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둘째날 아침,

오전 6시30분 벽소령산장을 나선다. 새벽 5시, 여명이 밝자마자 일어나 식사준비 등으로 부산을 떨었지만 출발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천왕봉을 오르지 않고 장터목에서 중산리로 곧바로 하산할 계획이니 두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을 것이니 말이다. ‘열심히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누구죠? 하느님이 우리 산행을 이렇게 보살펴 주시니 말입니다.’ 비가 내렸던 어제도, 우리가 산장에 도착한 다음에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는 비를 바라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오늘은 출발 전부터 말끔하게 개인 하늘을 보여주니 하는 말이다.

 

 

비온 뒤의 산하(山河)는 그렇게 산뜻할 수가 없다. 산허리를 감싸고도는 하얀 뭉게구름, 연록으로 물들은 산릉의 위로는 파랗게 하늘이 열려있고, 뭉게구름 한 점 둥둥 흘러가고 있다. 길가의 물오른 초목(草木)들은 살짝 옷깃만 스쳐도 녹색으로 물들어 버릴 것만 같다.

 

 

 

선비샘, 옛날 덕평골에 살던 화전민 李氏 노인이, 생전에는 받아온 천대와 멸시를 받아왔으니. 죽어서라도 존경을 받아보는 게 소원이었단다. 그래서 이곳 상덕평의 우물 위에 묘(墓)를 써 줄 것을 유언으로 남겼단다. 그 뒤로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이 이 샘물을 먹으면서 자연스레 허리를 구부리게 되었고, 그렇게 엎드리는 형상이 바로, 존경 아닌 존경의 표현으로 비쳐지는 모양이다.

 

 

벽소령에서 세석산장까지 산길을 따라 걷다보면 지리산이 광대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산이 좁아서 오르막내리막이 몰려 있는 여느 산과 다르다. 따라서 산길은 평탄하다. 큰 가풀막도, 내리막도 없다. 이런 길은 걸으며 사색하기에 딱 어울리는 길이다.

 

 

 

맑은 날씨에 새들도 소풍을 나왔을까? 쾌청한 날씨만큼이나 새들의 지저귐 또한 경쾌하기 이를 데가 없다. ‘홀딱 벗고’... 새의 이름을 들먹이면서 울음소리를 흉내 내다가 누군가의 입을 빌어 나온 새의 이름이다. 사람들의 마음 또한 날씨만큼이나 즐겁고 행복한가 보다.

 

 

 

 

벽소령에서 선비샘을 거쳐 세석산장까지는 6.3Km이다. 선비샘까지의 산길은 고저가 완만하지만, 선비샘을 지나면서부터는 로프를 붙잡고 올라서야 하는 등 험한 곳도 자주 나타난다. 이른 아침에 출발한 덕분에 조금은 여유 있는 산행을 즐겨본다.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서는 어김없이 발걸음을 멈춘다. 카메라 앞에선 이들은 환하게 웃고 있다. 여유를 부린 탓에 무려 3시간을 넘기고서야 세석산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숲길을 걸어간다. 푸른 나뭇가지에서 봄의 향기가 묻어나고 있다. 그 풋풋한 향기를 코를 벌름거리며 한껏 들여 마시니 온몸 구석구석 은은히 향기가 퍼져 나가는 듯했다.

 

 

 

 

산은 늘 내겐 언제나 아름다운 유혹이다. 감미로운 암갈색 초콜릿이나 혀끝에서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 맛 같은, 달콤한 유혹으로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아 버린다. 그래서 이따금 우중충한 회색의 도시를 벗어나고 싶을 때면 나는 하얀 유리창을 톡톡 경쾌하게 두드리는 빗방울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연의 품속으로 달음질친다.

 

 

 

나를 되돌아보고 싶을 때 ‘산행(山行)'만큼 좋은 것은 없다. 숨 가쁘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의 삶은, 누군가와 끊임없는 경쟁을 하며 조금 더 위로 오르려고 한다. 그러나 그 끝이 언제나 '승리(勝利)'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좌절과 절망의 늪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산행의 끝에는 언제나 승리만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나를 되돌아보고 싶을 때면 산행을 떠나보자. 그리고 산의 정상에 서보자.

 

 

 

 

