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칠봉(1165m)


삼봉약수에 있는 가칠봉(1,240m)에서 직선거리로 약 14km 북쪽에 위치...

북쪽으로 주능선을 따라가면 곰배령을 지나 작은 점봉산으로 이어지고

이어서 점봉산으로 연결되어 한계령으로 뻗어 나가면서 설악의 품으로 들어간다


가칠봉 산자락 주민들이 약초와 나물을 캐는 생업을 이어가고 있으므로

행정당국(군청)에서는 99년 5월부터 곰배령, 가칠봉 일대를 입산 금지시키고 있다


사실 가칠봉 보다는 같은 능선에 있는 곰배령으로 더 유명하다.

곰배령 일대의 넓은 초원지대는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야생화가 피는 야생화 천국이다


산행일 : '08. 6. 7(토)

산행코스 : 갈터-상치전-가칠봉-호랑이코빼기-곰배령-강선리(산행시간 : 5시간)

 

특징 : 밋밋한 육산으로 인적이 끊긴 심심산골 오지이다

사람의 손길을 덜탄 탓에 상치전서 가칠봉 오르는 길목에는 참나물과 참취가 지천이다  

 

 

산행 들머리인 상치전에서 가칠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흔적이 희미해서 길을 잃기 쉽다

그러나, 사람의 손때를 덜탄 탓에 산나물이 지천이다..

요즘 터득한 것 중의 하나... "참나무 숲의 음지쪽 비탈길에 산나물이 자생한다 "

 

 

가칠봉 정상

표지석하나 없는 넓다란 공터에 삼각점만이 외로이 정상을 지키고 있다

 

 

가칠봉부터 곰배령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엔 대부분 참나무들이 들어차 있다.

그러다, 곰배령에 가까워질수록 큰 나무들이 사라지면서, 산은 통째로 봄볕을 받게 된다

 

 

쨍쨍 햇살아래서도 연초록 신록의 미소들이 피어나고, 이마엔 땀방울 하나 열려있다.

사람을 포함은 모든 생물들, 삶과 죽음은 백지장 한장 차이... 무상입니다.

 

 

능선의 봄볕 속에서 화사한 자태를 자랑하는 야생화들...

처음엔 소규모로 보이더니만 점점 엄청난 군락을 이룬 봄의 야생화천국으로 변해갔다

길을 잃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야생화를 별로 모르는 나도 꽃밭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대·소변을 미련없이 버리듯, 번뇌·망상도 미련없이 버리자.’

언젠가 들렀던 선암사 뒤깐에 붙어있던 종이쪽지가 새삼스럽게 떠오름은 왜일까?

내 잠시나마 머무는 이곳이 비록 연꽃은 아닐망정 부처님 머물만한 천상화원이라서?

 

조그만 인연까지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중생인데도....

늦은 봄 산길 걷다보면 모든 번뇌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까? 그 조차도 허망한 욕심...

 

곰배령(1164m)

나무가 울창하고 계곡이 깊어 생태보존이 가장 뛰어난 곳...

해발고도 1000m에 있는 고갯마루는 수천평에 걸친 광활한 초원지대이다.

봄에는 산나물이 풍성하게 돋아나고 철따라 작은 꽃들이 아름다운 화원을 이룬다.


정상에 오르면 초원 위로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야생화가 피어 있고,

야생화 사이로는 곰취, 참나물, 산당귀 등 산나물이 지천에 널려 있다.

바로 옆으로 작은점봉산(1295m)과 호랑이코빼기(1219m)가, 멀리 설악산이 보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곰배령엔 야생화가 없었다

 

 

천상화원 구경한답시고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서 환경이 바뀌어 버린걸까?

몇년전에 두어번 들렀고, 들를 때마다 감탄하던 그 많던 야생화가 다 어디로 가버렸단말인가...

 

 

곰배령에서 강선리로 이어지는 강선리계곡에 위치한 와폭

부챗살 물결을 펼치며 휘돌아 떨어지는 흥겨운 물소리를 들으며

발 뒷축 고추 세우며 나도 몰래 쭈볏거리는 어깻짓은 차라리 춤사래가 된다

 

봄의 계곡은 온유하고, 흐르는 물도 거칠지 않고 물가 풀잎은 보드랍다.

앗 차거~ 손가락 끄트머리, 돌 틈에 고인 초록빛 물속엔 묵색 조약돌이 옹기종기....

어~ 송사리 몇마리 때를 잊은 채로 부지런을 떠드는 걸 보니 동네 경사라도 있나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선현들의 말씀이 옳다는걸 실제로 체험한 하루였다

그 하나가 천상화원으로 소문난 곰배령엔 야생화가 없었다 이며

또 하나는 나물이 많다고 이름까지도 채목이라고 불리는 곳에도 역시 나물은 없었다

 

지난번 청옥산에서 박대장의 고언을 따르다 별 재미를 보지 못한 우리 부부가 삶에서 채득한 지혜...

"가다가 보인 나물은 결코 놓치지 않는다... 나중에 보자는 이 무서울게 없으니까..."

덕분에 우리 부부는 제법 많은 참취를 채취할 수 있었다.. 흠~~~~ 향긋한 취의 내음!

 

 

 

신록에는 땅에서 솟구치고, 하늘에서 쏟아지는 충만한 에너지가 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눈이 맑아지고 머리가 개운해지는 청정의 에너지...

그 기운을 제대로 받기 위해 난 또 산을 찾았다. 숲 속에 들어가기 위해서....

 

쏟아지는 청정의 에너지 속에서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손가...

 

상정바위산(1,006m)

 

산행일 : ‘12. 6. 23(토)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과 북평면의 경계

산행코스 : 애산3리 마을회관→능선→상정바위산→전망대→큰골 갈림길→쉼터→큰골 합수지점→덕양교(산행시간 : 4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정바위산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던 산이었다. 강원도의 오지(奧地)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이 불편할뿐더러, 특별히 뛰어난 풍광(風光)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동강 건너편에 반도(半島)모양으로 튀어나온 부분이 한반도를 쏙 빼다 닮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산행들머리는 애산3리 마을회관

38번국도(國道/ 태백방향) 문곡교차로(交叉路 : 정선군 남면)를 빠져나와 왼편의 59번 국도로 갈아타고 정선으로 달리다가, 월릉휴게소 근처에서 오른편의 월릉길로 빠져나와 어천을 가로지르는 월릉교를 건넌 후,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오반리에 이르게 된다. 버스에서 내려 오반리 버스종점 방향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마을회관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오반리 버스종점’이 나온다. 이곳까지 군내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대개는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하지만, 우리가 타고 온 관광버스가 마을회관 앞에서 멈춰버린 탓에 여기까지 추가(追加)로 걷게 된 것이다. 아마도 비좁은 도로(道路) 폭이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버스종점 옆에 커다란 산행안내도(案內圖)가 세워져있으니,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오늘 걷게 될 코스를 미리 챙겨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멘트포장 임도(林道)는 마을을 통과하고 난 후에도 10여분 동안 계속해서 이어진다. 부지런히 걷던 사람들이 하나, 둘 도로가에 멈춰서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멈춰선 곳에는 어김없이 뽕나무와 산딸기나무들이 보인다. 나무들마다 까맣고 빨갛게 익은 오디와 산딸기들이 주렁주렁 탐스럽게도 매달려 있다. 아무리 산행시간이 빠듯해도 눈앞에 보이는 오디와 산딸기를 마다하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길게 이어지던 임도가 처음으로 산자락과 만나는 지점에서 왼편에 보이는 산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이정표(里程標 : 4.75Km, 155분)가 세워져 있으니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이곳의 이정표는 좀 유별나게 생겼다. 우리들이 흔하게 보아오던 이정표는, 재질(材質)에 관계없이 보통 납작하게 생긴 판(板)에다 진행방향과 거리를 표시하는데 반해, 이곳의 이정표는 4각의 나무 말뚝으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말뚝의 상부(上部)에는 ‘등산로→’라고 등산로의 진행방향을 표시해 놓고, 그 아래에는 동판(銅版)에다가 자그마한 글씨로 거리와 소요시간을 적어 놓았다.

 

 

 

산자락으로 접어들어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잠깐(5분 정도) 치고 오르면 두 번째 이정표가 있는 능선에 올라서면서, 산길은 급하게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크고 작은 봉우리들과의 끊임없는 싸움이 시작된다. 능선은 길고 가파르게 봉우리 위로 올렸다가, 짧고 가파르게 안부로 떨어뜨리기를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등산로 주변은 잡목으로 뒤덮여있어 조망이 트이지 않는데, 왼편 나뭇가지 사이로 사행천(蛇行川)을 만들어내고 있는 조양강줄기와 한반도(韓半島)가 얼핏 나타났다가 사라지를 반복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쯤 지나면, 능선에서 왼편으로 약간 벗어난 곳에 3~4명이 앉으면 꽉 들어찰 정도로 좁다란 분지(盆地)가 나타난다.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전망대(展望臺)이다. 그 많던 참나무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분지 언저리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덕분에 시원스레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한 조양강과 그 강줄기가 만들어내고 있는 한반도 모형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마디로 장관(壯觀)이다. 오늘 산행 중에 만나게 되는 몇 곳의 전망대 중에서 가장 빼어난 조망처가 아닐까 싶다.

 

 

 

 

 

전망대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세 번째 이정표(3.4Km, 120분)가 나타난다. 산자락에 들어선지 1시간이 넘었는데도 고작 1.35Km를 걸었다니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든다. 거리표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능선을 걷다보면 위험을 알리는 경고판(警告板)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막상 위험을 느낄만한 곳은 눈에 띄지 않는다. 왼편 단애(斷崖) 쪽은 울창하게 우거진 참나무 숲 때문에 절벽(絶壁)은 잘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앞서가던 집사람과 영선씨가 심심찮게 허리를 구부리는 모습이 눈에 띈다. ‘취나물이 지천이네요’ 집사람에 이은 영선씨의 멘트는 복분자도 흔해요’이다. 그녀들의 평소 취향(趣向)대로 집사람의 눈에는 취나물이 먼저 들어오고, 영선씨의 눈에는 복분자가 먼저인 모양이다.

 

 

 

 

세 번째 이정표를 지나 계속되는 능선은 지겹다 싶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온통 참나무에 포위된 능선은 특별한 볼거리가 없기 때문에 그저 앞만 보고 걸을 따름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한다. 능선상의 봉우리들 사이에 있는 골이 깊어진 탓에, 오르내리기가 훨씬 더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입술이 타기 시작한다. 여름철 무더운 날씨로 인해 너무 많은 땀을 흘렸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을 닦던 타월(towel)을 수도 없이 짰지만, 옷을 타고 흐르는 땀은 팬츠까지 적셔버린 지 이미 오래이다. 물 마시는 빈도(頻度)를 늘이다보면 네 번째 이정표(2.6Km, 95분)가 보인다.

 

상정바위산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능선에는 바위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로프를 이용해야만 오를 수 있는 바윗길도 나타나고, 바위를 우회(迂廻)해야만 하는 바윗길도 보인다. 그렇게 꽤 오랫동안 걷다보면 또 하나의 이정표(1.8Km, 62분)가 나타난다. 그런데 그 이정표를 보면 저절로 ‘악!’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죽어라고 걸어왔건만 기껏해야 0.8Km를 걸었다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제길~’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오지만 집사람에게 들리게 할 수는 없다. 오늘 따라서 집사람이 부쩍 힘들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네 번째 이정표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금방 증명(證明)이 된다. 네 번째 이정표를 출발해서 얼마 지나지 않으면 큰골 갈림길인 삼거리가 나오고, 갈림길에서 정상까지는 금방이기 때문이다. 삼거리에서 진행방향에 보이는 거대한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迂廻)하여 오르면 널따란 헬기장이 보인다. 이곳에서 리본이 매어져 있는 왼편으로 가면 남산을 거쳐서 문곡마을로 내려가게 되고, 정상은 이곳에서 오른편 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상정바위산 정상은 10평 남짓한 흙으로 이루어진 분지(盆地), 주변에는 참나무들이 울창하게 들어차 있다.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바위절벽(絶壁)을 우회(迂廻)해서 올라오면서 바위봉우리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흙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정상에 오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특이하게 생긴 정상표지석이다. 이곳 상정바위산이 한반도(韓半島) 때문에 입소문을 탔다는 것을 증명(證明)이라도 하려는 듯이 정상표지석을 한반도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정도가 지났다.

 

 

 

정상표지석 뒤에 숲이 뚫려있는 것이 보인다. 아까 정상으로 오르면서 보았던 단애(斷崖)의 위로서, 한반도(韓半島)가 가장 잘 조망된다는 전망대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사행천(蛇行川)인 조양강이 만들어 놓은 한반도의 문양(紋樣)이 한눈에 들어온다. 월천마을 뒤의 야산(野山)을 감싸고도는 조양강 물줄기는 한반도(韓半島)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의 모양새이고, 강물에 둘러싸인 부분은 물론 한반도를 쏙 빼다 닮았다. 반도(半島)의 안에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비롯한 산과 들이 늘어선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저곳에는 백두대간과 주요 산들이 있다. 이곳 정선군에서 백두대간에 대한 설명과 함께 곳곳에 주요 산들을 표시해 놓은 것이다. 반도의 끝으로 지나가고 있는 42번 국도(國道) 너머는 물론 중국(中國) 땅이다. 아까 능선을 지나오는 길에 보았던 한반도가 가장 깔끔하게 보였다면, 이곳에서 만난 반도는 한반도와 가장 많이 닮았다.

고양리로 내려가는 하산길, 이 길로 내려가서는 안된다.

 

 

정상에서 큰골갈림길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큰골 방향으로 진행한다. 하산길은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해서 내려서는데 조금도 부담스럽지가 않다. 등산로 주변에는 아직도 참나무 일색인데, 간혹 철쭉나무들이 무리지어 있는 것이 보인다. 정상을 출발해서 20분 조금 넘게 걸으면, 울창한 숲이 빼꼼이 열리는 곳에 만들어 놓은 전망대(展望臺)가 보인다. 전망대 위로 올라서면 사행천(蛇行川)을 만들어내고 있는 조양강이 적나라하게 속살을 들어 내보이고 있다. 월천마을 뒤 야산을 조양강이 휘돌면서 만들어 낸 저 모양새가 한반도를 닮았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한반도의 아랫도리는 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고 있다.

