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래봉 (寶來峰 1324m)


위치 :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과 홍천군 내면의 경계


산행코스 : 운두령-보래령-보래봉-연지리(산행시간 : 점심시간 포함 4시간)

산행일 :  '09. 9. 12(토)

함께한 산악회 : 함께하는 등산클럽


특징 : 차령산맥의 한 봉우리로, 보래령(1,090m), 회령봉(1,309m) 등과 능선이 연결되어 있다. 이곳 봉평면은 ‘메밀 꽃 필무렵’의 무대로서, 지대가 높고 추운 기후 탓에 적설량이 풍부하여 겨울산행지로 적합하다. 

 


산행 들머리는 운두령

홍천군 내면과 평창군 봉평면의 경계로 한강기맥이 지나간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계방산과 오대산을 지나 백두대간의 두로봉과 만난다. 우리가 가려는 왼편으로 진행하면, 보래봉과, 용문산, 유명산을 지나 산릉이 강물에 코를 박는 양수리에 도달한다. 

 

< 한강기맥(漢江岐脈) >

북한강과 남한강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줄기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漢中기맥 혹은 兩水기맥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대산의 두로봉에서 백두대간으로부터 갈라져 나와 오대산의 비로봉과 호령봉, 계방산, 보래봉, 흥정산, 용문산, 유명산 청계산을 지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에서 마감을 하는 산맥이다. 두로봉에서 양수리까지의 거리는 160Km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중부를 가로지르는 한강기맥은 백두대간 못지않게 명산을 많이 품고 있으며, 영동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고 있어 접근이 용이하기 때문에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다.)   

  

 

 

오늘 산행은 처음과 끝이 모두 보드라운 육산이다. 또한, 하늘을 볼 수 없을 만큼 숲이 우거진 원시림이다. 없는 조망을 찾아 눈을 번뜩이는 것 보다는, 차라리 그늘 속을 타박타박 걸으며 조용히 사색에 잠겨보는 것이 어울리는 산이다.

 

 

원시의 숲에는 쓰러진 나무에도 이렇게 고운 이끼가 돋아난다. 이런 곳에는 산나물들이 많은 법인데... 곰취, 참취, 단풍취에 참나물 등등...

 

 

아니나 다를까 주변은 산나물 천국이다. 산나물의 왕이라는 곰취는, 숲으로 조금 들어가야 찾을 수 있는 귀물... 조금 뻐세도 뜨거운 물에 대치면 먹을 만 하다는 일행의 제언에, 눈에 광채를 띠는 집사람... 덕분에 난 수도 없이 숲속을 드나들어야만 했다. ^^-* 

 

 

 

조금만 눈을 돌려도 눈에 띠는 참나물... 가을의 초입에서 꽃망울을 열고 있다.

 

 

오늘 걷는 능선의 특징은 우선 조망이 없다는 것이다

운두령에서 2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무명봉에서 한번 시야를 열어주고는 산행내내 조망을 닫아버린다. 겨울철에는 나뭇가지 사이로 간혹 조망이 보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막바지를 달리고 있는 여름철... 우거진 숲 탓으로 몇 번의 봉우리에서만 하늘을 볼 수 있을 뿐 걸을 때는 마치 숲에 갇힌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보래봉은 넒은 품을 갖고 있지만, 산행내내 하늘을 볼수 없을만큼 울창한 원시림과 숲으로 이루어진 오지의 산이다. 특이한 산세 또한 맛볼 수 없는 밋밋한 육산... 나름 걷기 좋고, 생각하기 좋은 산으로 소개 하고 싶다  

 

 

자랑할만한 경관도, 수려한 산세도 지니지 못한 보래봉은, 첩첩 산중의 산으로 남아 수 백년을 원시의 숲과 함께해왔다. 그 한켠을 들짐승과 날짐승에게 내주면서... 앞으로도 내내 그런 산으로 남기를 바래본다.   

 

 

여기는 1200m가 넘는 高山, 간혹 계절의 흐름을 일찌감치 알아챈 단풍들을 만날 수 있다. 인적을 찾기 어려운 이 능선에서는 낙엽이 친구다. 신갈나무와 굴참나무가 만들어낸 빛나는 낙엽산행이다.  사그락∼ 사그락∼ 낙엽 위를 걷다 보면 어느새 능선에 쌓인 낙엽들이 내 발걸음의 음률을 따라 같이 울어댄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 거기에 思索 한점 가만히 올려본다.

 

 

산행중에 만난 이름모를 들꽃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아름다운 山河, 내 아이와 내 아이의 아이, 또 그 아이의 아이가 아름다운 산하를 벗삼아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만이라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

 

 

운두령에서 2시간만에 옛날평창사람들과 홍천내면 사람들이 넘나들던 옛길, 보래령을 통과한다. 약 300m 정도의 고도를 갑자기 낮추다 보니, 등산로는 급하게 내리막을 향해 달리게 된다.   보래령 사거리는 평창군 봉평면 덕거리 보래동 마을과 홍천군에서 가장 지대가 높다는 내면의 자운리 청계동 마을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갯길이다. 지금은 아래쪽에 터널이 뚫려 넘나들 일이 없어졌다.

 

 

보래령부터 寶來峰까지는 약 1.2Km의 구간에서 400m 정도의 고도를 높여야 한다. 40여분 동안 조릿대 사이로 이어지는 오르막을 힘들게 올라야만 한다. 정상은 정상표지석 대신 이정표 하나만이 외롭게 서있는 가난한 봉우리이다.   물흐르듯 흐르는 땀은 흘러흘러 드디어 팬티까지 젖어버린다. 그러나 원시의 숲을 걸으며 흘리는 땀은, 세속에 찌들어온 찌꺼기를 모두 내보내는 듯하여, 나름대로 뭔가 의미를 줄 수 있는 산행을 만들어 낸다.

 

 

보래봉은 나무들이 삼중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맨 위는 하늘을 가리는 참나무 숲, 그 아래로 사람의 키를 조금 넘는 철쭉나무 숲이 또 한번 하늘의 빈 여백을 가리고, 그 아래 무릎어림에 닿을 정도의 조릿대가 밀집해 있다.

 

 

우거진 조릿대는 조금만 속도를 내도 아랫도리를 휘감아 온다. 귀찮을 정도... 그러나 그 조릿대도 하산길 심한 경사에서는 부여잡을 수 있게 해 주는 고마운 나무로 변한다. 이런 것을 보고 ‘塞翁之馬?’  

 

 

 

보래봉 정상

정상은 20평 규모의 편편한 곳에 삼각점이 박혀있고 삼각점 우측에 용수골2.4km, 우측 보래령1.2km, 정상 이란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주변의 나무들 때문에 조망은 없다. 눈짐작으로 방향을 잡아보고 산을 그 방향에 놓인 산들을 떠올려 본다. 동북방향으로는 운두령과 계방산이, 남쪽으로는 금당산과 청태산, 대미산 있다. 남서쪽에는 태기산...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 더 이상 진행이 어려워 회령봉을 포기하고 곧바로 하산길로 접어든다.  

 

 

등산로 주변엔 한강기맥을 종주하는 등산객들이 남기고 간 각양각색의 리본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겨울철 산행에는 리본은 등대와 같은 존재다. 눈이 쌓이면 등산로는 눈 속으로 숨어버리기 때문에, 리본을 보고 등산로를 짐작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하면, 흙길이 없어지고 작은 바위길과 산죽길이 나온다. 커다란 노송들이 보이고 약간은 험한 암릉길이 조심스럽다.  

 

 

어둠 짙은 숲 사이로 한줄기 햇살이 스며든다. 그러나 나뭇잎을 두들기는 소나기 소리... 오늘 보래봉 호랑이가 장가가는 날인가 보다. 나뭇잎 따라 내리는 빗줄기에 바람소리 슬며시 포개며 내려온다.  

 

 

 

오늘 걷는 능선은 대부분 참나무 숲, 하늘을 뒤 덮은 나무들로 인해 주위는 사뭇 저녁나절 같은 어스름이 깔려있다. 그러다 하산지점이 가까워지면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경사가 심한 사면에 가득찬 잣나무들을 볼 수 있다.  

 

 

 

시원하다 못해 으스스한 한기까지 느끼게 만드는 원시의 숲을 내려서면 개울을 만난다. 수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산행 중 흘린 땀을 씻기에는 충분하다.  

 

 

산행날머리는 아직 보래령 터널공사가 진행중이다. 500m쯤 내려가면 문설주 비슷한 게 서 있는 것이, 보통 때는 차량의 진입을 막는가 보다. 조금 아래의 연지기 마을은, 노선버스 종점인 덕거리 보래동에서 다시 1.5Km를 더 들어간 곳에 있다.  봉평면 소재지에서는 7Km정도 거리...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외딴집 몇 채가 있는 한적한 곳이다.

 

 

귀경길에 들른 봉평 메밀꽃 축제장

메밀꽃 밭을 가려면 섶다리를 건너야 한다. 진흙으로 만들어진 다리는 출렁출렁... 발바닥을 따라 전해 오는 부드러운 촉감이 황토흙 만큼이나 곱다. 돌 징검다리도 재현해 놓았는데 사람들로 붐벼서 걷기조차 힘겨운데, 시간에 쫒기는 내 마음은 조급하기만 하다.

   

  

 

봉평의 메밀꽃 축제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섶다리, 소나무향이 가득한 이 다리를 건너 메밀꽃을 보러 갈 수 있다.  

 

 

섶다리를 건너면 메밀밭이 마중 나온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요런 글을 읽고 그렇게 가슴 설레었건만, 막상 도착한 메밀밭은 철지난 메밀꽃이 생기를 잃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메밀꽃밭 중간중간엔 원두막이 보초를 서고 있다. 거기서 봉숭아 물을 들여주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원두막과 메밀꽃밭을 한꺼번에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저 새하얀 꽃들이 향기까지 품었으면 다홍치마 이련만, 향기는 없는지 코끝에 이는 바람은 맑기만 하다. 그러나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꿀벌들을 보면 꽃이 꿀은 품고 있는 모양... 향기없는 꿀도 있으려나?

 

 

하얀 메밀꽃의 물결은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 만든다. 그 유혹에 밀려 찾아간 봉평, 축제장 입구에 들어서자 새하얀 메밀 꽃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실제무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치 하얀 소금을 뿌려 놓은 것처럼 마을 전체가 하얀 메밀꽃으로 가득하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약간 철지난 꽃밭에서 다른이들의 표현을 그려본다.

 

 

 

한송이 한송이 피는 꽃보다 군락으로 피어나는 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봄의 매화, 산수유, 벚꽃을 시작으로... 가을은 코스모스와 메밀꽃이 장식하고 있다. 꽃무릇에 국화까지 피어나면 어느덧 세 개의 계절을 지나가 버리고, 이젠 겨울을 맞이해야할 차례... 겨울엔 또 흰색 눈꽃이 있으니 이 아니 아름다울손가. ,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 아름다운 나라...    

 

 

  

메밀꽃이 눈에 익숙해질 즈음, 코스모스꽃이 곱게 핀 길을 따라 물레방아간으로 걷어본다.

가을의 전령이라는 코스모스가 무척 곱다. 가을의 시작이라 그런지 하늘이 맑다. 점점이 흘러가는 구름까지도 맑게 보이는 걸 보면, 가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었나 보다. 손을 담그면 물이 들어버릴 것 같은 푸른 하늘에 점점이 떠도는 솜사탕 구름....

 

 

허생원과 성씨처녀가 밀애를 즐기던 물레방앗간...

메밀꽃 핀 여름밤 목욕하러 갔다가 물레방아간에서 만난 성서방네 처녀와 거시기를 한 과거를 가진 장똘뱅이 허생원이, 동행인 장똘뱅이 동이가 그날 밤 만들어낸 자기 자식이란 걸 알아내가는 내용의 소설이 ‘메밀꽃 필  무렵’이다. 아무튼, 걸출한 인물 한명을 배출하면 그 고장에 사는 여러사람의 뱃속이 뜨뜻해진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게 없다. ^^-*

 

 

‘봉평 5일장’ 장터 인근에는 민속무용 공연이 한창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가산 이효석의 글은 토속적인 동시에 시적이다. 행사장 한켠에는 실제 나귀가 끄는 마차가 움직이고 있었다. 잠깐 짬을 내어 전병과 부침개를 안주삼아 소주 한잔... 오늘따라 술맛은 쓰다.

 

 

조봉 (1,182m)


산행코스 : 황이교→휴양림 사무소→미천골→제2 야영장→남서지능→정상→미천골정→미천골→황이교로 원점회귀(산행시간 : 5시간20분)


소재지 : 강원 양양군 서면

산행일 : '09. 8. 29(토요일)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조봉을 가기위해서는 필히 거쳐야만 하는 미천골을 끼고, 자연휴양림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승용차(버스는 불가) 이용이 가능하다. 황이교에서 야영장까지는 6Km, 미천골정까지는 7Km, 만일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왕복 13Km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조봉 등산은 가히 지옥의 코스로 변해버리고 만다. 시멘트포장도로를 걷는 것은 무릎에 많은 부담을 주기 때문... 

 

 

 

산행 들머리는 황이교

56번 국도를 따라 양양방면으로 진행하다가 구룡령 넘어 미천골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황이교 방향으로 들어선다. 버스는 진입이 불가... 그렇다고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야영장입구까지 걸어서 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머니까 주의...(인근 에서 승합차 등을 빌릴 수 있음)   

 

 

산행은 미천골을 따라가며 시작된다 

응복산(1360m) 북쪽 자락의 원시림을 파고들어 오르는 계곡, 사람의 발길이 적어 산천어 등 희귀어가 살고 원시림이 무성하다. 특히 ‘불바라기 약수터’가 유명하다.  미천골엔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물메기와 산천어가 헤엄치고 있단다. 그래서일까? 미천골 곳곳에는 낚시를 금지한다는 푯말이 붙어있었다

 

 

미천골은 길고 긴 비포장 임도(林道)를 그대로 둔 채(사이사이 시멘트로 포장된 구간도 제법 된다) 산막과 통나무집을 앉혀 놓아 휴양림의 자연미만으로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다.

야영장으로 오르는 호젓한 길을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계곡을 휘감아 돌다가, 암반위에서 뛰어내리는 물살의 비명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절로 박자를 맞추고 있다.

 

 

미천골은 그 자체가 자연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훼손되지 않은 청정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단다. 미천골계곡의 양 쪽으로는 다양한 수종의 천연활엽수림이 우거져 있어 손 때 묻지 않은 청정 산림휴양을 만끽할 수 있다. 

 

 

 

선림원지

옛날 큰 절에서 밥을 짓기 위해 쌀 씻은 물이 계곡으로 하얗게 흘러내려 미천골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계곡 입구에 1000년 더 지난 세월 저편에서 당대의 수도승이 모이던 도량이었다는 선림원지가 있다.

