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교산 (髮校山, 998m)


산행코스 : 봉명리 절골(발교산 안내판)→명맥바위→봉명폭포→계곡→수리봉 갈림길→정상(헬기장)→명리치 고개→망골계곡→봉명교 쉼터 ( 산행시간 : 4시간30분)


소재지 :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과 홍천군 동면의 경계

산행일 : ‘09. 7. 26(일)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색 : 숲과 골짜기가 수수하며, 무엇보다도 적막하고 호젓하여 깊은 산의 안온한 풍취를 마음껏 맛볼 수 있는 산이다. 흙산이라서 오랫동안  쌓여온 낙엽으로 인해 등산로가 폭신폭신한 것이 걷기에 여간 편하다.  

 

 

산행들머리는 횡성읍 쪽에서 19번 국도를 타고 청일면ㆍ홍천 서석면 방향으로 가다가, 춘당초등학교 직전에서 좌회전, 봉명리 마을길로 들어선다. 봉명교라는 작은 다리가 봉명폭포로 가는 산길의 입구이다 이곳은 횡성군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곳으로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있다. 한국전쟁 때에도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몰랐을 정도란다. 근처 안구접이 마을(처음에 산행 들머린줄 알고 알바했던 곳)은, 아홉 겹으로 산이 둘러싸고 있다는 뜻이란다. 그만큼 오지산골이라는 뜻...

 

 

발교산의 들머리인 청일면 봉명리는 전통 테마마을이다. 봉명리는 '고라데이 마을'이란 옛 이름을 지금도 쓴다. '고라데이'는 골짜기를 가리키는 강원도 사투리다.  

시간은 어느새 우리를 여름의 한 가운데로 안내하고 있다. 제일 무더워야할 절기인데도 지난주 스쳐간 장마비가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복더위를 몰아낸 탓인지, 그늘에서는 제법 서늘하기까지 하다.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이 싱그럽게까지 느껴지는 것이, 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와 있나보다.

 

 

고라데이 마을을 지나면 계곡이 나타나고, 이어 발교산 등산 안내판 앞에 다다른다. 발교산 정상을 왕복하는 등산코스 총길이는 9.38km에 4시간10분이 걸리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절골 입구에서 시작된 차 한 대 겨우 지날만한 비포장길은 융프라우펜션을 지나면서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오솔길로 이어진다. 이 오솔길은 폭 3~5m 되는 물줄기의 아담한 계곡과 내내 함께했다

 

  

 

융프라우 펜션

명맥바위 조금 못 미쳐, 스위스풍의 아름다운 건물을 만난다. 이름도 융프라우 펜션이랜다. 융프라우는 스위스에 있는 유명한 산봉우리(4,158m)... 베른알프스 산맥에 속하는 경치가 아름다운 산이다. 펜션 앞길은 특이하게도 나무로 깎아 만든 솟대로 장식되어 있다.

 

 

명맥바위

옛날에 제비같이 생긴 명맥새가 절벽위에 힘들게 집을 지었는데 급경사 바위의 집인지라 허물어져버려 눈물을 흘리며 갔다는 전설에서 생긴 바위란다.  

손을 대면 짙게 물들어 버릴 것 같은 먹빛 푸르름... 정상을 급하게 탐내지 말고 느긋한 걸음으로 완상을 즐겨보자. 숲이 주는 행복에 흠뻑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경관에 셔터를 눌러대다 보니 자꾸만 산행 속도가 느려진다. 주위를 둘러보니 카메라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는 몇몇... 아마 사진 찍기에 바쁜 우리들이 제일 후미인가 보다.

 

그러나 무에 걱정이랴, 난 이 산에서 추억을 만들고 있고, 그 추억을 지금 카메라에 담고 있으니 말이다. 어차피 쉬는 시간을 좀 줄인다면 주어진 하산지점 도착시간에 당도할 수 있을 터인데... 모처럼 여유로운 산행을 즐겨보자. 청아하게 흐르는 맑고 깨끗한 계곡물과 시원하게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낙엽송 숲길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원시림... 난 지금 청정지역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며, 한껏 심호흡을 들이켜본다.

