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산(528.5m)-문안산(533.1m)

 

산행일 : ‘14. 3. 8()

소재지 :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와부읍과 조안면의 경계

산행코스 : 먹치고개고래산맹골재재재기고개문안산전망대문바위국도45호선(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고래산이나 문안산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사람들이 뻔질나게 찾는 운길산이나 예봉산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음은 물론, 북한강에 대한 조망(眺望) 등 모든 면에서 두 산에 결코 뒤쳐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염두에 두지 않은 이유는 아마 접근이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중앙선 전철(電鐵)이 개통되어 접근이 많이 좋아졌다. 거기다가 남양주시에서 등산로까지 말끔하게 정비를 해 놓은 탓에 초보자들도 어렵지 않게 산행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런 탓인지 요즘에는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산행들머리는 해발 222m먹치고개(와부읍 월문리)

서울-춘천고속도로 덕소삼패 I.C에서 내려와 86번 지방도 화도방향으로 달리다가 월문삼거리(와부읍 월문리)에서 우회전 고래산로를 따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먹치고개에 이르게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중앙선전철(電鐵) 덕소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빠져나오면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사우리행 마을버스(88-3)를 타면 먹치고개에 이를 수 있다. 다만 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다니니 시간을 맞춰야 하는 불편은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먹치고개 버스정류장의 왼편 뒤로 난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오늘 산행이 시작된다. 진행방향에 보이는 능선을 향해 2~3분 정도 올라갔을까 왼편의 산자락으로 오솔길 하나가 열린다. 들머리에 산악회의 시그널(signal) 몇 개가 매달려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자락에 들어서서 2~3분 정도가 지나면 산길이 서서히 허리를 곧추세우기 시작한다. 경사(傾斜)가 가팔라진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길이는 그다지 길지가 않다. 가파른 비탈길을 20분 조금 못되게 치고 오르면 송전탑(送電塔)을 만나게 되고, 여기서 잠시 숨을 죽인 능선은 또 다시 가파르게 위로 향한다. 오르는 길에 혹시 성도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보이나 살펴봤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아마 두텁게 쌓여있는 참나무 낙엽(落葉)들 때문에 길이 보이지 않은 모양이다.

 

 

 

 

송전탑을 지나면 얼마 안 있어 석문(石門)을 만나게 된다. 석문이라고 부르기에 조금 옹색할 수도 있겠지만 워낙 바위가 없는 산인지라 반가운 마음에 얼른 카메라에 담고 이름을 붙여본 것이다. 이어서 조금 더 올라가면, 그러니까 송전탑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이정표(고래산 정상 0.44Km/ 백봉산 6.50Km/ 먹치고개 1.0Km)가 있는 삼거리에 이른다.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이정표인데, 왼편에 보이는 길은 백봉으로 이어진다. 원목(原木)으로 만들어진 깔끔한 이정표에 나무판자 하나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새는 자기 길을 안다. 김용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김용해 시인(詩人)의 시()를 적어 놓았던 모양인데, 아쉽게도 시의 내용은 이미 잘려나가고 없다. 이렇게 아랫도리가 잘려나간 시판(詩板)은 산행을 마칠 때까지 여러 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때마다 숭례문(崇禮門)’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애초에 만들 때부터 신경을 조금 더 썼더라면 이렇게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상황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새는 자기 길을 안다의 전문(全文)을 적어본다. ‘하늘에 길이 있다는 것을 새들이 먼저 안다. 하늘에 길을 내며 날던 새는 길을 또한 지운다. 새들이 하늘 높이 길을 내지 않는 것은 그 위에 별들이 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우주(宇宙) 섭리(攝理)의 근간을 그저 무심히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새들의 아량과 배려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시인의 예지(叡智)가 얼마나 신선한가. 시인을 모독하고 있는 것 같아 괜스레 가슴이 찡해온다.