장대한 석축 위에 있는 약3,000평의 절터에 4점의 보물(제444호~447호인 ‘3층 석탑’, ‘석등’, ‘홍각선사탑비’, ‘부도’)이 자리잡고 있다. 선림원은 804년경에 창건되었으며, 그 후 홍각선사가 선림원에 살았던 때 또는 그가 열반한 직후에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1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대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말미암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선림원은 현재의 보물 4점보다 1948년에 출토된바 있는 ‘정원 20년(804) 명문’이 있는 신라 범종이 더 유명하다. 이 종은 상원사 범종, 에밀레종과 함께 통일신라 범종을 대표하는 기념비적 유물이다. 월정사에 옮겨 보관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 현재는 일부 파편만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사납게 흐르던 물은 소를 만나자 점잖아진다. 그리고 그 울음 또한 맑고 청아한 소리로 변하며 멈추듯 살며시 흘러간다. 그 흐름은 어느 것 하나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고, 어긋나지도 않는다.  미천골은 울창한 숲과 맑은 물, 기암괴석, 야생 동식물 등 자연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활엽수 등의 천연림 및 작은 폭포가 어우러진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

 

 

숲이 거느린 짙은 계곡 안쪽에는 촉촉한 이끼 사이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쏟아지는 서늘한 폭포가 곳곳에 숨어 있다. 온몸에 차갑고 맑은 초록빛이 천천히 차오른다. 귓바퀴 맴도는 찰랑거리는 소리...  

 

 

매끈하면서도 널찍한 암반을 타고 비단결 같은 옥수가 흘러내리고 있다. 깊은 산 깊은 골은 신비감이 넘친다.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골짜기는 크고 작은 소와 담·폭포가 연이어지고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풍광의 골짜기가 반겨준다.

 

 

제2 야영장에서 좌측 계곡을 따라 오르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본격적인 산행은 계곡과 함께, 계곡은 작으나 절경의 연속이다. 희미한 등산로 곁으로 크고 작은 폭포의 연속... 눈을 깜빡일 때마다 다른 풍광이 나타나 눈을 붙잡고,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비경이 발목을 꽉 붙잡는다. 그렇지만 넋을 놓는 순간 길을 잃을 만큼 산길이 희미하고 수시로 끊어진다.   조봉의 백미는 아마 이 계곡으로 봐도 좋을 듯 싶다.  계곡을 따라 폭포들이 널려있다. 2단, 3단, 많게는 6단이 넘는 폭포도 수두룩하다. 다만 조금 왜소한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계곡이 끝나면 등산로는 지독하게 오르막 길로 변한다. 그래도 곧바로 오르면 거리가 짧아 금방일텐데 산길은 지그재그 오름길로 이어진다. 그렇게 서너 차례 굽이를 극복하니 비로소 지능선이다. 지능선에서 부터 정상까지는 완만한 오름길...

 

 

다른 이름난 계곡처럼, 아니 조금 전에 지났던 미천골처럼 웅장하지는 않더라도 그 미니어처쯤으로 꼽을 만한 골짜기다. 원시 그대로 살아 있는 골짜기 풍광은 오히려 이곳이 앞선다 할 수 있다. 가끔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급경사 오르막길의 고난까지도 상쇄해 준다. 

원시림의 계곡은 썩은 나무등걸까지도 푸른 이끼로 아름답게 포장한다. 불현듯 지금 내가 골 안에 들어선 건지, 세상이 깊은 골짜기인지 헷갈린다. 세상이 속박 받는 골짜기요, 지금 이곳이 자유로운, 한없이 터진 세상인지도 모른다.

 

 

이끼로 가득 찬 폭포를 만나러 길이 없는 계곡으로 내려선다. 그리고 두어 컷, 되돌아 올라오는 비탈에서 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제법 굵은 나무등걸을 잡았는데, 운 없게도 그 나무는 썩은 나무... 진찰결과 뼈는 상하지 않았지만, 몸은 상처투성이에 카메라도 고장이다. ‘산에서는 항상 조심합시다’ 晩時之歎으로 외쳐본다.  

 

 

능선에는 수령이 50년은 족히 되었을 정도로 크고, 굵은 참나무들이 빽빽한 수림을 이루고 있다. 사이사이 물푸레나무와 피나무, 박달나무들도... 바람 한점 들 틈이 없이 하늘을 가려, 사위가 어두컴컴할 정도이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참나무 허리춤에 단풍나무... 그 밑을 자그마한 철쭉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다. 물이 깨끗하고, 경관이 고운 미천골에서 머무르지 않고 조봉만 찾을 경우엔 여름보다는 봄, 봄보다는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이 제격일 듯 싶다.

 

 

조봉 정상

정상은 열두세 평 정도의 널따란 분지에 표지석 하나 없는 가난한 봉우리이다. 조봉이라고 적힌 철판하나 덩그러니 지키고 있는, 정상엔 잡목으로 둘러쌓여 있으나, 그래도 시야가 트여 백두대간 및 주변이 조망된다지만. 심심찮게 비를 뿌리고 있는 날씨 탓에 오늘의 시계는 제로다.

 

 

정상에서 991봉으로 내려서는 길은 전형적인 육산, 경사가 제법 되는 길에서도 달리는 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폭신폭신하다. 유순하고, 폭신거려 오래 달려도 부담되지 않는 길. 걸으면 걸을수록 싱싱한 수목의 기운을 받아 오히려 펄펄 기운이 나는 길이다.

991봉에서 미천골정으로 내려서는 길은 바윗길, 그저 바윗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암릉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너덜지대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넘치기 때문... 왼편으론 제법 심한 경사를 이루다가, 미천골정 가까이 다가가면 왼편은 절벽으로 변한다.

 

 

하산길은 제법 길지만 그 길을 걷는 동안에는 잠깐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어둑한 숲의 터널에서 진한 숲향기에 킁킁거리다가, 잠깐 길가의 이름모를 들꽃에 반해 쭈그리고 앉아본다. 그러다 심심할라치면 건너편 금강송 중 가장 우람한 놈과 대화를 시도해 본다. 그러다가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떠올리며 내 페르몬은 과연 무엇일까? 그 페르몬으로 저 금강송과 얘기해 볼 수는 없을까?

 

 

미천골정이라는 지명의 어원이 궁금했는데, 아마 저 정자의 이름을 땄나보다.

미천골은 설악산 혹은 지리산의 이름난 골짜기 축소판 같다. 휴양림을 만드느라 도로를 손대고 곳곳에 축대를 쌓았지만, 다른 곳에 비해 덜 훼손된 천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조봉의 산행에서 만난 원시의 숲, 그 숲이 끝나가자 다시 비경이 반겨주었다. 작지만 비경이, 절경이 아닌 곳이 없었다. 작은 폭포들이 속출하고, 바닥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신비스러운 소와 담의 연속... 

 

 

미천골 계곡에는 실핏줄처럼 수많은 지류가 합류하는데, 물소리를 거슬러 조금만 올라가도 폭포가 비밀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지류를 따라 오르다 만난, 돌단풍과 초록이끼로 가득한 폭포들. 그러나 미천골에서는 그런 정도의 폭포에는 이름도 붙여주지 않는다.  

 

 

초록의 기운으로 가득한 늦여름의 숲을 걸었다. 우람하게 치솟은 금강송, 들꽃과 야생의 열매들이 가득한 원시의 숲... 바람이 불어와 가슴팍까지 서늘하게 해준다. 도시는 아직도 폭염주의보가 한창인데, 골짜기는 벌써 이른 초가을 날씨처럼 기온이 낮았다. 이게 바로 '산행의 즐거움 !'

복계산 (福桂山, 1,057.2m)


산행코스 : 주차장→태백암장→매월대→암릉→정상→능선→원골계곡→임꺽정 촬영세트→매월대폭포→주차장(산행시간 : 4시간30분)


소재지 : 강원 철원군 근남면과 화천군 상서면 경계

산행일 : '09. 8. 23(일요일)

함께한 산악회 : 군자마운틴클럽 


특징 : 복계산은 산으로 오를 수 있는 산 중에 최북단에 위치한다. 복계산 산행은 ‘인기드라마 임꺽정 촬영 세트장과 북녘 땅을 조망할 수 있는 테마가 있는 산행지‘로 알려져 있지만 촬영장은 이미 폐허상태로 소문만 믿고 찾아갔다가 실망만 안고 돌아올 우려가 있다.   

 

 

산행 들머리는 태백암장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

산행의 진미는 뭐니뭐니해도 바윗길일 것이다. 그 진미를 찾아 암릉으로 되어있는 태백암장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매월동 주차장에 서있는 산행 종합안내도 바로 왼편으로 희미하게 등산로가 보인다. 

   

 

초입의 우거진 잡초로 인해 등산로를 찾기가 만만찮은 묵밭을 지나면, 제법 경사가 심한 오름길이 나타난다. 다행이 참나무 잎이 수북이 쌓인 길이 포근해서 힘이 드는 줄을 못 느끼게 해준다. 

 

 

태백암장의 왼편 벼랑에 매달린 밧줄과 씨름하며 본격적인 산행은 시작된다.

매월대를 오르는 왼편 능선은 바위가 많지만 암릉이라 부르기엔 약한 편. 그러나 가끔 시원스레 펼쳐 보여주는 조망은 가슴이 후련해지는 상쾌함을 준다.  

 

 

 

산행 내내 이어지는 참나무 숲은 시야를 가려 귀찮을 때도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한여름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해주는 고마운 존재. 덕분에 한여름에도 쉬엄쉬엄 여유롭게 산행할 수 있다.  

 

 

서쪽 지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단종 때 생육신의 한사람이었던 김시습이 은거했다고 전해오는 매월대가 있다. 밑에서 보면 그리도 우람한 바위봉우리 이건만, 바쁘게 걷는 나그네는 그저 여기쯤이려니.... 

 

 

심심치 않게 이어지는 암릉, 암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몸을 비비 꼬고 있는 늙은 소나무를 등에 얹고 있을 때이다. 복계산도 우리에게 그런 재미를 선물해 주려는 듯, 소나무들이 제법 그럴싸하게 몸을 뒤틀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늘도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내 온몸에 담아본다. 꾸며낸 가식의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이 품고 있는 순수한 풍경을, 있는 그대로 가슴에 아로새긴다. 

 

 

이쯤이 매월대가 아닐까?

매월당 김시습은 ‘어떻게 두 왕을 섬기란 말인가!’ 단종에 대한 의리를 져 버릴 수 없어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한평생을 보낸 생육신(김시습, 남효온, 성담수, 원호, 이맹전, 조려) 중 한사람으로 호는 매월당. 삿갓을 쓰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아다닌다고 해서 김삿갓이라고도 불리웠다.

 

스무 살에 방랑의 삶을 시작한 김시습은 스스로 뿌리 뽑혔기에 강건할 수 있었지만 외로운 가슴앓이는 한없이 애절하고 삶은 더없이 위태로웠다. 하늘에의 강렬한 믿음, 쉼 없는 평민과의 호흡, 패자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 그를 지탱하게 해 주었던 이념이었다.

 

어느 누구도 '김시습과 같이 살라' 하지 못한다. 무서운 무소유, 지독한 유랑, 그리고 철저한 버림을 누구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시습은 시대의 어둠과 외롭게 맞섰던 고달픈 행동가였다. 

 

 

'소나무君아 너희만 아름다움을 자랑할겨?‘ 노송들에게 뒤질세라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도 한껏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좋은 풍광에 좋은 벗 하나, 곁에 있었으면 좋으련만... 저 맑은 공기를 안주삼아 술 한잔 나눌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사실 복계산의 산세와 숲은 큰 인기를 끌만큼 수려함은 지니지 못했다. 다만, 아기자기한 산행이 가능하면서도 위험함이 없어 가족산행 대상지로 적합하다.  

  

 

 

바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밧줄에 매달려 아등바등 하는 스릴의 쾌감... 특히 여성분들과 함께 할 경우에는 가벼운 스킨십까지도 허용되는 경우가 많으니 이보다 더 좋은 산행이 어디 있으랴~ ^^-* 

 

 

기암괴봉... 아니 복계산을 그렇게 부르기에는 몇 10%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왜소하지만 암릉이 이어지고 있고, 간간히 나타나는 기암들, 심심하다 싶으면 매달려 어리광이라도 부리라며 매어 놓은 밧줄...

 

억샌 사내들이야 힘 한번 불끈 쓰면 바위위로 올라서겠지만, 연약한 아녀자들이야 어찌 그럴 수 있으리오... 끌어주고 밀어주는 기사도를 발휘할 수 있으니, 오늘 찾은 복계산은 남자들의 산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싶다 

 

 

등산로는 암릉으로 이루어진 매월대 능선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흙길을 만들면서 걷는 이를 아주 편하게 만들어준다. 산책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오늘 복계산을 찾은 산악회가 몇 개 보였지만, 대부분의 산악회들이 쉬운 코스를 선택했는지 등산로는 한적하기만 하다.

 

 

 

 

 

 

정상은 커다란 바위 봉우리인데, 제법 넓은 공터를 이루고 있다.

정상에 서면, 오른편 중앙 저 멀리에 광덕산 상해봉 백운산 줄기가, 왼편 맨 후사면에는 두류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왼편 앞에서 중앙으로 한북정맥이 뻗어있다. 

< 6년전에 답사를 마친 한북정맥 >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갈라져, 강원도 금화 적근산 대성산, 경기도 포천의 운악산, 양주의 홍복산, 도봉산, 삼각산, 노고산을 거쳐 고양의 견달산, 교하의 장명산에 이르는 서남으로 뻗은 한강 북쪽의 산줄기이다. 추가령에서 수피령까지는 북한지역 및 남한의 군통제구역이라 갈 수 없고, 수피령에서 장명산까지의 실제거리 약 194Km를 답사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다

 

 

산행은 어느 산을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가느냐이다. 마치 산행을 자랑하듯이 하는 사람들, 또는 낯이 익은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느라 처음 나온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 어쩌다 함께 따라가게 되는 안내산악회의 산행에 정을 붙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난 오늘 모처럼 좋은 산악회를 따라 나섰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만, 그런 따스함을 성큼 받아들이지 못하는 평소의 내 습관을 떨쳐버리지 못한 게 흠이었지만... ‘윤영춘님 이리 오세요’ ‘윤영춘님 이것도 들어보세요’ 살갑게 권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리도 정겨울 수 없었다. 그것도 날씬하고도 아리따운 미녀분이 권하는 것이니 두말할 나위 없이... 

 

 

정상에서의 전망이 너무 좋다. 특히 북으로 보는 대성산의 모습이 더욱 압도적이다. 남쪽으로 복주산 국망봉 화악산 동쪽으로 대성산이 손짓하며 북쪽으로 북녘의 산하가 점점이 펼쳐진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대성산

복계산 정상석이 서 있는 곳에서 조금 더 동북쪽으로 나가면 헬기장이 나온다. 한북정맥을 타려면 이곳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길이 희미하니 주의... 전면에 대성산과 북쪽 방향으로 뻗은 능선이 육중하게 눈에 들어온다.  거리가 멀어 자그마하게 보이는 군 시설까지 친근하게 느껴짐은, 아마 2 년 전, 국방부에 부서책임자로 파견되어 영관급 장교들과 함께 부대끼며 근무했던 인연이 있어서일 것이다.

