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락산(道樂山, 440.8m)

 

산행일 : ‘14. 4. 19()

소재지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과 은현면, 회정동, 덕계동의 경계

산행코스 : 가래비주유소세낭골돌탑테마공원시산제 비석도락산정상지장사갈림길지장사덕계저수지회정삼거리(산행시간 : 3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함께

 

특징 : 전형적인 육산(肉山)으로 산세(山勢)가 부드럽다. 그러나 산의 규모는 인근의 산들에 비해 제법 큰 편, 때문에 산행코스를 고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코스에 따라 짧게는 3시간에서 길게는 4시간까지 주어진 시간에 따라 다양한 코스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에 의한 접근이 편리한 것은 물론 등산로 또한 완만(緩慢)하고 걷기 좋은 흙 길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가족 산행지로 권할 만 하다. 그러나 도락산의 명물(名物)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4강 진출을 이룩했던 태극 전사 20여명을 기념하는 돌탑들이다.

 

 

산행들머리는 가래비주유소(양주시 광적면 가납1)

도락산에 가려면 먼저 전철(電鐵)1호선을 이용해 양주역까지 와야만 한다. 도락산으로 들어가는 시내버스가 양주역에서 다니기 때문이다. 1번 출구를 빠져나와 도로를 건너면 시내버스승강장이다. 이곳에서 35번이나 51번 또는 133번을 타면 20분 후에는 산행이 시작되는 가래비주유소에서 내릴 수 있다. 주유소(注油所)의 이름이 특이해서 버스가 사람들로 붐빌 경우일지라도 안내 멘트(announcement)가 귀에 쏙 들어올 것이니 어디서 내릴까를 갖고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버스는 가래비 주유수의 옆에서 내리게 된다. 주유소를 오른편에 끼고 나와 사거리교차로에 있는 횡단보도(橫斷步道)를 건너면 승리교()이다. 도락산은 이 승리교를 건너서 진행하게 되므로 다리를 건너기 직전 오른편에 보이는 가래비 3.1운동 기념비를 참조하면 길 찾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승리교를 건넌 후, 신천(지방하천)을 끼고 난 도로(道路)를 따라 왼편으로 약 200m쯤 걸어가면 맞은편에 편의점(ampm)과 가납리 공용화기사격장이정표가 보인다. 도락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편의점과 이정표의 사이로 열린다. 이어서 왼편에 개울을 끼고 난 도로를 따라 얼마간 들어가면 새낭골2()가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다리를 건너면 된다. 다리 옆에 가납1리 가낭골마을표지석과 도락산 등산로라고 쓰인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새낭골 마을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벽화(壁畵)로 단장한 담들이 반겨준다. 아니 벽들뿐만이 아니다. 일반 가옥(家屋)들도 담장이 없을 경우에는 어김없이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것도 그 가옥의 생김새와 딱 어울리게 말이다. 그림은 이복규라는 화가가 그렸다는데 그 솜씨 보다는 그의 노력이 돋보였다. 이렇게 넓은 공간을 혼자서 그린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벽화를 감상하며 5분 남짓 걸으면 희망 소망 사랑 도락산 등산로라는 이름표를 단 아치(arch)형 문이 나온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구이다. 그렇다. ··(··)는 내가 신봉하다시피 하는 문구(文句)이다.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휘호(揮毫)가 안방의 정면에 붙어있을 정도이니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들머리를 출발한지 15분이 지났다.

 

 

문 안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호젓한 산길을 느긋하게 걷다가 자연체험학습장을 지나면 원뿔모양의 돌탑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2002년 월드컵의 16강을 기원하며 쌓았다는 그 돌탑들이다. 홰 하필이면 기원(祈願)하는 내용이 기껏 16강일까? 우승(優勝)을 기원해도 될 터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그 기원이 마냥 소박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당시 우리나라 축구의 눈높이는 예선을 통과, 그러니까 16강 진출을 하는 것조차도 어렵다고 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이 이운재와 김용대, 2002년 월드컵 당시에 수문장(守門將)으로 뛰었던 선수들이다. 그들을 맨 앞에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도락산을 잘 지키라는 주문일까? 아니면 수문장 역할이 가장 어렵고 힘든 위치인 것을 위로라도 하려는 것일까?

