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산(孔雀山, 887.2m)

 

산행일 : ‘13. 10. 26()

소재지 : 강원도 홍천군 동면과 화촌면의 경계

산행코스 : 공작골입구 주차장팔각정문바위골주능선공작산 정상수리봉갈림길수리봉방향 전망대공작릉공작골입구 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집사람과 둘이서

 

: 공작산은 산림청 선정 한국의 100명산에 선정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산이다. 그러나 막상 오르고 나면 실망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산이 전체적으로 흙산이기 때문에 정상부의 아기자기한 암릉을 제외하고는 다른 산들에 비해 특별히 내세울만한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코스에도 문제가 있다. 이 산에서 스릴(thrill)과 조망(眺望)이 가장 뛰어난 코스가 정상에서 안공작재로 내려가는 구간인데, 수타사까지 종주(縱走)를 할 경우가 아니라면 그 코스를 구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안공작재에서 공작골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를 사유지(私有地)라는 이유로 폐쇄(閉鎖)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사유지에 있는 길을 모두 폐쇄시켜버린다면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홍천군에서 나서서 해결해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산행들머리는 김승기라이브카페(livecafe) 주차장

중앙고속도로 홍천 I.C를 빠져나와 44번 국도 인제방면으로 달리다가 갈마곡1() 갈림길에서 빠져나와 444번 지방도를 타고 서석면방면으로 들어가면 공작골입구 삼거리(동면 공작산로 1462)’에 이르게 된다. 이곳 삼거리에서 왼편에 보이는 406번 지방도(군업리방향)로 접어들어 공작교()를 건넌 후에 약 1.5Km쯤 더 들어가면 노천저수지 상류에서 도로를 벗어나 왼편으로 들어서면 공작골이다. 노천저수지 위에 공작산별천지 김승기 라이브카페(동면 공작골길 14-14)’에서 세워 놓은 대형주차장(무료) 안내 빗돌이 보이니 이곳에 주차를 시킨 후에 산행을 시작하면 된다.

 

 

 

 

이정표가 지시하고 있는 주차장 입구로 걸어 나가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주차장을 벗어나 입구에 세워진 산행안내도 앞에 서서 오늘 답사할 코스를 정한 후 길을 나선다. 산길은 주차장 입구의 왼편에 보이는 소나무 아래로 나 있다. 소나무 아래를 통과하여 산비탈을 잠깐 오르면 군업리로 넘어가는 406번 지방도의 도로변(道路邊)이다. 도로변에 팔각정과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공작산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니 잠깐 쉬어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참고로 아까 차를 세워놓았던 주차장에서 입구로 나오지 않고 카페의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산행시간을 10분 정도 단축시킬 수가 있다. 주차장입구로 난 등산로는 산림청에서 사유지(私有地)를 통과하지 않으려고 새로 만든 등산로라서 산을 우회(迂廻)시키는 탓에 산행시간이 10분 정도 더 소요되기 때문이다.

 

 

 

 

정자 뒤에 있는 예쁘장한 아치(arch)형 나무다리(木橋)를 건너면서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붉게 물든 가을의 전령사가 길손을 맞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단 한 그루, 다른 나무들은 낙엽(落葉)으로 생명을 마감할지언정 끝까지 붉음을 외면해버리는 참나무들이기 때문이다. 산길은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옆으로 이어지더니 다시 아래로 떨어지면서 공작골에다 내려놓는다. 산행을 시작한지 15분 정도가 지났다. 새로운 등산로를 따르다보니 10분 정도가 더 걸린 탓이다.

 

 

 

 

문바위골에 이르면 잘 닦인 임도(林道)가 나타난다. 바로 노천저수지에서부터 나있는 길이다. 그런데 만나는 지점의 왼편에 길을 막았던 흔적이 보인다. 아마 등산로를 우회(迂廻)시키면서 막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것을 보면 등산객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던가 보다. 이곳 갈림길의 조금 위에서 또 하나의 갈림길(이정표 : 공작산 정상(문바위골 2.83Km, 안골 2.58Km)/ 공작산 정상(공작릉) 2.34Km/ 공작산입구(공작골) 0.35Km)이 나타난다. 어느 쪽으로 진행해도 정상으로 오르기는 매 한가지이지만 오른편 길로 진행한다. 왼편의 공작능선 코스는 내려올 때에 답사(踏査)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계곡에 들어서자 붉게 물들어가는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을의 풍치(風致)에 물씬 빠져 들어가는 순간이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200m 조금 못되게 더 올라가면 다시 길이 나뉜다(이정표 : 공작산정상(안골) 2.41km/ 공작산정상(문바위골) 2.66km/ 공작산입구(공작골 0.52km). 왼편에 보이는 안골코스를 이용하더라도 정상에 올라가기는 매 한가지이지만 오른편 문바위골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 산행코스가 짧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늘려보려는 욕심에서다.

 

 

 

 

문바위골로 들어서자마자 내 선택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다리던 가을잔치가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올라오면서 농익은 단풍을 보지 못해 못내 서운했는데, 드디어 붉고 노란 단풍들이 온 계곡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집사람의 발길이 계곡가로 향하는 것이 보인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 아직은 방심(芳心)인 모양이다. 하긴 여성의 나이가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은 이미 진리로 통해있다.

 

 

 

단풍에 취하다보니 발걸음은 한없이 느려진다. 그렇다고 구태여 집사람의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는 없다. 오늘 산행은 집사람과 나 단둘이니 시간의 제약을 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요 아래 노천리에 있는 별장에서 먹거리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을 처갓집 식구들이 마음에 걸리지만, 배고플 경우 먼저 먹으면 될 일이니 크게 마음에 둘 필요는 없다. 안골갈림길에서 단풍과 눈을 맞추며 10분쯤 올라가면 산길은 계곡을 벗어나(이정표 : 공작산 정상 2.28Km/ 공작산 입구 0.94Km) 오른편 지능선으로 붙는다.

 

 

지능선으로 오르는 집사람의 발걸음이 무척 가볍게 보인다. 이유가 꼭 등에 배낭을 메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산길이 흙길인데다 길의 경사(傾斜)까지 부드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산이 낮다고 해도 산길이 어떻게 온통 편할 수만 있겠는가. 서서히 가팔라지던 산길은 언젠가부터 왔다갔다 갈지()자를 만들면서 고도(高度)를 높여가고 있다. 꿋꿋하던 집사람의 옷차림도 언젠가 바뀌어 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땀방울을 못 이기고 겉옷을 벗어 제킨 것이다. 25분 정도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산비탈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주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주능선의 만나는지점은 삼거리(이정표 : 공작산정상 1.68km/ 공작산입구(문바위골) 1.5km/ 공작현입구(당무로) 1.02km)로서, 오른편에 보이는 길은 공작고개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편하게 공작산을 오르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공작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될 것이다. 

 

 

 

 

주능선에 일단 올라서면 산행은 수월해진다. 정상까지 가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봉우리를 더 오르내려야 하지만, ()들 사이의 골이 깊지 않을뿐더러 산길의 경사(傾斜)도 밋밋하기 때문이다. 삼거리에서 안부로 잠깐 내려섰다가 다시 길게 오르면 742(이정목 : 공작산정상 1.2km/ 공작현입구 1.5km)이고, 다시 능선을 오르내리다가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숲을 길게 내려서면 안골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사거리안부(이정표 : 공작산정상 0.73km/ 공작산입구(안골) 2.2km/ 군업리 6.6km/ 공작현입구(당무로) 1.97km)이다. 주능선에 올라선 지점에서 28분 정도가 걸렸다.

 

 

 

 

 

 

안골갈림길을 지나면서 다시 붉게 물든 단풍이 시작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범위는 좁다. 단풍으로 물든 범위가 넓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는 것이다. 단풍구간이 끝나면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암벽이 등산로를 딱 가로막는다. 등산로는 암벽을 피해 오른편으로 우회를 시키고 있다. 가파른 사면(斜面)을 꿰며 이어지는 산길을 치고 오르면 공작릉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안부(이정표 : 공작산정상 0.24km/ 공작산입구(공작릉) 2.4km/ 공작현입구(당무로) 2.46km)에 이르게 된다.

 

 

 

 

 

 

 

공작릉 갈림길에서부터 바윗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바윗길의 경사(傾斜)도 심하지 않을뿐더러 굵은 밧줄까지 매어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오르내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로프에 의지해서 첫 번째 바윗길을 통과하고, 이어서 나타나는 바윗길을 맨몸으로 치고 오르면 수타사(약수봉)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삼거리(이정표 : 공작산정상 0.12km/ 수타사 6.9km, 약수봉 4.6km/ 안공작재0.6km/ 공작현입구(당무로) 2.64km)이다. 삼거리에는 오가는 길손이 하나씩 쌓아올린 돌탑이 하나 보이고, 그 옆에는 산행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도 바윗길의 연속이다. 첫 번째 만나는 바위봉우리는 왼편으로 난 우회로(迂廻路)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오르는 바윗길이 쉽게 보인다고 해서 무턱대고 올랐다가는 반대편 바윗길을 내려갈 때에 낭패를 볼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내려서야할 암벽(巖壁)은 비록 10m도 채 안 되고 안전로프까지 메여있지만, 암벽의 면()이 고르지 못하고 경사까지 수직(垂直)에 가깝다. 암벽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가슴 졸여야만 하는 구간인 것이다. 그렇다고 바위봉우리 위에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주변 바위들의 생김새도 특출(特出)한 것이 없고, 조망(眺望)도 또한 별 볼일이 없다.

 

 

 

 

바위봉을 내려서면 산길이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휜다. 오른편 발아래로 펼쳐지는 협곡(峽谷)이 제법 아찔하나. 다행이도 쇠사슬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협곡을 지나면 다시 길게 로프가 늘어져 있는 암벽구간이 나타나고, 정상은 그 위에 위치하고 있다. 두세 평쯤 되는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은 별로 예쁘지 않은 정상표지석 하나가 홀로 지키고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비록 사방은 아니지만 시야(視野)가 툭 트이면서 조망(眺望)이 시원스럽다. 남동방향에 길게 뻗은 한강기맥이 눈에 들어오고, 발교산과 병무산 등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산행 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50분이 걸렸다.

 

 

 

정상석 뒤편에 작은 봉우리 하나가 더 보인다. 봉우리 위로 올라보면 이곳에도 정상임을 알려주는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표지말뚝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 군업리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보인다. 그런데 이곳에는 정상표지말뚝 외에도 삼각점(청일21 1988재설)까지 심어져 있다. 그렇다면 두 봉우리 중에서 진짜 정상은 이곳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공작산이란 이름은 산세(山勢)의 아름다움이 공작이 날개를 펼친 것처럼 생겨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과 골짜기가 깊고 기암절벽(奇巖絶壁)의 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르듯 겹겹이 솟아 그 모습이 공작새와 같아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정상에서 안공작재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수타사(안공작재)방향으로 진행한다. 오랜만에 공작산을 다시 찾아왔으니 안공작재구간이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보려는 욕심에서다. 수타사방향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우선 가파르다. 그리고 거칠다. 이 코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적다는 증거일 것이다. 10분쯤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안부에서 맞은편의 비탈을 짧게 치고 오르면 추락주의라고 적힌 경고판(警告板)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오늘 산행 중에 처음으로 만난 경고판이다. 그만큼 이 코스가 만만치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경고판 앞에서 왼편으로 난 오름길이 하나 보인다. 그러나 올라갈 필요는 없다. 여성전용 화장실로 이용되는 봉우리라서 여기저기 널려있는 화장지만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왕에 사용한 화장지라면 땅에 묻었으면 좋았을 텐데...’ 집사람의 넋두리가 아니더라도 무작정 화장지를 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경고판에서부터 위험구간이 시작된다. 산비탈의 중간을 째며 난 등산로의 아래는 아찔한 낭떠러지. 다행이 안전로프가 메어있지만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 길이가 짧다는 것이다. 잠깐이나마 스릴을 느끼며 위험구간을 통과하면 오른편에 바위 하나가 보인다. 물론 등산로를 벗어난 지점이다. 그러나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번쯤은 올라가볼만 하다. 뛰어난 조망(眺望)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바위 위에 올라서면 굴운리 큰골과 굴운저수지가 발아래이고 56번 국도는 또렷하게 선()을 그으며 지나가고 있다. 그 뒤에 보이는 산들은 어쩌면 춘천의 연엽산과 대룡산일 것이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와 아까 올라왔던 길로 되돌아 나간다. 그리고 공작릉 갈림길에서 이번에는 공작릉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은 처음부터 무척 가파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내려서기가 힘들 정도의 구간에는 어김없이 로프를 매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주능선의 갈림길을 벗어나고 30분 가까이 지나면 낙엽송군락지에 이르게 되는데, 이곳 근처(이정표 : 공작산입구(공작골) 1.45Km/ 공작산 정상 1.59Km)에서 오른편으로 난 산길 하나가 보인다. 그러나 그 길은 막혀있다. 산림청에서 매달아 놓은 안내판에 사유지(私有地)이기 때문에 등산로를 폐쇄(閉鎖)한다고 적혀있다. 우리나라의 산은 크게 국·공유지와 사유지로 구분되고, 이중 국유지는 20%가 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산들은 대부분 개인 소유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마음 놓고 오를 수 있는 산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개인 소유의 산일지라도 최소한 등산객들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은 남겨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등산로 폐쇄지점에서 300m 정도 더 내려가면 또 다시 등산로를 폐쇄(이정표 : 공작산 입구(공작골) 1.07Km/ 공작산 정상 1.92Km)시켜 놓은 것이 보인다. 등산로가 있던 능선을 막아버린 것이다. 때문에 등산로는 능선을 벗어나 왼편 산비탈을 따라 이어진다. 산비탈을 따라 난 가파른 산길에는 다행이도 안전로프가 매달려 있다. 능선을 벗어나 20분 조금 못되게 내려서면 울창한 잣나무 숲을 통과하게 되고, 이어서 계곡에 놓인 돌다리를 건너면 산행을 시작할 때 지나갔던 공작릉 갈림길이정표가 보인다.

 

 

 

 

산행날머리는 김승기라이브카페(livecafe) 주차장

임도를 따라 5분 조금 못되게 걸어 나가면 오른편에 전원주택이 보이고, 그 옆에 제법 널따란 도로도 보인다. 저 도로의 끝에 자연휴양림이 들어앉아 있고, 등산로 곳곳을 막아 놓은 장본인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시는 공작산을 찾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익(私益)을 위해서 주위를 돌아볼 줄 모르는 저들을 떠올리는 일이 없었으면 해서이다. 전원주택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아침에 산행을 시작했던 라이브카페 주차장이다. 안공작재갈림길에서 라이브카페 주차장까지는 1시간10분이 걸렸다.

 

 

 

해산(日山, 1,194.2m)과 비수구미 마을

 

산행일 : ‘13. 10. 20()

소재지 :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산행코스 : 해산터널계곡길능선안부헬기장정상(1194)해산령비수구미계곡비수구미마을(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동강산악회

 

특징 : 화천 북쪽 파로호 상류 지역에 비수구미라는 이름의 오지(奧地) 마을이 있다. 흔히 국내 3대 오지 마을로 통하는 곳인데, 앞에는 파로호 물이 가로막고 있고 뒤로는 해산 산줄기가 버티고 서 있어 찾아서 들어가기도 힘든 마을이다. 비수구미 마을을 가기 위한 방법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가지 밖에 없었다. 배를 타고 파로호를 건너거나, 마을까지 이어진 산길 6를 걸어서 내려가는 방법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하나가 더 생겼다. 화천군에서 평화의 댐 방향으로 파로호 강변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세상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길도 덩달아 복잡해져버린 모양새이다. 찾기가 쉬워진 탓인지 이 오지 마을은 요즘 찾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비수구미 마을은 이미 오지마을이 아닌 것이다.(해산은 코스를 짧게 잡은 탓에 특징을 제대로 짚어 낼 수가 없었다)

 

산행들머리는 해산령(해발702m)

중앙고속도로 춘천 I.C에서 내려와 46번 국도 양구방향으로 달리다가 간척사거리(화천군 간동면 간척리)에서 좌회전, 461번 지방도(화천방향)로 옮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파로호에 이르게 된다. 파로호 호반(湖畔)을 따라 계속해서 달리다가 북한강을 건넌 후, 우회전하여 460번 지방도(평화의 댐 방향)를 따라 들어가면 해산아래를 관통하는 해산터널을 지나 해산령쉼터에 이르게 된다. 1986년도에 지어진 1,968m의 해산터널은 한때는 국내 최고(最高), 최장(最長)을 자랑했으나 지금은 낡고 초라한 터널일 따름이다.

 

 

 

해산터널을 빠져나오면 오른편, 쉽게 말해 해산령쉼터의 반대방향에 철문(鐵門) 두 개가 보인다. 그중에 해산터널 방향에 위치한 문이 해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이다. 참고로 두 번째로 보이는 철문은 비수구미마을로 들어가는 임도이다. 해산으로 오르는 철문은 굳게 닫혀있다. 별수 없이 대문을 우회(迂廻)하여 산길로 접어든다. 이곳 해산은 산림청에서 산림유전자 보전구역으로 묶으며 입산(入山)을 통제하고는 있지만, 건너편 해산령 빗돌(碑石) 뒤로 난 등산로가 열려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 정도는 출입이 허용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철문을 지나 100m쯤 들어가면 널따란 채마밭이 나온다. 비닐하우스와 밭들이 보이는 것을 보면 새산령쉼터에서 거주하시는 사람들이 경작(耕作)하고 있는 모양이다. 산길은 채마밭에서 오른편으로 크게 휘면서 계곡과 함께 이어진다.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계곡으로 들어서자마자 붉게 물든 단풍이 길손을 맞는다.

 

 

 

등산로가 계곡을 끼고 이어진 탓에 바닥은 곱지가 않은 편이다. 크고 작은 돌들이 불규칙하게 깔려있는데다가 이끼까지 머금고 있어서 발 딛기가 여간 사납지 않다. 그나마 경사(傾斜)라도 완만(緩慢)한 게 다행일 따름이다.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는 계곡길은 길게 이어진다. 45분이나 걸릴 정도이니 지루할 만도 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 지루할 새가 없는 것이다. 이유는 길가에서 활활 타오르는 단풍 탓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파란 호수(湖水), 그리고 가을햇살을 고스라니 담은 단풍, 눈 닿는 곳 어디 하나 빠짐이 없는 것이 '화천의 가을'이다. 산봉우리로부터 타닥거리며 옮아붙었던 단풍은 이미 온 산을 붉게 태워버렸다. 색색(色色)의 물감을 뿌린 듯, 빨강색, 주황색, 노랑색, 연두색 단풍이 채색화(彩色畵)를 연출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추색(秋色)이 짙어가는 요즘, 가을의 가장 큰 볼거리라면 역시 곱게 물든 단풍이다. 그래서 예부터 단풍을 홍엽여화(紅葉如花 : 붉은 잎이 마치 꽃과 같다)라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인지 오늘 찾은 해산도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이곳도 역시 단풍 명소(名所)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왕에 온 단풍나들이이니 초록의 잎이 왜 가을이면 노랗고 붉게 변하는지를 알아보자. 식물의 공통적인 색소(色素)는 녹색인 엽록소와 적색의 카로틴, 노란색의 크산토필을 갖고 있는데, 식물의 잎이 녹색을 띠는 이유는 카로틴이나 크산토필의 색이 엽록소(葉綠素)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 오면 일조(日照)시간이 짧아지고 온도(溫度)가 내려가면 일부 식물 잎에서 엽록소가 파괴되어 카로틴이나 크산토필의 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또한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도 생성된다. 녹색이던 잎이 울긋불긋 색깔을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 바로 단풍이다.

 

 

 

단풍은 깊은 계곡을 휘감고 새색시처럼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리고 시원한 바람과 어우러지면서 가을의 운치(韻致)를 한층 더해주고 있다. 붉게 물든 가을 속을 걸어가는 인파들, 그들이 차려입은 옷들은 단풍만큼이나 곱다. ‘단풍 숫자보다 사람 숫자가 더 많더라얼마 전 사진촬영을 위해 설악산을 다녀온 지인(知人)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러나 몰려든 인파로 인해 단풍의 아름다움은 덜해지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형형색색(形形色色)으로 차려입은 옷들이 단풍보다 더 예쁠 지경이니 말이다.

