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1,288m)


산행코스 : 성남리→상원골→상원사→남대봉(1,181m)→영원사→영원골→금대리 매표소 (산행시간 : 점심시간 포함, 5시간 30분)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산행일 : ‘09. 6. 20(토)

함께한 산악회 : 한국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산악회


특색 : 성남리에서 출발하여 영원골매표소로 내려오는 코스는 남대봉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코스이나, 무릎 관절이 안 좋은 사람들은 역방향으로 진행하는 게 좋을 듯 싶다. 영원골은 가을단풍이 아름다운 곳이지만 급경사에 너덜길이라서 무릎에 부담을 주기 때문...  

 

 

산행들머리는 성남리 매표소(상원골)

상원골은 남대봉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는 곳으로, 골골마다 맑은 계곡이 흐르고, 또 사방에 울창한 숲이 우거져 사시사철 청신한 기운이 물씬 풍긴다.

 

 

자 몸부터 풀고... 오늘도 김병곤간사의 구령에 따라 하낫! 둘!

산 속의 모든 것들, 시방 죽어 있지만 곧 살아날 것들, 아직 살아 있지만 곧 죽을 것들, 사소한 것들 속에 깃든 계절의 엄혹한 순환,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나에게 말은 거는 것 같다. 침묵이란 지친 말, 헛된 말이 뉘우치고 돌아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것이 아닐까..

 

 

 

상원골

등산로는 시원한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시작된다. 경사 또한 완만... 완만한 오르막길에서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한걸음 두걸음 옮기다 보면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리 넘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을 정도의 수량... 곳곳에 만들어진 조그마한 폭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여기도 폭포, 저기도 폭포, 맑은 계곡물은 돌맹이를 휘감거나 뛰어 넘은 다음, 힘차게 바위 아래로 뛰어 내린다. 그리고 한없이 흘러간다.

 

 

상원사를 오르는 상원골(약 4Km 정도)계곡은 시작하는 초입부터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숲에 가려져있다. 지금은 아침나절, 그리고 비가 내리고 있다. 계곡은 짙은 그늘 탓에 햇빛이 한줄기도 비치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새벽길을 걷는 듯하다.  

 

 

 

오늘 산행의 안전을 빌어보는 여심... 

아니 어쩌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정상을 밟아보고 싶은 욕심일지도...**^^**

나 아니라도 누가 하겠지 하는 마음이 사랑하는 것을 잃게 만든다. 추억어린 장소나 건물,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늘 거기 있겠거니 믿는 무관심 때문에 놓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산에 와서 제일 힘든 때는 능선에 오르기 전까지이다.

그러다가 일단 능선을 오르기만 하면 대개의 경우 처음보다 한결 더 편한 길이 된다. 그러나 오늘은 힘든 오르막이 거의 없는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종 이어진다. 치악산은 육산 길이다가 바위산 길이 되는 것이 되풀이 되지만, 오늘 오르는 남대봉은 완전히 육산... 치악산을 오르는 여러 코스 중에서 제일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이다.  

 

 

역시 피로회복에는 복분자가 최고...

행여나 힘들세라  박동현실장이 챙겨온 복분자주를 한잔씩 나누어주고 있다. 술 좋아하는 난 석잔... 

오십년은 제법 긴 세월이다. 그러나 건져 올릴 수 있는 장면이 고작 반나절 동안에 대여섯 번도 더 연속상영하고도 시간이 남아도는 분량밖에 안 되다니, 눈물이 날 것 같은 허망감을 시냇물 소리가 다독거려준다.

 

 

초입부터 한 시간 반쯤 길동무해주던 계곡의 물소리가 된비알을 만나자 더는 못 가겠다고 등 뒤로 잦아든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젊은 직원들도 조용해지고, 초입부터 힘들어하던 여직원들은 같은 속도에서도, 숨이 가쁜 얼굴이 불그레 홍조를 띤다.  

 

 

아름드리 들메나무와 물푸레나무 아래에 있는 쌍룡수 샘터

먼저 도착한 박실장이 내미는 물바가지의 물은 그야말로 감로수... 힘들게 오르며 참았던 갈증을 한순간에 해소시켜 준다. 주 등산로에서 10m도 벗어나지 않은 근거리이지만 뒤따르던 여직원들은 감로수도 포기한 채 곧바로 직행... 산행이 많이 힘드나 보다.  

 

 

상원사

상원사가 위치한 곳의 해발고도가 1,084m로 기재되어 있다. 비로봉 가는 길목에 있는 향로봉보다 더 높다. 이 정도의 높이에 있는 절이라면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 같다. 물론 사(寺)자가 끝에 붙는 절 중에서 말이다.

 

암(庵)자 까지 합하면 더 높은 절도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곳만 해도 지리산 반야봉 바로 밑의 묘향대(妙香臺)는 1,485m,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은 1,208m(일설은 1,244m)이니 상원사보다 훨씬 높다 할 것이다.  

