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방산 (碧芳山, 650.5m)-천개산(521m)

 

산행코스 : 노산리 가락종친회관→매바위→천년송→천개산→479봉→안정치→벽방산→의상암→가섭암→안정사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10분)

 

소재지 : 경남 통영시 광도면과 고성군 고성읍, 도산면의 경계

산행일 : ‘11. 3. 1(화)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암봉으로 이루어진 南海가 가장 잘 조망된다고 소문난 산, 정상에 서면 거제도, 미륵도, 사량도 등 閑麗水道 170개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등 장쾌한 풍광이 펼쳐진다. 벽방산은 석가불이 미륵불이 나타나면 드린다는 바리때인 벽발(碧鉢:스님들의 밥그릇)을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받쳐 들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옛 기록엔 대부분 벽발로 기록되어 있다는데, 언제부터인가 벽방이란 이름이 한자까지 얻어 쓰이고 있다. 이 산에 산재해 있는 사찰들에서는 아직도 벽발산이라고 부르고 있단다.

 

 

▼  산행들머리는 통영시 광도면 노산리, 가락종친회관

대전-통영고속도로 北통영 I.C를 빠져나오면 통영시 광도면 소재지이다. 이곳에서 77번 國道를 따라 고성군 방향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노산리에 닿게 된다. 산행은 가락종친회관 건물 우측, 산행안내판의 뒤에 위치한 조그만 봉우리로 올라서는 등산로를 따라 시작된다. 봉우리 위에는 이동통신 중계탑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  통영시 광도면 市街地가 잘 내려다보이는 전망바위를 지나, 10여분을 더 오르면, 돌탑과 나무벤치로 깔끔하게 정비되어있는 봉우리 쉼터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부터 나뭇가지 사이로 남해바다가 선을 뵈기 시작한다. 이곳의 이정표에는 안정재까지 5.4Km가 남았단다. 오늘 산행의 주요 포인트가 벽방산과 천개산이니, 里程標에도 천개산을 표기해 주는 것이 당연하련만, 오늘 산행 중에 만난 이정표에서 천개산이라는 地名은 한 번도 구경할 수 없었다. 그럼 천개산이라는 이름은 대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  매바위, 쉼터에서부터 이어지는 능선은 高低도 크지 않고, 바닥은 두텁게 쌓인 낙엽으로 인해 걷기에 무척 편하다.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부드러운 감촉을 음미하며 쉬엄쉬엄 걷다보면 웬만한 빌딩보다도 더 큰 바위덩어리인 매바위가 보인다. 右回하는 길이 보이지만, 다들 철계단을 밟고 바위 위로 올랐다가 반대편 철계단을 따라 내려서는 코스를 선택하고 있다. 매바위 위에 올라서면 오른편 발아래로 남해바다가 펼쳐지고 있고, 왼편으로는 도덕산 줄기가 잘 조망된다.

 

 

 

▼  공룡바위, 반대편 철계단을 내려서면 나무푯말에 ‘공룡바위’라고 적혀있어 당황스럽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본다면, 오른편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보일 것이고, 그 모양이 공룡을 닮아(?)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공룡바위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돌담에 둘러싸인 채로 녹음을 자랑하고 있는 두 그루의 비자나무(?)가 보인다. 보호수일까???

 

 

 

▼  지나가는 길에 본 奇巖, 언젠가 마분봉에 올랐을 때 보았던 우주선 바위와 흡사하게 생겨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이곳에서부터 高低가 심하지 않은 바위 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거리며 걷게 된다.

 

 

 

 

▼  밧줄까지 설치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도 밧줄을 두 개나 매어놓은 봉우리를 올라서면 전망이 시원스레 열리는데, 진행방향으로 386봉과 오늘산행의 白眉인 千年松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검푸른 남해바다와 어우러지는 다도해의 풍광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바다 위는 그야말로 섬들의 축제장이다.

 

 

 

 

 

▼  돌탑이 있는 386봉, 봉우리 정상에서 오른편으로 20m쯤 치우쳐 千年松이 자리잡고 있다. 화분같이 생긴 바위 위에 앉아있는 소나무가 마치 잘 다듬어진 분재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영양분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척박한 바위위에서 千年동안이나 끈질긴 삶을 이어오고 있단다. 조금만 환경이 나쁘게 변해도, 묵묵히 그 난관을 해쳐나가기 보다는, 不平不滿부터 먼저 토로하는 우리네 삶을 돌아보며, 오늘도 난 또 하나의 삶의 敎訓을 가슴에 담아본다. 386봉 정상에서는 발아래 대촌마을과 앞바다. 그 뒤로 거제도가 널따랗게 펼쳐지고 있다.

 

 

 

 

 

 

 

▼  386봉은 암봉이지만, 내려서는 암릉구간은 나무테크 계단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내려설 수 있다. 나무계단을 내려서서 조금 더 진행하면 ‘비암(蛇)바구’라고 쓰여 있는 나무푯말이 보인다. 바위 모양이 뱀을 닮아 있다나? 아마 이곳 사람들은 뱀을 비암이라 부르고, 바위를 바구라고 하나 보다.

 

 

 

 

▼  도덕산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403봉에는 돌탑이 세워져 있다. 이곳이 통영지맥이고 높이가 403m라는 친절한 안내판(개인이 설치한 모양)도 보이고... 403봉 정상에서는 벽방산의 하얀 암벽 등 진행방향의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  소나무 숲속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가다보면, 도심에서 지친 몸과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비온 뒤의 공기에는 티끌 한 점 찾아볼 수 없고, 가녀린 바람을 타고 찾아 온 피톤치드는 청량하기만 하다. 어느새 내 가슴속은 맑고 시원한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채워져 있다.

 

 

▼  천개산, 정상에는 등산객들의 휴식을 위한 정자가 세워져있고, 한 켠에 ‘無人 산불감시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난한 산이어선지 공식적인 정상표지석 하나 없이, 감시탑의 철망에 개인이 붙여놓은 ‘오르고 싶은 산, 천개산 521m’라는 푯말만이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천개산 정상에서는 거제도가 잘 조망되고, 진행해야할 방향에는 벽방산의 암벽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온다.

 

 

 

▼  안정재, 천개산 바로 아래의 헬기장과 은봉암 갈림길을 지나면, 고성만이 잘 조망되는 전망대를 만나게 되고, 곧이어 안정재 林道에 내려서게 된다. 고갯마루에는 간이매점 같은 허름한 施設物이 보이나 문이 굳게 닫혀있다. 안정재는 지나온 천개산과 가야할 벽방산의 딱 중간에 해당하는 지점(0.7Km)으로, 옛날엔 동쪽 안정리와 서쪽 완산리 주민들이 넘나들던 고개란다.

 

 

 

▼  안정재에서 벽방산을 향해 능선을 치고 오르면, 곧바로 나무계단이 마중 나온다. ‘여보! 계단이 몇 개인지 알아요? 249개나 되네요.’ 그냥 걸어 오르기만 해도 힘이 드는데도, 계단의 숫자까지 일일이 헤아린 그녀!, 그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힘들어 죽겠다고 끙끙거렸었다. 不可思議... 그래서 옛 賢人들이 못 믿을 것 중의 하나를 女子로 꼽았던가 보다. 오르는 길에 잠시 숨을 돌리며 뒤돌아보면, 발아래 안정재의 임도가 뱀이 똬리를 틀듯이 꿈틀거리고 있다.

 

 

▼  나무계단이 끝나면 너덜지대, 너덜지대 끄트머리의 오른편에 품삯을 주고 쌓은 듯 싶은 돌탑(경상도 지역에는 이런 돌탑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을 지나면, 신우대 숲 사이를 뚫고 등산로가 이어진다. 연녹색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는 신우대는, 아직은 겨울의 끝자락이건만, 제철을 잊어버린 양 벌써부터 봄기운이 완연하다. 옛날엔 이 신우대 숲속에 만리암이란 암자가 있었단다.

 

 

 

▼  만리창벽(萬里蒼壁), 신우대 숲을 지나 정상을 향해 놓여있는 가파른 나무계단을 밟으며 오르다보면, 왼편으로 병풍처럼 널따랗고 웅장한 바위 벼랑이 보인다. 碧芳八景 중 제1경인 만리창벽이다. 벼랑 옆으로 펼쳐지는 쪽빛 바다와, 파도를 타고 넘실대고 있는 조그만 섬들이 마치 한폭의 山水畵를 보고 있는 듯 아름답기 그지없다.

 

 

 

▼  마지막 가파른 암릉지대에 있는 나무테크 계단을 오르면 정상이다. 별로 넓지 않은 바위투성이의 정상에는 자연석으로 만든 멋진 정상표지석이 서 있다. 정상에 서면 ‘南道第一의 展望臺’라는 어느 분의 얘기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준다. 고성만과 사량도, 올망졸망한 섬들이 잔잔한 파도를 타고 흘러 다니고 있다. 쪽빛 바다에 떠 있는 올망졸망한 섬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정겨움을 느끼게 해준다.

 

 

 

 

▼  정상에서 안정사로 下山하려면 오른편이 수백길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암릉을 따라 내려서야 한다(안정사까지 2.3Km). 절벽을 따라 안전시설(목책)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암릉은 위험하다는 선입견은 버려도 좋을 듯... 목책에 가까이 다가서면 벽방산 정상을 떠받치고 있는 절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암릉을 통과한 후, 별다른 특징이 없는 능선을 따라 얼마동안 내려오면 주능선 안부 사거리에 닿게 된다(의상암 0.2km, 벽방산정상 0.7km).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고성의 은월리이고, 곧바로 나아가 능선을 타면 의상봉(549m)으로 해서 황리에 닿게 된다. 안정사로 내려가려면 물론 오른편으로 내려서야만 한다. * 碧芳八景 중 제2경인 옥지응암(玉池鷹岩)?? 옥지응암은 여기의 암봉을 매의 형상으로 보고 건너편으로 보이는 천개산을 꿩의 형상으로 보아 지은 이름이란다.

 

 

▼  의상암, 주능선 사거리에서 急傾斜 내리막길을 잠깐(200m) 내려서면, 山비탈에 위태롭게 자신의 몸체를 의지하고 있는 자그마한 암자가 보인다. 新羅 문무왕 5년(서기 645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천년고찰 의상암이다. 터가 비좁은 탓에 규모가 큰 殿閣들은 앉힐 수가 없었는지, 조그만 전각들만 여러 채가 보이는데, 오랜 연륜 만큼이나 낡아서 금방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롭다. 寺刹 입구에는 「남도제일의 도장(南道第一의 道場)」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있다. 그러나 스님들만의 도장인 듯, 일반 신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  의상암에서 가섭암까지는 무지막지한 急傾斜, 찾아오는 신자들의 편의를 위하려는 듯, 의상암까지 차량통행이 가능한 시멘트포장 林道가 개설되어 있다(그러나 四輪驅動 車輛이 아니면 불가능할 듯). 임도는 가능하면 경사를 줄여보려는 듯, 갈之자를 연이어 만들어내지만, 사람이 걸어 내려서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급경사 지름길을 이용해 두어 번 임도를 가로지르면 드디어 과거칠불(過去七佛) 가운데 여섯 번째 부처인 가섭을 모셔 놓은 가섭암이다. 가섭모종(迦葉暮鐘), 가섭암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가 碧芳八景 중 하나로 꼽힌다지만, 古風스런 殿閣은 눈에 띄지 않고, 새로 짓고 있는 특이한 구조의 전각만이 파란색갈의 포장에 덮여있다.

