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산(飛鳳山, 227.8m)

 

여행일 : ‘17. 2. 12()

소재지 : 경기도 안성시 가사동 등 몇 개 동과 보개면, 대덕면의 경계

산행코스 : 남파로오거리약수사남자약수터비봉정장수바위비봉마루박두진시인 묘비봉나래너리굴문화마을샛죽바위산(거북바위)굴암사(산행시간 : 2시간 40)

 

함께한 사람들 : 지인들과 함께


특징 : 한마디로 아담하고 편한 산이다. 그리니 산행이라는 표현보다는 차라리 산책쯤으로 치부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그래선지 이곳 지자체인 안성시에서도 산 전체를 아예 공원으로 가꾸어 놓았다. 널따랗게 산책로를 내고 약수터를 깔끔하게 단장하는 한편 곳곳에다 벤치와 운동기구들을 배치해 쉼터로 조성했다. 두어 곳의 정자는 보너스(bonus)로 보면 되겠다. 뿐만 아니라 배드민턴장과 체력단련장 등 본격적으로 몸을 만들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숫제 도심(都心)의 공원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약수사 옆에 세워진 등산로 안내도에는 이곳을 비봉공원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곳 비봉산은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코스로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짙은 소나무 숲속으로 난 보드라운 흙길을 산책삼아 걸으며 산정의 9부 능선에 축조했다는 토성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이다. 거기다 너리굴문화마을에라도 들러 전시작품들도 구경하고, 평소에 사용하는 다양한 물건들을 만들어 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한주아파트 앞 남파로오거리(안성시 봉남동 354-2)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근교산행이다. 강남에 있는 경부고속터미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안성시까지 온다. 1시간 정도가 걸려 도착하게 되는 안성터미널에서는 택시를 이용해서 들머리까지 왔다. 일행이 네 명이나 되니 버스요금으로 택시를 타면 남은 돈으로 어묵 하나씩을 사먹어도 되니 이 얼마나 경제적인가. 거기다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까지도 단축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한주아파트로 들어가는 진입로의 왼편에 보면 굵은 소나무들까지 옮겨 심어 놓은 작은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이 공원의 뒤편 산자락에 내놓은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오늘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이곳이 비봉산 등산로 ’D코스의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작은 꽃밭을 만난다. 앙증맞게 생긴 조형물들까지 배치해 놓은 것이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역력하다. 누군가 이곳 비봉산을 일러 도심공원(都心公園)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산길은 경사(傾斜)가 거의 없다. 그런데도 가운데에다 이런 난간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 정도의 가파름에도 힘겨워할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그래 위에서도 얘기 했듯이 이곳은 공원이다. 그러니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산길이 아니라 산책로라고 보면 될 일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7분쯤 되었을까 길이 둘(이정표 : 팔각정280m/ 약수사390m)로 나뉜다. 곧장 팔각정으로 가도 되지만 왼편에 있는 약수사를 들러보기로 한다. 예정된 산행거리가 짧으니 구태여 발길을 서두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약수사가 비봉산에 들어앉은 다섯 개의 사찰 중에서 가장 큰 절이라는 것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산자락을 헤집으며 난 길을 따르다보면 왼편 숲이 잠시 열리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안성시가지가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5분쯤 후 약수사(藥水寺)에 이른다. ’한국불교 금강선원소속의 사찰로 알고 있는데, 외관으로 보아 역사는 그다지 깊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절은 대웅전(大雄殿)을 한가운데에 두고 왼편에는 무량수전(無量壽殿)과 범종각(梵鍾閣)을 그리고 대웅전의 뒤에는 산신(山神)과 칠성(七星), 독성(獨聖)을 함께 모시는 삼성각(三聖閣)을 배치했다. 그리고 입구에는 요사채(寮舍)를 갖추었으니 비록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작다고 할 수도 없는 절이다. 거기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화강암을 깎아 만든 대불(大佛)까지 조성해 놓았다. 절의 이름에 비추어 볼 때 약사여래(藥師如來)가 아닐까 싶다. 아차! 용왕각(龍王閣)을 빼먹을 뻔 했다. 요사채 옆의 동혈(洞穴) 안에 있는 약수터에다 제단(祭壇)을 만들고 용왕각이란 이름을 붙였다. 약수사라는 이 절의 이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절을 빠져나오면 오거리이다. 정상과 남자약수터, 안성향교, 법계사 그리고 통일사로 연결되는 길이 나뉜다는데 방향을 구분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곳에는 비봉공원등산로안내도와 ’119구호지점표시목(1-2)‘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정표가 더 눈길을 끈다. 약수터를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구분해 놓은 것이다. 목욕탕이나 화장실 등 은밀한 곳에만 남녀구분이 있는 줄로 알고 있었기에 가슴부터 두근거린다. 내 나이 육십을 훨씬 넘겼건만 아직도 난 젊은가 보다. 이 정도를 갖고 가슴까지 뛰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니 약수터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처구니없다는 헛웃음뿐이다. 탁 터진 것이 여느 약수터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비밀스러운 게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깨진 것은 서운했지만 물맛만은 괜찮았다. 이곳까지 내려온 본전은 찾은 셈이다. 아무튼 이곳 비봉산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山城)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산성에 머물던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이 세 곳이 있었는데 그중 둘이 남탕과 여탕이라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본성(本城) 동쪽(외성의 안쪽)에 있었다니 참조한다.



약수터의 옆에는 체력단련장이 있다. 이 또한 비봉산의 자랑이다. 비봉산이 안성시민들의 건강지킴이 노릇을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체력단련장에는 웬만한 헬스클럽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수많은 운동기구들을 갖춰 놓았다. 이런 시설들을 갖추고 있는 안성시민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남자약수터 위에는 배드민턴 코트가 있다. 그리고 여자약수터는 그 위에 자리 잡았다. 약수터로 내려가 보는 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그 실체를 알고 난 지금은 궁금할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약수터를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돌탑 두 기가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는 능선삼거리(이정표 : 청소년수련원2830m/ 비봉정240m/ 약수사290m)에 올라선다. 하지만 이들보다는 10m쯤 떨어진 곳에 세워진 또 다른 탑이 더 눈길을 끈다. 젊어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는 소불근학 노후회(少不勤學 老後悔)‘와 재산을 아껴 쓰지 않을 경우 늙어서 후회한다는 부불검용 빈후회(富不儉用 貧後悔)‘ 등의 마음에 새겨 둘만한 글귀들을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오른편으로 향한다. 비봉정을 다녀오기 위해서이다. 비봉산의 정상이 왼편에 있으니 비봉정을 둘러본 뒤에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함은 물론이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널따란 공터가 나타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농구코트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지금은 텅 비어있다. 그래 산꼭대기까지 올라와 농구를 할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잠시 후 비봉정(飛鳳亭)‘에 올라선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만이다. 널따란 공터에는 팔각으로 된 정자(亭子)를 이층으로 지어 놓았다. 뛰어난 조망을 실컷 즐겨보라는 얘기일 것이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이곳이 정상이 아닐 뿐만 아니라 길 또한 나뉘지 않으니 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대신 정자의 앞에다 삼각점(경기 302)을 설치해 놓았다. 그만큼 지리적으로는 중요한 위치라는 얘기일 것이다.



정자에 오르면 한경대학교는 물론이고 아파트단지 등, 안성 시가지가 한눈에 잘 들어온다. 반대편으로 눈을 돌리면 이번에는 드넓은 들녘이 펼쳐진다. 그 뒤에는 수많은 산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무이산과 칠현산, 칠장산, 도덕산 등을 품고 있는 한남정맥일 것이다.




공터의 한쪽 귀퉁이에 네모지게 돌을 쌓아 놓았다. 그 생김새가 영락없는 제단(祭壇)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나가던 이곳 주민께서 옛날 이곳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알려주신다. 이곳 비봉산이 안성의 주산(主山)이었다니 기우제(祈雨祭) 등의 의식을 치렀지 않나 싶다.



삼거리로 되돌아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소나무길 300m‘이라고 적힌 이정표 하나가 보인다. 하지만 개의치 말고 지나칠 일이다. 이름에 어울릴만한 소나무들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어린 소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을 따름인데, 그것마저도 버팀목을 대어 놓은 것이 이식한지도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다. 앞으로 수십 년은 더 지나야만 이름에 걸맞는 숲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잠시 후 커다란 바위 몇 개가 모여 있는 구릉(丘陵) 위에 선다. 비봉산의 명물이라는 장수바위(將軍巖)‘이다. 옛날 어느 장군이 앉았던 자국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다는데, 그보다는 굴기(屈起)‘, 봉비천인(鳳飛千仞)’ 등 바위의 표면에 적어놓은 글귀들이 더 눈길을 끈다. ‘벌떡 일어나라’, ‘봉황같이 날아라’,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 외에도 많은 글귀들이 적혀있으나 일일이 판독해 보려면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저 바위 앞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고 그 갈증을 해소해 볼 따름이다. ! 안내판에는 이곳 비봉산성에 대한 설명과 함께 지도(地圖)도 그려 넣었다. 신석기시대에 쌓아서 고려시대까지 사용했다니 역사 상식도 늘려볼 겸해서 한번쯤 살펴보고 갈 일이다.




다시 길을 떠난다. 잠시 후 또 다른 바위지대를 만난다. 아까 같이 이름이 있는 바위는 아니지만 대신 이곳에는 수많은 길손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다. 바위 위에 그네들이 쌓아올린 돌탑들이 그 증거이다. 염원을 담은 하나하나의 돌들이 쌓여 수많은 돌탑들을 만들어 냈다. 그 소원들 모두가 하나도 빠짐없이 이루어지기를 빌어본다.



길가에 시민들이 행복한 맞춤도시, 안성이라고 적힌 널빤지가 보인다.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글귀대로 모든 시민들의 행복해 하는 도시를 만들어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유토피아(Utopia)일 테니까 말이다.



산길은 일단 순한다. 보드랍기 짝이 없는 황톳길에다 경사까지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둘이 나란히 서서 걸어도 좋을 만큼 길이 넓기까지 하다. 산책코스로는 최상이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 소나무 숲길까지 갖췄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게 아쉬울 따름이다.



얼마쯤 진행했을까 왼편 능선 위에 통신시설이 보인다. 정규 등산로에서 벗어나있지만 일단 올라서고 본다. 하지만 그 결과는 후회막급(後悔莫及)이었다. 웃자란 잡목들 속에 이동통신사의 중계시설이 들어앉아 있을 뿐 다른 볼거리는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길이 나있지 않아 잡목을 헤치며 나아가다 싸대기 두어 대를 얻어맞고서야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비봉정을 출발한지 30분쯤 되어 비봉마루에 올라선다. 십여 평의 공터에 육각의 정자(亭子)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곳이 비봉산의 정상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모양새 또한 정상으로 보긴 힘들다. 밋밋하게 생긴 것이 그저 능선상의 한 지점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이 정상이라는 표시는 있다. 이곳 지자체인 안성시청에서 여기는 비봉마루입니다라고 적은 안내도를 세워놓았는데, ‘마루란 하늘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설명과 함께 비봉마루는 산에서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는 비봉산의 꼭대기, 정상입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아무튼 정상은 정자 외에도 벤치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거기다 운동기구까지 갖추었으니 몸이라도 풀면서 쉬어가라는 모양이다.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올라온 반대방향이다. 산길은 여전히 순하다. 보드라운 흙길이 오르내림이 거의 없이 평탄하게 이어진다. 아무튼 산길은 참 곱다. 산길이 편하다보니 마음까지 편해졌나 보다. 짙은 솔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문득 피톤치드(Phytoncide)의 통속에 들어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가 바로 소나무이니까.



그렇게 잠시 걷다보면 또 다른 쉼터가 나타난다. 이번에는 청록파 시인인 박두진(朴斗鎭)의 시판(詩板)을 세워 놓았다. 오늘 산행에서 유일하게 만나게 되는 시판인데 왜 하필이면 그의 작품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향연이란 시()를 적어 놓았다.



잠시 후 오른편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 들머리에 박두진 시인의 묘로 연결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조금 전에 만났던 박두진 시인의 시판을 세운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아무튼 안내판에는 그의 약력(略歷)과 함께 하늘이라는 그의 시를 적어 넣었다. 이왕에 온 김에 묘역을 찾아보기로 한다.




100m 조금 못되게 내려가면 박두진(朴斗鎭 : 1916~1998) 시인의 묘역(墓域)이 나온다. 박두진의 아호(雅號)는 혜산(兮山), 경기도 안성시 봉남동 360번지에서 태어났다. 8세가 되던 해에 안성시 보개면 동신리로 옮겼다가 17세 되던 1933년에는 서울 창전동으로 이사를 했다. 1939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장>에 시 <향현>, <묘지송>, <낙엽송> 등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으며, 1946년에는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청록집>이라는 공동시집을 펴냈다. 이후 <바다로>, <햇볕살 따실 때> 등을 발표하고 1949년 개인시집으로는 첫 번째인 <>를 펴냈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박두진의 시는 새롭게 변하는데, 시집 <오도>, <거미와 성좌>, <인간밀림>에 이르러 인간의 자유와 절대자에 대한 갈망을 반복되는 관념적 언어로 읊었다. 그 뒤 4.19혁명을 겪으면서 <우리는 아직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 등을 발표했다. 이후에도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격정을 보여준 시세계는 계속 이어졌다. 연세대학교, 한양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추계예술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상훈은 아시아자유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동북아기독문화상, 인촌상 등을 받았다.



다시 능선으로 향한다. 구태여 아까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 묘역의 오른편으로도 길이 나있기 때문이다. 시인 가문의 다른 묘역들 사이를 지나면 능선 위에 있는 본래의 등산로를 다시 만나게 된다. 능선에서는 비봉나래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정표는 없지만 오른편 방향이다. 그리고 쉼터를 겸하고 있는 금석동 갈림길’(이정표 : 비봉나래(송신탑)0.2Km/ 금석동 돌산길0.8Km/ 비봉마루(사격장)1.13Km)을 지났다 싶으면 곧이어 널따란 공터로 이루어진 비봉나래에 올라선다.



비봉마루를 출발한지 30분 만에 비봉나래에 올라선다. 헬기장 용도로 만들었지 않나 싶을 정도로 널따란 정상에는 삼각점(경기 287)과 태양열을 이용한 전광판, 그리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세운 여기까지 오는데 소모되는 칼로리의 양을 걷는 방법에 따라 구분해 놓은 안내판이 보인다. 혹자는 이곳을 정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정표(너리굴문화마을 0.1Km/ 약수사 3.3Km)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119의 국가지점번호표시목(다바 8020-9319)을 증거로 들면서 말이다. 하지만 난 아까의 비봉마루에다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아무래도 ‘119’ 보다는 이곳 지자체인 안성시청에 더 신뢰가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이곳을 비봉(飛鳳), 즉 날아가는 봉황의 날개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여기고 싶다. 나래란 날개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경우 봉황의 머리에 해당되는 비봉마루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비봉나래에서의 조망(眺望)도 뛰어난 편이다. 비록 한쪽 면으로만 시야가 열리지만 보개면의 들녘과 함께 무이산과 칠현산, 칠장산, 도덕산 등이 늘어서 있는 한남정맥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샛죽바위산으로 향한다. 이동통신사의 중계시설이 세워져 있는 방향이다. 그런데 송신탑의 앞에서 기괴하게 생긴 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외모로 보아 말라 죽은 게 분명한데도 줄기의 곳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다. 끈질긴 생명력이 아닐 수 없다. 조그만 역경에도 쉽게 좌절해버리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본보기가 될 수도 있겠다.



잠시 후 오른편으로 오솔길(이정표 : 굴암사/ 너리굴문화마을) 하나가 나뉜다. 너리굴문화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서슴없이 오른편으로 내려간다. 사유(私有)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시설물(이정표)에까지 나타나 있다는 점이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상당히 가파른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가니 주택모양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단시설지구가 나온다. ‘너리굴 문화마을이란다. 너리굴문화마을에서 '너리굴' 이란 안성 토박이 말로, 백두산 천지부터 시작된 산맥이 차령산맥의 끝부분인 비봉산 자락에서 넓은 골짜기가 되었는데 그것을 '너리굴'이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곳에 마을을 만들었는데 자연과 예술이 한데 어울려 있는 마을이라는 것이다. 산책로를 따라 잠시 걷다가 마을로 직접 들어가는 것은 생략하기로 하고 전망대로 향한다. 그렇게 속속들이 마을을 알아야 할 필요까지는 못 느꼈기 때문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문화마을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외형만 보아서는 외국에라도 온 느낌이다. 해외에서나 봄직한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문화마을이라는 콘셉트(concept)에 맞춰 지은 모양이다. 이곳은 현대적인 양식의 세련된 절제미 속에 고아한 아취를 담고 있는 미술전시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개관 이래 작가 권용자의 <누드 크로키 전> 등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신진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왔다고 한다. 미술관 외에도 동물농장과 입사박물관, 야외공연장, 조각공원 등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다니 나들이 삼아서 한번쯤 들러볼 만도 하겠다. 특히 금속공방, 조소공방, 조각공방, 도자기공방을 운영하고 있다니 가족들과 함께 들러 우리네 생활에 사용되는 다양한 물건들을 직접 만들어 보면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되돌아 나올 때는 굳이 아까 내려왔던 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전망대 뒤편으로 산책로로 활용하고 있는 듯한 오솔길이 나있기 때문이다. 10분 가까이 되어 능선에 오르면 이정표(굴암사, 명덕초교 2.35Km)가 세워져 있는 삼거리를 만난다. 또 다른 이정표(너리굴/ 엄마목장/ 시청,향교)도 보인다. 이로 보아 너리굴문화마을에서 산책로로 활용하고 있지 않나 싶다.



이제부터는 그냥 앞만 보고 걷는 산행이 이어진다.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이 구간은 일단 편하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솔가리들까지 수북하게 쌓여있어 여간 폭신폭신한 게 아니다. 거의 양탄자 위를 걷고 있는 느낌으로 보면 되겠다. 대신 볼거리는 일절 없다. 흙산의 특징대로 눈에 담아 둘만한 지형지물이 일절 없기 때문이다. 좌우가 숲으로 가로막혀 있어 조망도 별로이다. 그저 중간에 두어 번 시야가 트인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산길은 능선만을 고집한다. 덕분에 능선이 휘는 곳에서도 길 찾기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저 능선의 모서리를 이어간다고 생각하고 진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중간에 나타나는 음식점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뭔가에 홀리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그렇게 25분쯤 걷다보면 굴암사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이정표 : 굴암사 0.67Km)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몇 걸음만 더 떼면 샛죽바위산의 정상이다. 이곳도 역시 정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산봉우리라기보다는 능선의 한 부분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정상표지석 등 이곳이 샛죽바위산의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 또한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정상을 독차자하고 있는 커다란 거북바위를 보고 이곳이 정상이려니 해볼 따름이다. 바위의 생김새가 거북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지만 일행은 샛죽바위가 옳은 지명이란다. 바위가 세 개로 나뉘어져 있어 세쪽바위로 불리다가 언제부턴가 샛죽바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제는 하산만 남았다. 거의 경사가 없다시피 한 산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대덕면의 너른 들녘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그 한가운데에는 주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고층의 아파트가 들어앉아 있다. ‘아파트공화국이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별명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지 않나 싶다. 도시 뿐만 아니라 이런 시골에까지 아파트가 들어와 있는 현실 말이다.




산행날머리는 굴암사(안성시 대덕면 신현리)

그렇게 17분 정도를 내려서면 굴암사(窟岩寺)이다. ‘바위굴 속에 들어앉은 절이라는 이름이 걸맞게 요사채를 제외한 나머지 전각(殿閣)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거대한 바위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있는 특이한 사찰이다. 조금만 더 가꾸면 멋진 명소로 태어나겠건만 시주가 적은 탓인지 불전으로 오르는 계단이 파괴된 채로 방치되고 있는 등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모습이다. 설마 부처님의 영험함이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아무튼 오늘 산행은 총 3시간 50분이 걸렸다. 하지만 중간에 간식을 먹느라 1시간 이상을 쉬었으니 실제로 걸은 시간을 2시간 40분쯤 된다고 보면 되겠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인 이곳 굴암사는 2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향토유적 제 11호인 굴암사 마애여래좌상(窟岩寺磨崖如來坐像)’이다. 거대한 화강암의 암벽에 양각된 이 마애여래좌상은 큼직한 원형(圓形)의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갖추고 있으나, 30년 전에 지은 보호 건물로 인하여 그 일부가 가려져 있다. 소발(素髮)의 머리 위에는 육계(肉髻)가 있으며 상호(相好)는 원만하고 눈. . 입이 정제되었고 양 귀는 어깨 위까지 크게 늘어져 있다. 목에는 3(三道)가 있고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의문(衣紋)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오른손은 가슴 앞에 두어 수인(手印)은 엄지와 검지로 전법륜인(轉法輪印)을 지었으며 왼손은 무릎에서 약간 들고 있다. 양 무릎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있으며 의문은 양팔과 무릎에서 흘리고 있다. 마애불의 전면에 백색 칠을 해 놓았고, 현 좌상고(坐像高)354cm, 두광경(頭光經)200cm이다.



다른 하나는 향토유적 제12호인 굴암사 마애선각좌불상(窟岩寺磨崖線刻坐佛像)’이다.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의 바로 옆 암벽(巖壁) 전면에 걸쳐 선각(線刻)으로 거대하게 조각하였으며 부분적으로 마멸된 흔적이 보이나 원형(原形)을 살피기에는 그리 어렵지 않다. 윗부분은 마멸이 심한 상태지만 머리 위에 육계(肉髻)가 있고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상호(相好)는 원만하고 양 귀는 어깨 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목에는 3(三道)가 있으며 법의(法衣)는 통견으로 의문(衣紋)이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다. 아랫부분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있는데, 그 위에 법의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수인(手印)은 마멸되어 확실하지 않다. 불상(佛像)의 실측치는 전체 높이 417cm, 견폭 284cm이다.

