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산(加里山, 1,050.7m)-등잔봉(834m)

 

산행일 : ‘15. 4. 11()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동면과 홍천군 화촌면·두촌면의 경계

산행코스 : 가리산 휴양림계곡갈림길무쇠말재가리산가삽고개새덕이봉등잔봉홍천고개(산행시간 : 4시간45)

함께한 산악회 : 송암산악회

 

특징 : 가리산은 부드럽고도 풍요로운 것이 전형적인 육산(肉山)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남들에게 내세울 만한 비경(秘境)도 없을뿐더러 산세(山勢) 또한 보잘 것이 없는 편이다. 그러나 정상만은 예외이다. 수천 길 단애(斷崖)로 이루어진 거대한 바위봉우리는 제법 쏠쏠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바위산의 일반적인 특징까지 오롯이 보여준다. '강원 제1의 전망대'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조망(眺望)을 자랑한다는 얘기이다. 정상에 서면 명성(名聲)에 걸맞게 향로봉, 설악산,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白頭大幹)과 고산준령(高山峻嶺)이 파도처럼 다가온다. 특히 1봉에 내려다보는 소양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사를 쏟아놓게 만든다.

 

산행들머리는 가리산자연휴양림 주차장(홍천군 두촌면 천현리)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 I.C를 빠져나와 우회전, 44번 국도를 타고 인제방면으로 달리다 가리산교차로(交叉路 : 홍천군 두촌면 역내리)에서 좌회전(자연휴양림 이정표 참조)하여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가리산자연휴양림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주차장에서 관리사무소가 위치한 왼편 임도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가면 휴양림에서 지은 산막이 나오니 참조할 일이다. 널따란 임도는 경사까지 없으니 그저 산책하는 기분으로 걷기만 하면 된다.

 

 

이곳은 자연휴양림, 산막이나 공동취사장, 운동시설, 화장실 등 휴양림 운영에 필요한 각종 시설들 외에도 아름다운 시를 적어 놓은 시판(詩板) 등 볼거리가 제법 많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다 반가운 시 한 편을 발견한다. 바로 윤동주 시인의 서시(序詩)’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공직에 입문하면서 내 지표(指標)로 삼았던, 그리고 평생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면서 살아왔던 시()이다. 그 덕분에 난 대통령상까지 안 받아 본 상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상들을 다 받아봤지만, ()이라곤 그 흔한 경고(警告) 하나 까지도 받아본 적이 없이 명예롭게 공직을 마칠 수 있었다. 그런 의미 깊은 시를 이런 산속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행운이다. 그리고 오늘 산행은 왠지 행복한 산행이 될 것 같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갈림길에서 왼편(말뚝모양 이정표 참조), 그리고 두 번째 갈림길(이정표 : 가리산 정상 3.8Km/ 관리사무소 9.5Km)에서 다시 왼편으로 진행한다.

 

 

휴양림 시설인 산막을 지나는데, 집사람이 깜짝 놀라면서 호들갑을 떤다. 정상까지의 거리가 갑자기 늘어났다며 길가에 세워진 바위를 가리킨다. ‘가리산 등산로 여기서부터 5Km', 그녀의 말마따나 아까의 갈림길(정상까지 3.8Km)에서 한참을 더 걸었는데도 정상까지의 거리는 오히려 더 늘어나버렸다.

 

 

산막에서 조금 더 진행하면 새로 지은 이층 건물이 나타난다. 주차장에서 12분 정도의 거리이다. 왼편 산자락으로 궤도(軌道)가 깔려있는 것을 보니 아마 강우(降雨)레이더관측소에 딸린 건물인 모양이다. 이곳 가리산에 한강유역의 정확한 강우측정을 위한 관측소(觀測所)를 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층건물을 지나면서 임도는 비포장으로 바뀐다. 그러면서 산길은 오른쪽 산허리로 올라붙는 형태로 변한다. 식수(食水)로 사용한다며 왼편 계곡을 펜스(fence)로 막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산허리를 따라 길이 난 탓에 계곡 방향의 사면(斜面)이 약간 가파르지만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걸어도 될 만큼 길의 폭이 넓고 또한 사면 쪽에다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강우관측소 건물에서 8분쯤 더 올라가면 벤치 몇 개를 갖춘 쉼터가 만들어져 있고, 산길은 이곳에서 두 갈래(이정표 : 가리산 2.1Km/ 가리산 3.5Km, 가삽고개 2.3Km/ 휴양림 1.20Km)로 나뉜다. 오른편은 가삽고개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이고, 만일 무쇠말재를 거쳐 정상에 오르고 싶다면 왼편 계곡으로 내려서면 된다. 앞서가는 등산객들이 오른편 길로 들어서는 것이 보인다. 비교적 완만한 북동릉을 타고 정상으로 오르려는 모양이다. 물론 그들이 내려올 때는 왼편의 남릉 코스를 이용할 것이 분명하다. 사실 저들처럼 산행코스를 잡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은 나중에 오르게 될 정상에서 확인된다. 정상에 세워진 이정표의 하산로 방향표시가 이를 증명해주기 때문이다.

 

 

무쇠말재를 경유하는 남릉을 타기로 마음을 먹고 계곡으로 내려선다. 계곡을 건너면 잠시 후 능선에 올라서게 되고, 이어지는 산길은 가파른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그저 숨이 턱에 차도록 오르기만 할뿐 다른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육산(肉山)의 특징대로 볼거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길가에 진달래나무들이 제법 많은 것으로 봐서 시기라도 맞춘다면 꽃구경이라도 실컷 할 수 있었으련만 아직은 꽃몽오리를 제대로 만들지도 못했다. 남녘에선 꽃 잔치가 시작된 지 이미 오래인데도 말이다. 그저 길가에 피어난 샛노란 생강나무 꽃에 눈이나 맞추어볼 따름이다.

 

 

 

 

계곡으로 내려선지 25분쯤 지나면 길가에 홀쭉하게 생긴 나무 두 그루가 뒤엉켜 있는 것이 보인다. 곁에는 가리산 연리목(連理木)’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부부간의 금슬이 좋거나 남녀 간의 애정이 깊은 것에 비견(比肩)되는 연리목이란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말하는데, 가리산 연리목은 생물학적으로 종() 자체가 다른 침엽수인 소나무와 활엽수인 참나무가 한 번도 아닌 세 번씩이나 감아 올라 한 몸을 이룬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귀목이란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집사람이 뜬금없는 질문을 건네 온다. 연리목 같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러 곳에서 연리목을 보아온 집사람의 기대에는 한참을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연리목을 지나면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힘겹기는 아까와 다름없지만 이번에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아까와는 달리 길가에 피어난 들꽃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한 것이다.

 

 

 

 

심심찮게 나타나는 들꽃들에 눈을 맞추며 20분 쯤 오르면 능선 안부(이정표 : 가리산 0.9Km, 가리산 약수 0.9Km/ 휴양림 2.3Km)인 무쇠말재에 올라서게 된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곳은 큰평내에서 늘목으로 넘어가던 옛 고갯마루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리산에 오르려는 사람들이나 가픈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작은 쉼터일 따름이다. 전설(傳說)에 의하면 옛날 큰 물난리가 나서 천지가 물바다가 되었을 때 이곳에 무쇠로 배터를 만들어 배를 매어 놓았다고 해서 무쇠말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론 고갯마루에 있었던 무쇠로 만든 말(鐵馬)과 서낭당에서 연유(緣由)된 이름이라는 설()도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그 철마를 어느 엿장수가 가져가버렸다는 얘기는 그냥 웃어넘겨버리면 될 일이고 말이다.

 

 

 

무쇠말재에 올라서면 산길은 일단 편해진다. 부드러운 흙길에다가 큰 오르내림이 없는 평탄한 능선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능선은 온통 참나무들 천지이다. 갈참나무와 굴참나무 등 참나무류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물푸레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물론 소나무도 보인다. 다만 거짓말 좀 보태 손가락으로 헤아려도 될 만큼 그 숫자가 적다는 얘기일 뿐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나타나는 가리산의 바위봉우리를 구경하면서 느긋이 걷다보면 15분 후에는 약수터갈림길’(이정표 : 가리산 0.3Km/ 약수터 0.3Km/ 무쇠말재 0.9Km, 휴양림 3.2Km)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차라리 없는 것만도 못한 이정표가 문제다. 이곳에서는 어느 곳으로 가던지 정상으로 가기는 매한가지이다. 그러나 하산을 가삽고개를 거치려고 할 경우에는 왼편의 약수터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 그래야 똑 같은 길을 중복해서 걷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정표는 오른편으로 해서 정상으로 오르도록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예 고생을 사서하라는 모양이다.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는다. 사전정보가 부족했던 나로서는 이정표를 따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난 반대방향의 풍경을 보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물맛이 꿀맛이라는 석간수(石間水)도 마서보지 못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했다. 내가 알아 온 사전지식이 길을 못 찾을 정도로 작았으니 어찌 더 많을 것을 보길 바라겠는가. 내 자신을 책할 수밖에 없다. 다만 춘천지맥을 답사하려던 산행계획이 산악회의 사정으로 인해 갑자기 코스가 바뀐 탓에 사전준비를 할 수 없었다는 핑계로 작은 위안을 삼을 뿐이다. 그나저나 정상으로 향하면 잠시 후에 바위벼랑 앞에 이르게 되고 산길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벼랑 아래를 따르다가 8분 후에는 가삽고개(이정표의 휴양림 방향)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1,2,30.1Km/ 10.3Km, 약수터 0.3Km/ 휴양림 3.2Km)에 이르게 된.

 

 

 

삼거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갑자기 바윗길로 변한다. 그것도 수직(垂直)에 가까울 정도로 서슬이 시퍼렇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안전로프나 철제 난간이 설치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바위에다 쇠로 만든 받침대까지 박아두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바윗길의 위험성까지 없어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저 조심할 경우 큰 어려움 없이 오르내릴 수 있다는 얘기였을 따름이다 

 

 

밧줄이나 난간에 매달려 수직에 가까운 벼랑을 두어 번 치고 오르면 2,3봉 갈림길(이정표 : 2,3/1/ 휴양림), 1봉으로 가려면 철제난간에 의지해서 다시 안부로 내려서야 한다. 이곳에서는 2.3봉을 먼저 둘러보고 1봉으로 갈 것을 권하고 싶다. 그럴 경우에는 1봉에서 반대편으로 내려가 아까 놓쳤던 약수터를 들러 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고 시원하다는 석간수(石間水)를 마셔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먼저 2,3봉을 들러보자는 집사람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난 1봉으로 향한다. 그게 내 두 번째로 잘못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난 물맛을 보지도 못하였음은 물론, 특히 올라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가야만 하는 바보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 1(정상)을 둘러보고 난 뒤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2,3봉 갈림길에서 안부로 떨어졌다가 다시 한 번 수직의 벼랑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가리산 정상이다. 다시 말해 정상을 형성하고 있는 거대한 3개의 바위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선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50분이 지났다. 사방이 서슬 시퍼런 낭떠러지로 이루어진 정상은 5~6펼 남짓한 분지(盆地)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작고 귀여운 정상표지석과 이정표(샘터휴양림 하산로/ 2,3), 그리고 삼각점(내평 11-1988재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정표를 보면 하산로를 샘터방향으로 표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난 샘터를 경유해서 이곳으로 올라와야만 했다. 그런데도 난 반대방향으로 올라왔던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사전준비가 부족했던 내 탓이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참고로 가리산은 산봉우리의 생김새가 마치 곡식을 쌓아 놓은 노적가리처럼 깔때기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2봉과 3

 

 

정상에 서면 일망무제(一望無題)의 조망(眺望)이 펼쳐진다. 서쪽으로 골짜기 깊숙이까지 파고든 소양호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고, 시선을 돌리면 북에서 남으로 향로봉에서 설악산을 거쳐 오대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비롯한 강원 내륙의 고산준령(高山峻嶺)들의 웅장한 풍모를 쉽게 감상할 수 있다. 발아래에 아까 산행을 시작했던 가리산휴양림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음은 물론이다. ‘강원 제1의 전망대라는 칭찬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아까 지나왔던 ‘2,3봉 갈림길로 돌아와 이번에는 2,3봉으로 향한다. 갈림길에서 몇 걸음만 더 오르면 바위전망대이다. 바위에 서면 사람의 얼굴을 쏙 빼다 닮은 바위가 하나 나타난다. 옆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니 큰바위 얼굴이라는 어엿한 이름가지 갖고 있다. 조선 영조시대에 이곳에서 공부하던 선비가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고 이어서 벼슬이 크게 오르자 호연지기를 키우던 2봉의 바위가 점차 사람의 얼굴로 변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큰바위 얼굴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너새니얼 호손 (Nathanier Hawthorne, 1804~1854)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Great Stone Face)과 흡사한 내용이다. 비록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만들어낸 허구일지는 몰라도 얼마나 재미있는 이야기인가. 다른 지자체들도 본받을만하다고 생각된다.

 

 

 

전망대에서 또 다시 몇 걸음만 더 올라서면 2봉 정상이다. 정상표지석은 물론이고 이정표 하나 없이 텅 비어있는 정상은 특별한 볼거리도 없다. 조망까지도 1봉이나 3봉에 비해 한참이나 뒤떨어진다. 그저 코앞에 있는 1봉과 3봉의 자태나 바라보다 이내 3봉으로 발길을 옮긴다.

 

 

2봉에서 짧게 내려섰다가 반대편 바위벼랑을 다시 한 번 치고 오르면 3봉 정상, 이정표(이정표(1100m, 2300m)가 정상표지석을 대신하고 있다. 비록 거리표시가 엉망으로 되어있지만 말이다. 3봉에서의 조망(眺望)은 뛰어나다. 1봉 쪽이 조금 답답할 뿐 나머지 방향은 시원스럽게 시야(視野)가 열리기 때문이다. 암릉과 노송(老松)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1봉의 멋진 풍광을 감안할 경우에는 1봉에서의 조망보다 한층 더 뛰어나다고 볼 수도 있다. 하긴 이런 볼거리가 있어서 홍천 9()’ 중 제2경으로까지 선정되었을 것이다.

 

 

 

 

 

3봉까지 다 둘러봤다면 이젠 다시 아까의 가삽고개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났던 삼거리로 되돌아올 차례이다. 3개 봉우리를 다 둘러보는데 걸린 시간은 50,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 셈이다. 이는 그만큼 구경거리가 많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삼거리에서 이번에는 휴양림 방향으로 진행한다. 평탄한 길을 따라 6분쯤 걸으면 왼편으로 길 하나가 나뉜다(이정표 : 휴양림 하산로/ 소양호 뱃터/ 정상). 물로리로 내려가는 길로서, 이 길로 내려가서 소양호()의 배편을 이용하여 춘천으로 나가는 방법도 있으니 참조할 일이다. 다만 배편이 하루에 3번뿐이니 배 시간을 미리 알아두고(전화 : 033-241-4833) 이용해야 할 일이다.

 

 

물로리 갈림길에서 또 다시 15분 정도를 더 걸으면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길이 나뉜다.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까지 오는 산길은 시쳇말로 고속도로 수준, 그만큼 넓고 평탄하다는 얘기이다. 이런 길은 조금 후에 만나게 될 새덕이봉까지 이어진다. 가리산의 메인(main) 등산로라서 그럴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지도(地圖)에서는 이 지점을 가삽고개라고 표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가삽고개 0.3Km, 휴양림 6.3Km/ 휴양림 3.1Km/ 가리산 0.9Km)는 이곳에서 300m 정도 더 진행하면 만나게 되는 새덕이봉을 가삽고개로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뭔가 하나로 통일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능선은 온통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길 정도로 웃자란 진달래나무들이 점령하고 있다. 아직은 꽃몽오리도 열지 않고 있지만 만일 제철에라도 찾아온다면 진달래꽃 터널을 통과하는 호사(豪奢)를 누릴 수도 있겠다. 그래서 봄철 산행의 최적지로 가리산을 꼽고 있나보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변 산세(山勢)와 어우러져 더 큰 아름다움을 발하는 꽃이 바로 진달래이기 때문이다.

 

 

가삽고개에서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15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새덕이봉, 즉 지도에 936m봉으로 표기된 지점에 올라서게 된다. 밋밋한 흙봉우리인 새덕이봉 정상은 산의 정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약간 솟아오른 능선상의 한 지점으로 보는 게 더 옳을 정도로 봉우리답지가 않다. 물론 정상표지석 등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는 어떤 시설물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만일 서래야 박건석님께서 나무에 매달아 놓은 정상표시 코팅지만 아니었더라면 십중팔구 이곳이 정상인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새덕이봉에서 산길은 두 갈래(이정표 : 원동고개 4.0Km/ 휴양림 2.5Km/ 가리산 정상 2.2Km)로 나뉜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갈 경우 휴양림으로 내려가게 된다. 물론 내려가는 길에 등골산을 다녀올 수도 있다. 그리고 왼편은 춘천지맥으로 가는 길이다. 날머리를 홍천고개(원동고개)로 잡은 우리 부부는 왼편 원동고개 방향으로 내려선다.

 

 

홍천고개 방면의 하산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산길은 어느 곳 하나 능선의 정 중앙을 연결시키지를 못하고 모든 곳에서 산허리의 사면(斜面)를 헤집으며 길을 만들어내고 있다. 거기다 사면의 경사(傾斜)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것이 거의 벼랑 수준이다.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수십 미터 아래까지 굴러 떨어져 큰 부상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태로운 사면길이 다음 안부에서는 잠깐이나마 능선과 만난다는 점이다. 그래봐야 잠시 후에는 또 다른 사면길을 밟아야 하지만 말이다.

 

 

 

위험천만한 사면길은 50분 가까이나 계속된다. 지루해질 만한 시간이지만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런 느낌이 차라리 호사롭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을 졸이며 걸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시간이 되면 산길이 능선의 중앙으로 되돌아오고, 이후부터는 사면으로 되돌아가지를 않는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등잔봉에 올라서게 된다. 새덕이봉 갈림길에서 등잔봉까지는 1시간이 걸렸다.

 

 

등잔봉을 오르기 전부터 트이기 시작한 시야(視野)는 시멘트 덩어리에 삼각점의 흔적만 있는 등잔봉 정상에서 극에 달한다. 비록 벌목(伐木)이 된 오른편 방향뿐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바위봉우리로 이루어진 가리산의 웅장한 자태를 조망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등잔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오르막이 거의 없는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산길은 능선의 중앙을 따라 연결된다. 그렇다고 해서 사면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두어 곳에서 잠깐씩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 거리가 짧을 뿐만 아니라 경사(傾斜)까지 완만하기 때문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따름이다. 능선은 참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탓에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물론 조망도 트이지 않는다. 그러나 볼거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생강나무들이 흐드러지게 꽃을 피우고 있고, 길가 진달래는 이제 막 꽃몽오리를 열려하고 있는 중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길가에는 기이하게 자라난 나무들도 눈요깃감으로 한몫을 하고 있다. 새로운 볼거리들에 눈길을 맞추며 걷다보면 저만큼 아래에 홍천고개로 오르는 도로가 내려다보인다.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따로 없을 정도로 구불대고 있다. 도로가 보이면 이제 다 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산행날머리는 홍천고개(일명 원동고개)

큰 변화가 없이 편안하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리는 산길을 따라 얼마간 더 걸으면 홍천고개에 내려서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홍천고개는 홍천군 두촌면의 원동리와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를 잇는 고갯마루이다. 불구불 힘겹게 꿈틀거리고 나서야 겨우 올라설 수 있는 험준하기 짝이 없는 이 고갯마루는 춘천에서 홍천으로, 그리고 홍천에서 춘천으로 넘나드는 산골마을 사람들의 생존의 길이다. 홍천고개 너머 산길을 굽이굽이 넘어가면 그곳 소양호 주변에 춘천시에 속한 조교리와 물로리, 그리고 품걸리 마을이 자리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소양댐 선착장에서 떠나는 뱃길이 열리기 전, 이 고갯마루를 넘어 춘천 장터와, 홍천 장터를 오고갔다. 옛 사람들은 고개를 넘어 식구들의 안부를 전하고, 나물을 팔고 생필품 몇 개 사들고 이곳에서 가쁜 숨을 다스렸을 것이다. 그리고 이웃과 만나 땀을 훔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을 것이다. 오늘 산행은 정확히 5시간이 걸렸다. 간식을 먹느라 중간에서 쉬었던 시간을 감한할 경우 4시간45분이 걸린 셈이다.