 

 

전망대를 지나 다시 20분 정도를 가파르게 걸어 내려오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은 큰골로 내려가는 길이고, 남서릉을 타다가 작은골로 내려서고 싶다면 오른편 길로 진행하면 된다.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두 길은 ‘큰골 합수지점’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갈림길에서 남서릉을 따라 20분이 조금 넘게 걸어 내려오면 이번에는 벤치가 놓여있는 쉼터이다. 의자에 앉으면 앞이 시원스레 트이면서, 다시 한 번 한반도의 모형이 나타난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변화무쌍한 조화(調和)에 탄복하며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어쩌다 한 그루씩 보이던 소나무가 어느새 소나무 일색(一色)인 숲으로 변해 버렸다.

 

 

조양강을 향해 뻗어나간 남서릉을 따라 가파르게 내려서던 산길은, 어느 지점에선가 갑자기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이어진다. 능선의 끄트머리가 더 이상 길을 만들 수가 없을 정도로 날카롭게 선 절벽이기 때문이다. 사면길을 따라 짧게 내려서면 산길은 이번에는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작은골과 대칭(對稱)을 이루면서 이어진다. 골이 별로 깊지 않은 작은골은 물기 하나 없는 건천(乾川)으로 변해있다. 이곳 정선도 가뭄이 무척 심한 모양이다. 작은골과 함께 이어지던 산길은 5분 정도 걷다보면 제법 널따란 비포장 임도를 만나게 된다. 바로 ‘큰골 합수지점’이다.

 

 

 

 

 

 

 

 

 

산행날머리는 문곡마을

‘큰골 합수지점’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큰골을 거쳐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게 되므로, 산행이 종료되는 문곡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오른편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삼거리 오른편에 보이는 ‘추억의 조양강'이라는 간판을 매달고 있는 잘 지어진 개인 별장(別莊)을 기웃거리면서 걸음을 옮기다보면 이내 조양강(동강)과 만나게 된다. 길가 묵밭에는 가을의 전령(傳令)이라는 들국화(쑥부쟁이)가 만발해 있다. 들꽃들도 무더위에 지친 탓일까? 계절(季節)의 순리(順理)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산행이 종료되는 문곡마을 주차장은 동강의 둑 위로 난 강변길을 따라 1Km정도 더 걸어야 하지만, 산악회버스는 고맙게도 덕송교(橋 )근처의 민박집 앞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다.

 

 

 

 

백운산(白雲山, 882.5m)

 

산행일 : ‘12. 6. 16(토)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과 평창군 미탄면의 경계

산행코스 : 점재나루→점재마을→마을 뒤 산비탈→수동마을 연결능선 안부→정상→칠족령→제장마을(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와일드로즈 산악회

 

특징 : 동강이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양으로 사행천(蛇行川)을 이루며 산자락을 깎아내며 수직단애(垂直斷崖)를 만들어 놓은 백운산은, 동강의 중간지점에 자리하고 있어서 동강의 전망대(展望臺)라고 할 수 있다. 남한 땅에는 50여 개가 넘는 백운산이 존재하지만, 빼어난 절경(絶景)과 뛰어난 조망(眺望)으로 인해 이곳 동강가의 백운산이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산행들머리는 점재나루

중앙고속도로 제천 I.C를 빠져나와, 38번 국도(國道)를 이용 태백방향으로 달리다가 예미교차로(交叉路)에서 '동강, 백운산'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 고개를 넘으면 얼마 후에 예미초교 고성분교를 지나게 되고, 이어서 나리재를 넘으면 드디어 동강이 나타난다. 동강의 강변길(교행 가능한 1차로)을 따라 얼마간 들어가면 동강을 가로지르는 점재교가 나오는데, 산행은 이 다리(橋)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점재다리는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날 경우에는 물에 잠겨버리는 잠수교(潛水橋)이다. 10년 전, 그러니까 내가 이곳을 처음으로 찾아왔을 때에는 이 다리는 놓여있지 않았었다. 강의 양쪽을 줄로 연결해 놓고, 줄을 당기면서 배를 이동시키는 일명 ‘줄배’를 타고 동강을 건너야만 했다. 강을 건너면서 바라보면, 동강의 은빛 물줄기와 강물을 병풍처럼 감싼 백운산 일곱 봉우리가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광(風光)이다.

 

 

 

잠수교를 건너자마자 길은 왼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서 강변(江邊)을 따라 이어진다(이정표 : 백운산 입구 0.4Km/ 점재). 우측에 백운산 정상이, 그리고 정면에는 수리봉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강변길을 따라 200m쯤 들어가면 주차장(駐車場)이 나오는데, 지키는 사람 대신 주차요금이 4천원임을 알리는 안내판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네에 들어서서 민박(民泊)집 앞 삼거리에 세워져 있는 '동강유역 자연휴식지 탐방안내도' 앞에서 오늘의 산행코스를 정한 뒤에, 왼쪽으로 방향을 꺾으며 산행을 이어간다(이정표 : 백운산 정상 2.0Km). 3분 정도 걸으면 오른편에 비포장 임도(林道)가 보이는데 주의해야할 지점이다. 정규등산로는 이곳에서 조금 더 걸으면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왼편의 강변 오솔길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처음 마주친 갈림길에서 오른편 임도로 들어서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백운산 산행은 이번이 두 번째, 내 기억에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의 등산로치고는 너무 거칠기 때문이다. 지름길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따라 들어서면서 오늘 산행은 고난(苦難)의 행군으로 변해버린다. 밭두렁을 따라 들어선 산길은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좌우(左右)로 길을 뚫으며 정규 등산로를 찾는 것이 상식이건만, 산행대장은 무작정 맞은편 산비탈을 치고 오른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아마도 오늘 산행거리가 짧기 때문에 일부러 거리를 늘리려는 모양이다.

 

 

 

‘코에서 흙냄새가 나네요.’ 집사람의 느닷없는 멘트이다. 언젠가 제천에 있는 떡갈봉을 함께 오르시던 이석암선생(‘마음을 다스리는 산행’의 저자)이 산의 가파름을 빗대어 이르던 말씀이다. 오르고 있는 산비탈이 너무 가파르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지난 추억(追憶)이 머리에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만큼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산길은 심하게 가팔랐고, 거기다 더하여 미끄럽기까지 했다.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다보면 허리를 펴볼 틈도 없다. 워낙 가파른데다가, 습기를 머금은 땅이 매우 미끄러운 탓에, 최대한 엎드린 채로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변에 보이는 나뭇가지에 의지하며 겨우겨우 비탈길을 기어오른다. 이런 곳에서는 가느다란 나뭇가지도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俗談)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모처럼 이번 산행에 참가한 박승지군(君)은 초반부터 힘들어 하더니만 언제부터인가 시야(視野)에서 사라져 버렸다.

 

 

고난의 비탈길에서 1시간쯤 헤매다보면 백운산의 8부 능선쯤 되는 지능선(支稜線)에 올라서게 된다. 박군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지능선도 가파름이 약간 완만(緩慢)해졌을 뿐 사람들이 다닌 흔적(痕迹)은 찾아볼 수 없다. 10여분 정도 지능선을 밟고 오르면 갑자기 뚜렷한 등산로가 나타난다. 드디어 수동리 방향에서 올라오는 능선에 올라선 것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주능선은 완만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많이 가파르지도 않다. 그저 걷기에 편하다고 할 정도이다. 거기다 말의 갈기처럼 날카로운 능선에는 심심찮게 바윗길이 나타나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아직도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 것은 서운하지만 바위 모서리를 잡는 손맛으로 위안을 삼는다. 능선 주변의 나무들은 참나무일색(一色). 오뉴월 염천(炎天)에 지칠 법도 하건만, 울울창창(鬱鬱蒼蒼) 짙은 녹음을 자랑하고 있다.

 

 

 

주능선을 따라 20분 정도를 걸으면, 점재나루에서 올라오는 본래의 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갑자기 넓어지는 등산로와 보조라도 맞추려는 듯이 등산객의 숫자도 비례(比例)해서 늘어나고 있다. 등산로 주변도 점점 시끌벅적하게 변해간다. 이를 보고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표현을 쓰면 맞는 표현일까? 본래의 등산로를 만나게 되는 반가움 대신에 사색(思索)을 즐기며 걷는 낭만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본래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정상까지는 잠깐이다. 길 아닌 길에서 헛힘을 쓰는 사이에 어느덧 정상 가까이에 이르게 된 것이다. 덕분에 우린 멋진 전망대(展望臺) 하나를 지나쳐버렸다. 전망대 아래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 끝에 걸려있는, 동강 12경 중 제3경인 나리소와 바리소라는 볼거리를 놓쳐버린 것이다. '구절양장(九折羊腸)'으로 굽어 도는 동강의 물줄기인 나리소와 바리소는 백운산의 산세(山勢)와 절벽의 단애(斷崖)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한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짙게 우거진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고, 간간히 바람까지 불어주어서 어렵지 않게 오를 수가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이 조금 못 되었다.

 

 

 

너덜로 이루어진 10평쯤 되는 정상에는 정상표석이 삐딱하게 세워져 있고, 그 뒤를 돌탑 3기(基)가 지키고 있다. 정상은 나무들로 둘러싸인 탓에 저 멀리 보이는 함백산과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능선 외에는 조망(眺望)이 시원스럽지 못하다. 만일 겨울철에 왔었더라면 마치 뱀이 똬리를 틀듯 요동치고 있는 동강의 풍광(風光)을 실컷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또다시 뒤로 쳐진 박군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점심상을 차린다. 누군가가 ‘땀 흘린 자만이 참다운 밥맛을 안다.’라고 했다. 비록 산을 오르면서 땀을 흘린 경우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땀 흘린 뒤의 밥맛은 좋아야만 했다. 그러나 밥을 보자 구토증세가 나타난다. ‘넘침은 부족함만 못하다.’... 어쩌면 너무 많이 땀을 흘린 탓이 아닐까 싶다. ‘와일드로즈 산악회’에서 나누어준 막걸리로 점심식사를 대신하고 산행을 다시 이어간다.

 

 

 

하산은 칠족령(제장마을) 방향인 남서쪽 능선을 따른다.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곧바로 삼거리가 나온다(이정표 : 정상 0.2Km/ 칠족령 2.2Km, 제장 3.0Km/ 문희마을 1.7Km). 오른편은 천연기념물 제260호인 백룡동굴이 있는 문희마을 쪽으로 내려서는 길, 당연히 칠족령을 향해 직진한다. 칠족령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의 연속이다. 등산로 주변은 굴참나무와 신갈나무가 군락(群落)을 이루는 등 식생(植生)이 뛰어나다. 왼편에 동강이 내다보이는데, 동강 방향에 매어놓은 안전로프 아래는 수직(垂直)의 낭떠러지이다.

 

 

 

 

30도가 넘는 무더위라는 일기예보(日氣豫報)가 이곳에서는 100% 오보(誤報)가 되어버렸다. 나뭇잎을 살랑살랑 흔들어 줄 정도로 불어대는 산들바람은, 무더위는커녕 차라리 선선한 가을 날씨를 연상시킬 정도인 것이다. 산자락 끝에 걸려있는 제장 마을이 보인다. 동강은 강 마을에서 잠시도 쉴 생각을 하지 않고 또다시 휘어 돈다. 여기저기로 뻗어나가려는 산줄기를 동강이 가로막고 있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의 품처럼 산줄기들을 감싸 안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울퉁불퉁한 바위길 왼쪽은 아찔한 낭떠러지. 아까 산행을 시작할 때 보았던 천길 단애(斷崖)인 것이다. 대단히 겁나는 코스이지만 조금만 주의하면 위험하지는 않다. 절벽(絶壁) 방향에 매어놓은 안전로프를 넘어가지만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기 때문이다. 10분 가까이 내려가다 보면 왼편 동강방향으로 시야(視野)가 뻥 뚫리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첫 번째로 만나는 전망대(展望臺)이다. 전망대에 서면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형상의 동강과 제장나루가 뚜렷이 드러나고, 맨 오른편에는 칠족령도 눈에 들어온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전면(前面)에 나타나는 바위 절벽(絶壁)을 바라보면서 마치 커다란 캔버스(canvas)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만일 그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다면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제야 그 해답을 찾은 것 같다. 그 캔버스에는 바로 이런 비경(秘境)을 담아야만, 캔버스가 지닌 본래의 가치를 잃지 않을 것이다.

 

 

 

백운산의 동강쪽 단애(斷崖) 위를 걷는 산길은 계속된다. 산길은 동강방향으로 빠짐없이 로프를 연결해 놓았고, 경사(傾斜)가 가파른 내리막길에는 어김없이 나무테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조금만 주의하면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온몸으로 느끼는 긴장감까지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왼쪽으로 드러나는 동강의 비경(秘境)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구경하면서 여유로운 산행을 즐겨본다.

 

 

 

가지 말라는 능선 쪽으로 나갔다가 화들짝 놀란다. 멋진 조망(眺望)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발아래 절벽(絶壁) 끝으로 굵은 물뱀처럼 동강의 강줄기가 기어가고 있고, 그 뒤에는 산봉우리들이 뭉게구름처럼 떠다닌다. 맞은 편 산골짜기에 조용히 누워있는 산골마을은 떠나온 고향마을처럼 정겹기만 한데, 옛 생각에 잠긴 나그네는 발걸음을 떼어놓을 줄을 모르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광(風光)이다.