 

문형산(文衡山, 496.7m)-영장산(靈長山, 414.2m)

 

산행일 : ‘16. 10. 8()

소재지 :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목동·직동과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율동의 경계

산행코스 : 오포읍사무은말고개두리봉(277.3m)문형산새나리고개영장산쉼터갈림길예비군훈련장성모요양병원(산행시간 : 4시간 50)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바위다운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을 정도의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때문에 눈여겨 볼만한 산세(山勢)는 지니지 못하고 있다. 조망(眺望) 또한 특별한 게 없다. 그럼에도 산은 등산객들로 늘 북적인다. 도심(都心)에서의 접근성이 뛰어난데다 산길이 곱고 완만해서 노약자들도 별 부담 없이 오르내릴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소관 지자체(地方自治團體)인 광주시와 성남시에서 등산로 정비를 잘 해놓은 것도 장점 중의 하나이다. 길이 헷갈릴 일도 없는데다, 코스까지 다양해서 체력에 맞게 산행을 즐길 수도 있다. 가족 산행지로 추천하고 싶은 이유이다.


 

산행들머리는 오포읍사무소 입구버스정류장(광주시 오포읍)

이번에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다. ‘분당선지하철을 이용해 모란역까지 일단 온다. 8호선을 이용해도 되니 참조한다. 역에서 빠져나와 17번이나 17-1번 버스를 타고 오포읍사무소 입구까지 오면 된다. 모란역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10분 정도가 걸린다.




오포읍사무소 방향으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버스정류장의 맞은편에 보이는 남도해물탕방향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도로를 따른다. 가는 길에 오포읍사무소를 만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오포읍사무소를 지나서도 계속해서 도로를 따른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러니까 정류장을 출발한지 15분쯤 되면 도로가 ‘T'자 형으로 나뉜다. 버스정류장에 가래울(누리마을)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니 참조한다. 아무튼 이곳 삼거리에서는 오른편으로 진행한다.



가래울 삼거리에서 250m만 걸으면 은말고개이다. 지명(地名)고개라는 낱말이 붙어있지만 고개로 보기에는 많이 옹색하다. 아무리 봐도 고개 같지가 않다는 얘기이다. 때문에 지명만으로는 들머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게다. 그저 삼거리에서 250m쯤 걷다가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고 치거나, 오른편 길에 세워진 동식산업의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표시의 반대방향으로 들어서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20m쯤 전방에 양지교회의 이정표가 보이니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고갯마루에서 왼편으로 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100m 남짓 올라갔을까 왼편에 오솔길 하나가 나타난다. 들머리에 이정표(두리봉 1.93Km, 문형산 3.42Km, 영장산 7.9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솔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길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곱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傾斜)까지 완만한 것이다. 등산을 하고 있는데도 마치 산책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일 것이다.



7분 후 능선에 올라선다. 물론 은말고개에서부터 걸린 시간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월했던 산길이 아예 평지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고도(高度)의 차이가 거의 없는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그렇게 20분 조금 못되게 진행하면 오포초등학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문형산 정상2.39Km, 영장산 6.87Km, 불곡산 12.17Km/ 오포초등학교0.94Km/ 오포읍사무소2.01Km)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두리봉 정상에 올라선다. 구릉(丘陵)처럼 두루뭉술하게 생긴 평범한 산봉우리이다.



늙은 소나무 몇 그루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정상은 작고 귀여운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또한 벤치 몇 개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해놓았다. 277.3m에 불과한 높이를 감안할 때 의외로 잘 가꾸어진 풍경이다. 그만큼 문형산 일대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사랑이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문형산으로 향한다. 두리봉 아래에서 또 다른 오포초등학교 갈림길’(이정표 : 문형산 정상2.28Km , 영장산 6.76Km, 불곡산 12.06Km/ 오포초등학교1.00Km/ 두리봉0.11Km, 오포초등학교 1.05Km, 오포읍사무소 2.12Km)을 지났다 싶으면 6분 후에는 벤치까지 갖춘 고산리주차장 갈림길’(이정표 : 문형산 정상0.76Km , 영장산 6.33Km, 불곡산 11.63Km/ 고산리주차장0.79Km/ 두리봉0.54Km, 오포초등학교 1.48Km, 오포읍사무소 2.55Km)을 만난다. 이정표를 살피다가 깜짝 놀라버린다. 문형산이 눈 깜짝 할 사이에 가까워져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거리표시가 잘못된 모양이다.



산길의 풍경은 큰 변화가 없다. 여전히 보드라운 흙길이 계속되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는 것 또한 여전하다. 길도 역시 또렷하다. 가끔가다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이정표들만 참고하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산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다. 경사(傾斜)가 조금이라도 심한 곳에는 통나무로 계단을 설치하는 등 정성들여 가꾼 흔적이 역력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끔 나뉘는 갈림길에는 어김없이 이정표를 세워 놓았다. 지자체인 광주시청 관계자분들에게 지면(紙面)을 통해서나마 감사를 드려본다.



비록 큰 오르내림은 없지만 산행을 하다보면 작은 봉우리들은 꽤나 많이 만난다. 하나 같이 특별한 눈요깃거리를 보여주지 못하는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산봉우리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봉우리를 지키고 있는 노송(老松)의 아래에 벤치를 놓는 등 등산객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인다. 14분 후에 만나게 되는 광림수도원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정표 : 문형산 정상1.35Km , 영장산 5.83Km, 불곡산 11.13Km/ 광림수도원1.1Km, 봉골고개 1,29Km/ 두리봉1.04Km, 오포초등학교 1.98Km, 오포읍사무소 3.05Km)이 나뉘는 산봉우리도 그중 하나이다.



고산리와 추자리(2.0Km)로 내려가는 갈림길임을 알리는 말뚝 모양의 이정표를 지나면서 산길은 가팔라진다. 하긴 명색이 500m에 가까운 산인데 어떻게 평탄한 길만 나타날 수 있겠는가. 그렇게 11분 정도를 진행하면 봉골사거리 갈림길’(이정표 : 문형산 정상0.91Km , 영장산 5.39Km, 불곡산 10.69Km/ 문형리 봉골사거리1.70Km/ 두리봉1.48Km, 오포초등학교 2.42Km, 오포읍사무소 3.49Km)에 이른다.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바위다운 바위를 본다. 그것도 보기 드물게 잘 생긴 바위이다. ‘공깃돌 같이 생겼네요.’ 집사람 말마따나 영락없는 공깃돌이다. 큰 공깃돌 하나가 마치 서커스라도 하려는 양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작은 공깃돌 둘의 등에 올라타고 있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용화선원 갈림길’(이정표 : 문형산 정상0.57Km , 영장산 5.05Km, 불곡산 10.35Km/ 용화선원0.94Km/ 두리봉1.82Km, 오포초등학교 2.76Km, 오포읍사무소 3.83Km)을 지나 다시 한 번 짧게 치고 오르면 철봉을 설치해 놓은 널따란 공터에 올라선다. ‘용화선원 갈림길에 설치된 또 다른 이정표에 '연수원 가는 길이라는 방향표시가 되어 있는 걸 보면, 용화선원 쪽에 한국기술교육대학교의 부속시설인 고용노동연수원이 있는 모양이다. 이어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연수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이정표 : 문형산 정상200m/ 심신단련장700m/ 연수원 가는길500m)이다. ’산악인은 산의 법칙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며, 언제나 배워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이정표에 표기된 고용노동연수원에서 헤르만 후버의 글을 적어 놓은 안내판까지 세워놓았다.



삼거리를 지나면서 또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이번에는 제법 가파른 오르막이다. 하지만 다른 산에서 이 정도는 가파른 축에도 끼지 못할 수준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거기다 그 길이 까지도 짧으니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이 구간에서도 커다란 바위를 만나게 된다. 생김새 역시 공깃돌처럼 둥그렇다. 약간 길쭉한 게 흠이지만 말이다. 바위만 보면 정신을 놓다시피 하는 집사람이 이를 놓칠 리가 없다. 냉큼 올라서고 본다. 그에 뒤질세라 최군()까지 뒤를 따른다. 누군가 산에 들면 누구나 동심(童心)으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맞는 말인가 보다. 거의 20년에 가까운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똑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오르면 드디어 문형산 정상이다. 널따랗고 평평한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신현3리 복지회관3.82Km, 영장산 4.48Km, 불곡산 9.78Km/ 고장고개2.96Km, 깃대봉 4.06Km/ 두리봉2.39Km, 오포초등학교 3.33Km, 오포읍사무소 4.40Km)외에도 벤치와 체육시설 등 각종 편의시설들을 설치해 놓았다. 종합 쉼터인 셈이다. 눈에 거슬리는 것들도 보인다. 행선지를 알아차릴 수 없는 이정표(헬기장 500m, 부엉바위 700m/ 연수원 가는길 700m, 추자리 700m)와 문형산을 배워서() 노사 균형(均衡)을 이루는 곳()’이라며 자기들 입맛에 맞게 해석해 놓은 안내판이 바로 그것이다. 고용노동연수원에서 만든 것들인데 자기네를 홍보하는 것까지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 자기네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시설물을 세우는 행위는 자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정상표지석은 커다란 바위 앞에 세웠다. 문형산 정상을 대표하는 둘을 하나로 묶은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정상석에는 문형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연유를 적어놓았다. 고려조말 어느 예문관 대제학이 이곳에 내려와 머물면서 마을 주위의 경치가 하도 아름다워 이 산의 이름을 문형산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문형(文衡)은 대제학(大提學)을 달리 부르는 말이란다. 하지만 인근 유지들이 모여 대제학 같은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어낸 이름이라는 설()도 있으니 참조한다. 또 다른 얘기도 전해진다. 문형산의 옛 이름이 무명산이라는 것이다. 옛날 이 일대에 홍수가 났었는데 인근이 모두 물에 잠겼으나 어떤 조화인지 문형산의 정상만 물에 잠기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넓이가 고작 무명 한 필을 말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여 무명산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참고로 무명은 목화(木花)의 열매에서 채취한 무명실로 짠 피륙을 말한다.



정상에서의 시야(視野)는 좁은 편이다. 북쪽 방향으로만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당시가지와 영장산이 또렷하고, 더 멀리로는 서울시가지까지도 나타난다. 시력(視力) 좋은 최군의 말로는 신축중인 롯데타워가 보인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영장산으로 향한다. 산길은 급하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가파르게 위로 향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거리가 짧아 오르내리는데 부담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르막구간이 끝나면 곧이어 정자(亭子)를 만난다. 삼거리(이정표 : 영장산4.17Km, 불곡산 9.47Km/ 산하빌라 버스종점2.84Km, 능평리 오포터널 3.03Km/ 문형산 정상0.31Km, 두리봉 2.7Km, 오포초등학교 3.64Km)인데 벤치까지 놓아 쉼터로 조성해 놓았다. 고용노동연수원에서 세워놓은 이해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정표(부엉바위 500m/ 심신단련장 300m/ 문형산 300m)도 보이니 참조한다. 일단 산하빌라 방향으로 들어선다. 그쪽 방향에 있다는 일출단을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2~3분쯤 걸었을까 길쭉하면서도 널따란 공터가 나온다. 공터에는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정상석이 보인다. 하지만 일출단(日出壇)’이라고 적힌 표석은 바닥에 쓰러져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삼각점이 눈에 띈다. 판독이 불가능하지만 삼각점이 있는 걸로 보아 실제의 문형산 정상은 이곳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일출단이라는 빗돌을 세워놓은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글로 보아서는 해돋이를 보기에 좋은 장소라는 얘기인데,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주변이 잡목(雜木)으로 둘러싸여 있어 해가 중천(中天)에 뜬 후에나 눈에 들어올 것 같아서이다.



반듯하게 잘 쌓아올린 돌탑(cairn)도 보인다. 기술자들이 동원된 것으로는 보이지 않은데도 제법 반듯하게 쌓아 올렸다. 돌맹이 하나하나를 올려놓은 사람들의 바램이 그만큼 지극했다는 얘기일 것이다. 앞서가던 아라치양이 작은 돌맹이를 올려놓고 있는 게 눈에 띈다. 그 모습이 여간 정성스럽지가 않다. 뭔가 간절한 소망이라도 있는가 보다.



정자로 되돌아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산길은 변함없이 순하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傾斜) 또한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 간다는 얘기이다.



그렇게 7분 정도를 걸으면 신하빌라 갈림길’(이정표 : 신현3리 복지회관3.24Km, 영장산 3.90Km, 불곡산 9.20Km/ 신하빌라 버스정류장0.75Km/ 문형산 정상0.58Km, 두리봉 2.97Km, 오포초등학교 3.91Km)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15분 조금 못되게 더 걸으면 널따란 임도(이정표 : 신현3리 복지회관2.62Km, 영장산 3.28Km, 불곡산 8.58Km/ 신하빌라 버스정류장2.18Km/ 고산리 주차장3.69Km/ 문형산 정상1.2Km, 두리봉 3.59Km, 오포초등학교 4.53Km)에 내려선다. MTB를 타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다. 누군가 이곳 문형산을 라이더(rider)들이 자주 찾는 산이라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가 보다.



임도를 지나서도 산길은 변함이 없다. 보드라운 흙길에다 경사를 거의 느낄 수 없는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된다. 다만 가끔가다 보이는 소나무가 이 즈음에서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게 작은 변화일 따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으면 통점골 갈림길’(이정표 : 신현3리 복지회관2.49Km, 영장산 3.15Km, 불곡산 8.45Km/ 통점골 버스정류장9.75Km/ 문형산 정상1.33Km, 두리봉 3.72Km, 오포초등학교 4.66Km)을 만나게 되고, 이 부근에서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강남 300 C.C’이 한눈에 쏙 들어오는 멋진 전망대이다.



임도를 지난지 17분쯤 되었을까 ‘Y'자 갈림길(이정표 : 영장산 2.72Km, 불곡산 8.02Km/ 신현3리 복지회관 2.06Km, 신현1리 신하빌라 버스정류장 2.18Km/ 문형산 정상1.76Km, 두리봉 4.15Km, 오포초등학교 5.09Km) 근처에서 몸체에 구멍이 뻥 뚫린 고사목(枯死木)이 시선을 끈다. 포탄에라도 맞은 것 같다는 실소(失笑)를 머금다가, 문득 뭔가를 떠올리게 된다. 이 일대가 6·25전쟁 당시 치열한 격전지였던 것이다. 이곳은 전쟁 초기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한강방어선을 연하는 지연전(遲延戰), 1·4후퇴 이후 유엔군의 총공세작전 전환전(轉換戰), 그리고 한강 이남의 위협제거를 위한 1·9군단의 위력수색작전인 썬더볼트작전을 실시했던 곳으로 아군과 북한군 및 중공군이 치열한 접전을 이뤘던 격전지였다. 2011년 국방부 주관의 유해(遺骸) 발굴사업이 있었을 정도이니 그 중요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임도를 통과하고 25분 만에 새나리고개에 내려선다. 영장산과 문형산의 경계가 되는 고개인데 아스팔트로 포장된 반듯한 도로가 나있다. 오른편에 경비실이 보이는 걸로 보아 강남 300 C.C’로 연결되는 진입로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곳에서 난처한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영장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궁리 끝에 자연석으로 쌓아올린 축대(築臺) 위로 올라서고 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희미하게 나있는 산길을 발견한다.



새나리고개를 지나면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이 길도 역시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산길은 오른편에다 철망으로 된 펜스(fence)를 끼고 이어진다. ‘강남 300 C.C’의 경계선이다. 낯선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그다지 깊지 않은 웅덩이를 파고 그 둘레에다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렸다. 생김새로 보아서는 군()에서 임시로 만든 참호(塹壕)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런 곳에까지 군이 주둔할 리가 없다. 요 아래에 있는 골프장에서 예비군 훈련용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잘 지어진 전원주택단지가 왼편으로 나타난다. 산길은 주택단지와 펜스(fence) 사이로 나있다.



주택단지를 지났다 싶으면 해발 348m일곱삼거리고개이다. 이곳에서 왼편은 271.5m봉과 새마을고개, 그리고 태재를 거쳐 불곡산으로 가게 된다. 영장산 정상으로 가려면 곧장 직진해야 함은 물론이다.



일곱삼거리를 지나는데 펜스(fence) 너머를 살피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다가가보니 강남 300 C.C’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바로 아래 보이는 건물은 클럽 하우스(club house)라도 되는 모양이다. 아무튼 철망 아래에는 벤치를 놓아두었다. 별다른 볼거리가 없는 산이니 이런 풍경이라도 실컷 즐겨보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조망터 근처에는 정자(亭子)까지 세워놓았다. 옆에다 벤치까지 설치한 걸 보면 아예 푹 쉬었다 가라는 모양이다.



정자에서 10분 남짓 더 걸으면 곧은골 고개이다. 이정표(영장산 정상0.8Km/ 태재고개5.4Km/ 율동공원/ 광주시 곧은골1.7Km)성남 누비길이라고 적혀 있는 게 보인다. 남한산성과 청계산, 영장산, 불곡산, 발화산, 인능산 등 성남시 소재 5개 권역(圈域)의 등산로들을 통칭(統稱)하는 이름이란다. 쉽게 말해 성남판 올레길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숲과 숲 사이의 다양한 등산길에다 함께 누빈다.’라는 의미까지 가미된 이름이 잘 정비된 등산로만큼이나 깔끔하면서도 친숙하게 다가온다.



곧은골고개를 지나면서 산길은 제법 가팔라진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기세를 누그러뜨려버리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렇게 15분쯤 걸으면 율동공원 갈림길’(이정표 : 영장산 정상/ 율동공원/ 태재고개)을 만난다. 왼편으로 내려가면 율동공원이 있는 큰골인 모양이다.



잠시 후 벤치를 놓은 쉼터(이정표 : 영장산 정상0.3Km/ 새마을연수원0.7Km/ 태재고개5.9Km)를 만난다. 이번에는 식탁까지 배치했다. 아마 준비해 온 점심상이라도 차려보라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새마을연수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왼편으로 나뉜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등산로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위치한 10평 남짓의 공터를 만난다. 이곳도 역시 벤치 두어 개를 놓아 쉼터로 만들어 놓았다. 이어서 조금만 더 걸으면 또 다른 새마을연수원갈림길’(이정표 : 영장산0.3Km/ 새마을연수원1.4Km/ 거북터0.1Km)이 나온다. 이정표에 거북터라는 지명이 보인다. 방금 전에 들렀던 공터를 지칭하는 이름이 아닐까 싶다.



또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통나무 계단을 설치해야 했을 정도로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삼거리(이정표 : 영장산100Km/ 종지봉2Km/ 거북터400m, 태재고개 5.9Km)를 만난다. 영장산의 정상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정상을 둘러본 후에는 이곳으로 다시 되돌아 나와야만 한다. 하신 길에 들르게 될 종지봉으로 가려면 이곳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 되기 때문이다.



방향을 틀자말자 잘생긴 돌탑(cairn)이 길손을 맞는다. 아까 문형산의 일출단에서 보았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반듯하게 쌓아올렸다. 지자체에서 예산을 들였다는 증거일 것이다.



잠시 후 영장상 정상에 올라선다. 문형산에서 2시간 5분이 걸렸다. 10평도 더 될 정도로 널따란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솔밭쉼터, 이메촌 0.8Km/ 태재고개 6.2Km/ 갈마치고개 3.9Km, 이배재 5.9Km/ 새마을연수원 1.0Km), 삼각점(수원437, 1987 재설) 외에도 천재지변 시 대처요령을 적어 놓은 안내판과 각종 현수막 등 어수선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잡다한 시설물들을 설치해 놓았다. 벤치를 놓아 쉼터의 기능을 겸하도록 한 것은 물론이다. 아무튼 숲속에 들어앉은 정상은 조그만 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조망(眺望)이 일절 트이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영장산의 옛 이름은 맹산(孟山)’이다. 조선시대 세종이 명재상인 맹사성(孟思誠 : 1360~1438)에게 이 산을 하사한데서 연유한 이름이란다. 산 아래 작은 골에 맹사성의 묘와 그가 타고 다녔다는 흑소의 무덤인 흑기총이 남아 있다니 시간이 나면 한번쯤 들러볼 일이다. 참고로 조선시대의 각종 고지도에서는 이곳 맹산과 요 아래에 있는 매지봉(梅址峰)을 한데 묶어 영장산(靈長山)으로 표기하였다. 오늘날 분당 중앙공원의 뒷매산을 영장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매지봉과 맹산의 산지가 뒷매산으로 이어지고 있어 옛 명칭을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아까의 삼거리로 되돌아와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종지봉 방향이다. 산길은 지금까지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올라올 때의 폭신폭신 했던 흙길 대신에 크고 작은 돌들이 수없이 박혀있는 너덜길로 변해 있는 것이다. 거기다 경사(傾斜)까지도 가파르다. 그래선지 일부 구간에는 로프로 난간까지 만들어 놓았다.



하산을 시작한지 20여분이면 널따란 광장으로 이루어진 쉼터(이정표 : 종지봉1.75Km/ 새마을연수원1.3Km/ 성남아파트형 공장1.2Km/ 영장산 정상0.75Km)에 내려서게 된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이는 도심(都心)에서 가깝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만큼 하산지점에 가까워졌다는 얘기도 될 것이고 말이다.



이곳 쉼터는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종지봉방향에 성남 예비군훈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하나 더 나있어서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 길로 들어설 우려가 있기에 하는 말이다. 우리 역시 그런 우()를 범해버리고 말았다. 소문난 산꾼인 최군이 그런 실수를 저질렀으니 어쩌면 일부러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우리 일행의 하산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신촌에서부터 이곳 분당까지 달려온 박사장을 더 이상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지 않겠는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 숲길을 지나면 이번에는 철망으로 된 펜스(fence)가 나타난다. 산길은 펜스를 따라 나있다. ‘사격장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이 매달려 있는 걸로 보아 성남 예비군훈련장인 모양이다.



