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산 (689m)


산행코스 : 황산골→황산사→삼층석탑→마애불→미륵봉→장군봉→신선봉→치마바위→황산골 주차장 ( 원점회귀, 산행시간 : 쉬엄쉬엄 3시간30분)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산행일 : ‘09. 7. 25(토)

함께한 산악회 : 히트산악회


특색 : 산이 낮지만 조형미가 뛰어난 암릉을 품고 있는 산. 다만 산이 깊지 않은 탓에 계곡 물이 적어, 산행 후 알탕은 할 수 없고, 탁족 정도로 만족할 수 밖에 없다. 버스를 주차장에 세워둘 경우 황산사 입구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걷는 게 만만치 않다.  

 

 

산행의 들머리는 황산골 마을입구 주차장

귀래면 소재지 마을 가운데쯤의 갈림길에서 19번 국도를 벗어나 서쪽으로 뻗은 531번 지방도로 접어든 후, 약 2Km정도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주포리 황산골 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을 들어서기 전에 깔끔하게 현대식으로 지어진 화장실을 갖춘 주차장이 있다.   

 

 

 

길옆은 개망초들의 천국

주차장에서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황산사 입구까지는 약 1.5Km 정도... 원래는 버스가 다닐 수 없는 도로이지만 버스기사분의 본의 아닌 협조로 거의 황산사 코앞까지 버스로 이동할 수 있었다. 어느 노조전문 노무사의 글에서 본 문구가 생각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덕분에 우린 손쉽게 등산로 초입에 도달할 수 있었다.  

 

 

 

황산마을에서 황산사 앞을 지나 새터마을까지 이어지는 좁은 도로는 최근에 시멘트로 포장(황산사 앞은 현재 공사중)되어 승용차도 올라갈 수 있다. 걷기에는 조금 부담스런 거리인데, 오늘은 버스가 고생한 덕분으로 우린 편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새터마을로 가는 도로를 따라 1.5Km 정도의 거리, 도로포장 공사가 한창인 고개 직전 길 왼편에 황산사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다. 여기가 미륵산 산행 들머리... 대부분의 표지판이 미륵산이 아니고 황룡사나 황산사로 표기되어 있으나, 개의치 않고 진행해도 된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하는 등산로 초입에 있는 황산사

부처는 꽃나무에 법당을 열고 물고기 몸속에 선원을 차릴 것이다. 그러니 정주하지 말고 흘러라. 추위를 껴안아라. 그 부처를 눈에 담은 중년의 소년아. 날이 추울수록 더 빛나는 게 별이라는 것을 너는 잘 알고 있구나(손택수 시인의 글 중에서)   

 

 

경순왕의 영정각인 경천묘

왕건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이곳까지 왔다하여 귀래라는 지명도 생겼다 한다. 귀래는 귀한분이 오셨다는 뜻이다. 매년 원주시에서 경순왕 경천묘 추행대제를 지내고 있단다.   

 

 

신라 56대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935년 미륵봉의 빼어남에 반해 산 정상에 미륵불상을 만들고 학수사와 고자암을 세웠다는 설이 있다. 경순왕 사후 그를 추종하던 신하와 불자들이 고자암에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받든 것이 영정각인 경천묘의 시발이란다. 경천묘란 명칭은 조선때 영조가 하사한 것이란다.  

 

 

우리나라에는 미륵산이나 미륵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들이 꽤 많다. 그중에 이름난 것들만 하더라도 경상남도 통영시에 있는 미륵산(461m)과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는 미륵산(430m), 그리고 이곳 강원도 원주시의 미륵산이 있다. 익산에 있는 미륵산은 ‘90年代 이리시에서 근무할 때에 거의 매일아침 운동삼아 올랐었고, 오늘은 이곳 원주의 미륵산을 올라봤으니, 이제 통영의 미륵산만 남은 샘이다. 우리나라의 산을 모두 답사해 보고 싶은 나이니, 언젠가는 그곳도 찾아가 볼 날이 있을 터...

