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밀양시, 청도군, 울산시 등에 높이 1000m 이상 되는 7개의 山群(가지산, 운문산, 천황산, 신불산, 영축산, 고헌산, 간월산)이 유럽의 알프스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등억온천, 사자평, 얼음골 등 명소와 통도사, 석남사, 운문사, 표충사 등의 사찰 을 안고 있다. 특히,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의 신불평원 60여만 평과 간월산 밑 간월재의 10만여 평, 고헌산 정상 부근의 20만여 평에 억새군락지로 유명하다.
산행코스 : 자수정동굴나라-신불 공룡릉선-신불산-영축산-함박재-백운암-극락암-통도사(산행시간 : 5시간, 극락암 도착까지)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서쪽은 곳곳을 습지로 보존하고 있을 정도로 밋밋한 고원 형태, 반면에 동쪽은 급경사의 암릉지대로 암릉과 육산이 공존하고 있다.
산행은 자수정동굴나라 주차장 입구 맞은편에서 시작된다.
울주군과 언양읍은 세계에서 유명한 자수정 산지이며, 특히 그 품질은 국제시장에서 으뜸으로 쳐주고 있다. 자수정동굴나라는 그중 한 폐광을 관광지로 개발한 것이다. 80년대 중반 사업주가 이 사업을 구상하고 있을 때 실사차 다녀간 적이 있는데, 그때에 비해 지금은 상전벽해라 표현해도 될 듯 싶다.
산행의 시작은 소나무와 함께...
초입의 평탄한 산길은 5분을 버텨내지 못하고, 곧 갈지(之)자 급사면 오름길을 만나면서부터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쉬임없이 30여분을 올라야 능선에 도착할 수 있다.
능선에 오르면 소나무와 철쭉이 조화롭고, 간혹 신갈나무도 보인다
70년대 나뭇잎 대신 연탄으로 연료가 바뀐 뒤부터 오랫동안 낙엽이 쌓여왔는지 등산로는 흡사 양탄자 위를 걷는 듯 포근하기 그지없다
능선에 올라 또다시 두어 차례 급경사에서 힘을 빼다보면 공룡능선을 만난다. 능선에 가까워지면 규모가 꽤 큰 슬랩을 지나는데, 바윗결이 각이 져서 손에 잘 잡혀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공룡능선
위험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스릴만점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능선위에는 운동화 차림의 등산객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장비를 갖추지 않는 산행은 위험천만...
아니나 다를까 능선위에 헬기가 출동한 걸 보니, 아마 사고가 있었나 보다.
공룡능선의 의미는 한번 치고 올라가는 다른 능선과는 다르다는데 있다. 마치 여러 개의 작은 산들을 연이어 타는 것 같은, 공룡의 등처럼 삐죽삐죽 솟아오른 바위산들을 끝없이 넘어야 하는 것이다. 바위봉들의 모양도 가지각색이지만 각 봉우리마다 좌・우로 보이는 산아래 경치까지도 달리 보인다.
서너번 암팡진 바위와 씨름하다 보면, 본격적인 암릉산행이 시작된다. 암릉 뒤 멀리 부드러운 모습의 신불산 정상이 보인다. 암릉 위험한 곳에는 왼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잘 나 있다.
바윗결을 잡고 용틀임하다 보면 어느새 온몸은 땀으로 목욕을 시작한다.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는 것은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어떤 쾌감 때문이리라. 그러나 그 쾌감은 거의 필연적으로 '고통' 뒤에 오기 마련이다. 그 고통이 극점에 달할 때 인간은 단순해진다. 그 어떤 풍성한 행복보다도 더 깊고 매력적이고 본질적인...
능선의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자태...
사진기에 담아오기는 불가능했지만, 내게는 신이 주신 눈이 있기에 한 아름 가득히 담아 올 수 있었다.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씻어낸 채로...