 

 

▼  산행날머리는 안정사 앞 駐車場

가섭암에서 안정사까지는, 같이 걷는 이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좋을 만큼 널따란 임도, 왼편의 돌담을 잠깐 벗어나면 만나게 되는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千年古刹 안정사이다. 그러나 자그마한 이정표가 숨은 듯이 가려져 있어 놓칠 염려가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박정희 前대통령과 영부인인 육영수여사를 함께 모시고(엄청나게 큰 초상화) 있는 法堂 옆에서 감로수 한 모금 마신 후, 종루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면 얼마 안 있어 주차장이 보인다. * 안정사(安靜寺), 新羅 무열왕 1년(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에와 조선시대, 가깝게는 1900년대에 걸쳐 중수를 거듭한 끝에 최근에는 이 절이 법화종에서 가장 큰 사찰로 발전하였다. 文化財로는 國寶는 없고, 경남유형문화재 제80호인 대웅전이 있다.

 

금산(錦山, 701m)

 

산행코스 : 상주리→약수터→쌍홍문→보리암→금산 정상→단군성전→상사바위→제석봉→쌍홍문→상주리 주차장 (산행시간 : 3시간)

 

소재지 :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과 이동면의 경계

산행일 : ‘11. 2. 20(일)

같이한 산악회 : 서울가고파산악회

 

특색 : 아름다운 閑麗水道海上國立公園에, 산으로서는 유일하게 포함될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산이다. 奇巖怪石과 남해바다의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는 一石二鳥의 산이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낀 등산로를 영험하다는 보리암을 참배하는 마음으로 걸어 오른다면, 특히 다른 산에 비해 다소 짧은 거리이니 ‘느림보의 미학’을 실천하며 오른다면 틀림없이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 될 것이다. 

 

 

 

▼  산행들머리는 상주리 주차장

남해고속도로 하동 I.C를 빠져나와 19번 國道를 타고 남해읍 방면으로 달려서 남해대교를 건너면 남해도이다. 계속해서 더 들어가면 남해읍을 지나 남해도의 맨 끝자락에 있는 상주리에 도착하게 된다. 도로변에 위치한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능선의 화강암 바위들이 햇살을 받아 더 멋지게 앞으로 다가온다. 등산로 입구에는 國立公園임을 알려주는 표시석이 서 있다. 금산의 방향을 가로막고 있는 음식점 옆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탐방지원센터를 통과하면 바닥에 납작한 돌을 심어 만든 고풍스런 등산로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흙길은 나무 봉을 이용한 계단, 너덜 길은 돌계단으로 넓게 만드는 등, 國立公園답게 등산로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  물기 한 점 없는 계곡을 건너면 이어서 약수터, 얼마나 가물었는지 약수는커녕 물기조차 구경할 수 없다. 접근이 용이한 산이어서인지, 산의 初入인데도 불구하고, 산을 오르는 것을 뒷전으로 미룬채로 길가에서 술잔을 나누는 사람들이 보이고 있다. 아서라! 산은 나같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오르면 되는 것을...

 

 

▼  약수터를 지나면 등산로는 급격히 高度를 높이기 시작한다. 일직선으로 힘든 경사는 갈之자를 만들면서... 겨우 700m이니 그다지 높은 산이 아닌데도, 해수면에서부터 산행이 시작되고, 또한 정상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은 탓(2.2Km)에 등산로는 자연스레 急傾斜를 만들어 내고 있다.

 

 

 

▼  쌍홍문(雙虹門),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서면 삼신산의 네 仙女가 놀았다는 사선대가 보이고, 금산의 관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쌍홍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쌍홍문은 커다란 바위에 두 개의 구멍이 뻥 뚫린 것이 마치 해골을 보는 듯, 원래는 천양문이었는데 원효대사가 두 개의 구멍이 마치 쌍무지개 같다 하여 쌍홍문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단다. 역시 깨우친 賢人들 눈에는 같은 사물도 이렇듯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내 눈에는 해골로 보이는데도...

 

 

 

 

▼  쌍홍문으로 들어서면, 하나의 커다란 동굴이다. 입구부터 돌계단을 이용해 오르고, 많은 계단을 올라야 동굴을 벗어날 수 있다. 굴속을 통과하면서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또 하나의 경이로운 세상이다. 왼편 구멍으로는 계단을 따라 쌍홍문으로 줄지어 오르는 群像들이 늘어서 있고, 오른편 구멍으로는 저 멀리 남해 閑麗水道의 萬頃蒼波가 넘실거리고 있다.

 

 

 

 

▼  쌍홍문에 들어서면 머리 위로 구멍이 뚫려있어 파란 하늘이 보이고, 옆으로는 몇 개의 구멍이 더 뚫려 있는 것이 보인다. 뒤돌아보면 검을 짚고 장군암(일명: 수문장)이 지키고 있는데 그 姿態가 자못 빼어나다. 지금이 겨울철임에도 장군바위 표면을 파릇파릇한 넝쿨식물(송악)들이 둘러싸고 있다. 역시 이곳은 따뜻한 남쪽나라... * 송악 : 산형화목 두릅나무과의 상록 덩굴식물로서 담장나무라고도 한다. 보통 해안과 도서지방의 숲속에서 볼 수 있으며, 가지에서 공기뿌리가 나오기 때문에 암석이나 다른 나무에 붙어 자란다. 잎은 두터운 가죽질로 윤기가 나는 짙은 녹색이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잎과 줄기는 지혈작용과 경련을 멈추게 하는 작용 등이 있어 한방에서 사용하며, 지지하는 물체에 따라 독특한 모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관상수로도 이용되고 있다. 참고로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의 송악은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되어 있다

 

 

▼  쌍홍문을 통과하면 등산로는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단군성전을 거쳐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고, 오른편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보리암을 거쳐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오른편에 있는, 돌로 바닥을 두드리면 장구소리가 들린다는 음성굴을 지나 조금 더 오르면 그 유명한 보리암이다. 거대한 대장봉 아래에 자리 잡은 보리암은 新羅시대 때부터 海水觀音道場으로 이름이 났었단다. 어쩌면 많은 人波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 듯...

 

 

 

 

▼  보리암(菩提庵), 신문왕 3년(683)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라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1660년(현종 1) 왕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이라고 바꾸었다. 전국의 3대 기도처의 하나이며 양양 낙산사 홍련암(강원문화재자료 36), 강화군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힌다. 문화재로는 보리암전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4)이 있다.

 

 

 

▼  보리암의 보리(菩提)는 깨달아 도를 이루었다는 뜻으로,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빌면 뭔가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진다고 소문이 난, 영험하고 자비스런 관음기도 도량이란다. 그래서 불자나 여행객들이 끊이지 않고 찾아오고, 오늘도 역시 관음보살상 앞에는 간절한 소망을 빌고있는 불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해수관음상 앞에 서면, 발아래 閑麗水道의 시원한 풍광이 시원스레 펼쳐지고 있다.

 

 

 

 

 

 

▼  정상으로 가려면 보리암 뒷편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서야 한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문장암(명필바위)을 지나 정상에 오르면 ‘명승 제39호 금산’이라고 적힌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그 뒤에 금산 제1경인 望臺가 서있다. 망대는 고려시대 때부터 우리나라 최남단의 烽火臺로 사용되어 왔는데, 현존하는 봉화대중 가장 오래된 것이란다.

 

 

 

▼  문장암, 금산 정상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수문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바위이다.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들고 ‘자연보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壯年 분께서 ‘버선바위’로 보이지 않느냐고 물어온다. 그러나 내가 알고있는 상식으로는, 두 개의 바위가 나막신을 나란히 벗어 놓은 형상이라 하여 나막신바위라고도 하고, 명필바위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 명필바위(문장암) : 조선 중종 때 대사성을 지낸 한림학사 주세붕 선생이 쌍홍문을 통하여 정상까지 올라온 후, 금산의 아름다움에 취해 자연암에다 '由虹門 上錦山(유홍문 상금산)' 이라는 글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혹자는 '쌍홍문이 있으므로 금산이 최고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  정상인 제1경 망대(望臺, 701m), 금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로서 사방으로 조망이 뛰어나다. 넓고 아름다운 남해바다의 만경창파가 잘 보인다고 해서 망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상의 남쪽 끄트머리에 에는 烽燧臺가 있는데, 최남단에 위치한 이곳에서 나라의 병난이나 경축 시 불을 피거나 연기로 알렸다 한다. * 南海錦山烽燧臺 : 전국의 봉수경로 5개 가운데 동래에서 서울에 이르는 경로에 속한 최남단에 자리 잡고 있어 출발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동쪽으로는 창선면 대방리 봉수대를 거쳐 진주로 연결되었으며, 서쪽으로는 남면 봉수대를 거쳐 순천 돌산도로 연결되었고, 북쪽으로는 이동면 원산봉수대로 연락을 하였다.

 

 

▼  망대 안내판 앞, 정상 표시석(681m)이 서있어서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망대가 정상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에는 높이가 701m인데, 정상표시석에는 높이가 681m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념사진 찍도록 배려한 듯한데, 이왕이면 고도표시를 일치시켰으면 좋을 듯, 일치시킬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에 대한 안내가 필요하지 않을까? *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막을 짓고 수도를 하는 중에 관음보살을 친견한 후, 이름을 普光山이라 하고 절 이름을 보광사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 뒤에, 산을 비단으로 휘감았다는 의미로 비단 錦자를 써서 錦山이라고 바꿔 불렀단다.

 

 

▼  망대에 올라서면 視野가 시원스레 열린다. 보리암 주변의 奇巖怪石들과, 한려수도의 시원한 풍광이 一望無題로 펼쳐지고 있다. 여유를 갖고 시야를 돌려보면 그야말로 絶景, 자연이 빚어 놓은 壽石展示場은 눈길이 가는 곳마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저 멀리 남해바다의 萬頃蒼波가 넘실거리는데, 그 파도위에 자그마한 섬들이 마치 돛단배인양 두둥실 흘러 다니고 있다. 아! 저런 아름다움이 있기에 이곳 금산이 山이면서도 유일하게 한려수도에서 포함되어 있나보다. 이곳뿐만 아니라, 금산 어느 곳에서나 기암괴석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쉽게 접할 수 있다.

 

 

▼  下山은 당군성전 방향으로 잡는다. 등산로는 흙길, 폭신폭신한 것이 그야말로 동네 야산의 산책로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러한 숲속 오솔길을 걷는 산행은 모든 것이 여유로움 그 자체이다. 정상을 빠져나와 헬기장을 지나면 곧이어 오른편에 당군성전으로 향하는 小路가 보인다.

 

 

 

 

▼  군성전은 한옥 지붕을 올린 시멘콘크리트 이층건물, 환인, 환웅, 단군의 세분 할아버님을 모시고 있다 한다. 눈에 익은 전통건물이 아닌 낯선 퓨전 한옥이서인지, 별다른 감흥이 다가오지 않기에 곧바로 발걸음을 돌리고 만다. 등산로 곁에는 단군성전에서 재배하는 것으로 보이는 밭이 있는데, 푸성귀들의 잎이 푸릇푸릇하다.

