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류산 (巨流山, 571m)
산행일 : ‘12. 3. 1(목)
소재지 : 경남 고성군 거류면
산행코스 : 월치 엄홍길기념관→휴게소→거류산성→거류산→거북바위→당동리 (산행시간 : 3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e목요산악회
특징 : 고성의 진산(鎭山)인 거류산을 보고 호사가(好事家)들은 고성의 마터호른(Materhorn)이라고도 부른다. 구름 속에 숨었다 나타났다 한다는 피라미드(pyramid)형의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마터호른(Materhorn, 4,477m)을 닮았다고 해서 그렇게 부른다지만 글쎄다. 마터호른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에서 보던 마터호른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거류산에서 보는 당동만과 그 주변 풍경(風景)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킬 정도로 자못 빼어나다.
▼ 산행들머리는 엄홍길전시관(展示館) 주차장
대진-통영고속도로 동고성 I.C를 빠져나와, 거류로(거류면사무소 방향)를 타고 고속도로를 위로 통과하는 ‘송산육교(陸橋)’를 넘으면 곧바로 왼편에 엄홍길전시관이 보인다. 오늘 산행은 엄홍길전시관의 주차장에서부터 시작된다.
▼ 커다란 대형버스가 수십 대가 주차하고도 남을 만큼 널따란 주차장에 내리면, 먼저 현대식(現代式)으로 지어진 커다란 전시관(展示館)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 주차장의 안쪽 귀퉁이에는 아담한 화장실이 깔끔하게 앉아있다. 목요산악회와 단체사진을 찍고 전시관으로 들어선다. ‘산다는 게 모험이라면, 내게 있어서 도전과 모험은 오직 8000m를 오르는 것이었다.’ ‘산이 거기 있어 산을 오른다.’ 그가 남긴 멋진 말들이 적혀있는 전시관에는 엄홍길의 히말라야 16좌 등정(登頂)의 기록들과, 그가 사용했던 각종 등산장비들, 그리고 히말라야 14좌를 완등(完登)한 12명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중에 자랑스러운 한국인은 3명으로 엄홍길과 박영석 그리고 한왕용, 요즘에는 오은선이라는 한국이 낳은 걸출한 여류산악인의 이름도 당당히 올릴 수 있으리라...
* 고성 영현면이 고향인 엄홍길씨는 히말라야 8천m급 16개 봉우리를 모두 등정한 세계 최초의 산악인으로 고성군은 그의 업적을 기려 2007년 거류산 자락에 '엄홍길 전시관'을 개관했다. 참고로 ‘엄홍길 전시관’은 이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의정부시 호원동(망월사역 근처)에도 있다고 한다. 엄홍길은 이곳 고성군 영현면 봉발리에서 태어나 3살 때까지 살았고, 3살 때에 의정부시 호원동으로 이사를 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업적을 기념하는 전시관이 두 곳에 있나보다. 아무튼 입장료가 무료(無料)인 이 전시관에는 엄 대장의 등반 장비와 의류, 그리고 각종 기록(記錄)이 전시되고 있다.
▼ 전시관 관람을 마치고 산행을 나선다. 산행은 주차장의 오른편 귀퉁이에서 시작된다. 깔끔하게 현대식(現代式)으로 지어진 약수(藥水)터 곁에 커다란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약수터에는 커다란 물통에 물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물이 좋다고 소문이 나있기 때문에 인근(隣近) 사람들뿐만 아니라 멀리 진주에서까지 식수로 길어다 먹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 약수터 뒤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돌계단을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이정표 : 거류산 정상 4.3Km). 내 머릿속에 미리 넣어온 정보(情報)에 의하면 거류산은 바위산이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해본 거류산은 전형적인 흙산(肉山)이었다. 비 온 후의 산길처럼 등산로는 물기를 머금은 붉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산길은 초입부터 서서히 고도(高度)를 더해가는 완만(緩慢)한 오르막길이다. 길가는 꽤나 웃자란 소나무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가득하다는 소나무들이 짙은 솔향을 풍기고 있는 것이다. 마침 주어진 하산시간(4시간)이 넉넉하기까지 하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 오늘도 ‘느림보의 미학(美學)’을 추구하며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 경사(傾斜)가 거의 없다 싶은 널따란 산길을 따라 10분 조금 넘게 걸으며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은 장의사를 거쳐서 정상에 이르는 순환코스이고, 곧바로 정상에 이르고 싶다면 왼편의 종주코스를 택하면 된다. 사찰(寺刹)투어(tour)가 아닌 순수한 산행을 나선 사람들은 이곳에서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모두 왼편 종주코스를 택한다.(이정표 : 장의사 1.7Km, 거류산 정상 5.0Km/ 휴게소 1.5Km, 정상 3.7Km/ 엄홍길전시관 0.6Km) 삼거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곧바로 길을 만들기에는 경사(傾斜)가 너무 버거웠던지 갈지(之)자를 만들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가고 있다. 이때부터 내 고통이 시작된다. 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허리에 통증이 오는 것이다. 과천(公職)에 있을 때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과 함께한 술자리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다가 자정을 훌쩍 넘겨버렸고, 난 어떻게 집에 왔는지가 도무지 기억이 없다. 다만 산악회 버스 시간에 쫓겨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묵직한 허리통증이 시작되고 있었다. 산행을 포기하라는 집사람의 권유를 뿌리치고 집을 나선 대가(代價)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산행후기를 적고 있는 지금, 난 의사(醫師)의 권유에 따라 주말산행을 포기하고 책상머리에 앉아있다.
