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지산(岷周之山, 1,241m)

 

산행코스 : 민주지산 자연휴양림 주차장→휴양림 산책로→민주지산→석기산→삼도봉→삼마골재→미나미골→황룡사→물한리 주차장 (산행시간 : 5시간)

 

소재지 :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상북도 김천시, 충청북도 영동군의 경계

산행일 : ‘11. 3. 26(토)

같이한 산악회 : 늘푸른 수토일산악회

 

특색 : 민주지산은 충청, 전라, 경상의 三道를 가르는 삼도봉을 거느린 名山, 바위봉우리인 석기봉을 제외하고는 전형적인 肉山(흙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훍산인지라 산세가 부드러우며, 정상에 오르면 각호산, 석기峰, 삼도峰을 비롯해 주변의 연봉들이 잘 조망된다. 물한계곡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물한계곡은 웅대한 산세와 능선으로 에워싸인 계곡인 만큼, 규모가 크고 깊은 골과 골의 물이 합쳐지는, 국내 최대 原始林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  산행들머리는 민주지산 자연휴양림 주차장

대전-통영간고속도로 무주 I.C를 빠져나와, 성주군 방향으로 30번 國道를 따라 달리다가 ‘무주 반디랜드‘에서 왼편의 49번 국도로 바꾸어 진행하면 오른편에 ’민주지산 자연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진입로가 보인다.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에는 황간 I.C에서 빠져나와 황간 市街地를 통과한 후, 무주방향으로 49번 國道를 따라 달리다보면 도마령 너머에서 자연휴양림 입구를 만날 수 있다.(참고로 산행 들머리를 勿寒里에 시작할 경우에는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편이 더 가깝다). ‘휴양림 매표소’에서 50m쯤 올라가면 휴양림 內 시설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큼지막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민주지산 정상으로 가는 방향(오른쪽)은 이정표의 맨 아랫단에 표시되어 있다. 다른 이정표에는 이곳에서 정상까지의 소요시간이 120분이라고 적혀있고...

 

 

▼  산행은 휴양림의 산책로를 따라가며 시작된다. 휴양림을 둘러싸고 있는 山의 허리를 깎아 만든 산책로는 그야말로 九曲肝腸, 말 그대로 구불구불... 산책로가 山勢와 조화를 이루면서 서서히 高度를 높여가기 때문에, 등산이라기보다는 산책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코스이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산책길(휴양림입구에서 3.6Km)이 싫증날 즈음이면, 좌측 山허리에 매달려있는 전망데크가 보인다. 전망데크에서 100m쯤 못 미쳐, 오른편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이고, 그 옆으로 넓고 깔끔하게 정비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다. 본격적인 산행은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정상까지는 1.4Km)

 

 

 

 

 

▼  박달나무와 참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등산로는 이곳이 1천m를 훨씬 넘기는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넓으면서도 곧게 이어진다. 아마도 자연휴양림에서 등산로 정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모양이다. 완만한 傾斜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심해지더니만, 어느 사이엔가 허리를 세우고는 걷지 못할 정도로 경사가 심한 벼랑을 만들어내고 있다.

 

 

 

 

▼  급경사 오르막길에 설치된 통나무계단을 오르면 능선안부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가면 각호산에 이르게 되고, 민주지산 정상은 오른편의 졸참나무 아래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된다. 자연휴양림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약1시간30분가량 지났다.

 

 

 

▼  민주지산 정상은 열 평이 조금 못되는 분지, 한 가운데 삼각점과 烏石으로 만든 정상표지석이 놓여있다. 웃자란 나무들이 없는 정상에 서면 눈은 저절로 커지게 된다. 동쪽으로 황학산 추풍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웅장한 줄기가 보인다. 동남쪽으로는 석기봉과 삼도봉에 이어 백두대간 남쪽 능선이, 그리고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기백산이 보이고 그 뒤로 지리산의 연봉들이 희미하게 지평선의 끝을 장식하고 있다. * 민주지산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충청도 쪽에서 바라봤을 때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 불렸고, 이를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유사 한자인 민주지산(岷周之山)으로 굳어졌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단다.

 

 

 

▼  민주지산 정상에서 석기봉으로 가는 능선(2.9km)은 평탄한 흙길이 대부분, 참으로 부드럽고 매끈하다. 가는 길옆엔 조릿대 천지, 평소 같으면 한가하게 걸으면서 조릿대 스치는 소리에서 낭만을 느껴볼 수도 있었으련만, 오늘은 조릿대가 거추장스러울 따름이다.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길의 가운데를 걷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장자리로 걸어야만 하는데, 길가의 조릿대가 자꾸만 발목을 휘감기 때문이다.

 

 

 

 

 

▼  진행방향 전면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석기봉의 모습은 이채롭다. 석기봉으로 가는 길에 마주친 등산객이 ‘석기봉 오름길이 눈 때문에 미끄러워 위험하니, 여자 분들은 안 가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하며 겁을 준다. 그러나 몇 번의 암릉산행에서 스릴에 맛을 붙인 집사람은, 아이젠도 신지 않은 채로 밧줄에 매달리고 본다. 이정도 바위지대쯤이야...

 

 

 

 

▼  정상에 오른 후 三頭磨崖佛을 답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아까 밧줄을 잡고 올랐던 암릉의 들머리에서 우회해야만 마애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정상에서 역방향으로 100m 정도를 내려가 마애불 앞에 선다. 남향으로 자리 마애불 뒤편에는 천정바위에서 물이 떨어져 고이는 약수샘도 있다. 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데, 겨울철인지라 고인 물이 꽁꽁 얼어 있다. * 삼두마애불(三頭磨崖佛), 암벽에 높이 6m, 폭 2m의 크기로 양각화 되어 있는데 몸체는 하나인데 머리가 셋이다. 그래서 삼신상 또는 일신 삼두상(三神像, 一身三頭像)이라고도 불린다. 고려와 백제때 만들어 졌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  석기봉(石奇峰, 1,230m), 기이한 돌로 쌓여진 봉우리란 뜻의 석기봉(쌀겨처럼 생겼다 하여 쌀개봉이라 부른데서 석기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은 이름 그대로 바위봉우리, 정상표지석은 없고 누군가가 巖盤에다 석기봉이라고 써 놓은 것이 보일 따름이다. 암봉인 정상에 서면 삼도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그 봉우리 좌우로 이어지는 우람한 근육질의 산줄기가 눈에 확 들어온다. 바로 백두대간 마루금이다.

 

 

 

 

▼  석기봉에서 삼도봉 방향으로 내려서려면 또 다시 밧줄이 매달린 암릉을 내려서야만 한다.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 바윗길을 내려서면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준비해온 간식을 먹으면서 쉬어가는 곳인데, 오늘은 눈이 쌓여 이용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석기봉에서 삼도봉까지는 1.4km로 약 30분 정도 소요된다.

 

 

 

 

 

 

▼  삼도봉(三道峰, 1,176m), 高低가 심하지 않은 능선을 따라 걸으며, 봉우리 두 개를 넘으면 삼도봉에 다다르게 된다. 삼도봉 정상에는 ‘三道 大和合 기념 조형물(각각 해당 지역을 바라보고 있는 용 세 마리가 검은 돌을 받치고 있다)’이 서 있다. 매년 10월10일이면 여기서 충청북도 영동군과, 전라북도 무주군, 그리고 경상북도 김천시가 함께 모여 기념행사를 치른다고 한다. 뒤를 돌아보면 지나 온 석기봉과 민주지산이 아득하게 늘어서 있다. 남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에는 리본이 많이 달려 있다.

 

 

 

 

 

 

▼  삼마골재, 삼도봉에서 백두대간 북쪽 능선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가면 삼마골재에 닿는다. 무척 가파른 능선을 조금이라도 쉽게 내려설 수 있도록 계단을 만들어 놓았지만, 구간 대부분이 두텁게 쌓인 눈으로 인해 무척 미끄럽기 때문에, 아이젠을 신지 않고는 내려설 수가 없을 정도다. 억새밭으로 이루어진 삼마골재에는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몇 점 설치되어 있는데, 아마 이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급경사 오르막길을 오르기 전에, 먼저 근육을 풀어주고 난 후에 산행을 시작하라는 배려인 듯 싶다. 삼마골재에서 황룡사에 이르는 3.5km는, 비교적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  음주암 폭포, 삼마골재에서 내려오는 골짜기가 지루할 정도로 길다. 등산로 옆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벗 삼으며, 원시림 같이 어두운 계곡을 내려오다 보면 오른편에 아담한 폭포가 보인다. 음주암폭포이다. 이곳에서 100m쯤 더 내려오면 폭포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계곡 쪽을 가리키고 있다. 어렵게 100m여를 거슬러 올라가 폭포의 아랫단에서 카메라에 담아봤지만, 그동안 보아온 폭포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는 것 같다.

 

 

 

▼  물한계곡을 따라 나 있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호젓하다. 조금 전에 지나온 능선길은 왼쪽에 우뚝 서서 깊은 산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계곡을 따라 걷다가 두세 번 계곡을 가로지르다보면 낙엽송과 잣나무가 울창한 숲을 만나게 되고, 왼편에 민주지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보인다. 민주지산 쪽에 비올 때를 대비한 예비다리가 계곡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 보인다.

 

 

 

 

▼  凰龍寺, 물한계곡을 벗어날 즈음에 오른편으로 다리하나가 보이고, 다리 건너편에 조그만 寺刹이 보인다. 조계종이나 천태종 등,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종파가 아닌 ‘사단법인 불교사상연구회’라는 낯선 단체의 소속이라는 황룡사이다. ‘3칸 접집’인 대웅전과 산신각 등 부속건물 2동을 거느린 규모도 작고, 역사가 일천한 사찰, 입구에 ‘사찰 창건 연기문’이 게시되어 있으나 그 내용이 가슴에 와 닿지 않음은, 소속이 낯설어서일까?

 

 

▼  산행날머리는 물한리 주차장

原始의 숲과 이끼 짙은 암반을 휘감으며 흐르는 玉水, 계곡을 흐르는 물에 世俗에서 찌들은 때 띄워 보내고, 언 듯 차오르는 詩 한 구절 읊조리다보면 여기가 곧 仙界일 것이다. 황룡사의 법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즈음이면 물한리, 음식점과 노점상들의 호객소리에 시끄러운 이곳은 이미 俗世의 한 가운데이다. 심마골재에서 약 1시간10분 정도의 시간이 경과되었다. * 물한계곡(勿閑溪谷), 계곡물이 차가워서 찰 寒자인 20리 물한계곡은 여름피서지로 유명한 곳이다. 계곡의 물이 한여름 낮에도 목욕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영동군청에서는 계곡의 입구에 ‘맑은 물살 굽이도는 물한계곡’이라고 쓰인 커다란 바위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선운산 (禪雲山, 336m)

 

산행코스 : 주차장→경수재→마이재→도솔봉→개이빨산→소리재→천상봉→낙조대→천마봉→도솔암→선운사→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40분)

 

소재지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과 아산면 경계

산행일 : ‘11. 3. 22(화)

함께한 산악회 : 가고파 산악회

 

특색 :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의미하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임으로 도솔산이나 선운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 이라는 뜻이다. 300m급의 야트막한 봉우리들을 크기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기 때문에 가족단위 산행지로 권할 만하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高低가 크지 않기 때문에 걷기가 편하고, 걸으면서 양편에 전개되는 다양한 조망을 즐길 수 있어 좋다. 또한 도솔계곡의 산자락과 골짜기에는 유서 깊은 불교의 도량인 선운사, 참당암, 도솔암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산기슭에는 우리의 정겨운 문화유산이 널려 있기 때문에 등산을 하며 문화적 향취에 흠뻑 빠져 들 수 있는 산이다.

 

 

▼  산행들머리는 선운산道立公園 駐車場

서해안고속도로의 선운산 I.C를 빠져 나오면 선운산까지 이정표가 길 안내를 편히 해 준다. 선운사 입장료는 3천원, 집사람과 함께이니 거금 6천원이나 된다. 우린 당연히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코스를 찾을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주차장에서 오른편으로 보이는 경수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  ‘경수산 민박’ 앞의 계곡을 따라 산행이 시작된다. 물기 한 점 없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는, 능선에 가까워지면서 갑자기 급경사로 변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이 채 못 되어 닿게 되는 능선안부, 이정표가 없는 이곳 삼거리에서 선운산 주봉으로 가려면 왼편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오른편은 경수산으로 선운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나 특별한 볼거리가 없으므로 생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마이재, 경수재에서 무명봉을 넘으면, 석상암(石床庵)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연결되는, 능선안부의 사거리인 마이재에 닿게 된다. 선운산의 주봉인 수리봉은 맞은편 0.7km 지점에 있고,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심원면이다.

