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계산 (福桂山, 1,057.2m)
산행코스 : 주차장→태백암장→매월대→암릉→정상→능선→원골계곡→임꺽정 촬영세트→매월대폭포→주차장(산행시간 : 4시간30분)
소재지 : 강원 철원군 근남면과 화천군 상서면 경계
산행일 : '09. 8. 23(일요일)
함께한 산악회 : 군자마운틴클럽
특징 : 복계산은 산으로 오를 수 있는 산 중에 최북단에 위치한다. 복계산 산행은 ‘인기드라마 임꺽정 촬영 세트장과 북녘 땅을 조망할 수 있는 테마가 있는 산행지‘로 알려져 있지만 촬영장은 이미 폐허상태로 소문만 믿고 찾아갔다가 실망만 안고 돌아올 우려가 있다.
⇩ 산행 들머리는 태백암장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
산행의 진미는 뭐니뭐니해도 바윗길일 것이다. 그 진미를 찾아 암릉으로 되어있는 태백암장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매월동 주차장에 서있는 산행 종합안내도 바로 왼편으로 희미하게 등산로가 보인다.
⇩ 초입의 우거진 잡초로 인해 등산로를 찾기가 만만찮은 묵밭을 지나면, 제법 경사가 심한 오름길이 나타난다. 다행이 참나무 잎이 수북이 쌓인 길이 포근해서 힘이 드는 줄을 못 느끼게 해준다.
⇩ 태백암장의 왼편 벼랑에 매달린 밧줄과 씨름하며 본격적인 산행은 시작된다.
매월대를 오르는 왼편 능선은 바위가 많지만 암릉이라 부르기엔 약한 편. 그러나 가끔 시원스레 펼쳐 보여주는 조망은 가슴이 후련해지는 상쾌함을 준다.
⇩ 산행 내내 이어지는 참나무 숲은 시야를 가려 귀찮을 때도 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한여름 뙤약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해주는 고마운 존재. 덕분에 한여름에도 쉬엄쉬엄 여유롭게 산행할 수 있다.
⇩ 서쪽 지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단종 때 생육신의 한사람이었던 김시습이 은거했다고 전해오는 매월대가 있다. 밑에서 보면 그리도 우람한 바위봉우리 이건만, 바쁘게 걷는 나그네는 그저 여기쯤이려니....
⇩ 심심치 않게 이어지는 암릉, 암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몸을 비비 꼬고 있는 늙은 소나무를 등에 얹고 있을 때이다. 복계산도 우리에게 그런 재미를 선물해 주려는 듯, 소나무들이 제법 그럴싸하게 몸을 뒤틀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 오늘도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내 온몸에 담아본다. 꾸며낸 가식의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이 품고 있는 순수한 풍경을, 있는 그대로 가슴에 아로새긴다.
⇩ 이쯤이 매월대가 아닐까?
매월당 김시습은 ‘어떻게 두 왕을 섬기란 말인가!’ 단종에 대한 의리를 져 버릴 수 없어 벼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한평생을 보낸 생육신(김시습, 남효온, 성담수, 원호, 이맹전, 조려) 중 한사람으로 호는 매월당. 삿갓을 쓰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아다닌다고 해서 김삿갓이라고도 불리웠다.
스무 살에 방랑의 삶을 시작한 김시습은 스스로 뿌리 뽑혔기에 강건할 수 있었지만 외로운 가슴앓이는 한없이 애절하고 삶은 더없이 위태로웠다. 하늘에의 강렬한 믿음, 쉼 없는 평민과의 호흡, 패자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 그를 지탱하게 해 주었던 이념이었다.
어느 누구도 '김시습과 같이 살라' 하지 못한다. 무서운 무소유, 지독한 유랑, 그리고 철저한 버림을 누구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시습은 시대의 어둠과 외롭게 맞섰던 고달픈 행동가였다.