 

 

▼  단군성전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수백 길 절벽위에 치솟은 거대한 암봉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웃집 처녀를 짝사랑했던 총각의 전설이 서린 상사바위이다. 상사바위에서 바라보는 조망도 일품이다. 보리암 주변의 기암괴석들이 빠짐없이 눈에 들어오고, 한려수도의 秀麗한 풍광이 눈앞에 빈틈없이 들어차고 있다. 건너편 정상아래, 절벽위에 위태로이 놓여있는 보리암이 손에 잡힐 듯이 다가온다. 紀念寫眞 찍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아니나 다를까 정상에는 아름다운 絶景 속에 자신의 모습을 심으려는 사람들로 꽉 차 있다.

 

 

 

 

 

 

 

 

▼  제석봉, 부처를 모시는 불법을 지키는 신(神)인 제석천(帝釋天)이 내려와 놀다 갔다는 제석봉. 입구에서 보았던 화강암 바위들이 좌우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한편에 보리암이 있다.

 

 

 

▼  상사바위에서 좌선대와 제석봉을 거치면 아까 산을 오를 때 통과했던 쌍홍문이 나온다. 쌍홍문부터는 지나왔던 등산로를 따라 내려선다. 산행을 하면서 가슴에 담아 놓은 ‘錦山의 絶景’을 꺼내서, 하나하나 손질한 다음, 추억이라는 빈 공간에 다시 쌓는 시간으로 만들면서....

 

미륵산(彌勒山, 461m)-현금산(縣錦山, 386m)

 

산행코스 : 세포고개→삼거리봉→현금산→작은망→미륵치→미륵산(봉수대 461m)→미래사→띠밭등→용화사→주차장→관음사→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30분)

 

소재지 : 경상남도 통영시 봉평동, 미수동과 산양읍의 경계

산행일 : ‘11. 2. 6(일)

같이한 산악회 : 서울가고파산악회

 

특색 : 미륵산은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사바세계의 용화수 아래에서 삼회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리라는 불교 설화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1억2000萬年前 중생대 백악기 말기 분출된 화산으로 인해 생긴 산의 정상에 올라서면, 다도해와 인근해역이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展望臺이다. 산이 별로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험하지도 않아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으며, 등산로 주변이 소나무가 우거진데다, 가끔씩 동백나무와 편백나무 群落까지 펼쳐져있어 겨울철에 찾아와도 色感에 물씬 빠져볼 수도 있다.

 

 

▼  산행들머리는 통영시 미수동 세포고개(미륵산 정상까지 3.1Km)

대전-통영고속도로의 통영I.C를 빠져나와 통영 市內를 통과한 후, 통영대교를 건너 오른편 1021번 지방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통영시 미수동 세포고개에 다다르게 된다. 왼편 미륵산 방향에 있는 버스승강장의 뒤편 언덕을 올라서면서 시작되는 산행은, 준비운동을 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급경사 오르막길이 맞이한다. 등산로는 오른편에 야트막한 돌담을 끼고 이어지는데, 등산객들의 출입이 뜸한 탓인지 미륵산의 有名度에 비해서 비좁고 험하다.

 

 

 

▼  苦盡甘來, 고생 끝에 만나게 되는 눈의 즐거움, 웬만한 오르막길들은 傾斜를 줄이기 위해 갈之자를 만들어 주는데도, 이곳은 그냥 일직선으로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기 때문에 초입부터 등산객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 숨이 턱에 차도록 20여분을 오르면 왼편 나무숲 사이가 빼꼼히 열리니 놓치지 말아야할 일이다. 숲의 끄트머리 암벽위에 올라서면, 사량도를 향해 열린 바닷길과 와룡산, 수태산, 무이산 등의 조망이 탁월하니 말이다.

 

 

▼  展望臺에서 다시 10여분을 오르면 상촌부락에서 구망산을 거쳐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게 되는 삼거리봉(산양읍사무소 1.9km, 세포고개 0.9km, 미륵산정상 2.2km, 케이블카승강장 2.5km)에 닿는다. 삼거리봉은 비록 319m에 불과하지만, 산행들머리의 해발이 0m에 가까운 바닷가이기 때문에, 내륙의 400~500m급 山을 오르는 것만큼 힘이 든다. 일부 사람들은 이곳을 구망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倭寇를 경계해 망을 봤다고 전해지는 地名을 유추해 볼 때, 남쪽으로 視野가 트이지 않는 이곳을 구망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  현금산은 無人산불監視塔이 있는 봉우리? 삼거리봉에서 안테나가 있는 봉우리까지 두 개 정도의 봉우리를 지나왔지만 현금산이라는 標式은 구경할 수 없었다. 다만 산불감시탑이 있는 봉우리에 심어져 있는 삼각점을 보고 유추해 볼 따름이다. 봉우리 근처에는 통영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전망바위가 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번쯤 내다보고 갈 일이다. 산불감시탑을 지나면 등산로는 무선관리사업단의 안테나와 軍 벙커를 비켜서 작은 고개에 닿게 된다. 고갯마루 건너로 작은망의 우람한 자태가 바라보인다.

 

 

 

 

▼  작은望(정토봉), 귀한 果實을 어찌 쉽게 얻을 수 있으리오. 빼어난 조망을 보여주기 때문에 望자가 붙었다는 작은망은, 제법 험한 바윗길을 통과하고 나서야 그 자태를 보여준다. 가는 길 도중 오른쪽으로 열린 석문을 지나면 작은망(望) 정상이다. 여기서의 '望'은 거제도의 望山처럼 조망의 빼어남을 부각하기 위한 의미인 것이다. 작은 돌탑 두기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망 정상의 조망은 이름그대로 빼어남을 자랑한다.

 

 

 

▼  산양읍 방향 야시골 논밭의 이랑들이 부드러운 물결을 이루며 퍼즐처럼 펼쳐져 있다. 二年 전 설흘산에 올랐을 때, 산에서 내려다보던 다랑논을 연상케 해준다. 耕地整理로 인해 부드러움을 잃어버린 내륙의 들판에 식상한 내 눈은, 어느새 다랑이 논의 곡선을 따라 편안함을 찾아가고 있다.

 

▼  < 지나온 능선, 저 멀리 산불감시탑이 보이는 봉우리가 현금산 >

 

 

▼  눈을 돌리면 충무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편 파란색 다리가 통영대교, 오른쪽 충무교 바다 속으로는 해저터널이 지나고 있다. * 해저터널(483m)은 1931년 착공하여 16개월만에 완공한 동양최초의 바다 밑 터널로서, 바다 양쪽을 막고 그 밑을 파서 콘크리트터널로 만들었다.

 

 

▼  작은망에서부터는 본격적인 내리막길. 미륵치로 내려서기 직전 좌측 암봉도 놓치지 말고 올라봐야 할 곳이다. 암봉위에는 작은망처럼 돌탑과 크고 작은 功德塔들이 보이고, 충무시가지와 사량도 방향 한려수도가 잘 조망된다. 내리막길은 종착역인 미륵치에서 그 숨결을 다한다.

 

 

 

 

▼  미륵치, 지금과 같은 道路가 놓이기 전, 미륵도의 남쪽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나무를 한 지게 가득해가지고, 이 고개를 넘어 통영장에 내다 팔았단다. 오늘 산행 내내 큰 나무를 볼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의 나뭇짐 탓이 아닐까? 그들의 고단했던 삶은 이렇게 빼어난 절경까지도 눈에 들어차지 않았을 것이다. 미륵치는 左右로 용화사와 미륵사, 앞뒤로 미륵산(정상까지 0.8Km)과 현금산 등 四通八達의 交叉路이다.

 

 

▼  미륵치를 지나면, 곧바로 사람의 키를 훨씬 넘게 웃자란 山竹群落, 산죽군락이 끝나면서 등산로는 바윗길로 바뀐다. 바윗길은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지만, 급경사를 만들어내고 있어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  바윗길의 끄트머리에서 만나게 되는, 鐵계단을 오르면 오른편에 돌무더기를 머리에 위고 있는 바위 展望臺, 그리고 잇따라 나타나는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가쁜 호흡 위로 하늘이 활짝 열린다. 나무계단 윗자락의 왼편, 名品 소나무 한그루가 저 멀리 閑麗水道를 오연히 내려다보고 있다.

 

 

▼  걷고 있는 등산로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바위들은 하나하나가 생긴 그대로 좋은 쉼터인 동시에 빼어난 전망대를 만들어 주고 있다. 바위에 올라 넘실거리는 파도를 따라 흘러 다니는 섬들을 소리쳐 불러본다. 연화도! 욕지도! 그리고 사량도!

 

 

 

 

▼  미륵산에서는 저렇게 오붓하게 산행을 즐기고 있는 행복에 겨워보이는 가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마 산이 통영시내에 위치하고, 또한 오르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미륵산은 비록 바위산이지만 그다지 높지도 않고, 험하지도 않을뿐더러, 약간 험하다싶으면 어김없이 나무계단 등 安全施設을 설치해 놓았다. 거기다가 케이블카가 山의 頂上까지 사람들을 올려다 놓으니, 男女老少,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  미륵산 정상, 명품소나무에서 다시 한번 봉우리를 치고 오르면 하늘이 열린다. 왼편에는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前面은 거대한 암봉을 나무테크로 된 계단들이 둘러싸고 있다. 여기저기 넘치는 사람들의 물결들이, 문득 都心에 위치한 산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 준다. 정상은 한쪽 귀퉁이 정상표지석 근처의 바위지대를 빼 놓고는 온통 나무테크로 둘러싸여 있다.

 

 

 

▼  미륵산 근처의 봉우리나 섬들은 모두 佛敎의 色彩가 물씬 풍기는 이름들이다. 미륵봉, 정토봉, 세존도, 연화도 등등... 이는 미륵산이 彌勒부처가 사는 곳이고, 그 미륵부처가 추구하는 삶이 龍華思想이 아닐까? 그래서 미륵산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大刹의 이름도 용화사일 것이고... 눈 가는 곳마다 구경거리가 넘치는데, 거기다 부처님 마음 한 자락 올려놓으니 이곳이 바로 極樂이 아닐까? 봉우리 너머로 한 폭의 水彩畵 같은 바다가 예쁘장한 섬들을 가슴에 가득 안고 있다.

 

 

▼  날씨가 맑으면, 북쪽이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항이고, 사량도의 지리망산과 칠현산, 통영대교와 충무교, 저 멀리 거제대교와 거제도의 명산들, 한산도의 제승당, 비진도, 그리고 정반대쪽 산양읍 뒤로 욕지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질 터인데... 아쉽게도 가스에 쌓인 주위는 어슴푸레 윤곽만 보이고 있다.

 

 

▼  정상에서 미래사 방향으로 내려다보면, 바로 앞에 정상보다 조금 낮은 암봉이 보인다. 옛날에 봉수대(烽燧臺)가 있던 곳이란다. 그 옛날 저 봉우리 위에서는 얼마나 많은 연기가 흩날리고 있었을까? 수없이 많이도 이 땅을 침범했던 倭寇들이 육지에 발을 디디려면 필히 남해바다를 건너야만 했을 터이니 말이다. 봉우리 위에 올라서면 널따란 분지에 봉수대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점심상을 차린 人波들이 날리는 김치냄새만 天地를 진동하고 있다.