 

 

 

▼  선운산 정상인 도솔산(수리봉)은 봉우리라기보다 정상부분이 펑퍼짐한 테라스를 이룬 산이다. 산 위엔 송림이 울창하지만 동과 서 양쪽으로 전망대가 나 있는 斷崖 위는 전망을 방해할 만한 장애물이 없다. 그러나 높지도 않고(336m), 그렇다고 특별한 景觀을 보여주지도 못하는 이 봉우리가 정상이라니 쓴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높기로는 경수산만 못하고, 빼어나기로는 천마봉만 못하니 말이다. 경수산, 도솔산, 개이빨산, 청룡산, 비학산, 천마봉 등등... 선운산국립공원에는 웬 산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모든 산들이 高低가 크지 않은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우선 산이라는 이름을 봉으로 고치고, 어느 한 봉우리를 主峰을 指定한 후, 정상표지석 하나쯤 세워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수리봉에 정상에 올라서면 서해바다와 심원면 일대가 바라보이고, 도솔천 계곡에는 선운사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  수리봉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창당암과 견치산으로 가는 두 갈래 길로 나뉜다(이곳에서 창당암을 경유해서 견치산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른편의 견치산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등산로는 급경사 내리막으로 시작된다. 내려서는 만큼의 높이를 다시 오를 걱정이 앞서지만, 능선 안부에서 다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  능선안부에서 치고 오르면 창당암에서 오르는 길과 마주친다. 삼거리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견치산으로 가는 삼거리, 근처의 작은 돌탑이 있는 조망터에서는 견치산의 암릉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어느 누가 이곳에서 바라보는 견치산의 암릉이 개의 이빨을 닮았다고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내 눈은 그런 형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삼거리에서 견치산까지는 0.6Km, 산행을 계속하려면 정상을 답사한 후, 이곳 삼거리로 다시 되돌아와야만 한다.

 

 

 

 

 

▼  견치산 정상, 사람들이 밟으면 바위가 닳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까? 암릉의 초입에 등산로가 끝났으니 되돌아가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누구하나 따르는 사람은 없다, 하긴 이곳까지 와서 정상을 오르지 않고 돌아설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의 조망은 일품, 저 멀리 보이는 섬은, 한때 放射性廢棄物處理場 유치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위도일 것이다.

 

 

 

 

 

▼  견치산 입구 삼거리에서 낙조대로 가는 길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멋진 山竹群落地가 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웃자란 山竹들은 마치 대나무 숲을 연상시킬 정도... 남해 금산의 정상어림에서 만나본 산죽들보다 더 울창한 것 같다.

 

 

▼  山竹군락지를 벗어나면 곧바로 창당암과 낙조대로 가는 길이 갈리는 소리재에 다다르게 된다. 낙조대 방향으로 난 소나무 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오르막 능선을 잠깐 오르면 자그마한 봉우리 위에 서게 된다. 이곳의 왼편에 있는 바위전망대는 오늘 산행의 키포인트 중의 하나이다. 前面의 바위와 바위 사이로 협곡이 이루어지고, 오른편에는 직각에 가까운 천마봉, 그리고 정면으로는 청룡산의 뾰쪽한 봉우리가 눈에 꽉 들어찬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峽谷은, 각각의 능선들 맨 끄트머리에 마지막으로 서서, 마주보고 있는 사이로 협곡이 전개되고 있다. 이곳의 암릉과 岩谷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경관으로 선운산 산행의 白眉라 할 수 있다.

 

 

 

 

 

▼  낙조대(落照臺), 전망 좋은 봉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면 맞은편 봉우리로 오르는 기다란 나무계단이 보이고, 그 끝에 낙조대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낙조대 앞에는 드라마 대장금의 최상궁이 자살했던 바위라는 팻말이 서 있다. 낙조대에 서면 아스라이 서해바다가 펼쳐지지만, 낙조대의 자랑인 저녁노을은 구경할 수 없다. 하루해가 서해바다로 빠져들면서 토해내는 마지막 숨결인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구경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기 때문이다.

 

 

 

 

▼  낙조대에 집사람을 남겨놓고 병풍바위로 올라선다. 길면서도 경사가 심한 철제계단은 몸을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억세다. 계단을 올라 10여분 더 걸으면, 진행방향으로 커다란 배맨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 저 정도 크기라면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매어놓지나 않았을까? 원거리에서 카메라에 담은 후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낙조대로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  병풍바위에서 바라본 낙조대

 

▼  배맨바위

 

 

 

▼  천마봉은 하나의 거대한 암릉으로 위는 평평한 마당바위로 되어 있으나 끝머리는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 몸을 가누기도 힘든 强風 때문에 가장자리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댈 수 밖에 없다. 천마봉 정상은 조망이 시원스레 트인다. 도솔암 주변의 암봉들은 마치 한 폭의 한국화를 펼쳐 놓은 것 같고, 청룡산 줄기도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수직 절벽 위의 암봉인 천마봉, 봉우리의 이름을 떠올리며 바라봐서인지 꼭 馬 한 마리가 서 있는 형상이다. 그럼 조금 전에 내가 올라섰던 지점은 말등 부분이었나 보다.

 

 

 

▼  천마봉을 뒤로 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도솔암으로 내려가려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 우측의 나무데크가 설치된 바위지대 급경사 내리막 능선을 내려서야한다. 시간이 넉넉하니 시야가 열리는 전망대마다 올라서 본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뛰어나서 웅장해 보이는 바위협곡과 바로 앞에는 내원궁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천인암의 絶壁이 우뚝 서있고, 그 수직절벽아래에 도솔암과 내원궁이 조그만 조형물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건 필시 멋진 한 폭의 동양화가 분명하다. 수백 길 낭떠러지 위에 살포시 앉아있는 조그마한 암자 하나, 이는 분명히 보기 힘든 절경이 분명할 것이다. 계속되는 철계단과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이정표가 있는 용문굴 갈림길에 도착한다. 도솔암의 내원암으로 올라가려면 直進, 그냥 선운사로 가려면 오른편 길로 내려서면 된다.  * 도솔암(兜率庵),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사실은 알 수 없으나,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선운사 남서쪽 약 2.5㎞ 지점에 있으며, 깊은 계곡과 울창한 소나무와·대나무 숲, 절벽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암자 앞에는 높이 20m가 넘는 천인암(千因巖)이라는 절벽이 있으며, 서쪽 암벽 위에는 상도솔암(上兜率庵)이라고도 하는 내원암(內院庵)이 있다. 그 밑의 절벽에는 미륵장륙마애불(彌勒丈六磨崖佛)이 조각되어 있는데, 머리 위에는 거대한 공중누각을 만들어 보호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마애불좌상은 보물 제 1200호로 지정되어 있다

 

 

 

 

▼  장사송(長沙松, 천연기념물 제354호), 도솔암 앞의 찻집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왼편 길가에 커다란 소나무가 서있다. 수명이 약 600년가량 되며, 이 지역의 옛 지명인 장사현의 이름을 따서 장사송이라 불리고 있단다.

 

 

▼  도솔암에서 선운사로 내려가는 길은 두 개로 나뉜다. 왼편의 널따란 자동차 길과, 오른편에 사람들이 다니도록 만들어 놓은 오솔길이 그것이다. 포장이 되지 않은 원시의 길이기는 둘 다 마찬가지이지만, 이왕에 산을 찾았으니 잘 닦인 자동차길 보다는, 자갈과 바위가 불규칙하게 나뒹구는 오른편 오솔길을 걷는 것이 더 낭만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오솔길은 지나치게 가파르지도 비좁지도 않은, 조용히 걷기에 참 좋은 길이다. 더욱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옆에 ‘도솔천’이라 부르는 계류가 함께하기 때문일 것이다. 길가에는 꽃무릇이라고도 부르는 석산이 끊이지 않고 널따랗게 분포되어 있다. 붉은 꽃술을 여는 가을철에는 아마 장관일 듯...

 

 

▼  선운사(禪雲寺),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의 진흥왕이 지었다는 설과, 557년(위덕왕 24)에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 : 또는 黔丹)선사가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아무래도 검단선사 설이 맞을 듯 싶다. 진흥왕이 구태여 남의 나라 땅에까지 찾아와서 佛事를 일으켰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재건하는 등, 그동안 여러 번의 중수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문화재로는 대웅전(보물 제290호),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 동불암마애불상(보물 제1200호)과 만세루(萬歲樓), 영산전목조삼존불상 등 여러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  선운사 동백林(천연기념물 184호), 동백이 꽃을 피울 수 있는 한반도의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단다. 선운사 대웅전 뒤에 있는 이 동백나무숲은 1만6000㎡에 수령이 약 500~600년에 이르는 3000여 그루가 마치 密林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다. 너무 일찍 찾아왔나? 붉디붉은 꽃을 매달고 있어야할 동백나무들은 아직도 채 여물지 않은 꽃 몽우리들만 매달고 있다. 너무 일찍 오는 바람에 동백꽃을 못 봤다며 아쉬워했던, 서정주 시인의 마음을 轉移 받으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린다. 붉게 피었다가 스러지기까지 1~2주에 불과하다니 선운사의 동백이 만개하는 때를 맞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 서정주의 시 '선운사 동구' 전문 -

 

 

▼  仙界와 俗世를 가른다는 一柱門, 역시나 일주문 밖은 혼탁한 속세이다. 수많은 노점상과 음식점들로 어지러운 집단시설지구 한 귀퉁이에 오늘 산행이 마감되는 주차장이 있다. 그나마 푸르른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송악을 음미하고 있으니, 선계에서 완전히 내동댕이쳐진 것은 아닐 것이다.

* 선운산의 송악(천연기념물 367호), 일주문을 벗어나면 오른편의 도솔천 절벽을 온통 푸른 잎사귀가 뒤덮고 있다. 남해 금산의 쌍홍문에서 봤던 송악만은 못하지만, 내륙에서는 가장 큰 송악이라고 한다. 송악은 보통의 덩굴처럼 덩굴손으로 뻗어가는 것이 아니라 줄기와 가지에서 뿌리가 나와 다른 나무나 울타리, 바위를 타고 올라간다. 지금은 겨울의 끝자락, 사방이 온통 누르스름한데 獨也靑靑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는 송악, 그 푸르른 기상에 흠뻑 취한 난, 오늘 산행에서 쌓였던 피로는 말끔히 사라진지 이미 오래이다.

 

 

 

 

< 끝으로 7년 전에 선운산을 오른 후,

끄적여 봤던 글을 함께 올리며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지만

아무래도 그때와 같은 감흥은 일어나지 않네요.  >

 

산으로 고행길을 떠나는 이유...

오염되지 않은 빛과 바람을 찾아가는 거 아닐까요?

 

태초의 하늘과 바람과 물을 만나면 분명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이 얼마나 비참하고 기막힌 것인가를.

그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어야 편리하기만 한 문명을 이루고 사는 우리가

진작 무엇으로부터 버림을 받앗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겠지요.

 

편리해진 문명 덕택에 저는 신새벽 기도하러 가기 위해 잠을 깨고

산을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인생사 희노애락을 반추했을 그 과정을 놓쳤습니다.

 

김훈이 말합니다.

삶이 고단하고 세상이 더러울수록 산의 유혹은 절박하다고,

우리는 산이 아름다워 찾는 게 아니라

산아래 문명을 반성하기 위해 산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물 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

나는 산신이 여신일 것 같은 산, 선운산에 있었습니다.

선운산은 그 이름만큼이나 아련하고 아늑하고 풍요롭게 느껴졌습니다.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눈을 돌리는 것마다 뭘 믿고 저렇게 아름다울까요.

아름다운 것은 아깝고, 안타깝고... 헤어지기 아쉬움에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별을 보듯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해는 구름에 눌린 채 우리의 산행을 축복 해주는군요.

아, 하늘! 얼마나 오랜만에 마음놓고 올려다보는 하늘인지 모릅니다.

너무나 그리워했던 하늘...바람 한점이 흔적 남기는 그 하늘은 넉넉했습니다.

 

저 멀리 서해의 섬들이 조각배 마냥 수면 위에 떠 있습니다.

물안개에 휘감긴 섬 조각들... 화선지 위 한폭 그림인양 축복처럼 떠올라있습니다.

 

어서오라 날 반기던 산사초입의 벚꽃 터널, 꽃향에 그윽합니다.

