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韓半島, 상정바위산 맞은편)

 

산행일 : ‘11. 8. 27()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

산행코스 : 문곡리작은골 입구지리산계룡산속리산태백산설악산금강산백두산압록강변반대방향으로 해서 원점회귀 (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청지산악회

 

특징 : 상정바위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이 산을 오르는 이유는 모두들 단 한가지이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한반도(韓半島)를 보기 위해서다. 사행천(蛇行川)인 조양강이 굽이굽이 돌면서 만들어 놓은 땅덩어리는 한반도의 형상을 쏙 빼다가 박은 듯이 닮았다. 정선군에서는 이 한반도에다가 백두대간 종주코스를 잘 정비해 놓았다. 비록 가리왕산이나 계룡산을 백두대간에 편입시키는 우()를 범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정성이 갸륵할 따름이다. 산행코스가 짧으니 상정바위산의 산행을 마친 후에 잠깐 짬을 내어 찾아볼 일이다.

 

산행들머리는 문곡리 주차장

중앙고속도로 제천 I.C를 빠져나와 38번 국도(國道/ 태백방향)을 따라 달리다가, 정선군 남면사무소 소재지에서 59번 국도(정선, 양양방향)로 바꾸어 들어가면 정선읍에 도착하게 된다. 정선에서부터는 42번 국도(동해시 방향)를 따라간다. 도로 오른쪽으로 내려다보이는 강은 조양강이다. 정선읍에서 구절리와 아우라지로 가는 42번 국도를 따라 5정도 들어가다가, 철로 아래로 난 도로를 통과하자마자 북평면 문곡리쪽으로 우회전해서 강을 건너면 문곡리이다.

 

 

문곡리에 들어서면 먼저 커다란 한반도 조형물(韓半島 造形物)이 눈에 띈다. 그 맞은편에는 상정바위산과 문곡마을에 대한 안내도(案內圖)가 세워져있다. 방갈로 형태의 가옥이나 야외 취사시설 등으로 보아 이곳 문곡리는 산촌 체험마을로 운영되고 있는 모양이다.

 

 

상정바위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주차장에서 조양강을 오른편에 끼고 2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1Km쯤 걸어 내려가야 한다. 왼편 산 아래 지어진 전원주택들이 하나같이 멋스럽고, 오른편 조양강 너머인 한반도의 단애(斷崖)가 제법 날카롭다.

 

 

 

조양강을 가로지르는 덕송교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커다란 한반도 조형물(造形物)과 산행안내도가 서있는 삼거리에서, 다리를 건너면 한반도이고, 상정바위로 가려면 강변을 따라 곧장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빨강 모자를 쓴 아저씨가 상정바위산으로 가는 길목을 막고 서 있는 것이다. 산불방지기간이라 입산금지(入山禁止)란다. 정선군청의 승인을 받았다고 해도 막무가내(莫無可奈)이다. 자기는 산림청(山林廳) 소속이기 때문에 군청(郡廳)과는 무관(無關)하단다. 조르다가 어르고, 끝내는 한반도로 발걸음을 돌린다. 꿩 대신 닭이라도 잡아먹어야 오늘 이곳을 찾은 보람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한반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우선 조양강을 가로지르는 덕송교를 건너야만 한다. 참고로 2차선으로 된 이 군도(郡道)는 한반도를 남쪽으로 관통한 후, 다시 정선읍 근처의 42번 국도(國道)와 만나게 된다.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1Km쯤 걸어 내려가면 오른편 언덕으로 오르는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林道)가 보인다. 아마 포항의 호미곶 쯤 되는 지점일 것이다. 입구에 산행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들머리를 혼동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언덕으로 올라서면 임도는 언제부터인가 비포장으로 바뀌어 있다. 황톳길 등산로는 곱고 부드럽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소나무 일색, 잠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일본이깔나무(落葉松) 군락지가 보이더니, 이내 잣나무 군락지(群落地)로 변해버린다.

 

 

겨울의 초입(初入), 빈 가지들로 앙상한 산은 궁상을 떨고 있어야 하건만, 소나무들에게 포위당한 한반도는 풍요로움이 넘치고 있다. ‘겨울이 다 되어야 솔이 푸른 줄 안다라는 말이 있다. 여름에야 모든 나무들이 온통 초록빛이지만, 겨울철에는 유독 소나무만이 보란 듯 푸른 자태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숲이 좋은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나무로 둘러싸인 길을 걷다 보면, 신선한 공기가 지쳐있던 온몸을 재생(再生)시켜준다. 느릿하게 걷다 보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머리는 어느새 속속들이 상쾌해져 있다.