삼악산((三岳山, 654m)

 

산행일 : ‘12. 10. 9()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서면

산행코스 : 의암매표소산장상원사깔딱고개전망대정상(용화봉)333계단흥국사등선폭포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가족산행

 

특징 : 삼악산은 경춘선 철길 주변의 산행지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거칠고 화려한 산세(山勢)와 그 주변을 휘감은 의암호와 북한강의 탁월한 풍광이 압권이다. 세외선경(世外仙境)을 방불케 하는 등선폭포 협곡(峽谷)과 선조들의 유적지까지 고루 갖추고 있으니 사철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삼악산은 흥국사를 가운데 두고 주능선이 사각형으로 둘러 선 형태다. 이 능선의 안쪽은 완만한 경사의 분지(盆地)가 형성되어 있고, 바깥쪽은 수직절벽이거나 급경사(急傾斜) 바위지대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을 갖췄기에 삼한시대의 맥국(貊國)이나 태봉국의 궁예(弓裔)가 이곳에다 터를 잡았을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의암(삼악산장)매표소

서울-춘천고속도로 강촌 I.C에서 내려와 403번 지방도와 46번 국도(國道 : 경춘가도)를 연이어 타고 달리다 의암교를 건너기 바로 직전 의암교차로에서 오른편으로 빠져나온다. 이때 빠져나오는 갈림길이 1차선이라서 까딱 잘못하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니 이정표를 살펴보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 될 것이다. 근처 지리에 제법 익숙하다고 자신했던 나도 깜빡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일단 교차로를 빠져나오면 외길이니 그 다음부터는 걱정할 일이 없다. 의암댐의 호안(湖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의암매표소 앞에 이르게 된다. 다만 하나 주의할 점은 매표소 근처에 주차장이 없다는 것이다.

 

 

 

매표소(1인당 1,600) 앞을 지나 산자락으로 들어붙으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삼악산을 오르는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등선폭포를 들머리로 하고 의암댐 방면을 날머리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린 의암 매표소’, 그러니까 상원사 쪽을 들머리로 택했다. 하산을 하는 길에 계곡에 들어가 발이라도 담가보려는 목적에서 이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이유는 오늘 산행에 초보자가 한 명 끼어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의 여자 친구인데 산행에 거의 문외한(門外漢)이라는 것이다. 이미 결혼(結婚) 날짜까지 받아 놓았는지라 이번 가족 산행에 포함시키긴 했지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바람에 스치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귀한 예비 며느리가 혹시라도 다칠 가 보아서이다.

 

 

가파른 산길을 따라 10분 조금 못되게 오르면 삼악산장(이정표 : 상원사 0.4Km/ 매표소 0.2Km)이 나온다. 하얀색 양옥으로 지어진 건물이 여간 예사롭지가 않다. 아니나 다를까 박정희대통령 시절 별장(別莊)으로 지어진 것이란다. 1967년에 지어진 건물이라 오래되었지만 등산객들에게는 아직까지도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단다. 지금은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풍광이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을 보니 금··일요일에만 문을 연다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건물 앞에 서면 시야(視野)가 트인다. 멋지게 생긴 명품 소나무 가지 아래로 의암호가 살포시 나타난다. 그리고 그림 같은 의암호의 풍경 너머에서는 호반(湖畔)의 도시 춘천이 넌지시 손짓을 하고 있다.

 

 

 

산장을 지나서도 가파른 오르막길은 계속된다. 올라갈수록 점점 바위협곡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바윗길의 농도(濃度)가 점점 더 깊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15분 정도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면 만나게 되는 긴 돌계단을 마지막으로 치고 오르면 거대한 암벽(巖壁)에 둘러싸인 상원사(이정표 : 깔딱고개 0.35Km, 정상 1.3Km/ 매표소 0.65Km)가 길손을 맞는다.

 

 

 

 

상원사(上院寺)는 대웅전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채가 전부인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의 자그마한 사찰(寺刹)이다. 그러나 절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창건연대가 신라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천년고찰(千年古刹)인 것이다. 허나 그 이후의 연혁(沿革)이 전해지지 않는 점은 못내 아쉽다. 앞으로 우리네가 밝혀야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이후 조선 후기 화재로 소실(燒失)되었던 것을 1858년 금강산에서 내려온 풍계(楓溪)가 상원사의 암자이던 고정암(高精庵)을 중건하여 절 이름을 상원사로 바꿨고, 6·25전쟁 때 다시 불에 타 없어졌던 것을 주지인 보련(寶蓮)스님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절에 있는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산행을 이어간다. 삼악산은 산에서 마실 물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없는 산이다. 들머리를 의암호나 등선폭포 등 어디로 삼던지 간에 조금 후에 상원사나 흥국사 등의 사찰을 만나게 되는데 절에서 식수(食水)를 보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원사를 출발하자마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깔딱고개(이정표 : 정상 0.96Km/ 상원사 0.35Km, 매표소 1.0Km)까지는 대략 10분 남짓의 거리, 그러나 오르는 것은 만만치 않다. 한겨울에도 땀이 난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가파르기 때문이다.

 

 

 

 

깔딱고개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바윗길이 시작된다. 허리를 곧추세웠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발딱 일어선 바윗길은 험하기 짝이 없다. 그런 능선을 줄곧 올라야하기 때문에 곳곳에 쇠밧줄과 발 디딤쇠그리고 철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만일 그런 시설물들이 없었더라면 아마추어 산꾼들은 아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그러나 위험한 만큼 그에 대한 보상도 크다. 오르다가 잠시 고개라도 돌릴라치면 어김없이 의암호와 춘천시내가 나타나는데, 그 풍광(風光)이 가히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의암호의 호수(湖水) 위에는 붕어섬과 중도, 그리고 위도 등 자그만 섬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바위벼랑 위에 선 둘째와 여친, 그 다정한 모습이 한없이 아름답고 한껏 피어나는 풋풋함이 주위까지도 신선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 아들아 사랑이란 게 별거 아니란다. 육십갑자(六十甲子)가 넘게 살아온 내 경험에 의하면 스킨십(skinship)과 립서비스(lip-service)’ 이들 두 가지만 놓치지 않는다면 사랑이 식을 일은 결코 생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붙잡아주고 이끌어주는 것이 스킨십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며 칭찬해주는 것이 립서비스이니 어려울 것이 어디 있겠느냐. 앞으로도 오늘의 감정을 잊지 말고 알콩달콩 사랑하며 무지무지 행복하게 살아가기 바란다.

 

 

 

 

아까 올라왔던 길의 가파름은 이해가 간다. 깔딱고개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오르고 있는 고개는 무어란 말인가. 깔딱고개보다 더 가파르고 더 험하니 말이다. 깔딱고개에서는 두발로 걷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두발은커녕 네발로 기어서야 겨우 오를 수 있으니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경사(傾斜)가 기운 만큼 몸을 숙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코가 바위에 닿을 지경에까지 이른다. 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가픈데, 바위에 닿았던 숨이 다시 되돌아와 코끝을 스친다. 무슨 냄새인지 가늠이 안 되는 향기가 진하다.

 

 

 

 

산을 오르다보면 심심찮게 탄성을 들을 수 있다. 곳곳에서 터지는 조망(眺望)이 너무나 화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느라 여념들이 없다. 그들이 배경으로 삼는 것은 하나같이 의암호, 비록 선명하게 나타나지는 않지만 의암호에 떠있는 붕어섬과 중도는 물론 춘천시가지가 널따랗게 펼쳐지고 있다. 가슴이 탁 터지는 풍경이다.

 

 

 

설설 기는 둘째의 여친이 보면 볼수록 귀엽다. 아직은 며느리가 되기 전이니 용감한 것보다는 저렇게 약한 모습이 더 보호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절부절 못하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집사람의 옛 모습이 떠오른다. 집사람이 불암산의 암벽(巖壁)에 처음으로 도전했던 날, 벼랑의 중간쯤에 매달린 그녀는 올라가지도 그렇다고 다시 내려오지도 못하는 채로 크랙(crack)을 붙잡고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난 죽을 고생을 하며 벼랑 위로 올려놓았다. 쉽게 생각하고 하네스(harness)와 자일(seil) 등 암벽장비를 챙겨가지 않은 탓에 맨몸으로 목숨을 걸어야 했을 정도이니 집사람이나 나나 할 것 없이 그때의 추억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지금은 웬만한 암벽은 거침없이 오르내리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랄까? 아무튼 우리 예비 며느리도 언젠가는 내 집사람 같은 강철녀로 변할 날이 있을 것이다.

 

 

 

삼악산은 우리 문학계(文學界)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 신소설(新小說)로 알려진 이인직의 귀의 성의 주요 무대가 바로 삼악산이기 때문이다. 서울로 시집간 춘천댁이 본처의 질투로 죽음을 당한 뒤 삼악산에 묻혀 봄만 되면 새가 되어 구슬프게 운다는 내용이다. 이런 산을 그저 오르기에만 급급하지는 말자. 가끔 귀를 기울이면 새소리라고 들려올지 어찌 알겠는가. 그리고 그 새소리 속에 춘천댁이 전하는 메시지(message)라도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바윗길은 거의 9부 능선쯤 가서야 끝이 난다. 깔딱고개를 나선지 1시간 조금 못되면 동봉(635m)에 올라서게 되고, 이곳에 이르고서야 겨우 바윗길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동봉 정상에는 전망데크가 만들어져 있다. 삼악산에서 가장 조망(眺望)이 좋은 곳인지라 이를 즐기려는 등산객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전망대에 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 환상적인 의암호, 그 가운데에 중도와 붕어섬이 떠 있고 그 뒤에는 춘천시가지가 펼쳐진다. 물론 시가지의 중앙에 자리 잡은 봉의산도 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을 경우에는 대룡산과 가리산, 구봉산, 사명산, 오봉산, 용화산 등 춘천을 감싸고 있는 명산들이 눈에 들어오겠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시계(視界)가 트이지 않는다. 그저 데크에 설치되어 있는 조망도(眺望圖)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동봉에서 잠깐 내려섰다가 맞은편 능선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삼악산의 정상인 용화봉에 올라서게 된다. 삼악산은 이 용화봉과 청운봉(546m) 그리고 등선봉(632m)을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50분이 조금 못 걸렸다. 둥그렇게 융기한 형태의 정상은 각진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석은 물론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세워져 있다. 정상은 몰려드는 인파(人波)로 몸살을 앓고 있다. 덕분에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5분 가까이를 기다려야만 했다.

 

 

 

떡갈나무로 둘러싸인 정상은 의외로 조망(眺望)이 시원치 않다. 삼악산의 자랑인 의암호와 춘천시가지가 나무들로 인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호수 왼편의 산군(山群)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마 계관산과 북배산을 잇는 능선일 것이다.

 

 

 

정상에서 길은 두 갈래(이정표 : 등선폭포 3.2Km/ 삼악산성 0.8Km/ 의암댐(상원사) 1.8Km)로 나뉜다. 오른편은 삼악산성(三岳山城)이 있는 청운봉으로 가는 길, 우리는 왼편 등선폭포 방향으로 내려선다. 초보자가 낀 산행을 무리하게 진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정상을 지나면서 산길은 딴판으로 변한다. 상원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는 험한 바위 중심의 남성적 모습이었던데 반해, 등선폭포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부드러운 육산(肉山)의 여성적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정상에서 10분쯤 내려가면 정상어림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너른 분지(盆地)가 나타난다. 큰초원(이정표 : 등선폭포 2.2Km/ 정상 0.8Km)이라는데 벤치(bench) 등을 갖춘 쉼터로 조성해 놓았다.

 

 

큰초원에서 다시 10분 남짓 내려오면 길고 긴 돌계단이 나타난다. 그 계단의 숫자는 자그마치 333, 그래서 이름도 ‘333계단이다.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코에서 품어져 나오는 열기가 대단한 걸 보면 길기는 긴 모양이다. 333계단을 내려서서 조금 더 진행하면 이번에는 작은초원(이정표 : 등선폭포 2.1Km/ 정상 1.0Km)이다. 그러니까 큰초원과 작은초원 사이에 333계단이 있다고 보면 된다.

 

 

 

 

작은초원에서 10분 조금 넘게 내려오면 오른편 언덕 위에 올라앉은 사찰하나가 나타난다. 바로 한 나라가 망하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흥국사(興國寺)이다. 흥국사는 894년경 궁예(弓裔)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寺刹)로서, 고려시대에는 제법 큰 규모였다고 하나 지금은 조그마한 암자(庵子)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궁예가 왕건을 맞아 싸운 곳으로, 궁예는 이곳 터가 함지박처럼 넓으므로 궁궐(宮闕)을 지었다고 한다. ()데기라는 곳에서 기와를 구워서 사용했으며, 궁궐을 지은 뒤 흥국사를 창건하고 나라의 재건(再建)을 기원하였다는 것이다. 정상에서 흥국사까지는 4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흥국사를 빠져나오면 손으로 직접 빚은 손두부를 판다는 털보산장이 나오고, 곧이어 삼거리를 만난다. 오른쪽은 청운봉에서 내려오는 길, 등선폭포는 왼편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이곳 삼거리에 세워진 안내판 하나가 눈길을 끈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50호로 지정된 삼악산성지(三岳山城址)에 유래를 적어 놓았다. 삼악산(三岳山)은 삼국시대 이래로 강원도 지역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관문(關門) 중의 하나로 중요 요충지였던 탓에 크고 작은 전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청운봉과 능선을 따라 성()터가 남아 있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산성터에 대해서는 삼국시대 이전의 것이라는 의견과 궁예가 철원으로 도읍을 정한 뒤 쌓은 것이라는 의견이 대립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확실한 역사적(歷史的)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설()은 맥국(貊國)의 성터였던 것을 태봉국의 궁예가 왕건에게 패한 뒤 이곳에 패잔병들과 함께 숨어들어 주능선을 따라 5를 축조(築造)했다는 설이다. 조금 전에 지나온 흥국사는 당시 이 성을 지키는 본영(本營) 역할을 하였다고도 한다.

 

 

삼거리를 지나면서 산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그리고 그 계곡은 갈수록 깊어진다. 일반적으로 계곡은 산으로 들어 갈수록 깊어지는 게 보통인데 의외이다. 갈수록 깊어지던 계곡은 협곡(峽谷)으로 변하면서 끝내는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버린다. 우리가 그동안 보아왔던 풍경과는 또 다른 별천지(別天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함께 걷고 있는 둘째와 여친의 입이 한번 열리더니 끝내 닫힐 줄을 모른다. 협곡이 만들어내는 이색적인 풍광이 젊은이들의 눈에도 신비롭게 보였던 모양이다.

 

 

등선폭포 계곡은 빙하시대에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만들어진 협곡(峽谷)이다. 협곡을 따라 연이어 만들어진 폭포(瀑布)와 연담(淵潭)들은 층층마다 모양을 달리한다. 깎아지른 듯 양쪽이 패어 만들어진 절벽은 하늘벽을 이루고, 절벽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손바닥보다 작다.

 

 

등선폭포(登仙瀑布), 절벽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삼악산에는 크고 작은 폭포(瀑布)가 많은데, 그 가운데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협곡(峽谷) 속에 숨어있는 높이 10m의 등선폭포이다. 선녀와 나무꾼 전설(傳說)이 전하는 선녀탕과 절벽(絶壁)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기 때문에, 수도권 주말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名所)이다.

 

 

산행날머리는 등선폭포주차장

내려가는 길에 잠깐 계곡에 내려가 산행에서 흘린 땀을 씻는다. 시원하다. 그 시원함에 빠져 아예 머리까지 감아버린다. 그런 내 모습이 둘째의 여친 눈에도 시원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냉큼 신발을 벗고 발목까지 차도록 물속에 담그는 것을 보면 말이다.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다가 또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데 반대편에서 큰아들 내외와 소진이네 신랑이 아들을 데리고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산행에 소질이 없는지라 강촌유원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잠깐 올라와보는 것이란다. 오늘은 우리집안의 가족행사. 산행을 마치고 춘천의 명물인 닭갈비로 만찬을 즐길 계획이다. 그래서 가족 모두를 소집해 놓았고 그 집결장소가 바로 등선폭포이다. 오랜 시간과 물길이 다듬어 놓은 풍경들을 천천히 감상하며 내려서면 거대한 벽 사이, 마치 속세(俗世)로 나가는 석문(石門)을 지나듯 길이 나있다. 저만치 밝은 햇살이 눈부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등선폭포 매표소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에 걸린 시간은 총 3시간45분이지만 초보자와 함께 한 산행이라서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어느 정도의 산행경력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3시간을 넘기지 않고도 산행을 마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뿔산(1,118m)

 

산행일 : ‘14. 9. 6()

소재지 :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두촌면과 인제군 남면의 경계

산행코스 : 청정조각공원휴게소가마봉신흥동안부달음재갈림길범의터갈림길소뿔바위소뿔산통신기지군용도로갑둔리오층석탑갈림길446번 지방도(산행시간 : 5시간 30)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산악회

 

특징 : ‘해도 해도 너무하다소뿔산을 표현할 때 이보다 더 나은 말이 있을까 싶다. 산이 험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니 위험한 곳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너무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오르는 사람들을 너무나 고생시키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우선 능선에는 봉우리들이 너무 많다. 큰 봉우리에서 다음의 큰 봉우리로 가는 중간에도 수많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려야 한다. 그런데 그 봉우리들 사이의 골이 하나 같이 깊다는 것이 문제이다. 때문에 엄청나게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오르고 난 후부터는 오르내림이 그다지 크지 않은 능선으로 연결되는 보통의 산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다. 때문에 12.1Km라는 그다지 길지 않은 거리를 완주하는데 6시간 가까이나 걸렸다. 아무튼 정맥이나 지맥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볼 필요가 없을 듯 싶다(사실 소뿔산은 영춘지맥의 일부구간이다). 고생만 죽어라고 했지 볼거리라곤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흙산의 특징이다.

산행들머리는 청정조각공원휴게소(인제군 남면 어론리)

춘천-동홍천고속도로 동홍천 I.C에서 내려와 44번 국도(國道)를 따라 인제방향으로 달리다보면 홍천군과 인제군의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인 건니고개에 이르게 된다. 건니고개에는 커다란 휴게소가 하나 있다. 남성의 성기(性器)를 해학적(諧謔的)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전시해 놓은 것으로 유명한 청정조각공원휴게소이다.

 

 

 

휴게소에는 다산(多産)과 풍요(豊饒)를 기원하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남근상(男根像)들 외에도 각양각색의 장승들을 세워 놓았다. 장승은 마을의 이정표와 수호신(守護神)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샤머니즘(shamanism) 문화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는 장승은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영생(永生)을 의미하는 장생불사(長生不死)의 도사상(道思想)에서 따온 장승이란 이름은 현대에 와서도 다양한 이름과 모습으로 전국에 산재해 있다. 각 지방의 향토색(鄕土色)을 더하면서 말이다. 참고로 이곳 조각공원에 전시된 작품들은 화양 고명규화가가 제작한 것들이란다.

 

 

휴게소로 들어오는 진입로 입구에서 오른편 언덕을 치고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자락으로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군인(軍人)들이 파놓은 참호(塹壕)이다. 그것도 한두 곳이 아니고 여러 개가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군사적(軍事的)으로 꽤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근처에 불법출입이나 시설물을 훼손할 때에는 법()에 의해 처벌하겠다는 서슬 시퍼런 경고판(警告板)까지 세워져 있다. 경고판을 세운 주체는 과학화 훈련단(KCTC), 과학적으로 모의전투 훈련을 실시하는 곳이다. 전자감지(電子感知) 센서(sensor)가 달린 장구를 착용하고 전투훈련을 하는 일종의 서바이벌게임(survival game)이라고 보면 된다.

 

 

 

 

산길은 그다지 급할 것이 없다는 듯이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는 길이 이어지다가 다음에는 평탄해지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그러다가 30분 후에는 첫 번째로 봉우리다운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여기까지 오는 길은 최근에 정비를 해 놓은 것처럼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아마 군()이 훈련장소로 이용하면서 닦아 놓은 모양이다. 그러나 볼거리는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주변이 온통 참나무로 뒤덮여 있어 완벽하게 시야(視野)를 차단해버리기 때문이다.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산세(山勢)라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신 시선을 아래로라도 깔라치면 의외의 볼거리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록 작은 소품들에 그치지만 각양각색의 야생(野生)버섯이나 야생화들이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봉우리를 지나면서 서서히 산세(山勢)가 변하기 시작한다. 산이 점점 가팔라지고 능선에는 온통 크고 작은 봉우리들로 가득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봉우리들 사이의 골이 점점 깊어지기 시작한다. 오늘 산행의 대부분, 그러니까 거니고개에서 통신탑이 있는 봉우리까지의 구간은 **)영춘지맥을 따라 걷게 된다. 영춘지맥이 그 앙칼진 성깔을 내보이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록 딱 한번이지만 시야(視野)가 트인다는 것이다. 너무 고생시키는 것이 조금은 미안했던 모양이다. 길에서 약간 벗어난 전망바위에 서면 홍천군 두촌면 방향의 풍경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 영춘지맥(寧春枝脈), 영월지맥과 춘천지맥 두 지맥(枝脈)을 합한 산줄기를 말한다. 그러니까 한강기맥(漢江岐脈) 상에 있는 청량봉(1,052m)에서 북쪽으로 분기(分岐)하여 응봉산, 백암산 등을 만든 후 봉화산, 새덕봉을 거쳐 춘천의 경강역 뒤편 북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25km의 산줄기인 춘천지맥과 한강기맥 상에 있는 삼계봉(1,065m)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하여 태기산, 덕고산 등을 만들고 치악산, 감악산을 거쳐 영월의 태화산 아래 남한강에서 그 숨을 다하는 약 136km의 산줄기인 영월지맥을 합하는 산줄기라는 말이다. 두 지맥이 갈리는 한강기맥의 청량봉에서 삼계봉까지의 구간을 위의 두 지맥에 합하면 총 도상거리는 약 270km에 이르게 된다. 수많은 지맥 중에서 가장 길다고 보면 된다.

