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락산(長樂山, 627m)

 

산행일 : ‘15. 6. 7()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과 강원도 홍천군 서면의 경계

산행코스 : 널미재장락산미사2리 갈림길깃대봉화채봉왕터산 못미처 고개도장골산울로펜션미사2리 마을회관(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산과 하늘

 

특징 : 널미재에서 홍천강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산줄기로서 비교적 수월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다. 산줄기 중에서 가장 높다는 장락산과 산행기점의 표고차가 기껏해야 250여 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행은 여러 가지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기암괴석(奇巖怪石)과 노송(老松)들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경관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고, 높고 낮은 바위들을 넘나드는 짜릿한 스릴(thrill)도 맛볼 수 있다. 거기다 북한강과 홍천강을 바라보는 조망(眺望)까지 뛰어나니 어떻게든 한번쯤은 꼭 올라봐야 할 산이 아닐까 싶다.

 

산행들머리는 가평군(설악면 위곡리)과 홍천군(서면 동막리)의 경계인 널미재

서울-양양고속도로 설악 I.C에서 내려와 86번 지방도를 타면 쉽게 널미재에 이를 수 있지만 이번 산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다. 이곳 널미재로 오기 위해서는 우선 가평군 설악면 소재지까지 와야만 한다. 오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잠실역 5번 출구에서 출발하는 7000번 광역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지 않나 싶다. 잠실에서 이곳 설악까지 논스톱으로 다니기 때문에 가장 짧은 시간에 이곳까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설악터미널에서 모곡행 군내버스를 타면 널미재에 이를 수 있다. 아침 850분 출발 버스가 있으나 시간이 변동될 수도 있으니 사전에 확인해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버스는 널미재 고갯마루에서 가평 쪽으로 100m쯤 내려온 곳에 있는 방일해장국 앞에서 정차를 한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에도 같다. 해장국집 앞이 널따란 주차장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들머리는 해장국집에서 고갯마루 방향으로 50m쯤 가다가 왼편으로 열린다. 들머리에 산행안내도와 이정표(정상 3.5Km)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고갯마루 정상에서는 들머리를 찾을 수 없다. 도로를 내면서 만든 절개지가 능선을 단절시켜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산행은 상당히 가파르게 시작된다. 그러나 곧바로 완만해진다. 산자락으로 들어서면서 잠깐 가팔랐던 산길이 절개지 근처를 지나자마자 그 기세를 누그러뜨려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산길은 잣나무 아래로 나있다. 코밑을 흐르는 짙은 소나무향, 기분이 절로 상큼해지는 멋진 길이 계속된다.

 

 

 

산으로 들어갈수록 참나무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잣나무들도 언제부턴가 소나무로 바뀌어 있다. 그것도 개체수를 현저히 줄여버린 채로다. 그러다 10분 후에는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삼거리(이정표 : 장락산 2.1Km, 왕터산 7.2Km/ 널미재 200m)인 이곳에서 오른편은 널미재 고갯마루에서 홍천쪽으로 약간 비켜난 지점에서 오르는 길, 장락산은 물론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능선에서 만난 기목(奇木), 자유방임(自由放任)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자신의 온몸을 비비꼬다 못해 품고 있는 나뭇가지들 까지도 제멋대로 뻗어 나가도록 그냥 놓아둔 것을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다. 이런 소나무들은 산행 내내 눈에 띈다. 장락산 만의 특징이 아닐까 싶다.

