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산(戀人山, 1,068.2m)

 

산행일 : ‘14. 6. 4()

소재지 :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북면, 하면의 경계

산행코스 : 마일리 국수당우정고개우정능선우정봉연인산아재비고개큰드래골귀목마을(산행시간 : 4시간40 )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연인산은 한마디로 편한 산이다. 부드러운 황톳길이 계속되는 전형적인 육산(肉山)에다 건강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인 잣나무까지 가득하다. 그러니 등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웰빙(well-being)이나 힐링 (Healing)을 위한 산책 정도로 생각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당연히 산 이름 그대로 연인(戀人)들이 찾기 좋은 산이다. 그러나 대신에 눈요깃거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눈요깃거리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아재비고개로 하산 코스를 정할 것을 권하고 싶다. 연인산에서 유일하게 바윗길이 섞인 능선이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마일리 국수당

46번 경춘국도(京春國道/ 춘천방향)를 타고가다 하천 I.C(청평면 하천리)에서 37번 국도로 옮긴 후, 조종천을 끼고 포천방향으로 달리다보면 가평군 상면소재지(面所在地)인 현리에 이르게 된다. 현리에서 마일천을 끼고 이어지는 군도(郡道 : 연인산로)를 따라 들어가면 연인산수련원을 거쳐 산행들머리인 마일리 (**)국수당에 이르게 된다.

(**)국수당, 국사당(國師堂)이라고도 불리며 마을을 수호하는 동신(洞神)을 모시는 마을의 제당(祭堂)이다. 대체로 마을의 뒤쪽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데, 때로는 무당(巫堂)들의 기도처로 이용되기도 한다. 옛날 이곳에 국가의 안녕(安寧)을 비는 제사를 올리던 성황당(城隍堂_이 있었다고 해서 국수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마일리 국수당(國師堂)의 주차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등산안내도이다. 그다지 넓지 않은 주차장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맨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주차장에서 자동차가 들어왔던 도로의 맞은편에 보이는 임도(林道)를 따라 들어서며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이정표(연인산 정상 6.0km/ 현리)가 세워져 있으니 길을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국수당을 출발해서 7분 남짓 걸으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 길은 사유지(私有地)로 들어가는 진입로인 듯 철제문(鐵製門)으로 굳게 닫혀있는데, 오른편도 역시 차단기(遮斷機)로 길을 막았다. 다만 차량 진입금지라고 쓰인 팻말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면, 다행이 오른편 길은 사람의 통행이 가능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차단기를 지나면서 길은 계곡으로 접어든다. 이어서 임도를 따라 12분쯤 오르다가 임도를 벗어나 왼편 오솔길로 접어든다.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 올라가도 되겠지만 지름길을 놔두고 구태여 돌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솔길은 10분쯤 지나면서 아까 헤어졌던 임도와 다시 만나게 되고, 이어서 조금 후에는 해발 622m인 우정고개에 올라서게 된다. 우정고개까지 올라오는 산길은 거칠지만 경사(傾斜)가 가파르지 않기 때문에 오르는데 그다지 부담스럽지는 않은 편이다. 마일리 버스 종점에서 우정고개까지는 37분이 걸렸다.

 

 

 

 

우정고개는 원래는 전패고개라고 불리던 가평읍 승안리와 북면 백둔리 사람들이 하면(下面) 마일리를 넘나들 때 이용하던 고갯마루이다. 전패라는 지명(地名)은 후고구려의 궁예가 패전(敗戰) 후 얼마동안 이곳에 군대(軍隊)를 주둔시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다가 1999년 가평군 지명위원회에서 전패라는 지명이 혐오스러운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전패봉을 우정봉으로 바꾸면서 이곳 전패고개도 우정고개로 바꾸었다고 한다. 우정고개에서 길은 네 갈래(매봉들머리의 이정표 : 매봉 2.3Km, 칼봉 4.6Km/ 연인산 정상(우정능선)/ 마일리 종점/ 탐방로 아님/ 탐방로 아님)로 나뉜다. 이정표의 화살표는 연인산 정상(우정능선)과 매봉 그리고 마일리만 가리키고 있고 나머지 두 개의 임도는 지정된 등산로가 아니란다. 우정능선 들머리에 또 하나의 이정표(연인산 정상 4.3Km/ 매봉 2.3Km/ 국수당 1.7Km/ 탐방로 아님)도 역시 매봉과 우정능선을 빼 놓고 나머지 길은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아마 뭔가를 보호하려는 모양이다. 연인산 정상으로 향하는 산길은 왼편으로 난 방화선을 따라 이어진다  