 

 

 

첫 번째 봉우리에서 50분 조금 못되게 높고 낮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다보면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지키고 있는 작은가마봉에 올라서게 된다. 서너 평쯤 되는 너른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은 잡초(雜草)와 야생화가 무성하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시원치 않다. 사방을 잡목(雜木)들이 둘러싸고 있는 탓이다. 억지로라도 보고 싶다면 잡목들 헤쳐보자. 설악산 방향으로 응봉산 등 수많은 산군(山群)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물론 동쪽에는 소뿔산의 두 봉우리들이 선명하다  

 

 

 

작은가마봉에서 가파르게 내려서면 첫 번째 안부가 나온다. 혹시 신흥동 안부가 아닐까 주위를 둘러봤지만 갈림길은 보이지 않는다. 신흥동 안부는 이곳에서도 또 하나의 제법 높은 산봉우리를 넘고 난 후에야 이르게 되는 것이다. 작은가마봉을 출발한지 30분이 지난 지점이다. 안부에서 길이 좌우로 나뉘지만 신흥동으로 내려가려면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지금 걷고 있는 산은 오지(奧地)의 산들 중의 하나다. 때문에 소뿔산도 전형적인 오지 산의 특징을 그대로 나타낸다. 볼거리가 없는 대신에 원시(原始)의 숲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원시에 숲에는 인간들이 경외(敬畏)감을 갖도록 하는 풍경들을 많이 갖고 있다. 소뿔산에도 그런 풍경들이 없을 리 없다. 오랜 세월동안 세파(世波)에 시달리면서 기괴(奇怪)하게 자란 나무들이 선을 뵈는가 하면 억겁(億劫)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하는 생명도 나타난다. 그런 나무들의 삶에서 내 삶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해 본다.

 

 

 

부지런한 단풍나무는 벌써부터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신흥동 안부를 지나서도 산봉우리들은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봉우리들은 서서히 그 높이를 높여 간다. 가파른 산길을 올라서면 860m, 잠깐 내려섰다가 간간히 나타나는 바위들을 피해가면서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1,044m봉이다. 1,044m봉에서는 제법 깊게 내려서게 된다. 이어지는 산길은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거기다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이 흡사 초가집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힘들어하는 것은 우리부부들뿐만이 하닌 모양이다. 보이는 이마다 얼굴표정이 우거지상()인 것을 보면 말이다.

길가에 금줄이 쳐진 것으 보면 아마 약초재배지인 모양이다.

 

 

신흥동 안부를 출발한지 1시간 하고도 10분을 훌쩍 넘기고서야 달음재 갈림길이 있는 1076m봉에 올라서게 된다.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린 것은 그만큼 산길이 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위험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르고 내리는 산길이 어느 것 할 것 없이 길고 가파르다는 얘기이다. 삼각점(어론24)과 이정표(소뿔산 1.9Km/ 달음재 2.9Km/ 가마봉 4.8Km)가 있는 1076m봉은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조망(眺望)이 뛰어나다. 점봉산과 주걱봉, 그리고 가리봉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뒤에는 설악산과 방태산 줄기가 보인다.

 

 

 

 

1076m봉에서 잠깐 내려섰다가 산길은 다시 가파르게 변하면서 맞은편 봉우리로 향한다. 지도(地圖)상에 암봉이라고 나와 있는 산봉우리이다. 암봉이라고 해서 바위로 이루어진 봉우리는 아니다. 그저 다른 봉우리들에 비해 바위가 차지하는 비중이 조금 더 높을 따름이다. 다른 봉우리들이 하도 바위가 없다보니 이 정도만 갖고도 암봉이라는 칭호를 얻었나 보다. 암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기 짝이 없다.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았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일 정도로 가파른 것이다. 오늘 산행에서 유일하게 안전로프가 매달린 구간이다.

 

 

 

암봉에서 내려서면 만나게 되는 산죽(山竹)길을 따라 걷다보면 15분쯤 후에는 안부삼거리(이정표 : 소뿔산 0.9Km/ 범의터 1.9Km/ 달음재 3.9Km)에 이르게 된다. ‘범의터 갈림길로서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할 경우 범의터로 내려가게 된다.

 

 

 

범의터 갈림길을 지나면서 지긋지긋한 오르막길이 또 다시 시작된다. 온통 산죽으로 뒤덮인 가파른 오르막길을 15분 정도 치고 오르면 오른편에 거대한 바위 하나가 나타난다. 소뿔바위이다. 산행대장의 말로는 흔들바위라고 했는데 밀어봤지만 바위가 끄떡도 하지 않은 걸 보면 흔들바위라는 표현은 옳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소뿔바위의 끝에 서면 조망(眺望)이 시원스럽다. 건너편에 위치한 불루마운틴 C.C이 한눈에 잘 들어오고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산은 아마 고양산일 것이다. 소뿔바위는 바위의 생김새가 귀를 쫑긋하니 세운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이 바위가 위치한 소뿔산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뿔바위라는 이 바위의 이름으로 인해 소뿔산이라는 이름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소뿔산이라는 이름은 소뿔과 같이 2개의 봉우리가 봉긋하게 솟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소뿔바위를 지나서도 또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과의 힘겨운 싸움이 계속된다. 아니 비록 잠시이지만 평탄한 길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순한 길은 금방 끝나버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가파른 오르막길인 것이다. 그렇게 힘겨운 싸움을 벌이다보면 15분 정도 후에는 드디어 능선의 분기점인 소뿔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50분이 지났다.

 

 

소뿔산 정상은 평범하기 짝이 없다. 정상이 구릉(丘陵)처럼 평탄한 것이 우선 정상이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 중앙에 세워진 이정표(범의터 3.6Km/ 달음재 4.8Km/ 등산로 아님)를 겸한 정상표지판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일 것이다. 물론 조망도 일절 트이지 않는다. 울창한 참나무 숲이 정상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다음에 오르게 될 통신탑이 있는 봉우리로 가기 위해서는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범의터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범의터 방향의 하산길은 완만(緩慢)하게 시작된다. 그러나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서 산길은 서서히 가파르게 변해간다. 산죽(山竹)과 양치식물(羊齒植物)이 연이어 나타나는 산길을 따라 20분 남짓 내려서면 안부에 이르게 된다.

 

 

안부를 지나면서 산길은 엄청나게 가팔라진다. 아니 생각보다는 가파르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너무나 지쳐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얘기이다. 집사람의 얼굴표정은 이미 초죽음이다. 집사람의 평소 체력은 4시간짜리 산행이 적당한 편이다. 그런데 오늘 산행은 이미 4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거의 한계수준에 다다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니 한계를 이미 초과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 같다.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여름날인데다, 봉우리들의 높낮이 차()까지 크다보니 보통 때보다 갑절이나 더 힘이 들기 때문이다. ‘힐링(Healing)을 온 거 맞나요? 아니면 스트레스(stress)를 받으러 왔나요?’ 소뿔산을 오를 때부터 내뱉기 시작한 그녀의 잔소리 톤(ton)이 그녀의 체력이 고갈되어가는 속도에 반비례(反比例)로 높아만 간다. 그러다가 끝내는 주저앉아버리고 만다. 더 이상은 못 걷겠다는 것이다. 체력이 고갈되기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집사람 옆에 퍼질러 앉아 식염 타블렛(tablet)을 나누어 먹는다. 한참을 쉰 후에 다시 산행을 이어가지만 발걸음은 한없이 더디기만 하다. 50m쯤 걷다가 한참을 쉬고, 또 다시 50m를 걷기를 반복하면서 겨우겨우 산행을 이어간다.

 

 

 

마지막 오름길에서 악전고투를 치르다보면 시멘트포장 도로에 올라서게 되고 진행방향 저만큼에 거대한 군()의 통신탑(通信塔)이 나타난다. 안부에서 25분이나 걸린 것을 보면 얼마나 서서히 산을 올랐는가를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곳의 높이가 1122.7m라며 소뿔산의 실질적인 정상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소뿔산은 자기의 안방을 군에 빼앗겨버린 불쌍한 산으로 봐야 할 것이다.

 

 

통신탑을 왼편으로 비켜 진행하면 삼각점(어론 340, 2005 재설)이 있는 널따란 헬기장이 나온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뛰어난 조망(眺望)을 자랑하는 곳이다. 가마봉과 백암산을 잇는 능선이 한눈에 잘 들어오고, 더 멀리로는 응봉산과 방태산, 개인산 등 강원도의 고산(高山)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헬기장에서 조망을 즐겼다면 다시 아까 지나왔던 시멘트포장도로로 되돌아 나가야 한다. 오늘 산행의 날머리를 446번 지방도의 갑둔교() 근처로 잡았기 때문이다. 군용도로(軍用道路)인 듯 싶은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서는 길은 꽤나 길게 이어진다. 임도의 끝에 있는 차단기까지 30분이나 걸리기 때문이다. 이 코스는 여름철에는 최악일 것 같다. 완벽하게 햇빛에 노출되는 길을 30분 이상 걷는다고 생각해 보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30분쯤 걸으면 차단기(遮斷機)가 나타난다. 도로의 상부에 군사시설(軍事施設)이 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차량(車輛) 진입을 막으려는 목적인 모양이다. 차단기가 있는 곳에서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 후, 50m쯤 걸으면 또 다시 왼편으로 임도가 나뉜다. 이곳에서는 왼편으로 들어서서 5분 조금 못되게 걷다가 왼편의 숲으로 들어서야 한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이정표가 없음은 물론이려니와 심지어는 그 흔한 산악회의 시그널(signal)조차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갈림길에서 대략 3~4분쯤 걷다가 무작정 왼편 숲으로 들어서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다. 단 금방 골짜기가 나올 것 같은 지형을 머리에 그리며 들어갈 곳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참고로 들어갈 곳을 놓치고 그냥 직진할 경우에는 그 거리가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산행대장의 안내가 있었다.

 

 

 

숲으로 들면 초반에는 거의 길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울창한 나무 사이를 헤치고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구간은 짧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숲으로 들어선지 5분 후 계곡을 만나게 되면서 산길은 뚜렷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개울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은 한마디로 뛰어나다. 잣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은 온통 솔향으로 가득 차 있다. 잣나무는 소나무의 일종이니 당연히 저 향()에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가득할 것이다. 장시간의 산행으로 인해 쌓인 피로가 어느새 말끔히 가셔버린다. 그 덕문에 오늘 산행은 힐링(Healing)으로 마감을 하게 된다. 행운이다.

 

 

 

 

 

산행날머리는 446번 지방도 백둔교 근처

오른편에 계곡을 끼던 산길은 12분 후에는 계곡을 가로지르면서 끝이 난다. 그리고 곧이어 깔끔하게 정비된 임도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 오른편을 올라갈 경우에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17호인 갑둔리오층석탑(甲屯里五層石塔)’을 만날 수 있다.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는데, 탑신의 1·2·3층 몸돌과 5층 지붕돌은 탑을 복원할 때 새로 만들어 끼워 넣은 것이라고 한다. 물론 날머리는 이곳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내려가야 한다. 계곡으로 내려가 산행에서 흘렸던 땀을 말끔히 씻고 다시 길을 나서면 5분 후에는 지방도에 내려서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에서 걸린 시간은 총 6시간, 간식시간과 목욕시간을 감안할 경우 5시간30분이 걸렸다.

 

병풍산(屛風山, 796.2m)

 

산행일 : ‘14. 8. 30()

소재지 :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산행코스 : 에너미고개알바(1시간)군부대(폐쇄)병풍산 정상안부 도송리 마을회관도송리 경로당(산행시간 : 2시간 30)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물 맑기로 소문난 파로호의 주변에는 일산과 죽엽산, 수불무산, 용화산 등 수많은 산들이 널려있다. 병풍산도 그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병풍산은 웬만한 산꾼들의 귀에도 생소할 정도로 오지(奧地)의 산으로 남아 있다. 주변에 있는 용화산이나 사명산 등 널리 알려진 산들의 유명세에 철저하게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밋밋한 육산(肉山)인지라 산세(山勢)는 내세울 것이 없고, 거기다 접근성까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로호에 대한 조망(眺望)만은 인근의 어떤 산들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 당연히 한 번 쯤은 찾아볼만한 산이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산행들머리를 꼭 도송리로 잡으라는 것이다. 에너미고개를 들머리로 잡을 경우에는 산행시간이 너무 짧아져버리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에너미고개(화천군 간동면 방천리)

중앙고속도로 춘천 I.C에서 내려와 46번 국도 양구방면으로 달리다가 간척사거리(간동면 간척리)에서 좌회전 461번 지방도로 옮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음사거리(간동면 오음리)가 나온다. 왼편은 간동면 소재지인 유촌리, 그리고 오른편으로 가면 평화수호참천기념탑이 나온다. 이곳 사거리에서 곧바로 직진(403번 지방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행들머리인 에너미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된다.

 

 

 

고갯마루 정상에서 왼편 산자락으로 난 임도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는 옳은 선택이 아니다 병풍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임도는 이곳이 아니고 고갯마루 정상에서 오음리방향으로 60m쯤 내려가는 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이를 모르는 우리는 잘못 들어서게 되었고, 무려 한 시간 동안 알바를 한 뒤에야 다시 이곳 고갯마루로 돌아 나올 수 있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 아니나요?’ 길을 잘못 들어 30분을 걷다가 다시 되돌아 나오는 길에 함께 산행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하는 말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오늘 산행거리가 너무 짧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산행시간을 좀 늘려보고 싶었데, 마침 워밍업(warming-up) 코스로 딱 좋았다는 것이다. 맞다. 그의 말대로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임도는 준비운동 삼아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고갯마루의 정점에서 오음리쪽으로 조금 내려와 오른편에 보이는 시멘트포장 임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제대로 된 산행을 다시 시작한다. 임도로 들어서자마자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까 알바를 했던 임도와는 달리 경사(傾斜)가 만만치 않게 가팔랐기 때문이다. 그래 최소한 이정도 경사는 되어야 산을 올라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상의 근처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고 했는데, 군용차량이 올라 다니려면 이러한 도로포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일 것이다. 참고로 아까 알바를 했던 임도는 포장이 되어있지 않았었다.

 

 

 

임도를 따라 걷는 산행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산허리를 깎아 만든 군용도로(軍用道路)이다 보니 처음에서부터 끝까지 거의 같은 모습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팔랐다 평평해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일 따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길가에 구절초 등의 야생화(野生花)들이 지천이라는 점이다. 자칫 지루해지기라도 할라치면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들을 가슴에 담으며 산행을 이어간다.

 

 

 

 

▼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이런 길도 장점은 있다. 길이 넓기 때문에 같이 산행을 하는 사람들과 나란히 서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다. 35분 남짓 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다보면 어느덧 임도는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군부대(軍部隊)가 나타난다. 그러나 부대는 텅 비어있다. 막사는 아직까지 생생한데도 말이다. 요즘 날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군(), 그들의 사후약방문에 따르면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부대는 아예 문을 닫아버리겠다고 했다. 설마 이 부대도 그래서 닫힌 것은 아니겠지?

 

 

 

군부대의 옆에서 오늘 산행 후 처음으로 조망(眺望)이 트인다. 오늘 산행의 백미인 파로호가 얼굴을 내민 것이다. 리아스식 해안(rias coast)으로 이루어진 호반(湖畔)이 녹음과 어우러지며 잘 그린 한 폭의 그림으로 눈앞으로 다가온다. 참고로 파로호는 1944년 일제가 대륙 침략을 목적으로 만든 인공호수(人工湖水)이다. 6.25전쟁 후 이승만대통령이 적군을 물리치고 사로잡았다는 뜻으로 파로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비취빛 호수를 가슴에 담다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군()시설의 왼편으로 열린다. 시설의 맞은편에 보이는 750m봉이 제법 날카롭게 솟아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군부대에서 짧게 내려선 산길은 750m봉을 오르지 않고 오른편으로 우회(迂廻)를 시키기 때문이다.

 

 

 

 

 

750m봉을 우회한 산길은 막바지 몸부림이라도 치려는 듯 가파른 오르막길을 만들더니 드디어 병풍산 정상에다 올려놓는다. 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50분이 걸렸다. 정상에 오르면 가장 먼저 전망데크가 눈에 들어온다. 북서쪽 방향에 설치된 걸 보면 아마 파로호()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라는 모양이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삼각점(양구25, 2003복구) 외에는 이곳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그 어떤 시설물도 보이지 않는다. 쉽게 말해 그 흔한 정상표지석 하나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이다. 어느 이름 모를 산악회에서 나무데크에다 매달아 놓은 정상표지판과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서래야 박건석선생의 낯익은 정상표시코팅(coating)지만이 정상표지석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참고로 병풍산은 병풍같은 바위가 이 산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산행 내내 그런 바위는 눈에 띄지 않았고, 산행을 끝내고 도송리 방향에서 올려다봤을 때에도 그런 바위는 끝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망데크에 서면 북쪽 발 아래로 파로호()가 넓게 펼쳐진다. 리아스식 해안으로 이루어진 파로호의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이다. 파라호에서 눈을 조금만 더 들면 해산(日山)과 재안산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 뒤 보이는 산은 아마 백암산일 것이다. 그 외에도 사방이 산들로 겹겹이 쌓여있는 형상이다. 동쪽에는 사명산이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고, 동쪽에는 죽엽산이 부르면 금방이라도 달려올 듯이 너울대고 있다. 그리고 남서쪽에는 용화산과 수불모산이 늠름하게 자세를 잡고 있다. 서쪽이라고 해서 산이 없을 리가 없다. 두류산과 백적산, 그리고 적근산과 대성산이 나도 여기 있다며 손짓을 한다.

 

 

 

 

정상에서 동쪽에 있는 헬기장으로 가려는데 먼저 산을 올랐던 일행들이 그쪽 방향에서 나오는 것이 보인다. 그러면서 하나같이 구태여 갈 필요가 없다.’라는 것이다. 그냥 헬기장일 뿐 아무런 특징도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헬기장의 특징이랄 수 있는 조망(眺望)까지도 주변의 잡목(雜木)들로 인해 완벽하게 막혀있단다. 그렇다면 하산하는 일 밖에 없다. 하산을 올라왔던 방향으로 내려서면서 시작된다. 산길은 처음부터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능선을 따라 난 산길은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누군가의 글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파라호()의 풍경이 나타난다고 했었는데 이는 그른 표현이다. 아니면 그는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난 겨울철에 이곳을 찾아왔었을 것이다. 지금은 여름의 막바지, 산길 주변의 울창한 참나무 숲이 완벽하게 시야(視野)을 차단하고 있다. 그저 앞만 보고 내려갈 수밖에 없는 맥없는 산행이 되어버린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5분 정도면 끝이 나고 이어지는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낮추어 간다.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부드러운 흙길에다 울창한 수림(樹林)이 그늘까지 만들어주니 그저 룰루랄라 산행이 된다. 이런 길은 구태여 서두를 필요가 없다. 마침 주어진 시간까지도 넉넉하니 느림보의 미학이라도 추구해보면 어떨까. 나뭇잎이 따가운 햇살을 막아주고 시원한 산바람까지 불어오는 이런 산길이야말로 여름철 산행에서 가장 바라는 바일 것이다.

