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뿔바위봉(牛角峰, 475m)
산행코스 : 어수대→안부→비룡상천봉→성인봉→와우봉→서·동 쇠뿔바위봉→지장봉→새재→청림마을 (산행시간 : 쉬엄쉬엄 3시간)
소재지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과 하서면, 그리고 변산면의 경계
산행일 : ‘11. 4. 24(일)
함께한 산악회 : 산하들(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특색 : 의상봉, 쌍선봉, 관음봉 등 기암절벽을 끼고 있는 내변산과 울금바위, 경관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변산의 다른 산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뛰어난 절경을 갖고 있는 산이다. 이 山稜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쇠뿔바위봉은 두개의 봉으로 형성되어있으며 동봉은 서울의 인수봉과 흡사하게 생겼다. 그 동안 ‘내변산국립공원’에 가려 덜 알려졌지만, 최근에 山客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는 중이다.
▼ 산행들머리는 하서면 남선마을의 유통 영농법인 ‘청정 내변산’ 입간판
서해안 고속도로 부안 I.C에서 내려서서, 30번 국도를 타고 부안읍을 경유한 후, 하서면에서 736번 지방도로 내려서서 왼편으로 들어서면 우슬재(야트막한 고개라서 지나칠 염려가 있으니 주의 필요)에 다다르게 된다. 쇠뿔바위봉은 이곳에서 올라가도 되지만, 이곳에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남선동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서울에서 기나긴 시간을 투자하여 이곳까지 왔으니, 최소한 이곳의 소문난 기생이었던 매향이가 남긴 時調라도 한 수 읊어보는 낭만을 즐겨야 할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지도에 적힌 가든을 찾지 말라는 것이다. 장사가 안 되어서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으니까(지도만 믿고 찾아갔던 우리도 ‘청림 청소년 수련시설’ 앞에서 만난 이곳 주민의 조언을 듣고서 버스를 되돌리는 불상사를 초래하였다)
남선동에는 지도에 적힌 ‘00가든’은 물론 그 어떤 식당도 눈에 띄지 않는다. 다만 영농법인 ‘청정 내변산’의 표지판 옆에 아무런 상호가 없는 건물 하나가 덩그라니 도로변을 지키고 있을 따름이다. 이 건물 앞의 공터에 차를 주차시키고 건물 뒤편으로 보이는 우람한 바위벼랑을 향해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저 멀리 어수대 뒤로 보이는 絶壁은 비가 올 때면 절벽 전체가 폭포로 변한다고 한다. 어수대는 옛날 어떤 임금이 이곳의 물을 마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 건물을 오른편에 끼고 난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인적이 끊긴 빈 건물 한 동이 보인다. 아마 지도에 나온 식당인 모양인데 건물을 새로 보수하고 있는 지 자재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건물을 지나서 조금 더 들어가면 어수대이다. ‘부안댐으로 흘러드는 물의 시발점’이라는 어수대에 도착하면 아담한 연못가에 세워진 비석이 하나, 이 고장의 소문난 기생이었던 매창의 詩 한편을 감상할 수 있다. 아마도 옛날에는 이곳에 절이 있었나보다. ‘천년 옛 절에 님은 간데없고/ 어수대 빈터만 남아 있네/ 지난 일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바람에 학이나 불러 볼까나’
* 매창(梅窓. 1573~1610) : 조선시대 부안(扶安)의 명기(名妓)로 한시․가사(歌詞)는 물론, 가무․현금에도 능했으며, 황진이(黃眞伊)와 쌍벽을 이루는 여류 예술인으로 분류된다. 본명은 이향금(李香今)이며, 당대의 문사들이었던 유희경(劉希慶)·허균(許筠)·이귀(李貴) 등과 교분을 나눌 정도로 뛰어난 여류시인이었다. 작품으로는 가사와 한시 등 70여 수 외에도 금석문(金石文)까지 전해지고 있다.
▼ 御水臺에서 산으로 들어서자마자, 등산로는 하늘을 향해 치닫는 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찾는 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심한 경사를 이기지 못한 등산로는 갈지(之)자를 만들어내면서 겨우겨우 고도를 높여가고 있다. 숨이 턱에 차오를 즈음, 닿게 되는 능선이 숨통을 터준다. 서해의 변산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은, 이마를 살짝 스치기만 하는데도 청량한 기운이 스며들며, 땀과 함께 마음의 때까지 씻어내 버린다.
