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치산 (城峙山, 648m) - 성봉


산행코스 : 용덕고개→성치산→전망대→성봉→무자치골→12폭포→모치마을 (산행시간 : 4시간)


소재지 : 전북 진안군과 충남 금산군의 경계

산행일 : ‘09. 6. 28(일)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색 : 12폭포를 끼고 있는 성봉이 주요 포인트이나, 산세는 암릉을 끼고 있는 성치산이 한층 상위... 등산로는 암반위에 약간의 흙을 뒤덮은 형태인 성치산의 몇몇 암릉구간을 제외하고는 포근한 흙길이 대부분이다.  

 

 

산행 들머리는 용적리 고개(725번 지방도)

전북 진안군과 충남 금산군의 경계,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고, 유명산도 아닌지라 산행들머리는 한적하다. 성치봉 가까이 가면서 반대편에서 진행하는 사람들이 가끔 보이기 시작한다.  

 

 

비록 초등학교 저학년 때 고향을 떠났지만, 어릴 적에 오르던 동네 뒷동산 같이 정겨운 산길을 오른다. 완만한 경사, 그리고 포근한 흙길... 산행 초입, 우리를 맞는 건 밤나무가 먼저다...  으~~ 별로 향기롭지 못한 내음...♪

 

 

산자락엔 개망초가 한창

국화과인 개망초는 보통 8~9월에 개화하는데, 벌써부터 꽃망울을 활짝 열고 있으니 정신나간 넘들??? 아니면 쥐뿔도 모르는 나의 들꽃 상식...

 

 

성치산은 ‘한국의 산하’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산이다. 그런데도 간혹 사람들이 눈에 뜨이는 것은 아마 12폭포를 낀 성봉을 가려다 덤으로 성치산을 들르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등산로 주변엔 간간히 억새풀이 보인다. 무리짓지 않은 억새는 원래부터 볼품이 없는 법..., 그리 안해도 미운데, 싸리나무와 얽혀 길손의 발길마저 잡아매고 있다. 평상시에도 짧은 옷을 입지 않는 내 자신에 만족해하며 부지런히 오른다.

 

 

간혹 나타나는 고사리 밭, 이곳 사람들은 고사리를 그리 귀하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봄에 다시와 볼까나?? 잠깐이면 한 배낭 가득 채울 것 같다. 취나물 종류의 산나물은 산행내내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오늘 산행에 도란도란 산친구가 되어주신 분...

앞서거니 뒷 서거니 걷다가, 언제부턴가 자연스레 함께 걷게 되었다. 역시 혼자 바라보는 아름다움 보다는 둘이 보는 시선이 더 곱나보다. 하기야 삶이란 혼자보다는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니까... 

 

 

 

어울림의 미학을 팔아, 난 그녀가 준비해온 얼린 과일을 보시 받을 수 있었고, 산행을 마친 후에도 외롭지 않은 식탁을 차릴 수가 있었다. 보통 나 같은 술꾼들은 식사 때 곁들이는 반주를 다른 사람이 따라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다닌다. 그것도 여자라면 금상첨화... 고맙습니다 ♬

 

 

고향을 만난 정겨움에 콧노래 흥얼거리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다. 주변 소나무 가지를 따라 흐르는 솔향기를 맡으며 1시간여를 산책하는 기분으로 올랐나보다. 등산로 주변에는 소나무 외에도 갈참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성치산은 제대로 된 정상표지석 하나 없는 가난한 산이다. 하기야 산림청에서 선정하는 ‘100대 명산’에 끼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한국의 산하’의 산 찾기에서도 찾을 수 없는 산이니 이해가 간다. 표지석 대신 세워진 정상표시판은 얼핏 초라하게 보이나, 한편으론 없이 사는 집 문패 같아, 어떻게 보면 정감이 가기도 한다.  

 

 

정상에 서면 주변의 진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이산, 대둔산.. 거기다 길고 울창한 계곡을 거느린 무자치골이 주욱 늘어섰다. 활엽수로 가득한 골짜기가 가을에 단풍으로 붉게 물들면 장관을 이룰 듯...  