 

 

능선으로 올라선 산길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종내는 힘에 부칠 정도로 가팔라져 버린다. 산길은 그 가파름이 부담스러웠던지 왔다갔다 갈지()자를 그리다가 그마저도 힘에 겨웠던지 로프까지 이용해서 위로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가파른 산길은 첫 번째 봉우리인 무명봉에 올라설 때까지 계속된다. 쉬엄쉬엄 걸어서 35분쯤 되는 거리이다. 오늘의 화두(話頭)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로 시작해볼까 한다. 힘들게 올라온 무명봉에서 보석 같은 나무를 만났기 때문이다. 잘 읽은 오디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산뽕나무이다. 이곳까지 올라오느라 고생한데 대한 보상(補償)이라고 보아도 좋을 듯 싶다. 오디의 크기는 작았다. 그러나 당도(糖度)만은 여느 과일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쉽게 말해 엄청나게 달았다는 얘기이다. 고생 후에 즐기는 잠깐의 휴식만 해도 달콤한데, 거기다 달디 단 오디까지 따 먹으니 한마디로 행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행복은 저질체력의 표본인 진철아우님이 도착할 때까지 계속됐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웃음꽃이 피기 시작한다. 물론 오디로 시작되어 오디로 끝을 맺는 웃음꽃이다. 그 시작은 미리 따 놓은 오디를 그에게 넘기면서 시작된다. ‘다리 힘을 돋우는데 도움을 준다는 과일이니 힘내게나.’ 그러나 또 다른 조크(joke)가 더해진다. ‘다리에 힘을 실으라고 주는 것인데, 가운데 다리만 세우는 거 아녀?’ 다들 배꼽을 잡는데 뽕나무에 찰싹 들어붙어 있는 홍일점 홍여사만 아무런 표정이 없다. 오디를 따먹느라 못 들었는지 아니면 짐짓 못들은 채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평탄한 산길을 따라 5분쯤 더 걸으면 삼각점봉에 이르게 된다. 삼각점(용두 21)이 세워져 있는 이 봉우리의 높이는 627m, 장락산의 실질적인 정상이란다.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최영철군의 주장이다. 비록 나이는 많지 않지만 15년이 넘도록 산행을 하고 있는 나보다도 산행 이력(履歷)이 더한 친구이니 믿어도 좋을 것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볼거리 등 이곳의 산세(山勢)가 썩 뛰어나지 못한 탓에 정상을 옮겼다는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그런 이유로 정상을 옮겨 놓은 산들은 전국 도처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삼각점봉을 내려서다보면 진행방향에 뾰쪽하게 생긴 산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이곳에 있어야 할 정상을 옮겨놨다는 새로운 장락산 정상이다. 가깝게 보이지만 실제는 의외로 머니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걸어볼 일이다.

 

 

삼각점봉에서 장락산까지는 세 개의 봉우리로 연결된다. 봉우리의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러나 그 생김새는 심상찮다. 봉우리는 물론 능선 곳곳이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거기다 능선에는 노송(老松)들이 그득하다. 그것도 제멋대로 휘고 늘어진 나무들이다. 기암(奇巖)과 기목(奇木)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기경(奇景)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가장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구간일 것이다.

 

 

 

능선은 곳곳에서 바윗길을 만든다.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아찔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금이라도 험하다 싶으면 길은 어김없이 바위들을 우회(迂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바위를 오르지 않은 이상 위험할 일은 없다는 얘기이다. 그저 주변의 눈요깃거리를 즐기면서 걷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30분 정도를 걸으면 드디어 장락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들머리에서 1시간30분이 걸렸다. 일행 중에 엄청나게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쉬엄쉬엄 걸은 시간이니 참조해야 할 일이다.

 

 

 

 

 

 

10평 정도 되는 제법 너른 정상에는 화강암으로 깍은 막대형의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왕터산 6.75Km/ 하산 3.50Km)가 세워져 있다. 정상석에 표기된 이곳의 높이는 627.3m, 그러나 잘못 표기된 것이라는 주장들이 많다. 실제 높이는 615m라는 것이다. 고도계(高度計)를 챙겨오지 않아 높이를 재볼 수는 없었지만, 사실이라면 아까의 삼각점봉보다 12m가 낮은 셈이다. 그렇다면 정상을 왜 이곳으로 옮겼을까? 어쩌면 조망이 좋을 곳을 찾다보니 이곳까지 오지 않았나 싶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시야(視野)가 활짝 열리는 편은 아니다. 주변의 나무들이 풍경의 아랫도리를 잘라버리기 때문이다. 거기다 연무(煙霧)까지 가득해서 어디가 어딘지 분간까지 할 수가 없다. 다른 선답자들의 글로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다. 서쪽 발아래에는 청평호가 내려다보이고, 그 뒤는 호명산과 화야산이 버티고 있다. 북한강과 홍천강이 만나는 합수점과 청평호의 호수는 산수가 어우러진 그림이다. 동쪽으로는 모곡리 일대와 홍천강이 잘 조망된다.