 

 

▼  미래사로 가기 위해서는 나무테크로 된 계단을 따라 내려서야한다. 박경리선생 묘역 전망대와 당포해전 전망대 등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용화사로 내려가는 등산로에서 벗어나 왼편으로 갈리게 된다. 등산로는 능선을 따라 편안하게 고도를 낮추어 준다. 등산로 주변에는 간간이 편백나무들, 코끝에 피톤치드의 향이 맴도는 것 같다.

 

 

 

▼  능선을 따라 20분 조금 못되게 걸어내려 오면(정상에서 약1Km) 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전면의 大路는 동아줄로 막혀있고, 미래사로 가려면 오른편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서야 한다. 용화사로 가려면 미래사를 탐방한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 나와, 왼편 길로 내려서야만 한다(용화사까지 2.3Km). 편백나무 숲길을 잠시(100m) 걸어내려 가면, 오른편 편백나무 기둥사이로 미륵사가 보이기 시작한다. 미래사 주위의 편백나무 숲은 전국 사찰 임야로써는 유일한 것으로서, 70여 년 전 일본인이 심어 가꾸다가 해방이 되어 돌아가자, 미래사에서 매입하여 오늘날의 큰 숲으로 가꾸어 온 것이라고 한다.

 

 

▼  미래사(彌來寺), 효봉(曉峰)스님의 상좌였던 구산(九山)스님이 석두(石頭), 효봉 두 큰스님의 安居를 위해 1954년에 세운 암자로서, 경내의 삼층 석탑에 티베트에서 모셔온 부처님 진신사리 3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효봉스님 : 우리나라 법조사상 최초로 임명된 법관이었던 이력 때문에 판사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사형선고를 내린 뒤 그 괴로움과 삶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판사직을 버리고 엿장수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방랑생활을 했다 하여 ‘엿장수중’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또 다른 별명인 ‘절구통 수좌’, ‘무(無)라 노장’에서 알 수 있듯이 고행과 정진을 철저히 한 수행자였다.

 

 

 

▼  산중 너른 터인 띠밭등, 깔끔한 화장실까지 갖춘 널따란 분지에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다. 아무래도 띠밭등이란 띠를 두른 광장이 등짝처럼 넓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인 듯 싶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가면 미륵산 정상으로 가게 되고, 용화사는 前面의 널따란 자갈 林道를 따라 내려서면 된다.

 

 

▼  용화사(龍華寺), 신라 선덕여왕 때 은점이 정수사로 창건, 朝鮮 인조6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52년 중창하고 용화사로 이름을 고쳤다. 용화사는 다른 사찰들과는 달리 일주문이 없고, 절로 들어서는 입구의 돌기둥에 붉은 글씨로 ‘미륵산 용화사’라고 적혀있다. 대웅보전을 대산하고 있는 普光殿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249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정문화재는 아니지만 사찰 입구의 ‘사사자법륜탑’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 양식의 원주석탑으로 진신사리 7과(顆)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미래사와 용화사는 치열한 구도의 길을 걸은 것으로 유명한 효봉큰스님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  산행 날머리는 용화사 駐車場, 용화사에서 잘 닦인 진입로를 따라 10분 정도 내려서면 용화사주차장(有料)이다. 잔자갈을 곱게 깔아 놓은 진입로는, 왼편에 용화소류지를 끼고 이어지다가, 소류지의 댐 아래에 있는 주차장으로 연결시켜준다.

 

 

 

▼  연녹색으로 물든 觀音寺 주변은 이미 봄날이었다.

미래사까지 답사하는 장거리 코스로 산행을 한 후, 집결지인 주차장에 도착했으나 주어진 시간은 아직도 한 시간이나 남았다. 주차장 우측으로 난 이정표(관음사까지 0.4Km)를 따라 관음사(朝鮮 영조 8년 창건)까지 다녀오기로... 미륵산의 스님들은 미륵불이 說法할 세 곳의 장소를, ‘모악산 금산사’와 ‘속리산 법주사’ 그리고 세 번째 설법지가 이곳 미륵산으로 믿고 있단다. 그래서 이곳 관음사의 입구인 普光樓의 바깥쪽 현판을 ‘當來禪院’이라고 새겨 놓았나 보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대웅보전이 있어야할 자리에 車進殿이라는 殿閣이 들어서 있다(물론 사찰을 다 둘러보아도 大雄寶殿은 찾을 수 없었다). 수레를 천천히 굴린다? 뭘 의미하는 지를 고민하다가 ‘스님들의 말장난’으로 치부해 버리며 절을 벗어난다.

 

 

 

 

미륵산에 오르면 통영을 왜 藝鄕이라 일컫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곳에서는 누구나 비경을 표현할 詩語를 찾게 될 것이고, 상상의 캔버스를 펼치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 청마 유치환, 김춘추, 박경리, 전혁림, 김상옥, 윤이상 등 통영은 많은 예술인들을 배출했으며, 지금도 수많은 藝術家들이 활발하게 作品 활동을 하고 있다.

제약산(1,018m)

 

산행일 : '05. 10. 9

소재지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과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

산행코스 : 표충사-서상암-제약산-사자평-고사리분교-층층폭포-표충사

함께한 사람들 : 산과 하늘 

 

 

휴~

요리조리 찾아  찾아...독학으로 배운 솜씨입니다

마음에 안차겠지만 이해하여 주시길...

 

보보스 덕택에...

앞으론 카메라 가지고 다닐 자격 생겼심다.

고마워~

 

 

 

 

 

 

 

 

 

 

 

 

 

 

 

 

 

 

황매산(1.108m)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과 함천군의 경계

산행일 : '06.5.7

함께한 산악회 : 산정산악회(낙성대와 동행)

산행코스 : 장박리-너백이쉼터-삼봉-황매산 정상-철쭉군락지-모산재-철계단-모산재 주차장 

 

 

 

 

철축으로 유명한 산이고, 지금이 철쭉철인지라 나섰는데 올해는 철이 이르다는 메스컴의 보도와는 달리 꽂은 아직입니다. 아무래도 다음주 주말이나 되어야 만개할 듯... 그러나 소문이 나서인지 산에는 온통사람들로 넘칩니다. 하기사, 철쭉군락지인 황매평전까지 자동차가 올라오니 넘칠 수 밖에요....

 

 

처음 만난 진달래 무리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안내도에는 여기를 철쭉군락지라고 적었지만 아무래도 군락지는 황매평전이 아닐까하네요. 철쭉은 아직 꽃몽오리를 열지 않았습니다. 다음주면 아마 만개할 것 같습니다.

 

 

정상인 황매봉입니다.

사람들로 넘쳐서 혼자 모습을 담는건 불가능... 뒷편의 아줌마가 더 잘 나왔네요. 황매산은 해발1,108m이며, 합천호 푸른물에 산자락을 담그고 상,중,하봉의 산그림자가 잠기면 그 형상이 마치 호수에 떠있는 매화와 같다고 해서 수중매라고도 불린답니다. 전국최대인 8만평의 철쭉 군락지로 유명하지요.

 

황매봉 앞의 암봉

 

 

암봉에서 바라본 황매평전, 평전까지 자동차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 평전에는 주민들이 먹거리촌을 만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오른쪽으로는 영화촬영지가 있고요.

 

황매평전.

 

 

모산재(767m)입니다. 황매산의 줄기이지만 분위기는 황매봉과 영 딴판이랍니다.

육산에 봉우리만 바위로 형성된 황매봉과는 달리 오통 산 전체가 바위로 형성되어있습니다. 월악산이나 설악산... 분위기가 비슷하지요.

 

모산재에서 보이는 하산길쪽 암릉 왼편의 철계산을 내려갑니다.

 

모산재에서 연암사지로 내려가는 암릉길

 

하산길에 바라본 모산재

 

모산재...영암사지쪽에서

월여산(月餘山, 862m)


산행코스 : 신기마을 주차장→원만마을터→7형제바위→월여산 1봉→2봉→3봉→790봉→지리재→신기마을→신기마을 주차장 (원점회기 산행시간 : 3시간)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과 합천군 대병면의 경계

산행일 : ‘10. 11. 21(일)

같이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월여산은 옛날 달맞이를 했다하여 月迎山이라고도 하고, 정상부에 봉우리가 3개 솟아 있다하여 三峰山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가뭄 때 祈雨祭를 지낼 정도로 이 지역에서는 神靈스런 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나 정상어림은 바위들로 이루어져있어, 산의 知名度에 비해 빼어나게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 점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바윗길에서 크랙을 잡으며 손맛을 즐기는 재미가 있었으나, 최근에 나무테크로 계단을 만들어 버려서 바윗길에서 음미하던 스릴은 사라져 버렸다.

 


▼  산행들머리는 거창군 신원면 신기마을

88고속도로 거창 I.C에서 빠져나와, 거창읍 소재지를 통과한 후, 1084번 지방도와 1034번 지방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신원면 소재지에서 만나게 되는 59번 국도에서 좌회전 한 후, 조금 더 진행하면 신원면 구사리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들어서면 산행들머리인 신기마을 駐車場에 다다르게 된다. 신기리가 生態마을로 지정된 탓인지 제법 널따란 주차장에는 깔끔한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다. 주차장 한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안내판에도 오늘 찾는 월여산의 지도가 아닌 마을의 생태관련 지역을 나타내는 지도가 그려져 있다. 주차장 들머리의 반대편 언덕 아래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산 아래에 도착하려면 아직은 한참을 더 걸어야하지만...). 등산로(農路)의 오른쪽 언덕 아래에 가을걷이가 끝난 다랑이 논이, 정겹게 다가온다. 도로의 갈림길 마다 이정표가 서 있기 때문에, 결코 길 잃을 염려가 없으니 부담 없이 월여산 방향을 향해 걷기만 하면 된다.

 

▼  월여산 방향으로 걷다보면 진행하는 두 방향 모두를 월여산으로 표시해 놓은 이정표가 보이고, 이곳 삼거리에서 오른편 방향으로 진행하면 자그마한 저수지가 나온다. 그리고 저 멀리 이곳 원만마을의 명물인 ‘정자나무’ 보인다. 이 정자나무는 원래 원만마을의 입구를 지키는 나무란다. 원만마을은 지난 1974년 颱風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주민들은 산 아래 신기마을로 이주했단다.

 

 

 

▼  정자나무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또 다른 정자나무가 보이고, 반대편에 건물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집터가 보인다. 이곳이 원만마을의 흔적이다. 집터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다가 우측의 작은 개울을 건넌다. 이곳에 서 있는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월여산 정상으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또 하나 보인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진행방향을 따라 계곡을 건너 발걸음을 옮긴다. 주차장에서 약 20분 정도 걸렸다.

 

 

▼  계곡을 건너면 등산로는 감나무 밭의 중간을 통과한 후(감나무들은 여기저기 붉은 색 감들을 잔뜩 매달고 있다. 농촌의 일손이 달려서일까? 모든 감나무들이 수확을 포기한 것 같다.) 급경사를 이루면서 능선을 향해 치솟는다.

