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 (1,182m)


산행코스 : 황이교→휴양림 사무소→미천골→제2 야영장→남서지능→정상→미천골정→미천골→황이교로 원점회귀(산행시간 : 5시간20분)


소재지 : 강원 양양군 서면

산행일 : '09. 8. 29(토요일)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조봉을 가기위해서는 필히 거쳐야만 하는 미천골을 끼고, 자연휴양림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승용차(버스는 불가) 이용이 가능하다. 황이교에서 야영장까지는 6Km, 미천골정까지는 7Km, 만일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왕복 13Km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조봉 등산은 가히 지옥의 코스로 변해버리고 만다. 시멘트포장도로를 걷는 것은 무릎에 많은 부담을 주기 때문... 

 

 

 

산행 들머리는 황이교

56번 국도를 따라 양양방면으로 진행하다가 구룡령 넘어 미천골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황이교 방향으로 들어선다. 버스는 진입이 불가... 그렇다고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야영장입구까지 걸어서 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머니까 주의...(인근 에서 승합차 등을 빌릴 수 있음)   

 

 

산행은 미천골을 따라가며 시작된다 

응복산(1360m) 북쪽 자락의 원시림을 파고들어 오르는 계곡, 사람의 발길이 적어 산천어 등 희귀어가 살고 원시림이 무성하다. 특히 ‘불바라기 약수터’가 유명하다.  미천골엔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는 물메기와 산천어가 헤엄치고 있단다. 그래서일까? 미천골 곳곳에는 낚시를 금지한다는 푯말이 붙어있었다

 

 

미천골은 길고 긴 비포장 임도(林道)를 그대로 둔 채(사이사이 시멘트로 포장된 구간도 제법 된다) 산막과 통나무집을 앉혀 놓아 휴양림의 자연미만으로도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다.

야영장으로 오르는 호젓한 길을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계곡을 휘감아 돌다가, 암반위에서 뛰어내리는 물살의 비명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는 절로 박자를 맞추고 있다.

 

 

미천골은 그 자체가 자연박물관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훼손되지 않은 청정한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단다. 미천골계곡의 양 쪽으로는 다양한 수종의 천연활엽수림이 우거져 있어 손 때 묻지 않은 청정 산림휴양을 만끽할 수 있다. 

 

 

 

선림원지

옛날 큰 절에서 밥을 짓기 위해 쌀 씻은 물이 계곡으로 하얗게 흘러내려 미천골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계곡 입구에 1000년 더 지난 세월 저편에서 당대의 수도승이 모이던 도량이었다는 선림원지가 있다.

장대한 석축 위에 있는 약3,000평의 절터에 4점의 보물(제444호~447호인 ‘3층 석탑’, ‘석등’, ‘홍각선사탑비’, ‘부도’)이 자리잡고 있다. 선림원은 804년경에 창건되었으며, 그 후 홍각선사가 선림원에 살았던 때 또는 그가 열반한 직후에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추정되며, 10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대홍수로 인한 산사태로 말미암아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선림원은 현재의 보물 4점보다 1948년에 출토된바 있는 ‘정원 20년(804) 명문’이 있는 신라 범종이 더 유명하다. 이 종은 상원사 범종, 에밀레종과 함께 통일신라 범종을 대표하는 기념비적 유물이다. 월정사에 옮겨 보관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파괴, 현재는 일부 파편만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사납게 흐르던 물은 소를 만나자 점잖아진다. 그리고 그 울음 또한 맑고 청아한 소리로 변하며 멈추듯 살며시 흘러간다. 그 흐름은 어느 것 하나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고, 어긋나지도 않는다.  미천골은 울창한 숲과 맑은 물, 기암괴석, 야생 동식물 등 자연이 잘 보존된 지역으로 활엽수 등의 천연림 및 작은 폭포가 어우러진 비경을 간직한 곳이다.

 

 

숲이 거느린 짙은 계곡 안쪽에는 촉촉한 이끼 사이로 수정처럼 맑은 물이 쏟아지는 서늘한 폭포가 곳곳에 숨어 있다. 온몸에 차갑고 맑은 초록빛이 천천히 차오른다. 귓바퀴 맴도는 찰랑거리는 소리...  

 

 

매끈하면서도 널찍한 암반을 타고 비단결 같은 옥수가 흘러내리고 있다. 깊은 산 깊은 골은 신비감이 넘친다.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골짜기는 크고 작은 소와 담·폭포가 연이어지고 한 굽이 돌아설 때마다 새로운 풍광의 골짜기가 반겨준다.

 

 

제2 야영장에서 좌측 계곡을 따라 오르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본격적인 산행은 계곡과 함께, 계곡은 작으나 절경의 연속이다. 희미한 등산로 곁으로 크고 작은 폭포의 연속... 눈을 깜빡일 때마다 다른 풍광이 나타나 눈을 붙잡고,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비경이 발목을 꽉 붙잡는다. 그렇지만 넋을 놓는 순간 길을 잃을 만큼 산길이 희미하고 수시로 끊어진다.   조봉의 백미는 아마 이 계곡으로 봐도 좋을 듯 싶다.  계곡을 따라 폭포들이 널려있다. 2단, 3단, 많게는 6단이 넘는 폭포도 수두룩하다. 다만 조금 왜소한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계곡이 끝나면 등산로는 지독하게 오르막 길로 변한다. 그래도 곧바로 오르면 거리가 짧아 금방일텐데 산길은 지그재그 오름길로 이어진다. 그렇게 서너 차례 굽이를 극복하니 비로소 지능선이다. 지능선에서 부터 정상까지는 완만한 오름길...

