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산(種子山, 643m)

 

산행일 : ‘12. 10. 1(월)

소재지 : 경기도 포천군 관인면과 연천군 연천읍의 경계

산행코스 : 늘거리(해 뜨는 마을)→종자바위→종자산→590봉→삼거리(중리저수지 1.75Km 지점)→중리저수지(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이웃 보개산(寶盖山)의 28개 봉우리 가운데 가장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서, 종자산(種子山)이라는 이름은 ‘아주 오랜 옛날 천지(天地)가 개벽(開闢)으로 온 세상이 물바다가 되었을 때, 산의 정상이 마치 종지그릇을 뒤집어 놓은 형상처럼 조금 남아 있었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현지 안내판). 바위가 많은 산이라서 산행이 어려울 것 같지만 보기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산행들머리는 늘거리 ‘해 뜨는 마을’ 표지석

경기도 포천시가지를 지나 43번 국도(國道 : 철원방향)로 북진(北進)하면 영중면 ‘38선 휴게소’이다. 휴게소 앞의 영중교(橋)를 건너 신장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37번 국도(전곡방향)로 6km쯤 들어가면 오가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87번 국도(철원방향)를 따라 북진하면 한탄강을 가로지르는 영로교(橋)가 나오고, 곧 이어 산행들머리인 ‘늘거리 마을’에 이르게 된다.

 

 

 

늘거리마을에서 왼편에 보이는 종자산 방향으로 난 농로(農路)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종자산은 중리마을에서 오르는 방법도 있지만, 이곳 늘거리에서 오른 후 중리저수지로 내려가는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되기 때문이다. 들머리에 ‘해 뜨는 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니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참고로 연천군 쪽과 늘거리 옆에 있는 문암마을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는 폐쇄되어 이용할 수 없다. 농로(農路)를 따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이 왼편으로 급하게 꺾이면서 오른편에 울창한 ‘밤 과수원’이 보인다(이정표 : 종자산 정상 1.55Km). 과수원에서 넘어온 밤나무의 가지에서 떨어진 듯, 포장도로 위에도 밤송이와 밤톨들이 꽤나 많이 떨어져 있다. 산행 중에 주전부리나 해볼까 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밤톨 몇 알을 주워보려는데 뭔가가 앞에 보인다. ‘밤과 은행을 줍지 말라’는 경고(警告)판이다.

 

 

 

 

밤 과수원을 끼고 잠깐 걸으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 종자산 정상으로 가려면 왼편에 보이는 물기 하나 없는 계곡(乾川)을 건넌 후, 곧바로 능선을 치고 올라야 한다. 오른편에 보이는 길은 널따란 것을 보아 과수원에서 사용하는 농로로 보이기 때문이다(이곳도 등산로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계곡을 오른편에 끼고 이어지는 능선은, 처음에는 완만(緩慢)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경사(傾斜)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참나무 일색이지만 어쩌다 한 그루씩 섞여있는 밤나무들이 주전부리 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부지런한 집사람은 가던 길을 멈추고 길가에 떨어진 밤을 줍느라 정신이 없다. ‘산행 시간이 널널하니 급할 것이 없잖아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오늘 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한숨 자고가고 될 정도로 넉넉하다. 거기다 능선의 밤나무들은 틀림없이 주인이 없을 테고, 그러니 주운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나도 역시 그녀의 ‘밤 줍기 행사’에 자연스레 동참하고 본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쯤 되면 갑자기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지형지세(地形地勢)로 보아 곧바로 능선을 치고 오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지만, 산의 사면(斜面)으로 난 길의 흔적이 더 뚜렷하기 때문에 길의 선택이 어렵다. 고민 끝에 왼편 사면길로 들어서는 일행을 따라 진행해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된다. 길가의 바위벼랑 아래에 벌통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아 이 길은 등산로가 아니고 양봉(養蜂)을 위해서 다니는 길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서기에는 꽤 먼 거리를 온 탓에, 그냥 눈짐작으로 방향을 잡아 치고 오르기로 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우리와 같은 코스로 들어왔다면 뒤돌아 나가라고 권하고 싶다. 그냥 위로 치고 오를 경우에 나타나는 너덜지대는, 길도 없을뿐더러 경사(傾斜)까지 가파르기 때문이다. 조금만 잘못하면 돌맹이들이 굴러 떨어지기 때문에 뒤따라 오르는 사람들이 위험하기 짝이 없다.

