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산(君義山 921.6m)-행산(杏山 808.8m)

 

산행일 : ‘13. 6. 8(토)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옛 동면)과 남면의 경계

산행코스 : 9번도로 구슬재→918.7봉→임도(알바구간)→군의산→임도→행산→종유교→화암동굴 앞 주차장(산행시간 : 알바시간을 뺄 경우,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군의산과 행산은 웬만한 산꾼들 조차도 알지 못하는 오지(奧地)의 산이다. 당연히 찾는 사람들이 드물고, 어쩌다가 찾는 사람들도 산의 답사(踏査)가 본래의 목적이 아니고, 화암동굴을 구경하러 오는 길에 코스에 끼워 넣는 것이 고작이다. 찾는 사람들이 드물어서인지 두 산의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이 없다. 물론 이정표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마치 버려진 듯한 느낌인 것이다. 하긴 민둥산이나 가리왕산 등 소문난 산들이 즐비한 정선군에서 이렇게 외진 산까지 정비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구슬재(일명 미사리재)

중부내륙고속도로(출구 : 제천 I.C)와 38번 국도를 이용하여 남면(南面 : 정선군)의 소재지인 문곡리까지 온 후, 문곡교차로(交叉路 : 남면 문곡리)를 빠져나온다. 이어서 59번 국도를 따라 5분 정도 달리다가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다리인 문곡교(橋)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여 화암약수로 넘어가는 군도(郡道)로 접어들면, 도로는 산허리를 돌고 돌아 마침내 산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이 시작되는 구슬재이다. 구슬재는 군의산과 지억산 사이의 안부(鞍部)로서 화암면(舊 東面) 주민들과 남면(南面) 주민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이다. 참고로 고갯마루에서 남면 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삼내약수(藥水), 동면 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화암약수가 있다. 양쪽 산자락 모두에서 질 좋은 약수가 용출(湧出)되는 것을 보면 이 부근의 산세(山勢)가 뛰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산행 들머리는 고갯마루 한가운데에서 왼편으로 열린다. 비록 길은 희미하지만 산악회 리본 몇 개가 매달려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한숨부터 먼저 나온다. 오르막길이 너무 가파른 것이다. 그러나 미리 겁부터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능선 위에 올라서게 되기 때문이다. 일단 능선으로 올라서기만 하면 길은 순해진다.

 

 

 

능선에 올라서도 잡목(雜木)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탓에 길이 뚜렷하지가 않다. 심심찮게 얼굴을 때리는 나뭇가지들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진행하다보면 개활지(開豁地)가 나타나면서 시야(視野)가 트인다. 걷고 있는 능선의 왼쪽 사면(斜面)과 맞은편 능선이 가지런히 벌목(伐木)이 되어있는 것이다. 능선의 한 가운데를 경계로 삼아 왼편은 개활지(開豁地), 그리고 오른편은 원시(原始)의 숲 그대로이다. 그리고 산길은 그 경계의 선을 따라 이어진다. 개활지(開豁地) 구간이 끝난 후에도 비교적 산길은 또렷하게 나타난다.

 

 

 

 

능선은 가끔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오르막 구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별로 힘이 들지는 않는다. 짧게 내려섰다가 그보다는 조금 더 긴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능선은 고도(高度)를 서서히 높여간다. 걷는 것이 힘이 들지 않다보니 다른 곳에다 시선(視線)을 돌릴 수 있는 여유까지도 생긴다. 길가에는 산나물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원시(原始)의 숲이다 보니 산나물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걷는 틈틈이 산나물을 뜯다보면 50분쯤 후에는 918.7봉에 올라서게 된다. 독자적인 이름을 갖고 있지 못한 918.7봉은 이름값을 따로 할 일이 없었나보다. 봉우리 위에는 송전탑(送電塔) 하나만 외로이 서 있을 뿐 정상석은 커녕 이정표조차 보이지 않는다. 918.7봉에서는 조망(眺望)이 압권(壓卷)이다. 왼편에 보이는 산은 분명히 백이산이고, 그 오른편에 서 있는 산들은 서운산과 가리왕산, 그리고 상원산일 것이다. 그 외에도 이름 모를 고산(高山)들이 첩첩(疊疊)이 쌓여있다. 산이 많기로 유명한 강원도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918.7봉에서 군의산으로 가려면 오른편으로 120도(度)로 방향을 틀어 송전탑 아래를 통과하여야 한다. 군의산으로 향하는 능선도 가파르지 않은 작은 오르내림이 계속된다. 그러나 길의 흔적은 아까 918.7봉을 오를 때보다 훨씬 더 희미해진다. 이 구간이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길의 흔적이 심심찮게 끊어져버리는 탓에 엉뚱한 곳으로 진행할 우려가 많은 때문이다.

 

 

 

우려했던 대로 우리 일행도 엉뚱한 길로 진행하는 우를 범하고야 말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능선을 벗어나 오른편 지능선으로 들어서버린 것이다. 선두가 깔아놓은 표지(標識)만 보고 진행하는데, 능선이 느닷없이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해버린다. 능선으로 연결되는 산행에서 잘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지만, 이럴 때는 선두를 믿을 수밖에 없다. 단체산행에서는 개인행동이 사고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힘들게 임도(林道)에 내려서니 선두팀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는 게 보인다. 임도를 건너 맞은편 봉우리에 올라가보았는데 군의산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우왕좌왕이 시작된다. 내려선 지점이 어디인줄을 모르기 때문에 진행방향을 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려선 임도는 차량이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널따랗고, 시멘트로 포장까지 되어 있다. 느낌뿐만이 아니라 도로 바닥을 보면 자동차가 다닌 바퀴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지도(地圖) 한 장만 있었더라도 이렇게 헷갈리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탓이다. 상의 끝에 임도를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 보기로 한다. 내려가다 짐작되는 능선으로 치고 오르자는 것이다.

 

 

 

임도를 따라 농경지(農耕地)가 있는 평지까지 떨어졌다가, 왼편에 보이는 농로(農路)로 들어선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방향 선택도 잘못된 결정이 되고야 말았다. 임도를 계속 따라갈 경우 군의산 바로 아래에 있는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되기 때문이다. 농로가 끝나고, 더덕을 심어놓은 밭두렁을 지나면 산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조그맣게 열린다. 길가에는 산악회 리본은 아니지만 표시지가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 산일을 하는 사람들이 매달아 놓았겠지만, 하여튼 길은 나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산길은 흔적이 끊겨버리고 개척 산행이 시작된다. 인간의 발자취가 끊겨버린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산길은 경사(傾斜)가 가파르기까지 하다. 군대에 가면 ‘PRI’라는 용어를 접하게 된다. ‘피가 나고, 알이 박히고, 이가 갈린다.’라는 표현의 약자(略字)이다. 지금 오르고 있는 코스에 ‘PRI’라는 용어를 붙이면 어떨까 싶다. 이렇게 힘들게 오르는 코스가 구태여 올라올 필요가 없었던 것을 알게 된다면 어느 누군들 이가 갈리지 않겠는가.

 

 

 

 

임도에서 농로로 접어들고서 20분 정도를 고생하면 원래의 능선에 다시 올라서게 된다. 주능선을 벗어나 잘못된 길로 들어선지 거의 한 시간 가까이를 헤맨 샘이다. 다시 만난 산길은 변함없이 거칠지만 다행히도 길의 흔적은 또렷한 편이다. 잡목(雜木)이 진행을 더디게 만드는 칼날능선을 지나면 잡초(雜草)가 무성한 헬기장을 만나게 된다. 헬기장에서 잠깐 조망(眺望)이 트이면서 석곡리의 마덕마을과 거칠현치 봉우리가 내다보인다.

 

 

 

 

헬기장을 지나면서 또 다시 길의 흔적이 자주 끊기기 시작한다. 이 구간에서는 길이 안 보인다고 해서 능선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능선을 곧장 따르다보면 띄엄띄엄 길의 흔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길 찾기에 신경을 쓰며 15분 정도 걸으면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군의고개라 불리는 고갯마루로서 화암약수에서 석곡리의 마덕마을을 잇는 임도라고 한다. 아까 내려섰던 임도와 연결되기 때문에, 임도를 벗어나지 말고 계속 진행했더라면 고생을 안 하고도 이곳에 이르렀을 것이다. 임도 곁에 거대한 송전탑이 보이니 참조하면 길 찾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군의산으로 가려면 임도를 건너 철탑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소나무들과 참나무류의 잡목(雜木)들로 가득 찬 능선을 20분 정도 치고 오르면 군위산 정상이다. 열 평 남짓한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군의산 정상은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잡목과 잡초로 무성하게 덮여있기 때문이다.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대신 ‘새마포산악회’에서 걸어놓은 정상표지판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다. 918.7봉이나 행산 등 오늘 올랐던 봉우리마다 보았던 삼각점은 이곳에서도 눈에 띈다. 군의산 정상은 사방이 잡목(雜木)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망(眺望)은 별로이다. 겨우 동쪽의 삼봉산과 북동쪽의 각희산, 그리고 청옥산과 두타산이 머리만 살짝 내밀고 있을 따름이다. 이곳까지 오는데 길을 잘못 들어 헤맨 시간(1시간)까지 합쳐서 3시간이 걸렸다.

 

 

오늘 산행에는 옛 동료인 정사무관이 함께해 주었다. 그것도 복분자술을 2병이나 챙겨서...

 

 

정상으로 올라왔던 길과 반대방향으로 내려서면서 행산으로 향한다. 행산으로 내려서는 길은 아예 길이 안 보일 정도로 길의 흔적이 희미해져 버린다. 거기다가 경사(傾斜)까지 가파르기 때문에 내려가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진행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다행이도 15분 정도만 고생하면 임도에 내려설 수가 있다.

 

 

 

 

행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잠시 동안 임도를 따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 구간에서 또 다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10분 정도 임도를 따르다가 오른편 능선으로 접어들어야 하는데도 들머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산악회 리본이라도 보인다면 모험(冒險)이라도 해보겠지만, 오늘 같은 오지(奧地) 산에서는 모험은 금물(禁物)이다. 자칫 커다란 화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능선을 못 찾고 임도를 따르면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만 한다. 거기다가 임도가 아래로 고도(高度)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능선으로 올라붙기 위해서는 비탈길을 다시 올라가야 하는 고생을 치러야만 한다. 대신 좋은 점도 있다. 왼편으로 조망(眺望)이 트이면서 눈요기를 시켜주기 때문이다. 발아래에 424번 지방도가 꿈틀대고 있고, 그 옆에는 제법 튼실한 농경지(農耕地)들이 마치 조롱박처럼 매달려 있다.

 

 

 

차량까지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든든하던 임도가 언제부턴가 너덜길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얼마 안 있으면 그 너덜길마저도 사라져버리고, 산길은 비탈길로 변해버린다. 오늘 산행에서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힘든 구간이다. 허리를 곧추세우고서는 결코 오르지 못할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5분 정도 치고 오르면 다시 능선 위로 올라서게 된다. 능선에 오르고 나면 어려움은 끝난다. 능선을 가득 메운 잡목(雜木)들로 인해 길이 비록 거칠지만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오르막길 끝에 행산이 위치하기 때문이다. 군의산에서 행산까지는 1시간20분 정도가 걸렸다.

 

 

 

행산 정상은 강릉 KBS방송국의 송출 안테나가 차지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아마 봉우리 전체를 다 차지하기에는 조금 미안했던가 보다. 행산 정상도 역시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군의산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새마포산악회에서 만든 정상표지판이 산불감시초소의 쇠기둥에 매달려 있다. 행산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동쪽 발아래에는 화암면 고을이 내려다보이고, 북쪽에는 고양산과 문래산이 우뚝하다. 화암고을을 병풍(屛風)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은 아마 광대산일 것이다. 남쪽에 보이는 산은 지억산과 서운산, 그리고 백이산이다. 사방에 첩첩(疊疊)이 쌓인 산들을 보면 과연 정선을 왜 산의 고장이라고 부르는지 실감이 난다.

 

 

 

화암면소재지 방향으로 내려가는 하산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산지점인 주차장은 화암동굴 바로 아래에 있고, 화암동굴은 괘도차가 오르내리는 맞은편 산에 있는 것이다. 행산에서 화암면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길가 곳곳에 붙잡기 딱 좋은 나무들이 있어서 의지하면서 내려설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산행날머리는 **화암동굴 집단시설지역 건너편의 주차장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농가 몇 채가 보이고, 그 뒤에 하암면 소재지가 내다보인다. 마을 앞으로 난 농로(農路)를 따라 왼편으로 진행하면 산행이 종료되는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행산에서 주차장까지는 서서히 걸어도 40분이면 족하다.

(**)화암동굴(강원도 기념물 제33호), '금과 대 자연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개발된 국내유일의 테마(Thema)형 동굴로서, 현재 2800㎡ 규모의 광장(廣場)과 360m의 탐방로가 개방되어 있다. 개방된 구간 전체(10,803m)를 다 돌아볼 경우에는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이곳은 해방 전까지 금을 캐던 천포광산(鑛山)이었다. 채광(採鑛)을 위해 굴진(掘進)을 하던 중에 천연종유동굴이 발견되면서, 그 신비로움이 세상에 알려졌다고 한다.

 

 

사자산(獅子山, 1,160m)

 

산행일 : ‘13. 5. 17(금)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과 횡성군 안흥면의 경계

산행코스 : 법흥사→절골→허공다리폭포→능선안부→사자2봉→사자산→연화봉→법흥사(산행시간 : 4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월산악회

 

특징 : 사자산은 산세(山勢) 자체만 보아서는 다른 산에 비해 뛰어난 점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자산보다는 바로 근처에 있는 백덕산을 더 즐겨 찾는 편이다. 그러나 사자산을 법흥사와 연관을 시킬 때에는 또 얘기가 달라진다.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을 품고 있는 법흥사의 뒷산이며, 적멸보궁 안에다 모시지 못하고 있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이 산 어디엔가 모셔져 있다 해서 신성(神聖)시 여기기 때문이다.

* 법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사찰로서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며,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의 한 곳으로서 대표적인 불교성지이다. 신라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그리고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등에 사리를 봉안한 후, 마지막으로 이 절을 창건하여 진신사리를 봉안하였으며, 사찰이름을 흥녕사(興寧寺)라 하였다. 신라 말에 절중(折中)이 중창하여 선문구산(禪門九山) 중 사자산문(獅子山門)의 중심도량으로 삼았다. 당시 헌강왕은 이 절을 중사성(中使省)에 예속시켜 사찰을 돌보게 하였다고 한다. 그 뒤 불에 타서 명맥만 이어오다 1902년에 비구니 대원각(大圓覺)이 몽감(夢感)에 의하여 중건하고 법흥사로 개칭하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 성지(聖地) 중의 하나인 점을 감안할 때 보유하고 있는 문화재는 빈약하다. 한국 5대 적멸보궁에 속하는 법흥사 적멸보궁, 진신사리를 봉안했다는 부도(강원유형문화재 73), 당나라에서 사리를 넣어 사자 등에 싣고 왔다는 석분(石墳:강원유형문화재 109)이 있다. 이밖에 영월 징효국사부도(강원유형문화재 72), 영월 흥녕사 징효대사탑비(보물 612), 흥녕선원지(興寧禪院址:강원기념물 6) 등이 있다.

 

 

산행들머리는 법흥사 주차장

중앙고속도로 신림 I.C에서 내려와 88번 지방도를 타고 영월방면으로 들어가면 주천면소재지(面所在地)에 이르게 된다. 면소재지인 주천리를 막 벗어나자마자 만나게 되는 삼거리(맞은편 코너에 ‘다하누 꽁깍지가든점’이 보임)에서 좌회전하여 주천강(江)을 건너면 이번에는 수주면 소재지이다. 수주면사무소 앞 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면소재지인 무릉리를 통과하고 나면 이번에는 주천강의 지류(支流)인 법흥천(川)을 만나게 된다. 일단 다리를 건넌 후에 법흥천을 따라 상류로 쭉 올라가면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 산행들머리인 법흥사 주차장이다.

 

 

 

산행은 법흥사 원음루(圓音樓) 앞에 있는 주차장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오늘은 ‘사월 초파일’, 그러니까 불교(佛敎)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이다. 웬만한 절들도 오늘은 사람들로 넘치는 법인데, 이곳 법흥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시는 적멸보궁(寂滅寶宮)까지 있으니 사람들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도로는 이미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일주문(一柱門)을 지나자마자 버스의 움직임이 둔해지더니만 얼마 안가서 차는 꼼짝 않고 멈춰버린다. 이곳에서 법흥사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 그나마 이곳까지라도 올라온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산행을 시작한다. 주차장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법흥사의 대문 역할을 하는 원음루가 보인다. 그러나 사자산으로 가려면 주차장을 그냥 지나쳐야 한다. 주차장 끄트머리 등산로 초입에 ‘하이원 평화캠프장’이 보이니 참조하면 될 것이다. 휑하다 싶을 정도로 널따란 주차장을 지나는 길에 보면 왼편에 소나무 숲이 보인다. 잠깐의 눈요깃거리로 충분할 정도로 기이하게 생긴 소나무들이 즐비하니 한번쯤 고개를 돌려볼 일이다. 이곳부터 시작된 소나무 숲은 절골을 따라 사자산까지 계속해서 이어진다. 법흥사의 오랜 연륜(年輪)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이 수백 년 된 거송(巨松)들이 사자산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것이다.

 

 

 

산행을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편에 연화봉이 또렷하게 나타난다. 소나무들과 바위 절벽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눈앞에 한 폭의 수묵화(水墨畵)를 그려내고 있다.