 

 

 

 

뒤를 이어 나타나는 것은 김태형, 이영표, 차두리 박항서 등의 돌탑들이다. 각각의 돌탑들 앞에는 선수의 캐리커처(caricature)와 약력(略歷)을 새겨놓은 안내판이 예쁘장하게 만들어져 있다. 내용을 읽어가다 보면 선수들 사이에 코치가 한 명 섞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박항서이다. 아마 돌탑들을 세울 때 배열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의 돌탑은 히딩크감독의 돌탑 근처에 세워졌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6명의 돌탑을 지나면 세심정, 얼핏 쉬어가는 정자(亭子)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약수(藥水)터이다. 하긴 한모금의 물로 목을 축이며 잠깐 쉬어간다면 정자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크게 흉이 될 일은 없겠다. 약수터 앞에 붙어있는 수질검사표(水質檢査標)는 적합(適合), 급하게 발길을 재촉하지 말고 한바가지 물로 피로를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주변에 널려있는 돌탑들을 찾아볼 일이다. 혹시라도 월드컵 선수단 중의 일원이 숨어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러나 주변의 돌탑들은 하나같이 이름 없는 돌탑들이었다. 테마공원 입구에서 세심정까지는 12분 거리이다.

 

 

 

세심정을 지나면 또 다시 태극전사들의 돌탑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황선홍 돌탑에 이어 ‘8인의 태극전사’(안정환 김남일 이을용 최진철 송종국 박지성 이천수 설기현)를 나타내는 8개의 돌탑들이 너럭바위 위에 무더기로 모여 있다. 이 돌탑들을 쌓은 이는 산 아래 가납리에서 농사를 짓는 김윤준씨로 알려지고 있다. 처음 돌탑 쌓기를 시작한 것은 김윤준씨와 같은 동네에 사는 10세 정도 터울의 후배들이었다고 한다. 차기 월드컵(2006년 독일)16강 진출을 기원하며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가 중단된 것을 김씨가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2006년 월드컵을 기원하다보니 지금의 히딩크 탑은 당시에는 아드보카트 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16강 진입에 실패했고 도락산 일원을 테마공원으로 조성(造成)하는 과정에서 2002 월드컵 ‘4강 주역들을 중심으로 탑 이름을 바뀌게 되었단다. 참고로 돌탑의 높이는 평균 4.70m, 둘레 4.80m 정도이며, 돌탑 하나에는 1만여 개의 돌에 무게는 6~7톤 정도로 추정된다.

 

 

 

‘8형제 탑을 지나면 길 한가운데에 로프가 매어진 돌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오늘은 부부산행인지라 시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당연히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도 없다. 연록으로 물들어가는 주변 풍경을 음미(吟味)하며 올라가는데 돌탑 하나가 무너져 있는 것이 보인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라는 속담이 있다. 그러나 공들여 쌓은 탑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무너진다.’라는 이치를 알려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탑의 원 모습을 상상해볼 수도 없을 정도로 무너져 있다. 그냥 지나치려다 간판 하나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이 보여 다가가 본다. 아뿔싸! 도대체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홍명보 탑이 무너져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하필이면 왜 홍명보란 말인가. 그는 현재 ‘2014년 브라질월드컵국가대표 팀의 사령탑(司令塔)을 맡고 있다. 그런데 그의 탑이 그것도 월드컵의 16강 진출을 기원하는 탑이 무너져 내리다니, 왠지 불길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올 브라질월드컵의 목표인 ‘8강 진출을 위해서라도 양주시청에 바래본다. 반듯한 복원(復原)이 어려울 경우에는 쓰러진 잔재(殘在)라도 깨끗이 치워주기를 말이다.