▼ 가파른 산길을 치고 오르다가 만나게 되는 철(鐵)계단을 오르면 드디어 시야(視野)가 열리기 시작한다. ‘통영 안정공단(工團)’의 앞바다에는 작은 섬들이 떠다니고, 공단의 거대한 유류(油類)저장탱크들이 바둑판 위의 돌들처럼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 명품(名品)소나무, 거류산을 걷다보면 ‘거류소나무’라고 쓰인 이름표를 달고 있는 소나무들이 가끔 눈에 띈다. 5, 4, 3... 소나무들은 끄트머리에 번호를 달고 있는데, 그 자태(姿態)가 자못 빼어나다. 얼핏 어느 부잣집 정원(庭園)에 있어야 마땅하다 생각될 정도로 저마다 독특한 모양으로 자라고 있었다.
▼ 세 번째 철(鐵)계단을 지나면 이번에는 계곡을 가로지르는 쇠(鐵)다리가 나온다. 그리 넓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다리이지만 조금 더 예쁜 모양으로 다리를 만들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조그마한 꺼리라도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라도 색다르게 포장해서 사람들이 즐겨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업무(業務) 때문에 들른지라 비록 스치듯이 지나다녔을 따름이지만, 내가 다녔던 외국(外國)들, 특히 관광국가(觀光國家)로 소문난 다른 나라들은 조그만 꺼리까지도 이야기가 있는 볼거리로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 참고로 ‘오줌싸개 소년’동상으로 소문난 브뤼셀(Brussels)에서는 도시의 반대편에 ‘오줌싸개 소녀’라는 또 하나의 동상을 만들어 놓았는데, 많은 외국관광객(外國觀光客)들로 붐비고 있었다. 거기다 주말을 이용해 소일삼아 다녀왔던 변방의 한적(閑寂)한 도시인 브뤼헤(Brugge)하며...
▼ 철다리를 지나면서 부터는 좌우(左右)로 조망(眺望)이 뻥 뚫린다. 오른편 산 아래에 꼬불꼬불한 길이 보이더니 그 끄트머리에 절 하나가 신록(新綠)에 묻혀 있다. 바로 장의사(藏義寺)이다. 지금은 빈 나뭇가지가 앙상한 계절(季節)인데도, 절의 주위는 소나무들로 가득 차 신록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 장의사(藏義寺),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신라 선덕여왕 원년(632년)에 원효대사가 절터를 찾아 전국을 순방하다가 거류산에 와서 명당인 이곳에 창건했다는 고찰(古刹)이다.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스님의 은사이신 효봉스님이 주석(駐錫)했던 사찰로서 유명하다. 사찰 뒤의 웅장하게 치솟은 기암괴석(奇巖怪石)아 울창한 수목과 잘 어우러지고, 진해만의 푸른 바다가 잘 조망되는 등 아름다운 경관(景觀)을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효봉스님은 ‘판사출신 스님’, ‘엿장수 스님’ 등 다양한 애칭(愛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난 스님이 즐겨 쓰셨다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법어(法語)가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말할 때는 웃자는 얘기가 되겠지만, 요즘 같이 어지러운 세태(世態)에서는 우리에게 절실하게 다가오는 화두(話頭)가 아닌지 모르겠다. 남을 헐뜯거나 비방하기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만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 문암산에서 거류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한마디로 말해 뛰어난 조망(眺望)을 자랑한다. 능선 바위에 서면 우선 당동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색으로 빛나는 남쪽 바다가 내륙(內陸)을 향해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그 당동만이 만들어내는 해안선(海岸線)을 따라 조각보 같은 다랑논들이 산자락에서 바다 쪽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누런 논이 진청색 바다와 만나면서 실낱같이 긴 선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먼 바다 쪽을 바라보면 당동만 너머로 작은 섬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아마 어의도와 가조도 그리고 칠전도 등일 것이다. 그 너머의 큰 섬은 거제도일 것이고... 당동만이 그려내고 있는 풍경화(風景畵)속에는 풍요와 평화가 고요히 깃들어 있다.