 

 

헬기장 정경 #1,  꽃, 갈대 그리고 하늘

계획대로 진행하려면 이곳 헬기장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야 하건만 난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우를 범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산행 중에는 지도를 꼼꼼이 살펴야 하건만.... 그러나 어쩌랴 이미 벗어나버린 것을... ‘까짓 몇 년전 한북정맥을 종주할 때에 이미 답사를 해본 능선을 무얼 하려고 또다시 찾으랴’ 넋두리로 위안을 삼아본다.

 

 

 

헬기장 정경 #2, 졸음에 겨운 고추잠자리

오늘이 處暑... 햇볕은 따갑지만, 그늘에 들면 이마를 스치는 바람은 이미 서늘해졌다. 어느덧 가을은 우리 곁에 다가와 있나 보다. 가을의 전령인 저 고추잠자리까지도... 몇 번을 놓친 끝에 겨우 한 컷... 졸고 있었을까? 움직임을 멈추고 있길래 손을 대어보니 화들짝 놀라 날아오른다.

 

 

하산은 정상에서 되돌아 나와 남쪽 방향의 지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이따금 오래된 군용 철조망이 방치되어있다. 저녁에 야간산행을 할 경우에는 조심해야 할 듯... 10cm쯤 높이로 팽팽하게 쳐진 것도 자주 눈에 띈다. 철조망 지대를 벗어나면 다시 펑퍼짐한 능선길... 걷기 매우 편안해서 좌우를 둘러볼 여유까지 갖게 만든다. 길가는 참나무 들이 늘어서서 늦여름 푸르름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포근한 등산로를 한참 걷다보면 잡초가 무성한 무덤을 만나게 되고, 등산로는 여기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내려박힌다. 너덜지대 오른편엔 곰삭은 듯 허름한 바위벼랑이 버티고 있다. 

 

 

급경사 너덜지대는 온통 다래나무 넝쿨이 하늘을 덮고 있다. 서리가 올 때쯤 다시 찾으면 새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열매 몇 개쯤은 주울 수 있을 듯... 새콤한 맛을 떠올리며, 여름철 갈증을 잠시나마 잊어본다. 

 

 

너덜지대가 지루할 즈음 원길계곡에 닿는다. 계곡은 수량이 많지도, 그렇다고 특별한 아름다움도 없이 그저 그런 정도... 다만 인적이 흔하지 않은 계곡인지라 목욕하기엔 별 어려움이 없다. 원골계곡은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조금 유명한 계곡들에서는 바위틈에서 패드병 등 쓰레기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쓰레기 한점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청정함 그 자체다.

 

 

계곡의 좌측으로 난 오솔길을 버리고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숲으로 둘러싸인 계곡은 음침하고, 이끼에 덮혀있는 돌은 원시적인 신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조심조심... 미끄러움 때문이라기보다는 행여 여린 이끼가 내가 밟고 지나가는 발 끗에 다칠세라... 

 

 

임꺽정 세트장은 폐허...

원골계곡이 끝날 즈음 드라마 ‘임꺽정’의 청석골 촬영세트장이 나타난다. 촬영이 끝난 뒤, 한번의 보수도 없었던 듯 절반 쯤 무너진 모습이다. 저렇게 흉물로 방치시킬 바에는 차라리 철거하는 것이 좋을 텐데, 지자체의 무관심이 안타깝다.  

 

 

촬영세트장에서 바라본 매월대

저 바위 위에서 아홉 선비가 바둑판을 새겨놓고 바둑을 두며 단종의 복위를 도모했다는데... 그러나 누구하나 그 바둑판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在北 작가인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작품인 ‘임꺽정’... 작가보다도,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정홍채씨다. 아마 걸쭉한 목소리로 떠들며 술을 마시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던 모양... 거기엔 나 또한 술을 좋아하는 이유도 조금은 숨어 있을 것이다.

 

 

임꺽정 촬영장에서 매월대폭포까지는 10여분 거리의 오르막 길... 한여름 무더위에 쏟아지는 땀방울이 싫어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올라왔지만, 내 선택이 옳았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풍경 하나로 모든 힘듬이 말끔하게 가시었으니까... 이 것 말고도 계속 이어지는 자그마한 폭포의 물 떨어지는 청량한 소리는 한여름의 무더위를 단번에 날려버린다. 초록 이끼로 덮혀 있는 바위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 따라, 속세에 찌든 내 찌꺼기도 비워져 간다. 이끼에 점점이 매달려있는 물방울들은 아직은 세속을 떠나기 싫다는 찌꺼기들의 반항...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바빠지고 서두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찬 물소리를 내며 빠르게 지나가는 물굽이가 흐르지 않고 정지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건, 분주함 속에서도 그런 여유로움을 배워보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물과 바위 그리고 깨끗한 공기를 토양삼아 파릇파릇 자라고 있는 이끼... 이끼의 푸르름을 통해 잠시나마 생명의 윤회를 떠올려 본다.

 

 

매월대폭포

매월대와 마주보고 있다. 높이는 약 20m 정도, 최근에 비가 와서인지 폭포는 힘차게 물을 쏟아 높고 있다. 주차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탓인지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은 등산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들이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비분했던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했던 초록의 청정한 숲 속에는 매월당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비록 8월의 마지막, 처서가 오늘이지만 기상청의 일기예보에는 폭염주의보가 올라오고 있을 정도로 아직은 무더위가 한창이다. 그러나 이곳 계곡엔 오싹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서늘한 느낌만이 가득하다.

 

계곡을 따라 세차게 흘러가는 물은 한 덩어리... 그러나 방울방울을 떼어놓고 보면 각각 다른 사연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부딪치고 구르며 흐르다 보면, 물방울 하나하나 품은 추억들은 서로 다른 퍼즐들을 이루고 있을테니까...   

 

 

산행들머리와 날머리를 겸하고 있는 매월동 주차장

오른쪽으로 가면 임꺽정 촬영장을 거쳐 원골계곡으로 올라가게 되고, 왼편은 매월대 폭포로 올라가는 길이다. 어느 곳으로 가나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두 코스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러나 두 코스 모두 매월대를 만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山’ 철원군 갈말읍에 있는 ‘민통선 한우촌’에서 정상어림에 설치한 프랭카드의 글귀가 좋아 옮겨본다.

 

산과 자연은, 세상사 차별치 않고 속이거나 외면하지 아니하며, 잘나고 못나고 분별치 아니하고, 모든 만물을 공평 정대이 하며, 부귀와 명예도 통하지 않으니, 우리모습 이대로 생명됨이여, 단 정복하려 들지말고 그냥 안기시요

발교산 (髮校山, 998m)


산행코스 : 봉명리 절골(발교산 안내판)→명맥바위→봉명폭포→계곡→수리봉 갈림길→정상(헬기장)→명리치 고개→망골계곡→봉명교 쉼터 ( 산행시간 : 4시간30분)


소재지 :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동면의 경계

산행일 : ‘09. 7. 26(일)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숲과 골짜기가 수수하며, 무엇보다도 적막하고 호젓하여 깊은 산의 안온한 풍취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산이다. 흙산이라서 오랫동안  쌓여온 낙엽으로 인해 등산로가 폭신폭신한 것이 걷기에 여간 편하다.  

 

 

산행들머리는 횡성읍 쪽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청일면ㆍ홍천 서석면 방향으로 가다가, 춘당초등학교 직전에서 좌회전, 봉명리 마을길로 들어선다. 봉명교라는 작은 다리가 봉명폭포로 가는 산길의 입구이다 이곳은 횡성군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곳으로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있다. 한국전쟁 때에도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을 정도란다. 근처 안구접이 마을(처음에 산행 들머린줄 알고 알바했던 곳)은, 아홉 겹으로 산이 둘러싸고 있다는 뜻이란다. 그만큼 오지산골이라는 뜻...

 

 

발교산의 들머리인 청일면 봉명리는 전통 테마마을이다. 봉명리는 '고라데이 마을'이란 옛 이름을 지금도 쓴다. '고라데이'는 골짜기를 가리키는 강원도 사투리다.  

시간은 어느새 우리를 여름의 한 가운데로 안내하고 있다. 제일 무더워야할 절기인데도 지난주 스쳐간 장마비가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복더위를 몰아낸 탓인지, 그늘에서는 제법 서늘하기까지 하다.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이 싱그럽게까지 느껴지는 것이,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와 있나보다.

 

 

고라데이 마을을 지나면 계곡이 나타나고, 이어 발교산 등산 안내판 앞에 다다른다. 발교산 정상을 왕복하는 등산코스 총길이는 9.38km에 4시간10분이 걸리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절골 입구에서 시작된 차 한 대 겨우 지날만한 비포장길은 융프라우펜션을 지나면서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오솔길로 이어진다. 이 오솔길은 폭 3~5m 되는 물줄기의 아담한 계곡과 내내 함께했다

 

  

 

융프라우 펜션

명맥바위 조금 못 미쳐, 스위스풍의 아름다운 건물을 만난다. 이름도 융프라우 펜션이랜다. 융프라우는 스위스에 있는 유명한 산봉우리(4,158m)... 베른알프스 산맥에 속하는 경치가 아름다운 산이다. 펜션 앞길은 특이하게도 나무로 깎아 만든 솟대로 장식되어 있다.

 

 

명맥바위

옛날에 제비같이 생긴 명맥새가 절벽위에 힘들게 집을 지었는데 급경사 바위의 집인지라 허물어져버려 눈물을 흘리며 갔다는 전설에서 생긴 바위란다.  

손을 대면 짙게 물들어 버릴 것 같은 먹빛 푸르름... 정상을 급하게 탐내지 말고 느긋한 걸음으로 완상을 즐겨보자. 숲이 주는 행복에 흠뻑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경관에 셔터를 눌러대다 보니 자꾸만 산행 속도가 느려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카메라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는 몇몇... 아마 사진 찍기에 바쁜 우리들이 제일 후미인가 보다.

 

그러나 무에 걱정이랴, 난 이 산에서 추억을 만들고 있고, 그 추억을 지금 카메라에 담고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쉬는 시간을 좀 줄인다면 주어진 하산지점 도착시간에 당도할 수 있을 터인데... 모처럼 여유로운 산행을 즐겨보자. 청아하게 흐르는 맑고 깨끗한 계곡물과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낙엽송 숲길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원시림... 난 지금 청정지역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며, 한껏 심호흡을 들이켜본다.

 

 

계곡에 들어서면 차라리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기운에 몸이 움찔거릴 정도다. 가끔 나타나는 야트막한 폭포와 소들이 폭염을 이기기에는 여기가 최고의 적지라고 알려주는 듯 청량한 소리를 귓가로 흘려보낸다.  

계곡물에 손 두어 번 담그고, 물에 적신 머플러로 얼굴 두어 번 적시며 느긋하게 진행하다 보니 길가에 ‘고라데이 심마니 체험장’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깊은 산속에다 인공으로 산삼씨를 파종한 후, 성년이 된 산삼을 채취하는 장뢰삼 단지가 근처에 있나보다. 주위를 두리번거릴 필요는 없다. 등산객의 눈에 띌 곳에서 장뢰삼을 기를 사람들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안전로프와 나무계단을 밟으며 햇살 한점 비치지 않는 깊은 숲속을 걷다보면, 폭포가 가까워지는 듯 웅장한 낙수소리가 등산객들을 불러 모은다.

아홉구비를 돌아 30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굉음은 수량이 많을 경우 저 멀리에서까지 들린단다. 무더운 여름에 최고의 청량감을 제공해 주는 것은 물으나마나... 아름다운 폭포의 모습에 반한 듯, 모두들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다. 그 아름다운 배경에 자신의 모습을 심고 싶은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물먹은 바위를 오르고 있다.  

 

 

봉황이 우는 소리 같다 하여 봉명폭포라 불리는 봉명폭포 중 하단폭포... 매끈하지는 않지만 녹색이끼바위를 타고 내리는 물줄기가, 거친 야생의 폭포 같아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초록 이끼 낀 바위 사이로 물줄기가 시원스레 낙하하고 있다. 나무가 우거져 빛을 막았더라면 초록의 이끼가 더욱 무성했을 텐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이끼 낀 바위위로 많이 오르내려서 이끼들이 많이 상한 탓에 바위들이 허연 뱃살을 내밀고 있다.

 

 

하단폭포 중간 부분을 가로질러 한 굽이 돌아서면 상단폭포가 나온다. 상단폭포 앞에 서면 하단폭포에서의 아쉬움은 금방 사라져버린다. 폭포의 상부를 온통 막아버린 녹음 속에 폭포수가 콸콸거리며 이끼 계단을 타고 떨어지고 있다.

물길을 떠받치는 돌계단과 주변의 바위에 초록의 융단이 뒤덮었다. 귀는 먹먹해졌고, 눈은 황홀해졌다. 가만히 물속에 손을 넣어본다. 청량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폭포 위쪽은 다시 협곡... 울창한 낙엽송 숲이 이어지는데 군데군데 잣나무 숲도 보인다. 능선 주위엔 떡갈나무 숲이 울창하다. 

언제나 내가 오르는 산들은 내가 선택했기에 찾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해 만족해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을 듯 싶다. 이 시간 이곳에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연과 하나 됨을 느끼게 만들 정도이니 말이다.  

 

 

제법 가파른 된비알 몇 번 오르고 나면 등산로는 다시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의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나간 일본잎갈나무(낙엽송) 숲이 시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짙은 녹음의 잎새를 스쳐온 시원한 바람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여름은 트레킹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자연을 벗삼아 거니는 것은 어디라도 좋다. 짙은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길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얼마 안 있으면 짙은 녹음은 내년을 기약하며 짐을 꾸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숲은 알록달록한 옷으로 갈아입을 테지? 가을이 오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트레킹을 떠나보자.  

 

 

 

계곡을 따라 더 들어가면 작은 분지형 지형이 되고 왼쪽 밋밋한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이 나온다. 정상을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헬기장에 서면, 화창한 날씨에 저 멀리 산마루 하늘금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리산, 대룡산, 용화산, 대암산, 백암산, 설악산, 방태산 등등... 하나 아쉬운 것은 서쪽이 숲으로 가로막혀 있어 조망이 없다는 것이다.  

  

 

  

 

 

발교산 정상은 발기봉 

정상의 표지석은 발기봉으로 되어 있다. 발교산이란 이름의 어원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누군가 '밝은 산' '밝산' '박산'과 같은 순수 우리말 이름에서 따온 한자어가 아닌가라고 설명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나저나 발교산에 봉우리가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니니, 정상의 표시석은 발기봉 보다는 발교산으로 표기하는게 맞을 성 싶다. 일행 曰 ‘세우라는 봉우리이니 이곳에 산삼이 많은 모양인데, 한번 찾아볼까나?’ 부디 한뿌리 정도 찾아내시길 빌어주겠네 그랴~~ **-^^-**

 

 

 

정상은 나무 숲으로 포위된 탓에 조망이 일절 없다. 다만 서쪽의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산등성이가 보인다. 아마 화악산일 것이다.  

