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장산(銀藏山, 457m)
산행일 : ‘14. 9. 9(화)
소재지 :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행코스 : 대회산리고개→임도→은장산→바위봉→갈림길→강변상회→비들기낭폭포주차장→비들기낭폭포(산행시간 : 1시간 50분)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은장산이라고 하면 웬만큼 산에 이골이 난 사람들에게 조차도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그런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산이 작은데다가 산세(山勢) 또한 보잘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걸을 경우 1시간30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산이 작다보니 은장산만 보고 이곳까지 찾아올 사람들은 아마 없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은장산을 찾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명품폭포(名品瀑布)로 소문난 ‘비들기낭폭포’ 때문이다. 은장산의 산자락 아래에 있는 이 폭포를 찾아온 사람들이 남은 자투리 시간을 쪼개어 은장산을 오른다는 것이다.
▼ 산행들머리는 대회산리고개(포천군 영북면 대화산리)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의정부 I.C에서 내려와 43번 국도를 타고 철원방면으로 달리면 의정부, 포천을 지나 운천제2교차로(交叉路 : 포천시 영북면 운암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 교차로에서 빠져나와 왼편의 78번 지방도로 옮겨 비들기낭폭포 방향으로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소회산리와 대회산리의 경계인 대회산리고개에 올라서게 된다. 등산로는 고갯마루에서 대회산리 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서 열린다. 들머리에 이정표(은장산 1840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들머리에서 임도(林道)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임도는 넓기까지 하다. 차량이 지나다녀도 충분할 것 같다. 하긴 군사용(軍事用)으로 개설되었으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길바닥에 나있는 자동차 바퀴자국이 제법 또렷하다.
▼ 자칫 무료해지기 쉬운 이런 길에서는 또 다른 볼거리를 찾아봐야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길가에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온갖 야생화(野生花)들이 무리지어 피어나 있는 것이다. 쉬엄쉬엄 걸으며 들꽃들에게 눈이라도 맞추다보면 까짓 단조로움 쯤이야 금방 사라져버린다.
▼ 평지나 다름없는 길은 걷기에 무척 편하다. 그러나 구경거리는 일절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육산(肉山=흙산)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바위가 일절 없다보니 볼만한 풍경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거기다 길가가 숲으로 가로막혀있어 조망(眺望)까지도 트이지 않는다. 아니 트이기는 한다. 어쩌다 한차례씩 트이기는 하지만 짙은 연무(煙舞)로 인해 시야(視野)가 차단되어버리는 탓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따름이다.
▼ 산행을 시작한지 10분 남짓 지나면 첫 번째 이정표(은장산 1480m/ 등산로입구)를 만나게 되고, 이어서 15분 조금 넘게 더 걸으면 절골갈림길(이정표 : 은장산 227m/ 절골/ 등산로입구)이다. 왼편이 절골로 내려가는 길이라는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구태여 이곳에서 탈출할 이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절골갈림길 조금 못미처에서 보면 오른편 능선으로 난 산길 하나가 보인다. 마침 하산까지의 시간까지 넉넉해서 일단 올라가고 본다. 폐(廢)타이어로 만든 계단을 밟으며 2~3분쯤 올라가면 널따란 헬기장이다. 한쪽 귀퉁이에 꽂혀있는 팻말을 보아하니 군사용(軍事用)으로 만들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헬기장에서는 동쪽과 남쪽으로 조망(眺望)이 트인다. 비록 연무(煙舞) 때문에 희미하고 나타날 따름이지만 남쪽에 보이는 산은 어쩌면 불무산일 것이다.
▼ 일단 절골갈림길을 만났다면 거의 다 올라왔다고 보면 된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금방이기 때문이다. 임도를 따라 몇 걸음 옮기다가 오른편에 보이는 폐(廢)타이어로 만든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5분 후에는 은장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40분만이다.
▼ 은장산 정상은 꽤나 너른 헬기장을 겸하고 있다. 정상의 주위에 군인들의 참호(塹壕)와 이동로(移動路)가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면 옛날에는 군(軍)의 막사(幕舍)도 이곳에 지어졌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먼저 올라온 일행들이 두리번거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정상표지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가가 보니 나무말뚝 하나가 땅바닥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것이 보인다. 꼿꼿이 세워져 있어야할 정상표지목이 웬일인지 뽑힌 채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이다. ‘세운 뒤에 붙잡은 채로 사진을 찍으면 되지 않을까요?’ 집사람의 기발한 아이디어(idea)이다. 그 덕분에 난 본의 아니게 모델(model)노릇까지 해야만 했다.