날머리는 성모요양병원(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쉼터를 출발한지 15분쯤 되면 채소가 심어진 텃밭이 나타난다. 그리고 밭 너머로 삼층 건물이 보인다. 하지만 이곳에서 길은 끊겨버린다. 별 수 없이 건물 앞을 통과하고 보는데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민가(民家)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남의 마당을 통과한 게 조금은 덜 미안했다는 얘기이다. 아무튼 건물을 통과하고 나면 저만큼에 성모요양병원이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6시간 10분이 걸렸다. 하지만 준비해간 간식을 먹느라 1시간 20분을 쉬었으니 이를 감안할 경우 4시간 50분을 걸은 셈이다.


박달산(朴達山, 370m)-우암산(328.6m)

 

산행일 : ‘16. 9. 3()

소재지 :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과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의 경계

산행코스 : 광탄면사무소팔각정박달산훈련장(알바)군부대후문헬기레펠장활공장우암산(비호봉)아멘충성교회(산행시간 : 4시간10)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능선으로 연결되고 있는 두 산은 모두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바위다운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다고 보면 된다. 덕분에 특별한 볼거리는 갖고 있지 않다. 두 산의 정상과 헬기장이나 활공장 등 특별한 지점 외에는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는다. 흙산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두 산이 똑같은 특징들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는 대접은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박달산이 도심공원(都心公園)을 옮겨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있는 반면에 우암산은 완벽하게 내버려져 있다. 인근 군부대에서 자기네 부대 이름을 인용한 정상표지석을 세워놓은 것 외에는 그 흔한 이정표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등산로 정비도 일절 되어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동일한 지자체(地方自治團體)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기에 의외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우암산의 곳곳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가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도심(都心)에서의 접근성이 뛰어난데다 산길이 곱고 완만해서 가족 산행지로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이때 우암산은 빼놓을 것을 권한다. 특별한 볼거리도 없는 곳에서 고생만 죽도록 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광탄면사무소(파주시 광탄면 신산리)

이번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다. 서울역에서 문산(선유리) 방면으로 가는 703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10분 간격으로 운행을 하니 이용하는데 큰 불편은 없을 것이다. 다만 편하게 앉아 갈려면 서울역 환승센터에서 탈 것을 권한다. 연신내나 구파발 등 중간에서 타는 방법도 있으나 이때는 서서 갈 것을 각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면 1시간30분 정도가 흐른 후에 광탄면사무소 앞 정류장에 도착한다. 이 외에도 구파발역에서 파주행 333번 버스(35분간격)를 이용하여 박달산산림욕장 앞(재연낚시터 정류장)에서 하차하는 방법도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면사무소에서 파주읍 방면으로 50m쯤 더 진행하면 우측에 등산로 입구임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인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차량 두 대가 비켜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길이 넓지만 아직은 비포장이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시골길을 걷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마침 들녘에 심어진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어 한층 더 그런 기분을 돋우어 준다.



잠시 후 마을로 들어가는 길과 헤어져 왼편에 보이는 임도로 들어선다. 길가에는 상당히 많은 벚나무들을 가로수 삼아 심어 놓았다. 봄철이면 상춘객들이 찾아 들만도 하겠다.



산행을 시작한지 10분쯤 되었을까 임도가 오솔길로 변하면서 왼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그리고 밭 사이를 헤집으며 산자락으로 향한다. 진행방향에 잘 관리된 묘역(墓域)이 보이니 참조한다.



잠시 후 능선에 올라선다. 이정표(박달산 정상3950m/ 광무정 350m/ 광탄면사무소350m)가 세워져 있는 삼거리이다. 왼편에 보이는 길은 광무정으로 연결된다. 국궁(國弓)을 쏘는 장소인데 이곳 사람들은 광무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나 보다.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보드라운 흙길에 경사까지 완만해서 오르는 게 조금도 부담스럽지가 않다. 이런 정도의 코스라면 노약자(老弱者)들도 별 부담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거기다 벤치나 평상 등의 편의시설들을 곳곳에다 만들 놓았다. 어떤 곳에는 의약품까지 비치해 두었다. 혹시 공원에라도 들어온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그것도 도심(都心)의 공원에 말이다.



명색이 300m 급의 산인데 가파른 오르막길이 없을 리야 있겠는가. 가끔은 아래 사진과 같은 오르막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한달음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짧기 때문에 조금도 부담스럽지가 않다.



중간에 시몬의 집 갈림길’(이정표 : 박달산 정상3,250m/ 시몬의 집730m/ 광무정 등산로 입구1,949m)를 지났다 싶으면 곧이어 277.4m봉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35분 만이다. 이곳에는 이정표(박달산 정상 3,030m/ 광무정 1,270m) 외에도 이층으로 지어진 팔각의 정자(亭子)가 세워져 있다.



정자를 지어놓았다는 것은 그만큼 조망이 뛰어나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층으로 올라가본다. 예상한 대로 시원스런 조망이 펼쳐진다. 바로 앞에 있는 광탄면과 조리읍은 물론이고 저 멀리 고양시가지까지 한눈에 잘 들어온다.



또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작은 오르내림을 두어 번 반복하면 20분 후에는 벙커(bunker)가 있는 작은 봉우리(이정표 : 박달산 정상 2,350m/ 팔각정 680m)에 올라선다. 언제 철수를 하였는지는 몰라도 예전에는 이곳에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론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되었을 테고 말이다. 이럴 걸 보고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이렇게 잘 가꾸어진 도심공원으로 변신해 있으니까 말이다.




거의 평지나 다름없는 반반한 길을 따라 잠시 걸으면 '분수2리 갈림길'(이정표 : 박달산 정상2,030m/ 분수2460m/ 팔각정1,000m)이 나온다. 삼거리에는 평상을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해 놓았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삼거리마다 평상이나 벤치를 놓아두었다.



작은 오르내림만 반복하던 산길이 이번에는 제법 깊게 푹 꺼진다. 거의 바닥까지 떨어졌다 다시 오르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런 깊은 오르내림을 또 한 번 겪고 나 뒤에야 정토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박달산 정상1,440m/ 정토사1,110m, 유일레져 1,190m/ 팔각정1,590m)를 만난다.




잠시 후 사색의 숲 삼거리’(이정표 : 박달산 정상1,130m/ 사색의 숲3,750m/ 팔각정1,950m)를 만났다 싶으면 곧이어 헬기장에 올라선다. 지금도 사용을 하고 있는 듯, 바닥에 깔린 보도블록이 설치했던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곳도 역시 조망(眺望)이 좋은 편이다. 헬기장의 전형적인 특징이 아닐까 싶다. 분수리 일대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멋진 풍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눈에 거슬리는 풍경도 나타난다. 건너편에 보이는 채석장이 바로 그것이다. 자그마한 산을 거의 다 헤집어 놓았다.



헬기장을 지난 산길이 아래로 향하더니 안부에서 사거리(이정표 : 박달산 정상550m/ 근창약수터770m/ 마장31,770m/ 광무정3,770m)를 만난다. 이정표에 표기된 지명과 관계없이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분수리, 그리고 왼편은 박달산 삼림욕장으로 연결된다.




앞서가건 최군()이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인다. 뒤이어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산머루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뒤따라 들어가 보니 잘 익은 머루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손에 잡히는 대로 따서 입안에 넣고 본다. 새콤달콤한 것이 여간 맛있는 게 아니다. 아무튼 오늘 산행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깊은 산중에서나 만날 수 있는 야생의 산머루를 이렇게 잘 가꾸진 산상공원에서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긴 최군 정도의 산꾼과 함께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거리를 지나면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야 했을 정도로 만만찮게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어쩌면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아닐까 싶다. 하긴 그래봤자 그동안 다녔던 다른 산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오르막 구간을 다시 한 번 더 거치고 난 다음에야 박달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40분 만이다.



정상은 헬기장을 겸하고 있을 정도로 널따랗다. 정상에는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든 정상표지석이 지키고 있다. 그런데 빗돌의 앞에 상석(床石)이 놓여 있다. 이곳에서 제사(祭祀)라도 지내는 모양이다. 참고로 박달산은 예로부터 이 산에 박달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마장리나 영장리 쪽 주민들은 다른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파발마(擺撥馬)로 쓰이던 말을 사육하던 장소라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용미리나 분수리 지역 주민들은 예로부터 이 산에 독수리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수리봉으로 불러오고 있단다.



정상의 남북 양쪽에는 데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보광사 대웅보전(普光寺大雄寶殿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3)’, ‘소령원(英祖生母淑嬪 崔씨의 무덤)’, ‘용미리 마애이불입상(坡州龍尾里石佛立像 : 보물 제93)’ 등 광탄면 소재 명소(名所)들의 사진까지 걸어 놓은 걸 보니 쉼터의 기능까지 감안했던 모양이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한마디로 빼어나다. 먼저 정상석 너머로 고령산(앵무봉)이 아름답게 조망 된다. 이따가 올라가게 될 우암산도 시야(視野)에 잘 들어옴은 물론이다. 그리고 발아래에 있는 용미리 일대는 물론이려니와 저 멀리 고양시 일원까지 한눈에 잘 들어온다. 그 반대편에서도 시야가 열린다. 이름 모를 수많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하산을 시작한다. 이정표(용미리2,100m/ 마장31,330m/ 등산로 입구 4,300m)가 가리키고 있는 용미리 방향이다. 아까 올라오던 때보다는 못하지만 산길은 아직까지도 좋은 편이다. 하지만 정비를 한 흔적은 일절 눈에 띄지 않는다. 지자체에서 내버려두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잠시 후 전망대를 만난다. 어설프긴 하지만 전면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조망이 트이는 곳이다. 앞으로 가야할 우암산 방향의 조망이 시원스럽다.



길가에 군()의 시설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특수훈련장이니 무단출입을 하지마라는 경고판이 눈에 띄는가 하면, 폐건물로 방치되고 있는 막사(幕舍)도 보인다. 그리고 뭔가 위치를 표시해 놓은 듯한 말뚝형의 시멘트 팻말들도 자주 눈에 띈다. 군의 통제구역이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쏠쏠 드는 구간이다.




정상에서 7분쯤 내려서면 삼거리를 만난다. 커다랗고 오래 묵은 소나무 두어 그루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데,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아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대충 눈치로 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설 경우에는 용미리로 연결된다. 우암산은 물론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5분쯤 지났을까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그런데 직진 방향이 막혀 있다. 누군가가 제법 굵은 통나무로 길을 가로막아 놓은 것이다. 고민이 시작된다. 방향으로 보아서는 직진이 분명한데, 넘어가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할만한 담력이 우리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이런 , 어떤 ×새끼가 이 따위 짓을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길(직진)’이 옳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곳에서 하산을 해야 하는 자기 일행들이 길을 잘못 들지 않게 하기 위해 길을 막아 놓았던 모양이다. 막는 행위 자체를 나무라지는 않겠다. 하지만 가로막았던 차단막을 치워놓아야 하는 것 또한 그 사람이 해야 할 도리가 아니겠는가. 자신이 하지 못할 처지라면 가장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라도 말이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고 만다. 간이 너무 작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상당히 혹독했다. 꽤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음은 물론이려니와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얼마쯤 나아갔을까 오른편에서 내려오는 길을 만난다. 아까 만났던 삼거리에서 갈라졌던 길일 것이다. 이후부터는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능선길을 탄다.



10분 정도를 오르내리다가 이내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알아차린다. 길이 자꾸만 우암산에서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속한 산길은 끝내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버리고 만다. 또 다시 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하산이냐 아니면 제대로 된 등산로를 찾아 계속해서 산행을 이어갈 것인가로 말이다. 결국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왼편 산비탈에서 없는 길을 만들면서 아래로 내려간다.



15분쯤 산비탈을 헤집으니 군()의 시설들이 보인다. 아까 경고판에 적혀있었던 특수훈련장인 모양이다. 이젠 왼편으로 향한다. 도로 오른편엔 훈련용의 시설들이 즐비하다. 제법 그림이 될 만한 풍경들도 나타나지만 사진촬영은 하지 않기로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보안사범(保安事犯)으로 몰릴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물을 이용한 훈련장 비슷한 곳의 바로 위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낙엽송(일본이깔나무)를 가로수로 활용한 오른편으로 향한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소모한 후에야 군부대(軍部隊)의 후문(後門)으로 보이는 곳에 이른다. 문이지만 위병(衛兵)이 보이지 않기에 후문이라는 용어를 썼다. 아무튼 이곳에 이르고 나서야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산악회의 리본들 몇 개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진행방향은 오른편이다.



오른편 산자락으로 올라선다. 산길은 군의 철조망을 따라 나있다.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보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커다란 시설물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헬기의 레펠(rappel) 훈련을 위한 시설이 아닐까 싶다. 레펠이란 자일을 타고 하강하는 훈련을 말하는 것이니 어쩌면 이곳은 유격훈련장쯤 되는 모양이다.



13분쯤 오르면 레펠 훈련장, 또 다시 8분 정도를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왼편으로 난 길이 하나 보이나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모르겠다.



이제부터 산길은 능선을 따른다. 눈요깃거리가 심심찮게 나타나는 구간이다. 가끔가다 기이하게 생긴 바위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중의 하나가 아래의 사진이다. 두 바위가 서로 입을 맞대고 있는 형상이어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아무튼 올해 초 베트남의 하롱베이에 갔을 때 보았던 키스바위를 쏙 빼다 닮았다.



최군이 또 다시 산꾼의 기질을 발휘한다. 박달나무 열매를 맛보라는 것이다. 나무줄기마다 꾸지뽕 열매와 흡사하게 생긴 붉은 열매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아까 먹었던 머루를 생각하며 입에 넣어본다. 아쉽게도 머루의 맛은 아니다. 그저 달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주변이 온통 박달나무 천지이다. 그런데 조금 어색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 그렇다. 저 나무들이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이다. 누군가 아까 올랐던 박달산박달나무가 많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저 박달나무들은 이곳 우암산이 아니라 박달산에서 자라고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능선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헬기장이 나온다. 이어서 6분 후에는 송전탑(送電塔)이 있는 곳에서 임도(林道)를 만나게 되고, 이후부터 산길은 임도를 따른다. 이 구간을 걷다보면 가끔씩 시야(視野)가 열린다. 고양동부터 이어지는 형제봉과 개명산, 앵무봉 능선이 나타나는가 하면, 나뭇가지들이 열어주는 조그만 틈 사이로 북한산이 선을 보이기도 한다.



임도를 따르기를 20분 여, 이번에는 패러글라이딩(paragliding) 활공장을 만난다. 시원스런 조망(眺望)이 펼쳐지는 곳이다. 남서쪽으로는 일산 방향이 조망되고, 서쪽으로는 운정과 금촌이 눈에 들어온다. 더 멀리로는 파주 LCD단지까지 시야에 잡힌다. 조금 더 오른편으로 시선을 돌리면 지나온 능선들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능선 쪽으로 몇 걸음만 옮기면 이번에는 북한산에서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헌걸찬 암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우암산으로 향한다. 이후부터는 거친 산길이 이어진다. 아까의 임도는 활공장 이용자들을 위해 개설한 도로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가는 길에 두어 개의 송전탑을 지났다 싶으면 20여분 후에는 상수도용으로 여겨지는 집수시설(集水施設)을 만난다.



가는 길에도 역시 북한산과 도봉산의 빼어난 자태를 볼 수 있다. 열리는 시야의 범위가 좁고, 거기다 자주 열리는 것도 아니지만 보여주는 풍경만은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잠시 후 우암산 정상에 올라선다. 군부대 후문에서 1시간 30분이 걸렸다. 그런데 정상표지석이 좀 묘하다. ‘우암산대신에 비호봉(飛虎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그 생김새가 묘비(墓碑)를 쏙 빼다 닮은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전면의 양 옆에 망주석(望柱石)까지 세워 놓았으니 이건 영락없는 묘지이다. 인근 비호부대라는 군부대에서 세운 모양인데 어떤 의도를 갖고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다.



우암산에서의 조망은 한마디로 끝내준다. 북한산에서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헌걸찬 암릉이 이제는 막무가내로 열려버리는 것이다. 그야말로 그림이다. 그것도 잘 그린 한 폭의 산수화이다. 아니 그림이 아니다. 어느 화가가 저렇게 잘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자연만이 저런 풍경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발아래에는 고양동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짐은 물론이다.



하산을 시작한다. 길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22분 후에는 또 다시 군부대를 만난다. 산길은 군부대의 철망을 따라 이어진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보초를 서고 있는 병사들을 만난다. ‘어디서 오는 길이냐는 것까지 물어보는 것을 보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산행날머리는 아멘충성교회(고양시 덕양구 벽제동)

담장을 따라 한참을 이동하다 보면 또 다시 능선을 만난다. 그러고 보니 군부대가 능선을 차지하고 있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산길이 우회(迂廻)를 했던 모양이다. 이어서 13분 정도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아멘충성교회의 주차장에 내려서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5시간 50분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과 길을 잃고 헤맸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4시간 10분 정도가 걸렸다고 보면 되겠다.



귀목봉(鬼木峰, 1,036m)

 

여행일 : ‘16. 8. 11()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북면과 포천시 일동면의 경계

산행코스 : 귀목버스종점귀목계곡귀목고개귀목봉910m고비골계곡다락터마을(산행시간 : 3시간 20)

 

함께한 사람들 : 산두레


특징 : 정상을 제외하고는 바위다운 바위 하나 구경할 수 없는 전형적인 육산(肉山)으로, 흙산이 지니고 있는 특징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산이다. 울창한 숲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볼거리가 일절 없다는 얘기이다. 바위벼랑을 끼지 않은 골짜기 또한 왜소한데다가 보잘 것도 없다. 정상, 그것도 한쪽 면을 제외하고는 조망(眺望)까지도 꽉 막혀있다. 한마디로 일부러 시간을 내면서까지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얘기이다. 만일 고비골(장재울)마저 없었더라면 여름철에도 찾아올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산의 높이에 비해 경사가 완만(緩慢)하여 전체적으로 험준하지 않다는 점은 장점일 것 같다.


 

산행들머리는 상판마을(가평군 조종면 상판리)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퇴계원 I.C에서 내려와 46번 국도를 타고 가평방면으로 달리다가 하천 I.C(가평군 청평면 하천리)에서 포천방면의 37번 국도로 갈아탄다. 잠시 후 만나게 되는 연하교차로(가평군 상면 연하리)에서 우회전하여 387번 지방도로 옮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꽃동네 입구(가평군 조종면 상판리)가 나온다. 좌우로 라엔라 C.C가 보이니 참조한다. 이곳 버스정류장(은행나무식당) 근처 삼거리에서 오른편 군도(郡道 : 명지산로)로 접어들면 잠시 후 상판마을에 이르게 된다.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마을에는 주차선(駐車線)까지 그려진 널따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주차장의 상부에 지어놓은 산불감시초소왼편으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이정표(귀목고개 2.4Km, 귀목봉 3.5Km, 명지산 6.1Km)를 겸한 안내판 하나가 세워져 있다. 조종천 상류인 명지산과 청계산이 생태·경관 보전지역이라며 이 지역에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들을 적어 놓았다. 일종의 경고판인 셈이다. 누군가 이곳이 반딧불이 서식지라고 했는데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널따란 임도(林道)를 따라 귀목고개로 향한다. 하늘과 맞닿아 오목한 곳이 귀목고개이고. 귀목봉은 그 왼쪽이다.



10분쯤 후 마지막 민가(民家)를 만난다. 간판은 보이지 않지만 개울가에 평상이 놓여 있는 걸로 보아 식당을 겸하고 있는가 보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개울을 건넌다. ‘귀목골인데 통나무 세 개를 엮어서 만든 다리가 귀엽다.



하지만 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골짜기가 깊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주변 경관 또한 평범하기 짝이 없다. 조금 전에 지나왔던 음식점의 평상들이 텅 비어있던 이유와 무관하지 않을 듯 싶다.



산행 속도는 더딘 편이다. 크고 작은 돌들이 두서없이 깔려 있는 탓에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이도 경사는 완만하다. 때문에 힘이 들지는 않는다.



집사람의 뒷모습을 쫒는 사이 키 큰 침엽수(일본이깔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선 숲으로 들어선다. 긴 구간은 아니지만 삼림욕을 하며 산책하기에 딱 좋은 숲이다. 땅 위에 그대로 누워 한숨 붙여보는 것도 힐링(healing)의 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허락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계곡으로 들어선지 7분 후,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를 만난다. 하지만 다리 아래는 물이 보이지 않는다. 기습적인 폭우(暴雨)를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보험용(保險用)인 모양이다.



곧이어 목책(木柵)이 보인다. 양쪽으로 쳐져 있고, 그 사이에 얼핏 보이는 흔적은 차단목(遮斷木)이 있었던 자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옆에는 생태계 보전지역에서 해서는 안 될 행위들을 그림으로 그려 놓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부터 생태계 보전지역이 시작되는가 보다.



길가에는 또 다른 용도의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생물들에 대해 설명해 놓았다. 이런 안내판들은 산행 내내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는 안내판은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탓에 판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또 다른 나무다리를 만난다. 생김새로 보아 조금 전에 만났던 다리의 용도가 같다고 봐도 좋을 것 같다.



계곡에는 사람이 머문 흔적이 일절 없다. 하긴 이렇게 왜소한 계곡까지 찾아올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거기다 경관까지도 특별한데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산길은 원시(原始)의 숲을 연상케 할 정도로 우거져 있다.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얘기일 것이다.



