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봉산(威鳳山, 524m)-종남산 (終南山, 610m)-서방산(西方山, 672m)

 

산행코스 : 위봉산성 서문지→되실봉→서래봉→오도재→서방산→종남산→송광사(산행시간 : 5시간)

 

소재지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면과 소양면, 고산면의 경계

산행일 : ‘11. 2. 19(토)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제법 암릉과 암벽이 발달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특별히 내세울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지 못하는 전형적인 육산이나,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위봉사와 송광사, 봉서사 등 산자락에 있는 문화재까지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산세가 빼어난 이 근처의 산릉을 ‘호남알프스’라 칭하고, 그 첫 구간을 종남산으로 정하고 있다.

* 호남알프스 : 전북 완주군과 진안군에 걸친 산줄기로 주로 전북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를 들머리로 하여 종남산-서방산-위봉산-원등산-연석산-운장산-구봉산 등 7산의 마루금을 차례로 잇는 도상거리가 42km인 산행코스(22시간가량 소요)이다. 호남알프스의 특징은 코스의 초반 서편으로 만경평야의 광활한 모습이 펼쳐지고, 연석산에서 부터의 후반 구간은 호남알프스의 백미로, 육산의 장쾌함과 바위산의 힘찬 분위기를 동시에 느껴볼 수 있다.

 

 

▼  산행들머리는 소양면 대흥리의 위봉산성 西門址

익산-포항고속도로 소양 I.C를 빠져나와 소양면 소재지에서 만나게 되는, 741번 地方道路를 따라 왼쪽으로 들어서면 얼마 안 있어 오늘 산행이 마감되는 송광사입구가 보이고, 조금 더 들어가면 위봉사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위, 왼편에 위봉산성 서문지가 보인다.

 

 

▼  산행은 山城의 西門 옆으로 난 林道를 따라 시작된다. 산성의 3개 성문 중 유일하게 그 형태가 남아 있는 아치형의 서문 안쪽 임도를 따라 10여분 오르면 고갯마루에 닿고, 전방 오른쪽으로 성곽과 함께 길이 이어진다. 고갯마루에서 곧바로 진행하면 태조암이다. * 위봉산성(威鳳山城, 사적 제471호), 有事時 전주 경기전(慶基殿)에 있는 태조의 영정과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1675년(숙종1년)에 축성되었다. 동학농민운동 때 全州城이 동학군에 의해 함락될 때, 영정과 위패를 피난시킴으로서 산성 축조의 목적을 달성한바 있다. 축성 당시의 규모는 너비 3m, 높이 4~5m, 길이 16㎞, 서·동·북 3개소의 성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성벽 일부와 전주로 통하는 서문만이 남아 있다.

 

 

 

 

▼  허물어져 가는 위봉산성 돌담 위로는 아직도 옛 시간이 머물고 있다.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돌무더기로 남아, 한가로이 내리쬐는 늦겨울 따스한 빛살과 함께 悠悠自適 시간을 즐기고 있는 듯... 그 성벽위에 선, 나 또한 한갓지고 여유롭게 시간여행을 떠난다.

 

 

 

▼  임도 고개에서 20여분 정도 올라서서 갈림길에 닿으면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오른쪽 길은 위봉사 방향이다. 완만한 능선, 산성을 따라 나있는 호젓한 산길을 걷다 보면 참호처럼 낮게 통로를 낸 暗門의 모습도 보인다. 길을 걷다가 오른편에 시야가 트인 곳을 내려다보면 유서 깊은 위봉사가 바라보인다.

 

 

▼  위봉사(威鳳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604년(백제 무왕 5년)에 서암(瑞巖)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고, 극락전중수기(極樂殿重修記)에 전설적인 설화가 실려 있을 뿐이다. 文化財로는 본관 건물인 보광명전(普光明殿, 보물 제608호)과 요사(寮舍, 지방 문화재 제698호)가 있다. 요사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말하는데, 위봉사의 요사채는 앞면은 極樂殿으로 뒷면은 寮舍로 사용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  암문을 지나면서 산성의 흔적은 왼편뿐만 아니라 오른편으로도 간혹 보이기 시작하더니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편은 장대봉으로 가는 길이다. 山城 또한 이곳에서 장대봉으로 방향을 바꾸어 버리고 있다. 삼거리에서 서래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걷기 좋을 만큼 부드럽다.