 

 

 

길이 아니기는 매 한가지이지만 오른편에 보이는 능선을 타고 오르기 시작한다. 굴러 떨어지는 돌의 위험이라도 피해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임시방편(臨時方便)으로 선택한 코스가 우리에게 큰 행운(幸運)을 불러다 주었다. 바위로 이루어진 능선은 여자들이 붙잡고 오르기에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오르는 바위마다 뛰어난 전망대(展望臺)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거친 숨도 돌릴 겸 잠깐 고개를 돌려보면 영중면(面)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강씨봉과 청계산 등 한북정맥 산릉(山稜)이 마치 병풍(屛風)처럼 펼쳐지고 있다.

 

 

 

주변의 경관(景觀)에 한눈팔면서 암릉을 오르다보면 거대한 바위절벽(絶壁)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절벽 앞에는 의자가 놓여있는데, 등받이는 벼랑이 대신하고 있다. 머리에 고깔을 쓴 모양으로 오뚝이 서있는 형상이라는 종자(種子)바위인 모양이다. 종자바위의 오른편 벼랑 아래로 뚜렷한 등산로가 보인다. 아까 만났던 갈림길에서 제대로 진행했을 경우, ‘바위굴 성’을 거쳐 이곳으로 올라오게 된다. 벤치에 앉아 아쉬움에 입맛을 다셔본다. 길을 잘못 접어든 덕분에 ‘바위굴 성’이라는 볼거리를 놓쳐버린 것이 못내 서운해서이다.

* 못가 본 서운함을 어느 선답자의 느낌으로 위로를 삼아본다. <낑낑거리고 올라간 곳에 엄청난 크기의 바위벽이 버티고 있다. 땅만 보고 걷다가는 모르고 지나칠 정도의 거리, 오른쪽 구석에서 동쪽을 향하고 있는 거대한 바위벽. 바위벽은 처마를 이루어 굴의 모습,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물, 물은 물보라를 치며 폭포를 이루고 있다. 가(可)히 장관(壯觀)! 누군가가 프라스틱 물통을 놓아두었다. 물은 통을 두드리고 있고 물통은 물의 매를 맞고 울고 있다. 쿵다닥딱딱, 콩더덕콩떡!>

 

 

 

종자바위에부터 본격적인 암릉산행이 시작된다. 흙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순수한 바윗길은, 거칠고 가파르지만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다. 조금만 험하다싶으면 어김없이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기 때문이다. 가파른 암릉길을 오르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들 것이다. 그러나 종자산의 암릉을 오르는 일은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능선의 곳곳이 뛰어난 전망대라서 조금도 힘들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만큼 주변에 눈요깃거리가 넘쳐난다는 의미이다. 능선을 오르다가 만나게 되는 바위들은, 아무 것이나 올라도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눈앞에 보이는 보장산과 그 너머에 늘어선 한북정맥 등 산릉은 물론이려니와, 굽이굽이 흐르는 한탄강과 한탄강 주변의 평야(平野)가 시원스럽다.

 

 

 

 

 

눈요기를 즐기면서 30분 정도 바윗길을 치고 오르면 주능선에 이르게 되고, 주능선에서부터 길은 갑자기 고와진다. 바윗길이 사라지면서 갑자기 흙길로 변해버린 것이다. 사라져버린 바윗길의 서운함을 달래주려는 것인지, 갑자기 어마어마한 바위절벽이 왼편에 등장한다. 수백 길 높이의 벼랑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산 아래에서 바라볼 때 펼쳐지던 바위벼랑이 바로 이곳인 모양이다. 물론 걷고 있는 능선의 왼편도 바위벼랑으로 되어 있다. 정상으로 향하려면 벼랑 위를 걸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뒤돌아보면 다시 한 번 한북정맥의 산들이 반갑다고 손짓하고 있다.

 

 

 

 

 

늙은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있는 주능선, 바위절벽 위를 잠깐 걸으면 정상에 닿게 된다. 종자산 정상은 바위봉우리이지만 맨 꼭대기는 의외로 5평쯤 되는 흙으로 이루어진 길쭉한 분지(盆地)이다. 한 가운데에는 산의 높이에 비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커다란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그 곁을 산행안내판과 삼각점이 지키고 있다. 정상표지석의 뒷면에는 조선후기의 문신이었던 남구만의 싯구(詩句)가 적혀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로 시작되는 시조(時調)의 내용이 종자산을 읊은 것이 아닌 것을 보면, 아마 남구만이 이곳 포천에서 태어났던지, 아니면 이곳에서 벼슬을 살았었나 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이 지났다.

