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견산(岳堅山, 634m)-의룡산(儀龍山, 481m)

 

산행일 : ‘11. 12. 4(일)

소재지 : 경남 합천군 대병면과 가회면의 경계

산행코스 : 용문정→암릉→의룡산→임도 사거리→악견산→산성→합천댐 주차장 (산행시간 : 3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의룡산과 악견산은 산이 많기로 소문난 합천에서도 황매산과 더불어 악산(嶽山)으로 소문난 산이다. 산은 수천 길의 단애(斷崖)로 이루어져 있고, 곳곳에 널린 기암(奇巖)들이 소나무들과 어우러지면 만들어내는 풍광(風光)은 산행을 결코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특히 악견산에서 바라보는 합천호의 리아스식 해안선(海岸線)은 산행의 백미(白眉)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용문유원지(遊園地)

88고속도로 거창 I.C를 빠져나와 24번 국도(國道/ 고령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오도산자연휴양림‘ 입구에 있는 권빈삼거리에서 오른편 1034번 지방도(地方道/ 합천읍 방향으로 합천호를 끼고 이어진다.)로 길을 바꾸어 들어가면 논덕천을 가로지르는 계산교를 만나게 된다. 계산교에서 조금만 더 진행한 후 오른편의 ’합천호반로‘로 들어서면 또다시 오른편에 합천호가 보이기 시작한다. 호반 구경이 싫증날 즈음이면 도로는 산속으로 잠시 들어섰다가 이내 ’합천 영상테마파크’에 이르게 된다. 산행들머리인 용문유원지(遊園地)는 영상테마파크에서 차로 2분 거리에 있다. 송림(松林)으로 이루어진 유원지는 진양 유씨 문중(門中)땅으로 조선 후기에 세워진 용문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참고로 대진고속도로 산청 I.C에서 내려와 59번 국도와 1026번 지방도를 이용해 들어오는 방법도 있다. 나중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나중의 방법을 권하고 싶다.

 

 

산행은 용문정 버스정류장 맞은편에 있는 황강으로 내려서면서 시작된다. 산행의 시작은 곡예(曲藝) 실습(實習)이다. 강을 가로지르며 놓여있는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바위 위에서 춤을 추듯이 묘기(妙技)를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제법 거친 물살이 징검다리 위까지 넘실거리는데, 어떤 바위는 아예 고정되어 있지도 않아서 흔들리기까지 한다. 그러니 바위 위에 올라선 사람들은 바위의 움직임에 따라 온 몸을 비틀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곳을 산행들머리 또는 날머리로 삼는 사람들은 스틱 2개를 꼭 챙겨가라고 권하고 싶다. 스틱 하나만으로 건너보려던 난 물속에 빠지는 낭패(狼狽)를 보고야 말았다.

 

 

강을 건너면 산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을 따라 50m쯤 들어가면 길은 급하게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사면(斜面)을 급하게 치고 오르고 있다.

 

 

 

초반의 흙길이 끝나면서 마주치게 되는 암릉은 거친 산세(山勢)를 자랑하는 대병5악(嶽 : 허굴, 삼성, 악견, 의룡에 황매산을 더해서 대병5악으로 부른다)의 실체를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구간이다. 우람한 근육질의 몸이 꿈틀대듯 줄기차게 이어지는 암릉길을 올라야만 한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적은 탓인지, 길의 흔적도 찾기가 쉽지 않고, 표지판도 설치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나뭇가지에 걸린 표지기를 의지하며 산행을 해야 한다.

 

 

 

계속되는 바윗길, 오른쪽으로 치고 오르면 이번에는 왼쪽으로 길이 열리고 있다. 바윗길에는 어김없이 안전(安全)로프가 매어져 있는데, 일부 구간은 안전로프에 매달리는 것 자체가 두려울 정도로 수직(垂直)으로 선 암벽(巖壁)을 만나기도 한다. 역시 소문대로 악산(嶽山)이 틀림없다. 힘든 오름 길에 숨도 돌릴 겸 잠시 바위 난간에 앉으면 발아래는 방금 달려온 군도(郡道)와 황강이 나란히 달리고, 영상테마파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정신나간 진달래가 철도 모르고 활짝 피어있다.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암릉 구간인지라 시야(視野)를 가릴만한 나무들이 없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다보면 굽이쳐 흐르는 황강과 끝도 없이 일렁이고 있는 산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그렇다고 자주 돌아보지는 말자. 바윗길에서의 방심은 자못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험한 암릉이 끝나면 능선은 약간 자세를 낮춘 후에 다시 완만(緩慢)하게 오르막길을 만들어낸다. 잠깐의 솔밭 오르막이 끝나면 이번엔 암릉길, 고래의 등처럼 매끈하게 생긴 암반(巖盤)이 길게 이어지면서 그 끄트머리에 의룡산의 정상이 뾰쪽하게 솟아있다.

 

 

 

 

 

의룡산 정상은 깎아지른 절벽(絶壁)위에 위치하고 있다.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대신에 ‘그리운 산 의룡산 481m, 준․혁’이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오지(奧地)산이나 유명(有名)산을 가리지 않고 정상표지석이 없는 산봉우리에서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팻말이다. 산행에 이력(履歷)이 쌓인 어느 분의 얘기로는 등산애호가 부부(夫婦)의 작품이란다. 그들의 산에 대한 사랑과 열정에 찬사를 보내본다. 정상에 서면 바로 앞에 악견산이 다가서 있고 왼쪽 뒤에 위치한 금성산도 가깝게 보인다. 금성산과 악견산 사이에는 황매산 놓여있다. 그리고 영상테마파크 뒤편으로는 오두산과 두무산, 그 사이 매화산이 보인다. 두무산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아마 가야산일 것이다. 용문정에서 의룡산 정상까지는 3.5Km, 정상까지 오르는데 넉넉잡아 1시간30분이면 족하다.

 

 

 

 

 

 

 

오른쪽에 악견산을 두고 내리막을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은 453봉으로 이어가는 길이고, 악견산은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소나무 숲 아래로 완만(緩慢)하게 내려서던 길은 조그만 봉우리 앞에서 다시 오르막으로 변하고, 이내 커다란 바위 위로 올려놓는다. 악견산 방향으로 커다란 바위들이 연이어 늘어서 있고, 악견산의 전모(全貌)가 한눈에 들어오고 있다. 뛰어난 조망처이다. 전망바위에서 눈요기를 즐긴 후 바위를 에돌아 내려서면 임도 사거리. 의룡산이 끝나고 악견산이 시작되는 곳이다.

 

 

 

의룡산에서 악견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길게 이어지면서 서서히 고도를 낮추어 간다. 길기 때문에 지루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진행방향에는 악견산이 우람하고, 뒤를 돌아보면 의룡산의 천길 단애(斷崖)가 날카롭게 서 있는 광경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임도(林道) 사거리에서 임도를 따라 100m쯤 올라가다가 오른편으로 올라선다. 밤나무 밭이기 때문에 들머리를 혼동할 우려가 있으니 표지기를 유심히 살피는 게 좋을 것이다. 감나무 밭을 통과하면 길은 산의 사면(斜面)을 오른쪽으로 돌면서 능선 삼거리에 닿게 만든다. 오른쪽 길이 아까 산행을 시작했던 용문정에서 곧바로 악견산으로 올라오는 길이다. 이곳 합천군에서 악견산을 관리하고 있는 듯 오늘 처음으로 이정표(里程標)가 보인다.(이정표 : 악견산 360m/ 의룡산 정상 2.5Km/ 용문사 2.6Km)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접어들면 길은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이어서 나타나는 암릉길, 바윗길은 가파르지만 그리 위험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바위와 흙이 섞인 오름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흙길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마력(魔力)을 지니고 있는가 보다.

 

 

 

 

 

암릉을 올라서면 다시 호젓한 소나무 숲길, 길에는 낙엽(落葉)이 두텁게 쌓여있어 여간 폭신폭신한 게 아니다. 혹시 붉은 빛깔의 양탄자 위를 걷는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호사(豪奢)스런 걸음도 잠시, 이내 악견산은 원래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바위가 굳어서 이루어진 산이라는 의미의 악견산 정상어림은 크면서도 널따란 암반(巖盤)들이 일정한 형식이 없이 불규칙하게 쌓여있다.

 

 

 

악견산의 정상으로 오르려면 걷고 있던 바위에서 우선 바위 틈 사이의 좁은 평지로 뛰어내려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통천문(通天門)을 지나게 된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바윗돌을 부여잡고 힘겹게 올라서면 이내 정상이다.

 

 

 

악견산의 정상은 정상석을 중심으로 커다란 바위들이 빙 둘러가며 얼기설기 쌓여 있다. 정상부의 북쪽은 크고 넓은 바위가 가로막고 있고, 그 앞에 악견산을 소개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입간판의 바로 앞은 제법 넓은 암반(巖盤)으로 되어있고, 정상표지석은 남쪽의 커다란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다. 석조 전시장(石造 展示場)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비교적 넓은 정상은 사방이 나무들로 가려있어서 조망은 별로이다. 정 소문으로 들은 합천호의 조망을 즐기고 싶다면 커다란 바윗돌 몇 개를 건너뛰어야 한다. 하긴 빼어난 경관을 구경하려는데 조그만 위험 정도는 우리가 감수해야할 몫일 것이다.(이정표 : 의룡산 2.8Km, 용문사 2.9Km/ 합천호 관광농원․동광가든 4.8Km)

 

 

 

정상에서 합천호 방향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옛 산성터를 지나게 된다. 바로 악견산성(嶽堅山城 : 경상남도기념물 제218호)이다. 성벽이 높지도 않을뿐더러, 쌓은 모양도 일정한 규격(規格)을 갖추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임시로 사용하기 위해 급하게 쌓아올린 모양이다. 악견산성(嶽堅山城)은 바위를 연결하여 자연석으로 쌓은 성으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는 1439년에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전문가들은 1592년(선조 25) 무렵으로 추정한다. 임진왜란 때 성주목사(星州牧使)로 있던 곽재우(郭再祐)가 도체찰사(都體察使) 유성룡(柳成龍)의 명령을 받아 보수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암릉을 배경으로 소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차있다. 그 덕분에 겨울의 초입인데도 산은 조금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다. 산길 위에 수북하게 쌓인 솔가리들의 푹신함은 등산화 바닥을 넘어 고스란히 발끝까지 전해져 온다. 걷는 내내 코끝을 자극하는 짙은 솔향에 취하다 보면 피곤함 정도는 느껴볼 겨를도 없다.

 

 

 

산행날머리는 무학기도원

산성(山城)터를 지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치고 내려오면 또 하나의 산성(山城)터가 보인다. 아마 악견산성은 겹으로 쌓은 산성인 모양이다. 합천댐 인근의 주차장으로 향하는 하산길은 오른편에 있는 합천호를 바라보며 걷는 상쾌한 길이다. 비록 걷기 힘든 바위길이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모처럼 눈의 호사(豪奢)를 누리며 걷다보면 어느새 산길이 끝나면서 시멘트 포장도로 위로 내려서게 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합천댐의 주차장이 보이고, 그보다 조금 못미처에 있는 무학기도원 앞에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무척산(無隻山, 703m)

 

산행일 : ‘11. 11. 12()

소재지 : 경남 김해시 생림면과 상동면의 경계

산행코스 : 여덟말고개시루봉→무척산 정상천지모은암생철마을(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송암산악회

 

특징 : 무척산은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사랑이야기가 곳곳에 묻혀있는 설화(說話)의 산이다. 주능선이 남북으로 이어지는데, 북서쪽 사면은 가파르고 곳곳에 암벽이 단애(斷崖)를 이루고 있다. 이곳의 기암절벽(奇巖絶壁)은 빼어난 암석미(巖石美)를 자랑하고 있어, 예로부터 김해의 소금강이라고 불려왔다. 생림면에서 바라보면 날카로운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막상 산으로 올라서면 전형적인 흙산(肉山), 천지 부근은 제법 널따란 분지(盆地)로 되어있다.

 

 

 

산행들머리는 여덟말고개 고갯마루

신대구-부산 간 고속도로상동 I.C에서 빠져나와, 바로 만나는 60번 지방도(地方道/ 김해방향)를 따라 진행하면 상동을 지나 나전농공단지 삼거리에 닿게 된다. 농공단지를 통과한 후, 69번 지방도(여차리 낙동강방향)로 갈아타고 달리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산행들머리인 여덟말고개에 이르게 된다.

 

 

산행은 생림면 상사촌에서 상동면 여차리로 넘나드는 고갯마루인 여덟말고개에서 시작된다. 고갯마루의 등산로 입구에는 무척산 안내판이 서있다. 안내판 옆에 무척산 정상 2.7Km라고 적힌 이정표도 세워져 있으니 길이 헷갈릴 염려는 없을 것이다.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임도로 들어섰다가, 잠시 후 왼쪽 능선길로 올라선다. 세월 탓인지 봉분이 납작해져버린 묘지를 지나면 삼각점(밀양463, 1997복구)이 보이고, 다시 한 번 능선을 치고 오르면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봉우리 위로 올라서게 된다. 이곳이 바로 시루봉이다. 어느 호사가(好事家)가 이름을 붙였을까? 별로 특이할 게 하나도 없는 봉우리이건만 버젓이 시루봉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봉우리에는 이곳이 시루봉이라는 것을 알아챌만한 어떠한 징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봉우리에 올라서면 전면에 무척산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

 

 

 

시루봉에서 안부로 내려서면, 아까 여덟말고개 근처에서 헤어졌던 임도(林道)와 다시 만나게 된다. 왼편에 하사촌으로 내려가는 산길이 제법 또렷하게 나있다. 안부에 있는 묘지의 옆에 이정표(하사촌 1.3Km/ 무척산 정상 2Km/ 여덟말고개 0.7Km)가 세워져 있다. 정면의 통나무계단을 밟고 올라선다. 바닥이 자갈길로 된 가파른 오르막길은 꽤나 미끄러운 편이다.

 

 

345kV 송전탑(送電塔, 해북T/L 75) 아래에는 가을이 무르익고 있다. 하얀 억새꽃들이 능선을 치고 올라오는 바람결에 나풀거리고 있다.

 

 

 

송전탑을 지나면 조잡하지만 제법 공들여 쌓은 듯한 돌탑을 지나게 된다. 이어서 나타나는 솔밭을 헤치고 오르면 전망(展望)바위에 이르게 된다. 지나온 능선을 물론, 김해의 신어산과 석룡산이 바라보인다.

 

 

 

한동안 올려치던 능선은 경사(傾斜)가 약간 누그러지면서 묘지에 닿는다. ‘! 우리가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게 맞나요?’ 정상 방향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에 집사람이 던지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개와 함께 산을 오르는 등산객이 보인다. 무척산이 도심(都心)에서 가깝고, 별로 높지도 않기 때문에 개를 데리고 오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자그만 봉우리 하나를 넘어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조금 전까지 보여주던 모습을 벗어던져버리고 어느 사이엔가 암릉으로 변해있다. 그리고 이내 무척산 정상인 신선봉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났다.

 

 

 

 

무척산 정상은 양쪽 사면(斜面)을 축대를 쌓아 만든 흙으로 된 분지(盆地)에 바위들이 깔려있는 듯한 형상이다. 정상에는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삼각점, 그리고 태극문양에 방위 등을 새긴 대리석과 이정표(여덟말고개 2.7Km/ 백학교 5Km/ 생철리 3.9Km)가 서있다. 정상에서의 압권(壓卷)은 무엇보다도 뛰어난 조망이다. 눈을 들어보면 사방에 산이 첩첩(疊疊)이 쌓여있다. 산악회장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生家)를 안고 있는 봉화산이란다. 남쪽 방향에 불모산이 보이고, 그 뒤로 도열해 있는 것은 무학산과 천주산일 것이다. 발아래에는 영남의 젓줄기라는 낙동강의 강줄기가 유유히 흘러가고 있는 광경이 내려다보인다. 강 주변에 자연스레 만들어진 삼각주 평야(平野)는 곧 풍요로움의 상징이다. 가히 한 나라를 세울 수 있을 만한 요지(要地)이다. 그래서 김수로왕은 이곳에다 금관가야를 열었을 것이다. 날씨가 쾌청하다면 낙동강 건너편으로 종암산과 화왕산, 그리고 영취산이 보이련만...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생철리 방향으로 내려서면 흔들바위 갈림길, 그리고 이어서 나타나는 백운암 갈림길을 지나면 기도원의 뒤편으로 내려서게 된다. 기도원 건물 사이를 지나면 곧바로산상( 山上)호수를 만나게 된다. 이 호수는 천지(天池)라는 어엿한 이름을 갖고 있다.

