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경봉(1,123m)-고루포기산(전망대, 1,165m)

 

산행일 : ‘12. 2. 4(토)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과 평창군 도암면의 경계

산행코스 : 대관령→능경봉→돌탑→왕산골 갈림길→전망대→왕산골→횡계리(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국제산악회

 

특징 : 대관령 일대는 우리나라 내륙(內陸)에서 가장 눈(雪)이 많은 지역 가운데 하나다. 이 고갯마루 옆 횡계리 사람들은 겨울이면 늘 많은 눈 속에 묻혀서 산다고 한다. 옛날에는 ‘눈 감옥에 갇혔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폭설(暴雪)이 내리면 한동안 길이 뚫리지 않아 고립되는 일이 잦았단다. 그래서 이 일대는 겨울철만 되면 눈(雪) 구경을 위해 찾아드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도심(都心)의 시장바닥을 연상하게 하는 북쪽의 선자령은 말할 것도 없고, 반대편에 위치한 능경봉과 제왕산도 많은 인파들로 붐비기는 매 한가지이다. 

 

 

산행들머리는 대관령(大關嶺)의 옛 고속도로 휴게소

영동고속도로 횡계 I.C을 빠져나와 횡계 시내로 가다가 고속도로 밑을 지나자마자 좌회전한다. 옛 영동고속도로인 496번 지방도를 타고 직진하면 능경봉 산행기점인 옛 대관령휴게소 하행선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대관령(大關嶺)은 영동(嶺東)과 영서(嶺西)를 잇는 가장 큰 고개다. 휴게소는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차량(車輛)들이 줄지어 늘어서있는 주차장을 제외하고는, 온통 두터운 눈으로 포위되어 있다. 마당 한쪽 귀퉁이를 지키고 있는 풍력발전기는 커다란 날개를 얌전히 내려뜨리고 서 있다. 소문대로 세찬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데도 날개를 멈추고 있는 것을 보면 발전용(發電用)이 아니라 전시용(展示用)인 모양이다. 선자령으로 올라가는 들머리에는 벌써부터 사람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인다.

 

 

능경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거대한 비(碑)가 우뚝 서있는 고갯마루 위로 올라야만 한다. 유신정권의 절정기라 할 1975년에 세운 영동고속도로준공기념비인데, 뒷면에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치적(治績)이 새겨져 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강릉 시가지와 동해가 눈에 들어온다. 소문대로 바람이 거세다. 모자의 끈을 동여매야 할 정도로 본격적인 바람의 공격이 시작된다. 날씨가 영상(零上)으로 풀린다는 기상청의 예보(豫報)를 비웃기라고 하려는 듯 손발이 시려온다. 서둘러 오른편으로 보이는 널찍한 능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세찬 바람을 등에 지고 얼마간 오르면 임도(林道)가 나타난다. 잠시 뒤에는 산불감시초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터운 눈으로 뒤덮인 초소 건물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꼬마 집처럼 변해있다. 환상의 나라로 들어선 것이다. 초소 옆의 이정표도 절반 넘게 눈 속에 묻혀 있다. 대관령은 아무리 적설량(積雪量)이 적다해도 무릎을 덮을 정도로 눈은 흔하다. 거기다가 산이 깊어질수록 그 양은 점점 더 많아진다.(이정표 : 제왕산 2.0Km/ 능경봉 1.1Km/ 대관령휴게소 0.7Km)

 

 

 

 

초소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차단기(遮斷器)를 지나 계속해 임도를 따르면 제왕산으로 이어지고, 능경봉으로 오르려면 초소 왼쪽 옆 산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참나무가 빼곡한 숲으로 들어서니 바람이 자기 시작한다. 카메라를 붙잡은 손도 덜 시리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닌 길은 반반하게 닦여있으나, 하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눈은 허리 어림까지 차오른다. 그러니 당연히 앞사람을 추월할 수가 없다. 그저 흐름을 쫒으면서 나름대로 여유를 즐겨볼 따름이다.