 

 

 

우정능선으로 들어선다. 능선을 따라 난 길은 연인산 특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보드라우면서도 널따란 흙길이 웰빙(well-being)과 힐링(Healing)의 분위기를 물씬 풍겨주는 것이다. 그게 다 산불방화선(防火線)을 만들기 위해 능선의 나무를 베어낸 데서 기인한다. 그 덕분에 오붓한 숲길이 생긴 것이다. 산길이 비록 넓지만 계속해서 그늘이 이어진다. 좌우에 늘어선 키 큰 신갈나무와 잣나무들이 번갈아 가면서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숲 가운데로 난 여유로운 흙길은 영화(映畵)의 한 장면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오르내림이 많은 산줄기지만 그늘에다 발 디딤이 푹신한 길이라서 걷는데 조금도 힘이 들지 않는다. 우정고개에서 15분쯤 걸으면 이정표(우정봉 1.7Km/ 국수당 2.1Km/ 탐방로 아님)를 만나게 된다. 왼편 마일리 방향으로 희미하게나마 길의 흔적이 나타나는데도 탐방로가 아니라며 길을 막아 놓았다.

 

 

방화선(防火線)을 따라가다 보면 길의 양쪽에 의외로 많은 단풍나무들이 보인다. 비록 조림(造林)을 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가을에는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해 줄 것 같다. 피톤치드(phytoncide)에 볼거리까지 갖춘 멋진 힐링(Healing)길이 될 것이 분명하다.

 

 

 

널따랗게 뚫린 방화선을 사이에 두고 좌우(左右)가 보여주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오른편은 순수한 잣나무 숲인데 반해 왼편은 오로지 참나무뿐인 것이다. 나도 몰래 고개가 오른편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일 것이다. 각종 감염 질환이나 아토피(atopic) 질환 등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가 바로 잣나무이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그 피톤치드는 면역력(免疫力)을 좋게 해줄 뿐 아니라 우울증 같은 마음의 병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니 두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정표가 있는 지점에서 10분쯤 더 걸으면 헬기장(구호지점 표시목 : 연인산 정상 3.2Km/ 마일리 국수당 3.0Km)이 나온다.

 

 

꽤 오랫동안 이어지던 잣나무 숲이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렸다. 대신 참나무들이 소리 소문 없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렸다. 배낭의 무게가 갈수록 무겁게 느껴져 온다. 아마 배낭 속에 든 막걸리가 그 원인이 아닐까 싶다. 영양가로 넘친다는 가평의 잣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잣은 막걸리 안주로 제격이니까. 그러나 그 막걸리는 연인산 정상을 지나고서야 마실 수 있었다. 잣나무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망치려고 하느냐는 집사람의 지청구 때문이었다. 헬기장에서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또 다른 헬기장(이정표 : 우정봉 0.5Km/ 국수당 3.3Km/ 탐방로 아님)을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는 오른편 길을 막아 놓았다.

 

 

두 번째 헬기장에서 5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바윗길이 선을 뵌다. 새로운 기분으로 비탈길을 치고 오르면 10분 후에는 우정봉에 올라서게 된다. 그러나 막상 우정봉에 올라보면 봉우리다운 맛은 없다. 아마 연인산으로 가는 능선이 거의 평지(平地)와 다름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상표지석이 없는 것도 한 몫을 했음은 부인하지 못하겠다. 거기다 이정표(연인산(우정봉) 2.3Km/ 국수당 3.8Km)까지도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다. 연인산 정상과 우정봉을 같은 봉우리로 표기(表記)해 놓고 거기까지 가려면 2.3Km를 더 가라는 것이다. 명색이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지정된 도립공원(道立公園)’으로 알고 있는데 비록 하찮은 시설물일지라도 조금 더 신경을 써서 만들면 어떨까 싶다. 만일 말뚝 위에서 위태롭게 앉아 있는(바람만 세게 불어도 떨어진다) ‘정상판만 아니었다면 정상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뻔 했다.

