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원산(中元山, 800m)
산행일 : ‘12. 8. 18(토)
소재지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단월면의 경계
산행코스 : 주차장→남릉→중원산→암릉→신점리 갈림길→숯가마터→중원계곡→중원폭포→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 3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인근 용문산과 도일봉 등의 산줄기에다 중원산을 합쳐, ‘경기의 금강산(金剛山)’이라고 불릴 정도로 웅장(雄壯)한 산세(山勢)를 자랑한다(그러나 다른 산들 보다 빼어난 점은 발견하기 힘들다). 산 자체의 볼거리보다는 중원산이 품고 있는 중원계곡과 용계계곡으로 인해 유명해진 산이다. 기암(奇巖)이 늘어선 계곡에는 중원폭포 등 수많은 폭포(瀑布)와 소(沼), 담(潭)이 널려 있기 때문에 여름철이면 수많은 피서객(避暑客)들이 찾아들고 있다. 거기다 경춘선 전철(電鐵) 개통으로 접근성까지 좋아진 후부터는 가족(家族)산행지로 부쩍 인기가 높아졌다. 산행과 물놀이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 산행들머리는 중원산주차장(용문면 중원리) 중부고속도로 하남 I.C를 빠져나와 45번 국도(國道 : 하남방향)를 이용하여 팔당대교(大橋)를 건넌 후, 6번 국도(횡성방향)를 따라 달리면 양평읍을 거쳐 용문면에 이르게 된다. 용문면 마룡교차로(交叉路 : 용문면 마룡리)에서 좌회전하여 341번 지방도(地方道)를 따라 달리다가, 중원천을 건너기 직전에 왼편 중원산로(路)로 접어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이 시작되는 중원산 주차장에 닿게 된다.
▼ 주차장에서 중원계곡방향으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 왼편 중원폭포 방향으로 100m쯤 진행하다 ‘하얀집 펜션’ 앞에서 왼편 산길로 접어든다. 비록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으나 산악회 리본들이 많이 걸려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산길은 처음에는 경사(傾斜)가 가파르지도, 그렇다고 완만(緩慢)하지도 않게 이어진다. 주위는 온통 소나무 숲, 목재용(木材用)으로 쓸 만한 나무가 하나도 없이, 모두가 구불구불한 것이 순수한 토종 소나무인가 보다. 등산로 주변은 소나무 숲 외에도, 울창한 잣나무 숲이 자주 눈에 띈다. 이곳은 잣나무로 유명한 가평의 옆 동네인 것이다. 산길은 수북이 쌓인 솔가리로 인해 폭신폭신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어지는 솔숲을 따라 얼마간 걷다보면, 잣나무 숲 아래에서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다른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이정표 : 중원산1.99km/ 주차장0.52km)
▼ 삼거리를 지나면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오르막이 끝나면 산길은 잠깐 동안 완만(緩慢)하게 변했다가, 또다시 산길은 가파르게 변해버린다. 산길은 그렇게 끊임없이 오르내리며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등산로 주변의 숲은 참나무들이 숫자를 늘려가더니 어느새 소나무보다 참나무들의 숫자가 더 많아져 버렸다. 산이 온통 짙은 운무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 외에는 볼 것이 없는 단조로운 산행이 되어버렸다.
▼ 비가 오락가락할 것이라는 일기예보에 일부러라도 맞추려는 듯이 숲은 온통 안개로 가득 차 있다. ‘후드득 후드득’ 빗방울이 나뭇잎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일행들의 배낭은 어느새 레인커버(rain cover)로 씌워져 있지만, 난 고집스럽게도 커버를 씌우지 않은 채로 산행을 계속한다. ‘운무(雲霧) 때문에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비(雨)만은 내리지 말아주소서!’ 비 때문에 사진촬영을 못하게 될까봐 안타까워하는 내 조바심을 감안하셨는지 산행을 끝마칠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았다. 산에 가득한 습기 때문인지 가는 길에 망태버섯의 고운 자태를 자주 볼 수 있었다.