 

 

왕터산을 향해 산행을 이어간다. 북쪽 방향이다. 정상을 지나서도 바윗길은 계속된다. 그러나 조망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능선 전체가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흙과 바위가 섞여있는 탓일 것이다. 그러다가 잠시 후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예쁘게 지어졌다는 통일교의 건물들이라도 보일까봐 고개를 내밀어 보지만 나뭇가지들 뒤로 숨어버렸다. 그 너머에 있는 청평호()만이 눈에 들어올 따름이다. 그것도 연무(煙霧)에 가려 희미한 모습으로 말이다.

 

 

 

능선의 바위들은 갈수록 더 굵어진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넘을 필요는 없다. 산길은 바위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잘도 나있다. 얼마쯤 걸었을까 능선의 왼편에 금()줄이 쳐져있다. ‘사유지이니 출입을 하지 말라면서 이를 어길 때에는 고발조치 하겠다는 서슬 시퍼런 경고판까지 매달아 놓았다. 아마 요 아래에 있는 통일교에서 설치한 모양이다. 금줄은 끝날 줄을 모른다. 그리고 능선과 함께 끝도 없이 이어진다.

 

 

 

금줄을 따라 걷다보면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특이한 외형을 가진 하얀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돔이 우뚝 솟은 네오클래식(neoclassic : 신고전주의) 양식의 웅장한 건물은 보는 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어디서 보았을까? 맞다 미국의 국회의사당이 저렇게 생겼었다. 저 건물은 통일교의 천성산(天聖山) 본전성지라 불린단다. 통일교 측은 지구촌 어느 나라의 누가 오더라도 데려다 교육시킬 수 있는 본궁이라고 말한다. 12000여 평의 부지에 연건평이 4900여 평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이다. 이외에도 청심국제중·고등학교, 청심국제병원, 천주청평수련원, 실버타운 등이 장락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가 통일교의 왕국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능선이 온통 바윗길로만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바윗길과 흙길이 적당하게 섞여있는 것이다. 심심찮게 바뀌는 풍경들로 인해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산행풍경으로는 이만한 곳도 없겠다.

 

 

 

바윗길은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갈수록 더 험해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이 내려서기에 다소 부담스러운 곳도 나타난다. 청춘남녀들이라면 얼씨구나 좋아할만한 조건이겠지만 말이다. 누군가가 건네 오는 손길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내려서는데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장락산을 출발한지 3시간10분이 지나서야 미사2리 갈림길에 내려선다. 중간에 간식을 먹느라 너무 오랫동안 쉬었던 탓이다. 너무 오랜만에 만났던지라 할 얘기들이 무척 많았던 모양이다. 무려 1시간 50분이나 쉬었기에 하는 말이다. 쉬었던 시간을 뺄 경우 장락산에서 이곳 갈림길까지는 1시간 20분이 걸렸다. 이정표가 2(#1 : 왕터산 3.1`Km/ 장락산 2.4Km, #2 : 미사리 2Km/ 장락산)나 세워진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미사2리 마을회관이다.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탈출하면 된다. 우리도 일행 2명을 이곳에서 탈출시키고 나머지 구간은 나와 최군 둘이서만 진행하기로 한다.