자연 속에서 이리저리 걸으며 좋은 공기도 마시고, 자연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라도 좋다. 더구나 산길이라면... 차가 다니지 않으니 조용할 것이고, 거기다 물론 기름 냄새도 없을 것이니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성치산 정상에서 바라본 주천면(진안군) 신앙리 들... 행여 용담댐이 보일까 두리번거려 보지만 시야에 잡히지 않는다.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일까?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산길에 들어서면 먼저 근심걱정부터 내려놓게 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산이 주는 선물로 하나하나 채워나간다.

 

 

성치산 정상근처의 전망바위

성치산은 성치지맥의 주봉으로 조망이 뛰어나다. 그 중에서도 이 전망바위가 제일일 듯 싶다. 

< 성치지맥 >

금남정맥상의 769봉(금산, 완주, 진안 등 3군이 만나는 곳)에서 시작하여 전북과 충남의 도계를 이루는 산길이다. 주봉은 성치봉으로 도상거리 약43.5Km, 주요 산으로는 성봉, 봉화산, 덕기봉 등이 있다.

 

 

성봉가는 능선의 암릉길은 중간중간 경사도가 가파라지는 곳도 있지만 대체로 유순한 능선길이다.

요즘 같으면 진초록 나뭇잎들이 풍기는 내음... 겨우내 모진 추위에 시달리다가 산들바람 따라 기지개를 킨지 몇 달... 물론 며칠 후에 다가올 비바람에 시달릴 것을 각오하면서도 한편으론 벌, 나비들이 보내온 달콤한 밀어들로 영근 삶의 추억들로 가득차 있겠지?

 

 

성봉 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성치산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유명한 성치산이기에 어쩜 저 산은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는 이런 오지에 아무 말 없이 드러누워 있는가 보다.  

몸과 마음이 무거울 때나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다고 느껴질 때는 그냥 나선다. 목적지야 가면서 정하면 될테니까... 자그마한 배낭속엔 산행중에 먹을 간식과 물 한병이면 족하다. 하기야 ‘사람에게 먹고 마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으랴...’

 

 

성치산에서 성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암릉이 있어서 조금은 위험하지만, 암릉이야 조금만 조심하면 될 것이고, 암릉으로 인해 펼쳐지는 뛰어난 조망은 그 조바심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며, 내뿜는 숨결에 충실하다 보면, 어느새 머리는 맑아지고 상쾌해 진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그 자체만으로도 휴식이요 재충전이다. ‘자연이 채워주는 삶의 활력...’

 

 

초반은 힘들다. 그러나 처음에 힘겨워하던 일주일 동안 쓰지 않던 근육들이 곧 리드미컬해지며 신바람을 내게 된다. 그 때쯤이면 기름기 짙은 노폐물들도 빠져나간지 오래다. 능선에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건너편 산자락의 녹음이 눈부시다.  

 

 

 

이곳은 이념의 場

이곳은 左右의 성향에 따라 나무들이 운집해 있는 것 같다. 소나들만 주욱 도열해 있는가 하면, 어느새 나무들은 참나무들로 완벽하게 바뀌어져 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오른편엔 소나무들, 그리고 왼편엔 참나무들이 저희들끼리만 오손도손 모여 있다. 그러나 나무들도 나름대로 삶이 있는 법..., 우리내 속담에서 말하는 청개구리라고 없을 리가 없다. 참나무 무리들 속에 못난 소나무 한그루 보이기도 한다.  

 

  

성치산에서 1시간여를 걸으면 성봉에 도착한다.

성봉에 도착해보니 안내판이 있는데, 성봉이나 성치산이나 모두 城자를 쓰는데 이상하게도 주변에는 城이 있다는 얘기는 없다.

잘생긴 나무나 기묘한 바위를 보면 실컷 바라보고, 요상한 풀이 있으며 쭈그리고 앉아 요모조모 살펴보아도 좋다. 마치 할일 없는 사람처럼 한가로이 산속을 걷다보면 문득 발길은 내려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오늘 하루도 ‘마음의 풍요’라는 질 좋은 보약 한 첩 잘 먹었다.  