 

 

 

평지(平地)형태로 이어지던 산길이 약간 경사(傾斜)를 보이더니 도톰하게 솟구친 곳에 낯선 안내판 하나가 서 있다. 이곳이 남한(南韓)에서 두 번째로 높은 지리산이란다. 그러나 이곳의 실제 높이는 오늘 만나게 되는 산 중에서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해 있다.

 

 

 

지리산을 지나도 산길은 지금까지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산길은 마냥 보드랍고 순하다. 산행을 시작할 때와 같은 분위기의 솔숲 아래 길이 약간 경사(傾斜)가 가파르게 변했을 따름이다. 그러다가 뽈록하게 솟은 또 하나의 언덕을 만나게 된다. 잠깐 쉬어가라고 만들어 놓은, 벤치 옆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에는 이곳이 계룡산이라고 적혀 있다. 백두대간은 결코 계룡산을 지나지 않는데, 이곳 정선군청의 관계자가 잘못 안 모양이다.

 

 

 

주위는 온통 소나무 천국(天國)이다. 수령(樹齡)은 그리 오래되지 않지만, 제멋대로 자란 소나무들은 햇살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짙은 숲을 만들고 있다. 숨을 크게 들이켜 본다. 상큼한 공기 속에서 청량감 가득한 솔향이 맴돌고 있다. 거기에다 침엽수(針葉樹)에서 가장 많은 피톤치드가 발생된다고 하니, 오늘 걷는 이 길은 더없이 좋은 삼림욕(森林浴) 구간인 셈이다. 상정바위산을 못 오른 서운함을 능히 상쇄시키고 남을 만큼...

 

 

계룡산을 지난 산길은 또다시 짙은 솔숲 아래를 지나게 된다. 분위기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다만 경사가 조금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래봤자 여느 산의 중급 코스에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여유롭게 걸으며 콧노래 두어 곡조(曲調) 흥얼거리다보면 속리산을 거친 발걸음은 어느새 태백산에 닿아 있다.

 

 

 

태백산을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오르고 내림이 짧게 반복(反復)된다. 그 짧은 오르내림은 안부를 향해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또 다시 힘겨운 오르막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산길은 자주 능선을 벗어나 사면(斜面)을 중간으로 가르며 이어지고 있다. 왼편이 깎아지른 절벽이라 능선으로 길을 뚫는 것이 불가능 했던 모양이다. 조양강의 물굽이가 좌우로 펼쳐지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곳은 반도(半島)의 중간, 허리쯤이 되는 모양이다.

 

 

 

 

사박사박’,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내지르는 낙엽들의 비명소리... 아무리 낮은 산이라지만 이곳은 역시 강원도의 오지에 있는 심심(深深)산골이다. 이런 오지의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風景)일 것이다.

 

 

 

 

나무테크 계단과 안전(安全)로프 등 안전시설로 잘 정비된 구간을 지나면 이번에는 볼록하지도 않은 곳에서 벤치와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가리왕산이다. 실제로는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만날 수 없는 산이 다시 한 번 백두대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정선군, 그들의 경쟁상대인 태백시가 태백산을 백두대간에 올려놓고 있기 때문일까? 백두대간이 지나지 않은 곳에 있는 가리왕산을 떡 하니 백두대간 위에 올려놓고 있다. 두 번째로 만나는 난센스인 것이다.

 

 

 

산길은 산행(山行) 내내 길손들의 눈을 감동시킨다. 길의 초입에서 선보이던 장대한 솔숲은 산행 내내 끊이지 않고 펼쳐지고 있다. 솔숲의 양산(陽傘) 아래를 걸으며 내려다보는 조양강이 조화(造花)를 부리고 있다. 오른편 발아래에 펼쳐지고 있으려니 지레짐작하고 있던 조양강이, 잠시 한눈을 팔고나면 어느새 왼편으로 달려와 있는 것이다.

 

 

 

 

가리왕산을 지나면서 산길은 제법 가파르게 변하면서 설악산으로 연결시킨다. 설악산은 오늘 산행 중에서 만난 봉우리 중에서 가장 봉우리답게 생긴 봉우리이다. 설악산 부근은 지금까지의 침엽수와는 확연히 다른 활엽수인 신갈나무의 군락지(群落地), 온 몸을 들러내고 있는 신갈나무의 빈 가지 사이로 저 멀리 상정바위산이 살포시 그 자태(姿態)를 드러내고 있다.

 

 

 

걷는 길 내내 바닥은 솔잎으로 가득해 폭신폭신 하기만 하다. 이따금 만나는 오르막에서 땀방울이 흐르는 것은, 아무리 야트막하더라도 산은 산이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철이지만 아직까지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는 솔숲, 그 초록은 싱그러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코끝을 스치는 소나무향과 솔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는 상상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기 때문이지는 몰라도 소나무는 우리와 가장 친숙한 나무이다. 오죽하면 소나무와 함께 태어나고, 소나무 속에서 살다가, 솔밭에 묻힌다고 했을까.

