)·간망군(看望軍)·후망인(候望人)이라고도 불리었다. 조선시대의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봉수군(烽燧軍)의 정원을 10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내지봉수(內地烽燧)와 경봉수(京烽燧)의 정원은 조금씩 차이가 있으니 참조한다. 아무튼 봉수군(烽燧軍)은 신량역천(身良役賤)으로 봉수대 부근에 사는 사람을 차정(差定)하였다. 그들은 대개 단한(單寒)·노약(老弱)·우혹(愚惑)한 사람이었으므로 보강할 조치(賞典)를 취하도록 한 바도 있었으나, 성종초(成宗初)에는 그 역(役)이 다른 천역(賤役)에 비하여 부담이 적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자원했다고 전해진다. 공부(貢賦) 외 일체의 잡역(雜役)을 면제받았으니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 두어 개의 포토죤도 보인다. 조형물의 생김새에 맞춰 포즈라도 잡아볼 일이다.
▼ 정상에는 마당처럼 널따란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아까 들렀던 전망대와 마찬가지로 세 개의 조망도(眺望圖)가 세워져 있다. 셋 모두 바다에 떠있는 섬들로 채워진 게 다를 뿐이다. 그만큼 바다에 대한 조망이 뛰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은 예외이다. 구름이 내려앉으면서 세상을 온통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다른 이의 글로 보는 즐거움을 대신해 본다. ’전망대에 서면 남해의 풍경이 장쾌하게 펼쳐져 숨이 탁 트인다. 사천에 속한 섬뿐만 아니라 사량도, 수우도, 두미도 등 아름답기로 유명한 통영의 섬들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지족해협의 바다 곳곳에 V자 모양의 나무를 꽂은 전통어업인 죽방렴도 보인다. 그 사이로 작은 고깃배들이 소리 없이 미끄러진다.‘ 다른 이의 느낌도 살펴보자. ’각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섬들은 아득하다.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듯한 아련함을 동반하는 아득함. 그 아득함은 삼천포 앞바다의 빼어난 풍광을 완성하는 중요 요인이다. 아득해서 아름다운 풍경이다.‘
▼ 전망대 한켠에는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꼼꼼히 살펴볼 일이다. 그래야만 각산산성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를 놓칠 경우에는 전망대의 왼편에 꼭꼭 숨겨진 하산 길을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 정상표지석은 ’사천바다케이블카‘의 각산정류장 방향으로 조금 더 나아가야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저 눈으로만 즐겨야 할 일이다. 다가가지 못하도록 나무난간으로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정상석을 배경삼아 인증사진을 찍어가고 있는 마니아들에게는 난감한 일일 수도 있겠다. 넘지 말라는 금줄을 부득이 넘어가야만 할 테니까 말이다. 사천시청에 물어보고 싶다. 요즘 화두(話頭) 가운데 하나가 ’규제의 해제‘라고 하는데 사람들이 다가갈 수 있는 곳으로 정상석을 옮겨놓지 않을 바에는 차라리 그들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주는 게 옳지 않겠는가. 참고로 각산(角山)이란 이름은 엎드린 용의 뿔처럼 생겼다는 데서 연유되었다고 한다.
▼ 정상표지석의 뒤쪽, 그리니까 각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봉수대(烽燧臺)가 복원되어 있다. ’각산봉수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6호)‘인데 수많은 자연돌을 모아 둥그렇게 쌓아올린 모양새이다. 널찍하고 둥그런 단위의 중앙에 또다시 둥근 단을 쌓아올렸는데 아랫단보다 높직한 모습이다. 2개의 단에는 불을 지피기 위해 필요했던 것으로 보이는 사각의 뚫린 공간이 남아 있으며, 아랫단 한쪽에는 위로 오르는 계단을 두기도 하였다. ’각산봉수‘는 남해 금산에 있는 구정봉에서 올린 봉화를 창선 대방산을 통해 이어받아 사천 용현면(침지봉수)과 곤양면(우산봉수)으로 전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세종 때는 봉수망의 정비로 침지봉수와 서낭당봉수를 폐지하고 용현의 안점봉수를 설치하여 연락했다. 또한 사량도의 공수산봉수를 고성의 ’좌이산봉수‘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봉수는 ‘봉화’라고도 하며 봉(烽:횃불)과 수(燧: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연락방식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였다. 평시에는 횃불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3개, 국경을 넘어오면 4개, 접전을 하면 5개를 올렸다. 만약 구름이 끼거나 바람이 불어서 연락이 안 될 때에는 봉졸(烽卒)이 차례로 달려서 보고했다고 한다.
▼ 하산을 시작한다. 전망대의 왼편 끄트머리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놓여있으나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으니 유념해 둘 일이다.