 

 

 

 

 

우정능선은 오르내림의 연속이다. 완만(緩慢)하지만 긴 오름과 짧은 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는 것이다. 가끔은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거리가 짧아서 힘들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그 거리는 만만치 않다. 이제는 다 왔는가하면 저만큼 앞에 또 하나의 오름이 나타나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 끝나랴 싶게 오르내림은 계속된다. 지루할 정도로 잦은 오르내림을 35분 정도를 반복한 뒤에야 연인산에서 가장 넓은 전망터라는 1,048m봉 헬기장에 올라서게 된다. 물론 헬기장 조금 못미처에서 의미 없는 갈림길(이정표 : 연인산 정상 9.9Km/ 우정봉 1.4Km, 마일리 국수당 5.2Km/ 탐방로 아님)도 하나 지났다. 헬기장에서 모처럼 시야(視野)가 트인다. 진행방향에 연인산 정상이 보이고, 그 왼편에는 명지산이 거칠게 솟아 있다. 명지산을 좌우에 끼고 있는 산들은 아마 국망봉과 화악산일 것이다.

 

 

 

 

 

 

헬기장에서 잠깐 조망을 즐긴 후에 연인산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으로 가다보면 오른편에 오솔길 하나가 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비교적 완만(緩慢)한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아홉마지기라고 불리는 너른 터로 내려가는 길이다. ‘아홉마지기 터에는 무인산장 외에도 작은 샘이 하나 있지만 내려가는 것은 생략하고 곧바로 정상으로 향한다.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오르다보니 준비해 온 물을 아직 뚜껑도 열지 않은 채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홉마지기'의 씨앗을 아홉 말이나 뿌렸을 정도로 터가 완만(緩慢)하면서도 넓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이름에 얽힌 오래된 얘기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숯을 굽는 청년과 참판댁의 여종 사이에 얽힌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종과 결혼을 하게 해달라는 청년에게 참판은 조 100석을 가져오면 결혼 시켜주겠다고 했고, 이에 청년은 연인산 정상 부근의 분지에다 아홉 마지기의 밭을 일궈 조 100석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물에 욕심이 난 참판은 그를 역적의 아들로 몰아 쫓기게 만들어버린 모양이다. 그 결과 실의에 찬 청년은 아홉 마지기 밭에 불을 지른 후 불에 뛰어들어 죽어버렸고, 처녀도 따라 죽었다고 한다. 사랑과 소망이 이뤄진다는 연인산의 의미와는 달리 아이러니(irony)하게도 이루어지지 못했던 한 맺힌 사랑의 이야기가 연인산에 전해지는 것이다.

 

 

 

아홉마지기갈림길에서 키 작은 주목들이 듬성듬성 들어선 능선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연인산 정상이다. 5~6평 남짓한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에 올라서면 윗돌이 하트()모양으로 생긴 독특한 정상표지석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랫돌에는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적혀 있다. 숯 굽는 청년과 종살이 하던 처녀의 이루어지지 못한 한이 서린 산에다 대고 이곳을 찾는 연인(戀人)들의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진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패러독스(paradox)인가. 정상은 좀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비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시설물들이 들어앉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상석과 삼각점(일동 308/ 2006 재설), 방위석(方位石), 그리고 이정표(명지산, 도대리/ 연인능선, 장수봉 2.3Km, 백둔리 4.8Km/ 우정표 2.3Km, 국수당 6.0Km) 등의 시설들이 막상 사람들의 진입을 막고 있는 꼴인 것이다. 연인산도 우정봉과 같이 가평군에서 1999년에 새로 지은 이름이다. 연인산은 본래 국토지리정보원(國土地理情報院)’ 발행 지형도(地形圖)에는 이름도 없이 그저 높이(1,068.2m)만 표기되어 있었을 따름이다. 그러던 것을 가평군에서 공모(公募)를 통해 바꾼 이름이 연인산인 것이다. 참고로 인근 사람들은 연인산의 정상을 우목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또한 조선조 문헌(文獻)에는 월출봉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상판리에서 볼 때 이 산 위로 달이 뜬다고 해서 그리 불렀단다. 어쨌든 가평군에서 으로 바꾼 일은 잘한 것 같다. ‘연인산이라는 친근한 이름으로 바뀐 후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을 보면 말이다. 개명(改名)을 통해 스타(star)가 된 셈이다. 산행들머리에서 연인산 정상까지는 2시간20분이 걸렸다.