 

 

 

하산 길은 특별한 볼거리가 일절 없다. 하긴 순수한 육산(肉山)에서 볼거리를 찾는 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바람일 것이다. 그러나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울창한 참나무 숲으로 인해 능선이 음()지고 습()하다 보니 곳곳에 버섯들이 지천이기 때문이다. 꼭 식용버섯일 필요는 없다. 계란버섯 등 먹지 못하는 버섯들은 대신에 아름답기 때문이다. 서서히 걸으며 이름 모를, 그러나 아름답기 그지없는 버섯들을 감상하다보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산길이 또 다른 기쁨으로 다가올 것이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숲으로 들어서더니 나보고도 따라 들어오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녀의 손가락이 뭔가를 가리키고 있다.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짧고도 부드러운 털로 뒤덮인 둥그런 모양의 버섯이 참나무에 매달려있는 것이 아닌가. ‘! 노루궁댕이버섯이닷.’ 나도 몰래 함성부터 튀어나와버린다. 그만큼 노루궁댕이버섯이 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부부는 주변에서 얼마간의 싸리버섯도 채취할 수 있었다. 며칠 전 담양의 병풍산에 갔을 때도 많은 양의 싸리버섯을 채취했었는데 연거푸 행운이 찾아온 모양이다.

 

 

걷기 좋은 능선길은 30분 정도면 끝나고 이어지는 산길은 다시 급경사 내리막길로 변한다. 15분 정도를 가파르게 떨어지다 보면 길은 다시 평탄하게 변하고 이어서 조금 후에는 이름 모를 묘()가 나타나는데, 이쯤이면 산행이 거의 끝나간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들어나는 풍경들이 거의 바닥수준이기 때문이다.

 

 

 

 

 

무덤에서 5분쯤 더 내려가면 고대하던 계곡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물기라곤 한 점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원래 오늘 산행은 도송리를 들머리로 삼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산행 후에 땀이라도 씻어볼 양으로 코스를 정반대로 운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날머리로 삼은 계곡에 도착해보니 바짝 말라버린 개울이 허옇게 배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요즘처럼 비가 많이 온 때에도 저렇게 물이 흐르지 않을 정도라면 폭우(暴雨)라도 오지 않을 경우에는 아예 물 구경이 불가능 할 것이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산행코스를 잘 못 잡았던 것이다.

 

 

 

계곡을 만나고 나서 산길은 옆구리에 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그러나 그 거리는 짧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계곡을 벗어나버리기 때문이다. 이어서 인적이 없는 민가(民家)가 나오고 여기서부터 등산로는 마을길과 합쳐진다. 그러나 마을길은 의외로 길다. 첫 번째 민가에서 도송리 마을회관까지의 거리가 꽤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지루하지는 않다. 주변 풍광이 사뭇 빼어나기 때문이다. 마치 병풍(屛風)이라도 둘러친 양 병풍산을 배경으로 들어앉은 전원주택은 언젠가 그림에서 본 알프스(Alps)의 산장(山莊)을 닮았고, 그 반대편에는 파로호()의 호반(湖畔)이 그림 같다. 흔치 않은 목가적(牧歌的)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파로호의 상류가 마치 독립된 저수지처럼 보인다. 호수에 좌대(座臺)가 제법 많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강태공(姜太公)들로부터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낚시터인가 보다.

 

 

산행날머리는 도송리 노인정 근처의 정자

첫 번째 민가에서 20분 정도가 지나면 가래울마을에 있는 도송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그러나 그곳에는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는 보이지 않고 정자나무 아래에서 먼저 산행을 마친 사람들 몇이서 두런거리고 있을 따름이다. 버스가 노인정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를 태우러 이곳으로 오기로 했단다. 그러나 다들 언제 올지는 모르는 눈치다. 버스에 점심을 놓고 산행을 했던 우리부부는 버스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향하기로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점심을 거를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분 정도를 걸어 경로당 앞에 있는 버스를 발견하면서 오늘 산행을 종료한다. 오늘 산행은 총 3시간50분이 걸렸다. 알바시간과 간식을 먹느라 쉰 시간을 감안할 경우에는 2시간 30분이 걸린 셈이다.

 

 

 

노인봉(老人峰, 1,338m)

 

산행일 : ‘14. 7. 27()

소재지 :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과 강릉시 연곡면의 경계

산행코스 : 진고개노인봉대피소노인봉낙영폭포만물상구룡폭포금강사주차장(산행시간 : 5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국립공원(國立公園)인 오대산은 나라에서 인정하고 있는 명산(名山)이다. 그 오대산 안에 노인봉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노인봉은 오대산을 이야기 할 때 손끝으로 헤아리게 되는 다섯 개의 봉우리(비로봉, 효령봉, 두로봉, 상왕봉, 동대산)에는 끼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섯 개의 봉우리들보다 오히려 노인봉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노인봉 산자락에 청학동 소금강이라는 명승지(名勝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고결함과 불로장생의 상징인 학() 중에서도 청학(靑鶴)이 깃들 정도의 장소이니 그 얼마나 멋진 곳이겠는가! 때문에 나라에서도 이를 인정하여 오대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19752)되기도 전인 197011월에 청학동 소금강을 우리나라 명승 제1로 지정한 바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인봉의 등산보다는 소금강 구경을 더 원한다. 심지어는 노인봉 정상은 들러보지도 않은 채 곧장 소금강으로 내려가 버리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노인봉 정상도 오대산의 다섯 봉우리에 결코 뒤지지 않을만한 산세(山勢)와 조망(眺望)을 갖추고 있으니 꼭 한번쯤은 올라봐야 할 일이다. 참고로 청학동(靑鶴洞)이란 율곡의 유청학산기(游靑鶴山記)에 등장하는 지명이다. 그는 전해 내려오는 민담(民譚)을 수용하여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산 전체를 청학산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이 지역의 지명 중에는 청학산이란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단다. 그렇다면 청학산은 봉우리가 아닌 소금강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지역의 총칭이지 않을까 싶다.

 

산행들머리는 진고개(해발 960m) 주차장

영동고속도로 진부 I.C에서 내려와 오대산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오대산 푯말을 보고 6번과 59번 병합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야생화단지를 지나 병안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계속 6·59번 병합도로를 따라 고개를 올라가다 진고개 정상 쉼터로 진입하면 된다.

 

 

 

주차장에 마련된 진고개 탐방지원센터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노인봉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진고개를 들머리로 삼는다. 노인봉까지의 거리가 짧고(3.9km) 경사(傾斜)도 완만(緩慢)해서 오르기가 쉬운 탓일 것이다. 진고개는 비만 오면 질퍽거릴 정도로 땅이 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도로는 이미 포장이 덜 된 곳이 없고, 등산로 또한 말끔하게 정비가 잘된 탓에 질퍽이는 곳은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 진고개를 뭐라고 불러야하지?’ 싱거운 상념(想念)들을 떨쳐버리며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의 산행코스는 백두대간의 마룻금을 밟으며 노인봉 정상에 올랐다가 소금강의 긴 계곡을 탐사해볼 예정이다.

 

 

진고개를 출발해서 5분 쯤 지나면 오른편에 광활한 개활지(開豁地)가 나타난다. 오래전 수북이 쌓인 눈 위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뒹굴던 추억의 장소이다. 그리고 어느 여름철에 찾았을 때 이곳은 가득 찬 고랭지채소들로 인해 푸르름이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나 묵밭으로 남은 지금은 보라색 꽃을 피운 쑥부쟁이와 하얀 꽃망울을 활짝 연 망초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5분쯤 되면 산자락(이정표 : 노인봉 3.0Km/ 진고개 0.9Km)으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계단이 나온다. 계단은 한마디로 길다. 보기만 해도 질릴 정도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계단이 긴 것은 중간에 만들어 놓은 동물의 이동통로만 봐도 알 수 있다. 얼마나 계단이 길었으면 동물의 이동통로까지 만들었겠는가.

 

 

 

계단을 밟으며 12분 정도 힘들게 오르면 쉼터에 이르게 되고, 이어지는 흙길을 따라 다시 5분 정도를 더 오르면 지능선(이정표 : 노인봉 2.4Km/ 진고개 1.5Km)에 올라서게 된다. 일단 지능선에 올라서면 산길은 순해진다. 보드라운 흙길인데다 경사까지 완만하다보니 걷기가 여간 편한 게 아니다. 당연히 걸음이 빨라진다. 산길 주변의 나무들은 온통 참나무 일색, 그 속에 숨어있다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자작나무들이 이색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그리고 가끔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황병산이 머리를 내민다. 모자처럼 머리에 이고 있는 군부대의 안테나시설이 왠지 낯설어 보이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평탄한 능선길을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걷다보면 35분 후에는 노인봉 삼거리’(이정표 : 노인봉 0.3Km/ 소금강분소 9.3Km/ 진고개 3.6Km)에 이르게 된다. 삼거리에서 노인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그다지 가파른 편은 아니다. 때문에 정상에 이르는 데는 10분이면 충분하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노인봉 정상은 커다란 정상표지석과 조망안내도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라오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겠네요.’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이제나 저제나 순서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데 곁에 있던 누군가가 내뱉는 말이다. 그의 말대로 정상은 인산인해(人山人海). 그만큼 노인봉에 오르기가 수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참고로 노인봉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밋밋한 봉우리가 멀리서 바라볼 때 백발노인처럼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옛날 그곳에 산삼을 캐러 갔다 선잠이 들었던 어떤 심마니의 이야기도 그럴 듯하다. 그의 꿈에 머리가 흰 노인이 나타나 부근 무 밭에 가서 무를 캐라 하고서 사라졌다 한다. 꿈이 하도 이상한지라 노인이 일러 준 곳으로 가보니 산삼이 많이 있었다는 거다. 후세(後世) 사람들이 꿈속에 노인이 나타났다고 해서 노인봉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이다. 산행들머리에서 노인봉 정상까지는 1시간15분이 걸렸다.

 

 

 

암봉의 특징대로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일망무제(一望無題)로 펼쳐진다. 강릉과 주문진 시내, 그리고 그 너머 동해바다가 잘 조망되는 것은 물론이고, 북에는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과 동대산, 그리고 남쪽에는 황병산과 매봉이 의젓하게 앉아있다. 그 외에도 강원도의 산답게 수많은 고산준령(高山峻嶺)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한마디로 장쾌하고도 장쾌한 광경이다. 그 풍광에 취한 난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인파에 휩쓸리면서도 한참을 더 정상언저리를 헤맬 수밖에 없었다.

 

 

 

정상을 오른 후에는 아까 지나왔던 노인봉 삼거리로 다시 되돌아 나와야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소금강분소 방향으로 내려선다. 삼거리에서 몇 발자국 옮긴 것 같지 않은데도 불쑥 노인봉대피소’(이정표 : 소금강분소 9.2km/ 노인봉 0.4km, 진고개 3.9km)가 나타난다. 대피소를 지나 다시 초록의 터널로 들어서며 산행을 이어간다. 소금강으로 내려가는 길은 요즘 등산로 정비가 한창이다. 경사진 흙길 구간을 나무데크로 바꾸는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 아주 잘한 일인 것 같다. 산을 피폐하게 만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흙으로 된 등산로이기 때문이다.

 

 

 

 

대피소에서 잠깐 산의 사면(斜面)을 따르던 산길은 얼마 후 부터는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이 구간은 가끔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구간에서 놓쳐서는 안 될 것이 하나 있다.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릴 경우에는 절대 그냥 지나치지 말고 꼭 들어가 보라는 것이다. 들어가는 곳마다 뛰어난 전망대(展望臺)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치 않은 노인봉의 바위벼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피소를 나선지 20분 남짓 되면 능선의 끄트머리에서 이정표(소금강분소 8.8km/ 노인봉 0.8km) 하나를 만나게 되고 산길은 능선을 벗어나 오른쪽 아래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낙영폭포 위’(이정표 : 낙영폭포 0.9Km, 소금강분소 8.5Km/ 노인봉 1.1Km)를 거쳐 낙영폭포 언덕(이정표 : 낙영폭포 0.3km, 소금강분소 7.9km/ 노인봉 1.7km)까지의 구간이 오늘 산행 중에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비록 위험한 곳마다 철난간과 침목계단 등 안전시설들을 갖추어 놓았지만 워낙 경사가 심한데다가 높이가 일정하지 않은 돌계단이 곳곳에 나타나기 때문에 내려서기가 여간 사납지 않은 것이다. 1Km도 채 안 되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35분 가까이나 걸렸으니 얼마나 천천히 내려왔는지 능히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나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다. 간혹 볼거리를 제공해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도(高度)가 낮아질수록 숲은 더욱 짙어지면서 아름드리나무들이 늘어난다. 그 굵은 나무들이 쓰러지거나 서있는 채로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멋진 고사목(枯死木)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낙영폭포 언덕에서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작은 개울이 나타난다. 아직은 본모습을 선보이지 않은 탓에 허접한 채로이지만 청학동 소금강이 시작되는 것이다. 청학동 소금강은 기암절벽(奇巖絶壁)과 아름다운 계곡풍광(溪谷風光)으로 이름난 명승지(名勝地)이다. 이 소금강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율곡(栗谷) 이이(李珥)유청학산기(游靑鶴山記)에서 연유한다. 1569년 초여름 벼슬을 그만두고 강릉으로 내려온 율곡은 연곡천을 거슬러 올라 청학동 계곡을 찾는다. 그리고 그 감흥을 담은 유청학산기라는 기행문에 청학동 계곡의 빼어난 산세가 마치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며 소금강(小金剛)으로 명명한다. 율곡은 그 글에다 이렇게 표현해 놓았다. <푸르른 물은 낙엽도 발붙일 틈을 주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 흐른다. 바위들 모양도 천만 가지로 변하며, 산그늘 밑에 나무그림자는 아지랑이와 섞여서 아스라이 햇볕을 가렸다. 나는 흰 바윗돌 위를 거닐며 때때로 일어나는 잔잔한 물결을 즐겼다. ..중략... 돌아오는 길에 열 발자국을 걸으면서 아홉 번을 돌아보며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린다.(김장호의 한국명산기 참조)>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풍경이다. 그러니 어찌 한번쯤 찾아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물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잠시 걸으니 낙영폭포 이정표(광폭포 2.0Km, 소금강분소 7.6Km/ 노인봉 2.0Km)가 보인다. 그러나 아직 폭포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른편의 나무들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서니 와폭(臥瀑) 하나가 나타난다. 그러나 폭포(瀑布)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왜소하면서도 볼품이 없다. 실망감을 안고 바위벼랑에 기대어있는 철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니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이 보인다. 낙영폭포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위에 있는 와폭은 무엇일까? 나중에 알아본 바로는 위의 것도 낙영폭포가 맞았다. 낙영폭포는 2단으로 이우러져 있는데, 다만 철계단 아래에 있는 폭포가 더 멋있는 것이다.

 

 

낙영폭포에서 25분 정도를 더 내려오면 사문다지골 입구(이정표 : 광폭포 0.5Km, 소금강분소 6.1Km/ 낙영폭포 1.5Km, 노인봉 3.5Km)에 이르게 되고, 이어서 10분 남짓 더 걸으면 광폭포(이정표 : 백운대 0.9Km. 소금강분소 5.6Km/ 노인봉 4.0Km)에 이르게 된다. 큰 바위 옆으로 흘러내리는 와폭(臥瀑)인 광폭포는 아까 보았던 낙영폭포에 비해 그 품격이 한참 떨어진다. 그러나 조금 후에 만나게 되는 삼폭포(이정표 : 백운대 0.3Km, 소금강분소 5.0Km/ 광폭포 0.6Km, 노인봉 4.6Km)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삼단으로 떨어진다고 해서 삼폭포라는 이름이 붙여진 모양인데, 왜소하면서도 보잘 것이 없는 것이 폭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인 것이다.

 

 

 

낙영폭포를 지나면서 계곡의 수량은 조금씩 늘어난다. 그와 더불어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다들 노인봉에서 내려온 사람들인 모양이다. 다들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속으로 잠수를 하는 사람들이나 물장난을 치고 있는 사람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표정들이 밝기만 하다. 하긴 이런 곳에서 인상을 쓰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이 물줄기는 노인봉의 동쪽 사면(斜面)에서 발원(發源)해서 흐르다가 연곡천과 합쳐져 동해로 빠져나가면서 그 생을 마감한다.

 

 

 

삼폭포에서 6분쯤 내려오면 소금강의 하이라이트(highlight)가 시작되는 백운대(이정표 : 만물상 0.6Km, 소금강분소 4.7Km/ 노인봉 4.9Km). 오고가는 사람들이 쉬어가기 딱 좋은 백운대에는 넓게 펼쳐진 계곡에 집채만 한 큰 바위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런데 그 바위의 생김새가 좀 괴이하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올려놓은 것처럼 커다란 돌맹이 몇 개가 커다란 바위를 떠받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 바위를 보고 솥단지 같다고도 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널따란 암반(巖盤) 위에서 노닐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 풍광에 녹아들며 한가로움을 한껏 자아내고 있다. 글자 그대로 한 조각 흰 구름과 다름없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백운대부터 펼쳐지는 주변 풍광은 이미 알려진 대로 소금강의 백미(白眉)이다. 바위들이 꿈틀대듯 솟아올라 봉우리를 만들고, 앞을 가로막는 절벽들은 제각각의 형상을 가진 거대한 병풍과 같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내버릴 것 없는 풍경들이다. 그러다보니 계곡의 가장자리에 놓인 철다리까지도 예사의 풍경이 아닐 정도이다. 시선을 주는 곳마다 한 폭의 잘 그린 산수화(山水畵)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소나무, 바위틈에 솟은 소나무들이 이곳 만물상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주위풍광에 흠뻑 빠져 걷다보면 귀면암(鬼面岩)에 이르게 되고, 곧이어 만물상(萬物像) 이정표(소금강분소 4.1Km/ 백운대 0.6Km, 노인봉 5.5Km)를 만나게 된다. 백운대에서 18분 정도가 걸렸다. 이 구간의 많은 볼거리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것은 귀면암이다. 귀신의 얼굴을 닮았다는 귀면암은 촛대봉, 거인봉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그만큼 기괴하게 생긴 탓에 보는 이들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백운대를 지나면서 화려해진 청학동은 갈수록 그 도를 더해간다. 암반(巖盤) 위로 흐르는 물은 맑기만 하고, 고개라도 들라치면 보이는 것이 모두 기암괴석(奇巖怪石)뿐이다. 옥빛 물이 흘러내리는 암반 위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골을 가득 메우고, 그 양옆에는 노송(老松)들이 군락을 이뤄 자라고 있는 기암절벽(奇巖絶壁)이 솟아 있다. 한마디로 소금강의 절경과 심산유곡(深山幽谷)의 분위기를 한껏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다. 그래서 이 구간을 만물상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만물상이정표에서 10분 남짓 더 걸으면 옛날 학()들이 노닐었다는 학유대(이정표 : 구룡폭포 0.5Km, 소금강분소 3.5Km/ 만물상 0.6Km, 노인봉 6.1Km)가 나온다

 

 

학유대에서 5분이면 공원지킴터가 나오고,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면 바로 구룡폭포다. 다리를 건너기도 전부터 요란한 물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드니 소금강의 명물인 구룡폭포(九龍瀑布)가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이정표 : 식당암 1.0Km. 소금강 분소 3.0Km/ 만물상 1.1Km, 노인봉 6.6Km). 아홉 개의 폭포(瀑布)와 소()가 이어지는 구룡폭포 중 등산로에서 볼 수 있는 폭포는 가장 아래에 자리한 8폭과 9폭이다. 내려오는 길 내내 여름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알려주던 매미들의 울음소리는 우렁찬 물소리에 가려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이를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귀를 대신해서 이번에는 눈이 호사(豪奢)를 누리기 때문이다. 거대한 암반(巖盤)을 타고 힘차게 쏟아지는 물줄기에 빠져들다 보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속세(俗世)를 벗어나 선계(仙界)에 이르게 된다. 그렇다면 아까 지나온 선녀탕에서 선녀(仙女)라도 한번 찾아볼 것을 그랬나보다. 선녀가 목욕을 하고 있거나말거나 말이다. 참고로 구룡폭포쪽 물줄기가 흐르는 골짜기는 피골로도 불린다. 마의태자의 군사들이 고려군에게 대패해 흘린 피가 내를 이루었다고 해서 나온 말이란다.