▼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가는 산길을 따라 잠시 걷자 머리 위를 지나가고 있는 케이블카가 보인다. 초양도와 각산의 정상을 왕복하는 ‘사천 바다 케이블카’일 것이다. 산길은 케이블카를 지지하고 있는 철탑의 아래로 나있다. 그런데 케이블카가 철탑을 지나가는데도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새들(Saddle) 구간인데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 사천케이블카는 모든 구간이 무진동(無振動)으로 운행된다는 기사를 읽은 것도 같다. 그만큼 쾌적한 관람이 가능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 정상에서 10분 조금 못되게 내려서자 각산산성(角山山城 : 경남 문화재자료 제95호)이 나온다. 삼천포항을 서남 방향으로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각산의 8부 능선에 돌로 쌓은 길이 242m의 산성이다. 산성의 유래는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605년 백제의 제30대 왕인 무왕이 축성했다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진주가 본래 백제의 거열성이었음을 전하고, 일본서기는 6세기 중엽에 백제가 섬진강을 건너 진주지역을 압박하고 있음을 전한다. 백제가 가야지역 진출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쌓았지 않나 싶다. 이후 고려왕조가 삼별초의 난을 평정할 때도 이용되었고, 1350년(공민왕 9년) 왜구의 대대적으로 침략으로 각산 마을이 불탔을 때에는 지역의 주민들이 이 성에서 돌팔매로 항전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남쪽 성문은 원형대로 남아 있으나 성벽의 대부분이 허물어져 1991년과 1993년, 1995년 등 세 차례에 걸쳐 복원했다고 한다.
▼ 조금 가팔라진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더 걷자 서너 개의 벤치가 놓여있는 삼거리(이정표 : 실안마을 갈림길↑ 0.3㎞/ 대방사←/ 각산산성↓ 0.4㎞)가 나타난다. ‘실안·대방 갈림길’인데 대방사는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하지만 이정표에는 왼쪽 방향의 지명이 빠져 있으니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 왼편으로 방향을 튼 산길은 갑자기 가팔라진다. 그것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팔라졌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곳도 역시 통나무계단이 곱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 같이 질척거리는 날에도 미끄러지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보면 되겠다.
▼ 그렇게 9분 정도를 내려서자 숲속에 고즈넉하게 들어앉은 작은 암자가 나타난다. 대방사의 부속 암자인 ‘서암(西庵)’으로 대한불교조계종의 8대 종정(宗正)을 지냈던 ‘서암(西庵)’ 큰스님이 직접 이름을 짓고 수생(修生)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자신의 법명에서 따왔는지 아니면 암자가 각산의 서쪽에 자리 잡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인지는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법당보다도 더 커 보이는 요사(寮舍)를 거느린 특이한 암자이다. 하긴 종정까지 지낸 큰스님이 머물렀던 곳이니 그를 추모하는 많은 스님들이 몰려들 것이고, 그들이 머물려면 최소한 이 정도 규모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 암자를 빠져나오니 시야가 열리면서 남해바다가 나타난다. 언젠가 서암에서의 조망을 거론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하는 얘기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남해바다에 떠 있는 여러 크고 작은 섬들이 삼존불(비로자나부처님, 아미타부처님, 석가모니부처님)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중생들을 모두 구원하신 뒤 도솔천으로 다시 승천하기 위해 잠시 누워서 쉬고 있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저 그렇고 그런 바다 풍경에 불과할 따름이다.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豕眼見唯豕, 佛眼見唯佛)’이라는 말이 있다. 조선 개국초기의 승려인 무학대사가 썼던 어휘인데,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의미이다. 아무래도 내 수준으로는 그런 현학적(衒學的)인 풍경을 그리기에 무리였던가 보다.
▼ 잠시 후 더딘 발걸음을 대방사(大芳寺)에 내려놓는다. 언제 누가 무슨 연유로 지었는지는 몰라도 대웅전과 선원, 조사당, 요사 등 자그맣지만 나름대로 규모를 갖춘 사찰이다. 참! 절의 입구에다 ‘성지사찰 대방사’라고 적힌 표지석과 함께 대방사의 연혁이 적힌 안내판을 세워놓기는 했다. 하지만 글씨를 판독할 수도 없을 정도로 낡아도 너무 낡았다. 그저 ‘1941년’이라는 숫자 등 몇 문장이 보일 따름인데 혹시 이 절의 창건년도 일지도 모르겠다. 경내로 들어서자 대웅전이 눈길을 끈다. 여느 사찰들과 달리 지붕에 청기와를 얹은 것이다. 창덕궁의 선정전을 산에서 보는 것 같아 신기할 따름이다. 법당의 현판도 ‘대웅전(大雄殿)’ 대신에 ‘큰 법당’이라고 한글로 적었다. 문득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외치던 명창(名唱) 고(故) 김동진선생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여느 절들보다는 훨씬 많은 불상들이 옥외에 늘어서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 대웅전의 왼편에 커다란 바위로 축대를 쌓고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을 모셨다. 반가사유상은 석가모니가 태자시설 나무 아래서 오른쪽 다리를 왼편 무릎위에 올려놓고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을 담고 있는 불상을 말한다. 높이가 12m에 이르는 이 반가사유상은 세계 최대를 자랑한단다. 축대의 아래에는 인위적으로 동굴법당을 만들고 그 안에 수없이 많은 작은 불상들을 모셨다.