 

 

주차장에서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오른편으로 어렴풋이 오솔길이 나타난다. 그러나 입구에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니 출입을 금(禁)한다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출입을 금하거나 말거나 이곳을 들머리로 삼는 사람들도 있으나, 연화봉에서 산을 내려와 본 결과에 의하면 들머리는 이곳에서 50m쯤 더 올라간 지점에 있다. 그러나 들머리를 찾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오른편 보이는 오솔길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들머리에 산악회의 리본 등 어떠한 표시(表示)도 없기 때문에 주의하지 않을 경우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참고로 사자산에는 정상표지석은 물론 이정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근처의 백덕산이나 구봉대산의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는 것에 비하며 일부러 방치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사자산에서 만난 등산객의 말을 빌 것 같으면, 법흥사에서 일부러 제거한 것이라고 한다. 스님들의 수도처인 법흥사의 뒷산이다 보니 등산객들로 인해 스님들의 정진이 방해 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연화봉 들머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절골계곡과 함께 나란히 이어진다. 산길의 반대편에 바위 절벽(絶壁)을 낀 계곡은 다른 소문난 계곡들에 비해 웅장하지도 그렇다고 빼어나지도 않지만, 눈요깃감으로는 충분하다 싶을 정도의 기이한 풍경(風景)들을 심심찮게 보여주고 있다. 절골은 골이 깊지 않은 탓인지 흐르는 물도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나 산을 내려와 흘린 땀을 씻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양(量)은 되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주변은 점점 더 원시(原始)의 숲으로 변해간다. 사람들의 통행이 흔하지 않은 탓인지 산길도 점점 희미해진다. 왔다갔다 계곡을 가로지르면서 산행을 이어가다보면, 나무 숲 사이로 폭포(瀑布) 하나가 나타난다. 허공다리폭포인데 물길을 길게 떨어뜨리고 있는 모습이 신비로운 감을 주고 있다. ‘연화봉 갈림길’에서 40분이 조금 더 걸리는 지점이다. 허공다리폭포는 높이가 약 20미터 정도인데, 옛날 인근사람들이 안흥장을 보러 다닐 때 저곳에 걸려있던 허공다리를 건너 다녔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허공다리폭포는 규모만 놓고 볼 것 같으면 다른 유명한 폭포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수량(水量)이 적을뿐더러 바닥에까지 떨어지는 동안 몇 번에 걸쳐 방향을 꺾기 때문에 왜소(矮小)하다는 느낌이 든다. 산길은 폭포(瀑布)의 맞은편 산사면(山 斜面)의 끝자락에서 방향을 크게 튼 후, 폭포의 위를 지나 능선으로 붙게 된다. 폭포가 가장 잘 바라보이는 지점은 폭포의 맞은편 산사면이니 사진촬영을 하는 사람들은 참고할 일이다.

 

 

 

 

 

폭포를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으로 가면 사자2봉을 거치지 않고 사자산으로 곧장 가게 되므로 이곳에서는 왼편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왼편으로 접어들어 10분 정도 오르면 ‘전만이 모듬(산막을 이르는 심마니들의 은어)’이다. 작은 돌탑 몇 개가 보이는 ‘전만이 모듬’은 여러 겹으로 돌담이 쌓여 있다. 이곳은 KBS에서 방영된 ‘전설의 고향’에서 전만이라는 선비와 구렁이 여인사이에 얽힌 애잔한 사랑으로 소개되어 세상에 알려진 곳이다. 담 안에 보이는 돌탑들은 조선조 말에 전만이라는 선비가 쌓았다고 한다.

 

 

 

 

‘전만이 모듬’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오늘 산행 중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경사(傾斜)가 너무 가파르다보니 한꺼번에 고도(高度)를 높이지 못하고, 끝내는 갈지(之)자를 만들고서야 서서히 고도를 높여간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힘든 오르막길은 길기까지 하다. 능선의 끝에 하늘이 보이건만, 능선에 올라보면 또 다른 가파른 능선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다. 주변 경관(景觀)도 특이한 것이 없고 조망(眺望)도 일절 트이지 않기 때문에, 그저 땅만 바라보면서 걷다보면 30분 후에는 주능선 위에 올라서게 된다.

 

 

 

주능선에 올라서면 산길은 갑자기 순해진다. 온통 산죽(山竹)으로 뒤덮인 능선을 따라 10분 조금 넘게 걸으면 오른편에 거대한 바위가 나타난다. 사자바위(사암봉)이다. 사자바위는 법흥사 방향이 수십 길의 바위절벽(絶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봉우리이다. 조금만 고생하면 바위 위로 오를 수가 있고, 전망 또한 뛰어나다는 사전정보가 있었지만 그냥 지나친다. 집사람과 함께 하는 산행에서는 모험보다는 안전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다.

 

 

 

사자바위를 왼편으로 우회(迂廻)하면 곧이어 사자산 2봉이다. 정상은 산봉우리라기보다는 차라리 능선 상에 뽈록하게 솟아오른 한 지점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누군가가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板)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고맙기는 한데 ‘사자2봉’이 아니라 ‘사재2봉’이라고 적혀 있는 것이 눈살을 찌부리게 만든다. 법흥사의 뒷산으로 더 알려진 산이 사자산이고, 또한 지도에도 사자산으로 등재(登載)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사자2봉’으로 적는 것이 옳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자산은 연화봉의 석굴(石窟)에 많이 있었다는 꿀과, 먹을 수 있는 흙인 전단포, 그리고 칠기의 도장 재료인 옻나무와 산삼 등 네 가지 재보(財寶)가 많이 나기 때문에 일명 사재산(四財山)이라고 불리었다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는 표지판은 공통으로 사용되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자2봉은 정상어림이 잡목(雜木)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조망(眺望)은 별로다. 다만 법흥사 방향의 나뭇가지 위로 법흥리 너머의 산들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을 따름이다.

 

 

 

사자2봉을 지나서 조금만 더 걸으면 오른편에 바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위전망대(1089봉인지 모르겠다)인데 아름드리 노송(老松)까지 함께하는 운치(韻致) 있는 전망대이다. 법흥사 방향으로 수십 길 수직절벽(垂直絶壁)을 형성하고 있는 전망바위 위로 오르면 먼저 사자산의 정상이 한눈에 들어오고 그 뒤에 버티고 있는 백덕산이 너무나 장쾌하다. 물론 발아래에는 절골과 법흥사가 아스라하게 펼쳐지고, 오른편에는 구봉대산이 버티고 있다. 또한 멀리로는 치악산의 주능선까지 조망(眺望)된다.

 

 

 

전망바위를 지나면서 능선은 가파르게 떨어진다. 그 떨어지는 구간은 바윗길의 연속이다. 능선을 온통 거대한 바위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산길이 바위를 넘는 것은 아니다. 산길은 오른편이나 왼편으로 바위들을 우회하면서 아래로 향한다. 사자산으로 가는 능선의 특징은 오른편은 바위절벽, 그리고 왼편은 바위는 아니지만 경사가 가파른 사면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산길이 바위를 피해 우회할 경우에는 왼편으로 도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산길은 대부분 오른편으로 돌고 있다. 아무래도 흙으로 이루어진 비탈보다는 바위의 크랙(crack)을 잡고 내려가는 것이 더 안전했던 모양이다.

 

 

 

 

가파른 바윗길이 내리막이 끝나면 산길은 다시 흙길로 변하면서 오르막길로 변한다. 그러나 그 오르막길은 경사(傾斜)가 거의 없이 완만(緩慢)하게 이어진다. 고도를 높여가되 급할 것 없이 조금씩 높여간다는 얘기이다. 걷는 게 편하다보니 자연스레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능선에는 단풍취가 천지다. 그러나 집사람이 눈길 한번 안주고 내닫는 것을 보면, 단풍취 정도로는 집사람의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능선에는 단풍취 외에는 다른 산나물은 눈에 띄지 않는다. 능선이 습기가 많은 음지(陰地)에다 참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산나물이 군락(群落)을 이룰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지만 그 흔한 참취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2봉을 출발한지 50분 가까이 되면 드디어 사자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사자산 정상도 2봉과 마찬가지로 봉우리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밋밋하게 흐르던 능선이 한순간 뽈록하게 솟아오른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사자산 정상에도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아까 2봉에서 보았던 나무로 만든 정상표시판이 나무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사재산 1봉’이라고 쓰인 정상표시판이 자꾸 눈에 거슬리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지 모르겠다. 그렇게도 눈에 띄지 않던 취가 정상어림에서는 눈에 띈다. 그것도 취들 가운데서도 최고로 쳐주는 곰취이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곰취에다 삼겹살을 싸먹는 호사(豪奢)를 누릴 수가 있었다. 물론 반주로 소주를 곁들이는 것은 결코 빠뜨렸을 리가 없다. 참고로 사자산이라는 이름은 산세(山勢)가 사자의 허리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잡목(雜木)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정상은 전혀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연화봉 방향으로 20m 정도만 나아가면 뽈록하게 솟은 바위봉우리 하나가 나오는데 이곳이 뛰어난 전망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바위 위로 올라서면 정 중앙인 법흥리 방향으로는 연화봉 능선이 늘어서 있고, 오른편에 보이는 능선은 화채봉과 삿갓봉, 그 뒤에 버티고 있는 것은 아마 치악산 자락일 것이다. 그리고 연화봉의 왼편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봉우리는 신선바위봉이 틀림없다.

 

 

 

사자산 정상에서 연화봉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곳 정상에서 길이 네 갈래(당재방향/ 관음사 방향/ 연화봉 방향/ 사자2봉 방향)로 나뉘기 때문에 방향을 잡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이정표가 없는데다 네 곳 모두 산악회의 리본들이 매달려있어 방향을 잡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화봉은 예외이다. 조금 전에 올랐던 전망대에서 법흥리가 내려다보이기 때문이다. 법흥사 방향으로 늘어선 능선만 따라가면 어렵지 않게 연화봉에 이를 수가 있다.

 

 

 

연화봉으로 내려가는 능선은 가파르게 시작된다. 능선의 숲은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탓인지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이 참나무로 이루어진 숲에는 오래 묵은 참나무들 외에도 어른 둘이서 둘러서야 겨우 서로의 팔이 닿을 정도로 굵은 소나무들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띈다. 몇 년 전에 발견되었다는 '원주사자황장산금표(原州獅子黃腸山禁標)'가 생각나는 소나무들이다. 저렇게 굵고 곧기에 궁궐(宮闕)의 재목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연화봉 능선은 의외로 길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꽤 오랫동안 계속된다. 그러다가 내리막이 싫증날 즈음이면 짧게 오르막길을 만들었다가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사자산을 출발해서 45분 정도 가파른 내리막길과 씨름하다보면 소나무에 둘러싸인 바위봉우리 하나가 나타난다. 연화봉이려니 하고 증명사진까지 찍었으나 짐작이 잘못 되었음을 알게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능선을 조금만 더 내려가면 진짜 연화봉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연화봉도 역시 조금 전의 봉우리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에게 둘러싸인 바위봉우리 형태인 것이다. 다만 이곳의 바위 위에는 돌탑이 얹히어 있는 것이 다르다. 등산객들이 쌓아 놓은 모양인데, 이 돌탑이 정상표지석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연화봉의 법흥사 방향은 수직에 가까운 암벽(巖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암릉임에도 불구하고 조망(眺望)은 트이지 않는다. 주변을 가득 메운 노송(老松)들이 시야(視野)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행날머리는 법흥사주차장

연화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다. 그 가파른 능선에 바위들까지 곳곳에 버티고 있기 때문에, 좌우로 바위를 우회(迂廻)하거나, 어떤 때는 아예 바위를 타고 넘으면서 내려설 수밖에 없다. 당연히 안전에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거기다 바위가 아닌 지점은 흙과 돌이 섞여 있어 까딱하면 돌이 굴러 떨어지기까지 한다. 쉽지 않은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30분 정도 후에는 산행을 시작하면서 지나갔던 절골 옆의 임도에 이르게 된다.

 

 

 

산행을 끝내고 법흥사로 들어선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라는 ‘법흥사 적멸보궁’을 보기 위해서이다. 법흥사 투어는 주차장 위에 있는 원음루(圓音樓) 아래를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원음루는 이층으로 된 누각으로 위층은 북을 매달아 놓았고, 아래층은 금강문(金剛門)이라는 현판이 매달려 있다. 그런데 법흥사의 금강문은 좀 특이하다. 사찰의 대문 역할을 하고 있는 금강문은 인왕문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인왕상(仁王像)이라고 불리는 두 명의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흥사의 금강문에는 금강역사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한마디로 법흥사(法興寺)는 어쩐지 정돈(整頓)되지 않은 느낌이다. 보통의 사찰들은 대웅전 등 주불전(主佛殿)을 중앙에 놓고, 다른 전각들은 주불전의 앞 좌우로 대칭(對稱)을 이루도록 배치하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이곳 법흥사는 사찰(寺刹)을 구성하고 있는 전각(殿閣)들이 일정한 배열이 없이 중구난방으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휑하고 어수선한 것이 영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이다.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라는 선입견(先入見)을 갖고 찾아온 법흥사의 첫 인상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길 왼편에는 수령이 200년이 넘는 밤나무가 비스듬히 산비탈을 의지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아래에 보이는 것은 징효대사 보인탑비와 부도(浮屠)이다. 징효대사는 신라 말 구산선문 중 사자산파를 창시한 절감도윤 스님의 제자로 흥녕사에서 선문을 크게 일으킨 분이라고 한다.

 

 

 

적멸보궁은 이곳에서도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한다. 소나무 숲 아래로 경사(傾斜)가 심하지 않은 시멘트길이 이어진다. 바닥의 시멘트가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양(兩)쪽으로 펼쳐지는 잘생긴 소나무들이 그 못마땅함을 일거에 해소시켜 버린다. 법흥사의 소나무들은 한마디로 잘 생겼다.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되는 소나무들은 이리 굽고 저리 휘는 게 보통인데, 이곳의 소나무들은 곧게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올랐다. 태백산맥의 동쪽에서나 만나볼 수 있음직한 멋진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산림전문가들도 이곳의 솔숲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형질(形質)을 보유한 솔숲의 하나로 친다고 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몇 년 전에 인근 신촌마을에서 도로공사를 하는 중에 '원주사자황장산금표'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는 이곳이 궁궐을 짓는데 사용하는 질 좋은 황장목(黃腸木)의 생산지였음을 알려주는 증거이다. 조선 왕실에서 보호했던 황장목이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소나무 숲이 끝나면 약수터가 나오고, 감로수로 목을 축인 후 돌계단을 밟고 오르면 파란색 기와를 머리에 인 적멸보궁(寂滅寶宮)이 나타난다. 그리고 적멸보궁의 지붕 위로 뾰쪽한 봉우리 하나가 머리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봉안(奉安)되어 있다는 연화봉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진신사리가 어디에 묻혀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적멸보궁의 안에는 부처님이 없다.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부처님으로 여기기 때문에 따로 안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적멸보궁 좌측 뒤에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토굴(土窟)이 있다. 토굴은 낮은 언덕으로부터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용하여 흙으로 위를 덮었고, 봉토를 올리기 위하여 토굴 주변에 석축(石築)을 올렸다. 적멸보궁 뒤에는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하였다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3호인 영월 법흥사 부도가 있다. 그리고 좌측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넣고 사자의 등에 싣고 왔다는 석함(石函)이 남아 있다고 한다.

 

 

비래암산(飛來巖山, 688.9m)

 

산행일 : ‘13. 3. 30(토)

소재지 :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산행코스 : 상만산동(상서면 구운리)→만산(976m)→비래암산→하만산동(산행시간 : 2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고원산악회

 

특징 : 비래암산(688.9m)은 만산(976m)에 비해 턱없이 낮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래암산을 온 김에 만산까지 연계산행을 하지, 만산 하나만을 보고 찾아오는 등산객들은 없다고 봐야할 것이다. 비록 만산 옆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바위봉우리이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경관은 주봉(主峰)보다 비래암산이 한 수 위라는 것을 의미한다. 비래암산은 온통 흙으로 이루어진 산꼭대기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얹혀있는 형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원래부터 산에 있던 바위가 아니고 다른 곳에서 날라 왔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이름도 ‘날라 온 바위’라고 하여 비래암(飛來巖)이라 불렀다. 비래암 주위의 산세(山勢)가 뛰어나기 때문에 한번쯤 찾아볼만한 산이지만 산행코스가 짧은 게 흠이라면 흠이다.

 

산행들머리는 하만산동(상서면 구운리)

춘천에서 5번 국도를 타고 화천을 경유하여 상서면 방향으로 가다가 구운교(橋)를 지나자마자 만나게 되는 신대사거리(상서면 신대리)에서 좌회전, 3Km쯤 진행하면 사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직진(서쪽방향)하여 만산령을 향해 10Km쯤 더 들어가면 산행이 시작되는 상만산동이다.

 

 

 

산행기점은 상만산동이다. 상만산동이라고 해서 마을 단위(單位)를 연상한다면 큰 오산이다. 기껏 해봐야 아담한 전원주택 한 채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전원주택으로 건너가는 다리 못미처에서 오른편으로 난 임도(林道)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이곳은 일부러 찾아오기에는 쉽지 않은 심심산골의 오지(奧地), 혹시라도 근처에 볼거리가 있을라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구경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왼편에 보이는 전원주택이 바로 그 구경거리이다. ‘만산령 쉼터’라는 문패(門牌)를 달고 있는데 주인부부가 얼마나 정성들여 가꾸었던지 선뜻 들어서기가 망설여질 정도이다. 혹시라도 입장료(入場料)를 내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가지각색의 장승들과 솟대들 그리고 자그만 돌탑들이 집 주위를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것이 마치 동화 속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쉬러 이곳에 정착했는데 막상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주인부부의 넋두리를 무시하고라도 한번쯤은 들러보고 싶은 곳이다. ‘산에 오는 사람들이 산나물과 약초들을 씨가 마를 정도로 싹쓸이를 하는 바람에 주민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는 주인부부의 하소연에 공감하며 산행을 시작한다.