▼ 좌우로 펼쳐지는 멋진 풍광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새 돌탑이 있는 문암산이다. 그리 넓지 않은 봉우리에는 돌탑이 하나 서있고, 주변에는 벤치 등 휴게소를 조성해 놓았다. 돌탑의 가운데쯤에 누군가가 서툰 매직(magic)글씨로 문암산이라고 써 놓았다. 사실 2만5000분의 1 지형도에는 문암산이라 표기돼 있다. 문암산에서는 왼편으로 조망(眺望)이 시원스럽게 열리는데, 고요한 바다위에는 동그랗고 조그만 수많은 섬들이 떠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이 조금 못되었다.
▼ 문암산을 지나서도 능선은 조그만 봉우리들을 오르고 내리며 이어진다. 오른편에는 당동만의 전경(全景)이 각도를 달리하면서 펼쳐진다. 멀리만 보이던 거류산 정상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점점 뾰쪽하게 변하고 있다. 호사가들은 저런 형상(形象)을 보고 고성의 마터호른이라고 부르고 있나 보다. 표현이 조금은 지나친 경향은 있지만 말이다.
▼ 문암산 능선을 따라 한참을 걸으면 산세가 바뀌면서 조망이 닫힌 숲길이 나온다. 이곳을 내려서면 안부 삼거리인 당동고개이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당동리에 이르게 된다.(이정표 : 거류산 정상 1Km/ 당동리 2.2Km/ 휴게소 1.9Km) 이곳 안부에서 조금만 더 진행하면 새로 쌓은 지 얼마 안 되는 듯, 아직도 돌 빛이 하얀 성벽(城壁)이 정상을 향해 길게 늘어서있다. 바로 거류산성이다. 산길은 성벽의 아래를 따라 이어지다가 성벽의 위로 오른다.
* 거류산성(巨流山城 : 경남문화재자료 제90호)이다. 소가야(小伽倻)가 신라나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수도(首都)였던 고성을 지키기 위해 쌓은 산성(山城)이라고 한다. 원래는 둘레가 1.4km였다고 전하는데, 대부분 훼손되고 지금은 600m의 성벽만 남아있다.
▼ 성벽 위로 오른 산길은 이번에는 복원(復元)이 되지 않은 성터를 오른편에 끼고 오르게 만든다. 길가 바위 벼랑위에 신기하게 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오래 묵은 소나무(老松) 한그루가 바위틈을 비집으면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황산에서 보았던 파석송(破石松)이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 ‘오악귀래불간산 황산귀래불간악(五嶽歸來不看山, 黃山歸來不看嶽)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다섯 명산(名山)인 오악(五嶽 : 태산, 화산, 숭산, 항산, 형산)을 보고나면 다른 산이 보이지 않고, 황산을 보고 나면 그 오악(五嶽)까지도 시시하게 보인다는 얘기이다. 황산에는 공작송(孔雀松), 단결송(團結松), 몽필생화(夢筆生花) 등 소문난 소나무들이 많은데, 그중에 파석송(破石松)이라 불리는 소나무가 있다. 커다란 바위 한 가운데를 뚫고 우뚝 솟아 있기 때문에 깨뜨릴 破(파), 돌 石(석)자를 써서 파석송(破石松)이라 부른다. 거류산에서 그 귀한 파석송을 볼 수 있음은 한마디로 행운(幸運)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에 날린 소나무 씨앗이 바위틈에 들어가,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며 끈질긴 생명력(生命力)으로 운명(運命)을 개척해 나가는 과정‘은 우리들이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그러한 교훈(敎訓)이 우리 곁에 있음은 행운이라고 불러도 조금도 과하지 않다 할 것이다.