▼ 중원산을 걷다보면 곳곳에서 이정표(里程標)를 만나게 된다. 이정표는 두 가지 형태(形態)인데, 같은 양평군에서 만들었지만 설치한 년도(年度)가 다른 탓인지 생김새가 각기 다르게 생겼다. 양평군에서 등산로 정비 등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痕迹)이 역력하지만, 이정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정표를 보고도 방향을 찾기가 힘들뿐더러, 적혀있는 거리도 들쑥날쑥 제 맘대로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산행을 시작해서 두 번째 만나게 되는 이정표(중원산1.44km/ 주차장1.06km)와 세 번째 이정표(중원산1.47km/ 주차장1.55km)이다. 두 번째 만난 이정표에서 한참을 더 걸었는데도 이정표 상의 거리는 더 멀어져 버린 것이다.
▼ 세 번째 이정표를 지나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두어 번 더 치고 오르면 짙게 낀 운무(雲霧)속에서 멋진 풍광(風光)이 선을 보인다. 옛날 神仙들이 살았다는 세외도원(世外桃園)이 이런 풍경(風景)이 아니었을까? 운무(雲霧)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풍경은 바위와 노송(老松)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다. 그야말로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山水畵)이다. 그러나 하나 아쉬운 점은 조망이 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맞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신선경(神仙景)을 만들어내었던 운무가 이번에는 안타깝게도 조망(眺望)을 막고 있는 것이다
▼ 수십 길 바위절벽(絶壁) 위에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소나무 한 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쪽의 신점리 방향으로 용트림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야말로 명품(名品)소나무이다. 아니 명품 중에서도 명품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문득 용송(龍松)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다. 소나무의 생김새가 영락없이 용틀임을 연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괴산군에 있는 삼송리(청천面)에 가면 용송(龍松)이라고 불리는 왕소나무를 만나볼 수 있다. 그 소나무에 용송(龍松)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가, 나무줄기의 생김새가 마치 용(龍)이 꿈틀거리는 것과 같다고 해서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 중원산의 소나무도 용틀임의 자세를 보이고 있으니, 용송(龍松)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나무랄 일은 아닐 것이다.
▼ 용송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중원산 정상이다.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널따란 정상에 오르면 한쪽 귀퉁이에 세워진 커다란 정상석과 ‘중원산 정상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는 산행안내판이 등산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정상 주변에 나무들이 없기 때문에, 날씨가 좋은 날에는 용문산의 웅장한 산줄기가 시야(視野)에 가득하고, 도일봉이 손에 잡힐 듯 건너다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운무(雲霧)가 짙게 낀 오늘은 바로 앞의 봉우리까지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상에는 이정표가 2개가 세워져 있는데, 한쪽 방향만 지시하고 있는 것이 다른 산에서 보아온 이정표와는 다른 점이다. 이정표 하나에 양방향을 표시했더라면, 2개를 세워야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이 지났다. 이정표 #1 : 중원리 등산로입구2.8km, 상현마을 등산로입구 2.9km), 이정표 #2 : 도일봉 6.63m, 싸리재 5.06Km, 중원리 등산로입구 3.49Km, 중원폭포 2.88Km, 신점리 조계골 4.23km
* 도교(道敎)에서 말하기를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일 년에 세 번(1월15일, 7월15일, 10월15일) 인간의 선악(善惡)을 살피는데, 이를 일컬어 삼원(三元)이라고 한다. 음력 1월15일(보름)을 상원(上元), 7월 보름은 중원(中元), 그리고 10월 보름은 하원(下元)이라고 부르는데, 이중 중원(中元)이 중원산(中元山)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근원(根源)이라는 설(說)이 있다. 옛날 인근 주민들이 중원에 해당되는 7월 보름날 이 산에 올라 산신령(山神靈)께 제(祭)를 올렸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지금도 중원산 정상의 남서쪽 양사골에는 산신당(山神堂)을 비롯한 무속촌(巫俗村)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 중원산 정상에서 싸리재로 가는 능선은 암릉으로,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이다. 암릉은 거대(巨大)하지도, 그렇다고 기괴(奇怪)하지도 않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바위와 소나무들이 멋진 앙상블(ensemble)을 펼쳐 보이는 능선은 걷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고 있다.