▼ 고진감래(苦盡甘來),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先賢들의 말마따나, 주능선으로 오르면서 고생을 치르고 나면, 이후부터는 편안한 산행이 시작된다. 주능선은 高低가 크지 않기 때문에 걷는데 부담이 없다. 왼편 멀리 바라보이는 멋진 우금산성이 우리와 함께 걷는 듯하고, 오른편으로는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리아스식 해안이, 이파리 없는 빈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드러나 보인다.
▼ 산은 언제나 포근하다. 肉山(흙산)이나 바위산을 막론하고 말이다. 언제 누가 찾아와도 어머니처럼 품에 안아주는 것이 정겨운 산이다. 산에 오르면 삶의 고단함과 괴로움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의욕이 용솟음치는 기운을 준다고 한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음일 것이고, 우리도 오늘 이곳 쇠뿔바위봉을 오르고 있는 까닭일 것이다. 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왼편 저 멀리에 우금암이 바라보인다. 백제의 마지막 항거지 우금산성이 남아 있는 울금바위는 마치 성채처럼 서서 주변 경관을 한층 더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다.
▼ 비룡상천봉!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풍수적으로 보아 등룡에서 비룡을 거쳐 하늘로 거슬러 오르는 기운의 산세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이름만 들어도 한번쯤 찾아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열망이 자연스레 찾아드는... 그 흔한 천왕봉이나, 비로봉, 국사봉 등의 평범한 이름들에 식상해 온 내 가슴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막상 찾아온 비룡상천봉은 어느 봉우리를 비룡상천봉이라고 부르는지조차 불분명하다. 그저 능선상에서 제일 높아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이겠거니 하고 추측해볼 따름,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한 봉우리에는 정상표지석은 커녕 그 흔한 이정표하나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봉우리일 뿐이었다. 멋진 이름을 作名한 멋지신 분이시여 그 귀한 이름을 어찌 이다지도 소홀하게 다루시나이까??
▼ 멀리 바라보이는 바위가 울금바위
▼ 능선을 걷다보면 등산로 주변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진달래꽃 무리를 만나게 된다. 오늘은 산행시간도 짧으니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도 없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탐스럽게 핀 진달래를 실컷 감상해보자. 그래도 시간에 조금 여유가 있다면 진달래 가지로 꽃방망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 꽃방망이를 들고, 앞서가는 여인, 그러니까 시집못간 것이 보기에 안타까웠던 여인들의 등을 때려보자. 그러면 시집못간 처녀들이 사랑에 빠지게 되고, 시집가서 잘 살게 된다니 말이다. 여자의 등을 때리기가 두려운 사람들은 남자들의 머리를 때려보면 어떨까? 남성의 머리를 때리면 과거 급제하여 錦衣還鄕 한다는 說이 옛 古典에 있으니... 진달래 꽃다발로 사랑을 표현 했던 여의화장(如意花杖), 이 얼마나 아름다운 전통놀이인가.
* 송도 명기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제사를 지낸바 있는 朝鮮의 멋쟁이 선비였던 임백호가 화전놀이에 대하여 읊은 詩가 있다. ‘개울가 큰 돌 위에 솥뚜껑 걸어놓고, 흰 가루 참기름에 꽃전 부쳐 집에 드니, 가득한 봄볕 향기가 뱃속까지 스며든다.’ 살포시 눈을 감고 읊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입안에 봄 향기 가득히 차오르지 않는가?. 남자들이 솥이나 그릇을 지게에 져다 취사준비를 마쳐주고 산을 내려가면, 그때부터는 여인들만의 오붓한 시간이 된다. 서로 詩를 지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돌아가며 끝말을 이어가는 대구(對句)놀이도 하면서 여자들끼리만 하루를 즐기는 게 화전놀이이다. 이때 남자들이 옮겨준 솥뚜껑에 부치던 화전에 들어가는 꽃이 진달래이고, 진달래는 먹는 꽃이란 뜻으로 참꽃이라고도 불린다. 참꽃에 비하여 못 먹는 꽃은 개꽃(철쭉꽃)이라고 부르고...
