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산 (禪雲山, 336m)

 

산행코스 : 주차장→경수재→마이재→도솔봉→개이빨산→소리재→천상봉→낙조대→천마봉→도솔암→선운사→주차장 (산행시간 : 4시간40분)

 

소재지 :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과 아산면 경계

산행일 : ‘11. 3. 22(화)

함께한 산악회 : 가고파 산악회

 

특색 :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의미하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임으로 도솔산이나 선운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 이라는 뜻이다. 300m급의 야트막한 봉우리들을 크기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기 때문에 가족단위 산행지로 권할 만하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등산로는 高低가 크지 않기 때문에 걷기가 편하고, 걸으면서 양편에 전개되는 다양한 조망을 즐길 수 있어 좋다. 또한 도솔계곡의 산자락과 골짜기에는 유서 깊은 불교의 도량인 선운사, 참당암, 도솔암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산기슭에는 우리의 정겨운 문화유산이 널려 있기 때문에 등산을 하며 문화적 향취에 흠뻑 빠져 들 수 있는 산이다.

 

 

▼  산행들머리는 선운산道立公園 駐車場

서해안고속도로의 선운산 I.C를 빠져 나오면 선운산까지 이정표가 길 안내를 편히 해 준다. 선운사 입장료는 3천원, 집사람과 함께이니 거금 6천원이나 된다. 우린 당연히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코스를 찾을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주차장에서 오른편으로 보이는 경수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  ‘경수산 민박’ 앞의 계곡을 따라 산행이 시작된다. 물기 한 점 없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는, 능선에 가까워지면서 갑자기 급경사로 변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이 채 못 되어 닿게 되는 능선안부, 이정표가 없는 이곳 삼거리에서 선운산 주봉으로 가려면 왼편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오른편은 경수산으로 선운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나 특별한 볼거리가 없으므로 생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마이재, 경수재에서 무명봉을 넘으면, 석상암(石床庵)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연결되는, 능선안부의 사거리인 마이재에 닿게 된다. 선운산의 주봉인 수리봉은 맞은편 0.7km 지점에 있고,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면 심원면이다.

 

 

 

▼  선운산 정상인 도솔산(수리봉)은 봉우리라기보다 정상부분이 펑퍼짐한 테라스를 이룬 산이다. 산 위엔 송림이 울창하지만 동과 서 양쪽으로 전망대가 나 있는 斷崖 위는 전망을 방해할 만한 장애물이 없다. 그러나 높지도 않고(336m), 그렇다고 특별한 景觀을 보여주지도 못하는 이 봉우리가 정상이라니 쓴 웃음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높기로는 경수산만 못하고, 빼어나기로는 천마봉만 못하니 말이다. 경수산, 도솔산, 개이빨산, 청룡산, 비학산, 천마봉 등등... 선운산국립공원에는 웬 산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모든 산들이 高低가 크지 않은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우선 산이라는 이름을 봉으로 고치고, 어느 한 봉우리를 主峰을 指定한 후, 정상표지석 하나쯤 세워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수리봉에 정상에 올라서면 서해바다와 심원면 일대가 바라보이고, 도솔천 계곡에는 선운사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  수리봉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창당암과 견치산으로 가는 두 갈래 길로 나뉜다(이곳에서 창당암을 경유해서 견치산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오른편의 견치산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면 등산로는 급경사 내리막으로 시작된다. 내려서는 만큼의 높이를 다시 오를 걱정이 앞서지만, 능선 안부에서 다시 오르는 길은 경사가 심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  능선안부에서 치고 오르면 창당암에서 오르는 길과 마주친다. 삼거리에서 조금 더 나아가면 견치산으로 가는 삼거리, 근처의 작은 돌탑이 있는 조망터에서는 견치산의 암릉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어느 누가 이곳에서 바라보는 견치산의 암릉이 개의 이빨을 닮았다고 하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내 눈은 그런 형상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삼거리에서 견치산까지는 0.6Km, 산행을 계속하려면 정상을 답사한 후, 이곳 삼거리로 다시 되돌아와야만 한다.

 

 

 

 

 

▼  견치산 정상, 사람들이 밟으면 바위가 닳는 것을 막기 위해서일까? 암릉의 초입에 등산로가 끝났으니 되돌아가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누구하나 따르는 사람은 없다, 하긴 이곳까지 와서 정상을 오르지 않고 돌아설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의 조망은 일품, 저 멀리 보이는 섬은, 한때 放射性廢棄物處理場 유치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위도일 것이다.

 

 

 

 

 

▼  견치산 입구 삼거리에서 낙조대로 가는 길에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멋진 山竹群落地가 있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기는 웃자란 山竹들은 마치 대나무 숲을 연상시킬 정도... 남해 금산의 정상어림에서 만나본 산죽들보다 더 울창한 것 같다.