길섶의 상사초는 떠난 님과의 조우를 기다리며 가을을 불태우겠다는군요.

생의 끝자락에서 한 줌 남은 생을 불사르는 동백꽃이 또 다시 보자는데, 그래야겠지요?

 

 

위봉산(威鳳山, 524m)-종남산 (終南山, 610m)-서방산(西方山, 672m)

 

산행코스 : 위봉산성 서문지→되실봉→서래봉→오도재→서방산→종남산→송광사(산행시간 : 5시간)

 

소재지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과 소양면, 고산면의 경계

산행일 : ‘11. 2. 19(토)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제법 암릉과 암벽이 발달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특별히 내세울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하는 전형적인 육산이나,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위봉사와 송광사, 봉서사 등 산자락에 있는 문화재까지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산세가 빼어난 이 근처의 산릉을 ‘호남알프스’라 칭하고, 그 첫 구간을 종남산으로 정하고 있다.

* 호남알프스 :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에 걸친 산줄기로 주로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를 들머리로 하여 종남산-서방산-위봉산-원등산-연석산-운장산-구봉산 등 7산의 마루금을 차례로 잇는 도상거리가 42km인 산행코스(22시간가량 소요)이다. 호남알프스의 특징은 코스의 초반 서편으로 만경평야의 광활한 모습이 펼쳐지고, 연석산에서 부터의 후반 구간은 호남알프스의 백미로, 육산의 장쾌함과 바위산의 힘찬 분위기를 동시에 느껴볼 수 있다.

 

 

▼  산행들머리는 소양면 대흥리의 위봉산성 西門址

익산-포항고속도로 소양 I.C를 빠져나와 소양면 소재지에서 만나게 되는, 741번 地方道路를 따라 왼쪽으로 들어서면 얼마 안 있어 오늘 산행이 마감되는 송광사입구가 보이고, 조금 더 들어가면 위봉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위, 왼편에 위봉산성 서문지가 보인다.

 

 

▼  산행은 山城의 西門 옆으로 난 林道를 따라 시작된다. 산성의 3개 성문 중 유일하게 그 형태가 남아 있는 아치형의 서문 안쪽 임도를 따라 10여분 오르면 고갯마루에 닿고, 전방 오른쪽으로 성곽과 함께 길이 이어진다. 고갯마루에서 곧바로 진행하면 태조암이다. * 위봉산성(威鳳山城, 사적 제471호), 有事時 전주 경기전(慶基殿)에 있는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1675년(숙종1년)에 축성되었다. 동학농민운동 때 全州城이 동학군에 의해 함락될 때, 영정과 위패를 피난시킴으로서 산성 축조의 목적을 달성한바 있다. 축성 당시의 규모는 너비 3m, 높이 4~5m, 길이 16㎞, 서·동·북 3개소의 성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성벽 일부와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이 남아 있다.

 

 

 

 

▼  허물어져 가는 위봉산성 돌담 위로는 아직도 옛 시간이 머물고 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돌무더기로 남아, 한가로이 내리쬐는 늦겨울 따스한 빛살과 함께 悠悠自適 시간을 즐기고 있는 듯... 그 성벽위에 선, 나 또한 한갓지고 여유롭게 시간여행을 떠난다.

 

 

 

▼  임도 고개에서 20여분 정도 올라서서 갈림길에 닿으면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오른쪽 길은 위봉사 방향이다. 완만한 능선, 산성을 따라 나있는 호젓한 산길을 걷다 보면 참호처럼 낮게 통로를 낸 暗門의 모습도 보인다. 길을 걷다가 오른편에 시야가 트인 곳을 내려다보면 유서 깊은 위봉사가 바라보인다.

 

 

▼  위봉사(威鳳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604년(백제 무왕 5년)에 서암(瑞巖)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고, 극락전중수기(極樂殿重修記)에 전설적인 설화가 실려 있을 뿐이다. 文化財로는 본관 건물인 보광명전(普光明殿, 보물 제608호)과 요사(寮舍, 지방 문화재 제698호)가 있다. 요사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말하는데, 위봉사의 요사채는 앞면은 極樂殿으로 뒷면은 寮舍로 사용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  암문을 지나면서 산성의 흔적은 왼편뿐만 아니라 오른편으로도 간혹 보이기 시작하더니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편은 장대봉으로 가는 길이다. 山城 또한 이곳에서 장대봉으로 방향을 바꾸어 버리고 있다. 삼거리에서 서래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걷기 좋을 만큼 부드럽다.

 

 

▼  이리 돌고, 저리 돌다가 허물어진 돌이 많이 쌓여있는 너덜구간을 올라, 고갯마루에 닿으면 되실봉이다. 누군가가 넓적한 바윗돌을 몇 개 포개 놓은 위에 길다란 돌을 세우고, 거기에다 되실봉이라고 적어 놓았다. 後來者가 장난삼아, 그 위에다 작은 돌맹이들 몇 개를 올려놓은 광경이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이 안되어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

 

 

 

▼  되실봉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약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소잔등처럼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진다. 오른편은 벌목을 끝낸 개활지(開豁地)로 시원스레 시야가 열리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산이 전북알프스의 맹주산인 운장산일 것이다.

 

 

 

 

 

 

▼  등산로는 북쪽으로 이어지면서 高度를 높여간다. 630봉을 지나 이마에 땀을 흘리다보면 어느덧 서래봉 정상이다. 서래봉이 오늘 답사하는 봉우리중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가 분명하건만 정상표지석은커녕 이정표 하나도 세워져 있지 않다. 정상이 암봉으로 된 탓에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스레 열린다.

 

 

 

 

 

 

▼  서래봉, 암봉이 낙타등 2개처럼 이어져 있는데, 위봉산에서 종남산으로 이어지는 5개 봉우리 중 702m로 제일 높다. 암봉인지라 약간의 스릴까지 느낄 수 있어서 오늘 산행중의 白眉이다. 그러나 바윗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험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오를 수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이 조금 더 지났다.

 

 

 

 

 

 

 

 

 

▼  675봉에서 서쪽으로 가파르게 내려서면 오도치, 종남산까지의 산행이 버거운 사람들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송광사로 갈 수 있다. 특별히 종주산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 코스의 이용을 권하고 싶다. 서방산과 종남산은 가슴에 담아갈만한 특별한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오도치에서 오픈편으로 내려서는 길은 오덕사를 거치는 下山路이다.

 

 

▼  오도치에서 서방산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나 제법 여러번 오르락내리락 거려야만 도착할 수 있다. 길은 부드럽지만 오르내림의 반복은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 거기다 쌓인 눈 때문에 미끄러워 한층 더... 오도치에서 종남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에는 뛰어난 조망처가 몇 곳 있다. 이 능선이 평야와 산지의 경계이기 때문에 동쪽으로는 높고 낮은 수많은 산들이 하늘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고, 서쪽에는 김제 만경들판을 넘어 서해바다까지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  西方山 정상, 제법 가파른 능선을 치고 오르면 널따란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서방산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지나온 위봉산과 가야할 종남산이 뚜렷이 조망된다. 날씨만 좋으면 왼편으로는 드넓은 김제평야와, 그 너머로 서해바다까지 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짙은 안개 탓에 그런 행운이 없다. 서방산이란 이름은 西方淨土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세계라는 뜻에서 유래됐다는데, 그 정도의 名山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내가 지닌 修養이 모자라서일까?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정도가 지났다.

 

 

▼  전라북도의 산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독특한 정상표지판, 어느 상호신용금고에서 세운 것으로서, 네모로 각진 알루미늄 기둥에 산의 이름과 고도를 적어 놓았다. 이왕에 세우려면 조금 더 美的인 感覺을 살려서, 어렵게 정상에 오른 등산객들이 기념사진을 찍을 때에 구색을 맞춰주었으면 좋았으련만...

 

 

▼  서방산에서 종남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부드러움 그 자체이다. 소나무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등산로는 그야말로 양탄자. 폭신폭신한 등산로를 걸으면서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을 느껴보는 것은 행운일 것이다. 거기다가 잠깐 속도를 늦추면서 ‘느림보의 美學’까지 더한다면, 힘든 오늘 산행이 어느새 행복한 산행으로 바뀌어있다.

 

 

▼  서방산에서 종남산으로 가다보면 두어 번 오른편에 진묵선서와 인연이 깊은 봉서사가 있음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거리는 1.0Km 남짓, 왕복 1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을 것이나, 도저히 산악회에서 산행마감시간으로 정해준 3시30분에 맞출 수가 없다.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나 기웃거려보지만 짙은 나무로 인해 사찰의 형태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 봉서사(鳳棲寺), 신라 성덕왕 7년(727년)에 해철선사가 창건한 절로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중창하였다. '석가의 화신' 이라고도 불리우는 진목대사(1562~1633)가 입산에서 열반까지 거의 평생을 주석하며 수도한 절로 이름이 드높다. * 진묵대사는 호방한 성격으로 '하늘은 이불이요 땅은 자리이고 산은 베개로다. 달을 촛불 삼고 구름을 병풍 삼아 바다를 술통으로...' 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인 진묵대사의 부도(제106호)가 있다.

 

 

▼  종남산 頂上, 한마디로 ‘이게 뭐야?’가 저절로 나온다. 밋밋한 능선의 한 지점에 이 근처 산에서 지겨우리만큼 자주보이는 쇠말뚝 하나가 박혀있고, ‘종남산’이라고 적혀있을 뿐이다. 쇠말뚝만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이곳이 정상이라고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남쪽의 끝에 있는 명산' 이란 뜻의 종남산은 가지산파의 시조인 도의선사가 중국에서 수행한 종남산과 모습이 비슷하여 그리 붙였다는 설이 있으나, 풍수지리학적으로 명산인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名山이라고 부르기에는 2%가 아니라 98%가 부족할 것 같다. 주변이 잡목으로 둘러싸인 탓에 조망도 없으므로 곧바로 하산을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네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  종남산에서 송광사로 내려서는 下山路는, 무인감시설비를 지나면서부터는, 설악산 頂上에서 오색약수로 떨어지는 코스의 고단함이 머리에 떠오를 정도로 急傾斜 내리막길이다(다행이 길지는 않다). 정상어림에서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위봉사에서 위봉고개로 이어지는 도로가 마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구불구불 흐르고 있는 광경이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보인다.

 

 

 

▼  서해바다까지 보인다는 조망은, 짙은 가스로 인해 시야를 열어주지 않고 있다

 

 

▼  산행날머리는 송광사입구 駐車場

급경사 내리막길은 오래지 않아 끝나고, 이내 등산로는 완만한 경사로 변한다. 등산로 주변은 소나무 일색, 떨어져 쌓여있는 낙엽 덕택에, 바닥 또한 폭신폭신해서 걷기에 여간 좋다. 소나무 사이로 소양市街地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는 정경이 눈에 들어올 즈음, 오른편으로 하얀 로프가 매어있는 내리막길이 보이고, 이내 인적이 끊겨 을씨년스런 ‘Korea Scout Association 전북연맹 훈련장’의 시설들이 보인다. 닫혀있는 문설주 사이를 비켜나서면 오른편 저만큼에 ‘송광사 주차장’이 보이고, 왼편 담장너머로는 송광사의 殿閣들이 넘겨다 보인다.

 

 

 

▼  松廣寺, 新羅 경문왕 7년(867년) 九山禪門의 하나인 가지산파의 개산조인 도의선사가 창건했다. 선사가 이곳을 지나면서 한 샘에서 물(영천수)을 마시고, 그 샘이 보통 샘이 아닌 것을 알고 샘 네 귀퉁이에 돌을 쌓은 뒤 일단 메웠다가 뒤에 제자를 시켜 그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文化財로는 목조 건축에서 보기 드문 십자형으로 특이한 대웅전 서쪽의 범종각(보물 1244호)을 비롯해 대웅전 안에 봉안된 보물 1274호인 소조삼불좌상, 천왕문에 있는 소조사천왕상(보물 1255호) 등의 國寶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 국내에서 가장 큰 목패와 나한전 등 地方有形文化財가 있다. 송광사는 평지가람으로서 봄철에 찾아가면 10 여리에 걸친 진입로에서 흐드러지게 핀 벛꽃 구경할 수 있다

 

 

회문산 (回文山, 837m)

 

산행코스 : 휴양림매표소→노령문→삼연봉→장군봉 갈림길 삼거리→정상(회문봉)→헬기장→야영장→남부군 벙커→휴양림(산행시간 : 3시간20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과 임실군 덕치면의 경계

산행일 : ‘11. 1. 22(토)

함께한 산악회 : 자이언트산악회

 

특색 : 전북의 어머니 산인 전주 모악산과 함께 아버지의 산이라 불리울 정도로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친근한 산이다. ‘큰 지붕’이라는 頂上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밋밋한 흙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빨치산 사령부 등 몇몇 유적지를 제외하면, 특별히 내세울 만한 아름다움은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또 다시 찾아올 이유는 없을 듯 싶다.

