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래봉 (寶來峰 1324m)
위치 :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과 홍천군 내면의 경계
산행코스 : 운두령-보래령-보래봉-연지리(산행시간 : 점심시간 포함 4시간)
산행일 : '09. 9. 12(토)
함께한 산악회 : 함께하는 등산클럽
⇩ 산행 들머리는 운두령
홍천군 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의 경계로 한강기맥이 지나간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계방산과 오대산을 지나 백두대간의 두로봉과 만난다. 우리가 가려는 왼편으로 진행하면, 보래봉과, 용문산, 유명산을 지나 산릉이 강물에 코를 박는 양수리에 도달한다.
< 한강기맥(漢江岐脈) >
북한강과 남한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줄기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漢中기맥 혹은 兩水기맥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대산의 두로봉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오대산의 비로봉과 호령봉, 계방산, 보래봉, 흥정산, 용문산, 유명산 청계산을 지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에서 마감을 하는 산맥이다. 두로봉에서 양수리까지의 거리는 160Km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중부를 가로지르는 한강기맥은 백두대간 못지않게 명산을 많이 품고 있으며, 영동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고 있어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에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다.)
⇩ 오늘 산행은 처음과 끝이 모두 보드라운 육산이다. 또한, 하늘을 볼 수 없을 만큼 숲이 우거진 원시림이다. 없는 조망을 찾아 눈을 번뜩이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늘 속을 타박타박 걸으며 조용히 사색에 잠겨보는 것이 어울리는 산이다.
⇩ 원시의 숲에는 쓰러진 나무에도 이렇게 고운 이끼가 돋아난다. 이런 곳에는 산나물들이 많은 법인데... 곰취, 참취, 단풍취에 참나물 등등...
⇩ 아니나 다를까 주변은 산나물 천국이다. 산나물의 왕이라는 곰취는, 숲으로 조금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귀물... 조금 뻐세도 뜨거운 물에 대치면 먹을 만 하다는 일행의 제언에, 눈에 광채를 띠는 집사람... 덕분에 난 수도 없이 숲속을 드나들어야만 했다. ^^-*
⇩ 조금만 눈을 돌려도 눈에 띠는 참나물... 가을의 초입에서 꽃망울을 열고 있다.
⇩ 오늘 걷는 능선의 특징은 우선 조망이 없다는 것이다
운두령에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무명봉에서 한번 시야를 열어주고는 산행내내 조망을 닫아버린다. 겨울철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간혹 조망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막바지를 달리고 있는 여름철... 우거진 숲 탓으로 몇 번의 봉우리에서만 하늘을 볼 수 있을 뿐 걸을 때는 마치 숲에 갇힌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 보래봉은 넒은 품을 갖고 있지만, 산행내내 하늘을 볼수 없을만큼 울창한 원시림과 숲으로 이루어진 오지의 산이다. 특이한 산세 또한 맛볼 수 없는 밋밋한 육산... 나름 걷기 좋고, 생각하기 좋은 산으로 소개 하고 싶다
⇩ 자랑할만한 경관도, 수려한 산세도 지니지 못한 보래봉은, 첩첩 산중의 산으로 남아 수 백년을 원시의 숲과 함께해왔다. 그 한켠을 들짐승과 날짐승에게 내주면서... 앞으로도 내내 그런 산으로 남기를 바래본다.
⇩ 여기는 1200m가 넘는 高山, 간혹 계절의 흐름을 일찌감치 알아챈 단풍들을 만날 수 있다. 인적을 찾기 어려운 이 능선에서는 낙엽이 친구다. 신갈나무와 굴참나무가 만들어낸 빛나는 낙엽산행이다. 사그락∼ 사그락∼ 낙엽 위를 걷다 보면 어느새 능선에 쌓인 낙엽들이 내 발걸음의 음률을 따라 같이 울어댄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 거기에 思索 한점 가만히 올려본다.