 

 

 

갈림길을 지나서도 바윗길은 계속된다. 그러나 그 빈도(頻度)나 난이도(難易度)는 현저하게 떨어진다. 쉽게 말해 걷기가 편해졌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반면에 길의 흔적은 희미해진다. 그만큼 이 구간을 다니는 사람들이 적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산길이 주능선을 따라 나있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한다면 길 찾기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능선은 남북으로 곧게 뻗어있다. 따라서 능선을 따라 난 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겠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실제로 우린 그런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미사2리 갈림길에서 15분쯤 되는 지점에서다. 체력이 다한 일행들을 미사2로 탈출시키고 나서 산행에 속도를 내고 있는데 갑자기 능선이 벼랑수준의 급사면(急斜面)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참을 헤맨 후에야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을 알게 된다. 오늘 같은 산에서는 주능선을 따라 진행하는 것이 옳다. 그렇다고 길의 흔적까지 무시해가며 무작정 능선을 따르라는 얘기는 아니다. 가끔은 벼랑을 피해가려는 산길이 우회로(迂廻路)를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리 능선이 또렷하다고 해도 길 찾기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어렵게 다시 찾은 산길은 잠시 후 능선위로 다시 올라선다. 벼랑을 피해 왼편으로 우회(迂廻)를 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어서 산길은 안부까지 완만하게 떨어졌다가 다시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오름짓을 시작한다. 그것도 길고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곳에서는 속도를 조금 늦추는 게 상책이다. 그러나 그게 불가능하니 문제이다. 중간에서 탈출을 한 일행들과 하산시간을 대충 맞춰야하니 늦장을 부릴 여유가 없고, 거기다 앞서가는 최군은 인정사정없이 내닫기만 한다. 입에서 단내가 나야만 하는 이유이다.

 

 

얼마쯤 올랐을까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깃대봉으로 곧장 치고 오르는 길 외에도 봉우리를 왼편으로 우회(迂廻)시키는 길이 하나 더 나있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곧장 능선을 따라야 한다. 그래야만 깃대봉 정상에 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 2리 갈림길에서 깃대봉까지는 40분이 조금 더 걸렸다. 서너 평 남짓한 공터로 이루어진 깃대봉 정상은 텅 비어 있다. 정상표지석이 없다는 얘기이다. 물론 이정표도 없다. 그저 한가운데에 심어져 있는 삼각점(용두 303)이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깃대봉에서의 조망은 보잘 것이 없다.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視野)가 열리지만 빈약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연무(煙霧)까지 방해를 놓는 탓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날씨가 좋을 경우에는 유명산과 축령산이 보인다는데 말이다.

 

 

깃대봉을 지나면서 또 다시 바윗길이 시작된다. 그렇다고 그동안에 바위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능선의 대부분이 흙으로 이루어졌고, 어쩌다 만나는 바위들도 그 크기나 생김새가 눈여겨볼만한 것이 없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깃대봉을 지나면서 바위는 거대하다 싶을 정도로 굵어진다. 그러다보니 안전로프에 의지해야만 내려설 수 있는 구간도 나타난다. 모처럼 즐기는 손맛에 깃대봉을 오르면서 쌓였던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져버린다.

 

 

 

스릴(thrill) 있는 바윗길에서 내려와 이어 나타나는 자그마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주변의 노송(老松)들을 어우르며 멋진 경관을 만들어내고 있는 바위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왼편 소나무 가지 아래로 서울-양양고속도로의 가평휴게소가 한눈에 잘 들어오는 곳이다.

 

 

전망대를 지났다싶으면 화채봉은 금방이다. 화채봉도 정상표지석이 없기는 깃대봉과 매한가지이다. 그저 글씨가 거의 다 지워졌을 정도로 낡아빠진 이정표(왕터산, 미사리도장골 2.3Km/ 장락산 4.75Km)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정표 역시 이곳이 화채봉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그저 어림짐작으로 이곳이 정상이려니 할 따름이다. 화채봉에서 또 다시 왼편으로 시야가 열린다. 그러나 잡목(雜木)들에 가려 조금 전에 만났던 바위전망대보다도 한참이나 격이 떨어진다. 깃대봉에서 화채봉까지는 25분 남짓 걸렸다.

