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智異山, 1,915m)

 

 

산행코스 :

첫날 : 성삼재→노고단→삼도봉→연하천산장→벽소령산장(산행시간 : 9시간)

둘째날 : 벽소령산장→세석산장→장터목산장→중산리 (산행시간 : 10시간)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전라북도 남원시와 경상남도 함양군·산청군 경계

산행일 : ‘11. 5. 27(금)~28(토)

함께한 산악회 : 직장동료 부부 동반 산행(3쌍)

 

 

특색 : 지리산은 홀로 장엄(莊嚴)해 그 이름을 듣기만 해도 가슴에 사무친다.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몸을 대차게 뒤 틀은 산릉은 삼도봉과 토끼봉, 촛대봉, 제석봉 등 1500m를 넘나드는 등뼈를 불뚝거리며 천왕봉을 향해 용틀임을 하고 있는 형상(形象)이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거리는 25.5Km, 이 거리에다 노고단까지 오르는 약2.5Km와 천왕봉에서 중산리나 백무동 또는 대원사까지 내려가는 거리가 6~10Km쯤 되니, 거의 40Km가까이 되는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그러나 요즘은 지리산도 등산객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고 있다. 천왕봉까지 걷는 도중에 우리 일행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이다. 산길을 걷다보면 사색(思索)은 자연스레 걷는 이와 함께하게 된다. 40Km가까이 되는 먼 거리를 걸으며, 나만의 사색으로 영혼을 살찌워보면 어떨까?

 

 

 

산행들머리는 성삼재

서울시 용산역에서 22:45분에 출발하는 무궁화열차를 타면 3시30분경에 구례구역에 도착하게 된다. 구례구역( * 구례읍의 입구라고 해서 구례구역이라고 불린단다) 앞 슈퍼에 들러, 깜박 잊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물품들을 보충한 후, 택시나 봉고차를 이용하여 성삼재로 이동한다.(구례구역에는 열차의 도착시간에 맞춰 여러 대의 택시와 승합차가 기다리고 있다. 성삼재까지의 요금은 무조건 1인당 만원씩 받는다). 봉고차를 이용하여 성삼재에 도착하니 4시30분, 아직은 깜깜한 저녁, 주위의 사물조차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다. 랜턴의 불빛에 의지하며 서서히 노고단 산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경사가 거의 없는 도로(道路)를 따라, 부지런한 새들의 아침노래를 들으며 50분쯤 걷다보면 어느새 ‘노고단 산장’이다. 여명이 서서히 찾아오더니 산장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날이 훤히 밝아 있다.

* 성삼재(姓三峙)는 3명의 마한 장수가 수비를 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굳이 각성바지로 뽑아 임무를 맡겼음은 그만큼 이 고개가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왼쪽 재너머의 달궁에는 피난 왕국의 궁궐인 ‘달의 궁전’이 있었다.

 

 

 

‘노고단 산장'은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때는 바야흐로 웰빙(well-being)의 시대’, 10여년전만해도 지리산은 전문(專門)산악인들이 아니면 혈기에 넘치는 젊은 대학생들이나 찾지, 아무나 오를 수 있는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그러나 요즘은 남녀노소(男女老少) 누구나 큰 두려움 없이 찾아오는 곳이 되어 버렸다. 물론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편의시설(便宜施設)을 잘 만들어 놓은 탓도 있겠지만, 웰빙시대에 걸 맞는 건강을 갖추기 위함이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노고단 산장’은 관리용(管理用) 차량이 닿을 수 있는 곳이어서인지, 화장실과 취사장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아침 6시30분, 취사장 뒤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노고단으로 오른다. 라면으로 때운 아침식사가 양이 많았던지, 경사로(傾斜路)를 오르는 발걸음이 꽤 더디다. 노고단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커다란 돌탑이 등산객들을 맞이하고 있고, 동쪽의 진행방향에는 지리산의 능선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어제 내린 비 탓일까? 구름 위로 삐져나온 산봉우리들이 주변의 운해(雲海)와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水墨畵)를 만들어 내고 있다.