 

 

숲은 사색의 공간으로 안성맞춤

길가에 아담한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 경사가 완만한 등산로를 느긋하게 걸어본다. 마음의 여유... 싱그런 초록 숲에 빛 한줄기 내려앉은 저 벤치에서 아담한 수필집이라도 펼쳐보면 좋겠다.  

 

 

남쪽 하산 길은 잡목이 가려 일절 조망이 없다. 햇볕은 쨍쨍... 그러나 짙은 숲의 그늘 아래로 난 등산로는 까끔 등골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산들바람을 선물해 주고 있다. 콧노래 두어번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덧 쌍고지 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쌍고지 고개에서 명리치 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그야말로 급경사... 등산로 곁에 난간을 세우고 로프를 매달아 놓았지만 경사가 너무 심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병무산이 보인다. 망골로 떨어지는 명리치고개에서, 우측으로 병지방계곡을 갈 수 있으나, 길 흔적은 없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병무산 산행은 생략하고 망골로 발걸음을 돌린다.  

  

    

 

사면을 도는 길을 내려서 잣나무숲을 지나면 칡넝쿨이 우거진 널따란 분지에 개망초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화전민들이 소개된 후, 묵밭으로 바뀐 강원도 두메산골의 전형적 모습이다. 우거진 칡넝쿨과 개망초 천국을 지나면 임도... 여기서부터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루하게 이어진다

 

 

간간히 멋스런 별장이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오면, 왼편으로 너무나 맑고 깨끗한 계곡(망골)이 나온다. 나도 몰래 첨벙, 물론 옷은 입은채로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오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탁족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망골주변의 오미자 밭

부드러운 산길엔 짙은 녹음이 우거져 햇볕이 뚫고 내려오지를 못했고, 철철 흐르는 계곡물에선 서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계곡의 청량함이 너무 아까워 떠나는 여름을 마냥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산행날머리인 봉명교 쉼터

울울창창한 원시의 숲과 생각보다 맑고 깨끗했던 계곡에서 즐긴 하루... 좋은 산에서 쌓은 아름다운 추억들, 다시 돌아온 세속은 열기에 젖어있다. 금새 원시의 흥은 사라지고 어느새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으로 되돌아와 있다.  

 

 

 

산이 철 따라 주는 작은 선물에 감사하면서, 때에 따라 짐승들처럼 다소 억센 것들을 먹게 될지라도 그것마저 감사할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다가 서서히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이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 가장 가벼운 차림으로 왔던 핏덩이도 버리고 그저 한 줌의 재로 승화했으면 좋겠다.

미륵산 (689m)


산행코스 : 황산골→황산사→삼층석탑→마애불→미륵봉→장군봉→신선봉→치마바위→황산골 주차장 ( 원점회귀, 산행시간 : 쉬엄쉬엄 3시간30분)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산행일 : ‘09. 7. 25(토)

함께한 산악회 : 히트산악회


특색 : 산이 낮지만 조형미가 뛰어난 암릉을 품고 있는 산. 다만 산이 깊지 않은 탓에 계곡 물이 적어, 산행 후 알탕은 할 수 없고, 탁족 정도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버스를 주차장에 세워둘 경우 황산사 입구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게 만만치 않다.  

 

 

산행의 들머리는 황산골 마을입구 주차장

귀래면 소재지 마을 가운데쯤의 갈림길에서 19번 국도를 벗어나 서쪽으로 뻗은 531번 지방도로 접어든 후, 약 2Km정도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주포리 황산골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을 들어서기 전에 깔끔하게 현대식으로 지어진 화장실을 갖춘 주차장이 있다.   

 

 

 

길옆은 개망초들의 천국

주차장에서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황산사 입구까지는 약 1.5Km 정도... 원래는 버스가 다닐 수 없는 도로이지만 버스기사분의 본의 아닌 협조로 거의 황산사 코앞까지 버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어느 노조전문 노무사의 글에서 본 문구가 생각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덕분에 우린 손쉽게 등산로 초입에 도달할 수 있었다.  

 

 

 

황산마을에서 황산사 앞을 지나 새터마을까지 이어지는 좁은 도로는 최근에 시멘트로 포장(황산사 앞은 현재 공사중)되어 승용차도 올라갈 수 있다. 걷기에는 조금 부담스런 거리인데, 오늘은 버스가 고생한 덕분으로 우린 편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새터마을로 가는 도로를 따라 1.5Km 정도의 거리, 도로포장 공사가 한창인 고개 직전 길 왼편에 황산사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여기가 미륵산 산행 들머리... 대부분의 표지판이 미륵산이 아니고 황룡사나 황산사로 표기되어 있으나, 개의치 않고 진행해도 된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는 등산로 초입에 있는 황산사

부처는 꽃나무에 법당을 열고 물고기 몸속에 선원을 차릴 것이다. 그러니 정주하지 말고 흘러라. 추위를 껴안아라. 그 부처를 눈에 담은 중년의 소년아. 날이 추울수록 더 빛나는 게 별이라는 것을 너는 잘 알고 있구나(손택수 시인의 글 중에서)   

 

 

경순왕의 영정각인 경천묘

왕건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이곳까지 왔다하여 귀래라는 지명도 생겼다 한다. 귀래는 귀한분이 오셨다는 뜻이다. 매년 원주시에서 경순왕 경천묘 추행대제를 지내고 있단다.   

 

 

신라 56대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935년 미륵봉의 빼어남에 반해 산 정상에 미륵불상을 만들고 학수사와 고자암을 세웠다는 설이 있다. 경순왕 사후 그를 추종하던 신하와 불자들이 고자암에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받든 것이 영정각인 경천묘의 시발이란다. 경천묘란 명칭은 조선때 영조가 하사한 것이란다.  

 

 

우리나라에는 미륵산이나 미륵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들이 꽤 많다. 그중에 이름난 것들만 하더라도 경상남도 통영시에 있는 미륵산(461m)과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미륵산(430m), 그리고 이곳 강원도 원주시의 미륵산이 있다. 익산에 있는 미륵산은 ‘90年代 이리시에서 근무할 때에 거의 매일아침 운동삼아 올랐었고, 오늘은 이곳 원주의 미륵산을 올라봤으니, 이제 통영의 미륵산만 남은 샘이다. 우리나라의 산을 모두 답사해 보고 싶은 나이니, 언젠가는 그곳도 찾아가 볼 날이 있을 터...

 

이렇게 미륵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많은 이유는 신라 末과 고려 初에 미륵신앙이 크게 일어나, 도처에 미륵불을 모시는 절을 짓거나, 바위에 마애불을 새겼었고, 그런 산들을 미륵산이나 미륵봉이라 일컬었기 때문이다. 미륵불은 미래세계를 다스리는 부처일지니, 亡國과 開國에 따른 당시의 사회적 전환기나 혼란기에, 혼미한 세상을 극복하고 보다나은 미래를 추구한 민초들의 열망을 담은 표현이었을 것이다.  

 

 

등산로 초입은 완만한 경사... 주변에는 참나무 숲이 울창하다. 그러나 경사가 완만하면 무얼하랴.. 얼마전까지 공직에 있을 때에 가깝게 어울리던 간부와의 새벽까지 마신 술자리의 휴유증이 만만치 않다. 초반부터 줄줄 흐르는 땀은 땀인지, 아님 술인지 모를 정도로 알콜 냄새가 배어나온다.     

 

 

참나무 숲 사이로 간간히 금강송이 섞여있다. 그러나 이곳의 금강송들은 태백산맥에서 보던 금강송에 비하면 왜소하기 짝이 없다. 그저 허리를 고추세우고 있는 기상만이 비슷할 뿐...  

 

 

3층 석탑

신라 경애왕 때 서응대사와 학서대사가 황산사 창건시에 세운 것으로 ‘주포리 미륵불 3층석탑’으로 불린다. 지정문화재 외에 문화재 건조물 제 9호로 1970년에 보수했단다. 조금 위에 대웅전만 복원된 황산사가 있다.  

 

 

부도전과 삼층석탑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갑자기 급경사로 바뀌어 버린다. 곳곳에 설치된 밧줄과의 씨름... 그리 힘들지 않을 정도의 난이도이건만 어제밤 즐겼던 술의 뛰 끝은 그 정도의 난이도 까지도 힘들게 만들고 있다.  

 

 

마애불은 이런 바윗길을 여러 번 반복하고서야 그 모습을 보여준다.   산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부드러운 능선길과 아기자기한 암릉길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산행의 정취와 묘미를 느끼게 한다.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느라 흐트러진 호흡을 한 번 가라앉힐 만한 곳에 마애불이 있다. 마애불이 아래는 높은 단애를 형성하고 있으나 마애불앞은 작은 마당을 이룬 너럭바위인데다가 주위는 멋진 노송이 둘러있어 한숨 돌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주변의 경관에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여성일행분이 왠지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나 또한 주변경관에 반하고 있음일 터...  

 

 

磨崖佛은 등산로 왼편으로 약간 비켜서서 있는 큰 암릉에 반신상의 彌勒佛이 돋을 형식으로 새겨져 있다. 몸체의 길이는 약 10m정도 된다고 한다. 폭이 넓은 큰 코에, 눈과 입이 투박하여 전체 모습이 토속적이다. 羅末 麗初에 조성된 彌勒佛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미륵부처의 코를 만지면 득남을 하게 된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나 10m가 훨씬 넘는 곳에 있는 부처님 코를 어떻게 만질 수 있으리오... 그저 저 투박한 부처님의 미소를 깨닫고, 비운 마음으로 산행을 마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게 무에 있을까... 

 

 

마애불 앞으로 다시 나와서 암릉을 다시 올라가면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 위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은 대단한 조망처이지만 주변은 높은 단애로 되어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미륵불을 본 후, 암벽사이로 매어진 밧줄을 잡고 오르면 배낭을 맨 채로는 통과하기가 쉽지 않은 홈통이 나온다. 조심스럽게 통과하면 미륵바위에 도착한다. 미륵바위는 열명이상이 한꺼번에 쉴 수 있을 만큼의 널따란 공간으로 되어 있다. 

 

 

 

 

미륵봉에서 바위틈에 늘어진 밧줄을 잡고 내려서면 황산마을과 미륵산으로 갈라지는 안부가 나온다.  안부 맞은편은 미륵봉... 미륵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매어진 밧줄과 씨름을 하여야만 한다.  

 

 

미륵봉의 마당바위는 꽤 넓어서 여러 사람이 앉아 쉴 수도 있고,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훌륭하다. 그러나 오늘은 내리는 비 탓에 시계가 좀처럼 열릴 줄 모른다. 북동쪽으로 백운산, 동남쪽으로는 십자봉과 삼봉산이 보인다. 그리고 멀리 남한강의 물길까지도 볼 수 있다는데....  

 

 

미륵봉은 암봉으로 대단히 아름답다고 할만하다. 봉우리자체가 널찍한 바위로 되어있고 부근엔 바람에 부대낀 멋진 소나무들이 있어서 회화적이다.  미륵봉 소나무들은 어느것 하나 없이 마치 누군가가 전지를 한 듯, 윗부분이 반듯하게 잘려있다.

 

 

미륵봉에서 장군봉을 거쳐 신선봉까지는 20분이면 갈 수 있다. 등산로 양 양 옆은 암벽이나 사이가 넓어 암릉으로 느낄 수 없을 정도다.  등산로는 참나무가 울창한 숲길... 곳곳에 바위가 있지만 길을 따라가면 위험한 곳은 없다.  

 

 

신선봉 가는 길은 편안하게 계속된다. 암릉이 없는 길은 짙은 숲속에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있어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오늘 같이 집사람과 함께 걷기엔 그야말로 안성맞춤... 

 

 

걷기 좋은 길에서 집사람과 도란도란 밀린 얘기 나누다보면 어느새 신선봉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등산로는 암릉으로 바뀐다. 그러나 위험하다 싶으면 밧줄이 매어져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신선봉에서의 하산 길은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진 경관이 아름답다. 아기자기한 암릉을 타노라면 한 폭 그림 속을 거니는 느낌이다. 암릉마다 분재와 같이 아름다운 노송들이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그대로이다.

 

 

 

남쪽 암릉은 그리 길지는 않으나 위험지역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곳곳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어 주의만 기울인다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암릉을 타는 맛이 아기자기하여 오히려 산행의 양념이 된다.  부드러운 흙길과는 달리 암릉길은 산행의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길은 호젓하고 숲도 짙어 분위기가 꽤나 아늑하다. 간혹 잣나무 들도 보인다    

 

 

흙 한점 없는 바위에서 자라나는 모습이 신기해서...

아름답다도 해버리면 그 말 속에 산이 가진 매력이 한정돼 버릴까봐 그리 말하지 못하고, 그저 머무르고 싶은 곳이라며 여운을 남겨둔다.

 

 

암릉을 지나면 육산능선이 되고, 등산로는 온통 다래넝쿨이 휘감고 있다.  

걷는다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 겸허해지며, 그 겸손함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나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렇게 탐스러운 다래도 매달려있고... 가을을 생각하며 나도 몰래 두어 방울 침흘려본다.  

 

 

신선봉 밑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황룡사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약 500m 정도 걸어 내려오면 황산사를 가기위해 아침에 지나갔던 도로와 마주친다. 여기서 오른편으로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약 600~700m 정도 내려가면 오른편에 황산골 주차장이 나온다.  

 

 

하산길엔 왕꼬들빼기도 채취하고(삼겹살 구워먹을 때 쌈으로 이용하면 맛이 끝내주는데, 오늘 엄청나게 많이 채취할 수 있었음), 요런 꽃들을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산행 날머리에 도착하게된다

비록 붙잡을 수 없고, 인간의 지식으로 다 담을 수 없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로 둘러싸인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성에꽃과 같은 눈부신 순간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지상의 삶이다.  

 

 

성에꽃은 물이 되어 녹아 사라지고 말겠지만, 눈석임물이 되어 흐를 때 그 흐름처럼 눈부신 것도 없다. 그렇다면 햇살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물이 되어 죽어가는 성에꽃이야말로 부처요 만다라다.  

 

 

머리 굴리며 사는 세상에 머리 굴리지 않아도 되고, 단순히 숨쉬는 것만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 가볍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머리를 굴려서 여기까지 와버린 세상인데, 나라도 아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머리 굴리지 않고 그냥 존재하고 싶다.

 

 

세상살이에서 열림과 막힘은 결국 자신 속내의 열림과 막힘과 일치한다. 내 마음이 열리면 곧 세상도 열리는 것이니, 세상은 결국 나만큼의 크기밖에 안 되는 것... ‘나를 바로 보고, 그리고 나를 바르게 다스려 보자’

 

삼형제봉 (618m)


산행코스 : 신사동→삼거리에서 우측 능선→시루봉→옆봉→3봉~2봉→정상(1봉)→수교동 계곡 ( 원점회귀, 산행시간 : 4시간10분)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과 양양군 현남면의 경계

산행일 : ‘09. 7. 19(일)

함께한 산악회 : 곰바우 산악회


특색 : 산이 낮고, 솔잎이 수북이 쌓여있어 암릉을 끼고 있는 산 임에도 걷기에 편하다. 맑은 물이 암반 위를 흐르는 수교동 계곡은 수량도 괜찮은 편이어서 가족 산행지로 적합하다. 산행 후 주문진항에 들러, 바닷바람을 맞으며 회 한 접시 시켜 놓고 소주 한잔 곁들인 후 귀경하는 것도 낭만이 있을 듯...  