 

 

무너져 내린 홍명보탑을 지나면 히딩크 탑이 길손을 맞는다. 당시 대표팀의 감독이었던 그는 지금도 팀을 지휘라도 하고 있는 양 듬직한 모습으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히딩크 답을 끝으로 월드컵 기원 탑들의 도열은 끝을 맺는다. 그리고 곧이어 길은 두 갈래(이정표 : 팔각정(불곡산) 0.2Km/ 시산제 비석(정상 가는 길) 0.3Km/ 국군기무사령부)로 나뉜다. 이곳에서는 무조건 팔각정 쪽으로 가야만 한다. 오른쪽에 도락산 제1보루라는 고구려 유적지(遺跡地)가 있기 때문이다. 세심정에서 갈림길까지는 11분 거리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약수터, 그리고 오르막길 끄트머리에 있는 체육시설의 오른편에 도락산 1보루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보루(堡壘)란 옛 군사들이 적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전망 좋은 곳에 구축했던 작은 규모의 성벽(城壁)을 말하는데, 이곳 도락산에는 4개의 보루가 있다고 한다. ‘도락산 1보루는 보루(堡壘)라기보다는 차라리 둔덕 같은 작은 봉우리이다. 처음부터 흙으로 쌓았는지 아니면 석축(石築)으로 쌓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쌓았던 바윗돌들이 모두 유실(流失)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성벽(城壁)의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서 둔덕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보루 안내판뒤로 난 길로 들어서면 금방 봉우리 위로 올라서게 된다. 봉우리 위는 널따란 분지(盆地), 그 한쪽 귀퉁이에 팔각정(八角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까 보루 위에다 정자(亭子)를 지어 쉼터로 조성해 놓은 것이다. 이는 유적지(遺跡地)로서 보존(保存)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그 흔적이 희미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저러나 팔각정 앞에 서면 조망(眺望)이 시원스럽게 트인다. 서쪽의 광적면 일대가 잘 내려다보이고, 왼편에 숨어있는 불곡산도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갈림길에서 팔각정까지는 6분이 걸렸다.

 

 

 

 

 

팔각정에서 다시 체육공원을 되돌아 나와 체육시설 사이를 지나면 곧이어 삼거리(이정표 : 시산제 비석(정상 가는 길) 0.1Km/ 세심정 0.5Km/ 팔각정 0.2Km)가 나온다. 그런데 이정표가 좀 이상하다. 아까는 무심코 그냥 지나쳤는데 이정표에 또 다시 국군기무사령부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거리표시도 없이 말이다. 그런데 그 방향이 좀 묘하다. 아까는 기무사령부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이 세심정이었는데, 이번에는 팔각정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기무사령부가 이 근처에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간첩테러신고홍보용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이곳 삼거리에서 왼편에 보이는 길은 아까 약수터 근처에서 왼편으로 진행했을 경우 올라오게 되는 길이다. 삼거리를 지나면 금방 시산제 비석(始山祭 碑石)’이 나온다. 이 비석은 양주산악회에서 창립 10주년을 기념해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팔각정에서 시산제비석까지는 11분이 걸렸다.

 

 

 

 

시산제 비석을 출발하면 능선은 오른편 방향으로 원()을 그리듯 크게 휜다. 능선이 휘기 시작하자마자 왼편의 나뭇가지 사이로 커다란 바위 두 개가 내다보인다. ‘들어앉은 바위라고 한다. 왜 하필이면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길에서 벗어난 숲속에 숨듯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아래로 내려가 보면 거대한 바위 두 개가 나타난다. 바위들은 2개 모두 아랫돌과 윗돌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같으나, 위에 놓인 돌의 생김새는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하나는 직육면체(直六面體)인 반면 다를 하나는 마치 공처럼 둥글게 생겼다. 요즘 부척 장난이 심해진 집사람이 냉큼 바위로 달려가더니 무턱대고 밀고 본다. 그러나 그녀의 힘으로는 끄떡도 없다. 아니 역발산(力拔山)이 아닌 다음에야 어느 누가 밀더라도 어림없을 것이다.

 

 

 

 

오른편으로 휜 산길은 길게 이어진다. 중간에 대모시 갈림길’(이정표 정상가는 길(은현면) 3Km/ 대모시 1.2Km/ 시산제 비석 0.9Km)광백저수지 갈림길‘(이정표 : 도락산2보루 0.7Km, 도락산 정상 1.0Km/ 광백저수지 1.4Km, 방성리 2.9Km/ 팔각정 1.4Km, 가납리 2.4Km)을 지나는 동안 여러 번의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이 구간에서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다. 육산(肉山)의 특징대로 밋밋한 능선인지라 특별한 볼거리는 애초부터 포기해야 하고, 주변의 숲 때문에 조망(眺望)까지도 딱 막혀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변 나무들이 온통 연록(軟綠)으로 물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 ’5의 연록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했다비록 아직은 4월의 끝자락인지라 아직 꽃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데는 이정도로도 충분하다 할 것이다. 시산제비석에서 광적저수지 갈림길까지는 15분이 걸렸다.