 

 

 

 

 

 

천지(天池)의 가에 있는 통천정(通天亭)이라는 정자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정자에서 바라본 호수에 가을빛이 완연하다. 이 호수는 김수로왕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김수로왕이 죽은 후 묘를 만들려는데, 능침에서 자꾸 물이 나온 모양이다. 인도에서 건너온 신보라는 신하의 고을의 높은 산에 연못을 파면 능침의 물이 빠진다.’라는 의견의 따라 판 연못이 지금의 천지라고 전해지고 있다.

 

 

 

천지(天池)에서 모은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천지 둑 아래로 잠시 내려서면 또 하나의 전망대(展望臺)를 만나게 된다. 부산-대구간 고속도로와 낙동강 너머로 밀양과 삼랑진 일대가 내려다보이고, 북쪽 사면에서 절벽(絶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절벽을 감싸고 있는 숲들은 가을빛이 완연하다.

 

 

 

 

 

 

제법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을 돌아 내려오면 왼편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무척폭포이다. 크기가 그다지 크지도 않고, 가뭄 탓에 수량(水量)도 많지 않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는 폭포이다.

 

 

 

 

무척폭포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등산객들의 눈길을 끄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바로 연리목이다. 나뭇가지가 붙어 하나의 나무를 이루는 연리지(連理枝)이다. 이곳에서는 부부소나무라는 이름으로 사랑받고 있단다. 이 나무 앞에서 부부가 손을 맞잡고 빌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진단다. 처녀총각이 빌 경우에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부부도 얼른 손을 붙잡는다. 그리고 바쁘게 빌어본다. 원래부터 사랑의 메신저로 소문난 우리부부이지만, 한층 더 사랑이 솟아나는 느낌이다. 그래서 저렇듯 애틋한 설화(說話)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이곳부터 모은암(母恩庵)까지 이어지는 길은 주변에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탕건바위, 장군바위, 청룡바위, 백호바위, 남근모양의 바위 등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전시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잘 다듬어진 산길을 따라 얼마간 내려오면 오른편에 우뚝 선 현무암(玄武巖) 덩어리를 볼 수 있다. 마치 하늘에 벽이 하나 서 있다는 느낌이다. 이 지방 클라이머들에게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하늘벽이라는 자연암장(自然巖場)이다. 바위에는 그들이 사용하는 볼트들이 박혀있다. 하늘과 맞닿은 듯이 솟은 바위 옆으로 시야(視野)가 확 트인다. 생림면의 잘 정리된 논밭들이 발아래 펼쳐지고, 낙동강의 물굽이와 삼랑진 건너편의 토곡산이 멋진 배경으로 전개되고 있다.

 

 

 

등산로 양옆으로 신장처럼 들어선 바위들도 만날 수 있다. 심심할 만하면 나타나는 바위들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바위굴을 지나 왼편 암벽 아래로 잠시 나아가면 사적비가 보이고, 이내 모은암에 이르게 된다.

 

 

 

무척산 모은비라고 적힌 비석에서 오른쪽으로 50m정도 더 가면 모은암(母恩庵)이다. 모은암은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어머니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지었다는 절이다. 높고 험한 바위틈에 지은 암자라 경내(境內)가 넓지는 않지만, 계단과 기도터 등에서 두터운 세월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모은암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는 물론 뒤편까지 바위들이 솟아 있어 마치 거대한 바위 위에 암자가 세워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사찰에서 종각(鐘閣)인 모음각(母音閣) 앞에다 온수통과 봉지커피를 준비해 놓고,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커피 보시(布施)를 하고 있다. 가슴이 따스해져 온다.

 

 

모은암을 빠져나와 하산을 서두른다. 각이 뚜렷한 화강암으로 잘 쌓아 만든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이내 모은암의 주차장이 보이고, 이곳에서부터 생철리까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내려가는 길에 뒤돌아보면 무척산의 암릉이 위엄스럽게 버티고 서 있다.

 

 

 

산행날머리는 생철리 버스정류장(停留場)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내려오면 생철리 주차장이다. 주차장에는 이곳 진영지방이 감의 주산지답게 먹음직스런 감을 팔고 있다. 도로 맞은편에는 감나무 과수원(果樹園), 산에서 내려다볼 때 단풍나무 숲같이 붉게 빛나던 곳이 감나무 과수원이었던 것이다. 주차장에서 100m정도 더 걸어 내려오면 바로 김해에서 삼랑진을 경유해서 밀양까지 다니는 버스의 정류장(停留場)이다.

 

지리산 (智異山, 1,915m)

 

 

산행코스 :

첫날 : 성삼재→노고단→삼도봉→연하천산장→벽소령산장(산행시간 : 9시간)

둘째날 : 벽소령산장→세석산장→장터목산장→중산리 (산행시간 : 10시간)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시와 경상남도 함양군·산청군 경계

산행일 : ‘11. 5. 27(금)~28(토)

함께한 산악회 : 직장동료 부부 동반 산행(3쌍)

 

 

특색 : 지리산은 홀로 장엄(莊嚴)해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가슴에 사무친다.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몸을 대차게 뒤 틀은 산릉은 삼도봉과 토끼봉, 촛대봉, 제석봉 등 1500m를 넘나드는 등뼈를 불뚝거리며 천왕봉을 향해 용틀임을 하고 있는 형상(形象)이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거리는 25.5Km, 이 거리에다 노고단까지 오르는 약2.5Km와 천왕봉에서 중산리나 백무동 또는 대원사까지 내려가는 거리가 6~10Km쯤 되니, 거의 40Km가까이 되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그러나 요즘은 지리산도 등산객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다. 천왕봉까지 걷는 도중에 우리 일행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이다. 산길을 걷다보면 사색(思索)은 자연스레 걷는 이와 함께하게 된다. 40Km가까이 되는 먼 거리를 걸으며, 나만의 사색으로 영혼을 살찌워보면 어떨까?

 

 

 

산행들머리는 성삼재

서울시 용산역에서 22:4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열차를 타면 3시30분경에 구례구역에 도착하게 된다. 구례구역( * 구례읍의 입구라고 해서 구례구역이라고 불린단다) 앞 슈퍼에 들러, 깜박 잊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물품들을 보충한 후, 택시나 봉고차를 이용하여 성삼재로 이동한다.(구례구역에는 열차의 도착시간에 맞춰 여러 대의 택시와 승합차가 기다리고 있다. 성삼재까지의 요금은 무조건 1인당 만원씩 받는다). 봉고차를 이용하여 성삼재에 도착하니 4시30분, 아직은 깜깜한 저녁, 주위의 사물조차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다. 랜턴의 불빛에 의지하며 서서히 노고단 산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경사가 거의 없는 도로(道路)를 따라, 부지런한 새들의 아침노래를 들으며 50분쯤 걷다보면 어느새 ‘노고단 산장’이다. 여명이 서서히 찾아오더니 산장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날이 훤히 밝아 있다.

* 성삼재(姓三峙)는 3명의 마한 장수가 수비를 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굳이 각성바지로 뽑아 임무를 맡겼음은 그만큼 이 고개가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왼쪽 재너머의 달궁에는 피난 왕국의 궁궐인 ‘달의 궁전’이 있었다.

 

 

 

‘노고단 산장'은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웰빙(well-being)의 시대’, 10여년전만해도 지리산은 전문(專門)산악인들이 아니면 혈기에 넘치는 젊은 대학생들이나 찾지, 아무나 오를 수 있는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은 남녀노소(男女老少) 누구나 큰 두려움 없이 찾아오는 곳이 되어 버렸다. 물론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편의시설(便宜施設)을 잘 만들어 놓은 탓도 있겠지만, 웰빙시대에 걸 맞는 건강을 갖추기 위함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노고단 산장’은 관리용(管理用) 차량이 닿을 수 있는 곳이어서인지, 화장실과 취사장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아침 6시30분, 취사장 뒤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노고단으로 오른다. 라면으로 때운 아침식사가 양이 많았던지, 경사로(傾斜路)를 오르는 발걸음이 꽤 더디다. 노고단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커다란 돌탑이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고, 동쪽의 진행방향에는 지리산의 능선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어제 내린 비 탓일까? 구름 위로 삐져나온 산봉우리들이 주변의 운해(雲海)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水墨畵)를 만들어 내고 있다.

 

 

 

노고단 정상으로 가려면 고갯마루에서 오른편으로 들어서야 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 개방시간(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을 정해 놓고 탐방객들을 제한하고 있단다. 노고간 정상은 생태계가 복원되면서 전국 최대 원추리 군락지(群落地)가 되었고, 그 외에도 200여종의 야생화가 자생하고 있기 때문에 ‘구름 위의 하늘정원’이라는 애칭까지 얻고 있다.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운해(雲海) 위로 솟아 오른 노고단의 봉우리, 그 봉우리에 피어나는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야생화(野生花), 하늘정원을 못 본 아쉬운 마음을 가슴에 묻고, 천왕봉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긴다.

 

 

 

 

 

새벽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임걸령을 향해 걷는다. 만물이 생동하는 시간에 산길을 걸음은 일상(日常)과는 다른 색다른 의미의 상념(想念)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낮이 밤의 끝으로 파고드는 여명 속에 반야봉을 앞세워 불쑥불쑥 지리산의 주능선이 하늘을 뚫고 태동하고 있다.

 

 

 

 

돼지평전 : 울창한 잡목들로 둘러싸인 널따란 분지(盆地), 이 부근에 많이 자라는 원추리 뿌리를 멧돼지들이 파먹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어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긴 이곳에서 멀지 않은 노고단 정상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원추리군락지( 群落地)이니, 이곳 또한 원추리가 많음은 당연할 것이다.

 

 

 

 

임걸령을 향해 걷는 길은 마치 공중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아마 갑자기 고도(高度)를 높였기 때문에 느낌 또한 낯선 탓일 것이고, 한편으로는 주변의 산릉들이 내딛는 발아래 좌우로 펼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비는 개었지만 짙은 구름으로 덮인 하늘은 아직도 주변을 어스름 새벽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어스름 속에 임걸령이 누워 있다. 임걸령에는 물맛이 뛰어난 약수가 있으니 이곳에서 물을 보충하면 된다.(노고단에서 임걸령까지는 3.2Km)

* 임걸령은 조선 명종 때의 산적 두목인 임걸년(林傑年)이 이곳에서 무리를 이끌고 화살처럼 누볐다고 해서, 그대로 고개의 이름이 되었단다.

 

 

 

  

 

안개에 뒤덮여 시계가 불투명했지만 날은 시원해서 산행하기에 좋은 날이다.노고단에서 8.5㎞, 반야봉으로 오르는 길목인 노루목을 지나, 그러니까 임걸령에서 5.3Km 정도를 걷다보면 능선위의 밋밋한 바위 봉우리인 삼도봉(三道峰)에 닿게 된다. 원래의 이름은 낫날봉이었는데, 전북·전남·경남 3도의 경계를 이룬다 해서 이름이 바뀐 모양이다. 삼도봉 정상에는 삼각뿔 형태의 표지가 있는데, 항문을 삼각뿔에 대고 사진을 찍으면 삼대(三代)에 걸쳐 치질 걱정이 없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한번쯤 엉덩이를 대보고도 싶지만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아낙내들에게 눈치가 보여 참을 수밖에 없다.

* 삼도봉(1,550m) : 지리산의 봉우리 중 하나로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걸쳐 있어 삼도봉(三道峰)이라 부른다. 원래 이름은 낫날봉이었는데 정상의 바위 봉우리가 낫의 날을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삼각뿔 형태의 표지석(각 면에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라고 쓰여 있음)을 세우면서부터 삼도봉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삼도봉

 

 

 

삼도봉을 넘어 거대한 암벽(巖壁) 아래를 감아 돌던 길은, 갑자기 아래로 급하게 떨어진다. 아예 하산할 듯 쏟아진다. 경사(傾斜)가 심한 탓에 아예 나무 테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지는 계단(*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이 계단의 숫자를 551개 또는 562개라고 적어 놓고 있다). 전에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오늘과 반대방향으로 걷던 때, 이곳을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욕설(辱說)을 내 뱉으며 이를 악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계단의 끝, 주능선 가운데에서 가장 낮은, 1315m의 화개재가 움푹했다.

* 화개재는 지리산의 양쪽에 사는 민초(民草)들에게 삶의 숨통이 되어 준 재였다. 예부터 번성했던 경남의 화개장터에서 소금과 해산물을, 전북의 산내 방면에서 삼베와 산나물을 등짐으로 지고 넘나들며 비지땀을 흘렸다. 화개재에서 산나물과 바꾼 소금 가마니를 지고 뱀사골을 내려가다 계곡에 빠뜨린 곳이 ‘간장소’란다.

 

 

 

 

 

화개재  

 

 

 

‘발에 신고 있는 것의 정체(正體)는 뭘까요?’ 임걸령을 출발하면서 걱정했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오고야 말았다. 비록 신발을 구입한지는 오래되었지만 몇 번 사용하지 않았다는데,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오사무관의 신발창은 끝내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여자 일행들의 허리띠로 동여맸다가, 연하천에서부터는 아예 압박붕대로 동여매 버렸다. 등산화 위에 양말, 양말 위에 압박붕대, 기형적인 신발을 신고 있는 오사무관의 표정은 그저 허탈함... 돌발 상황(突拔 狀況)으로 인해 도저히 둘째 날의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고객서비스 덕택에 나머지 산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등산화 대여 프로그램’, 산행 중 등산화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산장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등산화를 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같은 내용의 기사를 인터넷에서 읽고 그저 남의 일이려니 했는데, 그 혜택을 우리 일행이 입다니, 이 자리를 빌어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당신들은 일상적(日常的)으로 하고 있었겠지만 저는 당신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고객(顧客)서비스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답니다.’

 

 

화개재에서 연하천산장을 향해 1.2Km를 걷다보면, 서두르는 발걸음을 토끼봉이 가로막는다. 토끼봉은 능선(稜線)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한 지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밋밋한 봉우리이다. 여기서 토끼라는 지명은 봉우리의 생김새와는 상관없다. 반야봉을 중심으로 해서 묘방(卯方), 즉 정동(正東) 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토끼봉에서 3Km를 더 걸으면 연하천 산장이다. 연하천까지의 길은 오르고 내림의 연속이다. 장거리 산행에서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차이가 없어진다. 올라간 다음에는 내려가야 하고, 내려간 다음에는 다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길의 상태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 없이 꾸준히 ‘처음처럼’ 한 걸음씩 옮기는 것이 최상책(最上策)이고, 그러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연하천산장에 도착하니 이곳도 또한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마침 점심때인지라 취사장을 곁눈질해보지만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산장 앞 공터의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은 후, 매점에 들러 메뉴판을 열심히 훑어보지만 소주가 보이지 않는다. ‘판매를 안 한지가 벌써 몇 년 되었습니다.’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술을 적게 챙긴 난, 준비해온 소주가 마치 보물(寶物)이라도 되는 양, 한잔 술을 몇 모금에 나누어 마실 수밖에 없었다.

 

 

연하천산장에서 벽소령산장까지의 능선은 암릉의 연속이다. 암벽(巖壁)을 감싸 안고 돌다가, 어떤 때는 암벽사이를 통과하면서2.1Km를 걸으면 형제봉이다. 바위봉우리인 형제봉은 지리산 종주(縱走)구간 중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구간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연하천을 출발하면서부터 흐려지기 시작한 날씨가, 어느새 짙은 구름으로 뒤덮여, 마치 어스름 저녁을 연상시킬 정도이기 때문이다. 시계(視界)는 제로에 가깝다.