 

 

 

 

계곡이 끝나면 등산로는 오른편 산자락으로 들어붙으면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계곡이 끝날 무렵이나 오르막길의 초반은 돌들도 안 보이는데다가 반반하기까지 해서 능히 경작지(耕作地)로 일굴 수 있을 정도이다. 어쩌면 옛날에는 화전민(火田民)들의 차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완만하게 시작된 길은 서서히 가팔라지더니 종내는 왔다갔다 갈지()자를 만들면서 힘들게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그러나 다행이도 오르막길이 길지 않은 덕분에 15분이 채 못 되어 주능선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주능선 안부에서 길이 좌우(左右)로 나뉜다. 비록 이정표는 세워져 있지 않지만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재안산으로 가게 된다. 안부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금방 헬기장에 이르게 된다. 헬기장에서는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면서 조망(眺望)이 툭 터진다. 멀리 설악산과 가리봉, 그 앞쪽으로 대암산과 도솔지맥이 가로지르고 있다.

 

 

 

헬기장에서 두어 번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 이내 해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헬기장에서 10분 정도 걸리는 지점이다. 막상 정상에 올라서면 의외로 실망스럽다. 2평 남짓한 좁다란 바위봉우리에 정상표지석은 보이지 않고 삼각점 하나만이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 따름이다. ‘정상이 아닌 모양인데요.’ 누군가의 말마따나 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다. 그러나 장군봉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이 정상이 맞다. 비록 정상석은 세워져 있지 않으나 해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것이다. 정상에서는 산자락들 사이에 숨어있는 파라호가 잘 조망(眺望)된다.

 

 

 

 

 

 

정상근처의 안부에서 가져간 막걸리로 새참을 하고 아까 올라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 내려간다. 등산객들이 가장 싫어하는 코스설계이지만 비수구미마을까지 답사(踏査)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산악회관계자의 답변이다. 그러나 사실 30분만 더 투자할 경우에는 다른 코스로 내려갈 수도 있다. 재안산 방향으로 조금 더 진행하다가 첫 번째 갈림길에서 하산을 하면 해산령쉼터로 내려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안부에서 해산령으로 내려오는 하산길은 의외로 더디다. 해산령에서 빗돌(碑石) 뒤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올라온 사람들과 합쳐지면서 속도가 뚝 떨어져버린 탓이다.

 

 

 

 

**)비수구미(秘水九美)로 가는 임도의 철문도 역시 굳게 닫혀있다. 그러나 사람의 통행은 허용하고 있는 듯, 그 옆에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작은 문을 열어 둔 게 보였다. 얼마 전에 비수구미 마을주민의 일상을 소개한 인간극장(KBS-TV)’을 시청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외지(外地)에 살고 있는 지인(知人)이 차량을 이용해서 비수구미마을까지 오는 상황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굳게 닫혀있는 것을 보면, 마을주민들이 필요할 때에만 여는 모양이다.

(**)비수구미라는 지명(地名)'신비의 물이 만든 아홉 가지 아름다움'이라는 이야기와, 조선시대 때 임금에게 진상할 소나무 군락지였던 '비소고미'가 발음하기 쉽게 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비수구미로 들어가는 길은 차량이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넓다. 그리고 노면(路面) 상태도 괜찮은 편이다. 가끔 울퉁불퉁한 자갈길 구간도 나타나지만 대부분 흙이 잘 다져진 흙길에 가깝다. 출발 지점부터 비수구미 마을까지는 6km가 조금 넘는다. 그러나 길이 곱기 때문에 1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발걸음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임도와 나란히 이어지는 비수구미계곡이 눈요깃거리로 충분할뿐더러, 거기다 더하여 계곡을 가득히 메우고 있는 단풍나무들의 색동옷 색갈이 너무나 곱기 때문이다.

 

 

 

모든 나무들이 다 활활 타오르는 것은 아니다. 붉게 타오르는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이직은 덜 여물은 나무들도 있다. 거기다 부지런한 나무들은 이미 시체가 되어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그러나 단풍이 물들기 전의 나무나 단풍이 져가는 나무 할 것 없이 어느 풍경하나 허투루 넘길 것은 없다. 이제 막 색깔이 짙어가는 나무들은 생기(生氣)가 있어 세속에 지친 몸과 마음을 씻어주고, 떨어질 듯 매달린 단풍은 가을 햇살을 받아 더욱 붉고 노란 빛깔을 뽐내기 때문이다.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을 결정하는 환경적인 인자(因子)는 온도, 햇빛, 그리고 수분의 공급이다. 우선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커야 하나 영하로 내려가면 안 되고, 하늘은 청명하고 일사량(日射量)은 많아야 한다. 특히, 붉은 색의 안토시아닌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범위에서 서서히 내려가면서 햇빛이 좋을 때 가장 색채가 좋다. 또한 너무 건조하지 않고 알맞은 습도(濕度)를 유지해야만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수 있다. 능선이 남북으로 발달한 지역은 붉은색 단풍이 많으며 동서로 뻗은 지역은 노란색 단풍이 많다고 한다.

 

 

 

비수구미는 들머리인 해산령의 출입문에 붙어있던 경고판(警告板)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출입이 통제되는 지역이다. 20125월부터 20155월까지 자연휴식년제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곳에서는 여느 여행지와는 달리 취사나 캠핑도 불가능하다. 그래서인지 비수구미계곡은 쓰레기가 보이지 않고, 흐르는 물은 유난히도 맑고 청량하다. 그러나 어김없이 이곳에도 하지마라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었다. 길가 빈터에 쳐진 텐트가 2동이나 눈에 띈 것이다.

 

 

 

바위계곡을 배경으로 빨갛게 물든 단풍이 마치 불이라도 난 듯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계곡에 주저앉고 싶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보지만 자꾸만 고개를 뒤로 돌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기 때문이다. 뒤돌아본 풍경은 돌아보고 또 돌아볼 때마다 색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오랜 기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탓인지 길옆 비수구미 계곡은 원시림(原始林)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물박달나무와 자작나무, 다래덩쿨이 우거진 사이로 청정 계곡수가 콸콸 떨어지며 폭포를 이룬다. 그 계곡(溪谷)을 옆으로 나란하게 길이 이어지다 두어 번쯤 작은 물길을 넘어간다. 한여름이라면 길을 버리고 계곡을 따라 걷는 트레킹(trekking)도 가능할 것 같다. 길을 걷다가 고개라도 돌려보면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산과 하늘, , 그리고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길뿐이다. 사방이 온통 화려한 색이 물감을 풀어놓은 듯 펼쳐진다. 감히 도시에서는 구경할 수 없던 풍광(風光)이 펼쳐지는 것이다.

 

 

 

 

 

해산령을 출발해서 1시간20분쯤 지나면 왼편에 비수구미 산장 펜션이 보이고, 이어서 10분쯤 더 걸어 내려가면 드디어 비수구미마을이다. ‘비수구미마을국내 3대 오지(奧地)마을이라는 것도 이젠 옛말이 아닐까 싶다. 여느 여행지와 달리 쉽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말만 되면 사람들로 넘치는 것이다. 트레킹 길 출발지인 해산령과 트레킹 후에 타고 나오는 선착장에는 다른 관광지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을 정도였다. 흐르는 계곡물의 아치형 다리를 건너 왼편으로 올라가는 민박집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밥을 먹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민박집에 들러 식탁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손수 밥과 국을 뜨고, 수저와 젓가락을 챙긴다. 기본을 손수 챙겨야하니 셀프서비스(selfservice)인 모양이다. 그러나 식탁에는 반찬이 없다. 오늘 먹으려는 음식이 산채비빔밥이니 산채나물과 고추장 등 양념, 그리고 밑반찬이 있어야 하는데 안 보이는 것이다. 4명이 함께 앉아야만 가져다준단다. 우리같이 2명만 온 사람들한테는 좀 난감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다들 일행끼리 둘러앉기 때문에 우리 테이블은 끝까지 외로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이 주인의 배려로 우리에게도 나물과 밑반찬이 공수되었다. 우선 동그랗게 말아 놓은 나물이 식탁에 올라온다. 얼핏 봐도 적은 양이 아니다. 꼭꼭 눌러 뭉쳤으니 자꾸만 옮겨 담아도 여전히 그릇 위에는 수북하다. 그리고 이어서 제철에 나오는 나물들로 만들어진 밑반찬이 두 접시이다. 먼저 밥 위에 나물들을 넣고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빈 후에 한 입 떠 넣는다. 자근자근 씹기 시작하자 나물의 향과 고소함이 전해졌다. 쌉싸름한 산나물과 고추장의 조화(調和)는 조미료의 맛이 느껴지지 않아 더욱 일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선착장(船着場)으로 발길을 옮긴다. 마을 앞에 있는 간이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평화의 댐방향에 있는 선착장으로 나가려는 것이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다 보면 왼편에 출렁다리 하나가 보인다. 출렁다리는 파로호 강변(江邊)길로 뻗어 있다. 파로호 강변길은 평화의 댐 아래까지 이어진다. 이 강변길은 평화의 댐 건설 이후 수위(水位)가 낮아지면서 주민들이 배로도 오갈 수 없게 되자 새로 닦은 길이라고 한다. 만일 보트를 타는 것이 무섭다거나 한적한 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이 이용하면 제격이다. 이 강변길에서는 잔잔한 파로호의 풍광(風光)을 맘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길은 비목공원, 평화의 종 공원까지 계속 이어진다.

 

 

 

 

마을 앞의 선착장에는 보트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있다. 보트 2대가 부지런히 실어 나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줄이 긴 것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 이곳을 찾았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참고로 파로호는 일제(日帝)가 전기(電氣)를 얻기 위해 화천댐을 만들면서 생긴 호수(湖水)이다. 원래는 '대붕호'라 불렸지만 일제가 대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화천호'로 불렸다. 그러다가 6·25 전쟁 때 이곳에서 중공군 약 3만 명을 물리친 승리를 기념하여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뜻에서 파로호(破虜湖)란 이름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착장에서 평화의 댐까지는 버스로 이동한다. 그러나 거리가 얼마 되지 않으므로 금방 도착하게 된다. 평화의 댐은 파로호와 맞닿아 있는 또 다른 댐이다. 80년대 북한 금강산댐에 대응하고자 만들어진 것으로 국민모금운동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1990년에 완공된 댐은 수많은 논란이 일어 결국 감사원의 감사까지 받는 등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현재의 모습은 2000년대 증축을 거친 모습이다. 그리고 화천군에서 2009년 평화의 댐 주변에 공원을 조성하고 여러 조형물과 비목공원 등을 설치하면서 관광지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곰봉(熊峰, 930.3m)

 

산행일 : ‘13. 10. 19()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산행코스 : 민화박물관 앞지능선안부바위지대주능선정상곰봉삼거리김삿갓문학관(산행시간 : 3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곰봉은 김삿갓계곡과 미사리계곡 사이에 위치한 산이다. 비록 산의 규모는 작지만 능선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황장목(黃腸木)들이 암릉의 바위들과 어우러지면서 쏠쏠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다만 산행시간이 짧은 것이 흠이라면 흠일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산 아래에 있는 김삿갓유적지를 함께 둘러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특히 주변에 민화박물관이나 고씨동굴 등이 있으니 가족여행지로 추천할만하다.

 

산행들머리는 조선민화박물관(김삿갓면 와석리)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내려와 38번 국도(태백방면)를 이용하여 영월읍까지 온다. 영월읍(서영월 I.C)에서 88번 지방도로 옮겨 춘양방면으로 달리면 고씨동굴 종합휴게소(영월군 김삿갓면 진별리)’을 지나 나그네쉼터(영월군 김삿갓면 대야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도로는 왼편으로 급하게 휘면서 함께 달리던 동강(東江)과 헤어지고 새로이 옥동천()을 맞이한다. 이어서 김삿갓면소재인 옥동리를 통과한 도로는 잠시 후에 오른편으로 군도(郡道) 하나를 가지 쳐 놓는다. 삼거리에 김삿갓 유적지의 입구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충북 단양군으로 넘어가는 이 군도를 따라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산행이 시작되는 조선민화박물관(김삿갓면 와석리) 앞에 이르게 된다.

 

 

 

**)조선민화박물관(朝鮮民畵博物館)으로 들어가는 도로의 입구에서 왼편으로 난 샛길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민화박물관에서 박물관을 경내(境內)를 통과하던 등산로를 막아 놓았기 때문이다. 등산로는 제법 넓고 잘 다듬어져 있지만 질퍽거리기 때문에 걷기가 여간 사나운 게 아니다. 등산로를 막아 놓은 박물관 측을 원망해보지만 누구를 탓하랴. 이 모든 것이 등산객들 때문이라니 말이다. 일부 몰지각한 등산객들이 박물관 마당에 전시되어 있는 귀중품과 분재(盆栽)들을 몰래 가져가는 일들이 빈번해서 등산로를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들의 심정이 능히 이해가 간다.

(**) 조선민화박물관(朝鮮民畵博物館), 왕실(王室)의 기록화 등 특별한 목적을 위한 그림을 제외한다면 궁중 그림에서 산골마을의 성황당까지 민화(民畵)의 범위는 참으로 다양하다. 지나온 세월 속 우리 삶의 모습을 담은 모든 그림을 민화라고 표현하여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전통유산인 민화를 체계적으로 수집, 연구, 전시하기 위해 2000729일 개관한 것이 조선민화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까치와 호랑이’ ‘어변성룡도’ ‘호렵도1,300여 점의 민화가 소장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130여 점이 조선시대 민화이며, 50여 점의 고가구(古家具)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참고로 개관(開館)시간은 11월부터 2월까지 동절기에는 오전 10~오후 5시이고, 3월부터 10월까지 하절기에는 오전 10~오후 6시이다. 관람 시에는 전문안내인으로부터 진본 민화에 대한 유익하고 설명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볼거리로는 수백 점의 분재(盆栽)가 전시되어있는 분재소공원을 들 수가 있다.

 

 

 

산행을 시작해서 5분쯤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는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이어서 산자락을 째면서 난 사면(斜面)길을 따라 2~3분쯤 더 걸으면 오른편에 어렴풋이 길의 흔적 하나가 보인다. 바로 민화박물관을 통과해서 올라오던 옛 등산로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길은 막혀있다.

 

 

 

길이 합쳐지고 나서 10분쯤 더 오르면 지능선 안부에 올라서게 되고, 다시 지능선의 등날을 잡고서 5분쯤 더 걸으면 이윽고 암릉길이 시작된다. 암릉길은 거칠지도 그렇다고 자태가 빼어나지도 않다. 그저 다른 바위산들에서 자주 접해왔던 암릉들과 별반 다른 게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산들에 비해 빼어난 점은 있다. 암릉을 장식(裝飾)한 바위들과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 아름드리 노송(老松)들이 바로 그것이다. 순수한 토종 소나무들은 어느 것 하나 닮은 것들이 없을 정도이다. 나름대로 몸을 비틀면서 기묘한 형상을 만들어 낸 노송들이 바위들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암릉길의 풍치(風致)를 한껏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바윗길은 위험하지는 않다. 그다지 높지도 않을뿐더러 거칠지도 않기 때문이다. 바위가 조금만 높다싶으면 우회(迂廻)를 시키고, 그마저도 안 될 경우에는 어김없이 안전로프를 매달아 놓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변을 둘러보는 눈길은 편안해진다. 늙은 소나무들 사이로 시야(視野)가 열린다. 첩첩이 쌓여있는 산들이 소나무가지 아래로 펼쳐지면서 한 폭의 풍경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길에서는 구태여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 주변의 풍경을 가슴에 담다보면 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지는 것이다.

 

 

 

 

 

 

암릉길은 25분 조금 못되어 끝을 맺고 이어지는 능선은 순수한 흙길로 변한다. 능선의 나무들은 어느새 소나무에서 참나무로 바뀌어 있다. 흙길로 들어서서 제법 가파른 오르막길을 치고 오르면 다른 지능선과 합쳐지면서 만들어 낸 조그만 쉼터에 이르게 된다. 힘들게 올라온 이들이 너나할 것 없이 쉬어가다 보니 자연스레 공터가 만들어졌나 보다. 이 쉼터에서 20분 조금 못되게 걸으면 평원처럼 평탄한 구릉(丘陵) 위에 올라서게 된다. 곰봉의 주능선에 올라선 것이다. 

 

 

 

 

주능선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 왼편의 능선을 따를 경우 옥동천을 건너 운교산이나 목우산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이정표(곰봉정상 0.8Km)에는 곰봉만 표시하고 있다. 아마 두 산과 곰봉을 연계해서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은 모양이다.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를 보면 다른 산들에서 보아온 이정표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정표에는 만든 이들을 표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만든 이들은 대체로 ‘00()’등 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團體)의 이름을 적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러나 이곳의 이정표에는 영월군민이라고 적고 있다. 비록 사소한 것일지는 모르지만 군민(郡民)들을 먼저 생각하는 영월군청 직원들의 배려가 묻어나는 표현이다.

 

 

 

 

주능선을 따라 10분쯤 진행하면 무명봉(855)을 지나게 된다. 산길은 무명봉 정상을 통과하지 않고 옆으로 가로지르지만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 좋다. 정상에서는 남쪽 방향의 마대산이 잘 조망(眺望)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조금만 아래로 내려설 경우에는 오늘 산행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경관(景觀)을 눈에 담을 수가 있다. 곰봉의 사면(斜面)을 이루고 있는 바위절벽이 아름답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무명봉에서 다소 가파르게 안부로 떨어지면 커다란 황장목(黃腸木) 몇 그루가 늘어선 작은 암릉이 나타난다. 길목에 커다랗고 펑퍼짐한 바위가 보이는데, 그 위에 올라서면 다시 한 번 시원스런 조망(眺望)을 즐길 수가 있다. 이어서 선바위를 닮은 거대한 바위 옆을 통과하면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 곰봉의 정상이 기다리고 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5분이 지났다.

 

 

 

 

 

 

곰봉의 정상은 바위지대이다. 그러나 그 면적(面積)이 그다지 넓지 않기 때문에 쉬어가기는 마땅치가 않다. 그래서인지 정상의 바로 아래의 펑퍼짐한 능선에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비록 잡목(雜木)들로 인해 아랫도리는 잘리지만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은 일품이다. 북쪽으로 망경대산, 응봉산, 두위봉이 보이고, 동으로는 태백산, 남으로는 백두 대간 고치령과 소백산 형제봉이 하늘금을 그리며 장쾌한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정상에는 양쪽으로 벌어진 바위 위에 얹힌 가마솥을 닮은 바위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 산이 곰봉이라는 이름을 얻게 만든 장본인이다. 바위 아래로 자연석굴이 만들어졌는데 곰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형상(形象)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으니 문제다. 아무리 방향을 바꿔가며 보아도 그런 형상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정상으로 올라왔던 길과 반대방향으로 내려서면서 하산이 시작된다. 그러니까 펑퍼짐한 능선이 있는 방향이다. 능선으로 내려서자마자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그런데 막상 이곳에서는 어디로 가야할지가 망설여지게 된다. 이정표도 없는데다가 두 길 모두 산악회의 시그널(signal)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민할 필요는 없다. 조금 후에는 두 길이 다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원래 이 지점은 능선의 분기점(分岐點)이다. 오른편 능선이 어래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이고, 왼편은 지능선으로서 이곳으로 진행할 경우에는 와석2리로 내려서게 된다. 그러므로 오른편으로 내려가는 것이 옳지만, 왼편으로 진행하더라도 50m쯤 가면 만나게 되는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조금 후에는 원래의 주능선에 다시 올라서게 되는 것이다. 지능선의 갈림길에서는 산악회 시그널이 훨씬 많이 매달려있는 길로 들어선다면 길이 어긋날 염려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두 길 모두 시그널들이 공평하게 붙어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겠지만, 왼편 지능선에서 만난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의문은 금방 풀리게 된다. 왼편에 바위 협곡(峽谷)이 제법 그럴싸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참고로 오른편 주능선을 탈 경우에는 이 협곡은 시야(視野)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산길은 비록 가파르나 내려서는데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경사(傾斜)를 유지하면서 이어진다. 그러다가 능선에 솟구친 무명봉을 향해 치고 오르게 만든다. 이 봉우리 근처에 혹시 횟대바위가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 무명봉에서 내려가면서 암릉길이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내려서는 바윗길은 가파르고 험하지만 생각만큼 위험하지는 않다. 험한 곳에는 어김없이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능선은 한마디로 순하다. 순수한 흙길에다가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참나무들이 짙게 우거진 숲길을 따라 10분 조금 넘게 걷다보면 펑퍼짐한 구릉(丘陵) 위에서 갈림길(이정표 : 김삿갓묘역 3.1Km/ 미사리계곡)을 만나게 된다. ‘곰봉삼거리이다. 비록 이정표에는 표기(標記)되어 있지 않지만, 이곳에서 왼편으로 가면 곱돌령을 거쳐서 어래산으로 가게 된다. 어래산과 선달산으로 연결되는 주능선인 것이다. 물론 김삿갓유적지로 내려갈 계획이라면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곰봉 정상에서 이곳 삼거리까지는 40분이 조금 못 걸린다.