 

 

 

▼ '광백저수지 갈림길을 지나면서 산길은 오르막길로 변한다. 그리고 곧이어 왼편 숲 사이로 채석장(採石場)이 내려다보인다. 길가는 온통 출입금지경고판 천지,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산길이 2보루에 이를 때까지 왼편에 원형철조망(圓形鐵條網)을 깔아 놓았다. 오늘은 경고판(警告板)과 인연이 있는 날인 모양이다. 산행을 시작할 때 주 등산로를 벗어나지 말라는 플래카드(placard)나 입간판 등의 군부대(軍部隊) 경고판이 수도 없이 많이 세워져 있더니, 이번에는 또 추락위험, 접근금지라는 경고판들이 부지기수로 널려있다. 마치 공원처럼 잘 가꾸어진 도락산에 이렇게 으스스한 경고판이라니 안 어울려도 참 많이 안 어울린다. 하여간 채석장의 규모(規模)는 어마어마했다. 바위를 캐고 난 웅덩이에 물이 채워져 있는데 그 크기가 웬만한 저수지(貯水池)에 못지않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채석장 풍경이 사라지면 곧이어 작은 봉우리 하나가 길을 가로막는다. ‘광적저수지 갈림길에서 21분 거리에 있는 도락산 2보루’(이정표 : 도락산 정상 0.3Km/ 도하리 1.6Km, 통신기도원 용암리방면 2.6Km/ 돌탑테마공원 2.6Km)이다. 2보루는 외곽(外廓)을 로프로 금()줄을 쳐 놓았다. 그만큼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느 정도 원형(原型)이 보존되었을까 하는 마음에 금줄을 넘어 위로 올라가본다. 역시 내 짐작대로 성곽(城郭)의 일부구간이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은 채로 보존되고 있었는데 그 높이는 2m가량 되었다. 도락산의 보루 4곳 중에서 그나마 가장 잘 남아있는 곳이 이곳이란다. 자료에 의하면 보루의 생김새는 동에서 서로 긴 형태, 정상 아래를 돌로 쌓아올린 성벽은 전체 둘레가 대략 170m 정도 된단다.

 

 

 

4보루는 2보루의 바로 옆에 있다. 2보루 보다 봉우리가 크지 않기 때문에 마치 2보루의 부속물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북쪽 성벽(城壁)은 사라졌고, 나머지 성벽은 여타 보루와 같이 허술하게 남아있는데, 성벽의 형태는 네모반듯하게 돌로 쌓여있다. 자료에 의하면 전체 둘레가 64m, 높이는 1m 내외란다.

 

 

 

3보루(이정표 : 까치봉 1.7Km/ 돌탑테마공원 3.0Km)4보루에서 300m 정도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헬기장이 있는 넓은 평탄지(平坦地) 위에 있다. 자료에 의하면 작은 봉우리를 감싼 3보루의 전체둘레는 20m, 성벽 높이는 3m정도라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곳이 사실은 도락산의 정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은 보호해야할 문화재(文化財)인 제3 보루가 있기 때문에 정상표지석을 다른 곳에 세워 놓았다는 것이다. 무인산불감시탑이 세워진 3보루 위에 오르면 남쪽에는 양주의 명산인 불곡산이 울퉁불퉁한 근육질을 자랑하고 있고, 그 뒤에는 서울시민들로부터 듬뿍 사랑을 받고 있는 도봉산과 북한산의 능선이 펼쳐진다.