 

 

 

 

작년 겨울은 늦게까지 물러갈 줄 몰랐었다. 들꽃들도 덩달아 늦게야 꽃망울을 여는 늦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었다. 산은 기나긴 겨울이 지겨웠던지 연한 안개꽃을 피워내고 있다. 마치 아물아물 아지랑이를 피워내듯이... 호리호리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 철쭉들도 봄을 재촉하며 이제야 작은 가지에 간간이 꽃망울을 열고 있다.

* 철쭉의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 이 꽃처럼 사랑을 넉넉하게 담고 있는 꽃도 드물다. 이름도 재미있다. 아름다움에 끌린 길손의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한대서 ‘척촉’(擲燭)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나는 사람이 철쭉꽃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꽃을 바라보게 되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 옛 기록에 양(洋)척촉 이라고도 쓰는데, 철쭉꽃에 독성이 있으므로 양이 이 꽃을 보면 가까이 가지 않고 머뭇거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래봉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국립종축장’에서 방목한 양들이 다른 나무들은 다 갉아먹고, 오로지 독성이 강한 철쭉만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바래봉은 봄이면 ‘천상화원(天上花園)’을 만들어 내었고, 상춘객(賞春客)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형제봉

 

 

 

 

 

형제봉을 지나서도 등산로는 역시 암릉의 연속된다. 그렇게 1.5Km를 걸으면 드디어 오늘의 숙박지인 벽소령(碧宵嶺)에 도착한다. 벽소령은 ‘푸른 밤 고개’, 즉 달빛이 너무 희고 맑아 푸른빛으로 보이는 고개라는 의미다. 벽소령의 달 풍경은 지리산 10경 중 제4경으로 꼽히는데, 겹겹이 쌓인 산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른빛을 띤다 하여 '벽소한월(碧宵寒月)'이라 한다는데, 비가 내리는 오늘은 그저 마음속으로만 그려볼 수밖에 없다.

* 벽소령에는 등산로보다 몇 배가 넓은 도로가 있다. 67년경 몇 차례에 걸쳐 침투한 무장공비에 홍역을 치룬 정부가 북쪽의 삼정리와 남쪽의 대성리를 잇는 비포장도로를 만든 것이다. 무장공비를 쉽게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한 역사(役事)였지만 그 뒤 한 번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단다. 오늘날도 도로가 빙빙 멀리 돌아가기 때문에 등산객들로부터도 외면당하는 처지다.

 

 

 

비를 피해 산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숙소 배정은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산장직원들의 배려이다. 오는 도중에 만난 등산객로 한 명이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 자기 몸뚱이만한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걷더니만 미끄러지면서 허리를 삐끗했었나 보다. 벽소령 산장 바로 아래에까지 임도(林道)가 개설되어 있으니 하산하는 것이 어떠냐는 산장직원의 권고, 그는 결국 119구조대에 의해 하산을 하고 말았다. 관리공단의 편의로 네 시경에 방을 배정받고, 부랴부랴 취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술상을 차린다. 소세지 볶음에 소주, 여자 분들은 된장찌개에 햇반이다. 6시를 조금 넘겨 자리를 접은 후, 일찍 잠자리에 든다. 덕분에 난 12시가 되기도 전에 눈을 뜨고 말았다. 그리고 잠을 이루어 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뒤따랐고...

* 대피소는 씻을 수 있는 장소가 전혀 없다. 먹을 수 있는 물만 있을 뿐이다. 치약은 당연히 사용하지 못한다. 물로 칫솔질 하는 것이 당연한 곳이다. 세수와 목욕은 전혀 할 수 없어 준비해 온 물티슈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종주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꼭 물티슈를 챙겨야 한다.

 

 

 

 

 

 

지리산 종주 둘째날 아침,

오전 6시30분 벽소령산장을 나선다. 새벽 5시, 여명이 밝자마자 일어나 식사준비 등으로 부산을 떨었지만 출발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천왕봉을 오르지 않고 장터목에서 중산리로 곧바로 하산할 계획이니 두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열심히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누구죠? 하느님이 우리 산행을 이렇게 보살펴 주시니 말입니다.’ 비가 내렸던 어제도, 우리가 산장에 도착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바라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오늘은 출발 전부터 말끔하게 개인 하늘을 보여주니 하는 말이다.

 

 

비온 뒤의 산하(山河)는 그렇게 산뜻할 수가 없다. 산허리를 감싸고도는 하얀 뭉게구름, 연록으로 물들은 산릉의 위로는 파랗게 하늘이 열려있고, 뭉게구름 한 점 둥둥 흘러가고 있다. 길가의 물오른 초목(草木)들은 살짝 옷깃만 스쳐도 녹색으로 물들어 버릴 것만 같다.

 

 

 

선비샘, 옛날 덕평골에 살던 화전민 李氏 노인이, 생전에는 받아온 천대와 멸시를 받아왔으니. 죽어서라도 존경을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단다. 그래서 이곳 상덕평의 우물 위에 묘(墓)를 써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단다. 그 뒤로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이 샘물을 먹으면서 자연스레 허리를 구부리게 되었고, 그렇게 엎드리는 형상이 바로, 존경 아닌 존경의 표현으로 비쳐지는 모양이다.

 

 

벽소령에서 세석산장까지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지리산이 광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산이 좁아서 오르막내리막이 몰려 있는 여느 산과 다르다. 따라서 산길은 평탄하다. 큰 가풀막도, 내리막도 없다. 이런 길은 걸으며 사색하기에 딱 어울리는 길이다.

 

 

 

맑은 날씨에 새들도 소풍을 나왔을까? 쾌청한 날씨만큼이나 새들의 지저귐 또한 경쾌하기 이를 데가 없다. ‘홀딱 벗고’... 새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울음소리를 흉내 내다가 누군가의 입을 빌어 나온 새의 이름이다. 사람들의 마음 또한 날씨만큼이나 즐겁고 행복한가 보다.

 

 

 

 

벽소령에서 선비샘을 거쳐 세석산장까지는 6.3Km이다. 선비샘까지의 산길은 고저가 완만하지만, 선비샘을 지나면서부터는 로프를 붙잡고 올라서야 하는 등 험한 곳도 자주 나타난다. 이른 아침에 출발한 덕분에 조금은 여유 있는 산행을 즐겨본다.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서는 어김없이 발걸음을 멈춘다. 카메라 앞에선 이들은 환하게 웃고 있다. 여유를 부린 탓에 무려 3시간을 넘기고서야 세석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숲길을 걸어간다. 푸른 나뭇가지에서 봄의 향기가 묻어나고 있다. 그 풋풋한 향기를 코를 벌름거리며 한껏 들여 마시니 온몸 구석구석 은은히 향기가 퍼져 나가는 듯했다.

 

 

 

 

산은 늘 내겐 언제나 아름다운 유혹이다. 감미로운 암갈색 초콜릿이나 혀끝에서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 맛 같은, 달콤한 유혹으로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아 버린다. 그래서 이따금 우중충한 회색의 도시를 벗어나고 싶을 때면 나는 하얀 유리창을 톡톡 경쾌하게 두드리는 빗방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연의 품속으로 달음질친다.

 

 

 

나를 되돌아보고 싶을 때 ‘산행(山行)'만큼 좋은 것은 없다. 숨 가쁘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의 삶은, 누군가와 끊임없는 경쟁을 하며 조금 더 위로 오르려고 한다. 그러나 그 끝이 언제나 '승리(勝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산행의 끝에는 언제나 승리만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나를 되돌아보고 싶을 때면 산행을 떠나보자. 그리고 산의 정상에 서보자.

 

 

 

 

세석대피소는 분지 중앙에 위치해 있다. 넓고 푸르른 들판 한 가운데에 산장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등산객들은 세석산장을 ‘호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규모도 크고, 편의시설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석산장에서 촛대봉으로 오르는 길은 마치 화원(花園)을 걷는 느낌이다. 소문난 철쭉꽃은 아직도 꽃망울 열지 않고 있지만, 세석습지에는 동의나물이 노란 꽃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등산로 주변의 이름 모를 들꽃들도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세석산장의 뒷산인 촛대봉은 바위봉우리이다. 마치 자갈이 깔린 마당위에 커다란 바위를 얹어 놓은 형상이다. 정상의 암반(巖盤)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바위 위에 올라서서 사진모델이 되기도 하고, 지나온 길과 가야할 방향에다 카메라의 앵글을 맞추고 있는 사람들... 이곳의 조망(眺望)이 뛰어나기 때문에 다들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산은 푸근함과 경외감, 그리고 성취감을 동시에 안겨 준다. 산길을 서둘러 걸을 필요는 없다. 걷다가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잠시 쉬었다 가자.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을 바라보면 '평온(平穩)'이라는 단어가 실감난다. 이왕에 쉬는 길이니, 산들 바람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며 잠시 눈을 감아보자. 산과 내가 어울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삼신봉에서 잠시 쉬다보면 맞은편 멀리 연하봉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이 바라보인다.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은 예뻤고, 내 이마를 스치는 바람은 시원했다. 오늘의 능선산행이 마감되는 장터목에 가기 위해서는 필히 거쳐야만 하는 연하봉, 저 오르막만 치고 오르면 오늘의 고행이 끝난다. 치고 오른다는 것은 오르막길을 오르는 동안 쉬지 않고 올라간다는 것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올라서야할 곳에 올라서면, 가슴은 뿌듯해지고, 스스로는 대견해진다.

 

 

 

 

세석산장에서 3.4Km, 길게 이어지던 능선이 지겨울 때쯤이면 저 멀리 천왕봉이 바라보이고, 그 아래에 장터목산장이 자리 잡고 있다. 능선에서 바라본 장터목산장은 한마디로 하늘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다. 산장에는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다. 이곳의 높이가 1653m이면 결코 낮지 않은 곳인데도, 나이 드신 분들은 물론, 어린애들까지 눈에 띈다, 남녀노소(男女老少)의 구분이 없음은 그만큼 요새 사람들의 체력이 강해졌다는 의미이겠지? 공터의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고 앉아, 햇반으로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긴다. 물론 그 동안 아끼면서 먹어온 반찬거리를 다 내놓고서...

 

 

 

 

장터목은 고개가 운동장처럼 넓어 아예 장이 선 곳이었다. 경상도의 산청·함양·진주 사람들과 전라도의 산내·운봉·남원 사람들이 중산리와 백무동에서 올라와 물물교환을 했다. 이곳의 높이가 1653m, 이 땅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장터였을 것이다. ‘하늘 위의 장’에서 왁자지껄했을 풍경이라니...

 

 

장터목에서에서는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코스도 있으나(서울까지 올라가는 고속버스가 있어 편리하다), 우리는 중산리 쪽으로 내려선다. 중산리에 있는 ‘체신청 수련원’에 숙소를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중산리 코스는 볼 것도 많기 때문에, 즐기면서 걸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어젯밤 늦게까지 내린 비로인해 땅과 바위가 젖어 있는 중산리 코스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물기를 머금은 바위는 그렇지 않아도 미끄러운데, 등산객들의 신발에서 떨어진 흙들로 뒤덮여 있어 한층 더 미끄럽게 만들고 있다. 조심스럽게 내려서는 발걸음이 무척 힘들다.

 

 

 

 

 

유암폭포와 법천폭포 등 유·무명(有無名)의 폭포들을 끼고 지루하도록 길게 이어지는 하산 길은,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다른 모습의 경관을 보여주기 때문에 지루하지가 않다. 오늘은 중산리까지만 내려가면 되니 급하게 서두를 이유가 없다. 물 맑은 곳에 앉아 탁족(濯足)을 즐겨본다. 아흐~~ 옥수(玉水)는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시종 웃음꽃이 지지 않고 있는 오사무관 왈(曰), ‘5초 이상을 못 버틸걸요?’

 

 

 

 

산행날머리는 중산리 대형버스 주차장(駐車場)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바윗길은 법계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서 평탄하게 변한다. 잠시라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내려선 발걸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중산리 매표소 앞의 식당에 앉아 산골음식에 막걸리로 요기를 한 후, 다시 길을 나선다. ‘체신청 연수원’이 있는 대형버스 주차장은 이곳에서도 30분 정도를 더 걸어 내려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연수원 직원이 추천한 계곡식당에서 촌닭 백숙과 닭볶음을 안주삼아 소주 한잔, ‘1박2일’간의 지리산 종주를 마무리하며 완주(完走)를 자축해 본다. 술상에 앉아 내려다보는 계곡은 또 하나의 별유천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보통사람들도 한 번쯤 지리산 종주(縱走)를 해보고 싶어 한다. 지리산 종주는 ‘로망’이다.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이기 때문이다. 가랑이마다 산들이 태어나서 남과 북, 동서로 휘달려 국토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을 만들어냈다. 노고단, 삼도봉, 영신봉, 형제봉 등등 1500m 안팎의 고봉(高峰)들을 징검다리 삼아 우리는 순례하는 마음으로 지리산을 걸었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우린 또 하나의 종주를 꿈꾸어 본다. 저 북쪽에 있는 설악산으로 시선(視線)을 고정시키며...

 

감암산(甘闇山, 834m)-부암산(傅岩山 715m)

 

 

산행코스 : 대기마을→매바위→누룩덤→칠성바위→감암산→느리재→배넘이재→부암산→부암사→이교마을 (산행시간 : 4시간30분)

 

소재지 :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과 산청군 차황면․신등면의 경계

산행일 : ‘11. 5. 5(목)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5월의 山으로 황매산은 유명하다. 온산을 철쭉으로 자신의 몸을 태우기 때문이다. 황매산의 또 다른 매력은 모산재의 웅장한 암릉이다. 모산재를 빼 놓고는 황매산을 얘기하기 힘들 정도로 모산재는 빼어난 암릉미를 자랑하고 있다. 그 능선을 잇는 감암산과 부암산도 황매산의 형제산(兄弟山)임을 과시라도 하려는 듯 아름다운 암봉과 바위능선을 지니고 있다. 암릉을 걷다가 만나게 되는 누룩덤과 칠형제바위 등,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바위들은 오히려 모산재보다 더 장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다. 황매산의 유명세에 비해 소문이 덜 난 감암산과 부암산은 한적하므로, 나만의 산행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합천군 가회면 중촌리 대기마을

‘대전-통영 고속도로’ 산청 I.C를 빠져나와 산청市街地를 통과한 후, 60번 지방도(일부구간에서 1089번 지방도와 겹친다)를 타고 합천방향으로 달리다보면 산청군 신등面事務所와 합천군 가회面事務所의 所在地들을 거쳐, 산행들머리인 가회면 중촌리 대기부락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 대기마을은 감암산의 들머리일뿐더러, 모산재를 거쳐 황매산을 오를 때 산행기점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마을 앞 정자(亭子) 왼편으로 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정자 뒤편으로 보이는 모산재의 암릉이 의젓하고, 왼편에는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인 누룩덤이 뚜렷하게 바라보인다. 마을을 벗어나기 전에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 후, 잘 지은 별장 같은 집들을 지나 잠시 올라가면 이정표(묵방사 / 모산재, 천황재)가 세워진 Y자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편에난 이곳이 감암산 누룩덤으로 들어가는 입구(入口) 임을 알려주는 커다란 이정표가 서 있다. 오른쪽에는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기암괴석(奇巖怪石)으로 형성된 모산재, 그리고 왼쪽의 누룩을 쌓아 놓은 듯한 누룩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바위무더기가 아주 선명하다. 그 동안 수많은 산을 다니면서 보아왔던 들머리 중에서 최고가 아닐까한다.

 

 

묵방사 갈림길에서 모산재, 천황재 방향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왼편에 계곡(성재골?)을 끼고 이어진다. 요즘 가뭄이 심해서일까? 우렁차게 흘러야할 물소리가 미약하기 그지없다. 묵방사 갈림길에서 약 7~8분 정도 올라가면 왼편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예쁘장한 나무다리(木橋)가 보인다. 누룩덤으로 오르려면 이 나무다리를 건너 맞은 편에 보이는 숲속으로 들어서야 한다. 곧바로 올라가면 감암산과 황매산을 이어주는 천황재에 닿게 된다.