 

 

삼형제봉의 들머리는 삼교리 궁궁동이다. 이곳 삼거리에는 컨테이너 박스가 길목을 지키고 있고, 다리(삼교교) 옆에 형제봉임을 알리는 알림판이 있다. 짧은 코스를 원하면 이곳에서 오른쪽(북쪽) 시멘트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그러나 시멘트 길이 싫고, 산행시간을 조금 더 늘이고 싶다면, 오른편 언덕으로 올라서면 된다. 언덕위에 있는 민가 조금 못미쳐서 왼편으로 진행....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던 탓에 등산로를 찾기가 쉽지 않다. 가끔 안양백두산악회와 숲길(등산로) 취재팀의 안내 리본이 보일 따름이다.  

 

 

능선을 걷다보면 금강송이 아름드리 풍채를 드러내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광경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가히 금강송 천지라도 불러도 좋을 듯 싶다 이 곳은 송이버섯 산지인지 등산로 주변 곳곳에 금줄을 쳐놓고 있다.

 

 

1봉 오름길과 2,3봉 정상 부근 등 산 곳곳에 수령 이삼백년 되는 적송 군락지들이 진한 솔향을 뿜어내고 있다. 그 밑에는 솔가리가 수북이 쌓여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풍취를 더해주고 있다.  

 

 

시루봉은 화강암 바위대문과 노송이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가슴에 담아둘만한 특별한 여운을 간직하고픈 느낌은 주지 못하는 봉우리이다. 이곳에 온 이상 이곳에서 북쪽으로 180m 정도 거리에 있는 봉우리는 꼭 올라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옆봉

잘 나 있는 길을 따라 옆봉에 올라가면 묘하게 잘 생긴 크나큰 바위를 보게 된다. 하늘에서 내려온 듯, 거대한 남근석이 대지의 여신을 꽉 찍어 누르고 있는 듯한 형상... 이곳에서 선명하게 바라보이는 삼형제봉은 울창한 적송으로 뒤덮혀 있다.

 

 

조심스레 남근석을 올라가 보면 위에 물이 흥건히 고인 바위샘도 있다. '남근석 위의 샘물을 마시면 변강쇠가 된다' 같이 산행을 한 어느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어렵게 남근석에 올랐으나 선뜻 마시기에는 글쎄...^^-*  이곳에 서면 백두대간의 주능선을 벗어나 동으로 산줄기를 이어달리며 그토록 만나기를 열망하던 동해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루봉에서 3봉으로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다. 행정당국의 배려로 로프가 설치되어 있으나, 발붙일 곳과 로프가 엇갈려서 붙잡고 오르기에는 조금 불편하다. 맹목적인 설치보다는 등산객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3봉

650m 정도 되는 막내봉도 역시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꼭대기에는 노송이 초록빛 숲 차양을 드리운 채 등산객들에게 아담한 쉼터를 제공한다.  

 

 

 

 점심을 먹고, 잠시 짬을 내어 동해가 있는 방향으로 내려가 본다. 그리고 곧바로 그 결정에 대해 찬사를 보낸다. 아~ 동해바다가 一望無際로 펼쳐지고 있다 3봉에서는 주문진 시내와 항구, 그리고 동해바다가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이제까지 흘러내린 땀방울이 시원스레 식혀지고 탁 트인 전망은 사뭇 산길을 걸어온 노곤함을 최상의 상쾌함으로 바꾸어 준다.

 

 

강인한 생명 부러진 소나무가 꺽인채 자라고 있다. 삼형제봉의 백미인 제3봉의 내리바위(위가 절벽아래로 내려 쏟길 듯 걸쳐있는 모습)로 가는 길목이다. 내리바위로 가는 길은 이정표의 신사동쪽이 아닌 정상쉼터에서 동쪽길로 내려가야 한다. 참고로 이쪽은 막다른 절벽이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100여미터를 나아가면 이내 확트인 동해바다를 맞이할 수 있는 곳이다.

 

 

生과 死

꼬맹이 소나무는 한점 흙에 목말라 하면서, 수십 년 세월을 비비 꼬인 채로 삶을 이어가고 있건만, 곁의 큼지막한 소나무는 힘든 세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빈 몸으로 동해의 수평선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결코 크다고 강한 것은 아님을 우리에게 알려주려는 듯...   

 

 

2봉

바위위에 흙을 덮은 후, 그 위에다 적송을 심어 놓은 듯한 느낌이다. 새하얀 바위 위에 기품 있게 자란 적송이 참 아름답다. 저절로 나오는 감탄사...   산에 올라 천하를 내려다봤다. 누군가가 그랬다. 우리 산의 아름다움은 켜켜이 쌓인 능선에 있다고, 그 광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장쾌하게 펼쳐져 있었다.

 

 

2봉은 또 하나의 예술품이다. 흙 한 주먹 없는 바위 위에서도 의연한 기개를 굽히지 않고 있는 소나무... 어느 것 하나 예사로운 형태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상에 올랐다. 저만치 능선이 발아래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그 아래 점처럼 보이는 게 사람사는 마을이고, 저 능선 뒤로 가로로 누운 게 동해의 수평선이다.

 

 

해발 690m인 2봉은 이 산에선 가장 아름답고, 조망이 가장 빼어나다. 넓게 퍼져 있는 암반 근처에 보호수로도 가치 있는 적송이 울창하여 한 폭의 동양화를 연출하고 있다. 고사목과 노송들의 나열... 주문진읍 전경과 동해바다가 전망된다. 

 

 

 

2봉에 오르면, 일반적으로 정상에서 누리에 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이 곳에서는 영동지방의 산악을 볼 수 있기 때문.... 비개인 다음날 특유의 시계가 시원스레 열리고 있다.. 남쪽으로 노인봉, 북쪽으로 대청봉까지 보인다. 이제 봉우리를 거쳐 비경을 보고 갈일만 남아있다   

 

 

⇩  산길을 돌고돌아 능선에 서면 확 트인 시계를 통해 동해바다가 한눈에 다가온다. 동해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땀이 식어,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한기가 느껴진다. 한여름에 한기까지 느껴지는 동해바람을 쐬면서 능선길을 걷다보면, 어느새 난 신선의 도에 익숙해져 있다.   

  

 

 

1봉

이정표가 있는 이곳이 바로 삼형제봉의 실질적 정상인 1봉(710m)인데, 첩첩히 쌓인 책(冊) 모양의 거대한 바위 위에 올다가 보면 마당바위처럼 넓은 공간이 있다. 정상표지석이 없어 아쉬웠다.  삼형제봉의 맏이봉으로, 이곳을 자세히 둘러보면 하늘을 찌를듯한 아름드리 적송과 굵직굵직한 화강암이 기묘한 조각공원을 이루고 있다.  아름다움 까지? 글쎄 아름답다고 칭찬하기에는 2%... 아니 20% 정도는 부족하다.

 

 

 

 

1봉에서 하산길을 서둘다 보면, 어느새 나무들은 참나무들로 바뀌어 있다.

삼형제봉의 바위는 흰색을 띠고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 마고할미가 풍류암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는 신선에게 팥죽과 술을 가져다주려고 이곳을 지나다가 실수로 펄펄 끓는 팥죽과 술을 엎질러 버렸단다. 그 뜨거운 죽에 데어 바위가 희게 되었고... 믿거나 말거나다 ^^-*  

 

 

 

삼형제봉 안내판

원래는 이곳이 원점회기 지점이지만 시멘트길이 싫어서 우린 이곳보다 한참 밑에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편 능선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덕분에 같은 길을 두 번 걷는 불행을 피할 수 있었다.  

 

 

 

수교동계곡

하얀 암반 위를 흐르는 맑은 물은 구태여 동심이 아닐지라도 물속에 뛰어들고 싶어진다. 산천경계가 수려한 강원도지역이 아니었다면 수많은 인파에 시달렸으련만, 아직은 한적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 주문진읍에 있는 삼형제 봉은 경치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비경이다. 지역의 산악인들로부터 끊임없는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외지인에게는 숨겨져 왔던 산이었는데, 얼마 전부터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단다.

 

 

 여기까지 와서 어찌 회 한접시 먹지 않고 돌아갈 수 있으리...

주문진으로 가면 싱싱한 수산물로 가득한 주문진항의 수산시장이 있다.(차량으로 15분거리) 점심은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매운탕... 식사후에 시장에 들러 오징어회 한 접시 시켜놓고 소주잔(2만원)을 기울이는 여유를 누려보았다.  

 

 

마산(봉) (1,052m)


산행코스 : 알프스 스키장→마산→병풍바위→대간능→대간령(큰새이령)→마장터→물굽이 계곡→흘리 (산행시간 : 5시간10분)


소재지 :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토성면과 인제군 북면의 경계

산행일 : ‘09. 7. 11(토)

함께한 산악회 : 숲향산악회


특색 : 알프스스키장에서 산행을 시작하기 때문에 정상까지의 거리가 1.2Km, 급경사라 힘은 들지만 짧은 시간 안에 정상에 도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물굽이 계곡의 아름다움에 반해 물놀이를 겸할 경우, 자신도 모르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가버릴 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

  

 

산행 들머리는 진부령에 있는 알프스 스키장

제철이 아닌지라 텅 빈 건물에 보수를 위한 자재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산행을 시작하려면 리조트 차단벽 안으로 들어서야 한다.   

   

 

본격적인 산행은 리조트 건물 옆에 설치된 등산 안내지도 뒤로 난 등산로를 따라야 한다. 어느 몰상식한 사람들이 슬로프 가장자리 철조망을 뚫어 놓았으나, 산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는 아니될 말이다. 仁者樂山이라는 말이 그냥 생긴 건 아닐 것이니까.

 

 

아마 초보자 교육 슬로프인가 보다. 가장자리에 안전보호장치가 없는 것을 보면... 이곳을 지나면 중급코스 정도의 슬로프 곁을 지나게 된다. 슬로프의 보호철망을 따라 걷다보면 눈살을 찌뿌리게 만드는 광경을 만나게 된다. 보호철망에 사람이 통과할 정도로 구멍을 뚫어 놓은... 그 구멍 옆엔 수많은 산악회 리본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잠시 물 한모금 마시며 한숨을 돌린 다음 다시 산길을 오른다. 초록빛 나뭇잎은 한층 더 짙어진다. 능선엔 가지런한 산죽...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떡갈나무와 상수리, 박달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수많은 나무들... 

마산의 산신령님은 심술쟁이인가보다. 이토록 인간들을 놀리다니... 겨우 정상에 도착했나보다고 한숨을 놓았더니 등산로가 좌측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저만치에 더 높다란 봉우리를 선보이고 있다. 다시 한번 죽을힘을 다해 새로운 봉우리에 올랐더니 이번엔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서, 또 하나의 높다란 봉우리가 우리에게 어서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휴~~ 높이와 경사도 장난이 아니다. 죽었다...

 

 

 

마산의 정상 못 미쳐 삼거리 이정표

정상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약 3분정도 더 가야한다. 병풍바위로 가려면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서 이정표가 지시하는 남쪽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마산(봉) 정상

거리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올라서니 남한의 백두대간 봉우리 중 마지막인 ‘마산’이 나온다, 정상에는 표지석 대신 안내판이 깔끔하게 설치되어 있다. 지금은 향로봉까지 백두대간을 이을 수 있다고 하나. 내가 다녀온 바로는, 능선이 아닌 군사도로로 갈 수 밖에 없으니 큰 의미는 없다.  갈 수 없는 능선을 슬픈 마음으로 한동안 쳐다본다.

 

마산은 백두대간의 남한 쪽 분단이다.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과 토성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으로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있어 아쉬운 마음이 들 수 있다. 마산 정상에서는 북측 산이 가깝게 다가온다. 작은 능선 두어 개만 넘으면 금강산이니 당연... 언젠가 새이령 건너편 신선봉인가? 어디서 ‘금강산 신선봉’이라고 적힌 걸 본적이 있다. 맞는 표기다. 금강산 1만2천봉 중 제일 남단에 위치한 봉우리가 저 신선봉이니까...

 

 

마산에서는 날씨가 좋을 경우 향로봉, 비로봉을 비롯한 금강산 연봉까지 어슴푸레하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가스가 자욱, 시계는 제로에 가깝다. 북쪽의 봉우리 하나도 제대로 가늠해 볼 수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마산에서 병풍바위로 가려면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야 한다. 초반에는 바위가 간간히 박힌 너덜지대이나, 어느 정도 내려서면 전형적인 육산으로 바뀐다. 길옆에는 참나물과 곰취가 간간히 보인다. 참 이 산에는 더덕이 없는 듯, 산행 내내 그 향을 느낄 수 없었다.  

 

 

병풍바위

입구 근처 삼거리에 우측으로 진행표시지가 놓여있고, ‘다녀오세요’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표시방향으로 잡목 몇 개를 헤치고 들어서니 시야가 확 트인다. 병풍바위에서 북쪽으로 우리가 방금 지나온 마산봉이 말의 잔등처럼 긴능선으로 다가서고, 남쪽으론 멀리 신선봉이 고고한 모습으로 서있다. 병풍바위 정상 앞은 낭떠러지기 때문에 위험하다.

 

 

병풍바위를 건너편에서 바라보면 바위정상으로부터 좌우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수십 길의 절벽으로 되어있다. 구태여 확인할 필요는 없다 너무 높아 위험하니까... 저 멀리 신선봉 너덜지대가 아스라이 바라보인다.  

 

 

신선봉

금강산 일만이천봉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한 봉우리이다. 미시령을 사이에 두고, 설악산의 황철봉과 마주보고 있는 봉우리로서 자연 휴식년 지역으로 묶여있어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대간령에 통행제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병풍바위를 지나면 신선봉 방향으로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그것도 꽤 길게...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마산까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어보는 걸 보면, 길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많이 힘드나 보다. 등산로는 흙길... 온순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급경사 내리막길을 지나면, 완만한 안부를 따라 길게 내려간다. 이곳은 3월경이면 보랏빛 얼레지 꽃이 밭을 이루는 곳이다. 긴 능선을 따라 내려서다 갑자기 작은 산을 만나는데 너덜지대로 이어지는 이곳은 언제나 변함없이 바람이 세차게 부는 곳이다. 겨울철에는 힘들겠지만 오늘같은 무더운 여름날에는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곳이다. 이마에 흐르던 땀방울을 아니온 듯 훔쳐가 주니까...

 

 

지도상의 암봉

정상은 리본이 여러개 달린 오래된 군 벙커가 있다. 널따란 암반위에서 점심을 하고 계시던 등산객 몇 분이 한 숟가락이라도 같이 나누자고 권한다. 말씀은 고맙지만 우린 이미 병풍바위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어치워버린 후다. 주위는 커다란 바위들이 얽히고설킨 너덜지대... 