 

 

 

 

3보루에서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된다. 정상의 꼭대기에서는 시야(視野)가 트이지 않기 때문에 조망(眺望)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산길이 또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길은 정상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청업굴고개(?)로 내려가는 하산길이다. 정상석이 있는 봉우리로 가려면 3보루를 내려서자마자 왼편으로 난 산길을 따라야 한다. 그러면 잠시 후에 아까 헬기장에서 넘어오는 길과 만나게 되고,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3보루에서 정상석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다 보면 오른편에 시멘트로 지어진 커다란 구축물(構築物)이 보인다. 비록 지금은 텅 비어있지만 군인들이 진지(陣地)로 사용했음이 분명하다. 1,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같은 장소가 군사요충지(軍事要衝地)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곳 도락산이 그만큼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3보루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길이다. 이는 정상이 3보루보다 더 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실제 정상이 3보루임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잠깐 내려가다 안부에서 앞에 보이는 나지막한 봉우리 위로 오르면 의자가 놓여있는 쉼터이다. 이곳이l 바로 공식적인 정상(이정표 : 옥천약수터 3.0Km, 리치마트 앞 3.7Km/ 까치봉 1.5Km, 덕계고등학교 4.1Km/ 돌탑테마공원 3.2Km)으로 우람한 정상표지석이 늠름하게 버티고 서있다. 문화재(文化財)에 밀려 제 자리를 빼앗긴 줄도 모르고 말이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북동쪽 발아래에는 울창한 숲속에 들어앉은 덕계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에는 칠봉산과 천보산의 능선이 펼쳐진다. 2보루에서 정상까지는 18,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가까이 지났다. 도락산에는 이름에 얽힌 재미난 얘기 하나가 전해진다. ‘송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예을 표하는 것 같다고 해서 고려시대에 충신(忠臣)의 산으로 불리던 도락산이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한양을 배반하는 형상이라고 해서 조정에서 이 산의 머리(山頭)를 치게 했다는 것이다. 이에 머리가 떨어진 산이라 해서 두락산(頭落山)이 되었고, 이후 이름이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도락산(道落山)으로 고쳤다 한다. 그러나 실제 도락산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정상에 있는 바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돌의 산이라는 뜻의 돌산이 한자로 표현되면서 돌악돌악산도락산으로 변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도랍산, 두락산, 노락산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었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18세기 해동지도(1760)에 돌압산(突壓山)으로 표기된 이 산은 신편조전지지(1924)에서부터 도락산(道落山)으로 고쳐 소개되고 있다.

 

 

 

 

정상에서 작은 고민이 시작된다. 과연 어디로 하산 길을 잡아야 후회가 없을지가 하신코스를 결정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고민 끝에 리치마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쪽으로 가야 내가 들러보고 싶은 지장사가 나오기 때문이다. 리치마트로 향하는 능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맞은 편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에게 지장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의 위치를 물어보는 것은 선답자(先踏者)들의 산행 후기(後記)에 갈림길을 찾기가 어렵다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올라오던 사람들이 말한 대로 지장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에는 그럴 듯한 이정표(지장사 800m)가 세워져 있었던 것이다. 정상을 출발해서 11분 정도가 지나면 지장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날 수 있다.

 

 

 

지장사로 내려가는 길은 의외로 또렷하지만 그러나 경사(傾斜)는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내려가는 길이 고약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얼마 가지 않아 끝이 나고 이어지는 산길은 포근한 흙길이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길 중간에 옹달샘 갈림길’(이정표 : 지장사 0.1Km/ 덕계저수지 1.2Km/ 옹달샘 쉼터 0.5Km/ 도락산 정상 `1.3Km)을 지나면 지장사에 이르게 된다. 정상에서 지장사까지는 27분이 걸렸다.

 

 

 

지장사(地藏寺)에 들어서면 요상하게 생긴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벽면은 하얀 화강암, 그리고 반구형(半球形)의 돔(dome)형태로 된 지붕은 황금색(黃金色)으로 빛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로서 그 이름이 반야보탑(般若寶塔)이라고 한다. 반야(般若)는 밝음과 지혜를 의미하는 것으로 최상의 지혜를 말한다. 여기에 보배스러운 탑()이란 뜻을 합하여 반야보탑(般若寶塔)이라 명명했다는 것이다. 높이가 27m에 달하는 전각(殿閣)이라니, 참 대단하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은 저 황금색 돔에다 300냥의 황금을 녹여 붙였다는 점이다. 아깝다. 아니 욕심이 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참고로 반야보탑은 인도중부 마디아프라데시주에 있는 산치대탑에서 모티브(motive)를 따왔다고 한다. 지장사의 창립자인 대운스님이 인도 성지순례를 하면서 아쇼카왕이 쌓았다는 산치대탑을 보고 영감을 얻은 모양이다. 이 사찰에는 대탑 외에도 모든 법회를 이끌어가는 지장전(地裝殿)과 삼성각 등이 있고, 요사채는 현재 짓고 있는 중이었다.