공룡능선... 칼바위라고도 부른다. 뾰족한 바위로 정점을 이루고 있는 능선... 바로 그 정점을 죽 이어서 가야만 하는 길이기에 공룡능선이라고 이름 붙였나 보다.
정상에서 바라본 칼바위 능선
이 능선을 따라 약 1시간 남짓 오르다보면 신불산 정상에 닿는다.
신불산(1209m)
영남알프스 산군에 속하는 산으로 능선에는 광활한 억새와 바위절벽, 완만한 지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신불산은 신령님이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여졌으며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와주는 산이란다. 안타깝게도 정상은 허물어진 돌탑, 통신시설 등 많이 훼손되어 있다.
정상에서 바라본 간월산 방향 능선
보통은 배내고개에서 출발하여 간월산, 간월재,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다소 평이한 코스를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긴장감을 찾아 공룡능선에서 시작해서 영축산으로... 간월재의 10만평 억새는 신불평원 60만평의 광활함으로 매꿔버린다.
다음 산행코스인 영축산을 가기위해 신불재 방향으로 향한다.
그림처럼 펼쳐지는 광활한 신불평원 풍경에 가슴이 탁 트이며 일상의 찌든 때가 다 날라가는 듯하다.
구름이 머물렀던 철쭉의 향연이 지나고, 무더위와 폭풍우에 할퀴었던 지난 여름의 기억, 그러나 자연은 어느 새 억새꽃이 전하는 가을의 편지를 쓰고 있다.
영축산으로 가려면 신불재에서 정면(남쪽) 억새밭 사이 오름길로 올라서야 한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중에서)
무더위에 펼쳐진 지난 여름의 파노라마가 신불산 능선 출렁이는 억새꽃 위에 펼쳐진다.
신불산에서 영취산까지의 광활한 능선에 펼쳐지는 억새의 장관은 과히 억새의 천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광에 비늘처럼 퍼득이는 이파리와 빛이 부서지는 억새를 만났다. 행운... 영남알프스는 우리들에게 억새의 물결로 가을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60여 만평 신불 평원의 억새 군락지의 억새꽃...솜털처럼 하얀 억새꽃 천국을 이루고 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강한 바람에 대부분의 솜털을 날려보냈음에도... 겨울이면 억새 위로 새하얀 눈이 내려 절정을 이룬다는데 그 또한 얼마나 나그네의 가슴을 설레이게 할꼬.....
남쪽의 취서산에서 북쪽의 간월산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주능선은 억새의 천국을 이루고 있다. 이 산줄기의 동쪽은 깎아지른 바위절벽을 이뤄 산세가 험하지만 반대인 서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마치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솜뭉치처럼 부풀어진 억새평원이 가을바람에 출렁인다. 황량한 들판에 피어 몸을 떠는 모습은 신비롭기만 하고, 가을 햇살에 익어가는 억새의 수수하면서도 단아한 자태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산이 높고, 그래서 힘들면 천천히 쉬어가면 된다. 빨리 오르지 못해 힘들고 지치면 자주 쉬면서 그러나 끝까지 가서 목적지에 당도하면 된다. 그렇게 오른 정상, 높은 산이 멀리보고, 높은 산이 많이 품고, 높은 산이 넉넉하고 위용 있음도 알게 된다. 낮은 산은 낮은 산대로 아기자기하고 나름대로의 멋스러움과 운치가 있지만 높은 산은 그 앞에 할 말을 잃게 한다. 아~~~~
영축산(1059m)
영취산, 또는 취서산이라고도 불리운다. 영취산(靈鷲山)은 신령스러운 독수리가 살고 있는 산이란 뜻... 독수리 취(鷲)자는 불가에서 '축'자로 읽기 때문에 우리나라 3대 사찰이 있는 통도사 뒷산이어서 영축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영축산을 지나 시살등 방향으로 진행하다보면 또다시 넓다란 억새밭을 만나게 된다