 

 

 

 

 

능경봉으로 오르는 능선은 완만한 구릉(丘陵) 형태이다. 다소 가파른 오르막도 만나게 되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길가에 군데군데 로프가 매어져 있지만, 두터운 눈에 가려 머리꼭대기만 빼꼼이 내밀고 있다. 눈밭에 헐벗은 나무(裸木)들이 숲의 분위기를 황량하게 만들고 있다. 거기다 심심찮게 불어오는 매서운 겨울바람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걷기 좋은 산길을 따라 20여분 걷다가, 가파른 사면(斜面)길을 한번 치고 오르면 널찍한 공터에 서게 된다. 갑자기 시야(視野)가 확 트인다. 강릉 시내와 동해바다가 보이고 골골을 눈으로 하얗게 덧칠한 산릉들이 보이는 뛰어난 조망처(眺望處)이다. 물론 제왕산과 영동고속도로도 정면으로 내려다보인다.

 

 

 

공터에서 능경봉 정상은 지척(咫尺), 한달음에 닿을 수 있는 거리이다. 정상에 오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탄성(歎聲)을 지르고 있다. 동쪽 벼랑 아래로 강릉시가지와 동해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는 것이다. 대관령에서 능경봉 정상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 걸렸다. 능경봉 정상에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리 힘들이지 않고 올라 시원한 조망을 볼 수 있기 산봉우리이기 때문이다. 선자령이 이곳보다 한층 더 뛰어난 곳이겠지만, 사람들에게 부대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들 이곳을 찾고 있다. 정상에는 '강릉영림서 평창관리소'에서 세운 정상표지석이 있다고 하지만, 두텁게 쌓인 눈에 파묻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대신 아랫도리에 ‘능경봉’이라고 적혀있는 이정표를 배경삼아 인증사진을 찍는다(이정표 : 대관령 1.8Km/ 전망대 4.2Km). 능경봉 정상은 사방이 확 트인 탓에 제왕산과 강릉시 그리고 동해앞바다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서쪽방향의 빈틈 사이로 강원도의 고산준령(高山峻嶺)들이 첩첩(疊疊)이 쌓여있는 것이 보인다. 강원도의 산세(山勢)는 대단하다. 웬만한 산들이 거의 다 1000m가 넘으니 그럴 만도 하다.

 

 

 

 

 

능경봉에서 고루포기산으로 가려면 남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야 한다. 정상에서 1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오른쪽에 전망대(展望臺) 비슷하게 생긴 나무테크 하나가 보인다. ‘행운(幸運)의 돌탑’이란다. 테크 위에 보이는 눈에 덮여있는 돌탑을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안내문을 보니 백두대간을 걷는 분들의 안녕과 행운(幸運)을 기원하고자 쌓았다고 한다. 10년 전(前) 백두대간을 종주(縱走)할 당시에는 보지 못했던 시설이다.

 

 

 

 

능경봉과 고루포기산의 능선에는 대부분 참나무류(類)인 신갈나무가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다. 물푸레나무와 피나무 같은 큰키나무들도 간간이 눈에 띈다. 피톤치드가 많이 나온다는 소나무를 거의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다소 서운하지만, 대신 신선한 공기 가득한 산에서 즐겁게 눈과 한판 씨름을 하고 있으니 문제될 것도 없을 것이다. 덕분에 연리지 나무를 구경하는 행운(幸運)도 얻을 수 있었다. 연리지나무는 참나무류(類)에서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눈밭 사이로 길은 계속 이어지는데 바람이 아직도 세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진 탓에 배가 출출해진지 이미 오래됐지만, 점심상을 차릴만한 장소가 눈에 띄지 않는다. 바람이 너무 세기 때문이다. 왼쪽에 영동고속도로가 내려다보인다. 제1터널 위를 지나는 횡계고개가 가까워진 모양이다. 그렇게 얼마간 걸으면 왕산골로 내려가는 길과 나뉘는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샘터’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횡계치라고 불리는 ‘샘터삼거리’인 모양이다. 횡계치는 평창 도암면 왕산골에서 강릉 왕산면 왕산리 큰골로 넘어가는 재이다. 왕산골 방향으로 100m쯤 내려간 지점에 샘터가 있다고 하나, 구태여 확인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냥 통과한다.(이정표 : 전망대 1.6Km/ 행운의 돌탑 2.4Km/ 왕산골 700m)

 

 

 

 

다져진 눈 위로 난 길은 계속 이어진다. 앞서 간 사람들이 어제의 길 흔적을 잘 찾아내고 있음일 것이다. 샘터이정표에서 20분 정도를 더 걸으면 또 하나의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도 왕산골로 내려갈 수 있다.(이정표 : 샘터 0.8Km/ 전망대 0.7Km/ 왕산골 2.0Km). 이틀 전에 내린 폭설(暴雪)로 인해,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대부분의 등산객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왕산골로 하산을 했다.