 

 

 

 

사찰(寺刹)을 빠져나오면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게 된다. 지장사를 벗어나서 10분 남짓 걸어내려오면 왼편에 산장가든(이정표 : 덕계저수지 0.2Km, 덕계공원 사거리 2.8Km/ 까치봉 0.8Km, 도락산 정상 1.7Km/ 지장사 0.9Km)이 보인다. 산장가든 옆으로 난 산길을 따를 경우 향로봉을 거쳐 도락산 정상으로 올라가게 된다. 산장가든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그러니까 지장사에서 15분쯤 되는 거리에 덕계저수지가 있다.

 

 

 

 

덕계저수지에서 등산로는 도로를 벗어나(이정표 : 덕계고등학교 2.2Km. 덕계공원 사거리 2.6Km/ 지장사 1.1Km) 저수지의 왼편 산자락으로 접어든다. 이정표에 김삿갓 풍류길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면 아마 양주시에서 조성한 둘레길인 모양이다. 저수지 위로 난 산길은 쉼터와 전망대를 두루 갖추고 있어 제법 길게 이어지지만 조금도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멋진 길이다. 길가에는 심심찮게 의자를 설치에 놓았고, 전망이 좋은 곳에는 쉼터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또 하나 누군가가 쌓아 놓은 돌탑들이 심심찮게 나타나는데, 그 탑들이 참으로 묘하다. 바람만 살짝 불어도 금방 쓰러져버릴 것 같은데도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다.

 

 

 

 

저수지의 끄트머리가 나올 즈음에 산길은 산등성이 위로 다시 올라간다. 잣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산길을 따라 잠시 오르면 능선삼거리(이정표 : 덕계고등하교 1.1Km, 덕계공원 사거리 1.5Km/ 까치봉 1.5Km, 도락산 정상 3.2Km/ 덕계저수지 0.2Km)에 이르게 된다. 덕계저수지 이정표에서 이곳까지는 23분이 걸렸다. 이곳 삼거리에서 덕계고등학교 방향으로 100m만 내려오면 또 다시 길이 두 갈래(이정표 : 회정삼거리 1.0Km/ 덕계고등학교 1.0Km, 덕계공원 사거리 1.4Km/ 덕계저수지 0.3Km, 까치봉 1.6Km)로 나뉜다.

 

 

 

 

 

산행날머리는 회정삼거리 버스정류장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회정삼거리 쪽으로 내려선다. 아무래도 대중교통 이용이 편할 것 같아서이다. 능선에서 잠깐 내려서면 산길은 시멘트포장 임도로 바뀌고 이어서 밀양박씨 제각(祭閣)을 지나서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얼마간 내려오면 3번 국도의 도로변에 있는 V-Plus라는 쇼핑몰이 나오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능선삼거리에서 이곳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렸다.

 

 

에필로그(epilogue)

도락산은 한마디로 잘 가꾸어진 공원(公園)이라는 느낌이 드는 산이다. 반듯하게 쌓아진 테마(thema)가 있는 돌탑(石塔), 그리고 잘 정비된 등산로와 이정표들, 거기다 곳곳에 피어나는 야생화들이라니 이건 숫제 공원인 것이다. 그것도 심혈을 들여 가꾼. 이 모든 것은 행정관청(行政官廳)이 아닌 인근 주민(住民)들이 직접 만들고 가꾸어 왔단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니나 다를까 그런 정성은 행정안전부(行政安全部)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행정안전부가 전국 각 지자체를 통해 추진하고 있는 ‘2009 참살기 좋은 마을가꾸기 전국 콘테스트(contest)’에서 주민참여형 우수사례로 뽑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