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암산(磻岩山, 832m)

 

 

산행일 : ‘12. 7. 22(일)

소재지 :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산행코스 : 솔고개→547봉→정상→한우재(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산하들

 

특징 : 번암산은 오지(奧地)로 알려진 화천군에서도 외딴 곳에 위치한 탓에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호젓한 산이다. 인근에 있는 국망봉이나 광덕산에 비해 높이도 낮은데다 위치까지도 외진 탓에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탓이다. 구름다리 등 볼거리를 지니고 있으나 산행시간이 짧은 게 흠이다.

 

산행들머리는 사내면 광덕리에서 도마치로 연결되는 임도(林道)의 들머리

외곽순환고속도로 퇴계원 I.C를 빠져나와 47분 국도를 따라 와수리(철원군 김화읍)방향으로 달리다가, 도평교차로(交叉路, 이동면 도평리)에서 372번 지방도로 옮겨 들어가면 백운계곡을 거친 후, 광덕고개에 올라서게 된다. 광덕고개에서 사창리 방향으로 4Km정도 더 들어가면 광덕리의 덕골계곡 입구에서 도마치로 넘어가는 임도의 들머리를 만나게 된다. 임도의 초입(初入)에 커다랗고 멋진 바위가 보이니 참조하면 될 것이다.

 

 

버스가 산행들머리에 도착했지만 차에서 내리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광나루에서 버스를 탈 때부터 쏟아지기 시작하던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기 때문이다. ‘산에 올라가지 말고 물놀이나 하면서 놀다가 돌아가면 안 되나요?’ 어느 여성분의 말이 선뜻 가슴에 와 닿는다. 번암산을 찾아온 이유가, 산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나름대로 즐기기 위해서였지, 저런 빗속을 헤치며 고행(苦行)이나 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옷을 입어도 땀에 젖기는 매 한가지입니다’ 나도 안다. 그러나 난 카메라 보호를 위해서 부득불 비옷을 입지 않을 수가 없다.

 

 

 

 

산행은 덕골에서 도마치로 연결되는 임도(林道)를 따라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임도의 들머리, 그러니까 광덕계곡(溪谷)을 건너자마자 차단기(遮斷機)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입산금지’ 강원도산림연구원장이 설치해 놓은 모양인데, 상단에 ‘산불방지’라는 문구(文句)가 더 적혀있다. 오늘 같이 비오는 날에는 들어가도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며 냉큼 들어서고 본다. 오늘 같이 비오는 날에는 결코 산불이 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임도는 덕골을 왼편에 끼고 이어진다. 임도의 들머리 근처에 거리가 표시되어 있는 이정표(里程標) 하나가 세워져 있다. ‘도마치 8.9Km'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이 임도가 도마치고개까지 연결되며, 그 거리는 8.9Km인 모양이다. 이러한 이정표는 윗덕골의 고갯마루까지 500m 간격으로 계속해서 나타난다.

 

 

들머리를 출발해서 600m쯤 들어가면 임도는 계곡(덕골)을 가로지르면서 이어진다(고갯마루에 이를 때까지 4번을 더 가로지르게 된다). 다리 오른편 계곡에 널따란 암반(巖盤)이 펼쳐져 있다. 암반 위로 물이 흐르고 있어 물놀이 장소로 제격일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오는 길에 찾아낸 물놀이 장소가 바로 저곳이었다.

 

 

 

계곡을 건너서 100m 조금 못되게 걸으면 왼편에 열려있는 좁다란 산길이 보인다. 반암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의 들머리인 것이다. 그러나 선두는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번암산에서 가장 뛰어난 볼거리라는 ‘구름다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생략(省略)해서는 안 되는 코스인데도 말이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 들리겠지?’하며 선두를 따라갔지만, 내려올 때도 이 코스는 ‘미끄러워서 위험하다.’는 이유로 생략되고 말았다. 위험을 느낄 정도로 미끄럽다면 응당 정상으로 오를 때 이 코스를 이용했어야 하지 않을까?

 

 

임도는 계속해서 계곡(덕골)을 옆에 끼고 나란히 이어지다가, 어떤 때는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하면서 도마치고개로 향하고 있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간혹 내려다보이는 계곡 외에는, 계속해서 숲만 나타나기 때문에 지루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료함도 달래볼 겸 잠깐 길가에 보이는 나무들에 관심을 가져보자. 우선 칡넝쿨이 우거진 계곡 아래는 원시(原始)의 숲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럼 계곡의 반대편은 어떤 모습일까? 들머리에서부터 변함없이 유지해오던 참나무 숲에 듬성듬성 일본이깔나무(落葉松)들이 섞이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참나무를 몰아내버리고 자기들만의 동아리(群落)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 선보이는 나무는 자작나무, 하얗게 배를 내놓고 있는 자작나무 아래에는 벌통들이 웅크리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보이지 않던 벌통들이 유독 자작나무 아래에만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한봉(韓蜂), 그러나 벌통의 생김새는 양봉(養蜂)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한봉의 벌통은 저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자작나무 숲이 끝나면 숲은 금강송(金剛松)으로 바뀐다. 하늘을 향해 곧게 치솟은 나무줄기들이 마치 아가씨들의 다리모양으로 미끈하게 잘 빠졌다. 그래서 금강송을 미인송(美人松)이라고도 부르나보다.