⇩ '소나무君아 너희만 아름다움을 자랑할겨?‘ 노송들에게 뒤질세라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도 한껏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좋은 풍광에 좋은 벗 하나, 곁에 있었으면 좋으련만... 저 맑은 공기를 안주삼아 술 한잔 나눌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 사실 복계산의 산세와 숲은 큰 인기를 끌만큼 수려함은 지니지 못했다. 다만, 아기자기한 산행이 가능하면서도 위험함이 없어 가족산행 대상지로 적합하다.
⇩ 바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는 밧줄에 매달려 아등바등 하는 스릴의 쾌감... 특히 여성분들과 함께 할 경우에는 가벼운 스킨십까지도 허용되는 경우가 많으니 이보다 더 좋은 산행이 어디 있으랴~ ^^-*
⇩ 기암괴봉... 아니 복계산을 그렇게 부르기에는 몇 10% 부족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왜소하지만 암릉이 이어지고 있고, 간간히 나타나는 기암들, 심심하다 싶으면 매달려 어리광이라도 부리라며 매어 놓은 밧줄...
억샌 사내들이야 힘 한번 불끈 쓰면 바위위로 올라서겠지만, 연약한 아녀자들이야 어찌 그럴 수 있으리오... 끌어주고 밀어주는 기사도를 발휘할 수 있으니, 오늘 찾은 복계산은 남자들의 산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싶다.
⇩ 등산로는 암릉으로 이루어진 매월대 능선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흙길을 만들면서 걷는 이를 아주 편하게 만들어준다. 산책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오늘 복계산을 찾은 산악회가 몇 개 보였지만, 대부분의 산악회들이 쉬운 코스를 선택했는지 등산로는 한적하기만 하다.
⇩ 정상은 커다란 바위 봉우리인데, 제법 넓은 공터를 이루고 있다.
정상에 서면, 오른편 중앙 저 멀리에 광덕산 상해봉 백운산 줄기가, 왼편 맨 후사면에는 두류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리고 왼편 앞에서 중앙으로 한북정맥이 뻗어있다.
< 6년전에 답사를 마친 한북정맥 >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갈라져, 강원도 금화 적근산 대성산, 경기도 포천의 운악산, 양주의 홍복산, 도봉산, 삼각산, 노고산을 거쳐 고양의 견달산, 교하의 장명산에 이르는 서남으로 뻗은 한강 북쪽의 산줄기이다. 추가령에서 수피령까지는 북한지역 및 남한의 군통제구역이라 갈 수 없고, 수피령에서 장명산까지의 실제거리 약 194Km를 답사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밖에 없다
⇩ 산행은 어느 산을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가느냐이다. 마치 산행을 자랑하듯이 하는 사람들, 또는 낯이 익은 사람들끼리만 어울리느라 처음 나온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들... 어쩌다 함께 따라가게 되는 안내산악회의 산행에 정을 붙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 그렇다면 난 오늘 모처럼 좋은 산악회를 따라 나섰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만, 그런 따스함을 성큼 받아들이지 못하는 평소의 내 습관을 떨쳐버리지 못한 게 흠이었지만... ‘윤영춘님 이리 오세요’ ‘윤영춘님 이것도 들어보세요’ 살갑게 권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리도 정겨울 수 없었다. 그것도 날씬하고도 아리따운 미녀분이 권하는 것이니 두말할 나위 없이...
⇩ 정상에서의 전망이 너무 좋다. 특히 북으로 보는 대성산의 모습이 더욱 압도적이다. 남쪽으로 복주산 국망봉 화악산 동쪽으로 대성산이 손짓하며 북쪽으로 북녘의 산하가 점점이 펼쳐진다.
⇩ 헬기장에서 바라본 대성산
복계산 정상석이 서 있는 곳에서 조금 더 동북쪽으로 나가면 헬기장이 나온다. 한북정맥을 타려면 이곳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길이 희미하니 주의... 전면에 대성산과 북쪽 방향으로 뻗은 능선이 육중하게 눈에 들어온다. 거리가 멀어 자그마하게 보이는 군 시설까지 친근하게 느껴짐은, 아마 2 년 전, 국방부에 부서책임자로 파견되어 영관급 장교들과 함께 부대끼며 근무했던 인연이 있어서일 것이다.