 

 

▼  이리 돌고, 저리 돌다가 허물어진 돌이 많이 쌓여있는 너덜구간을 올라, 고갯마루에 닿으면 되실봉이다. 누군가가 넓적한 바윗돌을 몇 개 포개 놓은 위에 길다란 돌을 세우고, 거기에다 되실봉이라고 적어 놓았다. 後來者가 장난삼아, 그 위에다 작은 돌맹이들 몇 개를 올려놓은 광경이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이 안되어 이곳에 도착할 수 있다.

 

 

 

▼  되실봉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약간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소잔등처럼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진다. 오른편은 벌목을 끝낸 개활지(開豁地)로 시원스레 시야가 열리고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산이 전북알프스의 맹주산인 운장산일 것이다.

 

 

 

 

 

 

▼  등산로는 북쪽으로 이어지면서 高度를 높여간다. 630봉을 지나 이마에 땀을 흘리다보면 어느덧 서래봉 정상이다. 서래봉이 오늘 답사하는 봉우리중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가 분명하건만 정상표지석은커녕 이정표 하나도 세워져 있지 않다. 정상이 암봉으로 된 탓에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스레 열린다.

 

 

 

 

 

 

▼  서래봉, 암봉이 낙타등 2개처럼 이어져 있는데, 위봉산에서 종남산으로 이어지는 5개 봉우리 중 702m로 제일 높다. 암봉인지라 약간의 스릴까지 느낄 수 있어서 오늘 산행중의 白眉이다. 그러나 바윗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험하지 않기 때문에 쉽게 오를 수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이 조금 더 지났다.

 

 

 

 

 

 

 

 

 

▼  675봉에서 서쪽으로 가파르게 내려서면 오도치, 종남산까지의 산행이 버거운 사람들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송광사로 갈 수 있다. 특별히 종주산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 코스의 이용을 권하고 싶다. 서방산과 종남산은 가슴에 담아갈만한 특별한 그 무엇이 없기 때문이다. 오도치에서 오픈편으로 내려서는 길은 오덕사를 거치는 下山路이다.

 

 

▼  오도치에서 서방산까지는 그리 멀지 않으나 제법 여러번 오르락내리락 거려야만 도착할 수 있다. 길은 부드럽지만 오르내림의 반복은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다. 거기다 쌓인 눈 때문에 미끄러워 한층 더... 오도치에서 종남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에는 뛰어난 조망처가 몇 곳 있다. 이 능선이 평야와 산지의 경계이기 때문에 동쪽으로는 높고 낮은 수많은 산들이 하늘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오고, 서쪽에는 김제 만경들판을 넘어 서해바다까지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  西方山 정상, 제법 가파른 능선을 치고 오르면 널따란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서방산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지나온 위봉산과 가야할 종남산이 뚜렷이 조망된다. 날씨만 좋으면 왼편으로는 드넓은 김제평야와, 그 너머로 서해바다까지 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짙은 안개 탓에 그런 행운이 없다. 서방산이란 이름은 西方淨土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세계라는 뜻에서 유래됐다는데, 그 정도의 名山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내가 지닌 修養이 모자라서일까?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정도가 지났다.

 

 

▼  전라북도의 산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독특한 정상표지판, 어느 상호신용금고에서 세운 것으로서, 네모로 각진 알루미늄 기둥에 산의 이름과 고도를 적어 놓았다. 이왕에 세우려면 조금 더 美的인 感覺을 살려서, 어렵게 정상에 오른 등산객들이 기념사진을 찍을 때에 구색을 맞춰주었으면 좋았으련만...

 

 

▼  서방산에서 종남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부드러움 그 자체이다. 소나무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있는 등산로는 그야말로 양탄자. 폭신폭신한 등산로를 걸으면서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을 느껴보는 것은 행운일 것이다. 거기다가 잠깐 속도를 늦추면서 ‘느림보의 美學’까지 더한다면, 힘든 오늘 산행이 어느새 행복한 산행으로 바뀌어있다.