 

 

녹음이 짙은 산 숲을 걷는다. 집사람과 함께 하는 산행의 즐거운 덕분인지 내딛는 발걸음은 한없이 가볍고, 들이쉬는 공기에 상큼함이 진득하니 묻어 나온다

 

 

암봉은 왼쪽부터 신선봉, 상봉, 황철봉, 대청, 중청, 귀때기청봉, 그리고 북쪽으로 향로봉과 금강산, 지척에 마산이 한눈에 조망되는 훌륭한 전망대이다.  

한참 산을 걷다 문득 뒤돌아보면, 초록빛 능선들이 나를 따라 산정으로 오르고 있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아름다운 산릉들이... 그리고 초목들이 나를 향해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산에 내가 있음을 느낀다.

 

 

산, 그것만으로도 난 기분이 좋다. 엊그제 내린 소나기로 더 촉촉해진 풀잎엔 풋풋한 내음이 더욱 짙게 드리우고, 싱그러운 향기가 더욱 상쾌하게 느껴지는 7월...  

산에 들면 神仙... 난 높은 산에 올라 호젓한 등산로를 걸을 때, 간혹 탈속한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다 하산은 다시 환속... 오늘 나는 또 다른 세상을 살다가 현실로 되돌아 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힘겨운 산행이 내게 주는 즐거움이라고나 할까?

 

 

암봉에서 툭 트인 조망에 감탄하다가, 지루해질 때쯤 까탈스런 너덜지대를 지나 내려오면 대간령(새이령)이다 급경사 오르막을 죽을힘을 다해 오르다보면 저만큼 봉우리 위에 푸른 하늘이 보일 때가 있다. 그것은 정상에 도착했다는 시그널이다. 그 때의 희열이란...,  그 희열에 대한 기대가 있기에 힘듬을 참고 산을 오르는 것일 것이고, 그 희열은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암봉의 밑자락은 커다란 바위들이 도열을 하고 있다.

쌓여 있기도, 또한 서 있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홀로이지 않고, 여럿이 함께 도열해 있다. 이게 바라 우리가 소망하는 어울림의 세계가 아닐까?  

 

 

너덜지대를 조심스럽게 내려서서 뒤돌아 보면 쉴 새 없이 불어대는 세찬 바람에 힘겨운 듯 서북쪽으로 등을 돌리고 늘어선 나무들의 모습에서 끈질긴 생명력과 억척스런 삶의 현장을 엿볼 수 있다. 

 

 

저 건너 바위위에서 사이좋게 마주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중년의 한쌍... 도란거림이 여기까지 들리는 듯, 그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인데, 지금 내 곁엔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사랑까지 있으니, 이보다 더한 행복 어디에 있을까?

 

 

좋다. 그저 난 좋다. 내 일상에서 찌든 때를 떠나온 세속에 벗어놓고 이렇게 하늘에 닿아 있는 산길을 걷는다. 그 자체만으로도 내게 작은 기쁨이고 즐거움이다.

 

 

너덜지대를 지나면 길은 또다시 순탄해진다. 마치 양탄자 위를 걷는 것처럼... 간혹 길가의 다래넝쿨이 앞길을 막지만 푹신푹신한 길이 고맙기만 하다. 길섶의 산나리 꽃이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며 반겨준다. 

 

 

온갖 야생화가 만발한 등산로 주변은 굴참나무, 단풍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나무 밑 음지에는 산나물들이 많이 보인다. 곳곳에 멧돼지 가족들이 산 전체를 아예 개간이라도 하려는 듯, 온통 헤집어 놓았다.  우리 집사람 행여나 멧돼지를 만날까 두렵단다.

 

 

길은 낮은 경사지와 평지를 반복한다. 주변에는 고사리나 참나물 등 산나물이 많고, 여기저기 이름모를 야생화들이 천국을 이루고 있다, 

 

 

 

대간령(큰 새이령)

마산과 신선봉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진부령과 미시령이 생기기 전에는 영동과 영서를 잇는 중요한 고개였으나 지금은 희미한 옛길로 남아있다. 평평한 지대로 팽나무 비슷한 나무가 서 있는 게, 옛적에 주막이 있었다는 물증??   옛 선인들이 이곳을 지나며 쉬어가던 원집터, 그 숨결이 지금도 전해지는 듯한 그곳엔 어느 등산객이 세워놓았는지 초라한 이정표가 우릴 맞고 있다. 조금 초라하면 어떠리... 찾는 이들은 감사할 따름이다.

 

   

 

 

 

우리가 바라는 삶에서 가장 행복한 마음이란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호젓한 산길, 나무로 둘러싸인 숲에서는 피톤치드가 무한정 넘쳐흐르고, 저 건너 참나무에 내려앉은 새들은 쉴 새 없이 속삭인다. 서서히 또 서서히 즐기면서 걸으라고...  

 

 

하늘을 뒤덮은 굴참나무 숲속에서, 어둠을 털고 일어서는 풀잎엔 생명이 영글고, 엊그제 내린 빗방울이 아직도 덜 떨어져 내렸는지 간혹 무릎을 적셔주고 있다.  

 

 

 

대간령 바로 밑에서부터 시작되는 계곡에 들어서면 유리처럼 투명한 물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산 정상과 계곡 초입의 표고차가 겨우 200m. 신선봉 등산로를 제외하고는 가는 길이 힘들지 않다.  물굽이 계곡은 커다란 특징은 없지만 아래쪽을 군부대가 가로막고 있어 사람들이 뜸하다. 덕분에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딱 좋다.

 

 

물굽이계곡

미시령 북쪽의 신선봉과 마산 사이에 있는 계곡.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려 설피를 신고 다닌다는 흘리마을이 바로 옆에 붙어있다.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활엽수림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가을이면 단풍잔치가 벌어진다. 

     

  

  

 

길가 우거진 숲과 여울지는 청명한 물소리... 옛날 옛적, 이 고개를 넘나들던 사람들의 느꼈을 풍취를 더듬어 본다. 아니 그들은 결코 풍취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고요한 숲속에 이름모를 산새들의 울음소리만이 정적을 깨드린다. 바위 굽이를 돌아 흐르는 물소리는 별개이고...  '이왕에 버린 몸' 계곡을 건너다 미끄러져 물속에 잠겼다 나온 집사람, 이젠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성큼성큼 계곡을 건너버린다

 

 

개울 따라 마장터로 내려가는 계곡의 양 옆에서는 가끔 미끈한 황장목들을 만날 수 있다.  

또는 금강송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금강산 소나무'의 줄임 말,,, 봉화에서 나 황장목이 춘양역에서 집결했다가 전국으로 팔려나간다고 해서 '춘양목' 미인처럼 쭉쭉 잘 빠졌다고 해서 '미인송'이라고도 부르고 있으니 입맛에 맞게 골라 쓸 수 있다.

 

 

마장터에 들어서면 억새지붕을 이은 낡은 귀틀집을 볼 수 있다.

마장터의 널따란 공터 한 귀퉁이엔 깔끔한 집 한 채(주인은 백승학씨라는데 만나볼 수는 없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곳을 감안할 때, 한 켠에 설치된 판들은 아마도 전기를 생산하기 위한 태양열 집열판이겠지?? 옛날엔 이곳에 20여호 정도의 주민들이 살았었지만, 외진 곳이라서 지금은 단풍철에도 사람이 붐비지 않아 호젓하다.

 

 

왼편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 본다. 최근까지 화전민촌이 거주했다는 조그만 귀틀집 두 채가 보인다. 지붕을 파란 비닐 천으로 감싼 인적이 끊긴지 오래인 듯, 빈 집만 덩그라니 보이고, 한편엔 꿀을 채취하려는 듯 꿀벌 통 서너 개가 늘어서 있다. 보잘 것 없는 집이지만 귀틀집을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이 간혹 찾아간단다. 나도 역시..

 

  

새이령 계류와 흘리 계류가 만나서 물굽이계곡을 만들고 매자봉 물줄기를 만들어 소양강의 상류인 북천을 이룬다. 이 곳 사람들은 합수(두물머리)를 ‘합수베리’라 부른다. 계곡을 내려가다 이끼 덮인 바위틈에서 쪼르륵거리며 흐르는 물을 두 손으로 가득 담아 벌컥벌컥 마셔본다. 배속을 휘젓는 청량감이 좋다. 저절로 나오는 휘파람.... 휘리링~ 휘이링~~

 

 

마장터를 지나 계곡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계곡 옆으로 토끼길 같은 숲길이 이어진다. 아직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이라서 길 찾기가 쉽지 않다. 고개를 숙이고 우거진 숲을 지나는가 하면 표시가 잘 나지 않은 계곡을 따라 걷거나 가로 질러야 하는 산길이다. 

 

 

물굽이계곡의 합수지점에서 흘리계곡으로 접어든다.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는 계곡 따라 희미한 소로로 나타났다 없어졌다 희미하게 이어진다. 흘리계곡은 물굽이 계곡 보다 수량은 적지만 협곡안에 작은폭포와 소, 암반 등의 경관이 범상치 않다. 다만, 물은 흘리의 생활하수가 흘러 내려온 탓인지 빛깔이 흐리다.  

 

 

합수베리에서 물굽이계곡과는 이별을 해야만 한다. 군부대의 사격장이 버티고 있어 위험하기 때문... 계곡을 계속 걷고 싶다면 여기서부터 흘리계류로 접어들어야 한다.  

 

 

신선봉과 대간령에서 흘러내려 오는 물이 잔잔하게 흘러 아름다운 물굽이를 만든다. 계곡 풍광이 아침가리 계곡과 비슷하다. 곳곳에 작은 소와 와폭, 여울이 져 흘러 요란하지 않으면서, 호젓한 계곡 트레킹을 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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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리 계류와 새이령 계류의 양 쪽 물줄기가 대조적이다.

새이령물은 옷추럼 투명하나 흘리계곡물은 시커멓게 오염되어 있어 두물이 만나는 물굽이물까지 혼탁하다. 바깥 흘리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폐수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스키장이 개장되고 나면 얼마나 더 오염이 될까?  흘린 땀도 씻을 겸 냇가로 내려서 보지만, 흐린 물에 물속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 나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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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리로 회귀하는 물굽이골은 비교적 가파른 산길, 가끔 습지가 나타나 발길을 잡는다. 그러나 머리 위를 짙은 숲이 둘러싸고 있어 산행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야생동물의 주 이동로인지 간혹 멧돼지 등의 야생동물들이 곳곳에 먹이를 찾기 위해 흙을 파헤쳐 놓은 흔적이 보인다. 

언제나 습기가 많아서인지 중부 산간지방에 서식하는 야생 식생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름 모를 앙징스런 하얀 꽃, 생소한 나무들... 생경한 식물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산행날머리인 흘리로 나가는 시멘트 길

오랜 세월 숙성시킨 맑은 이슬이, 풀잎에 맺혀있던 물방울처럼 소리 없이 흘러내려 떨어지던 날, 난 삶을 휘둘러 나가던 속도를 잠깐 멈추고 자연에 안겨보았다. 아 물소리...  

송화 가루 떨어진지 오래지만, 연초록의 물굽이로 도는 지난세월 아쉽다 운다. 칠월의 푸른 물굽이에 나는 오늘 내 마음의 짐을 자연 속으로 날려 보냈다.

 

치악산 (1,288m)


산행코스 : 성남리→상원골→상원사→남대봉(1,181m)→영원사→영원골→금대리 매표소 (산행시간 : 점심시간 포함, 5시간 30분)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산행일 : ‘09. 6. 20(토)

함께한 산악회 :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산악회


특색 : 성남리에서 출발하여 영원골매표소로 내려오는 코스는 남대봉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코스이나, 무릎 관절이 안 좋은 사람들은 역방향으로 진행하는 게 좋을 듯 싶다. 영원골은 가을단풍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급경사에 너덜길이라서 무릎에 부담을 주기 때문...  

 

 

산행들머리는 성남리 매표소(상원골)

상원골은 남대봉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곳으로, 골골마다 맑은 계곡이 흐르고, 또 사방에 울창한 숲이 우거져 사시사철 청신한 기운이 물씬 풍긴다.

 

 

자 몸부터 풀고... 오늘도 김병곤간사의 구령에 따라 하낫! 둘!

산 속의 모든 것들, 시방 죽어 있지만 곧 살아날 것들, 아직 살아 있지만 곧 죽을 것들, 사소한 것들 속에 깃든 계절의 엄혹한 순환,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나에게 말은 거는 것 같다.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것이 아닐까..

 

 

 

상원골

등산로는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시작된다. 경사 또한 완만... 완만한 오르막길에서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한걸음 두걸음 옮기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리 넘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의 수량... 곳곳에 만들어진 조그마한 폭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여기도 폭포, 저기도 폭포, 맑은 계곡물은 돌맹이를 휘감거나 뛰어 넘은 다음, 힘차게 바위 아래로 뛰어 내린다. 그리고 한없이 흘러간다.

 

 

상원사를 오르는 상원골(약 4Km 정도)계곡은 시작하는 초입부터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숲에 가려져있다. 지금은 아침나절, 그리고 비가 내리고 있다. 계곡은 짙은 그늘 탓에 햇빛이 한줄기도 비치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새벽길을 걷는 듯하다.  

 

 

 

오늘 산행의 안전을 빌어보는 여심... 

아니 어쩌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정상을 밟아보고 싶은 욕심일지도...**^^**

나 아니라도 누가 하겠지 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것을 잃게 만든다. 추억어린 장소나 건물,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늘 거기 있겠거니 믿는 무관심 때문에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산에 와서 제일 힘든 때는 능선에 오르기 전까지이다.

그러다가 일단 능선을 오르기만 하면 대개의 경우 처음보다 한결 더 편한 길이 된다. 그러나 오늘은 힘든 오르막이 거의 없는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종 이어진다. 치악산은 육산 길이다가 바위산 길이 되는 것이 되풀이 되지만, 오늘 오르는 남대봉은 완전히 육산... 치악산을 오르는 여러 코스 중에서 제일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이다.  

 

 

역시 피로회복에는 복분자가 최고...

행여나 힘들세라  박동현실장이 챙겨온 복분자주를 한잔씩 나누어주고 있다. 술 좋아하는 난 석잔... 

오십년은 제법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 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영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초입부터 한 시간 반쯤 길동무해주던 계곡의 물소리가 된비알을 만나자 더는 못 가겠다고 등 뒤로 잦아든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젊은 직원들도 조용해지고, 초입부터 힘들어하던 여직원들은 같은 속도에서도, 숨이 가쁜 얼굴이 불그레 홍조를 띤다.  

 

 

아름드리 들메나무와 물푸레나무 아래에 있는 쌍룡수 샘터

먼저 도착한 박실장이 내미는 물바가지의 물은 그야말로 감로수... 힘들게 오르며 참았던 갈증을 한순간에 해소시켜 준다. 주 등산로에서 10m도 벗어나지 않은 근거리이지만 뒤따르던 여직원들은 감로수도 포기한 채 곧바로 직행... 산행이 많이 힘드나 보다.  

 

 

상원사

상원사가 위치한 곳의 해발고도가 1,084m로 기재되어 있다. 비로봉 가는 길목에 있는 향로봉보다 더 높다. 이 정도의 높이에 있는 절이라면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 같다. 물론 사(寺)자가 끝에 붙는 절 중에서 말이다.