 

 

 

노고단 정상으로 가려면 고갯마루에서 오른편으로 들어서야 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생태계 보호를 위해 개방시간(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을 정해 놓고 탐방객들을 제한하고 있단다. 노고간 정상은 생태계가 복원되면서 전국 최대 원추리 군락지(群落地)가 되었고, 그 외에도 200여종의 야생화가 자생하고 있기 때문에 ‘구름 위의 하늘정원’이라는 애칭까지 얻고 있다. 지금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운해(雲海) 위로 솟아 오른 노고단의 봉우리, 그 봉우리에 피어나는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야생화(野生花), 하늘정원을 못 본 아쉬운 마음을 가슴에 묻고, 천왕봉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옮긴다.

 

 

 

 

 

새벽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임걸령을 향해 걷는다. 만물이 생동하는 시간에 산길을 걸음은 일상(日常)과는 다른 색다른 의미의 상념(想念)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낮이 밤의 끝으로 파고드는 여명 속에 반야봉을 앞세워 불쑥불쑥 지리산의 주능선이 하늘을 뚫고 태동하고 있다.

 

 

 

 

돼지평전 : 울창한 잡목들로 둘러싸인 널따란 분지(盆地), 이 부근에 많이 자라는 원추리 뿌리를 멧돼지들이 파먹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어 붙여진 이름이란다. 하긴 이곳에서 멀지 않은 노고단 정상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원추리군락지( 群落地)이니, 이곳 또한 원추리가 많음은 당연할 것이다.

 

 

 

 

임걸령을 향해 걷는 길은 마치 공중을 걷고 있는 느낌이다. 아마 갑자기 고도(高度)를 높였기 때문에 느낌 또한 낯선 탓일 것이고, 한편으로는 주변의 산릉들이 내딛는 발아래 좌우로 펼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비는 개었지만 짙은 구름으로 덮인 하늘은 아직도 주변을 어스름 새벽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 어스름 속에 임걸령이 누워 있다. 임걸령에는 물맛이 뛰어난 약수가 있으니 이곳에서 물을 보충하면 된다.(노고단에서 임걸령까지는 3.2Km)

* 임걸령은 조선 명종 때의 산적 두목인 임걸년(林傑年)이 이곳에서 무리를 이끌고 화살처럼 누볐다고 해서, 그대로 고개의 이름이 되었단다.

 

 

 

  

 

안개에 뒤덮여 시계가 불투명했지만 날은 시원해서 산행하기에 좋은 날이다.노고단에서 8.5㎞, 반야봉으로 오르는 길목인 노루목을 지나, 그러니까 임걸령에서 5.3Km 정도를 걷다보면 능선위의 밋밋한 바위 봉우리인 삼도봉(三道峰)에 닿게 된다. 원래의 이름은 낫날봉이었는데, 전북·전남·경남 3도의 경계를 이룬다 해서 이름이 바뀐 모양이다. 삼도봉 정상에는 삼각뿔 형태의 표지가 있는데, 항문을 삼각뿔에 대고 사진을 찍으면 삼대(三代)에 걸쳐 치질 걱정이 없다는 속설(俗說)이 있다. 한번쯤 엉덩이를 대보고도 싶지만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아낙내들에게 눈치가 보여 참을 수밖에 없다.

* 삼도봉(1,550m) : 지리산의 봉우리 중 하나로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걸쳐 있어 삼도봉(三道峰)이라 부른다. 원래 이름은 낫날봉이었는데 정상의 바위 봉우리가 낫의 날을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삼각뿔 형태의 표지석(각 면에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라고 쓰여 있음)을 세우면서부터 삼도봉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삼도봉

 

 

 

삼도봉을 넘어 거대한 암벽(巖壁) 아래를 감아 돌던 길은, 갑자기 아래로 급하게 떨어진다. 아예 하산할 듯 쏟아진다. 경사(傾斜)가 심한 탓에 아예 나무 테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지는 계단(*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이 계단의 숫자를 551개 또는 562개라고 적어 놓고 있다). 전에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오늘과 반대방향으로 걷던 때, 이곳을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욕설(辱說)을 내 뱉으며 이를 악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계단의 끝, 주능선 가운데에서 가장 낮은, 1315m의 화개재가 움푹했다.