⇩ 헬기장 정경 #1, 꽃, 갈대 그리고 하늘
계획대로 진행하려면 이곳 헬기장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가야 하건만 난 정상으로 되돌아오는 우를 범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산행 중에는 지도를 꼼꼼이 살펴야 하건만.... 그러나 어쩌랴 이미 벗어나버린 것을... ‘까짓 몇 년전 한북정맥을 종주할 때에 이미 답사를 해본 능선을 무얼 하려고 또다시 찾으랴’ 넋두리로 위안을 삼아본다.
⇩ 헬기장 정경 #2, 졸음에 겨운 고추잠자리
오늘이 處暑... 햇볕은 따갑지만, 그늘에 들면 이마를 스치는 바람은 이미 서늘해졌다. 어느덧 가을은 우리 곁에 다가와 있나 보다. 가을의 전령인 저 고추잠자리까지도... 몇 번을 놓친 끝에 겨우 한 컷... 졸고 있었을까? 움직임을 멈추고 있길래 손을 대어보니 화들짝 놀라 날아오른다.
⇩ 하산은 정상에서 되돌아 나와 남쪽 방향의 지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이따금 오래된 군용 철조망이 방치되어있다. 저녁에 야간산행을 할 경우에는 조심해야 할 듯... 10cm쯤 높이로 팽팽하게 쳐진 것도 자주 눈에 띈다. 철조망 지대를 벗어나면 다시 펑퍼짐한 능선길... 걷기 매우 편안해서 좌우를 둘러볼 여유까지 갖게 만든다. 길가는 참나무 들이 늘어서서 늦여름 푸르름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 포근한 등산로를 한참 걷다보면 잡초가 무성한 무덤을 만나게 되고, 등산로는 여기에서 좌측으로 급하게 내려박힌다. 너덜지대 오른편엔 곰삭은 듯 허름한 바위벼랑이 버티고 있다.
⇩ 급경사 너덜지대는 온통 다래나무 넝쿨이 하늘을 덮고 있다. 서리가 올 때쯤 다시 찾으면 새콤하면서도 달짝지근한 열매 몇 개쯤은 주울 수 있을 듯... 새콤한 맛을 떠올리며, 여름철 갈증을 잠시나마 잊어본다.
⇩ 너덜지대가 지루할 즈음 원길계곡에 닿는다. 계곡은 수량이 많지도, 그렇다고 특별한 아름다움도 없이 그저 그런 정도... 다만 인적이 흔하지 않은 계곡인지라 목욕하기엔 별 어려움이 없다. 원골계곡은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조금 유명한 계곡들에서는 바위틈에서 패드병 등 쓰레기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쓰레기 한점 구경할 수 없을 정도로 청정함 그 자체다.
⇩ 계곡의 좌측으로 난 오솔길을 버리고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숲으로 둘러싸인 계곡은 음침하고, 이끼에 덮혀있는 돌은 원시적인 신비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조심조심... 미끄러움 때문이라기보다는 행여 여린 이끼가 내가 밟고 지나가는 발 끗에 다칠세라...
⇩ 임꺽정 세트장은 폐허...
원골계곡이 끝날 즈음 드라마 ‘임꺽정’의 청석골 촬영세트장이 나타난다. 촬영이 끝난 뒤, 한번의 보수도 없었던 듯 절반 쯤 무너진 모습이다. 저렇게 흉물로 방치시킬 바에는 차라리 철거하는 것이 좋을 텐데, 지자체의 무관심이 안타깝다.
⇩ 촬영세트장에서 바라본 매월대
저 바위 위에서 아홉 선비가 바둑판을 새겨놓고 바둑을 두며 단종의 복위를 도모했다는데... 그러나 누구하나 그 바둑판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다.