 

 

가을 단풍이 하두 아름다워 적악산으로 불리던 이 산이, 꿩의 보은이 있은 후로 꿩 雉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불리게 되었단다.

구렁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꿩을 구해준 선비... 암컷 구렁이의 보복으로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선비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던 꿩이 자기 목숨을 버려가며 울려준 종소리 때문에 살아났단다. ‘한낱 미물도 저렇게 은혜를 아는데, 검은 머리를 갖은 동물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말라니...’ 

 

 

보통 깊은 산속에는 뱀이 많다. 헌데도 절에 뱀이 있다는 말은 낯설으니 웬일일까?  뱀도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종소리를 싫어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설화 속의 구렁이가 절에서 치는 아침 인경소리에 놀라 물러난 것이리라...  

 

 

상원사의 마음씨 고운 보살님

비 내리는 치악산은 점심장소가 마땅치 않다. 아니 다른 산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러나 우린 이 마음씨 좋은 보살님 덕분에 요사채의 따뜻한 아랫목에서 오순도순 식사를 나눌 수 있었다.  

 

 

혹시 ‘잘 보살펴 주시는 분이라고 해서 보살님이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아무튼 보살님의 보살핌으로 우린 편안하게 앉아서, 임원진이 준비한 김밥과 떡을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 시골된장 듬뿍 올린 청양고추는 덤...

 

 

‘막걸리 한잔 하시죠’ ‘아니 절에서 술을 먹는 건 좀 거시기헌디...’ 눈치빠른 배팀장은 이미 보살님에게 양해를 구했단다. 살얼음이 동동 뜬 막걸리 한잔은 또 다른 감로수였다. 준비한 막걸리를 팀원들과 나누어 마시려고, 많이 뒤쳐진 김현주양을 일주문 밑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던 배팀장의 순정이 많이 돋보이던 하루였다.  

 

 

상원사를 지키는 개새끼(우리 직원을 물었으니 새끼소리 듣는 건 당연) 

어느 정보 부족한 사람의 후기에 ‘성격이 온순하여 짖지를 않는다.’고 적혀있는 것을 봤는데... 저 벙어리 개는 결코 온순하지가 않다. 개집 옆으로 난 길을 내려서던 우리 직원의 장딴지를 물어버렸으니 말이다.  

 

  

정상에서 조금(0.4km) 내려서면 남대봉에서 갈라지는 백운지맥을 만난다. 시명봉쪽은 로프가 쳐져있고, 등산로 아니니 애시당초 가지를 말란다. 아~~ 상원사에서 남대봉 정상을 들르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삼거리는 조금전에 이미 지났다.

 

< 백운지맥 >

영월지맥 남대봉에서 분기하여 시명봉, 백운산(1085.7)을 지나 섬강이 남한강에 합수하는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까지 이어지는 48.6km 산줄기다.  

 

 

남대봉 (南台峰 1,180m)

정상은 넓은 헬기장이다. 비로봉으로 가는 길가에 이정표가 서 있고, 이정표 기둥에 남대봉 정상임을 알리는 표시를 해 놓았다. 이정표 뒤편에 산불초소...  

 

  

회장님은 목하 술 분배중...

정상에 선다. 산행 초입부터 내리던 가랑비는 어느덧 제법 굵은 빗방울로 변해있다. 사위는 짙은 구름에 둘러쌓여 시계가 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저쪽에 비로봉이 있겠지? 그저 가늠해 볼 따름...

 

 

남대봉에 도착하면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있는데, 이 능선들이 바로 영월에서 춘천으로 이어지는 영춘지맥이다. 북쪽 능선은 비로봉과 매화산을 거쳐 춘천의 서천리로 이어지고 동쪽 능선은 영월의 각동리로 이어진다.

< 영춘지맥 >

강원도 영월의 태화산에서 춘천의 춘성대교에 이르는 도상거리 272Km의 지맥이다. 이 지맥을 답사하다가 중간에 그만두었던 내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우리나라 산맥을 모두 다녀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볼 의미가 없는 산으로, 무미건조한 산행이 될 소지가 많은 지맥이다.

 

 

정상을 공식적으로 정복한 이쁘니들...

국립공원답게 곳곳에 이정표는 물론, 세로 기둥에다가는 친절히 해발 높이까지 명기하고 있다. 이정도 친절이면 초보 등산객이 혼자 뒤떨어져서 걷게 될지라도 길을 잘못 들까 염려되지가 않아도 될 듯...  

 

 

꿩이 울렸다는 종소리는 뭘 의미하고 있을까?