 

 

 

구룡폭포에서 푸른 이끼로 뒤덮인 등산로를 따라 20분 가까이 내려오면 수십 아니 거짓말 좀 보태서 수백 명이 둘러앉아도 될 만큼 너른 암반(巖盤)이 나온다. ‘식당암(食堂岩)이라는데(이정표 : 소금강 분소 2.0Km/ 구룡폭포 1.0Km, 노인봉 7.6Km), 율곡이 소금강에서 공부를 할 때 이 바위에서 밥을 지어먹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율곡이 이곳에서 공부를 했다는 확실한 기록(記錄)이 없으니 공허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뿐, 어쩌면 바위의 생김새가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점심을 먹기 좋은 탓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지 않나 싶다. 기록에 의하면 식당암에서 유유자적하던 율곡은 눈에 잡히는 암봉과 푸른 소()에 촉운봉과 경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식당암이란 이름이 촌스러웠던지 비선암으로 고쳐 부르고, 산 전체를 청학산으로 명명했다. 하지만 비가 올 것 같은 궂은 날씨 탓에 더 이상의 산행을 포기하고 서둘러 하산길을 재촉했다고 한다. 청학동소금강의 명물인 구룡폭포와 귀면암, 이월암, 촛대석 등으로 불리는 만물상의 변화무쌍한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이유이다. 참고로 소금강에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곳 식당암도 그중의 하나이다. 그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군사를 훈련시키면서 이 거대한 너럭바위에서 군사들에게 밥을 지어 먹었다는 것이다. 한편 율곡은 식당암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겨우 머리를 숙이고 걸어서 석문에 들어서니 그 경색이 더욱 기이하여 황연히 딴 세계였다. 사방을 두루 돌아보니 모두 석산이 솟아 있고 푸른 잣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가 그 틈바구니를 누비고 있었다.>

 

 

 

식당암을 벗어나면 바위벼랑 아래에 자리 잡은 아담한 사찰(寺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주변에 전봇대처럼 쭉쭉 뻗은 금강송(金剛松)들이 유달리 많이 눈에 띄는 이 절이 소금강 내에 있는 유일한 사찰이라는 금강사(金剛寺)이다. 그러나 유일하다는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그 역사는 일천하다. 1964년에 정각스님이 세웠다니 이제 겨우 50년이 지났을 따름인 것이다. 마침 목이 말라 냉수라도 한잔 얻어 마실까 두리번거리는데 물은 절간 밖에 있단다. 아니나 다를까 사찰을 빠져나오니 식수대에서 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망설이지 않고 벌컥벌컥 마시고 본다. 그러나 물맛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긴 계곡의 아랫도리에 위치한 사찰에서 감로수(甘露水)를 기대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약수터 건너편 계곡의 바위에는 율곡이 새겼다는 소금강(小金剛)’ 글씨가 있다지만 그냥 하산길을 서두른다. 율곡의 글씨가 확실치도 않으므로 구태여 찾아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강사를 벗어나면 금방 연화담(이정표 : 소금강 분소 1.7Km/ 구룡폭포 1.3Km, 노인봉 7.9Km)이다. 맑은 계류가 암반(巖盤)을 미끄러지며 그 아래에 푸른 담()을 만들어내는데, 이 담이 바로 연화담(蓮花潭)이다. ()의 하류(下流)가 거북이 기어오르는 형상(形象)이고, 이 거북이의 머리 앞으로 떨어지는 물줄기의 모습이 마치 연꽃봉우리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연화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연화담에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하늘에서 일곱 선녀가 내려와 연화담에서 목욕을 하고 오른편에 있는 화장대(명경대)에서 화장을 한 다음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달 밝은 밤에 한번쯤 찾아와보면 어떨까. 선녀(仙女)의 날개옷이라도 숨겨보는 행운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세상에 꽃다운 마누라와 청실홍실을 엮어가는 것을 싫어할 남자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연화담을 지나면서 길가에는 금강송(金剛松)들이 줄줄이 나타난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를 향해 쭉쭉 뻗어 오른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잘 생겼다. 그래서 금강송을 미인송(美人松)이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연화담에서 조금만 더 내려오면 십자소(이정표 : 소금강 분소 1.4Km/ 구룡폭포 1.6Km, 노인봉 8.2Km)이다. 물줄기의 양 옆구리가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멀리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십자(十字) 드라이버 끝을 보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러나 소()의 풍경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길가의 나무들에 가린 탓이다. 율곡은 이 부근을 지나면서 <푸른 낭떠러지가 오이를 깎아 세운 듯하고 떨어지는 천류가 백설을 뿜어내는 듯.>하다며 그 물줄기가 만들어내는 소를 창운(漲雲)’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 소가 아까 지나온 연화담인지 아니면 이곳 십자소(十字沼)를 일컫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십자소를 지나면 오랫동안 등산객들의 안식처였던 청학산장(이정표 : 소금강 분소 1.0Km/ 노인봉 8.6Km)의 터가 나온다. 1972년에 건축된 청학산장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하룻밤 묵어가기 위한 산악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92년 진고개를 관통하는 국도 6호선이 확장돼 청학산장에서 400떨어진 지점까지 자동차가 들어오면서 이용객이 급감, 2000년대부터 아예 문을 닫았다. 옛 산장 터를 지나서도 아름다운 계곡은 지속된다. 하긴 무릉계(武陵溪)라는 이름이 그냥 붙었을 리가 있겠는가. 무릉계는 도연명(陶淵明)'도화원기(挑花源記)'에나오는 별천지이자 이상향(理想鄕)인 무릉도원(武陵挑源)에서 유래한다. 도화원기의 배경은 중국 호남성에 위치한 동정호(洞庭湖), 호수의 서남쪽을 병풍처럼 가로지르는 무릉산(武陵山) 기슭의 원강(元江) 강변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절경은 무릉도원과 같은 선경(仙境)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아름답다고 한다. 무릉계곡이라는 이름은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丞休), 또는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 김효원(金孝元)이 지은 것이라고 전하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금강사에서 25분 남짓 지나면 공원지킴터(이정표 : 소금강 분소 0.5Km/ 구룡폭포 2.5Km, 오대산 9.1Km)에 이르게 된다.

 

 

산행날머리는 소금강 대형주차장

공원지킴터를 지나면서 지루한 산행이 시작된다. 차량들이 지킴터까지 이를 수 있도록 길은 넓혀져 있지만 주변의 볼거리는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길가의 음식점을 볼거리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지킴터에서 6분쯤 더 내려오면 소금강 분소’, 그리고 4분 후에는 소형차량 주차장이 나온다. 그러나 대형차량 주차장은 이곳에서도 10분 이상을 더 내려가야 한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율곡이 <길가의 수석이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기이하고 눈이 어지러워 다 기록할 수 없다>고 표현했던 계곡 구간을 버리고 삭막한 포장도로를 걸으니 입에서 상소리가 안 나는 것만 해도 다행일 것이다. 삭막한 포장도로를 걷는 것에 지쳐 입에서 상소리가 나올 즈음이면 저만큼에 상상외로 넓은 주차장이 보이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오늘 산행은 총 5시간50분 정도가 걸렸다. 중간에 막걸리를 마시느라 쉰 시간을 감안한다면 5시간 30분을 걸은 셈이다.

 

 

 

에필로그(epilogue)

공원지킴터부터 주차장까지 이어지는 길가에는 수많은 음식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러나 난, 눈 한번 팔지 않고 곧장 주차장으로 향한다. 이유는 단 하나. 조금 후에 산악회에서 내놓을 음식이 식당에서 사먹는 음식보다 훨씬 더 나을 것임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마산악회는 그런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오늘의 밑반찬은 6가지, 지난번보다는 분명히 줄었다. 그러나 실망하지는 않는다. 대신 더 화끈한 메뉴가 제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전에 주문진항에 나가서 떠 왔다는 방어회와 오징어순대를 내놓는다. , 술은 어떻게 보면 잘 넘어간다는 술술이라는 표현을 줄인 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뜻에 걸맞게 오늘 따라 술이 잘도 목구멍을 넘어간다. 하긴 이렇게 안주가 좋은데 어떻게 술이 목구멍에 걸릴 수 있겠는가. 다만 하나 안타까운 건, 그 많던 술이 언제부턴가 동이 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얼마나 안주가 훌륭했으면 그러겠는가.

 

 

곰봉(1,014.9m)-닭이봉(鷄峰, 1,028m)

 

산행일 : ‘14. 7.13()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남면과 신동읍의 경계

산행코스 : 마차령휴게소오가피밭곰봉닭이봉안부헬기장안테나봉가탄마을(산행시간 : 4시간10)

함께한 산악회 : 청마산악회

 

특징 : 곰봉과 닭이봉은 한마디로 오지(奧地)의 산이다. 당연히 산을 찾는 사람들이 드물 수밖에 없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산길은 거의 흔적을 찾기도 힘들 정도로 잡목(雜木)들로 우거져 있다. 그러나 산은 오지의 산답지 않게 괜찮은 편이다. 비록 암릉은 아니지만 절벽의 가장자리를 걷는 스릴(thrill)을 만끽할 수 있고, 동강(東江)방향으로 돌출된 서슬 시퍼런 바위절벽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거기다 보너스로 동강과 백운산까지 조망(眺望)되니 산행은 즐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절벽의 가장자리로 난 길이 험하니 안전에 주의가 필요하다.

산행들머리는 마차령휴게소(정선군 신동읍 가사리 190-1)

중앙고속도 서제천 I.C에서 내려와 38번 국도 태백방면으로 달리다보면 정선군 신동읍과 남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갯마루인 마차령에 이르게 된다. 산행들머리는 마차령 고갯마루에서 신동읍 방향(영월방면)으로 5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차령휴게소이다. 태백으로 가다가 이 휴게소로 들어가려면 휴게소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교차로(交叉路 : 벽암산 산행들머리)에서 유턴(U-turn)하면 된다.

 

 

 

마차령휴게소(간판은 쉼터로 적혀있음)에서 남면방향으로 10m쯤 걷다가 왼편의 임도(林道)로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이 길은 북쪽 곰봉 동릉을 넘어 남면 광덕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는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과 마주치기라도 할 경우에는 비켜가기 위해 몸살을 알아야할 정도로 좁은 편이다. 그러나 길바닥이 반들반들 한 것이 왕래하는 차량들이 제법 많은 것 같다. 이는 임도 주변의 경작지(耕作地)가 넓고 민가(民家)들까지 소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들머리에서 200m쯤 걸었을 즈음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오른쪽은 광덕리로 넘어가는 길, 곰봉은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임도로 걷다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바로 ! 강원도에 들어왔구나.’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오로지 산릉뿐인데, 그 산릉이 온통 밭으로 개간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넓은 밭들은 텅 비어있다. 고랭지채소를 심기에는 아직 철이 이른 모양이다. 아니 밭두렁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모종 심기는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가는 길에는 민가(民家)들이 가끔 보인다. 그러나 그 생김새가 깔끔한 것이 농민들의 것이라기보다는 외지인들의 전원주택(田園住宅)이 아닐까 싶다.

 

 

임도는 꽤나 길게 이어진다. 만일 땡볕이라도 내려쬐인다면 이 길은 즐거운 산행길이 아니라 지옥의 행군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임도 주변에 나무들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오늘은 비가 올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 주변에 나타나는 풍광을 즐기며 걷기만 하면 된다. 다행이 길가에 하얀 망초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잠깐의 볼거리로는 충분하다.

 

 

산행을 시작한지 25분 남짓 지나면 임도와 헤어져야 한다. 오른쪽 초원(草原)으로 들어서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후에 다시 오른편을 방향을 틀면 얼마 후에는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초원은 온통 망초꽃들의 천지, 하얀 꽃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마치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다. 망초꽃들이 저렇게 예쁠 수도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망초들 사이에 낯익은 나무들이 보인다. 오가피나무이다. 원래는 오가피밭으로 일구었는데 언제부턴가 망초들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능선에 올라서서 5분 정도가 지나면 산길은 초원을 떠나 산자락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나 산자락에 들어서서도 길의 흔적은 희미하기만 하다. 거기다 경사(傾斜)까지 가파르다보니 올라가는 게 여간 버겁지가 않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 오르막이 그다지 길지 않다는 것이다. 12분 정도만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드디어 곰봉의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곰봉 정상은 10평 남짓의 제법 너른 분지(盆地)로 이루어져 있다. 어쩌면 헬기장으로 이용되었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지금은 잡초(雜草)만 가득할 뿐이다. 무인산불감시탑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정상엔 이곳이 정상을 임을 알려주는 그 어떤 시설물도 없다. 그저 인천우정산악회에서 감시탑의 철망(鐵網)에 매달아 놓은 정상표시 코팅지만이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을 따름이다. 조망(眺望)도 없다. 날씨가 흐린 탓도 있겠지만 좋다고 해도 주변의 잡목(雜木)들 때문에 시야(視野)가 트이지 않을 것 같다. 산행을 시작한지 50분이 조금 더 지났다. 곰봉은 산세(山勢)가 마치 곰이 엎드린 듯 육중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도 있다. 아주 먼 옛날 곰봉과 닭이봉 일원이 대 홍수로 물이 가득 찼다고 한다. 그때 물 위로 솟은 산꼭대기에 겨우 곰() 한 마리가 앉을 수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닭이봉으로 가기 위해 북서릉을 탄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산길은 조금 거칠다는 느낌, 그 느낌은 어른의 키를 훌쩍 넘기는 암벽(巖壁)를 만나면서 극에 달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던 어느 지도(地圖)에서 위험지역이라고 표시된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나 그 지도의 표시는 조금 과장되지 않았나 싶다. 조금만 조심한다면 아무 탈 없이 통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바위도 그렇다. 바위 앞에 제법 굵은 물푸레나무가 있기 때문에 나무를 부여잡고 내려가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내려설 수 있다.

 

 

세미클라이밍(semi-climbing)으로 바위를 내려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거리를 만나게 되고, 이어지는 산길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능선은 별다른 특징이 없이 계속된다. 울창한 숲 때문에 조망(眺望) 또한 일절 트이지 않는다. 그저 산길 주변에 핀 여름철 야생화나 구경하면서 걸어볼 일이다.

 


 

곰봉에서 내려선지 40분 가까이 되면 산길은 갑자기 급경사 오르막길로 변한다. 가끔 바윗길까지 섞여있기 때문에 힘이 들기는 하지만, 안전로프가 매달려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으니 걱정할 필요 까지는 없다. 거기다 길 주변에는 눈요깃거리까지 심심찮게 보인다. 고목(枯木)이 되다시피 한 오래 묵은 참나무들이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15분 정도나 사람들을 고생시키고 난 뒤에야 끝을 맺는다.

 

 

이어지는 산길은 큰 오르내림이 없이 꽤 오래 계속된다. 어디쯤 와있는지 짐작해보려 지도(地圖)에 나와 있는 삼거리를 눈여겨 찾아보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여름철인지라 잡목(雜木)에 가려 눈에 띄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산길이 갑자기 가파른 오르막길로 변한다. 옛말에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가 있다. 이 오르막구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는 극심한 고통 뒤에야 정상정복의 기쁨을 허락하는 걸 보면 말이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highlight)라는 닭이봉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긴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입에서 단내가 날 즈음에야 겨우 닭이봉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곰봉에서 1시간 20분 정도가 걸렸다. 무더위 때문에 걷는 속도가 좀 떨어졌던 모양이다. 닭이봉 정상은 한마디로 좁다. 서너 명이 한꺼번에 서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비좁은 정상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바위에 다솔산악회에서 철판으로 만든 정상표지판이 매달려 있다. 닭이봉이란 이름을 얻게 된 사연도 아까 지나왔던 곰봉과 같다. 먼 옛날 대 홍수로 물이 가득 찼던 시절 이 봉우리에는 겨우 닭 한 마리가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곰 한 마리가 앉을 수 있었던 곰봉보다 더 비좁을 수밖에 없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산꼭대기 바위들의 모양이 닭 벼슬을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참고할 일이다.

 

 

 

정상은 한쪽 면()이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서쪽방향으로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백운산과 만지산이 보이고, 그 뒤에 청옥산과 가리왕산이 하늘금을 그린다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날씨가 흐린 탓이다. 겨우 트리골과 노장골 협곡(峽谷)과 귤암리에서 기탄마을로 흘러오는 동강(東江)의 물줄기가 희미하게 보일 따름이다.

 

 

하산은 북서릉을 탄다. 988.5m봉을 향해 가다보면 나뭇가지 사이로 서슬 시퍼런 수직절벽(垂直絶壁)이 내다보이기 시작한다. 그 생김새가 마치 닭벼슬을 빼닮게 보이는 것은 설마 선입견(先入見) 때문일까? 정상과 저 바위봉우리들의 생김새로부터 계봉(鷄峰 : 닭이봉)이라는 산 이름이 나왔다는 것을 미리 알았기에 하는 말이다.

 

 

 

 

산길은 계속해서 절벽(絶壁)의 가장자리로 나있다. 왼편(서쪽)이 서슬이 시퍼런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길이 그 위로 나있는 것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산길이 절벽의 가장자리에서 오른쪽으로 약 1m쯤 비켜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절벽으로 다가가지 않는 이상은 위험에 노출될 염려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바윗길은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면서 이어진다. 당연히 곳곳에 밧줄까지 걸린 바윗길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조금 위험한 구간이지만 좋은 점도 있다. 곳곳에서 뛰어난 전망대(展望臺)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날씨가 좋지 않지만 닭이봉의 잘생긴 바위절벽과 아름다운 곡선(曲線)을 만들어내는 동강의 모습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

 

 

 

 

 

 

 

 

정상 어림의 몇 개 봉우리를 통과하면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하면서 갑자기 고도(高度)를 뚝 떨어뜨린다. 내리막길은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안부에 이르고서야 겨우 그 가파름을 멈춘다. 사용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인 듯 어른의 키만큼 훌쩍 웃자란 잡초(雜草)들만 무성한 헬기장에서 우린 낯선 풍경을 만나게 된다. 안부를 이정표와 벤치(bench)까지 갖춘 쉼터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만일 다른 산이었다면 이까짓 쉼터쯤이야 흔하디흔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산행에서는 처음 보는 편의시설(便宜施設)이다. 그것도 곰봉이나 닭이봉의 정상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시설이기에 낯선 풍경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이러한 편의시설은 조금 후에 만나게 되는 다른 벤치 외에는 어느 곳에서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안부를 지나면 또 다시 산길은 오름짓을 시작한다. 그 가파른 오르막길을 거의 다 올라갔을 즈음 높이 5m정도의 바위벽이 앞을 가로막는데, 이게 사람을 고민하게 만든다. 바위에 걸려있는 안전로프의 굵기가 너무 가늘어서 안심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오른편에 보이는 우회로(迂廻路)로 들어서고 만다. 그러나 조금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냥 암벽(巖壁)을 올라가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우회로가 가파른데다가 미끄럽기까지 해서 오르는 게 여간 사나웠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우회로를 이용해서 능선으로 올라서면 988.5m봉의 정수리 뒤편 지점, 아무 의미도 없는 정상은 생략한 채로 그냥 하산길을 재촉한다.

 

 

 

 

 

988.5m봉을 지나면 또 다시 큰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능선을 따라 걷게 된다. 능선의 풍경 또한 가끔 나타는 참나무 고목(枯木) 외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그러다가 잠깐의 오름짓을 한 뒤에 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지도에 안테나(antenna)봉으로 나와 있는 곳에서 약간 못 미치는 지점이다. 988.5m봉에서 10분 남짓, 안부 쉼터에서는 35분 정도가 걸렸다. 하산지점인 가탄마을로 내려가려면 이곳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기탄마을로 내려가는 지능선은 무척 가파르다. 얼마나 가파른지 주변 풍경을 돌아볼 여유도 없을 정도이다. 하긴 가슴에 담아둘만한 볼거리도 없었지만 말이다. 조심조심 15분 정도를 내려서면 주변 풍경이 갑자기 확 바뀐다. 오로지 참나무뿐이던 능선에 갑자기 소나무군락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나이가 제법 먹은 소나무들이 벼랑위에 빼곡히 들어차있다. 그 소나무 가지 사이로 또 다시 조망(眺望)이 트인다.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동강 줄기가 소나무가지에 걸쳐지면서 잘 그린 한 폭의 수묵화(水墨畵)를 만들어내고 있다.

 

 

 

 

 

 

산행날머리는 가탄마을 앞 동강의 강변 도로

노송전망대를 지나서도 산길은 변함이 없다. 그 가파름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니 오히려 어떤 곳에서는 한층 더 가팔라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지능선 역시 주능선과 마찬가지로 왼편이 가파른 바위벼랑이라는 것이다. 노장골의 협곡(峽谷)을 이루는 한쪽 벼랑이 아닐까 싶다. 가파른 내리막길에 볼거리까지 없는 산길이다 보니 그저 묵묵히 내려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길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전망대에서도 50분을 더 걸은 후에야 가탄마을 뒤편에 있는 임도에 내려설 수 있기 때문이다. 임도를 내려섰다고 해서 산행이 끝난 것은 아니다. 산행이 종료되는 동강(東江)까지는 가탄마을의 마을 안길을 통과하는 등 임도를 따라 10분 가까이 더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산행은 총 4시간25분이 걸렸다. 막걸리를 마시느라 15분 정도를 쉬었으니 4시간10분 정도를 걸은 셈이다.