 

 

 

 

곰봉삼거리에서 오른편 김삿갓묘역(墓域) 방향으로 내려선다. 부드러운 경사(傾斜)에다 흙길까지 되다보니 내려서는데 조금도 부담이 없지만 2.4Km나 되기 때문에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이 구간은 외씨버선 길11번째 구간 중 일부이다. 참고로 외씨버선길은 영월, 봉화, 영양, 청송 등의 청정지역을 꼬불꼬불 이어가는 아름다운 명품(名品)길이다. 그중에 11구간은 김삿갓문학관에서 봉화군소재 용운사까지의 15.1Km구간으로 마루금길이라고 불린다. 이 산길 주변은 굵고 오래된 나무들로 꽉차있다. 온통 오래묵은 참나무들 천지인데, 가끔가다 굵고 튼실한 적송(赤松)들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산행날머리는 김삿갓문학관 앞 주차장

 

걷기 좋은 숲길을 따라 20분 남짓 내려서면 또 하나의 삼거리(이정표 : 김삿갓묘역 1.3Km/ 곡골)를 만나게 된다. 곡골삼거리이다. 곡골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길이 험하고 특별히 볼거리가 없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구태여 그쪽으로 내려갈 필요는 없다. 곡골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던 탓에 등산로까지 희미해져 버린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곡골삼거리에서 다시 20분 정도를 더 진행하면 무선전화기지국(無線電話基地局)이 보이고, 그 옆이 해산식당이다. 산행은 해산식당 앞에 있는 너른 주차장에서 끝을 맺는다. 하나 알아두어야 할 것은 주차장 왼편에 **)‘김삿갓 문학관이 있다는 것이다. 곰봉의 산행시간이 짧으니 잠깐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김삿갓문학관은 김삿갓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방랑시인 김삿갓의 가슴 저미고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모아놓은 곳이다. 김삿갓의 본명은 병연(炳淵), 호는 난고(蘭皐)이다. 그는 40년을 떠돌며 귀족들의 부패상과 죄악상 등의 비인도성을 폭로, 풍자하는 등 지배층에 대해 강한 반항 정신을 나타낸 시를 읊었고, 이는 서민들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방랑시인이자 천재시인이다. 전시실에는 김삿갓의 묘()를 찾아냈다는 정암 박영국 선생이 생전에 연구했던 수백 권이 넘는 김삿갓 연구 자료와 천재성에 빛나는 김병연 선생의 시와 문집, 자료 등이 상세하게 전시되어 있다 

 

 

 

 

 

 

 

용우이산(900.4m)-삼방산(三芳山. 1,175.4m)

 

산행일 : ‘13. 10. 12()

소재지 :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과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경계

산행코스 : 31번 국도 옛 연화광산 사택 입구계룡가든연화광업소 사택용우이산승지미재1100주능선늪지삼방산왼편능선910번 지방도의 골안8교 근처(산행시간 : 임산물 채취시간 포함해서 5시간30)

함께한 산악회 : 송암산악회

 

: 한마디로 심심산골에 있는 전형적인 흙산(肉山)이지만 작은 돌들이 수없이 많이 널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산이 경사(傾斜)가 심하기 때문에 이 돌들이 산행을 하는데 많은 지장을 준다. 심심찮게 굴러 떨어지기 때문이다. 오지에 위치한데가가 특별한 볼거리까지 없다보니 임산물 채취를 위한 심마니들 외에는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이정표 하나 없는 버려진 산이지만, 고맙게도 지역의 산악인들이 정상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특별한 목적이 없는 사람들은 구태여 찾아볼 필요가 없는 산이다.

 

 

산행들머리는 옛()연화광업소 사택 입구(태백시 동점동)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내려와 38번 국도를 이용해서 태백시까지 온 다음, ‘황지교 사거리(태백시 황지동)’에서 35(황지동에 있는 상장삼거리에서 31번 국도와 합쳐짐) 국도로 옮겨 장성동 방향(봉화방면)으로 달리면 장성동과 구문소를 지나 동점역(태백시 구문소동)에 이르게 된다. 이곳 동점역에서 봉화방향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철암천이 크게 휘는 곳에서 왼편에 다리 하나가 보이는데, 이곳이 산행들머리이다. 다리 입구에 강원엘크사슴목장, 강원 탕재원입간판이 보이니 참조하면 된다.

지도에 그려진 진행표시와는 달리 삼방산 정상에서 동남방향의 지능선을 따라 하산을 했다.

 

 

산행은 철암천을 가로지르는 잠수교(潛水橋)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잠수교는 도로역할을 하고 있는 보통의 다리들에 비해 높이만 조금 낮을 뿐이지, ()과 견고성(堅固性) 등 다른 것들은 일반의 다리들과 다름없이 지어져 있다. 건너편에 있었다는 연화광산에 캔 광석(鑛石)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놓인 다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 계룡가든이라는 입간판(立看板)이 길손을 맞는다. 간판을 보면 닭과, 오리, 돼지고기 등을 팔던 음식점(飮食店)이었던 모양이나, 문은 굳게 닫혀있고 인기척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건물의 상태로 보아 이미 오래전에 폐업(廢業)을 한 모양이다.

 

 

계룡가든 건물 오른편으로 난 길을 오르면 왼편에 폐가(廢家) 몇 채가 보인다. 옛날 광산(鑛山)경기가 한참 좋을 때 연화광업소에서 일하던 광부(曠夫)들이 머무르던 사택(社宅)이었다고 한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지만 반듯하게 열을 지어 늘어선 건물들의 외양(外樣)을 볼 때 당시의 영화를 떠올리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이다. 참고로 연화광업소(蓮花鑛業所)는 비철금속 채취를 목적으로 1959년에 세워진 영풍광업() 소속의 광산이다. 연화광업소는 납, 아연 등을 캐던 국내 제일의 광산이었으나, 광산경기의 하락으로 인해 80년대 후반에 문을 닫았다.

 

 

 

사택을 지나면 폐광지역 복구사업의 일환으로 심어진 듯한 잣나무 숲이 보이고 산길은 그 사이로 나있다. 그러나 우리는 숲으로 들어가기 직전 왼편에 보이는 계곡을 건너 맞은편 산자락으로 들어붙는다. 용우이산의 정상이 왼편능선에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선택은 금방 잘못된 것으로 나타난다. 산자락으로 들어서자마자 산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제대로 된 산길은 사택에서 잣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이다. 이 길을 따라 들어가다가 철조망 울타리를 만나게 되면, 이 울타리를 따라 왼편으로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산자락으로 들어서면서 고난(苦難)의 행군(行軍)이 시작된다. 도대체 산길의 흔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거기다 경사(傾斜)까지 가파르다보니 한 발짝 올라서기도 만만치가 않을 정도이다. 비탈길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오르려면 무언가 붙잡을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붙잡을 것이 없는 것이 문제다. 마땅한 나무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어쩌다 붙잡기라도 할라치면 썩은 나무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렇다고 땅바닥에 손을 짚고 올라서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이곳을 찾기 전에 인터넷을 검색해본 결과 이 산에서 독사(毒蛇)를 만났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이다.

 

 

 

 

 

가파르고 힘든 산길은 정상에 다 올라서서야 끝이 난다. 거칠고 가파른 산길이 한 시간 가까이나 이어졌으니 결과적으로 용우이산으로 오르는 최악의 코스를 선택한 샘이 되어 버렸다. 결코 여름철에는 이용해서는 안 될 코스이다. 정상에 이를 때까지 산악회의 시그널(signal)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이 코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증거일 것이다. 막상 올라선 정상은 고생한 보람도 없이 보잘 것이 없다. 흙산의 특징대로 별다른 볼거리가 없음은 물론이고, 주변에 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 때문에 조망(眺望)까지도 꽉 막혀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는 오지(奧地)의 산임에도 불구하고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용우이산에는 전설(傳說)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아득한 옛날 황지천의 깊은 소()에는 백룡(白龍)이 살았고, 철암천의 깊은 소에는 청룡(靑龍)이 살았다고 한다. 물론 구문소(구멍소)라는 석벽(石壁)이 뚫리기 전이었다. 이들은 낙동강의 지배권을 놓고 석벽 위에서 싸웠는데 오랫동안 승부(勝負)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머리가 좋은 백룡이 석벽 아래를 뚫은 뒤에 청룡을 뒤에서 공격함으로써 싸움을 이겼다고 한다. 싸움에서 이긴 백룡이 여의주를 물고 이 산위로 날라 올랐다고 하여 산의 이름을 용우이산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구문소는 산은 자기 스스로 분수령이 된다(山自分水嶺)’.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않고, 산이 곧 물을 나눈다.'는 산경표(山經表)의 원리를 어긴 지형으로 유명하다. 황지천이 앞을 가로막는 석벽을 뚫고 물길을 내 버린 것이다.

 

 

 

용우이산에서 삼방산으로 가는 능선은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중간에 잠깐 가팔라지기도 하지만 대체로 순한 길이 계속된다. 물론 능선을 가득매운 참나무들 때문에 조망도 트이지 않는 편이다. 정상에서 5분쯤 되는 지점에서 왼편으로 잠깐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동점동의 아파트단지가 내다보이기도 하지만, 그 지점을 제외하고는 보이는 것이라곤 오로지 참나무 숲뿐이다. 그러나 볼거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만추(晩秋)의 계절에 들어서고 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주변의 나무들이 서서히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이다. 비록 타는 듯한 붉음은 아니지만 노랗게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이 가을의 풍취를 흠뻑 자아내고 있다.

 

 

정상에서 15분 가까이 내려오면 왼편으로 뚜렷한 길 하나가 나타난다. 아마 승지미목재인 모양이다. 그러나 개념도와 약간의 차이가 있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개념도(槪念圖)를 보면 승지미목재는 안부사거리로 나와 있는데, 아무리 훑어봐도 오른편 수지골로 내려가는 산길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마 오랫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탓에 길의 흔적이 사라져버린 모양이다. 참고로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승지미골을 거쳐 동점동 아파트단지로 내려가게 된다.

 

 

승지미목재를 지나면서 능선은 다시 오르막길로 변한다. 처음부터 가파르게 시작되는 오르막길은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시간에 쫒기지 않고, 느긋하게 걸어도 된다는 점이다. 오늘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낙동정맥(洛東正脈)을 답사(踏査)하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오늘 걸어야 하는 거리는 무려 21Km, 거의 달리다시피 걸어도 6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이다. 거기에 비해 우리가 답사하려는 삼방산 구간은 8Km 남짓 밖에 안 되니 4시간이면 충분하다. 당연히 2시간 남짓한 시간의 여유가 있는 것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임에도 불구하고 느긋하게 걷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한데, 거기다가 색동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주변의 나무들이 눈까지 호사(豪奢)를 시켜준다. 모처럼 누려보는 여유로운 산행이다. 너무 여유를 부린 탓인지 첫 봉우리인 무명봉(아마 1100봉일 것이다)에 올라서는데 무려 40분 가까이나 걸렸다.

(**)낙동정맥(洛東正脈), 강원도 태백시의 구봉산(九峰山)에서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沒雲臺)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태백산 줄기인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갈라져 영천의 운주산(雲住山, 806m)까지 높이 1,000m에 달하는 산줄기를 형성하고, 월성군 서면 아화리의 낮은 구릉을 넘어 다시 경상남도의 가지산(加智山)을 거쳐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끝을 맺는 길이가 약 370나 되는 산줄기이다. 주요 산으로는 백병산(白屛山, 1,259m), 주왕산(周王山, 907m), 단석산(斷石山, 829m), 가지산(加智山, 1,240m), 취서산(鷲棲山, 1,059m), 금정산(金井山, 802m) 등이 있다.

 

 

 

 

 

무명봉에서부터 산길은 순해진다. 전형적인 흙길에다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니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구간이다. 거기다가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까지 눈요기를 시켜주니 이보다 더 낭만적인 산행이 어디 있겠는가. 산행을 싫어하는 사람, 숲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이런 산에 발을 들여놓을 경우에는 산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가 없을 것이다. 걷는 속도를 최대한 늦춰본다. 도시에서 쌓인 상념(想念)은 이미 사라지고 머리는 맑아진다. 거기다 시간까지 넉넉하니 한껏 여유를 부려본다. 더덕사냥에 나서본 것이다. 능선을 좌우로 훑으며 콧구멍을 크게 벌리고 킁킁거려본다. 그리고 시선(視線)은 최대한 멀리 둔다. 심마니들이나 다니는 오지(奧地)의 산이어선지 커다란 더덕들을 제법 많이 캘 수가 있었다.

 

 

 

능선이 순하다고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찾는 사람들이 드문 탓에 산길이 또렷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삼방산을 찾은 산악회들이 매달아 놓은 시그널들을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독도(讀圖 , map reading) 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 있다. 무명봉에서 이어지는 능선을 무심코 따를 경우에는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될 염려가 있는 곳이다. 더덕을 캐며 오느라 무명봉에서 거리가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 수 없어도 능선에서 왼편으로 떨어져야만 하는 지점이 있으니 시그널들을 잘 살펴보며 진행해야 한다. 독도유의 지점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능선안부에서 이르게 되는데, 왼편에 산길 하나가 희미하게 보이나 무시하고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된다. 능선 위로 오르면 산길은 다시 완만(緩慢)해지면서 왼편에 참나무들이 꽉 들어찬 널따란 습지(marshy land , 濕地하나를 만들어 낸다. 개념도에 나타나 있는 늪지(bogs : 고위도의 냉한대 기후지역에 존재하는 습지)이다.

 

 

 

 

습지를 지나면 이내 주능선 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진행하면 낙동정맥 상의 면산(1,245m)에 이르게 되고, 삼방산은 오른편 능선을 따르면 된다. 주능선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바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꽤나 긴 오르막길은 비록 힘들지만 지루하지는 않다. 오늘 산행에서 단풍이 가장 무르익은 구간이기 때문이다. 울긋불긋한 단풍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오르다보면 20분 조금 못되어 삼방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삼방산 정상은 제법 너른 분지(盆地)이다. 그러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찾는 사람들이 드문 탓에 정상 주변을 온통 잡목(雜木)과 넝쿨식물들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의 길은 통행이 불가능해진 탓에 왼편으로 우회(迂廻)해서야 겨우 정상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조그맣고 귀여운 정상표지석이 지키고 있는 삼방산의 정상도 조망(眺望)은 별로이다. 그래도 아까 지나왔던 용우이산보다는 나은 편이다. 남쪽 방향을 가로막고 있는 키가 작은 잡목들 위로 응봉산 등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삼봉산 정상에서는 산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 그 하나는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境界)인 능선을 따라 석포대교 방향으로 내려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반대방향의 도() 경계를 따라 면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정상에서 동향에 가까운 동남쪽 방향의 지능선을 따라가다 910번 지방도의 골안8(: 오전골) 근처로 내려서는 것이다. 그러나 등산마니아들이 아니라면 마지막 코스는 피하는 게 좋다. 이 코스는 심마니들이나 다니는 코스이기 때문에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며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동남쪽 방향의 지능선을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시간에 여유가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그보다는 버섯이나 더덕 등을 채취하는 행운(幸運)을 기대한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이 코스는 심마니들이나 다니기 때문에 아직까지 사람들의 때를 덜 탓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버섯 등 임산물(林産物)을 채취하려면 능선의 정점으로 난 길을 걸어서는 안 된다. 임산물은 보통 능선의 7~8부쯤 되는 지점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산물을 채취하는 데는 항상 위험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길도 없는데다가 경사(傾斜)도 보통 60~70()를 넘기기 때문에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큰 부상을 입을 염려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더덕과 상황버섯, 그리고 노루궁댕이버섯까지 채취(採取)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50분 정도 능선을 오르내리며 임산물을 채취하다가 오른편 지능선으로 내려선다. 물론 특별한 좌표(座標)도 없이 눈짐작만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는 것이다. 그러니 길이 없음은 물론이다. 가파르고 험한 산길을 스스로 개척하며 내려가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가파르다보니 발끝에 걸리는 돌들이 심심찮게 아래로 구르며 앞서 내려가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미끄러움이 거추장스러운데 굴러오는 돌까지 피하려다보니 조심스럽기 이루 비길 데가 없다. 하긴 이렇듯 험하기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그 덕분에 우린 귀한 임산물들을 채취할 수 있었으니, 이런 것을 보고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거칠고 가파른 내리막길과 30분 정도를 싸우다보면 이름 모를 계곡에 내려서게 된다. 움푹 빠진 계곡은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나 햇살이 드는지 모를 정도로 골이 깊다. 그러나 다행이도 계곡 가에 굵직한 돌들로 길이 만들어져 있다. 아까 내려올 때 보니 산불이 났던 흔적이 눈에 띄었는데, 아마 산림복구(山林復舊)를 위해 개설했던 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길은 있으나마나다. 한 번도 보수를 하지 않았는지 계곡인지 길인지가 구분이 안 될 정도인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910번 지방도 상의 골안8() 근처.

계곡을 따라 난 길은 어떤 때는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한다. 다행이 물이 많지 않아서 건너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거친 계곡길을 따라 다시 30분 가까이 걸으면 드디어 910번 지방도이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가면 삼척시 가곡면, 그리고 오른편은 봉화군 석포면이 나온다. 하산지점에서 버스를 타고 왼편의 삼척방향으로 향한다. 오늘 같은 버스를 타고 온 낙동정맥팀들의 하산지점인 석개재가 왼편 삼척방향으로 2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팔봉산(八峰山, 327.4m)

 

산행일 : ‘13. 10. 6()

소재지 :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리

산행코스 : 팔봉산 매표소1~8홍천강변(江邊)팔봉교유원지 주차장(산행시간 : 3시간)

함께한 산악회 : 터산우회

 

특징 : 팔봉산은 해발(海拔)300m에 불과한 자그마한 산이다. 당연히 웅장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대 명산에 들어있으니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팔봉산의 앞에 서면 그런 의문은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친 여덟 개의 봉우리와 단애(斷崖)를 이루는 기암절벽(奇巖絶壁)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산을 휘감아 도는 홍천강이 기암괴석과 잘 어울리면서 마치 수반(水盤) 위에 놓인 수석(壽石)을 연상시켜 준다. 단 산행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1봉에서 8봉까지 종주하고 난 후 주차장까지 되돌아나오는 거리가 고작 4Km, 사람들 때문에 정체(停滯)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2시간 남짓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팔봉산은 감물악(甘勿岳)이라는 딴 이름을 하나 더 갖고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산행들머리는 팔봉산 매표소

서울-춘천고속도로 남춘천 I.C에서 내려오자마자 만나게 되는 86번 지방도에서 우회전하면 잠시 후에 70번 지방도와 만나는 광판삼거리(춘천시 남산면 광판리)가 나온다. 광판삼거리에서 이번에는 좌회전(용문, 양평방면)하여 들어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팔봉산 관광지(홍천군 서면 어유포리)에 이르게 된다. 이어서 홍천강을 가로지르는 팔봉교()를 건너면 팔봉산 매표소이다.