 

 

계곡을 건너, 연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참나무 그늘 아래를 지나서 작은 개울 하나를 건너면, 길이 50m정도 되는 슬랩(Slap)이 마중 나온다. 폭은 15m 정도 되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슬랩으로 경사(傾斜)가 완만하다. 스릴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은 부담 없이 올라서도 되지만, 이마저 어렵다면 오른편에 안전하게 오르는 길이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슬랩 위에서 잠시 고개를 돌려보면, 보이는 곳마다 온통 기묘(奇妙)한 바위들로 가득하다.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걷다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온갖 형상의 바위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눈길을 주는 곳마다 진경산수화가 펼쳐지고 있다. 묘(墓) 1기(基)를 지나니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트이고 있다. 절경이 많은 곳에서는 길이 트이는 곳은 어디든지 고개를 내밀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답자(先踏者)들이 아무 의미 없이 길을 만들어 놓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비집고 들어선 곳은 매바위가 가장 또렷이 보이는 지점이었다.

 

매바위, 영락없는 매의 부리이다.

 

 

매바위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시원스레 시야가 열리는 바위전망대에 닿게 된다. 급경사 오르막길에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지만, 다들 왼편의 바위슬랩으로 올라서버린다. 다들 한시라도 빨리 절경(絶景)을 가슴속에 담기 위해서일 것이다. 약간의 위험 정도야 감수하면서라도... 왼쪽에는 모산재가 한눈에 들어오고, 모산재 뒤편으로는 허굴산, 그리고 오른편엔 의령 자굴산이 바라보인다. 발밑으로는 대기저수지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전망대를 지나서 만나게 되는 흙길, 부드러운 감촉을 느껴볼 틈도 없이 등산로는 어느새 바윗길로 변해버린다. 한참동안 암릉을 오르면 두 번째 슬랩이 보인다. 길이는 첫 번째 슬랩보다 길지만 경사는 더 완만하기 때문에 양쪽 가장자리에 매어놓은 로프를 이용한다면 남녀노소(男女老少) 누구라도 쉽게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산을 오르는 동안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인적이 없다. 보통 때, 특히 황매산의 철쭉이 한창인 5월 초에는, 이곳도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몸살을 앓는 코스중 하나가 된다. 황매산으로 곧장 오를 수 있는 모산재 코스가 인파로 넘쳐서 시간이 많이 지체되기 때문이다. 이곳의 지리를 약간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 코스를 이용해서 황매산으로 오르기 때문이다. 오늘이 5월5일이니 사람들로 한창을 넘칠 터인데도 왜 이렇게 한적할까? 칠성바위에 도착해서 알게 된 이유는 단 하나. 아직 황매산의 철쭉이 개화(開花)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슬랩을 지나, 조망을 즐기면서 걷다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누룩덤으로 곧바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편은 우회(右回)하는 길이다. 왼편으로 올라서려는 내 앞을 팻말 하나가 가로막는다. ‘등산로 차단’이라고 적힌 팻말의 옆으로는 하얀 로프로 금(禁)줄을 쳐 놓았다. 그래도 진행하려는 내 귓가를 울리는 퉁명스런 한마디, ‘그냥 돌아갑시다.’ 집사람의 명령에 따라 별수 없이 오른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두 갈래로 나뉘었던 길은 누룩덤의 ‘뒤꼭지(’머리 뒷부분의 한 가운데‘의 경상도 방언)’어림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약 1시간20분이 지났다. 많이 뒤떨어진 동행과 보조를 맞추다보니 시간이 꽤나 지체되었나 보다. 봉우리 형태가 술을 빚는 누룩을 겹겹이 쌓아 놓은 형상이어서 누룩덤이란 이름이 붙었단다.

*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기백산에도 누룩덤이 있다. 그러나 기백산의 누룩덤은 사각으로 이루어진데 비해, 이곳은 둥근 누룩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문득 박목월시인의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싯귀가 떠오르는 것은 내가 애주가이기 때문에서 일까?

 

 

 

누룩바위, 뒤에서 보는 누룩덤의 모습은 더욱 웅장하다. 가까이에서는 잘 모르겠던 것이 좀 떨어져 보니 진짜 누룩을 포게 놓은 형상이다. 자연의 신비라고하면 거창한가?

 

 

 

누룩덤에서 ‘칠성바위’로 가는 길은 결코 속력을 내서는 안 되는 구간이다. 누룩덤이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이고, 이 구간을 걷다가 뒤돌아보면 돌아서는 시점마다 그 형태를 다르게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누룩덤을 출발해서, 잠시 숲 속으로 들어섰다가 빠져나오면 슬랩바위가 마중 나온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멋진 경관에 도취된 채로, 느림보의 미학(美學)을 추구하며 걷다보면 어느새 ‘고래 등’ 같은 암릉 위에 올라서 있다. 암릉의 끄트머리에는, 7개의 작은 바위가 얹혀 있는 칠성바위가 그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칠성바위의 꼭대기에 오른다. 정면에 철쭉으로 유명한 베틀봉(946.3m)과 그 뒤로 황매산 중봉, 상봉이 잇따라 보인다. 보통 이만쯤이면 저 능선은 철쭉으로 붉게 불타오르고 있었으련만... 붉은 기운조차 엿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2~3주는 더 지나야 꽃이 만개(滿開)할 듯 싶다.

 

 

바위를 갉아먹고 살아가는 철쭉, 놀라워라! 척박한 바위의 틈새에서도 연약한 생명은 움트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삶을 영유하고 있을까? 작은 희망? 힘들게 피워낸 꽃은 생기(生氣)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사진에 담지는 않았지만 기암절벽에서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빼놓을 수는 없다. 어느 것 하나 보여주는 강인한 생명력들이 숭고(崇高)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까...

 

누룩덤에서 올라오면서 바라본 칠성바위

 

바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칠성바위

 

칠성바위 위의 풍경

 

 

칠성바위를 벗어나 완만해진 능선을 따라 오르다보면, 길 주변에는 점점이 흩어져 있는 철쭉들이 활짝 피어오르고 있다. 아마 황매산 보다 여기가 바람이 덜 불고, 따뜻한 모양이다. ‘철쭉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왼쪽에 누룩덤에서 칠성바위로 이어지는 고래 등 같은 암릉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바위전망대에 닿는다. 이곳에서의 조망도 칠성바위에서처럼 장쾌하고 시원하다. 바위 전망대를 지나면, 이제까지 눈을 어지럽히던 바위들은 사라져버리고, 푹신한 육산의 숲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연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산길을 따라 쉬엄쉬엄 올라가면 황매산에서 부암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 삼거리 봉우리인 828봉에 올라선다. (이정표 : 분기점(828고지), 감암산 0.5㎞/ 부암산 3.3㎞/ 황매산 정상 4.0㎞, 천황재 0.5㎞ / 대기마을(누룩덤))

 

 

 

828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서면 잠시 뒤에 조망이 뛰어난 바위전망대를 만나게된다.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덩어리라는 감암산과 스승의 산이라고 불린다는 부암산이 잘 조망되는 전망대 중의 하나이다. 정수산과 둔철산이 바라보이고,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은 연무(煙霧)에 가린 탓에 그저 형태만 그려볼 수 있다.

 

 

전망바위에서 내려와 가파르게 내려선 후, 경사가 완만한 계곡을 따라 걷다보면 토궁산장으로 내려서는 삼거리가 보이고(이정표 : 황매산 정상 4.5㎞ / 매서정계곡, 토궁산장 1.1㎞, 상법마을 1.6㎞), 이곳에서 5분 정도 더 걸으면 감암산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감암산이라는 이름은 모산재 입구의 감바위란 지명에 의해 생겨났다고 한다.

 

 

 

위풍당당한 산세에 비해 초라하고 서글퍼 보이는 감암산 정상은 서너 평 남짓 되는 바위봉우리로 한 가운데에 자연석(自然石)으로 만든 정상표지석이 자리 잡고 있다. 북쪽 황매산 방향으로 조망안내판이 세워져 있고, 그 아래에는 평상(平床)을 만들어 놓았다. 조망안내판 앞에 서면 지나 온 능선과 황매산이 잘 조망되고, 남쪽방향으로는 수리봉과 부암산이 소나무 가지 아래에서 바람 따라 흔들리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50분 정도 되었다(발걸음이 더딘 일행만 아니라면 1시간20분이면 충분할 것 같다)

 

 

정면에 보이는 보암산과 수리봉 사이에 형성된 깊은 바위 계곡의 풍광이 압권이다.

 

 

감암산에 수리봉과 부암산이 잘 조망되는 전망대를 지나서 느리재로 내려서는 길은 급격히 고도(高度)를 떨어뜨리고 있다. 헌걸찬 바윗길은 맨몸으로는 사람들을 내려서게 하는 것이 불가능했던지, 바위들 사이를 뚫고 나무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능선 주변은 또다시 기암전시장(奇巖展示場)을 만들어 놓고 있다.

 

 

 

 

‘위험하니 돌아가세요!“ 암벽(巖壁)에 들어붙은 나에게 외치는 산행대장들의 노한 목소리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손맛이 바위를 느껴버렸으니 말이다. 사실 이런 코스는 보조 장비 없이는 통과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고, 내려오지 말고 뒤돌아 가라는 산행대장의 지시는 백번 맞다. 오래전부터 암벽장비(巖壁裝備)도 갖추고 있고, 클라이밍 고수들을 따라 암벽산행을 해본 자신감으로 그냥 암벽을 타고 내려왔지만, 산행대장의 지시에 따르지 못했던 점은 깊게 사과드리고 싶다. 아래에 보이는 저 험한 바위벽을 맨손으로 내려왔으니 조금 무리했었나?

 

 

암수바위, 산행대장에게 들은 지청구를 귓가로 흘려보내며 내려서면 암수바위 앞이다. 미끄러운 마사토로 둘러싸인 이 바위가 어쩌면 암수바위 중에서 암바위일 것이다. 쩍 갈라진 엉덩이의 형상을 바위에서 찾아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럼 남근(男根)을 빼어 닮은 듯하다는 숫바위는 과연 어느 바위를 이르는 것일까? 결국에는 발견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발걸음을 옮긴다.

 

 

 

바윗길을 벗어나 봉우리 하나를 넘은 후, 바람흔적미술관 방면의 이정표를 지나면 짙은 소나무 숲이 느리재까지 계속된다. 이곳의 소나무 숲은 밀집도가 높은 데다 형태도 괴기(怪奇)스럽다. 토양이 척박하고 생존 경쟁도 치열해 뒤틀리고 못생긴 것들이 많은 모양이다. 느리재는 화전민이 살아도 충분할 만큼 널따란 분지(盆地)형태를 띠고 있다.

 

 

 

느리재를 지나 30분 가량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수리봉 정상이다. 수리봉으로 오르는 길은, 마치 암릉의 곳곳을 흙으로 덮어 놓은 것과 흡사하다. 바위 사이사이에 무리지어 앉은 철쭉들이, 제 철을 만난 양 화사하게 연분홍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흙으로 된 봉우리 주변을 바위가 감싸고 있는 듯한 생김새의 수리봉의 정상은 그다지 특별한 인상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저 감암산과 황매산, 그리고 지리산의 연봉들이 시원스레 눈에 들어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올라서는 바위마다 시원한 조망을 안겨주고 있다. 비단결 같은 암릉을 밟고 올라서본다. 시원한 바람 한줄기에 잠시 지친 몸을 맡기다보면, 이마에 맺혔던 땀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좌우로 펼쳐지는 절경에 취해 피곤조차도 남의 얘기일세라...

 

 

거대한 바위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새로우면서도 멋진 바위가 시선을 끌게 만들고 있다. 같은 바위도 방향을 달리할 때마다 다른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기묘한 조각품으로 가득 차 있는 조각공원, 이쯤 되면 이곳을 현대미술관의 ‘조각품 전시관’이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수리봉과 부암산은 배넘이재라는 안부를 사이에 두고 300m 정도의 능선으로 연결된다. 안부로 내려서는 암릉은 비록 절벽(絶壁)으로 되어있지만, 철(鐵)계단 등 안전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므로 걱정할 일은 없다. 안부에서 부암산으로 올라가는 길도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도 오를 수 있다.

 

 

부암산 정상은 10평 남짓한 흙으로 된 분지이다. 감암산이나 수리봉에서 바라볼 때, 보여주었던 웅장한 암봉(巖峰)을 떠올리면 자못 속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남쪽을 제외한 나머지 방향이 바위절벽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보면 암봉으로 보였나보다. 정상의 한 가운데에 ‘이름없는 산악회’에서 세운 자그마한 4각의 정상표지석이 자리 잡고 있고, 북쪽의 조망표시판 너머로 황매산에서 부암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무척 아름답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그리고 연초록으로 물든 산, 거기에다 부끄러운 듯 하얀 속살을 살며시 내보이고 있는 바위들이라니...

* '스승바위산'이라고도 부르는 부암산(傅岩山)은 사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바위산이다. 그래서 기암괴석이 많다. 전망이 탁 트인 바위에 오르면 철쭉으로 이름난 황매산과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보인다.

 

 

부암산에서 이교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돌과 흙이 섞인 매우 가파른 길이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거의 다 내려설 즈음, 오른편에 커다란 바위벽(壁)이 보이고, 그 밑에 ‘돌 축대’를 2단으로 엉성하게 쌓아 놓았다. 바위벽에 ‘부처바위’라고 적혀있기에 유심히 살펴봤지만 부처의 형상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맞은편에 세워져 있는 표시판의 앞부분, 두 글자를 누군가가 지워버렸나 보다.

 

 

 

부처바위를 지나면 이내 또 하나의 절벽이 보이고, 그 아래를 암굴(巖窟)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절터(샘터)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데, 암굴의 안쪽에 제법 큰 샘이 있다.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落水)이 가득히 고여 있지만, 마음 놓고 마시기에는 꺼림칙하여 그냥 발길을 돌려버린다.

 

 

산행날머리는 이교마을 마을회관

샘터를 지나면 길가는 온통 붉은 빛 소나무들 차지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아래를 거닐며, 넘치도록 풍성하게 보내오는 피톤치드에, 산행 중에 쌓였던 피로를 씻어버릴 즈음, 오른편에 시골 여염집 비슷한, 여염집 중에서도 현대식으로 지어진 부암사(傅岩寺)가 보인다. 맑고 푸른 하늘에는 뭉게구름 떠다니고, 산들바람은 햇살을 피해 옷깃을 스치는데, 마을 뒤편의 돌 축대는 곱게 핀 철쭉들이 구성지게 장식하고 있다.

 

 

바랑산 (796m)-소룡산巢龍山, 761m)

 

 

산행코스 : 신촌경로당→절재→바랑산→큰재→새이덤→소룡산→무제봉→강굴→망바위→오휴마을 (산행시간 : 나물채취 시간까지 합쳐서 4시간30분)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과 산청군 오부면의 경계

산행일 : ‘11. 4. 28(목)

함께한 산악회 : 산두레

 

 

특색 : 바랑산과 소룡산은 거창과 산청의 경계를 짓고 있는 산릉(山稜)이며, 진양기맥의 한 구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다 내세울만한 게 없는, 한마디로 말해서 소박한 산이다. 소룡산에 어느 정도의 암릉이 돌출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인근의 월여산에 비할 수가 없고, 크기로도 인근의 황석산이나 거망산에다 견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표적 오지마을 중의 하나라는 오휴마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곳의 산하(山河)는 아직도 때 묻지 않은 순수 그대로이다. 살다보면 세월도 비켜갈 만한 곳, 공기 좋고 물 맑은 이런 곳이 바로 피안(彼岸)의 세계가 아닐까 한다.

 

 

 

산행들머리는 오부면 중촌리 신촌마을 정류장

산청IC에서 빠져나와 산청읍 市街地를 통과한 후, 3번 國道를 타고 생초 방면으로 가다가, 양촌교차로에서 1026번 地方道路 오전리 방면으로 들어가면 신촌마을 주차장에 다다른다.