 

 

▼  산행들머리는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회문산 자연휴양림’ 駐車場

호남고속도로 서전주I.C에서 빠져나와 ‘27번 國道’를 이용하여 임실군 덕치면 일중리까지 달린 후, ‘729번 지방도(순창읍↔구림면 금창리)’로 연결되는 無名의 도로로 접어들면 되는데, 오늘 우리가 탄 버스는 태인I.C에서 정주시 산내면을 거쳐 강천산을 먼저 들른 후에, 729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반대방향에서 휴양림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곳 회문산은 겨울철에는 찾는 산악인들이 별로 없는 모양, 제법 널따란 주차장엔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 외에는 텅 비어있다. 잠깐 체조로 몸을 푼 후, 휴양림 도로를 따라 한가로이 걸어 오른다. 계곡 깊은 산중에 허허로운 자유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온다. ‘느긋하고. 그리고 한가롭게... 나그네여 느긋한 마음으로 이 산에 있는 모든 의미를 가슴에 듬뿍 담아 가시게나~’

 

 

▼  노령문, 도로는 휴양림표지석을 지나면서 갑자기 급경사를 만들어 내더니, 이내 노령문에 다다른다. 노령문은 성벽처럼 쌓아 올린 형상의 門으로서, 의병활동의 역사적 의미와 교육적 효과를 살리기 위해 산림청에서 세운 것이란다. 이곳이 임진왜란과 舊韓末에 최익현선생과 양윤숙, 임병찬 선생 등, 의병들의 본거지였다 하니 좋은 생각이다.

 

 

▼  노령문을 지나 오른편으로 돌아 오르면 30m정도 길이의 쇠로 만든 출렁다리가 나온다. 다른 산의 출렁다리를 본떠 만든 모양이나, 거리가 짧은 탓에 출렁거림을 느낄 수 없어 흥취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겨울철이라선지 다리 아래의 계곡은 바짝 메말라 있고... 다리에 올라서면 건너편 산허리에 亭子(五仙臺) 하나가 세워져 있는 것이 바라보인다. 전망이 좋다기에 정규등산로에서 잠깐 벗어나 보았으나 수리중인지 못 들어가게 막아 놓았다.

 

 

 

 

▼  亭子를 지나면서 등산로는 급경사를 만들어낸다. 눈이 수북이 쌓인 산을 찾아왔는데 등산로 주변엔 눈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보면 산 전체가 하얀색으로 도배를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지금 오르고 있는 코스가 陽地라는 말일 것이다. 영상의 포근한 날씨에 이마에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30분 정도를 오르다보면 이내 삼연봉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  삼연봉 정상에서 회문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왼편으로 방향을 잡아야한다. 오른편은 천마봉과 깃대봉으로 가는 길이지만 來往客이 별로 없는 듯, 등산로의 흔적이 희미하다. 삼연봉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급한 경사를 이루면서 내리막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저 멀리 왼편의 우리가 가야할 회문봉은 저리도 놓은데, 고도를 떨어뜨리기만 하고 있으니... 다시 오를 일을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대상이 없는 원망을 가슴에 묻으며 ‘빨치산 사령부’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두 번 지나치면 드디어 ‘장군봉 갈림길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  눈(雪), 보통사람들이라면 눈을 좋아하는 것이 普遍的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등산객들이 겨울산을 찾아 떠나는 것이고, 특히 올 겨울에 서해안 지방의 산으로 등산객들이 몰리는 이유는, 그쪽 지방에 집중적으로 暴雪이 내려서일 것이다. 이곳 회문산도 서쪽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탓에, 온 산이 눈으로 포위되어 있다. 삼연봉까지의 오르막길 외에는 내내 눈 속을 헤매는 쉽지 않은 산행이 이어졌다.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눈밭을 헤치며 걷는 일은 말과 같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  삼거리에서 장군봉(지도에는 투구봉으로 기록)까지는 1.5Km, 왕복 1시간 정도가 소요되니 다녀올 수도 있겠지만, 겨울철 짧은 해를 핑계 삼아 그냥 회문봉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만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밋밋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은 별로 크지 않은 갈참나무들, 그 아래에는 진달래나무들이 꼭 들어차 있다.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이는 장군봉을 벗 삼아 느긋하게 걷는다.

 

 

 

 

▼  회문산 정상인 회문봉

정상은 열 평 조금 못되는 盆地, 북서쪽은 바위 벼랑을 이루고 있어 시야가 잘 열린다. 정상엔 정상표지석 대신에 큰지붕이라고 적힌 은빛 쇠말뚝이 박혀있고, 그 뒤편에 회문봉이라고 적힌 초라한 이정표가 서 있다. 많은 산들이 그 머리위에 TV중계탑이나 헨드폰 기지국들을 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도 어김없이 흉물스런 鐵製塔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상에서 바라본 회문산은 그 모습이 회문봉을 중심으로 깊은 계곡을 좌우로 뒤집은 U자 형상이다. 그 말발굽의 끄트머리를 출렁다리로 연결해 놓았고...

 

 

 

▼  정상에 올라서면 동으로는 깃대봉과 그 뒤로 지리산 연봉들이 이어지고, 남으로는 무등산, 서로는 장군봉 너머로 내장산이 펼쳐진다는데, 오늘은 시야가 시원스럽지 있다.

 

 

▼  하산은 왼편 돌곶봉 방향으로, 경사가 제법 심한 등산로는 곳곳에 바위들을 심어 놓고 있는데, 길가의 하얀 눈덩이 사이로 山竹들이 파란 잎사귀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큰 나무가 드문 탓에 등산로 좌우로 시야가 잘 트이고 있다.

 

 

 

▼  정상에서 10여분 정도 내려가니 선두대장이 오른편에 꼭 들러보라고 외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집체만한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보이는데 天根月窟(천근월굴)이다. 커다란 바위의 한면에 상형문자로 천근월굴이라 적어 놓았는데, 천근은 陽으로 남자의 性과 월굴은 陰으로 여자의 性을 나타내어, 陰陽이 한가로이 왕래하니 소우주인 육체가 모두 봄이 되어 완전하게 한다는 뜻이란다. 陰陽調和...

 

 

 

▼  天根月窟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여자들의 예쁜 엉덩이를 닮은 야트막한 봉우리를 만나게 된다. ‘작은 지붕’이다. 봉긋이 솟은 모습이 지붕의 형상을 닮아서 작은 지붕이라는 어엿한 이름을 얻었는데도, 난 같은 모양을 보고도 여자들의 엉덩이를 떠올렸으니 淫心이 충만함일까? 아님 이곳 회문산 곳곳에 陰氣가 널려있어서 나도 모르게 젖어버린 탓???? 하여튼 이곳에서도 조망은 뛰어나다.

* 회문산이 안개에 휩싸였을 때, 그 둥글넓적한 봉우리가 마치 草家지붕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고 해서, 회문봉이라는 이름 외에 큰지붕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단다. 지도에는 장군봉이라고 적혀있는데도, 이정표에 회문봉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五福이 터졌다고 봐야하나? 아무튼 산봉우리의 이름을 고칠 때는 조금 더 신중을 기해주었으면 좋겠다.

 

 

 

▼  회문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다른 유명한 산들에 비해 墓가 무척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는 회문산 정상 바로 옆에도 묘가 있었고, 등산로 주변에 조그만 틈만 보여도 어김없이 묘들이 자리 잡고 있을 정도이다. 이곳 회문산은 우리나라 5대 明堂중의 하나로서 예로부터 靈山으로 알려져 왔다. 홍문대사(홍성문)이 이곳에서 道通한 후, 墓穴과 관련된 책자를 적었는데, 이 책에서 회문산 정상에 24혈이 있다하며, 오선위기혈에 묘를 쓰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代까지 간다고 했다니, 어느 누가 조상의 묘를 이곳에 쓰지 않고 배겨내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정상과 주면을 수많은 묘들이 차지하고 있을 수 밖에...

 

 

 

▼  女根木, 전주의 모악산은 어머니산이고, 이곳 회문산은 아버지산이란다. 회문산이 지닌 남성의 陽氣를 누르려는 탓일까? 천근월굴 바위, 여근목 등 여성의 陰氣를 나타내는 이름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이 여근목은 6.25 전쟁 후 빨치산 토벌을 위해 온산이 불바다가 되었을 때에도, 인근의 반송과 함께 살아남은 영험한 나무란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의 아래 부분 갈라진 부위에 제법 큰 구멍이 뚫려있다. 아마 여성의 生殖器 마냥 생겼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면 여근목과 비슷한 외형의 소나무 한그루를 더 만날 수 있다.

 

 

 

 

 

▼  정상에서 약 30분 정도 내려오면 안부 사거리에 헬기장이 있다. 휴양림으로 내려가기 위해, 왼편으로 방향을 잡으면 신작로처럼 널따란 林道가 등산객들을 맞는다.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이곳까지 차량으로도 오를 수 있도록 개설해 놓은 모양인데, 산을 보호한다는 산림청에서 오히려 산을 해친 결과는 아닌지 모르겠다.

 

 

 

 

▼  빨치산 사령부. 이곳 회문산은 ‘빨치산 전북 道黨 사령부’와 정치훈련원(노령학원) 및 세탁공장이 있었던 곳이란다. 난 오늘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빨치산이라는 단어가, 6.25 때 많은 양민들을 무참하게 죽인 대단히 나쁜 사람들을 칭하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원래의 빨치산은 ‘日帝에 의한 징병, 징용을 피하고 그들과 대항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란다. 빨치산을 무조건 左翼으로만 알아왔던 내 無知의 소치이려니...

 

 

대둔산(879m)

 

산행일 : '05. 11. 26

소재지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과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의 경계

산행코스 : 태고사-낙조대-마천대-220계단-수락리 주차장

함께한 산악회 : 푸르뫼산악회

 

 

낙조대 오르는 길목입니다
건너편 봉우리가 낙조대입니다

 

낙조대...
일몰을 구경하기 좋은 자리란 뜻이겠지요.
오르면서 볼 때는 암벽에 둘러쌓여 웅장하면서도 고왔는데
막상 정상에 오르니 밋밋한게 영 아니었습니다.
서쪽을 향한 조망은 괜찮았습니다 

 

마천대로 가는 길에 건너편 봉우리를 담아봤습니다

 

마천대에서 한 컷입니다.
개척탑인데 왜 여기에 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연을 훼손시키는 게 흉물스럽게 보입니다
인간의 무지를 비웃어보지만 저 역시 인간일 따름입니다. 

 

역시 대둔산은 바위산입니다
곳곳에 늘어선 암봉들... 사실 완주쪽 하산길이 백미인데...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상어림에서 바라본 능선입니다
논산쪽이니 건너편 산은 아마 바랑산과 월성봉일 것입니다 

 

 

하산길에 소나무가 고와서
바위 위에까지 밀려난 소나무가 곱기는 해도 어쩐지 서럽습니다.
싸움에 약한 이 소나무는 활엽수에 밀려 여기까지 밀려나 있을테니까요

사람뿐만 아니라 나무도 생존경쟁이 심한가 봅니다.

 

논산의 수락리쪽 하산길 계곡 정경입니다
웅장하진 않지만 바위계곡의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로치면 협곡???

220계단입니다 꽤 높지요?
바로 곁에 '비선폭포'라는 간판이 있으나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한참을 눈동자를 굴리고야 아하! 저걸 보고 폭포라하는구나 하고 피식 웃습니다.
'비가 와야만 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폭포' 제 해석입니다.
논산분들은 표현에 과장이 심합니다.
금강폭포라는 곳도 한참을 찾아봐야만 에게를 외치게 되니까요

하기사 과장은 여기뿐만이 아닙니다
언젠가 찾았던 도일봉 밑 중원계곡의 중원폭포는
곁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을 정도로 낮은 폭포였습니다.

 

승전탑 입구입니다
큰 의미를 찾을 수 없어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고리봉(708m)-문덕봉(599m)

 

산행일 : '06. 2. 25)

소재지 : 전라북도 남원시

산행코스 : 내동마을-문덕봉-고정봉-그럭재-두바리봉-삿갓봉-고리봉-방촌마을 

 

 

이번 주말은 조이님을 모시고 고리봉에 다녀왔습니다.