 

 

 

왕산골 갈림길에서 가파르기 짝이 없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난코스이다. 거기다가 산길은 허리춤이 넘게 쌓인 눈밭을 헤치며 나가게 만들고 있다. 오늘 이 길을 처음으로 뚫고 지나간 사람들이 방향을 잘못 잡아, 어제까지 다져놓은 눈길을 벗어나버린 모양이다. 연리지(連理枝)나무를 지나니 많은 등산객들이 한꺼번에 내려오고 있다. 고루포기산으로 가는 눈길이 뚫리지 않아서,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되돌아 내려오는 것이라고 한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우리 부부는 계속해서 산을 오른다. 어느 TV프로그램에서 본 ‘의지의 한국인’인 것이다.

 

 

 

대관령 전망대, 산악회 선두대장이 되돌아 내려갈 것을 권하고 있다. ‘대관령 전망대’까지만 다녀오기로 약속하고 계속해서 산을 오른다. 중간에서 산행을 멈추는 것이 너무 서운하기 때문이다. 눈길은 더욱 험해진다. 눈이 허리를 넘어 가슴까지 차오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앞서간 사람들의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마지막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대관령 전망대(展望臺)’이다. 나무로 만든 전망대 데크 위로 오르면 건너편에 선자령이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에 늘어선 풍력발전기들이 이국적(異國的)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곳이 선자령을 조망(眺望)하기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에 ‘대관령전망대’란 이름을 붙여 놓았는 모양이다. 선자령의 왼편으로는 강원도의 높은 산(高山)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전망대에서 되돌아 내려오는 길, 도저히 서서는 내려올 수가 없을 정도로 가파르다. 그렇다면 길은 단 한 가지, 엉덩이 썰매를 탈 수밖에 없다. ‘인간만사(人間萬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다. 옛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마지못해 타는 썰매에 재미가 흠뻑 든 집사람은 눈에서 엉덩이를 뗄 줄을 모른다. 다행이 내리막길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왕산골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왕산골로 방향을 잡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계곡 오른쪽 사면(斜面)을 따라 하산길이 나 있는데 경사(傾斜)는 대체로 완만(緩慢)하다. 그러나 속도를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소에 등산객들의 왕래(往來)가 뜸한 탓에, 러셀(russell)을 해야만 진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눈밭을 헤치며 나아가려니 당연히 속도가 느려질 것이고, 수많은 등산객들은 불평한마디 못하고 줄지어 늘어서 있다.

 

 

 

‘설탕을 닮았네요.’ 사방에 널린 눈(雪)이 마치 꽃소금처럼 생겼다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나오는 집사람의 응수(應酬). 부엌살림 전담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자세히 보니 설탕을 닮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요즘처럼 메마른(乾燥) 날씨에 내린 눈들은 습기가 없기 때문에 저렇게 보슬보슬하다고 한다. 뭉쳐지지 않는 눈가루들이 마치 설탕처럼 발밑에서 뒹굴며,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있다. 물론 옷에도 들어붙지 않는다.

 

 

 

 

 

 

 

겨울 산행을 즐기는 등산광(登山狂)들에게 '많은 눈'은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은빛 설원(雪原)과 눈꽃이 가득한 산은 다른 계절에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당연히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소문난 이곳 대관령을 놓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나마 조금 여유로운 능경봉 코스를 선택했건만 이곳도 사람들로 넘치기는 매 한가지였다. 속도를 내고 싶어도 좁은 눈길에서 앞사람을 추월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不可能), 운동량(運動量)이 부족해서 부쩍 몸이 둔해진 요즘 같으면 차라리 잘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산행날머리는 왕산골 입구

계곡을 끼고 이어지는 하산길은 계곡을 두 번 가로지른 후에 잣나무 숲에 이르게 된다. 이어서 나타나는 널따란 분지(盆地)는 아마도 고랭지 채소밭인가 싶다. 채소밭도,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보이는 구릉(丘陵)도 온통 눈의 천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눈의 제국(帝國)’이라고 부르나 보다. 채소밭을 지나면서 만나게 되는 농로(農路)를 따라 얼마간 내려가면 차도(車道)를 만나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마무리 된다. 농로 주변에는 이 지방의 특산품(特産品)인 황태를 말리는 덕장이 여러곳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