 

 

 

에필로그(epilogue)

오늘 산행은 일행들과 꽤나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걸었다. 그저 묵묵히 산행을 해오던 평소의 내 습관을 생각해볼 때 의외라 할 수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너무 반가웠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김진수선생님 및 채약산님과 산행 내내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중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산을 더 자주 다닐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지만, 오늘 따라 나온 청마산악회에 관한 이야기도 많은 편이었다. 그 중심 이야기는 손해(損害)를 보면서까지 산행을 이어가는 산악회 회장의 열정 외에도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음식(飮食)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반신반의(半信半疑)했지만, 들었던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게 증명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차된 버스 옆에 차려진 음식상을 보고 나도 몰래 입이 딱 벌어지고 만 것이다. 밥과 시원한 콩나물냉국은 기본이고, 아홉 가지나 되는 밑반찬에 상추와 참기름까지, 그리고 에피타이저(appetizer)인 막걸리와 소주는 얼음에 재워져 있고, 디저트(dessert)로 수박까지 진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건 숫제 웬만한 한식 뷔페(buffet) 전문점 수준인 것이다. 이런 산악회를 어찌 또 따라나서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난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음 주 일요일 산행을 예약부터 하고 본다.

 

 

좌방산(座防山, 502m)

 

산행일 : ‘14. 7. 1()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남면

산행코스 : 한발고개570노송쉼터태평사갈림길좌방산 정상245()발산중학교(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가보기산악회

 

특징 : 좌방산은 남서쪽으로 홍천강이 흐른다. 때문에 모곡유원지와 한덕관광유원지, 그리고 개야리유원지 등 제법 알려진 유원지(遊園地)들이 산을 둘러싸고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산을 보고 찾아왔다고 하기보다는 홍천강을 낀 유원지에 놀러왔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인파(人波)들이 눈에 띔에도 불구하고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인근 유원지에 들렀다면 일단 산을 올라볼 것을 권하고 싶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산은 고즈넉하고 능선에서 바라보는 홍천강의 풍경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한발고개(춘천시 남면 한덕리)

서울-춘천고속도로 강촌 I.C에서 내려와 좌회전하면 금방 발산2(춘천시 남면)에 닿게 된다. 발산2리는 치안센터와 초등학교까지 있는 제법 큰 마을이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곳 발산삼거리(강촌유원지로 가는 길이 나뉘는 삼거리) 근처에서 보면 왼편으로 도로 하나가 보인다. 한덕리(춘천시 남면)로 넘어가는 군도(郡道 : 한덕발산길)이다. 이 도로를 따라 얼마간 들어가면 두 동네의 경계를 이루는 고갯마루에 올라서게 되는데, 이 고갯마루가 바로 오늘 산행의 들머리가 되는 한발고개이다.

 

 

 

2차선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한발고개에서 내려 오른편 산비탈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들머리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산길이 통나무로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지역에서 좌방산에 쏟는 정성이 대단한 모양이다.

 

 

 

뛰어난 패션(fashion)감각, 살아있는 나무를 활용하여 의자(椅子)를 만들어 놓았다. 겨우 자그마한 판자(板子) 한 장을 고정시켜 놓았을 따름인데도, 이렇게 멋진 의자가 완성되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아이디어(idea)일지라도 잘만 활용할 경우 훌륭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본보기가 아닐까 싶다.

 

 

통나무계단을 밟으며 잠깐 용트림을 하고 나면 어설프게 쌓은 돌탑이 있는 봉우리, 산길은 잠시 얇게 안부에 떨어졌다가 다시 오름짓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번의 오름짓은 제법 길게 이어진다. 길가에 바위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능선은 바위투성이로 변해있다. 그러나 아직은 바윗길은 아니다 그저 흙산에 바위들이 널려있는 정도, 당연히 산길의 바닥은 흙길이 계속된다. 산길이 바위들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이어지기 때문이다.

 

 

기막힌 예술작품(藝術作品), 굵은 나무가 쓰러져서 오랜 세월을 지나다보니 고사목(枯死木)으로 변해있다. 그런데 그 생김새가 범상치가 않다. 마치 어느 뛰어난 예술가가 심혈을 들여 만들어 낸 조각품(彫刻品)을 뺨칠 정도로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랑나무(連理木)일까? 아니면 수컷(남성)나무라고 불러야할까? 뿌리가 다른 두 나무가 얼마 후에 한 나무로 합쳐졌으니 연리목(連理木)이 맞는데 외형이 왜소(矮小)한 탓인지 왠지 어설프다. 그렇다면 수컷나무로 이름을 붙여보고 싶다. 가랑이 사이에 물건까지 떡하니 달고 있으니 말이다.

 

 

오름짓을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산길은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바위를 비켜간다. 그리고 또 다시 나타나는 통나무계단을 밟으며 한차례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큰 소나무가 있는 작은 바위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가쁜 숨도 달랠 겸 쉬어가기 딱 좋은 장소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0분 남짓 걸렸다.

 

 

암봉에서 예정된 코스로 진행하려면 봉우리로 올라왔던 길과 반대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그런데 얼핏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진행방향이 비록 낮기는 하지만 바위 직벽(直壁)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로프를 붙잡고 바위 틈새로 내려서서 산행을 이어간다.

 

 

 

 

이어지는 산길은 바위능선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바윗길은 위험하지는 않다. 산길이 커다란 바위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나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능선의 바위들이 많이 눈에 익다. 오른편이나 왼편으로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는 것이 흡사 삼악산의 바위들을 옮겨다 놓은 것 같은 것이다. 하긴 삼악산은 여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당연히 두 산이 같은 지질(地質)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바윗길이 끝나면 밋밋한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570m봉인데 여기까지 오는 데 30분이 조금 넘게 걸렸다. 비록 이정표(좌방산 2.5Km/ 한발령 0.9Km)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570m봉은 삼거리이다. 오른편 좌방산 방향의 길 외에도 왼편에 길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바로 정상이라는 왕좌(王座)를 빼앗긴 서러움을 간직한 580m봉으로 가는 길이다. 580m봉에 오른 사람들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만 한다. 그런데 등산객들 일부는 580m봉을 다녀오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인지 570m봉에는 통나무의자까지 만들어두었다. 일행이 다녀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라는 얘기일 것이다. 나도 역시 집사람을 기다리라 해놓고 부지런히 580m으로 향한다. 그러나 이런 내 결정은 섣부른 오판(誤判)이었다. 580m봉을 다녀오는 길은 나 혼자 느끼기에 서운할 정도로 괜찮은 코스였기 때문이다.

 

 

580m봉으로 가는 들머리는 또렷하지 않기 때문에 잘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일단 들어서고 나면 길은 또렷해진다. 아니 또렷해진다고 하기 보다는 외길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능선의 양쪽 사면(斜面)이 모두 비탈진 날등으로 이루어진 탓에 다른 길을 만들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부로 떨어졌던 능선은 이번에는 바윗길로 변한다. 이 바윗길은 넘을 수도 있고, 넘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왼편으로 우회(迂廻)를 해도 된다. 그러나 난 일단 바위를 넘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위험을 느낄 정도로 험하지 않기 때문에 그저 스릴(thrill)만 즐기면 되기 때문이다.

 

 

 

570m봉에서 580m봉은 10분 조금 넘게 걸린다. 580m봉은 바위봉우리이다. 그리고 그 정상부위는 어느 곳이 정상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바위구간이 길게 퍼져있다. 어느 곳일까 두리번거리는데 중간쯤 바위가 뽈록하니 솟아오른 부위에 낯익은 코팅(coating)가 하나 보인다. 산행을 함께 하고 있는 한현우선생의 작품이다. 그는 ‘3000산 오르기라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로 산행을 이어가고 있는데, 산을 오를 때마다 저런 정상표시지를 하나씩 부착해 나가고 있다. 이곳 580m봉은 그가 오른 5311번째의 산이란다.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의 산에 대한 열정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그런데 그가 붙인 표시지에는 ’580m좌방산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따가 만나게 될 좌방산은 소좌방산이란다. 나 역시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은 그 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정상으로 삼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 현재의 좌방산은 곰봉으로 정하면 어떨까 싶다. 그나저나 580m봉은 502m봉에 비해 조망이나 볼거리 등 하등에 뒤질 것이 없는데도 왜 정상의 자리를 502봉에 넘겨주었을까? 어쩌면 주능선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정상들이 주능선 상에 있었던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기에 하는 말이다.

 

 

 

서글픈 산봉우리인 589m봉에 올라서면 시야(視野)가 탁 트인다. 마치 정상을 남에게 내준 한풀이가 아닐까? 좌방산 줄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임에도 불구하고 정상(頂上)의 자리를 502m봉에 넘겨준 한풀이 말이다. 그러나 열리는 시야에도 불구하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미미하다. 연무(煙霧)가 짙게 깔린 탓에 눈에 들어오는 시계(視界)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들의 눈을 빌어본다. <동남쪽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터진다. 팔봉산을 휘돌아 흐르는 홍천강과 반곡리 분지가 내려다보이고, 멀리 쇠뿔봉과 금확산이 우뚝 솟아 보인다. 서쪽으로 20m 나선 곳에 있는 전망바위로 발길을 옮기면 동남쪽을 제외한 나머지 조망도 즐길 수 있다. 남으로는 570m봉부터 뻗어내린 남릉과 그오른쪽 홍천강이 멀리 봉미산과 어우러져 한 폭 그림을 연출한다. 서쪽 조망도 일품이다. 지형도 상의 좌방산 정상인 502m봉이 내려다보이고, 502m봉 너머로 장락산, 호명산, 주발봉 능선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시야에 들어온다. 북으로는 봉화산에서 고깔봉으로 이어지는 산릉을 넘는 소주고갯길이 뚜렷하고, 소주고개 너머로는 삼악산이 거대한 수석처럼 눈에 들어온다.>

 

 

 

570m봉으로 되돌아와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가파르게 시작된 산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만(緩慢)한 능선길로 바뀌더니 이정표(좌방산 정상 2.0Km/ 한발령 1.0Km)가 있는 곳에서 오른편으로 급하게 휘어져 내려간다. 능선에는 온통 참나무 천지, 가끔 소나무가 보이기도 하지만 그저 어쩌다가 한 그루씩 나타날 따름이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소나무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곳이 나타난다. 그것도 오래 묵은 늙은 소나무들 천지이다. 누군가의 메모(memo)노송(老松) 쉼터라고 표기되어 있던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580m봉을 들르지 않고 곧장 좌방산으로 가던 일행 몇 명이 앉아서 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비록 의자는 설치되어 있지 않지만 앉아서 쉬기에는 이보다 나은 자리가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지는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고만고만한 작은 봉우리들을 넘다보면 이정표가 없는 능선삼거리가 나타난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오른편으로 가파르게 떨어지는 길이 옳은 길인데도, 왼편의 능선 길이 옳은 길 같이 생각되기 때문이다. 오른편 길이 비록 급하게 방향을 트는데다가 가파르게 고도(高度)까지 낮추기 때문에 마치 능선을 벗어날 것 같은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은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지도(地圖)만 보고 방향을 잡았던 우리 일행은 곧장 능선을 따라 진행하게 되었고, 그 결과 꽤 힘든 산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능선으로 진행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능선이 끝나면서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러다가 거의 바닥까지 이르고서야 내려가는 것을 멈추더니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향한다. 어느새 산길은 흔적까지 희미해져 버렸다.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은 탓일 것이다. 산길에 억매이지 않고 그냥 오른편 능선으로 오르고 본다. 좌방산으로 연결되는 능선이 분명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잡목(雜木)들을 헤치며 능선 위로 오르면 예상대로 또렷한 산길이 나타난다. 아까 탈출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던 그 길이다. 능선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금방 안부사거리(이정표 : 좌방산 정상 0.3Km/ 태평사 0.8Km/ 심일폭포(등산로 폐쇄)/ 한발령 2.7Km)이다. 580봉을 거치지 않고 그냥 좌방산만 오르려고 하는 사람들은 태평사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이곳을 거쳐 좌방산에 오르는 것이 보통이다. 570m봉에서 이곳까지는 40분 정도가 걸렸다. 길을 잘못 들었는데도 시간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태평사 갈림길에 산길은 다시 가파르게 변한다. 어쩌면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아닐까 싶다. 가파르기야 아까 570m봉에 오를 때보다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 지친 상태에서 맞는 가파른 오르막길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 오르막길은 길지 않다. 정상까지의 거리는 300m, 15분 조금 못되게 치고 오르면 좌방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났다.

 

 

좌방산 정상은 3~4평쯤 되는 공터로 이루어져 있다. 한가운데에 검은 오석(烏石)으로 만든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삼각점(용두305, 2005재설)과 이정표(소남이섬 1.6Km. ()발산중학교 1.7Km/ 태평사 1.1Km, 한발령 3.0Km)도 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으로 정상 옆 소나무 그늘아래에 벤치(bench)를 설치해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좌방산의 옛 이름은 잣방산이다. 예로부터 산자락에 잣나무가 유난히 많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편 정상(頂上)의 생김새가 잣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으니 참조해볼 일이다. 이 잣방산과 관련된 전설(傳說)이 하나 있어서 소개해 본다. 옛날 이 마을에 효성(孝誠)이 지극한 머슴 덕쇠가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덜컥 병이 났던 모양이다. 이후의 전개과정은 여느 다른 전설들과 똑 같다. 덕쇠는 갖은 약을 모두 다 구해다 드리는 등 정성을 다해 그의 어머니를 보살폈으나 어머니의 병은 깊어만 갔던 것이다. 드디어는 그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을 받은 산신령(山神靈)이 그의 앞에 나타났고, 산신령이 알려준 대로 행한 결과 어머니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때 산신령이 알려준 처방(處方)이 산의 정상에서 자라고 있는 잣나무에 열린 잣 열매 세 개를 따다가 갈아 먹이라는 것이었고, 그 인연(因緣)으로 잣방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남향의 조망(眺望)은 일품이다. 홍천강을 가로지르는 서울-춘천고속도로의 뒤로 장락산과 왕터산 줄기가 또렷하게 나타난다. 나머지 방향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시야(視野)가 잘 트이지 않는다.

 

 

 

 

이정표가 가리키고 있는 발산중학교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을 시작하자마자 급경사(急傾斜) 암벽(巖壁)이 나타난다. 그러나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은 편이다. 위에서 보면 높고 험하게 보이지만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내려설 수 있기 때문이다.

 

 

바윗길을 내려서면 또 하나의 이정표(소남이섬 1.6Km/ 발산중학교 1.7Km/ 좌방산 정상 0.04Km)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에 보이는 급경사 내리막길로 진행할 경우 소남이섬에 이르게 된다. 괜찮은 바윗길로 알려졌지만 우린 발산중학교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산길은 바위절벽 아래로 난 오솔길을 따라 이어진다. 좌방산의 정상어림이 바위로 이루어진 탓에 산길이 그 바위 절벽(絶壁)을 끼고 나있기 때문이다. 산길이 원을 그리면서 돌기 때문에 마치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하겠지만 제대로 가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 가다가 암벽을 떠나 왼편 능선으로 방향을 틀기 때문이다.

 

 

 

능선은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낮추어간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소음이 들리기도 한다. 아마 서울-춘천고속도로의 위를 지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뽈록하니 솟아오른 작은 봉우리 위에 올라서게 된다. 아마 250m일 것이다. 정상에 통나무로 만든 벤치가 놓여있는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얼핏 의자에 가려 무심코 오른편으로 진행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산중학교로 내려가려면 왼편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길이 거의 직각에 가깝게 방향을 트는데다가 길이 의자 뒤로 숨어있기까지 하니 주의가 요구된다.

 

 

 

250m봉에서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그러나 다행이도 바닥이 부드러운 흙길이라서 내려서는데 부담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산길의 주변은 온통 참나무 천지, 옷깃만 스쳐도 초록빛으로 물들어버릴 것 같은 녹음 속을 걷다보면 갑자기 잣나무 숲이 나타나고, 잣나무 숲이 끝나는가 싶으면 산행안내도가 세워진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산행날머리는 구() 발산중학교

임도를 따라 잠시 걸으면 지금은 폐교(廢校)가 된 발산중학교에 이르게 된다. 비록 폐교가 되었지만 건물은 아직까지 반듯하다. 누군가가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건물에 문화예술의 만남, 반딧불이야기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것을 보면 예술인들이 공동 작업실로 이용하면서 시설물들을 관리하고 있는 모양이다. ’예술인 들은 세속의 때를 덜 탄다?‘ 누군가의 말처럼 예술인들은 마음이 선()한가 보다. 경내(境內)에 있는 수도시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을 보면 말이다. 그 덕분에 우린 산행 중에 흘린 땀을 깨끗이 씻고 개운하게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호의를 베풀어 준 예술인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려본다. 오늘 산행시간은 총 3시간, 물론 쉬지 않고 걸은 시간이다.

 

명봉산(鳴鳳山, 618.4m)

 

산행일 : ‘14. 6. 22()

소재지 : 강원도 원주시 문막면

산행코스 : 건등저수지메나골남매소나무절골598.7m명봉산이종숙묘역동화2(산행시간 : 3시간10)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명봉산은 원주시 문막읍의 동쪽에 솟은 나지막한 산으로 일반인에게는 아직 덜 알려져 있다. 인근 치악산의 그늘에 가려진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산세(山勢)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상석이 있는 598봉에서 명봉산 사이에 잠깐 나타나는 암릉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볼거리가 일절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은 괜찮은 편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은 탓인지 숲은 원시림(原始林)처럼 우거져 침침하기까지 하고, 비록 깊지는 않지만 계곡은 나름대로의 멋을 풍기고 있다. 거기다 흙으로 이루어진 산길은 완만(緩慢)해서 걷는데 조금도 부담이 없다. 따라서 가족산행지로 추천할 만하다.

산행들머리는 건등저수지(원주시 문막면 건등리)

영동고속도로 문막 I.C에서 내려오자마자 원주방향으로 우회전하여 500m정도 가면 관천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기 바로 직전에 오른쪽에 보이는 마을길(명봉산길)1km 남짓 들어가면 산행들머리인 건등저수지가 나온다. 메나골까지 도로가 나있지만 대형차량의 진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수지가 산행들머리가 되는 것이다.

 

 

 

 

저수지 위 삼거리에서 목화마을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목화 체험장을 지나 마을까지 가면 나이가 수백 년은 족히 넘었을 것 같은 거대한 느티나무 한 그루가 길손을 맞는다. 그리고 곧 이어 명봉산 건강원이 나오고, 메나골로 들어가는 길은 건강원의 오른쪽 옆으로 나있다. 건강원의 입구와 건물 옆에 메나골로 들어가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건강원을 지나면 곧이어 산행안내도가 세워진 공터가 나오고, 이 공터를 지나면서 본격전인 산행이 시작된다. 메나골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메나골이나 조금 전에 지나왔던 메나마을은 목화(木花, cotton plant)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수백 년 전부터 이 마을에서 목화를 재배해왔는데, 목화의 다른 이름인 면화(綿花)가 소리 나는 대로 부르다보니 메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는 목화를 재배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손이 딸리는 것이 그 원인이란다. 그러나 마을 입구에 목화체험장을 지어놓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을 보면 목화와의 인연(因緣)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산행을 하다보면 가끔 체육시설을 갖춘 쉼터를 만날 수 있다. 어디선가 나왔을법한 지원금(支援金)으로 설치한 모양인데, 과연 누구를 위해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만일 등산객들을 위한 것이라면 생각 자체부터가 어설픈 발상이었을 것이다. 설마 등산객들이 산을 오르다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풀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민들을 위한 시설일까? 그러나 이도 아닐 것 같다. 만일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라면 동네 근처에 만드는 게 옳겠기에 말이다.

 

 

산길은 메나골을 따라 이어진다. 계곡을 따라가다가 어떤 때는 계곡을 가로지르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계곡은 메나골이라는 이름만큼이나 귀엽고 작은 골짜기이다. 크지는 않지만 규모 있는 바위들이 곳곳에 널려있어 물이 많이 흐를 경우에는 수많은 폭포(瀑布)들을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은 물의 양이 많지 않다. 그나마 그 물은 계곡을 올라가면서 서서히 줄어들더니 이내 물기 한 점 없는 건천(乾川)으로 변해버린다. 일기예보 때 들었던 마른 장마철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5, 메나골로 들어서서 15분쯤 지나면 길이 두 갈래(이정표 : 명봉산 정상/ 신배나무골/ 메나골)로 나뉜다. 왼편으로 갈 경우 신배나무골이 나온다는데 대체 어디를 지칭(指稱)하는지도 모르겠고 길까지 희미하기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지나쳐 버린다.