 

 

 

산행은 팔봉산매표소를 통과하면서 시작된다. 물론 매표소에서 입장권(어른 기준 1,500)을 구입하고 난 후, 단체산행일 경우에는 관리인의 머리 헤아리기 과정이 따름은 물론이다. 입장료가 조금 비싸다는 생각도 들지만, 산을 깨끗하게 잘 관리하는데 사용한다니 아깝지는 않다. 매표소에서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맞은편에 보이는 철다리(鐵橋)를 건너 제1봉으로 오를 수도 있고, 오른편 강변(江邊)으로 내려서더라도 팔봉산을 오르는 데는 지장이 없다. 다만 강변을 경유하는 역()코스를 선택할 경우에는 만만찮게 산행시간이 늘어난다. 거의 모든 등산객들이 1봉부터 산행을 시작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반대방향에서 오는 사람들과 엇갈리며 기다리는데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1봉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의외라는 생각이 머리를 내민다. 짙게 우거진 숲하며 녹색의 이끼를 잔뜩 머금은 고목(枯木)들이 마치 원시림(原始林)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그맣고, 거기다가 사람들로 들끓는 산에서 원시림을 연상시킬 정도의 숲을 만나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산길은 초입부터 제법 가파르다. 산길이 곧장 산위로 향하지 못하고, 왔다갔다 갈지()자를 만들고서야 겨우 고도(高度)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10분쯤 올랐을까 이정표(1봉 가는 길 : 쉬운 길) 하나가 세워진 자그마한 쉼터가 보인다. 등산객들은 모두 이정표가 지시하는 데로 진행하고 있다. 호젓하게 산행을 해보고 싶은 생각에 다른 길을 찾아본다. 쉬운 길이 있다면 당연히 어려운 길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 것이다. 그러나 금방 발걸음을 돌려버리고 만다. 이정표에도 나와 있지 않은 어려운 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은 탓인지 길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쉼터에서 조금 더 오르면 길은 두 갈래(이정표 : 1봉 가는 길/ 2봉 가는 길)로 나뉜다. 오른편이 1봉으로 오르는 길이고, 왼편은 1봉을 건너뛰고 곧장 2봉으로 가는 길이다. 1봉으로 방향을 잡자마자 장사진(長蛇陣)이 늘어서있는 것이 보인다. 비록 높이는 10m도 채 안되지만 거의 암벽(巖壁)수준의 급경사(急傾斜)가 이유인 모양이다. 기다리는 시간이 자꾸 길어지는 이유는 여자들 때문이다. 남자들이라면 이 정도쯤이야하고 콧방귀를 뀌겠지만 여자들에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가 오늘 팔봉산을 찾은 등산객들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숫자가 더 많다. 잘못하면 산행시간보다 줄을 서서 기다려야하는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오늘 산행은 구간별 소요시간이 무의미해져 버렸다.

 

 

 

 

로프와 철판으로 만든 발판에 의지해 겨우겨우 경사(傾斜)길을 오른다. 산행을 시작해서 35분 정도를 바위와 싸우다보면 1봉에 올라서게 된다. 올라오는 길에 두어 번 시야(視野)가 트이지만 나무들 때문에 조망(眺望)은 썩 좋지 않다. 좁다란 공터로 이루어진 1봉 위에는 앙증맞게 작은 정상석이 세워져 있고, 날카로운 바위 위에는 잔돌로 쌓은 작은 탑()도 보인다. 1봉에 올라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S라인의 홍천강이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S자를 그리고 있는 것이 내려다보인다. 옛 선비들은 홍천강이 아홉 굽이를 휘돌아 흐른다고 하여 구곡강’(九曲江)이라 불렀다고 한다. 참고로 태극(太極)모양으로 나타나는 굽이를 수태극(水太極)’이라 말하는데, 홍천강에서 가장 완벽하게 태극모양을 만드는 곳은 북방면에 있는 금학산으로 알려져 있다.

 

 

 

1봉에서 2봉 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역시 바윗길이다. 긴장은 해야겠지만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암벽에 밧줄과 쇠()난간 등 안전시설이 잘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발을 디뎌야 하는 곳마다 쇠()발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이러한 안전시설들은 산행을 마칠 때까지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1봉과 2봉 사이의 안부에서도 갈림길(이정표 : 2봉 가는 길/ 3봉 가는 길)을 만나게 된다. 2봉을 거치지 않고 곧장 3봉으로 가는 길이 있는 것이다.

 

 

 

 

2봉 오르는 길 역시 가파르고 험하다. 로프와 쇠난간을 잡고 암릉을 오르면 바위 봉우리 꼭대기에 작은 사당(祠堂)이 하나 보인다. 삼부인당(三婦人堂)이다. 그 옆에는 칠성각(七星閣)까지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산꼭대기에 차려진 당집은 전국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것이다. 이 당집은 시어머니, 며느리, 딸의 혼()을 모신 곳으로 해마다 봄, 가을이면 마을주민들이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옛날 옛적에 팔봉리 마을에 성격이 각기 다른 이씨(李氏) 시어머니와, 김씨(金氏) , 그리고 홍씨(洪氏) 며느리가 살았다고 한다. 이씨 부인은 성격이 까다로웠으나 인자하였고, 김씨 부인은 푼수기가 많았으나 후덕하였고, 홍씨 부인은 정은 많았으나 다혈질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과부(寡婦)들이었지만 서로 아옹다옹 싸우면서도 다정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었기에 주위에서 삼부인집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세 과부들은 후사(後嗣)를 이을 수 없는데다가, 살림살이까지 궁핍해지자 이곳 2봉에 올라 세상을 한탄하며 울다가 그만 혼절(昏絶)하였다. 그리고 3일 후에 깨어나서는 농사를 주관하는 ()내림을 받았다고 한다. ‘()내림을 받은 곳을 신성(神聖)시 하던 주민들이 이곳에다 사당(祠堂)을 짓고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당굿을 지냈음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당굿을 할 때 이씨가 강신(降神)하면 풍년, 김씨가 내리면 대풍, 홍씨가 내리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2봉에 오르면 시야(視野)는 더 넓어진다. 용문산과 삼악산, 화악산 등 인근의 명산들이 더욱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발아래에 흐르고 있는 홍천강은 점점 더 부드러운 곡선(曲線)을 드러내고 있다. 굽이굽이 휘돌고 있는 홍천강은 그야말로 절경(絶景)이다. 홍천군이 자랑하는 제1경으로서 결코 손색이 없는 풍경이다.

 

 

2봉에서 바라본 3, 정상어림의 철계단이 멋진 조형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2봉에서 3봉을 향해 내려서는 길에는 안전시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비록 바윗길이지만 그다지 험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2봉과 3봉사이의 안부는 사거리(이정표 : 3봉 가는 길/ 2·3봉 사이 하산로/ 1·2봉 가는 길)이다. 왼편에 보이는 길이 1봉과 2봉 사이의 안부에서 2봉을 거치지 않고 곧장 오는 길이고, 오른편은 강변으로 내려가는 하산로이다. 물론 3봉은 맞은편에 보이는 철계단을 밟고 올라서야 한다.

 

 

 

거의 수직(垂直)에 가까운 철계단을 오른 후 잠시 암릉에 부대끼다보면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는다. 장군바위이다. 오래 가물 때에는 이 장군바위에 치마를 씌우고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 바위를 돌아서 오르면 정상석이 있는 3봉 정상이다. 3봉은 팔봉산의 주봉(主峰) 역할을 하지만 정상을 이루고 있는 공터는 몇 사람이 앉기도 힘들 정도로 비좁다. 그러나 조망만은 뛰어나다. 팔봉산의 중심이 되는 봉우리답게 북서쪽으로 다섯 봉우리들을 한눈에 펼쳐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북서릉을 설악산의 공룡능선과 비유하기도 한다. 거친 암릉과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노송(老松)들이 마치 설악의 공룡능선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고 해서이다.

 

 

 

 

3봉에 오르면 조망(眺望)은 절정을 이룬다. 아까 2봉에서 즐겼던 조망을 한층 더 뛰어넘는 것이다. 팔봉산을 감싸고 굽이굽이 흐르는 홍천강의 곡선은 더욱 유연해지고, 연봉(連峰)으로 이어지는 주변의 산들은 물론이고, 저 멀리 용문산, 화야산, 운길산, 명지산까지 높고 낮은 산들이 첩첩(疊疊)이 겹쳐있다. 이곳뿐만이 아니고 팔봉산은 봉우리마다 조망이 뛰어나다. 강으로 빙 둘러싸인 탓에 어느 봉우리에서나 시야(視野)가 툭 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3봉에서 바라본 2, 정상에 있는 삼부인당이 또렷하다.

 

3봉에서 바라본 북서릉, 많은 사람들이 설악의 공룡능선을 빼다 박았다고들 한다.

 

 

4봉을 향해 내려가는 길도 험하기는 아까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이다. 밧줄과 철사다리 등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철계단을 내려서다보면 안부로 떨어지기 직전에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맞은편으로 난 철다리를 건너면 곧장 4봉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팔봉산의 명물인 해산굴(解産窟)을 통과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안부까지 내려가야만 한다.

 

 

 

해산굴은 비스듬하게 수직(垂直)으로 뻗은 바위굴이다. 침니(암벽이 세로로 갈라진 틈)의 형태로 되어있어서 제법 고난도(高難度)의 등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만일 몸이 뚱뚱한 사람이라면 결코 모험을 해서는 안 된다. ()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이 굴은 산파바위라고도 하는데 산모(産母)가 아이를 낳을 때 고통을 겪는 것만큼이나 통과하기 어렵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밑에서 받쳐주고 밀어준다면 빠져나가기가 조금이라도 쉬워지겠지만 받쳐주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침니 자체가 워낙 좁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산굴 앞은 굴을 통과해 보려는 사람들로 인해 항상 장사진(長蛇陣)을 이룬다. 굴로 들어서기 전에는 먼저 배낭을 벗어 앞에다 안아야 한다. 그런 다음 굴의 막바지에 이르면 배낭을 먼저 굴 밖으로 밀어 올리고 난 후, 다음에는 몸을 누운 자세로 서서히 밖으로 빠져나와야 한다. 해산굴을 빠져나오자마자 4봉 정상석이 등산객들을 맞이한다. 마치 굴을 빠져나오느라 고생한 이들을 환영이라도 하는 듯하다. 여기서 우스개 한마디, 해산굴이라함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는 애들이 통과하는 굴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오늘 저 굴을 통과한 수백 명의 남녀들은 모두가 한 뱃속에서 나왔으니 형제나 남매, 그리고 자매들일 것이다. 요즘 같은 저출산(低出産) 시대에 꼭 필요한 모티브(motive)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해산굴을 통과하지 않고 곧바로 4봉에 오른 사람들은 제왕절개수술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이 아닐까?

 

 

 

 

 

가장 어렵다는 4봉을 지나서도 바윗길은 계속된다. 차라리 더 험해진다고 말해도 그다지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골은 아까보다 깊지 않지만 암릉의 경사(傾斜)는 차라리 더 가팔라지기 때문이다. 4봉에서 철계단을 밟고 안부로 내려섰다가, 이번에는 한층 더 가팔라진 철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5봉 정상이다. 5봉의 정상도 조망(眺望)은 뛰어난 편이다. 주변의 산군(山群)들은 물론, 홍천강의 유려한 몸짓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5봉과 6봉 사이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제법 길다. 두 봉우리 사이에 자그마한 봉우리들이 여럿이 솟아있는 것이다. 봉우리들이 작다고 해서 봉우리들 사이의 골까지 얕은 것은 아니다. 어떤 안부는 거의 수직(垂直)에 가까운 철계단을 오르내려야만 하는 곳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산의 이름이 팔봉산이 아니고, 구봉산이나 십봉산이었다면 정상석 하나쯤은 족히 차고도 남았을 정도의 봉우리들이다.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다가 6봉 앞의 안부에 이르면 길은 세 갈래(이정표 : 6봉 가는길/ 5·6봉 사이 하산로/ 5봉 가는 길)로 나뉜다. 체력이 약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강변으로 탈출하면 된다. 6봉으로 오르는 길은 다른 곳에 비해 안전시설이 없는 편이다. 그만큼 험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6봉의 정상은 다른 봉우리들에 비해 험하다. 유난히도 날카로운 바위 꼭대기에 정상석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쉴 수 있는 공간이 없는 탓에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다. 하긴 공간이 있다고 해도 구태여 머무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상에서의 조망(眺望)이라고 해봐야 다른 봉우리들을 오르내리며 보아온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6봉에서 7봉으로 가는 길은 경치가 좋은 편이다. 주변에 널린 노송들이 암릉과 어우러지면 뛰어난 경관(景觀)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길가 암벽 위에 얹혀있는 고사리과의 작은 식물들도 아름다운 경관을 만드는데 일조(一助)를 하고 있다. 붉게 물들어가는 잎들이 가을의 풍치(風致)를 한층 더 멋지게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5봉과 6봉 사이에는 제법 너른 안부가 있다. 날카로운 암릉으로 이루어진 팔봉산에서 유일하게 많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안부는 시장바닥을 연상시키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군데군데 무리를 지어 점심상을 차리고 있는 것이다.

 

 

 

안부에서 다시 짧은 사다리를 타고 오르면 이번에는 밧줄 구간이다. 이어서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은 뒤, 다시 맞은편 능선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7봉 정상이다. 7봉의 정상은 제법 날카로운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때문인지 정상석이 바위 아래에 조용히 숨어있다. 아마도 바위 위에다 얹어 놓는 것이 힘들었나 보다.

 

 

 

 

7봉과 8봉 사이의 능선은 그동안 지나왔던 일곱 개의 봉우리 사이들 중 가장 길고 경사(傾斜)도 순한 편이다. 또한 경관도 뛰어나다. 능선에 늘어선 노송(老松)들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홍천강 줄기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그런 경관들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구간이 갖고 있는 장점 중의 하나이다. 아기자기한 산길이 그다지 험하지 않는데다가, 조금만 험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철계단이나 안전밧줄, 그리고 철다리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잠깐 눈을 돌려도 괜찮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8봉 앞의 안부(이정표 : 8봉 가는 길/ 7·8봉 사이 하산로/ 7봉 가는 길)에 이르면 8봉이 험하니 주의하라는 경고판(警告板)이 두 개나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중 하나는 이곳 안부에서 곧장 하산할 것을 권하고 있다. 옛날에는 대부분 이곳에서 하산을 했다. 8봉에서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에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8봉을 둘러본 후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 하산을 했던 것이다.

 

7봉을 내려오다 본 8봉 전경

 

 

 

경고판에 놀라 탈출을 고집할 필요까지는 없다. 8봉으로 오르는 길이나, 8봉에서 강변(江邊)으로 내려가는 하산길 모두 안전시설을 잘 갖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주의한다면 어렵지 않게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겁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8봉으로 향하자마자 지레 겁부터 먹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수직(垂直)에 가까운 철계단은 끝도 없이 위로 향하고, 철계단이 끝나면 외가닥 쇠난간을 붙잡고 서슬이 시퍼런 바위벼랑 위로 올라서야 하기 때문이다.

 

 

 

고생 끝에 정상에 오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있는 노송들에 둘러싸인 널따란 암반(巖盤)이 나타난다. 8봉은 여덟 개 봉우리들 중에서 가장 낮다. 하지만 종주(縱走)의 대단원을 마무리 짓는 봉우리답게 조망이 수준급이다. 산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홍천강의 물줄기는 푸르다 못해 시릴 지경이고, 고개를 들면 오음산을 비롯해 용문산, 삼악산, 화악산 등 인근의 명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즐기는 조망(眺望), 이런 것을 일컬어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하지 않나 싶다.

 

 

8봉에서 바라본 7봉 능선

 

 

 

8봉에서 강변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은 전체 구간 중 가장 위험한 구간이다. 그래서 아까 지나왔던 7봉과 8봉 사이의 안부에 경고판까지 세워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레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다. 안전밧줄과 철계단, 그리고 쇠난간을 곳곳에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주의만 한다면 별다른 사고 없이 내려설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옛날 이곳을 ()의 구간이라고 부르게 만들었던 바위의 미끄러움도 지금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발을 디뎌야 할 곳에는 어김없이 철판(鐵板)으로 발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마지막 철계단에 이어 수직(垂直)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강변길이다. 이 길은 홍천강과 산 밑 바위사면(斜面)을 따라 다리 등으로 매표소까지 연결한 길이다. 강변길은 암벽(巖壁) 밑을 허리까지 숙여야만 통과할 수 있는 구간이 있는 가하면, 좁은 철판(鐵板)을 딛고 로프에 의지해서 강물 위를 건너야 하는 출렁다리 구간도 있다. 다리들은 거의 수면(水面) 위로 지나가기 때문에 마치 물위를 걷는 상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구간은 조금만 비가 많이 와도 통행이 제한된다. 길이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산행날머리는 팔봉산 유원지(遊園地) 주차장

산행이 종료되는 유원지의 주차장은 매표소에서도 10분 정도를 더 걸어야만 한다. ‘! 기막히게 빼다 박았다매표소를 지나는데 어느 여성분의 상큼한 외침이 들려온다. 매표소 앞 통행로의 한가운데 박혀있는 바위에 남성의 성기(性器)가 조각되어 있는 것이다. 아침에 산행을 시작할 때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면 그만큼 여유 있는 산행을 즐겼음이리라. 팔봉교를 건너 유원지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눈요깃거리로 넘친다. 인도 옆에 늘어선 팔랑개비들은 형형색색(形形色色)의 날개들을 열심히 돌리고 있고, 강 건너에는 팔봉산이 그 뛰어난 아름다움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팔봉산은 등반의 묘미(妙味)를 만끽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고도(高度)가 높은 거대한 육산(肉山)에서 느낄 수 있는 웅장함은 빠져있지만, 나머지 요소들이 그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이다. 이로 인해 팔봉산은 홍천9(洪川九景 : 가리산, 미약골, 금학산, 가령폭포, 공작산 수타사, 용소계곡, 살둔계곡, 가칠봉 삼봉약수) 중 단연 1()으로 꼽힌다. 인접한 고산(高山)들에 비해 그 규모가 보잘것없는 이 꼬마산에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취적봉(吹笛峰, 728.2m)

 

산행일 : ‘13. 8. 10()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과 화암면의 경계

산행코스 : 덕우삼거리석공예단지하돌목교전망대사모바위(시계바위)갈림길취적봉옥순봉덕산1(산행시간 : 트레킹 2시간10)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취적봉은 연산군과 인연이 깊은 산이다. 그 아들이자 세자였던 이황(당시 9)이 귀양(流配)왔다가 23일 만에 사약(賜藥)을 먹고 사사(賜死)된 곳이기 때문이다. 폐세자(廢世子)가 된 이황이 이곳에서 감자로 연명하며 피리를 불던 곳이라 해서 취적봉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산이 얕고 자랑할 만한 볼거리도 없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하다가, 산이 끼고 있는 덕산기계곡이 ‘12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방영된 후부터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대부분의 산악회들이 덕산기계곡 트레킹(trekking)을 위해 이곳을 찾는 김에 취적봉 등산을 일정에 끼워 넣기 때문이다

 

산행들머리는 덕우삼거리(석공예단지 주차장)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나와 태백 방향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 문곡교차로(交叉路 : 정선군 남면 문곡리)에서 59번 국도로 바꿔 타고 정선읍 방향으로 들어가면 424번 지방도가 갈려나가는 덕우삼거리(정선읍 덕우리)에 이르게 된다. 삼거리에서 424번 지방도로 100m 정도 들어간 곳에 있는 석공예단지 주차장이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석공예단지주차장에서 424번 지방도를 따라 100m 정도 더 들어가면 왼편에 하돌목교()가 보인다. 다리 입구에 취적봉 등산로라고 적힌 커다란 이정표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돌목교를 건넌 후(이정표 : 취적봉 등산로 1.3Km), 제방을 따라 어천(동대천)100m 조금 넘게 거슬러 올라가면 등산로는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밭 사이로 들어선다. 이 근처에 취적대가 있다고 하는데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옥수수 밭 사이로 난 길을 지나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게 된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산으로 접어들자마자 산길은 곧바로 능선을 따르게 된다. 능선으로 올라서도 길은 순하기 그지없다.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데다가 흙길로 이뤄져 있어 걷는데 조금도 부담이 없는 것이다. 능선에 접어들면 묘지(墓地)들이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무래도 명당자리가 아닐까 싶다. 맨 위에 있는 묘()의 주인이 숙부인(淑夫人 : 3품 당상관의 부인)인 것을 보면 내 추측이 많은 듯 싶다.

 

 

 

묘역(墓域)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산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오른편 숲이 열리고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눈을 즐겁게 만들어 준다. 이런 것을 보고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른 보답으로 눈이 호사(豪奢)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정도가 지났다. ‘영락없는 한반도(韓半島)네요누군가가 감탄사와 함께 내쏟는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한반도를 닮은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다른 곳에서 보았던 한반도의 생김새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었다.