* 화개재는 지리산의 양쪽에 사는 민초(民草)들에게 삶의 숨통이 되어 준 재였다. 예부터 번성했던 경남의 화개장터에서 소금과 해산물을, 전북의 산내 방면에서 삼베와 산나물을 등짐으로 지고 넘나들며 비지땀을 흘렸다. 화개재에서 산나물과 바꾼 소금 가마니를 지고 뱀사골을 내려가다 계곡에 빠뜨린 곳이 ‘간장소’란다.

 

 

 

 

 

화개재  

 

 

 

‘발에 신고 있는 것의 정체(正體)는 뭘까요?’ 임걸령을 출발하면서 걱정했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다가오고야 말았다. 비록 신발을 구입한지는 오래되었지만 몇 번 사용하지 않았다는데, 모두의 기대를 저버리고 오사무관의 신발창은 끝내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처음에는 여자 일행들의 허리띠로 동여맸다가, 연하천에서부터는 아예 압박붕대로 동여매 버렸다. 등산화 위에 양말, 양말 위에 압박붕대, 기형적인 신발을 신고 있는 오사무관의 표정은 그저 허탈함... 돌발 상황(突拔 狀況)으로 인해 도저히 둘째 날의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의 고객서비스 덕택에 나머지 산행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등산화 대여 프로그램’, 산행 중 등산화에 이상이 생겼을 경우 산장에서 미리 준비해 놓은 등산화를 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같은 내용의 기사를 인터넷에서 읽고 그저 남의 일이려니 했는데, 그 혜택을 우리 일행이 입다니, 이 자리를 빌어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당신들은 일상적(日常的)으로 하고 있었겠지만 저는 당신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고객(顧客)서비스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답니다.’

 

 

화개재에서 연하천산장을 향해 1.2Km를 걷다보면, 서두르는 발걸음을 토끼봉이 가로막는다. 토끼봉은 능선(稜線) 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한 지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밋밋한 봉우리이다. 여기서 토끼라는 지명은 봉우리의 생김새와는 상관없다. 반야봉을 중심으로 해서 묘방(卯方), 즉 정동(正東) 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토끼봉에서 3Km를 더 걸으면 연하천 산장이다. 연하천까지의 길은 오르고 내림의 연속이다. 장거리 산행에서는 오르막과 내리막의 차이가 없어진다. 올라간 다음에는 내려가야 하고, 내려간 다음에는 다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길의 상태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필요 없이 꾸준히 ‘처음처럼’ 한 걸음씩 옮기는 것이 최상책(最上策)이고, 그러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

 

 

 

 

 

연하천산장에 도착하니 이곳도 또한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마침 점심때인지라 취사장을 곁눈질해보지만 빈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산장 앞 공터의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잡은 후, 매점에 들러 메뉴판을 열심히 훑어보지만 소주가 보이지 않는다. ‘판매를 안 한지가 벌써 몇 년 되었습니다.’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술을 적게 챙긴 난, 준비해온 소주가 마치 보물(寶物)이라도 되는 양, 한잔 술을 몇 모금에 나누어 마실 수밖에 없었다.

 

 

연하천산장에서 벽소령산장까지의 능선은 암릉의 연속이다. 암벽(巖壁)을 감싸 안고 돌다가, 어떤 때는 암벽사이를 통과하면서2.1Km를 걸으면 형제봉이다. 바위봉우리인 형제봉은 지리산 종주(縱走)구간 중에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구간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연하천을 출발하면서부터 흐려지기 시작한 날씨가, 어느새 짙은 구름으로 뒤덮여, 마치 어스름 저녁을 연상시킬 정도이기 때문이다. 시계(視界)는 제로에 가깝다.