 

 

 

 

 

임도는 차량이 지나다녀도 될 정도로 넓다. 그러나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의 폭은 턱없이 좁다. 임도의 나머지 공간을 온통 잡목(雜木)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하긴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올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등산객들이라면 혹시 모르겠지만, 산이 알려지지 않는 탓에 그 또한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아래로 난 임도를 따라 10분 정도 진행하면,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해지면서 길이 끊겨버린다. 임도를 온통 잡목(雜木)들이 차지해버린 탓에 길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근처에서 선답자의 표시(산악회 리본)를 찾아보는 것이 우선이련만, 선두는 무작정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서 버린 모양이다. 나 혼자 개인행동을 하는 것 보다는 일행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능선으로 붙는다.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서면서부터 고난(苦難)의 행군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일절 없는 능선은, 잡목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발걸음을 옮기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이다. 거기다가 경사(傾斜)까지 가파르니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고난의 오름길에서 30분 정도 힘겨운 투쟁을 하다보면 다른 지능선과 만나게 되면서,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그러나 안심하기는 아직 이르다. 아직은 주등산로와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능선은 온통 참나무 일색, 사람들의 발걸음이 없는 오지(奧地)의 숲임에도 불구하고 나무들의 수령(樹齡)이 대부분 10년 내외인 것이 의외이다. 물론 수십 년은 족히 묵은 듯한 고목(古木)들도 심심찮게 보이지만 그리 많지는 않다.

 

 

 

지능선에 올라서서 15분 정도 걸으면 군인들이 만들어 놓은 듯한 참호를 만나게 된다. 갑자기 등산로가 뚜렷해지는 것이 아무래도 만산령에서 올라오는 주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인 모양이다. 이곳에서 5분 정도만 더 걸으면 드디어 만산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10분이 지났다.

 

 

만산의 정상은 서너 평 남짓한 좁다란 분지(盆地), 정상의 한가운데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정상표지석이 지키고 있다. 정상에 서면 동북쪽으로 시원스레 시야(視野)가 트인다. 비록 가스가 자욱한지만 전면에 있는 대성산이 또렷하고, 그 주위를 둘러싼 복계산과 복주산, 대암산 등 헌걸찬 산릉(山稜)들이 희미하게나마 바라보인다. 날씨가 맑을 때에는 저 멀리 북방한계선 너머 북녘 땅에 있는 산들까지도 조망(眺望)된다고 하지만 오늘은 마음속으로만 그려볼 따름이다. 그러나 서쪽방향에 있는 백적산은 나무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만산 정상에서 비래암산으로 가려면 올라왔던 길로 10m쯤 돌아 나왔다가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갈림길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지 않으니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만산의 바위봉우리를 우회(迂廻)하고 나면, 산길은 갑자기 경사(傾斜)가 가파른 비탈길로 변한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길임에도 불구하고, 안전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구간이니 안전에 각별히 유의해야할 것이다.

 

 

이곳 화천군은 북방한계선이 코앞이다. 따라서 산의 곳곳에는 아직도 군인들이 사용하던 시설물들이 널려있다. 전에는 민간인의 출입을 제한하던 곳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20분 정도 내려서면 안부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서부터 비래암산까지는 완만(緩慢)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고저(高低)의 차이가 거의 없는 능선을 20분 조금 못되게 오르내리다보면 거대한 바위가 진행방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바위를 피해 오른편으로 우회(迂廻)하여 비탈길을 5분 정도 오르면 비래암산 정상이다. 만산에서 비래암산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50분이면 충분하다.

 

 

 

어렵사리 정상에 올라서면 의외의 상황에 놀라게 된다. 이곳이 과연 높이 60m나 되는 바위 위인가가 의심되는 흙으로 이루어진 평평한 분지(盆地)인 것이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휘둘러봐도 신선(神仙)들이 목욕을 즐겼다는 웅덩이는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구렁이도 눈에 띌 리가 없다. 정상에는 정상표지석이 눈에 띄지 않는다. 단지 ‘비례바위 정상’이라고 쓰인 팻말과 이정표만 세워져 있을 따름이다. 아무래도 이곳 행정당국(行政當局)에서는 비래바위산을 독립된 산으로 보지 않는 모양이다. 이정표나 산행안내판 등 행정당국에서 설치한 시설물 모두 산이라는 이름 대신에 ‘비래바위’라는 바위 이름만 표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온통 흙으로 이루어진 정상의 서쪽 귀퉁이에 독불장군인양 거대한 바위 하나가 보인다. 암봉이라는 이름값이라도 하려는 모양이다. 서쪽이 아찔한 바위벼랑으로 이루어진 바위 위에 올라서면 건너편 백적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수십년 묵은 소나무들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개중에는 바위들과 잘 어울리며 정상을 한결 업그레이드(upgrade) 시키는 것들도 보인다.

 

 

 

 

만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끄트머리가 만산 정상이다.

 

 

정상에서의 하산은 이정표(등산로입구 775m/ 화천산약초마을 2,780m/ 만산 2,100m)가 가리키는 등산로 입구 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바위벼랑 사이로 길게 늘어진 로프를 붙잡고 5분 내려가면, 등산로는 이번에는 산 사면(山 斜面)의 중간을 자르면서 이어진다. 이 구간은 바위로 이루어졌지만 그다지 위험하지 않으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바위 사이로 편안하게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바위구간은 10분 정도 걸으면 멋진 바위봉우리 하나가 진행방향에 보인다. 냉큼 왼편에 보이는 바위 벼랑을 타고 오른다. 비록 길은 나 있지 않지만 전면에 보이는 바위봉우리가 선명하게 보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벼랑위로 올라서자마자 바위봉우리가 눈앞에 멋지게 펼쳐진다. 날카롭게 치솟은 수직의 바위봉우리와 벼랑의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노송(老松)들이 잘 어우러지면서 한 폭의 잘 그린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highlight)이다.

 

 

 

 

바위봉우리를 오른편으로 우회(迂廻)하여 내려가면 이정표(등산로 입구 470m/ 비례바위 305m)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바위지대는 끝을 맺는다. ‘바위 이름이 이상하네요.’ 길가의 이정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아볼 정도로 집사람도 이젠 산행에 이력(履歷)이 붙었나 보다. 그녀의 말마따나 이정표는 비래바위를 비례바위로 잘못 적어 놓았다. 이정표를 제작한 업체에서 잘못 적은 것까지야 별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행정당국에서 조금만 더 주의 깊게 검수를 했더라면 잘못된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바위지대가 끝나면 등산로는 흙길로 변하면서 경사(傾斜)가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들어 낸다. 길가에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은 것은 그 가파름의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안전로프를 붙잡고 10분 남짓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상만산동으로 올라가는 도로를 만나게 된다.

 

 

 

 

산행날머리는 하만산동

도로에서 산행이 종료되는 하만산동으로 가려면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오른편은 상만산동으로 올라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만산계곡을 따라 나있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산행이 종료되는 하만산동이다.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이곳을 산행 들머리로 삼는다. 이곳에서 1.5Km가량 오르면 758봉에서 살짝 내려앉은 주능선의 안부에 올라서게 되고, 능선을 따라 비래바위에 올랐다가 만산으로 진행하던지, 아니면 아까 우리가 내려온 길로 내려오는 것이다. 하만산동 날머리에는 산행안내도와 ‘비래바위 설명판’이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비래암산에서 하만산동까지는 40분이면 충분하다.

 

 

 

 

 

산행날머리의 오른편에 보이는 언덕에서 바라본 비래바위 전경이다. 비래바위의 한 가운데는 연못 같이 패이고 그곳에 항상 맑은 물이 고여 있어서, 신선(神仙)들이 내려와 목욕을 즐겼다는 전설(傳說)이 있다. 하긴 바위의 크기가 무려 100m 길이에 높이가 60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니 전설 하나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신선들이 내려와 노는 것을 보고 부러워하던 마을사람들이 하루는 바위에 올랐다고 한다. 사람들이 호기심을 이겨내지 못했었나 보다. 그 때 갑자기 벼락이 치더니 억수 같은 비를 퍼부으면서 절구통보다 더 굵은 지네가 나타나 사람들을 해쳤다고 한다. 지네 대신 구렁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아무튼 부정한 사람들이 올라서는 안 되는 신성(神聖)한 장소로 여겨졌었다고 한다. 요즘은 많은 산악인들이 이곳에서 시산제(始山祭)를 지내고 있고, 고원산악회도 이곳에서 시산제를 지내기 위해 이 산을 찾았다. 아직까지도 그 신성(神聖)스러움을 믿고 있기 때문이리라. 참고로 비래암은 화천9경의 하나이다. 화천9경에는 파로호(1경), 딴산(2경), 비수구미(3경), 평화의 댐(4경), 용화산(5경), 비래바위(6경), 용담계곡(7경), 화악산(8경), 광덕산(9경) 등이 있다.

 

 

 

오늘도 집사람의 부지런함이 돋보인 하루였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오면서 채취한 달래의 양이 제법 된 것이다. 덕분에 다음 날 우리 집 밥상에는 봄내음이 가득했다. 분위기를 만들어낼 줄 아는 집사람은 작년 봄에 채취한 취나물도 한 접시 올려놓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연화산((蓮花山, 1,172.1m) - 대조봉(大祖峰 1,135.5m·)

 

산행일 : ‘13. 3. 9(토)

소재지 :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산행코스 : 태백여성회관→약수터→투구봉→연화산→송이재→대조봉→위령탑(산행시간 : 4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기분 좋은 산행

 

특징 : 깊은 산속에 들어앉다보니 집을 지을 땅이 넉넉하지 못했던 태백시는 황지천(川) 골짜기를 따라 기다랗게 도시가 만들어져 있다. 그 황지천의 동쪽 둑 역할을 하고 있는 산이 바로 연화산과 대조봉이다. 물론 서쪽은 함백산과 태백산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태백산이나 함백산 등 인근의 유명산에 가려있었으나, 최근 들어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태백시에서 이 산을 중심으로 명품 둘레길을 만든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산 자체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내세울 것이 없으나,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 등 주변 산군(山群)들에 대한 조망(眺望)이 뛰어나다.

 

 

산행들머리는 태백시 여성회관

38번 국도를 이용해서 태백시까지 온 다음, ‘황지교 사거리(태백시 황지동)’에서 35번 국도로 옮겨 장성동 방향으로 달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문곡동에 이르게 된다. 문곡역(驛) 앞의 소도천과 황지천이 합류하는 곳에서 왼편의 황지천을 건너면 태백시 여성회관이다. 다리 건너 들머리에 상장초등학교가 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여성회관 앞 산행안내도 : 여성회관⟷정상 2.4Km, 정상⟷송이재 2.2Km)

 

 

 

 

여성회관 담장을 따라 시작되는 산길로 접어들면 테니스장 뒤에서 산자락과 만나게 된다. 산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김해 김씨’의 무덤을 지나면 곧바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르막길에 설치된 통나무계단은, 오른편에 쇠파이프로 난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잡고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계단이 끝나면 작은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 등산로는 왼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며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능선 위 이정표 : 연화산 정상 2.2Km/ 여성회관 0.2Km).

 

 

 

 

능선을 오르다 산의 사면(斜面)을 가로지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뫼오름 샘터’(이정표 : 정상 1.9Km/ 여성회관 0.5Km)’에 이르게 된다. 샘터는 지붕을 씌워 등산객들이 비를 피하며 물을 마실 있도록 해 놓았고, 샘터 주변에는 나무 벤치에다 운동기구까지 구비해 놓아 쉼터를 겸한 체육공원으로 조성했다. 그런데 역기의 생김새가 조금 특이하다. 역기의 추(錘)를 탄광(炭鑛)에서 사용하던 광차(鑛車)의 바퀴를 활용한 것이다. 탄광도시 다운 신선한 발상이다.

 

 

 

샘터를 지나면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위로 향한다. 비록 계곡이지만 물기 한 점 없는 것을 보면 장마철에나 물이 흐르는 개울인 모양이다. 중간에 태백시에서 조성한 둘레길(이정표 : 정상 1.8Km/ 연화산 전망대 1.6Km/ 연화산 유원지 1.9Km/ 여성회관 0.6Km)을 가로지른 후, 다시 산길로 접어들어 잘 자란 잣나무 숲을 통과하면 곧이어 주능선 위(이정표 : 정상 1.5Km/ 여성회관 0,9Km)로 올라서게 된다. 등산로는 이곳에서 또 다시 둘레길과 만난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가까이 지났다. 태백시가 조성한 연화산의 둘레길은 ‘고원 700 산소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둘레길은 총 16Km로서 대산아파트와 대림아파트 뒤편 연화산 쉼터에서 시작해 치유의 숲, 체험의 숲, 오름뫼, 연화산 유원지, 검둥골, 송이재를 거쳐 연화산 쉼터로 돌아오도록 되어있다. 해발 680m에서 900m사이의 고도(高度)를 유지함으로서 건강을 겸한 조깅과 가족단위 산책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능선안부에서 투구봉까지가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왔다갔다 갈지(之)자를 만들며 경사(傾斜)를 누그러뜨리기도 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길가에 로프를 매달아 놓아 오르는 사람들이 붙잡고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30분 조금 못되게 치고 오르면 투구봉이다. 산등성이에 툭 튀어나온 바위전망대인 투구봉은 한마디로 조망(眺望)이 뛰어나다. 발아래에는 태백시가지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는 태백산과 함백산, 금대봉과 대덕산 등 백두대간의 헌걸찬 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다. 남쪽에는 저 멀리 달바위봉까지 눈에 들어온다. 투구봉은 봉우리에 비녀를 닮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비녀봉이라고도 불린다.

 

 

투구봉에서 바라본 연화산

 

 

투구봉에서 다음 봉우리인 무인산불감시탑이 있는 봉우리까지는 금방이다. 봉우리에 오르면 산불감시탑 앞에 작은 나무기둥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나무기둥에는 ‘잠봉(簪峰)’이라고 적혀있고, 기둥의 상단에는 못처럼 생긴 쇠파이프가 박혀있다. ‘비녀 잠(簪)’를 썼으니 비녀봉인 모양이고 위에 꽂혀있는 쇠파이프는 비녀를 의미하는 모양이다. 내가 알기로는 투구봉의 다른 이름이 비녀봉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아스럽다.

 

 

 

잠봉에서 진행이 난감해진다. 능선의 길을 잔뜩 쌓인 눈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별수 없이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억지로 길을 만들면서 산행을 이어간다. 당연히 산행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다. 눈 쌓인 능선을 우회(迂廻)해서 맞은 편 바위봉우리 위에 오르면 다시 한 번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물동이바위라고 불리는 봉우리로서 바위에 올라서면 일망무제(一望無題)가 따로 없다. 남쪽과 서쪽의 조망(眺望)이 막힘없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발아래 태백시가지의 고층아파트들은 마치 성냥갑을 닮았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로들은 마치 실핏줄을 연상시킨다. 태백시를 감싸고 있는 함백산과 금대봉, 은대봉, 대덕산이 거미줄처럼 이어지고, 남서쪽에는 태백산의 헌걸차게 솟아 있다.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름답다고 소문난 백병산을 비롯해 두타산과 청옥산 등 고산 준봉들이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물동이바위에서 연화산 정상은 금방이다. 두세 평이나 됨직한 좁다란 정상에는 삼각점(장성24/1995재설)과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주변에는 통나무를 이용해 벤치를 만들어 놓았다. 연화산 정상도 조망(眺望)이 뛰어나다. 서쪽에는 태백산에서 함백산을 지나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동쪽에는 낙동정맥의 유령산이 코앞이다. 그리고 남쪽에는 청옥산과 달바위봉이 하늘 아래에다 병풍(屛風)을 두르고 있다. 연화산 정상은 옥녀봉(玉女峯)이라고도 불린다. 먼 옛날 홍수로 인해 천지가 온통 물에 잠겼을 때, 이곳 연화산 정상만은 온전했다고 한다. 이때 옥녀와 유령산(우보산) 갈미봉의 갈미(삿갓의 강원도 사투리)를 쓴 남자가 이곳에서 홍수를 피했었고, 그 둘은 물이 빠지자 결혼해서 세상에 자손(子孫)을 퍼뜨렸다고 한다. 그래서 연화산의 서쪽 기슭에는 옥녀가 머리를 풀고 엎드려 있다는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 명당이 있다고 전해진다. 투구봉에서 연화산 정상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린다.

 

 

 

 

정상에서 송이재로 내려가려면 아까 올라왔던 길의 반대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내려서자마자 앞을 가로막는 암벽(巖壁)을 왼편으로 우회(迂廻)하고 나면, 산길은 아래를 향해 곧으면서도 가파르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가뜩이나 가파른데 눈까지 두텁게 쌓여있어서 내려서기가 만만찮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산길을 따라 길게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기 때문이다.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산길은 경사(傾斜)를 누그러뜨리기 시작한다. 대림․대산아파트 갈림길을 지나, 얼마간 더 진행하면 널찍한 임도(林道)에 다다른다(이정표 : 송이재 0.2Km/ 대산아파트 1.0Km/ 연화산 유원지 6.3Km/ 연화산 정상 2.0Km). 이어서 임도를 건너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보잘 것 없는 봉우리이기에 그냥 지나치면, 산길은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서 송이재가 저만큼에 보이는 임도 위에 내려서게 만든다. 정상에서 송이재까지는 40분 정도가 흘렀다.

 

 

 

 

‘송이재’는 태백에서 통리로 넘어가는 38번 도로상에 있는 야트막한 고갯마루이다. ‘송이재’에는 연화산 방향에 큼지막한 표지석이 서있고, 대조봉으로 가는 길은 표지석에서 통리방향으로 50m쯤 떨어진 지점의 반대편 언덕으로 열린다. 송이재에 대조봉 등산안내도가 세워져있으니 참조하면 산행에 도움이 될 것이다.