 

 

 

 

전망대(展望臺)를 지나서 7~8분 정도 더 오르면 사모바위의 거대한 암벽(巖壁)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오른편으로 우회(迂廻)하는 길이 보이기 때문이다. 사모바위는 덕우리에서 이 바위를 올려다보면 그 생김새가 모자를 닮았다고 해서 사모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한편 이 바위에 햇볕이 들지 않다가 정오가 되어서야 들기 때문에, 시계가 귀했던 시기에 이 봉우리를 보고 점심때가 된 것을 알았다고 해서 시계바위라고도 불린다.

 

 

 

사모바위를 지나면 길은 사납다싶을 정도로 경사(傾斜)가 가팔라진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오르는 길에 심심찮게 조망(眺望)이 터지기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고 오를 수가 있는 구간이다. 조망이 터지는 곳에 서면 아까 전망대에서 보았던 한반도 모형이 또 다시 나타난다. 동강을 향해 흘러가는 어천(동대천)갈지(), 정확히는 'S'()를 그리면서 한반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건너편에 보이는 바위 절벽(絶壁)이 아마 취적대일 것이다. 연산군의 아들로서 폐세자(廢世子)가 된 이황은 덕우리 유천마을 강변에 있는 저곳에서 피리를 불었다고 한다. 그래서 후세사람들은 불 취()에 피리 적()자를 붙여서 취적대라 불렀다고 한다.

 

 

 

 

보통 산에 가려고 할 때, 나는 가고자하는 산을 먼저 다녀온 분들이 쓴 후기(後記)들을 두루 읽어 보는 편이다. 산행에 참고를 하기 위해서이다. 이번 취적봉도 산행기들을 여럿 읽어보았다. 그런데 참조한 산행기 중에서 두 가지가 상이(相異)한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첫째는 전망대 가기 전에 있다는 군대의 교통호처럼 파인 일제의 잔재(殘滓)이다. 이 지역에서 인재가 날 것을 두려워한 일제가 그 맥을 끊어 놓았다는 곳인데, 아무리 살펴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두 번째는 덕우삼거리 갈림길이다. ‘사모바위앞에서 정상으로 가는 길과 덕우삼거리로 내려가는 길이 갈린다고 적었는데, 이 지점에서 갈려나가는 길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난간역할을 하고 있는 안전로프와 나뭇가지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비탈길을 치고 오르면 드디어 취적봉 정상이다. 정상 조금 못미처에서 삼거리(취적봉/ 덕산기계곡/ 덕우삼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난 길로 진행할 경우에는 옥순봉을 거쳐서 덕산기계곡으로 내려가게 된다. 덕산기계곡의 트레킹을 계획하고 있다면 정상을 지나 또 다른 정상(삼각점이 설치된 봉우리)으로 연결되는 능선을 따라 진행해야 한다.

 

 

덕산기계곡 갈림길에서 정상은 금방이다. 10평이 채 안 되는 바위지대인 정상은 정상표지석 하나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정상에 올라서면 조망(眺望)이 시원스럽게 터진다. 건너편에는 진짜 취적봉(삼각점봉)이 보이고, 멀리 정선읍과 가리왕산은 물론이고 군의산, 민둥산, 지억산, 각희산 등이 보인다. 산행들머리에서 정상까지는 대략 55분 정도가 소요된다. 참고로 취적봉의 정상은 건너편에 보이는 삼각점봉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왜 정상표지석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을까? 어쩌면 저쪽 봉우리가 볼품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볼거리도 없고 잡목(雜木)으로 둘러싸여 조망까지도 트이지 않는 봉우리보다는, 바위봉에다 조망(眺望)까지 시원스럽게 트이는 지금의 봉우리를 정상으로 내세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다.

 

 

 

정상의 건너편에 보이는 봉우리, 삼각점이 있는 정상으로 가려면 먼저 가파른 암릉을 내려서야 한다. 상당히 가파른 암릉에는 밧줄이 매어있기는 하지만 주의가 요구되는 구간이다. 삼각점봉에 다녀와서 덕산기계곡으로 내려가려 했으나 그냥 발걸음을 돌려버린다. 내려가는 암릉 위에서 10분을 기다려보았지만 늘어선 줄이 조금도 줄어들지를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오늘 취적봉을 찾은 산악회가 3개나 되니 위험한 구간에서 정체(停滯)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까의 덕산기계곡 갈림길로 되돌아와 하산을 시작한다. 완만(緩慢)한 경사(傾斜)로 시작된 내리막길이 내려갈수록 점점 가팔라지더니 언젠가부터 위험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까지 변해있다. 길가에도 위험 낭떨어지라고 쓰인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파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왼편이 날카로운 바위 절벽(絶壁)으로 변해있다. 그러나 눈 쌓인 겨울철이 아니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왼편 바위벼랑 쪽에 비록 로프이긴 하지만 난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왼편 산자락이 바위벼랑으로 변하면서 눈이 호강을 누리기 시작한다. 벼랑의 특징대로 시야(視野)가 터지면서 주변 경관(景觀)이 아름답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건너편에 구운병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오른편에는 백평마을과 낙모암이 나도 있다며 손짓을 하고 있다. 거기다 고개를 돌려보면 제월대의 날카로운 암벽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참고로 구운병은 덕우리 1반 대촌마을 강변(江邊)에 마치 아홉 폭 병풍(屛風)을 세워 놓은 것처럼 펼쳐진 기암절벽(奇巖絶壁)이다.

 

 

 

 

 

 

제월대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심심찮게 전망대(展望臺)가 나타난다. 반도(半島)처럼 툭 튀어나온 물돌이 지형(언내뜰 : 백평마을)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리고 그 그림은 내려가다 멈추는 곳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며 계속해서 나타난다. 언내뜰(백평마을)은 어천(동대천)이 마치 뱀처럼 똬리를 틀면서 만들어 놓은 물방울처럼 생긴 반도이다. 언젠가 비룡산에서 내려다보던 회룡포를 닮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곡선의 아름다음은 회룡포에 미치지는 못한다. 이러한 물돌이는 용궁의 회룡포 외에도 안동의 하회마을과 영주의 무섬에서도 볼 수 있다.

 

 

 

 

제월대는 덕우리 1반 백평마을 강변에 우뚝 서있는 바위절벽이다. 달이 지는 광경이 마치 날카로운 암봉 사이를 달이 건너다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다.

 

 

 

낙모암은 덕우리 1반 백평마을 앞 강변에 서있는 모자(탕건) 모양을 한 기암절벽(奇巖絶壁)이다. 덕산기계곡(구진베리)의 물줄기는 이곳에서 어천(동대천)의 큰 물줄기와 합쳐진 후 동강을 향해 흘러간다.

 

 

 

 

옥순봉에서 뻗어 내린 양쪽 면()이 다 날카로운 암릉은 낙모암 앞의 합수지점에서 끝을 맺는다. 능선이 끝나는 지점에는 이정표(반선정 350m/ 취적봉 정상 1.3Km)와 덕우8경의 하나인 낙모암에 대한 설명판(파손되어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위험구간이므로 통행을 금한다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다. 덕산기계곡의 경관(景觀)을 제대로 구경하려면 이곳에서 반선정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백평마을과 구운병, 그리고 반선정을 둘러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옛날 마고할멈이 봉우리에서 신을 삼아 신었다는 옥순봉의 바위 봉우리를 올려다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정표에 방향표시도 없는 오른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산악회에서 정한 하산지점이 덕산1교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40분이면 충분하다.

 

 

 

덕산기계곡에 내려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개울가에 쳐진 텐트들과 물속에서 떠들고 있는 인파(人波)들이다. 계곡물이 별로 많지 않지만 사람들이 저렇게 많은 것은 그만큼 덕산기계곡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많이 탔다는 증거일 것이다. 계곡 상류를 향해 덕산1교를 건너면서 소란스러운 텐트집단은 극에 달한다. 다리 건너의 시설지구 마당을 조그만 빈틈도 주지 않고 텐트들이 꽉 들어차 있는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여탄마을회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이내 발길을 돌려버린다. 계곡에 물이 별로 없어서 트레킹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덕산기계곡은 사실 주위 풍경(風景)이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지만 절경(絶景)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모자란다. 이 계곡은 주변의 경관(景觀)보다는 매혹적인 물색에 있는 것이다. 희고 둥근 자갈 위를 흐르거나 고여 있는 물빛이 옥빛과 초록빛을 뒤섞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사람들이 찾는데 그 물이 없으니 더 이상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야할 명분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덕산1교에서 산행이 종료되는 여탄마을회관까지는 1Km정도, 오가는 차량을 어렵게 피하면서 왕복1차선 도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어 내려가야 한다.

 

 

 

                                                         

 

망경대산(望景臺山 , 1,087.9m) - 응봉산(鷹峰山, 1,013m)

 

산행일 : ‘13. 7. 28()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과 중동면, 김삿갓면의 경계

산행코스 : 안흥상회(화원리)임도수리삼거리망경대산자령치삼거리응봉산연하계곡주차장(산행시간 : 4시간50)

함께한 산악회 : 기분 좋은 산행

 

특징 : 망경대산과 응봉산은 일확천금(一攫千金 : 무연탄)을 꿈꾸던 광업인(鑛業人)들에게나 알려졌을 뿐, 꽤나 산에 이골이 난 사람들에게 조차 생소한 이름이었다. 두 산이 제대로 된 바위 하나 만나지 못할 정도로 전형적인 흙산(肉山)이다보니, 산세(山勢) 또한 특별한 볼거리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그 원인일 것이다. 거기에다 들어앉아 있는 곳이 오지(奧地)까지 되다보니 은둔(隱遁)의 산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찾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고 한다. 응봉산 아래에 있는 연하계곡으로 피서 온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려지기도 했겠지만, 일부러 오지(奧地) 산을 찾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증거일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안흥상회(중동면 화원1)

중앙고속도로 제천 I.C에서 내려와 38번 국도(태백방향)를 따라가다 석항교차로(交叉路 : 중동면 연상리)에서 31번 국도로 옮겨 태백방면으로 들어가면 얼마(5) 지나지 않아 산행이 시작되는 화원리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산행들머리인 화원리는 수라리고개로 올라가는 구()도로에 접해 있기 때문에 수라리고개 아래로 새로 뚫린 터널로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터널 조금 못미처에서 오른편으로 구도로가 보이니 놓쳐서는 안 될 일이다. 산행들머리인 화원1리 마을은 중동읍(태백방면)으로 넘어가는 수라리고개 조금 못미처의 도로변에 위치한 마을이다. 마을입구에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수라리재는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삼척 궁촌으로 유배(流配)를 가는 길에 이 고갯마루에서 수라(水剌 : 왕이 먹는 음식)를 들었다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안흥상회에서 마을 안길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개울을 끼고 난 시멘트포장길은 맨 마지막 농가(農家)에서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서 산으로 접어든다. 입구에 차단기(遮斷機)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차단기를 설치한 이유를 모르겠다. 들머리에 세워진 ‘MTB코스안내판이 통행이 개방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데도 말이다.

 

 

 

 

임도(林道)는 왔다갔다 갈지()로 길을 만들면서 서서히 고도(高度)를 높여간다. MTB를 하는 사람들이 자전거를 탄 채로 산을 오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임도는 망경대산 정상 바로 아래에까지 이어진다.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임도는 힘이 덜 드는 반면에 숲속을 걷는 산행의 재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특히 햇빛이라도 날 경우에는 최악의 코스로 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다행이도 가랑비가 내리기 때문에 땡볕에 고생할 일은 없다. 가벼운 마음으로 트레킹 하듯이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5분 정도가 지나면 시멘트포장 임도는 비포장(非鋪裝)으로 바뀐다. 그러나 비포장으로 바뀌었어도 넓이나 경사(傾斜)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방금 전에 정비한 흔적이 선명할 정도로 노면(路面)도 깔끔하다. 그만큼 임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임도가 비포장을 바뀌고 20분쯤 더 걸으면 오른편에 울창한 자작나무 숲이 나타난다. 그리고 조금 더 걸으면 이번에는 왼편에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숲이 울창하다. 1980년대 이전에는 이곳에도 탄광(炭鑛)이 존재했었다. 당시 대부분의 비경제(非經濟) 탄광들이 석탄산업합리화 사업으로 인해 문을 닫았는데 아마 폐광(廢鑛)복구사업의 일환으로 조림(造林)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작나무 숲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주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길 찾기에 주의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왼편에 보이는 오솔길이 제법 또렷하고 산악회 리본들까지 여러 개가 매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길은 수라리재에서 올라오는 **두위지맥이므로 망경대산으로 가려면 임도를 따라 곧장 진행해야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앞서가는 사람이 임도를 벗어나 왼편에 보이는 산길로 들어서는 것이 보인다. 뒤에 오는 사람들과 논의(論意) 끝에 우리는 계속해서 임도를 따르기로 한다. 진행방향을 알려주는 선두대장의 방향 지시표시지(指示標示紙)’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두위지맥 (斗圍枝脈), 백두대간 상의 함백산 아래 만항재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남으로 옥동천 북으로 지장천을 가르며, 서강과 동강이 만나는 영월군 영월읍 정양리에서 맥을 다하는 48.4km의 산줄기다. 백운산 두위봉 질운산 예미산 망경대산 응봉산 계족산이 속해 있으며 최고봉은 두위봉(1470m)이다.

 

 

 

 

주능선과 만나는 지점을 지나면서 임도의 경사(傾斜)가 약간 가팔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오르기에 거북할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20분 조금 넘게 더 걸으면 간벌지(間伐地)가 나타나고 곧이어 수라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삼거리에는 이정표가 두 개(이정표 #1 : 망경대산 휴양림 5.0Km/ 화원리, 이정표 #2 : 망경대산 삼거리 MTB코스 1.1Km)가 세워져 있는 게 특이하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망경대산의 각 포인트마다 어김없이 두 개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그중 하나는 MTB 동호인들을 위한 시설임이 분명하다.

 

 

 

 

수라삼거리에서는 이정표가 망경대산 삼거리를 가리키는 오른편 방향으로 진행한다. 간벌지를 지나 하늘을 찌를 듯이 쑥쑥 뻗어 오른 낙엽송 숲을 지나면 망경대상 정상 밑 공터이다. 수라삼거리에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이곳에서 길은 두 갈래(이정표 #1 : 망경대산 0.3Km/ 자령치 1.8Km/ 망경대산 휴양림 6.2Km, 이정표 #2 : MTB코스)로 나뉜다. 망경대산 정상은 왼편으로 가야하지만 또 하나의 산봉우리인 응봉산은 오른편 임도로 진행해야 한다. 응봉산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얘기이다.

 

 

 

 

정상아래 공터에서 정상까지는 금방이다. 5분 정도 걸으면 이르게 되는데, 임도의 상태는 의외로 좋지 않다. 아무래도 임도의 관리는 MTB코스만 하고 있는 모양이다. 망경대산의 정상은 100평도 더 되는 널따란 헬기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상의 한쪽 귀퉁이에 무인산불감시시설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예쁘장한 정상표지석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벤치 몇 개를 설치해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망경대산의 정상은 헬기장의 특징대로 사방으로 막힘이 없다. 날씨만 맑다면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眺望)을 원 없이 즐겨보련만 비가 내리는 오늘은 바로 앞의 응봉산까지도 나타나지 않는다. 서운한 마음으로 돌아서면서 눈어림으로나마 산을 그려내 본다. 북쪽의 가리왕산과 곰봉, 그 오른편에는 예미산과 질운산, 두리봉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쪽에는 단풍산과 장산, 남동쪽은 선달산이 우뚝 솟아 하늘금을 그리고 있을 것 틀림없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길에 잠깐 시야(視野)가 트인다. 구름이 감싸고 있는 산허리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정상아래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이정표가 가리키는 자령치 방향으로 진행한다. 임도를 따라 100m쯤 걸으면 산길은 임도를 벗어나 오른편 능선으로 이어진다. 물론 조금 전에 벗어난 임도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산길은 자령치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능선은 온통 잣나무군락, 새로 조림(造林)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사람의 키를 겨우 넘길 정도로 자라있다. 잣나무 숲 사이로 난 산길로 들어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망경대산 삼거리(이정표 #1 : 자령치 1.6Km/ 망경대산 정상 0.5Km, 이정표 #2 : 만경사 사거리 MTB코스 1.3Km/ 자령치)’를 만나게 된다.

 

 

 

 

 

망경대산삼거리를 지나서도 산책로 수준의 산길이 이어진다. 능선은 울창한 낙엽송 군락이 이어지다가 다시 참나무 숲으로 바뀌면서 지루하게 이어진다. 경사(傾斜)가 거의 없는 산길은 푹신푹신 한 것이 걷기에 여간 편한 게 아니지만, 별다른 볼거리가 없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흙산의 전형적인 특징(特徵)이다. 그렇다고 해서 볼거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여로와 잔대, 하늘나리 등 온갖 들꽃들이 길가에 만개(滿開)해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다녀온 금대봉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종류의 들꽃들이 무리를 지어 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망경대산과 응봉산의 특징을 들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바위는커녕 돌멩이다운 돌멩이 하나도 보기 힘들 정도라는 것이다. 한마디 전형적인 흙산(肉山)이다. 그래도 명색이 산이라는 것을 내보이기라도 하려는 듯이 자령치에 가까워지면서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그렇다고 다른 산에서와 같이 규모가 있는 바위지대는 아니다. 하도 바위를 구경하지 못하다보니 옹색하지만 너덜지대로 분류해보는 것이다. 망경대산에서 자령치까지는 2.1Km, 45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망경대산과 응봉산 사이에 있는 자령치(잿말랑)는 예밀리에서 연상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이다. 옛날에는 작은 마이크로버스가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넓은 공터로 이루어진 자령치는 자령치 삼거리라고도 불리데, 정확하게는 사거리이다. 이정표( #1 : 망경산사/ 망경대산휴양림/ 명경대산 정상 2.1Km, #2 : 궁장동 삼거리 MTB코스 1.6Km/ 망경산사)에 세 개 방향만 표기되어 있기 때문에 삼거리로 불릴 따름이지 맞은편 응봉산 방향까지 합칠 경우에는 사거리가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망경산사가 나오는데, 단청부문 인간문화재인 만봉스님을 모시는 사찰(寺刹)이라고 한다.

 

 

 

 

 

 

자령치에서 응봉산으로 가려면 눈짐작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정표에 응봉산이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응봉산으로 가는 산길은 산불감시초소 뒤로 열린다. 응봉산으로 가는 길은 자령치까지 걸었던 산길과는 딴판으로 길의 흔적이 희미하다. 아마 이 코스를 이용해서 응봉산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거기다가 태풍(颱風)에 쓰러진 나무들이 산길을 가로막고 있어 진행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쓰러진 나무를 위로 넘거나, 아래로 기면서 통과해야 하는 등 한마디로 최악의 코스이다. 난코스를 지나면 벌목(伐木)을 끝낸 개활지(開豁地)를 지나게 된다. 개활지라고 해서 걷기가 편한 것은 아니다. 벌목한 나무들을 정리를 하지 않은 탓에 쓰러진 나무들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능선을 걷는 도중에 삼각점(예미-435, 2004-재설)이 설치된 963.6봉에 오르게 되고 다시 내려서면 낙엽송지대가 이어진다. 이어지는 산길은 고만고만한 작은 봉우리를 짧게 오르내리게 된다.

 

 

 

자령치를 출발하고 40분 정도가 지나면 덕가산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이정표가 없기 때문에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곳에서 응봉산은 오른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덕가산 갈림길에서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얼마 뒤에 널따란 헬기장을 지나게 되고, 곧이어 너덜바위지대가 나타난다. 이곳 너덜지대는 아까 자령치로 오는 길에 만났던 너덜지대보다는 규모가 조금 크지만 너덜로 분류하기에는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로 옹색하기는 매 한가지이다. 자령치에서 응봉산으로 가는 길에는 심심찮게 산딸기나무가 눈에 띈다. 철이 지난 탓인지 열매는 어쩌다가 하나씩 보일 따름이지만 제철에 온다면 맛있는 산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머루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다면 추익한(秋益漢)이란 충신은 어디서 머루를 따다가 유배된 단종에게 받쳤을까? 참고로 망경대산은 추익한이라는 충신(忠臣)의 애절한 마음이 깃든 산이다. 어린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추익한은 이 산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후세(後世) 사람들이 충신의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담아 산의 이름을 망경대산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현재 영월읍 영모전에는 추익한이 단종에게 산머루를 진상하는 그림이 보관돼 있다고 한다.