 

 

설악산을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가파른 내리막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급경사(急傾斜)를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나무계단을 밟고 내려서면 안부사거리, 움푹 들어간 안부를 산길이 가로지르고 있는 광경(光景)은 마치 휴전선(休戰線)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 길은 이 산의 양쪽에 있던 동네 사람들이 오가던 옛길이란다. 바로 문곡 마을과 송오리 마을이다.

 

 

십자(十字)안부, 한마디로 괜찮은 풍경이다. 경사(傾斜)를 이루고 있는 양편 언덕은 초지(草地)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가운데를 폭이 1m도 안 되는 침목계단으로 연결하고 있다. 사진(寫眞)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은 멋진 작품을 연출할 수도 있으련만...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싶지만, 휴전선에서 함께 식사를 한 후, 나와 발걸음을 맞추고 있는 산악회 총무님에게 피해를 줄 것 같아 지나쳐 버리고 만다.

 

 

 

 

침목(枕木)계단을 오르면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이정표(반점재 40/ 월천 50, 상정바위 정상 175)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변함없이 고운 능선을 잠깐 걸으면 갑자기 바윗길이 나타난다. 그 위에 금강산이 놓여있다. 역시 바위산인 금강산은 어디다 옮겨 놓아도 바위가 따라 다니는 모양이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등산로는 한량없이 곱다. 황톳길은 부드럽기만 한데, 그 위에 두텁게 쌓인 낙엽(落葉)이라니, 신발창을 통해 전해져 오는 촉감은 카펫의 경지를 넘어 아예 스펀지 수준이다. 폭신폭신하기 그지없다. 이런 길에서는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할 이유가 없다. 주위의 풍물을 즐기면서 모처럼 여유롭게 걸어보자.

 

 

 

 

금강산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우리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이다. 이 길을 처음 걷는 사람들이라면, 응당 금강산에서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꽤 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의외로 짧다. 이곳의 지형(地形) 때문에 불가피하였을 것이다. 백두산 정상에는 팔각정(八角亭)이 세워져 있다. 팔각정 위에 올라서면 오른편으로 상정바위산이 눈앞에 다가오고, 발아래에는 조양강이 굽이치고 있다.

 

 

 

 

 

 

백두산에서 두만강을 향하여 걸음을 옮긴다. 두 번째 만나는 이정표(반점재 20/ 월천 70, 상정바위 정상 195)에서 이정표에 방향표시가 없는 오른편 능선을 따라 진행해보지만 10분이 채 못 되어 발걸음을 돌린다. 길의 흔적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뒤돌아 나와 이정표가 지시하고 있는 반점으로 향할까 망설이다가 백두산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산행시간이 짧기 때문에 지나왔던 길을 다시 한 번 밟은 후, 원점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이다. 행여 내가 산행시간이 짧다고 불평이라고 할까봐서인지, 산악회 총무님이 나와 함께 보조를 맞추고 있다.

 

 

 

다시 돌아오는 길, 비록 아까 걸었던 길이지만, 시선을 바꾼 세상 풍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내 가슴에 쌓여간다. 솔숲 능선을 지나 다시 올라선 작은 봉우리인 금강산을 지나면서 산길은 계속 내리막길이 된다. ()의 높이와 얼추 비슷해질 때까지 내려서면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길을 만난다. 아까 느꼈던 휴전선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가슴에 다가온다.

 

 

안부의 휴전선을 넘어 다시 산자락으로 오른다. 이제부턴 남한(南韓)의 영역(領域)이다. 남한으로 넘어오는 길은 무척 힘들다. 오르막길이 엄청나게 급경사(急傾斜)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북한(北韓)으로 넘어갈 때에는 쉬울지 모르지만, 남한(南韓)으로 다시 넘어 오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우리네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까 산을 오르면서 놓치고 지나갔던 경관(景觀)을 꼼꼼히 챙기며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이내 군도(郡道)에 이르게 된다. ‘난 비록 산악회의 총무이지만 음식을 만드는 것은 제외랍니다.’ 하기야 집에서도 음식 장만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총무님을 누가 말리랴... 느긋한 마음으로 귀환(歸還)한 주차장, 오늘의 만찬(晩餐)삼겹살 파티는 이미 파장이다. ‘두 분이 애인 사이세요?’ 지나가는 농담이 나에겐 즐겁지만 총무님에게는 즐겁지만은 않았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