 

 

 

 

전망대(展望臺)에 올라서면 ‘정선아리랑’의 애환(哀歡)이 서린 동강의 아홉 구비 물줄기가 발아래에 펼쳐지고 있다. 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강원도 심심산골의 나무들은 잘리어 뗏목으로 만들어 졌다. 이 뗏목들을 아우라지에서 서울까지 실어 나르기 위해서는 백운산을 휘감고 있는 동강을 필히 거쳐 갈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사공(砂工) 들이 암초와 벼랑에 부딪혀 물속으로 사라지기 일쑤였을 것이고, 그래서 '정선 아리랑'이라는 지역민요(民謠)가 생겨났을 것이다. 백운산 주변의 아홉 굽이를 돌아 평창군 미탄면의 '황새여울'까지 통과해야 비로소 마음을 놓았을 만큼 백운산 주변의 물굽이는 험하고 또 험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가슴 졸이게 만들었던 물길이 바로 발아래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백운산 암반구간은 지형이 험준하고 대단히 위험하여 추락 및 낙석위험이 있으니 탐방객들의 주의를 부탁드린다.’며 겁을 주고 있는 동강관리사업소의 안내판(案內板)이 아니더라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구간이 계속된다. 하나 주의해야할 점은, 조심할 곳에서는 조심하더라도 ‘위험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지점을 그냥 지나치는 우(愚)는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풍광(風光)을 가장 잘 보이는 구간마다 안내판을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시작된 하산길은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보았던 이 능선은 서너 개의 봉우리만 넘으면 될 것처럼 생각되었는데, 실제로는 주봉을 포함해 총 7개 봉우리가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만 넘으면 제장마을이겠거니 하며 봉우리 위로 오르면 진행방향 저만큼에 또 하나의 봉우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렇게 하산길 오르내림은 지루하게 반복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곳곳에 지나치기 어려울 만큼 조망(眺望)이 아름다운 전망대(展望臺)가 심심찮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제나 저제나 하며 마지막 봉우리를 찾아 진행하다보면, 깊게 패인 안부를 지나 돌탑(石塔)이 있는 봉우리 위로 올라서게 된다. 진행방향에 또 하나의 봉우리가 솟아있는 것을 보면 여섯째 봉우리인 모양이다. 돌탑 뒤에는 98년 산행 중 실족(失足) 추락사했다는 어느 여성산악인을 기리는 추모비(追慕碑)가 박혀 있다. 돌탑에서 바라보는 동강은 또 하나의 절경(絶景)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만일 추모비의 주인공이 이곳에서 추락했다면 저런 아름다운 풍광(風光)에 넋을 잃었던 것이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돌탑봉에서 가파른 내리막을 잠깐 내려서면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문희마을 갈림길이다(이정표 : 정상 2.2Km/ 칠족령 0.2Km, 제장 1.2Km/ 문희마을 1.4Km)

 

 

문희마을 갈림길 안부에서 맞은편 봉우리를 향해 짧은 오르막을 타면 칠족령(이정표 : 정상 1.8Km/ 칠족령전망대 0.5Km, 문희마을 2.0Km/ 제장 1.0Km)에 올라서게 된다. 정선 땅인 신동읍 덕천리 제장마을과 평창 땅인 미탄면 마하리 문희마을을 연결하는 길목인 칠족령은 안부가 아니라 조그마한 봉우리 위에 있는 갈림길이다. 보통 령(嶺)이라는 지명(地名)은 고갯마루를 뜻하는데, 이곳 칠족령은 해발 527m의 작은 봉우리인 것이다. 아마 봉우리 위가 납작하게 생긴 탓에 고갯마루로 불리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칠족령 전망대‘와 ’하늘벽 유리다리‘를 거쳐 연포마을로 하산할 수 있다. 칠족령에 올라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동강 위로 치솟은 백운산 정상부가 훤칠하다. 그래서 백운산과 칠족령을 한데 묶어서 동강 12경 중 제4경으로 치는 모양이다.

* 동강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한 칠족령은 이름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옛날 문희마을에 살던 이진사(進士)가 가구에 칠하려고 옻나무진액을 통에 담아 두었는데, 어느 날 기르던 개가 옻통을 쏟아 놓고 사라져 버렸던 모양이다. 이진사가 옻나무진액이 묻은 개 발자국을 따라 산으로 올라가다 만난 곳이 칠족령이라고 한다. 그는 그 풍광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개 발자국을 따라 길을 만들었고, 후세(後世) 사람들은 그 고갯마루 이름을 옻칠(漆), 발족(足) 자를 써서 '칠족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칠족령의 울창한 참나무 숲 아래로 이어지는 산길을 내려서면, 한동안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지다가 끝을 맺으면서, 또 하나의 갈림길이 나타난다(이정표 : 하늘벽 유리다리 600m/ 백운산/ 제장). ‘하늘벽 유리다리’로 가는 길과 나뉘는 삼거리이다. 삼거리에서 산길이 잠깐 평평하게 이어지더니,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치는 양 다시 한 번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구간은 잠깐이면 끝이 나면서 이내 걷기 좋은 흙으로 변한다. 고단한 다리에 평화가 깃든다. 마을 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아마 제장마을이 멀지 않은 모양이다.

 

 

 

 

산행날머리는 제장마을 주차장

고운 빛깔의 황톳길을 걷다가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서, 등산로는 왼편에 사과나무 과수원(果樹園)을 끼고 이어진다. 사과나무 과수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매점에는 간단한 안주(부침개 종류)와 주류를 팔고 있으니 짬이 날 경우에는 잠깐 쉬었다가 가도 좋을 것이다. 다문화(多文化) 가정(家庭)의 안주인인 듯한 이국적(異國的) 용모(容貌)의 주인장이 건네 오는 너스레가 맛깔스럽기 때문이다. 매점에서 왼편으로 꺾어 나오면 이내 여러 채의 민박집들이 보이고, 그 옆에 널따란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에서 100m쯤 더 걸어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동강에서 땀에 찌든 몸을 씻고 돌아와 산행을 마친다.

 

 

 

 

 

제장마을 앞 절벽(絶壁)을 주민들은 '하늘벽'이라 부른다. 비록 절벽 아래를 돌면서 동강이 만들어내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의 물줄기와 겹치는 광경을 한꺼번에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깎아지른 듯한 '뼝대(바위로 이뤄진 높고 큰 절벽을 일컫는 영서지방의사투리)' 하나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마음껏 자랑하고 있다.

 

 

에필로그(epilogue)

오늘 따라나선 산악회는 주변에서 흔히 보아오던 안내산악회가 아니었다. 스위스의 아웃도어(outdoor) 제품인 ‘와일드 로즈’를 수입해다 팔고 있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산악회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늘 산행은 저렴(低廉)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었다. 맛깔스런 음식점에서 사준 점심식사는 차지하고라도 산에 올라가서 마시라고 나누어주는 막걸리는 그 어떤 산악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었다. 아무튼 ‘와일드 로즈’라는 브랜드는 여성만을 위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귀경길에 들른 천호동 매장(賣場)에는 비록 종류는 많지 않지만 남성의류도 진열되어 있었다. 아마 광고모델인 티아라의 미모(美貌)에 반해 여성전문점임에도 불구하고 기웃거리는 사내들이 심심찮게 보였던 것이 아닐까?

 

두타산(頭陀山=薄芝山, 1,391m)

 

산행일 : ‘12. 5. 26(토)

소재지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산행코스 : 신기리→박지골→서능선→두타(박지)산→동능선→삼거리→휴양림→수향리(산행시간 : 5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무주공산산악회

 

특징 : 한마디로 첩첩산중에 있는 오지(奧地)의 산이다. 그저 산이 좋아서 산을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찾아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원시(原始)의 숲속을 걷는 신선함 외에는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짙은 숲으로 둘러싸인 능선은 조망(眺望)까지도 보여주지 못한다.

 

 

산행들머리는 신기리

영동고속도로 진부 I.C를 빠져나와, 오대천과 함께 이어지는 59번 국도를 타고 정선방향으로 달리다가 신기교차로(交叉路)에서 좌회전. 410번 지방도를 따라 2Km정도를 들어가면 산행이 시작되는 신기리에 이르게 된다. 신기리에서 도착해서 가장 먼저 맞게 되는 난감한 상황은 박지골의 들머리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그 흔한 ‘산행안내판’ 하나 보이지 않을뿐더러, 그렇다고 주위에 뚜렷이 기준점(基點)으로 삼을만한 지형지물도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들머리를 찾으려면 우선 봉산천 옆으로 난 도로를 따라 좌우(左右)의 산들이 만들어놓은 협곡(峽谷)의 폭이 부쩍 좁아지는 어림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쯤에 이르면 콘크리트(concrete)로 봉산천 물길에 턱을 만들어 놓은 곳이 보인다. 콘크리트 위에 징검다리라고 만들어 놓은 돌맹이 몇 개가 보이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봉산천을 건넌 후, 밭둑을 따라 100m정도를 걷다가 산으로 접어들면, 제법 널따란 임도(林道)가 보인다. 임도 옆으로 난 골짜기가 박지골이다. 임도를 오르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수풀사이로 등산지도(地圖)에 나와 있는 ‘간이상수원 취수건물’이 내다보인다. 그러나 주의해야할 점은 들머리의 기점을 ‘간이상수원 취수건물’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비록 취수건물이 지도에 나와 있다고는 하지만, 작은 건물인데다 임도의 들머리에서 한참을 들어간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도로(道路)에서는 결코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박지골을 거슬러 올라가는 등산로는 처음에는 제법 또렷하지만 올라갈수록 길이 희미해진다. 너덜로 된 바닥은 거칠고, 쓰러진 거목(巨木)들이 그대로 방치되고 있어 길 찾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서두르지 말고 심심찮게 보이는 산악회의 리본을 보고 방향을 가늠한다면 길을 잃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박지골은 원래 이끼계곡이라고 불리던 원시의 계곡이었다. 내가 찾았던 8년 전(前)만 해도 이 계곡은 이끼로 덮여있는 비경(秘境)을 작품화(作品化)하려는 동호인들이나 찾았던 세외(世外)의 선경(仙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끼계곡이라고 불리기에 민망스러울 정도로 변해버렸다. ‘무건리의 이끼폭포는 출입이 금지되었다고 하더군요.’ 안타까워하는 나에게 집사람이 건네는 위로의 말이다. KBS 취재팀과 함께 이끼폭포를 답사(踏査)한 프로그램이 방영(放映)되고 난 후, 경관(景觀)이 많이 파괴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안타까워했는데, 그 모습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박지골이 끝나면 울창한 나무숲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산이 고도(高度)를 높여감에 따라 산길의 경사(傾斜)도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조금 후에 만나게 되는 임도까지는 발걸음이 여유롭다. 산행을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힘에 여유가 있을뿐더러, 계곡을 거슬러 올라오면서 보고 느낀 ‘이끼계곡‘의 신선했던 느낌의 여운(餘韻)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맞은편 숲으로 들어서면 들머리에서부터 너덜길이 마중 나온다. 산길 중에서 제일 걷기가 힘들다는 너덜길, 거기에다 경사(傾斜)까지 엄청나게 가파르니, 오르는 게 여간 힘들지 않다. 너덜길이 끝나고 흙길로 바뀌어도 가파른 경사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가파른 오르막이 아득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르네요.’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로 산행을 같이 하고 있는 집사람 후배의 어리광 섞인 하소연이다. 사실 이보다 더 심하게 가파른 산도 있긴 하지만, 이 코스도 결코 크게 뒤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산행을 시작해서 1시간30분이 조금 못되어 주능선의 삼거리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 정상은 왼편으로 올라가야하고, 오른편은 절터(이 절터가 오대산 월정사의 전신이라고 전한다.)로 내려가는 길이다. 삼거리에서 정상까지는 잠깐잠깐 오름길도 보이지만 대부분 평지(平地)와 다름없는 완만한 구릉(丘陵)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선의 짙은 참나무 숲 아래로 펼쳐지는 초원(草原)에는 산나물이 지천이다. 참취, 곰취, 당귀 등등...

 

 

 

 

산나물을 뜯어가며 여유롭게 산을 오르다보면 어느덧 박지산의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박지산 정상은 돌무더기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에 널린 돌들로 쌓았는지 커다란 돌탑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는 두 개의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정상표지석에 적혀있는 이름들이 달라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하나는 박지산, 다른 하나에는 두타산이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원래 두타산이었던 것을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삼척의 두타산과 혼동(混同)된다며 박지산으로 바꿨다는데, 다시 되돌려 놓은 모양이다.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산들이 첩첩(疊疊)이 쌓여있다. 발왕산과 노추산, 그리고 오대산을 안고 있는 백두대간(白頭大幹), 뒤에는 백석산과 잠두산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다.(정상의 이정표 : 봉산재 3.2km/ 절터 5.3km/ 수항 5.7km)

* 박지산(薄芝山)이라고도 불리는데 두타산(頭陀山)이 공식명칭(公式名稱 : 2007년 인쇄된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이다. 원래는 박지산으로 불리다가 ‘우리 산 이름 바로 찾기 운동’에 따라 2002년부터 두타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백두대간(白頭大幹) 상에 있는 또 다른 두타산(삼척소재, 1352.7m)과 혼동(混同)되기 쉽다는 이유로 여전히 박지산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별로 넓지 않은 정상에는 정상표지석과 삼각점(도암27 2005재설) 외에도 2미터 높이의 돌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칠성탑(七星塔)이라고 불리는 돌탑은 칠원성군(七元星君 :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것으로서 인간의 생노병사를 주관하는 무의 신령이다)에게 치성(致誠)을 드리기 위해서 쌓은 탑이다. 저 탑으로 인해 두타산 정상은 칠성대(七星臺)라고도 불린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단순히 나물만 많은 산이 아니라 신령(神靈)스런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산이기도 한 것이다. 정상의 아래쪽에도 여러 기(基)의 돌탑들이 보인다.

 

 

 

정상에서 하산지점인 휴양림을 향해 내려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폐(廢)헬기장이 나온다. 산행대장의 안내 멘트(announcement)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헬기장에는 당귀가 사방에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러나 그가 우려했던 ‘몽땅 다 채취해 버리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새순이 너무 자란 탓에 식용(食用)으로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능선은 헬기장을 지나서도 얼마동안 평평한 구릉(丘陵)으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내리막길에서 틈틈이 등산로를 벗어나 본다. 비탈진 참나무 숲 아래에 참취와 곰취 등 산나물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산나물 뜯는 재미에 취하다보면 어느새 능선안부 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안부삼거리에는 돌탑과 이정표(수항 4.4km, 정상 1.3km)가 있다. 이곳에서 맞은편에 보이는 능선을 따라 계속 진행하면 단임산으로 가게 되지만 이정표에는 방향표시가 붙어 있지 않다. 당연히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휴양림으로 내려선다.

 

 

 

 

안부삼거리에서 휴양림(休養林)으로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순하다. 가끔 너덜길이 나오기도 하지만 경사(傾斜)가 가파르지 않기 때문에 큰 부담 없이 내려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짙은 숲의 터널을 뚫고 얼마간 내려서면 등산로는 아차골을 따라 이어진다. 아차골의 ‘어휘(語彙)는 ’아! 차!’인데, 골짜기의 물이 차갑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러나 임도를 만날 때까지 함께 이어지는 아차골에는 물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건천(乾川)인 모양이다.(임도 삼거리 이정표 : 정상 2.1Km/ 수항 3.6Km)

 

 

 

아차골을 벗어나 임도에 올라서면 길 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아차골을 버리고 임도를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임도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접어들어 700m정도를 걸으면 임도가 끝나면서 산길은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이어진다. 얼핏 산을 다시 올라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다시 내리막길로 변하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임도 끝 이정표 : 두타산 칠성대 2.8Km/ 휴양림 2.3Km)

 

 

 

 

사면(斜面)을 따라 이어지던 산길이 휴양림을 향해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서 악전고투(惡戰苦鬪)가 시작된다. 내리막길의 경사(傾斜)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팔라지기 때문이다. 산길은 급하게 고도(高度)를 낮추다가, 그마저도 못하게 될 경우에는 갈지(之)자를 만들어 내더니 ‘털보바위’라는 커다란 바위 앞에 이르게 만든다. ‘하나도 안 닮았네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이름표에 적힌 털보와 바위의 생김새는 조금도 닮지를 않았다.