⇩ 산행중에 만난 이름모를 들꽃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山河, 내 아이와 내 아이의 아이, 또 그 아이의 아이가 아름다운 산하를 벗삼아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만이라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 운두령에서 2시간만에 옛날평창사람들과 홍천내면 사람들이 넘나들던 옛길, 보래령을 통과한다. 약 300m 정도의 고도를 갑자기 낮추다 보니, 등산로는 급하게 내리막을 향해 달리게 된다. 보래령 사거리는 평창군 봉평면 덕거리 보래동 마을과 홍천군에서 가장 지대가 높다는 내면의 자운리 청계동 마을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갯길이다. 지금은 아래쪽에 터널이 뚫려 넘나들 일이 없어졌다.
⇩ 보래령부터 寶來峰까지는 약 1.2Km의 구간에서 400m 정도의 고도를 높여야 한다. 40여분 동안 조릿대 사이로 이어지는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야만 한다. 정상은 정상표지석 대신 이정표 하나만이 외롭게 서있는 가난한 봉우리이다. 물흐르듯 흐르는 땀은 흘러흘러 드디어 팬티까지 젖어버린다. 그러나 원시의 숲을 걸으며 흘리는 땀은, 세속에 찌들어온 찌꺼기를 모두 내보내는 듯하여, 나름대로 뭔가 의미를 줄 수 있는 산행을 만들어 낸다.
⇩ 보래봉은 나무들이 삼중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맨 위는 하늘을 가리는 참나무 숲, 그 아래로 사람의 키를 조금 넘는 철쭉나무 숲이 또 한번 하늘의 빈 여백을 가리고, 그 아래 무릎어림에 닿을 정도의 조릿대가 밀집해 있다.
⇩ 우거진 조릿대는 조금만 속도를 내도 아랫도리를 휘감아 온다. 귀찮을 정도... 그러나 그 조릿대도 하산길 심한 경사에서는 부여잡을 수 있게 해 주는 고마운 나무로 변한다. 이런 것을 보고 ‘塞翁之馬?’
⇩ 보래봉 정상
정상은 20평 규모의 편편한 곳에 삼각점이 박혀있고 삼각점 우측에 용수골2.4km, 우측 보래령1.2km, 정상 이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주변의 나무들 때문에 조망은 없다. 눈짐작으로 방향을 잡아보고 산을 그 방향에 놓인 산들을 떠올려 본다. 동북방향으로는 운두령과 계방산이, 남쪽으로는 금당산과 청태산, 대미산 있다. 남서쪽에는 태기산...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더 이상 진행이 어려워 회령봉을 포기하고 곧바로 하산길로 접어든다.
⇩ 등산로 주변엔 한강기맥을 종주하는 등산객들이 남기고 간 각양각색의 리본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겨울철 산행에는 리본은 등대와 같은 존재다. 눈이 쌓이면 등산로는 눈 속으로 숨어버리기 때문에, 리본을 보고 등산로를 짐작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하면, 흙길이 없어지고 작은 바위길과 산죽길이 나온다. 커다란 노송들이 보이고 약간은 험한 암릉길이 조심스럽다.
⇩ 어둠 짙은 숲 사이로 한줄기 햇살이 스며든다. 그러나 나뭇잎을 두들기는 소나기 소리... 오늘 보래봉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인가 보다. 나뭇잎 따라 내리는 빗줄기에 바람소리 슬며시 포개며 내려온다.
⇩ 오늘 걷는 능선은 대부분 참나무 숲, 하늘을 뒤 덮은 나무들로 인해 주위는 사뭇 저녁나절 같은 어스름이 깔려있다. 그러다 하산지점이 가까워지면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경사가 심한 사면에 가득찬 잣나무들을 볼 수 있다.
⇩ 시원하다 못해 으스스한 한기까지 느끼게 만드는 원시의 숲을 내려서면 개울을 만난다. 수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산행 중 흘린 땀을 씻기에는 충분하다.