 

이렇게 미륵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많은 이유는 신라 末과 고려 初에 미륵신앙이 크게 일어나, 도처에 미륵불을 모시는 절을 짓거나, 바위에 마애불을 새겼었고, 그런 산들을 미륵산이나 미륵봉이라 일컬었기 때문이다. 미륵불은 미래세계를 다스리는 부처일지니, 亡國과 開國에 따른 당시의 사회적 전환기나 혼란기에, 혼미한 세상을 극복하고 보다나은 미래를 추구한 민초들의 열망을 담은 표현이었을 것이다.  

 

 

등산로 초입은 완만한 경사... 주변에는 참나무 숲이 울창하다. 그러나 경사가 완만하면 무얼하랴.. 얼마전까지 공직에 있을 때에 가깝게 어울리던 간부와의 새벽까지 마신 술자리의 휴유증이 만만치 않다. 초반부터 줄줄 흐르는 땀은 땀인지, 아님 술인지 모를 정도로 알콜 냄새가 배어나온다.     

 

 

참나무 숲 사이로 간간히 금강송이 섞여있다. 그러나 이곳의 금강송들은 태백산맥에서 보던 금강송에 비하면 왜소하기 짝이 없다. 그저 허리를 고추세우고 있는 기상만이 비슷할 뿐...  

 

 

3층 석탑

신라 경애왕 때 서응대사와 학서대사가 황산사 창건시에 세운 것으로 ‘주포리 미륵불 3층석탑’으로 불린다. 지정문화재 외에 문화재 건조물 제 9호로 1970년에 보수했단다. 조금 위에 대웅전만 복원된 황산사가 있다.  

 

 

부도전과 삼층석탑을 지나면서 등산로는 갑자기 급경사로 바뀌어 버린다. 곳곳에 설치된 밧줄과의 씨름... 그리 힘들지 않을 정도의 난이도이건만 어제밤 즐겼던 술의 뛰 끝은 그 정도의 난이도 까지도 힘들게 만들고 있다.  

 

 

마애불은 이런 바윗길을 여러 번 반복하고서야 그 모습을 보여준다.   산은 그다지 높지 않으나 부드러운 능선길과 아기자기한 암릉길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산행의 정취와 묘미를 느끼게 한다.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느라 흐트러진 호흡을 한 번 가라앉힐 만한 곳에 마애불이 있다. 마애불이 아래는 높은 단애를 형성하고 있으나 마애불앞은 작은 마당을 이룬 너럭바위인데다가 주위는 멋진 노송이 둘러있어 한숨 돌리기에 안성맞춤이다. 주변의 경관에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여성일행분이 왠지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나 또한 주변경관에 반하고 있음일 터...  

 

 

磨崖佛은 등산로 왼편으로 약간 비켜서서 있는 큰 암릉에 반신상의 彌勒佛이 돋을 형식으로 새겨져 있다. 몸체의 길이는 약 10m정도 된다고 한다. 폭이 넓은 큰 코에, 눈과 입이 투박하여 전체 모습이 토속적이다. 羅末 麗初에 조성된 彌勒佛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미륵부처의 코를 만지면 득남을 하게 된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나 10m가 훨씬 넘는 곳에 있는 부처님 코를 어떻게 만질 수 있으리오... 그저 저 투박한 부처님의 미소를 깨닫고, 비운 마음으로 산행을 마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게 무에 있을까... 

 

 

마애불 앞으로 다시 나와서 암릉을 다시 올라가면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 위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은 대단한 조망처이지만 주변은 높은 단애로 되어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미륵불을 본 후, 암벽사이로 매어진 밧줄을 잡고 오르면 배낭을 맨 채로는 통과하기가 쉽지 않은 홈통이 나온다. 조심스럽게 통과하면 미륵바위에 도착한다. 미륵바위는 열명이상이 한꺼번에 쉴 수 있을 만큼의 널따란 공간으로 되어 있다. 

 

 

 

 

미륵봉에서 바위틈에 늘어진 밧줄을 잡고 내려서면 황산마을과 미륵산으로 갈라지는 안부가 나온다.  안부 맞은편은 미륵봉... 미륵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다시 한번 매어진 밧줄과 씨름을 하여야만 한다.  

 

 

미륵봉의 마당바위는 꽤 넓어서 여러 사람이 앉아 쉴 수도 있고,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도 훌륭하다. 그러나 오늘은 내리는 비 탓에 시계가 좀처럼 열릴 줄 모른다. 북동쪽으로 백운산, 동남쪽으로는 십자봉과 삼봉산이 보인다. 그리고 멀리 남한강의 물길까지도 볼 수 있다는데....  