在北 작가인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작품인 ‘임꺽정’... 작가보다도,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정홍채씨다. 아마 걸쭉한 목소리로 떠들며 술을 마시는 모습이 인상에 남았던 모양... 거기엔 나 또한 술을 좋아하는 이유도 조금은 숨어 있을 것이다.
⇩
임꺽정 촬영장에서 매월대폭포까지는 10여분 거리의 오르막 길... 한여름 무더위에 쏟아지는 땀방울이 싫어 몇 번을 망설인 끝에 올라왔지만, 내 선택이 옳았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풍경 하나로 모든 힘듬이 말끔하게 가시었으니까... 이 것 말고도 계속 이어지는 자그마한 폭포의 물 떨어지는 청량한 소리는 한여름의 무더위를 단번에 날려버린다. 초록 이끼로 덮혀 있는 바위사이로 떨어지는 물줄기 따라, 속세에 찌든 내 찌꺼기도 비워져 간다. 이끼에 점점이 매달려있는 물방울들은 아직은 세속을 떠나기 싫다는 찌꺼기들의 반항...
⇩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바빠지고 서두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찬 물소리를 내며 빠르게 지나가는 물굽이가 흐르지 않고 정지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건, 분주함 속에서도 그런 여유로움을 배워보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물과 바위 그리고 깨끗한 공기를 토양삼아 파릇파릇 자라고 있는 이끼... 이끼의 푸르름을 통해 잠시나마 생명의 윤회를 떠올려 본다.
⇩ 매월대폭포
매월대와 마주보고 있다. 높이는 약 20m 정도, 최근에 비가 와서인지 폭포는 힘차게 물을 쏟아 높고 있다. 주차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탓인지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은 등산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들이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비분했던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이 은거했던 초록의 청정한 숲 속에는 매월당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 비록 8월의 마지막, 처서가 오늘이지만 기상청의 일기예보에는 폭염주의보가 올라오고 있을 정도로 아직은 무더위가 한창이다. 그러나 이곳 계곡엔 오싹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서늘한 느낌만이 가득하다.
계곡을 따라 세차게 흘러가는 물은 한 덩어리... 그러나 방울방울을 떼어놓고 보면 각각 다른 사연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부딪치고 구르며 흐르다 보면, 물방울 하나하나 품은 추억들은 서로 다른 퍼즐들을 이루고 있을테니까...
⇩ 산행들머리와 날머리를 겸하고 있는 매월동 주차장
오른쪽으로 가면 임꺽정 촬영장을 거쳐 원골계곡으로 올라가게 되고, 왼편은 매월대 폭포로 올라가는 길이다. 어느 곳으로 가나 정상에 도달하게 된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이곳에서 두 코스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러나 두 코스 모두 매월대를 만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山’ 철원군 갈말읍에 있는 ‘민통선 한우촌’에서 정상어림에 설치한 프랭카드의 글귀가 좋아 옮겨본다.
산과 자연은, 세상사 차별치 않고 속이거나 외면하지 아니하며, 잘나고 못나고 분별치 아니하고, 모든 만물을 공평 정대이 하며, 부귀와 명예도 통하지 않으니, 우리모습 이대로 생명됨이여, 단 정복하려 들지말고 그냥 안기시요
'산이야기(강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래봉과 봉평 메밀꽃 축제('09.9.12) (0) | 2009.09.16 |
---|---|
때 묻지 않은 청정의 계곡, 미천골과 조봉('09.8.29) (0) | 2009.09.02 |
또 하나의 이끼폭포를 안고있는 발교산('09.7.26) (0) | 2009.08.03 |
작은 산, 큰 아름다움, 미륵산('09.7.25) (0) | 2009.07.30 |
기기묘묘 흰 암릉은 금강송들의 놀이터, 삼형제봉('09.7.19) (0) | 2009.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