 

 

 

산행날머리는 수향리

털보바위에서부터 산길은 평지(平地)나 마찬가지로 변한다. 비록 너덜길이지만 널따란 길을 따라 얼마간 걸으면 휴양림의 내부 도로(사무소⟷산막)와 만나게 된다. 산행이 종료되는 수향리까지는 휴양림관리사무소에서도 1Km가 더 넘게 걸어가야만 한다. 이곳 휴양림은 다른 휴양림과는 다르게 버스가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로용(道路用) 부지를 매입하지 못해서 도로를 넓히지 못한 탓이란다. 오뉴월 땡볕에 무더위와 싸우면서 20여분을 걸어 내려가면 저만큼에 ‘수향리교회’건물이 보이고, 그 뒤에 410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있다.

 

 

 

 

 

 

 

금학산(金鶴山, 947m)-고대산(高臺山, 832m)

 

산행일 : ‘12. 5. 19(토)

소재지 :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과 경기도 연천군 신서면의 경계

산행코스 : 철원여고→매바위→금학산→대소라치→보개산(寶蓋山, 752m)→고대산→칼바위능선→신탄리역(산행시간 : 6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 및 집사람 후배와 함께

 

특징 : 금학산과 고대산의 정상에 오르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철조망에 둘러싸인 군부대(軍部隊) 시설물(施設物)이다. 이곳은 오랫동안 군의 작전지역으로 민간의 출입이 통제되어 왔다. 그러던 것이 2000년 이후 남북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정상의 일부분을 민간에게 개방(開放)시켜 준 것이다. 산은 그렇게 빼어나지는 않지만 분단(分斷)의 현실도 느껴볼 겸해서 한 번쯤은 올라가봐야 할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동송읍 철원여고

의정부에서 43번 국도(國道/ 철원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포천시 영중면소재지에서 37번 국도를 이용하여 창수면 오가리까지 간 후, 이번에는 87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보면 산행들머리인 철원군 동송읍에 이르게 된다. 참고로 동서울터미널에서 동송읍까지 직행버스가 50분 간격으로 운행(運行)되고 있으니 이용하면 편리할 것이다. 동송버스터미널에서 나와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전신주(電信柱) 위에 매달린 이정표가 철원여고 들어가는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이정표가 일러주는 대로 1Km정도를 곧장 들어가면 철원여고가 나온다. 철원여고 정문에서 금학정(金鶴亭) 안내판이 붙어있는 학교 왼편 담장을 따라 들어가면 얼마 후에 약수터가 보이고, 이곳에서 오른편 길로 접어들면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체육공원(體育公園)에 이르게 된다. 체육공원 주위에는 철쭉이 만발해 있다.

약수터 삼거리

체육공원

 

 

산행안내판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금학산정(金鶴山亭)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팔각정과 운동시설들을 지나서, 가파른 통나무계단을 올라서면 임도(林道:이정표에는 비상도로로 적혀있다.)가 나온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가면 마애불, 오른편으로 가면 산모퉁이를 돌아서 대소라치 안부가 나온다. 정상으로 가려면 곧바로 능선으로 올라서야 한다.(이정표 : 금학산 2.0Km/ 마애불 1.5Km/ 담터계곡 2.0Km/ 국궁장 1.5Km)

 

 

 

비상도로에서 매바위로 향하는 오르막길은 경사(傾斜)가 무척 가파르다. 아마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금이라도 쉽게 오를 수 있도록 곳곳에 통나무계단과 로프를 설치해 놓았다는 것이다. 오르막길은 평평함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채로, 650m를 쉼 없이 오르게 만들고서야 매바위에 이르게 만든다.

비상도로

 

 

 

매바위로 올라가는 길목을 벙커(bunker)가 지키고 있다. 상태로 보아 현재까지 군에서 관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까 동송읍에서 보았던 수많은 군인들이 하며, 역시 이곳은 최전방(最前方) 지역임에 틀림없나보다. 이러한 군사시설(軍事施設)들은 산행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만날 수 있었다.

 

 

 

갑자기 바위지대가 나타나더니 왼편에 일부러 쌓아 놓은 것 같은 바위 하나가 보인다.(이정표 : 비상도로 650m/ 능선 550m). 금학산의 명물인 매바위라고 하는데 왜 내 눈에는 매의 형상(形象)이 떠오르지 않을까?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의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갑자기 무학대사가 했다는 얘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드디어 매의 대가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게 속세에 놓인 내 처지가 아닐까? 요 아래 철원여고 학생들인 듯, ‘청소년 강원연맹’ 플래카드(placard)를 든 여학생들의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연녹색으로 물들어가는 싱싱한 나뭇잎들처럼 싱그럽기 한량없다. 매바위는 빼어난 전망대(展望臺) 중의 하나이다. 고개를 돌려보면 동송읍 시가지(市街地)와 드넓은 철원평야가 보이고, 그 너머에는 한북정맥의 능선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아마 대성산과 광덕산 등일 것이다.

매바위

 

 

매바위를 지나면서 산길은 바윗길로 자주 바뀐다. 그러나 조금만 위험하다 싶으면 로프를 매달아 놓았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새로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산뜻한 나무데크계단을 올라서면 드디어 능선안부에 이르게 된다.(이정표 : 정상 700m/ 매바위 550m). 널따란 공터로 이루어진 능선안부에서는 철원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 것 밖에는 별다른 볼거리는 없다. 하긴 저렇게 넓은 평야(平野)가 버티고 있으니 다른 것들이야 하찮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능선 안부에서는 동송읍과 널따란 철원평야(平野)가 한눈에 들어온다. ‘6.25사변 때 철원평야를 잃은 김일성이 일주일 동안을 울었답니다.’ 동송으로 오는 직행버스의 기사님 말이 실감이 난다. 강원도의 첩첩산중(疊疊山中)에 어떻게 이런 널따란 평야가 존재할 수 있을까?

 

 

 

능선안부에서 정상까지의 능선은 완만(緩慢)한 경사(傾斜)로 이어진다. 중간에 바위지대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렇게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기 때문에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서서히 30분 정도를 걸으면 왼편에 화장실이 보이고, 그 위의 언덕에는 벙커가 있다. 1천 미터 가까이 되는 높은 산의 정상에서 보는 화장실이라니, 경이(驚異)롭게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거기다 탄피(彈皮)로 만든 종(鐘)을 매달아 놓은 벙커는 애교로 봐주어도 좋을 것 같다.

 

정승바위?

 

 

 

벙커를 돌아 언덕위로 올라서면 시멘트로 만들어진 널따란 헬기장이다. 금학산의 정상은 왼편 언덕위에 있다. 정상을 이루고 있는 봉우리는 정상만 빼 놓고 나머지는 온통 군부대(軍部隊)이다. 군(軍)에서 할애(割愛)해 준 듯, 좁다란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정상표지석 하나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가까이 지났다. 다시 헬기장으로 돌아와 조망을 즐겨본다. 오늘 진행해야할 방향에는 보개산과 고대산 그리고 지장산 줄기가 옹골차게 흐르고 있고, 그 반대편에는 철원평야와 그 뒤 한북정맥에는 고산준봉(高山峻峰)들이 겹겹이 쌓여있다.(정상의 이정표 : 고대산 4.1Km/ 마애불상 1.2Km/ 매바위 1.2Km)

 

 

앞으로 가야할 보개산에서 고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금학산에서 대소라치까는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침목(枕木)계단과 돌계단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내리막길은 군에서 설치한 모노레일(monorail)이 등산로와 나란히 달리고 있다. 금학산에서 고대산으로 가려면 대소라치라는 고갯마루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산을 올라야만 한다. 봉(峰)에서 봉으로 이어갈 경우에는 능선으로 연결되지만, 산(山)에서 산으로 이어갈 경우에는 대부분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새로이 산행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산길을 내려가다 보면 낯선 팻말들이 눈에 띈다. 정상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이 이 깔딱고개를 올라올 때 잠시나마 힘듦을 잊으라는 배려(配慮)일까? ‘마음까지 웃어라, 얼굴 표정보다 마음 표정이 더 중요하다.’라는 등의 좋은 글들을 100m 단위의 고도(高度:?)표시와 함께 적어 놓았다.

 

 

 

군사용(軍事用) 비상도로인 대소라치 고갯마루에는 대전차용 방호벽(防護壁)이 설치되어 있고, 방호벽 좌우(左右)로 늘어선 군부대 초소들이 고갯마루를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은 군부대(軍部隊)의 안쪽일까 아니면 바깥일까?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담터계곡의 뒤로 지장산과 관인봉이 올려다 보인다.

 

 

 

대소라치 고개를 지나 반대편 능선으로 올라선다. 역시 군부대(軍部隊) 근처이어선지 경사(傾斜)진 곳에는 자동차의 폐타이어를 쌓아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보개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은 경사가 완만한 흙산(肉山)이지만 30분 정도를 계속해서 올라가야 한다. 비교적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 있는 능선이니, 당연히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등산로 주변에는 참취나물이 제법 많이 분포되어 있다.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집사람,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채취(採取)에 열을 올린다. 덕분에 우리 가족들은 삼겹살을 참취나물에 싸먹는 호사(豪奢)를 누릴 수 있었다. 나물 뜯는 재미로 걷다보면 어느덧 보개산 정상이다(이정표 : 고대산 2.4Km/ 지장봉 4Km). 보개산 정상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널따란 헬기장이다. 능선 분기점인 이곳에서 왼편 능선으로 진행하면 지장산으로 가게 된다. 정상에서 고개를 돌리면 지나온 금학산이 우뚝 솟아있고, 진행방향으로는 작은 봉우리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그 너머에 고대산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보개산 정상 : 헬기장

보개산 정상에서 바라본 금학산

 

 

보개산에서 고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걷다보면 곳곳에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능선의 한 중간에 버티고 있는 바위를 넘는 것이 힘들었던지. 바위가 나타날 때마다 등산로는 어김없이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키고 있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참나무들의 천국(天國), 연녹색으로 물든 숲은 햇빛 한줄기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짙게 우거져있다. 능선을 걷는 중에 전문적인 산나물 채취꾼들이 여럿 보이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 능선에 산나물들이 많이 자라고 있는 모양이다.

문바위?

 

 

 

보개산을 출발해서 1시간가량 지나면 공터로 이루어진 고대산 앞의 전위봉에 올라서게 된다(이정표 : 지장산 7.7Km/ 고대산 430m). 전위봉에 오르면 진행방향에 어렴풋이 고대산 정상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바라보인다.

 

 

 

전위봉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한 번 치고 오르면 이내 고대산 정상이다. 철쭉동산이 잘 조성되어 있는 고대산 정상은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헬기장이다. 헬기장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바위 위에 정상표지석이 얹혀있다.(정상의 이정표 : 매표소 3.1Km/ 지장산 8.2Km)

 

 

 

정상은 사방팔방으로 조망(眺望)이 트이고 있는 뛰어난 전망대(展望臺)이다. 철원평야와 금학산, 그리고 지장산 등이 사방으로 시원스레 펼쳐지고 있다. 정상에 올라왔으면 헬기장의 북쪽 모서리에 세워져있는 ‘고대산 주변 경관 안내판’ 앞에 서서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景觀)과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 백마고지, 월정리역, 노동당사, 한탄강 등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시설물들이 표시되어 있다. 여기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북녘 땅이 있단다. 저 아래 신탄리역에 도착한 열차들이 가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북녘의 산하(山河)가...

가야할 삼각봉과 대광봉

 

 

고대산 정상에서 내려서면 길은 세 갈래로 나뉜다(이정표 : 제1등산로 입구 3.2Km/ 제3등산로 입구 2.8Km). 오른편은 금학산에서 왔던 길이고, 맞은편의 잘 닦인 길은 제3등산로, 제1등산로나 제2등산로로 내려가려면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정상에서 300m쯤 떨어진 밋밋한 봉우리인 삼각봉을 지나, 200m쯤 더 내려가면 대광봉이다(이정표 : 제1매표소 3.2Km/ 제2매표소 2.7Km). 대광봉 정상에는 팔각정(八角亭)이 세워져 있어 전망대를 겸하고 있다. 대광봉과 삼각봉의 중간쯤에서 왼편으로 보이는 희미한 오솔길은 주라이등봉으로 가는 등산로이다. 주라이등봉은 바위로 이루어진 멋진 봉우리이기 때문에, 한번쯤은 시간을 내어 다녀와야 하는 코스이다. 그러나 고대산과 함께 연계(連繫)해서 오르기에는 다소 멀기 때문에, 고대산과는 별개로 산행코스를 잡아야 할 것이다.

제3등산로

대광봉, 등산객이 보이는 곳이 주라이봉으로 내려가는 길

 

 

 

대광봉을 지나 제2등산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칼바위 능선에 이르게 된다. 양쪽으로 날카롭게 선 벼랑의 모습이 칼을 닮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나 보다. 그러나 위험할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칼날의 양옆으로 쇠(鐵)난간을 설치해 놓아 위험도를 줄여 놓았기 때문이다.

 

말등바위

 

 

산행날머리는 신탄리역

칼바위 능선의 아래에 있는 말등바위(이정표 : 매표소 1.2Km/ 정상 2.0Km)를 지나서도 하산 길은 계속해서 가파른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돌계단과 침목(枕木)계단이 번갈아 나타나는 길고 긴 내리막길에 신물이 날 즈음이면 임도(林道)에 이르게 되고, 조금만 더 내려가면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적힌 아치(arch)형 문(門)이 보인다. 이곳에서 신탄리역까지는 10분 정도를 더 걸어 내려가야 한다.