 

 

송이재의 맞은편 언덕은 공동묘지(共同墓地)이다. 등산로 이정표는 오른편으로 우회(迂廻)하라고 되어있지만 무작정 공동묘지로 들어서고 본다. 첫 번째로 올라야할 봉우리가 공동묘지 바로 뒤에 보이기 때문이다. 비록 길은 보이지 않지만 별 어려움 없이 봉우리 위로 오를 수 있다. 봉우리 위에서 아까 이정표가 제시했던 등산로와 만난 후, 잘 닦인 등산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면 이번에는 황지동(태백시)에서 올라오는 임도(林道)와 만나게 된다.(이정표 : 대조봉 2,155m/ 바람불이 500m/ 송이재 500m)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50m쯤 진행하다, 다시 왼편 능선으로 접어든다. 산은 펑퍼짐한 지형(地形)으로 완만(緩慢)한 산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길가에는 아름다리 잣나무와 낙엽송들이 번갈아가며 숲을 만들어낸다. 길의 흔적도 뚜렷할뿐더러 이정표까지 심심찮게 나타나기 때문에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다. 모처럼 여유를 부려볼 수 있는 구간이다.(이 구간의 중간쯤에 있는 봉우리 위 이정표 : 대조봉 1,505m/ 송이재 1,150m)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걷는 것도 잠시, 또 다시 임도를 만나게 되면서 산행은 고역(苦役)으로 변해버린다. 임도 건너편 능선이 만만찮은 것이다. 온통 잡목(雜木)으로 우거진 급경사(急傾斜)지대에, 가시넝쿨까지 뒤엉켜 있어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들 정도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 간벌목(間伐木)까지 마구 버려 놓아 애를 먹인다. 아무래도 여름철에는 이 코스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겨울철인데도 이렇게 통행이 힘들 정도이니, 만일 여름철에 잡목과 가시넝쿨이 우거져버리기라도 할 것 같으면, 아예 길이 보이지도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고단한 오르막길을 20분 정도 치고 오르면 드디어 날등에 올라서게 되고, 이어지는 산길은 등산로도 뚜렷해지고 능선의 경사(傾斜)도 완만(緩慢)해 진다. 고도(高度)의 차가 거의 없는 작은 봉우리들 몇 개를 오르내리다보면 마지막 날등에 올라서게 된다. 대조봉이 바로 지척으로 올려다 보인다. 날등을 내려서면 곧바로 널따란 헬기장이 나온다.(헬기장 이정표 : 대조봉 330m/ 노인회관 2,100m, 위령탑 1,900m/ 송이재 2,330m)

 

 

 

헬기장을 출발해서 마지막 오르막길을 10분 남짓 오르면 드디어 대조봉 정상이다. 대조봉의 정상은 서너 평도 채 안될 정도로 좁은 분지(盆地)이다. 주위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만든 공터의 한 중앙에 정상표시석과 삼각점(태백 424./2004 복구)이 있다. 대조봉 정상은 듣던 것과는 달리 조망(眺望)이 별로이다. 북에서 서쪽으로 금․은대봉과 함백산, 태백산, 그리고 동쪽에서 남쪽으로 낙동정맥의 산릉(山稜)이 펼쳐지지만 온전한 모습은 아니고 나뭇가지 사이로 어렴풋이 나타날 따름인 것이다. 송이재에서 대조봉 정상까지는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정상의 이정표 : 화전교 2,724m/ 송이재 2,655m, 노인회관 2,425m, 위령탑 2,225m)

 

 

 

하산은 다시 헬기장으로 돌아와 태백시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헬기장에서 태백시로 내려가는 길은 차량통행이 가능한 임도(林道)이다. 이 임도는 태백시가 우리나라 제일의 석탄생산지로 전성기(全盛期)를 누리던 시절 석탄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오가던 도로였다. 광산(鑛山)들이 문을 닫고 떠나버린 후에 임도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 흔적을 다 지워버릴 수는 없었던지, 아직까지도 임도 바닥에는 시커먼 석탄가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임도는 전망대의 구실을 하고 있다.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는데 태백시가지와 건너편 태백산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임도를 따라 5분쯤 내려오면 산길은 임도를 버리고 왼편 능선으로 향한다(이정표 : 위령탑 1,440m, 노인회관 1,640m/ 대조봉 785m). 능선은 휘파람이 절로 나는 길이다. 굴참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진달래나무가 골고루 섞여있는 부드러운 흙길을 따라 다시 10분 정도 더 걸으면 아까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나게 된다. 임도에 내려서면 갑자기 왼편에 자작나무 숲이 멋지게 펼쳐진다. 작년에 시베리아의 톰스크에서 보았던 자작나무 숲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이색적(異色的)이다.

 

 

 

 

임도를 100m쯤 따르던 산길은 또 다시 왼편 능선으로 접어든다. 이어서 산길은 뛰어난 전망대를 겸하고 있는 노인회관 갈림길(이정표 : 위령탑 800m/ 노인회관 1,000m/ 대조봉 1,425m)을 만나게 된다. 갈림길이 있는 벼랑에 서면, 발밑에 태백시가지가 널따랗게 펼쳐지고, 태백산과 함백산이 시가지 뒤를 병풍(屛風)처럼 둘러싸고 있다.

 

 

 

산행날머리는 산업전사위령탑(産業戰士慰靈塔)

갈림길에서 위령탑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이번에는 잣나무 군락(群落)이 맞는다. 바닥에는 솔가리가 수북이 쌓여있어 폭신폭신 한 것이 여간 고운 게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걷기가 무척 사납다. 경사(傾斜)가 급한 내리막길에 낙엽(落葉)이 두텁게 쌓이다보니 오히려 미끄러워져버린 것이다. 조심스럽게 잣나무 숲을 통과하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산업전사위령탑이다. 정상에서 위령탑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산업전사위령탑(産業戰士慰靈塔), 이 탑(塔)은 태백권내 광산에서 석탄생산을 하던 중 사고로 순직한 광산근로자들의 영령(英靈)을 봉안(奉安)하여 위로하기 위해 만든 탑으로, 태백시에서는 매년 1회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내가 이곳 태백(당시는 삼척시 황지읍)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1년 봄이었다. 공직자로서의 첫 보직이 이곳에 있던 중앙행정기관의 지방사무소였던 것이다. 태백에서의 생활은 낯설기만 했다. 관리자로서의 가슴 뿌듯함보다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 더 힘들었던 것이다. 내가 느낀 태백시는 온통 ‘검정 색’이었다. 당시에는 산은 물론이고 물빛도 검정색이었으며, 심지어는 공중을 떠도는 바람까지도 석탄가루를 잔뜩 머금었었다. 하긴 당시 강원도에서 전국 석탄 생산량의 70퍼센트를 생산하고 있었으니 보이는 것마다 석탄(石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이곳에서는 2만 명이 넘는 광부(鑛夫)들이 석탄을 캐고 있었고, 그들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캔 석탄이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음을 감안하여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위령탑을 세운 것이다. 참고로 탑의 광차(鑛車) 모양 기단 전면에는 갱내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의 모습이 동판에 조각되어 있고, 탑신(塔身)의 탑명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휘호하였다.

 

 

동대산(東臺山, 1,433m)-두로봉(頭盧峰, 1,421m)

 

산행일 : ‘13. 1. 12(토)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진부면과 대관령면, 그리고 강릉시 연곡면의 경계

산행코스 : 진부령 휴게소→동대산→차돌백이→신선목이→두로봉→두로령→북대사→상원사 주차장(산행시간 : 6시간40분)

함께한 산악회 : 산과 사람들

 

특징 : **오대산(五臺山)은 주봉인 비로봉(毘盧峰, 1563m)과 호령봉(虎嶺峰, 1566m) 상왕봉(上旺峰, 1491m), 그리고 동대산(東臺山, 1433m)과 두로봉(頭盧峰, 1421m) 등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산행은 그 중 2개 봉우리를 답사하는 코스로서, 전형적인 흙산(肉山)이기 때문에 특별한 볼거리는 제공하지 못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대산 하면 대개 비로봉이나 상왕봉만 머리에 떠올릴 뿐 두로봉과 동대산은 낯설어한다. 주봉인 비로봉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위치한 탓에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답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찾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 오대산(五臺山)은 불교(佛敎)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오대산의 '오(五)'라는 숫자는 석가모니, 관음보살, 문수보살, 대세지(미타)보살, 지장보살 등 이른바 오류성중(五類聖衆 : 本佛을 따라다니는 다섯 종류의 성자들)을 뜻하고, '오대(五臺)'란 다섯 부처들이 상주하며 설법하는 성지(聖地)로서, 동쪽의 만월대와 서쪽의 장령대, 남쪽의 기린대, 그리고 북쪽의 상삼대와 중앙의 지공대를 일컫는다. 자장율사는 각 대에 각각 암자(庵子)를 지었는데 그 이름이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그리고 중대 사자암이다. 이중 중대 사자암 바로 위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는데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산행들머리는 진부령 주차장

영동고속도로 진부 I.C에서 내려와 오대산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오대산 푯말을 보고 6번과 59번 병합(倂合) 국도(國道)를 따라가면 된다. 월정사로 들어가는 길과 나뉘는 병안삼거리(진부면 간평리)에서 계속해서 병합도로를 따라 우회전한 뒤, 고개를 따라 올라가면 산행이 시작되는 진고개 정상에 이르게 된다. 산행들머리인 진고개는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연곡면의 경계를 가르는 고갯마루이다.

 

 

 

‘진고개 휴게소’ 앞의 6번 국도(國道)를 건너, 맞은편(서쪽) 언덕으로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언덕위로 올라서서 잠시 걸으면 출입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리려고 설치한 목책(木柵) 문(門)이 보인다. 이어서 119의 구조표시 팻말인 ‘오대02-01’이 나타나는데, 이 팻말은 두로봉까지 일정한 간격이 없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언덕 위로 올라서니 젊은 남녀 한 쌍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걷기는커녕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로 거센 돌풍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잠잠해질 때를 이용해서 언덕구간을 빠져나가지만,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떨쳐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거센 바람이 차지는 않다. 불행(不幸)중 다행(多幸)인 것이다.

 

 

 

산으로 접어들면 들머리에서 잠깐 완만(緩慢)하게 이어지던 산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파르게 변해버린다. 하긴 1.7Km의 구간에서 고도(高度)를 500m 가까이 높이려면 별 수 없었을 것이다. 길이고 뭐고 산은 온통 눈으로 포위되어 있다. 다행이도 먼저 지나간 사람들이 러셀(russell)을 해 놓아서 걷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발걸음을 옮기는 데는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자칫 발이라도 헛디뎌 눈에 빠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허리까지 차버리는 눈으로 인해 혼자서는 결코 빠져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고개를 출발해서 얼추 한 시간 남짓 지나면 ‘동피골 삼거리(이정표 : 동대산 30m/ 동피골 주차장 2.7Km/ 진고개, 1.7Km)’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동피골 야영장’을 거쳐 상원사로 갈 수 있다. 설마 동피골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우리 일행 중 몇 사람이 동피골로 내려갔다고 한다. 아마도 상원사 근처에서 그들만의 볼거리를 찾았나 보다.

 

 

 

 

삼거리에서 3분 정도 더 걸으면 헬기장을 겸한 동대산 정상이다. 헬기장 치고도 너른 측에 속하는 정상은 산의 넓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자그마한 정상표지석이 지키고 있고, 그 뒤에 구조표시 팻말(오대02-05)이 세워져 있다. 날씨가 맑을 경우에는 이 곳 동대산에서 두로봉과 상왕봉을 거쳐 비로봉, 호령봉으로 이어지는 오대산의 산줄기가 장엄하게 펼쳐질 텐데 아쉽게도 오늘은 조망(眺望)을 일절 허락하지 않고 있다.

 

 

 

동대산에서 두로봉으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의 척추(脊椎)에 해당하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마룻금을 따라 걷게 된다. 능선은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통 원시림(原始林)으로 둘러싸여 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참나무들이 즐비하다. 정상을 내려와 10분 정도 걸으면 헬기장(구조 표시 : 오대02-06)이 나오고, 다시 20분 조금 넘게 걸으면 1300고지((이정표 : 두로봉 5.0km/ 동대산 1.7km)이다.

 

 

 

 

 

 

대간의 마룻금을 따라 걷다보면 사람의 손때를 전혀 타지 않은 태고(太古)의 신비를 만나게 된다. 오늘 걷는 능선은 낮게는 1200m에서 높게는 1400m의 높이를 유지한다. 능선은 자연스레 땅과 하늘의 경계(境界)를 나누고 있다. 능선의 오른편은 급경사(急傾斜)의 벼랑, 날씨가 맑으면 조망이 시원스럽겠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반면에 능선의 왼편은 밋밋한 경사(傾斜)의 고원(高原)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선에는 수백 년은 먹었음직한 나무들이 즐비한데, 그보다 더 오래 묵은 나무들은 고목(枯木)으로 쓰러져가고 있다. 어떤 고목은 사람의 몸뚱이를 집어넣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고, 또 어떤 고목들은 자신의 썩은 육신(肉身) 안에 다른 새 생명들을 키워낸다. 그야말로 자연의 섭리(攝理)를 보여주는 것이다.

 

 

 

 

 

동대산을 출발해서 1시간을 조금 넘기면 길가에 현재의 위치를 ‘차돌백이’라고 표시하고 있는 산행안내판이 하나 보인다.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차돌로 보이는 지형지물(地形地物)이 보이지를 않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금만 더 걸으면 그 궁금증을 저절로 풀리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안내판에서 3분쯤 걸으면 등산로 오른편에 제법 커다란 바위가 보이기 때문이다. ‘차돌백이’는 세 개의 하얀색 석영(石英)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석영(차돌)은 이산화규소(二酸化珪素, silicon dioxide)로 이루어진 규산염 광물(鑛物)로서 유리 광택을 내며, 무색의 순수한 것은 수정이라고도 부른다.(차돌백이 이정표 : 두로봉 4.0Km/ 동대산 2.7Km)

 

 

 

 

 

차돌백이에서 신선목이로 가는 길은 작은 봉우리를 여러 개 오르내리지만 진행하는데는 별로 부담이 없다. 봉우리와 안부 간의 고저(高低) 차이가 크지 않을뿐더러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속도(速度)를 낼 수는 없다. 갈수록 눈의 양이 많아지고, 러셀도 약하게 되어 있는 탓에 발걸음을 내딛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차돌백이’에서 30분 넘게 걸으면 헬기장에 이르게 되고, 또 다시 30분 가까이 눈길과 씨름하다보면 신선목이다. 신선목이는 평원(平原)을 연상케 할 정도로 넓고 평평한 안부로서 자작(사스레)나무들이 주위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정표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신선골을 거처 상원사로 가게 된다.

 

 

 

 

신선목이에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아마도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신선목이에서 40분 가까이 가파른 오르막과 씨름하다 보면 작은 헬기장에 이르게 되고, 다시 30분 조금 못되게 올라가면 삼거리(비로봉 5.7Km, 상원사 주차장 7.6Km/ 동대산 6.7Km)에 이르게 된다. 이곳 삼거리에서 왼편(남서쪽)으로 진행하면 두로령을 거쳐 상왕봉과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한강기맥이다. 한강기맥이 이곳에서 분기(分岐)해서 나가는 것이다. 참고로 두로봉 정상은 이곳에서 20m 정도 비켜나 있다.

**)백두대간은 이곳 두로봉에서 지맥(支脈) 하나를 만들어 낸다. 바로 한강기맥(漢江岐脈)이다. 한강기맥은 오대산 두로봉을 기점으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양평 양수리까지 약 162㎞의 산줄기다. 기맥은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에 속하지는 않지만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와 오대산, 계방산, 운무산, 용문산, 유명산 등 비교적 큰 산들을 거치기에 정맥(正脈)에 못지않다고 평가된다. 참고로 남한에는 금남(금강), 금북(호서), 땅끝, 영산(영산북), 진양, 팔공, 한강, 한북(오두), 호미(형남) 등 9개의 기맥(岐脈)이 있다.

 

 

 

 

 

 

두로봉 정상은 동대산과 마찬가지로 널따란 헬기장을 겸하고 있다. 정상석도 역시 넓이에 어울리지 않게 왜소(矮小)하기 짝이 없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상왕봉과 비로봉, 그리고 호령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장쾌(壯快)하게 조망(眺望)된다고 하지만, 오늘은 아쉽게도 이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동대산에서 두로봉까지는 3시간30분(점심시간 20분 포함)이 걸렸다.

 

 

 

두로봉 삼거리에서 서쪽의 북대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갑자기 산행 속도가 더뎌진다. 쌓인 눈의 양(量)도 많아졌을 뿐더러 러셀까지 거의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먹은 대로 걸을 수가 없어서 가뜩이나 짜증이 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등산로 주변의 풍경(風景)을 감상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는 것이다. 등산로 주변에 주목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어떤 것은 속이 텅 비어있어 어른들도 통째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누군가 주목을 보고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고 했는데, 주목들은 저렇게 양(兩) 천년(千年)의 경계를 힘들게 버텨내는가 보다. 그러나 이곳의 주목군락은 그 크기나 생김새가 태백산이나 함백산에 비해 약간 뒤떨어진다. 주목 군락(群落)의 사이사이에는 자작나무(사스레)들이 무리를 지어 늘어서 있다.

 

 

 

 

두로봉을 출발해서 거의 한 시간이 다 되어서야 두로령에 이를 수 있다. 그만큼 눈 때문에 진행속도가 더뎠다는 의미이다. 커다란 ‘백두대간 기념비’와 무인산불감시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로령은 평창군 진부면의 옛사람들이 홍천군 내면의 창촌장을 보러 다닐 때 넘나들던 고갯마루이다.(두로령 이정표 : 상왕봉 1.9Km, 비로봉 4.1Km/ 상원사 주차장 6.4Km/ 내면분소 10.1Km/ 두로봉 1.6Km)

 

 

 

 

두로령에서 **북대사까지의 1.4Km는 자동차가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널따란 임도(林道)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길도 걷기에 힘들기는 매 한가지이다. 임도에도 역시 수북하게 눈이 쌓여 있어서, 러셀을 해 놓은 부분만 밟고 진행해야 되기 때문이다. 두로령을 출발한지 30분 가까이 지나면 북대사에 이르게 된다.(북대사 이정표 : 북대사 20m/ 상원사 주차장 5.0Km/ 두로령 1.4Km)

**) 북대 미륵암(北臺 彌勒庵), 상원사 입구에서 두로령으로 이어지는 임도(林道)를 따라 북쪽으로 4km 가량 올라간 상왕봉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시대 중기(新羅時代 中期)에 백련사(白蓮社)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그 뒤의 역사(歷史)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수반으로 한 오백 나한(羅漢)을 모시고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왕사를 지낸 나옹화상이 수도하던 곳으로 오대(五臺)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전망이 좋다.