두 번째 다리를 지나고 15, 그러니까 계곡에 들어선지 25분 정도가 지나면 산길이 가팔라진다. 그러더니 끝내는 엄청나게 가팔라져 버린다. 곧장 치고 오르지를 못하고 왔다갔다 갈지()자를 그리고 나서야 겨우 고도(高度)를 높일 수 있다면 이해가 갈 것이다. 누군가 귀목고개를 깔딱고개라고도 부른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숨이 턱에 차서 오르길 15분 여, 드디어 귀목고개에 올라선다. 고갯마루에는 제법 많은 시설물을 세워 놓았다. 하지만 구호지점 표시목(4-2 : 임산마을터1.3Km/ 귀목2.3Km)’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만도 못하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온 탓에 흉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하얗게 칠이 벗겨진 서식생물(棲息生物) 설명판은 누군가가 명지산4Km'라고 써놓아 지금은 이정표 노릇이나 하고 있고, 이정표(귀목고개 해발 775m : 귀목봉1.1Km/ 적목리3.8Km/ 상판리2.5Km)의 방향표시판은 아예 땅에서 나뒹굴고 있다.




고갯마루에 오르자마자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할퀴고 지나간다. 시원하다 못해 차가울 정도이다. 이 시원한 바람이 귀목고개의 특징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다. 그 바람에 취해 한참을 머물다가 귀목봉으로 향한다. 왼쪽 방향의 능선을 따르면 된다. 산길은 처음부터 가파르다. 하지만 조금 전의 오름길에 비하면 이건 가파르다고 할 수 조차 없다. 그저 즐기듯이 오르면 될 일이다.



산행 중에 만난 바위, 그다지 우람하지도, 그렇다고 잘 생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났으니 귀물(貴物)이라 할 수 있다.



20분 후, 980m봉에 올라선다. 이름이 없는 봉우리라선지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이정표도 세워져 있지 않다. 그저 잘생긴 나무 한 그루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후부터 산길은 부드러워 진다.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그렇게 6분 정도를 걸었을까 이정표(귀목봉 0.3Km/ 적목리 4.6Km, 상판리 3.3Km) 하나가 나타난다. 뜬금없는 곳에 세워졌다며 지나치다가 갑자기 고개를 끄떡거린다. 근처에서 왼편으로 갈림길이 나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정표에 방향표시가 없는 걸로 보아 길의 형편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갈림길을 지나면 곧이어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다소 부담스러운 바위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탓에 계단을 설치했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정상으로 오르는 막바지 구간의 경사가 만만치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정표에서 10분 남짓 더 걸으면 드디어 귀목봉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40분 만이다. 두세 평이 될까 말까 하는 비좁은 정상에는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든 정상표지석 외에도 이정표(청계산 3.2Km/ 귀목고개 1.1Km, 적목리 4.5Km, 상판리 3.6Km)가 세워져 있다. 청계산 쪽 방향표시판이 바닥에서 나뒹굴고는 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귀목봉의 원래 이름은 규목봉(槻木峰)’이다. 옛날 이 산자락에 물푸레나무가 워낙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물푸레나무 규()자를 써서 규목봉(槻木峰)’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근처 주민들이 북한군에 의해 학살당하고 그 때문에 귀신을 봤다는 이가 많아지면서 귀목봉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란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뛰어난 편이 아니다. 주변에 잡목(雜木)들이 많아 시야(視野)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쪽 방향이 열린다는 점이다. 그쪽 방향이 바위 벼랑으로 이루어진 덕분인지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행정관청에서 잡목들을 제거했을 거고 말이다. 아무튼 남쪽 방향으로의 조망(眺望)은 시원스럽다. 오른쪽에 청계산과 운악산으로 뻗어가는 한북정맥이, 왼쪽으로는 귀목봉 아래에서 장재울로 내려서는 지능선이 기차레일처럼 나란히 뻗는다. 능선 가운데 움푹 팬 곳은 고비골계곡이다.




청계산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몇 걸음 걷지 않아 꽤나 긴 나무계단을 만난다. 높다란 바위 벼랑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계단뿐이었나 보다. 그 정도로 바위벼랑이 서슬 시퍼렇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계단 옆의 바위벼랑, 저 위는 작은 쉼터이다. 계단의 상부에 이르면 오른편으로 난 작을 길이 하나 보일 것이다. 그리로 들어가면 서너 명이서 둘러앉을 만한 작은 공터가 나오는데, 바로 저 바위의 위이다.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삼거리(이정표 : 오뚜기고개2.7Km, 강씨봉 5.3Km/ 깊이봉2.0Km/ 귀목봉0.1Km)를 만난다. 오른편으로 진행할 경우 깊이봉을 거쳐 논남기계곡으로 내려서게 된다. 우리는 물론 오뚜기고개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삼거리를 지나자마자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문득 코가 땅에 닿는 오르막길이라는 문구가 생각난다. 만일 이 구간을 올라오는 코스로 이용했을 경우에 딱 어울리는 문구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내려서는 것도 만만찮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몸을 의지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점이다.



가파른 구간이 끝나면 이번에는 평탄한 길이 나타난다. 그리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910m봉까지 이어진다. 중간에 갈림길이 양쪽방향으로 희미하게 나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점이 일절 없는 구간이다. 눈에 담아둘만한 볼거리 또한 없다.



정상에서 내려선지 20분 남짓이면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오뚜기고개2.1Km, 강씨봉 4.8Km/ 귀목봉0.7Km)를 만난다. 만일 고비골계곡으로 내려가고 싶다면 이곳에서 왼편 지능선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이정표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아쉬운 점이다.



왼편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하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유연한 편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얼마쯤 갔을까 금()줄이 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보호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도 있는가하고 다가가보니 생태보전지역이라고 쓰인 팻말을 모셔놓고 있다. 하긴 보존지역에서는 이만큼 중요한 것도 없겠다.




가끔은 아래 사진과 같은 바위구간도 나타난다. 하지만 그 규모가 작고 험하지도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능선을 따라 내려서길 20분여 만에 임도에 닿는다. 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능선을 따른다. 이때 오른편으로 약간 우회(迂廻)를 하는 것은 감수해야만 한다. 곧바로 치고 오르기에는 산자락이 꽤나 거칠기 때문이다.




임도를 지난 지 12분 만에 장재울 계곡에 내려선다. 물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사람 몇이 어울려 목욕을 할 수 있을 만큼은 흐른다. 아니나 다를까 먼저 온 일행들이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속에 들어앉은 표정들이 너나할 것 없이 행복에 겨워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골짜기를 일러 장재울계곡이라 한다. 대부분의 지도에까지 그렇게 표기되어 있을 정도이니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골짜기의 정확한 이름은 고비골계곡이다. 물론 이곳 주민들도 고비골이라 부른단다. 이곳 사람들은 연인산에서 발원하여 코스모피아 천문대를 지나 조종천으로 흘러내려오는 골짜기를 장재울계곡이라 부른다니 참조한다.



합수지점을 지나면서 수량이 많아진다. 바닥이 암반(巖盤)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곳곳에서 작은 폭포와 소(), 그리고 담()을 만들어내고 있다. 깊은 곳은 물이 어른의 허리춤까지 차오른다. 어찌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생각할 것도 없이 일단은 뛰어들고 본다. 물론 옷은 입은 채로이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왔으니 뭘 걱정하겠는가.



놀기 좋은 계곡은 채 7분이 못되어 끝나버린다. 임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물길이 끝나버린 것은 아니다. 임도와 계곡이 나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가 물속이 그리워지기라도 할 경우엔 냇가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아까와 같은 풍경은 아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물의 양도 적어졌고, 주변 풍광 또한 아까에는 미치지 못한다.



산행날머리는 다락터마을(상판리)

임도는 넓고 잘 닦여 있다. 하지만 여름철에는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구간이다. 대부분의 구간이 따가운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내려오다 보면 저만큼에 다락터마을이 나타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 50분이 걸렸다. 목욕 등을 위해 중간에 30분 정도를 쉬었으니 순수한 산행시간은 3시간 20분이 걸린 셈이다.


에필로그(epilogue), 오늘 산행은 생각지 않게 이루어졌다. 체력안배를 위해 주 1회 산행을 고수해오다가 산악회 총무님의 전화를 받고 갑자기 따라나서게 된 것이다. 여름철의 별미인 보양탕을 준비해 놓았다는데 그깟 체력안배가 문제이겠는가.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산행 또한 좋았다. 전체적으로 완만한 산길은 편해서 좋았고, 하산 코스였던 고비골계곡에서의 알탕은 그야말로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앉은 교회의 식당, 풍성하게 차려진 밑반찬은 하나 같이 맛깔스러웠고, 수북하게 쌓아놓은 보양식은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덕분에 얼큰하게 취해버렸지만 말이다. 하긴 오랫동안 산행을 함께 해온 이들까지 앞에 앉았으니 어찌 취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아무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신 이현옥 총무님과 산악회 임원들에게 글로서나마 감사를 드려본다.

송라산(松羅山, 493.5m)

 

산행일 : ‘15. 9. 12()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과 수동면의 경계

산행코스 : 화도읍사무소너구내고개임도능선정상헬기장두리봉방향 능선소래비고개마석역(산행시간 : 너구내고개소래비고개 1시간50)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둘이서

 

특징 : 남양주의 화도읍과 수동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천마지맥의 상징적인 산인 천마산과 마주보고 있는 나지막한 산이다. 전형적인 육산(肉山)이지만 가끔은 눈요깃거리가 될 만한 기암괴석(奇巖怪石)들도 만날 수 있고, 특히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일망무제(一望無題)라 할 수 있다. 다만 산행시간이 짧은 것이 흠()이라면 흠, 그래선지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산은 텅 비어 있었다. 인근 주민들이 아니라면 시간을 내어 일부러 찾아오는 것 보다는 다른 산을 답사한 후 귀경 길에 잠깐 들러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의할 점은 하산 지점을 소래비고개로 잡을 경우에는 꼭 택시를 이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화도읍사무소(남양주시 화도읍 마석우리)

산행은 너구내고개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우리부부는 화도읍사무소에서부터 걸어보기로 했다. 송라산의 산행코스가 생각보다 짧은 것을 미리 알기에 걷는 거리를 조금이라도 더 늘려보려는 목적에서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화도읍이기에 읍사무소에서부터 걷기 시작했지만 타 지역에서 오는 사람들이라면 구태여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경춘선전철에서 내려 수동면(남양주시)으로 들어가는 버스(30-1~6, 330-1)로 환승한 뒤 너구내고개에서 내리면 되기 때문이다.

 

 

읍사무소에서 너구내고개까지는 20분 정도, 오른편에 송라산을 끼고 걷게 된다. 길가에는 잘생긴 소나무들을 가로수로 심어 놓았다. 조금도 길다거나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시간에 쫒기지 않는다면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너구내고개에서 오른편으로 난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산행지도에는 이곳 너구내고개와 심석초등학교 등 등산로가 두 개뿐이 나타나있지 않다는 것이다. 반대편 능선을 따를 경우 소래비고개로 내려설 수가 있는데도 말이다. 참 또 다른 아쉬운 점을 빼먹을 뻔했다. 지도(地圖)에 표기된 거리표시가 엉터리라는 것을 말이다. 잠시 후에 만나게 될 이정표에는 너구내고개에서 정상까지의 거리가 1.49Km로 되어있다. 정상까지 쉬엄쉬엄 50분이 걸렸으니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안내도에는 4Km로 적혀있는 것이다.

 

 

 

마석 시가지를 조망하면서 시나브로 5분 정도를 오르면 길가에 주차된 차량들이 보인다. 그 수가 꽤나 많다. 아마 오른편 길가에 있는 퍼스트리그야구장에서 야구경기를 즐기고 사람들이 타고 온 모양이다.

 

 

 

정상에 세워진 무인산불감시탑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산행을 이어간다. 산행은 처음부터 지지부진이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밤송이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리고 밤송이를 까기에 정신이 없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맛있는 알밤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런 그녀를 재촉할 수가 없어 보조를 맞추어 준다.

 

 

 

너구내고개를 출발한지 20분쯤 지나면 오른편에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들어서는 지점이다. 이어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잠깐 치고 오르면 능선삼거리(이정표 : 정상 0.62Km/ 묵현리/ 너구내고개 0.87Km)이다. 오른편이 묵현리로 표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도브래뉴 3차아파트방향에서도 올라오는 길이 있는 모양이다.

 

 

 

능선에 올라서면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산길은 그 가파름이 부담스러웠던지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힘들면 붙잡고 올라가라며 말이다. 그렇다고 너무 믿어서는 안 될 일이다. 날림공사를 한 탓인지 로프가 출렁거려서 자칫 넘어질 우려까지 있기 때문이다.

 

 

가파른 기세를 잠시 누그러뜨리는 곳에서 낯익은 풍경을 만났다. 통나무를 나뭇가지에 매달아 만든 의자이다. 얼마 전, 근처에 있는 백봉산을 오를 때도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던 것으로 보아 이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쉼터인 모양이다.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싶던 산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가팔라진다. 그 가파름에 지친 산길은 똬리를 틀듯이 좌우를 오가며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그마저도 힘들 경우에는 로프를 매달면서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거리가 그다지 길지는 않다는 점이다.

 

 

 

가파른 오르막길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거대하다고 볼 수 있는 암벽(巖壁)이 앞을 가로막는다. 산길은 바위를 피해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킨다. 이 바위가 첫 번째 볼거리이다. 이곳에서는 그냥 지나치지 말고 바위 아래로 들어서보자. 옛날 호랑이라도 살았음직한 멋진 동굴 하나가 나타난다. 만일 그 누구와의 인연이라도 들면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라도 만들어낸다면 또 하나의 멋진 구경거리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굴에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이정표(정상 0.22Km/ 너구내고개 1.3Km)를 만나게 된다. 이정표에 걸린 시판(詩板)’이 눈에 들어온다. 남양주의 특화된 멋진 브랜드가 아닐까 싶다. 아까 만났던 이정표에도 걸려 있었지만 그냥 지나쳤는데, 유독 이곳의 시판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만큼 이정록 시인(詩人)더딘 사랑이라는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호기심으로 눈을 반짝이며 가슴 설레는 기간만이 사랑은 아니다. 그 기간을 넘긴 다음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이해와 정도 사랑인 것이다. 너무 쉽게 사랑하고 너무 쉽게 끝을 맺는 요즘의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고언(苦言)이 아닐까 싶다. 돌부처가 눈 한 번 감았다 뜨는 순간과 달이 윙크 한번 하는데 걸리는 순간을 빗대어가며 말이다.

 

 

 

이정표를 지나면서 산길은 다시 한 번 가파르게 변한다. 이 구간도 역시 침목(枕木)으로 계단을 만들고, 계단설치가 불가능한 곳에는 안전로프를 매달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그 기세를 한꺼번에 누그러뜨리는가 싶으면 곧이어 삼거리(이정표 : 송라산/ 심석초 1.8Km/ 하산 1.4Km)가 나타난다. 오른편은 심석초등학교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그런데 이곳의 이정표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우리가 올라온 방향의 표시를 그저 하산이라고만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명(地名)과 거리표시가 곧 이정표의 기본인데도 말이다. 하산을 하는 사람들이 자칫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기에 지적해본다.

 

 

삼거리에서 정상은 금방이다. 잠시 후 무인산불감시탑이 나오고, 이어서 몇 걸음만 더 걸으면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너구내고개를 출발한지 정확히 50분이 지났다.

 

 

서너 평 정도나 되는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텅 비어있다. 정상표지석은 물론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세워져 있지 않다는 얘기이다. 누군가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시 코팅(coating)지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코팅지 아래에는 누군가가 플라스틱 의자를 놓아두었다. 편히 앉아서 인증사진이라도 찍으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정상의 절반 이상은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졌다. 두세 길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벼랑 아래에서 자란 나무들이 벼랑 위까지 올라오고 있지만 말이다. 때문에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형편없다. 그저 나뭇가지 사이로 두리봉과 월산리(화도읍)의 아파트들이 살짝 선을 보일 따름이다.

 

 

바위에 걸터앉은 집사람이 뭔가를 꺼내든다. 아까 주웠던 밤이다. 그녀가 건네주는 알밤은 맛있고 달았다. 아까 밤을 줍던 그녀를 기다려준 배려가 넉넉한 되갚음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산 길에 줍게 되는 밤은 마석역으로 걸어 나갈 때 마시게 되는 캔맥주의 안주로 한몫을 단단히 했다.

 

 

하산은 올라왔던 방향으로 몇 걸음 되돌아 나가다가,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정상을 이루고 있는 바위벼랑 아래를 통과한다. 바위와 노송(老松)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내는 멋스런 구간이다.

 

 

 

하산을 시작하면 잠시 후 커다랗고 멋진 바위를 만난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쪼개 놓은 듯 반듯하게 둘로 나뉘어져 있다. 바위가 갈라지면서 생겨난 듯한 바위 조각 하나가 갈라진 바위의 위편 틈새에 끼이면서 작은 구멍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구멍 너머로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내가 가장 원하는 단 하나의 그림, 바로 내 집사람의 초상화이다. 그렇다면 이 바위의 이름을 액자바위라고 지어보면 어떨까.

 

 

 

잠시 후, 그러니까 정상에서 5~6분 쯤 내려오면 헬기장이 나온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highlight)로서 일망무제(一望無題)의 조망이 터지는 곳이다. 우선 아까 산행을 시작했던 너구내고개 너머에선 천마산이 그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그 왼편에는 백봉산과 고래산 문안산이 줄을 지어 서있다. 그리고 북한강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용문산이 나도 있다며 나타난다. 그 옆에 뾰쪽하게 솟아오른 봉우리는 아마 양자산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송천리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산을 까 헤집어 놓은 채석장(採石場)이다. 아름답게 그려가던 조망도(眺望圖)를 망쳐버리는 유일한 아쉬움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 또한 도시개발이라는 이면(裏面)에 숨어있는 필수요건인 것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너머에 있는 화야산과 고동산이 이런 단점까지도 감싸 안으며 부족하나마 나름대로의 풍경화를 그려나간다는 것이다.

 

 

 

 

헬기장에서의 볼거리는 조망뿐만이 아니다. 때는 바야흐로 가을의 초입, 가을의 전령사인 들국화가 만발해 있는 것이다.

 

 

 

헬기장에서의 하산은 올라왔던 반대방향이다. 굴곡(屈曲)이 거의 없는 능선을 5~6분쯤 걸었을까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아 어디로 가는 길인 줄은 모르지만 우리는 능선을 따라 난 왼편 길을 따르기로 한다. 어설프기는 하지만 바윗길이 보여 혹시라도 짜릿한 스릴을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사면(斜面)을 따라 난 오른편 길이 훨씬 더 또렷하게 나있는 것으로 봐서 심석초등학교로 내려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산길은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바위를 붙잡아야만 아래로 내려설 수 있는 등 어설프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바윗길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괜찮게 생긴 바위들이라는 눈요깃거리까지 보너스로 제공해 준다.

 

 

산길은 엄청나게 가파르다. 만일 통나무계단을 놓지 않았더라면 내려서기조차 만만치 않을 구간이다. 계단을 설치한 행정청이 고맙지만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계단을 설치한 후에 한 번도 보수를 않은 탓인지 대부분이 썩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얼마쯤 내려갔을까 기묘(奇妙)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이번에는 의자를 빼다 닮았다. 아니 감투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래 이 바위에는 감투바위라는 이름을 붙여보기로 하자.

 

 

가파르게 내려서던 산길이 느긋해진다 싶더니 난데없이 네다섯 그루의 밤나무가 나타난다. 나무 아래에는 숱하게 많은 알밤들이 떨어져 있다. 비록 밤톨만 하다라는 옛말이 생각날 정도로 작은 산밤에 불과하지만 이게 웬 횡재란 말인가. 아마 가파른 산길을 내려오느라 고생한데 대한 보상인 모양이다. 아무튼 우리부부는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한 되 남짓이나 되는 알밤을 주울 수가 있었다.

 

 

숱하게 널려있던 밤들이 대충 없어진 다음에야 또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시야(視野)가 확 트이면서 맞은편 산자락에 자리 잡은 채석장(採石場)이 그 흉물스러운 자태를 드러낸다. 송라산에 올라 가슴에 담았던 아름다운 풍경들이 반감되어버리는 순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발아래에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이다. 비록 인공(人工)이지만 커다란 연못까지 갖춘 주위 풍경이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정물화를 연상시키고 있다.

 

 

산행날머리는 소래비고개(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리)

시야가 터졌다 싶으면 산행이 대충 끝났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문제다. 내려서는 곳이 남의 공장(원일산업) 안마당인 것이다. 공장에서는 비닐(vinyl)()으로 길을 막은 후 텃밭을 만들어 버렸다. 왜 남의 안마당으로 길을 내었냐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되돌아갈 수는 없기에 무턱대고 금()줄을 넘고 본다. 이어서 미안한 마음으로 정문을 통과하고 나면 곧이어 화도읍과 수동면을 잇는 군도(郡道 : 소래비로)에 내려서게 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1시간50분이 걸렸다. 밤을 줍는데 시간을 좀 쓰기는 했지만 얼마 되지 않으므로 온전히 걷는데 든 시간으로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공장(원일산업)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다. 그러나 버스(30-7)를 기다리는 것은 무모하다. 배차간격이 평일기준 190분이니 주말에는 더 늘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핸드폰 웹(WAP : wireless application protocol)에서도 버스의 도착시간 검색이 불가능했다. 이제는 택시를 부르던지 아니면 걷을지를 결정해야만 한다. 산행시간이 짧기에 우리부부는 걸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최악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왕복 2차선인 도로이지만 보행로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구불구불한데다 노폭(路幅)까지 비좁은 도로를 오가는 차량들이 무서울 정도로 속도를 내면서 달리는 것이 아닌가. 자칫 목숨을 내놓아야할 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가을의 전령이라는 코스모스 꽃밭도 만날 수 있었고, 또 다른 곳에는 알밤을 줍는 행운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위험스러운 구간은 소래비고개를 넘어 한참을 더 내려가고서야 끝을 맺는다. 고개를 넘어야 만날 수 있는 첫 동네(산성마을)에서 마을 안길을 이용해서 마석역까지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도로에 내려서서 마석역까지는 35분 정도이 걸렸다. 비록 서서히 걸었다고는 하지만 꽤나 먼 거리이다. 거기다 목숨까지 걸고 소래비고개를 넘었던 것을 생각하면 후에 나와 같은 코스로 답사를 하게 될 사람들은 꼭 택시를 이용할 것을 권하고 싶다.