전라북도 남원시에 있는 708m 높이의 바위로 된 산입니다.

 

전북에 있는 이름난 다섯개의 바위산중에서 높이는 제일 낮지만 주능선 길이 암봉과 암릉 및 기묘한 바위로 이루어져 제일 묘미가 있는 바윗길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답니다.

 

이 산에 있는 만학골은 약 2Km의 길이로 온통 암반이 깔려있고 그 위에 와폭과 소를 이루고 있고, 유리판 같은 평평한 암반에 명주실 같은 물이 소리없이 반짝이며 흐르는 절경지대랍니다.

얼핏 보면 문득 두타산의 무릉개가 떠오르더군요. 물론 물의 양이 적어 규모는 좀 적지만요.  

 

지난주 일주일 동안 스포츠센터가 내부 수리중이라 운동을 못해선지 무지 힘든 산행이었네요. 조이님도 몸이 불었는지 산행 솜씨가 옛날만 못합니다. 땀으로 목욕을 하고, 연신 물달라 타령입니다.

 

500m짜리 두병을 갖고 집을 나섰는데, 휴계소에서 조이님 몰래 한병을 더 샀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물이 부족할뻔했습니다.

왜 몰래 샀느냐구요? 두병이면 충분하다는 조이님 주장이 꽤 거샜거든요. 경험도 부족하면서...ㅎㅎㅎ

요즘 조이님 발언권이 커져가네요. 막무가내... 투정???

 

위의 사진은 멀리서본 문덕봉입니다.

589m인데 이번 구간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전반적으로 산은 마음에 드는데, 중간중간에 필요없는 봉우리가 너무 많아 힘이드는 산이었습니다.

또하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가 거의 바닥권... 완전히 바닥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맛은 가히 죽을 맛이지요.

이 근처 산들의 특징이 아닌가 합니다. 진안에 있는 유명한 마이산도 봉우리들이 능선을 이루지 않고 따로따로 떨어져있거든요

 

그러나 이 산은 대부분 소나무들이어선지 괭장히 상큼하더군요.

소나무에서 치톤피트가 많이 나온다고 하더니만 맞는 모양입니다

 

문덕봉입니다.

선두는 이미 보이지 않네요.

이번 산행은 안내산악회를 따라갔는데, 안내산악회의 특성은 산을 즐기는게 아니고 산과 싸우듯이 산행을 한답니다.

 

점심 싸오는 사람도 없고, 사진찍는 사람도 보기 힘듭니다.

이동중에 알아서 행동식을 먹으니, 도시락 먹다간 이분들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답니다. 몇주전에 치악산에 갔을 때와 같이요.

그저 앞만보고 달리듯이 내뺍니다. 그러려면 헬스클럽으로 갈것이지 원~

 

이미 무릎에 통증와 걱정입니다.

조심 조심...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깁니다.

조이님도 발이 아프다고 투정입니다.

눈에 땀이 들어갔다나요? 다른 때와 다르게 땀을 많이 흘립니다.

 

 

문덕봉에는 일행중 몇명이 사진을 찍고있습니다.

아마 회사 동료들... 이분들도 안내산악회를 처음으로 따라왔는지 제법 여유를 부리네요.

아니나 다를까? 고리봉은 올라보지도 못하고 강제 탈출입니다.

 

저희 뒤에 보이는 저수지가 금풍제입니다.

제법 큰 저수지인데 여기서 보니 적게 보이는군요

근처 용동마을에서 부터 걸어서 산행을 시작하게 된답니다

 

 

푯말에 그락재가 보이지요?

능력이 제일 떨어지는 사람은 저기서 탈출을 한답니다.

그럼 3시간 반짜리 산행이 되는 거지요.

그러나 종주의 의미를 두지 않는 산행이라면 전 여기서 하산하라고 권하고 싶군요.

산세나 조망이 문덕봉이 제일 나아서, 나머지 구간은 큰 의미가 없거든요. 힘들기만 하지...

 

 

삿갓봉 가는 길목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봅니다.

온통 바윗길입니다. 아슬 아슬... 꽤 위험한 길이랍니다.

 

 

앞으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멀고도 험한... 저 무수한 봉우리를 넘어야 하다니...

 

왜 전 이런 힘든 일을 하고 있을까요?

그냥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봐도 될텐데...

 

대답은 단 하나...해냈다는 '성취욕'이랍니다

정상에서의 심호흡을 해본 사람이라면 제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것입니다.

 

올려다 보는 세상이 아닌, 내려다 보는 세상은

저를 한껏 부추켜주니까요. 천상천하 유아독존...

 

 

뒷편 봉우리가 문덕봉입니다.

절벽이지요? 저 절벽을 내려왔답니다.

바윗줄과, 크랙에 의탁하면서...

 

뒷 배경이 아름답지요?

문덕봉 구간은 온통 저런 모습이랍니다.

기암괴석... 구간이 조금 위험하지만 대신 아름다움을 저희에게 선사하네요

 

간식으로 가져간 떡을 먹다가...

순간 포착... 천지난만하지요?

 

아직도 문덕봉 구간입니다.

위험... 또 위험... 그러나 재미는 만땅이랍니다.

 

문덕봉 전경...

온통 바위에, 온통 소나무입니다.

좋은 것이 쌍으로 겹치니 더 좋을 수 밖에요.

 

바로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삿갓봉입니다.

오르는 길목의 바윗길에 밧줄이 걸려있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629m 높이인데 꼭대기가 다른 봉우리와 달리 흑으로 덮여있네요.

 

그 넘어에 보이는게 고리봉입니다.

 

고리봉입니다

709m인데 오르는 길이 꽤 위험합니다.

밧줄이 걸려있으나 얇아서 도통 믿을 수가 없습니다.

만일 떨어진다면 밑은 낭떠러지이니까요.

줄만 믿지 말고 한손은 바위의 그랩을 잡으라고 조이님께 말하지만 바위에 서투른 조이님은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별 수없이 한손으론 바위를 잡고 위태롭게 조이님을 끌어오릴 수 밖에... 으휴~ 힘들어!

 

고리봉 중턱에서 잠깐 짬을 내봅니다.

다리도 아프니 잠깐 쉴 겸해서... 조이님 얼굴은 이미 사색입니다.

평소에는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오늘따리 무지 힘들어하네요

쉬엄쉬엄... 조이님 컨디션에 맞게 속도를 조절해 봅니다.

 

그럼 조이님을 앞세우냐고요?

물론 아니랍니다. 리딩 경험이 없는 조이님, 툭하면 엉뚱한 길로 들어서니 앞세울 수도 없답니다.

그저 제가 알아서 보조를 맞추는 수 밖에요

 

마지막 봉우리입니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네요.

그럼 수월하겠다고요?

 오~ 노! 쇼트트랙 선수 이름은 아닙니다

내려가는 길이 무릎에 훨씬 무리를 주기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발에 물집이 생겼다는 조이님...

제 발 바닥도 감각을 잃은지 이미 오래랍니다.

무릎도 얼얼...

 

그래도 정상에 도착했고, 종주를 완성했다는 포만감 때문인지 조이님 표정이 밝네요.

금방 이어지는 하산길의 지루함에 죽을 상으로 변햇지만...

 

참 고리봉은

옛날 섬진강을 따라 남원 밑에까지 배가 들어왔었고,

그 때 배를 묶어 두려고 바위를 뚫어 고리를 만들었다는군요

 

물론 옛사람들의 뻥이니 믿거나 말거나이지만요 ㅎㅎㅎ

 

저희가 지나온 길입니다.

저 많은 봉우리들을 지나왔느니 힘든게 당연하지요

오늘 걸은 길이 15Km정도... 꽤 먼 거리입니다.

그 힘든 길을 포기하지 않고 저흰 완주했습니다.

중간에 포기 하고도 싶었지만, 다시 온다는 보장이 없는 산이기에 모든 봉우리를 다 밟아보고 싶었고, 해냈답니다.

 

6시간...

쉬지 않고 걸어 6시간 걸렸으니, 꽤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속도전에 지친 저희의 맹새 "다신 안내산악회 안 따라 나선다"

그러나 또 나설 수 밖에 없을 걸요?

마음에 드는 산을 간다는데 안 따라나설 장사는 없을테니까요

 

지리산 쪽으로 랜즈를 맞추어보지만

조망이 좋지 않아 그저 뿌옇네요...

지리산은 우릴보고 직접 찾아와 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아~ 참!

이번 산행의 느낌표가 하나 빠져있네요.

 

만학골...

누군가 늦은 나이까지 공부를 해서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요?

이름이야 어떻든 골짜긴 참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천려일실...

이정표가 눈을 찌뿌리게 하는군요.

원래 이정표는 어디에서 어디까지르 나타내 주는게 상식입니다.

양방향의 거리를 표기해야한다는 말이지요.

 

일로치면 고리봉까지는 몇Km가 남았고, 반대편 하산지점인 방촌리는 몇Km가 남았다고 표기해야 자기가 지금 어디쯤에 있는 줄을 알고 산행 속도등을 챙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곳의 이정표는 오로지 고리봉으로만 표기가 되어있네요.

이왕에 국가 예산을 사용했으면 최고의 효과를 거두어야할텐데도요.

 

뭔가를 하는 사람은 심사숙고해서 실수가 없도록 해야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며, 저에게 또 하나의 타산지석이 되었으면 합니다.

 

 

남덕유산(1,507m)

 

산행일 : '06. 1. 12

산행지 :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과 경상남도 함안군 서상면의 경계

산행코스 : 영각사매표소-영각재-남덕유산-월성재-황점매표소

 

 

매월 둘째주 일요일은 산과 하늘의 정기 산행일입니다.

지난달 소백산 산행에 참여자가 너무 적어서
같이가자고 여러명을 꼬드겨봤지만 무가 그리들 바쁜지...
이번에도 겨우 23명이 참석했네요.

그나마 코스모스님이 4명을 모시고 와서 20명을 겨우 넘겼답니다.
고마운 사람들... 이번에는 모두들 한사람이도 더 모셔오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보기좋았습니다.

이번 산행에도 스테파니아님이 돼지김치지게를 가져오셨습니다.
20인분... 다른이들을 위해 고생하신 모습이 아름답지 않나요?
얼굴 못지않게 마음씨 또한 곱네요

득남한 산막타는 산행내내 싱글벙글...
아이 아빠가 된 것이 무척 좋은 모양입니다

 

영각사에서 출발해서 남덕유 정상,
월성재를 거쳐서 황점매표소로 하산입니다.

전날 마시 술 탓에 힘들었지만
오른 길의 인파에 휩쓸려 속도를 낼 수 없는 산행은
차라리 제 컨디션에 맞는 산행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철계단에서 무려 한시간여를 소모했지만요

 

 

보통 덕유산 하면 향적봉을 지칭합니다.
무주리조트가 있는 봉우리지요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향적봉입니다.
여러번 다녀왔기에 차라리 남덕유가 신선합니다.
남덕유는 3년전에 백두대간을 답사할 때 지났지만
능선을 지나는 백두대간이라 지선을 벗어난 남덕유 정상은 오르지 안핬었거든요

 

진주의 논개가 왜장을 꽉 껴안고 뛰에 들었다는 남강,...
그 남강의 발원지가 여기라는군요
큰 의미는 없지만 한 컷입니다

 

'나 더이상 못올라가!'
'그럼 도래 내려가삐리라!'

어느 경상도 부부의 대화입니다. 아니 대화라기 보다는 차라리 악다귀...'다 왔으니 조금 더 힘내세요' 이런게 부부가 아닐런지요?

철계단에 사람들이 가득 매달려있습니다 

 

남덕유 오르는 계단...
속도를 낼 수 없으니 사진찍을 시간도 여유롭습니다.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 지루할만도 하지만
산의 아름다움에 젖어 지루한줄도 모르고 다들 행복한 모습들입니다

 

남덕유를 오르는 철계단입니다.
빙판에 사람들이 몰려 더디기 이를데 없습니다.
덕유산에서는 제릴 아름다운 코스이지요
옛날에는 다리가 있었는데 철거하고, 지금은 사다리로 오른답니다.