▼ 변산 앞바다와 새만금 방조제
▼ 왠 생뚱맞은 성인봉? 비룡상천봉으로 추정되는 봉우리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면(쇠뿔바위봉과 비룡상천봉의 중간쯤 되는 지점), 성인봉이라는 이름표가 나뭇가지에 매달린 봉우리가 나온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성인봉도 역시 약간 밋밋한 수준의 평범한 능선상의 봉우리일 뿐이다. 혹시 지도상의 와우봉과 같은 봉우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흙과 바위가 번갈아가며 나타나던 능선길은 저만큼 앞에 동쇠뿔바위봉이 보이면서 갑자기 완전한 암릉으로 변해버린다. 주능선에서 동쇠뿔바위봉 방향으로 커다란 암릉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이름하여 고래등바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다 배낭을 벗어놓고 동쇠뿔바위봉에 다녀온다. 밧줄을 잡고 수직에 가까운 암벽을 오르는 게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다. 쉬는 틈을 이용해 점심을 먹으면서 前面에 보이는 절벽을 바라보고 있다. 못 오르는데 대한 서운함을,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는 묘기로 대체하면서...
▼ 고래등바위 초입에서 바라보는 동쇠뿔바위봉은 쇠뿔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시루를 엎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청림마을에서 올려다보면 두 개의 쇠뿔이 나란히 서 있는 형상을 확실하게 만들어내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아무튼 비룡상천봉이 풍수적으로 주봉이라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눈에는 단연 쇠뿔바위봉이 주봉이자 백미다.
▼ 고래등바위는 끝이 뭉툭한 절벽으로 이루어졌다. 그 절벽 끝으로 나서기 전 20m쯤 전, 오른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희미하게 보인다. 왼편으로도 내려설 수 있으나 릿지산행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자제해야 좋을 정도로 경사가 꽤 심하다. 동쇠뿔바위봉으로 가기위해 좌우를 살피고 있는데. 이때 들려오는 청천벽력 같은 산행대장의 목소리 ‘시간이 부족하니 동쇠뿔바위봉을 오르는 것은 생략합니다.’ 자율적으로 다녀오면 안 되겠느냐는 질문에도 일언지하에 거절이다. ‘위험하니 산행대장의 통제에 따라야합니다’ 사실 난 웬만한 암벽은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오르내리는 경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단체생활에서 리더의 통제에 따르는 것은 필수이니 따를 수 밖에... 정상을 앞에 두고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 고래등바위로 내려서기 전 우측으로 등산로가 보인다. 서쇠뿔바위봉으로 가는 길이다. 서쇠뿔바위봉을 향해 조금 더 진행하다보면, 이번에는 오른편에 등산로가 보인다. 지장봉을 거쳐 새재로 내려가는 등산로이다. 이곳 삼거리에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헷갈릴 염려는 없다. 서쇠뿔바위봉을 오르려면 이곳에서 곧바로 직진해야한다. 그러나 조망이 끝나면 이곳으로 다시 되돌아나와만 한다.
▼ 고래등바위에서 서쇠뿔바위봉으로 가는 길은 능선으로 연결된다. 바윗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조망은 일품으로, 오른편으로 투구봉과 사두봉의 암봉이 기기묘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그 너머에는 머리에 군부대 레이더기지를 머리에 이고 있는 의상봉이 바라보인다. 그리고 왼편으로는 동쇠뿔바위봉이 우뚝 솟아있고, 고래등바위 위에는 점심상을 차린 등산객들이 울긋불긋 꽃무늬를 만들어 내고 있다.
▼ 서쇠뿔바위봉에서 바라본 지장봉, 투구봉, 의상봉 조망 - 최고의 백미이다
▼ 서쇠뿔바위봉에서의 고래등바위 조망
▼ 서쇠뿔바위봉을 구경하고 나면 고래등바위 방향으로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고래등바위 갈림길과 서쇠뿔바위봉의 중간어림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지장봉과 새재를 거쳐 청림 마을에 이르게 된다. 이 길을 걷다보면 부안湖와 어우러지는 투구봉의 빼어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우각봉에서 지장봉으로 내려서는 길은 그야말로 급경사이다. 이곳 행정관청에서 등산로 곳곳을 정비하고 있지만, 이곳까지는 아직 손길이 미치지 못한 듯 싶다. 거기에다 주변에 붙잡을 나무도 변변히 없어 조심하지 않으면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그래서일까? 등산로는 한적하고 고즈넉하기만 하다.