갑산(甲山, 546m)

 

산행일 : ‘15. 8. 29()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과 화도읍의 경계

산행코스 : 도곡리 버스종점꼭지봉조조봉두봉삼거리갑산큰명산월문리(산행시간 : 2시간50)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적갑산?’ 갑산을 가자는 내 전화를 받고 친구가 되물어온다. 적갑산을 잘못 말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만큼 갑산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론 지맥을 종주하는 사람들은 예외로 쳐야 한다. 갑산이 천마지맥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잣거리를 방불케 하는 서울 인근의 산들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산이다.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약간 어설프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바윗길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곧바로 산길과 연결되지는 않지만 전철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산행들머리는 매봉산등산로입구 버스정류장(와부읍 도곡리 260-1)

중앙선전철 덕소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99-1번 버스를 타고 새재골 종점(매봉산등산로 입구)에서 하차한다. 우린 덕소역 환승주차장에다 차량을 파킹시킨 후에 앞에서 말한 버스를 이용해서 이곳까지 왔다. 들머리 근처에 마땅한 주차장소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버스에서 내리면 갑산이라고 적힌 커다란 표지석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얼핏 정상표지석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높이가 적혀있지 않은 것을 보면 이곳이 갑산의 들머리라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될 듯 싶다.

 

 

 

새재골가든입간판 뒤로 난 오솔길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그런데 들머리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게 문제다. 칡넝쿨 등 넝쿨식물들이 어지러울 정도로 우거져 들머리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표지석 옆에 뻘쭘하게 서있는 이정표(갑산 2.93Km/ 예봉산(새재고개, 갑산) 6.30Km)를 이곳으로 옮겨놓았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일단 들머리로 들어서고 나면 길은 금방 또렷해진다.

 

 

산행은 처음부터 지지부진이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길가에 떨어져 있는 밤송이를 까느라 산행은 뒷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 산행코스가 너무 짧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는 탓일 것이다. 이런 게 근교산행의 이점이 아닐까 싶다.

 

 

초반에 잠시 가팔랐던 산길은 일단 능선에 올라서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기세를 뚝 떨어뜨려버린다. 그리고 이후부터는 콧노래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편안하게 계속된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걸으면 첫 번째 송전탑(送電塔)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15분 정도를 더 걸으면 두 번째 송전탑이다.

 

 

두 번째 송전탑을 지나면서 산길은 상당히 가팔라진다. 그리고 그 오르막의 끄트머리에서 꼭지봉(갓무봉)을 만나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38분 만이다.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대신 안내판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산의 유래를 적어 놓은 설명판이다. 내용으로 보아 스토리텔링(Storytelling)으로 이름을 지었던 모양이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다. 꼭지봉이나 갓무봉이라는 봉우리의 이름과 스토리의 내용이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안내판 아래에 그려놓은 지도의 어느 곳에도 안내판에 적었던 지명은 나타나 있지 않는다. 이왕에 하는 거 조금 더 신경을 썼었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보드라운 황톳길인데다 경사까지 완만하다. 거기다 시간까지 느긋하니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도 없다. 한껏 여유를 부려도 하등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얘기이다. 앞서가는 아라치양도 느긋하기는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조금만 특이하다싶으면 어김없이 핸드폰을 들이대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오늘의 볼거리는 각양각색의 야생버섯들, 대신 들꽃은 보이지 않는다. 이곳 갑산의 특징인 모양이다.

 

 

 

 

한껏 여유를 부리며 산행을 이어간다. 꼭지봉에서 내려선지 8분쯤 지나면 안골갈림길’(이정표 : 갑산 1.83Km/ 안골장수약수터 0.23Km, 안골마을 0.71Km/ 어룡마을 1.10Km)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벤치를 놓인 작은 쉼터에 이른다. 쉼터는 전망대를 겸하고 있지만 온전한 조망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덕소 시가지가 내려다보이지만 나뭇가지들이 절반 이상을 갉아먹어 버리기 때문이다.

 

 

 

 

안골갈림길에서 15, 그러니까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쯤 지나면 오늘의 하이라이트(highlight)가 펼쳐진다. 전형적인 육산(肉山)에서 느닷없이 바위지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안전로프에 의지해야 만이 올라갈 수 있는 구간까지 있을 정도로 서슬 시퍼런 암릉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우회로(迂廻路)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회로를 이용할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지만 말이다. 스릴(thrill)을 즐겨볼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않겠는가. 산행대장 출신의 최군을 앞세워 바윗길에 들어붙고 본다.

 

 

 

밧줄에 의지해서 거의 수직(垂直)에 가까운 암벽구간을 오르면 정상표지판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비봉(조조봉) 정상(472m)이다. 이곳 조조봉의 정상표지판도 역시 안내판을 겸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어설프기는 아까 올랐던 꼭지봉과 매한가지이다.

 

 

 

조조봉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바위산이 지닌 전형적인 특징일 것이다. 정상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바위 위로 올라서면 유장한 물줄기를 자랑하는 한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강을 끼고 있는 남양주시와 구리시, 하남시의 시가지 풍경은 덤이다. 그리고 눈을 들면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산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로 옆에 있는 적갑산과 예봉산은 물론이고, 강 건너에 있는 검단산까지 눈에 잡힌다. 하지만 도봉산이나 북한산, 관악산, 불암산 등의 조망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연무(煙霧)로 인해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조조봉에서 만난 기이하게 생긴 소나무, 얼마나 길손들에게 시달렸으면 저런 모습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을까. 애잔한 마음이 든다.

 

 

조망을 즐기다가, 아니 우리 일행은 이곳에서 술판을 벌였다. 비록 막걸리 두 병이 다였지만 말이다. 잠시 후 또 다른 바위전망대에서 조망(眺望)을 즐긴다. 이번에는 적갑산과 예봉산이 정면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한강 건너에 있는 검단산과 남한산까지도 제법 또렷하게 보인다.

 

 

 

다시 산행을 이어가면 12분 후에는 두봉(가마바위) 정상(523.5m)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도 역시 안내판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정상표지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널따란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벤치를 놓아 쉼터의 역할까지 수행토록 하고 있다. 그러나 길손을 머물게 만들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그냥 지나쳐버리는 이유이다.

 

 

 

가는 길에 크고 굵은 나무가 보인다. 이름표까지 매달아 놓은 것을 보면 흔히 볼 수 있는 나무가 아니라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다가가보니 그 흔한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이 아니겠는가. 갸웃거리던 고개가 끄떡거림으로 변한 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낙엽송치고는 보기 드물게 굵을 뿐만 아니라 가지 또한 옆이 아닌 위로 뻗어 오른 것이 여느 낙엽송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두봉을 지나서 10분 정도를 더 걸으면 이번에는 어룡마을에소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능선삼거리(이정표 : 갑산 0.43Km/ 어룡마을 2.50Km/ 안골마을 2.11Km)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하늘을 위협이라도 하려는 듯이 위를 향해 치솟은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숲을 지나면 20 분 정도 후에는 긴 통나무 계단이 나타난다.

 

 

 

 

힘겹게 통나무계단을 오르면 이정표(새재고개 0.75Km, 어룡마을 2.87Km/ 안골마을 2.48Km)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거리이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정상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이정표가 좀 이상하다. ()위치를 갑산 정상이라고 표기해 놓은 것이다. 어떻게 봉우리도 아닌 곳을 두고 정상이라고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무신경(無神經)한 행정관청을 나무라고 싶어지는 순간이다.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만 더 걸으면 무인산불감시탑이 나온다. 갑산 정상이라고 오해하기 딱 좋은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감시카메라 울타리에 선답자들이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이 두 개나 보인다. 그러나 실제 정상은 이곳에서 조금 더 진행해야 만날 수 있다.

 

 

 

감시탑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맞은편 능선을 치고 오르면 4~5분 후에는 드디어 갑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그러나 갑상 정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굵은 소나무 한 그루가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아무런 특징도 보여주지 못한다. 조망도 딱 막혀있다. 정상표지석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사람들이 조금 전에 지나왔던 무인산불감시탑이 세워진 봉우리를 갑산 정상이라고 오해하는 이유이다.

 

 

월문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왔던 길과 반대방향이다. 3~4분쯤 지나면 표기된 거리표시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이정표(갑산 0.06Km, 새재고개 0.81Km, 안골마을 하산길 2.54Km/ 어룡마을 하산길 2.93Km) 하나를 만나게 된다. 생김새로 보아 아까 산불감시탑 근처 삼거리에서 만났던 현재 위치를 갑산 정상이라고 표시해 놓았던 이정표와 같은 행정청에서 같은 시기에 만든 모양인데 두 이정표 간의 거리표시가 너무나도 맞지 않는 것이다. '삼거리 이정표에서 이곳까지의 거리가 60m뿐이 떨어지지 않았단다. 10분 이상을 걸어왔는데도 말이다. 이정표에서 표기한 갑산을 조금 전에 지나온 실제 정상으로 쳐도 그렇다.

 

 

이정표를 지나면서 산길을 가파르게 변한다. 그리고 꽤 길게 이어진다. 계속해서 내리막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짧을망정 작은 오르막길도 나타난다. 그러다가 중간에서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기도 한다. 고래산과 문암산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오고, 그 왼편에서 백봉산과 천마산 등이 나도 있다는 듯이 우뚝 솟아올랐다.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던 산길이 어디선가부터 오름세로 변하고 있다. 그것도 상당히 가파르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삼각점(양수 448)이 있는 밋밋한 봉우리 위에 올라선다. 누군가 플라스틱 물통에다 큰명산이라고 적어 놓았다. 보기는 다소 옹색하지만 고마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가 아니었으면 이곳이 큰명산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갑산에서 큰명산까지는 35분 정도가 걸렸다.

 

 

 

큰명산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공깃돌 모양의 커다란 바위가 나온다. 우리가 흔들바위라고 불러오던 바위들을 빼다 닮았다. 부지런한 최군이 모션(motion)까지 잡아주지만 바위는 끄떡도 않는다. 모양만 흔들바위였던 것이다.

 

 

흔들바위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이번에는 사랑나무연리목(連理木)’을 만난다. 부부간의 금슬이 좋거나 남녀 간의 애정이 깊은 것에 비견(比肩)되는 연리목이란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오늘 만난 연리목은 다문화가정인 모양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두 나무가 하나로 합쳐져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무튼 중국의 시인 백낙천은 장한가(長恨歌)’라는 서사시(敍事詩)에서 연리목의 이미지를 끝없는 사랑로 표현했다. 이런 좋은 의미의 나무를 만났으니 오늘도 행복한 산행이었다고 치부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를 일상에까지 가져갔으면 좋겠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아껴주고 보듬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산행날머리는 월운리(와부읍)

큰명산에서 하산지점인 월운리는 금방이다. 그러나 가다보면 길이 나뉘는 지점이 두어 곳 나온다. 우리 일행은 두 번 모두 왼편으로 진행했지만 다른 방향으로 가도 우리가 내려섰던 임도에 내려서기는 매한가지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임도로 떨어지는 지점만 달라졌을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큰명산에서 20분 조금 못되게 내려오면 임도에 이르게 되면서 사실상의 산행은 여기서 끝난다. 물론 차를 타는 곳은 이곳에서도 한참을 더 걸어야지만 말이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50분이 걸렸다. 그러나 쉬엄쉬엄 걸었고, 거기다 준비해간 간식을 먹느라 2시간 가까이를 쉬었으니 소요시간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월운리 풍경

 

 

월운리는 도심 근교의 산골마을인가 보다. 길가 논에서 벼가 익어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개중에 부지런한 것들은 이미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가을은 이미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와 있었던 모양이다.

 

 

산행을 끝내자마자 부지런한 최군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식사를 마친 후에 덕소역까지 나가는데 필요한 차량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식당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의 고생 덕분에 찾아든 곳이 바로 약선요리 전문집 산촌(전화 : 031-577-6011, 010-3808-8945)이다. 닭과 오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인데, 15가지의 약초를 넣었다고 해서 십오향이란 이름표까지 달고 있다. 주문했던 닭백숙은 물론 맛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를 갖고 블로그에 소개할 나는 아니다. 한때 맛있는 음식을 찾아 전국을 헤매봤던 나이기에 웬만한 음식은 다 그게 그거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내가 추천하는 이유는 바로 그녀의 친절 때문이다. 누군가 얼굴이 예쁘면 마음씨도 곱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예쁘장한 주인아주머니는 마음씨가 고왔다. 손수 담갔다는 술(엄청나게 종류가 많았는데 우린 솔방울술을 마셨다)을 권하는가 하면, 시키지도 않은 부침개와 더덕구이까지 내다 주는 것이다. 덕분에 우린 엄청나게 많은 술을 마시게 되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녀의 친절 덕분에 우린 산행의 마무리를 행복하게 지을 수 있었고, 또한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도 덕소역까지 나올 수 있었다. 참 잊을 뻔했다. 이 집은 주문 후 1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닭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기다림이 싫은 사람들이라면 주문이 필수라는 얘기이다. 우린 서비스 안주로 술을 마시며 기다렸지만 말이다.

철마산(鐵馬山, 787m)

 

산행일 : ‘15. 8. 8()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과 오남읍, 그리고 진접읍의 경계

산행코스 : 오남저수지복두산천마지맥 삼거리철마산(남봉)길재철마산(북봉)비월교 갈림길비월교(산행시간 : 4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철마산은 웅장하거나 빼어난 자태는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큰 오르내림이 없는 능선은 아기자기한 산행을 원하는 등산객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족하다. 특히 스키장으로 유명한 천마산이 남쪽으로 10km나 떨어져 있는 덕분에 사람들의 때를 거의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깨끗함을 보존하고 있다. 호젓한 산행을 즐기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산이라는 얘기이다. 북봉과 남봉 정상에서의 조망 또한 뛰어난 편이다. 거기다 비록 길지는 않지만 바윗길까지 끼고 있어 나름대로 여러 가지의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꼭 천마지맥 종주를 하는 사람들이 아닐지라도 한번쯤은 꼭 올라봐야 할 산이라는 얘기다.

 

산행들머리는 오남저수지(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산9-1)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곳까지 오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하철2호선 선릉역에서 2000번 좌석버스를 타고 곧바로 오남저수지·팔현리 입구까지 오는 것이다. 수도권전철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상봉역에서 경춘선 전철을 타고 사릉역에서 내려 버스로 환승하면 된다. 이곳으로 오는 버스 노선이 많음은 물론이다. 우리 일행은 마석역에서 택시(16천원)를 이용해 저수지 제방(堤防) 바로 아래까지 왔다.

 

 

 

오남저수지는 남양주시에 있는 몇 안 되는 저수지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그 희귀성보다는 저수지 경관의 수려함 때문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다. 이러한 장점을 살려 남양주시에서는 이곳에다 호수공원을 만들었다. 산책로는 물론이고 곳곳에 쉼터를 만들어 찾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쉬다가 갈 수 있도록 꾸몄다. 특히 저수지 둑에는 무대까지 만들어 놓았다. 특별한 날에는 음악회 등의 행사가 열리는 모양이다.

 

 

산길은 오남저수지 둑의 왼편 끝자락에서 열린다. 산길의 폭이 넓은데다 반질반질하게 윤이 날 정도로 잘 닦여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수많은 현수막과 입간판들이 너절하게 내걸려있는 곳을 찾으면 될 일이다.

 

 

산행 초반은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가끔 숨을 쉴 때마다 콧속으로 들어오는 소나무향이 온 몸 구석까지 깨끗하게 만드는 기분이다. 함께 걷는 이들 모두 행복해하는 표정들이 역력하다. 하긴 이런 산행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만일 산행 내내 이런 산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그야말로 행운이라 할 것이다. 그렇게나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맘껏 들이키면서 걷는 힐링(healing)산행을 즐길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바닥은 바위는커녕 돌맹이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한 흙길, 거기다 경사(傾斜)까지도 급할 것 없다는 듯이 느긋하기만 하다. 물론 올라가는 곳이 없지는 않다. 다만 그것이 완만(緩慢)하기 때문에 힘이 들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요즘은 뭐든지 빠른 게 대세(大勢)인 시대이다. 그러나 산만은 예외이어야 한다. ‘빠름의 유혹을 버려야만 산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산에다 호흡을 맞추어 본다. 그러다보면 산에서 살아가는 것들에 동화되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산행을 시작하고 얼마나 걸었을까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는 작은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오남읍 시가지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날씨가 좋을 경우 서울시 외곽에 위치한 산들까지 잘 조망될 터인데 연무(煙霧)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일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50분 가까이 되면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이정표(복두산 0.09Km/ 극동아파트 2.20Km/ 오남저수지 1.40Km)를 만나게 된다. 왼편은 극동아파트에서 올라오는 길, 복두산으로 가려면 물론 곧장 능선을 따르면 된다.

 

 

극동아파트 갈림길을 지나면서 가팔라진 오르막길을 잠시 치고 오르면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복두산 정상(이정표 : 철마산 2.80Km/ 극동아파트 2.30Km)에 올라서게 된다. 해발고도(海拔高度)458m에 불과한 복두산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덕분에 누구나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정상이라기보다는 동네 뒷산에 만들어진 쉼터의 느낌이 강하다.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 몇몇이 평상과 벤치에서 쉬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널따란 정상은 거대한 소나무 한 그루가 주인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원래의 주인이어야 할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지 않아 그런 느낌이 들었지 않았나 싶다.

 

 

 

정상에서의 시야(視野)는 한쪽 방향으로만 열린다. 그러나 그 조망(眺望)은 썩 뛰어난 편이다. 발아래에는 오남저수지와 오남읍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에는 수많은 산군(山群)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연무(煙霧) 때문에 또렷하지는 않지만 아마 불암산에서 수락산으로 연결되는 바위능선일 것이다. 오늘은 근교 산행이라 시간이 여유로운 편이다. 마침 전망 좋은 곳에 벤치까지 놓여있다. 느긋이 앉아 눈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가슴에 담아본다.

 

 

 

산길은 복두산을 지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길바닥은 변함없이 보드라운 흙길이 계속되고, 오르막길의 경사도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달라진 점이 있기는 하다. 길의 폭이 아까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둘이 나란히 서서 걸어도 충분했던 길이 복두산을 지나면서부터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아진 것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길 오른편에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그 바위 틈새에서 자란 오래 묵은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어 잠깐의 쉼터로 안성맞춤일 것 같다. 마침 시야(視野)까지 트이기에 올라봤으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별로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서울방향의 산들이 나타나나 연무 때문에 어느 산이 어느 산인지 도대체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복두산에서 40분 남짓 걸으면 천마지맥(天摩枝脈)의 마룻금에 올라서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산길은 두 갈래(이정표 : 철마산 0.85Km/ 천마산 6.2Km/ 복두산 1.9Km)로 나뉜다. 오른쪽으로 가면 천마산, 물론 우리가 가야할 방향은 왼편 철마산으로 향하는 능선이다. 참고로 천마지맥이란 한북정맥 상의 운악산과 수원산 사이 424.7봉에서 동남쪽으로 분기(分岐)되어 주금산과 철마산, 천마산, 백봉, 갑산, 적갑산, 예봉산을 지나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인 두물머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50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천마지맥을 만난 산길은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거리는 짧다. 4~5분이면 봉우리를 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철마산 0.8Km/ 천마산/ 복두산 2.1Km)를 만난다. 오른편에 보이는 길은 천마산에서 오는 길로 조금 전에 올랐던 봉우리를 우회(迂廻)해서 돌아오는 길이다. 천마지맥을 종주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길로 왔을 게 분명하다.

 

 

갈림길에서 요기를 달랜 후, 다시 철마산을 향해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에는 금곡리(초당)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철마산 0.76Km/ 금곡리(초당) 3.9Km/ 천마산 6.4Km)에 이른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희미하게나마 오른쪽으로도 길의 흔적이 보이는 것이 쇠푸니고개가 아닐까 싶다. 안부에는 벤치 몇 개를 놓아두었다. 아마 이제부터 시작될 오르막길을 대비해 잠시 숨이라도 고르고 난 후 출발해보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쇠푸니고개를 지나면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또 어떤 곳에서는 바윗길도 만난다. 가파른 곳에서는 헥헥소리가 빠질 수 없고, 바윗길이라도 만나면 행여나 빗물에 흠뻑 젖은 바위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할까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만큼 산길이 힘들다는 얘기이다. 옛날 임꺽정은 천마산에 근거지를 두고 의적 활동을 펼쳤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그가 이웃에 있는 이곳 철마산까지 안 넘어왔을 리가 없다. 이렇게 험한 곳이다 보니 관군들의 토벌로부터도 안심할 수 있었을 테고 말이다.

 

 

빗속을 얼마나 걸었을까 왼편에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빗줄기와의 싸움을 버거워하면서도 바위 위로 올라가본다. 조망이 뛰어날 것으로 생각되어서이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을 리가 없다. 그만큼 빗줄기가 거세졌던 것이다.