▼ 허물어진 성터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오른편 돌무더기 위에 쌓아놓은 작고 볼품없는 수많은 돌탑들이 보인다. 원래 돌탑이란 사람들이 자기의 염원을 담아 쌓는 것이니, 저 수많은 돌탑들에는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깃들어 있을까? 나 또한 돌탑위에 돌맹이 하나 얹으면서 자그만 소원 하나를 빌어본다. ‘내 사랑하는 집사람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천만번의 수많은 윤회(輪回) 속에서도 결코 헤어짐이 없는 영원한 인연(因緣)이 되게 해 주소서!’
▼ 성터를 따라 오르다가 전망(展望) 좋은 바위 두어 곳 지나면 이내 거류산 정상이다. 바위봉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외에도 산불감시탑과 감시초소가 설치되어 있다. 꼭 필요한 시설이겠지만 정상의 풍광(風光)을 훼손(毁損)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정상표지석을 세운이가 지리산을 벤치마킹(bench-marking)했는지 표지석 뒤에 적힌 '고성군민의 기상 이곳에서 시작되다.‘라는 문구(文句)가 어쩐지 지리산 천왕봉에서 보았던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는 문구와 많이 닮아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정도가 지났다.(이정표 : 엄홍길전시관 4.3Km/ 감서리 2.8Km)
* 거류산(巨流山)에는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설화(說話)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아주 먼 옛날 한 처녀가 부엌에서 저녁밥을 짓다가, 쿵쿵거리는 소리에 밖을 내다봤더니, 커다란 산 하나가 성큼성큼 바다 쪽으로 걸어가고 있더란다. 혼비백산한 처녀가 ‘저기 산이 걸어간다!’라고 세 번을 외쳤더니, 머쓱해진 산이 그 자리에 냉큼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단다. 그런 이유로 '걸아산', '걸어산'이라고 부르던 것이 오랜 세월동안 부침을 거듭하다가 거류산으로 고착(固着)하였다고 전해진다.
▼ 정상에 올라서면 지금까지 보다 남해(南海)바다가 더 가까이 다가와 있고, 육지에 둘러싸인 당동만은 바다가 아니고, 아예 호수(湖水)의 느낌을 주고 있다. 그 형상은 마치 한반도(韓半島)를 닮고 있는데, 다만 포항 어림의 토끼 꼬리가 너무 불쑥 튀어난 게 흠(欠)이라면 흠이다.
▼ 정상표지석 뒤편에 남해바다의 조망(眺望)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안내도의 뒤편에 안내도에 그려진 대로 당동만이 그림같이 펼쳐지는데, 당동만 방향의 왼편으로 거대한 바위봉우리 두 개가 보인다. 머리와 몸통부위로 나누어진 두 봉우리가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인 거북바위이다. 하산은 거북바위 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이내 조그만 암봉 앞에 서게 된다. 바로 거북바위의 머리 부분이다. 봉우리 위로 올라가기 전에 왼편으로 우회로가 나 있으나 구태여 우회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봉우리 너머 두 봉우리 사이의 협곡(峽谷)으로 내려서는 바윗길에 철(鐵)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다지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 거북이의 머리 부분에서 철계단을 밟고 내려서면 거북이의 목 부분인 협곡(峽谷) 사거리이다. 협곡사거리에 내려서면 꼭대기에 거북바위의 사진과 유래가 적혀있는 안내판을 달고 있는 특이한 이정표(거류산 정상 0.9Km/ 감서리 1.9Km)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왼편은 정상으로 가는 우회로(迂廻路), 오른편으로 가면 거북이 몸통부분을 오르지 않고 당동리로 우회(迂廻)하게 된다. 물론 맞은편에 보이는 철(鐵)계단을 밟고 오르면 거북바위의 몸통부분이다.
* 거북바위는 바다를 나온 거북이가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모양새란다. 자손이 귀한 집안의 아낙네가 바위에 오르면 자손이 번성하고, 수명도 연장된다는 전설(傳說)이 전해져 내려온다.