 

 

 

북대사에서 상원사로 내려오는 하산(下山) 길은 차량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다(사실 북대사에 참배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승용차를 이용한다). 굽이굽이 돌아 내려오는 임도가 지겨운 사람들은 북대사 갈림길에서 상원사 방향으로 약400m정도에 있는 오른편 오솔길로 접어들면 된다. 오솔길로 내려서는 입구는 금(禁)줄이 쳐져있고, 그 앞에 국립공원관리소에서 세워놓은 ‘출입금지(出入禁止)’ 경고판이 세워져 있지만 20분을 절약할 수 있는 이 길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상원사 주차장

오솔길은 비탈진 사면(斜面)을 뚫고 이어진다. 그러다가 잠시 능선길이 보이더니, 이내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경사(傾斜)가 보통 급한 것이 아닌데도, 계단이나 로프 등 안전시설(安全施設)은 일체 찾아볼 수 없다. 하긴 통행(通行)을 금지(禁止)하고 있는 길에 안전시설을 설치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경사를 이기지 못한 길은 갈지(之)자로 또아리(똬리)를 틀면서 고도(高度)를 낮추어 간다. 비정규(非正規) 등산로에 들어서서 20분 정도를 급경사(急傾斜)와 싸우다보면, 아까 헤어졌던 임도와 또다시 만나게 된다. 도로(道路)를 따라 또다시 20분 조금 못되게 걸어(약 1.5km) 내려오면 산행이 종료되는 상원사 주차장이다. 참고로 이 오솔길은 겨울철에는 이용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경사(傾斜)가 너무 가팔라서 웬만한 안전장비도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상원사(上院寺), 월정사(月精寺)의 말사(末寺)로, 월정사와는 이웃하고 있다. 원래의 절은 724년(신라 성덕왕 23)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었던 자장(慈藏)이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종각(鐘閣)만 남아있고 다른 건물들은 8·15광복 후에 재건한 것이다. 보유 문화재(文化財)로는 동종(銅鐘 : 국보 36호), 목조문수동자좌상(木彫文殊童子坐像 : 국보221호), 목조문수동자좌상복장유물(木彫文殊童子坐像腹藏遺物 : 보물 793호) 등이 있다. 참고로 요 아래에 있는 월정사(月精寺)는 서기 634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慈藏)스님이 세운 절인데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다가 1964년 이후 탄허(呑虛) 스님 등에 의해 중건됐다고 알려졌다. 조선왕조실록 등 사서를 보관하는 사고(史庫)가 있었다.

 

 

 

제왕산(帝王山, 840.6m)

 

산행일 : ‘13. 1. 6()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평창군 도암면의 경계

산행코스 : 대관령휴게소()영동고속도로 준공비()능경봉 갈림길돌탑봉제왕산오봉산 갈림길상제민원하제민원대관령박물관 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곰바우산악회

 

특징 : 제왕산의 높이는 841, 산행이 시작되는 대관령의 높이가 800m가 넘으니 초보자들이나 노약자들이 오르기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전반적으로 큰 오르내림이 없는 완만(緩慢)한 능선산행이 이어지기 때문에 가족 트레킹 코스로 권할 만하다. 겨울철 적설량(積雪量)이 많기 때문에 인근의 선자령이나, 능경봉 등과 함께 겨울산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산행들머리는 대관령휴게소()

영동고속도로 횡계 I.C을 빠져나오면 T자형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횡계 읍내(邑內)쪽으로 우회전, 이어서 고속도로 밑을 지나자마자 좌회전하면 옛 영동고속도로로 올라타게 된다. 지금은 지방도로로 격하(格下)되었지만 구()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들이 많으니 어렵지 않게 옛 대관령휴게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산행 들머리는 대관령 남쪽의 구() 대관령 하행선 휴게소다. 휴게소 광장에 내려 동쪽을 보면 영동고속도로 준공기념비가 우뚝하다. 우선 기념비까지 긴 계단을 올라가면, 넓은 분지(盆地)의 한 가운데에 세워진 커다란 영동고속도로 완공 기념비(紀念碑)’가 맨 먼저 눈에 들어온다. 분지에서는 조망(眺望)이 시원스레 터진다. 강릉시가지와 동해바다가 널따랗게 펼쳐지고, 휴게소 광장은 커다란 풍력 발전기 돌아가고 있는 광경(光景)이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준공비에서 오른편으로 난 산길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 들머리에는 등산안내도와 이정표(제왕산 2.7Km, 대관령박물관 7.6Km/ 능경봉 정상 1.8Km/ 신재생에너지관 300m)가 서있다. 평탄한 길을 따라 걷는 초입(初入)은 무난하게 이어진다. 눈의 고장답게 많은 눈이 쌓여있지만 산행을 이어가는 데는 조금도 지장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닌 탓에, 발자국들이 모여서 눈 위에 길을 다져 놓았기 때문이다. 능경봉 갈림길이 있는 산불감시초소(이정표 : 제왕산 2.4Km/ 대관령 0.6Km)까지의 500m정도 되는 구간은 완만(緩慢)한 구릉(丘陵)을 따라 걷는 평지 코스이다.

 

 

 

산불감시초소 앞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능경봉으로 가게 되고, 제왕산으로 가려면 왼편의 임도(林道)를 따라 진행해야 한다. 왼편 임도의 초입에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으나, 문은 활짝 열려있다. 눈이 수북이 쌓여있어 불이 날 염려도 없으니 잘 다녀오라는 모양이다. 이 임도는 대관령의 동쪽에 있는 강릉수력발전소(江陵水力發電所)를 건설하기 위해 낸 길이라고 한다.

 

 

 

 

임도(林道)를 따라 100m쯤 더 걸으면 임도가 둘로(이정표 : 제왕산 2.0Km/ 대관령.0.7Km) 나뉘는데, 비교적 좁다고 생각되는 왼편 임도로 접어든다. 그 후 조금 더 진행하면 이번에도 왼편으로 오솔길이 열린다. 들머리에 리본이 여러 개 매달려 있으니 참조하면 될 것이다. 산길로 접어들어 눈길을 헤치며 나아가다보면, 이름 모를 봉우리 위에서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전망테크(이정표 : 제왕산 1.3Km/ 능경봉 입구 1.0Km)를 만나게 된다.

 

 

 

 

전망대(展望臺)에 올라서면 좌()에서 우()로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광활(廣闊)하게 펼쳐진다. 고루포기산과 능경봉, 그리고 선자령으로 연결된 능선이 하늘과 경계선을 그리며 굽이굽이 펼쳐지고, 특히 선자령 일대의 아름다운 설경(雪景)과 풍력 발전기가 도는 풍경은 가히 장관(壯觀)이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멀리 동해시와 쪽빛 동해 바다가 선경(仙境)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조망(眺望)산행이 제왕산만의 낭만산행인 것이다.

 

 

 

전망테크를 지나 산길을 내려가면 다시 임도를 만나게 되며, 임도를 따라 200m쯤 내려가면 왼편에 능선 길로 붙는 지점(이정표 : 제왕산 1.0Km/ 대관령 2.0Km)이 나온다. 능선으로 올라서는 길이 나무계단으로 만들어져 있으니 길을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나무계단을 올라선 후, 오르막길을 10분쯤 걸으면 돌탑의 옆에 작은 헬기장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대관령과 선자령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조금 더 올라가면 암봉 위에 올라서게 되고, 이곳에서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풍광(風光)이 더 뛰어나니 구태여 헬기장에서 시간을 소모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일망무제(一望無題), 한마디로 조망(眺望)이 거칠 것 없이 터진다. 멀리 선자령의 눈 덮인 백두대간(白頭大幹) 위에 풍력발전기가 돌아가고 있다. 이국적(異國的)인 풍경이 아름답게 조망(眺望)된다.

 

 

 

 

 

 

 

 

돌탑봉에서 조금 더 걷다보면 커다란 바위 하나가 갈 길을 떡하니 가로막고 있다. 바로 제왕 솟대바위이다. 솟대란 원래 마을 수호신(守護神)이나 경계(境界)의 상징으로 마을 입구에 세운 장대를 말한다. 보통은 그 끝에 나무로 만든 새를 올려놓는데, 아마 그 솟대를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나 보다.

 

대관령 남쪽의 높은 봉우리인 능경봉

 

 

제왕산의 능선을 걷다보면 백두대간 능선이 금방이라도 하늘을 향해 솟아오를 것처럼 꿈틀대는 광경(光景)이 눈에 들어온다. 능선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는 풍력발전기 모습도 이색적(異色的)이다.

 

 

돌탑봉에서 20여 분 더 진행하면 제왕산 정상 직전에서 아름드리 송림(松林) 지대를 만나게 된다. 자태가 빼어난 노송(老松)들의 숫자가 늘어난 만큼 사이사이에 보이는 고사목(枯死木)들 또한 개체수를 늘려간다. 고풍(古風)스런 고사목들이 소망탑을 온통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가끔 고사목을 만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여기 같이 고사목들이 즐비한 경우는 흔치 않다. 그것도 그 하나하나가 나름대로의 빼어난 자태를 자랑하고 있는 광경(光景)이라니... 죽어서도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마 왕성하게 생육(生育)하던 시절이 못내 안타까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제왕산 정상은 예상과 달리 흙으로 이루어진 5평 남짓한 좁다란 분지(盆地)이다. 조금 전에 지나온 바윗길이 무색할 정도로 의외인 것이다. 정상의 한 가운데에는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정상에 서면 절경의 동해안 풍경이 다시 눈에 들어오며, 오른쪽 등 뒤로는 고원(高原)을 이룬 대관령 북쪽의 이색적(異色的) 풍광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오늘은 계사(癸巳)년 들어 처음으로 산행을 하는 날이다. 이런 때에는 산신령에게 올 한해 무사산행을 빌어야 한다며 산악회 운영진에서 고사상을 차렸다.

 

 

 

정상에서 급하게 고도(高度)를 낮춘 산길은 잠깐 완만(緩慢)하게 이어지다가, 왼편에 시야(視野)가 툭 터지는 조망(眺望)터 하나를 만들어 놓는다. 나무의자까지 만들어 놓은 전망대에 서면, 하늘과 맞닿은 파란 동해(東海)가 끝없이 펼쳐진다. 금방이라도 파도가 흰 포말을 일으키며 이쪽으로 달려들 것만 같다. 또한, 영동 제일의 도시 강릉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펼쳐지고 있다.

 

 

 

전망대를 지나서 조금 더 진행하면 길이 왼편으로 급하게 꺾이면서 오래 묵은 소나무들이 길손을 맞이한다. 이곳에서부터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내리막길을 20분 정도 내려서면 다시 임도에 내려서게 되고, 임도를 가로질러 맞은편 능선(이정표 : 대관령박물관 3.8Km/ 제왕산 1.6Km)으로 내려서면 길은 더 한층 가팔라진다. 원래는 통나무 계단이 설치된 것 같으나, 수북이 쌓인 눈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미끄럼 방지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길가에 매어놓은 로프에 의지해서 내려선 후, 이번에는 평지와 다름없는 완만(緩慢)한 산길을 15분 정도 걸으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 오른편은 오봉산으로 가는 길이니, 대관령 옛길로 가려면 왼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오봉산 갈림길을 지나서도 길은 계속해서 완만(緩慢)하게 이어진다. 길가에는 꽤나 굵직하고, 자태(姿態)가 빼어난 금강송(金剛松)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일제(日帝)로부터 해방된 후에 일일이 솔씨를 뿌려 심고 가꾼 것이라고 하니, 대략 80살쯤 나이가 먹었겠다. 해방(解放) 당시만 해도 일본인들의 수탈로 인해 헐벗은 산이었다고 한다. 그들의 노고(勞苦) 덕분에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이곳은 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경력도 있고, 문화재 복원(復原)용 나무를 공급하기 위해 특별히 관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봉산 갈림길에서 내려서면 금방 계곡에 이르게 된다. 계곡가로 난 길을 따라 30분쯤 내려가면 대관령에서 흘러내려온 개울을 가로지르는 제왕교()를 건너게 되고, 이어 상제민원(이정표 : 대관령박물관 2.6Km, 하제민원 1.2Km/ 제왕산 2.8Km/ 주막터 0.3Km, 반정 3.34Km)에서 대관령 옛길과 만나게 된다. 영동과 영서를 잇는 험준한 대관령 옛길은 옛 강릉지방 사람들의 숱한 애환(哀歡)을 간직하고 있는 길이다. 그러나 지금은 슬픔보다는 기쁨을 더 많이 주고 있다. 주요 관광자원(觀光資源)으로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돌며 이어지는 산길과 맑은 계곡, 거기다가 아름드리 소나무와 울창한 원시림까지 있으니 이 보다 더 나은 트레킹(trekking)코스는 흔치 않을 것이다.

 

 

 

 

 

상제민원에서 하제민원까지 20분 정도 걸리는 옛길은 흙길이거나 아니면 바윗길이다. 그리고 옛길은 골짜기를 따라 나 있다. 그 골짜기는 수백 년 동안에 하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기 때문에 움푹 파인 것이 아닐까? 옛길이 영동과 영서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기에 하는 말이다. 아무튼 옛길과 함께 흐르는 계곡은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있다. 옛길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마음도 옛날로, 그러니까 어릴 적의 동심(童心)으로 되돌렸는지 냇가에서 노니는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해맑기 그지없다.

 

 

 

 

 

 

 

하제민원을 지나서 대관령박물관으로 넘어가는 길을 걷다보면 그리 높지 않은 고갯마루 위에서 작은 안내판 하나를 만나게 된다. 바로 이 고갯마루가 원울이 고개이고, 안내판에는 고개 이름에 얽힌 얘기를 적어 놓았다. 한양에서 700리길을 걸어 강릉부사로 부임하던 원님들이 강릉의 막바지 고개에 이르러 힘들어서 울었고. 임기(任期)를 마친 원님들이 강릉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을 뒤로하고 돌아가기가 섭섭해 다시 울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대관령 너머 평창의 횡계역과 강릉의 구산역을 잇는 옛길은 많은 얘기들을 담고 있다고 한다. 하긴 수백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며 수많은 애환을 쏟아 놓았을 터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음식점들이 즐비한 하제민원에서 산행이 마감되는 대관령박물관근처 주차장까지는 곳곳에 민박집과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관광지로 개발된 대관령 옛길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원울이고개를 지나서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산행이 종료되는 대관령박물관근처의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구봉산(九峰山, 441.3m) - 대룡산(大龍山, 899m)

 

산행일 : ‘12. 12. 15(토)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동면과 동내면, 그리고 홍천군 북방면의 경계

산행코스 : 구봉산전망대 휴게소구봉산428봉안부사거리명봉(643m)갑둔이고개헬기장대룡산고은리(산행시간 : 5시간1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구봉산과 춘천의 진산인 대룡산은 ‘호반(湖畔)의 도시’ 춘천을 동남부에서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들로. 춘천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그 이유는 시가지(市街地) 인근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利點)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전형적인 흙산이 걷기에 편할 뿐만 아니라, 능선을 걸을 때 한눈에 들어오는 춘천시가지의 조망(眺望)이 한껏 호쾌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좋은 점은, 다양한 등산 코스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체력(體力)과 시간 등을 고려해 적당한 코스를 오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산행들머리는 ‘구봉산 전망대휴게소(춘천시 동면 만천리 소재)

중앙고속도로 춘천 I.C에서 내려와 46번 국도를 타고 양구방면으로 달리다보면 채 10분이 안되어 산행이 시작되는 ‘구봉산 전망대휴게소’에 닿게 된다. ‘구봉산 전망대휴게소’는 춘천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서, 서울로 치면 남산과 같은 곳이다. 이곳도 남산과 마찬가지로 춘천의 청춘남녀들로부터 데이트코스로 사랑 받는 곳이라고 한다. 2층으로 된 하늘다리라서 불리는 전망대(展望臺)와 휴게소, 그리고 연인(戀人)들의 필수코스라는 카페 등 쉼터를 고루 갖추고 있다.

 

 

 

46번 국도를 건너면 곧바로 산행들머리이다. 입구에 ‘산불조심’ 안내판이 서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물론 춘천시민들이 자주 찾는 ‘근교 산’인지라 들머리에 이정표(구봉산 0.6Km, 명봉 4.4Km) 하나 안 보일 리가 없다.

 

 

들머리로 들어서자마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수월하게 오를 수 있도록 침목(枕木)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거기다 산길의 폭까지 제법 여유로우니 가쁜 숨만 조금 고른다면 큰 부담 없이 정상에 이를 수가 있다. 정상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가끔 참나무들이 섞여있지만 소나무들에 가려 섞여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소나무 숲속을 걷는 산행은 언제나 즐겁다.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소나무향을 맡노라면 마음은 자연스레 행복해지기만한데, 거기다가 건강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까지 듬뿍 들어있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는가. 산길 주변의 나무들이 하나같이 제멋대로 자랐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행복한 웰빙(well-being)산행에 나무의 생김새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산길 주변에는 가끔 군(軍)의 벙커(bunker)가 눈에 띈다. 이곳은 6·25 당시에 격전지(激戰地)로 유명했으며, 그 후로도 오랫동안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행 중 한분의 말에 의하면 부근에는 아직까지도 미확인 지뢰지역이 남아 있다고 한다. 뭔가 꺼림칙하지만 지정된 등산로만 따른다면 설마 불상사까지 생길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정상으로 오르다보면 반반하지만 별로 넓지는 않은 공터에 장의자가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장의자의 맞은편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명봉 3.8Km/ 감정리 1.5Km/ 구봉산전망대 0.6Km)에는 이곳이 구봉산의 정상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정표에 속아서는 안 된다. 진짜 정상은 공터에서 좌측(북쪽)으로 100m쯤 더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널따란 공터로 이루어진 구봉산 정상에는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이,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자그만 정상석 하나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정상에 서면 춘천시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봉의산을 중심으로 시가지와 의암호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멀리 아파트 뒤로 마적산이 선명하게 들어오고 그 오른쪽으로 오봉산과 부용산도 보인다. 과연 오봉산이 춘천 근교의 그 어느 산에서 보다 가장 자세히 시내를 볼 수 있었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춘천시가지의 반대편에는 오늘 가야할 대룡산이 뚜렷하다.