 

 

 

 

 

너덜지대를 지나 고만고만한 작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고도(高度)를 높이다보면 어느덧 응봉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열 평 남짓한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은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예미-312, 2004-재설)이 지키고 있을 뿐 다른 볼거리는 없다. 주변이 참나무로 둘러싸여 있어서 조망(眺望)이 일절 트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오늘 같이 흐린 날에는 조망이 트인다고 해봐야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말이다. 자령치에서 응봉산까지는 1시간20분 정도가 걸렸다.

 

 

 

응봉산 정상에서 연하계곡으로 내려가려면 오른편으로 90도 각도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런데 산악회의 진행방향 지시지(指示紙)가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거리는데 계족산 방향으로 지시지가 깔려있는 것이 보인다. 하산지점을 바꾸었나보다 하고 정상을 내려서는데 선두대장이 산을 헤매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네비게이션(navigation)이 방향을 찾지 못해서 그런단다. 하산지점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산비탈을 옆으로 째고 본래의 등산로로 이동한다. 응봉산에서 연하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한마디로 원시(原始)의 숲이 계속된다. 머루와 다래넝쿨이 늘어진 숲은 햇빛 한 점 스며들지 못할 정도로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충신 추익한이 단종에게 바쳤던 머루를 딴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이곳에서 땄을지도 모른다. 내리막길은 비록 경사(傾斜)가 가파르지만 내려서는데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응봉산을 출발해서 20분 정도 내려서면 산길이 끝나면서 농가(農家 : 웃말)가 나타난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에 내려서게 되는데, 길 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이다. 얼핏 보기에는 고도(高度)를 낮추고 있는 오른편길이 옳은 것 같지만, 연하계곡은 오름길의 모양을 하고 있는 왼편으로 진행해야만 한다. 선두대장의 지시지를 확인하지 않고 진행한 우리는 무심코 오른편으로 진행해 버렸고, 그 덕분에 30분 가까이를 헛걸음으로 소비하고 말았다. 이 길을 연하계곡의 상류로 향하고 있기 때문에 산의 중턱에 오를 때까지는 길을 잘못 든 지도 모르고 걷게 된다.

 

 

  

 

 

 

임도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제대로 된 길로 내려서면 왼편에 광활한 고랭지 채소밭이 보인다. ‘고고산 완택산이 보이네요.’ 빗줄기가 잠깐 끊긴 틈을 이용해서 나타나는 산줄기를 보며 산의 이름까지 들먹이는 여성분에게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웬만큼 산에 이력이 난 산꾼들도 산의 형상만 보고 이름을 알아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 뒤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녀는 백두대간은 물론 웬만한 지맥들까지도 완주(完走)를 한 이력이 있는 산꾼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삼거리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커다란 음식점들이 들어선 유원지(遊園地)가 나타나면서 연하계곡이 시작된다. '연하폭포골'이라고도 하는 연하계곡은 우거진 활엽수 사이로 차디찬 계곡물이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1.5킬로미터에 이르는 계곡에는 많은 폭포(瀑布)들이 있으나 웅장하게 내리쏟아지는 폭포는 없고 아기자기하고 소담한 폭포들과 수많은 소()와 담()들이 아름다운 협곡(峽谷)을 만들어내고 있다. 계곡을 거슬러 내려오다 보면 계곡을 대표하는 폭포 몇 개를 감상할 수 있다. 먼저 작은 폭포연하 폭포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용이 승천하면서 큰 발자국을 남겼다는 용소폭포가 그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연하계곡 입구 주차장

연하계곡은 그 길이는 비록 짧지만 맑은 계류와 울창한 수목(樹木)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그 때문에 비지정관광지로 운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잠깐 짬을 내어 소()와 담()에 들어가 산행을 하면서 땀에 젖은 몸을 씻어도 괜찮을 것이다. 화장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계곡이 끝나면 제법 널따란 주차장이 보이면서 산행이 끝을 맺게 된다. 응봉산에서 날머리까지는 알바에 허비한 시간과 목욕시간을 뺄 경우 1시간 10분 정도가 걸린다.

 

                                                  

 

잣봉(537m) - 장성산(長城山, 694m)

 

산행일 : ‘13. 7. 20()

소재지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산행코스 : 문산나루터쌍쥐바위전망대장성산임도잣봉어라연어라연상회거운리 매표소(산행시간 : 4시간20)

 

함께한 산악회 : 산과 바다산악회

 

특징 : 남한강 상류인 동강(東江)의 자랑거리는 무엇보다도 구불거리는 물줄기이다. 산을 휘감고 돌아가며 흐르는 강물은 한 폭의 동양화(東洋畵)처럼 아름답다. 강줄기가 산속을 파고드는 그 수려(秀麗)한 풍광(風光)은 산 위에서 볼 때가 가장 실감이 난다. 바로 발아래에 펼쳐지는 동양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동강의 주변에는 백운산 등 전망대(展望臺)로 소문난 곳들이 많은데, 동강의 비경을 옆구리에 차고 가는 이곳 장성산과 잣봉도 그중의 하나이다. 요즘에는 래프팅(rafting)과 등산, 그리고 강변 트레킹(tracking)을 병행(竝行)해서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

 

 

산행들머리는 거운리 주차장

중앙고속도로 제천IC에서 나와 38번 국도(國道/ 태백방향)를 타고 영월까지 달린다. 서영월IC에서 빠져나와 영월읍을 통과한 후, 31번 국도(태백방향)를 타고 석항방면으로 달리다가 동강교차로(交叉路 : 영월읍 덕포리)에서 좌회전하면 섭새로 들어가는 동강터널이 나온다. 이 길(동강로)을 따라 7km쯤 들어가면 거운리(산행 종료지점)가 나오고, 이어서 장성산 아래로 뚫린 터널을 통과하면 산행이 시작되는 문산리이다.

 

 

 

장성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문산교()에서 거운리 방향으로 150m쯤 떨어진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열린다. 도로에서 산으로 가려면 냇물을 건너야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냇가로 내려갈 수 있도록 철()계단이 놓여있고, 개울에는 친절하게도 징검다리까지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화강암을 사각(四角)기둥 모양으로 깎아 놓은 징검다리는, 비록 투박하지만 큰 장마에도 끄떡없을 정도로 듬직하다.

 

 

 

징검다리를 건너 맞은편 산비탈에 놓인 철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의 사면(斜面)을 옆으로 째면서 10분쯤 오르면, 산길은 오른편으로 크게 방향을 튼다. 깎아지른 절벽인 뼝대(‘바위로 이루어진 높고 큰 낭떠러지의 강원도 사투리)가 앞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뼝대의 아래를 흐르는 동강(東江)의 물줄기가 장마로 인해 제법 거센데도 불구하고, 넘실대는 강물에는 꽤나 많은 고무보트들이 떠다니고 있다. 싱그럽기만 한 그들의 함성(喊聲)에 산길을 걷는 나까지도 활기가 차오른다. 강 건너 주차장에는 아침나절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관광버스들이 주차되어 있다. 동강의 새로운 명품 브랜드(brand)로 정착된 래프팅 (Rafting)’을 즐기기 위해 찾아온 것이리라. 물론 나와 함께 온 산악회(산과 바다)도 나를 위시한 다섯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래프팅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뼝대 위로 이어지는 길은 하늘길이다. 왼편 발아래에는 뚝 끊어진 절벽(絶壁)이 날카롭게 서있고, 그 아래를 흐르는 강물은 유유히 휘돌아나간다. 절벽과 강, 그리고 건너편 마을이 한데 어울리며 환상적인 하모니(harmony)를 빚어내고 있다. 갑자기 불어오는 강바람 한줄기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어르듯 식혀주며 지나간다. 구태여 급하게 걸을 필요가 없는 능선길이다.

 

 

 

뼝대 위로 난 산길은 왼편이 날카로운 절벽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위험할 것 같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친절하게도 영월군청에서 절벽 쪽에다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로프를 넘어가지 않은 이상에는 사고가 날 염려가 없는 것이다. 안전로프 사이로 간간히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동강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산과 산 사이를 헤집으며 흐르는 물줄기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듯한 형상(蛇行川)이다.

 

 

 

 

뼝대 위로 올라서서 30분 정도를 걸으면 쌍쥐바위전망대이다. 전망대에는 울타리를 두른 자그마한 목조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에 서면 먼저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부터 든다. 문산리 마을을 싸고도는 둥그런 강줄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풍광(風光)이 한마디로 환상적인 것이다. 거기다가 강물에 점점이 떠다니는 고무보트들, 동강이 아니면 결코 그려낼 수 없는 그림일 것이다. 강과 산이 만들어 놓은 최고의 풍경(風景)이 바로 이곳에 있다. 참고로 쌍쥐바위는 전망대(展望臺)일대 바위들의 생김새 때문에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강 건너 문산리 마을에서 보면 이곳 절벽이 두 마리의 쥐 모양으로 나타나는데, 하나는 쥐가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이고, 또 다른 하나는 머리를 문산나루 쪽으로 향하고 동강 물을 마시는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쌍쥐바위 전망대 근처(100m 거리)에서 길이 둘로 나뉜다(이졍표 : 문산21.0Km/ 문산나루터 1.2Km). 오른편은 문산2리로 내려가는 길이니 장성산으로 가려면 당연히 능선을 따라 곧장 진행해야 한다. 갈림길을 지나면 또 다시 오르막길이 나타난다. 이곳부터 장성산까지의 구간이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다. 산길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인데다, 동강의 물줄기까지도 짙은 참나무 숲 뒤로 숨으면서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갈수록 걸음걸이가 더뎌지기 시작한다. 무더운 여름날에 바람 한 점 없는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제 속도(速度)를 내는 것이 차라리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전망대를 출발해 가파른 오르막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TV안테나가 설치된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이겠거니 하지만 이곳은 정상이 아니다. 건너편에 이보다 조금 더 높은 봉우리가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 바라보이는 봉우리도 장성산 정상은 아니었다. 밋밋한 무명봉(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은 멋진 老松山頂을 장식하고 있다)에 올라서면 진행방향에 또 하나의 봉우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골까지도 제법 깊다. 그만큼 힘이 든다는 얘기이다.

 

 

 

 

 

눈요깃거리 하나 없는 산길에서 무더위와 싸우다보면 어느덧 장성산이 그 정수리를 드러낸다. ‘쌍쥐바위 전망대에서 한 시간, 산행을 시작한지는 1시간45분이 지났다. 정상에는 말뚝 모양의 정상표지석과 삼각점(정선 448, 2004년 복구), 그리고 이정표(쌍쥐바위전망대 1.6km, 레프팅출발지/ 잣봉 1.5km, 어라연전망대)가 세워져있다.

 

 

 

 

 

장성산 정상은 잡목(雜木)을 베어내고 깨끗하게 정리를 해놓은 덕분에 조망(眺望)이 시원스럽다. 서쪽에 보이는 접산에서는 풍력발전기(風力發電機)가 커다란 날개를 힘차게 돌리고 있고, 남쪽으로는 영월 뒷산인 봉래산과 천문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하나 아쉬운 것은 동강의 물줄기가 숲에 가려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 너머에 펼쳐지는 고고산과 완택산, 그리고 계족산 등이 볼만한데도 말이다.

 

 

 

 

장성산에서 잣봉으로 가는 길은 초반에는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두 산의 고도(高度) 차이가 150m나 되니 별 수 없었을 것이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좋은 점도 하나는 있다. 가끔 숲이 열리면서 조망(眺望)이 트이기 때문이다. 완택산과 고고산, 그리고 계족산과 응봉산 등 강원의 고산준령(高山峻嶺)들이 첩첩이 쌓이면서 산그리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광경이 강원도의 진면목인 것이다.

 

 

 

가파른 구간이 지나면서 산은 그 모습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온통 참나무로 둘러싸여있던 능선이 이번에는 소나무 일색으로 변해있는 것이다. 길가에 의미 없는 이정표 두 곳(#1 : 잣봉 0.7km/ 장성산 0.8km, #2 : 잣봉 0.5km/ 장성산 1.0km)을 지나면 안부에서 임도(林道)를 만나게 된다. 거운리와 어라연의 위편에 있는 큰마차마을을 잇는 임도이다.

 

 

 

 

 

임도에는 이정표가 두 개다. 하나(장성산 정상 1.1km/ 잣봉 정상 0.4km/ 거운리 0.9km/ 큰마차 0.7km)는 잣봉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져 있고, 다른 하나(장성산 1.1km, 쌍쥐바위전망대길 2.6km)는 장성산 방향 들머리에 잣봉 등산안내도와 함께 세워져 있는데, 이 이정표에는 장성산 방향만 표기를 해 놓았다. 두 번째의 이정표가 잘못된 것 같이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다. 영월군에서 이정표를 세우면서 모든 이정표마다 거운리를 출발해서 가고자하는 목적지까지의 거리만 표시해 놓고, 반대방향은 표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방향인 문산나루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므로, 영월군청에서 조금 더 심사숙고(深思熟考)해 주길 바래본다. 임도에서 오른편으로 내려갈 경우 거운리로 내려갈 수 있으나, 잣봉 구경을 포기하고 내려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인 어라연과 삼선암은 잣봉을 오르지 않고서는 결코 구경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임도에서 잣봉 정상은 400m, 느긋하게 걸어도 10분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거리도 멀지 않을뿐더러 경사(傾斜)까지도 완만(緩慢)하기 때문이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녹음을 즐기면서 걷다보면 금방 잣봉의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제법 너른 공터로 이루어진 잣봉 정상은 아까 장성산과 마찬가지로 삼각점과 말뚝 모양의 정상표지석이 지키고 있고, 특이하게도 이정표 두 개(#1 : 장성산 1.4km, 쌍쥐바위전망대 3.0km/ 어라연전망대 1.1km/ 어라연, #2 : 어라연 1.0km / 마차 1.4km)가 세워져 있다. 잣봉 정상도 조망(眺望)이 뛰어난 편이다. 북쪽으로 잣봉의 모산(母山)인 장성산과 동쪽으로 고고산으로 이어지는 산릉, 그리고 남쪽으로는 완택산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잣봉에서 목적지인 거운리로 가는 길은 두 가지다. 잣봉 능선을 타고 작은마차마을로 해서 내려가는 산길과, 삼선암 바로 앞까지 내려가 강변을 따라 빙 둘러가는 길이다.

 

 

 

잣봉 정상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어라연 방향으로 내려선다. 동강이 자랑하는 절경을 놓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능선에서 어라연을 바라보는 눈요기만으로도 괜찮다면 곧장 마차리 방향으로 내려가도 되겠지만, 그럴 수야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내려가는 길의 초반은 완만한 능선으로 시작된다. 8분쯤 내려갔을까 갑자기 시야(視野)가 트이면서 동강의 풍광(風光)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어라연의 한가운데를 상선암이 차지하고 있는데, 그 옆으로 좁쌀만한 래프팅 보트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전망대를 지나면 길은 급격하게 가팔라진다. 조금은 조심스러운 구간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길 양편에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갈지()자를 만들면서 고도(高度)를 낮추는 내리막길을 따라 20분 가까이 내려가면 삼거리(이정표 : 전망대 0.1Km/ 어라연 0.1Km/ 잣봉 1.0Km)가 나온다. 굳이 이곳까지 온 이유가 어라연과 삼선암이라면 능선의 끝자락을 향해 조금 더 걸어야 한다. 동강의 물줄기는 이 산줄기에 막혀 어라연 직전에서 180도를 꺾어 급하게 휘돈다. 이제 막 급커브를 튼 물줄기 한가운데에 3개의 바위섬으로 이루어진 삼선암이 떠있다.  

 

 

 

삼거리에서 100m가량 더 나아가면 능선의 끝자락 어림에 있는 전망대에 이르게 된다. 전망대에 서면 '동강의 백미(白眉)'로 불리는 **어라연(魚羅淵)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으로 둘러싸인 강물 위에 잘생긴 바위섬이 떠 있다. 동강은 휘돌아 흐르는 물돌이에 의해 강 중간에다 세 개의 작은 섬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기암(奇巖)으로 이루어진 작은 섬들은 머리 위에 소나무 관을 쓴 채 의젓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강의 상부, 중부, 하부에 3개의 소()가 형성되어 있고 기암괴석(奇巖怪石)들이 총총히 서 있는 형상은 바라보는 각도(角度)에 따라서 그 모양들이 천태만상(千態萬象)으로 달리 보인다.

(**) 어라연(魚羅淵 : 명승 제14), 동강 최고의 비경(秘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어라연(魚羅淵)이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고기가 비단결 같이 떠오르는 연못이라는 이름은 아무 곳에나 붙일 수 있는 흔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억겁(億劫)의 세월을 머금은 동강은 주변의 산을 깎아내며 절벽(絶壁)을 만들고, 강의 한 가운데에다 바위 봉우리를 만들어 놓았다. 삼선암(상선·중선·하선)과 뼝대(絶壁 : 강원도 사투리로서 바위로 이루어진 높고 큰 낭떠러지), 옥순봉 등이 바로 그것이다. 거기에다 새하얀 모래톱이 어우러지는 풍광(風光)은 가히 한 폭의 산수화(山水畵)가 아닐 수 없다. 예술에 문외한(門外漢)들까지도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것이다.

 

 

 

 

어라연 일대의 수직절벽(垂直絶壁)은 강물의 침식(浸蝕)에 의해 생긴 것으로 다른 강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협곡(峽谷)을 형성하고 있다. 이를 일러 감입곡류하천(嵌入曲流河川)이라고 부른다. 혹시라도 아이들과 함께 왔다면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주변의 경관(景觀)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어라연 일원은 하천 지형(地形)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천혜의 자연학습장이니까 말이다.

* 감입 곡류 하천(嵌入 曲流 河川, incised meander), 감입사행천(嵌入蛇行川)이라고도 하며, 산간 지역의 골짜기를 깊이 파면서 흐르는 곡류 하천을 말한다. 이는 하천이 지반의 융기(隆起)에 의해 침식작용이 부활해지면서, 하천의 하각작용(下刻作用)이 강렬하게 작용할 때 나타난다. 즉 원래의 유로를 유지하면서 더욱 깊은 협곡(峽谷)을 만들며 곡류(曲流)한다. 따라서 길이가 직선거리보다 매우 긴 것이 특징이다. 감입 곡류 하천은 고위 평탄면과 함께 과거 한반도 지형이 융기(隆起)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 지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 산행을 이어간다.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내려서면 금방 강변(江邊)이다. 강변에 내려서서는 줄곧 강줄기를 따라간다. 강변을 따라 걷는 일은 마냥 행복하다. ‘산 좋고 물 좋고, 그 가운데에 선 나 또한 좋기만 한데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 물이 맑지를 않는 것이다. 옛 선비들은 청산(靑山), 옥수(玉水), 명경(明鏡)이라는 세 단어를 사용하여 시를 많이 지었다. 물이 하도 맑아, 푸른 산이 거울처럼 비추인다. 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 얘기인가. 그러나 오늘 본 동강의 물은 아쉽게도 탁했다. 비가 온 탓이려니 하기에는 무언가 꺼림칙할 정도로 노란색과 초록색을 합쳐 놓은 것 같이 탁해있는 것이다. 언젠가 영월에 사시는 분에게서 동강의 물이 상류에 있는 도암댐으로 인해 오염(汚染)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은 도암댐의 오염된 물을 장마 때에 방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혹시라도 그 영향으로 강물이 탁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동강물은 결코 오염되어서는 안 된다. 자주 물에 빠져야하는 래프팅 중에는 물을 들이키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어라연에서부터는 동강 물길을 따라 내려가는 트레킹 코스다. 강변을 따란 난 길은 처음에는 산비탈을 옆으로 째면서 이어지다가 이내 자갈이 깔린 순수한 강변길을 따르게 된다. 길가에 이번 장마에 떠내려 온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여있는 것을 보면, 폭우(暴雨)가 아니더라도 장마 때에 이 코스를 이용하는 것은 위험할 것 같다. 25분쯤 걸으면 된꼬까리 여울이 나오고, 곧이어 삼거리(이정표 : 만지/ 어라연 1.0Km/ 등산로 아님)가 나타난다. 물살이 세다는 된꼬까리 여울을 지나면 과거 동강댐 예정지로 거론됐던 만지(滿池). 만지는 '제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가득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은 옛날 목재(木材)를 운반하던 떼꾼들이 잠시 쉬어가던 곳이었다. ‘전산옥(全山玉)이라는 주막(酒幕)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산옥은 1970년대 초반까지 이곳에서 주막을 지키던 주모(酒母)의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비록 정선 아리랑가락으로만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당시에는 동강 떼꾼들의 애환(哀歡)을 달래주던 곳이었다. 이곳을 지키던 전산옥이란 주모의 이야기는 가히 전설(傳說)이었다고 한다. 정선 아리랑에는 '황새여울 된꼬까리 다 지났으니 만지산 전산옥아 술상차려 놓게'라는 구절(句節)이 있다. 뗏목이 위험한 곳을 다 지났으니, 이제 전산옥이란 주막에서 술 마실 일만 남았다는 얘기이다. 옛날 떼꾼들은 정선이나 평창에서 나무를 베어 뗏목을 엮은 뒤 서울 마포까지 원목을 팔러 다녔다. 강줄기마다 주막이 있었지만 가장 인기 있던 곳이 만지나루 주막이었던가 보다. 구성진 아리랑 가락과 웃음으로 떼꾼을 홀렸을 법한 전산옥 때문에 떼꾼들은 나무를 팔아 번 돈을 모두 주막집에 쏟아 붓고, 집에 갈 때는 결국 고등어 한손 살 돈밖에 없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이란 그저 아리다운 여자의 애교에 안 넘어가고는 못 배겼나 보다.