▼ 거북의 몸통부분에 올라 아기자기한 암릉을 잠시 걸으면 널따란 암반(巖盤)이 나타난다. 바로 덕석바위이다. 덕석이란 멍석을 달리 부르는 말로서, 곡식을 널어 말리는 데 쓰이는 짚을 엮어 만든 널따란 자리이다. 암반이 마치 덕석처럼 널따랗다고 해서 그리 부르는 모양이다. 거북바위의 벼랑에 서면 에메랄드 빛 당동만과 남해가 발아래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육지의 사이에 낀 바다가 그림같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 덕석바위에서 암릉 돌아 내려서면 삼거리이다. 이정표에 방금 내려온 방향으로만 ‘전망대(덕석바위)라는 방향표시(方向標示)가 되어있으나 오른편으로 보이는 길을 따라 오르면 아까 지나왔던 협곡(峽谷)이 나온다. 이곳 삼거리에서 산길은 거북바위의 벼랑 중간을 째면서 흐르다가, 이어서 산의 사면(斜面)을 따르면서 길고 완만(緩慢)하게 이어진다.
▼ 고도(高度)를 낮출지를 모르고 산의 사면(斜面)을 째면서 이어지던 길을 따라 10분 쯤 걸으면 별다른 특징이 없는 곳에서 길은 사거리로 바뀐다(이정표 : 거북바위(경유) 1.1Km/ 거류산 정상 1.3Km/ 엄홍길 기념관 3.6Km/ 당동리 1.8Km).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가면 성벽(城壁)을 거쳐 정상으로 가게 되고, 곧바로 진행하면 엄홍길전시관에 이르게 된다. 당동만이 있는 방향으로 잠시 내려서면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널따란 임도(林道)가 나온다.
▼ 하산길은 임도를 가로지르며 계곡으로 내려서게 되어있지만, 잠깐 임도를 따라 걸어 오른다. 30m쯤 되는 지점에 샘터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약수(藥水)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는 호사(豪奢)를 누려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테니까 말이다. 샘물은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시원하면서도 달았다. 그러나 앞서 내려가다가 되돌아 올라온 집사람으로부터는 꽤나 심한 지청구를 들었다. 하긴 갑자기 남편이 보이지 않은데도 놀라지 않을 아내는 아마 없을 것이다.
▼ 계곡을 따라 내려가는 산길은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다. 계곡길 답지 않게 유연하게 이어지던 길이 갑자기 온통 칡넝쿨로 우거진 너덜길로 변하기도 하고, 요즘 부쩍 인기 있는 편백나무 숲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진행방향이 툭 트이면서 당동만이 내다보인다. 당동만 바다에는 부표(浮漂)들이 가득하다. 부표 아래에는 아마 토실토실하게 살이 오른 굴과 미더덕이 매달려 있을 것이다. 그걸 바라보는 어부의 가슴은 당연히 뿌듯해질 것이고... 길가가 밭으로 바뀐다. 갑자기 집사람이 배낭을 내리더니 호미를 꺼내든다. 밭두렁에 주저앉아 부지런히 놀리는 그녀의 손끝을 따라 냉이와 달래가 딸려 올라오고 있다. 덕분에 이 글을 쓰고 있는 토요일 아침에도 우리 집 밥상에는 김밥에 올릴 달래장과 냉이 된장국이 먹음직스럽게 올라와 있다. 밥상에는 때이른 봄기운이 피어나고, 입안에서는 봄내음이 가득 차오른다. 이게 바로 사람이 살아가는 재미, 아니 산을 찾는 재미가 아닐까?
* 여기는 따뜻한 남쪽나라, 산과 들에는 봄기운이 이미 완연宛然한데, 우리가 내려오는 길가에도 봄의 전령(傳令)인 들꽃들이 하얀 꽃잎들을 화사하게 펼쳐놓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산하(山河)는 온통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온갖 봄꽃들로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 산행날머리는 당동리 노인회관
나물케기 삼매경(三昧境)에 푹 빠져있다가 주어진 하산 시간에 맞춰 발걸음을 옮긴다. 길가에 폐가(廢家)들이 간혹 눈에 띄기도 하지만, 폐가들이 널리다시피 많은 다른 지역에 비해서는 생기(生氣)가 남아있는 모습이다. 야자수 나무 등 남국(南國)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정원수(庭園樹)들을 구경하며 걷다보면 이내 당동리 노인회관(老人會館)에 닿게 된다. 회관 앞에는 수백 년은 먹었음직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보호(保護)를 받고 있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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