▼ 비록 바윗길이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조금만 위험하다싶으면 어김없이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쉬운 코스는 바위를 붙잡고 오르고, 그마저도 힘들다고 생각될 때에는 바위를 우회(迂廻)하면 된다. 능선을 걷다보면, 가끔 등산로 옆의 거대한 바위 위로 오를 수 있도록 매달아 놓은 로프가 보인다.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올라가 보는 것이 좋다. 오르는 바위마다 뛰어난 전망대(展望臺)이기 때문이다.
▼ 능선을 걷다보면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등산객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서로들 반갑게 인사말을 건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오가는 말은 ‘안녕하십니까?’와 ‘어디로 해서 오시는 겁니까?’의 단 두 마디뿐이다. 하긴 더 이상 무슨 얘기가 필요하겠는가. 오고가는 인사말이야 통과의례(通過儀禮)일 테고, 제일 궁금한 것은 앞으로 가야할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일 것이다. 그만큼 무더운 여름날의 산행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 울퉁불퉁한 바위들로 가득한 능선길, 그렇다고 소름끼칠 듯이 위험하지도 않은 바윗길에서 약간의 스릴을 즐기다보면 등산로는 갑자기 고도(高度)를 뚝 떨어뜨려버린다. 가파른 암릉길을 로프에 의지해서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안부 사거리이다(이정표 : 신점리 조계골 3.5km/ 중원산 0.73km, 상현마을 등산로입구 3.53km/ 중원폭포 2.15m, 중원산등산로입구 2.76km/ 도일봉 5.96km, 싸리재 4.39km). 이곳 사거리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용문산 입구에 있는 신점리로 가게 되기 때문에, 중원폭포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 중원계곡으로 내려서는 하산 길은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 거기다가 너덜길도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내려서기가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등산로 주변은 참나무 일색(一色), 비록 오래 묵지 않은 싱싱한 나무들이지만 하늘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우거져 있다. 싱싱한 참나무들은 여인들의 목걸이처럼 나뭇가지에 늘어져 있는 굵고 오래 묵은 다래넝쿨들과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다. 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넝쿨들을 훑어보지만 다래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10년쯤 전에 이곳에 왔을 때에는 배낭이 무거울 정도로 많이 땄었는데.... 하긴 한적(閑寂)함을 잃어버린 지 이미 오래인 유원지(遊園地)에서, 천연(天然)의 과일을 기대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을 것이다.