 

이번에 산행을 같이한 정광세사무관입니다.
전에 제가 석유정책업무를 할 때에 제 업무 파트너였지요
박서기관을 꼬셨느데 바쁘다 못오고 정사무관이 제 삐끼에 넘어가서
산행을 같이하게 되었는데, 조용히 산행만 즐기는 타입이랍니다

 

황점매표소 방향입니다.
곳곳에 눈이 쌓여있네요
산에도 눈의 천지... 아이젠도 필요없었습니다.
그저 엉덩이를 들이밀고 내려오는 수 밖에요
코스모스, 산목련, 아침이슬.. 거기다 스테파니아님
중후한 매력의 여성분들 환호성이 20대로 돌려놓는군요
다들 깔깔거리며 엉덩이 단련술에 들어갑니다 

 

저 멀리 향적봉이 보입니다.

대둔산(大芚山, 878m)


산행코스 : 대둔산 주차장→금강구름다리→삼선구름다리→정상(마천대)→허둥봉(서각봉)→깔딱재→220계단→선녀폭포→수락리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30분)


소재지 : 전라북도 완주군과 충청남도 금산군, 논산시의 경계

산행일 : ‘10. 11. 7(일)

같이한 산악회 : 뫼솔산악회


특색 : 노령산맥의 북부 殘丘群으로서 수십 개의 봉우리가 6Km에 걸쳐 奇巖怪石을 이루며 솟아 아름다운 山河를 만들어 내고 있다. 湖南의 금강산이라 일컬으며 전북과 충남에서 모두 道立公園으로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대진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교통이 편해진 이후로, 몰려드는 인파들 때문에 산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으나, 산을 찾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  산행들머리는 대둔산 ‘주차 매표소’

대전-통영고속도로의 금산 I.C에서 빠져나와 금산읍 시가지를 통과한 다음, 68번 국도를 따라 진산면사무소에서 좌회전, 17번 국도 완주군 운주면 방향으로 진행하면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왜군과 싸워 大勝을 거두었던 배티재 고갯마루에 닿게 된다. 이곳을 들머리로 삼아 낙조대를 거쳐 정상인 마천대에 이를 수도 있으나(금남정맥을 답사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둔산 관광호텔’이 있는 대둔산 주차장을 산행 들머리로 삼는다. 주차장의 매표소를 지나 케이블카 搭乘場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들어서면, 왼편엔 대형주차장, 그리고 오른편으로는 식당과 기념품 가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산에 오르려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케이블카 搭乘場所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단풍산행이 시작된다. 지금은 바야흐로 단풍시즌이 절정에 다다른 시절, 가을의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해 대둔산은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 산 전체를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등산로는 ‘동학농민혁명 대둔산 항쟁 기념비’를 왼편에 끼고 이어진다.

 

 

 

 

 

 

▼  저 아름다운 단풍, 황홀한 가을 戀書로 여겨지는 낙엽 그 자체는 화학물질이 빚어낸 색소작용일 뿐이다. 그저 休止에 접어들기 위한 ‘버림’의 과정일 뿐이다. 다만, 사람들은 여기에다 낭만, 허무를 이야기하고 色調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을 따름이다. 

 

 

 

 

 

▼  산행 들머리에서 정상인 마천대까지는 거리상으로 채 2km도 되지 않는 구간이다. 그러나 곧바로 깨닫게 된다. 山중에서 바위산은 결코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내리막길 하나 없는 오르막길의 연속, 그리고 꼭대기에 오르기까지 수없이 마주치는 계단들이 이곳이 바위산임을 깨닫게 만들어준다.  조붓하게 흙길을 걷는 豪奢는 결코 누릴 수 없다. 이왕에 힘든 길, 운동 삼아 속도를 조금 더 내보려하지만 불가능한 것은, 등산로를 꽉 매운 인파로 인해 앞사람을 추월해볼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  동심바위,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어린이 마음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이 바위를 찾았다가,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3일을 이 바위 아래서 지냈다는 전설이 있는 바위다. 이 바위의 어디에서, 그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발견했을까????  

 

▼  금강구름다리, 인파속에서 헤매다가 맑은 공기가 그리워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위에 금강구름다리가 가로놓여 있었다. 임금바위와 입석대 사이에 놓인 금강구름다리는 지상 80m 높이에 50m 길이로 설치된 철재 현수교이다. 발아래의 철제 구멍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세상이 제법 무서울 만도 하건만, 구름다리위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한꺼번에 200명 이상이 오르면 위험하다던데... 설마 흔들거나 장난치는 사람들은 없겠지?

 

 

 

▼  삼선구름다리, 결코 용기가 없으면 오르지 마시라... 다리라기보다는 차라리 '사다리'라고 불러야 맞는 다리이다. 50도가 넘는 경사이니 당연히 뒤돌아보는 것은 금물, 그러나 용기를 내어 뒤돌아보면 아련히 山너울이 와이드스크린으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금강구름다리에서 조금 더 오르다보면 산비탈에 간단한 먹을거리를 파는 약수정휴게소가 나온다. 사람으로 넘치는 휴게소에서는 기름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 몸에 좋은 인삼을 튀기고 있다는데 그 좋은 인삼냄새는 다 어디로 가고, 느끼한 기름 냄새만 온 산에 흘러 넘치고 있다. 휴게소 바로 뒤에서 왼편으로 가면 대둔산에 오는 사람들은 빠짐없이 들러본다는 삼선교로 가게 되고, 삼선교의 경사도가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정상을 향해 곧바로 올라가면 된다.

 

 

 

 

 

▼  정상으로 곧장 올라가는 길과 삼선계단으로 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 삼선계단을 밟고 정상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200명은 족히 됨직한 사람들이 조금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난 곧장 올라가는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  삼선계단 앞에서 갈라졌던 등산로는 다시 이곳에서 삼거리를 형성하며 한데 모이게된다. 참고로 삼선계단은 오름만을 허용하는 일방통행이다. 생각해보면 그 계단에서 양방통행을 할래야 할수도 없을테니.. 삼거리 우측의 내리막길도 원칙적으로 일방통행이긴 하지만, 삼선계단을 차마 못오르는 사람들은 이 방향으로 올라가는수밖에 없기때문에 사실상 양방통행이라고 할수있다

 

▼  삼선구름다리를 다녀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서 조금 더 오르면 능선 안부에 닿는다. 여기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왼편으로 이어진다.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낙조대로 가게 된다. 산의 초입에서 그리도 고왔던 단풍들이 高度를 높여갈수록 점차 시들해지더니만 동심정을 지나면서부터는 아예 빈 가지로 남아있다. 간혹, 빈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에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뭇잎들이, 빈 공간을 메우고 있는 잔상을 보이고 있어, 그저 안쓰러울 따름...

 

▼  대둔산 정상, 그 옛날 원효대사가 ‘하늘과 맞닿았다’는 뜻으로 <마천대>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름 그대로 높이는 900m가 채 안되지만 체감 높이는 하늘에 닿아있는 듯 하다. 정상은 분지 형태의 암봉, 그 중간에 서 있는 10m는 족히 되는 듯한 개척탑이 주변과 영 어울리지 않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곱디고운 산에, 왜 이런 의미도 없는 조형물을 세워놓았을까? 그래도 이곳이 정상임을 나타내주는 유일한 조형물인지라, 탑 주변은 인증샷을 찍으려는 인파들로 넘쳐나고 있다. 나도 겨우 한 컷 찍었지만 옆 사람의 모습이 더 크게 나와서, 과연 내가 누구일까? 본인도 헷갈릴 정도이다.

 

 

 

 

▼  정상에 서면, 정상인 마천대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위용을 뽐내며 병풍처럼 늘어선 기암괴석들이, 한 폭의 眞景山水畵를 연출하고 있다. 좌우를 둘러보면 웅장한 山勢, 불과 한 시간 남짓에 올라버린 산이라고는 믿을 수 있을까?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은 가히 湖南의 소금강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  佛家에서 유명한 신라시대의 원효대사는 대둔산을 둘러보고 난 후, ‘사흘을 둘러보고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산’리라고 말했단다. 옛날 先賢들을 빌어 전해오는 예기들은 조금 과장된 면이 없진 않지만, 내 느낌 또한 며칠이 걸리더라도 여유를 갖고 찬찬히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니 원효대사님께 한 표를 드려본다.

 

 

▼  정상의 난간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면 울긋불긋 암봉들 사이에 놓여진 금강구름다리와 삼선구름다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붐비는 인파들 때문에 생략한 코스이기에 아쉬운 마음으로 카메라의 줌을 당겨본다.

 

 

▼  정상에서 금남정맥인 허둥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아까 올라왔던 방향과 반대편 등산로로 내려서야만 한다. 정상어림에 허둥봉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없기 때문에. 잘못하면 곧바로 수락계곡으로 떨어질 우려가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하지만 왼편 절벽을 끼고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길을 잃을 우려는 없다. 정상 부근 조금이라도 공간이 확보된 곳에는 여지없이 三三五五, 등산객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도시락을 까먹고 있다. 갑자기 코끝을 스치는 비린 냄새, 같이 산행을 하고 있는 형우君 말로는 새우젓 냄새란다. 가파른 등산로를 올라오면서 가쁜 숨결 사이로 배어나오는 담배냄새와 술 냄새에 가뜩이나 힘들어했는데... 거기다 더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비린 냄새라니, 행복하기만도 부족한 이 시간에 얼굴을 찌뿌리는 이가 나 혼자만이기를 빌어본다...

 

 

▼  정상에서 허둥봉으로 가는 길은 極과 極이 常存? 왼편 벼랑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암릉에 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고, 오른편 斜面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어른의 허리를 훌쩍 넘길 정도로 웃자란 山竹이 등산로를 포위하고 있다. 그 위는 역시 참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지만...

 

 

 

 

 

 

▼  마천대에서 허둥봉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은 대둔산의 빼어난 절봉들이 이어지는 능선이다. 수 많은 기암봉 사이를, 또는 기암봉의 정수리를 밟기도 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허망봉에 도착하게 된다. 어느분은 현재 금강산은 구룡폭과 만물상까지만 개방되어 있다며, 우리가 집접 가 볼수 있는 지역만 견준다면 오히려 이곳의 경치가 더 나을 거란다. 그러면 하나도 놓치지 말고 가슴에 담아볼 일이다.

 

 

   

▼  疊疊山中, 우리나라 山에 오르면 어느 산에서나 보이는 광경, 우린 이런 광경을 보고 첩첩산중이라고 부른다. 심심찮게 나가는 海外 출장 때, 잠깐의 틈만 생겨도 山間奧地를 둘러보고 오는 내 기억 속에는, 이런 광경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물론 中國은 제외다...

 

 

 

 

 

▼  허둥봉(829m), 마천대에서 이어지는 암릉이 끝날 즈음 만나게 되는 봉우리로서(이곳에서부터는 암릉의 규모가 확연히 왜소해지기 시작한다), 일부 지도에는 서각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어쩌면 많은 등산객들이 이곳에서 어디로 갈지 헷갈려서 허둥대기 때문에 봉우리 이름을 허둥봉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이곳에서 등산로는 세 갈래로 나뉘나 이정표가 없어 분간하기는 힘들다. 독도법을 이용해 오른편 길로 들어섰고, 우리의 판단이 옳았다.

 

 

 

▼  허둥봉에서 깔딱재로 이어지는 능선도 꽤 오랫동안 암릉으로 이어지지만 왜소하기 때문에 그리 위험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서 오늘 산행중에 유일한 로프를 만날 수 있었다. 로프에 의지하지 않고도 별 어려움 없이 올라설 수 있는 암벽에...

 

 

 

▼  깔딱재, ‘아하! 이래서 이곳을 깔딱재라고 부르나 보다‘ 같이 산행을 즐기고 있는 형우君의 말이 금방 이해가 갈 정도, 암릉이 끝나고 걷기 좋은 흙길이 이어지나 싶더니만 등산로는 갑자기 급경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주위에는 온통 참나무 일색... 이곳에서 왼편으로 가면 안심사, 곧바로 진행하면 수락재이지만, 금남정맥을 이어갈 필요가 없는 우린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수락계곡으로 향한다.

 

 

 

▼  깔딱재에서 수락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에서 또다시 단풍을 만나게 된다. 단풍의 실체는 복잡했다. 붉게만 보였던 나무들은 사실 노란색이기도 하고, 갈색이기도 하니 말이다. 어떤 것들은 바스락거리는 잎을 한참 떨구어내는 중이었고, 어떤 것들은 붉은 물감으로 짙게 색칠을 하고 있었다.

  

 

 

▼  깔딱고개에서 오른편으로 산허리를 감으며 10분 정도를 걸으면 마천대에서 내려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 수락계곡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돌로 포장된 등산로를 따라 얼마쯤 내려서면, 나무계단이 이어지고, 나무계단이 끝날 즈음 저 멀리 주황색 구름다리가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협곡의 斷崖 위를 가로지르는 구름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가을 산 정취는 오색 융단 위를 나는 듯 감미롭기만 하다.