세석대피소는 분지 중앙에 위치해 있다. 넓고 푸르른 들판 한 가운데에 산장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등산객들은 세석산장을 ‘호텔’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규모도 크고, 편의시설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석산장에서 촛대봉으로 오르는 길은 마치 화원(花園)을 걷는 느낌이다. 소문난 철쭉꽃은 아직도 꽃망울 열지 않고 있지만, 세석습지에는 동의나물이 노란 꽃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등산로 주변의 이름 모를 들꽃들도 활짝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세석산장의 뒷산인 촛대봉은 바위봉우리이다. 마치 자갈이 깔린 마당위에 커다란 바위를 얹어 놓은 형상이다. 정상의 암반(巖盤)위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바위 위에 올라서서 사진모델이 되기도 하고, 지나온 길과 가야할 방향에다 카메라의 앵글을 맞추고 있는 사람들... 이곳의 조망(眺望)이 뛰어나기 때문에 다들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산은 푸근함과 경외감, 그리고 성취감을 동시에 안겨 준다. 산길을 서둘러 걸을 필요는 없다. 걷다가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잠시 쉬었다 가자.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을 바라보면 '평온(平穩)'이라는 단어가 실감난다. 이왕에 쉬는 길이니, 산들 바람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며 잠시 눈을 감아보자. 산과 내가 어울리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삼신봉에서 잠시 쉬다보면 맞은편 멀리 연하봉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 사람들이 바라보인다. 그들의 머리 위에 있는 하늘은 예뻤고, 내 이마를 스치는 바람은 시원했다. 오늘의 능선산행이 마감되는 장터목에 가기 위해서는 필히 거쳐야만 하는 연하봉, 저 오르막만 치고 오르면 오늘의 고행이 끝난다. 치고 오른다는 것은 오르막길을 오르는 동안 쉬지 않고 올라간다는 것이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올라서야할 곳에 올라서면, 가슴은 뿌듯해지고, 스스로는 대견해진다.

 

 

 

 

세석산장에서 3.4Km, 길게 이어지던 능선이 지겨울 때쯤이면 저 멀리 천왕봉이 바라보이고, 그 아래에 장터목산장이 자리 잡고 있다. 능선에서 바라본 장터목산장은 한마디로 하늘과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다. 산장에는 몰려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비고 있다. 이곳의 높이가 1653m이면 결코 낮지 않은 곳인데도, 나이 드신 분들은 물론, 어린애들까지 눈에 띈다, 남녀노소(男女老少)의 구분이 없음은 그만큼 요새 사람들의 체력이 강해졌다는 의미이겠지? 공터의 한쪽 귀퉁이에 자리 잡고 앉아, 햇반으로 지리산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긴다. 물론 그 동안 아끼면서 먹어온 반찬거리를 다 내놓고서...

 

 

 

 

장터목은 고개가 운동장처럼 넓어 아예 장이 선 곳이었다. 경상도의 산청·함양·진주 사람들과 전라도의 산내·운봉·남원 사람들이 중산리와 백무동에서 올라와 물물교환을 했다. 이곳의 높이가 1653m, 이 땅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장터였을 것이다. ‘하늘 위의 장’에서 왁자지껄했을 풍경이라니...

 

 

장터목에서에서는 백무동으로 내려가는 코스도 있으나(서울까지 올라가는 고속버스가 있어 편리하다), 우리는 중산리 쪽으로 내려선다. 중산리에 있는 ‘체신청 수련원’에 숙소를 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중산리 코스는 볼 것도 많기 때문에, 즐기면서 걸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어젯밤 늦게까지 내린 비로인해 땅과 바위가 젖어 있는 중산리 코스는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물기를 머금은 바위는 그렇지 않아도 미끄러운데, 등산객들의 신발에서 떨어진 흙들로 뒤덮여 있어 한층 더 미끄럽게 만들고 있다. 조심스럽게 내려서는 발걸음이 무척 힘들다.

 

 

 

 

 

유암폭포와 법천폭포 등 유·무명(有無名)의 폭포들을 끼고 지루하도록 길게 이어지는 하산 길은,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다른 모습의 경관을 보여주기 때문에 지루하지가 않다. 오늘은 중산리까지만 내려가면 되니 급하게 서두를 이유가 없다. 물 맑은 곳에 앉아 탁족(濯足)을 즐겨본다. 아흐~~ 옥수(玉水)는 발이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시종 웃음꽃이 지지 않고 있는 오사무관 왈(曰), ‘5초 이상을 못 버틸걸요?’

 

 

 

 

산행날머리는 중산리 대형버스 주차장(駐車場)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바윗길은 법계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서 평탄하게 변한다. 잠시라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내려선 발걸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중산리 매표소 앞의 식당에 앉아 산골음식에 막걸리로 요기를 한 후, 다시 길을 나선다. ‘체신청 연수원’이 있는 대형버스 주차장은 이곳에서도 30분 정도를 더 걸어 내려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연수원 직원이 추천한 계곡식당에서 촌닭 백숙과 닭볶음을 안주삼아 소주 한잔, ‘1박2일’간의 지리산 종주를 마무리하며 완주(完走)를 자축해 본다. 술상에 앉아 내려다보는 계곡은 또 하나의 별유천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보통사람들도 한 번쯤 지리산 종주(縱走)를 해보고 싶어 한다. 지리산 종주는 ‘로망’이다.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이기 때문이다. 가랑이마다 산들이 태어나서 남과 북, 동서로 휘달려 국토의 등줄기인 백두대간을 만들어냈다. 노고단, 삼도봉, 영신봉, 형제봉 등등 1500m 안팎의 고봉(高峰)들을 징검다리 삼아 우리는 순례하는 마음으로 지리산을 걸었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우린 또 하나의 종주를 꿈꾸어 본다. 저 북쪽에 있는 설악산으로 시선(視線)을 고정시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