 

 

간간이 보이던 바위들이 그 빈도를 높이더니, 산길은 우리를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 위에다 올려놓는다. 쇠푸니고개에서 25분 정도가 걸렸다. 거센 빗줄기 속에서도 삼각점(성동427,19994재설)이 또렷하다. 어쩌면 이곳이 지도상의 철마산일 것이다. 삼각점봉을 지나자마자 철마산 정상이다.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이정표(내마산 2.2Km, 주금산 8.1Km/ 천마산 7.1Km)외에도 국기봉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 국기봉에는 거센 비바람에도 불구하고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꿋꿋하게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는 이유는 뭘까. 얼마 안 있으면 70돌을 맞는 광복절(光復節)이 돌아오고, 또한 요즘 박근영이라는 또라이가 대통령을 팔고 다니며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혼돈의 상황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라면 다시 한 번 조국을 되돌아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정상 부근에서의 조망은 괜찮다고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폭우로 인해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래 머물지 않고 금방 정상을 떠나는 이유이다. 참고로 철마산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이나 대동지도(大東地圖)’ 등 고문헌(古文獻)에는 검단산(黔丹山)이라 기록되어 있다. 주봉인 남봉(철마산 : 711m)과 북봉(내마산: 786m)의 두 봉우리가 있는데, 산의 이름은 남쪽의 쇠푸니, 북쪽의 검다니가 들어간 지명으로 보아 각기 '쇠를 캐는', '검은 또는 수풀이 우거진'의 의미에서 유래하여 철마산, 검단산이 된 것으로 보인다. 1910년대에 조선지형도를 만들면서 '철마산' 만을 기록해 놓은 이래 검단산은 사라지고 두 봉우리 모두 철마산으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남쪽을 철마산 또는 철마산 남봉’, 북쪽을 철마산 북봉또는 내마산이라 부른다.(국토지리정보원의 한국지명유래집에서 인용)

 

 

 

내마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의외로 순탄하다. 경사가 거의 없이 이어진다는 얘기이다. 15분쯤 걸었을까 삼거리(이정표 : 주금산 7.4Km/ 철마산 0.86Km, 천마산 7.8Km/ 진벌리)가 나타난다. 아까 지나왔던 쇠푸니고개와 마찬가지로 이곳의 이정표도 왼편 진벌리 방향만 표기를 해 놓았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편으로도 길이 희미하게 나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이곳이 수산리와 진벌리를 연결한다는 길재고갯마루가 아닐까 싶다.

 

 

쇠푸니고개를 지나면서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철마산 근처에서부터 폭우(暴雨)로 변했다. 혹시 누가 바가지로 퍼 붓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몇 미터 앞이 채 안보일 정도인 것이다. 거기다 머리 위에서는 쉴 새 없이 번개가 불빛을 내뿜고, 뒤이어 천둥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혹시라도 나도 모른 사이에 죄라도 짓지 않았을까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정도로 무섭기까지 하다. 이건 숫제 오르막길과의 싸움이 아니라 폭우와의 싸움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그저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걷고 또 걸을 따름이다. 제발 천둥번개가 빨리 지나가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산길은 길재를 지나면서 다시 가파르게 변한다. 그렇다고 오르막길만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간다는 얘기이다. 그러던 산길은 이정표가 없는 진벌리 갈림길을 다시 한 번 분가시키고 난 뒤에 험한 바윗길 앞에 이른다. 바윗길에는 설치한 지 얼마 안 되는 듯한 나무계단이 놓여있다. 계단 옆 바위 위에 로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로프에 매달려 올라야만 했던 모양이다.

 

 

계단에서부터 본격적인 바윗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비록 쉽지 않은 바윗길이지만 목숨에 위협을 받을 정도까지는 아니고, 거기다 험한 곳에는 어김없이 안전로프가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 같이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빗물에 젓은 바위가 미끄럽기 때문에 조심할 일이다.

 

 

조심스럽게 바윗길을 통과하면 능선은 또 다시 흙으로 변하면서 오른편으로 길이 하나 나뉜다(이정표 : 주금산 5.26Km/ 수산리 4.0Km). 수산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천둥번개에 겁을 먹었는지 일행 중 한분이 이곳에서 수산리로 내려가잔다. 그러나 난 반대이다. 수산리로 내려가는 길의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만일 내려가다가 계곡이라도 만날 경우에는 폭우로 불어난 물 때문에 진퇴양난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느니 조금 더 걸을망정 계곡을 건너지 않고 능선으로 연결되는 코스를 찾아보는 게 옳은 것이다.

 

 

수산리갈림길을 지나서도 바위는 줄어들지 않는다. 거기다 왼편은 바위벼랑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산길은 바위를 잘도 피해 간다. 흙길이나 다름없다는 얘기이다. 이런 상황은 꽤 오랫동안 지속된다. 그리고 가는 길에 보면 가끔 왼편 방향으로 길의 흔적이 나타나기도 한다. 진벌리나 학력골에서 올라오는 길인 모양인데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지는 않다.

 

 

길재를 출발하고 40분쯤 되었을까 헬기장(이정표 : 내마산 0.35Km/ 철마산, 천마산)이 나온다. 정상 직전에 있는 헬기장인데 곱게 핀 마타하리꽃이 지천인 것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모양이다. 조망이 트이지 않기 때문에 발걸음을 멈출 필요가 없는 곳이다. 헬기장에 세워진 이정표에서 우린 또 다시 내마산이라는 낯선 이름을 만난다. 아까 철마산 정상에서 처음으로 조우했던 이름이다. 그리고 내마산은 아까 철마산을 얘기할 때 요즘 불리는 이름이라고 짧게 소개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이름인지 모르겠다. 출처가 분명한 이름보다는 차라리 옛 이름대로 검단산(黔丹山)이라고 부르는 게 더 옳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이 봉우리 부근에 검다니라는 마을이 있다니까 말이다. 이때 검단산은 검은 산이나 수풀이 우거진 산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주장 또한 국토지리정원의 한국지명유래집을 참조했다.

 

 

헬기장에서 잠깐 내려서면 팔야리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이정표 : 주금산 6.1Km/ 천마산 9.4Km/ 팔야리 3.5Km)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다시 한 번 울퉁불퉁한 바윗길 구간을 통과하고 나면 드디어 철마산 북봉, 그러니까 아까 이정표에서 보았던 내마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철마산을 출발한지 1시간10분 정도가 걸렸다.

 

 

 

10여 평은 족히 넘어 보이는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내마산 정상은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주금산 6.0Km/ 철마산 2.2Km, 천마산 9.6Km)에도 이곳이 정상이라는 표식은 없다. 그저 아까 지나왔던 철마산 정상 및 이곳의 이정표에 표기(表記)된 두 봉우리간의 거리 표시를 서로 비교해봄으로써 이곳이 내마산 정상인 것을 추정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그 외에도 이곳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는 있다. ‘화광중산악회에서 내건 내마산(철마산 북봉)’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현수막이란 게 일정 시간이 지나면 여러 가지 이유로 사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곳이 정상임을 알아낼 수 있는 위의 방법을 적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그야말로 일망무제(一望無題)이다. 헬기장으로 되어있어 시야(視野)를 가리는 방해물이 일절 없기 때문이다. 아니 있기는 있다. 비록 조금이기는 하지만 잡목(雜木)들이 나타나는 풍경의 아랫도리를 잘라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는 정상에 놓인 의자 위로 올라서면 되니 문제될 것은 없다. 눈을 들면 멀리 포천 땅 한북정맥의 주 마루금인 죽엽산과 수원산이 잘 보이고 동쪽으로 축령산과 오독산이 길게 누워있다. 북쪽에서 삐죽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산은 물론 주금산이다. 비온 뒤 끝에 나타난지라 또렷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 주변을 떠다니는 구름들까지 보태지니 한마디로 그림이다. 그것도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인 것이다.

 

 

오래 전 2000년대 초반에 높고 큰 산들에 푹 빠졌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난 백두대간과 한북정맥 등을 종주하는 것으로 낙()을 삼았었다. 오늘 산행을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때 만났던 이들이다. 각설하고 그때 적었던 글을 살펴보면 눈물 한 방울 똑 떨어뜨렸다라는 표현이 가끔 나타난다. 극한(極限)의 아름다움을 보았을 때 내가 쓰는 표현이다. 오늘도 그때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고 싶어진다. 그만큼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아름답다는 얘기이다. 녹음으로 물든 산하(山河)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데 거기다 하얀 뭉게구름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으니 그 아름다움을 어찌 한마디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 아름다움에 놀라 나도 몰래 눈물 한 방울 똑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하산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없다. 다들 뛰어난 조망(眺望)에 취했나보다. 남은 술과 안주를 털어버리자는 핑계로 뭉그적거리다가 마지못해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 길은 여전히 험한 바윗길이 계속된다. 그러나 위험할 정도는 아니고 그저 손맛을 보기에 딱 좋을 정도다. 짧게 끝나버리는 게 아쉬울 정도로 즐거운 길이다.

 

 

앞서가던 최군이 오른편으로 들어가 볼 것을 권한다. 뭔가 볼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는 명품소나무(名品松)로 분류해도 될 만큼 기이하게 생긴 노송(老松)이 한 그루 자리 잡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뿌리를 드러내면서 쓰러져 있었지만 말이다. 가능하다면 예산을 들여서라도 그 소나무를 살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옆에 벤치라도 하나 놓아둔다면 또 다른 명소를 만들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명품소나무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이정표(수산리 2.2Km, 주금산 5.8Km/ 천마산 9.8Km) 하나가 보인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곳에서 비월교로 내려가는 길이 나뉜다. 주능선을 조금 더 따라가다 금단이고개에서 비월교로 내려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우리는 이곳에서 오른편 능선을 타기로 한다. 남들이 잘 다니지 않는 코스를 답사해 보려는 이유이다.

 

 

비월교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찾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지점에서 폐()타이어를 쌓아 만든 벙커가 있는 오른편으로 들어서면 된다. 처음에는 길이 희미하지만 10m정도만 더 나아가면 길은 또렷해진다.

 

 

비월교로 내려가는 산길은 줄곧 능선을 따른다. 능선은 의외로 양호하다. 거기다 뛰어난 볼거리까지도 제공한다. 초반 구간이 바위들이 많아 두어 곳에서 뛰어난 전망대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까 내마산 정상에서 보았던 축령산 방향으로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또 다시 펼쳐지는 것이다.

 

 

 

 

조망을 즐기고 나면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돌변한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닥이 흙으로 이루어진데다가 지그재그로 갈지()자를 그리면서 내려서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것이 그 이유이다.

 

 

 

전망대를 지나면서 산길은 볼거리가 사라진다. 대신 육산(肉山)의 특징을 살린 또 다른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 수많은 종류의 버섯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이 각자의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비가 온 뒤끝인지라 싱싱하기까지 하니 어느 것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아래 사진들은 무작위로 뽑은 것이다.

 

 

 

하산을 하다가 행운을 만났다. 비록 왜소하지만 연리목(連理木)을 쏙 빼다 닮은 나무를 만났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금슬이 좋거나 남녀 간의 애정이 깊은 것에 비견(比肩)되는 연리목이란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말한다. 그러한 끝없는 사랑의 이미지는 백낙천의 장대한 서사시(敍事詩) ‘장한가(長恨歌)’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지극한 효()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나무를 그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 간에 나누었던 사랑의 의미로 탈바꿈시켰다. 그것도 지극한 사랑이야기로 말이다. 마침 오늘 산행도 집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 양귀비의 무릎을 베고 누워 느꼈을 현종의 감정을 상상해보며 집사람에 대한 내 사랑을 조금이나마 키워본다.

 

 

또 다른 볼거리는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위로 솟아오른 잣나무 숲이다. 낙엽송 또한 볼만한 것임은 물론이다. 한 아름이 넘는 잣나무와 낙엽송 숲은 꽤 오랫동안 이어진다. 이 코스를 이용하는 등산객들이 드문 탓인지 사람의 손때도 타지 않았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쓰레기 또한 눈에 띨 리가 없다. 도심(都心)에서 그리 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산길을 만났다는 것은 행운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마냥 좋지만은 않다. 능선이 끝나갈 무렵에서 산길이 거의 흔적조차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넝쿨식물들이 능선을 온통 장악해버린 탓이다. 만일 반팔셔츠나 반바지를 입었다면 욕설(辱說) 두어 마디 정도 내뱉는 것은 각오해야만 하는 구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구간이 그다지 길지는 않다는 점이다.

 

 

산행날머리는 비월교(수동면 내방리)

넝쿨식물들과의 힘겨운 싸움을 하다보면 어느덧 임도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임도라고 해서 나아질 것은 거의 없다. 아까보다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가평군 상면과 남양주시 수동면을 연결하는 387번 지방도에 내려서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이곳 수동면은 이름 그대로 물이 좋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특히 비금계곡은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물놀이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계곡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도무지 비집고 들어앉을 틈을 찾을 수가 없다. 앉을만한 터는 어김없이 인근 식당들이 선점(先占)을 해버린 탓이다. 자릿세를 받아먹고 살아야 하는 그네들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덕분에 우린 도로가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취우님 부부가 손수 길렀다는 갖가지 야채와 삼겹살을 먹지 않고 헤어질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은 순수하게 걸은 시간만 약 4시간30분이 걸렸다. 그러나 크게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초반 천마지맥에 이를 때까지의 구간은 가다 쉬기를 반복하면 걸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비금계곡은 풍류와 연관이 깊다. 옛날 선비들이 이곳에 놀러 왔다가 거문고를 숨겨 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계곡의 곳곳에 들어앉아 술잔을 나누고 있는 저 사람들 역시 풍류를 즐기고 있는 격이니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이 없는 모양이다.

백봉산(柏峰山, 589.9m)

 

산행일 : ‘15. 7. 30()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과 와부읍, 금곡동, 평내동, 호평동의 경계

산행코스 : 풍림2차아파트(청구아파트)체육시설 쉼터묘적사 갈림길백봉산마치고개(산행시간: 2시간 45)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함께

 

특징 : 높이가 채 600m도 안 될 정도로 나지막한데다 어디서 산행을 시작하더라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산이다. 그래선지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등산복과 평상복들로 적당하게 섞여 있다.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삼아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일단 산에 들었다하면 도시 인근의 산답지가 않다. 원시(原始)의 냄새가 물씬 풍길 정도로 숲이 울창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전형적인 육산(肉山)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곳에는 바위가 발달되어 있기도 한다. 때문에 조망(眺望)까지 탁 트인다.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얘기이다.

 

산행들머리는 청구아파트(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

오늘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해보도록 하겠다. 백봉산이 도심 인근에 위치한 산이라서 대중교통의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곳 차산리에는 공항버스는 물론이고 광역버스와 간선버스 등 수많은 버스들이 종점으로 이용하고 있다. 강북이나 강남 등 여러 곳에서 오는 것들이지만 오늘은 광역버스인 M2316만 거론하겠다. 서울의 잠실역(5번 출구)에서 이곳 차산리까지 15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종점까지 오는 데는 대략 50분에서 1시간 정도가 걸린다. 다른 버스들보다 중간에 쉬는 정류장의 숫자가 현저하게 적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종점 바로 전 정류장인 청구아파트앞이다.

 

 

오늘 산행은 내가 살고 있는 풍림아이원(I Want) 2차 아파트에서 시작하기로 한다. 원래의 등산로는 청구아파트에서 시작되지만 구태여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이다. 풍림아이원아파트의 관리사무소 뒤편에서도 정규 등산로와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어른 가슴 높이쯤 되는 철제 휀스(fence)를 넘어야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넘는 데는 별로 어렵지 않다. 울타리의 양 옆에 받침대를 놓아두었기 때문이다. 울타리를 넘자마자 세종 때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을 완성시켜 조선의 역법(曆法)은 완전하게 정비한바 있는 이순지(李純之)선생의 묘역(墓域)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연결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울타리를 넘은지 6~7분 만이다.

 

 

첫 번째 봉우리의 꼭대기 근처에서 바라본 풍림 아이원(I Want) 2차 아파트’, 맨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205동의 내가 살고 있는 층은 지금 내가 서있는 곳보다 고도(高度)가 더 높다. 그래서 뒷 베란다(veranda)의 창문으로 천마산이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조망을 막을 만한 방해물이 일절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부엌 식탁에 앉아서도 이와 똑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다. 이 집을 사게 된 이유이다. 부엌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은 집사람에게 뭔가 볼거리를 선물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봉우리를 넘자마자 청구아파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비록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백봉산은 왼편이다. 참고로 이 길은 백봉산으로 오르는 코스 중에서 가장 거리가 길(5Km). 그러나 볼거리만 놓고 볼 때에는 가장 밋밋하다고 할 수 있다. 바위나 조망 등 어느 것 하나 눈에 담아둘만한 풍경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부러 운동 삼아 오르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으니 코스 선택에 참조할 일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여러 곳에서 이런 체육시설들을 만나게 된다. 벤치 몇 개를 놓아 쉼터를 겸하도록 했다. 인근 주민들이 이용을 많이 하는 듯 거의 모든 쉼터의 벤치 위에는 그늘막이 쳐져있다. 아니 어떤 곳에는 거의 반영구적으로 지어진 곳도 있다. 비록 물론 주민들이 임시방편으로 만들다보니 허접하기 짝이 없지만 말이다.

 

 

산길을 걷다보면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길들이 좌우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도 많이 나뉘다보니 아예 이정표가 없는 곳도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이 또한 백봉산의 특징 중 하나인데, 그만큼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도 이정표가 세워진 곳이라곤 청구아파트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있는 사거리(정상/ 청구아파트/ 동원정사 / 두산위브)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아래 사진 모양으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았다. 이 부근의 갈림길들은 모두 왼편은 동원정사, 그리고 오른편은 두산위브에서 올라오는 길로 보면 된다.

 

 

울타리를 넘은지 15분쯤 되면 동원정사의 왼편 능선을 따라 올라오는 길과 만나게 되고, 이어서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시야(視野)가 트인다. 그러나 잠시 후에 이보다 더 나은 전망대를 만나게 되니 그냥 지나쳐도 괜찮다.

 

 

산을 오르다보면 녹색 비닐피복에 둘러싸인 덩어리들이 가끔 눈에 띈다. 어쩌면 참나무시들음병방제작업의 결과물일 것이다. 저 안에는 훈증처리 된 병든 나무들이 들어있을 거고 말이다.

 

 

첫 번째 전망대에서 10분쯤 더 걸으면 돌탑이 있는 삼거리에 이르게 되고, 이어서 아까 이야기 했던 두 번째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차산리 일원과 문안산과 고래산이 잘 조망되는 곳이다. 서울춘천을 잇는 고속도로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다.

 

 

 

 

길 전체가 완만(緩慢)한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오르막이 이처럼 긴 구간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두었다. 백봉산의 고객(顧客)이라 할 수 있는 등산객을 위한 배려라 할 수 있겠다. 이런 게 바로 요즘의 화두(話頭)인 고객만족, CS(customer satisfaction) 행정일 것이다. 등산로를 관리하고 있는 남양주시청 관계자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끝나면 능선 위의 삼거리(이정표 : 백봉산 2.80Km/ 청구아파트 2.25Km)에 올라서게 된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능선을 따라 왼편으로 난 길이 보인다. 지난 주 처음으로 백봉산을 찾았을 때 무심코 들어섰다가 낭패를 본 쓰디 쓴 기억이 있는 길이다. 능선을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이라고 쓰인 돌들이 몇 개 보였다. 그리고 제법 긴 글귀도 보이기에 무심코 읽어보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함부로 싸지 말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주변에 그 흔적들이 보이는데 말이다. 절대로 들어가지 말아야 할 구간이겠기에 달갑지 않은 낱말까지 써가며 거론했으니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또 다른 삼거리(이정표 : 백봉산 2.58Km/ 수리넘어고개 1.15Km/ 청구아파트 2.40Km)를 만난다. 왼편은 수리넘어고개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이곳에서부터 등산로는 천마지맥을 따르게 된다. 천마지맥(天摩枝脈)이란 한북정맥상에 있는 운악산과 수원산사이 424.7m봉에서 동남쪽으로 분기(分岐)되어 주금산~철마산~천마산~백봉~갑산~적갑산~예봉산을 지나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수점인 두물머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길이 50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참고로 천마지맥은 보통 4개 구간으로 나누어 답사를 하는데 이때 백봉산은 제3구간에 들어간다. 3구간은 마치고개에서 백봉과 수리넘어고개, 먹치고개, 갑산을 거쳐 새재까지 이어진다. 아래 사진은 수리넘어고개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세워진 남양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이정표이다. 가야할 방향과 그곳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것은 여느 이정표들과 같지만 이곳 남양주의 이정표들은 하나의 기능을 덧붙였다. 시판(詩板)을 매달아 등산객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나타나는 이정표마다 어김없이 시()를 한 수() 씩 매달고 있어 그 시들을 읽는 맛이 제법 쏠쏠하다. 그리고 또 다른 갈림길이 기대되면서 가능하면 오래오래 산길이 이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정상에 오르는 길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는 얘기이다. 시와 함께 하는 산행,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언제부턴가 능선은 잣나무 숲으로 바뀌어 있다. 그것도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울창하다. 아까부터 코끝을 간질이던 향기의 정체가 바로 솔향이었나 보다. 그렇다면 행운이다. 오늘은 힐링(healing)산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나무나 잣나무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이다. 이 피톤치드는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이 각종 병충해(病蟲害)에 저항하기 위해 배출하는 분비물(分泌物)을 말한다. 그리고 이 물질은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균작용은 물론이고, 장과 심폐기능을 강화시켜주는 한편, 스트레스 해소에도 뛰어난 효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길에서는 구태여 발걸음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발걸음은 더디게 그리고 호흡은 크게 하면서 느긋하게 걸어보자. 코끝을 맴돌던 솔향이 온몸으로 펴져나갈 것이다. 그에 따라 심신(心身) 또한 한없이 맑아질 것이고 말이다. 피톤치드의 효과를 믿고 몸을 맡겨 보자는 것이다.

 

 

천마지맥과 합류했다 싶으면 곧이어 무명봉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도 역시 체육시설과 벤치 등을 갖춘 쉼터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그리고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운동기구를 이용해 몸을 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마석(화도읍) 주민들일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45분이 지났다.

 

 

무명봉을 지나면서 능선은 급하다는 듯이 고도(高度)를 낮춘다. 그렇다고 내려서는 게 버거울 정도까지는 아니니 미리부터 겁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 울창한 잣나무 숲까지 함께하니 차라리 기분 좋은 내리막길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5분 후에는 안부 삼거리(이정표 : 백봉산 2.10Km/ 녹촌리 0.80Km/ 청구아파트 2.90Km)에 내려서게 된다.