▼ 가파른 내리막길을 30분 정도 내려서면 이정표(정상2.0km/ 중원폭포2.85km) 하나가 보이고, 이내 복원(復元)해 놓은 ‘숯 가마터’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숯을 구웠다고 한다(안내문). 중원산을 오르다보면 정상어림의 용송을 지나면서부터는 소나무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대신 참나무들이 온통 산을 점령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숯은 참나무로 구워낸 것을 상품(上品)으로 치는데, 참나무가 울창한 중원산에 숯가마가 있었음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원산에서는 오래 묵은 아름드리 참나무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 안부 갈림길에서 50분 남짓 내려서면 중원계곡과 만나면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이정표 : 중원산 8.495km, 싸리재 3.375Km/ 싸리봉 4.015Km/ 도일봉3.41km). 이곳에서 왼편은 싸리재나 도일봉으로 가게되고, 하산지점인 상현마을로 가려면 계곡을 따라 오른편으로 내려가야 한다. 암벽(巖壁)을 양옆에 끼고 이이지는 중원폭포 부근의 계곡과는 달리, 상류(上流)인 이곳은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냇가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계곡을 흐르는 물은 다른 계곡에 비해 양(量)도 많을 뿐더러, 거기다가 바닥에 깔린 돌 사이를 헤엄치고 다니는 송사리가 보일 정도로 수정처럼 투명하기까지 하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물속으로 뛰어들고 본다. 맑고 시원한 물의 유혹에 옷 벗을 시간까지도 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 도일봉 갈림길에서 계곡을 따라 5분 정도 걷다보면 우렁찬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무테크로된 전망대 아래에서 3단(段)으로 이루어진 중원폭포를 만나게 된다. 비록 폭포의 높이는 10m도 채 안되지만, 기암절벽(奇巖絶壁)을 병풍(屛風)처럼 두르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멋진 경관(景觀)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느 글에선가 중원폭포의 물줄기를 일컬어 ‘수줍은 처녀의 댕기 같다’고 표현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맞는 표현일 것이다. 계곡의 상류에 있는 폭포(瀑布 : 치마)를 보고 ‘여인의 치마’를 연상해 내었다면, 중원폭포의 물줄기도 여인의 모양새에서 찾는 것이 당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폭포의 물줄기 아래에는 넓고 깊은 못이 웅크리고 있다.
* 중원폭포는 비록 3단 폭포지만, 거의 누워 있는 형상이라서 물의 기세(氣勢)보다는 오히려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암벽(巖壁)이 더 인상적이다. 또 폭포의 물줄기 아래의 용소(龍沼)는 상당히 넓고 깊어서 물놀이를 하기에 제격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어른이고 아이이고 할 것 없이 서로 멋진 다이빙을 선보이느라 정신들이 없다. 마침 멋지게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멋진 폼으로 보아 다이빙 마니아(mania)가 아닌가 싶다.
▼ 물놀이를 하다가 잘못해서 물을 먹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 꺼림칙하게 여기지만, 중원계곡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중원계곡의 물은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계곡이라고 하면 얼핏 사찰(寺刹)이나 기도원, 그리고 별장 등이 연상될 정도로 계곡의 곳곳에 갖가지 시설물(施設物)들이 널려있다. 그러나 이곳 중원계곡에는 그런 시설물을 찾아볼 수 없다. 오직 맑은 물과 푸른 숲만이 가득하다. 산자락을 뒤덮은 울창한 수림(樹林)과 기암괴석(奇巖怪石)을 에돌아 흐르는 옥수(玉水)만이 계곡에 가득할 따름이다.
▼ 산행날머리는 상현리 주차장
중원폭포에서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던 상현리 주차장까지는 30분 조금 넘게 더 걸어야 한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호젓한 등산로는 10분정도로 끝을 맺고, 나머지 구간은 수많은 펜션과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흡사 어느 유명한 관광지의 집단시설지구(集團施設地區)를 방불케 하고 있다. 귀경시간이 조금 여유롭다면 근처 식당에 들러 촌닭백숙을 먹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닭들을 얼마나 놓아 먹였는지, 이빨이 아플 정도로 육질(肉質)이 단단하다. 우리가 어릴 때 먹던 촌닭의 육질이 바로 이렇게 질겼었다. 제사(祭祀) 때나 맛볼 수 있던 촌닭의 맛을 떠올리다보면 난 어느새 고향마을에 가 있다. 그리고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어머니는 안채 마루에 앉아 밀가루를 반죽하고 있다. 아마 나를 위해 칼국수를 만들려나 보다.
* 중원폭포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다 보면 ‘솔수펑이 펜션’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간판이 보인다. 요즘에 솔수펑이라는 낱말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솔숲이 있는 곳’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이지만 우리 곁에서 사라진지 이미 오래전이기 때문이다. 시설도 깔끔하게 현대식으로 지어졌을 뿐만 아니라, 수영장까지 갖추고 있다니 한번쯤 이용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솔수펑이라는 낱말 하나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대가는 충분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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