들머리인 신촌마을 버스정류장에는 제법 널따란 주차공간과 간이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우선 마을을 지켜주는 우람한 당산나무가 오른편 언덕 위에서 우릴 반겨준다. ‘신촌마을 노인정’ 건물 앞으로 난 시멘트 포장도로(農路)를 따라 北쪽으로 올라가면 이내 비포장 농로가 나타난다.

 

 

산행을 출발한 지 20분쯤 지나자 최근에 개간한 것 같은 널따란 밭이 보인다. 심어진 作物(아마 도라지일 것이다)의 새싹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 밭의 끝은 계곡과 닿아있다. 밭의 맞은편 언덕 위에서 누군가가 외치고 있으나 알아들을 수 없기에 무시하고 그냥 지나쳐버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밭을 지나 마시오.’ 그는 틀림없이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밭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던 길이 계곡에 닿자마자 없어져 버린 것이다. 길이 어디로 사라져 버렸단 말인가? 별수 없이 우린 밭을 통과할 수 밖에 없었다. ‘주인장이 보면 싫어할 테니까 약초를 밟지 마세요.’ 약초(藥草)밭에서 김을 매고 있던 동네 아주머니 말씀이다. 맞다. 조금 전에 저편 언덕에서 뭐라고 외치던 분이 어쩜 이 밭의 주인이었나 보다. 藥草밭을 지나서 다시 또렷해진 등산로를 따라 얼마간 오르면 예동마을로 넘어가는 林道와 다시 만나게 된다.

* 신촌마을에 산을 오를 경우, 초입(初入)의 農路에서 예동마을로 넘어가는 林道로 옮기는 과정에서 남의 밭을 통과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약초가 심어진 밭을 등산객들이 지나다니는데 좋아할 주인은 없을 것이다. 비록 주인의 승낙을 받고 통과하지는 못할지라도 내딛는 걸음마다 조심스럽게 옮겨보자. 그것만이 주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禮儀)일 테니까....

 

 

 

다시 만난 林道는 시멘트로 포장된 道路, 인위적(人爲的)인 도로는 싫지만 진양기맥이 지나가는 바랑산의 주능선으로 가는 길이 이 길 뿐이니 별 수 없다. 예동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도로는 구불구불, 조금씩 고도(高度)를 높여가면서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 만에 진양기맥이 지나는 능선에 다다랐다. 여기서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조금만 더 나아가면 예동마을에 닿게 된다. 기맥 너머 예동마을이 있는 거창 쪽은 해발 540m의 고원(高原) 구릉지(丘陵地)이다.

* 거창군 신원면 중유리의 예동마을은 산 속에 있어 역골이라 불렀다. 그러다가 어느 지리학자가의 권유에 따라 마을 이름을 예동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단다.

 

 

진양기맥과 만나게 되는 능선에는 ‘진양기맥 종주등산로 안내도’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시멘트포장 임도를 벗어나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바랑산으로 향한다. 기맥주변은 갖가지 묘목들이 심어져 있는 등 ‘기맥 마루금’이 많이 파헤쳐져 있다. 인간들의, 인간들에 의한, 인간들을 위한 개발(開發)... 그 개발의 반대급부가 생채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긴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도 여기저기 생채기를 내고 있기는 매 한가지이다.

* 진양기맥(남강기맥) : 백두대간의 남덕유산에서부터 분기되어 진양호로 빠져들면서 마감되는 163km 길이의 산줄기, 능선 상의 주요 산으로 금원산, 기백산, 황매산, 자굴산 등을 꼽을 수 있다.

 

 

 

생채기의 흔적이 끝나갈 즈음에, 예동마을로 넘어가는 길과 나뉘는 절재에 닿게 된다. 이곳에서 등산로는 오른편으로 급히 방향을 틀면서 산속으로 접어든다. 임도 수준으로 넓던 길도 어느새 좁은 오솔길로 변해있다. 사실상 본격적인 산행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등산로 주변은 빽빽한 소나무 숲이다. 등산로 주변은 정비가 잘된 편,,,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써준 이곳의 공무원분들에게 감사드려본다. 그러나 간벌하면서 생긴 잔가지들까지도 깔끔하게 치워주었으면 좋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가져본다.

 

 

 

 

빽빽하게 들어찬 소나무 숲 사이를 걷다보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 진다. 특히 이렇게 경사가 완만한 솔숲 길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코끝을 스치는 소나무향 속에는 피톤치드까지 넘치도록 가득 차 있다. 도심의 오염에 찌들었던 이내 가슴은 어느새 밑바닥까지 깔끔하게 정화되어 있다. 소나무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오솔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면 어느새 바랑산 정상이다. 바랑산은 제법 널따란 분지, 정상에는 아담한 정상표지석 외에 특이하게 방위만 표시되어 있는 삼각점이 있고 삼각점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따로 세워 놓았다. 정상에 서면 덕유산을 비롯해서 황석산과 기백산, 그리고 황매산이 잘 바라보인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 정도 지났다.

* 바랑은 '배낭'이 변한 말로 스님들이 지고 다니는 볼록한 주머니다. 산청 바랑산은 원래 마고할미의 주머니였다고 한다. 인근 소룡산의 새이덤은 마고할미가 바랑에 넣고 가다 흘린 돌무더기. 옆에 있는 월여산은 딸. 보록산은 아들이라고 한다.

 

 

 

바랑산에서 소룡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큰재까지 한참 내려서야 한다. 진달래가 곱게 핀 능선은 처음에는 완만하게 흐르다가 갑자기 급경사로 변해버린다. 완만(緩慢)과 급경사(急傾斜)를 번갈아 하더니만, 이내 평탄하고 포근한 길로 변해 있다. ‘완전히 소나무 천지네요’ 집사람의 감탄사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등산로 주변은 온통 소나무 천지이다. 어쩌다 산벚꽃 한그루 섞인 것쯤이야 어떠랴... 김정일 주체사상으로 도배하고 있는 북녘 땅에서조차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소나무 숲에 다른 나무 한두 그루 정도 섞인 것쯤은 살짝 눈감아 주어도 될 일이다. 피톤치드 향이 짙은 오솔길을 쉬엄쉬엄 걷다보면 이내 큰재이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는 소룡산을 거치지 않고 천지사나 독촉주차장으로 탈출하는 길이 보이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편한 길을 걸으면서 힘들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일 것이기 때문이다. 바랑산에서 이곳까지 약 40분 정도 걸렸다.

 

 

 

 

 

큰재에 붙은 이정표에는 바랑산과 소룡산의 중간지점(양쪽 모두 1.7Km)이라고 표시해 놓았다. 그러나 소룡산 쪽이 훨씬 가까울 듯 싶다. 큰재를 지나자 산림욕장이라는 녹색 간판이 보인다. 삼림욕장(山林浴場) 주변의 소나무들은 오늘 산행 중에서 만났던 소나무들보다 훨씬 굵고 커다랗다. 그러나 산림욕을 즐기기에 충분한 울창한 소나무 숲은 보이는데 반해, 벤치 등 편의시설은 일절 눈에 띄지 않는다. 무슨 의도(意圖)로 산림욕장을 만들었으며, 누구를 주요 고객(顧客)으로 삼은 것일까? 평생을 공직에 몸담아왔던 내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當然之事)일 것이다.

 

 

 

▼ 산림욕장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진행방향의 소나무 가지사이로 세이덤이 얼핏 바라보인다. 조금 후, 그렇게 걷기에 편하던 등산로는 갑자기 급경사로 변해버리고, 오르는 이들을 위해 통나무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계단길이 더욱 가팔라지더니, 종내는 로프까지 매어 놓고 있다. 첫 번째 급경사 오르막길을 오르면 진행방향의 왼편에 거대한 바위벼랑이 펼쳐진다. 바로 세이덤이다.

 

 

 

 

 

다시 한 번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헐떡이다보면 세이덤의 이정표가 보인다. 왼편으로 20m정도 들어서면 진달래 꽃무리 사이로 얼핏 바위가 들어나 보인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바위 절벽 끝에, 송곳처럼 날카롭게 솟은 바위는 마고할미가 가죽옷을 기울 때 쓰던 바늘이라고 전해져 내려오는 송곳바위일 것이다. 진달래 꽃 사이를 헤치고 바위벼랑 위에 선다. 전면에 거창군 신원면 일대가 펼쳐진다. 오른쪽으로는 월여산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주변 산세뿐만 아니라 산촌마을의 전경이 마치 한폭의 그림같다. 이곳이 오늘 코스 중 최고의 조망처(眺望處)이다. ‘세이’와 ‘덤’은 이곳 지방에서 ‘형’과 ‘바위’를 나타내는 사투리, 그럼 ‘세이덤’은 ‘형 바위’라는 말인데, 과연 무슨 사연이 있어서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필요 없는 질문으로 머리를 어지럽히며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세이덤을 지나면 바로 소룡산에 올라서게 된다. 소룡산 정상은 두 곳이다. 세이덤 바로위의 봉우리에는 묘지만 덩그렇고, 정상석은 5분쯤 더 걸으면 닿게 되는 다른 봉우리에 세워져 있다. 족히 100평은 됨직한 널따란 분지인 소룡산 정상은 한 가운데에 정상표지석과 이정표가 서 있다. 정상에 서면 월여산과 황매산 등 산군(山群)들이 잘 조망된다. 소룡산을 오르다보면 유난히 무덤이 자주 눈에 띈다. 특히 신령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곳에서 말이다. 세이덤의 바위 사이나 소룡산의 정상 등... 옛날 우리가 어렸던 시절에는, 오랫동안 비가 안 오는 이유를, 이런 곳에 묘를 썼기 때문이라면서, 묘혈을 파 헤치는 이유로 삼았었다.

 

 

 

 

 

 

소룡산에서 오휴마을로 하산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다. 소룡산 정상 바로 밑에 위치한 헬기장을 지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왼편의 길은 진양기맥 마룻금이기 때문에, 오휴마을로 가려면 오른편 길로 내려서야만 한다. 그러나 이곳 삼거리에는 이정표가 없기 때문에 무심코 걷다가는, 선등자(先登者)들의 리본이 많이 걸려있는 왼편으로 들어설 우려가 높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진양기맥을 답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때문이다. 산악회 안내지를 보고 왼편으로 한참을 내려서고 있는데, 저 밑에서 열심히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선두대장께서 방향을 잘못 잡은 모양이다. 꽤 멀리 내려온 것이 억울하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는 것은, ‘남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한참을 더 많이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게 사람의 인심(人心)인 것을 어찌하랴??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잠시 후에 무제봉(舞祭峰)을 만나게 된다. 오랫동안 비가 안 올 때, 이곳의 관할 관청에서 인근 주민들과 함께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낸 곳이란다. 혹시 위에서 말한바 있는, 산봉우리 등 명당에 자리 잡고 있는 묘혈(墓穴)들을 파 해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무제봉에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따라 15분 정도 더 내려가면 왼편에 강씨굴이 있다. 임진왜란 때 강씨 성을 쓰는 사람이 부모님을 모시고 난을 피했던 곳이라는데, 높다란 절벽 밑에 서너 명 정도 둘러앉을 수 있는 자그마한 동혈이 입을 벌리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산은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있다. 그것도 20~30년 정도는 보통이요 많게는 100년도 넘은 老松들로... 그런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에 들어서면 나무가 만들어주는 시원한 그림자보다도 우릴 먼저 반기는 것은 은은한 솔향이다. 나른한 봄 볓에 지친 늦은 봄이지만 빽빽한 소나무 사이로 나있는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서, 솔향에 취하고 또 피톤치드에 젖다보면 산을 오르는 힘듬 정도는 금방 보상받게 된다

 

 

 

 

 

강씨굴에서 진귀암 방향 下山路와 나뉘는 삼거리를 지난 후, 조금 더 내려가면 이곳 소룡산에서 임란을 피했던 사람들이 왜적(倭敵)들의 동태를 살폈을 것으로 보인다는 망(望)바위이다. 망바위에 올라서면 지리산 방향의 高峰들이 선선히 눈앞으로 이끌려온다.

 

 

 

 

망바위에서 비탈이 심한 계단을 내려서면 오른편으로 홍씨굴의 이정표가 보인다. 경사가 심한 흙길을 100m 정도 내려가면 거대한 암벽의 틈새가 보이고, 그 앞에 ‘임진왜란 때 인근 홍씨 성을 가진 사람이 가족을 데리고 이곳에서 난을 피했다’는 내력이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예로부터 나라에 난(亂)이 발생할 경우, 수많은 선현(先賢)들은 목숨을 바쳐가며 적을 물리치는데 나섰다. 유림(儒林)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민초들까지도 말이다. 그런데 양반이라는 사람들이 난을 피해 이런 곳에서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니... 과연 안내판까지 내걸어가며 이를 홍보해야 하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홍씨굴에서 숲을 벗어나는 지점까지는 얼마 멀지 않다.

* 임진왜란 때 피난을 가던 중, 흰 까마귀가 막대기를 물고 가는 곳을 보고 뒤따라가 보니, 홍굴 앞 바위에 머물더란다. 그래서 그 아래에 터를 잡고 산 것이 마을을 이루게 되었고, 그래서 마을 이름을 오휴(烏休)라고 불렀단다.

 

 

 

 

산행날머리는 오휴마을 주차장(駐車場)

소룡산의 숲을 벗어난 등산로는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와 연결시켜 놓는다. 오휴마을까지 길게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에는 쑥과 고(꼬)들빼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산행을 마친 아낙들은 너나할 것 없이 주저앉아 나물을 채취하기 시작한다. 왼편에 보이는 저수지를 벗어나, 모퉁이를 돌고나면 저 아래에 오늘의 산행이 마감되는 오휴마을이 바라보인다. ‘뭐 볼만한 것이 있다고 여기까지 왔능교?’ 동네어귀에서 만난 아지매의 말씀과 같이, 오래토록 남을 만한 특징은 얻지 못한 채로 오늘의 산행을 마감한다.

 

 

 

 

 

수확(收穫)의 계절이 꼭 가을만은 아니다. 봄이면 봄, 여름이면 여름, 철마다 나름대로 수확할 것이 있을 것이니 말이다. 오늘은 이른 봄, 산과 들은 나물들로 가득 차 있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만난 취나물은 산의 아랫자락에서 꽤 많이 보였고(능선 상에도 많이 보였으나 채취하기에는 조금 일렀다), 소룡산 정상에서는 토실토실 살이 오른 고사리들이 반겨 주었다. 물론 산행 내내 함께 한 원추리도 있었고... 산을 내려오는 農路의 길가에는 쑥과 고들빼기들... 부지런한 집사람 덕분에 우리 집 밥상은 당분간 풍요로워 질 것이다.

 

삼봉산(三峰山, 1,187m)-백운산(白雲山, 903m)-금대산(金臺山, 852m)

 

 

산행코스 : 팔랑재→투구봉→상봉→삼봉산→등구치→백운산→금대산→금대암→마천면소재지(마천중학교)→의탄교 (산행5시간30분)

 

소재지 : 전북 남원시 인월면·산내면과 경남 함양군 함양읍·마천면의 경계

산행일 : ‘11. 4. 17(일)

같이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색 : 삼봉산과 백운산, 금대산은 山이 지천인 함양 땅에서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山群이다. 바위와 어우러지는 멋스러움이 황석산이나 월봉산에 비할 수 없을뿐더러, 肉山의 장중한 맛으로도 남덕유산이나 기백산에 견줄 수가 없다. 그런데도 많은 등산애호가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단 하나, 이곳에서 바라보는 장대한 지리산 조망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이다. 태극종주로 치닫는 지리산의 주능선을 북쪽에서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이곳이며(또 하나는 삼정산), 남쪽에서는 삼신산에서 가장 잘 보인다. 