 

 

 

▼  한참을 치솟던 등산로는, 잠깐 완만하게 이어지다가 또다시 한 번 더 솟구친 후, 널따란 분지위에 가쁜 숨을 내려놓는다. 흙으로 된 분지위에는 커다란 바위 몇 개가, 마치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가 내팽개쳐둔 공깃돌마냥 널려있다. 그 숫자 7개라서 이곳을 ‘칠형제 바위’라고  부르나 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좋다. 월여산 정상부의 울퉁불퉁한 바위능선과 그 아래 원평마을, 신기마을이 펼쳐져 있다. 계곡에서 이곳까지 약 20분 정도 걸렸다

 

▼  ‘칠형제 바위’를 뒤로하고 10여분 정도 올라서면 주능선 삼거리에 닿는다. 정상과 반대방향인 오른편은 팟죽재를 거처 追慕公園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정상을 향한 오름길 여기 저기 조망 좋은 전망 바위가 많다.

 

▼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칠형제봉

 

▼  삼거리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한마디로 곱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소나무 一色, 四圍가 온통 누렇게 변해있는데 獨也靑靑 푸른 소나무가 내품는 피톤치드라니... 걷다보면 가끔은 활짝 피어난 억새들에게 둘러싸이는 호사도 누리게 된다.

 

 

 

 

▼  삼거리에서 20분 조금 넘게 걸으면 나타나는 암릉, 전에는 꽤나 험했을 성 싶은 바윗길 위에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깔끔하게 단장된 것이 등산객들을 위해 정비한지 얼마 안 되었나보다.

 

 

 

▼  나무테크 계단을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암릉이 시작된다. 좌측으로는 등산로가 아직 개설되지 않은 암봉이 보이는데, 오늘 산행 중에 만나본 봉우리 중에서 제일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 위험하지 않은 암릉에서 주위 경관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덧 월여산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약 1시간30분이 지났다.

 

 

 

 

 

 

 

 

 

 

▼  월여산 정상, 정상은 열 평이 넘을 듯 싶을 정도로 널따란 盆地로서, 정상을 향해 암릉을 걸으면서 멋진 암봉일 것이라고 떠올렸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흙으로 덮여있다. 한쪽 귀퉁이에 타원형의 원석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월여산’이라고 쓰여 있다. 정상에 서면 또 하나의 암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제2봉이다. 제2봉은 그 빼어난 자태를 한껏 자랑하고 있다.  월여산 정상에 서면  북쪽에 TV 송신탑이 여럿 설치된 감악산이 또렷하지만, 서쪽방향의 황석산과 금원산은 가스에 가려 아스라하다. 그 언저리에 있을 남덕유산과 백두대간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남쪽방향으로 철쭉으로 유명한 황매산, 동쪽으로는 합천호와 대병3산(악견산, 금성산, 허굴산)이 보인다는데 확인할 수는 없었다.

 

 

 

▼  제2봉, 월여산 정상에서 제2봉으로 가는 길은 급경사 내리막길, 조심스럽게 내려선 후, 암봉 위로 오를 수 있도록 매어놓은 로프를 잡고 오르면(안잡고 올라도 크게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또다시 나무테크로 만든 계단을 통해 정상으로 쉽게 오를 수 있도록 배려를 하고 있다.

 

 

 

▼  제2봉의 정상은 순수한 암봉, 바위 봉우리인 탓에 시야를 가리는 나무들이 없어 조망 또한 뛰어난다. 뒤에는 방금 지나온 제1봉의 흙으로 된 봉우리의 뒷모습과 진행방향에 아담한 바위 봉우리인 제3봉의 모습이 뚜렷하다. 가스 탓에 희미하지만 황매산이 어렴풋이 바라보인다. 지리산의 주능선은 그저 짐작으로만 그려볼 뿐...

▼  2봉에서 바라본 1봉의 뒷모습

 

▼  제3봉, 2봉을 내려와 다시 나무테크 계단을 조금만 올라서면 만나게 되는 자그마한 바위봉우리가 3봉이다. 밑에서 바라본 3봉의 자태는 빼어나지만, 막상 봉우리 위에 올라서면, 주위 경관을 바라보는 조망을 빼 놓고는 별다른 특징이 없기 때문에 곧바로 하산을 시작한다.

 

 

 

▼  제3봉에서 바라본 2봉의 뒷모습

 

▼  제3봉에서 하산은 2봉의 반대방향인 지리재 방향으로,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예쁘장한 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곧 이어 산철쭉 群落地가 나온다. 어깨 너머까지 자란 저 철쭉들이 꽃망울 터뜨릴 때면 이곳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天上花園을 만들어내고 있겠지? 이 근처에 있는 황매산이나 황석산 등은 철쭉축제가 열릴 정도로 철쭉으로 소문이 난 곳인데, 이곳의 철쭉 군락지도 제법 넓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곳 거창은 온 山河가 철쭉으로 포위되어 있나보다.

 

 

▼  널따란 平原의 철쭉들 사이로 화강암으로 만든 祭壇이 설치되어있다. ‘월여산 면민 안녕기원 제단’이라 쓰여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이곳에서도 황매산과 마찬가지로 이른 봄철 철꽃축제를 여나보다. 이곳에서 우측 임도로 내려서면 소야마을(3.6Km)이다. 물론 왼편은 신기마을(4Km)이고... 향후 철쭉들의 향연이 펼쳐질 평원지대에는 철쭉이 파도처럼 너울지고, 드문드문 서있는 소나무 그늘 아래에는 잠깐 쉬어가라며 벤치를 만들어 놓았다.

 

 

▼  철쭉군락지에서 바라본 월여산 제3봉, 麻姑仙女 박랑의 아름다운 딸 월여가 서쪽 철마산에 사는 오빠 독지장군을 바라보로 있는 모습이 월여산이란다. 월여는 용의 등을 타고 내려와 용담에서 목욕을 했는데 그럴 때는 어김없이 비가 온다고 한다. 그 비는 玉皇上帝를 모시는 시동 일야가 월여의 모습에 반하여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흘리는 눈물이라고 전해진다.(어느 거창분이 쓴 "남녘의 산"이라는 등산안내서에 나오는 내용)

 

 

▼  지리재를 향하는 길, 초반에는 능선을 따라 防火線을 만들 듯이 伐木을 한 후, 철쭉꽃밭으로 가꾸어 놓았다. 철쭉군락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는 암릉, 지도에는 암릉이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암릉이라고 부르기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게, 큰 바윗돌 몇 개가 바닥에 널려있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산길이 이어진다.

 

 

 

 

 

 

 

 

 

 

▼  지리재, 지도에는 반대편 산으로 진행하는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지만 이곳에 세워져있는 이정표에는 신기마을로 내려가는 방향표시 밖에는 없다. 더 산행을 이어가야만할 이유도 없으니 당연히 왼편 신기마을로 내려선다.

 

▼  지리재에서 만난 밤나무 古木, 짧지 않은 내 生涯, 그간의 삶에서 쌓아온 지식으로는 결코 저리도 큰 밤나무는 있을 수 없었다. 함께 산행을 한 ‘영철君’과 몇 번을 확인해 봤지만 분명히 밤나무였다. 덕분에 난 또 하나의 살아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  지리재에서 신기마을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 급경사를 조금이라도 완화시키려고 네모반듯하게 절단한 통나무를 이용하여 계단을 조성해 놓았다. 다래와 머루넝쿨이 우거진 계곡을 지나면 축조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수중보에 이른다. 수중보 아래의 담수지에서 웃통을 벗어부치고 냉큼 머리부터 감아본다. 아~~ 오늘 산행도 상큼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  밤나무 농원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지어 놓은 듯한 ‘오두막’에서부터 등산로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변한다. 農路의 양측을 따라 펼쳐지는 밤나무의 사이사이에 이상하게 생긴 燈들이 세워져있다. 아마 나방 등 날아다니는 곤충들을 잡는 設備인 듯... 지루하게 이어지는 농로 주변의 산들은 伐木 후, 두릅나무를 심었는지 산들이 온통 벌거벗고 있다.

 

 

고헌산 (1,033m)-백운산(892m)


산행코스 : 외항재→고헌산-소호령-백운산-소호고개-태종마을(산행시간 : 5시간)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두서면, 경상북도 경주시 산내면 경계

산행일 : ‘10. 6. 5 (토)

같이한 산악회 : 송백산악회


특색 : 고헌산과 백운산은 1천미터 급의 큰산, 그러나 일일산행이 가능한 산이다. 산은 자랑할만큼 특색이 있는 아름다움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주변 알프스 山群들의 헌걸찬 山稜을 구경하기에는 더없이 뛰어나다. 하지만 이 구간 90%이상이 방화선길로 되어있어 여름철 한낮에 걷는 것은 그야말로 지옥의 행군이 될 수 밖에 없다.(한강 이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군의 하나인 영남알프스, 고헌산(1032.8m)에서 문복산(1032m), 가지산(1240m), 운문산(1195m)을 거쳐 억산(944m), 구만산(785m), 육화산까지 동서로 뻗은 것을 北알프스라고 한다.)


 

▼  산행들머리는 외항재

69번 국도를 따라 언양읍으로 향하다가, 운문령을 넘자마자 921번 지방도로로 내려선다. 경주시 방향으로 약 4Km쯤 달리다보면 나오는 조그만 마을에서 울주군 상북면 방향으로 우회전, 조금 더 달리면 외항재가 나온다.   

 

▼  외항재에서 진행방향인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입구에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아빠의 산 고현산! 이제부터 우리가 아끼고 가꾸겠습니다’라는 향산초등학교 학생의 글이 알루미늄판에 적혀있다. ‘맞습니다. 맞고요~~’ 그리고 그 곁에는 고현산까지의 거리가 3Km라는 이정표, 등산로 초입은 그야말로 푹신푹신한 양탄자길... 굵은 소나무 밑으로 난 등산로에는 수북하게 솔잎이 쌓여있다. 산행을 진행할수록 등산로 주변의 樹種은 참나무로 변해간다. 

 

 

 

 

▼  외항재에서 낙동정맥을 따라 30분 정도 올라  첫 안부에 서면 방화선을 만나게된다. 방화선은 돌맹이와 토사가 나딩굴어 진행하기가 매우 사납다. 이 방화선은 고헌서봉을 넘어 고헌산, 그리고 백운산까지 이어진다. 덕분에 시야가 탁 트여서 조망은 그지없이 좋다.  

 

 

▼  돌탑이 줄지어 선 능선에 올라서면 등산로는 오른편 구릉을 비켜서 왼편으로 이어진다. 행여나 하고 올라선 구릉엔 ‘高獻西峰(1,035m)’라고 적힌 정상표지석이 고개를 내민다.

 

 

 

 

 

▼  고헌산은 주봉과 서봉 사이를 나무테크로 설치해 놓아 걷기에 편하다. 많은 등산객들이 지나다니다보면 토사유출이 많아져 산이 황폐해지기 쉬운데, 산을 배려하는 정성스런 마음이 보기 좋다.