▼ 쇠뿔바위봉을 내려서서 10분 정도 더 걸으면 전면에 거대한 암봉인 지장봉이 나타난다. 등산로는 지장봉의 왼편으로 우회를 시킨 후, 경사가 진 암릉 사면위로 올려놓는다. 이곳 암릉의 중턱에서 바라보는 쇠뿔바위봉 일대의 풍광이 장관이다. 서쪽으로 의상봉 아래 투구봉의 기암능선과 부안호수 풍치도 매우 좋다. 지장봉은 전문 암벽장비를 갖춘 클라이머들이나 올라갈 수 있는 봉우리이다.
▼ 지장봉 등 부분에서 조망한 지장봉 정상 조망 - 정상은 위험하여 오를 수 없다)
▼ 지장봉에서는 부안호의 일부가 조망된다
▼ 암릉에서 내려서서 한참을 걸으면 능선 안부인 새재에 다다르게 된다. 능선을 이어가는 등산로는 이곳에서 끝을 맺는다. ‘출입금지’라는 안내판 앞에 세워진 이정표는 이곳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청림마을로 내려가라고 지시하고 있다. 투구봉과 서운봉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나오는 마을을 통과해서 가야만 하는데... 무심한 산행대장은 새로운 길 탐색에 목말라하는 내 작은 소망을 무참히 짓밟아 버린다. ‘이곳에서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며...
▼ 새재에서 제법 경사가 심한 등산로를 따라 잠깐 내려서면 조그만 계곡을 만나게 된다. ‘졸졸졸-’ 길가 계곡을 따라 흐르고 있는 물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산을 내려오면 누구나 물을 그리워한다. 산행 중에 흘린 땀을 씻기도 하고, 오르내리느라 고생한 무릎에게 안식도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쇠뿔바위봉에는 탁족을 할만한 양의 물이 보이지 않는다. 바위산에서 물을 찾음은 역시 지나친 호사(豪奢)인가? 청림마을로 이어주는 길 주변은 이미 연초록 풀들로 뒤덮인 지 오래이고, 나무들 또한 싱그런 애잎들을 슬그머니 내밀고 있다. 분명 봄이 오고 있는 것이다. 늦바람난 추위가 제 아무리 용트림을 하고 있어도 소용이 없다. 봄의 기운은 이미 여러 곳을 점령하고 있는지 오래이다. 계곡이 끄트머리에는 산행안내판과 이정표가 세워져 있고, 이내 오늘의 산행이 끝났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 청림마을에서 본 쇠뿔바위봉, 참으로 절묘하게도 닮아있다.
▼ 계곡에서 이어지는 농로는 청림마을 동네의 한 가운데를 통과한다. 길가를 곱게 장식하고 있는 꽃잔디가 무척 곱다. 평소에는 구경하기 어려운 하얀색 꽃잔디에 반해 한참을 쭈그리고 앉은 채로 시선을 고정시켜 본다. 청림마을을 빠져나오면 저만큼 앞에 아담하게 생긴 祭閣을 둘러싸고 있는 밀밭이 보인다. 4월의 들녘,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밀밭이다. 얼마 있으면 5월, 그리고 6월, 그때쯤이면 저리도 푸른 밀들이 누렇게 익어가겠지? 우리 어린 시절에는 군것질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었고, 굶주린 배에 채워 넣을만한 먹거리를 찾아 우린 늘상 바빴다. 저 밀도 우리가 선호하던 먹거리 중 하나, 구워서 후후 불며 까먹으면 맛있는 간식으로 충분했다. 제각 안마당을 지키고 있는 멋스런 소나무는 꽤나 값나가게 보인다. 世俗에 찌든 난, 언제부터인가 모든 사물을 금전으로 환산하는 못된 버릇이 생겨버렸다.
▼ 산행날머리는 청림부락 앞의 736번 地方道路
청림부락을 지나 도로변으로 나오면, 길 양 옆으로 벚꽃이 만개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만개한 벚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면서 파란 하늘에 수를 놓고 있다, 바닷바람이 육지바람보다 더 쌀쌀한 탓일까? 도시 근교의 벚꽃들은 스러진 지 벌써 오래되었건만 이곳은 이제야 꽃망울을 활짝 열고 있다.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곳에서 도로변까지는 1Km가 조금 넘을 듯, 산행들머리인 하선마을 도로변에서 어수대까지가 1Km가 조금 못되었으니, 5Km의 本산행에 이 두 구간을 더하면 오늘 산행은 약 7Km를 걸은 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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