 

 

 

 

일단 삼거리(493?)가 있는 정상부 능선에 올라서고 나면 길은 편해진다. 500m 조금 못되는 높이의 능선이 큰 오르내림이 없이 이어지다가 13분쯤 후에는 고래산 정상에 올려 놓는다. 정상으로 가는 능선이 올망졸망한 3~4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앞서 가던 집사람이 냉큼 소나무 가지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굴참나무 천지인 능선에서 모처럼 만난 소나무가 못내 반가웠던 모양이다. 거기다가 그 모양이 기괴(奇怪)하기까지 하니 동심(童心)으로 돌아갔을 만도 하겠다. 가는 길에 조망(眺望)은 트이지 않는다. 그저 벌거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오른편에 갑산, 그리고 왼편에는 천마산 등이 얼핏얼핏 내다보일 따름이다.

 

 

 

 

열 평 남짓 되는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은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삼각점, 그리고 이정표(문안산 정상 4.36Km/ 백봉산 정상 6.50Km/ 먹치고개 1.48Km)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이곳의 이정표도 역시 시()가 적힌 판자(板子)의 아랫도리가 잘려나갔다. 잡목(雜木)에 포위된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시원치 않다. 아까 능선에서 보았던 조망보다 나아진 게 별로 없는 것이다. 다만 잡목의 웃자람이 덜한 사이사이로 갑산과 운길산 그리고 천마산 등이 시야(視野)에 잡힌다. 참고로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때는 이 산을 경산(鯨山)이라 불렀다. '경산'이라는 명칭이 조선지지자료에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보아 일본인들이 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곳 토박이들 사이에는 '고래산'으로 불리어왔기에 다시 옛 이름을 되찾게 된 모양이다. 고래산은 골짜기의 산에서 따왔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6Km가까이 된다는 고래산의 골짜기에서 따온 것이 '()의 산', 이것이 '고래뫼'를 거쳐 '고래산'으로 변했을 것이라는 것이다한편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은 온돌로 난방(煖房)을 하였다. 그 온돌의 구들장 아래 불길과 연기가 다니는 통로가 바로 고래또는 방고래이다. 고래산의 골짜기 방고래처렴 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고래산에서 문안산을 향해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기 이를 데가 없다. 겨울철에 눈이라도 올 경우에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 딱 알맞겠다. 급하게 내려선 산길은 잠시 순하게 이어지다가 안부사거리에 이른다. 고래산에서 20분 조금 못되는 거리에 있는 맹골재이다. 맹골재에는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所望)을 담은 돌무더기와 이정표(문안산 정상 3.64Km/ 자산리 3.20Km/ 고래산 정상 0.72Km)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처음으로 온전한 시판(詩板)을 만난다. 김영랑시인의 오매 단풍들겄네.’라는 시가 적혀있다. 남도 사투리로 읊은 서정성 넘치는 작품, 가만히 눈을 감고 읊어본다. <‘오매 단풍 들것네. 장광에 골붙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 것네.‘> 갑자기 가슴이 싸해오며 나도 몰래 눈물 한 방울 떨구어 버린다.

 

 

 

 

비탈길은 맹골재를 지나면서 끝을 맺고, 이후부터는 경사(競射)가 거의 없이 완만(緩慢)하게 이어진다. 얼마나 걸었을까 잘 가꾼 묘()가 보이더니 갑자기 오른편이 시원스럽게 열린다. 운길산 등이 시야(視野)에 들어온다.

 

 

 

순한 흙길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걷다보면 15분 후에는 재재기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재재기재에는 익숙한 이정표(이정표 : 문안산 6.0Km/ 고래산 1.40Km/ 재재기마을) 외에 또 하나의 낯선 이정표(문안산길 시점 11.28Km/ 문안산길 종점 6.02Km)가 보인다. 바로 이 지역(남양주시)에서 개발한 둘레길인 다산길의 이정표이다. 문안산 구간은 다산길의 제5코스로 문안산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그런데 이곳의 이정표가 보는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고 있다. 문안산까지의 거리가 6.0Km로 적혀있는 것이다. 아까 맹골재에서 약 700m를 걸어왔는데도 문안산까지의 거리는 오히려 2.4Km나 더 늘어나버린 것이다. 이정표를 세우는 목적이 본시 방향과 거리를 미리 알고 거기에 맞춰 산행을 즐기라는 것일 진데,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이정표를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재재기 고개를 지나면서 또 다시 오른편이 시원스럽게 열린다. 동쪽산록을 벌목(伐木)한 탓에 시야(視野)가 확 트이는 것이다. 오늘 본 조망 중에서 가장 뛰어난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수많은 산릉들이 중첩(重疊)을 이루면서 잘 그린 산수화(山水畵) 한 폭을 허공에 걸어 놓은 듯하다. <!--[endif]--> 