 

 

계곡에 들어서면 차라리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기운에 몸이 움찔거릴 정도다. 가끔 나타나는 야트막한 폭포와 소들이 폭염을 이기기에는 여기가 최고의 적지라고 알려주는 듯 청량한 소리를 귓가로 흘려보낸다.  

계곡물에 손 두어 번 담그고, 물에 적신 머플러로 얼굴 두어 번 적시며 느긋하게 진행하다 보니 길가에 ‘고라데이 심마니 체험장’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깊은 산속에다 인공으로 산삼씨를 파종한 후, 성년이 된 산삼을 채취하는 장뢰삼 단지가 근처에 있나보다. 주위를 두리번거릴 필요는 없다. 등산객의 눈에 띌 곳에서 장뢰삼을 기를 사람들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안전로프와 나무계단을 밟으며 햇살 한점 비치지 않는 깊은 숲속을 걷다보면, 폭포가 가까워지는 듯 웅장한 낙수소리가 등산객들을 불러 모은다.

아홉구비를 돌아 30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의 굉음은 수량이 많을 경우 저 멀리에서까지 들린단다. 무더운 여름에 최고의 청량감을 제공해 주는 것은 물으나마나... 아름다운 폭포의 모습에 반한 듯, 모두들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느라 정신이 없다. 그 아름다운 배경에 자신의 모습을 심고 싶은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물먹은 바위를 오르고 있다.  

 

 

봉황이 우는 소리 같다 하여 봉명폭포라 불리는 봉명폭포 중 하단폭포... 매끈하지는 않지만 녹색이끼바위를 타고 내리는 물줄기가, 거친 야생의 폭포 같아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초록 이끼 낀 바위 사이로 물줄기가 시원스레 낙하하고 있다. 나무가 우거져 빛을 막았더라면 초록의 이끼가 더욱 무성했을 텐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이끼 낀 바위위로 많이 오르내려서 이끼들이 많이 상한 탓에 바위들이 허연 뱃살을 내밀고 있다.

 

 

하단폭포 중간 부분을 가로질러 한 굽이 돌아서면 상단폭포가 나온다. 상단폭포 앞에 서면 하단폭포에서의 아쉬움은 금방 사라져버린다. 폭포의 상부를 온통 막아버린 녹음 속에 폭포수가 콸콸거리며 이끼 계단을 타고 떨어지고 있다.

물길을 떠받치는 돌계단과 주변의 바위에 초록의 융단이 뒤덮었다. 귀는 먹먹해졌고, 눈은 황홀해졌다. 가만히 물속에 손을 넣어본다. 청량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폭포 위쪽은 다시 협곡... 울창한 낙엽송 숲이 이어지는데 군데군데 잣나무 숲도 보인다. 능선 주위엔 떡갈나무 숲이 울창하다. 

언제나 내가 오르는 산들은 내가 선택했기에 찾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내가 내린 선택에 대해 만족해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을 듯 싶다. 이 시간 이곳에 있는 그 자체만으로도 자연과 하나 됨을 느끼게 만들 정도이니 말이다.  

 

 

제법 가파른 된비알 몇 번 오르고 나면 등산로는 다시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의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나간 일본잎갈나무(낙엽송) 숲이 시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짙은 녹음의 잎새를 스쳐온 시원한 바람이 산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여름은 트레킹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자연을 벗삼아 거니는 것은 어디라도 좋다. 짙은 숲과 계곡이 어우러진 길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얼마 안 있으면 짙은 녹음은 내년을 기약하며 짐을 꾸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숲은 알록달록한 옷으로 갈아입을 테지? 가을이 오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트레킹을 떠나보자.  