 

 

▼  서방산에서 종남산으로 가다보면 두어 번 오른편에 진묵선서와 인연이 깊은 봉서사가 있음을 알려주는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거리는 1.0Km 남짓, 왕복 1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을 것이나, 도저히 산악회에서 산행마감시간으로 정해준 3시30분에 맞출 수가 없다.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나 기웃거려보지만 짙은 나무로 인해 사찰의 형태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 봉서사(鳳棲寺), 신라 성덕왕 7년(727년)에 해철선사가 창건한 절로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중창하였다. '석가의 화신' 이라고도 불리우는 진목대사(1562~1633)가 입산에서 열반까지 거의 평생을 주석하며 수도한 절로 이름이 드높다. * 진묵대사는 호방한 성격으로 '하늘은 이불이요 땅은 자리이고 산은 베개로다. 달을 촛불 삼고 구름을 병풍 삼아 바다를 술통으로...' 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인 진묵대사의 부도(제106호)가 있다.

 

 

▼  종남산 頂上, 한마디로 ‘이게 뭐야?’가 저절로 나온다. 밋밋한 능선의 한 지점에 이 근처 산에서 지겨우리만큼 자주보이는 쇠말뚝 하나가 박혀있고, ‘종남산’이라고 적혀있을 뿐이다. 쇠말뚝만 아니라면 어느 누구도 이곳이 정상이라고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남쪽의 끝에 있는 명산' 이란 뜻의 종남산은 가지산파의 시조인 도의선사가 중국에서 수행한 종남산과 모습이 비슷하여 그리 붙였다는 설이 있으나, 풍수지리학적으로 명산인지 몰라도 내가 보기에 名山이라고 부르기에는 2%가 아니라 98%가 부족할 것 같다. 주변이 잡목으로 둘러싸인 탓에 조망도 없으므로 곧바로 하산을 시작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네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  종남산에서 송광사로 내려서는 下山路는, 무인감시설비를 지나면서부터는, 설악산 頂上에서 오색약수로 떨어지는 코스의 고단함이 머리에 떠오를 정도로 急傾斜 내리막길이다(다행이 길지는 않다). 정상어림에서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위봉사에서 위봉고개로 이어지는 도로가 마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처럼 구불구불 흐르고 있는 광경이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보인다.

 

 

 

▼  서해바다까지 보인다는 조망은, 짙은 가스로 인해 시야를 열어주지 않고 있다

 

 

▼  산행날머리는 송광사입구 駐車場

급경사 내리막길은 오래지 않아 끝나고, 이내 등산로는 완만한 경사로 변한다. 등산로 주변은 소나무 일색, 떨어져 쌓여있는 낙엽 덕택에, 바닥 또한 폭신폭신해서 걷기에 여간 좋다. 소나무 사이로 소양市街地의 건물들이 옹기종기 늘어서 있는 정경이 눈에 들어올 즈음, 오른편으로 하얀 로프가 매어있는 내리막길이 보이고, 이내 인적이 끊겨 을씨년스런 ‘Korea Scout Association 전북연맹 훈련장’의 시설들이 보인다. 닫혀있는 문설주 사이를 비켜나서면 오른편 저만큼에 ‘송광사 주차장’이 보이고, 왼편 담장너머로는 송광사의 殿閣들이 넘겨다 보인다.

 

 

 

▼  松廣寺, 新羅 경문왕 7년(867년) 九山禪門의 하나인 가지산파의 개산조인 도의선사가 창건했다. 선사가 이곳을 지나면서 한 샘에서 물(영천수)을 마시고, 그 샘이 보통 샘이 아닌 것을 알고 샘 네 귀퉁이에 돌을 쌓은 뒤 일단 메웠다가 뒤에 제자를 시켜 그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文化財로는 목조 건축에서 보기 드문 십자형으로 특이한 대웅전 서쪽의 범종각(보물 1244호)을 비롯해 대웅전 안에 봉안된 보물 1274호인 소조삼불좌상, 천왕문에 있는 소조사천왕상(보물 1255호) 등의 國寶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 국내에서 가장 큰 목패와 나한전 등 地方有形文化財가 있다. 송광사는 평지가람으로서 봄철에 찾아가면 10 여리에 걸친 진입로에서 흐드러지게 핀 벛꽃 구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