 

 

 

정상은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답게 시야(視野)가 시원스럽게 탁 트인다. 또 사방으로 뻗어 나간 산줄기를 따라 켜켜이 늘어선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펼쳐진다. 북쪽에는 검은 덩치로 거칠게 솟아오른 명지산이 또렷하고, 남쪽에는 올망졸망한 산군(山群)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이곳 연인산보다 더 높은 산들이 없는 덕분에 더 멀리까지 시야가 트이는 모양이다. 그리고 왼편에는 운악산과 원통산 청계산 등이 보인다. 경기도 알프스라고 일컬어지는 가평군 북면 일대에 명산들이 마치 군웅할거(群雄割據)라도 하고 있는 듯하다.

 

 

 

연인산 정상에서 머무는 것을 포기하고 곧바로 하산 길을 서두른다. 요기라도 하고 싶지만 비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앉을 경우, 혹시라도 뒤에 오는 사람들이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때 불편을 줄까봐서이다. 그런 내 마음이 가상했던지 몇 발자국 걷지 않아 두셋이 앉기에 안성맞춤인 바위가 나타난다. 마침 맞게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잠깐 쉬면서 가져온 얼음막걸리 한 잔 마시기에는 이보다 더 나은 장소가 없을 것 같다.

 

 

바위에서 내려서면서 본격적으로 하산이 시작된다. 내 개인적으로는 연인산 정상에서 아재비고개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highlight)가 아닐까 싶다. 흙으로 이루어진 산길은 걷기에 부담이 없고, 행여 밋밋한 산길이 부담스러울세라 심심찮게 바윗길까지 선을 보이는 것이다. 그것도 보통의 바위가 아니고 잠깐의 눈요깃거리로는 충분할 정도로 생김새도 괜찮은 편이다.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한지 15분쯤 지나면 길 양편에 두 개의 바위가 서있는 것이 보인다. 아마 지도에 문바위로 표기된 지점이 아닌가 싶다. 옛말에 자리를 보아서 앉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 바위를 보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바위가 드문 곳에 자리 잡은 덕분에 문바위라는 이름까지 얻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냥 무심하게 지나칠 수밖에 없을 정도의 보잘 것이 없는 생김새이기 때문이다.

 

 

 

 

산길은 대부분 흙길, 심심찮게 나타나는 바윗길도 흙길과 마찬가지이다. 직접 바위의 위로 올라갈 필요가 없이 바위를 피해 길이 나있기 때문이다. 그저 주변에 펼쳐지는 풍경을 즐기면서 걷기만 하면 된다. 당연히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도 없다. 주어진 시간까지 넉넉하기 때문이다. 여유가 생긴 집사람이 능선을 헤집기 시작한다. 산나물이라도 있을까봐서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연인산에는 산나물이 많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상에 오른 무침 한 접시가 다였으니 말이다.