 

 

 

계곡을 따라 더 들어가면 작은 분지형 지형이 되고 왼쪽 밋밋한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이 나온다. 정상을 오르는 길은 나무계단으로 잘 정비되어 있다.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헬기장에 서면, 화창한 날씨에 저 멀리 산마루 하늘금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리산, 대룡산, 용화산, 대암산, 백암산, 설악산, 방태산 등등... 하나 아쉬운 것은 서쪽이 숲으로 가로막혀 있어 조망이 없다는 것이다.  

  

 

  

 

 

발교산 정상은 발기봉 

정상의 표지석은 발기봉으로 되어 있다. 발교산이란 이름의 어원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누군가 '밝은 산' '밝산' '박산'과 같은 순수 우리말 이름에서 따온 한자어가 아닌가라고 설명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나저나 발교산에 봉우리가 여러 개 있는 것도 아니니, 정상의 표시석은 발기봉 보다는 발교산으로 표기하는게 맞을 성 싶다. 일행 曰 ‘세우라는 봉우리이니 이곳에 산삼이 많은 모양인데, 한번 찾아볼까나?’ 부디 한뿌리 정도 찾아내시길 빌어주겠네 그랴~~ **-^^-**

 

 

 

정상은 나무 숲으로 포위된 탓에 조망이 일절 없다. 다만 서쪽의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산등성이가 보인다. 아마 화악산일 것이다.  

 

 

숲은 사색의 공간으로 안성맞춤

길가에 아담한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 경사가 완만한 등산로를 느긋하게 걸어본다. 마음의 여유... 싱그런 초록 숲에 빛 한줄기 내려앉은 저 벤치에서 아담한 수필집이라도 펼쳐보면 좋겠다.  

 

 

남쪽 하산 길은 잡목이 가려 일절 조망이 없다. 햇볕은 쨍쨍... 그러나 짙은 숲의 그늘 아래로 난 등산로는 까끔 등골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산들바람을 선물해 주고 있다. 콧노래 두어번 흥얼거리다 보면 어느덧 쌍고지 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쌍고지 고개에서 명리치 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그야말로 급경사... 등산로 곁에 난간을 세우고 로프를 매달아 놓았지만 경사가 너무 심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나뭇가지 사이로 언뜻언뜻 병무산이 보인다. 망골로 떨어지는 명리치고개에서, 우측으로 병지방계곡을 갈 수 있으나, 길 흔적은 없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병무산 산행은 생략하고 망골로 발걸음을 돌린다.  

  

    

 

사면을 도는 길을 내려서 잣나무숲을 지나면 칡넝쿨이 우거진 널따란 분지에 개망초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화전민들이 소개된 후, 묵밭으로 바뀐 강원도 두메산골의 전형적 모습이다. 우거진 칡넝쿨과 개망초 천국을 지나면 임도... 여기서부터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루하게 이어진다

 

 

간간히 멋스런 별장이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오면, 왼편으로 너무나 맑고 깨끗한 계곡(망골)이 나온다. 나도 몰래 첨벙, 물론 옷은 입은채로다. 갈아입을 옷을 챙겨오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탁족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망골주변의 오미자 밭

부드러운 산길엔 짙은 녹음이 우거져 햇볕이 뚫고 내려오지를 못했고, 철철 흐르는 계곡물에선 서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계곡의 청량함이 너무 아까워 떠나는 여름을 마냥 붙잡고 싶은 심정이다

 

 

산행날머리인 봉명교 쉼터

울울창창한 원시의 숲과 생각보다 맑고 깨끗했던 계곡에서 즐긴 하루... 좋은 산에서 쌓은 아름다운 추억들, 다시 돌아온 세속은 열기에 젖어있다. 금새 원시의 흥은 사라지고 어느새 세상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으로 되돌아와 있다.  

 

 

 

산이 철 따라 주는 작은 선물에 감사하면서, 때에 따라 짐승들처럼 다소 억센 것들을 먹게 될지라도 그것마저 감사할 수 있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살다가 서서히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이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 가장 가벼운 차림으로 왔던 핏덩이도 버리고 그저 한 줌의 재로 승화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