 

 

 

산행들머리는 전북과 경남의 경계인 팔랑재

‘88올림픽 고속도로’ 지리산 I.C를 빠져나와, 남원시 인월면사무소 所在地를 통과한 후, 24번 國道를 따라 경남 함양군으로 넘어가다보면 ‘팔랑재’라는 고개에 이르게 된다. 전북과 경남의 ‘道間 境界’이다. 도로 좌우에는 함양군과 남원시를 알리는 도로이정표가 높게 세워져 있고, 투구봉 방향에 늙은 두 부부가 일곱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서있는 화강암 조형물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흥부가 출생한 마을을 알리는 조형물이다.

 

 

 

산행은 ‘흥부와 관련된 조형물’의 뒤로 난 마을길로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마을길로 길게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 10분 남짓 걸으면 左右로 갈라지는데, 왼편의 임도로 들어서면 된다. 여기서 3분 정도 더 오르면 전면에 '삼봉산 국유림 경제림육성단지' 안내표시판과 함께 서 있는 이정표가 2개가 보인다. (오도재: 9.8km,/팔령재: 1.1km)라고 적힌 낡은 이정표와 (삼봉산4km/투구봉1.3km/팔령재1.2km)라고 적힌 새로운 이정표이다. 본격적인 산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팔령재에서 이곳까지 15분 정도 걸렸다.

 

 

 

‘국유림 안내표시판’ 뒤로 난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잘 정비된 깔끔한 등산로가 山客들을 맞는다. 잠깐이나마 여유롭게 걷다보면 두 번째 이정표(투구봉0.7km/ 팔령재1.8km)가 보이고, 등산로는 계속해서 왼편에는 울창하게 들어찬 잣나무 숲, 그리고 오른편에 일본이깔나무(낙엽송) 숲을 끼고 이어진다.

 

 

 

‘국유림 안내표시판’에서부터 약 15분 정도를 함께 이어가던, 잣나무 숲이 끝나면서 등산로는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세워버린다. 주변의 나무는 참나무 일색으로 변해있고, 주변의 나무를 이용한 듯, 급경사의 가파른 斜面에 통나무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연이어 나타나는 너덜 바위지대를 조심스럽게 오르면 투구봉과 삼봉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다다르게 된다. 이정표(투구봉50m/팔령재2.5km/삼봉산 2.7km) 이곳에서 투구봉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면 서룡산이 나오고 인월 상우(하우)마을이나 실상사의 말사인 백장암으로 내려서게 된다.

 

 

배낭을 내려놓고 오른편으로 오르면 이내 투구봉 정상이다. 투구봉 정상은 흙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위에 커다란 바위 몇 개를 얹어놓은 형상이다. 정상에는 함양군에서 세워놓은 아담한 정상표지석이 놓여있고, 조금 아래에 ‘무인 산불 감시카메라’와 ‘투구봉 안내판’이 보인다. 정상에 서면, 지리산의 주능선이 명선봉을 좌우로 하늘금을 이루면서 장쾌하게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정도 지났다.

* 투구봉 안내판의 글 : 투구봉의 높이는 1068m이며 주산은 삼봉산이다. 삼봉산에서 투구봉까지 남쪽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 북쪽은 함양군 함양읍이다. 이곳부터 南北으로 남원시 인월면과 함양읍이 道界를 이룬다.

 

 

 

 

투구봉에서 삼봉산으로 가는 길은 온통 참나무 일색으로, 초반에는 高低가 심하지 않는 능선을 오르내리며 걷게 된다. 山竹 사이를 걷기도 하고, 또 너덜바위길이 잠시 이어지기도 한다. 중간에 이정표(삼봉산 1.95Km/투구봉0.8Km)가 있는 봉우리를 내려섰다, 다시 올라서서 2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 통나무의자가 놓여있는 쉼터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북쪽 덕유산 방향의 조망은 사뭇 뛰어나다. 제법 고도차가 큰 봉우리 두어 개를 지나면 인산농장에서 올라오는 삼거리길(이정표, 인산농장 1.8Km/투구봉2.3km/삼봉산0.5Km)을 만나게 된다. 뒤를 돌아보면 지나온 투구봉이 까마득하게 멀리 떨어져 있다. 이곳에서 삼봉산 정상까지는 꽤나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삼봉산 정상은 세 평 정도 되는 흙으로 이루어진 분지이다. 한 가운데에 함양군에서 세운 앙증맞은 정상표시석이 서 있고, 그 뒤에 삼각점(운봉303/1981재설)과 삼봉산을 알리는 안내표시판이 보인다. 백운산과 금대산은 여기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된다.(이정표, 금대암6km/ 팔영재5.2km/오도재3.9km). 정상에 서면 그야말로 一望無題로 視野가 열린다. 중앙에 촛대봉부터 명선봉에 이르는 능선을 놓고, 왼편에는 지리산의 중봉과 천왕봉이,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반야봉너머로 잘록한 성삼재를 지나는 서부능선이 너무나도 선명하다. 그리고 북쪽으로는 덕유산 주능선은 말할 것도 없고, 남덕유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뚜렷하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정도가 흘렀다.

 

 

 

삼봉산에서 조망을 즐기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금대암 방향으로 내려선다. 내리막길의 초반은 잠깐 동안 바윗길,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흙길로 바뀌면서 이어진다. 그러나 바윗길이나 흙길을 막론하고, 둘 다 급경사이기는 매 한가지이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가파르게 내려서면 오른편에 산내면 중황리와 왼편으로는 마천면 구양리들 낀, 날카롭게 등을 세운 능선이 등구치까지 이어진다. 완만한 오르내림이 계속되는 긴 능선 길을 따라 지루하게 걷다보면, 왼편의 잡풀사이로 간간이 지리산의 천왕봉이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있다.

 

 

 

삼봉산에서 등구치(登九峙)까지 3Km의 능선은 곳곳에 바위지대가 나타나기 때문에, 능선을 곧바로 통과하지 못하고 左右로 우회하며 진행해야만 한다. 온통 참나무뿐인 능선에 실증이 날 즈음, 오랜만에 나타나는 소나무 숲, 온 산에 가득한 피톤치드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소나무숲이 끝나면서 일본이깔나무(낙엽송) 숲이 보이고, 낙엽송 숲을 따라 내려서면, 이내 林道가 능선을 左右로 가르고 있는 등구치에 닿게 된다. 등구치에 내려서니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이 꽤 많이 보인다. 삼봉산 정상에서 이곳까지 대략 1시간 정도 걸렸다

* 등구치(登九峙), 삼봉산과 백운산 사이에 있는 높이 650m의 안부(鞍部;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로서,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창원리에 걸쳐 있다. 아홉 구비를 오르는 고개라는 의미로 등구치(峙: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다. ‘지리산 둘레길 3구간’이 이곳을 통과한다.(등구치의 이정표 : 금대암 3km/삼봉산 3km)

* 지리산 둘레길 3구간(19㎞)은, 옛 고갯길인 등구치를 중심으로 남원시 인월면 중군마을과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을 잇고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결코 지루하지 않다고 알려지고 있으며, 특히 2010년 여름 ‘KBS-TV 1박2일’에서 강호동과 은지원이 걷는 것이 방영되면서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등구치에서 백운산으로 가려면 임도를 가로질러 반대편 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 소나무 숲 아래로 난 등산로를 따라 들어서면 초반에는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왼편에 잣나무 숲(국유림 경영 시범림)과 오른편 낙엽송 숲 사이를 지나면서부터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30분 정도를 서서히 걸으면서 200m의 高度를 높이다보면 백운산 정상이다. 삼봉산에서 백운산에 이르는 능선 길은 경남 함양군과 전북 남원시의 경계를 이루는 도계(道界)이다. 백운산 정상의 이정표(금대암 1.7km/삼봉산 4.3km)

 

 

 

백운산 정상에는 감투봉과 삼봉산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모양의 정상표지석이 놓여있다. ‘애걔(대단하지 아니한 것을 보고 업신여기어 내는 북한어)’... 누가? 어떤 이유로 이곳을 백운산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함양군에서 세워놓은 정상표지석이 아니라면, 결코 이곳이 정상인 것을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능선에 널린 언덕들 중 하나라는 느낌일 뿐인데 말이다. 이런 곳에다 ‘항상 구름 속에 잠겨 있는 산’이라는 의미의 白雲山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분에게 경의를 표해본다. 우뚝 솟은 봉우리가 아니기 때문에, 조망이 트일 수 없는 지점인데도, 주변의 나무들을 잘라낸 덕택에 천왕봉이 잘 보이고, 잡목에 가려진 삼정산 너머 지리의 서부능선이 아련하다.

 

 

 

 

백운산에서 금대산은 거리도 짧지만 이어지는 능선이 고저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걷는데 조금도 부담을 주지 않는다. 왼편에 잣나무 숲을 낀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엔 소나무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어, 푹신푹신한 것이 꼭 양탄자 위를 걷는 느낌이다. 쉬엄쉬엄 20분이 조금 못되게 걸으면 왼편에 우람한 바위가 보인다. 등산로는 오른편으로 우회를 시키고 있으나, 한번쯤 바위 위로 올라서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진행방향의 금대산과 주위 산릉들이 잘 조망될뿐더러, 발아래에는 ‘지리산 둘레길’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일급 조망처이기 때문이다.

 

 

 

 

 

 

바위를 내려선 후, 오르막 암릉을 가벼운 릿지로 올라서면 금대산 정상이다. 금대산 정상은 날카롭게 솟구친 바위봉우리이다. 정상의 조그만 공터까지도 비스듬하게 傾斜가 져 있을 정도인데, 정상표지석 옆 귀퉁이에 산불감시초소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정상의 바위에 올라서면 여기를 왜 ‘지리산 展望臺’라 부른가를 확연히 깨닫게 만들 정도로 빼어난 조망을 자랑한다. 천왕봉을 위시한 지리산의 연봉들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있고, 천왕봉 아래의 칠선계곡까지 확연히 보일 정도이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백운산이 바로 지척인데, 왜 두 개의 山으로 구분하고 있을까? 아마 밋밋한 흙산인 백운산에 비해 암릉으로 이루어진 금대산의 특성을 살려보려는 의도일 것 같다.

 

 

 

 

구양리 마을의 전경이 평화롭게 자리하고, 마을 옆 계단 논(다랑이 논)의 곡선이 무척 아름답다.

 

 

 

금대산에서 금대암으로 내려서는 하산길은 암릉, 오늘 산행 중 유일한 바윗길이다. 커다란 바위를 오르내리기도 하고, 위험한 곳은 우회하면서 내려서다보면, 바윗길의 특성대로 곳곳에 뛰어난 전망대가 나타난다. 시간을 내어 잠깐 올라서보면, 또 하나의 빼어난 지리산 전망대임을 깨닫게 된다.

 

 

 

주의가 요구되는 금대암(金臺庵)으로 내려서는 삼거리, 금대암을 들러보려면 오른편으로 내려서야하지만, 하산지점을 금계마을에 있는 ‘마천초등학교 의천분교’로 잡았을 경우에는 사진에서 보이는 나무로 막아놓은 울타리를 넘어서 진행해야만 한다. 금대암으로 내려설 경우에 하산지점은 ‘마천면 所在地’로 내려서게 된다. 이정표(150m 금대암)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 5분 정도 내려서면 ‘금대암 3층 석탑’이 나오고,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서면 지리산의 조망이 매우 뛰어나다는 금대암(金臺庵)이다. 금대암 이정표(면소재지 2km/금대암 주차장 0.2km/삼봉산 6km). 금대산 정상에서 금대암까지 내려서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하다.

* 금대암(金臺庵), 新羅 태종무열왕 때(656년) 행우(行宇)대사가 창건한 절로 해인사의 말사이다. 1430년(조선 세종 12)에 행호대선사(行乎 大禪師)가 중창하여 금대사(金臺寺)라고 하였다. 6.25전쟁 때 폐사된 것을 다시 중건했다는 현재의 사찰은 대웅전과 나한전 그리고 선원이 전부, 國寶級 文化財는 없고 ‘삼층 석탑’, 동종, 신중탱화(神衆幀畵) 등 지방문화재 3점이 있다.

 

 

 

금대암 전나무, 금대암 입구에는 높이 40m에 이르는 전나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수령이 오래된 전나무로 추정된단다. 행호대사가 중창할 때 심은 것이라니 600년 정도 되었나 보다. 1998년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된바 있다.

 

 

산행날머리는 마천중학교

금대암에서의 하산은 전나무 뒤로 내려서면서 시작된다. 산의 허리를 휘어 감으며 이어지는 내리막길은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아서 걷기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등산로에는 오랜 기간 동안 떨어진 소나무 낙엽(松葉)들이 수북이 쌓여있어 양탄자처럼 촉감이 좋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최상의 땔감이었던 저 소나무 낙엽이 금값(내 기억으로는 낙엽 한 동이 방 두 칸짜리 1년분 방값(200원)과 같았다)이었는데... 그윽한 소나무 향기 외에는 특별히 담을 것이 없는 하산 길 풍경은 걸음을 재촉하게 만들고, 덕분에 30분 정도면 날머리인 마천중학교 뒷담에 닿는다. 그러나 오늘의 산행날머리는 여기가 아니고 금계마을에 있는 ‘마천초등학교 의탄분교 터’란다. 덕분에 우린 아스팔트 自動車 道路를 2Km나 더 걸어서 금계마을로 가야만 했다. 지리산 칠선계곡의 들머리인 금계마을까지는 산행이 지친 내 다리로는 너무나 먼 거리였다.

 

 

 

천주산(天柱山, 639m)

 

 

산행코스 : 고암마을→과수원길→지능선→구룡산(432m)→굴현고개→천주봉(484m)→팔각정→정상(용지봉)→달천고개→달천계곡 (산행4시간30분)

소재지 : 경상남도 창원시와 마산시의 경계

산행일 : ‘11. 4. 14(목)

같이한 산악회 : 산두레(두레란 原始的 유풍의 노력공동체를 말하는데 글쎄?)

 

 

특색 : 천주산은 외모로는 그리 눈길을 끌 만한 구석이 많지 않다. 사실 바위산의 아기자기함도, 肉山의 웅장함도 갖추지 못한, 그렇고 그런 산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하지만 봄이 되면 이곳이 발붙일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유는 단 하나, 산에 지천으로 널린 진달래를 보기 위해서이다. 웅장함은 비록 여수의 영취산이나 달성의 비슬산에 못 미치고, 암릉과 어울리는 조화로는 주작, 덕룡산에 못 미친다. 하지만 도시 근교에 있어 접근성이 좋을 뿐더러, 부담 없이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산이 야트막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이곳 천주산은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 무대이다.

양산이 고향인 그가 2살 때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천주산 기슭 소답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단다. 그가 15세의 나이에 '고향의 봄'을 지어 '어린이'지에 투고했으니,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의 진달래는 어쩌면 천주산의 진달래였으리라.

 

 

 

산행들머리는 창원시 북면 고암마을

남해고속도로 북창원IC에서 1045번 지방도로를 따라 잠시 달린 후, ‘경남 승마클럽’ 근처(남해고속도로 아래로 통과하기 직전)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대한마을 회관’ 앞을 지나게 되고, 얼마 후 오른편 다리(고암橋)건너에 고암마을이 보인다. 고암橋를 건너 북면 고암마을로 들어선 후, 마을 가운데로 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마을을 벗어난 ‘시멘트포장 農路’는 이내 左右에 감나무과수원을 끼고 이어진다. 오른편의 과수원 안에 ‘소나무 枯死木’이 우람하게 서 있으니 방향을 잡는데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枯死木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등산로가 오른편에 있는 과수원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여 능선으로 이어지니 주의해야할 일이다. 특히 과일 수확기엔 주인에게 양해를 구해야 할 듯...

 

 

 

 

 

100m정도 과일나무 사이를 걷다보면 이내 능선에 닿게 되고, 실질적인 산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찾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등산로는 ‘너덜겅’을 따라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그러다가 가시덩굴이 우거진 왼편의 작은 계곡을 건너면서, 엄청나게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로 변해버리고 만다. 숨이 턱에 차게 斜面을 치고 오르면 ‘백월산 갈림길’. 고암마을에서 이곳까지는 2.2Km, 산행을 시작한지 40분 정도가 지났다. 구룡산으로 가려면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70m만 더 올라가면 된다(천주산은 7Km). 산에 들어서면서 드문드문 보이던 진달래가 산의 경사가 심해질수록, 밀도를 높여가더니만 어느새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자랑하고 있다.