 

 

▼  고헌산 정상은 밋밋한 능선위에 볼록하니 솟은 구릉, 방화선 우측에 돌탑하나와 정상표지석 3개, 그리고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그 곁에는 영남알프스의 산릉을 깔끔히 조망할 수 있도록 나무테크,.. 정상표지석에는 1,033m로 적혀있는데 그럼 서봉보다 조금 낮다는 의미... 그럼 이 정상표지석은 서봉으로 이사가야하지 않을까?(외항재에서 이곳까지 1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  정상의 나무테크에 올라서면 가지산에서 뻗어 내린 山줄기가 파도처럼 출렁이는 형상, 한 줄기는 평원이 있는 천황산 재약산, 또 한줄기는 능동산 간월산 신불산으로 이어졌다. 바로 앞에 우뚝 솟은 산은 간월, 신불, 영축산일 것이다. 그 아래로는 언양방면의 들판이 발아래 깔려있고...   

 

 

▼  백운산 방향으로는 산불감시 초소가 보이고, 그 넘어론 정맥의 흐름이 눈에 들어온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다시 나무테크를 따라 걸으면 한켠에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臺가 보이며, ‘이곳이 언양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니 신성시 해 달라는 표시판이 서 있다.(외항재에서 3.3Km, 소호령까지는 1.7Km가 남았다)  

 

 

 

 

▼  고헌산에서 소호령으로 내려가는 길은 자갈길인데다 급경사라서 내려서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거기다 Off-Road를 즐기려는 4륜 구동차량들이 파헤쳐놓아서 여간 미끄럽지 않다. 같이 걷던 여자분들 엉덩방아 찧는 모습에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곁에 있던 내 얼굴표정 정리하는 것도 어렵고...

 

  

▼  소호령에서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임도인지 방화선인지 曖昧模糊, 방화선이라고 하기에는 차량이 다녀도 될 성 부르게 길이 잘 닦여 있음이고, 또한 백운산 정상에서부터는 길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소호령 조금 못미처 우측에 움막 비슷한 ‘대성사’라는 사찰이 있다. 여기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을 것 같으나 아직은 1.5리터 정도가 남아있어서 그냥 발길을 재촉해 본다.(정상에서 이곳까지 약 50분 정도 걸렸다)  소호령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면 소호리 마을로 내려갈 수 있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얼마쯤 걷다가,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도로를 버리고 왼편으로 난 널따란 흙길을 따라 진행해야 한다.

 

▼  백운산 오르는 길은 황톳길이 대부분, 간혹 알갱이가 큰 돌들로 이루어진 경사가 심한 길도 나온다. 흙길에 자동차 바퀴가 선연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프로드를 즐기는 사륜구동차의 모습이 보인다. 지나는 길에 인사, 그들 중의 한두 명은 서울의 우리 동네 근처에서 왔단다.   백운산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등산로 주변은 사람 키 정도 되는 소나무가 도열하고 있다. 지금은 6월의 초입, 솔잎이 연한 푸른빛으로 덧칠을 한 것 같아 보여, 그 싱싱함에 한껏 가슴을 열어본다.

 

 

 

 

▼  백운산 정상, 방화선의 한켠에 ‘백운산, 901m’라고 적힌 정상표지석이 세 개나 서있다. 고헌산이나 백운산 모두 정상표지석으로 넘치는 모습, 행정기관에서 세운 것 하나면 족하련만 지방 산악회에서 경쟁적으로 세운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소호령에서 이곳까지는 약 1시간 조금 못되게 걸렸다)

 

 

 

▼  운산 정상을 지나면서 방화선은 끝나고 등산로는 좁은 산길로 변한다. 로프가 설치된 바윗길을 지나서 오르내리는 능선이 몇 개 이어지는데, 진달래 나무들이 눈을 찌를 만큼 좁디좁은 등산로가 계속된다. 얼

굴을 때리는 나뭇가지들과 싸우다 보면 어느덧 호미기맥과 갈리는 삼강봉에 이른다. 

 

 

 

 

 

 

  

   

 

▼  그동안 밋밋한 육산으로 이러지던 능선이 서서히 호미기맥과 갈리는 삼강봉을 지나면서부터 그리 험하지 않은 암릉으로 변한다. 제법 울퉁불퉁한 암봉들이 솟구친 정맥길은 갑자기  생기를 되찾으며 주변의 수림들이 살아난다. 

 

 

 

  

▼  몇 개의 능선을 지루하게 오르내리다 보면, 철탑이 보이고 그 아래 소호고개가 있다. 좌측으로 가면 태종마을 전원주택단지, 우측은 두서면 내와리로 가는 길이다. 태종마을로 가려면 임도를 건너 반대편 기슭으로 내려서야만 한다.(백운산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  산행날머리는 태종마을 회관

소호고개에서 계곡을 따라 20분정도 내려오면 태종마을 전원주택단지, 10여호가 넘는 전원주택들이 마치 동화나라의 집들처럼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단지의 입구에서부터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더 걸어가면 마을회관, 회관 옆으로 흐르는 냇가에서 간단히 씻고, 땀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으면 산행은 마무리 된다.  

 

천성산(千聖山, 922)


산행코스 : 홍룡사 못미처 우측 계곡→원효암→천성산 능선(정상은 군부대)→은수고개→천성산 제2봉→집북재→성불암 계곡→내원사입구 주차장(산행시간 : 5시간)


소재지 : 경상남도 양산시 웅상읍, 상북면, 하북면과 울산광역시 웅촌면 경계

산행일 : ‘10. 4. 17(토)

같이한 산악회 : 송백산악회


특색 : 신불평원 등 인근의 산들과 같이 습지가 많아 가을의 은빛억새로 소문난 산이나, 봄에도 진달래와 철쭉으로 만산홍을 이룬다, 대부분 흙으로 된 산이나 정상어림과 산하동계곡과 성불암계곡 사이의 공룡능선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빼어난 경관을 보여준다.  

 

▼  35번 국도를 따라가다 상북면 대석리에서 홍룡사방향으로 접어들면, 입구에 원효암를 오가는 셔틀버스(요금 3천원) 주차장이 보인다. 원효암까지 한시간여를 운동삼아 걷겠다면 흥룡사 못미처 산행안내판이 있는 지점에서 오른편 계곡으로 진행하면 된다 

 

 

▼  등산로는 계곡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진다. 길가에는 소나무와 편백나무의 숲이 줄지어 서 있는데, 음지 탓일까? 옆으로는 퍼지지 못하고 위로만 쭉쭉 치고 오른 모습이 자못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를 30분쯤 진행하면 주변의 숲은 참나무군락으로 변한다. 등산로는 다시 급경사로 변하고, 그렇게 30분 정도를 더 진행하면 전면에 기기묘묘하게 생긴 바위와, 그 아래 원효암이 숲 사이로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  원효암

신라 선덕여왕 때(646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관음기도도량이다. 법당 뒤편에 ‘신장바위’라는 호법신장이 사찰을 수호하고 있으며, 법당 우측에는 조선시대 후기(1906년)에 조성된 ‘마애 아미타 삼존불’이 평평하면서도 널따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참고로,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당나라에서 건너온 1천명의 스님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여 모두 성인이 되게 했다고 해서 천성산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천성산은 원효대사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  원효암에서 나와 왼편으로 돌아 군부대로 올라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천성산 정상부의 암릉, 저리도 빼어난 경관을 놓치기가 아까워 이리저리 오르는 길을 찾아 10분을 헤매어보았다. 

저리 예쁜 봉우리가 보이는데도 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의 고달픈 현실이다.

천성산의 정상은 軍部隊이니 처음부터 포기를 했지만, 軍시설이 없는 저 예쁜 바위봉우리는 왜 철조망으로 막아놨단 말인가. 여기는 최전방도 아닌데 지뢰를 매설해 놨으니 들어가지 말란다. 무장공비들이 목숨 걸고 침투를 시도했을 정도로 중요시설 같지는 않은데... 그러나 어쩌랴 내 목숨은 하나뿐이고, 가냘픈 숨결이나마 더 오래 이어가고 싶은 것이 ‘人之常情’인 것을....  

 

 

   

▼  천성산 정상의 능선 삼거리

이곳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年初에 해맞이 장소로 소문난 평원이 나오고, 더 나아가면 ‘천성산 제2봉‘으로 가게 된다.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왼편으로 내려가면 억새꽃 축제로 소문난 화엄벌이 나온다. 행여 정상에 있는 바위에 도달할 수 있을까 거의 화엄벌까지 내려가 보았지만 虛事, 다리품만 헛 팔고 돌아왔다.  

 

 

▼  동해의 해돋이를 제일 먼저 볼 수 있다고 알려진 이곳 해맞이 장소에는 軍施設에 안방을 빼앗기고 변방으로 쫒겨난 천성산 정상석이 있었건만, 어느 심술궂은 나그네인지 허리를 동강내버렸는데, 그나마 윗도리는 어디로 사라져버리고 ‘산, 해발 897m’라고 적힌 아랫부분만 숨결을 다한 시체로 비스듬히 누워있다.  

역시 습지가 많은 천성산은 억새, 철지난 억새의 흔적까지 지울 순 없다. 아름다운 은빛 군무가 유혹하는 천성산, 이곳 지자체에서는 매년 화엄벌에서 축제를 열정도... 비록 천성산의 주 능선은 비록 축제의 마당을 빗겨나고 있지만, 그래도 그 본 모습이야 어디 본고장에 뒤지랴... 변방의 서러움을 딛고 찬란히 피어났다가 스러지면서 남겨놓은, 억새의 불꽃영화를 철지난 흑색사진으로 남겨놓고 있다.

 

 

 

▼  해맞이 장소에서 바스러진 억새밭을 지나면 등산로는 두 갈래로 나뉘어 진다. 왼편은 내원사, 천성산 제2봉을 가려면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은수고개로 내려가는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등산로 주변엔 하나의 밑동에서 한꺼번에 여러 개의 가지로 갈리는 특이한 소나무들이 분포되어있다. 모양은 손가락을 둥그렇게 편 채로 두 손을 합친 모양이랄까???

은수고개에는 이정표와 산행안내지도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천성산 제2봉을 가려면 다시 오르막길, 그러나 완만한 경사로이니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  제2봉의 능선에 올라서면 맞은편 암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암릉은 그저 멋지다고 표현하기엔 조금 부족하다 싶을 정도로 빼어난 암릉미를 자랑하고 있다. 멋진 조망을 즐기면서 쉬어가라는 듯, 야외식탁 몇 개가 깔끔하게 놓여 있다.  

 

▼  軍施設 때문에 빗겨 지나온 천성산 제1봉의 모습, 언제쯤 저 봉우리를 밟아볼 수 있으려나...  

 

▼  능선에서 바라본 천성산 제2봉

 

 

▼  천성산 제2봉(비로봉)은 흙산 위에 암봉으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다. 정상의 뾰쪽이 솟은 바위 위에 커다란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우뚝 솟은 정상석은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증명사진 찍으려는 사람들에게는 부담, 바위 위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못 위태스러워 보인다.  정상에서는 사방의 조망이 시원스레 뚫려있다.  

 

 

 

▼  천성산 능선은 영남알프스 등 주변 산에 대한 조망이 좋다고 소문이 나 있지만, 오늘은 사위가 가스로 가득한 탓에 어디가 어디인지 불분명하다. 그저 저기쯤에 그 산이 있으려니...  