 

 

 

 

 

 

 

용화산(龍華山, 878m)

 

산행일 : ‘12. 4. 26(목)

소재지 :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하남면과 춘천시 사북면의 경계

산행코스 : 큰고개→만장대→용화산 정상→815봉 다음 삼거리→도토메기골→암반 합수곡(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부천산업진흥재단 임직원

 

특징 : 정상에서 동서(東西)로 내리 뻗은 아기자기한 주능선이 바위 봉우리들로 이루어져 있고, 곳곳에 기암(奇巖)과 괴석(怪石)이 연이어지기 때문에 눈요기와 함께 스릴(thrill)을 한껏 즐길 수 있는 산이다. 거기에다 파로호와 춘천호 그리고 의암호, 소양호 등과 접하고 있기 때문에, 산행을 하는 내내 호수(湖水)의 풍광(風光)을 즐기는 것은 보너스(bonus)일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용화산의 8부 능선(稜線)에 있는 큰고개

춘천에서 5번 국도(國道/ 화천방향)를 타고 가다, 춘천호(湖)의 댐(dam)을 겸하고 있는 춘성교(橋)를 건너기 직전(直前)에서 오른편 407번 지방도(地方道/ 화천방향)로 옮겨서 한참을 달려가면 터널이 나온다. 터널을 벗어나자마자 구(舊)도로로 빠져나가서 구불구불 제멋대로 휘어진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이내 산행 들머리인 큰고개에 이르게 된다. 큰고개는 화천군 하남면과 춘천시 사북면을 잇는 고갯마루이다. 현재 화천군에서 들어오는 도로(郡道)는 포장이 되어있으나, 춘천시 방향은 임도(林道) 상태로 방치(放置)되고 있다. 하긴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407번 지방도가 지나가기 때문에 구태여 새로 개설(開設)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큰고개 고갯마루는 대형버스가 차를 돌릴 수 있을 정도로 제법 널따란 주차장(駐車場)이 만들어져 있지만, 들어서는 턱이 갑자기 낮아지기 때문에 대형버스는 이용하는데 조심하여야 한다. 앞머리의 범퍼(bumper)가 바닥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인데, 실제 우리가 타고 온 버스도 그런 사고를 당했다. 주차장에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후 산행을 시작한다. 고갯마루의 왼편, 그러니까 ‘큰고개. 용화산 등산로입구’라고 쓰인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통나무계단을 밟고 올라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 왼편에 산행안내도(案內圖)가 세워져 있으니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훑어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산길은 초반부터 가파르게 시작된다. 가파른 오르막 흙길은 통나무계단을 만들어 경사(傾斜)를 죽였고, 바윗길에는 굵은 안전(安全)로프, 안전로프에 의지해서도 오르기 힘든 코스에는 아예 철제(鐵製) 빔(beam)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별로 길지 않은 거리, 거기에다 쉽게 오를 수 있도록 안전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는데도 직원(職員)들 대부분이 힘들어하고 있다. 평소에 탁구와 족구 등으로 기초체력을 다져온 것으로 아는데, 아마 그런 운동과 등산과는 사용하는 근육(筋肉) 차이가 있나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들게 치고 오르면 첫 번째 봉우리 위로 올라서게 된다. 만장봉이다. 만장봉 위는 오목하게 파인 바위(물개바위)와 예쁘장하게 생긴 소나무가 절묘하게 어울리고 있다. 첫 번째로 만난 ‘포토 존(Photo Zone)’이다. 눈앞에 서있는 하늘벽이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그 뒤에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바위는 촛대바위가 분명하다.

 

 

 

 

 

만장봉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능선은 잠깐 아래로 내려서더니, 이내 오르막길로 변하고 있다. 오른편에 있는 새남바위의 웅장(雄壯)한 옆모습을 보며 가파르게 20분정도를 뒤로 돌아 오르면 새남바위의 위로 올라서게 된다. 새남바위의 찢어진 바위 틈새로 드문드문 키 작은 굴참나무, 싸리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새남바위에서는 하늘벽과 촛대바위가 유난히 눈에 띄지만, 조금 더 또렷이 보고 싶다면 등산로에서 오른편으로 살짝 비켜나있는 바위 위로 올라서야 한다. 하늘벽과 촛대바위가 한층 더 위풍당당(威風堂堂)해지기 때문이다.

* 새남바위는 클라이머(climber)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는 바위이다. ‘새가 난다’는 뜻을 지닌 높이 120m폭 150m의 웅장(雄壯)한 바위로서, 대부분이 크랙(crack : 바위가 갈라지는 것)으로 형성되어 있다. 완경사(緩傾斜 : underlating slope)부터 오버행(overhang : 암벽의 일부가 처마처럼 돌출되어 머리 위를 덮은 형태의 바위) 천장까지 다양한 루트(route)를 자랑하는 자연(自然) 암장(巖場)이다. 하루 종일 햇빛이 들어오고, 크랙 중간에 나무들이 많아서 공포감(恐怖感)을 덜어주기 때문에 클라이머들이 즐겨 찾고 있다고 한다.

 

 

 

 

기암(奇巖) 지나면 괴석(怪石)이 앞을 가리고, 기암을 스치고 나면 이내 괴석이 앞을 가로막는다. 발길 닿는 곳마다 바위, 온통 바위뿐이다. 용화산의 암릉은 아기자기하고 스릴(thrill) 넘치는 능선이 연속된다. 이곳에서는 구태여 바위와 씨름을 하지 않고도, 스릴 넘치는 암벽(巖壁)등반의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보이는 것마다 모두 장관(壯觀)이다. 북한산의 바위 능선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바위벽과 분재(盆栽)로 착각할 정도로 잘생긴 소나무군락(群落), 그리고 기암(奇巖) 몇 개가 모이면서 멋진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그려 놓는다.

 

 

 

 

새남바위에 올라서면 코앞에 깎아지른 듯이 날카롭게 서있는 바위가 보인다. 하늘벽이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로서, 영락없이 병풍(屛風)처럼 생겼다. 다들 바위벽(壁)을 배경삼아 증명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어쩌면 저들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속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신선(神仙)이 된 느낌일 것이다. 오늘만은 여기가 무릉도원(武陵桃源)일 테니까...

 

 

 

 

 

 

새남바위에서 정상으로 가는 바위 능선은 초반은 바윗길이다. 바윗길의 오른편은 천 길 낭떠러지로 이루어져있다. 테라스(terrace)를 닮은 절벽의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지지대(支持臺)를 만들어 놓았다. 오른편으로 보이는 촛대바위가 또 다른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이 바윗길이 오늘 산행 중에서 제일 조망이 뛰어난 구간이다. 오른쪽 발아래는 끝을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절벽(絶壁)이 펼쳐진다. 절벽의 난간까지는 한 길(사람의 키 정도 되는 길이) 정도 되는 거리이니 꽤나 여유가 있건만, 발끝이 간지럽기는 매 한가지이다. 그만큼 바위벼랑이 까마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두려움에 떨기만해서는 꼭 보아두어야 할 절경(絶景)을 놓칠 우려가 있다. 줄지어 나타나는 기기묘묘(奇奇妙妙)한 바위들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걷는다면 자연스레 두려움도 사라져버릴 것이다. 먼저 생김새를 쫒아 이름 지은 바위들을 떠올려본다. 바위로 자리를 깐 것처럼 생긴 너럭바위, 칼을 세워 놓은 것 같은 칼바위, 주전자 모양의 주전자바위, 어린이들이 앉을 수 있을 만큼 크다는 장수발자국바위..., 효자가 산삼을 캤다고 알려진 심바위와 앉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는 설화(說話)가 만들어낸 바위들이다.

 

 

삼성역 무역센터 앞에가면 '무역왕 장보고의 배'를 이미지화한 조각이 있다. 그것을 닮은 바위가 보여서 카메라에 담아봤다.

 

 

바윗길이 끝나면 산길은 또다시 절벽(絶壁)의 반대편으로 휘면서 흙길을 만들어낸다. 길은 경사가 약하지도 그렇다고 세지도 않게 적당하다 싶을 정도의 오르막이다. 가는 길에 잠깐 용화산성(山城)터를 힐끗거리다보면 이내 정상 못미처 있는 헬기장삼거리이다. 이곳 삼거리에서 잠깐 한눈을 팔아본다. 땅바닥에서 나뒹굴고 ‘칼바위’라고 적힌 이정표의 표시판이 양통부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칼바위 방향으로 3~4분 정도 진행하면 멋진 조망(眺望)터가 나타난다. 어쩌면 여기가 촛대바위 근처일 것이다.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절벽 끝으로 다가갈 수가 없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센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왼편의 양통마을과 오른편으로 보이는 우리가 지나온 바위능선의 조망은 일품이었다.

* 능선 길에는 '용화산성'이라 새긴 기념비(紀念碑)와 성터의 흔적이 보인다. 용화산은 춘천과 화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춘천방향은 수십 길의 아찔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른바 요새(要塞)를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산세가 이렇다 보니 옛사람들이 이런 천혜(天惠)의 지형을 그냥 놓아둘 리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김부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이곳이 ‘맥국(貊國) 중심지’였다고 적고 있다. 그러니까 삼국시대 이전 맥국의 임금이 지금의 소양강댐 하류 춘천지역을 도읍(都邑)으로 정하고, 피난처로 사용하기위해 성(城)을 쌓았다는 이야기이다. 한편 이곳이 김유신의 승전지(勝戰地)중 하나인 비사성이라고 주장하는 향토 사학자(史學者)들도 있으나 아직까지는 추론(推論)에 그치고 있다.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평평한 길을 조금 더 걸으면 이내 용화산(龍華山) 정상이다. 용화산은 ‘지네와 뱀이 서로 싸우다 이긴 쪽이 용(龍)이 되어 하늘로 승천(昇天)했다’는 전설(傳說)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정상에는 커다란 정상표지석 외에도 이정표와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정상은 굴참나무와 소나무 등으로 인해 조망(眺望)은 잘 트이지 않는다. 파로호도 역시 그 자태(姿態)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여, 배가 출출해지는 시간이다. 정상과 정상 근처의 헬기장은, 많은 인원들이 둘러앉아 점심상을 차려도 될 정도로 넉넉한 공터로 되어 있으나, 하도 바람이 세게 불어서 자리를 펼 수가 없다. 별수 없이 산길에다 점심상을 차리고 본다. 산길은 가파른데다가, 많은 사람들이 앉기에는 장소도 턱없이 비좁기 때문에,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상을 차릴 수밖에 없다. 족발에 홍어를 안주 삼아 막걸리와 맥주로 갈증을 달래본다. 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있을까? 그 많던 음식이 마파람에 개 눈 감추듯이 금방 없어져 버리고 만다.

 

 

 

 

점심을 마치고 하산길을 서두른다. 하산은 능선을 따라 고탄령까지 간 후, 오른편 양통마을로 내려설 계획이다. 고탄령으로 내려가는 능선(稜線)은 바윗길이 많기 때문에 주의(注意)가 필요하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추락주의’라는 팻말이 붙어있는 지점에서 우회로(迂廻路)를 따라 진행하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우회로가 대부분 마사토(화강암이 풍화되어 생성된 것으로서 굵은 모래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미끄럽다는 점이다. ‘삼거리가 나오면 직진, 사거리가 나와도 직진, 정 헷갈릴 경우에는 그 자리에 멈출 것.’ 사진 촬영을 위해 젊은 직원에게 선두를 부탁한 후 뒤에서 사진을 촬영하며 느긋하게 쫒아 가는데, 아뿔싸 선두그룹이 오른편으로 내려서고 있는 것이 아닌가. 헛 발품을 판 선두그룹에 미안한 일이지만 돌려 세울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길도 험할뿐더러 우리가 타고 온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지점과 다르기 때문이다.

 

 

 

‘추락주의’ 팻말을 무시하고 바위능선 위로 오른다. 우선 용화산의 멋진 풍광(風光)을 하나라도 더 카메라에 담아보려는 생각에서이지만, 한편으론 이정도 바윗길은 나에게는 ‘아이들 장난’ 수준의 코스이기 때문이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까 올라올 때와는 또 다른 풍광이 나타나고 있다. 새섬바위, 만장봉, 하늘벽 등 오를 때 보았던 바위들이 웅장함에 아름다움이 가미된 풍경(風景)이었다면, 하산길에 보이는 암릉은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능선을 걷다보면 삼악산을 비롯하여 북배산과 가덕산 등 주변 명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 아쉬운 것은 왼편에 있는 파로호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무들로 인해 왼편의 시계가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윗길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가면 눈앞에 뾰쪽하게 솟은 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전망(展望)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봉우리이다. 오르는 바윗길이 제법 가파르지만, 쇠파이프를 심은 후 로프를 매달아 놓았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하면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오른편에 용화산 정상과 촛대바위가 보이고, 그 너머 서쪽에는 화악산이 자태(姿態)를 뽐내고 있다. 남쪽으로는 양통마을과 그 너머 아스라이 춘천시가 눈에 들어오고 있다.

 

 

 

 

가끔 제법 까다로운 암릉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기자기한 바윗길, 그저 약간의 스릴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조심해야할 위험(危險)구간이 드무니 자연히 주위의 풍광(風光)을 둘러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생긴다. 주변에 널린 기암괴석(奇巖怪石)들, 그 기암괴석들 사이사이에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노송(老松)들이 웅크리고 있다. 바위와 소나무가 절묘(絶妙)하게 어울리고 있는 것이다. 산길 또한 곱기 이를 데가 없다. 비록 암릉길이지만 두텁게 쌓인 소나무 낙엽(落葉)으로 인해 마치 양탄자 위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오래보면 지루해지는 법, 연달아 나타나는 바위들이 지루해질 즈음이면 어김없이 멋진 전망대(展望臺)가 나타난다. 멋진 조망(眺望)터는 바위산의 일반적인 특징(特徵)이기 때문이다. 공룡의 등허리 같은 용화산의 바위 봉우리들이 삐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사방은 산들로 첩첩(疊疊)한데, 뒤돌아보면 경기의 최고봉인 화악산이 웅장한 산마루를 좌우에 거느리고서 어서 오라며 손짓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산이 가장 아름다운 지?’를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빼어난 바위 봉우리들이 갖가지 형상(形象)을 만들어내는 산이라고 대답하면서, 그런 산들로 금강산이나 설악산을 꼽는다. 사람들은 빼어난 아름다움 앞에 서면 뭉클한 감동(感動)을 느낀다. 조금 더 감정(感情)이 풍부한 사람들은 눈물 한 방울 살짝 떨어뜨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한 감동을 어디 설악산과 금강산에서만 느낄 수 있겠는가. 몇 해 전에 난 달마산을 찾았던 일이 있었다. 비온 뒤의 달마산은 그야말로 환상(幻想) 그 자체이었다. 묵색(墨色 : 바위)과 녹색(綠色 : 낮게 깔린 상록수)은 함께 어우러져 독특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고, 거기에 더하여 하얀 구름이 산허리를 감싸고 있는 것이 그야말로 몽환적(夢幻的)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난 꽤나 오랫동안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극(極)한 아름다움은 서러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 용화산의 암릉도 달마산만은 못해도 오랜만에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다.