 

암(庵)자 까지 합하면 더 높은 절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곳만 해도 지리산 반야봉 바로 밑의 묘향대(妙香臺)는 1,485m,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은 1,208m(일설은 1,244m)이니 상원사보다 훨씬 높다 할 것이다.  

 

 

가을 단풍이 하두 아름다워 적악산으로 불리던 이 산이, 꿩의 보은이 있은 후로 꿩 雉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불리게 되었단다.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꿩을 구해준 선비... 암컷 구렁이의 보복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선비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던 꿩이 자기 목숨을 버려가며 울려준 종소리 때문에 살아났단다. ‘한낱 미물도 저렇게 은혜를 아는데, 검은 머리를 갖은 동물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말라니...’ 

 

 

보통 깊은 산속에는 뱀이 많다. 헌데도 절에 뱀이 있다는 말은 낯설으니 웬일일까?  뱀도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종소리를 싫어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설화 속의 구렁이가 절에서 치는 아침 인경소리에 놀라 물러난 것이리라...  

 

 

상원사의 마음씨 고운 보살님

비 내리는 치악산은 점심장소가 마땅치 않다. 아니 다른 산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러나 우린 이 마음씨 좋은 보살님 덕분에 요사채의 따뜻한 아랫목에서 오순도순 식사를 나눌 수 있었다.  

 

 

혹시 ‘잘 보살펴 주시는 분이라고 해서 보살님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아무튼 보살님의 보살핌으로 우린 편안하게 앉아서, 임원진이 준비한 김밥과 떡을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 시골된장 듬뿍 올린 청양고추는 덤...

 

 

‘막걸리 한잔 하시죠’ ‘아니 절에서 술을 먹는 건 좀 거시기헌디...’ 눈치빠른 배팀장은 이미 보살님에게 양해를 구했단다. 살얼음이 동동 뜬 막걸리 한잔은 또 다른 감로수였다. 준비한 막걸리를 팀원들과 나누어 마시려고, 많이 뒤쳐진 김현주양을 일주문 밑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배팀장의 순정이 많이 돋보이던 하루였다.  

 

 

상원사를 지키는 개새끼(우리 직원을 물었으니 새끼소리 듣는 건 당연) 

어느 정보 부족한 사람의 후기에 ‘성격이 온순하여 짖지를 않는다.’고 적혀있는 것을 봤는데... 저 벙어리 개는 결코 온순하지가 않다. 개집 옆으로 난 길을 내려서던 우리 직원의 장딴지를 물어버렸으니 말이다.  

 

  

정상에서 조금(0.4km) 내려서면 남대봉에서 갈라지는 백운지맥을 만난다. 시명봉쪽은 로프가 쳐져있고, 등산로 아니니 애시당초 가지를 말란다. 아~~ 상원사에서 남대봉 정상을 들르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삼거리는 조금전에 이미 지났다.

 

< 백운지맥 >

영월지맥 남대봉에서 분기하여 시명봉, 백운산(1085.7)을 지나 섬강이 남한강에 합수하는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까지 이어지는 48.6km 산줄기다.  

 

 

남대봉 (南台峰 1,180m)

정상은 넓은 헬기장이다. 비로봉으로 가는 길가에 이정표가 서 있고, 이정표 기둥에 남대봉 정상임을 알리는 표시를 해 놓았다. 이정표 뒤편에 산불초소...  

 

  

회장님은 목하 술 분배중...

정상에 선다. 산행 초입부터 내리던 가랑비는 어느덧 제법 굵은 빗방울로 변해있다. 사위는 짙은 구름에 둘러쌓여 시계가 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저쪽에 비로봉이 있겠지? 그저 가늠해 볼 따름...

 

 

남대봉에 도착하면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있는데, 이 능선들이 바로 영월에서 춘천으로 이어지는 영춘지맥이다. 북쪽 능선은 비로봉과 매화산을 거쳐 춘천의 서천리로 이어지고 동쪽 능선은 영월의 각동리로 이어진다.

< 영춘지맥 >

강원도 영월의 태화산에서 춘천의 춘성대교에 이르는 도상거리 272Km의 지맥이다. 이 지맥을 답사하다가 중간에 그만두었던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우리나라 산맥을 모두 다녀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볼 의미가 없는 산으로, 무미건조한 산행이 될 소지가 많은 지맥이다.

 

 

정상을 공식적으로 정복한 이쁘니들...

국립공원답게 곳곳에 이정표는 물론, 세로 기둥에다가는 친절히 해발 높이까지 명기하고 있다. 이정도 친절이면 초보 등산객이 혼자 뒤떨어져서 걷게 될지라도 길을 잘못 들까 염려되지가 않아도 될 듯...  

 

 

꿩이 울렸다는 종소리는 뭘 의미하고 있을까?

통상적으로 듣는다는 행위는 소리가 있고, 귀가 있고, 그것을 통합하는 뇌라는 것이 있어 소리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은 그와 다르다. 능엄경에서 부처님이 ‘아난에게 종을 치도록 한 후, 소리가 사라지고난 다음에 아난에게 듣느냐고 묻는다. 아난이 듣지 않는다고 하자 다시 한번 종을 치도록 하고 앞에서처럼 묻는다.’ 소리는 있다가 사라진다 할지라도 들음은 항상 그대로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 

 

 

따라서 상원사에서 꿩이 울린 종소리의 의미는, 종소리를 통해서 듣는 주체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수행의 한 방편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듣는 소리는, 소리자체는 변함없지만, 진정 그 이전보다는 다른 맛일 것이다. 아니면 원래의 범종이 가진 ‘삼계(欲界, 色界, 無色界)의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얘기일 것이고..’  

 

 

18계(6근+6경+6식)란 세계를 이루는 구성요소이며, 불교의 수행은 이 18계를 관찰하여 무상, 무아, 고를 체득하여 집착을 여의면 불교의 추구하는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공덕이 뛰어난 것은 귀와 의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다른 근들은 항상 관찰(변화를 살피는 것)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악산에 왔다가 를 떨고 간다.'는 소름끼치는 속어를 갖고 있는 산이지만, 다행이도 산악회 임원들의 배려로 치를 떨지 않아도 되었다. 치를 떨게 만드는 구룡사에서 비로봉까지 올라가는 사다리병창을 피하여 남대봉만 코스를 잡은 덕택에... 그러나 사실 영원골은 급경사에 너덜길이라서 더 힘든 코스이다.

< 사다리병창 > 

거대한 암벽군(岩壁群)이 마치 사다리꼴 모양으로 되어있고 내리막길 좌측은 천길 절벽 암벽이라 내려다보기조차 힘든 병풍 같은 절벽이다. 그 사이 사이에 자라난 나무들과 어우러져 사시사철 독특한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 병창은 영서방언으로 "벼랑', "절벽"을 뜻함

 

 

지루한 하산길에서 잠깐이나마 문학 장르에 나타난 치악산을 그려본다. 

이인직은 신소설 '치악산'에서 치악산을 ‘산세가 험하고 우중충하여 대낮에도 호랑이가 득시글거리는 야만의 산’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만큼 산이 험하다는 말일 것이다. 한편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이중환은 '擇里志'에서 치악산을 ‘산신의 영험이 많아서 사냥꾼도 감히 짐승을 잡지 않는다.’고 표현하고 있으니, 치악산은 매우 험하면서도 신령스런 산일 것이다.   

 

정상에서 약 1.5km 정도 내려오면, 양쪽으로 벌어진 거대한 암벽 사이로 지나가게 된다. 큰물이 나면 그대로 물길이 되어버릴 만한 협곡... 장마철에는 가급적 이 코스를 피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신갈나무, 단풍나무, 생강나무들을 다래넝쿨이 뒤 덮고 있는 영원골은 그야말로 원시림이다. 우중인지라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데다 하늘까지 숲으로 덮힌 계곡은 사물이 흐릿할 정도로 어둡다.  

 

단풍나무가 당당하게 일편단심을 뽐내고, 생강나무는 널따란 잎이 샛노란 아름다움,,, 아직 오지도 않은 가을을 그리워해본다. 빨강과 노랑의 경연이 벌어지는 아름다움은 산을 찾는 사람들을 숨을 죽이고 색깔에 취하게 만들텐데... 

 

가을이면 저 영원골 계곡에서는 너나없이 자신도 모르게 화가가 되고, 마음의 도화지를 펼치고 꿈꾸는 눈길로 색칠하기 바쁘게 만들텐데... 그래서 치악산의 옛날 이름이 적악산이었을 것이다.

 

산행 날머리는 금대리 국립공원 금대분소

영원사에서 금대리 야영장(주차장)까지 2.4km는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가에 [雉岳山 영원사] 표석이 있는데 영원 글자가 묘하다. 鴒(할미새 령)에 옥편에도 안나오는 原+鳥(원)자로, 둘다 새鳥字를 붙었다. 상원사 꿩의 전설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영원사 (512m)

영원사는 다른 곳처럼 절 마당을 거치는 게 아니라 길에서 위쪽으로 벗어나 있다.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일부러 올라가 본다. 경사가 심한 등산로는 여기까지.. 걷기 편한 임도로 바뀐다  

 

영원사에서 바라본 남대봉

영원골은 골짜기 풍광이 수려하고, 수량이 넉넉해 여름철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코스이다. 산길은 초반에는 급경사 너덜길이라 지루한 느낌이 들지만, 곧 골이 터지면서 제법 웅장하고 아름다운 골짜기가 물줄기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 환해지고...‘

 

이해인 수녀님의 ‘나를 키우는 말’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힘들고 지쳤다가도 산을 다녀오면 다시 처음의 환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 그만큼 ‘아름답다’라는 말을 많이 해서인지도 모른다.

  

백석산 (1,365m)


산행코스 : 모릿재→임도→잠두산→안부→백석산→마랑치→영암사→던지골→송어양식장 (산행시간 : 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5시간)


소재지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대화면의 경계

산행일 : ‘09. 5. 23(토요일)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색 : 1천 미터가 훨씬 넘는 높은 산이지만, 버스가 다니는 모릿재에서 시작하면 짧은 시간 안에 잠두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바윗길이 간간히 섞인 등산로는 대부분 포근한 흙길... 다만 던지골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경사가 만만치 않다. 봄철 나물채취 산행이 아니라면 구태여 시간을 내어 찾아볼 이유는 없을 듯...   

 

 

산행들머리인 모릿재 터널

대화면 신리와 진부면 마평리를 잇는 지방도로가 백적산과 잠두산 사이의 낮은 고개를 지나게 되는데, 산행은 터널 50m 전방에서 우측의 임도를 따라 진행하게 된다.    

  

 

임도의 고갯마루에서 잠두산을 가려면 우측의 통신시설 방향으로 올라서야한다. 반대편 산 들머리에는 백적산 가는 길목임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있다.

오늘밤 잠들었다가 내일 아침 깨어나지 않아도 여한이 없도록 그저 오늘 하루를 미련 없이 살자고 다짐해 왔는데, 그게 아닌가. 내년 봄의 기쁨을 꿈꾸다니...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는 기능이 남아 있는 한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 것이구나.

 

 

잠두산 가는 등산로는 비교적 유순한 능선이 계속된다. 등산로 주변은 신갈나무 군락... 몇 십년 살아왔음직한 거대한 참나무들이 신록의 빛깔에 젖어 하늘 한자락 보여주지 않는다.

이슬에 젖은 풋풋한 풀과 흙냄새를 맡으며 흙을 주무르고 있으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과 평화를 맛보게 된다.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순간들도 남들 못지않게 많았고, 심장이 터질 듯이 격렬하게 행복했던 순간들은 지금도 가끔씩 곰씹으면서 지루해 질수 있는 삶을 추수를 수 있는 활력소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크고 작은 행복감의 공통점은 꼭 아름다운 유리그릇처럼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섞여있다는 것이다.   

 

 

잠두산 가는 길은 큰 고도차가 없는 능선길이 이어진다. 울창한 수림아래 발목을 덮는 낙엽길을 걸으니 푹신푹신한 양탄자 위를 걷는 듯, 심신이 두루 평안하다.

자연의 질서를 긍정하고, 거기 순응하는 행복감에는 불안감이 없다. 아무리 4월에 눈보라가 쳐도 봄이 안 올 거라고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변덕도 자연 질서의 일부일 뿐 원칙을 깨는 법은 없다.

 

 

 

신록이 눈이 부시다. 거뭇거뭇한 소나무의 진녹빛에서 참새 혀처럼 뾰족하게 솟은 청아한 빛, 그리고 하늘을 가려버린 참나무의 짙은 연록빛까지 산은 온통 푸르다. 농담을 달리하는 녹색의 계조, 이 계절이 아니면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다. 거기다 드문드문 스러져가는 철쭉꽃의 농염함까지 가세했으니, 어느 시인이 있어 이런 아름다움을 필설로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가 죽는 날까지 배우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할 것은, 사물과 인간의 일을 자연 질서대로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가 아닐까.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길가엔 등산로 주변엔 철쭉이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그 분홍빛 꽃잎따라 흩어지는 붉은 빛살... 5월 중순의 연초록 빛 전지위에 알알이 박힌 붉음은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철쭉나무도 땅에 착 달라붙어있는 듯한 작은 나무가 아니라 가지가 다발을 이룬 높이 2미터가 넘을 듯한 큰 나무들이다

 

 

잠두산 정상이 빼곡히 보이는 곳에서부터 등산로는 급경사가 시작된다. 가파른 바위지대가 정상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물먹은 바위가 수입등산화의 비브람창까지 거부할 정도로 미끄럽기 한량없다. 조심, 또 조심...  

내가 바라는 것들은, 내가 기다리지 않아도 올 것이다. 그래도 나는 기다릴 것이다. 기다리는 기쁨 때문에 기다릴 것이다.

 

 

잠두산이 가깝게 보여 금방 오를 듯 했는데도, 정상은 시종 그만그만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다가 전위봉을 출발한 지 30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잠두산 정상에 도착... 급경사 오르막길이 무척 힘들다 했더니만, 확인해 보니 전위봉에서 정상까지 약 250m의 고도차를 보이고 있다. 힘들지 않았다면 차라리 그것이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잠두산 정상(산의 모습이 누에벌레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바위와 잡목터널을 지나면 T자형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에 잠두산이라 적힌 푯말이 매달려 있다. 이렇다할 정상석 하나 없는 가난하고 불쌍한 산... 날씨가 맑으면 왼쪽에 금당산과 거문산, 오른편에 오대산, 발왕산 등이 보이겠으나, 오늘의 일기예보는 가는 비... 사위는 온통 구름에 덥혀 조망은 일절 없다.  

 

 

 

걷기에 딱 알맞은 크기의 파란 산죽이 운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 뒤에 원시림을 이룬 거목들이 병정처럼 줄지어 있으니 이런 길이라면 마냥 걸어도 전혀 힘들다거나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잠두산에서 백석산에 이르는 능선은 가히 산나물의 천국...