 

 

▼  山竹군락지를 벗어나면 곧바로 창당암과 낙조대로 가는 길이 갈리는 소리재에 다다르게 된다. 낙조대 방향으로 난 소나무 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오르막 능선을 잠깐 오르면 자그마한 봉우리 위에 서게 된다. 이곳의 왼편에 있는 바위전망대는 오늘 산행의 키포인트 중의 하나이다. 前面의 바위와 바위 사이로 협곡이 이루어지고, 오른편에는 직각에 가까운 천마봉, 그리고 정면으로는 청룡산의 뾰쪽한 봉우리가 눈에 꽉 들어찬다.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峽谷은, 각각의 능선들 맨 끄트머리에 마지막으로 서서, 마주보고 있는 사이로 협곡이 전개되고 있다. 이곳의 암릉과 岩谷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경관으로 선운산 산행의 白眉라 할 수 있다.

 

 

 

 

 

▼  낙조대(落照臺), 전망 좋은 봉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면 맞은편 봉우리로 오르는 기다란 나무계단이 보이고, 그 끝에 낙조대가 고개를 내밀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낙조대 앞에는 드라마 대장금의 최상궁이 자살했던 바위라는 팻말이 서 있다. 낙조대에 서면 아스라이 서해바다가 펼쳐지지만, 낙조대의 자랑인 저녁노을은 구경할 수 없다. 하루해가 서해바다로 빠져들면서 토해내는 마지막 숨결인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구경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기 때문이다.

 

 

 

 

▼  낙조대에 집사람을 남겨놓고 병풍바위로 올라선다. 길면서도 경사가 심한 철제계단은 몸을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억세다. 계단을 올라 10여분 더 걸으면, 진행방향으로 커다란 배맨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 저 정도 크기라면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매어놓지나 않았을까? 원거리에서 카메라에 담은 후 집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낙조대로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  병풍바위에서 바라본 낙조대

 

▼  배맨바위

 

 

 

▼  천마봉은 하나의 거대한 암릉으로 위는 평평한 마당바위로 되어 있으나 끝머리는 깎아지른 듯한 수직 절벽, 몸을 가누기도 힘든 强風 때문에 가장자리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댈 수 밖에 없다. 천마봉 정상은 조망이 시원스레 트인다. 도솔암 주변의 암봉들은 마치 한 폭의 한국화를 펼쳐 놓은 것 같고, 청룡산 줄기도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수직 절벽 위의 암봉인 천마봉, 봉우리의 이름을 떠올리며 바라봐서인지 꼭 馬 한 마리가 서 있는 형상이다. 그럼 조금 전에 내가 올라섰던 지점은 말등 부분이었나 보다.

 

 

 

▼  천마봉을 뒤로 하고 하산을 시작한다. 도솔암으로 내려가려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 우측의 나무데크가 설치된 바위지대 급경사 내리막 능선을 내려서야한다. 시간이 넉넉하니 시야가 열리는 전망대마다 올라서 본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뛰어나서 웅장해 보이는 바위협곡과 바로 앞에는 내원궁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천인암의 絶壁이 우뚝 서있고, 그 수직절벽아래에 도솔암과 내원궁이 조그만 조형물처럼 자리 잡고 있다. 이건 필시 멋진 한 폭의 동양화가 분명하다. 수백 길 낭떠러지 위에 살포시 앉아있는 조그마한 암자 하나, 이는 분명히 보기 힘든 절경이 분명할 것이다. 계속되는 철계단과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이정표가 있는 용문굴 갈림길에 도착한다. 도솔암의 내원암으로 올라가려면 直進, 그냥 선운사로 가려면 오른편 길로 내려서면 된다.  * 도솔암(兜率庵),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사실은 알 수 없으나,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선운사 남서쪽 약 2.5㎞ 지점에 있으며, 깊은 계곡과 울창한 소나무와·대나무 숲, 절벽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암자 앞에는 높이 20m가 넘는 천인암(千因巖)이라는 절벽이 있으며, 서쪽 암벽 위에는 상도솔암(上兜率庵)이라고도 하는 내원암(內院庵)이 있다. 그 밑의 절벽에는 미륵장륙마애불(彌勒丈六磨崖佛)이 조각되어 있는데, 머리 위에는 거대한 공중누각을 만들어 보호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마애불좌상은 보물 제 1200호로 지정되어 있다

 

 

 

 

▼  장사송(長沙松, 천연기념물 제354호), 도솔암 앞의 찻집을 지나 조금 더 내려가면 왼편 길가에 커다란 소나무가 서있다. 수명이 약 600년가량 되며, 이 지역의 옛 지명인 장사현의 이름을 따서 장사송이라 불리고 있단다.

 

 

▼  도솔암에서 선운사로 내려가는 길은 두 개로 나뉜다. 왼편의 널따란 자동차 길과, 오른편에 사람들이 다니도록 만들어 놓은 오솔길이 그것이다. 포장이 되지 않은 원시의 길이기는 둘 다 마찬가지이지만, 이왕에 산을 찾았으니 잘 닦인 자동차길 보다는, 자갈과 바위가 불규칙하게 나뒹구는 오른편 오솔길을 걷는 것이 더 낭만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오솔길은 지나치게 가파르지도 비좁지도 않은, 조용히 걷기에 참 좋은 길이다. 더욱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옆에 ‘도솔천’이라 부르는 계류가 함께하기 때문일 것이다. 길가에는 꽃무릇이라고도 부르는 석산이 끊이지 않고 널따랗게 분포되어 있다. 붉은 꽃술을 여는 가을철에는 아마 장관일 듯...