 

 

 

잠시 조망(眺望)을 즐기다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자그마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니 웬 경고판(警告板) 하나가 보인다. 남양주 종합촬영소에서 세운 것인데, 등산로도 그렇다고 관람구역도 아니니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멧돼지나 뱀의 출현까지 빈번하다며 겁을 잔뜩 주고 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촬영소에 들어갈 일이 없다. 주목적인 산행을 제대로 하려면 한눈팔 여유가 결코 없기 때문이다. 재재기고개에서 10분 거리이다.

 

 

 

종합촬영소 경고판에서 10분쯤 더 걸으면 올라서게 되는 작은 봉우리 위에서 장의자(長椅子) 몇 개가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산봉우리에다 쉼터(근처의 이정표 : 문안산 정상 2.0Km/ 고래산 정상 2.36Km)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까 지나왔던 고래산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다. 이게 바로 남양주에서 바라보는 두 산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안내판이 너무 자주 세워져 있네요.’ ‘다산길 제5코스(문안산길)’ 안내판을 보고 집사람이 하는 말이다. 문득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렇다. 평소에 자기 의사를 별로 표현하지 않는 집사람이 저런 말을 할 정도라면 과유불급이 분명할 것이다. 이곳 문안산에 쏟은 정성을 조금 나눠 고래산에 베풀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나뭇가지 사이로 남양주 해비치 C.C’가 내려다보인다.

 

 

 

쉼터를 지나서도 산길은 역시 큰 오르내림이 없이 순하게 이어진다. 짧고 얕게 내려섰다가 길게 올라서기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는 것이다. 맹골재에서 문안산 정상까지의 거리는 3.64Km, 구태여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도 고도를 높이기에 충분한 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산길은 곳곳에서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그 첫 번째가 백월리 갈림길(이정표 : 문안산 정상 1.35Km/ 백월리 3.0Km/ 고래산 정상 3.0Km)이고, 이어서 창현리로 내려가는 길을 두 번(이정표 #1 : 문안산 정상 0.7Km/ 창현리 2.3Km/ 고래산 정상 3.98Km, #2 : 문안산 정상 0.38Km/ 창현리 2.3Km/ 고래산 정상 3.98Km) 분가시킨다.

 

 

 

 

 

 

쉼터에서 서서히 그러나 꾸준하게 고도(高度)를 높여가다보면 헬기장이 있는 528봉이다. 이곳까지 오는 길의 특징을 들라면 갈림길이 많다는 것이고, 구태여 하나 더 들라고 한다면 528봉으로 오르는 산길이 바윗길이라는 것이다. 바윗길이라고 해서 암릉을 떠올려서는 안 된다. 그저 바닥에 바위가 깔려있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전형적인 흙산(肉山)에서 만난 풍경이 이색적인지라 바윗길이라고 표현했을 따름이다.

 

 

 