 

 

 

 

명봉으로 가려면 우선 아까 지나왔던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로 돌아내려와 한다. 삼거리에서 이정표가 지시하고 있는 명봉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명봉으로 가는 길 역시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소나무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아까보다는 참나무의 개체수가 많이 늘어 있다. 산길은 비교적 뚜렷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삼거리에서 내려서면 얼마 안 있어 공무원교육원 갈림길(이정표 : 명봉 3.0Km/ 공무원교육원 1.1Km/ 구봉산 0.8Km)과 만천리 갈림길(이정표 : 명봉 2.9, 순정마루 2.19Km/ 만천리 1.0Km/ 구봉산 1.0Km)이 나오고, 이어서 완만한 오르막길을 짧게 오르면 나무벤치가 있는 428봉(이정표 : 명봉 2.7Km, 대룡산 6.5Km/ 구봉산 1.1Km)이다. 428봉에서 산길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급하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멈추세요! 길을 잘못 들었네요.’ 앞서가던 선두그룹이 되돌아 올라오며 내지르는 소리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산길이 뚜렷하게 나 있는데도, 길 위에 쌓인 눈 때문에 무심코 직진해 버린 것이다.

 

 

 

 

 

428봉으로 다시 되돌아와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이 길도 역시 초반에는 급하게 고도를 낮춘다. 이어서 나타나는 완만(緩慢)한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점점 참나무들이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산길은 별다른 특징이 없는 능선이 계속되다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무렵쯤에야 능선 안부 사거리에 이르게 만든다.(이정표 : 명봉 1.5Km, 대룡산 5.3Km/ 구봉산 2.3Km/ 만천리 1.2Km/ 감정리 1.0Km)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가까이 지났다. 안부를 지나면 또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부담 없는 산길에서 콧노래라도 부르다보면 이번에는 이념의 현장을 만나게 된다. 한편에는 오로지 소나무들뿐이고, 다른 한편에는 참나무 일색이다. 어쩌다 남의 땅을 침범한 나무들이 보이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어찌 그런 못된 놈 하나 없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네 동화에도 청개구리라는 글이 보이는 것이다.

 

 

 

 

경사가 완만한 능선을 어느 정도 걷다보면 왼편에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군락지가 보이고, 조금 더 오르면 왼편으로 흐르는 널따란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산길 주변을 철망(鐵網)으로 막아 놓아 놓고, 통행을 제한하는 표지판 아래에 강원도산림개발연구원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산림 보호지역인 모양이다.

 

 

 

계속해서 진행하면 오른편이 시원스럽게 벌목되어 있고, 그 덕분에 춘천시가지와 봉의산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진행방향에는 명봉이 까마득하게 솟아 있다. 그리고 뒤에는 지나온 구봉산 능선이 오밀조밀하게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개활지(開豁地)를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왼편에 식목(植木)지역을 끼고 오른 후, 이번에는 로프가 매달린 가파른 오르막길을 길게 치고 오르면 오른편 비탈에 기대어 지어진 나무테크 전망대(展望臺)가 보인다. 순정마루라고 불리는 곳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남춘천쪽 마을들과 삼악산이 잘 조망(眺望)된다. 삼악산의 왼편에 보이는 산은 금병산일 것이다. 전망대 뒤편 산길 가에 보이는 순정마루 안내판은 ‘만천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세운 것인데, 춘천의 해와 달이 뜨는 밝은 봉우리 명봉의 순정마루(533봉)가 조망이 좋은 곳이니, 유명, 축령, 북배, 명지, 화악, 용화산과 춘천분지(盆地)를 잘 관찰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또한, 이 산 주변의 마을과 산을 설명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삶의 모습을 바라보고, 오늘이 기다리는 내일이 올 것이니까 이어지는 숲길에서 자신의 삶을 비춰보라고 권하고 있다.

 

 

 

 

순정마루를 지나 거두리 갈림길(이정표 : 명봉 0.6Km/ 거두리 1.6Km, 만천리 1.9Km/ 순정마루 0.06Km)을 지나 한번 더 가파르게 치고 오른 후에는 완만(緩慢)한 등산로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은 참나무들이 하늘을 뒤덮을 듯이 우거져 있다. 엉성하게 쌓아올린 돌탑이 있는 봉우리(이정표 : 명봉 0.2Km/ 순정마루 0.2Km)를 지나 어설픈 바윗길을 잠깐 치고 오르면 드디어 명봉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30분 가까이 되었다. 구봉산 정상에서 명봉 정상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가 걸린다.

 

 

 

구봉산과 마찬가지로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명봉의 정상에는 스테인리스stainless steel)로 만들어지 정상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그 옆을 정상표지판보다 더 큰 이정표가 지키고 있다. 명봉 정상은 의외로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다. 사방이 잡목(雜木)으로 둘러싸여 시야(視野)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명봉에서 대룡산으로 가다보면 간혹 보이는 바위마다 눈을 수북이 뒤집어쓰고 있는 돌탑들을 하나씩 올려놓고 있다. 특이한 점은, 완성된 것이 없이 하나 같이 미완성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명봉 바로 아래에서 왼편으로 느랏재로 가는 길이 나뉘고(이정표 : 대룡산 3.7Km, 거두리 2.4Km/ 느랏재 3.3Km/ 명봉 0.1Km), 이어서 약간 가파른 내리막길은 짧게 내려선 이후부터는 산길은 완만(緩慢)하게 이어진다. 다시 왼편에 낙엽송지대를 낀 순한 산길을 잠시 걸으면 갑둔이고개(이정표 : 대룡산 3.1Km/ 거두리 1.8Km/ 명봉 0.7Km, 느랏재 3.5Km, 구봉산 4.5Km)이다. 명봉과 대룡산의 경계인 갑둔이 고개는 옛날 도로가 없었을 때에 거두리 주민들이 상걸리로 넘어 다니던 고갯마루이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왼편으로 내려가면 상걸리로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갑둔이고개를 지나 왼편에 잣나무 군락(群落)을 끼고 잠깐 더 걸으면 다시 거두리 갈림길(이정표 : 대룡산 2.9Km/ 거두리 2.5Km/ 명봉 1.4Km)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곡선(曲線)으로 예쁘게 휘어진 침목(枕木)계단을 올라서서 얼마간 더 걸으면 길이 두 갈래(이정표 : 대룡산 2.7Km/ 명봉 1.5Km, 구봉산 3.2Km/ 대룡산 제2활공장)로 나뉜다. 오른편은 제2활공장을 거쳐 대룡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왼편으로 진행할 경우에는 주 능선을 따라 대룡산 정상으로 가게 된다.

 

 

 

왼편 주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너무 가파르지도, 그렇다고 만만할 정도로 완만(緩慢)하지도 않다. 능선을 따라 오르다보면 ‘후드득’하며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하늘이 맑기 때문에 비(雨)가 올리는 없는데,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떨어지고 있는 것일까? 조금만 유심히 바라보면 그 원인은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다. 나무위에 얼어있던 상고대가 따뜻한 기후 때문에 녹으면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떨어지고 있는 얼음덩어리들 중에서 일부는 혹여 머리에 부상을 입힐까 걱정이 될 정도로 굵은 것도 간혹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면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모든 나무들, 아니 온 산이 온통 얼음으로 덮여있다. 나뭇가지뿐만 아니라 나무줄기까지도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그 얼음들이 햇빛에 반짝이면 주변은 갑자기 ‘동화의 나라’로 변해버린다. 나무마다 영롱한 수정 구슬을 달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어찌 이곳을 감히 인간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다들 입을 다물 줄을 모른다. '오늘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복 받은 사람들이네요' 길을 가다가 만난 어느 등산객의 말마따나 모두들 복을 듬뿍 받았나보다. 그래서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것이고...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광경을 차곡차곡 가슴에 담다보면 어느덧 산길은 제1활공장 갈림(이정표 : 대룡산 1.5Km, 수리봉 7.0Km/ 명봉 2.7Km, 구봉산 4.4Km/ 제1활공장)이다.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잠시 후에 활공장에 이르게 된다. 활공장은 시야가 시원스럽게 뚫리는 곳이니 잠깐 걸음을 멈추고 조망을 즐겨보는 게 좋다. 왼편 대룡산 방향에는 녹두봉과 수리봉 능선이 이어지고 있고, 시원스럽게 뚫린 중앙고속도로 오른편에는 금병산이 우뚝하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춘천시가지가 펼쳐지고, 그 뒤에는 삼악산이 버티고 있다.

 

 

 

활공장에서 길게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이정표 : 대룡산 1.3Km, 수리봉 6.8Km/ 명봉 2.9Km, 구봉산 4.6Km/ 제1활공장/ 임도) 임도가 보이지만, 왼편 능선으로 올라선다. 계속해서 환상적인 경치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보면 여기저기서 후드득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거기다 간혹 ‘털썩’하며 무언가 큰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후드득’하는 소리는 나무위에 두텁게 매달린 얼음 수정들이 떨어지는 소리이고, ‘털썩’하는 소리는 얼음수정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져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이다. 그만큼 나뭇가지에 매달린 얼음 덩어리들의 크기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그 얼음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기라도 할 경우에는. 나뭇가지들에 매달린 얼음들은 찬란히 빛나는 보석들로 변해 버린다.

 

 

 

 

활공장을 내러 서서 대룡산까지는 이어지는 능선은 완만한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룡산을 0.9Km쯤 남겨놓은 고은리 갈림길 어림에서는 춘천에서 가장 높은 산답게 왼편에 협곡이 펼쳐지기도 하는데, 그 사이사이로 내다보이는 파란하늘이 나뭇가지에 얹힌 하얀 상고대와 어울리며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해 내고 있다.

 

 

 

 

대룡산으로 향하는 능선을 걷다가 오른편에 있는 KT송신탑을 지나면 드디어 대룡산 정상이다. 대룡산은 산의 생김새가 한 마리의 용이 드러누워 있는 형상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여매압산(女每狎山)이라고도 불렸다는데, 산세(山勢)가 부드럽고 여성스럽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4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명봉정상에서 이곳 대룡산 정상까지는 대략 1시간30분 정도가 걸린다.

 

 

대룡산 정상은 다른 산들에 비해 조금 특이하다. 20평 남짓한 분지(盆地) 위에다 나무테크로 단(壇)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다 정상표지석을 세워 놓은 것이다. 정상석 뒤 국기봉에는 태극기가 매달려있고(그래서 정상석 하단에 깃대봉이라고 적혀있나 보다), 그리고 전면(前面) 10m정도 떨어진 언덕에는 나무테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춘천시가지와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산군(山群)들이 한눈에 들어오련만, 아쉽게도 산하(山河)는 짙은 구름에 가려버렸다. 전망대 왼쪽에 설치된 지명(地名)이 적힌 전경사진으로나마 다소나마 위안을 삼으며, 삼악산과 계관산 그리고 북배산, 가덕산, 봉의산 등과 춘천댐, 의암호가 함께 어우러지는 매력적인 춘천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정상에서 고은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면 금방 임도(林道)에 닿게 된다. 산길은 임도에 내려서지 않고 왼편 능선으로 다시 올라서고 있지만 구태여 산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오른편에 보이는 널찍한 임도를 따라 내려가도 조금 후에는 산길과 다시 만나(이정표 : 고은리 2.9Km/ 정상 0.5Km)기 때문이다. 거리만 더 먼데다 볼거리까지 없는 산길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이다.

 

 

 

임도를 벗어나 고은리로 내려가는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면 길은 최악(最惡)으로 변해버린다. 길이 가파른데다가 절반쯤 녹은 눈으로 덮여있어서 무척 미끄럽기 때문이다. ‘어~’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뒤뚱거리기를 몇 번인가 하다가 드디어는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나뿐만이 아니다. 앞에 가는 집사람의 뒷모습도 가관이다. 스틱에다 아이젠까지 중무장을 했지만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어~엄마야!’ 드디어는 집사람도 더 이상은 버티지를 못하고 눈길에 드러눕고야 만다. 어제 내린 비에도 불구하고 산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있다. 겨우 발목을 덮을 정도이니 많은 양은 아니지만 걷는 데는 여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다. 따뜻한 기온으로 인해 눈이 녹아서, 질퍽거리는 눈길은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미끄럽기 때문이다. 문득 ‘세상만사 세옹지마(世上萬事 塞翁之馬)’라는 말이 떠오른다. 기온이 따뜻해서 산행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데, 그 따뜻한 기온이 눈을 녹여서 걷는 데 여간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산 길의 구경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등산로주변에서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하는 나무들이다. 참나무 일색이던 것이, 낙엽송으로 변하는 가 했더니만, 어느새 잣나무 군락(群落)로 변해있다. 그러다가 잣나무가 너무 많다 싶으면 산길은 어느새 제멋대로 생긴 소나무 숲 아래를 통과하고 있다.

 

 

 

대룡산 정상에서 40분 조금 넘게 내려오면 고은리까지 800미터가 남았음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보이면서 산길은 갑자기 여유로워진다. 경사(傾斜)의 가파름은 여전히 변함없지만, 길의 폭이 넓어져서 마음만이라도 여유로워진다는 얘기이다. 이정표에서 다시 100m쯤 더 내려오면 임도(林道)와 만나게 된다. 널따라면서도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한 임도에서 여유를 부리다보면 개울가에 이르게 되고, 이어서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아치(arch)형 다리를 건너면 산행이 종료되는 고은리 주차장이다. 대룡산 정상을 출발한지 1시간이 가까이 지났다. 내리막길이 미끄러운 탓에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이다.

 

 

 

삼악산 등선봉(三岳山 登仙峰, 632m)

 

산행일 : ‘12. 11. 10(토)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서면

산행코스 : 강촌교 입구 육교→450봉→삼악좌봉(570)→등선봉→616봉→주렴폭포→등선폭포 입구 식당가(산행시간 : 3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둘이서

 

특징 : 등선봉은 넓은 의미로는 삼악산에 속하지만 독자적인 산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독립된 봉우리로 보는 것이 옳을 듯 싶다. 그러나 그 거리가 비교적 짧기 때문에 웬만한 산꾼들이라면 삼악산과 연계해서 산행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등선봉의 바위능선은 삼악산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景觀)을 자랑하나, 암릉구간의 위험성으로 인해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춘천시에서 안전시설(安全施設)을 설치한 뒤로부터는 바위들과 소나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보기위해 찾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산행들머리는 강촌다리(橋)입구의 육교(陸橋)

서울에서는 46번 국도(國道 : 경춘가도)를 타고 달리다 춘천시 경계에 들어서면 곧이어 강촌삼거리가 나오고, 오른편에 강촌유원지(遊園地)로 들어가는 다리(강촌교)가 보인다. 이곳 삼거리에서 북한강의 반대편에 있는 능선으로 올라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는 경춘선전철(電鐵) 강촌역에서 내려 시내버스(50번, 춘천방향)를 이용하거나 걸어서 강촌삼거리까지 가면 된다.

 

 

 

육교(陸橋)를 건너면 도로변과 산 사이에 철조망이 쳐져있는 것이 보인다. 육교에서 내려서는 지점에서 반대방향으로 10m쯤 떨어진 지점의 철조망 사이로 난 길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들머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금방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겨울의 초입(初入)답게 날씨가 제법 쌀쌀한데도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산길이 너무 가파른 탓이다. 육교에서 바라봤을 때, 산이 너무 꼿꼿이 서있기에 예상은 했었지만, 오르막길은 생각보다 더 급경사(急傾斜)이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겠네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이렇게 경사(傾斜)가 가파른 흙길은 미끄럽기 때문에 내려갈 때가 더 힘든 법이다. 직선(直線)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던지 산길은 이리저리 갈지(之)자를 만들며 위를 향해 끝없이 이어진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40분 정도 오르면 지능선 위에 올라서게 된다. 처음으로 오른편에 조망(眺望)이 트이면서 북한강과 그 건너 강촌유원지가 발아래에 내려다보인다.

 

 

지능선에 올라서면 산길은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해진다. 그러나 대신 거칠어진다. 곳곳에 바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참나무 낙엽이 수북하게 깔린 흙길을 걷다보면, 얼마 되지 않아 거대한 바위벼랑이 능선의 한 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보인다. 길가의 이정표(등선봉 1.1Km/ 강촌 0.7Km)는 왼편으로 우회(迂廻)하라고 지시하고 있는데, 바위 방향에도 산악회 리본이 매달려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왼편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 어렵게 바위를 올라봐야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을뿐더러 바위의 모양까지도 볼품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바위 위를 넘어 뒤로 내려가는 길도 없기 때문에 올라갔던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 내려와야만 한다.

 

 

 

 

지능선으로 올라서서 20분 정도를 더 걸으면 드디어 바윗길이 시작된다. 능선의 왼편은 아찔할 정도로 높은 수직(垂直)의 벼랑으로 되어있고, 오른편은 경사(傾斜)가 60도(度)에 가까운 비탈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 등산로는 오른편 산비탈을 따라 나 있다. 능선 위로 바윗길이 희미하게 나타나지만 구태여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 길이 험한데다가 특별한 볼거리도 없기 때문이다. 비탈길을 이용하더라도 심심하면 능선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오기 때문에 일부러 능선 위로 올라가지 않아도 주변 경관(景觀)을 조망(眺望)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조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스릴(thrill)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은 능선의 꼭짓점을 연결하고 있는 암릉 위로 올라서면 된다. 암릉의 바위들은 절리(節理, joint)가 미세하기 때문에 홀드(hold)가 많아서 올라가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간혹 나타나는 높은 바위마다 곳곳에 균열이 나 있기 때문에, 균형(均衡) 감각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가 있다. 그러나 혹시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서슴없이 오른편 우회로(迂廻路)로 내려서야 함은 물론이다.