 

 

 

안부를 지나서도 산길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능선이 오르막으로 변했지만 급할 것 없다는 듯이 서서히 위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구태여 다른 점을 찾는다면 있기는 있다. 주변의 나무들이 또 다시 참나무로 바뀌어 있다는 점이다. 거기다 이후로는 체육시설이 보이지 않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할 것이다.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부드러운 황톳길이 걷기가 무척 편하고, 거기다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는 능선은 경사(傾斜)까지도 거의 없다. 하긴 해발 600m가 채 안 되는 나지막한 봉우리를 5Km에 걸쳐 오르다보니 서둘러 고도(高度)를 높여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25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삼거리(이정표 : 백봉산 1.13Km/ 묘적사 1.30Km/ 청구아파트 3.85Km)를 만나게 된다. 왼편은 조선시대 승군(僧軍)들의 비밀 아지트였다는 묘적사(妙寂寺)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능선은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원시의 모습이로 변해간다. 나무는 굵어지고 숲 또한 깊어진다. 강원도의 오지(奧地) 만큼은 아니어도 도시 인근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숲이 울창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이런 고목(古木)도 만나게 되는데, 이런 곳에는 어김없이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산은 정상을 내주고 싶은 마음이 없나보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상당히 가팔라지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더니 10분 정도 후에는 전위봉에 올라서게 되고, 이어서 저만큼에 백봉산 정상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 거리는 생각보다 멀다. 20분 정도를 더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억새밭을 만나기도 한다. 웃자란 것이 가을에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 혹시 새하얀 억새꽃 잔치라도 열릴지 누가 알겠는가.

 

 

도시 인근의 산인데도 불구하고 숲이 깊다. 그러다보니 원시(原始)의 멋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중의 하나가 자연산 먹거리이다. 오늘 발견한 먹거리는 머루이다. 아직 철이 이르기는 하지만 제법 여물은 것이 군침이 돌게 만든다. 다음 달에 다시 찾을 때는 산행중 간식거리로 충분하겠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널따란 헬기장을 지나면 곧이어 사각(四角)의 정자(亭子_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백봉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방금 전에 지나온 헬기장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정상 역시 널따랗다. 10평도 훨씬 더 될 것 같다. 정상표지석은 정자의 맞은편에 세워져 있다. 아담한 크기다. 그 뒤에는 국기봉과 이정표(마치고개 2.3Km/ 남양주시청(진곡사) 4.70Km/ 묘적사 2.70Km), 그리고 119 구호지점표시목과 등산지도, 삼각점 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일부러 한곳에다 배치한 모양이다.

 

 

정상은 서쪽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비록 잡목(雜木)들로 인해 아랫도리가 조금 잘려나가기는 하지만 조망은 괜찮은 편이다. 불암산과 수락산, 그리고 도봉산과 북한산까지 조망된다. 눈만 좀 크게 뜨면 한강 남쪽의 산들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은 시계(視界)가 좋지 못하다. 짙은 연무(煙霧)가 조망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겨우 남양주 시가지만 나타날 뿐이다. 그것도 희미하게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다. 7~8년쯤 전에 왔을 때는 운길산과 예봉산 등 남쪽의 산들을 볼 수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집에 돌아와서야 알 수 있었다. 당시에는 이곳에 이층의 정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산 지점인 마치고개로 향한다. 내려가는 길도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경사(傾斜)가 거의 없다. 그러나 아까 청구아파트에서 올라왔던 길과는 확실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커다란 바위들이 가끔 눈에 띈다는 얘기이다. 마치 누군가 가지고 놀던 바윗돌을 흩뿌려 놓은 것처럼 띄엄띄엄 말이다.

 

 

 

 

정상에서 15분쯤 내려오면 느닷없이 암릉이 펼쳐진다. 산길은 그 암릉이 부담스러웠던지 오른편으로 우회로(迂廻路)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바윗길이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거칠지는 않으니 일단 도전하고 보자. 오늘 산행에서 가장 멋진 전망대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두어 번 바위와의 힘겨루기를 하다보면 어느덧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봉우리 위에는 무인산불감시탑 외에도 안테나 모양의 시설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 그런데 그 시설의 동력원(動力源)이 좀 특이하다. 태양열발전과 풍력발전 등 두 가지로부터 동시에 얻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독특한 아이디어(idea)도 아이디어이지만 그보다는 터빈 모양의 풍력발전시설이 더 볼만하다.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모양새는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의 바람 날개가 영낙없이 터빈 블레이드(turbine blade)를 빼다 닮았다.

 

 

산길은 안테나시설에서 끊어진다. 반대편이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대신 그곳에다 백봉산 최고의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누군가 의자까지 준비해 두었다. 마음 편히 조망(眺望)을 즐겨보라는 모양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남양주시가지가 아까 백봉산 정상에서보다 훨씬 더 가깝게 다가와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딱 거기까지다. 짙게 낀 연무(煙霧)가 조망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맑은 날에는 불···복 등 강북의 산들은 물론이요, 한강 이남의 산들까지도 조망된다는데 말이다.

 

 

 

무인산불감시탑으로 되돌아와 아까 올라왔던 길이 아닌, 왼편 사면(斜面)을 타고 내려선다. 곧이어 아까 오른편으로 돌았던 우회로와 만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다른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이번에는 조금 전과는 달리 오른편의 화도읍 방향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그리고 비젼힐스 골프장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그렇다고 오랫동안 머물 필요는 없다. 조금 후에는 더 가까이서 골프장 전경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망대를 지나면 잠시 후 또 다른 바위봉우리가 나타난다. 그곳에도 역시 안테나시설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평범하게 생긴 것이 아까와 같은 흥취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한다.

 

 

이후부터는 평범한 산길이 이어진다. 그러다보니 이야기가 될 만한 볼거리 또한 없다. 그러다가 볼거리가 없는 산길이 슬슬 지겨워질 무렵이면 산길은 또 하나의 볼거리를 만나게 해준다. 아까 보았던 비젼힐스 골프장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와 있다. 골프를 즐기고 있는 마니아(mania)들끼리 주고받는 얘기가 들려올 정도로 가깝다. 이렇게 근거리에서 골프장 전체를 조망해보는 것은 난생 처음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필드(field)에 나가봐도 그저 앞뒤의 홀이나 보일 따름이지 전체를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망을 즐기다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또 다시 볼거리가 없는 무료한 산행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정상에서 35분쯤 되는 거리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으로 난 길이 생각보다 또렷하지만 이정표(마치고개 0.88Km/ 백봉산 1.5Km)에 나와 있지 않아 어디로 연결되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근처에 있는 쉼터의 ‘119 구호지점표시목에 현 위치로 표기하고 있는 백봉산기도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갈림길을 지나면서 산길은 상당히 가팔라진다.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을 정도이다. 그러나 잠시 후에는 또 다시 완만한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저 가끔 나타나는 쉼터 외에는 특별한 이야기 거리가 없는 심심한 길이 계속된다.

 

 

오늘 산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코끝을 자극하던 냄새가 있었다. 강하다는 느낌은 들지만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향기로 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 향기가 마치고개에 가까워질수록 그 농도를 더해가더니 어느 시점에서 극()에 달해버린다. 능선이 온통 꽃밭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나무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이 또한 백봉산의 특징 중의 하나로 쳐도 무방하겠다.

 

 

 

산행날머리는 마치고개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하고 나서 1시간쯤 지나면 마치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천마산으로 가고 싶다면 맞은편 능선을 타면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 하산을 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왼편 호평동 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우리 부부는 물론 오른편이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마석으로 가는 버스를 탈 계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스를 타려고 걸은 거리는 만만치 않았다. 마치고개 고갯마루에도 버스정류장이 있긴 하지만 운행버스(6)의 배차간격이 3시간 가까이나 되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골프장 입구까지 걸은 후, 왼편 경성아파트단지를 횡단한 후에야 버스정류장에 이를 수 있었다. 마치고개에서 무려 25분이나 걸렸다. 오늘 산행은 정확히 3시간이 걸렸다. 물론 마치고개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이다. 중간에 간식을 먹느라 쉬었던 시간을 감안한다면 2시간45분 정도가 걸린 셈이다.

봉미산(鳳尾山, 855.6m)

 

산행일 : ‘15. 6. 21()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양평군 단월면의 경계

산행코스 : 쥬얼리펜션임도주능선봉미산큰골상부오른쪽 능선큰골입구설곡리 성곡부락(산행시간: 4시간10)

같이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색 : 한마디로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제대로 된 바위 하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이는 산음에서 정상에 이르기까지의 풍경에 불과하다. 정상에서 설악방면으로 내려가는 코스는 이와는 정 반대이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산길의 형편 또한 여의치 않다. 자칫 잘못하다간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보상은 크다. 바윗길의 특징대로 심심찮게 시야(視野)가 열리는데, 용문산 등 주변의 산군들을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것이다. 그러나 이 코스를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우선 길이 험하고 길의 흔적을 찾기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삼산현을 경유하는 하산코스를 권하고 싶은 이유이다.

 

산행들머리는 쥬얼리펜션 앞(양평군 단월면 산음리 392-1)

서울에서 비교적 가깝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봉미산 산행을 위해서는 우선 단월(양평군)까지 와야만 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홍천이나 횡성으로 가는 직행버스(금강고속)를 탈 경우 1시간20분 후엔 단월에서 내릴 수 있다. 단월이 중간기착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운행시간이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까지 들쑥날쑥하니 미리 시간표를 챙겨볼 일이다. 단월에서 산행들머리인 쥬얼리펜션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 산음까지 군내버스가 다니지만 워낙 뜸했기 때문이다. 택시는 산음보건진료소 앞에서 왼편으로 접어들어 임도를 따라 올라가더니 산행들머리인 쥬얼리펜션앞에다 내려놓는다. 조금 더 올라가면 산행안내도가 있는 산자락이 나오지만 더 이상 오르는 게 버거웠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곳까지라도 택시가 올라와 준 덕분에 20분 정도의 시간은 절약되지 않았나 싶다. 산음보건소에서 이곳까지 걸어서 들어오려면 넉넉히 20분은 잡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쥬얼리펜션이 위치한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산행은 시작부터 지지부진하다. 막걸리로 에너지를 보충해야 산행이 편해진다는 이선생의 제안은 그냥 애교로 넘겼다고 치자. 그렇다면 막걸리를 마시고 난 후에는 발길을 재촉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러지를 못하고 뽕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더 서성인다. 물론 부지런히 손을 놀려가면서이다. 하긴 까맣게 익은 오디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어떻게 발길을 재촉할 수 있겠는가. 산뽕나무여선지는 몰라도 오디는 생각보다 더 달고 맛있었다.

 

 

등산로는 임도를 따라 3~4분쯤 더 오르다가 왼편으로 열린다. 물론 중간에 쥬얼리펜션은 지났다. 임도를 따라 계속 진행할 경우에는 산음2리 마을회관로 되돌아나가게 되니 주의할 일이다. 산자락으로 난 오솔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봉미산 등산안내도세워져 있다. 산으로 들기 전에 잠시 안내도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곳에서 정상까지의 거리는 2.7Km란다.

 

 

 

산자락으로 들어서면 잠시 후에 이정표(봉미산 2.7Km/ 마을회관 0.9Km/ 보건진료소 1.1Km)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왜 이곳에다 이정표를 세워 놓았는지 모르겠다. 아까의 들머리에다 산행안내도와 함께 설치하는 것이 옳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어쩌면 아까의 임도(林道)가 생기지 전에 이곳에서 갈림길이 나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현실이 바뀌었다면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게 옳지 않을까?

 

 

앞서가던 최()군이 뭔가를 가리킨다. 다가가보니 다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익으려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탱글탱글하게 커가는 열매들이 탐스럽기 짝이 없다. 열매를 매달고 있는 나무들은 한두 그루가 아니다 근처가 아예 다래나무 밭인 것이다. 찬바람이 날 때쯤 찾는다면 꽤나 알찬 수확을거둘 수 있을 것 같다. 갑자기 군침이 돈다. 문득 오래전에 마셔보았던 다래주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등산로는 임도를 따른다. 오른편은 울창한 잣나무 숲, 꽤나 오래 묵은 듯한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오른 모습이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톡톡히 한몫을 한다. 거기다 코끝을 스쳐가는 짙은 솔향은 심신을 한없이 맑게 해준다. 오늘 산행이 행복할 것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하긴 좋은 산에서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산길은 넓다. 임도를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곱지는 않다. 아래 사진을 주의 깊게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이 눈에 띌 것이다. 일행들이 모두 손을 위로 치켜든 채로 걷고 있는 광경 말이다. 이는 어른의 키만큼이나 웃자란 잡초(雜草)와 가시넝쿨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납게 대들기 때문이다. 반팔 셔츠를 입은 사람들은 저렇게 벌을 서지 않고는 무사히 통과하기가 어려울 지경인 것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산길은 임도를 떠나 오른편 사면(斜面)을 치고 오른다. 이어서 울창한 잣나무 숲속으로 난 오르막길을 잠시 오르면 또 다른 임도(이정표 : 봉미산 1.9Km/ 임도/ 산음리 1.9Km)에 올라서게 된다. 산자락에 들어선지 14분 만이다.

 

 

산길은 임도를 가로지르도록 나있다. 이어지는 산길도 아까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오르막 산길은 완만하고 주변의 나무들은 참나무 숲과 잣나무 숲이 번갈아 나타난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오를수록 숲이 깊어지는 탓에 참나무들이 점점 굵어진다는 점이다. 덕분에 나름대로 볼만한 눈요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 달라진 것을 찾으라면 길가의 나무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다는 점이다. 이름표는 이곳에서 잠깐 눈에 띄었다가 이내 사라져버린다.

 

 

 

산길은 한마디로 곱다. 흙산의 전형적인 특징대로 황톳길은 보드랍기 짝이 없고 거기다 솔가리(소나무 落葉)까지 수북하게 쌓여 여간 폭신폭신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 이런 길을 일러 양탄자를 밟는 느낌이라고 표현한 것을 본 일이 있다. 나 또한 같은 느낌이다. 이런 길에서는 맨발로 걷는 게 더 좋을 텐데도 그러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위로 곧게 올라가는 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산의 사면(斜面)을 옆으로 째며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산길이 가파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앞서가던 일행이 앉아서 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오늘 걸어야할 산행 코스는 제법 길다. 부지런히 걸어야 우리가 예정하고 있는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틈만 나면 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힘이 들 정도로 가파른 것도 아닌데 말이다.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산길이 갑자기 가팔라진다. 마치 우리가 쉬었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때를 맞추어 가팔라진 것이다. 쉬면서 원기를 보충했으니 이제부터는 힘을 내보라는 듯이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치고 오르면 능선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임도에서 45분 정도 되는 지점이다. 능선에 오르면 오른편으로 난 길이 하나 보인다. 이정표가 없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용소계곡에서 올라오는 길이지 않나 싶다.

 

 

 

주능선에서는 왼편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어지는 산길 풍경은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진다. 잣나무의 개체수가 드물어진다 싶었던 산길은 언제부턴가 완전한 참나무 숲으로 바뀌어 있다. 산길의 경사(傾斜) 또한 다른 모습이다. 갈지()자를 그리면서 올라왔을 정도로 가팔랐던데 비해 지금은 그 기세(氣勢)가 눈에 띌 정도로 누그러져 있는 것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이런 맛도 있다. 비록 잠깐이지만 동심으로 돌아가 보는 재미다. 정상으로 오르다가 만난 참나무가 의자를 빼다 닮았다. 그것도 다리가 하나뿐인 기형(奇形)의 의자다. 이선생이 냉큼 나무에 걸터앉더니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시키다. 평소에 과묵하기로 소문난 그도 흥이 났던 모양이다. 하긴 이런 때에 분위기를 타지 않는 사람들이 어디 있을까 싶다. 아름다운 산속에서 아름다운 사람들끼리 어울리고 있으니 말이다.

 

 

능선 안부를 출발한지 15분쯤 지나면 이정표(봉미산 0.4Km/ 산음리 3.3Km)가 나타난다. 오른편에 희미하게 보이는 길의 흔적은 어쩌면 석산2리의 싸리골에서 올라오는 길일 것이다. 참 짚고 넘어갈 것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바위를 보았다는 것이다. 하도 작아서 바위로 치부하기가 낯부끄러울 정도이지만 말이다.

 

 

이정표를 보았다싶으면 정상은 금방이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15분 정도 더 치고 오르면 늪산(814m)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이르게 되고, 이어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몇 걸음 채 걷지 않아서 봉미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25분이 지났다. 2.8Km 정도의 오르막길을 걸은 결과이니 느긋하게 걸었던 모양이다.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설악면 설곡리 4.3Km/ 산음휴양림관리사무소 3.9Km) 외에도 봉미산에 대한 설명을 해놓은 안내판이 하나 더 세워져 있다. 안내판에 의하면 봉미산의 봉미(鳳尾)는 봉황(鳳凰)의 꼬리를 의미한단다. 봉황산(鳳凰山)이라고도 불리던 용문산의 뒤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또한 세상과 멀리 떨어진 오지(奧地)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속리산(俗離山)으로도 불린단다. 그 외에도 산의 정상에 연못이 있다고 해서 늪산이라는 또 다른 이름도 갖고 있다고 하나 이는 신빙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아무리 봐도 이곳 정상에 연못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고, 또한 봉미산의 바로 곁에 늪산이라는 이름의 산이 따로 있으니 말이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난 편이다. 비록 정상 주변의 잡목(雜木)들이 아랫도리를 잘라먹기는 하지만 시야(視野)가 넓게 열리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눈에 담을 수는 없다. 사방에 자욱하게 낀 연무(煙霧) 탓이다. 다른 이의 글로써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서쪽으로는 폭산과 용문산에서 유명산과 중미산을 거쳐 통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선명하다. 동북쪽으로는 장락산과 왕터산으로 이어지는 지맥 줄기와 그 뒤로 화악산 명지산도 멀리 보인다.’

 

 

정상석 뒤편으로 내려서면서 하산을 시작한다. 보리산(나산)을 거쳐 널미재로 가기 위해서이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설악비취농원안내판이 세워진 방향이다. 하산이 시작되면 엄청나게 굵은 참나무 고목(古木)들이 길손을 맞는다. 그만큼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다는 증거일 것이다.

 

 

고목을 지나 조금 더 가파르게 떨어지면 이정표(설곡리 성공 4.1Km/ 봉미산 정상 200m)를 만나게 된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삼산현으로 가는 능선길과 설곡리로 내려가는 길이 나뉘지 않나 싶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르다보니 설곡리로 내려가는 큰골이 나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우린 보리산으로 가려는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큰골로 내려가는 길은 바윗길로 시작된다. 그러나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경사(傾斜)가 그리 심하지도 않을뿐더러 바위의 크기 또한 보통수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딱 이때까지이다. 쉬어가기 딱 좋은 너럭바위를 지나면서부터 바윗길은 험상궂게 변한다.

 

 

 

 

너럭바위를 지나면서 바윗길은 위험하게 변한다. 수직에 가까운 바윗길이 계속되는데도 그 어떤 안전시설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대신 좋은 점도 있다. 바윗길의 특징대로 시야(視野)가 열리는 것이다. 유명산에서 중미산을 거쳐 통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바윗길은 갈수록 험해진다. 이때쯤에 우린 길을 잘못 들어섰음을 눈치 채게 된다. 그리고 능선으로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기에 그냥 하산을 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 하산 길도 우리에게는 버거웠다. 그 험난함을 배겨내지 못한 우리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조금 더 쉬운 코스를 찾아보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어렵사리 길을 개척해 나간다. 완전히 새로운 길을 만들며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사람의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우리 같이 길을 잃고 헤맸던 등산객들이 아니면 심마니들이 만들어 놓은 흔적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의 산행 리더가 최군이라는 것이다. 안내산악회의 산행대장까지 했던 경력이 어디로 가겠는가. 왔다갔다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산길을 잘도 만들어 간다.

 

 

 

 

사면(斜面)을 꿰뚫기도 하다가 또 어떤 때는 능선을 타기도 한다. 물론 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그저 최군의 뒤를 묵묵히 따를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인 아까의 바윗길보다는 안전도가 많이 향상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다가 어느 쯤에서 전망 좋은 바위봉에 올라서게 된다.

 

 

바위에 서면 경기도의 고산(高山)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가장 왼편에는 용문산이 우람하다. 그 오른편에는 보이는 산은 아마 유명산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오른편으로 늘어선 산군(山群)들은 중미산을 거쳐 통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일 것이고 말이다.

 

 

내려가는 길의 난이도는 만만찮은 편이다. 아니 여자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백두대간이나 한북정맥까지도 우습게 봐왔던 아라치양이 저렇게 설설 기고 있는 것이 그 증거라면 증거일 것이다.

 

 

무섭도록 험하게 떨어졌던 산길은 이내 다시 오르막으로 변한다. 오르는 길도 바윗길이지만 조금 전 내려오던 길보다는 훨씬 더 안정적이다. 아무래도 바윗길은 내려올 때 보다는 오를 때가 더 안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바윗길이 끝나면 또 다른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봉미산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1시간10분 정도가 걸렸다.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그만큼 산길이 험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론 우회하는 길을 찾느라 시간을 꽤 허비했던 것도 또 다른 원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무명의 바위봉에 오르면 또 다시 조망(眺望)이 터진다. 아까의 바위전망대에서 보았던 풍경이 다시 한 번 펼쳐지는데, 이번에는 왕락산으로 연결되는 능선까지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아까보다 시야(視野)가 더 넓어진 셈이다.