 

 

 

위험한 바윗길을 피하지 않고 오르내리느라 선두와 조금 차이가 났는데 사고가 생겨버렸다. 선두가 고탄령으로 향하는 능선을 벗어나 오른편으로 하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두는 이미 100m정도 내려간 상태, 다시 돌려 세우는 것은 무리이다. 산행에 익숙하지 않은 직원들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중에는 고탄령에서 내려오는 길과 합류되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을 시킨다.

 

 

 

예정보다 조금 앞서 내려선 하산길은 그 보답을 톡톡히 치르게 하고 있다. 길이 또렷하지 않을뿐더러, 바윗길 경사도가 가파르기 때문에 초보 산행인 직원들에게는 많이 버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서툰 산꾼들에게는 크게 도움이 안될 것이다. ‘오늘 걷는 길은 바윗길, 약간의 스킨십이 필요합니다. 선남선녀들은 함께 걸으면서 혹시 곁에 있을 인연(因緣)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들도 바윗길이 서툰 초보 산꾼이었던지, 여직원들 곁에 서는 총각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마음씨 착한 유부남인 김수한씨의 손발이 바빴던 하산길이었다.

 

 

 

 

산행날머리는 양통마을 합수(合水)머리

지루하게 이어지던 위험구간이 합수점을 지나면서부터 여유롭게 변한다. 길도 편할뿐더러 계곡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폴짝거리며 뛰어넘는 재미도 쏠쏠하다. 손도 잡아주고 징검다리도 고쳐주면서 즐거워하다 보면 이내 산행이 종료되는 양통마을 위 암반합수머리이다. 주차장 곁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고, 그 곁에 우리가 하산을 시작했던 능선에서 여기까지가 3.9Km라고 적힌 이정표가 보인다.

 

 

 

 

 

 

 

 

산행을 마친 후, 춘천호반에 위치한 음식점으로 이동하여 이 고장의 별미인 숯불닭갈비와 막국수를 맛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운교산(雲橋山, 922m)

 

산행일 : ‘12. 2. 5(일)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과 김삿갓(하동)면의 경계

산행코스 : 제비마을→송전탑→정상→동릉(세미 클라이밍지역)→안테나→급경사지역→녹전리(산행시간 : 4시간10분)

함께한 산악회 : 곰바우산악회

 

특징 : 주위 산들에 비해 높이가 낮다고 해서 우습게 봤다가는 낭패(狼狽)를 보기 십상(十常)인 산이다. 비록 1,000m를 넘기지 않는 높이지만, 산행 출발지점의 표고(標高)가 200m가 채 안되기 때문에, 1,000m가 넘는 다른 높은 산들보다 더 많은 거리를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무척 가파른데다, 오지(奧地)산인지라 안전시설(安全施設)이 전혀 설치되어있지 않아서 위험까지 감수하며 오르내려야만 한다.

 

 

산행들머리는 김삿갓면 외룡리에 있는 제비마을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을 빠져나와 38번 국도(國道)/ 태백방향)를 타고 달리다가 서영월교차로(交叉路)에서 내려온다. 이어서 새로 난 88번 지방도(地方道/단양군 춘양면 방향)로 옮겨 들어가면 김삿갓면사무소와 김삿갓 휴게소를 지나서 옥동천(川)이 보인다. 옥동천을 가로지르는 칠용교(橋)를 건너기 바로 직전에서 좌회전하여 조금만 더 들어가면 산행들머리인 제비마을이다. 마을 이름이 제비인 이유는 운교산 남동쪽 옥동천변에 수직단애(垂直斷崖)를 이룬 큰 바위가 마치 제비가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제비바위마을 앞 도로변에 세워져있는 산행안내판의 뒤로 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동네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계곡의 한쪽 둑을 따라 한참을 오르던 임도(林道)가 갑자기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틀고 있다. 아마도 계곡의 가파른 경사(傾斜)를 배겨내지 못한 모양이다. 방향을 틀어서 10m 정도 진행하면 왼편에 등산로라고 적힌 팻말이 보인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임도를 벗어나 일본이깔나무(落葉松)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산길은 초반부터 가팔라진다. 가파른 능선을 10분 정도 치고 오르면 드디어 안부, 완만(緩慢)해진 능선은 머리 위에다 육중한 송전탑(送電塔)을 얹고 있다. 오른편 숲 사이로 운교산의 전경(全景)이 한눈에 들어온다.

 

 

 

완만(緩慢)한 능선길은 얼마가지 않아 또 다시 급경사 오르막길로 변해버린다. 짧은 거리에 급하게 고도(高度)를 높이다보니 별수 없을 것이다. 길가에는 아름드리 노송(老松)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깊은 골짜기 건너에 운교산 정상이, 그리고 그 오른쪽으로는 날카로운 암릉들이 가깝게 마주 서있다.

 

 

 

 

산행을 시작해서 50분쯤 지나면 주능선을 밟게 된다. 능선의 왼편에는 굴참나무, 오른편에는 소나무들이 끼리끼리 모여 있다. 간혹 남의 지역을 침범한 몇몇은 아마 동화(童話)나라의 ‘청개구리’를 닮은 놈들 일 것이다. 능선의 가파름은 결코 약해지는 것을 모르는 듯 점점 더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다.

 

 

 

 

고도(高度)를 높여갈수록 더 경사가 가팔라지는 주능선을 30분 정도 오르면 굵직한 노송(老松)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바위지대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 못미처에 있는 전위봉에서 잠깐 내려섰다가 다시 한 번 치고 오르면 드디어 운교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 정도 흘렀다.

 

 

 

산정(山頂)이 늘 구름에 가려 있어 일명 `운적산'으로도 불리는 운교산 정상은 별로 넓지 않은 암반 위를 정상표지석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정상은 한쪽 면이 수백 길 단애(斷崖)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조망(眺望)이 일품이다. 정상에 서면 선달산과 어래산으로 이어지는 대간(大幹)과 옥동천이 마주 보인다. 내리계곡과 만나는 합수곡이 발아래이고, 합수곡 오른편에 보이는 것은 시루봉일 것이고, 왼편에는 매봉산과 단풍산이 늘어서 있다. 목우산은 정수리부분만 살짝 내밀고 있다.

 

 

하산은 녹전리 방향의 주능선을 따라 진행한다. '마을까지 4km' 라고 쓰인 안내판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내려서면 본격적인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이 능선은 운교산 산행에서 최고의 묘미(妙味)를 제공하는 코스이다. 노송군락과 어우러진 암릉들이 다소 위험하기는 하지만, 변화무쌍한 볼거리를 끊임없이 보여주기 때문에 조그만 위험 정도는 감수해도 좋을 것이다. 제멋대로 솟아오른 암릉과 노송, 그리고 고사목(枯死木)들이 어우러진 능선은 그야말로 한 폭의 거대한 고전(古典) 산수화이다.

 

 

 

 

 

 

제1봉인 운교산 정상에서 2,3봉을 거쳐 4봉까지 이어지는 약 1Km의 암릉길은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이다. 어떤 이들은 이 구간을 세미클라이밍코스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자일을 써야할 만큼 거친 암릉은 아니다. 남쪽으로 날카롭게 서있는 절벽을 피해, 북쪽 사면(斜面)을 따라 등산로가 이어지기 때문에 조금만 조심한다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다.

 

 

 

 

 

날카롭게 선 암벽(巖壁), 그리고 그 위에 늘어선 늙은 소나무들은 수묵 산수화(水墨 山水畵)의 단골 소재이다. 이곳 운교산 능선을 걷다보면 문득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속을 거닐고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이 떠오르게 된다. 그만큼 이곳 암벽 위에 자리 잡은 소나무들이 암벽과 절묘(絶妙)하게 조화(調和)를 있고, 그 광경이 마치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를 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아름드리 노송(老松)들이 송송이 박혀있는 바위지대에서 바위를 싸안고 돌기도 하고(그래서 이곳을 세미클라이밍지역이라고 부르나보다), 어떤 때는 바위를 타고 내리기도 하며, 그도 아니면 산의 사면(斜面)으로 우회(迂回)하면서 1km정도의 변화무쌍한 암릉을 내려오면 885봉이다

 

 

 

 

 

 

 

885봉에서부터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왼쪽으로 휘도는 능선을 따라 가파른 내리막길을 40분 정도 걸으면 안테나 몇 개가 보인다. 녹전리 주민들이 설치한 TV안테나라고 한다. 이렇게 높은 곳에 안테나를 세워야만 TV시청이 가능할 정도로 녹전리 마을이 심심(深深)산골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이곳을 석이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길가에 ‘여기서부터 마을까지 2km입니다’라고 적힌 안내판이 보인다. 무릎이 아파 오는데 내려갈 일이 걱정이다. 제발 가파른 경사가 누그러지기만을 빌 따름이다.

 

 

 

 

 

안테나지역을 지나면서 산길의 가파름은 더욱 심해진다. 무릎이 많이 아프다. 등산로 주변에 몸을 의탁(依託)할만한 지지대(支持臺)들이 없기 때문에 온통 다리에 힘을 주면서 내려서야만 하기 때문이다. 스틱을 챙겨오지 않은 내 소홀을 책망(責望)하며 가파름이 누그러지기를 기다려보지만, 간절한 내 소망은 결코 이루어질 줄을 모른다. 안전시설(安全施設) 하나 만들어놓지 않은 행정기관의 무관심에 대해 욕설이 튀어나올 즈음에야 경사가 완만(緩慢)한 능선 안부에 이르게 된다.

 

 

 

산행날머리는 녹전중학교

능선안부에서 오른편 사면(斜面)길을 따라 내려서면 진행방향의 나무들 사이로 동네가 보이고, 조금 더 걸으면 드디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녹전중학교이다. 길가의 배추밭에 하얗게 얼어있는 배추들이 널브러져있다. 반듯하게 줄을 지어 늘어서 있는 것을 보면 아예 수확(收穫) 자체를 포기한 모양이다. 생산원가(生産原價)에도 못 미친다는 채소 값은, 가슴 아픈 우리 이웃들의 현실이다.

 

 

 

 

 

능경봉(1,123m)-고루포기산(전망대, 1,165m)

 

산행일 : ‘12. 2. 4(토)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평창군 도암면의 경계

산행코스 : 대관령→능경봉→돌탑→왕산골 갈림길→전망대→왕산골→횡계리(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국제산악회

 

특징 : 대관령 일대는 우리나라 내륙(內陸)에서 가장 눈(雪)이 많은 지역 가운데 하나다. 이 고갯마루 옆 횡계리 사람들은 겨울이면 늘 많은 눈 속에 묻혀서 산다고 한다. 옛날에는 ‘눈 감옥에 갇혔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폭설(暴雪)이 내리면 한동안 길이 뚫리지 않아 고립되는 일이 잦았단다. 그래서 이 일대는 겨울철만 되면 눈(雪) 구경을 위해 찾아드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심(都心)의 시장바닥을 연상하게 하는 북쪽의 선자령은 말할 것도 없고, 반대편에 위치한 능경봉과 제왕산도 많은 인파들로 붐비기는 매 한가지이다. 

 

 

산행들머리는 대관령(大關嶺)의 옛 고속도로 휴게소

영동고속도로 횡계 I.C을 빠져나와 횡계 시내로 가다가 고속도로 밑을 지나자마자 좌회전한다. 옛 영동고속도로인 496번 지방도를 타고 직진하면 능경봉 산행기점인 옛 대관령휴게소 하행선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대관령(大關嶺)은 영동(嶺東)과 영서(嶺西)를 잇는 가장 큰 고개다. 휴게소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차량(車輛)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는 주차장을 제외하고는, 온통 두터운 눈으로 포위되어 있다. 마당 한쪽 귀퉁이를 지키고 있는 풍력발전기는 커다란 날개를 얌전히 내려뜨리고 서 있다. 소문대로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데도 날개를 멈추고 있는 것을 보면 발전용(發電用)이 아니라 전시용(展示用)인 모양이다. 선자령으로 올라가는 들머리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능경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거대한 비(碑)가 우뚝 서있는 고갯마루 위로 올라야만 한다. 유신정권의 절정기라 할 1975년에 세운 영동고속도로준공기념비인데, 뒷면에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치적(治績)이 새겨져 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강릉 시가지와 동해가 눈에 들어온다. 소문대로 바람이 거세다. 모자의 끈을 동여매야 할 정도로 본격적인 바람의 공격이 시작된다. 날씨가 영상(零上)으로 풀린다는 기상청의 예보(豫報)를 비웃기라고 하려는 듯 손발이 시려온다. 서둘러 오른편으로 보이는 널찍한 능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세찬 바람을 등에 지고 얼마간 오르면 임도(林道)가 나타난다. 잠시 뒤에는 산불감시초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터운 눈으로 뒤덮인 초소 건물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꼬마 집처럼 변해있다. 환상의 나라로 들어선 것이다. 초소 옆의 이정표도 절반 넘게 눈 속에 묻혀 있다. 대관령은 아무리 적설량(積雪量)이 적다해도 무릎을 덮을 정도로 눈은 흔하다. 거기다가 산이 깊어질수록 그 양은 점점 더 많아진다.(이정표 : 제왕산 2.0Km/ 능경봉 1.1Km/ 대관령휴게소 0.7Km)

 

 

 

 

초소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차단기(遮斷器)를 지나 계속해 임도를 따르면 제왕산으로 이어지고, 능경봉으로 오르려면 초소 왼쪽 옆 산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참나무가 빼곡한 숲으로 들어서니 바람이 자기 시작한다. 카메라를 붙잡은 손도 덜 시리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 길은 반반하게 닦여있으나, 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눈은 허리 어림까지 차오른다. 그러니 당연히 앞사람을 추월할 수가 없다. 그저 흐름을 쫒으면서 나름대로 여유를 즐겨볼 따름이다.

 

 

 

 

 

능경봉으로 오르는 능선은 완만한 구릉(丘陵) 형태이다. 다소 가파른 오르막도 만나게 되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길가에 군데군데 로프가 매어져 있지만, 두터운 눈에 가려 머리꼭대기만 빼꼼이 내밀고 있다. 눈밭에 헐벗은 나무(裸木)들이 숲의 분위기를 황량하게 만들고 있다. 거기다 심심찮게 불어오는 매서운 겨울바람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걷기 좋은 산길을 따라 20여분 걷다가, 가파른 사면(斜面)길을 한번 치고 오르면 널찍한 공터에 서게 된다. 갑자기 시야(視野)가 확 트인다. 강릉 시내와 동해바다가 보이고 골골을 눈으로 하얗게 덧칠한 산릉들이 보이는 뛰어난 조망처(眺望處)이다. 물론 제왕산과 영동고속도로도 정면으로 내려다보인다.