▼ 헬기장에 서면 사방으로 조망(眺望)이 트인다. 북쪽 오른편에는 한탄강을 낀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그리고 북쪽 건너편엔 수리봉이 보이고, 그 뒤에는 고남산이 고개를 내민다. 수리봉의 왼편에 희미하게 나타나는 산은 아마 금확산일 것이다. 그 외에도 불무산과 고대산, 지장산 등도 조망되지만 희미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산이 어는 산이지 구분해내는 것은 쉽지 않다.
▼ 정상에서의 하산은 남서쪽 능선을 탄다. 비들기낭폭포가 있는 대회산리로 내려가기 위해서이다. 정상과 거의 같은 높이로 보이는 봉우리를 방향으로 삼고 진행하면 된다. 정상에서 짧게 내려섰다가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갑자기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바위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지도(地圖)에 암봉이라고 표기된 지점으로서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highlight)이다.
▼ 암봉의 위는 바위봉우리의 특징대로 뛰어난 조망(眺望)을 보여준다. 남쪽으로 시야(視野)가 뻥 뚫리는 것이다. 봉우리에 서면 불무산이 바로 코앞이고,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보장산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산군(山群)들이 첩첩이 쌓여있지만 아까보다 더욱 짙어진 연무(煙舞) 때문에 어느 산인지는 구분해낼 수는 없다. 이 암봉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두세 명이 둘러앉을 만한 암반(巖盤)들이 여러 곳에 널려있다는 것이다. 잠깐 쉬면서 간식을 먹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 암봉에서부터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꽤나 길게 이어지는 것이 아까 산을 오를 때와는 영 딴판이다. 산행들머리였던 대화산리고개의 해발(海拔)이 의외로 높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들머리가 고개였던 것에 비해 날머리는 강가이다 보니 그만큼 더 많이 고도(高度)를 낮추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가파른 내리막길이 다소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길가에 안전로프를 길게 매달아 놓은 것을 보면 말이다.
▼ 하산길에도 역시 볼거리라곤 딱히 없다. 그저 어쩌다 딱 한번 열리는 시야(視野)를 쫒다보면 비들기낭폭포 관광지(觀光地)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다이다. 그래도 지루하다면 주위를 돌아보면 된다. 야생화 대신에 가끔 나타나는 야생버섯이 볼만하고, 그래도 심심하다면 길가에 널린 도토리라도 주워볼 일이다. 아니 도토리뿐만이 아니다. 하산길 막판에는 산밤나무 군락(群落)도 만나게 되니 눈을 크게 떠보자. 주위가 온통 밤송이에서 금방 튀어나온 알밤들 천지이다. 부지런한 집사람이 금방 엎드린 것 같았는데 한 되박이나 주었다며 홀짝 웃고 있다.
▼ 산에서 내려오면 만나게 되는 마을이 대회산리(大回山里)이다. 암봉에서 50분이나 걸린 것을 보면 알밤을 줍느라 지체(遲滯)된 시간이 제법 된다는 증거일 것이다. 대회산리는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화전민(火田民)들의 모여 살던 깡촌 중의 깡촌이었다. 산삼(山蔘)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심마니들이 단골로 드나들 정도였다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정부의 화전민 소재(疏開) 사업으로 보상(補償)을 받고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고향을 잊지 못하던 주민들은 하나 둘씩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고, 지금 대회산리의 가구수는 60여호에 이른다고 한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돌아올 회(回)자에 뫼 산(山)자를 쓰는 마을 이름이 그대로 실현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 산행날머리는 비들기낭폭포 주차장
마을 안길을 통과하면 만나게 되는 강변상회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 ‘비들기낭폭포’라고 쓰인 커다란 빗돌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부터는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만 진행하면 된다. 우선 래프팅(Rafting)교육장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비들기낭 캠핑장’이 나오고, 이어서 현재 공사가 한창인 공원지구(公園地區)를 통과하면 주차장을 만나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시간은 총 2시간5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1시간50분이 걸린 셈이다.
▼ 탐방안내소가 있는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길가에 정자(亭子) 하나가 보이는데 비들기낭폭포의 들머리는 정자의 바로 옆에서 열린다. 입구에 폭포의 입구임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으니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비들기낭폭포는 ‘한탄강 8경’ 가운데 제6경이며, 비들기 수백 마리가 겨울을 여기에서 지냈다는 것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이 폭포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근 군부대(軍部隊) 장교들의 휴양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철조망을 둘러쳐서 인근 주민들의 접근을 막았음은 물론이다. 그 후 서서히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지난 2009년과 2011년에 각각 방영(放映)된바 있는 드라마 ‘선덕여왕(MBC)과 ’추노(KBS2)‘의 촬영지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유명한 관광지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선덕여왕’에선 천명공주가 독화살을 맞고 여기서 죽었고. ‘추노’에선 태하가 부상당한 혜원과 도망치다 여기서 그녀를 치료했다. 그리고 또 하나 2005년에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신돈’에선 주인공 신돈이 피나는 수련을 하던 장소였다.