⇩ 산행날머리는 아직 보래령 터널공사가 진행중이다. 500m쯤 내려가면 문설주 비슷한 게 서 있는 것이, 보통 때는 차량의 진입을 막는가 보다. 조금 아래의 연지기 마을은, 노선버스 종점인 덕거리 보래동에서 다시 1.5Km를 더 들어간 곳에 있다. 봉평면 소재지에서는 7Km정도 거리...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외딴집 몇 채가 있는 한적한 곳이다.
⇩ 귀경길에 들른 봉평 메밀꽃 축제장
메밀꽃 밭을 가려면 섶다리를 건너야 한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다리는 출렁출렁... 발바닥을 따라 전해 오는 부드러운 촉감이 황토흙 만큼이나 곱다. 돌 징검다리도 재현해 놓았는데 사람들로 붐벼서 걷기조차 힘겨운데, 시간에 쫒기는 내 마음은 조급하기만 하다.
⇩ 봉평의 메밀꽃 축제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섶다리, 소나무향이 가득한 이 다리를 건너 메밀꽃을 보러 갈 수 있다.
⇩ 섶다리를 건너면 메밀밭이 마중 나온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요런 글을 읽고 그렇게 가슴 설레었건만, 막상 도착한 메밀밭은 철지난 메밀꽃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 메밀꽃밭 중간중간엔 원두막이 보초를 서고 있다. 거기서 봉숭아 물을 들여주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원두막과 메밀꽃밭을 한꺼번에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저 새하얀 꽃들이 향기까지 품었으면 다홍치마 이련만, 향기는 없는지 코끝에 이는 바람은 맑기만 하다. 그러나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꿀벌들을 보면 꽃이 꿀은 품고 있는 모양... 향기없는 꿀도 있으려나?
⇩ 하얀 메밀꽃의 물결은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 만든다. 그 유혹에 밀려 찾아간 봉평, 축제장 입구에 들어서자 새하얀 메밀 꽃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무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치 하얀 소금을 뿌려 놓은 것처럼 마을 전체가 하얀 메밀꽃으로 가득하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약간 철지난 꽃밭에서 다른이들의 표현을 그려본다.
⇩ 한송이 한송이 피는 꽃보다 군락으로 피어나는 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봄의 매화, 산수유, 벚꽃을 시작으로... 가을은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장식하고 있다. 꽃무릇에 국화까지 피어나면 어느덧 세 개의 계절을 지나가 버리고, 이젠 겨울을 맞이해야할 차례... 겨울엔 또 흰색 눈꽃이 있으니 이 아니 아름다울손가. ,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 아름다운 나라...
⇩ 메밀꽃이 눈에 익숙해질 즈음, 코스모스꽃이 곱게 핀 길을 따라 물레방아간으로 걷어본다.
가을의 전령이라는 코스모스가 무척 곱다. 가을의 시작이라 그런지 하늘이 맑다. 점점이 흘러가는 구름까지도 맑게 보이는 걸 보면, 가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나 보다. 손을 담그면 물이 들어버릴 것 같은 푸른 하늘에 점점이 떠도는 솜사탕 구름....
⇩ 허생원과 성씨처녀가 밀애를 즐기던 물레방앗간...
메밀꽃 핀 여름밤 목욕하러 갔다가 물레방아간에서 만난 성서방네 처녀와 거시기를 한 과거를 가진 장똘뱅이 허생원이, 동행인 장똘뱅이 동이가 그날 밤 만들어낸 자기 자식이란 걸 알아내가는 내용의 소설이 ‘메밀꽃 필 무렵’이다. 아무튼, 걸출한 인물 한명을 배출하면 그 고장에 사는 여러사람의 뱃속이 뜨뜻해진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게 없다. ^^-*
⇩ ‘봉평 5일장’ 장터 인근에는 민속무용 공연이 한창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가산 이효석의 글은 토속적인 동시에 시적이다. 행사장 한켠에는 실제 나귀가 끄는 마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잠깐 짬을 내어 전병과 부침개를 안주삼아 소주 한잔... 오늘따라 술맛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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