 

 

 

공터에서 능경봉 정상은 지척(咫尺), 한달음에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정상에 오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탄성(歎聲)을 지르고 있다. 동쪽 벼랑 아래로 강릉시가지와 동해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것이다. 대관령에서 능경봉 정상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 걸렸다. 능경봉 정상에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올라 시원한 조망을 볼 수 있기 산봉우리이기 때문이다. 선자령이 이곳보다 한층 더 뛰어난 곳이겠지만, 사람들에게 부대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들 이곳을 찾고 있다. 정상에는 '강릉영림서 평창관리소'에서 세운 정상표지석이 있다고 하지만, 두텁게 쌓인 눈에 파묻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신 아랫도리에 ‘능경봉’이라고 적혀있는 이정표를 배경삼아 인증사진을 찍는다(이정표 : 대관령 1.8Km/ 전망대 4.2Km). 능경봉 정상은 사방이 확 트인 탓에 제왕산과 강릉시 그리고 동해앞바다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서쪽방향의 빈틈 사이로 강원도의 고산준령(高山峻嶺)들이 첩첩(疊疊)이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강원도의 산세(山勢)는 대단하다. 웬만한 산들이 거의 다 1000m가 넘으니 그럴 만도 하다.

 

 

 

 

 

능경봉에서 고루포기산으로 가려면 남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정상에서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오른쪽에 전망대(展望臺) 비슷하게 생긴 나무테크 하나가 보인다. ‘행운(幸運)의 돌탑’이란다. 테크 위에 보이는 눈에 덮여있는 돌탑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안내문을 보니 백두대간을 걷는 분들의 안녕과 행운(幸運)을 기원하고자 쌓았다고 한다. 10년 전(前) 백두대간을 종주(縱走)할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시설이다.

 

 

 

 

능경봉과 고루포기산의 능선에는 대부분 참나무류(類)인 신갈나무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물푸레나무와 피나무 같은 큰키나무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피톤치드가 많이 나온다는 소나무를 거의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다소 서운하지만, 대신 신선한 공기 가득한 산에서 즐겁게 눈과 한판 씨름을 하고 있으니 문제될 것도 없을 것이다. 덕분에 연리지 나무를 구경하는 행운(幸運)도 얻을 수 있었다. 연리지나무는 참나무류(類)에서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눈밭 사이로 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바람이 아직도 세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탓에 배가 출출해진지 이미 오래됐지만, 점심상을 차릴만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는다. 바람이 너무 세기 때문이다. 왼쪽에 영동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인다. 제1터널 위를 지나는 횡계고개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그렇게 얼마간 걸으면 왕산골로 내려가는 길과 나뉘는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샘터’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횡계치라고 불리는 ‘샘터삼거리’인 모양이다. 횡계치는 평창 도암면 왕산골에서 강릉 왕산면 왕산리 큰골로 넘어가는 재이다. 왕산골 방향으로 100m쯤 내려간 지점에 샘터가 있다고 하나, 구태여 확인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냥 통과한다.(이정표 : 전망대 1.6Km/ 행운의 돌탑 2.4Km/ 왕산골 700m)

 

 

 

 

다져진 눈 위로 난 길은 계속 이어진다. 앞서 간 사람들이 어제의 길 흔적을 잘 찾아내고 있음일 것이다. 샘터이정표에서 20분 정도를 더 걸으면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도 왕산골로 내려갈 수 있다.(이정표 : 샘터 0.8Km/ 전망대 0.7Km/ 왕산골 2.0Km). 이틀 전에 내린 폭설(暴雪)로 인해,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왕산골로 하산을 했다.

 

 

 

왕산골 갈림길에서 가파르기 짝이 없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난코스이다. 거기다가 산길은 허리춤이 넘게 쌓인 눈밭을 헤치며 나가게 만들고 있다. 오늘 이 길을 처음으로 뚫고 지나간 사람들이 방향을 잘못 잡아, 어제까지 다져놓은 눈길을 벗어나버린 모양이다. 연리지(連理枝)나무를 지나니 많은 등산객들이 한꺼번에 내려오고 있다. 고루포기산으로 가는 눈길이 뚫리지 않아서,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되돌아 내려오는 것이라고 한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우리 부부는 계속해서 산을 오른다. 어느 TV프로그램에서 본 ‘의지의 한국인’인 것이다.

 

 

 

대관령 전망대, 산악회 선두대장이 되돌아 내려갈 것을 권하고 있다. ‘대관령 전망대’까지만 다녀오기로 약속하고 계속해서 산을 오른다. 중간에서 산행을 멈추는 것이 너무 서운하기 때문이다. 눈길은 더욱 험해진다. 눈이 허리를 넘어 가슴까지 차오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서간 사람들의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마지막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대관령 전망대(展望臺)’이다. 나무로 만든 전망대 데크 위로 오르면 건너편에 선자령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에 늘어선 풍력발전기들이 이국적(異國的)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곳이 선자령을 조망(眺望)하기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에 ‘대관령전망대’란 이름을 붙여 놓았는 모양이다. 선자령의 왼편으로는 강원도의 높은 산(高山)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전망대에서 되돌아 내려오는 길, 도저히 서서는 내려올 수가 없을 정도로 가파르다. 그렇다면 길은 단 한 가지, 엉덩이 썰매를 탈 수밖에 없다. ‘인간만사(人間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다.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마지못해 타는 썰매에 재미가 흠뻑 든 집사람은 눈에서 엉덩이를 뗄 줄을 모른다. 다행이 내리막길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왕산골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왕산골로 방향을 잡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계곡 오른쪽 사면(斜面)을 따라 하산길이 나 있는데 경사(傾斜)는 대체로 완만(緩慢)하다. 그러나 속도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소에 등산객들의 왕래(往來)가 뜸한 탓에, 러셀(russell)을 해야만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눈밭을 헤치며 나아가려니 당연히 속도가 느려질 것이고, 수많은 등산객들은 불평한마디 못하고 줄지어 늘어서 있다.

 

 

 

‘설탕을 닮았네요.’ 사방에 널린 눈(雪)이 마치 꽃소금처럼 생겼다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나오는 집사람의 응수(應酬). 부엌살림 전담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자세히 보니 설탕을 닮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요즘처럼 메마른(乾燥) 날씨에 내린 눈들은 습기가 없기 때문에 저렇게 보슬보슬하다고 한다. 뭉쳐지지 않는 눈가루들이 마치 설탕처럼 발밑에서 뒹굴며,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있다. 물론 옷에도 들어붙지 않는다.

 

 

 

 

 

 

 

겨울 산행을 즐기는 등산광(登山狂)들에게 '많은 눈'은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은빛 설원(雪原)과 눈꽃이 가득한 산은 다른 계절에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소문난 이곳 대관령을 놓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나마 조금 여유로운 능경봉 코스를 선택했건만 이곳도 사람들로 넘치기는 매 한가지였다. 속도를 내고 싶어도 좁은 눈길에서 앞사람을 추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不可能), 운동량(運動量)이 부족해서 부쩍 몸이 둔해진 요즘 같으면 차라리 잘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산행날머리는 왕산골 입구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하산길은 계곡을 두 번 가로지른 후에 잣나무 숲에 이르게 된다. 이어서 나타나는 널따란 분지(盆地)는 아마도 고랭지 채소밭인가 싶다. 채소밭도,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보이는 구릉(丘陵)도 온통 눈의 천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눈의 제국(帝國)’이라고 부르나 보다. 채소밭을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농로(農路)를 따라 얼마간 내려가면 차도(車道)를 만나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마무리 된다. 농로 주변에는 이 지방의 특산품(特産品)인 황태를 말리는 덕장이 여러곳에 보인다.

 

 

묵방산 (萬垈山, 680m).묵방산(墨坊山, 611m)

 

산행일 : ‘12. 1. 21(토)

소재지 : 강원도 홍천군 동면과 횡성군 공근면의 경계

산행코스 : 어둔리 주막거리→치치박골산(송락봉)→작은 만대산→739.6봉→만대산→묵방산→적봉교(산행시간 : 5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말 그대로 오지(奧地)의 산, 대부분 흙으로 이루진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나, 작은 만대산의 정상어림과 한강기맥과 만나는 지점 부근은 제법 험한 바윗길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산을 다 올라보고 싶은 사람들은 한번 쯤 찾아봐도 무관(無關)하겠으나, 구경거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라면 권하고 싶지 않은 산이다. 참나무로 가득 찬 흙산에서 구경거리를 찾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일 것이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어둔리 주막거리

중앙고속도로 횡성 I.C를 빠져나와 5번국도(國道/ 홍천 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공근면소재지(所在地)에서 406번 지방도(地方道/ 홍천군 동면방향)로 옮긴 후 금계천을 가로지르는 청곡교(橋) 바로 앞에서 왼편의 금계서로(西路)를 따라 들어서면 오래지 않아 어둔리에 이르게 된다. 버스에서 내리면 ‘어둔리 송락봉 등산로 입구’라고 쓰인 이정표(里程標)가 보인다. 이정표가 지시하는 방향에 보이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논밭 지역을 지나자마자 임도(林道)를 버리고 왼편에 보이는 산길로 들어선다. 길은 무척 가파르면서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탓인지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선답(先踏)산악회의 리본으로 방향을 잡아가며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길은 뚜렷해진다.

 

 

 

능선은 전형적인 흙산, 발밑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포근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가파른 오르내림이 연속되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힘이 드는 편이다. 참나무 일색(一色)인 능선을 따라 걸으면 몇 기(基)의 묘(墓)를 지나서 치치박골산(548m)에 도착하게 된다.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볼품없는 바위에 누군가가 송락봉(548m)라고 써 놓았다. 등산로 초입(初入)의 이정표에도 그렇게 적힌걸 보면, 아마 차치박골산을 이곳에서는 송락봉이라고 부르나보다. 산행을 시작한지 40분이 조금 못되었다.

 

 

 

 

▼ 차치박골산에서 작은 만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은 오르내림이 더욱 가팔라진다. 참나무 일색이던 능선은 점점 소나무의 숫자가 불어나더니만, 잣나무가 우거진 오르막길에 올라서면서부터는 아예 소나무 일색으로 바뀌어 있다. 빈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왼편 숲 사이로 중앙고속도로(高速道路)가 내려다보인다.

 

 

 

길가 참나무에 겨우살이들이 많이 보인다. 몸에 좋다는 발표가 있은 후부터 부쩍 각광을 받고 있는 식물이다. 아니나 다를까 오지의 산에서 만났던 유일한 사람들은 역시 겨우살이 채취꾼들 이었다.

 

 

 

 

 

‘갈기가 뭔 뜻인데요?’ 우리가 걷고 있는 능선을 ‘갈기능선’이라고 부르면 어떻겠느냐는 내 얘기를 듣고 집사람이 물어온다. 능선이 마치 말의 갈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양쪽 모두 날카롭게 서 있기 때문이다. 갈기의 한 가운데에 로프가 매어져 있는 것이 보이더니 암릉으로 된 길은 점점 더 험해진다. 그리고 이내 작은 만대산 정상(633m)에 오르게 된다. 작은 만대산은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는 보이지 않고 삼각점만이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20분 정도 지났다.

 

 

 

 

 

작은 만대산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도 역시 암릉이다. 그러나 로프가 잘 매어져 있기 때문에 안전(安全)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심조심 로프에 매달려 내려서다보면 ‘등산로 종점’이라고 쓰인 붉은 색 이정표가 보이고, 왼편으로 내려가라고 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아마도 작은 만대산 구간(區間)만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고, 이정표는 그들을 위해 세워 놓은 듯 싶다. 한강기맥 위에 위치한 만대산으로 가려면 이정표 뒤의 능선을 따라 올라서야 한다.

 

 

 

 

갈림길에서부터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르막길의 끄트머리에서 헬기장을 만나고, 능선은 별다른 특징(特徵) 없이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보이던 눈발이 점점 굵어지더니, 이제는 제법 함박눈 느낌으로까지 발전되었다. 왼편에 경제림(經濟林) 조성이 목적인 듯한 벌목지가 보인다. 남겨 놓은 몇 그루의 나무가 함박눈에 휩쓸리며 몽환적(夢幻的)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눈 때문에 시야(視野)가 가려 조망(眺望)이 일절 없다. 볼 것도 없으니 그저 앞만 보고 걸을 따름이다. 작은 만대산에서 1시간정도 걸으면 삼각점(741.1m)이 있는 한강기맥분기점(分岐點)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정상표시판을 만날 수 있다.

 

 

 

한강기맥 :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비로봉, 계방산, 용문산, 유명산을 지나 양평의 두물머리(양수리)까지 이어지는 161km의 산줄기이다. 우리나라 중부권(中部權)을 가로지르며, 많은 명산(名山)을 품고 있다.

 

 

 

한강기맥분기점(分岐點)에서 오른쪽 방향에 있는 커다라면서도 멋진 소나무 뒤로 내려가면, 등산로는 커다란 바위에서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키고 있다. 산의 경사면(傾斜面)을 갈지(之)자로 자르면서 내려가는 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경사(傾斜)가 심한데다가 길의 폭(幅)까지 좁으니 조심해서 내려서야만 한다. 우회가 싫은 사람들은 아까 만났던 바위를 넘으면 되나. 눈길임을 감안한다면 우회하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암릉을 내려서면 길은 유순해진다. 전형적인 흙산(肉山) 특유의 산길은 포근하고, 굴곡(屈曲) 또한 깊지 않으니 나름대로 여유를 즐기면서 걷는 것이 좋다. 분기점에서 능선길을 따라 1시간 조금 못되게 걸으면 만대산(679m)에 도착한다. 만대산 정상도 역시 정상표지석은 없고, 대신 개인들이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만 2개가 걸려있다. 이곳에서 오른쪽방향으로 가면 한강기맥방향이고, 묵방산은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정상에서 묵방산을 향해 왼쪽으로 약 30m 내려선 후, 다시 왼쪽능선으로 내려가야 한다. 주의(注意)가 필요한 구간이다. 잘못해서 곧바로 내려설 경우 가려고 하는 지점의 반대편에 있는 동네가 나오기 때문이다.

 

 

 

만대산에서 묵방산 가는 길도 역시 유순(柔順)하다. 많이 내려서고 조금 올라서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낮추어가기 때문이다. 발목에 부담이 전혀 없는 흙길을 따라 40여분 정도 걸으면 묵방산에 다다르게 된다. 묵방산 정상은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은 좁다란 공터에 개인이 만들어 놓은 정상표시판 하나만 매달려 있다.