 

 

▼  선운사(禪雲寺),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의 진흥왕이 지었다는 설과, 557년(위덕왕 24)에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 : 또는 黔丹)선사가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아무래도 검단선사 설이 맞을 듯 싶다. 진흥왕이 구태여 남의 나라 땅에까지 찾아와서 佛事를 일으켰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것을 재건하는 등, 그동안 여러 번의 중수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문화재로는 대웅전(보물 제290호),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 동불암마애불상(보물 제1200호)과 만세루(萬歲樓), 영산전목조삼존불상 등 여러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  선운사 동백林(천연기념물 184호), 동백이 꽃을 피울 수 있는 한반도의 가장 북쪽에 자리하고 있단다. 선운사 대웅전 뒤에 있는 이 동백나무숲은 1만6000㎡에 수령이 약 500~600년에 이르는 3000여 그루가 마치 密林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다. 너무 일찍 찾아왔나? 붉디붉은 꽃을 매달고 있어야할 동백나무들은 아직도 채 여물지 않은 꽃 몽우리들만 매달고 있다. 너무 일찍 오는 바람에 동백꽃을 못 봤다며 아쉬워했던, 서정주 시인의 마음을 轉移 받으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린다. 붉게 피었다가 스러지기까지 1~2주에 불과하다니 선운사의 동백이 만개하는 때를 맞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디다. - 서정주의 시 '선운사 동구' 전문 -

 

 

▼  仙界와 俗世를 가른다는 一柱門, 역시나 일주문 밖은 혼탁한 속세이다. 수많은 노점상과 음식점들로 어지러운 집단시설지구 한 귀퉁이에 오늘 산행이 마감되는 주차장이 있다. 그나마 푸르른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송악을 음미하고 있으니, 선계에서 완전히 내동댕이쳐진 것은 아닐 것이다.

* 선운산의 송악(천연기념물 367호), 일주문을 벗어나면 오른편의 도솔천 절벽을 온통 푸른 잎사귀가 뒤덮고 있다. 남해 금산의 쌍홍문에서 봤던 송악만은 못하지만, 내륙에서는 가장 큰 송악이라고 한다. 송악은 보통의 덩굴처럼 덩굴손으로 뻗어가는 것이 아니라 줄기와 가지에서 뿌리가 나와 다른 나무나 울타리, 바위를 타고 올라간다. 지금은 겨울의 끝자락, 사방이 온통 누르스름한데 獨也靑靑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는 송악, 그 푸르른 기상에 흠뻑 취한 난, 오늘 산행에서 쌓였던 피로는 말끔히 사라진지 이미 오래이다.

 

 

 

 

< 끝으로 7년 전에 선운산을 오른 후,

끄적여 봤던 글을 함께 올리며 그 때의 기억을 되살려 보지만

아무래도 그때와 같은 감흥은 일어나지 않네요.  >

 

산으로 고행길을 떠나는 이유...

오염되지 않은 빛과 바람을 찾아가는 거 아닐까요?

 

태초의 하늘과 바람과 물을 만나면 분명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이 얼마나 비참하고 기막힌 것인가를.

그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들어야 편리하기만 한 문명을 이루고 사는 우리가

진작 무엇으로부터 버림을 받앗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겠지요.

 

편리해진 문명 덕택에 저는 신새벽 기도하러 가기 위해 잠을 깨고

산을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인생사 희노애락을 반추했을 그 과정을 놓쳤습니다.

 

김훈이 말합니다.

삶이 고단하고 세상이 더러울수록 산의 유혹은 절박하다고,

우리는 산이 아름다워 찾는 게 아니라

산아래 문명을 반성하기 위해 산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물 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

나는 산신이 여신일 것 같은 산, 선운산에 있었습니다.

선운산은 그 이름만큼이나 아련하고 아늑하고 풍요롭게 느껴졌습니다.

봉우리마다, 계곡마다, 눈을 돌리는 것마다 뭘 믿고 저렇게 아름다울까요.

아름다운 것은 아깝고, 안타깝고... 헤어지기 아쉬움에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별을 보듯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해는 구름에 눌린 채 우리의 산행을 축복 해주는군요.

아, 하늘! 얼마나 오랜만에 마음놓고 올려다보는 하늘인지 모릅니다.

너무나 그리워했던 하늘...바람 한점이 흔적 남기는 그 하늘은 넉넉했습니다.

 

저 멀리 서해의 섬들이 조각배 마냥 수면 위에 떠 있습니다.

물안개에 휘감긴 섬 조각들... 화선지 위 한폭 그림인양 축복처럼 떠올라있습니다.

 

어서오라 날 반기던 산사초입의 벚꽃 터널, 꽃향에 그윽합니다.

길섶의 상사초는 떠난 님과의 조우를 기다리며 가을을 불태우겠다는군요.

생의 끝자락에서 한 줌 남은 생을 불사르는 동백꽃이 또 다시 보자는데, 그래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