 

 

 

백월산 갈림길을 지나면 곧바로 헬기장이 보이고, 그 너머에 온통 연분홍 진달래에 둘러싸인 정상표지석이 보인다. 서너 평 남짓한 정상은 별다른 특징은 없고, 조망이 열리는 남쪽 발밑으로 남해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고속도로 우측으로는 천마산과 백월산이 視野에 들어온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이 조금 못 되었다.

 

 

 

정상에서 잠시 능선 안부로 내려섰다가 앞에 보이는 無名峰에 올라서면 ‘창녕 金氏 墓’가 보이는데, 얼핏 ‘여기가 구룡산 정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조금 전 지나온 정상보다 여기가 더 봉우리답게 생겼고, 거기다 또 봉우리의 한쪽 귀퉁이에 제법 커다란 바위가 솟아있어, 운치를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밀도를 높여가던 진달래 무리는 이제는 아예 群落地로 변해있다. 진달래 무더기 속에 갇힌 여인들 또한, 한 송이 진달래가 되어버린 양, 티 한 점 없이 童心으로 돌아가 있다.

 

 

 

무명봉에서 急傾斜 내리막길을 20분 조금 못되게 내려서면 만시고개이다. 만시고개는 사거리로 왼편으로 내려서면 ‘북면 지개리’이고,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한수·대한마을이다. 처음 찾는 이들은 이곳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이곳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에는 천주산 방향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낙남정맥과 겹치기 때문에, 천주산 방향의 등산로가 윤이 날 정도로 반질반질한데도 말이다.

 

 

만시고개부터 이어지는 등산로는 그야말로 동네 뒷산 수준, 야트막한 구릉을 걷다보면 주변의 나무들은 모두 연두색 옷들로 갈아입고 있다. ‘유난히 산목련이 많네요.’ 앞에서 걷던 분 말마따나 등산로 주변에는 산벚꽃과 산목련이 다른 산들에 비해 유난히 많이 보이고 있다. 소답동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는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얼마간 진행하면 진행방향의 나무들 사이로 천주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어 대나무 사이로 난 길을 뚫고 내려서면 1045번 地方道路가 지나가는 굴현고개이다. 굴현고개 고갯마루에는 벚꽃이 滿開, 진달래만 생각하고 출발했던 오늘 산행이기에, 굴현고개에서 만난 화려한 벚꽃은 색다르고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굴현고개로 내려서는 지점에서 왼쪽을 보이는 버스승강장 뒤로 올라서면 천주산으로 가게 된다. 능선으로 올라서면 곧바로 공동묘지가 보이고, 그 뒤로 防火線인지, 약 20m정도 넓이의 나무 한그루 없는 草地가 정상어림까지 이어진다. 공동묘지를 지나면 殺人的 오르막이 기다린다. 불과 20여 분 정도의 거리이지만 이번 산행에서 가장 난코스이다. 오르막이 끝날 무렵, 우측 바위전망대에 서면 2개의 남해고속도로와 창원 시가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바위展望臺를 지나면서 또다시 진달래꽃들이 무리를 지어 길손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진달래 꽃길을 따라 두어 번 오르막길을 오르면 천주봉(천주산의 정상은 용지봉임) 정상이다. 널따란 분지형태의 천주봉 정상은,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커다란 바위와 산불감시초소, 그리고 조그만 쉼터가 있다. 표지석이 있는 바위 위로 올라서면 지나온 등산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천주봉 정상을 지나 팔각정을 비켜 내려서면 연분홍 진달래꽃으로 둘러싸인 바위벼랑이 보인다. 오늘 산행 중에 제일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 중의 하나이다. 온통 흙길만 걷다가,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바위지대가 새롭기만 한데, 거기다 또 바위 주변을 꽉 메운 연분홍 진달래라니... 깎아지른 벼랑 위에 서면 성큼 창원시가지가 다가오고, 그 너머로 마산 앞바다까지 조망된다.

 

 

 

 

천주산에 들어서면 잠시 뜸하던 진달래가 다시 불붙기 시작한다. 등산로 좌우가 온통 진달래 군락지이다. 걷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감탄사를 박자삼아 산길을 걷게 된다. 한마디로 말해 장관이다. 어른 키만큼 큰 진달래가 그야말로 온 산에 가득하다. 화전놀이 생각이 나서일까? 꽃속에 든 집사람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해진다.

* 송도 명기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제사를 지낸바 있는 朝鮮의 멋쟁이 선비였던 임백호가 화전놀이에 대하여 읊은 詩가 있다. ‘개울가 큰 돌 위에 솥뚜껑 걸어놓고, 흰 가루 참기름에 꽃전 부쳐 집에 드니, 가득한 봄볕 향기가 뱃속까지 스며든다.’ 살포시 눈을 감고 읊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입안에 봄 향기 가득히 차오르지 않는가?. 남자들이 솥이나 그릇을 지게에 져다 취사준비를 마쳐주고 산을 내려가면, 그때부터는 여인들만의 오붓한 시간이 된다. 서로 詩를 지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돌아가며 끝말을 이어가는 대구(對句)놀이도 하면서 여자들끼리만 하루를 즐기는 게 화전놀이이다. 이때 남자들이 옮겨준 솥뚜껑에 부치던 화전에 들어가는 꽃이 진달래이고, 진달래는 먹는 꽃이란 뜻으로 참꽃이라고도 불린다. 참꽃에 비하여 못 먹는 꽃은 개꽃(철쭉꽃)이라고 부르고...

 

 

 

바위벼랑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안부사거리인 ‘만남의 廣場’이다. 정자와 벤치, 체육시설 등, 시민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들을 구비해 놓고 있다. 심지어는 ‘山上 圖書館’까지... 이곳에서 오른편은 달천동계곡으로, 왼편은 천주암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사거리 안부에서 곧바로 직진하여 10분 정도를 힘들게 오르면, 등산로는 오른편으로 휜다. 이어서 나타나는 두 개의 헬기장을 지나면 ‘無人 산불 감시카메라’가 보인다. 이곳에서도 창원과 마산 시가지가 잘 조망된다. 마산 시가지 너머로는 남해바다와 그 위를 떠다니는 조그만 섬들이 보이고...

 

 

 

 

 

산불감시탑을 내려서면 갑자기 눈앞에 환상적인 아름다음이 펼쳐진다. 오늘 산행의 白眉인 ‘참꽃 群落地’, 온 산을 꽉 메운 연분홍 꽃들이라니, 이런 것을 보고 天上花園이라고 말하지 않을까? 꽃들의 잔치가 한창인 놀이마당 한 가운데에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꽃구경 나들이를 온 사람들에게 가까이서 실컷 보고가라는 배려일 것이다

 

 

 

정상으로 오르는 斜面을 붉은색 진달래 꽃밭이 한 폭의 그림처럼 수를 놓고 있다. 오르는 길은 넓으니 구태여 속도를 낼 필요는 없다. 진달래 꽃밭을 따라 걸으면서 탐스럽게 핀 진달래를 실컷 감상해보자. 그래도 시간에 조금 여유가 있다면 진달래 가지로 꽃방망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 꽃방망이를 들고, 앞서가는 여인, 그러니까 시집못간 것이 보기에 안타까웠던 여인들의 등을 때려보자. 그러면 시집못간 처녀들이 사랑에 빠지게 되고, 시집가서 잘 살게 된다니 말이다. 여자의 등을 때리기가 두려운 사람들은 남자들의 머리를 때려보면 어떨까? 남성의 머리를 때리면 과거 급제하여 錦衣還鄕 한다는 說이 옛 古典에 있으니... 진달래 꽃다발로 사랑을 표현 했던 여의화장(如意花杖),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전통놀이인가.

 

 

 

진달래 꽃 마당을 통과하는 나무계단을 오르면 그 끄트머리에 다시 팔각정이 보인다. 팔각정 옆에 있는 헬기장의 뒤가 천주산의 정상인 용지봉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30분, 사진촬영 때문에 지체되었는지,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정상에 서면 거칠 것 없는 전망에 일순간 넋을 놓게 한다. 남쪽의 시원하게 뚫린 창원대로가 장쾌하게 다가오고, 오른편으로는 저 멀리 마산 앞바다가 잘 조망된다. * 용지봉은 용이 살았던 연못이란 의미의 명당자리. 이곳에 무덤을 쓰면 집안이 크게 번성하지만 인근 마을에는 흉년이 든다는 전설이 있다.

 

 

 

 

하산은 용지봉 정상에서 3시 방향으로 내려선다. 진달래 숲으로 이루어진 급경사 내리막길을 10분이 조금 넘게 내려서면 林道가 있는 달천고개이다. 이곳은 4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50m 정도를 내려간 후, 임도를 벗어나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달천동 계곡으로 내려가는 오솔길이다. 달천고개에서 주차장까지는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참고로 달천동고개에서 직진하면 농바위가 있는 작대산(청룡산)으로 가게 된다.

 

 

 

산행날머리는 달천계곡 駐車場

달천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은 제법 경사가 급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완만한 경사라서 내려서는데 큰 부담이 없을 정도이다. 내려가는 길에 두어 번 만나게 되는 展望臺를 그냥 지나치지 말자. 우선 진달래가 천주산을 호랑이 무늬처럼 수놓고 있는 장관을 볼 수 있고, 발아래에 온통 새하얀 벚꽃으로 뒤덮인 달천계곡의 아름다운 광경은 덤으로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수도산 (修道山, 1,317m)

 

 

 

산행코스 : 심방마을→흰대미산→양각산→시코봉→신선봉→수도산→불석재→불석계곡→심방마을 원점회기(산행시간 : 4시간40분)

 

소재지 : 경북 김천시 증산면·대덕면과 경남 거창군 가북면·웅양면의 경계

산행일 : ‘11. 4. 9(토)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소백산맥에 있는 名山의 하나, 가야산을 분수령으로 하는 비교적 높은 山群으로서, 동쪽에 가야산 국립공원과 서쪽에 덕유산 국립공원을 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는 전형적인 肉山(흙산)이나, 아기자기한 암릉길도 심심찮게 나타나기 때문에 산행이 결코 지루하지가 않다. 山의 형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흙산이 머리 위에다 바위봉우리를 얹고 있다는 느낌이다.

 

 

 

 

산행들머리는 심방마을

‘88올림픽 고속도로’ 가조 I.C를 빠져나와, 가조면 市街地를 통과한 후, 1099번 地方道路를 따라 가북면 방향으로 달리다보면, ‘회남 삼거리’와 ‘중촌리’를 지나서 심방부락에 닿게 된다.(참고로, 안전산악회에서는 ‘대전-통영고속도로’ 무주 I.C에서 내려와 37번 國道를 타고 백두대간인 신풍령을 넘은 후, 1089번 지방도를 활용하여 1099번의 ‘회남 삼거리’로 연결시켰다.)

산행은 심방마을 입구의 육각정을 왼편에 끼고 돈 後, 산의 아랫도리를 감싸며 이어지는 林道를 따라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200m정도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물기 한 점 없는 오른편 계곡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왼편에는 일본이깔나무(낙엽송)과 오른편에 잣나무 숲을 끼고 흐르는 등산로는, 오랫동안 쌓인 낙엽으로 인해 폭신폭신한 것이 걷기에 여간 좋은 게 아니다.

 

 

 

 

 

人間萬事 塞翁之馬, 인생이 늘 좋은 일만, 또는 나쁜 일만 있는 것이 아니 듯, 산행 길로 항상 편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길지 않은 계곡이 끝날 즈음, 등산로가 인적이 끊긴 지 오래인 듯한, 오른편 능선을 치고 오르면서, 언제 편한 길이 있었냐는 듯 무지막지한 急傾斜로 변해버린다. 모두들 힘들어 하지만, 집사람이 유독 더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열 걸음 띠기가 무섭게 한 걸음을 쉬어가려고 할 정도로... ‘주어진 시간에 늦지 않도록 할테니 걱정마세요.’ 쉬어가려는 집사람을 채근하는 나에게 돌아오는 아내의 짜증스런 답변이다. ‘담에는 산행시간이 긴 코스는 같이 가자고 하지 마세요.’ 서투른 채근 한마디가 宣戰布告로까지 이어져버린 불행의 序曲이 되어버렸다.

 

 

 

 

‘길이 아닌 길에서 길을 찾다’ 인적을 찾기 힘든 길을 개척하며 20여분 이상을 오르면, 드디어 ‘아홉사리 고개’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능선에 닿게 된다. 등산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듯 등산로는 잘 닦여있지만, 그러나 오르막 경사는 조금도 약해지질 않는다. 힘든 고행 길에서 15분 정도를 더 오르면 진행 방향의 능선 위에 하얀 바위무더기가 보이고, 바위를 부여잡고 위로 오르면, 얼마 안 있어 흰대미산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지도에는 ‘흰대미산’, 그러나 이곳 정상표지석은 ‘흰덤이산’이니 과연 어떤 것이 옳은 地名일까? 정상의 바위벼랑은 흰 색은 아니더라도 회색빛 차돌과 비슷하고, ‘덤’이라는 單語가 바위라는 경상도 방언일지니, ‘하얀 바위산’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살린 ‘흰덤이산’이라는 정상표지석이 옳은 표기인 것 같다. 흰덤이산(白石山)의 정상은 1,018m의 高峰답게 시원시원한 조망을 보여준다. 비록 연무(煙霧)에 가려 시계가 좋지 않지만, 左右로 가야산과 덕유산이 의젓하게 서 있는 정경이 희미하게나마 바라보인다. 진행방향에 우뚝 솟은 양각산을 바라보면서 쇠뿔의 이미지를 찾아 고개를 갸웃거려 본다.

 

 

 

 

흰대미산 정상표지석 우측으로 바윗길을 내려서면 이내 심방마을에서 아홉사리재를 거치지 않고 올라오는 갈림길과 만난다. 어쩌다가 한 그루씩 소나무가 섞여 있을 뿐, 온통 참나무 일색인 등산로는 걷기에 좋을 만큼 폭신폭신 하다.

 

 

 

 

부드럽던 흙길은 헬기장을 지나 양각산 左峰에 가까워지면서, 서서히 바윗길로 변하기 시작한다. 작은 바윗길을 지나고, 바위群을 왼편 옆으로 우회한 후, 밧줄을 잡고 오르면 널따란 바위 하나가 보인다. 일명 ‘물고기 바위’인데 눈의 형상까지 갖추고 있어 零落없는 물고기의 형상을 하고 있다.

 

 

 

 

물고기 바위를 지나면 커다란 바위봉우리 앞에 서게 된다. 암봉에 올라서서 조금 더 진행하면 양각산이 잘 조망되는 바위 전망대(양각산 左峰)에 다다른다. 오늘 산행코스 중에서 景觀이 제일 뛰어난 곳이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양각산을 배경삼아 기념사진이라도 남겨볼 일이다.

 

 

 

 

뒤돌아보면 양각산 좌봉이 금세 저만치 물러나 있다.

 

 

 

 

좌봉을 내려서서, 다시 밧줄이 매달린 바위 slab을 오른 후, 바위무더기의 왼편을 돌아가면 양각산 정상이다. 좁은 터로 이루어진 정상엔 정상표지석 외에 양각산의 유래를 적은 오석이 서 있다. 암봉인지라 사방팔방으로 거침이 없이 시야가 트여있다. 갈수록 연무(일기예보에는 오늘 황사가 예상된다고 했다)가 짙어지는지 진행방향의 수도산과 지나온 흰대미산만 뚜렷할 덕유산은 아예 視野圈에서 사라져 버렸다. 정상의 이정표에는 수도산까지의 거리가 2.5km라고 엉터리 숫자가 적혀있다. 수도산 가는 길에 마주치는 다른 이정표들에서 3.4Km로 적혀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참고로 양각산의 설명석에는 4Km로 표기되어 있다.