▼ 폭포의 입구는 울창하게 우거진 숲으로 가려져 있다. 그 숲을 헤치고 아래를 향해 길게 놓인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면서 본격적인 투어(tour)가 시작된다. 말끔하게 정비된 계단은 포천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탄강 경승지(景勝地) 지정 및 종합개발계획'의 일환일 것이다. 포천시에서 위 계획을 추진하면서 ‘한탄강 8경’을 지정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현무암 협곡 명승지’로 지정된 비들기낭폭포이기 때문이다. 폭포의 하단까지 길게 놓인 계단은 곳곳에다 전망데크를 만들어 놓았다. 위에서 내려다본 폭포는 짙은 쪽빛으로 빛나고 있다. 혹시 저 물에 손이라도 담글 경우에는 나 또한 그 빛에 물들어버릴 것 같다. 아니 꼭 손을 담글 필요도 없다. 물가에 다가기만 해도 쪽빛에 동화되어버릴 것이 분명하니까 말이다. 상념에 젖다보니 내 마음도 어느새 쪽빛으로 물들어버렸다. 올 여름은 이미 다 갔는데도 내 마음의 여름은 이제야 쪽빛으로 물들어 가는 모양이다.
비들기낭폭포는 최근(2012년) 천연기념물(제537호)로 지정된바 있다. 30여 만 년 전 유출된 용암이 굳은 뒤 침식돼 이뤄진 주상절리 협곡과 동굴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포천의 심산유곡에서 흘러나온 물길이 이곳에 이르면 갑자기 땅이 푹 꺼진 현무암(玄武岩, basalt)으로 이루어진 주상절리(柱狀節理:pillar-shaped joint)의 벼랑 이래로 떨어진다. 아래로 떨어진 물줄기는 어둑어둑한 곳에서 소(沼)를 이루고 굽이치며 다시 한탄강을 향해 급류를 이뤄 나가게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은 그 웅장한 물보라를 볼 수가 없다. 하긴 장마철이라야 폭포의 제 모습을 만날 수 있는데도 찾아온 시기가 가을의 초입이다 보니 바라는 것 자체부터가 언감생심(焉敢生心)일 것이다. 참고로 비들기낭폭포는 평소에는 말라 있다가 비가 온 뒤에야 폭포의 물줄기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특징을 갖고 있다.
▼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폭포의 전모(全貌)가 한눈에 들어온다. 비둘기 둥지처럼 둥그런 협곡(峽谷) 양편으로 검은색 현무암(玄武岩, Basalt)이 벼랑을 이루고 있는데, 제주도 지삿개에서나 보던 육각형 모양의 주상절리도 눈에 띈다. 그러나 아쉽게도 높이 10m가 넘는 벼량 위에서 힘차게 떨어져 내리고 있어야 할 물줄기를 멈춘 채 허연 배를 드러내놓고 있다. 만일 절벽아래에 있는 동굴의 천장에서 물웅덩이로 떨어지는 물줄기마저 보이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폭포로 분류될 수 있었을까를 갖고 골머리를 썩였을 것이 분명하다. 폭포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길은 문이 굳게 잠겨있다. 이곳이 상수원보호구역(上水源保護區域)이기 때문이란다. 드라마에서 나왔던 풍경, 그러니까 폭포의 안쪽에 있는 동굴에서 밖을 향해 카메라의 앵글(angle)을 맞춰보고 싶었으나 참을 수밖에 없다. 나 하나 문(門)을 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를 본 사람들이 너나없이 따라할 경우에는 문을 잠가 놓은 취지가 자칫 흐려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폭포를 돌아보고 되돌아 나오는 길, 다시 한 번 계곡을 내려다보니 아까는 보지 못했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양쪽이 검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협곡(峽谷)이다. 아까 폭포로 들어서던 길에 온통 폭포에만 포커스(focus)를 맞추는 바람에 지나쳐버렸던 모양이다. 날카로운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진 협곡은 자못 웅장하면서도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산이야기(경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북정맥이 빚어놓은 전형적인 육산, 백운산-도마치봉('15.2.21) (0) | 2015.02.26 |
---|---|
산세는 평범하나 존귀한 유물들을 품고 있는 고래산-우두산('14.12.13) (0) | 2014.12.17 |
수직절벽의 천연산성으로 이루어진 성산과 재인폭포('14.8.12) (0) | 2014.08.25 |
용문산에 눌려있으나 산세는 더욱 빼어난 용조봉-신선봉('14.8.2) (0) | 2014.08.11 |
허연 속살을 드러낸 능선이 아름다운 각흘산('14.7.25) (0) | 2014.07.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