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문산 (回文山, 837m)
산행코스 : 휴양림매표소→노령문→삼연봉→장군봉 갈림길 삼거리→정상(회문봉)→헬기장→야영장→남부군 벙커→휴양림(산행시간 : 3시간20분)
소재지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과 임실군 덕치면의 경계
산행일 : ‘11. 1. 22(토)
함께한 산악회 : 자이언트산악회
특색 : 전북의 어머니 산인 전주 모악산과 함께 아버지의 산이라 불리울 정도로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친근한 산이다. ‘큰 지붕’이라는 頂上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밋밋한 흙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빨치산 사령부 등 몇몇 유적지를 제외하면, 특별히 내세울 만한 아름다움은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또 다시 찾아올 이유는 없을 듯 싶다.
▼ 산행들머리는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회문산 자연휴양림’ 駐車場
호남고속도로 서전주I.C에서 빠져나와 ‘27번 國道’를 이용하여 임실군 덕치면 일중리까지 달린 후, ‘729번 지방도(순창읍↔구림면 금창리)’로 연결되는 無名의 도로로 접어들면 되는데, 오늘 우리가 탄 버스는 태인I.C에서 정주시 산내면을 거쳐 강천산을 먼저 들른 후에, 729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반대방향에서 휴양림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곳 회문산은 겨울철에는 찾는 산악인들이 별로 없는 모양, 제법 널따란 주차장엔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 외에는 텅 비어있다. 잠깐 체조로 몸을 푼 후, 휴양림 도로를 따라 한가로이 걸어 오른다. 계곡 깊은 산중에 허허로운 자유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온다. ‘느긋하고. 그리고 한가롭게... 나그네여 느긋한 마음으로 이 산에 있는 모든 의미를 가슴에 듬뿍 담아 가시게나~’
▼ 노령문, 도로는 휴양림표지석을 지나면서 갑자기 급경사를 만들어 내더니, 이내 노령문에 다다른다. 노령문은 성벽처럼 쌓아 올린 형상의 門으로서, 의병활동의 역사적 의미와 교육적 효과를 살리기 위해 산림청에서 세운 것이란다. 이곳이 임진왜란과 舊韓末에 최익현선생과 양윤숙, 임병찬 선생 등, 의병들의 본거지였다 하니 좋은 생각이다.
▼ 노령문을 지나 오른편으로 돌아 오르면 30m정도 길이의 쇠로 만든 출렁다리가 나온다. 다른 산의 출렁다리를 본떠 만든 모양이나, 거리가 짧은 탓에 출렁거림을 느낄 수 없어 흥취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겨울철이라선지 다리 아래의 계곡은 바짝 메말라 있고... 다리에 올라서면 건너편 산허리에 亭子(五仙臺) 하나가 세워져 있는 것이 바라보인다. 전망이 좋다기에 정규등산로에서 잠깐 벗어나 보았으나 수리중인지 못 들어가게 막아 놓았다.
▼ 亭子를 지나면서 등산로는 급경사를 만들어낸다. 눈이 수북이 쌓인 산을 찾아왔는데 등산로 주변엔 눈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보면 산 전체가 하얀색으로 도배를 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지금 오르고 있는 코스가 陽地라는 말일 것이다. 영상의 포근한 날씨에 이마에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30분 정도를 오르다보면 이내 삼연봉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 삼연봉 정상에서 회문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왼편으로 방향을 잡아야한다. 오른편은 천마봉과 깃대봉으로 가는 길이지만 來往客이 별로 없는 듯, 등산로의 흔적이 희미하다. 삼연봉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급한 경사를 이루면서 내리막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저 멀리 왼편의 우리가 가야할 회문봉은 저리도 놓은데, 고도를 떨어뜨리기만 하고 있으니... 다시 오를 일을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대상이 없는 원망을 가슴에 묻으며 ‘빨치산 사령부’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두 번 지나치면 드디어 ‘장군봉 갈림길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 눈(雪), 보통사람들이라면 눈을 좋아하는 것이 普遍的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등산객들이 겨울산을 찾아 떠나는 것이고, 특히 올 겨울에 서해안 지방의 산으로 등산객들이 몰리는 이유는, 그쪽 지방에 집중적으로 暴雪이 내려서일 것이다. 이곳 회문산도 서쪽 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탓에, 온 산이 눈으로 포위되어 있다. 삼연봉까지의 오르막길 외에는 내내 눈 속을 헤매는 쉽지 않은 산행이 이어졌다.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눈밭을 헤치며 걷는 일은 말과 같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 삼거리에서 장군봉(지도에는 투구봉으로 기록)까지는 1.5Km, 왕복 1시간 정도가 소요되니 다녀올 수도 있겠지만, 겨울철 짧은 해를 핑계 삼아 그냥 회문봉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만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밋밋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은 별로 크지 않은 갈참나무들, 그 아래에는 진달래나무들이 꼭 들어차 있다.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이는 장군봉을 벗 삼아 느긋하게 걷는다.