 

 

 

화채봉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 능선으로 난 급사면(急斜面)을 따르는 길과 왼편의 절벽(絶壁) 위로 난 길이다. 이곳에서는 오른편 길을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 왼편으로 진행할 경우 다소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른편 길이 희미한 탓에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된다. 주의를 소홀히 한 우리도 역시 왼편 길로 진행하게 되었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오고 나서야 길을 잘못 들어섰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험난한 여정을 겪고 난 뒤였으니 후회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서 조금 더 진행하면 산길은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튼다. 화채봉에서 15분 거리이다. 왕터산은 맞은편에 있는데도 말이다. 오른편으로 진행하다 말고 다시 되돌아온다. 그리고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무작정 내려서고 본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조금 후에 능선을 따르는 길이 제법 또렷하게 나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오른편으로 휜 산길에서 갈라져 내려오는 길인 모양이다.

 

 

길을 제대로 찾았다 싶으면 오른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능선의 오른편을 깔끔하게 벌목(伐木)을 해놓은 탓이다. 산속을 뚫고 지나가는 서울-양양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이고 그 뒤에는 좌방산과 소주봉 등 크고 작은 산들이 수없이 버티고 있다.

 

 

벌목지를 내려오다 보면 그다지 높지 않은 산 하나가 맞은편에 나타난다. 물론 생김새도 보잘 것 없다. 그러나 이름만 놓고 봤을 때는 그렇지가 않다. 옛날 고려의 공민왕이 머물렀다는 산, 그가 신하들과 함께 적을 무찌르고 회군(回軍)하는 도중 쉬어갔다는 전설(傳說)이 있는 산이다. 그래서 이름 또한 왕터산이라고 지었단다. 왕터산으로 오르기 전, 그러니까 아까 산길이 방향을 급선회했던 곳에서 10분쯤 되는 지점에서 왼편으로 길이 나뉘는 것을 볼 수 있다. 미사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왕터산을 다녀오느냐 아니면 그냥 이곳에서 내려가고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결론은 그냥 내려가는 것으로 났다. 왕터산에 올라봐야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간에서 미사리로 탈출했던 일행들과 하산시간을 얼추 맞추어보려는 생각도 다른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삼거리에서 내려서는 길은 완만하게 이어진다. 능선이 이미 고도(高度)를 많이 낮추어 놓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산길은 잡목(雜木)들로 인해 헤치고 나가는 게 그다지 쉽지는 않지만 길을 찾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물기가 거의 없는 도장골 골짜기를 따라 한가하게 내려오면 과수원에 이르게 되고, 이어서 잠시 후에는 북한강의 강변을 따라 난 도로에 내려서게 된다. 능선을 벗어난 지 40분 정도가 지났다. 오른편에 산울로라는 펜션이 있으니 참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가평으로 나가려면 이곳에서는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오른편으로 갈 경우 몇 개의 펜션을 지난 후에는 길이 끊겨버리기 때문이다.

 

 

산행날머리는 미사2리 버스종점

미사2리로 내려가는 도로는 북한강을 오른편에 끼고 나있다. 비록 강변을 따라 나있지는 않지만 북한강의 풍경을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 강물 위를 나르듯이 달리고 있는 보트들이 날렵하기 짝이 잆다. 그 보트들 뒤에 매달린 사람들이 보인다.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귀족스포츠라 불리던 운동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일반인들도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레저(leisure)활동의 하나로 변해버렸다. 길을 가는 중에 택시를 부른다. 비록 버스는 다니지 못하지만 승용차가 다니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렀던 택시는 미사2리에 거의 다 가서야 탈 수 있었다. 20분 정도의 발품을 팔고나서이다. 오늘 산행은 총 7시간 20분 정도가 걸렸다. 중간에 쉬었던 시간을 감안할 경우 5시간 정도가 걸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