 

 

 

 

 

▼  구름다리 끝에서 등산로는 나무계단을 이용해 갈지자로 협곡을 기어오른 후, 다시 양편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바위 능선의 등줄기를 따라 아래로 이어진다. 바위와 작은 봉우리 등의 옆과 그 위로 만들어진 나무계단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경관, 능선의 양 옆으로 펼쳐지는 절경에 저절로 기분이 상쾌해 진다. 안내문에는 이곳을 220계단으로 표시하고 있지만, 대충 잡아도 300개는 훌쩍 넘기고 있다.

 

 

 

 

 

▼  수락폭포, 220계단을 내려서면 수락폭포 옆 수락계곡에 닿는다. 수락계곡은 대둔산이 자랑하는 최고의 비경 중 하나로서, 양옆으로 수직의 절벽이 감싸고 있는 특이한 지형이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은 단풍의 물결이 계곡을 따라 올라오는 바람결에 물결치고 있다.

 

 

▼  仙女瀑布, 수락폭포에서 15분 정도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왼편으로 나무테크로 만든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서면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놓여있고, 다리 위에서 선녀폭포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옥황상제께서 이곳이 奇巖怪石으로 둘러싸여 경관이 매우 좋은 곳인지라 선녀들에게 이곳에서의 물놀이를 추천한바 있다는데, 만일 선녀들이 이곳에서 목욕하고 놀았다면 아마 그 선녀는 좀 허접한 선녀였으리라...

 

▼  산행날머리는 수락계곡 주차장

수락계곡을 벗어날 즈음 만나게 되는 선녀폭포를 답사하고 난 후, 나무테크로 곱게 단장해 놓은 다리를 따라 100m정도 걸으면 경찰승전탑 입구(언덕위에 승전탑이 있는지 돌계단이 제법 우람하게 조성되어 있다)가 나온다. 이곳에서 도로 양편으로 가로수로 심어 놓은 붉게 물든 단풍나무 아래를 10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주차장에 닿게 된다.

 

 

 

장안산(長安山, 1,237m)


산행코스 : 무룡고개→장안산→중봉→하봉→덕천암 삼거리→범연동 (산행시간 : 3시간)


소재지 :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계남면, 번암면의 경계

산행일 : ‘10. 10. 31(일)

같이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白頭大幹의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으로서 호남정맥이 시작하는 첫 번째 산이자 ‘호남정맥’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그러나 산의 육중한 덩치에 비해 등산로는 무척이나 여성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평탄하고 잘 정비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해 부드럽다는 느낌, 만추의 계절에는 억새와 단풍을 한꺼번에 구경할 수 있으니, 가족 나들이를 권하고 싶은 산이다.

* 오늘 산행의 주제는 '길'이다. 오솔길과 부드러운 육산에서는 발걸음이 즐겁다. 어느덧 길 위에는 가을바람을 못 이겨 떨어진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폭신폭신하고, 길가의 풀들이 노랗게 무르익은 조붓한 길은 예뻐서 '정말 예쁘다'는 말만 셀 수없이 되풀이 하게 만들고 있다. 오솔길이 끝나면 이어지는 나무계단, 장안산에는 그 흔한 바위하나 찾아보기 쉽지 않다.

 

 

▼  산행들머리는 무룡고개

대진고속도로 자우 I.C에서 빠져나와 거창, 안의 방향으로 가는 26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우측으로 743번 지방도가 보인다. 이 도로를 따라 주욱 들어가면 대곡저수지와 논개 생가를 지나 산행 들머리인 무룡고개에 다다르게 된다. 무룡고개는 백두대간이나 호남정맥을 종주하는 사람들이 구간종주의 기점으로 삼는 곳이라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아니나다를까 찾아드는 사람들을 위해서 고갯마루 위에 상당히 넓은 주차장을 만들어 놓았다.

 

 

 

▼  산행 들머리인 무령고개에서 나무 계단을 오르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반대편은 백두대간인 영취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계단의 초입 左右에는 장안산 안내지도와 다른 여러가지 안내판들이 흡사 어느 전시회를 찾아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할 정도로 번잡하게 설치되어 있다. 나무계단이 끝나면 다시 흙길이 나타나고 등산로 주변에는 소나무 일색, 다른 산과 다른 점은 소나무가 마치 낙엽송같이 하늘을 향해 솟구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하늘도 넓지만, 땅도 넓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  지금 걷고 있는 구간, 그러니까 이곳 무령고개에서 장안산 정상까지는 호남정맥의 일부이다

* 호남정맥, 조선시대 旅菴 申景濬선생이 저술한 ‘山經表’에서 분류하고 있는 1大幹(白頭大幹 :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1正幹(長白正幹 : 백두산에서 시작해서 동북쪽으로 동해안과 두만강을 나누는 分水山脈), 13정맥(淸北正脈, 淸南正脈, 海西正脈 臨津北 禮成南正脈, 漢北正脈, 漢南正脈, 漢南錦北正脈, 錦北正脈, 錦南正脈, 錦南湖南正脈, 湖南正脈, 洛東正脈, 洛南正脈)중 하나인 호남정맥으로서, 전북 장수군에 있는 백두대간 상의 영취산에서 전남 광양시에 있는 백운산까지 호남지역을 관통하는 총 연장이 462Km인 산줄기이다.

*장안산은 호남정맥의 宗山이자, 매우 영험한 산이라고 소문이 나서, 가뭄이 들면 이곳에서 祈雨祭를 지내냈었단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우리나라의 ‘으뜸 산과 으뜸 강’을 각각 12개씩 선정하여 12宗山과 12宗江으로 불렀는데, 여암 신경준선생이 저술한 '東國文獻備考’의 ‘與地考’에는 12종산을 삼각산, 백두산, 원산, 낭림산, 두류산, 분수령,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 장안산, 지리산이라고 적혀있다.

 

 

 

▼  팔각정, 무령고개에서 5분 정도 오르면 삼거리를 만나게 되고, 오른편으로 오르면 멋진 조망을 보여주는 팔각정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산 아래 위치한 대곡호를 비롯해 즐비하게 늘어선 멋진 산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남덕유와 서봉, 깃대봉, 영취산,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대간 마룻금이 잘 조망된다. 장안산 정상으로 가려면 아까의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야만 한다.

 

 

▼  木製칩 시험 포설구간, 사람 키만큼 자란 산죽 울타리를 좌우에 끼고 한동안 편안한 산행이 이어지는데, 등산로 오른편에 ‘목재칩 시험 포설구간’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아미 이곳은 흙산이어서 질퍽거리는 등산로를 개선하기 위한 방편인 듯, 나무 칩을 땅에 심음으로서 땅을 다지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등산객들이 오랫동안 다녀서 더 깊이 박혀버렸는지 육안으로는 목제칩을 구경할 수 없다.

 

 

 

▼  1.5km 진행후, 무룡고개에서 장안산 정상까지의 딱 중간지점에 서 있는 이정표에 500m 전방에 억새군락지가 있다고 적혀있다. 이정표에는 왼편 20m 아래에 샘터가 있다고 적혀있다. 山行記 소재도 삼을 겸 잠깐 짬을 내어 내려서니 작은 우물이 있다. 누군가가 준비해 놓은 플라스틱 바가지, 그분의 친절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라도 한모금 마셔야겠지만,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샘물을 마시기에는 난 그리 건강한 편이 아닌가보다.

 

 

 

▼  샘터를 지나면 광활한 억새밭이 나오는데 아침햇살에 반사되어 은빛 물결로 출렁이는 풍경은 壯觀을 이루고 억새밭에서 펼쳐지는 조망은 일품이다. 저 멀리 동쪽 능선으로부터 시원스런 느낌을 주는 초원지대가 보이고, 반대쪽 끄트머리까지 온통 하얀 억새의 물결이다. 그야말로 하얀 파도가 출렁이는 느낌,,, 장관이라고 표현한다면 다소 무리일까? 그러나 가슴이 탁 트이고, 시원하고 아름다운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이곳의 억새는 다른 곳에 비해 더 웃자라서 사람의 키 높이까지 닿는 것이 특색이다. 억새밭은 민둥산이나 영남알프스 같이 광활하게 넓지는 않지만, 억새를 구경하는데 서운함이 없을 정도의 면적은 된다. 조금 늦게 왔을까? 새의 깃털 같은 새하얀 억새꽃은 많이 사라진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  가을의 전령사인 억새, 하얀 억새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을, 마치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있는 영상으로 전환해내면서 찾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억새평원 전면으로는 구름에 한점 머리위에 인 山野가 조망되고, 앞으로 가야할 방향으로는 억새들 사이로 장안산 정상이 내다보인다. ‘언덕 위를 늠름하게 점령하고 있는 아름드리나무는 바람에 부러지는 일이 있어도, 연약한 갈대는 결코 부러지는 일이 없다’고 적혀있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해 주려는 듯, 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갈대들은 결코 넘어질 줄 모른다. 그래 부드러운 것이 도리어 더 강한 모양이다.

 

 

 

▼  억새평원이 끝나면 그동안 바위는커녕 작은 작은 돌맹이 하나 구경하기 힘들었던 등산로에 갑자기 큼지막한 바위가 나타난다. 등산로는 커다란 바위 아래를 감싸고 돌도록 나무 테크로 예쁘장하게 다리를 만들어 놓았다. 주변은 오리나무와 산죽들이 줄을 잇고 있다.

 

 

 

▼  바위지대를 지나 장안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은, 푸르름이 이미 사라진 채 황갈색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들이 등산객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설악산에서 가을정취를 만끽하였는데, 어느새 가을은 이곳 장안산까지 내려와 있었나보다.

 

 

 

▼  장안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서야한다. 턱에 차오르는 숨도 달랠 겸 뒤돌아보면 지나온 마룻금이 뱀처럼 꿈틀거리고, 저 멀리 덕유산 자락이 조망된다. 나무계단을 지나면 지척에 정상이 있다. 산행들머리인 무룡고개를 출발한지 1시간 20분 정도 지났다.    늦가을 억새군락지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능선 위에 묘한 느낌의 초록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산죽군락이다. 장안산은 산 전체에 산죽군락이 넓게 퍼져있다.

 

 

 

 

 

 

▼  장안산 정상은 상당히 넓은 헬기장이다. 어느 분이 말씀하신 대로 ‘전북에서 제일 잘생긴 정상표지석’이 번듯하게 서 있다. 그리고 정상의 한쪽 모퉁이에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종합안내도가 장안산 전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상표지석 뒤에 있는 이정표에는 들머리인 무룡고개에서 이곳까지가 3Km, 호남정맥을 종주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산지점으로 삼는 말목재까지는 9.3Km, 또 다른 이정표에 우리가 가야할 범연동은 앞으로 5Km를 더 가야한다고 표기되어 있다.

 

 

 

 

 

▼  장안산 정상에 서면, 남쪽으로 지리산의 주능선, 북쪽으로는 덕유산, 동북쪽에 황석산과 금원산이 보이는가 하면 동쪽에는 백운산, 그리고 서쪽의 팔공산 등이 잘 조망된다. 그래서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이곳 장안산을 조망의 명소로 꼽고 있다.

 

 

▼  정상에서 장안산의 인공위성 사진이 게시되어 있는 곳의 뒤편으로 내려서면 범연동 (5Km 지점)으로 가게 된다. 중봉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는, 오늘 산행 중에 구경하기 힘들었던 바위들이 널려있는 구간, 등산로 주변에 그리 굵지는 않으나 오래 묵은 참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그 아래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바위 사이사이에는 산죽들도 보이고...  

 

 

 

 

 

 

 

▼  장안산 정상에서 범연동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따르다보면 중봉과 하봉을 거치게 되어 있는데, 이정표가 없기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여기가 거기쯤이려니 유추해 볼 수밖에 없는데,  중봉은 정상에서 약15분 정도 내려온 지점인 것 같으나, 하봉은 아예 추측해 볼 수도 없다.

 

 

▼  중봉에서 범연동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다소 심한 지역이 여럿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등산로에는 미끄러우니 아예 붙들고 가라면 한손에 잡기에는 약간 왜소한 로프를 매달아 놓았다. 이곳에서부터 덕천암갈림길까지 이어지는 등산로가 오늘 산행중 제일 나은 경관을 보여준다. 가을의 상징은 붉은 단풍으로...