 

 

 

 

정상에 올라서면 조망(眺望)이 시원스럽다. 사방으로 막힘이 없이 시계(視界)가 열린다. 동쪽 멀리 명성산이 우뚝하고, 그 뒤로 광덕산과 백운산, 그리고 청계산을 낀 한북정맥이 아스라이 보인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한탄강이 급할 것 없다는 듯이 굽이돌며 한가하게 흐르고 있다. 북쪽 방면은 정상표지석의 맞은편에 있는 바위벼랑 위에서 가장 잘 조망된다. 지장산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뚜렷하고, 지장산의 오른편에 서있는 관인봉 능선은 중리저수지로 빠져들고 있다.

 

 

 

종자산에는 이름에 관한 전설(傳說)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오랫동안 아기를 얻지 못하던 삼대독자(三代獨子)가 이 산의 바위굴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다음 건강한 사내아이를 얻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이 기도 덕에 ‘씨앗을 얻었다‘하여 산의 이름을 ’씨앗산‘이라고 불렀는데, 어느 글쟁이가 글 배운 값을 하느라고 ’씨(種)를 이을 아들(子)을 얻었다‘는 뜻으로 종자산(種子山)이라 개명(改名)하였다고 한다. 그 기도를 드렸던 굴이 ’바위굴 성‘인데 길을 잘못 든 덕분에 둘러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해 버렸다.

 

 

 

 

하산을 중리저수지 쪽으로 하려면 지장산의 정상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이정표 : 중리저수지 3.32Km). 이정표의 대부분이 지장산이 아니라 중리저수지로 표기(表記)되어 있으니 별다른 어려움 없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상에서 급하게 떨어진 능선은 이후부터는 고저(高低)의 차가 거의 없이 오르내림을 계속하며 길게 이어진다.

 

 

 

 

 

지장산으로 향하는 능선은 조망(眺望)이 뛰어난 바위 능선이 자주 나타난다. 늙은 소나무와 바위가 서로 어우러지며 멋진 풍경(風景)을 연출해 내고 있다. 그러나 바위능선의 610봉에서 끝을 맺고, 나머지 구간은 참나무들로 둘러싸인 그저 그렇고 그런 산길일 따름이다.

 

 

 

암릉이 끝나고서도 550봉, 590봉 등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산행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 오르내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비록 봉우리들은 여러 개이지만 오르내리는 고저(高低)의 차가 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길까지 흙길이니 산책을 하는 느낌으로 걸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능선을 걷다보면 오른편에 탈출로가 2번(이정표 #1 : 중리저수지 2.49Km/ 중3리 마을회관/ 종자산 정상 0.83Km, 이졍표 #2 : 중리저수지 2.33Km/ 중3리 마을회관 1,5Km/ 종자산 정상 0.99Km) 보이지만 그냥 지나쳐야 한다. 중3리 마을회관으로 내려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길게 이어지는 능선이 지루할 즈음이면 쉼터로 조성된 봉우리(이정표 : 중리저수지 2.08Km/ 종자산정상 1.24Km)에 올라서게 되고, 봉우리를 내려서서 조금만 더 걸으면 능선 안부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중리저수지 1.75Km/ 종자산 정상 1.57Km/ 지장산). 왼편은 지장산으로 향하는 능선이고 중리저수지로 가려면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틀면 싸리나무가 빼곡한 능선이다. 널따란 평원(平原)으로 이루어진 분지에는 싸리나무 외에도 억새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눈이 생각지도 않은 호사(豪奢)를 누리는 것이다.

 

 

 

 

 

싸리나무 평원을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급하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힘들어할 등산객들을 위해서 친절하게도 길가에 안전로프를 길게 매어 놓았다. ‘팻말이 방향을 잘못 표시하고 있네요.’ 등산로를 따라 곳곳에 매달아 놓은 방향표시판이 집사람의 눈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모양이다. 매달린 표시판의 방향이 정상을 향하기도 했다가, 어떤 때는 중리저수지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산로가 워낙 뚜렷하기에 망정이지, 그녀의 말마따나 길을 혼동(混同)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산행날머리는 중리저수지 위의 주차장

참나무 숲 사이로 언뜻언뜻 나타나는 관인봉을 음미하면서 내려서다보면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숲을 지나서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이 지났다. 주어진 산행 종료시간까지는 아직도 2시간이나 남았다. 덕분에 준비해온 도시락도 먹지를 못했다. 오른편에 언덕위에 보이는 밤나무 아래로 올라가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즐긴다. 그리고는 떨어진 산밤 줍기, 우리 부부는 한 되도 더 되게 밤을 주울 수 있었다. 밤나무 밭이 중리저수지 바로 위이기 때문에 산행이 종료되는 주차장까지는 금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