통상적으로 듣는다는 행위는 소리가 있고, 귀가 있고, 그것을 통합하는 뇌라는 것이 있어 소리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은 그와 다르다. 능엄경에서 부처님이 ‘아난에게 종을 치도록 한 후, 소리가 사라지고난 다음에 아난에게 듣느냐고 묻는다. 아난이 듣지 않는다고 하자 다시 한번 종을 치도록 하고 앞에서처럼 묻는다.’ 소리는 있다가 사라진다 할지라도 들음은 항상 그대로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 

 

 

따라서 상원사에서 꿩이 울린 종소리의 의미는, 종소리를 통해서 듣는 주체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자하는 수행의 한 방편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 듣는 소리는, 소리자체는 변함없지만, 진정 그 이전보다는 다른 맛일 것이다. 아니면 원래의 범종이 가진 ‘삼계(欲界, 色界, 無色界)의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얘기일 것이고..’  

 

 

18계(6근+6경+6식)란 세계를 이루는 구성요소이며, 불교의 수행은 이 18계를 관찰하여 무상, 무아, 고를 체득하여 집착을 여의면 불교의 추구하는 해탈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공덕이 뛰어난 것은 귀와 의지를 관찰하는 것이다. 다른 근들은 항상 관찰(변화를 살피는 것)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악산에 왔다가 를 떨고 간다.'는 소름끼치는 속어를 갖고 있는 산이지만, 다행이도 산악회 임원들의 배려로 치를 떨지 않아도 되었다. 치를 떨게 만드는 구룡사에서 비로봉까지 올라가는 사다리병창을 피하여 남대봉만 코스를 잡은 덕택에... 그러나 사실 영원골은 급경사에 너덜길이라서 더 힘든 코스이다.

< 사다리병창 > 

거대한 암벽군(岩壁群)이 마치 사다리꼴 모양으로 되어있고 내리막길 좌측은 천길 절벽 암벽이라 내려다보기조차 힘든 병풍 같은 절벽이다. 그 사이 사이에 자라난 나무들과 어우러져 사시사철 독특한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 병창은 영서방언으로 "벼랑', "절벽"을 뜻함

 

 

지루한 하산길에서 잠깐이나마 문학 장르에 나타난 치악산을 그려본다. 

이인직은 신소설 '치악산'에서 치악산을 ‘산세가 험하고 우중충하여 대낮에도 호랑이가 득시글거리는 야만의 산’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그만큼 산이 험하다는 말일 것이다. 한편 조선 숙종 때의 실학자 이중환은 '擇里志'에서 치악산을 ‘산신의 영험이 많아서 사냥꾼도 감히 짐승을 잡지 않는다.’고 표현하고 있으니, 치악산은 매우 험하면서도 신령스런 산일 것이다.   

 

정상에서 약 1.5km 정도 내려오면, 양쪽으로 벌어진 거대한 암벽 사이로 지나가게 된다. 큰물이 나면 그대로 물길이 되어버릴 만한 협곡... 장마철에는 가급적 이 코스를 피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신갈나무, 단풍나무, 생강나무들을 다래넝쿨이 뒤 덮고 있는 영원골은 그야말로 원시림이다. 우중인지라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데다 하늘까지 숲으로 덮힌 계곡은 사물이 흐릿할 정도로 어둡다.  

 

단풍나무가 당당하게 일편단심을 뽐내고, 생강나무는 널따란 잎이 샛노란 아름다움,,, 아직 오지도 않은 가을을 그리워해본다. 빨강과 노랑의 경연이 벌어지는 아름다움은 산을 찾는 사람들을 숨을 죽이고 색깔에 취하게 만들텐데... 

 

가을이면 저 영원골 계곡에서는 너나없이 자신도 모르게 화가가 되고, 마음의 도화지를 펼치고 꿈꾸는 눈길로 색칠하기 바쁘게 만들텐데... 그래서 치악산의 옛날 이름이 적악산이었을 것이다.

 

산행 날머리는 금대리 국립공원 금대분소

영원사에서 금대리 야영장(주차장)까지 2.4km는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가에 [雉岳山 영원사] 표석이 있는데 영원 글자가 묘하다. 鴒(할미새 령)에 옥편에도 안나오는 原+鳥(원)자로, 둘다 새鳥字를 붙었다. 상원사 꿩의 전설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영원사 (512m)

영원사는 다른 곳처럼 절 마당을 거치는 게 아니라 길에서 위쪽으로 벗어나 있다.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일부러 올라가 본다. 경사가 심한 등산로는 여기까지.. 걷기 편한 임도로 바뀐다  

 

영원사에서 바라본 남대봉

영원골은 골짜기 풍광이 수려하고, 수량이 넉넉해 여름철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코스이다. 산길은 초반에는 급경사 너덜길이라 지루한 느낌이 들지만, 곧 골이 터지면서 제법 웅장하고 아름다운 골짜기가 물줄기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어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 환해지고...‘

 

이해인 수녀님의 ‘나를 키우는 말’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힘들고 지쳤다가도 산을 다녀오면 다시 처음의 환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 그만큼 ‘아름답다’라는 말을 많이 해서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