 

 

 

암봉에서 내려서는 길 역시 험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여성들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구간이다. 도움이 있다고 해서 서서 내려갈 수는 없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피치 못할 경우에는 엉덩이를 바닥에 깔면서 미끄러져 내려갈 수밖에 없다. 이때도 역시 피할 수 없는 조건이 하나 있다. 누군가가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미끄러져 내려오는 사람을 붙잡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애를 막 시작하려는 연인들에게 딱 좋은 코스가 아닐까 싶다. 산행을 마칠 때쯤이면 몇 년 동안 사귀어 온 듯한 관계로 발전되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산을 내려오다가 만난 기형(奇形)의 다래나무, 어린애의 허리통만큼이나 굵다. 그리고 안쪽에 홈까지 파여 있다. 대체 얼마나 오래 묵으면 저런 모습으로 변할 수 있을까.

 

 

험상궂은 바윗길을 15분 정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계곡에 이른다. 그러나 계곡에 내려서서도 산길의 형편은 그다지 좋아지지 않는다. 길의 흔적을 찾아가기가 만만찮은 것이다. 그저 하늘을 향해 치솟은 낙엽송(落葉松)이나 소나무들의 훤칠한 외모나 감상하면서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20분 남짓 내려가면 드디어 임도(林道)를 만나게 된다. 고생스런 산행이 대충 끝났다고 보면 된다.

 

 

임도를 만나기 조금 전에 이정표가 하나 보인다. 봉미산 정상까지의 거리가 1.5Km라면서 가는 방향을 왼편으로 표시하고 있다. 아까 내려서는 길이 하도 험해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었었는데 그대로 내려섰더라면 이곳으로 떨어졌던 모양이다. 그리고 임도로 내려서자마자 또 다른 이정표가 나온다. 이번의 것은 제법 격식을 갖춘 것이다. 그러나 봉미산까지의 거리가 1.7Km라는 것을 추정해야만 알 수 있을 정도로 낡아있다.

 

 

계곡은 하류로 내려갈수록 물의 양을 늘려간다. 그러다가 어느 쯤에선 양에 차고도 남을 만큼 풍부해진다. 덕분에 제법 훌륭한 폭포(瀑布)까지 만들어낸다. 산행을 하면서 흘린 땀을 씻기에 안성맞춤이다. 원시림에 가까운 울창한 숲은 낭만에 가깝다. 그리고 시리도록 차가운 물속에 몸을 내맡기면 천하는 내 것이 된다. 거기다 곁에는 귀여운 폭포까지 있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재미가 있어 사람들은 산을 찾게 되는가 보다.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첫 민가(民家)가 나온다. 민가의 마당을 가로지를 수밖에 없다. 커다란 개가 노려보듯이 지키고 있어도 어쩔 수가 없다. 계곡을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의 사유지(私有地)를 통과하는 것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두어 번을 더 지나야만 하는데 마음은 편치가 않다. 개인 사유지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팻말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것도 CCTV까지 작동시키고 있단다.

 

 

마음 졸이며 사유지를 통과하고 나면 조그만 동네가 나온다. 아니 분위기로 봐서는 민박촌이라고 하는 게 더 옳을 것 같다. 이 동네로 내려가기 바로 전에 삼거리(이정표 : 설곡리 성곡방향 1.2Km/ 봉미산 정상 5.3Km/ 비치농원 500m, 봉미산 정상 3.1Km)가 있다. 왼편은 묵안리 임도를 경유하여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임도를 처음으로 만나지 45분 정도가 지났다.

 

 

산행날머리는 성곡마을 버스정류장(가평군 설악면 설곡리)

민박촌에서 날머리인 성곡마을까지는 평범한 길이 이어진다. 임도는 비록 포장만 되어 있지 않을 뿐 거의 도로 수준이다. 승용차 두 대가 비켜지나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널따란 것이다. 대신 주변의 풍경은 보잘 것이 없다. 산행을 시작하거나 마무리 지을 때 늘 보아오던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렇게 20분 남짓 걸어내려 오면 성곡리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5시간50분 정도가 걸렸다. 간식을 먹거나, 물놀이를 하느라 꽤 오래 쉬었으니 이를 감안할 경우 4시간10분이 걸린 셈이다. 참고로 성곡리에서는 택시를 대절해서 나왔다. 하루에 고작 두세 번 다니는 버스를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장락산(長樂山, 627m)

 

산행일 : ‘15. 6. 7()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강원도 홍천군 서면의 경계

산행코스 : 널미재장락산미사2리 갈림길깃대봉화채봉왕터산 못미처 고개도장골산울로펜션미사2리 마을회관(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널미재에서 홍천강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로서 비교적 수월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다. 산줄기 중에서 가장 높다는 장락산과 산행기점의 표고차가 기껏해야 250여 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행은 여러 가지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기암괴석(奇巖怪石)과 노송(老松)들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경관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높고 낮은 바위들을 넘나드는 짜릿한 스릴(thrill)도 맛볼 수 있다. 거기다 북한강과 홍천강을 바라보는 조망(眺望)까지 뛰어나니 어떻게든 한번쯤은 꼭 올라봐야 할 산이 아닐까 싶다.

 

산행들머리는 가평군(설악면 위곡리)과 홍천군(서면 동막리)의 경계인 널미재

서울-양양고속도로 설악 I.C에서 내려와 86번 지방도를 타면 쉽게 널미재에 이를 수 있지만 이번 산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다. 이곳 널미재로 오기 위해서는 우선 가평군 설악면 소재지까지 와야만 한다. 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잠실역 5번 출구에서 출발하는 7000번 광역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지 않나 싶다. 잠실에서 이곳 설악까지 논스톱으로 다니기 때문에 가장 짧은 시간에 이곳까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설악터미널에서 모곡행 군내버스를 타면 널미재에 이를 수 있다. 아침 850분 출발 버스가 있으나 시간이 변동될 수도 있으니 사전에 확인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버스는 널미재 고갯마루에서 가평 쪽으로 100m쯤 내려온 곳에 있는 방일해장국 앞에서 정차를 한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에도 같다. 해장국집 앞이 널따란 주차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들머리는 해장국집에서 고갯마루 방향으로 50m쯤 가다가 왼편으로 열린다. 들머리에 산행안내도와 이정표(정상 3.5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고갯마루 정상에서는 들머리를 찾을 수 없다. 도로를 내면서 만든 절개지가 능선을 단절시켜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산행은 상당히 가파르게 시작된다. 그러나 곧바로 완만해진다. 산자락으로 들어서면서 잠깐 가팔랐던 산길이 절개지 근처를 지나자마자 그 기세를 누그러뜨려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산길은 잣나무 아래로 나있다. 코밑을 흐르는 짙은 소나무향, 기분이 절로 상큼해지는 멋진 길이 계속된다.

 

 

 

산으로 들어갈수록 참나무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잣나무들도 언제부턴가 소나무로 바뀌어 있다. 그것도 개체수를 현저히 줄여버린 채로다. 그러다 10분 후에는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삼거리(이정표 : 장락산 2.1Km, 왕터산 7.2Km/ 널미재 200m)인 이곳에서 오른편은 널미재 고갯마루에서 홍천쪽으로 약간 비켜난 지점에서 오르는 길, 장락산은 물론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능선에서 만난 기목(奇木), 자유방임(自由放任)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자신의 온몸을 비비꼬다 못해 품고 있는 나뭇가지들 까지도 제멋대로 뻗어 나가도록 그냥 놓아둔 것을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 이런 소나무들은 산행 내내 눈에 띈다. 장락산 만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능선으로 올라선 산길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종내는 힘에 부칠 정도로 가팔라져 버린다. 산길은 그 가파름이 부담스러웠던지 왔다갔다 갈지()자를 그리다가 그마저도 힘에 겨웠던지 로프까지 이용해서 위로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가파른 산길은 첫 번째 봉우리인 무명봉에 올라설 때까지 계속된다. 쉬엄쉬엄 걸어서 35분쯤 되는 거리이다. 오늘의 화두(話頭)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로 시작해볼까 한다. 힘들게 올라온 무명봉에서 보석 같은 나무를 만났기 때문이다. 잘 읽은 오디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산뽕나무이다. 이곳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한데 대한 보상(補償)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 싶다. 오디의 크기는 작았다. 그러나 당도(糖度)만은 여느 과일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쉽게 말해 엄청나게 달았다는 얘기이다. 고생 후에 즐기는 잠깐의 휴식만 해도 달콤한데, 거기다 달디 단 오디까지 따 먹으니 한마디로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행복은 저질체력의 표본인 진철아우님이 도착할 때까지 계속됐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웃음꽃이 피기 시작한다. 물론 오디로 시작되어 오디로 끝을 맺는 웃음꽃이다. 그 시작은 미리 따 놓은 오디를 그에게 넘기면서 시작된다. ‘다리 힘을 돋우는데 도움을 준다는 과일이니 힘내게나.’ 그러나 또 다른 조크(joke)가 더해진다. ‘다리에 힘을 실으라고 주는 것인데, 가운데 다리만 세우는 거 아녀?’ 다들 배꼽을 잡는데 뽕나무에 찰싹 들어붙어 있는 홍일점 홍여사만 아무런 표정이 없다. 오디를 따먹느라 못 들었는지 아니면 짐짓 못들은 채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평탄한 산길을 따라 5분쯤 더 걸으면 삼각점봉에 이르게 된다. 삼각점(용두 21)이 세워져 있는 이 봉우리의 높이는 627m, 장락산의 실질적인 정상이란다.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최영철군의 주장이다. 비록 나이는 많지 않지만 15년이 넘도록 산행을 하고 있는 나보다도 산행 이력(履歷)이 더한 친구이니 믿어도 좋을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볼거리 등 이곳의 산세(山勢)가 썩 뛰어나지 못한 탓에 정상을 옮겼다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그런 이유로 정상을 옮겨 놓은 산들은 전국 도처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삼각점봉을 내려서다보면 진행방향에 뾰쪽하게 생긴 산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이곳에 있어야 할 정상을 옮겨놨다는 새로운 장락산 정상이다. 가깝게 보이지만 실제는 의외로 머니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걸어볼 일이다.

 

 

삼각점봉에서 장락산까지는 세 개의 봉우리로 연결된다. 봉우리의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그 생김새는 심상찮다. 봉우리는 물론 능선 곳곳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거기다 능선에는 노송(老松)들이 그득하다. 그것도 제멋대로 휘고 늘어진 나무들이다. 기암(奇巖)과 기목(奇木)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기경(奇景)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가장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구간일 것이다.

 

 

 

능선은 곳곳에서 바윗길을 만든다.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아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금이라도 험하다 싶으면 길은 어김없이 바위들을 우회(迂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바위를 오르지 않은 이상 위험할 일은 없다는 얘기이다. 그저 주변의 눈요깃거리를 즐기면서 걷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걸으면 드디어 장락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들머리에서 1시간30분이 걸렸다. 일행 중에 엄청나게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쉬엄쉬엄 걸은 시간이니 참조해야 할 일이다.

 

 

 

 

 

 

10평 정도 되는 제법 너른 정상에는 화강암으로 깍은 막대형의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왕터산 6.75Km/ 하산 3.50Km)가 세워져 있다. 정상석에 표기된 이곳의 높이는 627.3m, 그러나 잘못 표기된 것이라는 주장들이 많다. 실제 높이는 615m라는 것이다. 고도계(高度計)를 챙겨오지 않아 높이를 재볼 수는 없었지만, 사실이라면 아까의 삼각점봉보다 12m가 낮은 셈이다. 그렇다면 정상을 왜 이곳으로 옮겼을까? 어쩌면 조망이 좋을 곳을 찾다보니 이곳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야(視野)가 활짝 열리는 편은 아니다. 주변의 나무들이 풍경의 아랫도리를 잘라버리기 때문이다. 거기다 연무(煙霧)까지 가득해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까지 할 수가 없다. 다른 선답자들의 글로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서쪽 발아래에는 청평호가 내려다보이고, 그 뒤는 호명산과 화야산이 버티고 있다. 북한강과 홍천강이 만나는 합수점과 청평호의 호수는 산수가 어우러진 그림이다. 동쪽으로는 모곡리 일대와 홍천강이 잘 조망된다.

 

 

왕터산을 향해 산행을 이어간다. 북쪽 방향이다. 정상을 지나서도 바윗길은 계속된다. 그러나 조망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능선 전체가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흙과 바위가 섞여있는 탓일 것이다. 그러다가 잠시 후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예쁘게 지어졌다는 통일교의 건물들이라도 보일까봐 고개를 내밀어 보지만 나뭇가지들 뒤로 숨어버렸다. 그 너머에 있는 청평호()만이 눈에 들어올 따름이다. 그것도 연무(煙霧)에 가려 희미한 모습으로 말이다.

 

 

 

능선의 바위들은 갈수록 더 굵어진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넘을 필요는 없다. 산길은 바위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잘도 나있다. 얼마쯤 걸었을까 능선의 왼편에 금()줄이 쳐져있다. ‘사유지이니 출입을 하지 말라면서 이를 어길 때에는 고발조치 하겠다는 서슬 시퍼런 경고판까지 매달아 놓았다. 아마 요 아래에 있는 통일교에서 설치한 모양이다. 금줄은 끝날 줄을 모른다. 그리고 능선과 함께 끝도 없이 이어진다.

 

 

 

금줄을 따라 걷다보면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특이한 외형을 가진 하얀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돔이 우뚝 솟은 네오클래식(neoclassic : 신고전주의) 양식의 웅장한 건물은 보는 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어디서 보았을까? 맞다 미국의 국회의사당이 저렇게 생겼었다. 저 건물은 통일교의 천성산(天聖山) 본전성지라 불린단다. 통일교 측은 지구촌 어느 나라의 누가 오더라도 데려다 교육시킬 수 있는 본궁이라고 말한다. 12000여 평의 부지에 연건평이 4900여 평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이다. 이외에도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청심국제병원, 천주청평수련원, 실버타운 등이 장락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가 통일교의 왕국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능선이 온통 바윗길로만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바윗길과 흙길이 적당하게 섞여있는 것이다. 심심찮게 바뀌는 풍경들로 인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산행풍경으로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바윗길은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갈수록 더 험해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이 내려서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곳도 나타난다. 청춘남녀들이라면 얼씨구나 좋아할만한 조건이겠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건네 오는 손길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내려서는데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락산을 출발한지 3시간10분이 지나서야 미사2리 갈림길에 내려선다. 중간에 간식을 먹느라 너무 오랫동안 쉬었던 탓이다. 너무 오랜만에 만났던지라 할 얘기들이 무척 많았던 모양이다. 무려 1시간 50분이나 쉬었기에 하는 말이다. 쉬었던 시간을 뺄 경우 장락산에서 이곳 갈림길까지는 1시간 20분이 걸렸다. 이정표가 2(#1 : 왕터산 3.1`Km/ 장락산 2.4Km, #2 : 미사리 2Km/ 장락산)나 세워진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미사2리 마을회관이다.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탈출하면 된다. 우리도 일행 2명을 이곳에서 탈출시키고 나머지 구간은 나와 최군 둘이서만 진행하기로 한다.

 

 

 

갈림길을 지나서도 바윗길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 빈도(頻度)나 난이도(難易度)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쉽게 말해 걷기가 편해졌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반면에 길의 흔적은 희미해진다. 그만큼 이 구간을 다니는 사람들이 적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산길이 주능선을 따라 나있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한다면 길 찾기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능선은 남북으로 곧게 뻗어있다. 따라서 능선을 따라 난 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겠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실제로 우린 그런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미사2리 갈림길에서 15분쯤 되는 지점에서다. 체력이 다한 일행들을 미사2로 탈출시키고 나서 산행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갑자기 능선이 벼랑수준의 급사면(急斜面)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헤맨 후에야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알게 된다. 오늘 같은 산에서는 주능선을 따라 진행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고 길의 흔적까지 무시해가며 무작정 능선을 따르라는 얘기는 아니다. 가끔은 벼랑을 피해가려는 산길이 우회로(迂廻路)를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리 능선이 또렷하다고 해도 길 찾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어렵게 다시 찾은 산길은 잠시 후 능선위로 다시 올라선다. 벼랑을 피해 왼편으로 우회(迂廻)를 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어서 산길은 안부까지 완만하게 떨어졌다가 다시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오름짓을 시작한다. 그것도 길고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곳에서는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하니 문제이다. 중간에서 탈출을 한 일행들과 하산시간을 대충 맞춰야하니 늦장을 부릴 여유가 없고, 거기다 앞서가는 최군은 인정사정없이 내닫기만 한다. 입에서 단내가 나야만 하는 이유이다.

 

 

얼마쯤 올랐을까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깃대봉으로 곧장 치고 오르는 길 외에도 봉우리를 왼편으로 우회(迂廻)시키는 길이 하나 더 나있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곧장 능선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깃대봉 정상에 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 2리 갈림길에서 깃대봉까지는 40분이 조금 더 걸렸다. 서너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깃대봉 정상은 텅 비어 있다. 정상표지석이 없다는 얘기이다. 물론 이정표도 없다. 그저 한가운데에 심어져 있는 삼각점(용두 303)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깃대봉에서의 조망은 보잘 것이 없다.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視野)가 열리지만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연무(煙霧)까지 방해를 놓는 탓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날씨가 좋을 경우에는 유명산과 축령산이 보인다는데 말이다.

 

 

깃대봉을 지나면서 또 다시 바윗길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그동안에 바위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능선의 대부분이 흙으로 이루어졌고, 어쩌다 만나는 바위들도 그 크기나 생김새가 눈여겨볼만한 것이 없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깃대봉을 지나면서 바위는 거대하다 싶을 정도로 굵어진다. 그러다보니 안전로프에 의지해야만 내려설 수 있는 구간도 나타난다. 모처럼 즐기는 손맛에 깃대봉을 오르면서 쌓였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져버린다.

 

 

 

스릴(thrill) 있는 바윗길에서 내려와 이어 나타나는 자그마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주변의 노송(老松)들을 어우르며 멋진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는 바위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왼편 소나무 가지 아래로 서울-양양고속도로의 가평휴게소가 한눈에 잘 들어오는 곳이다.

 

 

전망대를 지났다싶으면 화채봉은 금방이다. 화채봉도 정상표지석이 없기는 깃대봉과 매한가지이다. 그저 글씨가 거의 다 지워졌을 정도로 낡아빠진 이정표(왕터산, 미사리도장골 2.3Km/ 장락산 4.75Km)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정표 역시 이곳이 화채봉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그저 어림짐작으로 이곳이 정상이려니 할 따름이다. 화채봉에서 또 다시 왼편으로 시야가 열린다. 그러나 잡목(雜木)들에 가려 조금 전에 만났던 바위전망대보다도 한참이나 격이 떨어진다. 깃대봉에서 화채봉까지는 25분 남짓 걸렸다.

 

 

 

화채봉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 능선으로 난 급사면(急斜面)을 따르는 길과 왼편의 절벽(絶壁) 위로 난 길이다. 이곳에서는 오른편 길을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 왼편으로 진행할 경우 다소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른편 길이 희미한 탓에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된다. 주의를 소홀히 한 우리도 역시 왼편 길로 진행하게 되었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오고 나서야 길을 잘못 들어섰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험난한 여정을 겪고 난 뒤였으니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서 조금 더 진행하면 산길은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튼다. 화채봉에서 15분 거리이다. 왕터산은 맞은편에 있는데도 말이다. 오른편으로 진행하다 말고 다시 되돌아온다. 그리고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무작정 내려서고 본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조금 후에 능선을 따르는 길이 제법 또렷하게 나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오른편으로 휜 산길에서 갈라져 내려오는 길인 모양이다.

 

 

길을 제대로 찾았다 싶으면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능선의 오른편을 깔끔하게 벌목(伐木)을 해놓은 탓이다. 산속을 뚫고 지나가는 서울-양양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고 그 뒤에는 좌방산과 소주봉 등 크고 작은 산들이 수없이 버티고 있다.

 

 

벌목지를 내려오다 보면 그다지 높지 않은 산 하나가 맞은편에 나타난다. 물론 생김새도 보잘 것 없다. 그러나 이름만 놓고 봤을 때는 그렇지가 않다. 옛날 고려의 공민왕이 머물렀다는 산, 그가 신하들과 함께 적을 무찌르고 회군(回軍)하는 도중 쉬어갔다는 전설(傳說)이 있는 산이다. 그래서 이름 또한 왕터산이라고 지었단다. 왕터산으로 오르기 전, 그러니까 아까 산길이 방향을 급선회했던 곳에서 10분쯤 되는 지점에서 왼편으로 길이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미사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왕터산을 다녀오느냐 아니면 그냥 이곳에서 내려가고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결론은 그냥 내려가는 것으로 났다. 왕터산에 올라봐야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간에서 미사리로 탈출했던 일행들과 하산시간을 얼추 맞추어보려는 생각도 다른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삼거리에서 내려서는 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능선이 이미 고도(高度)를 많이 낮추어 놓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산길은 잡목(雜木)들로 인해 헤치고 나가는 게 그다지 쉽지는 않지만 길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물기가 거의 없는 도장골 골짜기를 따라 한가하게 내려오면 과수원에 이르게 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북한강의 강변을 따라 난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능선을 벗어난 지 40분 정도가 지났다. 오른편에 산울로라는 펜션이 있으니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가평으로 나가려면 이곳에서는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오른편으로 갈 경우 몇 개의 펜션을 지난 후에는 길이 끊겨버리기 때문이다.

 

 

산행날머리는 미사2리 버스종점

미사2리로 내려가는 도로는 북한강을 오른편에 끼고 나있다. 비록 강변을 따라 나있지는 않지만 북한강의 풍경을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 강물 위를 나르듯이 달리고 있는 보트들이 날렵하기 짝이 잆다. 그 보트들 뒤에 매달린 사람들이 보인다.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족스포츠라 불리던 운동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일반인들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레저(leisure)활동의 하나로 변해버렸다. 길을 가는 중에 택시를 부른다. 비록 버스는 다니지 못하지만 승용차가 다니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렀던 택시는 미사2리에 거의 다 가서야 탈 수 있었다. 20분 정도의 발품을 팔고나서이다. 오늘 산행은 총 7시간 20분 정도가 걸렸다.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5시간 정도가 걸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