 

 

 

 

바위에 매달려 오르다보면 등산로 주변의 나무들이 바뀌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산행을 시작할 때 참나무 일색이던 것이, 어느 샌가 소나무들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덕분에 능선의 경관(景觀)은 한층 더 뛰어난 자태(姿態)를 자랑하게 된다. 뭐니 뭐니 해도 암릉은 소나무, 그것도 늙은 소나무(老松)와 어우러져야만 제 멋을 풍기기 때문이다.

 

 

 

바위능선에 붙으면 오른편 발아래에 북한강이 내려다보인다. 북한강을 따라 뻗어 있는 암릉에서 내다보는 북한강의 푸른 물줄기는 또 다른 매력이다. 이런 조망(眺望)이 등선봉산행의 매력을 한층 더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암릉의 각지고 날카로운 앳지(edge)와 그 너머로 보이는 북한강의 푸른 물결은 대조적이다. 그래서 한층 더 매력이 넘치게 되나보다.

 

 

 

크고 작은 암봉 몇 개를 넘으면 진행방향에 거대한 단애를 거느린 암봉 하나가 나타난다. 바로 570봉으로 삼악좌봉으로보 불리는 바위 봉우리 이다. 570봉의 남쪽 면을 이루고 있는 수직(垂直)의 암벽(巖壁)은 온통 소나무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때문에 한결 더 운치(韻致)가 있어 보인다.

 

 

 

다시 한 번 바윗길을 치고 오르면 570봉에 올라서게 된다. 570봉의 정상은 예상외로 흙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금 전에 지나왔던 암릉이 남쪽 방향으로 길게 뻗어있고, 동쪽에는 북한강과 그 너머의 강촌유원지가 잘 조망(眺望)된다.

 

 

 

570봉에서 흙길로 변한 능선은 잠깐 고도(高度)를 낮추었다가 다시 오르막길로 변한다. 이 오르막길은 순백(純白 : 바위가 온통 흰색을 띠고 있다)의 암릉길로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이다. 바위능선은 양쪽이 다 아찔한 벼랑으로 이우러져 있기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오르기를 꺼려했었다. 이 구간이 위험했기 때문에 아예 등선봉 산행 자체를 회피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지금은 암릉의 양쪽에 안전(安全)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아 웬만한 체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거뜬히 오를 수가 있게 되었다.

 

 

 

 

능선의 바윗길은 어느 곳 하나 전망대(展望臺)가 아닌 곳이 없다. 날카로운 앳지(edge) 끝에도 북한강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고, 밋밋한 능선들이 만들어내는 봉우리들 너머에도 어김없이 북한강은 흘러가고 있다. 단애(斷崖)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선 노송(老松)들과 어우러지며 마치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山水畵)를 연상시키고 있다.

 

 

 

암릉구간이 끝나면(이정표 : 등선봉 0.4Km/ 강촌 1.4Km) 다시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진다. 참나무와 소나무가 적당하게 어우러진 능선을 따라 10여분 정도 걷다가,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을 잠깐 치고 오르면 드디어 등선봉 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났다. 고작 1.8Km의 거리를 오르는데 2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그만큼 바윗길을 오르는 게 만만치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등선봉 정상은 10평 남짓한 흙으로 된 분지(盆地)로서 한가운데에 오석으로 만들어진 정상표지석이 지키고 있다. 정상은 참나무 등 잡목들이 공터를 둘러싸고 있어서 조망(眺望)은 별로이다.

 

 

 

▼ 등선봉 정상에서 급하게 떨어졌던 능선은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흙길로 변한다. 가끔가다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트이며 응봉과 화악산이 제법 뚜렷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내려서다 보면 건너편에 흙으로 이루어진 봉우리 하나가 보인다. 등선폭포로 내려가는 길과 나뉘는 갈림길인 616봉이다. 정상에서 616봉까지는 대략 20분 정도가 걸린다.

 

 

 

정상에서 내려서서 걷다보면 오래지 않아 산성(山城)의 흔적이 눈에 띈다. 자연석(自然石)을 이용해서 쌓은 산성은 능선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데, 어느 방향이 성의 안쪽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능선의 양면(兩面)이 모두 경사(傾斜)가 가파르기 때문에 군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空間) 확보가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산성은 곳곳에 반듯하게 새로 쌓은 곳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마 춘천시에서 복원(復原)을 해 놓은 모양이다. 이 산성은 옛날 춘천지방(신북면 발산리)에 웅거했던 맥국(貊國)에서 쌓은 성(城)으로 전해진다. 외부의 침략을 받은 맥국이 삼악산으로 숨어 들어와 흥국사 일대의 분지(盆地)에 궁궐(宮闕)을 짓고 적의 침입을 차단하기 위해 쌓은 산성이라고 한다.

* 삼악산성지(三岳山城址), 흥국사의 뒤편 고개인 북문재(北門嶺)에서 강촌방향으로 약 2.5㎞의 가파른 정상 능선(稜線)을 따라가며 축조(築造)되었다. 신라 경명왕(景明王) 때에 궁예(弓裔)가 철원에서 왕건에게 쫓겨와서 쌓았다는 설과 삼국시대 이전에 춘천지역에 있던 부족국가인 맥국(貊國)사람들이 쌓은 성이라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나, 확실한 역사적(歷史的)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616봉에 오르면 건너편에 삼악산이 보이는데, 마치 616봉과 마주 보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우뚝 솟아있다. 소나무가 별로 없는 삼악산은 온통 갈색으로 물들어 삭막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오른편에 보이는 의암호는 대조적으로 푸르게 빛나고 있다. 616봉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편에 보이는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등선폭포로 내려가게 된다. 능선 위로 난 길이 제법 또렷하지만, 등선폭포를 하산지점으로 삼았을지라도 이 코스로의 진행은 삼가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내려가면 길의 흔적도 희미해질 뿐만 아니라. 경사(傾斜)까지 가팔라지기 때문에, 까딱하면 부상을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616봉에서 청운봉으로 진행하다가 만나게 되는 갈림길에서 흥국사로 방향을 잡으면 쉽게 등선폭포에 이를 수 있다.

 

 

 

이 정도로 삼악산이 가까워질 즈음이면 정규 등산로를 벗어난지 이미 오래된 때이다. 616봉에서 청운봉으로 가는 산길을 찾으려면 세심한 주의(注意)가 요구된다. 봉우리 너머에 있는 산길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도(地圖)만 챙겨갔더라도 현재 위치의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세심하게 주위를 살펴봤을 것이고, 그럴 경우 어렵게나마 산길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배낭에 달랑 물 2병만 챙겨온 부실한 준비로 인해 길의 흔적이 뚜렷한 오른편 능선길로 진행해 버리고 만 것이다. 거기다가 ‘길이 틀린 것 같다’는 어느 등산객에게 이 길이 옳다고 큰소리까지 쳐 가면서 말이다. 글로나마 그분께 사죄를 드리고 싶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처음에는 아름답다는 표현을 들어도 좋을 만큼 뛰어난 경치를 보여준다. 길가에 줄지어 나타나는 아름드리 노송(老松)들은, 어느 것 하나 닮은꼴이 없을 정도로 제각기 독특한 생김새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후부터는 지옥(地獄)의 행군(行軍)이 요구된다. 바윗길은 무지막지하게 가파르고, 잔자갈이 가득한 흙길의 가파름은 아예 한술 더 뜨고 있다. 혹시라도 발을 잘못 디딜 경우, 큰 부상을 입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험난한 산길은 등선폭포 어림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고난(苦難)의 행군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만나면서 끝을 맺는다. 그러나 그냥 끝을 맺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아름다움을 안겨주면서 끝을 맺는다. 마치 내려오느라 고생했던 사람들에게 위안이라도 주려는 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빼어난 아름다움을 선물해 주고 있다. 내려서는 지점이 등선폭포 뒤쪽 들머리인 것이다. 삼악산은 뭐니 뭐니 해도 등선폭포(瀑布)를 빼 놓고는 할 말이 없다.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들머리와 날머리 중 한번은 꼭 등선폭포를 지나게 산행코스를 설계한다. 등선폭포를 빼 놓을 경우, 삼악산 산행의 의미가 반감되기 때문인 것이다.

 

 

 

 

U자형의 바위협곡으로 형성된 계곡에 들어서면 마치 외국(外國)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색다른 풍경(風景)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 협곡(峽谷)은 빙하시대에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철계단을 이용하지 않고는 바닥으로 내려설 수 없을 정도로 골이 깊은데, 낙차(落差)들이 만들어낸 주렴폭포, 비룡폭포, 승학폭포, 등선폭포 등 각양각색(各樣各色)의 폭포들이 쏟아내는 물줄기들이 시원스럽다.

 

 

 

등선폭포(登仙瀑布),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삼악산에는 크고 작은 폭포(瀑布)가 많은데, 그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협곡(峽谷) 속에 숨어있는 높이 10m의 등선폭포이다. 선녀와 나무꾼 전설(傳說)이 전하는 선녀탕과 절벽(絶壁)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기 때문에, 수도권 주말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名所)이다.

 

 

 

산행날머리는 등선폭포 입구 식당가

등선폭포를 마지막으로 폭포들이 보여주는 향연(饗宴)은 끝을 맺고, 계곡은 U자형 바위협곡의 본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 깎아지른 듯 양쪽이 패이면서 만들어낸 절벽(絶壁)은 하늘벽을 연상시킨다. 절벽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은 손바닥보다 작다. 협곡을 벗어나 매표소와 식당가를 통과하면 46번 국도이다.

 

 

 

♧ 오늘 산행은 산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언제나 사전준비(事前準備)가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산행이었다. 전날 저녁에 밀양의 천황산 산행이 취소되었다는 모 안내산악회의 연락을 받고서, ‘꿩 대신 닭’ 격으로 찾은 것이 삼악산이었다. 다른 산악회 몇 곳에 연락해 봤지만, 내가 안 가본 산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삼악산은 이미 세 번이나 올랐었으나 산행기(山行記)가 마땅찮았고, 거기다가 등선봉은 아예 올라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한 번 더 찾아보려고 벼르고 있었던 터라 별다른 고민 없이 삼악산을 고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선답자(先踏者)들의 기록을 훑어보는 일을 건너뛰게 되었고, 심지어는 산행지도(山行地圖)까지 챙기지 않은 채로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산이 나지막한데다가, 갈림길마다 이정표(里程標)가 잘 세워져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이었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막상 중요한 갈림길에는 이정표가 없었고, 그 덕분에 길을 잘못 들은 탓에 산행을 중간에서 마칠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는 내내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책망(責望)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야 없지 않겠는가.

 

봉화산((烽火山, 875m)

 

산행일 : ‘12. 10. 13(토)

소재지 : 경기도 양구군 남면

산행코스 : 석현리선착장(석현리 구 검문소)→삼포삼거리→봉화산→구암삼거리→국토정중앙삼거리→국토정중앙천문대(산행시간 : 5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대관령 보다 겨우 10m가 높을 정도로 나지막한 산, 봉화산이라는 이름은 정상에 있었던 봉화대(烽火臺)로 인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산 자체가 아름답거나 출중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국토(國土)의 정중앙(正中央)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 때문에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능선에서의 조망(眺望)도 다른 산들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편이다. 옆구리에 끼고 있는 소양호와 주변 산군(山群)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경관(景觀)이 가히 일품이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석현리 선착장

춘천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양구방향으로 가다가 공리교차로(交叉路 : 양구읍 공리)에서 내려와 우회전하여 군도(郡道 : 소양호로)를 따라 들어가면 소양호(湖)의 호안(湖岸)에서 산행들머리인 석현리를 만나게 된다.

 

 

 

 

 

짧은 아치(arch)형 나무다리를 건너면서 산행은 시작된다. 다리 앞에 산행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니 들머리를 혼동할 일은 없을 것이다.(들머리 이정표 : 국토 정중앙점 9.76km/ 봉화산정상 5.66km/ 구암리 8.2km). 다리를 건넌 등산로는 왼편으로 둥그렇게 휘면서 이어진다.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얼핏 소양호(湖)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숲이 열리면서 소양호가 얼굴을 내미는데, 수면(水面)위에 물고기 양식장 같은 시설이 보인다. 저 시설의 오른편에 석현리선착장이 있다.

* 석현리선착장(船着場)은 춘천으로 일보러 나갔던 양구사람들이 소양호의 뱃길을 타고 양구로 돌아오던 선착장이다. 정기 운항(運航)을 하던 쾌룡호를 탈 경우, 소양댐에서 이곳까지 30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통팔달(四通八達)로 도로가 뚫린 요즘에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어서 운항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소양호를 끼고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이어지던 등산로가 왼편으로 급하게 휘면서 능선으로 향하고 있다. 더 이상 사면길을 만들기가 버거웠던 모양이다. 오늘 산행에서 첫 번째로 만나야할 봉우리의 높이는 395m이다. 들머리의 높이가 200m정도 되니 대략 200m정도 차이가 난다. 첫 번째 봉우리까지 500m도 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에서 200m의 표고차(標高差)를 극복하려다보니 산길은 자연히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오르막길을 사람들은 깔딱고개라고 부르며, 가능하면 피하고 싶어들 한다.

 

 

 

395봉 정상은 통나무 의자가 몇 개 놓여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고생했으니 숨도 돌릴 겸 잠시 쉬어가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395봉에서부터 산길이 완만(緩慢)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발걸음 한결 가벼워진다. 그러나 그 수월함도 잠시,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참나무 일색(一色), ‘가난한 나무들만 보이네요.’ 요즘 들어 도토리 줍기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는 집사람의 말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참나무가 울창한데도 길 위에는 도토리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봉화산은 곳곳에서 등산객들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는 산이다. 중간 중간 힘들만 한 곳에는 어김없이 통나무 의자를 갖춘 쉼터를 만들어 놓았고, 이정표(里程標)도 잊어버릴만하면 나타나는 등, 등산로 정성(整備)에 정성을 다한 흔적이 보였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다소 누그러지면서 노송(老松)지대가 나타난다. 예쁘지도 그렇다고 기괴(奇怪)하지도 않은 소나무들이지만, 그들이 보내주는 솔향은 그 어느 소나무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차라리 더 진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오랜 동안 세파(世波)에 시달리면서 살아온 연륜(年輪)이 더 진한 향기를 만들어 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른편 소나무들 사이로 소양호가 얼핏얼핏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한다.

 

 

 

자그마한 봉우리 몇 개를 더 넘은 후, 626봉에서 완만하게 내려서면 높다란 봉우리 하나가 정면에 버티고 있다. 바로 764봉(이정표 : 봉화산정상 1.44km/ 석현리선착장 4.22km)이다. 626봉에서 764봉까지의 구간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산길은 대부분 흙길, 간혹 바윗길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윗길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흙길까지도 경사(傾斜)가 조금이라도 심하다싶으면 어김없이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았다.

 

 

 

 

 

764봉에서 내려서면 심포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능선안부(鞍部 : 산의 능선이 말안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부분)에 이르게 된다(심포리 갈림길 이정표 : 심포리 2.24km/ 봉화산정상 1.12km/ 석현리선착장 4.54km). 안부로 내려가기 조금 전에 왼편으로 분기(分岐)하는 능선이 보이는데, 이 능선이 도솔지맥(兜率枝脈)이다. 이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사명산에 이르게 되며, 도솔지맥은 이곳에서 봉화산 정상을 거쳐 대암산으로 연결된다.

* 도솔지맥(兜率枝脈), 백두대간(白頭大幹) 상의 매자봉(1144m : 금강산에서 남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분기한 산맥으로서 가칠봉과 도솔산, 대암산 등 1천m가 넘는 산들을 일구어내다가 양구 땅에 있는 봉화산에 이르러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사명산과 죽엽산, 오봉산 등을 만들어 낸 후, 소양강이 북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 우두산에서 그 숨을 다하는 도상(圖上)거리 약 124.1km의 산줄기다. 돌산령 이북(以北)의 36km 구간은 북한(北韓) 땅이라서 갈 수 없으므로 실제 산행거리는 88.1km가 된다.

 

 

 

 

 

 

심포리갈림길에서 헬기장까지는 20분 남짓이면 닿게 된다. 오르막길이 길게 이어지지만 그다지 가파르지 않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그다지 힘들지 않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선 후, 이어서 고저(高低) 차이가 거의 없는 능선을 잠시 걸으면 헬기장이 나타나면서 갑자기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진행방향의 봉화산은 머리를 빡빡 깎고 있고, 왼편에는 양구시가지(市街地)가 펼쳐지고, 그리고 오른편에는 수많은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헬기장에서 봉화산까지의 구간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highlight)이다. 능선의 좌우(座右)로 터지는 조망(眺望)이 일품임은 물론이고, 헬기장 주변과 봉화산으로 연결되는 등산로의 양쪽에 펼쳐지는 억새평원(平原)이 볼만하기 때문이다. 특히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억새꽃들은 장관(壯觀)을 연출한다. 바람결 따라 하늘거리는 은색의 물결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 것이다.

 

 

 

 

 

 

봉화산 정상에는 모형 봉수대(烽燧臺), 삼각점(인제 25, 1986 재설), 푯말(봉수대), 조망도(眺望圖) 2개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웬만한 산들은 다 갖고 있는 정상표지석이 눈에 띄지 않아 의아한 생각이 든다. 아마 ‘봉화산’이라는 지명(地名)이 봉수대가 있는 산이라는 뜻이니, 모형 봉수대를 정상표지석으로 대신하라는 의미인 모양이다. 봉수대의 안내판(案內板)에는 봉화산의 지명이 선조37년(1604년)에 이곳에 봉화대가 설치된 데서 비롯된 이름이며, 이곳 봉수대의 구조(構造)를 정확히 알려주는 기록이 없어 아쉽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산행을 시작해서 정상까지 오는데 3시간이 흘렀다. 물론 점심시간 20분이 포함된 시간이다.