이쯤 되면 싫증날 때도 되었으련만... 한번 헤어짐이 일년을 기다려야하는 목마름의 절박함... 내 마음의 억새는 보아도 보아도 새로울 수 밖에 없다
신불산에서 영축산을 잇는 능선 동쪽 자락으로는 마치 이 산상의 부드러움을 떠받치듯 신불공룡(칼바위)능선을 비롯한 아름답고 헌걸찬 암릉들이 들어서 있어 전혀 다른 느낌의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영축산에서의 하산은 곧바로 통도사로 내려서는 지름길이 있으나,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함박재를 거치는 우회를 선택한다. 아니 그보다는 함박등이나 채이등의 아름다운 암릉을 그냥 놓치기 싫어서라는게 더 옳을 듯... 또한, 사찰은 가꾸는 곳이니 등산로 주변도 나름대로 아름다울게 아닌가
승보 송광사, 법보 해인사와 함께 한국 3보 사찰중 하나인 불보사찰이며, 조계총림 송광사, 해인총림 해인사, 고불총림 백양사, 덕숭총림 수덕사와 함께 조계종 5대 총림중 하나인 영축총림 통도사..., 뒷쪽 영취산엔 암자가 여럿(13개??)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에 제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암자... 하도 높은 곳에 위치하여 구름마저 발 밑에 놓여있다해서 백운암이라 이름 붙여졌지 않았을가 싶다.
‘아무리 독실한 신자더라도 튼튼하지 않으면 불공드릴 수도 없겠네요’ 백운암에서 급경사를 내려오면 집사람이 하는 말이다. 하긴 차량을 이용하더라도 30여분 이상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만 백운암의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으니 응당 그런 생각이 떠오를 성 싶다. 맞습니다 맞고요.. 백운암은 백운암을 찾는 그 자체가 수행의 길일 것입니다.
천상과 지옥을 모두 함께 잊게 한다는 극락암
통도사 매표소에서 천년 솔향을 품은 계곡을 거슬러 십리길을 오르면 만난다. 절집은 대나무가 에워싸고, 대나무는 소나무가, 소나무는 영축산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암자 오르는 산길의 소나무 숲만 걷고 와도 후회 않을 곳...
‘하늘에 가득한 비바람 허공에 흩어지니 달은 천강의 물 위에 어려 있고
산은 높고 낮아 허공에 꽂혔는데 차 달이고 향 사르는 곳에 옛길이 통했네’
문득 한국의 현대 대표적인 禪僧이자 茶僧인 경봉선사가 읊조리곤 했던 茶詩를 떠올리는 건 아마 선사께서 30년을 주석하셨던 곳임을 떠올렸기 때문일 것이다.
하산길은 불보사찰 통도사를 품고 있는 산자락답게 숲의 모습이 울창하고 깨끗하다. 단풍나무들이 꽤 많이 보이나 가뭄 탓인지 붉음이 예년만 못해 안타깝다
가을이 되면 세상의 모든 길들은 풍부한 표정으로 바뀐다. 산속 깊이 저홀로 생겨 저홀로 깊어지는 길은 말할 것도 없고, 늘 차를 타고 바쁘게 지나다니는 출퇴근 길도 노랗게 변하다가, 어느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 사이로 낙엽을 수북이 덮어쓰고 있다. 바람에 편편이 날리던 낙엽 하나가 달리고 있는 차창에 우표처럼 들러붙으며, ‘떠나라, 길을 잃을 만큼 멀리 떠나라’고 권유하는 것 같다.
서영은의 ‘떠나라, 길 잃을 만큼 멀리' 중에서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길... 미지의 신비로움을 찾아 난 또 하나의 산을 올랐다.
죽음에 이를 만큼 매혹당해 보고 싶다는, 새로움에 대한 갈망의 부추김... 난 사랑하는 이의 손을 꼭 잡고 미지의 장막뒤에 숨은 아름다움의 극의... 찾았을까? 못 찾아도 괜찮은건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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