▼ 회문산 정상인 회문봉
정상은 열 평 조금 못되는 盆地, 북서쪽은 바위 벼랑을 이루고 있어 시야가 잘 열린다. 정상엔 정상표지석 대신에 큰지붕이라고 적힌 은빛 쇠말뚝이 박혀있고, 그 뒤편에 회문봉이라고 적힌 초라한 이정표가 서 있다. 많은 산들이 그 머리위에 TV중계탑이나 헨드폰 기지국들을 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곳에도 어김없이 흉물스런 鐵製塔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상에서 바라본 회문산은 그 모습이 회문봉을 중심으로 깊은 계곡을 좌우로 뒤집은 U자 형상이다. 그 말발굽의 끄트머리를 출렁다리로 연결해 놓았고...
▼ 정상에 올라서면 동으로는 깃대봉과 그 뒤로 지리산 연봉들이 이어지고, 남으로는 무등산, 서로는 장군봉 너머로 내장산이 펼쳐진다는데, 오늘은 시야가 시원스럽지 있다.
▼ 하산은 왼편 돌곶봉 방향으로, 경사가 제법 심한 등산로는 곳곳에 바위들을 심어 놓고 있는데, 길가의 하얀 눈덩이 사이로 山竹들이 파란 잎사귀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큰 나무가 드문 탓에 등산로 좌우로 시야가 잘 트이고 있다.
▼ 정상에서 10여분 정도 내려가니 선두대장이 오른편에 꼭 들러보라고 외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집체만한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보이는데 天根月窟(천근월굴)이다. 커다란 바위의 한면에 상형문자로 천근월굴이라 적어 놓았는데, 천근은 陽으로 남자의 性과 월굴은 陰으로 여자의 性을 나타내어, 陰陽이 한가로이 왕래하니 소우주인 육체가 모두 봄이 되어 완전하게 한다는 뜻이란다. 陰陽調和...
▼ 天根月窟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여자들의 예쁜 엉덩이를 닮은 야트막한 봉우리를 만나게 된다. ‘작은 지붕’이다. 봉긋이 솟은 모습이 지붕의 형상을 닮아서 작은 지붕이라는 어엿한 이름을 얻었는데도, 난 같은 모양을 보고도 여자들의 엉덩이를 떠올렸으니 淫心이 충만함일까? 아님 이곳 회문산 곳곳에 陰氣가 널려있어서 나도 모르게 젖어버린 탓???? 하여튼 이곳에서도 조망은 뛰어나다.
* 회문산이 안개에 휩싸였을 때, 그 둥글넓적한 봉우리가 마치 草家지붕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고 해서, 회문봉이라는 이름 외에 큰지붕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단다. 지도에는 장군봉이라고 적혀있는데도, 이정표에 회문봉이라고 적혀 있는 걸 보면, 五福이 터졌다고 봐야하나? 아무튼 산봉우리의 이름을 고칠 때는 조금 더 신중을 기해주었으면 좋겠다.
▼ 회문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다른 유명한 산들에 비해 墓가 무척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는 회문산 정상 바로 옆에도 묘가 있었고, 등산로 주변에 조그만 틈만 보여도 어김없이 묘들이 자리 잡고 있을 정도이다. 이곳 회문산은 우리나라 5대 明堂중의 하나로서 예로부터 靈山으로 알려져 왔다. 홍문대사(홍성문)이 이곳에서 道通한 후, 墓穴과 관련된 책자를 적었는데, 이 책에서 회문산 정상에 24혈이 있다하며, 오선위기혈에 묘를 쓰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代까지 간다고 했다니, 어느 누가 조상의 묘를 이곳에 쓰지 않고 배겨내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정상과 주면을 수많은 묘들이 차지하고 있을 수 밖에...
▼ 女根木, 전주의 모악산은 어머니산이고, 이곳 회문산은 아버지산이란다. 회문산이 지닌 남성의 陽氣를 누르려는 탓일까? 천근월굴 바위, 여근목 등 여성의 陰氣를 나타내는 이름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이 여근목은 6.25 전쟁 후 빨치산 토벌을 위해 온산이 불바다가 되었을 때에도, 인근의 반송과 함께 살아남은 영험한 나무란다. 자세히 보면, 소나무의 아래 부분 갈라진 부위에 제법 큰 구멍이 뚫려있다. 아마 여성의 生殖器 마냥 생겼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다. 조금 더 아래로 내려오면 여근목과 비슷한 외형의 소나무 한그루를 더 만날 수 있다.
▼ 정상에서 약 30분 정도 내려오면 안부 사거리에 헬기장이 있다. 휴양림으로 내려가기 위해, 왼편으로 방향을 잡으면 신작로처럼 널따란 林道가 등산객들을 맞는다. 등산객들의 편의를 위해 이곳까지 차량으로도 오를 수 있도록 개설해 놓은 모양인데, 산을 보호한다는 산림청에서 오히려 산을 해친 결과는 아닌지 모르겠다.
▼ 빨치산 사령부. 이곳 회문산은 ‘빨치산 전북 道黨 사령부’와 정치훈련원(노령학원) 및 세탁공장이 있었던 곳이란다. 난 오늘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빨치산이라는 단어가, 6.25 때 많은 양민들을 무참하게 죽인 대단히 나쁜 사람들을 칭하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원래의 빨치산은 ‘日帝에 의한 징병, 징용을 피하고 그들과 대항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란다. 빨치산을 무조건 左翼으로만 알아왔던 내 無知의 소치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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