528봉에서 문안산은 금방으로 6분이면 닿는다. 잠깐 능선 안부로 내려섰다가 맞은편 능선을 조금만 더 치고 오르면 드디어 문안산 정상이다. 들머리에서 2시간45분 정도가 걸렸다. 20평쯤 되는 너른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문안산 정상에는 자연석으로 만든 정상표지석과 정상임을 알리는 나무 표지판그리고 장의자 4개와 문안산의 유래(由來)를 기록한 전망 안내도(案內圖)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안내도를 보면 문안산은 '날씨 좋은 날 정상에 오르면 서울의 문안까지 환히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동쪽 기슭에 있는 '문바위(門岩)’에서 문암산(門岩山)이란 이름으로 발전되었다가, 다시 문안산(文案山)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정상은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트여 조망(眺望)이 뛰어나다. 북쪽으로 화도시가지와 천마산, 철마산, 주금산, 동쪽에는 곡달산과 통방산 등이 보인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수도권의 젓줄인 북한강이 또렷이 나타난다. 양수리에서 대성리로 이어지는 한강의 물줄기가 그대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기 짝이 없다. 이곳도 역시 눈이라도 쌓여있을 경우에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기 십상일 것 같다. 바닥이 약간 얼어붙은 정도에도 엉덩방아를 찧는 사람들이 눈에 띄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정상에서 20분 조금 못되게 내려오면 이정표(국도 451.76Km/ 문안산 정상 0.80Km) 하나를 만나게 되고 산길은 이곳에서 능선을 벗어나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튼다. 이곳은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된다. 비록 이정표에는 방향표시가 없으나 능선을 따라 난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길은 무시해 버리는 것이 좋다. 50m쯤 진행해본 결과 갈수록 길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길은 가파름과 완만함을 번갈아하며 지루하게 이어진다. 가끔 산길이 급하게 방향을 틀 때에는 어김없이 이정표(#1 : 국도 451.52Km/ 문안산 정상 1.0Km, #2 : 국도 450.93Km/ 문안산 정상 1.60Km)가 세워져 있으니 길이 헷갈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못미더웠던지 남양주시에서 다산길 제5코스라고 적힌 노란색 리본을 곳곳에 매달아 놓았다. 그런데 그 리본이 중구난방이다. 어떤 것은 제5코스, 또 일부는 제6코스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대체 이 구간이 제5코스인지 아니면 제6코스인지 모르겠다. 이왕에 좋은 일을 하는 거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

 

 

 

정상을 출발한지 45~50분 정도, 밋밋한 능선길이 지루하게 느껴질 즈음이면 진행방향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암벽(巖壁)이 눈에 들어온다. 문암산의 새로운 명물인 바위전망대(이정표 : 국도 450.80Km/ 문안산 정상 1.76Km)이다. 이 암벽을 오른편으로 우회(迂廻)하여 오르면 나무데크로 깔끔하게 만들어진 전망대(展望臺)가 나온다. 누군가 문안산을 일컬어 북한강으로서의 마지막 물길인 청평호와 팔당호의 정 중간 지점 강변에 우뚝 서서 북한강의 마지막을 조용히 지켜보는 산이라고 했다. 이 전망대에 오르면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그만큼 북한강의 강줄기가 발아래까지 다가와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망대에서부터 그다지 길지 않은 암릉길이 불거진다. 덕분에 길 찾기가 어려워지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계속 암릉의 날등을 타고 넘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 암릉의 끄트머리에 문안산의 명물(名物)이라는 문바위가 있다. 그러나 막상 문바위를 보고나면 실망부터 하게 된다. 크기만 조금 클 따름이지 그 생김새 등은 다른 산들에서 보아온 여느 바위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문바위를 북한산에 갖다 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단언컨대 바위 이름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옛날 어르신들이 자리를 잘 보고 앉으라.’는 말들을 했나보다.

 

 

 

산행날머리는 국도 45호선 ‘SK 그린주유소(화도읍 금남리)

문바위를 지나면 능선은 다시 흙산으로 변한다. 중간에 피아노폭포의 상단부를 이루는 바위봉 앞(이정표 : 국도 450.30Km/ 문안산 정상 2.23Km)에서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고, 이어서 개인소유의 부지라고 길을 막아 놓은 곳을 크게 우회(迂廻)하고 나면 산길은 다시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이정표 : 국도 450.1Km/ 문안산 정상 2.44Km)을 튼다. 그리고 곧 이어 국도 45호선에 내려서면서(이정표 : 문안산 정상 2.5Km) 산행이 끝을 맺는다. 문안산 정상에서 1시간25, 전망대에서 25분 정도 걸렸다.

 

 

 

 

 

산행을 끝내고 들른 피아노폭포

인공폭포(人工瀑布)로 그 높이가 무려 91.7m에 달한다. 그런데 폭포수로 이용하고 있는 물이 좀 특이하다. 남양주시의 하수(下水)를 처리한 물을 폭포수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재활용의 모범사례가 아닐까 싶다. 저 폭포를 보러 한해에 30만 명 이상이 찾고 있다니 광장에 있는 피아노화장실과 더불어 남양주시의 새로운 명물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특히 피아노의 건반 모양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밟고 이층으로 올라가도록 되어 있는 피아노화장실은 매우 흥미롭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들려오는 각기 다른 음(), 그 아름다운 선율은 오래토록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