 

 

 

하산은 소나무 숲길을 따라 내려선다. 이곳은 온통 소나무들의 천국(天國), 10~20년 정도 되는 소나무들이 대부분인데 궁궐(宮闕)의 기둥으로 세워도 좋을 만큼 굵은 것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길 주변에 하얗게 착색된 소나무 숲이 색다른 아름다움을 선보이고 있다. 조금 전까지 내리던 눈이 저렇게 아름다운 설경(雪景)을 만들어 내었나 보다. ‘내년 봄에 고사리 뜯으러 와요’ 집사람 말마따나 산길 주변을 온통 고사리가 뒤덮고 있다. 이 능선의 바로 아래에는 우리들이 간혹 머물다 가는 별장(別莊)이 있다. 그래서 집사람의 마음에는 길가에 널린 고사리가 다 자기 것으로 보이나 보다.

 

 

 

 

산행날머리는 홍천군 동면 상수도사업장

‘저게 예쁜 소나무인가 봐요’ 집사람이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 예쁘다고 표현할 정도까지는 못될 것 같은 우람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산행지도에 ‘예쁜 소나무’라고 적힌 554봉이다. 산길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급하게 휜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오래지 않아 진행방향에 인삼밭이 널따랗게 펼쳐지고, 이내 홍천군 동면의 상수도사업장 건물 옆(적봉교)으로 빠져 나오면서 산행이 마무리 된다.

 

 

 

 

 

한반도(韓半島, 상정바위산 맞은편)

 

산행일 : ‘11. 8. 27()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산행코스 : 문곡리작은골 입구지리산계룡산속리산태백산설악산금강산백두산압록강변반대방향으로 해서 원점회귀 (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청지산악회

 

특징 : 상정바위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이 산을 오르는 이유는 모두들 단 한가지이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한반도(韓半島)를 보기 위해서다. 사행천(蛇行川)인 조양강이 굽이굽이 돌면서 만들어 놓은 땅덩어리는 한반도의 형상을 쏙 빼다가 박은 듯이 닮았다. 정선군에서는 이 한반도에다가 백두대간 종주코스를 잘 정비해 놓았다. 비록 가리왕산이나 계룡산을 백두대간에 편입시키는 우()를 범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정성이 갸륵할 따름이다. 산행코스가 짧으니 상정바위산의 산행을 마친 후에 잠깐 짬을 내어 찾아볼 일이다.

 

산행들머리는 문곡리 주차장

중앙고속도로 제천 I.C를 빠져나와 38번 국도(國道/ 태백방향)을 따라 달리다가, 정선군 남면사무소 소재지에서 59번 국도(정선, 양양방향)로 바꾸어 들어가면 정선읍에 도착하게 된다. 정선에서부터는 42번 국도(동해시 방향)를 따라간다. 도로 오른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강은 조양강이다. 정선읍에서 구절리와 아우라지로 가는 42번 국도를 따라 5정도 들어가다가, 철로 아래로 난 도로를 통과하자마자 북평면 문곡리쪽으로 우회전해서 강을 건너면 문곡리이다.

 

 

문곡리에 들어서면 먼저 커다란 한반도 조형물(韓半島 造形物)이 눈에 띈다. 그 맞은편에는 상정바위산과 문곡마을에 대한 안내도(案內圖)가 세워져있다. 방갈로 형태의 가옥이나 야외 취사시설 등으로 보아 이곳 문곡리는 산촌 체험마을로 운영되고 있는 모양이다.

 

 

상정바위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주차장에서 조양강을 오른편에 끼고 2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1Km쯤 걸어 내려가야 한다. 왼편 산 아래 지어진 전원주택들이 하나같이 멋스럽고, 오른편 조양강 너머인 한반도의 단애(斷崖)가 제법 날카롭다.

 

 

 

조양강을 가로지르는 덕송교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커다란 한반도 조형물(造形物)과 산행안내도가 서있는 삼거리에서, 다리를 건너면 한반도이고, 상정바위로 가려면 강변을 따라 곧장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빨강 모자를 쓴 아저씨가 상정바위산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서 있는 것이다. 산불방지기간이라 입산금지(入山禁止)란다. 정선군청의 승인을 받았다고 해도 막무가내(莫無可奈)이다. 자기는 산림청(山林廳) 소속이기 때문에 군청(郡廳)과는 무관(無關)하단다. 조르다가 어르고, 끝내는 한반도로 발걸음을 돌린다. 꿩 대신 닭이라도 잡아먹어야 오늘 이곳을 찾은 보람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한반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우선 조양강을 가로지르는 덕송교를 건너야만 한다. 참고로 2차선으로 된 이 군도(郡道)는 한반도를 남쪽으로 관통한 후, 다시 정선읍 근처의 42번 국도(國道)와 만나게 된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1Km쯤 걸어 내려가면 오른편 언덕으로 오르는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林道)가 보인다. 아마 포항의 호미곶 쯤 되는 지점일 것이다. 입구에 산행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들머리를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언덕으로 올라서면 임도는 언제부터인가 비포장으로 바뀌어 있다. 황톳길 등산로는 곱고 부드럽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소나무 일색, 잠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일본이깔나무(落葉松) 군락지가 보이더니, 이내 잣나무 군락지(群落地)로 변해버린다.

 

 

겨울의 초입(初入), 빈 가지들로 앙상한 산은 궁상을 떨고 있어야 하건만, 소나무들에게 포위당한 한반도는 풍요로움이 넘치고 있다. ‘겨울이 다 되어야 솔이 푸른 줄 안다라는 말이 있다. 여름에야 모든 나무들이 온통 초록빛이지만, 겨울철에는 유독 소나무만이 보란 듯 푸른 자태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숲이 좋은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나무로 둘러싸인 길을 걷다 보면, 신선한 공기가 지쳐있던 온몸을 재생(再生)시켜준다. 느릿하게 걷다 보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머리는 어느새 속속들이 상쾌해져 있다.

 

 

 

평지(平地)형태로 이어지던 산길이 약간 경사(傾斜)를 보이더니 도톰하게 솟구친 곳에 낯선 안내판 하나가 서 있다. 이곳이 남한(南韓)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리산이란다. 그러나 이곳의 실제 높이는 오늘 만나게 되는 산 중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해 있다.

 

 

 

지리산을 지나도 산길은 지금까지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산길은 마냥 보드랍고 순하다. 산행을 시작할 때와 같은 분위기의 솔숲 아래 길이 약간 경사(傾斜)가 가파르게 변했을 따름이다. 그러다가 뽈록하게 솟은 또 하나의 언덕을 만나게 된다. 잠깐 쉬어가라고 만들어 놓은, 벤치 옆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에는 이곳이 계룡산이라고 적혀 있다. 백두대간은 결코 계룡산을 지나지 않는데, 이곳 정선군청의 관계자가 잘못 안 모양이다.

 

 

 

주위는 온통 소나무 천국(天國)이다. 수령(樹齡)은 그리 오래되지 않지만,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들은 햇살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짙은 숲을 만들고 있다. 숨을 크게 들이켜 본다. 상큼한 공기 속에서 청량감 가득한 솔향이 맴돌고 있다. 거기에다 침엽수(針葉樹)에서 가장 많은 피톤치드가 발생된다고 하니, 오늘 걷는 이 길은 더없이 좋은 삼림욕(森林浴) 구간인 셈이다. 상정바위산을 못 오른 서운함을 능히 상쇄시키고 남을 만큼...

 

 

계룡산을 지난 산길은 또다시 짙은 솔숲 아래를 지나게 된다. 분위기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다만 경사가 조금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래봤자 여느 산의 중급 코스에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여유롭게 걸으며 콧노래 두어 곡조(曲調) 흥얼거리다보면 속리산을 거친 발걸음은 어느새 태백산에 닿아 있다.

 

 

 

태백산을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오르고 내림이 짧게 반복(反復)된다. 그 짧은 오르내림은 안부를 향해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또 다시 힘겨운 오르막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산길은 자주 능선을 벗어나 사면(斜面)을 중간으로 가르며 이어지고 있다. 왼편이 깎아지른 절벽이라 능선으로 길을 뚫는 것이 불가능 했던 모양이다. 조양강의 물굽이가 좌우로 펼쳐지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곳은 반도(半島)의 중간, 허리쯤이 되는 모양이다.

 

 

 

 

사박사박’,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내지르는 낙엽들의 비명소리... 아무리 낮은 산이라지만 이곳은 역시 강원도의 오지에 있는 심심(深深)산골이다. 이런 오지의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風景)일 것이다.

 

 

 

 

나무테크 계단과 안전(安全)로프 등 안전시설로 잘 정비된 구간을 지나면 이번에는 볼록하지도 않은 곳에서 벤치와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가리왕산이다. 실제로는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만날 수 없는 산이 다시 한 번 백두대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정선군, 그들의 경쟁상대인 태백시가 태백산을 백두대간에 올려놓고 있기 때문일까? 백두대간이 지나지 않은 곳에 있는 가리왕산을 떡 하니 백두대간 위에 올려놓고 있다. 두 번째로 만나는 난센스인 것이다.

 

 

 

산길은 산행(山行) 내내 길손들의 눈을 감동시킨다. 길의 초입에서 선보이던 장대한 솔숲은 산행 내내 끊이지 않고 펼쳐지고 있다. 솔숲의 양산(陽傘) 아래를 걸으며 내려다보는 조양강이 조화(造花)를 부리고 있다. 오른편 발아래에 펼쳐지고 있으려니 지레짐작하고 있던 조양강이, 잠시 한눈을 팔고나면 어느새 왼편으로 달려와 있는 것이다.

 

 

 

 

가리왕산을 지나면서 산길은 제법 가파르게 변하면서 설악산으로 연결시킨다. 설악산은 오늘 산행 중에서 만난 봉우리 중에서 가장 봉우리답게 생긴 봉우리이다. 설악산 부근은 지금까지의 침엽수와는 확연히 다른 활엽수인 신갈나무의 군락지(群落地), 온 몸을 들러내고 있는 신갈나무의 빈 가지 사이로 저 멀리 상정바위산이 살포시 그 자태(姿態)를 드러내고 있다.

 

 

 

걷는 길 내내 바닥은 솔잎으로 가득해 폭신폭신 하기만 하다. 이따금 만나는 오르막에서 땀방울이 흐르는 것은, 아무리 야트막하더라도 산은 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철이지만 아직까지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는 솔숲, 그 초록은 싱그러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코끝을 스치는 소나무향과 솔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는 상상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기 때문이지는 몰라도 소나무는 우리와 가장 친숙한 나무이다. 오죽하면 소나무와 함께 태어나고, 소나무 속에서 살다가, 솔밭에 묻힌다고 했을까.

 

 

설악산을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급경사(急傾斜)를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나무계단을 밟고 내려서면 안부사거리, 움푹 들어간 안부를 산길이 가로지르고 있는 광경(光景)은 마치 휴전선(休戰線)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 길은 이 산의 양쪽에 있던 동네 사람들이 오가던 옛길이란다. 바로 문곡 마을과 송오리 마을이다.

 

 

십자(十字)안부, 한마디로 괜찮은 풍경이다. 경사(傾斜)를 이루고 있는 양편 언덕은 초지(草地)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가운데를 폭이 1m도 안 되는 침목계단으로 연결하고 있다. 사진(寫眞)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은 멋진 작품을 연출할 수도 있으련만...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싶지만, 휴전선에서 함께 식사를 한 후, 나와 발걸음을 맞추고 있는 산악회 총무님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지나쳐 버리고 만다.

 

 

 

 

침목(枕木)계단을 오르면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이정표(반점재 40/ 월천 50, 상정바위 정상 175)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변함없이 고운 능선을 잠깐 걸으면 갑자기 바윗길이 나타난다. 그 위에 금강산이 놓여있다. 역시 바위산인 금강산은 어디다 옮겨 놓아도 바위가 따라 다니는 모양이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등산로는 한량없이 곱다. 황톳길은 부드럽기만 한데, 그 위에 두텁게 쌓인 낙엽(落葉)이라니, 신발창을 통해 전해져 오는 촉감은 카펫의 경지를 넘어 아예 스펀지 수준이다. 폭신폭신하기 그지없다. 이런 길에서는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주위의 풍물을 즐기면서 모처럼 여유롭게 걸어보자.

 

 

 

 

금강산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우리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이다. 이 길을 처음 걷는 사람들이라면, 응당 금강산에서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꽤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짧다. 이곳의 지형(地形) 때문에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백두산 정상에는 팔각정(八角亭)이 세워져 있다. 팔각정 위에 올라서면 오른편으로 상정바위산이 눈앞에 다가오고, 발아래에는 조양강이 굽이치고 있다.

 

 

 

 

 

 

백두산에서 두만강을 향하여 걸음을 옮긴다. 두 번째 만나는 이정표(반점재 20/ 월천 70, 상정바위 정상 195)에서 이정표에 방향표시가 없는 오른편 능선을 따라 진행해보지만 10분이 채 못 되어 발걸음을 돌린다. 길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뒤돌아 나와 이정표가 지시하고 있는 반점으로 향할까 망설이다가 백두산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산행시간이 짧기 때문에 지나왔던 길을 다시 한 번 밟은 후, 원점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이다. 행여 내가 산행시간이 짧다고 불평이라고 할까봐서인지, 산악회 총무님이 나와 함께 보조를 맞추고 있다.

 

 

 

다시 돌아오는 길, 비록 아까 걸었던 길이지만, 시선을 바꾼 세상 풍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내 가슴에 쌓여간다. 솔숲 능선을 지나 다시 올라선 작은 봉우리인 금강산을 지나면서 산길은 계속 내리막길이 된다. ()의 높이와 얼추 비슷해질 때까지 내려서면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길을 만난다. 아까 느꼈던 휴전선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가슴에 다가온다.

 

 

안부의 휴전선을 넘어 다시 산자락으로 오른다. 이제부턴 남한(南韓)의 영역(領域)이다. 남한으로 넘어오는 길은 무척 힘들다. 오르막길이 엄청나게 급경사(急傾斜)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북한(北韓)으로 넘어갈 때에는 쉬울지 모르지만, 남한(南韓)으로 다시 넘어 오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우리네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까 산을 오르면서 놓치고 지나갔던 경관(景觀)을 꼼꼼히 챙기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이내 군도(郡道)에 이르게 된다. ‘난 비록 산악회의 총무이지만 음식을 만드는 것은 제외랍니다.’ 하기야 집에서도 음식 장만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총무님을 누가 말리랴... 느긋한 마음으로 귀환(歸還)한 주차장, 오늘의 만찬(晩餐)삼겹살 파티는 이미 파장이다. ‘두 분이 애인 사이세요?’ 지나가는 농담이 나에겐 즐겁지만 총무님에게는 즐겁지만은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