 

 

▼  천성산 제2봉에서 집북재로 이어지는 하산로는 경사가 꽤 심하다. 그러나 걱정할 일은 아닐 듯, 이곳 지자체에서 친절하게도 나무테크로 계단을 예쁘게 만들어 놓아서 내려가는데 조금도 위험하지도 그리고 조금도 불편하지 않다.  

  

▼  집북재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요상하게 생긴 바위를 만난다. 자연이 빚어낸 삼층석탑을 닮았는데, 어느 사람은 바위의 옆을 다녀오더니만 의자를 닮았다고 우긴다. 하긴 개개 사물의 의미는 그 사람이 담는 그릇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  집북재에서 성불암 입구까지 이어지는 하산로는 얼레지 群落地

 

작년에 생명을 다해버린 가랑잎 두어 개, 빈가지에 걸려 가녀린 바람에도 힘들어하는데, 그 아래 봄의 정령인양 얼레지가 앙증맞은 꽃 몽우리를 내밀도 있다. 너는 어이 아무도 없는 빈 산중에서 그리 예쁘게도 피어나는가?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봄이 시작되자마자 목 놓아 널 기다리고 있나보다.  

 

 

 

 

▼  성불암폭포

집북재에서 성불암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우측에 보이는 폭포. 지도나 산행 안내판에는 나와 있지 않은 폭포라서 계곡의 이름을 따다 붙여본다. 비록 빼어나지는 않지만, 다른 이름 있는 폭포들에 비에 그리 뒤쳐지지도 않을 수준의 폭포가 연이어 세 개가 겹쳐있다.  

 

 

 

 

 

 

   

 

▼  산행 날머리는 내원사 주차장

성불암계곡이 산하동계곡과 만나는 지점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면 계곡 가장자리를 따라 나무테크가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다. 테크를 따라 걷다보면 전면에 기묘하게 생긴 층층의 바위 위에, 오랜 풍상에 지친 듯 또아리를 틀고 앉은 소나무가 보인다. 그 아래에 진성암이 있고, 날머리인 내원사 주차장은 진성암의 마당을 겸하고 있다.

 

 

 

 

연화산 (蓮花山, 528m), 남산(南山, 427m)


산행코스 : 주차장→공룡화석지→암벽쉼터→연화1봉→황새고개→연화산→남산→안부→청련암→옥천사→주차장 (산행시간 : 3시간)


소재지 :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산행일 : ‘10. 3. 13(토)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그야말로 고향 뒷동산 같은 느낌을 주는 산으로 가족 나들이하기에 안성맞춤인 산,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걸어도, 다른 사람들이 추월해 갈 수 있을 만큼 넓은 등산로, 등산로 주변엔 햇빛을 가려줄 만큼 나무들도 무성하다. 청련암 등 산중 곳곳에 있는 암자도 둘러보고, 하산하는 길에는 옥천사에 들러 위장에 좋다는 약수도 한 사발 마실 수 있으니, 여유로운 가족 나들이 코스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  산행들머리는 옥천사 주차장

고성에서 14번 국도를 타고 마산방면으로 가다가, 마암에서 좌회전 1007번 지방도로로 진입, 영오천에서 옥천사와 연화산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된다.  

 

 

▼  공룡발자국화석지 바로 근처에 들머리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서있다. 안내판 뒤로 벽돌계단이 설치되어있다.  

 

▼  등산로 입구에 공룡발자국 화석지가 있다. 공룡발자국이 저렇게 생겼구나... 트리케라톱스 공룡의 발자국이라는데 머리에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차라리 공룡화석지 위에 세워진 앙징스런 돌탑들이 더 눈에 잘 들어온다.  

  

▼  작은 개울을 두어 번 건너도록 되어있는 등산로는 단조롭다. 그야말로 평범함 그 자체...

 

 

 

 

▼  산행을 시작한지 대략 15분 정도면 암벽쉼터에 도달한다. 표지판은 암벽쉼터인데 암벽은 보이지 않는다. 암벽대신에 주위에 널려있는 바위들은 등산객들이 앉아서 쉬기에 딱 좋다. 그래서 지명의 끝이 쉼터인 모양이다. 암벽이라고 이름 붙인 곳의 바위들은 ‘力拔山氣蓋世이면 공깃돌로 갖고 놀기에 딱 어울릴 정도의 크기다’ 지나가는 말로 던진 조크에 집사람은 그냥 싱긋 웃는 것으로 긍정...  

 

▼  암벽쉼터를 지나면 멋진 소나무 숲 터널이 꽤 길게 이어진다. 경사까지 없는 흙길은 오랫동안 쌓여온 낙엽으로 인해 폭신폭신한 게 걷기에 너무 편하다. 거기다 소나무에서 나오는 진한 피톤치드까지 듬뿍 덤으로 얹어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산행이 어디 있을까?  

 

▼  인생은 塞翁之馬란 말이 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다는 뜻... 소나무 숲을 걷는 행복에 겨워 콧노래를 흥얼거릴 즈음, 갑자기 경사가 심한 오르막이 나타난다. 연화1봉으로 오르는 길...

  

 

▼  지그재그의 오름길을 한 15분 정도 오르면 연화1봉, 정상엔 돌탑과 넓은 평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리고 한편에는 연화산으로 가늘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황새고개로 내려가는 하산로는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만만치 않다.

 


 

 

▼  황새고개

도로 건너편이 가야할 연화산이다. 아스팔트 길을 50m 정도 더 걸어가면 왼편에 연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보인다. 등산로는 산의 밑을 돌아 갈지자를 이루면서 완만한 경사를 만들면서 정상으로 향하기 때문에 걷기에 무리가 없다. 황새고개에서 왼쪽으로 가면 옥천사로 가는 임도이다. 황새고개에서 직접 다음 코스인 남산으로 가는 길도 있다. 

  

 

▼  연화산을 오르다보면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치솟은 측백나무 숲을 만난다. 연화산의 경사가 완만한 등산로를 한참 오르면 이정표(연화산 0.48Km), 정규 등산로를 벗어난 0.25Km 지점에 적멸보궁이 있단다.

 

 

 

▼  연화산 적멸보궁

제일 높은 곳에 극락보궁이 있다. 이 전각의 부처님 복장 안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단다. 이 사찰의 부처님 진신사리는 옥지성 스님이 옥천사 주지로 재임하던 2002년 태국 ‘달마 길상사’와 姉妹結緣을 맺을 당시 태국현지에서 모셔 왔단다. 이 적멸보궁의 특이한 점은 이 사찰에 佛像을 모시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절들은 眞身舍利를 부처님으로 갈음하기 때문에 따로 佛像을 모시지 않는데...  

 

 

▼  적멸보궁을에서 삼거리로 다시 돌아와, 완만한 경사의 능선을 10분 정도 오르면 연화산 정상에 다달을 수 있다.   

 

  

▼  연화산 정상

정상은 제법 넓은 공터, 돌탑과 정상표지석이 길손을 맞이하고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연화봉 능선은 옥천사를 중심으로 시위를 당긴 활과 같다. 연화산은 산세가 연꽃과 닮았다 하여 연화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  남산고개

연화산에서 급경사 내리막길을 치고 내려오면 만난다. 연화산에 오르기 전에 지났던 황새고개에서 만났던 이정표의 남산방향 등산로를 따른 사람들을 이곳에서 만나게 된다.  남산고개에서 남산정상까지는 제법 가파른 바윗길이지만 그리 길지는 않다.

 

 

 

▼  南山

오늘 산행중 제일 좋은 풍광을 보여준 곳이다. 저 멀리 겹겹이 쌓인 능선과 바다를 보면 자연스레 가슴은 뻥 뚤려 버린다. 이런 조망을 위해서 고성군에서 주변의 나무들을 잘라내지 않았을까 싶다.  

 

 

 

 

 

▼  남산을 지나 20여m 나아가면 2갈래 길, 이곳에는 이정표가 없다. 산악회 리본이 보이는 곳을 따라 가파른 등산로를 대략 20분 정도 내려가면 걷기 좋을 정도로 편안한 길이 나온다.   

 

 

▼  靑蓮庵

백련암과 함께 조선 숙종 때 묘욱선사가 세운 암자이다. 이 절의 특이한 점은 삼성각이다. 전면이 3칸으로 된 한 건물에 山嶺閣, 獨聖殿, 七星閣이라는 편액 3개를 나란히 걸어놓았다, 이들 세 편액이 나타내는 신들은 각각 재물과 수명과 복을 관장하는 존재들로서, 다른 사찰에서는 보통 3개의 전각을 합해 三聖閣이라 하면서 당연히 편액도 하나만 걸어 놓는다.  청련암에서 대나무밭만 지나면 곧바로 옥천사에 다다른다.

 

 

 

 

 

 

 

▼  玉泉寺

신라 문무왕때 의상(義湘)이 창건, 옥천사라는 이름은 이 절의 대웅전 뒤에 사철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솟는 샘이 있는 데에서 유래하였단다, 문화재로는 옥천사 임자명반자(壬子銘飯子:보물 495)와 자방루(滋芳樓), 대웅전, 大鐘 등 경남유형문화재 3점이 있다. 참고로 보물495호인 飯子는 절에서 대중을 모을 때 쓰던 쇠북을 일컫는 말이다.  

 

 

▼  玉泉

옥천사라는 절 이름을 만들어 낼 정도로 소문난 샘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이 절을 세우기도 전부터 있었다는 샘인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단다. 샘은 西出東流, 甘露水로 소문난 이 샘은 우리나라 100대 名水에 올라있으며, 위장병과 피부병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1948년부터 샘 위에 옥천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곳 甘露水와 충남 갑사의 감로수, 불국사 석굴암의 감로수, 이렇게 세 곳에 감로수가 있는데, 정월 대보름날 자시에 가면 감로수의 현상과 물맛을 맛볼 수 있단다.   

 

 

▼  옥천사 앞마당의 홍매화, 봄의 전령이라고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꽃망울을 열기 직전이다.

 

 

▼  일주문을 지나 왼편에 푸른 저수지를 끼고 한참을 내려가면 집단시설지구, 그 끄트머리에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던 주차장이 있다. 저수지와 주차장 주변은 고성군에서 공원으로 잘 조성해 놓았다.

 

  

금원산 (金猿山, 1353m), 현성산(玄城山, 965m)


산행코스 : 묘지→암릉 능선→현성산→연화봉→1045봉→금원산→삼거리→관리사무소 (산행시간 : 아르바이트 1시간을 포함하여 7시간20분)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위천면과 함양군 안의면의 경계

산행일 : ‘10. 3. 7(일)

함께한 산악회 : 늘푸른 수토일 산악회


특색 : 산 오르기를 즐기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산은 금원산, 현성산은 금원산에 비해 덜 알려져 있으나, 금원산이 육산인데 비해, 현성산은 바위산인지라 안전사고를 우려해서 찾는 이들이 적었기 때문, 거창군에서 철제계단 등 안전시설을 갖춘 후부터는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또한 현성산은 다른 유명산에 결코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풍광도 매우 뛰어나다.

 


▼  산행들머리는 매표소 조금 못간 지점의 오른편 산기슭

거창읍을 지나 무주방향으로 가는 37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보이는 금원산 자연휴양림,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휴양림 매표소 제법 못 미쳐서 오른편 산기슭으로 접어든다. 물론 등산로는 없다... 만일 이용하지도 않을 휴양림측에 입장료를 내는 것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매표소를 지나 미폭(米瀑)을 경유해서 산을 오르면 된다.  