▼ 대방사를 빠져나오자 시야가 툭 터지면서 사천 앞바다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슬슬 산행이 끝나가나 보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삼천포대교 사거리’에 내려선다. 길가에 산행안내도를 세워놓은 걸 보면 이곳이 오늘 산행의 날머리라는 얘기일 것이다. 하지만 산악회의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사천 바다 케이블카’ 정류장까지는 조금 더 걸어야만 한다.
▼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삼천포대교로’를 따른다. 왕복 4차선의 널따란 차도이지만 인도가 따로 만들어져 있으니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길가 축대를 따라 흐드러지게 피어난 능소화나 감상하면서 걸어볼 일이다. 어쩌면 오늘 산행의 대미(大尾)를 능소화가 장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답기 짝이 없는 꽃들이 저렇게 무리지어 피어난 걸 보면 말이다. 누군가는 여름을 일러 초록의 바다라고 표현했었다. 하지만 그 푸름도 오래가다보면 신물이 나게 된다. 이럴 즈음 나타나는 게 능소화로, 담쟁이덩굴처럼 빨판이 나와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달라붙어 아름다운 꽃 세상을 연출하는 소중한 꽃이다.
▼ 산행날머리는 사천 바다케이블카 대방정류장
10분 조금 못되게 걸었을까 ‘사천 바다 케이블카’ 대방 정류장이 얼굴을 내민다. 오늘 산행은 2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다. 산행안내도에 적혀있던 시간보다 30분이나 더 걸린 셈이다. 아무래도 이것저것 둘러보느라 많이 지체되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사천 바다 케이블카’는 산과 바다 그리고 섬을 잇는 국내 최초의 케이블카이다. 초양도와 사천 바다 그리고 각산을 지나는 선로의 길이가 2.43km나 되니 국내 최장이란 타이틀(title)까지 얻었다. 올해 4월에 개통한 케이블카는 두 종류의 캐빈(cabin)이 운행되는데 이 가운데 ‘크리스탈 캐빈’은 바닥이 투명 유리로 되어있기 때문에 발아래로 산과 바다의 풍경을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816m 길이의 바다 구간을 최고 높이 74m(아파트 30층 높이)에서 내려다볼 수 있어 아찔함을 더해준단다.
▼ 남은 시간이 하도 많아 바닷가를 둘러보기로 한다. 3번 국도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건너자 널따란 광장이 나타난다. ‘작은 미술관’이 들어있는 ‘사천문화재단’ 건물이 보이는가 하면 공원의 옆에는 작은 선착장까지 마련되어 있다. 고성의 상족암까지 둘러보는 유람선이 이 부근에서 출발한다고 하던데, 혹시 그 유람선을 대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사천팔경의 제1경인 창선ㆍ삼천포대교가 바로 코앞이어선지 포토죤(photo-zone)도 만들어져 있다.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라는 배려일 것이다. 하트 모양으로 생긴 포토죤도 보인다. 그 옆에 ‘삼천포아가씨의 실화 러브스토리’를 적은 놓은 것으로 보아 함께 온 연인들에게 삼천포아가씨의 사랑까지 듬뿍 받아가라는 모양이다.
▼ 바닷가에 이르면 ‘창선ㆍ삼천포대교(昌善三千浦大橋)’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사천시의 대방과 남해군 창선을 연결하는 총연장 3.4㎞에 너비가 14.5m인 연륙교(連陸橋)이다. 삼천포대교와 초양대교, 늑도교, 창선대교, 단항교 등 다섯 개의 다리가 순수 국내 기술로 각각 다른 공법에 의해 시공되어 교량전시장으로도 불린다. 중간에 초양도와 늑도, 모개섬을 지나게 되는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올랐을 만큼 도심의 불빛과 어우러진 멋진 야경을 자랑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유채꽃이 만발할 때면 그 아름다움은 더욱 짙어진다고 한다. 한려수도의 청량한 장관과 함께 유채꽃의 노란 빛깔을 품은 섬의 모습은 가히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단다. 사천팔경 가운데서도 제1경으로 꼽힌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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