 

 

 

다투어 피어난 잎들이 더 이상 돋을 수 없을 때, 숲은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짙어간다. 어느 산이건 아름다움이 가장 절정에 달할 때이다. 때 아닌 고온(高溫)현상에 화르르 피었다 빠르게 져버린 봄꽃들이 지나간 자리를 연초록의 잎새들이 메꾸는가 싶더니 어느새 진초록의 녹음(綠陰)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산길은 바윗길이 아닌 곳에서도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원시림(原始林)에서나 볼 수 있는 괴목이 바로 그것이다. 아까 연인산으로 올라오는 구간들에 비해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탓에 아직까지 원시림 형태로 유지될 수 있었을 테고, 그 덕분에 저렇게 괴상하게 생긴 나무들을 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구경거리가 많은 능선길을 즐기다시피 걷다보면 어느덧 아재비고개에 내려서게 된다. 연인산 정상을 출발한지 1시간이 조금 더 지난 지점이다. 아재비고개는 옛날 북면 백둔리 양짓말과 하면 상판리 귀목마을 주민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였으나 지금은 등산객들이나 찾는 한적(閑寂)한 능선의 한 지점으로 남아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한적함이 미안했던지 이정표(명지산 3.3km/ 백둔리 2.3Km/ 연인산 3.3Km)와 식탁을 갖춘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식탁에 앉아 잠시 쉬다보면 웬 낯선 시설물 하나가 눈에 띈다. ‘강우량 측정기(降雨量 測程器)’가 바로 그것인데 꽤 오랜 세월동안 등산을 해온 나이지만 산에서 저런 시설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낯설게 보였던 모양이다. 오늘 우리가 정한 하산지점인 귀목마을로 내려가려면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이정표에는 귀목마을이 나와 있지 않아 혼란스럽다. 다행히 내려가는 방향을 미리 알았기에 왼편으로 방향을 잡는데 철판으로 만든 이정표(하면 상판리 귀목 4,000m/ 북면 백둔리 양짓말 3,000m)가 목책(木柵)에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아재비고개에서 귀목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아까 지나왔던 능선보다도 더 원시림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산길은 또렷한 편이라 내려가는데 어려움은 없다. 마침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니 가끔 나타나는 괴목에 눈길을 주면서 걷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숲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에 도취해보면 어떨까. 숲이 품고 있는 다양함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지향한다. 우리는 숲이 주는 다양한 아름다움에 깊은 위로를 받고자 산으로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호사(豪奢)스런 산행은 얼마 가지 않아 끝을 맺고 만다. 아재비고개를 출발한지 13분쯤 되면 물기 한 점 없는 계곡을 만나게 되면서 힘든 산행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계곡이 위험할 정도로 험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너덜길이 나타날 따름이다. 그러나 그 너덜길을 내려딛는 일은 힘들기 짝이 없다. 거기다 길기까지 하다. 무려 30분 동안이나 너덜길과의 싸움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연인산은 사랑과 소망을 이루어 주는 산이라고 알려진 것 외에도 깨기산이라는 별칭(別稱)도 갖고 있다. 아무래도 귀목마을로 내려가는 이 하산 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낭만적인 이름만 믿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찾아왔던 연인들이 하산을 하다 길고 긴 너덜길에서 힘들고 지루함에 질리게 되면 말다툼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러다가 헤어지는 경우도 간혹 생길 게 뻔하기 때문이다. 사실 귀목마을로 내려가는 계곡길을 제외하면 연인산에서 어려운 코스는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제 더위가 한창 무르익어 가는데도, 길가에는 가을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망초꽃이 만개(滿開)해 있다.

 

 

산행날머리는 귀목마을

길고긴 너덜길과의 싸움이 끝나면 임도(林道)가 나타나면서 또 다시 널널한 산행으로 변한다. 널찍한 흙길은 부드럽기 그지없고, 거기다 짙은 소나무 향까지 더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솔향에 취해 15분쯤 걷다보면 왼편에 귀목마을로 내려가는 지름길이 나타난다. 지름길로 접어들어 5분 조금 넘게 내려서면 귀목마을이 나오고(이정표 : 귀목고개 2.3Km/ 아재비고개 1.6Km), 이어서 조금만 더 걸으면 '입산통제소건물이 나타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 전체 산행시간은 4시간40분이 걸렸다. 중간에 막걸리를 마시느라 5분 정도 쉰 것을 감안하더라도 순수하게 걷는데 소요된 시간일 것이다. 참고로 날머리인 귀목마을에는 드레골유원지가 있을 정도로 계곡이 좋으니 산행 후에 몸을 씻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