 

 

등산객들에게 12폭포는 제법 알려져있나보다. 성봉부터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기 시작한다. 야트막한 산이어선지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 대부분이 남녀가 쌍쌍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손에 손을 맞잡고... **-^^-**   계곡으로 내려서면 무자치들이 용이 되기 위해 닦아 놓은 듯한 넓은 암반계류가 펼쳐지는데 이 계류를 몇 번 오락가락 건너야 한다

 

 

벌써 여름일까?

무자치골 골짜기에는 마음의 때를 씻어내듯 몸에 끼인 때를 밀어내는 사람들이 보인다. 보기는 좀 민망스럽지만, 아서라 저 사람들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일 터... 다만 식수원도 아니고, 공원도 아니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산 후에 함께 식사를 하던 어느 여자분들 말씀에 ‘할아버지 두 분이 홀딱 벗고 물속에 들어가시더란다.’ 아무리 보잘것이 없으시더라도 그렇지 원~~ ‘그래도 돈 내고도 못 보는 광경을 보셨으니 참으시옵소서!’    

 

  

폭포는 주위에 기암이 어우러지고, 그 사이사이 숲이라도 심어져있으면 더욱 좋다. 거기다 더하여 바위 낭떠러지위에 落落長松이라도 하나 얹혀져 있다면 군계일학... 

무자치골의 12폭포는 폭포의 숫자가 12개라서인지 아니면 폭포가 많아서인지 분명치 않다. 폭포의 이름에 ‘12’라는 용어를 쓰는 걸 보면, 아마 맨 아래에 위치한 폭포를 이르는 처소명사가 아닐까한다.

 

 

무자치골의 의미

무자치(Elaphe rufodorsata)란 몸길이가 60∼90cm로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유일한 물뱀 종류이다. 맑고 깨끗한 물에서만 살기 때문에 요즘은 좀처럼 발견하기 힘든 물뱀이다. 그 무자치 물뱀들이 무자치골을 따라 폭포를 날아 내공을 쌓으면 성봉과 성치산을 넘게 되고, 마지막 용녀천에서 용녀의 아름다운 미모만 넘기면 용이 된단다.  

 

  

무자치 계곡의 제1경인 12폭포

‘초포동천’이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先人들이 얼마나 경치에 반했으면 漢詩를 저렇듯 바위틈에 심어 놓았을까. 물론 아름다운 경관을 자연 그대로 보존한 것은 아쉽지만...  무성한 대나무 잎처럼 펼치며 떨어지는 폭포... ‘죽포동천’이라는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마 저 모습을 보고 그렇게 부르나 보다.

 

  

산행 날머리인 모치마을 임시주차장

4Km정도 되는 무자치 계곡을 2시간 조금 못되게 걸어 내려오면 봉황천을 만나게 된다. 천변엔 두칸짜리 화장실을 낀 임시주차장이 설치되어있다. 봉황천은 맘 놓고 몸을 씻기에는 조금 깨름직 할 정도로 주변이 오물들로 더럽혀져 있다. 물의 온도 또한 뜨뜻 미지근...

 

 

좋았던 점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고, 깊은 골짜기 속에 감추어져 있어 그동안 쉽게 남들에게 속살을 내보이지 않았던 秘境~ 오늘 하루 흘린 땀방울을 충분히 보상해 주고도 남는 산행이었다.  아름다운 산하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거닐어 본 성치산과 무자치 계곡, 그 숲속에 빠져 보낸 하루의 서늘함에 가슴까지 시퍼렇게 멍이 들지나 않았을까?

 

아쉬웠던 점

성봉 정상엔 삼겹살 굽는 냄새, 그리고 계곡 곳곳에선 찌게 끓이는 냄새들이, 산의 정기를 가득 담아 내려오는 등산객들의 인상을 찌뿌리게 만들고 있다.

 

그럼 난? 도시락 하나와 물 한 통, 그리고 카메라 하나만 들고 산을 찾았다. 그리고 가져간 것 말끔히 비우고 버린 것 없이 돌아왔으니, 오늘도 난 ‘아니 온 듯 다녀간 산’으로 성치산을 다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