 

 

미륵봉은 암봉으로 대단히 아름답다고 할만하다. 봉우리자체가 널찍한 바위로 되어있고 부근엔 바람에 부대낀 멋진 소나무들이 있어서 회화적이다.  미륵봉 소나무들은 어느것 하나 없이 마치 누군가가 전지를 한 듯, 윗부분이 반듯하게 잘려있다.

 

 

미륵봉에서 장군봉을 거쳐 신선봉까지는 20분이면 갈 수 있다. 등산로 양 양 옆은 암벽이나 사이가 넓어 암릉으로 느낄 수 없을 정도다.  등산로는 참나무가 울창한 숲길... 곳곳에 바위가 있지만 길을 따라가면 위험한 곳은 없다.  

 

 

신선봉 가는 길은 편안하게 계속된다. 암릉이 없는 길은 짙은 숲속에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있어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오늘 같이 집사람과 함께 걷기엔 그야말로 안성맞춤... 

 

 

걷기 좋은 길에서 집사람과 도란도란 밀린 얘기 나누다보면 어느새 신선봉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 등산로는 암릉으로 바뀐다. 그러나 위험하다 싶으면 밧줄이 매어져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신선봉에서의 하산 길은 바위와 노송이 어우러진 경관이 아름답다. 아기자기한 암릉을 타노라면 한 폭 그림 속을 거니는 느낌이다. 암릉마다 분재와 같이 아름다운 노송들이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그대로이다.

 

 

 

남쪽 암릉은 그리 길지는 않으나 위험지역이 도사리고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곳곳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어 주의만 기울인다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암릉을 타는 맛이 아기자기하여 오히려 산행의 양념이 된다.  부드러운 흙길과는 달리 암릉길은 산행의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길은 호젓하고 숲도 짙어 분위기가 꽤나 아늑하다. 간혹 잣나무 들도 보인다    

 

 

흙 한점 없는 바위에서 자라나는 모습이 신기해서...

아름답다도 해버리면 그 말 속에 산이 가진 매력이 한정돼 버릴까봐 그리 말하지 못하고, 그저 머무르고 싶은 곳이라며 여운을 남겨둔다.

 

 

암릉을 지나면 육산능선이 되고, 등산로는 온통 다래넝쿨이 휘감고 있다.  

걷는다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가 겸허해지며, 그 겸손함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나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렇게 탐스러운 다래도 매달려있고... 가을을 생각하며 나도 몰래 두어 방울 침흘려본다.  

 

 

신선봉 밑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황룡사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를 약 500m 정도 걸어 내려오면 황산사를 가기위해 아침에 지나갔던 도로와 마주친다. 여기서 오른편으로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약 600~700m 정도 내려가면 오른편에 황산골 주차장이 나온다.  

 

 

하산길엔 왕꼬들빼기도 채취하고(삼겹살 구워먹을 때 쌈으로 이용하면 맛이 끝내주는데, 오늘 엄청나게 많이 채취할 수 있었음), 요런 꽃들을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산행 날머리에 도착하게된다

비록 붙잡을 수 없고, 인간의 지식으로 다 담을 수 없어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로 둘러싸인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성에꽃과 같은 눈부신 순간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지상의 삶이다.  

 

 

성에꽃은 물이 되어 녹아 사라지고 말겠지만, 눈석임물이 되어 흐를 때 그 흐름처럼 눈부신 것도 없다. 그렇다면 햇살에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물이 되어 죽어가는 성에꽃이야말로 부처요 만다라다.  

 

 

머리 굴리며 사는 세상에 머리 굴리지 않아도 되고, 단순히 숨쉬는 것만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 가볍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머리를 굴려서 여기까지 와버린 세상인데, 나라도 아니 오늘 하루만이라도 머리 굴리지 않고 그냥 존재하고 싶다.

 

 

세상살이에서 열림과 막힘은 결국 자신 속내의 열림과 막힘과 일치한다. 내 마음이 열리면 곧 세상도 열리는 것이니, 세상은 결국 나만큼의 크기밖에 안 되는 것... ‘나를 바로 보고, 그리고 나를 바르게 다스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