 

 

 

 

 

 

▼  범연동 방향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심심찮게 양옆으로 산죽이 도열해 있다. 산죽 사이로 난 길은 푹신푹신한 흙길, 장안산의 좋은 점은 거의 전 구간이 흙길이어서 걷기에 편하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공을 들였는지 산죽도 말끔하게 자르고, 길바닥도 잘 정비해 놓아서 걷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길로 조성해 놓았다.

 

 

▼  높은 산들로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기자기한 능선에는 참나무·떡갈나무·상수리나무가 한껏 고운 자태로 물들고, 그 틈새 푸른 소나무가 몇 그루, 바닥은 온통 산죽로 덮여 美的 감각을 한층 고조시켜 주고 있다. 가끔가다 올려다보는 하늘은 비취색 푸르름, 빈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걸려있다.

 

 

 

▼  덕천암 갈림길 삼거리,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는 구간, 가을의 한 가운데에서 빨갛게 물든 단풍군락지를 지나면, 움푹 파인 능선안부의 고갯마루에 닿는다(정상에서 4Km 지점).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덕천암이 4Km, 곧바로 진행하면 1.5Km전방에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범연동이 나온단다.

 

 

 

 

▼  덕천암 갈림길 삼거리에서 조그만 고개하나를 넘으면(약 5분 정도 소요) 이정표가 없는 삼거리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 지역에서 만들어 놓은 산행들머리로 가려면 곧바로 진행한는 것이 옳을 듯 싶은데도, 산행리더의 판단(잘못?)에 따라 우린 왼편 등산로를 따라 내려선다. 덕분에 우린 범연부락의 동네 안 고삭을 통과해야만 했고, 별로 달갑지 않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야하는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  범연부락으로 내려서는 下山 길은 마음이 약한 여성분들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은 코스, 거의 수직에 가까운 산의 斜面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위험천만, 혼자 걷기에도 좁게 느껴질 정도인 길에서, 혹시라도 미끄러질 경우 큰 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는 낭떠러지에 가까운 길이다.

 

 

▼  색채 심리학에 따르면 빨간색을 칠한 방은 사람을 흥분시키고, 주황색은 사물을 보다 커 보이게 만든단다. 또한 감색은 다른 사물보다 무겁게 보이게 반들고... 감나무에 달린 감이 튼실해 먹음직스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단다. 그래서 붉게 물든 가을산이 사람들로 넘치고 있나 보다.

 

 

 

▼  산행날머리는 용림제 상류

산행을 벗어나 시멘트로 포장된 농로를 따라 걸어 내려오면 범연부락이 보이고, 동네 고삭을 통과한 후, 군내버스 정류장을 지나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약 500m 정도 걸어 내려오면 용림제가 보인다. 호수의 상류로 들어가는 계곡에서 잠시 산행 중 흘린 땀을 씻은 후, 조금 더 내려가면 이 지역에서 조성해 놓은 산행들머리에 도착하게 된다. 들머리에는 조그만 주차장과 산행 안내도, 그리고 간이화장실이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다.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아마 아까 우리가 범연동으로 내려설 때 고민했던 삼거리에 닿을 것으로 생각된다.

 

 

 

▼  오늘의 concept은 논개

알려진 대로 논개는 장수군에서 태어난 義人이다. 때문에 장수군에서는 논개의  사당을 마련하고 매년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물론, 논개의 생가까지 복원해 놓았다. 이왕에 들른 장수이니 두 곳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들른 논개 生家, 무룡고개 못미쳐에 있는 논개의 생가 주변은 골짜기 곳곳에 다랑이 논들이 포개져 있다. 열을 올리던 태양도 허덕이다가 지쳐서 그만 돌아서는 가을 길, 푸르름도 덩달아 기진했을까? 길가 다랑이 논의 벼가 누렇게 물들었다 했더니만 어느새 빈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볏짚을 담은 하얗고 둥그런 원통만 남겨놓은 채로... 아직은 여름의 끝자락이라며 마지막 생명의 불씨를 지켜가고 있는 나뭇잎들마저 생기를 잃은지 이미 오래다. 바야흐로 지금은 가을, 조금 있으면 서리가 올텐데...

 

 

 

 

▼  산행을 마친 후 들른 논개의 사당인 義岩祀, 1574년 장안산 자락의 주촌마을에서 아버지 주달문과 어머니 박씨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단다.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읜 논개는 어머니와 함께 당시 장수 현감이었던 최경회에게 거두어졌다가 최경회가 강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임명되자 그를 따라 진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고, 그 뒤 일본 장수와 함께 진주 남강에 투신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각산 (大角山, 188m)


산행코스 : 주차장→절개지 철계단→199봉→월영재→月影峰(198m)→미니해수욕장→암릉→대각산→응골저수지→월영재→주차장 (산행시간 : 3시간30분)


소재지 : 전라북도 군산시 新侍島

산행일 : ‘10. 6. 2 (수)

같이한 산악회 : 자이언트산악회


특색 : 신시도는 인근에 있는 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등과 함께 고군산도를 이루고 있으며, 그 가운데 가장 큰 섬, 배를 이용하여 들어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섬의 아름다움에 비해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으나, 최근 새만금防潮堤가 완성됨에 따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요즘은 섬 전체가 시장통을 연상시킬 정도로 인파로 넘치고 있다.

 

 

▼  산행 들머리는 신시도 배수갑문 주차장

‘신시도 배수갑문 공원’의 맞은편에 있는 주차장에서 우선 배수갑문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절개지 사면 아래에 쌓은 축대를 따라 100m 정도를 걷다가, 168봉의 왼편 절개지 사면에 설치된 철 계단을 잡고 오르면 168봉이다.  

 

  

 

  

▼  절개지 사면에 설치된 철 계단, 직각으로 보일만큼 고추 세워진 철 계단을 오르다 보면, 마치 하늘로 오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 살짝 뒤돌아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  199봉 정상에 올라서면 새만금防潮堤가 차렷 자세로 도열해 있고, 오른편으로 눈을 돌리면 독특한 비경을 간직한 선유도와 무녀도 등 고군산열도가 발아래 조망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남짓 걸렸다.(배수갑문에서 약1Km)  

 

 

 

▼  새만금 防潮堤

길이가 33.9Km로 세계에서 제일 긴 방조제로서, 1991년 착공해서 2006년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환경단체의 반대와 정부의 미온적 대처로 인해 2010년 4월에야 개통되었다. 무려 대통령이 4번이나 바뀌는 긴 세월인지라, 공사에 따른 사연도 갖가지 일 것이다.

 

 

▼  왼편으로 펼쳐지는 고군산열도의 풍경을 감상하며 199봉을 내려서면 월영재, 배수갑문 주차장에서 곧바로 올라오면 이곳에서 마주치게 된다. 산행들머리에서 이곳까지는 약 1.5Km, 이곳에서 순창의 책여산처럼 바위를 차곡차곡 곱게 쌓아 놓은 듯한 암릉과 키 작은 소나무 숲을 약 500m정도 오르면 월영봉 정상이다.   

 

 

 

 

 

 

▼  월영봉 정상(198m) 

고군산군도의 주봉, 신라시대에 최치원 선생이 이곳에 단을 쌓고 생활하면서, 여기서 글을 읽고 악기를 연주하는 소리가 중국에까지 들렸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월영봉 정상은 ‘하늘 가운데 자리 월영산’이란 간판과 돌탑이 반겨준다. 삼각점(신시 405)이 있고 배수갑문옆에서 곧바로 올라오는 길도 보인다. 이곳에서는 신시도배수갑문과 새만금 방조제가 잘 조망된다.   

 

 

▼  월영봉 정상에서 대각산으로 가는 등산로는 경사가 완만한 흙길, 크지 않은 倭松들 아래를 지나다 보면, 코끝을 스치는 송진내음이 심신을 맑게 다스려준다.

 

 

 

 

▼  등산로 주변에는 다른 곳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특이한 이정표들을 만날 수 있다. 신시도초등학교 학생들이 길목마다 이정표처럼 걸어 놓은 글귀들이다. 월영봉 정상은 ‘하늘 가운데 자리’이고, 내려서는 길은 ‘바람 열린 너울길’이다. 신시도 마을이 보이는 능선은 ‘보이는 저 마음들’이고, 바닷가쪽에 다 내려서면 ‘두고 온 세상 옷깃’이다. 마치 고군산군도의 절경, 중간 중간에 넣어주는 추임새로 보아도 좋을 듯 싶다.

 

 

▼  대각산 방향으로 내려서면 산줄기가 북에서 서쪽으로 꺾여 내려가며 대각산이 눈앞에 성큼 다가온다. 노관주나무와 산벗나무가 어우러진 숲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오른편으로 단애를 이룬 해안선과 해안선을 따라 일렁이는 하얀 물보라가 보기 좋다.   

 

  

  

 

▼  가끔 나타나는 전망대 두어 곳을 지나다보면 바닷가로 내려서게 된다. 들릴락 말락한 海潮音, 비릿한 냄새를 가득 품은 몽돌(이곳의 몽돌은 다른 곳과 달리 납작한 모양)을 품에 안고 있는 조그만 미니해수욕장이 앙증맞게 자라잡고 있다. 해수욕장 뒤로는 양쪽 바다를 막아 만든 농경지가 제법 넓게 펼쳐져 있다. 철썩이는 파도와 단애를 이룬 해변, 그 아름다움에 빠진 많은 사람들이 등산로를 벗어나 바닷가로 향하고 있다. 

 

 

 

 

 

▼  대각산을 가려면 해수욕장을 지나 맞은편 숲으로 들어서야 한다. 오름길 숲에 들면 암릉, 바위들이 무등산 서석대처럼 돌들이 뾰족뾰족하게 서있다. 암릉 주위는 온통 바위손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  대각산을 향하는 오름길, 가파른 암릉에는 어김없이 밧줄이 매어져 있고, 연이어진 입석바위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암릉에서 조망되는 고군산군도의 섬들은 마치 어미를 쫒아 다니는 병아리들 모양,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 한껏 다정스럽게 다가온다.  

 

 

 

 

 

 

▼  대각산 정상

대략 50여평 정도 되는 분지위에 철제로 만들어진 3층짜리 전망대가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전망대 맞은편에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木製 정상표지판이 외롭게 서 있다. 그러나 생김새에 비해 인기는 있는 편인지 표지판 앞에 사람들이 줄을 짓고 있다. 물론 증명사진을 찍으려는 소박한 욕심 때문이겠지만...

 

 

 

▼  철 구조물인 3층 전망대에 올라서면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고, 발아래 신시도의 지풍금 마을이 발아래로 잡힐 듯 다가온다. 또한 신시도에서 야미도를 잇는 방조제가 지척이다.  

 

 

▼  하산은 122봉을 지나 지풍금마을 입구방향으로

대각산 정상에서 약 15분 정도 내려오면 122봉, 정상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긴의자가 2개, 가족들인 것 같은 일행들이 다정한 모습으로 이미 자리를 잡고 있다. 등산로 주변은 발육상태가 안 좋은 倭松들, 뒤돌아보면 지나온 대각산 정상과 전망대가 눈 앞에 서있다.  

 

 

 

 

▼  키 작은 소나무 군락을 내려오는 길에서는 신시도의 지풍금 마을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선유팔경을 연출하는 자연의 조화를 보면서 걷다보면 눈은 한없이 즐거워진다. 거기다 파도소리까지 배경음악으로 깔아주는데야... 몸은 비록 산속에 있지만, 맘은 올망졸망한 섬들이 놀고 있는 망망대해를 향해 이미 열려있다. 이게 바로 섬산행의 묘미일 것이다

 

 

 

 

▼  등산로를 벗어나면 지풍금 마을 입구, 산행 안내판이 서 있다. 삼거리에서 좌측 시멘트 길이 간척지 방파제로 이어진다.(대각산에서 약 30분 소요) 몽골저수지 주변 도로 가에는 찔레꽃이 한창, 진한 향기에 취한 방심은 그냥 지나치지를 못하고 꽃 속에 파묻히고 만다. ‘꽃보다 더 고운 그녀는 내 생명보다 더 소중한 내 아내...‘  

 

 

▼  산행날머리는 산행을 시작했던  ‘신시도 배수갑문 주차장’

오늘 산행은 원점회귀 산행이다. 산행을 시작했던 주차장으로 가려면, 아까 199봉에서 월영봉으로 가기 위해 가로질렀던 월영재를 통과해야만 한다. 월영재를 오르내리는 제법 넓은 임도는 도로변에 새로이 가로수를 심는 등 손질이 잘 되어있다. 그러나 경사가 심한 탓에 오르내리기가 결코 만만치 않은 코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