 

 

다른 이름난 계곡처럼, 아니 조금 전에 지났던 미천골처럼 웅장하지는 않더라도 그 미니어처쯤으로 꼽을 만한 골짜기다. 원시 그대로 살아 있는 골짜기 풍광은 오히려 이곳이 앞선다 할 수 있다. 가끔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급경사 오르막길의 고난까지도 상쇄해 준다. 

원시림의 계곡은 썩은 나무등걸까지도 푸른 이끼로 아름답게 포장한다. 불현듯 지금 내가 골 안에 들어선 건지, 세상이 깊은 골짜기인지 헷갈린다. 세상이 속박 받는 골짜기요, 지금 이곳이 자유로운, 한없이 터진 세상인지도 모른다.

 

 

이끼로 가득 찬 폭포를 만나러 길이 없는 계곡으로 내려선다. 그리고 두어 컷, 되돌아 올라오는 비탈에서 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제법 굵은 나무등걸을 잡았는데, 운 없게도 그 나무는 썩은 나무... 진찰결과 뼈는 상하지 않았지만, 몸은 상처투성이에 카메라도 고장이다. ‘산에서는 항상 조심합시다’ 晩時之歎으로 외쳐본다.  

 

 

능선에는 수령이 50년은 족히 되었을 정도로 크고, 굵은 참나무들이 빽빽한 수림을 이루고 있다. 사이사이 물푸레나무와 피나무, 박달나무들도... 바람 한점 들 틈이 없이 하늘을 가려, 사위가 어두컴컴할 정도이다.  하늘을 가리고 있는 참나무 허리춤에 단풍나무... 그 밑을 자그마한 철쭉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다. 물이 깨끗하고, 경관이 고운 미천골에서 머무르지 않고 조봉만 찾을 경우엔 여름보다는 봄, 봄보다는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이 제격일 듯 싶다.

 

 

조봉 정상

정상은 열두세 평 정도의 널따란 분지에 표지석 하나 없는 가난한 봉우리이다. 조봉이라고 적힌 철판하나 덩그러니 지키고 있는, 정상엔 잡목으로 둘러쌓여 있으나, 그래도 시야가 트여 백두대간 및 주변이 조망된다지만. 심심찮게 비를 뿌리고 있는 날씨 탓에 오늘의 시계는 제로다.

 

 

정상에서 991봉으로 내려서는 길은 전형적인 육산, 경사가 제법 되는 길에서도 달리는 게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폭신폭신하다. 유순하고, 폭신거려 오래 달려도 부담되지 않는 길. 걸으면 걸을수록 싱싱한 수목의 기운을 받아 오히려 펄펄 기운이 나는 길이다.

991봉에서 미천골정으로 내려서는 길은 바윗길, 그저 바윗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암릉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너덜지대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넘치기 때문... 왼편으론 제법 심한 경사를 이루다가, 미천골정 가까이 다가가면 왼편은 절벽으로 변한다.

 

 

하산길은 제법 길지만 그 길을 걷는 동안에는 잠깐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어둑한 숲의 터널에서 진한 숲향기에 킁킁거리다가, 잠깐 길가의 이름모를 들꽃에 반해 쭈그리고 앉아본다. 그러다 심심할라치면 건너편 금강송 중 가장 우람한 놈과 대화를 시도해 본다. 그러다가 문득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떠올리며 내 페르몬은 과연 무엇일까? 그 페르몬으로 저 금강송과 얘기해 볼 수는 없을까?

 

 

미천골정이라는 지명의 어원이 궁금했는데, 아마 저 정자의 이름을 땄나보다.

미천골은 설악산 혹은 지리산의 이름난 골짜기 축소판 같다. 휴양림을 만드느라 도로를 손대고 곳곳에 축대를 쌓았지만, 다른 곳에 비해 덜 훼손된 천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조봉의 산행에서 만난 원시의 숲, 그 숲이 끝나가자 다시 비경이 반겨주었다. 작지만 비경이, 절경이 아닌 곳이 없었다. 작은 폭포들이 속출하고, 바닥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신비스러운 소와 담의 연속... 

 

 

미천골 계곡에는 실핏줄처럼 수많은 지류가 합류하는데, 물소리를 거슬러 조금만 올라가도 폭포가 비밀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지류를 따라 오르다 만난, 돌단풍과 초록이끼로 가득한 폭포들. 그러나 미천골에서는 그런 정도의 폭포에는 이름도 붙여주지 않는다.  

 

 

초록의 기운으로 가득한 늦여름의 숲을 걸었다. 우람하게 치솟은 금강송, 들꽃과 야생의 열매들이 가득한 원시의 숲... 바람이 불어와 가슴팍까지 서늘하게 해준다. 도시는 아직도 폭염주의보가 한창인데, 골짜기는 벌써 이른 초가을 날씨처럼 기온이 낮았다. 이게 바로 '산행의 즐거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