 

 

계곡은 비록 깊지 않지만 사람들이 잘 찾지 않은 덕분인지 원시(原始)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아기자기한 계곡은 사람들의 손을 덜 탄 탓에 아직까지 깨끗하고, 주변은 울창한 숲과 넝쿨식물들로 덮여 온통 짙은 초록으로 물들어 있다. 자연미(自然美) 넘치는 계곡 길을 즐기며 걷다보면 이내 남매소나무 쉼터에 이르게 된다. 소나무 두 그루가 'V'자 모양으로 자란 것이 마치 사이좋은 남매처럼 보인다고 해서 남매소나무란 이름이 붙여졌나 보다. 잠깐의 눈요깃감으로 충분하다 싶었는지 소나무 근처에다 체육시설을 갖춘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소나무쉼터를 지나면서 길이 다시 두 갈래(이정표 : 명봉산 정상/ 달밝골/ 메나골)로 나뉜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10분 쯤 지난 지점이다. 이곳에서도 역시 오른쪽 명봉산 정상 방향으로 진행한다.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왼편 길을 따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길의 양편에 처져있는 금()줄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서슬 시퍼런 경고판(警告板)도 볼 수 있다. 글자는 비록 희미하지만 약초(藥草) 재배지이니 출입을 하지 말라는 얘기일 것이다.

 

 

달밝골 갈림길을 지나면서 계곡의 경사(傾斜)가 가팔라진데다, 바닥의 바위들까지 불규칙하게 깔려있어 오르는 것이 쉽지 않다. 계곡은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원시(原始)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닥에 깔린 바위들이 온통 초록빛 이끼들을 뒤집어 쓰고 있는 것이다. 어두컴컴할 정도로 울창한 숲속에서 보는 초록빛 향연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계곡이 가파르게 변한다 싶더니 산길이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가 나타난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바닥이 부드러운 흙길이라는 정도, 짙은 참나무 숲 아래로 난 눈요깃거리 하나 없는 산길을 따라 그저 묵묵히 앞사람의 뒤꽁무니를 따를 수밖에 없다.

 

 

 

숨이 턱에 찰 정도로 힘들게 오르다가 기괴(奇怪)한 장면이 눈에 들어와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마치 성교(性交)라도 하고 있는 듯이 포개져 있는 것이다. 이게 바로 진정한 사랑나무가 아닐까 싶다. 완전히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들이 하나로 합쳐져 공생(共生)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독하게 몰아세우는 오르막길과 20분 정도 싸우고 나면 주능선(이정표 : 명봉산 정상/ 매봉산/ 메나골) 위에 올라서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이 조금 못 걸렸다. 일단 주능선 위에 올라서면 언제 그렇게 가팔랐냐는 듯이 산길은 순해진다. 주능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헬기장이 나오면서 모처럼 하늘이 열린다. 그리고 오늘 산행에서 처음으로 조망(眺望)이 트인다. 골프장이 있는 궁촌리 방향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는데, 질펀하게 널려있는 이름 모를 작은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헬기장에서 약간 가파른 오르막길을 짧게 치고 오르면 바위봉우리가 나타난다.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598.7m봉이다. 바위봉우리라고 해서 온통 바위로 이루어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흙으로 된 봉우리인데 정상의 꼭짓점에 커다란 바위들이 몇 개 겹치듯이 널려있는 정도일 따름이다. 정상표지석 때문에 등산객들은 대부분 이 봉우리를 정상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정상은 이곳에서 조금 더 진행해야 만날 수 있다. 598.7m봉에는 정상표지석 외에도 삼각점(三角點, triangulation point)과 아무런 내용도 없는 낡은 안내판(案內板)이 세워져 있다. 거기다 조망(眺望)까지 좋으니 사람들이 정상으로 오인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도 없을 것이다.

 

 

598.7m봉에서의 조망(眺望)은 일품이다. 문막 들판을 가로지르는 영동고속도로가 실낱처럼 내려다보이고, 고속도로 너머로는 섬강(蟾江)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멀리 치악산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물론이다.

 

 

 

598.7m봉에서 실제 정상(618.4m)으로 향한다. 이 구간이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 (highlight)이다. 명봉산에서 유일한 암릉인데다, 암릉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노송(老松)들과 바위들이 어우러지면서 제법 뛰어난 눈요깃거리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바윗길에는 로프까지 걸려있어 약간의 스릴(thrill)까지 느낄 수 있다.

 

 

 

 

 

598.7m봉에서 아래로 떨어졌다가 안부에서 다시 맞은편 능선으로 치고 오르면 10분 후에는 삼거리(이정표 : 명봉산 정상/ 흥업/ 메나골)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명봉산 정상이 있다.

 

 

 

펑퍼짐한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명봉산 정상은 도무지 정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명봉산 정상 620m'라고 적혀있는 리본만 아니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일 것이다. 거기다 조망(眺望)까지도 터지지 않으니 어느 누가 여기를 봉황이 울었다는명봉산의 정상이라고 여기겠는가. 598.7m봉에다 정상표지석을 세운 사람들의 마음이 헤아려지면서 고개가 끄떡거려진다. 등산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나라도 그리 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정상까지는 1시간20분이 조금 못 걸렸다.

 

 

 

날머리를 동화2리 방향으로 잡고 하산을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느긋하게 걷기만 하면 된다. 계속해서 작은 오르내림이 반복되기는 하지만 짧고 완만(緩慢)하게 올랐다가 길게 내려서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낮추어 가는 탓에 조금도 힘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다 바닥이 부드러운 흙길이다 보니 발바닥에 전해오는 촉감까지도 좋다. 다만 하나 조심해야할 것은 길 찾기이다. 하도 많은 갈림길이 좌우로 열리기 때문이다. 물론 이정표도 찾아볼 수 없다.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로 인해 조망(眺望)이 열리지 않지만 심심하지는 않다. 간간히 커다란 바위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어떤 바위들은 눈요기 외에도 붙잡고 올라가는 재미까지도 선사할 정도이다.

 

 

 

하산을 시작한지 50분쯤 되면 임도(林道)에 내려서게 된다. 능선을 좌우로 가로지르고 있는 임도는 깔끔하게 정비가 잘되어 있는 걸로 보아 현재도 활용되고 있는 모양이지만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는 알 길이 없다. 혹시 동화사로 내려가는 길이 아닐까 싶어 왼편으로 3~4분 정도 내려가 봤지만 아닐 것 같아 되돌아 나오고 말았다. 그러나 임도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임도를 가로질러 맞은편 능선으로 들어서자마자 오석(烏石)으로 만든 시비(詩碑)를 만났기 때문이다. 김충렬이라는 사람이 2004년에 세웠다는 시비(詩碑)의 이름은 연모시비(戀母詩碑) 그 내용이 하도 구구절절해서 옮겨본다. ’뜬구름은 떠도는 아이의 슬픔을 머금어 비가 되고, 성황나무는 비는 어머니의 모습을 담아 구부러졌네. 떠돌던 자식은 돌아왔건만,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니, 멍하니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한없이 눈물만 진다.‘ 비석의 뒷면에 이 비석을 세운 내력을 적었는데, 80년 전에 이곳은 대안령(大安嶺)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갯마루였고, 당시 이곳에는 성황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임도를 지나서도 산길은 큰 변화가 없이 계속된다. 완만한 내리막길이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지는 것이다. 참나무와 소나무가 섞인 산길의 풍경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숲이 짙기 때문에 시야(視野)가 트이는 곳도 당연히 없다. 그저 능선을 따라 진행할 따름이다.

 

 

임도를 출발한지 10분 가까이 지나면 이제까지 와는 달리 제법 가파르고 긴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어쩌면 326m봉이 아닐까 싶다. 선두의 방향표시지는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326m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그러나 다행히 길은 흔적이 또렷하다. 그러다가 능선을 벗어나 이름 모를 묘역으로 들어서면 산길의 흔적은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다행이도 나머지 구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잡목(雜木)사이를 조금만 헤쳐 나가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임도에 내려서게 된다. 326m봉에서 10분 정도가 걸렸다.

 

 

 

 

임도에 내려서면 저만큼 아래에 마을이 나타난다. 규모가 제법 반듯한 것이 아마 동화2리가 아닐까 싶다. 아뿔싸! 그렇다면 길을 잘 못 들었던 모양이다. 오늘 예정되었던 코스는 분명 벽계수 묘역을 들른 후에 동화2리로 내려오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마을로 내려온 다음에 하천정비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왼편 도로를 따라 동화사 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이종숙 묘역(墓域)’이 나온단다. 그 거리는 1Km, 산행 막바지에 그만한 거리를 다시 걷는다는 것은 사실 고역(苦役)이다. 특히 오늘 같은 무더운 날에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종숙의 묘역 구경을 하지 않고 산행을 끝낼 수는 없다. 황진이가 애간장을 태웠다는 벽계수(이종숙)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나이들의 로망(roman)일 것이기 때문이다.

 

 

 

동화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길은 벽계수 길이라는 어엿한 이름을 갖고 있다. 원주시에서 관내(管內)의 걷기 좋은 길 25개 코스를 선정해 '원주굽이길' 책자를 발간했는데 그 안에 제16코스로 소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길은 동화골삼거리(문막읍 동화리)에서 시작해서 벽계수묘역 앞을 지나 명봉산의 산허리를 넘은 후에 해삼터(흥업면 대안리)에서 끝을 맺는다. 그 거리는 8.4, 그중 일부구간을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벽계수 길을 따라 7~8분 정도 걸으면 벽계수 길은 왼편으로 방향을 튼다. 길가에 이정표가 큼지막하게 세워져 있으니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이곳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동화사(桐華寺)로 가는 길이다.

 

 

삼거리에 왼편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이곳이 벽계수 묘역임을 알려주는 커다란 비석(碑石) 하나가 길손을 맞는다. 그리고 50m쯤 더 걸으면 또 하나의 이정표(벽계수 이종숙 묘역 400m)가 나타나면서 이제 그만 벽계수 길과 헤어져 산자락으로 오르라고 한다. 그 거리는 400m, 그러나 실제거리는 100m쯤 되지 않을까 싶다. 오른편 산자락으로 들어서면 선무랑 이원경의 묘()가 나오고, 벽계수의 묘는 그 뒤 5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민(庶民)들 묘()의 봉분(封墳)보다 약간 큰 벽계수의 묘는 묘비(墓碑)와 상석(床石) 등 일반적인 석물(石物) 외에도 망주석(望柱石)과 문관석(文官石) 그리고 석등(石燈) 등 반듯한 규모를 갖추고 있다. 그의 신분이 왕족(세종대왕의 종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석물들은 모두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새것 일색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그의 묘는 방치되어 오다가 남에게 보일 정도로 묘역을 꾸민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참고로 벽계수 이종숙은 송도삼절(松都三絶)의 한명인 황진이(黃眞伊)가 연모했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그렸던 인물이다. 당시 조선 최고의 기생이었던 황진이가 중종과 인척관계이자 명사였던 벽계수 이종숙을 유혹했으나 뿌리치고 자리를 뜨자 이를 빗대서 지은 시로 인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녀는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가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엇더리라며 애달파 했다고 한다. 벽계수라는 대명사는 세종대왕의 17번째 아들 영해군의 손자인 이종숙의 벼슬이었던 벽계도정(碧溪都正 : 종친, 외척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정삼품 벼슬)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싶다.

 

 

 

 

산행날머리는 동화2(영동고속도로 조금 못미처)

벽계수의 묘역을 둘러본 후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고민에 빠진다. **)동화사(桐華寺)를 들러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이곳 삼거리에서 동화사까지는 1.2Km. 왕복하자면 최소 30분 이상이 걸릴 것이다. 고민은 오래가지 못했다. 주어진 하산시간이 어느새 빠듯해진 탓이다. 다시 벽계수 길을 따라 동화2리로 향한다. 하천정비사업이 한창인 동화천 하류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영동고속도로가 보이고, 도로 조금 못미처에 있는 공장건물 근처에서 산행이 종료된다. 산행시간은 총 3시간50, 정상에서 준비해 온 막걸리를 마시느라 쉰 40분을 뺄 경우 3시간 10분이 걸렸다.

(**) 동화사(桐華寺)는 조선 초기 이전에 되었다가 19세기 중반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진다. 비록 단편이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사찰에 대한 기록이 실려있고, 매월당시집(梅月堂詩集)에도 동화사에 묵으며(宿桐花寺 原州)라는 시가 실려 있는 것을 보면 제법 큰 사찰(寺刹)이 아니었나 싶다. 하나 당시의 이름은 동화사(桐花寺), 조선 중기 무렵부터 동화사(桐華寺)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인조의 장인이었던 한준겸(韓浚謙)의 저작 유촌유고(柳川遺稿)桐華寺次牧伯見贈韻 寺在原州등의 단편적인 기록들이 처음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동화사에는 천년 묵은 빈대에 얽힌 전설(傳說)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동화사가 자리 잡은 터는 원래 빈대의 소굴이었는데 그 자리에 큰스님이 절을 지었단다. 부처의 가르침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아마 빈대 때가 중생들을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굴에는 천 년 묵은 빈대가 살고 있었고, 큰스님의 법력(法力)에 눌려 지내던 빈대는 큰스님이 쇠약해지자 드디어 싸움을 걸어온 모양이다. 이를 안 스님이 싸우는 광경을 작은 스님에게 안 보여주려고 시주를 보내면서, 돌아오는 길에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마라는 주의를 주었지만, 작은 스님이 이를 지키지 않은 탓에 큰스님과 작은 스님 모두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빈대도 함께 죽었음은 물론이다.

 

 

덕항산(德項山, 1,071m)-환선봉(幻仙峯=지각산, 1,079m)

 

산행일 : ‘14. 5. 3()

소재지 :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태백시 하사미동·조탄동의 경계

산행코스 : 귀내미골자암재지각산덕항산구부시령푯대봉(660m)건의령(산행시간 : 4시간10)

같이한 산악회 : 송암산악회

 

특색 : 덕항산이라는 산 이름보다는 환선굴이라는 관광지(觀光地)로 더 알려진 산이다. 그만큼 천연동굴(天然洞窟)인 환선굴이 빼어나다는 증거일 것이다. 덕항산의 특징은 한마디로 말해 동서(東西)의 풍경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삼척방향의 동쪽은 협곡(峽谷)으로 깎아지른 계곡인 반면에 태백방향인 서쪽은 한없이 부드럽고 평탄한 형세이다. 때문에 태백 쪽에서 산행을 시작해서 삼척 쪽으로 하산을 하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편하게 산을 올랐다가 내려가는 길에 환선굴이라는 눈요기까지 한꺼번에 즐기려는 목적에서이다.

 

산행들머리는 귀내미골 올라가는 길가의 철()다리(태백시 하사미동 귀내미골)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내려와 38번 국도를 타고 태백시까지 온다. 태백시로 들어오는 초입에 있는 화전사거리(태백시 화전동)에서 좌회전하여 35번 국도 하장·강릉방면으로 달리면 삼수령과 미동초등학교 하사미분교(폐교)를 지나 귀내미골로 들어가는 삼거리(태백시 하사미동 5-6-1)를 만나게 된다. 이곳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들어가다 보면 귀내미골에 이르기 전에 오른편 산자락으로 난 철()다리 하나가 보인다. 산행들머리이다.

 

 

 

길가에 핀 화사한 벚꽃을 감상하다 오른편 산자락을 향해 놓인 철다리를 건넌다.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도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귀내미골이 나오고,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러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KBS-2TV ‘12로 인해 세상에 알려진 귀내미골은 우리나라 3고랭지배추 재배단지중 하나로 광동댐(dam)’을 건설하면서 수몰(水沒)지역에 살던 주민들을 집단으로 이주(移住)시킨 곳이다. 나머지 두 곳은 태백의 매봉산과 강릉의 안반데기(안반덕)이다. 귀내미골의 자랑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수십만 평에 달하는 배추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배추밭의 백미(白眉)를 꼽으라면 당연히 푸른빛이 넘실거리는 배추밭이고, 나머지 하나는 백설(白雪)로 뒤덮인 설원(雪原)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른 봄, 두 절경(絶景) 모두를 볼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볼거리가 없는 귀내미골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산행거리를 단축함으로써 다른 볼거리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산길은 또렷한 편이다. 이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산길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이 길손을 맞는다. 낙엽송군락들은 이곳 외에도 산행 중에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아마 이곳 지질(地質)에 가장 잘 맞는 품종인 모양이다. 산길은 한마디로 순하다. 보들보들한 흙길에다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니 올라가는데 조금도 힘들지 않다. 거기다 능선안부인 자암재까지의 거리까지 짧으니 오늘 산행은 거의 공짜로 하는 편이다. 능선까지 오르는 초반이 가장 힘이 드는 것이 보통인데 6~7분 만에 편안하게 올라왔으니 말이다. 자암재(이정표 : 헬기장 0.8Km/ 환선굴 1.7Km/ 큰재 3.4Km)에서 고갯마루를 넘어 맞은편으로 난 길은 환선굴로 내려가는 가파른 내리막길이니, 덕항산으로 가려면 당연히 능선을 따라 오른편(헬기장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자암재에서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능선은 오른쪽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그리고 경동지괴(傾動地塊)인 덕항산의 특징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경동지괴(傾動地塊, tilted block)란 단층(斷層, fault)운동에 의하여 생긴 단층 지형의 일종으로 한쪽 방향으로 경사져 있는 지괴(地塊)를 말한다. 즉 한쪽의 사면(斜面)은 완만(緩慢)한 반면, 다른 한쪽의 사면은 급경사(急傾斜)의 단층애(斷層崖 = 絶崖)로 이루어진다. 능선의 왼편, 그러니까 동쪽방향은 수백 길의 낭떠러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위로 산길이 나있다. 그렇다고 해서 겁부터 집어먹을 필요는 없다. 산길이 거의 산책로(散策路) 수준으로 잘 나있을뿐더러 협곡(峽谷) 위 가장자리를 따라 난간을 설치해 놓아서 일부러 난간을 넘어가지 않는 이상은 위험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자암재에서 18분 정도가 지나면 헬기장(이정표 : 환선봉 0.7Km/ 자암재 0.9Km)에 이르게 되고, 이어서 가파른 오르막길을 17분 정도 힘겹게 치고 오르면 환선봉이다. 열 평 남짓한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환선봉(옛 지각산) 정상은 정상석표지석과 이정표(덕항산 1.4Km/ 헬기장 0.7Km)가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는 주의해야할 점이 하나 있다. 정상석의 글씨가 한글보다 한문이 더 크게 쓰여 있는 것을 보고 혀만 끌끌 차다 덕항산으로 발걸음을 옮겨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상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숨어있는 전망대에 꼭 들러보라는 얘기이다.

 

 

 

 

 

정상석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오늘 산행에서 가장 뛰어난 전망대(展望臺)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바위절벽 위에 있는 전망대에 서면 환선굴이 있는 대이리의 풍경이 고즈넉하게 펼쳐지고, 고개를 왼편으로 조금만 돌리면 귀내미골의 고랭지 채소밭이 광활(廣闊)하고, 채소밭 뒤 능선에는 풍력발전기들이 힘차게 날개 짓을 하고 있는 것이 보이다.

 

 

 

 

환선봉을 가파르게 내려서면 산길은 얼마간 완만(緩慢)하게 이어진다. 온통 참나무로 둘러싸인 산길이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구간이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가끔가다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저 멀리 동해바다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어서 봉우리 하나를 더 넘으면 능선 안부에서 쉼터(이정표 : 덕항산 0.4Km/ 골말 1.9Km/ 예수원/ 환선봉 1.4Km)를 만나게 된다.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이곳은 말이 좋아 쉼터이지 의자 하나 놓여있지 않다. 사거리인 이곳에서 어디로 가야할지를 의논하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가라는 의미인 모양이다. 앉지는 말고 서서 말이다. 천연기념물 178호 환선굴과 대금굴을 구경하고 싶다면 이곳에서 왼편의 골말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쉼터에서 덕항산까지는 0.4Km, 비록 오르막길이지만 경사(傾斜)도 그다지 가파르지 않기 때문에 10분이면 충분하다. 그저 심심찮게 터지는 조망(眺望)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왼편에 내려다보이는 대이리 골말 일대는 6·25 한국전쟁조차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그만큼 외지다는 증거일 것이다. 덕분에 이곳에는 너와집, 굴피집, 통방아 등 많은 민속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좀 어수선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동쪽 방향의 나무들을 잘라 시야(視野)를 터주는 등 깔끔하게 정비를 한 흔적이 역력한데도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 어쩌면 너무 정비를 잘 해 놓은 탓이 아닐까 싶다. ‘백두대간이라고 쓰인 글씨가 선명한 정상표지석과 두 개의 이정표(구부시령 1.1Km/ 쉼터 0.4Km)는 기본이고 그 외에도 백두대간 안내판덕항산 안내판’, ‘등산로 지도까지 세워져 있다 보니 정상이 제법 너른데도 불구하고 비좁아 보일 정도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덕항산은 옛날 덕메기산으로 불렸다. 이 산을 넘어오면 화전(火田)을 할 수 있는 땅이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러던 것이 한자로 표기하면서 덕하산이 되었다가 현재는 덕항산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덕항산에서 구부시령(九夫侍嶺)으로 가는 길은 별다른 특징이 없는 길이 이어진다. 그렇다고 아무 볼거리도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길가에 갖가지 야생화(野生花)들이 군락(群落)을 이루며 피어있기 때문이다. 눈요기를 하며 20분 정도를 걷다보면 능선안부인 새목이에 이어 이정표(한의령 6.8Km/ 덕항산 1.1Km)구부시령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구부시령에 이르게 된다. 구부시령은 옛날 태백 하사미의 외나무골에서 삼척 도계읍 한내리로 넘어가던 고갯마루이다. 그리고 이 고갯마루는 이름에 얽힌 전설(傳說) 하나를 갖고 있다. 옛날 고개 동쪽 한내리 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이 살았는데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고 하여 무려 아홉 서방을 섬겼다고 한다. 그래서 아홉 남편을 모시고 산 여인의 부정(夫情)을 기리기 위해 그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홉 명의 남편과 함께 산 것이 꼭 나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평소의 내 생활신조(生活信條) 탓일 것이다.