 

 

 

 

빈터만 남은 전산옥터근처에서부터 강변길은 차량이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넓어지면서 곧이어 오른편 언덕위에 자리 잡은 어라연상회가 나타난다. 전산옥이라는 아리따운 주모(酒母)는 아닐망정 여염집 아낙네들이 파전 등 안주거리에다 술과 음료수를 팔고 있으니, 한번쯤 들러보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꿀맛 같은 동동주로 낭만을 즐기기에는 너무 혼잡스럽다는 것이다. 래프팅을 하면서 중간 쉼터로 이용하고 있는 탓에, 래프팅의 전성기인 여름철에는 몰려드는 래프팅 손님들로 인해 발을 디딜 틈도 없는 것이다. 웃고 떠드느라 정신없는 저 사람들은 과연 전산옥이라는 주막을 알고나 있을지 모르겠다.

 

 

 

 

어라연상회에서 거운리까지는 아직도 한 시간 가까이를 더 걸어야만 한다. 이곳 동강 일대에는 굽이치는 강물이 급류(急流)를 형성하는 곳이 더러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심심산골에서 자른 나무로 뗏목을 엮어서, 저 물길로 내려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뗏목은 보이지 않고, 뗏꾼들이 불렀다는 노랫가락도 들을 수 없다. 대신 그 자리를 래프팅 보트들이 떠다니고, 인솔자의 구령에 맞춰 내지르는 젊은이들의 함성소리가 차지하고 있다. 강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지는 래프팅마니아들의 함성소리를 벗 삼아 20분 넘게 걷고 있는데, 임도가 난데없이 다시 산으로 향하고 있다. 집사람의 얼굴표정이 변하는 순간이다. 집사람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앞서가던 일행께서 이 길이 맞느냐고 물어오는 것을 보면 그도 역시 죽을 맛인 것이 뻔하다. 하긴 이미 다리가 풀린 상태에서 다시 산등성이로 오르는 길을 보고 얼굴표정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차라리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산등성이를 넘으면 화장실을 갖춘 삼거리(이정표 : 잣봉 2.4km, 마차 1.4km/ 어라연 2.4km, 만지 1.6km)가 나타난다. 오른편에 보이는 길은 잣봉에서 마차마을을 거쳐 내려오는 길이다.

 

 

 

 

 

산행날머리는 거운리 동강탐방안내소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푸른하늘 펜션을 지나 또 다시 삼거리(이정표 : 잣봉 2.5km, 어라연 2.8km)가 나온다. 그런데 삼거리에 세워진 이정표의 거리표시가 좀 이상하다. 조금 전에 지나왔던 삼거리의 이정표에는 어라연까지의 거리와 잣봉까지의 거리가 같았었데, 갑자기 어라연까지의 거리가 0.3Km가 늘어나 버린 것이다. 잣봉 삼거리에서 10분쯤 더 걸으면 산행이 종료되는 거운리 동강탐방안내소이다.

 

 

 

 

 

 

에필로그(epilogue), 산행을 함께한 산과 바다 산악회는 지난해 6월 백운산 산행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이다. ‘OK 마운틴의 검색창에 뜬 산악회의 이름이 생소했었는데, 막상 찾아와보니 지난해에 함께 산행을 했던 적이 있었던 산악회인 것이다. 비록 산악회 이름은 와일드로즈에서 산과 바다로 바뀌었지만, 영리(營利)를 떠난 듯 보이던 산악회의 이미지는 하나도 바뀐 게 없었다. 오리백숙에 이어 나오는 수박 후식은 보통의 안내산악회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늦게 도착해서 미안해하는 내 곁에 앉아 술잔을 권해준 산악회장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해본다.

 

대덕산(大德山, 1,307.1m)-금대봉(金臺峰, 1418.1m)

 

산행일 : ‘13. 6. 22(토)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태백시 삼수동, 삼척시 하장면의 경계

산행코스 : 두문동재(1.4Km)→금대봉(1.1Km)→고목나무샘(2.5Km)→분주령(1.4Km)→대덕산야생화군락(1.4Km)→분주골(1Km)→검룡소 갈림길(0.6Km)→검룡소(1.4Km)→검룡소주차장(산행시간 : 4시간30분)

함께한 산악회 : 피닉스산악회

 

특징 : 금대봉과 대덕산은 밋밋한 능선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흙산(肉山)이다. 따라서 산세(山勢)는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다. 그러나 두 산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는 다른 유명산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국내 최대로 알려진 야생화군락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들꽃들을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환경부가 생태계 보전지역으로 지정(1993년)한 금대봉에서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산릉 동쪽 일원에는 1000종류에 가까운 식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여름철이면 이곳에서 야생화(野生花)들이 ‘꽃 잔치’를 연다, 복주머니란, 노랑무늬붓꽃 등 이름마저 예쁜 수많은 들꽃들이 만들어내는 천상화원(天上花園)을 구경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있는 것이다.

 

 

산행들머리는 **두문동재(해발 1,268m)

중부내륙고속도로(출구 : 제천 I.C)와 38번 국도를 이용하여 고한읍(정선군)까지 온 후에 고한읍에서 태백시로 넘어가는 ‘두문동재 터널’ 바로 직전에서 오른편으로 빠져나와 옛(舊)도로를 따라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4Km정도 올라가면 두문동재를 만나게 된다. 싸리재라고도 불리는 두문동재는 요 아래에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는 정선과 태백을 잇는 유일한 도로(38번 국도)였다.

(**) 두문동재는 정상의 해발이 1,268m로, 상동읍(영월군)과 고한읍(정선군)을 잇는 만항재(1,330m)에 이어 우리나라 안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고갯길이다, 원래 두문동이란 지명(地名)은 이성계의 개국(開國 : 조선)에 반대하던 고려의 유신들이 은거(隱居)했던 곳(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된다. 그들이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그런데 개풍군에 있는 광덕산 자락에 있어야할 두문동이 어떤 연유로 정선 땅에도 있는 것일까? 일설(一說)에 의하면 당시 이성계가 두문동에 불을 질러 고려의 충신들을 몰살시킬 때, 마지막 살아남은 7인이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따라 이곳으로 흘러들었다고 한다.

 

두문동재에서 금대봉으로 연결된 임도는 차량이 통행을 못하도록 차단기(遮斷機)로 막아놓았다. 차단기의 옆을 지나 임도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두문동재에 올라서면 삼엄하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들꽃을 구경하려온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어느 한사람도 섣부르게 차단기를 넘어가지 못한다.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환경감시요원들의 통제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internet)으로 신청한 사람들에 한하여 태그(Tag)를 나누어 주는데, 이 태그를 목에 걸지 않으면 환경감시초소를 통과할 수가 없다. 원래는 신청한 사람과 입산(入山)하는 사람들이 동일인(同一人)인지를 신분증으로 확인하다고 알려졌는데, 확인철차가 번거로웠던지 신분증 확인은 하지 않고, 신청한 사람들 숫자에 맞게 태그를 나누어 주고 있다. 이 태그는 입산(入山)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산행을 하는 동안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감시요원들이 태그가 없는 사람들은 되돌려 보내기 때문이다. 이런 철저한 관리 덕분으로 대덕산 일원의 야생화군락지는 아직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었다.

 

 

 

금대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차량이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널따란 임도이다. 평소에는 감시소 차량들이 통행을 하는 모양으로 길바닥에 자동차가 다녔던 자국이 역력하다. 때문에 경사(傾斜)가 거의 없어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오를 수가 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 마루금과 겹치는 이 능선은 ‘불바래기 능선’으로 불린다. 바래기는 ‘불을 바라본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화전민(火田民들)이 밭을 일구기 위해서 산 아래에서 불을 놓고 이곳에서 기다리다 맞불을 놓아 산불을 진화(鎭火)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금대봉까지의 길가는 기대와는 달리 평범하다. 오늘 산행의 주재가 ‘야생화 트레킹’인데도 그렇게도 소문이 자자하던 야생화들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넓고 부드러운 산길이니, 구태여 땀 흘릴 필요도 없이 천천히 걸으며 길가의 야생화와 눈만 맞추면 되는데도 말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딱 두 가지, 아까 들머리의 안내판에서 본 범의꼬리와 애기똥풀꽃인지 양지꽃인지 구분이 안 되는 노랑꽃들이 가끔 눈에 뜨일 따름이다.

 

 

임도에 들어선지 20분쯤 지나면 길이 두 갈래(이정표 : 금대봉 0.5Km/ 두문동재 0.8Km/ 삼수령 8.1Km)로 나뉜다. 오른편으로 오솔길이 열리는 것이다. ‘야생화 보호구역’임을 알리는 입간판이 서있는 오른쪽 숲길로 들어서면 금대봉으로 올라서게 된다. 구태여 힘들게 금대봉까지 올라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가도 되지만, 시간에 쫒기지 않을 정도라면 금대봉에 올라볼 것을 권하고 싶다. 경사(傾斜)가 가파르지 않은 오르막길이라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뿐더러,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에서는 또 다른 야생화를 만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두 길은 금대봉 너머의 임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금대봉으로 오르는 오솔길은 온통 신갈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범의꼬리가 주류를 이루는 들꽃들 사이로 난 외길을 따라 10분 조금 넘게 오르면 금대봉 정상이다.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너덜샘을 품고 있다고 해서 ‘양강발원봉’이라고도 불리는 금대봉은 조망(眺望)은 보잘 것이 없다. 주변을 온통 잡목(雜木)들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높디높은 태백의 준령(峻嶺)들도 겨우 머리 끄트머리만 빼꼼히 내밀고 있을 따름이다.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정상의 한가운데에는 작고 귀여운 정상표지석이 놓여 있고, 그 뒤를 거리표시가 없는 이정표(분주령, 대덕산/ 매봉산, 피재)가 지키고 있다. 함께 달려오던 백두대간은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갈려나간다. ‘야생화 트레킹’이 목적인 사람들은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서면 된다. 참고로 금대봉이라는 이름은 신라 선덕왕 때 지장율사가 함백산 북서쪽 사면(斜面)에 정암사(淨巖寺)를 창건하면서 세운 금탑, 은탑에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금대봉에서 임도로 내려서는 내리막길은 제법 경사(傾斜)가 가파르다. 거기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흙길이 무척 미끄럽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한 구간이다. 10분 정도가 지나면 다시 만나게 되는 임도는 오늘 걷게 되는 트레킹(trekking)구간에서 첫손에 꼽히는 야생화 군락(群落)이다. 마치 일부러 꾸며놓은 아담한 화단을 연상시킨다. 모퉁이를 돌아 임도에 내려서자 길섶에는 아직도 꽃봉오리를 열지 않은 노루오줌과 하얀 꿩의다리가 얼굴을 내민다. 마타리꽃와 개미취 등 이름 모를 수많은 들꽃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선보이느라 여념이 없다. 함께 걷는 사람들의 손길이 바빠지는 구간이다. 다들 카메라에다 꽃들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산길을 걷다보면 ‘범의꼬리’ 군락(群落)을 자주 만나게 된다. 하나 아쉬운 점은 범의꼬리 외에는 군락을 이루고 있는 들꽃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개체수가 적기 때문에 아름다움이 덜하게 느껴진다. 들꽃들은 무리를 지어 군락을 이룰 때,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루기 때문이다.

 

 

 

 

 

들꽃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느긋하게 걷다보면 길은 임도를 버리고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산길은 능선을 벗어나 산의 사면(斜面)을 자르며 조금씩 아래로 고도(高度)를 낮추면서 이어진다. 이곳의 흙길도 역시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기 때문에 무척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내려서다보면 얼마 안 있어 ‘고목나무샘’에 이르게 된다. 고목나무샘은 한강 발원지 중 하나로 큰 신갈나무 아래에 있는 작은 샘이다. 갈수기(渴水期)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이 흘러나오지만 냉큼 마시기에는 약간 꺼림칙하다. 샘이 웅덩이로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떠먹을 경우 흙이 함께 따라 올라올 것 같아서이다. 고목나무 아래서 솟아난 샘물은 이내 땅속으로 숨었다가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에서 다시 솟는다고 한다.

 

 

 

 

 

고목나무샘을 지나면 ‘벌밭등’으로 불리는 능선이다. 금대봉과 분주령 사이의 능선을 일컫는데, 꽃길의 중간에서 벌을 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벌밭등’ 능선도 금대봉 하산길과 마찬가지로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꼭 두 곳뿐만이 아니라 산 전체가 습기가 많은 산인 것 같다. 능선의 최상부에서 샘물이 솟아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습기가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산야초(山野草)들이 잘 자라났을 것이고, 거기다 오랫동안 인적이 끊기면서 야생화군락으로까지 발전했을 것이다.

 

 

 

 

고목나무샘에서 내려오면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이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삼림지대가 나온다. 이깔나무는 편백나무에 못지않게 피톤치드(Phyton Cide : 식물이 만들어 내는 살균물질)를 많이 분비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침엽수(針葉樹)의 아래에서는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예외도 있는 모양이다. 혹쐐기풀과 고사리 종류인 거대한 관중(貫衆)이 원시(原始)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분주령으로 향하는 능선은 정선과 태백의 경계선이다. 왼편이 정선 땅이고 태백시는 오른편에 있다. 오른쪽 태백 방향의 땅이 생태보전지구로 지정되어 출입이 엄격하게 금지(禁止)되고 있는데, 그 넓이가 무려 120만평에 이른다고 한다. 이러한 보호 덕분에 사람의 손길을 피한 들꽃들이 산길의 주변에 마음 놓고 자리를 잡았다. 노루삼과 산괴불주머니, 그리고 개미취 등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거기다가 조금만 눈을 돌려도 참나물과 취나물 등 산나물들이 널려있다. 아무래도 습기 많은 땅이 산나물에게는 천국인 모양이다.

 

 

 

 

고목나무샘을 출발해서 50분 정도가 지나면 분주령에 도착한다. 꽃구경을 하면서 서서히 걸어도 두문동재에서 이곳까지 2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약 4.8㎞)이다. 확 트인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분주령에 들어서면 우선 한약방(韓藥房)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온통 인진쑥으로 뒤덮인 탓에 향이 짙어서 마치 한약방 들어온 느낌이 드는 것이다. 대신 들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꽃구경 왔는데 막상 꽃은 눈에 띄지 않네요.’ 집사람에게 하는 넋두리를 환경감시요원이 들었나보다. 봄꽃이 지고 여름꽃이 피기 시작하는 시기라서 그런다면서, 길게 자란 풀을 헤쳐 준다. 숨어있던 짚신나물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그 옆에는 산딸기 한 알이 빨갛게 무르익어가고 있다. 분주령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맞은편 산릉(山稜)으로 들어서는 길이 대덕산으로 가는 길이고, 힘이 부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길로 내려서면 된다. 대덕산을 거치지 않고 곧장 검룡소로 내려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널따란 초원지대(草原地帶)인 분주령은 옛날 태백과 정선지역을 오고가는 고갯마루였다고 한다. 산골사람들이 소금과 산나물, 그리고 해산물 등을 지고 ‘분주하게’ 다닌 길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산부추가 많아 분주령이 됐다고도 한다.

 

 

 

 

분주령에서 대덕산으로 가는 길은 완만한 오르막길로 시작된다. 맞은편에 보이는 1215봉을 오르지 않고 오른편으로 우회(迂廻)하면서 산의 사면(斜面)을 째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분주령을 지나 오른쪽 낙엽송(일본이깔나무) 숲으로 들어가면 취들의 천국이다. 수리취에 참취, 그리고 단풍취들이 군락을 이루고, 심지어는 각시취까지 꽃봉우리를 활짝 열고 있다. 분주령에서 진행할 방향을 정하려고 이정표를 바라보면 이상한 점이 눈에 띈다. 이정표에 거리표시가 없는 것이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산행을 하면서 만난 이정표들은 하나같이 거리표시가 없다. 그렇다면 얼마나 떨어졌는지는 어떻게 알아내야 할까? 이럴 때는 이정표 옆에 세워진 ‘산행안내도’를 보면 된다. 안내도에 현재의 위치와 함께 각 구간마다의 거리표시가 깔끔하게 표기(標記)되어 있기 때문이다.

 

 

 

 

 

분주령을 지나 대덕산으로 향하면 두 군데에서 널따란 초원(草原)을 만나게 된다. ‘한약방 차려도 되겠네요.’ 집사람의 말마따나 한약방을 차려도 충분할 정도로 인진쑥이 사방에 널려있다. 눈이 내리는 한겨울에도 죽지 않는다고 해서 ‘사철쑥’이라고도 불리는 인진쑥은 피를 맑게 하고, 어혈(瘀血)을 풀어주는데 뛰어난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요즘 인진쑥을 이용해서 만든 건강식품들이 머리에 떠올랐던 모양이다. 그러나 인진쑥으로 뒤덮인 초원에도 아쉬운 점은 하나 있다. 들꽃들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인진쑥에 치여 들꽃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지, 아니면 웃자란 쑥에 가려 눈에 띄지 않는지는 모르겠다.

 

 

 

 

 

 

 

 

분주령을 출발한지 50분 정도가 지나면 대덕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길가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벌개취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오르다보면 널따란 초원(草原)이 나타난다.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인 대덕산 정상에 올라선 것이다. 광활한 초원지대인 정상의 한가운데에는 금대봉과 마찬가지로 작고 귀여운 정상표지석이 앉아있다. 초원에는 산마루를 따라 온갖 들꽃들이 자라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야생화가 앞 다퉈 꽃망울을 터뜨리는 이곳은 ‘비밀의 화원’으로 불린다. 대덕산 정상은 조망(眺望) 또한 뛰어나다. 백두대간 줄기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저 멀리 은대봉과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다는 함백산의 산줄기가 겹겹이 병풍을 이루고 있다. 참고로 대덕산의 정상에는 고려 유신들이 세운 사직단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다. 아마 두문동재와 연관된 얘기일 것이다.

 

 

 

정상을 이루고 있는 언덕에 오르면 탄성(歎聲)이 터져 나온다. 언덕을 온통 범의꼬리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민들레와 마타리꽃, 개미취, 둥근이질풀꽃 등 다른 들꽃들도 섞여있지만 그 수가 드물기 때문에 온통 범의꼬리만 눈에 들어올 따름이다. 범의꼬리 꽃으로 뒤덮인 산마루가 마치 눈이 내린 듯이 하얗게 변해 있다. 바람에 흔들리며 낄낄거리는 범꼬리 군락과 웅장한 산세(山勢)가 어울려 장관이다. 사방으로 조망(眺望)이 열리면서 첩첩이 쌓여있는 산릉들과 들꽃들이 한 폭의 잘 그린 수채화(水彩畵)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대덕산의 산등성이 길은 누가 뭐래도 '꽃의 길'이다. 사람들이 보기 위해서 일부러 가꾼 꽃밭보다 더 화려할 정도다. 각양각색의 들꽃들이 화려하게 피어난 광경을 보고도 장관(壯觀)이라며 탄성을 지르지 않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 꽃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앞 다퉈 나름대로의 꽃향기를 내뿜고 있다. '천상화원(天上花園)'으로 불리어도 모자람이 없는 야생화(野生花)들의 천국이다.