 

 

 

 

작년 겨울은 늦게까지 물러갈 줄 몰랐었다. 들꽃들도 덩달아 늦게야 꽃망울을 여는 늦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었다. 산은 기나긴 겨울이 지겨웠던지 연한 안개꽃을 피워내고 있다. 마치 아물아물 아지랑이를 피워내듯이... 호리호리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 철쭉들도 봄을 재촉하며 이제야 작은 가지에 간간이 꽃망울을 열고 있다.

* 철쭉의 꽃말은 ‘사랑의 즐거움’. 이 꽃처럼 사랑을 넉넉하게 담고 있는 꽃도 드물다. 이름도 재미있다. 아름다움에 끌린 길손의 발걸음을 자주 멈추게 한대서 ‘척촉’(擲燭)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지나는 사람이 철쭉꽃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가던 길을 멈추고 꽃을 바라보게 되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 옛 기록에 양(洋)척촉 이라고도 쓰는데, 철쭉꽃에 독성이 있으므로 양이 이 꽃을 보면 가까이 가지 않고 머뭇거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바래봉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국립종축장’에서 방목한 양들이 다른 나무들은 다 갉아먹고, 오로지 독성이 강한 철쭉만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바래봉은 봄이면 ‘천상화원(天上花園)’을 만들어 내었고, 상춘객(賞春客)들이 즐겨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형제봉

 

 

 

 

 

형제봉을 지나서도 등산로는 역시 암릉의 연속된다. 그렇게 1.5Km를 걸으면 드디어 오늘의 숙박지인 벽소령(碧宵嶺)에 도착한다. 벽소령은 ‘푸른 밤 고개’, 즉 달빛이 너무 희고 맑아 푸른빛으로 보이는 고개라는 의미다. 벽소령의 달 풍경은 지리산 10경 중 제4경으로 꼽히는데, 겹겹이 쌓인 산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다 못해 푸른빛을 띤다 하여 '벽소한월(碧宵寒月)'이라 한다는데, 비가 내리는 오늘은 그저 마음속으로만 그려볼 수밖에 없다.

* 벽소령에는 등산로보다 몇 배가 넓은 도로가 있다. 67년경 몇 차례에 걸쳐 침투한 무장공비에 홍역을 치룬 정부가 북쪽의 삼정리와 남쪽의 대성리를 잇는 비포장도로를 만든 것이다. 무장공비를 쉽게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입한 역사(役事)였지만 그 뒤 한 번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단다. 오늘날도 도로가 빙빙 멀리 돌아가기 때문에 등산객들로부터도 외면당하는 처지다.

 

 

 

비를 피해 산장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숙소 배정은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산장직원들의 배려이다. 오는 도중에 만난 등산객로 한 명이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 자기 몸뚱이만한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걷더니만 미끄러지면서 허리를 삐끗했었나 보다. 벽소령 산장 바로 아래에까지 임도(林道)가 개설되어 있으니 하산하는 것이 어떠냐는 산장직원의 권고, 그는 결국 119구조대에 의해 하산을 하고 말았다. 관리공단의 편의로 네 시경에 방을 배정받고, 부랴부랴 취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술상을 차린다. 소세지 볶음에 소주, 여자 분들은 된장찌개에 햇반이다. 6시를 조금 넘겨 자리를 접은 후, 일찍 잠자리에 든다. 덕분에 난 12시가 되기도 전에 눈을 뜨고 말았다. 그리고 잠을 이루어 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뒤따랐고...

* 대피소는 씻을 수 있는 장소가 전혀 없다. 먹을 수 있는 물만 있을 뿐이다. 치약은 당연히 사용하지 못한다. 물로 칫솔질 하는 것이 당연한 곳이다. 세수와 목욕은 전혀 할 수 없어 준비해 온 물티슈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종주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꼭 물티슈를 챙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