 

 

 

양구지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곳을 골라 양남팔경(楊南八景)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중의 하나가 ‘봉화낙월(烽火落月)’이다. 이곳 봉화대에서 바라보는 ‘서산(西山)으로 걸린 달(月)’이 매우 아름답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양구군청에서 적어 놓은 안내판에는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산림이 울창하고 봉화대가 높이 솟아 있어서 서산에 지는 일몰경(日沒景)은 달과 좋은 대조가 되어 야경이 한 폭의 그림과 같다는 뜻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봉화낙월은 이곳 정상의 조망(眺望)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정상에 세워진 조망도(眺望圖)가 증명하고 있다. 두 개나 되는 조망도에는 사명산과 백암산, 가칠봉, 도솔산, 대암산, 그리고 나머지 하나에는 향로봉과 한석산, 황철봉, 대청봉, 점봉상, 방태산, 오대산, 가리산 등 1000m가 넘는 높은 산들이 헤아리기도 힘들 정도로 많이 표시되어 있다. 그야말로 사방으로 시야(視野)가 뻥 뚫려있는 것이다.

 

 

 

 

‘국토 정중앙점’으로 가려면 정상으로 올라왔던 길의 정 반대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반대방향 저 멀리에 송전탑(送電塔)이 보이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파르기 짝이 없는 내리막길을 1km 조금 못되게 내려서면 길이 두 갈래(이정표 : 구암리 1.88km/ 국토정중앙점 3.44km/ 봉화산정상 0.66km)로 나뉜다. 왼편은 구암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국토 정중앙점’으로 가려면 맞은편에 보이는 능선으로 진행해야 한다.

 

 

 

 

구암리갈림길에서부터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산길이 이어진다. 주변에는 짙게 우거진 참나무 숲으로 인해 조망도 일절 트이지 않는다. 무미건조한 산길에서 이제나 저제나 송전탑(送電塔)이 나오기만을 고대하며 걷는다. 무전기(無電機)를 들고 있는 여성(산행대장?)께서 송전탑에서 왼편으로 떨어지면 국토정중앙점이 나온다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고대하던 송전탑이 보인다. 그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왼편에 산길의 흔적이 희미하게 나타나면서 리본 몇 개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지도(地圖)를 꺼내 확인에 들어간다. 왼편에 보이는 길이 너무 거칠기 때문에 선뜻 들어서기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토정중앙점으로 가려면 맞은편에 보이는 능선을 따라 한참을 더 걸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송전탑을 지나서도 몇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야만 국토정중앙점으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680봉과 574봉을 넘어 607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이정표(국토정중앙점 0.7km/ 봉화산정상 3.4km/ 두미리7.16km, 원리터널1.66km)가 세워져 있고, 국토정중앙점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삼거리에서 국토정중앙점으로 방향을 잡으면 먼저 선을 보이는 키 작은 잡목(雜木)들이 발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떡갈나무와 졸참나무, 싸리나무, 거기다가 억새들까지 함께 어우러져 가뜩이나 좁은 산길을 더 비좁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봉화산을 걷다보면 ‘박격포 및 전차포 사격을 하는 곳으로 불발탄(不發彈)이 산재(散在)되어 있으니 출입을 금지해 달라’는 경고문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주변의 나무들이 덜 자란 것은, 어쩌면 사격으로 인해 간혹 발생하는 산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잡목을 헤치며 걷다보면 갑자기 시야(視野)가 시원스럽게 열린다. 전면(前面)에 양구 들녘이 시원스럽게 펼쳐지는데, 맨 앞에는 국토정중앙천문대가 또렷하다.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니 구태여 발길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안성맞춤으로 벤치까지 놓여있으니 잠깐 잠깐(眺望)을 즐겨보자. 왼편에 우리가 걸어온 봉화산 자락이 눈에 들어오는데, 능선의 사면(斜面)이 마치 비단자락이 만들어내는 주름을 연상시키고 있다.(이정표 : 국토정중앙점 0.4Km/ 국토정중앙점삼거리 0.3Km)

 

 

 

 

전망대에서부터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길가에 안전로프가 메어져있지만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바닥이 마사토로 이루어진 탓에 무척 미끄럽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내려서다보면 어디선가 아름다운 멜로디(melody)가 들려온다. 멜로디의 진원지(震源地)를 찾아 고개를 기웃거리다보면 오른편 숲 사이로 쇠(鐵)로 만든 구조물 하나가 내다보인다. 바로 국토정중앙점을 상징하는 조형물인 휘모리이다.

* 휘모리, 국토정중앙을 기리는 탑(塔)의 이름이다. 휘모리는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넘어지는 팽이의 역동성에 미래지향적 상징성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또한 이 탑은 음양오행(陰陽五行) 원리를 상징하는 언어(言語)인 팔괘(八卦)·삼태극(三太極)과 우리 전통 농악놀이 상모의 생동적 형상을 조형적(造形的)으로 표출했다

*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네 곳의 극(極)지점을 기준으로 해서 중앙경선(中央經線)과 중앙위선(中央緯線)의 교차점(交叉點)이 우리국토의 정중앙(正中央) 지점이다. 네 개의 극(極)지점은 섬(島)을 포함시키느냐 아니면 제외시키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는데, 섬을 포함시킬 경우의 우리국토 정중앙 지점은 강원도 양구군 남면 도촌리(일명 배꼽마을) 산48번지 일대가 된다. 참고로 섬을 제외하고 내륙(內陸)만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북한 땅에 있는 강원도 회양군 현리 부근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영토(領土)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정의한 우리나라 헌법(憲法 第3條) 정신을 감안할 때 우리국토의 정중앙은 당연히 도촌리일 수밖에 없다.

* 4극(極)지점, 극동(極東) : 독도의 동단(東端), 극서(極西) : 평북 용천군 마안도 서안(西岸), 극북(極北) : 함북 온성군 유포면 북단, 극남(極南) : 제주 서귀포시 마라도 남단(南端)

 

 

 

산행날머리는 국토정중앙천문대 주차장

고맙게도 휘모리탑 앞에 아담한 식수대(食水臺)가 만들어져 있다. 약수(藥水)가 바닥에서 솟구쳐 오르도록 만들어진 식수대는 예쁜 모양새만큼이나 물맛도 뛰어나다. 물통마다 약수를 가득 채운 후 산행이 종료되는 국토정중앙천문대로 향한다. 이곳에서 천문대(天文臺)까지는 약 1Km, 양구군에서 얼마나 정성들여 가꾸었던지 도심(都心)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진입로(進入路)가 잘 가꾸어져 있다.(산행 날머리의 이정표 : 봉화산 정상 4.72Km, 석현리 선착장 10.38Km, 구암리 5.94Km)

* 국토정중앙천문대(天文臺 : Observatory), 우리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한 양구군 남면 도촌리에 세워진 천문대로서 2007년에 문을 열었다. 천문대는 완만한 산기슭 마을인 도촌리의 맨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도회지(都會地)에서는 보기 힘든 은하수의 물결까지도 잘 관찰된다고 한다. 이곳이 청정지역이기 때문이겠지만, 천문대 주변에 시야(視野)를 가리는 높은 산이나 불빛이 없는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전시관에 들어가 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2천원의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의 구경거리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보여주는 ‘시간에 관하여(It’s about time)‘와 ’별자리여행‘은 방문객들로부터 꽤 인기가 높다고 한다. 그리고 최신의 시청각(視聽覺)자료를 비치하고 있는 체험전시공간도 둘러볼만하다고 얘기들을 한다.

* 국토정중앙천문대가 위치한 부근은 배꼽마을이라 불린다. 배꼽은 사람의 신체(身體)에서 가장 중앙(中央)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양구사람들은 우리나라 국토의 정중앙(正中央)에 위치한 마을의 이름을 배꼽마을이라고 붙였다. 배꼽마을은 양구군의 주산(主山)인 봉화산을 배경으로 양구 최대의 곡창(穀倉)지대인 창리뜰을 품에 안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아직 때가 덜 탄 탓에 마을주민들이 순박하고 정이 넘친다는 소문이지만, 무엇보다도 국토의 지리적 정중앙점이 마을에 위치함으로써 마을의 가치와 의미가 재평가 되고 있는 마을이다. 참고로 배꼽마을은 도촌리와 창1리, 그리고 창2리 등 3개의 행정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에다 인근 구암리와 대월1,2리, 그리고 심포리가 힘을 합쳐 국토정중앙 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니 한번쯤 들러볼만 하다. 센터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지원(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을 받아 공동으로 건립한 시설(施設)로서 교육시설과 체험숙박시설, 그리고 야외수영장, 캠핑장, 공연장 등을 두루 갖추고 있다고 한다.

 

 

 

번암산(磻岩山, 832m)

 

 

산행일 : ‘12. 7. 22(일)

소재지 :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산행코스 : 솔고개→547봉→정상→한우재(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산하들

 

특징 : 번암산은 오지(奧地)로 알려진 화천군에서도 외딴 곳에 위치한 탓에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호젓한 산이다. 인근에 있는 국망봉이나 광덕산에 비해 높이도 낮은데다 위치까지도 외진 탓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탓이다. 구름다리 등 볼거리를 지니고 있으나 산행시간이 짧은 게 흠이다.

 

산행들머리는 사내면 광덕리에서 도마치로 연결되는 임도(林道)의 들머리

외곽순환고속도로 퇴계원 I.C를 빠져나와 47분 국도를 따라 와수리(철원군 김화읍)방향으로 달리다가, 도평교차로(交叉路, 이동면 도평리)에서 372번 지방도로 옮겨 들어가면 백운계곡을 거친 후, 광덕고개에 올라서게 된다. 광덕고개에서 사창리 방향으로 4Km정도 더 들어가면 광덕리의 덕골계곡 입구에서 도마치로 넘어가는 임도의 들머리를 만나게 된다. 임도의 초입(初入)에 커다랗고 멋진 바위가 보이니 참조하면 될 것이다.

 

 

버스가 산행들머리에 도착했지만 차에서 내리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광나루에서 버스를 탈 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하던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기 때문이다. ‘산에 올라가지 말고 물놀이나 하면서 놀다가 돌아가면 안 되나요?’ 어느 여성분의 말이 선뜻 가슴에 와 닿는다. 번암산을 찾아온 이유가, 산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나름대로 즐기기 위해서였지, 저런 빗속을 헤치며 고행(苦行)이나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옷을 입어도 땀에 젖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나도 안다. 그러나 난 카메라 보호를 위해서 부득불 비옷을 입지 않을 수가 없다.

 

 

 

 

산행은 덕골에서 도마치로 연결되는 임도(林道)를 따라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임도의 들머리, 그러니까 광덕계곡(溪谷)을 건너자마자 차단기(遮斷機)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입산금지’ 강원도산림연구원장이 설치해 놓은 모양인데, 상단에 ‘산불방지’라는 문구(文句)가 더 적혀있다. 오늘 같이 비오는 날에는 들어가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냉큼 들어서고 본다. 오늘 같이 비오는 날에는 결코 산불이 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임도는 덕골을 왼편에 끼고 이어진다. 임도의 들머리 근처에 거리가 표시되어 있는 이정표(里程標) 하나가 세워져 있다. ‘도마치 8.9Km'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이 임도가 도마치고개까지 연결되며, 그 거리는 8.9Km인 모양이다. 이러한 이정표는 윗덕골의 고갯마루까지 500m 간격으로 계속해서 나타난다.

 

 

들머리를 출발해서 600m쯤 들어가면 임도는 계곡(덕골)을 가로지르면서 이어진다(고갯마루에 이를 때까지 4번을 더 가로지르게 된다). 다리 오른편 계곡에 널따란 암반(巖盤)이 펼쳐져 있다. 암반 위로 물이 흐르고 있어 물놀이 장소로 제격일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길에 찾아낸 물놀이 장소가 바로 저곳이었다.

 

 

 

계곡을 건너서 100m 조금 못되게 걸으면 왼편에 열려있는 좁다란 산길이 보인다. 반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들머리인 것이다. 그러나 선두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번암산에서 가장 뛰어난 볼거리라는 ‘구름다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생략(省略)해서는 안 되는 코스인데도 말이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 들리겠지?’하며 선두를 따라갔지만, 내려올 때도 이 코스는 ‘미끄러워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생략되고 말았다. 위험을 느낄 정도로 미끄럽다면 응당 정상으로 오를 때 이 코스를 이용했어야 하지 않을까?

 

 

임도는 계속해서 계곡(덕골)을 옆에 끼고 나란히 이어지다가, 어떤 때는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도마치고개로 향하고 있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간혹 내려다보이는 계곡 외에는, 계속해서 숲만 나타나기 때문에 지루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료함도 달래볼 겸 잠깐 길가에 보이는 나무들에 관심을 가져보자. 우선 칡넝쿨이 우거진 계곡 아래는 원시(原始)의 숲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럼 계곡의 반대편은 어떤 모습일까? 들머리에서부터 변함없이 유지해오던 참나무 숲에 듬성듬성 일본이깔나무(落葉松)들이 섞이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참나무를 몰아내버리고 자기들만의 동아리(群落)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 선보이는 나무는 자작나무, 하얗게 배를 내놓고 있는 자작나무 아래에는 벌통들이 웅크리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던 벌통들이 유독 자작나무 아래에만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한봉(韓蜂), 그러나 벌통의 생김새는 양봉(養蜂)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한봉의 벌통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자작나무 숲이 끝나면 숲은 금강송(金剛松)으로 바뀐다. 하늘을 향해 곧게 치솟은 나무줄기들이 마치 아가씨들의 다리모양으로 미끈하게 잘 빠졌다. 그래서 금강송을 미인송(美人松)이라고도 부르나보다.

 

 

 

금강송 군락 어림에서 우린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를 볼 수 있다. 주위에 널리다시피 우거진 소나무들 중에서도 그야말로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그 거대(巨大)한 크기는 차지하고라도, 독야청청(獨也靑靑) 늠름하면서도 청초(淸楚)한 기상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기자소나무’라고 적힌 푯말에 위풍당당한 기세가 이기자부대의 기상과 닮았기에 부대의 상징수(樹)로 삼는다는 안내문이 적혀있다. 하긴 이렇게 뛰어난 자태(姿態)의 나무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기자소나무를 지나면 길가는 느닷없이 억새들의 천지로 바뀐다. 아니 억새라기보다는 차라리 갈대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길 양편에 도열해 있는 갈대의 사열을 받으며 진행하다보면 철망으로 된 문이 보인다. 강원도산림연구원에서 붙여 놓은 ‘출입 통제’ 안내판이 보이나, 문이 잠겨있지 않은 것을 보면 금지(禁止)까지는 아니고 제한(制限)하는 수준인 모양이다. 허락을 받지 않고 통과하는 행위는 옳지 않은 일이겠지만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철망문을 지나서도 임도는 계속해서 이어지지만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풍경(風景)이 계속된다. 덕골에서 5Km 정도 걷다보면 드디어 능선 안부에 올라서게 되고, 이곳에서 왼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번암산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15분쯤 지났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행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린다. 하긴 우산을 쓰고 산길을 걷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임도의 고갯마루에서 왼편 능선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고갯마루의 해발(海拔)이 높은 탓인지 산길은 비교적 완만(緩慢)한 경사(傾斜)의 오솔길로 이어진다. 참나무가 짙게 우거진 숲길을 따라 자그마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서 바윗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바위가 높지도 않을뿐더러 로프까지 매달려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윗길을 내려서면 부쩍 바위들의 숫자가 늘어난다. 비로 인해 또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서서히 걸으며 차곡차곡 가슴에 담아본다. 앞뒤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느긋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로 주변에의 나무들은 언제부터인지 온통 철쭉나무들로 바뀌어 있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철쭉이 볼만하다는 어느 분의 글이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이다.

 

 

 

 

 

철쭉길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을 잠시 오르면 드디어 번암산 정상이다. 고갯마루에서 정상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5분이면 충분히 도달(到達)할 수 있다. 정상은 서너 평도 되지 않는 좁다란 분지(盆地), 한쪽 귀퉁이에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있고 그 위에 귀엽게 생긴 정상표지석이 놓여 있다. 날씨가 맑을 때에 이곳에 오면 백운산을 거쳐 국망봉, 광덕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이 잘 보인다고 한다. 이곳 번암산이 한북정맥에서 한발자국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굵은 빗줄기에 둘러싸인 산하(山河)는 그 자태(姿態)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번암산의 명물이 구름다리로 가려면 북쪽 능선(稜線)을 따라 산행을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선두대장의 주장은 의외로 단호(斷乎)하다. ‘비로인해 미끄러워진 내리막길이 위험(危險)하기 때문에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험하다는 데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럼 혼자서라도 북쪽 능선으로 진행할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아쉬운 마음을 접고 만다. 산행은 나 혼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되돌아 나온 고갯마루,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는데 시간까지 넉넉하단다. 당연히 모든 게 여유로워 진다. 그 여유로움에 취해 아름다운 여성분도 한 컷 잡아본다. 사람이 여유롭다보면 평소에 안하던 버릇도 나오나 보다. 꽤 오랜 기간 외국인(外國人)들과 함께 뒹굴면서, 인물사진(人物寫眞) 촬영을 잘 하지 않는 그네들의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버렸는데도 말이다.

 

 

 

언제부턴가 빗줄기가 약해졌는지 건너편 산이 그 자태(姿態)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반대편에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면서 서서히 걷다보면, 오를 때 비로인해 보지 못했던 풍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름 모를 야생(野生)의 열매는 한껏 붉은 색으로 여물어가고, 길가의 핀 개망초는 가을이 이미 우리 곁에 와있음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온몸이 이미 젖어버린 것도 모자라 신발 안에까지 물이 가득 차 버렸다. 이런 때에 제일 필요한 것은 딱 하나, 옷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퐁당 뛰어드는 것이다. 신발까지 이미 젖어버렸으니 구태여 벗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물장난까지 치며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이내 절골계곡이 끝나고 372번 지방도에 올라서게 된다. 오늘 산행이 끝난 것이다.

 

 

 

 

 

반암산의 명물(名物)은 누가 뭐래도 석문(石門)이다. 바위로 이루어진 천연(天然)의 문은 통과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문의 위를 지나 건너편 바위로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석문이라는 명칭(名稱) 외에도 ‘구름다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국내에 있는 산에 여러 군데의 석문(石門)이 있으나, 그중에서 번암산에 있는 석문이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비 때문에 가보지 못한 서운함을 다른 선답자(先踏者)의 작품으로 위안을 삼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