* 양각산(兩角山, 1,150m)은 일명 쇠뿔산으로, 소의 양쪽 뿔을 연상케 하는 두 개의 봉우리 형태에서 이름이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장은 소(牛)와 因緣이 많은 곳인 모양이다. 쇠머리고개를 뜻하는 우두령(牛頭嶺), 소의 밥그릇인 구유(구시)를 상징하는 구수(口水) 마을, 쇠불알(우랑)을 뜻하는 우랑동(牛郞洞) 마을, 거기다 우두산(牛頭山)까지 부근에 소와 관련된 지명들이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양각산을 내려서면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평범한 코스가 이어진다. 완만한 등산로는 1166봉에서 왼편으로 튼 후, 작은 공터를 지나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더니 암봉에 올라선다. 그리 위험하지 않은 암릉을 오르내리며 진행하다보면, 등산로는 다시 흙길로 변하면서, 이내 우두령 갈림길(우두령까지 4.1Km)인 시코봉에 닿게 된다. 이곳이 수도산과 양각산에서 정확히 중간지점이다. 낙엽이 떨어져 수북이 쌓인 포근한 등산길을 따라 오르내리다보면, 멀리 있는 산들이 언뜻언뜻 고개를 내밀어 보인다.

 

 

 

 

양각산에서 수도산으로 가는 길은 심심치 않아서 좋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스펀지 같은 푹신푹신한 길이 있는가 하면, 아기자기한 암릉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肉과 骨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산행길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다.

 

 

 

 

시코봉을 지나서 300m를 더 걸으면 심방마을로 내려가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산행대장께서 말하기를, 산행을 시작해서 3시간 이내에 이곳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심방마을로 탈출하라고 했던 곳이다. 우리부부는 2시간30분에 통과하고 있으니 수도산으로 계속 진행해도 되겠지?

 

 

 

시코봉을 지나면서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이 철쭉나무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완전한 群落地로 변해있다. 전망바위 몇 곳과 무릎 밑으로 깔리는 山竹길을 지나면, 主등산로를 벗어나 왼편으로 흔적이 뚜렷하지 않은 등산로가 보인다. 신선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神仙峰, 1,313m의 高峰으로 일명 수도산 西峰이라고도 불리며(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지명표시가 없다) 수도산 정상에서 7~8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너덜지대를 위태롭게 올라서면 정상은 의외로 흙으로 이루어진 분지, 잡목에 가려 조망이 일절 없고, 정상표지석 대신에 부산의 ‘같이하는 산악회’에서 세운 스테인리스 이정표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을 지나가는 황강기맥에서 감천지맥이 분기된단다.(신선봉은 주 등산로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올라왔던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와야 한다)

* 황강기맥, 백두대간의 삼도봉(초점산, 영동군과 무주군 그리고 김천시의 경계)에서 분기하여 수도산, 오도산, 만대산을 거쳐 황강에서 그 숨결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105.8km 정도의 산줄기를 말한다. 수도지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 감천지맥 : 황강기맥이 한 지점인 이곳 수도산 신선봉에서 북쪽 방향으로 감천을 왼편으로 끼고 이어지다가 경상북도 선산에서 낙동강과 합수되는 도상거리 84.1Km의 산줄기를 말한다. 금오지맥, 구미지맥, 염속지맥으로 불리기도 하며, 주요 봉우리로 삼방산, 염속산, 금오산 , 백마산 등이 있다.

 

 

 

 

불령산(佛靈山), 선령산(仙靈山), 신선봉(神仙峯)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수도산(1,316.8m)의 정상은, 등산객 열 사람만 둘러앉아도 빈자리가 나지 않을 만큼 비좁은 바위봉우리이다. 정상의 한 가운데에 돌탑(cairn)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앞에 조그마한 정상표지석이 아슬아슬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손대지 마세요!’ 먼저 도착해 있는 분들의 말마따나 살짝만 건드려도 넘어질 듯이 위태롭게 서 있다. 정상은 뛰어난 조망으로 소문났지만 연무가 자욱한 오늘은 그 장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맑은 날이면 북에서 남서쪽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의 황악산, 민주지산, 삼봉산은 물론 덕유산, 지리산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는데....

 

 

수도산 정상에서 바라본 신선봉(서봉)

 

 

수도산 정상에서 바라본 동봉

 

 

하산길에 뒤돌아본 수도산 정상, 정상의 돌탑이 도깨비의 뿔처럼 돋아있다.

 

 

 

수도산 정상에서 불석재로 내려서는 下山길(1.3Km)은 급경사이다. 흙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해서 내려서다보면 어느새 ‘불석재(안부 사거리)’에 닿게 된다. 단지봉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곧바로 나아가면 되고(단지봉까지 3.3Km), 왼편은 수도리로 내려서는 길이다(이정표에는 방향표시가 없음). 산행 날머리인 심방마을로 가려면 오른편 계곡으로 내려서면 된다(심방마을까지 3.9Km)

 

 

 

 

내려서는 길에 잠시 뒤돌아보면 수도산은 영락없는 바위산의 형상을 하고 있다. 신선봉 방향에서 바라볼 때는 전형적인 흙산의 모습이었는데, 앞과 뒤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불석재 안부사거리에서 심방마을로 내려서는 3.9Km의 하산길은, 아무 특징이 없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내리막길이다. 곧게 뻗은 낙엽송과 잣나무 숲을 통과하면 불석계곡이다. 등산로는 불석계곡을 따라 이어지지만, 물의 수량도 적을뿐더러 경치도 또한 특별히 내세울만한 것은 없다.

 

 

 

 

산행날머리는 심방마을(원점회귀 산행)

불석재에서 약 1Km정도 물기 없는 계곡을 따라 내려서면 차량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잘 닦인 林道를 만나게 된다.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사방댐 두 곳이 보이고, 이어서 수재마을을 거쳐 심방마을까지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월봉산(月峰山, 1,279m)

 

산행코스 : 남령재→수리덤(칼날봉)→암릉→월봉산→큰(살)목재→코바위→노상저수지→노상리 (산행시간 : 4시간)

 

소재지 : 경상남도 함양군 서상면과 거창군 북상면의 경계

산행일 : ‘11. 3. 19(토)

같이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색 : 월봉산은 肉山(흙산)이지만 남령재에서 월봉산까지의 구간은 암릉으로 이루어졌다. 바위산의 일반적인 특징대로 산의 姿態가 자못 빼어나고, 백두대간 등 주변 산릉의 조망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매의 부리를 닮았다는 수리덤의 날카로운 암릉은 이 산의 白眉이다.

 

 

▼  산행들머리는 남령재

대전-통영간 高速道路 서상 I.C를 빠져나와, 서상면소재지를 거쳐 37번 地方道(?)를 따라 달리다보면 왼편에 영각사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이곳을 지나쳐 조금 더 들어가면 거창군으로 넘어가는 높다란 고갯마루에 닿게 되는데, 이곳이 해발 895m인 남령재이다. 오늘 오르게 되는 월봉산 정상의 높이가 1,279m이니 산행 들머리와의 標高差는 겨우 400m 정도, 거리 또한 10Km가 채 못되니 오늘 산행은 여유로운 산행이 될 듯 싶다. 함양군 서상면과 거창군 북상면의 경계인 남령재 고갯마루에는, 거창군에서 '거창군 북상면'이라고 적힌 커다란 표지판을 매달아 놓았다. 오른쪽에 등산로 입구가 보이고(맞은편에 남덕유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보이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폐쇄하고 있다), ‘북상 13경 안내도’, ‘월봉산, 금원산 등산안내도’와 이정표가 나란히 서있다, 이정표는 월봉산까지의 거리가 3.4Km임을 알려주고 있다.

 

 

▼  산 斜面을 치고 오르면, 먼저 허리춤 아래로 깔리는 山竹이 길손님을 맞이한다.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를 따라 콧노래를 부르는 것도 잠시, 나무테크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등산로는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하면서, 주능선을 향해 가파르게 高度를 높이기 시작한다.

 

 

▼  주능선에 도달하면 등산로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진행방향으로 1130봉을 구성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가 우람하게 자태를 보이기 시작하고, 뒤돌아보면 남덕유산에서 남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장쾌하고, 왼쪽으로는 할미봉과 남령으로 오르는 37번 도로가 내려다보인다.

 

 

 

 

▼  1130봉을 넘고, 또 다른 암봉을 우회하면 능선 안부, 능선을 따라 조금 더 나아가면 작은 봉우리 위에 서게 된다. 정면으로 오늘 산행의 백미인 수리덤(일명 칼날봉)이라는 암봉이 우뚝 솟아있고, 뒤로는 남덕유산이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오늘의 眺望은 여기서 끝, 가야할 능선과 지나온 능선 외에는, 짙은 황사(?)로 덮인 山河는 나그네들에게 결코 視界를 열어주지 않는다. 월봉산은 사방으로 열리는 조망이 환상적이라고 했는데 아쉽기 그지없다.

 

 

 

▼  山竹길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수리덤 아래에서 왼쪽으로 우회하며, 급경사 내리막길을 만들어 낸다. 내리막길이 있으면 어김없이 나타나게 되는 오르막 길, 그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르면 만나게 되는 능선에서 등산로는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수리덤의 정상까지 갈 수 있다. 그러나 수백 길 낭떠러지 위를 통과하게 되는 위험구간 이므로 초보자들은 삼가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월봉산으로 가려면 왼편으로 진행하면 된다.(남령재에서 이곳까지는 1.2Km, 30분 남짓 걸렸다.)

 

 

 

 

▼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 수리덤을 향한다. 거대한 바위 덩어리들이 앞을 막는데, 우회하는 길이 없어, 수십 길 벼랑 위를 걸어야하기 때문에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집사람을 남겨 놓고 나 혼자 바위에 올라본다. 그렇게 나아가길 한참, 저 앞에 수리덤이 보이고, 봉우리 꼭대기에 먼저 올라간 산행대장께서 어서 빨리 오라며 손짓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장비까지 갖추고 암벽등반을 따라다녔던 나이므로, 마음만 먹으면 못 오를 것도 없겠지만, 조망이 터지지 않는 날씨를 핑계 삼아 집사람한테로 발걸음을 돌려버리고 만다.

 

 

 

▼  수리덤(칼날봉), 수리덤은 매의 부리처럼 보인다 하여 '수리덤'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월봉산 쪽에서 보면 수리가 날개짓을 하는 형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덤은 바위의 경상도 방언이란다). 그러나 남령재 방향에서 바라보면 칼날같이 날카롭게 서 있다고 해서 칼날봉이라고도 부른단다. 능선의 이정표에는 칼날봉이라고 적혀있다.

 

 

 

 

 

▼  능선으로 되돌아와 산행을 계속한다. 조그만 봉우리를 우회한 후, 능선에 서면 오른편으로 상남리가 희미하게 내려다보인다. 오늘 산행 내내 만나게 되는 山竹지대을 지나면, 양쪽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칼바위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  칼바위능선에서 우회로를 따라 잠깐 왼편으로 내려서면 뻥 뚫린 바위 사이로 하늘이 바라다 보인다. 거대한 두 바위 사이에. 또 다른 큰 바위 하나가 빈 틈 없이 끼어 있다.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구멍이니 당연히 구멍바위? 아서라! 語感이 이상한 단어보다는 차라리 지리산의 통천문을 가져다 붙이고 말 일이다.

 

 

 

 

▼  암릉이 끝나면서 등산로는 한참을 싸리나무가지가 얼굴을 때리더니, 어느덧 억새가 우거진 내리막길을 만들어내며 진행방향으로 월봉산이 다가온다. 원래 이곳에서는 남동쪽으로 금원산과 기백산의 웅장한 능선을 바라보이는데, 시야가 막힌 오늘은 그 형태마저도 찾아볼 수 없다.

 

 

 

▼  월봉산을 향해 오르막길에서 안간힘을 쓰고 나면 다다르게 되는 능선 안부, 또다시 능선은 양쪽이 벼랑인 칼바위 능선을 만들어 내고 있다.

 

 

 

 

▼  낭떠러지 바위 사면과 그 위에 걸친 커다란 바위 사이로 몸 하나 겨우 통과시킬 수 있는 곳이 나타난다. 제법 위험한 구간, 얇은 줄이 두개 메어져 있다. 잘못하면 끊어질 것 같은데, 저걸 잡아? 말아? 먼저 통과한 후, 혹여 작품사진이라도 하나 얻을 수 있을까 해서 기다려보는데, 좌측 발을 낭떠러지 斜面에 디디고, 최대한으로 몸을 낮춘 채로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저런 곳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일은 배낭이 머리 위의 바위에 걸리지 않게 하는 일일 것이다.

 

 

 

 

 

 

▼  누룩덤, 크고 작은 암릉들을 오르내리고, 또 어떤 때는 우회하다보면 어느덧 저만큼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월봉산이 바라보인다. 누룩덤은 월봉산의 守門將? 바위를 포갠 듯한 소규모의 누룩덤이 월봉산으로 오르는 입구를 지키고 있다. 다들 우회하지만 집사람을 꼬드겨 바위 위로 올라섰고, 덕분에 반대편의 위험한 바위 벼랑을 내려서며 짜릿한 스릴을 맛볼 수 있었다. 누룩덤 상부에는 삼척의 쉼음산 정상에서 봤던 웅덩이가 있었고 맑은 물이 가득 담겨있었다. 누룩덤은 누룩(막걸리를 만드는 효모덩어리)덩이를 쌓아 놓은 것을 닮았다고 해서 그리 부르는데, 누룩덤이라는 이름의 바위는 전국에 상당히 많으며, 그 중에서 합천 황매산 줄기에 있는 누룩덤이 제일 빼어난 자태를 보여준다.

 

 

 

 

▼  월봉산 頂上, 산봉우리가 달과 같이 생겼다하여 월봉산이라고 이름 붙었다는 정상은 서너 평 남짓한 盆地, 한쪽 귀퉁이에 없는 것이 차라리 나을 듯 싶은 초라한 정상표지석 두 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두 개 모두 고정이 되어 있지 않아 손만 대면 넘어질 듯 위태롭고, 그나마 烏石으로 된 정상석은 허리가 반 동강이가 나 있다(아니나 다를까 사진 촬영 중에 정상석이 넘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정상에서는 금원산과 기백산, 황석산과 거망산이 잘 眺望된다지만 오늘은 그저 눈어림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따름이다.(남령재에서 2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  노상마을로 下山하려면 올라왔던 길과는 반대방향으로 내려서야한다. 山竹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헬기장, 바닥이 사각의 블록과 잔디로 되어 있어 점심상 차리기에 안성맞춤이다. 헬기장에서부터 이정표가 있는 큰목재까지는 급경사 내리막길, 등산로 주변은 온통 참나무가 群落을 이루고 있다. 큰목재는 주변이 온통 억새군락지인 안부 사거리로서, 화살시위를 당기는 모양처럼 휘어졌다 해서 살목재라고도 불린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은신치를 거쳐 거망산으로 가게 되고, 왼편으로 내려서면 임도를 따라 수망령으로 가게 된다.(월봉산에서 이곳까지 1.3Km, 수망령으로 가려면 1.7Km를 더 가야한다).

 

 

 

 

▼  큰목재 사거리에서 노상마을로 내려서는 下山 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굵은 다래넝쿨이 우거진 원시의 숲, 그 아래를 흐르는 계곡은 작고 아담한 沼와 潭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맑다 못해 옥빛을 띠고 있는 수정 같이 맑은 물은, 바닥에 깔린 자갈의 색깔까지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 여름철 산행이라면 누구라도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지 않을까 싶다.

 

 

 

 

▼  산행 날머리는 노상마을

시시각각 변하는 계곡의 풍경을 음미하며 시나브로 걷다보면, 어느덧 울창한 松林 너머로 제법 널따란 저수지가 보인다. 農水用으로 축조한 듯 싶은 저수지는 수면은 아직도 겨울의 한 가운데,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있다. 높다란 저수지 둑에 올라서면 저만큼 아래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구불구불 흐르고, 그 끝에 노상마을이 바라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