잠두산에서 백석산까지의 길은 큰 고도차가 없어 아주 편안한 진행이 된다. 특히 중간 안부까지는 펑퍼짐한 육산형태인데다가 거의 평지길에 가깝다. 이 능선 곳곳은 산나물의 보고이다. 산록의 5월 중순을 나타내려는 듯 노랑제비꽃들이 화원을 이루고 있는 사이사이에 곰취, 참취, 단풍취가 자주 눈에 띄고, 참나물과 당귀의 향이 코끝을 자극하고 있다. 보편적으로 산나물은 참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육산의 경사면에 많이 분포하고 있다.  

 

 

노랑 제비꽃으로 가득한 풀밭화원... 별처럼 빛나는 작은 꽃들이 능선을 뒤덮고 있는 모습은 가히 천상화원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싶다. 온통 짙은 운무에 둘러싸여있는데도 저렇듯 아름다운데, 만일 화창한 날씨였다면 얼마나 더 화사했을까? 비록 이곳뿐만이 아니고, 5월의 우리 산들은 어디나 할 것 없이 요란한 천상의 화원이 되어 간다.  

 

 

백석산 정상

정상은 헬기장이다. 여긴 잠두산보다는 조금 나은 듯... 대화면장이 세워 놓은 정상표시판이 서 있다. 비록 작고 초라할망정... 백석산에서 마량치로 가는 능선에는 백석산 정상보다 더 높은 봉우리들이 있어서 표시판이 없으면 정상이 어딘지 몰라 헤매고 다닐 것이 뻔하다.  

 

 

백석산은 이름으로 유추해 보면 ‘하얀 바위가 있는 산’, 그러나 백석산 어디에도 흰 바위는 없다. ‘바위에 다닥다닥 붙은 석이버섯을 멀리서 보면 하얗게 보이는데, 이곳 백석산 바위에 석이버섯이 많다’ 그래서 백석산이라 불리었다는 얘기도 전해져 온다.  

흙길을 걷고 있으면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느끼기만 하면 된다. 요샌 한창 땅기운이 왕성할 때다.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산천초목을 통해 지상으로 분출하고 있다.

 

 

백석산 정상은 뾰족한 암봉이다. 암봉은 남쪽으로 조금 떨어져 비슷한 암봉 두어 개를 더 솟구치고 있다. 하지만 백석산은 서쪽이 험준한 암벽을 이루고 있을 뿐 동쪽은 밋밋한 사면으로 이루어진 육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암봉으로 보이던 것은 주능선 서쪽을 형성하고 있는 일정한 높이의 단애일 뿐이다.

흙길을 걷고 있으면 나무만큼은 아니라도 풀만큼도 못하더라도 그 생명력의 미소한 부분이나마 나에게도 미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그 힘이 비록 나에게 이르러 잎이나 꽃이 되어 피어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이 풍진세상을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이 된다면 어찌 미소하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마랑치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1Km 정도의 거리로서, 정상과의 고도차이가 60m정도밖에 되지 않아 길은 평탄하다. 이 구간에는 참취와 곰취 등 산나물들이 많이 눈에 띈다.  

땅기운과의 편안한 친화감에 힘입어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게 된다. '이렇게 당당하게 걸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리는 동안만 살게하소서' 라고,허나 이렇게 엄청난 욕심이 어찌 기도가 되겠는가. 응석이지...

 

 

 

해발고도가 1200여 미터쯤에 위치한 영암사에서 던지골까지는 약 600미터의 고도차를 보이는 급경사... 겨울이건 여름이건 이 급사면을 오르는 일은 꽤나 힘이 들듯 싶다. (정상 가까이에 위치한 영암사는, 개화기 때 심마니들이 산삼을 캐기 위해 지어 사용했는데, 6·25전쟁 이후 사찰이 되었단다. ‘허름하고 퇴락한 여염집’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더 어울릴 정도... )  

 

 

하산길 능선은 암릉은 아니지만 곳곳에 바위가 불거져 있어서 암릉같아 보인다.

 

효율적으로 산을 오를 수 있도록 지그재그로 길을 내 놓아, 심한 경사도에 비해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거기다 곳곳에 하얀 동아줄을 매어놓아 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다. 아마 절을 찾는 신도들을 위해서 영암사에서 설치한 듯...  

 

 

던지골

영암사에서 도상거리 1km 정도의 구간을 고도 600m가까이 낮추는 것은 그야말로 뚝 떨어지는 급경사... 내리막길을 40분쯤 내려오면 계곡을 접하게 된다. 계곡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수량은 풍부한 편으로 여름철 알탕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 같다.  

 

 

평창은 진경산수의 땅이다. 송림과 활엽수림, 그리고 유장하게 흐르는 평창강이 어우러져 속 깊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땅 어디라고 그런 미학이 없는 곳 없겠지만... 적당한 산과 적당한 물, 그리고 숲이 찾는 이의 한가로움을 자극한다.  

 

 

산행 날머리인 던지골 입구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임도를 따라 10분을 내려가면 던지골 마을이 나타난다.

오늘 찾은 백석산, 잠두산은 보는 시점에 따라 모습을 달리했지만 한결같이 장엄하고, 관대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섣불리 산을 정복해 보겠다고 날치는 젊은 날들에는 결코 볼수 없는 산의 진면목이었다.  

석화산 (1,146m)


산행코스 : 백성동→만나산장 가든→동봉(지형도상의 석화산)-짝바위→석화산(지형도상의 문암산)→북능선 안부→백성동계곡→만나산장 가든(산행시간 : 3시간)


소재지 : 강원도 홍천군 내면

산행일 : '09. 3. 15(일)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색 : 오지라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고, 방태산, 계방산, 오대산 등 기라성 같은 명산들이 유명세에 눌려 산꾼들의 접근이 뜸했던 산이나, 돌꽃산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바위경관과 분재같은 노송들... 흙속에 묻혀있던 진주 같은 산이라고 부르고 싶다.  

 

 

만나산장 가든

산행들머리는 자운천이 흐르는 산 동녘자락의 창촌리 백성동(금화읍에서 양양읍에 이르는 56번 국도가 지나간다)이다. 해발 600m정도로 알려진 백성동 입구 석화산 방향에 ‘맛나산장 가든’이라는 입간판이 보이고, 다리를 건너 잘 포장된 시멘트도로를 200m정도 올라가면 가든이 보인다.  

 

 

산행은 가든 조금 못미처 왼편으로...

서있듯이 가파른 급경사 오르막길은 시작부터 등산객들의 기를 죽이고 만다. 그러나 등산로에 주욱 설치해 놓은 로프를 잡고 쉬엄쉬엄 오르다 보면, 10여분 후에는 능선에 이르게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마실 것...   

 

 

산의 초입은 온통 참나무 숲이다. 잎이 모두 저버린 참나무 가지사이로 푸르른 하늘이 허공에 걸려있다. 이미 경칩이 지난 초봄... 바람은 아직 차지만 결코 맵지는 않은데, 바삐 걷는 산객들의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 두어개 걷는 이도 모르게 살며시 훔쳐간다.  

 

 

참나무 숲이 지루할 즈음(산행을 시작한지 반시간쯤 지나..)

하늘을 찌를 듯 까마득히 솟은 몇 그루 적송이 일주문인양 대문을 활짝연 채로 산객들을 맞고, 10여분 정도 녹색의 솔향 코끝에 킁킁거리다 보면 본격적으로 쭉쭉 뻗은 잘생긴 적송군락을 만날 수 있다.

 

소나무들과 어울리며 다시 10여분을 걷다보면 산의 이름에 걸맞는 돌꽃들이 진면목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비록 660m고지에서 시작한 산행이지만 석화산은 1000m가 넘는 산...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산인데다가 눈까지 쌓여 여간 힘들지 않다. 위험한 암벽 코스가 여러 곳 있지만 로프가 매어 있어 조심만 하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다만 눈길에 미끄러질 우려가 있으니 아이젠은 필수... 

 

 

 

석화산 동편능선의 풍경은 설악산 어느 곳에 비교해도 가히 뒤지지 않을 만큼 암봉미가 빼어나다. 그래서 이름이 돌꽃산이라 붙지 않았을까?   그러나 발길 바쁜 난, 화폭에서나 봄직한 절경은 가만히 가슴에다 갈무리한 채, 만물상을 새긴 암릉 밑을 돌아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석화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급경사 밧줄의 연속...

올라서면 전망대요, 바위봉우리 뒤엔 또다시 바위봉우리... 봉우리와 봉우리사이가 대문을 닮은 곳도 자주 눈에 띈다. 그래서 문암산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정상의 안내판에서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까마득히 높이 솟아 길을 막아선 바위벼랑를 바라보며 한숨짓는데, 문득 크고 작은 바위문들이 길을 열며 어서오라 손짓하고, 급경사 오르막길을 올라갈 수 있게 인도 해준다.

 

 

굵은 고목이 비스듬이 팔을 괴고 누운 바위.. 고사목과 키재기를 하고 있는 바위.. 까마득한 벼랑위에 석이버섯을 덕지덕지 얹고 있는 바위... 갑자기 등산로는 험해지기 시작한다.  

 

 

사진은 발로 찍는 것이라 하여 등산로 외에도 이리저리 올라본다.

여기저기 입석의 기암도 점고하고, 그 위에 세월에 찌들은 소나무도 앉혀본다. 그 곁에 흐르는 구름과 살랑이는 바람까지 더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만물상 밑을 우로 돌고, 좌로 돌고... 그러다 막히면 수직 사면을 기어 오른다. 지나온 형상이 그리워 지나온 길 가끔 돌아보는데, 아~ 언젠가 樹石전시장에서 본 형상이 알알이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서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 길 끝에 다다를 때마다 모든 것은 막막했고, 흰 산들이 언제나 그 막막함을 대신했다. 흰 산들을 보고 있으면 때론 죽음에 대한 공포가 꿈속까지 덮쳐왔다. 하지만 그 흰 산을 향해서 나는 끊임없이 길 없는 길을 나섰다. -엄홍길, 8천미터의 희망과 고독-

 

 

 

주능선은 바위와 적송이 적절한 배합이 예사롭지 않다. 한줄기 가느다란 바람결에 향긋한 솔향이 코끝을 스치는데, 좌우 수십길 깎아지른 바위 위 노송 그늘아래 평평한 암반에 드러누워 시 한 소절 읊으며 솔향에 취해보고 싶다. 道人이 바로 그런 것이라면 나 또한 도인으로 서보고 싶다.

 

 

자세히 올려보면 흰 바위에 부스럼마냥 석이버섯이 돋아있다. 욕심은 나지만 발길을 재촉하는 건,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우리네 목숨만이야 할까...  

 

 

능선은 경사가 가파르고, 능선의 바위들은 눈에 덮여 미끄러운데, 경사까지 가팔라서 한 발짝 내딛기조차 힘들다.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억누르며, 가픈 숨을 조절하며 한 봉우리, 또 한 봉우리 정복해 나가는 발자국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설마 봄인데... 이러다 말겠지 하던 내 작은 소망은 무참히도 깨어져 버린다. 그와 함께 은근히 즐기던 스릴의 짜릿한 쾌감마저도 어느새 긴장으로 바뀌어 버린다. 까마득한 벼랑위에 간신히 걸린 눈길... 거기다 더하여 나타나는 빙판이라니 원~~~ 겁에 머리끝이 쭈뼛 선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장갑 벗고, 스틱을 접어 넣는가 하면, 카메라까지 배낭이 넣는 사람들까지 보인다. 

 

 

암릉과 소나무의 절묘한 조화... 서로를 조화롭게 받아들이는 상생은 아름답다.  

 

 

석화산의 특징인 기암들의 전시장인 바위능선...

노송과 어울려서 쉬기 좋은 암반이 연이어 나타나고, 오던 길을 절벽이 딱 가로막는 곳도 있다. 그 절벽지대를 피해 우회하라며 안내리본들이 팔락팔락 그 흐름을 이어주고 있다.

 

전망바위에 짬을 내어 올라보면, 세상은 발아래... 문득 내가 허공에 떠 있는 듯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나온 능선의 기암절벽이 일렬로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아~~~ 노스텔지아!

 

 

 

석화산 정상

석화산은 바위에 석이버섯이 많이 자생하여 멀리서 바라본 바위가 마치 꽃과 같다하여 붙여진데 반해, 문암산은 문암동계곡에 거대한 문과 같은 바위가 있어 그리 불리어졌다고 전한다(정상 안내판 글 요약). 안내판에는 지도의 문암산과 석화산 표기는 잘못된 것이고 1146m의 봉우리가 석화산 정상이란다(국립지리원의 지형도엔 정상을 문암산으로, 정상 동편 954봉을 석화산으로 표기) 

 

 

 

정상 조금 아래의 너럭바위는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먹으며 쉬어가기 딱 좋은 장소다. 테라스 암반 밑은 아득하기만 한데, 창촌리 너른 시가지가 발아래에 후련하게 펼쳐진다.  

 

 

동봉(지형도상의 석화산)

지형도에는 아까 지나온 저 바위지대가 ‘석화산’이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지자체에서 지형도 상의 문암산을 석화산으로 부르기로 했다니, 저 봉우리는 자연스레 동봉으로 낙착될 수 밖에 없다.

 

 

사방이 막힘없이 보이는 석화산 정상

좌우로 수직절벽을 하고 있는 탓에 첩첩산중인 강원도 오지의 산세가 더욱 장엄하게 다가온다. 북쪽으로 방태산과 개인산... 그 줄기는 다시 동쪽으로 응복산을 거쳐 백두대간으로 이어진다 둔중한 산세는 아직은 이른 봄... 산은 온통 하얀 눈으로 포위되어 있다.

 

 

 

북쪽 능선을 따르는 하산길은 급경사 내리막...

10㎝ 정도 쌓인 눈은 등산로에 매어져 있는 로프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급경사 내리막에 쌓인 눈은 아무리 로프를 강하게 잡아도 결코 미끄러짐을 막을 수가 없어, 성질 급한 어느 여자분, 아예 앉은 채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북부능선의 하산길은 다시 참나무 군락으로 바뀐다

석화산은 아무래도 창촌리-석화산(지도상 문암산)-동봉(지도상 석화산)-능선-백성동이 바람직할 듯 싶다. 이렇게 하면 4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 반해, 오늘 택한 백성동에서 출발해서 백성동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기 산행은 산행시간이 3시간이라서 너무 짧은게 흠이다. 그러나 어느 코스를 택하더라도 석화산의 암릉은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북부 능선 안부에서 백성동으로 떨어지는 등산로는 초반에 잠깐 완만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급경사로 달려간다. 눈이 녹아 질퍽거리는 길은 가히 죽음... 다행이 길가 산죽 밭이 완충작용을 해 준다. 조금이라도 덜 미끄러지려고 부여잡는 등산객들의 손에 산죽들은 비록 몸살을 알을 망정...  

 

 

산세가 평정을 찾을 즈음...

가는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고, 뚜렷한 등산로가 백성동까지 안내한다. 고랭지 채소밭에서 잠깐 길을 잃고 헤매다가 돌아나와 걷기를 10분, 어느덧 만나산장 가든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백성동계곡은 가뭄에도 물이 흐르고 있어 땀에 절은 몸을 씻는데 불편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