 

 

 

 

 

 

대덕산 정상은 들꽃 외에도 나비가 지천이다. 들꽃 사이로 난 외줄기 길을 따르다보면 하늘말나리와 개미취, 전호 등 이름도 다 기억 못할 만큼 많은 종류의 들꽃들이 사방에 널려있다. 그런데 그 꽃들 위에 예쁘장한 나비들이 앉아 있는 풍경(風景)을 어떤 글로서 표현해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백 퍼센트(percent)를 다 표현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다들 꽃구경 삼매경(三昧境)에 푹 빠져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에 맞추다보니 아쉬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다. 영원한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만드는 아쉬운 순간이다.

 

 

 

조금이라도 더 천상(天上)에 머무르고 싶은 아쉬운 마음을 접고 하산을 서두른다. 들꽃들과 이별을 고하며 발길을 돌리는데 아쉬운 내 맘을 아는 양 길가에 곱게 핀 초롱꽃들이 배웅을 해준다. 하산은 남쪽 능선을 따른다. 내려서는 능선에도 들꽃들은 여전하다.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10분 조금 넘게 내려서다보면 널따란 초원(草原)을 만나게 되고, 산길은 이곳에서 검룡소를 향하여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검룡소로 향하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길로 시작된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 가파름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경사(傾斜)가 조금만 심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길 양편에 로프로 난간을 만들어서, 내려서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아까 분주령에서 헤어졌던 ‘검룡소 갈림길’과 다시 만나는 삼거리까지의 20분 조금 못되는 구간은 특별한 볼거리는 없다. 숲으로 우거져 조망(眺望)도 트이지 않을뿐더러 들꽃도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구간에서는 낙엽송(일본이깔나무) 군락 아래를 지나게 된다. 당연히 심호흡(深呼吸)으로 눈요기를 대신해 본다. 자신도 모르게 깊고 크게 숨을 들이킨다. 건강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 Cide)가 온몸으로 퍼지며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삼거리에서 검룡소로 들어가는 갈림길까지는 1Km, 길이 반반하면서도 넓기 때문에 20분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산길은 오른편에 분주령골을 끼고 이어지는데, 아래로 내려갈수록 물소리가 거세진다. 계곡으로 내려가 세수라도 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계곡이 산길보다 한참이나 더 낮은 곳에서 흐르기 때문이다. 청량한 물소리를 친구삼아 산을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검룡소 갈림길’에 이르게 된다.

 

 

 

 

검룡소는 갈림길에서 오른편에 보이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검룡소로 들어가는 길은 깔끔하게 잘 정비가 되어있다. 두세 명이 함께 걸어도 충분할 정도로 넓고 반반한데다, 곳곳에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는 그네까지 만들어 어린이들의 동심(童心)을 붙잡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가는 길에 잘 익은 산딸기 몇 알 따먹다보면 10분 후에는 검룡소에 대한 안내판과 함께 나무데크로 만들어진 다리를 만나게 된다. 검룡소에 도착한 것이다.

 

 

 

 

 

 

나무데크 다리를 건너면 드디어 **검룡소(檢龍沼)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한강의 시원(始原)이라는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단지 그 모습만으로도 진한 감동을 준다. 이무기가 몸부림치고 올라간 흔적이라는 굽이친 물길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끼 낀 암반(巖盤) 사이에서 힘찬 물길이 쏟아져 내려온다. 한마디로 장관(壯觀)이다. 물의 흐름이 얼마나 오래되었으면 저렇게 골까지 패었을까? 그 골의 모양이 마치 용을 닮았다고 해서, 사람들은 ‘용이 되기 위해 한강을 거슬러 올라온 이무기가 연못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 친 자국’이라는 전설(傳說) 한 토막을 만들어 내었나 보다.

(**) 검룡소(檢龍沼), 금대봉 기슭에 있는 제당굼샘과 고목나무샘, 물골의 물구녕 석간수, 그리고 예터굼에서 솟아나는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이곳에서 다시 솟아난다고 한다. 1987년 국립지리원에 의해 한강의 최장 발원지로 공식 인정되었다. 둘레 약 20m이고, 깊이는 알 수 없으며 사계절 9℃의 지하수가 하루 2,000~3,000t씩 석회암반을 뚫고 솟아 폭포를 이루며 쏟아진다. 오랜 세월 동안 흐른 물줄기 때문에 깊이 1∼1.5m, 너비 1∼2m의 암반이 구불구불하게 패여 있다. 검룡소(儉龍沼)라는 이름은 이 소에 신룡(神龍)이 살고 있다는 전설에 유래하고 있다고 한다.

 

 

 

산행날머리는 검룡소주차장

검룡소에서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길은 대략 1.3㎞정도 된다. 아까 헤어졌던 대덕산등산로까지 되돌아 나온 다음에 오른편으로 800m를 더 내려가면 검룡소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은 평범하면서도 작은 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아까 보았던 검룡소의 위용에 비하면 의외로 보잘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물길과 나란히 이어지는 짙은 초록의 숲 터널은. 걸으면 걸을수록 시원해진다. 한여름의 무더위도 도망쳐버린 지 벌써 오래이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개미취와 초롱꽃을 구경하면서 걷다보면 저만큼에 차량의 진입을 막고 있는 차단기(遮斷機)가 보이고(이정표 : 검룡소 주차장 0.2Km/ 검룡소 1.2Km/ 비단봉 3.5Km), 200m쯤 더 내려가면 산행이 종료되는 주차장이다.

 

 

 

 

 

 

 

민둔산((民屯山 , 973.8m) - 비봉산(飛鳳山, 827.8m)

 

산행일 : ‘13. 6. 16()

소재지 : 강원도 정선군 정선읍과 북평면의 경계

산행코스 : 야미마을 버스정류장할미골상정봉(908m)민둔산비봉산비봉정체육공원정선경찰서(산행시간 : 후미기준 5시간)

함께한 산악회 : 기분 좋은 산행

 

특징 : 민둔산과 비봉산은 정선읍 시가지(市街地)의 인근에 소재한 산임에도 불구하고 버려진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산이다. 정선읍내의 진산(鎭山) 역할을 하고 있는 비봉산까지도 정상에 정상석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을 정도니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마 전형적인 흙산(肉山)으로 이루어진 두 산이, 흙산의 특징대로 별다른 볼거리를 제공하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가 산이 많기로 소문난 정선 땅이다 보니 구태여 이 정도의 산까지 관리해야할 필요를 못 느꼈나 보다. 특별한 목적이 없다면 구태여 오를 필요가 없는 산들이다.

 

 

산행들머리는 59(42)번 국도의 야미마을 정류장

영동고속도로 진부 I.C에서 내려와 59번 국도를 이용하여 정선방향으로 달리다보면 나전삼거리(정선군 북평면 북평리)에서 42번 국도와 합류(중복구간)가 된다. 이곳 삼거리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정선방향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정선읍 시가지에 이르기 직전에 야미마을(정선읍 덕송리)에 이르게 된다.

 

 

 

버스정류장 맞은편으로 난 시멘트포장 도로를 따라 철도건널목으로 접어들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민가(民家)가 띄엄띄엄 보이는 마을을 통과하다보면 10분쯤 후에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이곳에서는 시멘트다리를 건너게 되는 왼편 길로 진행해서는 안 된다. 왼편으로 가도 나중에는 다시 만나게 되지만, 거리가 더 멀뿐만 아니라 길의 상태 또한 좋지 않기 때문이다.

 

 

 

 

이왕에 왼편으로 접어들어 정자(亭子)를 보았다면 구태여 돌아 나올 필요까지는 없다. 농로(農路)가 끝나는 곳에 있는 농가의 앞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산자락 아래로 난 길을 따르면 아까 헤어졌던 길과 다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산자락 아래로 난 길에는 먹을거리가 참 많다. 길가 언덕에는 산딸기가 지천이고, 밭두렁에 보이는 뽕나무에는 까만 오디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일행들의 손끝이 바빠진다. 방향을 잘못 잡은 탓에 발품을 더 팔았지만 어느 누구의 얼굴에도 짜증스러움은 묻어나질 않는다. 그보다는 주전부리용 산과일을 따먹는 재미가 더 쏠쏠하기 때문이리라. 하긴 이런 재미 때문에 산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산딸기를 따먹고 있는데, 농가에서 일하고 있던 노인장께서 따먹지 마세요.’를 외치고 계신다. 인심 한번 고약하다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다. 따먹지 말라는 이유가 농작물 때문에 농약(農藥)을 쳤기 때문이란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야박한 시골인심을 탓한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아까 헤어졌던 시멘트포장 농로와 다시 만나고 나서도 한참을 더 농로를 따라 진행해야 한다. 그러다가 만나게 되는 마지막 농가(農家)에서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임도(林道)로 접어들게 된다.

 

 

 

차량이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널따란 임도를 따라 10분쯤 들어가면 개간한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밭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면서 산길은 서서히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임도의 넓이는 그대로이지만 길의 상태는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엉망이다. 일 년에 한두 명이나 찾는 외진 산길을 일부러 정비할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다.

 

 

 

계곡을 벗 삼아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오르다보면 합수곡(合水谷)이 나온다. 이곳에서 비록 거칠지만 흔적이나마 뚜렷하던 산길과 헤어진다. 오른편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로 접어들면 한숨부터 나온다. 길이 거친 것은 고사하고라도 길의 흔적을 찾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경사(傾斜)가 완만(緩慢)하다는 것이다.

 

 

 

심심찮게 얼굴을 후려치는 나뭇가지들과 씨름하다보면 산길이 오른편 산비탈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악전고투(惡戰苦鬪)가 시작된다. 산비탈을 치고 오르는 산길의 경사(傾斜)가 결코 장난이 아니다. 누군가가 코에서 땅 냄새가 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코가 바닥에 닿을 듯이 허리를 굽히고서야 가까스로 산을 오를 수가 있을 때 쓰는 말이다. 오늘이 바로 그런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 정도로 산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다는 얘기이다.

 

 

 

거기다 길이 비록 올라가고는 있지만 제대로 올라가고 있는지는 결코 알 수가 없다. 도대체 길의 흔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선두대장이 깔아놓은 종이쪼가리를 방향삼아 한발 한발 힘들게 오를 뿐 다른 방법은 없다. 그러기를 40분 정도면 지능선 위에 올라서게 된다. 지능선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어 또 다시 힘든 산행을 이어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르막길의 경사(傾斜)가 다소 누그러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산길의 흔적은 찾지 못하는 것은 매 한가지이다.

 

 

지능선의 오르막길을 20분 가까이 치고 오르다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어 산허리를 자르면서 진행하면 잠시 후에 주능선의 안부에 올라서게 된다. 민둔재라고 불리는 안부이다. 그러나 안부라고 해봐야 아무런 표지도 없을뿐더러 심지어는 길의 흔적조차도 나타나질 않는다. 이곳에서 민둔산은 왼편이고, 상정봉에 다녀오려면 오른편으로 진행해야 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30분이 지났다.

 

 

민둔재에서 상정봉까지는 6~7분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절벽(絶壁) 형태의 암봉인 상정봉은 그다지 크지 않은 암벽(巖壁)을 우회(迂廻)하면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정상은 정상표지석 대신에 산사나이라는 분이 나무기둥에 묶어 놓은 코팅(coating)지가 이곳이 정상임을 알려주고 있다. 참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진 정상에서의 조망이 별로다.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민둔산과 건너편 산자락이 얼핏 고개를 내밀고 있을 따름이다.

 

 

 

 

 

 

15분 만에 다시 민둔재로 되돌아와 민둔산으로 향한다. 민둔산으로 가는 능선은 온통 참나무로 덮여있다. 가끔 하늘을 향해 치솟은 매끈한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조림지(造林地)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울창하게 우거진 참나무 숲이 계속된다. 민둔재에서 민둔산까지의 거리는 꽤 멀다. 그러나 어렵지 않게 다다를 수 있다. 비록 여러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려야 하지만,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의 골이 깊지 않은 탓에 밋밋한 능선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콧노래라도 부르며 걸어야하는데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들 정도로 우거진 가시넝쿨 때문이다. 능선을 온통 산딸기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민둔재에서 민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산딸기가 지천이다. 능선의 이름을 산딸기능선이라 부른다고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에 산행 내내 산딸기를 따먹으며 걸었던 방어산이 생각난다. 두 산 모두 산딸기로 덮여있다는 점은 같은데, 산딸기의 생김새는 사뭇 다르다. 방어산의 산딸기가 마치 재배한 것 같이 곱고 토실토실 했다면, 이곳의 산딸기는 작고 못생긴 것이 영락없는 자연산이다.

 

 

 

산딸기를 따먹으며 산행을 이어가다 보면 1시간 만에 민둔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민둔산 정상은 사뭇 산봉우리답지가 않다. 남쪽에서 바라볼 때에는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로 보이지만, 북쪽에서는 약간 뽈록하게 튀어나온 분지(盆地)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널따란 분지로 이루어진 민둔산 정상은 삼각점만이 외로울 뿐 정상표지석은 물론 그 흔한 이정표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산사나이라는 분이 나무 기둥에 묶어 놓은 코팅지(민둔산 975m)만 아니었다면 이곳이 정상인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참고로 민둔산에는 전설(傳說)이 하나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에 한 장사가 태어났는데 환란(患亂)이 우려되어 죽여 버렸다고 한다. 그 후에 그 장사가 탔던 용마(龍馬)가 나타나서 그 주인을 찾다가 죽은 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이 산의 나무를 모두 뽑아버렸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초목(草木)이 잘 자라지 못하는 것은 그런 사연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둔산에서 비봉산 방향으로 내려서는 길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사(傾斜)가 가파르다. 한쪽(오른편) 사면(斜面)이 바위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절벽의 바로 옆으로 난 경사면(傾斜面)을 따라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내려서다보니 속도는 차라리 산을 오를 때보다 더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10분 정도이면 안전한 곳까지 내려설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일행 중의 한 명이 뒹굴면서 갈비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 흔한 밧줄 하나 매어놓지 않은 정선군청을 원망하면서 산행을 이어간다.

 

 

 

 

 

만둔산을 내려서서 비봉산으로 향하는 능선에는 산딸기 외에도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다. 참취가 지천에 널려있는 것이다. 만일 부지런한 살림꾼들이라면 금방 배낭으로 하나 가득 채취할 수 있을 것 같다. 취의 잎 하나가 숫제 솥뚜껑만큼 크기 때문이다. ‘아직도 참취를 구분하지 못하세요?’ 사진을 보자마자 집사람이 하는 말이다. 난 언제쯤이나 산나물에 익숙해 질 수 있을까?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면 잠시 후에 송전탑(送電塔)을 만나게 되고, 이어지는 산길은 완만(緩慢)한 오르내림을 계속한다. 흔적이 사라져가는 폐()무덤 두어 기()를 지나면 正三品 通政大夫 江陵 劉公이라는 비석(碑石)까지 갖춘 반듯한 무덤을 지나게 되고, 이어서 비봉산 정상이다. 삼각점 하나만 외롭게 지키고 있는 비봉산 정상은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이곳이 정상이라는 아무런 표시도 없을뿐더러, 고스락 또한 산봉우리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엉터리 지도(地圖)를 지녔을 경우에는 그냥 지나칠 확률은 100%로 높아진다. 민둔산에서 비봉산을 거쳐야 관음대 갈림길에 이르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그 엉터리 지도에는 관음대 갈림길을 지나고 나서야 비봉산 정상에 이르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50분이면 정상에 이르고도 남을 거리를, 지도에는 1시간40분이 소요된다고 적혀있다. 다음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산행에 참고할 지도를 선택하는데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로 비봉산은 정선읍내의 진산(鎭山)이다. 산의 생김새가 봉황을 닮았다고 해서 비봉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봉황새가 나래를 활짝 펴고 조양강으로 힘차게 날아 내리는 형상이라는 것이다.

 

 

비봉산에서 완만(緩慢)한 내리막길을 10분 조금 못되게 내려오면 관음대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정표(관음대 70/ 정선시내 70분/ 민둔산)를 만나게 된다. 정선군에서 이곳까지만 군민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정하여 관리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관리범위(管理範圍)를 조금 더 넓히면 어떨까 싶다. 관내(管內)에 위치한 산을 찾는 사람들이 최소한 부상당하는 일은 없도록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은 것이다.

 

 

 

 

관음대 갈림길을 지나면서 산길의 왼편에 철망(鐵網)이 보이더니 줄곧 산길을 졸졸 따라다닌다. 철망에는 접근 금지’ ‘위험이라고 적힌 경고판이 계속해서 붙어 있다. 무슨 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국가중요시설(國家重要施設)’이 생각될 정도로 철망이 견고하게 설치되어 있다. 철망으로도 모자라 위에다 다시 일자로 된 가시철망을 두르고 있을 정도이다. 참고로 국가중요시설이란 위해세력(危害勢力)의 공격을 받았을 때 국가경제와 국방 등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는 공항·항만·원자력발전소 등과 같은 시설을 말하는데, 경비(警備)나 방호(防護)가 다른 일반시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중(嚴重)하다.

 

 

 

관음대 갈림길에서 10분 조금 못되게 더 내려오면 능선이 약간 솟구치면서 야트막한 봉우리를 하나 만들어 놓는다. 봉우리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있는데 그 아래에 평상을 배치해 쉼터를 조성해 놓았다. 오늘 처음으로 만난 전망대(展望臺)임과 동시에 가장 뛰어난 조망(眺望)을 보여주는 곳이다. 정선 시가지 방향이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일망무제(一望無題)로 시야(視野)가 트이는 것이다. 반원을 닮은 정선시가지가 발아래에 펼쳐지고, 조양강 너머에 있는 조양산과 기우산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그 오른쪽에는 한반도를 닮은 지형을 잘 조망할 수 있도록 스카이워크(Sky Walk)를 설치해 놓았다는 병방산이 내다보인다.

 

 

 

 

 

조금 전까지 완만(緩慢)하게 이어지던 산길이 전망대를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내리막길로 변한다. 오른편에 정선의 신시가지(新市街地)인 북실리가 내다보이지만 조망(眺望)보다는 내려딛는 발끝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 산길이 작은 바위와 돌들이 곳곳에 널려있어 걷기가 여간 사나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파르게 고도(高度)를 낮추던 산길을 10분 정도 내려서면, 갑자기 진행방향에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언덕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꼭대기에 결코 예쁘다고는 볼 수 없는 정자(亭子) 하나가 세워져 있다. 바로 비봉정이다. 비봉정 위에 올라서면 다시 한 번 시원스럽게 조망(眺望)이 트인다. 비봉정에서의 조망은 전망대보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대신 아까 볼 수 없었던 곳까지도 관찰이 가능하다. 북동쪽에는 상정바위산과 옥갑산이 우뚝하고, 조양강 건너에 있는 조양산과 기우산은 바로 코앞이다. 그리고 기우산의 오른편에 보이는 산은 병방산일 것이다.

 

 

 

비봉정을 지나면서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아까 민둔산에서 내려올 때에 버금갈 정도로 가파르기 짝이 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정선군에서 침목(枕木)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민둔산의 내리막길과 같이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왕에 등산로를 정비한 김에 민둔산까지 정비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오늘 같이 갈비뼈가 부러지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내리막길은 계단으로도 가파름을 줄이지 못했는지 갈지()자를 그리면서 아래로 향하고 있다. 길 양쪽에 매어놓은 로프를 잡고 조심스럽게 10분 정도를 내려서면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 숲 아래에는 체육시설을 갖춘 쉼터를 조성해 놓았다. 앉아서 쉬거나,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을 보면 정선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솔숲공원인가 보다. 하긴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무 중의 하나인 소나무가 이렇게 울창하니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고 할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정선경찰서 뒤편 골목길

소나무 숲을 곧장 통과하면 산길은 산의 오른편 사면(斜面)을 훑으면서 아래로 향한다. 비봉산과 민둔산을 방치한 것에 대해 속죄라도 하려는 양 공원(公園)으로 올라오는 길은 깔끔하게 정비가 잘 되어 있다. 길도 널따랄뿐더러 길가에 키 작은 가로등까지 설치해 놓았을 정도이다. 맨 마지막에 나타나는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정선시가지에 이르게 되면서 산행이 종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