 

 

 

 

 

 

구부시령을 지나서도 참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산길의 풍경(風景)은 변하지 않는다. 등산로는 잘 닦여있고, 그 가파름도 그다지 심하지 않다. 순한 산길이 조금은 여유로웠던지 앞서가던 집사람이 가끔 산길을 벗어나는 것이 보인다. 산나물을 채취하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산길 주변에 참취와 단풍취가 제법 많이 돋아나 있다. 구부시령을 출발한지 16분이 지나면 1055봉에 올라서게 되고, 다시 25분쯤 더 걸으면 1017봉에 올라서게 된다. ‘힘내세요.’ 두 봉우리의 나무기둥에 묶여있는 정상표지 코팅지에 적혀있는 글귀이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해주는 산꾼들의 진심어린 마음이 묻어나오는 순간이다.

 

 

 

 

 

 

산길은 크고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가끔 가팔라지기도 하지만 걷기에 편한 길이 대부분이다. 그 가파름이 심하지도 않을뿐더러 길바닥이 포근포근한 흙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161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급하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 산길이 안부에 이르면 오른편이 시원스럽게 열린다. 큰 나무가 하나도 없는 평원(平原)은 사람들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금()줄을 쳐놓았다. 곳곳에 야생화들이 무리지어 피어있는 것을 보면 아마 야생화단지로 조성하고 있는 모양이다.

 

 

 

 

 

 

야생화 조성지역을 지나면서 산길은 가파르게 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힘들게 느껴지지는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어쩌면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철쭉꽃 때문이 아닐까 싶다. 능선에 꽉 들어찬 철쭉들, 만일 도심지역에 이정도의 철쭉군락이 있었더라면 서둘러 축제를 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이렇게 멋진 꽃길에서 그까짓 오르막쯤이야. 힘들다는 생각이 파고들 틈도 없을 것이다.

 

 

 

1017봉을 출발해서 1시간25분쯤 지나면 푯대봉삼거리(이정표 : 건의령 1.1Km/ 푯대봉 0.1Km/ 덕항산 6.8Km)에 이르게 된다. 푯대봉은 이정표의 뒤편으로 100m쯤 더 들어간 곳에 있다. 정상표지석과 무인산불감시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상은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주변에 빽빽하게 들어찬 잡목(雜木)들 때문에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냥 또 하나의 봉우리를 올랐다는 의미가 전부일 것 같다.

 

 

 

 

푯대봉삼거리를 지나면서 산길의 풍경은 사뭇 달라진다. 삼거리에서 잠깐만 내려오면 주변이 온통 소나무들 천지로 변해버린다. 소나무 한그루 보기 힘들 정도로 참나무들 천지였던 능선을 소리 소문 없이 소나무들이 점령해버린 것이다. 짙은 소나무 향에 끌려 나도 몰래 킁킁거리다보면 어느새 건의령(이정표 : 피재 6.0Km/ 구부시령 6.8Km)에 내려서게 된다. 푯대봉삼거리에서 20분 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건의령(巾衣嶺)은 고려(高麗) () 삼척에 유배(流配)를 온 공양왕이 근덕 공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고갯마루에 관복과 관모를 걸어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태백산중으로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이다. 여기서 관복과 관모를 벗어 걸었다고 하여 관모를 뜻하는 건()과 의복을 뜻하는 의()를 합쳐 건의령이라 불렸다.

 

 

 

 

산행날머리는 건의령터널 삼척방향 입구

건의령에 내려서면 왼편으로 난 길이 하나 보인다. 그 길로 내려서면 포장도로가 나온다. 돌밭골로 올라가는 길이다. 승용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나 버스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는 없다. 당연히 건의령터널이 있는 왼편방향으로 한참을 더 걸어야만 한다. 널찍한 도로를 따라 10분 조금 넘게 걸어 내려오면 건의령터널 입구에 이르게 되면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백운산 마천봉(白雲山 摩天峰, 1,426m)

 

산행일 : ‘14. 1. 5()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의 경계

산행코스 : 막골약수암갈림길전망대백운산정상산철쭉길마운틴탑산죽길도롱이연못마운틴콘도카지노폭포앞주차장(알바제외 산행시간 :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백운산이라는 이름의 산은 전국에 하도 많아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이다. 그중에서도 광양의 백운산과 포천 백운산, 그리고 영월의 백운산 등이 많이 알려진 편이다. 이곳 정선의 백운산은 15m 가까이 되는 높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입에 덜 오르내리는 편이다. 이웃에 있는 태백산이나 함백산의 유명세(有名稅)에 가려 그만큼 덜 알려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강원랜드(카지노)에서 국내 제일의 스키장을 이곳 백운산 마천봉에다 개장(開場)해 놓았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고한읍 막골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내려와 38번 국도를 타고 태백방면으로 달리다가 고한교차로(交叉路 :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서 내려오면 고한읍이다. 이어서 고한시가지를 통과하다가 왼편에 한국청년회의소 건물이 보이면 우회전한다. 그런 다음 강원랜드사원아파트의 앞에서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잠시 후에 산행들머리인 막골에 이르게 된다. ‘백운산 등산로', '막골'이라 적힌 표지석과 등산안내도가 서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막골표지석 뒤로 난 시멘트포장 길을 따라 들어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고한읍 고한리)임에도 불구하고 해발 750m나 되니 꽤 높은 지점이다. 길은 눈이 치워져있지만 미리 아이젠을 착용하고 길을 나선다. 산행을 하는 도중에 아이젠을 차는 것이 귀찮아서이다. 산행을 시작해서 10분 남짓 걸으면 오른편에 자그마한 암자(庵子)가 하나 나타난다. 약수암이다. 자그마한 전각(殿閣)들의 숫자가 제법 많은 것이 암자라고 부르기가 좀 어색할 정도이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에는 좀 허름하다는 느낌이다.

 

 

 

 

약사암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산길이 갑자기 오른편으로 휘더니 능선으로 올라선다. 그러나 산길은 금방 능선을 벗어난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벼랑을 배겨내지 못했던 모양이다. 바위벼랑을 왼편으로 우회(迂廻)한 길은 또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게 되고, 능선을 따라 얼마간 더 걸으면 강원랜드 사원 아파트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갈림길(이정표 : 전망대 1.1Km, 백운산 정상 3.2Km/ 갈림길 0.5Km, 강원랜드숙소 1.5Km/ 막골입구 1.2Km)에 이르게 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42분이 지났다.

 

 

 

 

갈림길을 지나면서 산길은 순해진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이 작은 오르내림만 번복하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가기 때문이다. 울창한 낙엽송 사이로 난 눈길이 한동안 이어진다. 겨울의 한가운데임에도 불구하고 날씨는 포근하기 짝이 없다. 산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인 것이다. 낙엽송 숲길이 끝나고 1,084m봉을 지나면서 다시 키 작은 잡목 숲이 이어진다. 바람이 점차 거세지더니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버티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아직까지는 얇은 장갑만을 끼고도 산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갈림길에서 30분 정도를 걸으면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전망대(이정표 : 백운산정상 2.1Km/ 갈림길 1.1Km)가 나타난다. 전망대에 서면 성황당마을이라고 불리던 박심리가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약간 비켜나서 하이원 호텔(골프장)이 다소곳이 앉아있다. 예전에는 저 건물이 카지노(casino)였다. 그러던 것이 카지노가 현재의 건물로 옮기고 난 후로는 골프텔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강원랜드가 처음으로 문을 열던 시절, 개장(開場)을 위한 시뮬레이션(simulation) 행사에 초대를 받았을 정도로 난 이곳 강원랜드와 인연이 깊은 편이다. 그 이후에도 현재의 카지노호텔 이전, 새로운 개발계획 마련을 위한 이사회 참석 등 강원랜드와의 인연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다. 그래서일까? 주위에 보이는 풍경(風景)들이 유난히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전망대를 지나서도 산길은 변함없이 순하게 이어진다. 하늘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1000m급인데도 불구하고 큰 오르내림이 없이 부드러운 것이다. 골프장이 잘 내려다보이는 조망대를 두어 번 지나니 골프텔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지점(이정표 : 백운산 정상 0.6Km/ 밸리탑/ 전망대 1.5Km)에 이르게 된다. 머리 위로 지나다니는 곤돌라(gondola)는 하이원호텔(골프텔)에서 스키장의 최정상인 마운틴탑을 오간다.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스키장의 또 다른 정상인 밸리탑이 나온다.

 

 

 

곤돌라 통과지점에서 이정표가 지시하는 백운산정상방향으로 오른다. '등산로'라 적힌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곳이 들머리이다. 눈덮인 산죽길을 따라 북동릉으로 9분쯤 오르면 금대봉과 함백산이 잘 조망되는 헬기장이 나온다. 이곳도 역시 삼거리(이정표 : 백운산정상 0.6Km/ 하이원C.C 1.8Km/ 밸리콘도 3.7Km)이다. 그런데 이정표에 적어진 거리표시가 좀 이상하다. 아까 곤돌라가 지나가던 지점에 있던 이정표에도 정상까지가 0.6Km로 적혀있었던 것이다. 헬기장에 세워진 이정표의 맨 위에 바람꽃길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보인다. 이 부근이 바람꽃길인 모양이다. 바람꽃길은 늦은 봄이면 산길 주변에 바람꽃이 즐비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전망대에서 이곳까지는 40분 남짓 걸렸다.

 

 

 

 

잠깐 경사(傾斜)를 보이던 산길은 헬기장을 지나면서 다시 순해진다. 이제 진행 방향은 거의 정서(正西) 방향이다. 이 구간이 오늘의 하이라이트(highlight)이다. 전망대를 지나면서 보이기 시작하던 상고대가 서서히 그 크기를 키워가더니, 헬기장을 지나면서부터는 아예 만개(滿開)를 해 버린 것이다. 상고대가 활짝 핀 나뭇가지 사이로 열리는 파란 하늘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이런 길에서는 구태여 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 주변 경관을 음미하며 느림보의 미학을 추구하는 산행이 이어진다.

 

 

 

 

 

헬기장에서 정상인 마천봉까지는 느림보 걸음으로 걸어도 10분이면 충분하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밸리탑 갈림길(이정표 : 백운산정상 0.2Km/ 밸리탑 0.3Km/ 밸리콘도 4.1Km)을 지나면 곧바로 정상이다. 커다란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정상은 나무데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데크에는 친절하게도 조망안내도가 세워져 있어 눈앞의 봉우리들과 스키장 시설물들을 맞춰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5분이 지났다. 

 

 

 

 

백운산 정상 전망대(展望臺)에서는 소백산에서 청옥산까지, 한반도의 중간 허리를 꺾어 돌아가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을 굽어볼 수 있다. 그리 높지도 않고 뾰족한 봉우리도 없는 밋밋한 백운산이지만, 높은 산을 조망할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로는 손색없다. 물론 하이원스키장의 슬로프(slope)도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백운산 정상에서 1,381봉까지 이어지는 1.2km 구간은 아름답고 고요한 눈 세상이다. 이 구간은 산철쭉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길가에 산철쭉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봄이면 연분홍 철쭉꽃이 만발하겠지만 지금은 철쭉 대신 하얀 상고대가 만발해 있다. 사람들이 거의 발길을 들여 놓지 않은 깨끗한 산길. 마음까지 맑아지는 듯 싶다. 하이원리조트의 키워드는 하늘이다. 높이, 더 높이. 하늘로 오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그 하늘에서 걸어보자는 이름으로 만들어 낸 것이 하늘길이다. 하이원 리조트는 동원탄좌(東原炭座)의 석탄광(石炭鑛)이 있던 곳이다. 동원탄좌가 문을 닫은 것은 2004. 정선의 마지막 석탄광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더 이상 경제성이 없던 것이 그 이유였다. 광부(鑛夫)들도 떠나고 운탄트럭도 사라졌다. 그리고 잊혀졌다. 그러던 것이 하늘길로 다시 태어났다. 먼지 뽀얗게 앉았던 길에는 마당이 서고 쉼터와 이정표가 마련됐다. 그리고 그 길에는 산뜻한 아웃도어 차림의 트레커(trekker)들이 무리지어 걸으며 끝없이 재잘거린다. 참고로 하늘길은 구간마다 제각각 이름을 갖고 있다. 산죽길, 낙엽송길, 처녀치마꽃길, 바람꽃길 등등. 구간마다 거기서 피고 지는 들꽃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한

 

 

 

백운산의 트레킹 코스는 하늘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백두대간이 월악산 근처를 지나면서 하늘재라는 고갯마루가 만들었는데, 거기서 모티브(motive)를 따온 것이 아닐까 싶다. 하늘길의 정점인 마천봉으로 근처의 길은 한마디로 환상적(幻想的)이다. 사방에 순백의 절경(絶景)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 정말 하늘을 향해 걷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1381봉을 지나면 비로소 마운틴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 뒤에는 스키장 슬로프에 내려서게 된다. 등산로는 슬로프의 왼편 언덕 위로 나 있다. 언덕길을 6분 정도 걸으면 해발 1340m의 마운틴 탑에 도착하게 된다. 슬로프(slope) 헤라(HERA)의 정점이다. 마침 찾은 시기가 스키시즌인지라 수많은 스키어(skier)들로 붐비고 있는 풍경이다. 참고로 마운틴탑에는 45분만에 한 바퀴를 돈다는 회전식 전망 레스토랑인 '탑 오브 더 탑(Top of the top)'이 있다. 이번 산행에 점심식사를 이곳에서 하려고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해야만 했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는 강원랜드의 김전무가 참으로 고맙다. 마천봉 정상에서 마운틴탑까지는 40분 정도가 걸렸다.

 

 

 

 

 

 

 

하산길은 마운틴탑의 옆 곤돌라 탑승장 뒤(이정표 : 도롱이연못 1.4Km/ 백운산정상 1.6Km)로 열려 있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느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길의 이름은 산죽길이다. 직원들이 낫으로 직접 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산죽길로 내려서면 초반에는 경사(傾斜)가 제법 심하다. 거기다 눈까지 수북하게 쌓여있으니 서두르는 것은 금물이다.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웃자란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숲속을 걷다보면 산죽길이라고 표기된 말뚝이 눈에 띈다. 아니나 다를까 수많은 산죽(山竹)들이 길가의 눈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수북하게 쌓인 눈만 아니라면 산을 덮을 만큼 무성하지 않을까 싶다.

 

 

 

 

 

산죽길이 끝나면 화절령(花切嶺)길에 내려서게 된다. 화절령의 화절이란 꽃을 꺾는다.’는 뜻이다. 이 길은 옛날부터 정선으로 질러가는 교통의 중심지로 봄철이면 참꽃과 철쭉이 만발하여 행인이나 나무꾼들이 이 꽃을 꺾어 갔으므로 꽃꺾이재, 즉 화절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땔나무를 하는 농촌 총각들의 꽃 꺾기 내기에서 여러 종류의 꽃을 먼저 꺾은 사람이 이기게 되는데, 이 놀이에서 진 사람들은 이긴 사람에게 나무 한 단씩을 주었다고 한다. 또한 화절령길은 운탄길이라고도 불린다. 주변 탄광에서 캐낸 무연탄을 실어 나르던 차로(車路)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석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버려져 있던 길은 하이원리조트(resort)가 생기면서 트레킹(trekking) 코스로 다시 태어났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이 부근에는 갱도(坑道)가 넘쳐났다. 때문에 매일 아침저녁으로 수많은 광부(鑛夫)들이 이 길을 오갔을 것이다. 퇴근길, 집으로 향하는 광부들은 길가에 핀 진달래를 따먹으며 허기를 달랬다고 전해진다. 예쁜 이름에 비해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길이다. 길은 지금 광해방지사업의 일환으로 웬만한 도로 이상으로 매끈하게 잘 닦여 있다. 봄이면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라도 보이련만, 찾은 시기가 겨울의 한가운데인지라 사방이 온통 눈 속에 파묻혀있을 따름이다.

 

 

 

화절령길로 내려서면 정자(亭子)가 하나 세워져 있고, 이곳에서 길은 세 갈래(이정표 : 도롱이연못 0.1Km/ 마운틴콘도 3.6Km/ 하이원 C.C 5.8Km/ 마운틴탑 1.4Km)로 나뉜다. 도롱이연못은 이곳 사거리에서 10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도롱이연못은 폐광이 된 갱도가 주저앉으면서 지표면이 함몰되는 과정에서 생긴 자연 습지(濕地, marshy land)이다. 소나무와 낙엽송 등이 둘러싸고 있는 직경 약 80m짜리 연못은 눈까지 두텁게 쌓여있다. 이국적(異國的)인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는 것이 등산객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하다. 참고로 이곳에서 머잖은 화절령에 탄광촌이 있었다. 광원들은 거기서 출퇴근했고 그네들 부인들은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하러 늘 이 늪을 찾았다고 한다. 도롱이라는 이름은 이 연못에 살던 도롱뇽에서 왔다. 그 도롱뇽은 광원 아내들에게 수호신과 같았다고 한다. 그녀들은 이렇게 믿었다. 연못의 도롱뇽이 살아 있는 한 탄광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그녀들은 늘 늪에 찾아와 도롱뇽을 찾았고 그 모습을 통해 남편의 안위를 확인했다고 한다.

 

 

 

도롱이연못에서 100m쯤 내려오면 다시 길이 두 갈래(이정표 : 마운틴콘도 3.5Km/ 함백역 25.1Km/ 도롱이연못 0.1Km)로 나뉜다. 마운틴콘도 방향으로 다시 500m쯤 걸으면 산길은 화절령길을 떠나(이정표 : 마운틴콘도 3.0Km/ 폭포주차장 3.3Km/ 도롱이연못 0.6Km) 오른편 산자락(마운틴콘도 방향)으로 접어든다. 폭포주차장으로 곧장 가는 것이 가까우면서도 편하겠지만, 단조로움을 피해보겠다며 산악회에서 하산 코스를 변경한 것이다.

 

 

 

 

산자락으로 접어든 산길은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오르내리며 길게 이어진다. 길가에 예쁘게 쌓아올린 돌탑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을 보면, 강원랜드에서 이 길을 조성하느라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마운틴콘도까지 50분 가까이나 걸리는데도 조금도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만큼 코스가 괜찮다는 얘기일 것이다. 산악회의 선택이 옳았다는 증거이다.

 

 

 

마운틴콘도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사고가 발생해버렸다. 콘도로 들어가기 전에 왼편 강원랜드카지노로 내려서야하는데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이유는 모처럼 산행을 같이 한 형우군() 때문이다. 모 공기업의 부사장으로 재직하다 작년에 그만두었는데 그동안 체력(體力)이 많이 떨어진 모양이다. 산행을 시작할 때부터 힘들어하더니 기어이 일을 만들고야 만 것이다. 자꾸만 뒤로 쳐지는 그를 기다리다가 앞사람들의 흔적을 놓쳐버린 결과는 참담했다. 팍팍한 아스팔트 도로를 30분 이상 더 걸어야하는 사고가 발생해버린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폭포주차장

마운틴콘도로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당당했다. 널따란 주자창이 여기저기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를 태우고 왔던 버스도 당연히 이곳에 있으려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화로 산악회와 연결해보니 버스는 폭포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마운틴콘도에서 폭포주차장까지 가는 길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길이다. 차도를 따라 내려가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30분 가까이를 걸어서 카지노까지 내려간 후, 카지노 앞에 있는 호수의 끄트머리에서 긴 계단을 타고 내려서면 드디어 폭포주차장이다. 마운틴콘도에서 폭포주차장까지는 무려 50분 가까이나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