 

 

▼  길이 없는 등산로(그러나 대부분의 산악회들은 다들 이 코스를 이용하고 있다)등산로로 접어들자마자 가파른 오르막... 가픈 숨을 내뿜으며 10분 정도를 오르면 경사진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바윗길을 따라 가장자리에는 나무 난간이 깔끔하게 세워져 있다.  

 

 

▼  현성산의 특징은 바위산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느 바위산처럼 철제나 목제로 만들어진 계단이 많다. 능선의 초입에서부터 만나게 되는 계단은 정상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삼거리(여기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휴양림)까지 계속 이어진다.  

 

 

▼  경인년 새해가 밝은지도 벌써 두 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정초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 그 눈이 끊임없이 내리더니 끝내는 폭설로 이어졌다. 눈, 눈 , 눈.... 일부의 사람들이 이젠 지겹다는 표현을 자연스레 쓸 정도로 올해는 사방이 눈 천지였다. 그렇게 사방엔 눈이 천지였건만 난...

 

매주 주말이면 산을 찾는 나... 프랑스 출장 때문에 2주를 빼먹은 것 외에는 매주 산을 찾았건만 이렇게 흠뻑 눈에 빠져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방이 눈, 그야말로 눈의 천국이다. 사시사철 푸르름으로 세월을 낚던 소나무들도 온통 눈에 덮여 모처럼 화사한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  등산로는 대부분 암릉, 필요한 곳마다 안전시설이 잘 설치되어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눈으로 덮인 바윗길은 그 어떤 시설로도 완전한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까.   

  

     

 

▼  능선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상천 뜰, 깔끔하게 정리된 논들이 눈아래 줄지어 늘어서고 있다.  

 

 

▼  눈을 들어보니 한쪽에 현성산이 뾰쪽하게 서있다. 사위는 온통 흰색 천지... 바위, 나무, 그리고 하늘까지 온통 새하얗다. 

 

 

▼  산행시작한지 40분 정도 지나면 전망대바위에 닿는다. 널따란 암반, 암반에 자리 잡은 멋진 소나무, 주위 소나무 위에 앉은 하얀 눈,,, 다들 주위의 풍광에 녹아들어 넋을 놓아버린다.  

 

 

 

    

 

▼  雪花로 뒤 덮인 등산로를 따라 걷는 기분이란 삭막한 잿빛 겨울 산행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맛보게 한다. 하얀 눈꽃 터널을 지나며 '뽀드득' 눈 밟는 촉감에 발걸음도 절로 경쾌해진다. 모처럼만에 맛보는 기분 좋은 이끌림이다.  

 

  

  

 

▼  어제 밤에 내린 눈, 산자락엔 순백의 황홀경이 펼쳐지고 있다. 매력적 자태의 꽃도 함께 피어오른다. 바로 '눈꽃(雪花)'... 넉넉한 산자락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있는 눈꽃은 소담스럽고, 날카로운 은빛의 자태는 온실 속 화초 못지않다.  

 

 

 

 

 

 

 

▼  현성산은 거칠은 암릉산, 칼날 같은 능선이 그렇지 않아도 조심스러운데, 거기다 눈까지 소복이 쌓였으니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다들 조심조심... 아무리 안전시설이 잘 되어 있어도 목제 난간 밑은 천길 낭떠러지이니 당연지사이다.  

  

  

 

▼  현성산(玄城山, 965m) 정상

부산서 오신 산악회(현성산만 단독산행을 하는 걸로 봐서는 아마 동호인산악회?) 분들과 뒤섞인 탓에, 초보 분들로 인한 지체(초보들에게 암벽은 고행이다)에 신경을 쓰다보니 깜빡 정상을 지나쳐버렸다. 부랴부랴 다시 뒤돌아가 바위에 들어붙는다. 조심조심... 나와 서울서 같이 오신 부부, 정상엔 단 세명... 하긴 목숨을 걸고 위험을 감수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현성산 정상은 발붙이기 힘들 정도로 좁은 돔형의 바위 위에 조그만 정상표지석 하나, 외롭게 지키고 있다.  

 

 

▼  현성산 정상에서 내려서면 안부에 이정표(↖금원산 4.9km, 서문가바위 0.6km, ↓마애삼존불 문바위 1.5km, 금원산휴양림 2.1km, →현성산 정상 22m)가 반긴다.  물론 진로는 금원산 방향으로...  

 

 

 

 

▼  현성산 정상 아래 삼거리(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15분 정도 진행하면 서문가바위봉에 닿는다. 서문가바위봉은 연화봉(930m)으로도 불리우고 있는데 실제 이곳에는 이정표는 고사하고 아무런 표기도 없다.  

 

 

▼  서문가바위에서 15분을 진행하면 970봉, 겨울산행에서는 이곳에서 주의가 요망된다. 정상 직전의 분기점에서 왼편으로 내려서야 하나 겨울철에는 길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 우측은 필봉(928.1m) 가는 길이다. 난 등산로를 놓친 탓에 창선리 방향으로 5분 정도 진행하다 귀환, 無에서 有를 찾아내는 등반대장들의 노련한 리딩에 찬사를 보내본다.  

 

 

  

 

▼  고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암릉이 끝날 즈음 다들 점심상을 차린다. 970봉에서 길을 찾는 동안 점심을 끝낸 난, 앞서가는 부부의 뒤를 부지런히 쫒아간다. 나 말고도 몇 분 더... 우린 그렇게 1.5Km정도를 부지런히 걸었다. 그리고 반대방향에서 올라온 이 지방 등산객의 도움으로 왔던길로 귀환... 갑자기 다리에 힘이 한꺼번에 빠져버린다. 휴~~~  

집사람 曰 ‘山에서는 선두에 서지마라, 아르바이트가 제 것이니라’ 집사람의 충고를 따르지 않았으니 고생해도 싸겠지? 그나마 다행인건 뒤돌아 오는 길에 산행대장님들을 줄줄이 만난 것... 우리끼리만 고생했었더라면 얼마나 더 억울했을꼬?????

 

 

 

 

▼  연화봉 어림의 암릉을 지나자 길은 부드러워진다. 현성산자락을 벗어나 금원산으로 진입한 것이다. 등산로 주변은 참나무와 진달래가 주종... 등산로가 고도를 높여갈수록 진달래의 나무가지에 열린 서리꽃은 그 영롱한 아름다움을 더해만간다.   

  

 

 

▼  방향을 제대로 잡고 걷다보면 능선삼거리, 이정표(금원산정상 2.7km)가 세워져 있다. 다시 15분 남짓 더 걸으면 다시 두 번째 이정표(금원산정상 2.2km), 산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  두 번째 이정표에서 20분 정도를 더 진행하면 다시 능선 삼거리가 나온다. 이정표(금원산정상 1.6km)가 세워져 있다. 女산행대장님이 주시는 사과한쪽, 가히 꿀맛이다. 또한 일행 여자분이 건네주시는 生고구마는 시장기를 없애주기에 충분했고...

 

 

 

 

▼  금원산을 오르는 길은 낙엽이 쌓인 위에 눈이 수북이 쌓여 많이 미끄럽다. 그래도 아이젠은 No! 스릴을 좋아하는 난 왠만해서는 아이젠을 신지 않는다. 덕분에 여러 번 엉덩방아를 찧긴 했지만...

 

 

 

 

▼  금원산(金猿山) 정상

산죽의 널따란 이파리 위에 소복이 쌓인 눈과, 진달래 나뭇가지 위에 찬란히 피어난 서리꽃에 푹 빠져들다보면 어느덧 금원산 정상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119표지목과 지재미골관리사무소 푯말이 가장 먼저 반긴다. 20~30평은 족히 될 듯한 널따란 공터 한가운데 대형 정상표지석이 서있다  금원산은 원래 이름은 옛 고현의 서쪽에 자리하여 산이 검게 보인다하여 ‘검은산’인데, 금원숭이가 하도 날뛰는 바람에 한 도승이 원숭이를 바위 속에 가두었다하여 금원산(金猿山)이라고 불렀단다, 

날씨만 좋았더라면 서남쪽으로 황석산과 거망산, 그 북쪽으로 월경산, 그리고 남덕유산과 덕유산의 향적봉까지 한눈에 들어오는데... 오늘은 잔뜩 흐린 날씨, 그나마 눈이 오지 않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  하산은 지재미골(자연휴양림)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하자마자 서리꽃 축제장과 마주치게 된다. 진달래 나무가지 위에 솜털처럼 올라앉은 서리꽃, 휘이~ 가녀린 휘파람에도 날려갈 것 같은, 연약한 아쉬움에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마저 조심스럽기만 하다.  

 

▼  하산은 나 혼자 걸어본다. 사위는 적막 그 자체, 순백의 여백에서 무소유를 찾아보나, 역시 난 세속의 때를 벗어버리기에는 아직 덜 여문 나그네일 따름....   빈 가지마다 날린 눈가루가 맺혀 화사한 서리꽃,·얼음꽃을 피웠다. 꽃나무 향연의 절정은 정상에서 거센 바람과 함께 내뿜어진다. 

 

 

 

 

 

 

 

 

▼  정상에서 서리꽃의 환영에 시달리며 헬기장에 내려서면 동봉이 뻔히 올려다 보인다. 東西 兩峰 사이는 5분 정도... 東峰 안부에는 유안청 계곡의 진행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있다. 

 

 

 

▼  이정표(유안청폭포2.1km)를 따라 곧장 금원산 동릉 날등을 타고 내려선다. 하산길은 비록 경사가 심하나 대부분 흙길로 위험하지는 않다. 어쩌다 나오는 바윗길에는 어김없이 밧줄이 매어져 있다.

  

 

▼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다 능선이 지겨워질 무렵, 발밑에서 들리는 물 흐르는 소리, 유안청 계곡이다. 여기서부터는 왼편엔 일본잎깔나무(낙엽송) 군락, 오른편엔 유안청계곡을 끼고 등산로는 완만하게 내리막을 달린다.  

 

 

 

 

▼  유안청폭포를 지나 5분쯤 내려오면 자연휴양림의 산막을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잘 정비된 아스팔트 도로... 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유안청계곡을 따라 한가하게 걷다보면 왼편 발아래로 자운폭포와 선녀폭포가 보인다.

 

 

 

 

▼  금원산에는 크게 이름난 두 골짜기가 있다. 성인골(聖人谷) 유안청(儒案廳)계곡과 지장암에서 와전된 지재미골이다. 유안청계곡은 조선 중기 이 고장 선비들이 공부하던 유안청이 자리한 골짜기로 유안청폭포를 비롯한 자운폭포와 소담이 주변 숲과 어우러져 산악경관이 빼어난다. 지재미골은 서문씨의 전설을 안은 서문가 바위와 옛날 원나라에서 온 공민왕비 노국대장공주를 따라서 감음현을 식읍으로 받아 살았던 이정공 서문기(理政公 西門記)의 유허지로 그 자손들이 공부하던 곳이라 전한다. 지재미골 초입에는 문바위와 차문화을 꽃피웠던 가섭암지 마애삼존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