 

 

 

금강송 군락 어림에서 우린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를 볼 수 있다. 주위에 널리다시피 우거진 소나무들 중에서도 그야말로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그 거대(巨大)한 크기는 차지하고라도, 독야청청(獨也靑靑) 늠름하면서도 청초(淸楚)한 기상을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기자소나무’라고 적힌 푯말에 위풍당당한 기세가 이기자부대의 기상과 닮았기에 부대의 상징수(樹)로 삼는다는 안내문이 적혀있다. 하긴 이렇게 뛰어난 자태(姿態)의 나무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기자소나무를 지나면 길가는 느닷없이 억새들의 천지로 바뀐다. 아니 억새라기보다는 차라리 갈대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길 양편에 도열해 있는 갈대의 사열을 받으며 진행하다보면 철망으로 된 문이 보인다. 강원도산림연구원에서 붙여 놓은 ‘출입 통제’ 안내판이 보이나, 문이 잠겨있지 않은 것을 보면 금지(禁止)까지는 아니고 제한(制限)하는 수준인 모양이다. 허락을 받지 않고 통과하는 행위는 옳지 않은 일이겠지만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철망문을 지나서도 임도는 계속해서 이어지지만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풍경(風景)이 계속된다. 덕골에서 5Km 정도 걷다보면 드디어 능선 안부에 올라서게 되고, 이곳에서 왼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번암산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15분쯤 지났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행을 포기하고 발길을 돌린다. 하긴 우산을 쓰고 산길을 걷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임도의 고갯마루에서 왼편 능선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고갯마루의 해발(海拔)이 높은 탓인지 산길은 비교적 완만(緩慢)한 경사(傾斜)의 오솔길로 이어진다. 참나무가 짙게 우거진 숲길을 따라 자그마한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서 바윗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바위가 높지도 않을뿐더러 로프까지 매달려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윗길을 내려서면 부쩍 바위들의 숫자가 늘어난다. 비로 인해 또렷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서서히 걸으며 차곡차곡 가슴에 담아본다. 앞뒤에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느긋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로 주변에의 나무들은 언제부터인지 온통 철쭉나무들로 바뀌어 있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철쭉이 볼만하다는 어느 분의 글이 머리에 떠오르는 순간이다.

 

 

 

 

 

철쭉길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을 잠시 오르면 드디어 번암산 정상이다. 고갯마루에서 정상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5분이면 충분히 도달(到達)할 수 있다. 정상은 서너 평도 되지 않는 좁다란 분지(盆地), 한쪽 귀퉁이에 바위 하나가 우뚝 솟아있고 그 위에 귀엽게 생긴 정상표지석이 놓여 있다. 날씨가 맑을 때에 이곳에 오면 백운산을 거쳐 국망봉, 광덕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이 잘 보인다고 한다. 이곳 번암산이 한북정맥에서 한발자국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굵은 빗줄기에 둘러싸인 산하(山河)는 그 자태(姿態)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번암산의 명물이 구름다리로 가려면 북쪽 능선(稜線)을 따라 산행을 이어가야 한다. 그러나 선두대장의 주장은 의외로 단호(斷乎)하다. ‘비로인해 미끄러워진 내리막길이 위험(危險)하기 때문에 진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험하다는 데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럼 혼자서라도 북쪽 능선으로 진행할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아쉬운 마음을 접고 만다. 산행은 나 혼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되돌아 나온 고갯마루,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는데 시간까지 넉넉하단다. 당연히 모든 게 여유로워 진다. 그 여유로움에 취해 아름다운 여성분도 한 컷 잡아본다. 사람이 여유롭다보면 평소에 안하던 버릇도 나오나 보다. 꽤 오랜 기간 외국인(外國人)들과 함께 뒹굴면서, 인물사진(人物寫眞) 촬영을 잘 하지 않는 그네들의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버렸는데도 말이다.

 

 

 

언제부턴가 빗줄기가 약해졌는지 건너편 산이 그 자태(姿態)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반대편에서 산을 오르는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면서 서서히 걷다보면, 오를 때 비로인해 보지 못했던 풍물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름 모를 야생(野生)의 열매는 한껏 붉은 색으로 여물어가고, 길가의 핀 개망초는 가을이 이미 우리 곁에 와있음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온몸이 이미 젖어버린 것도 모자라 신발 안에까지 물이 가득 차 버렸다. 이런 때에 제일 필요한 것은 딱 하나, 옷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퐁당 뛰어드는 것이다. 신발까지 이미 젖어버렸으니 구태여 벗을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물장난까지 치며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다가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이내 절골계곡이 끝나고 372번 지방도에 올라서게 된다. 오늘 산행이 끝난 것이다.

 

 

 

 

 

반암산의 명물(名物)은 누가 뭐래도 석문(石門)이다. 바위로 이루어진 천연(天然)의 문은 통과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문의 위를 지나 건너편 바위로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에 석문이라는 명칭(名稱) 외에도 ‘구름다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국내에 있는 산에 여러 군데의 석문(石門)이 있으나, 그중에서 번암산에 있는 석문이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비 때문에 가보지 못한 서운함을 다른 선답자(先踏者)의 작품으로 위안을 삼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