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백산(咸白山, 1,573m)

 

산행일 : ‘11. 9. 25(일)

소재지 :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화전동과 정선군 고한읍의 경계

산행코스 : 두문동재(싸리재)→은대봉→중함백→함백산 정상→만항재(산행시간 : 4시간)

함께한 산악회 : 송암산악회

 

특징 : 정암사로 더 잘 알려진 함백산은 강원 동부의 최고봉으로 정상에서 태백산, 백운산 등 지역의 산릉들은 물론 동해 일출(東海 日出)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그러나 조망(眺望) 외에는 특별한 볼거리도 없고, 정상에 방송국 중계소가 있는 탓에, 승용차로 정상까지 올라갈 수가 있어 산행지로는 권하고 싶지 않다.

 

 

 

산행들머리는 두문동재(싸리재)

38번 국도(國道/ 태백시 방향)를 따라 달리다가 고한읍을 지나자마자 만나게 되는 ‘두문동재 터널’의 입구 직전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면 두문동재이다. 두문동재의 원래 이름은 싸리재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두문동 마을의 이름을 따서 바꿨다고 한다. 하지만 옛 이름이 훨씬 더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꼬불꼬불 구비를 돌아 싸리재에 오르면 간이휴게소와 산림감시초소가 보인다. 예전에는 보지 못하던 풍경이다. 태백과 사북, 사실 난 80년대 초부터 이 지역과 인연이 있었다. 교통수단이라고는 열차가 유일(버스도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했던 이곳에서 난 공직(公職)의 첫발을 내딛었었다. 중앙행정기관의 지역사무소의 과장으로 부임해서, 낯선 땅에서 마땅히 갈 곳이 없던 난 주말이면 태백산이나 함백산 등 주변의 산들을 올랐었다. 그리고 2000년대 강원랜드의 설립(設立)에 관여하기까지 이 지역과는 끈질기게 인연이 이어져 왔었다.

 

 

금대봉에서 허리를 낮춘 백두대간(白頭大幹)이 은대봉으로 솟구쳐 오르기 전 잠시 쉬어가려는 듯 길을 열어두고 있는 싸리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10여분 만에 한차례 능선을 올라서면 진행방향에 민둥산 하나가 보인다. 은대봉이다. 능선에 늘어서있는 화마(火魔)에 그슬린 듯한 나목(裸木)들은 아마 산불의 흔적일 것이다. 약간의 평탄한길을 가다가 한차례 더 오른 후 능선 길을 오르면 헬기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은대봉에 도착하게 된다.

 

 

 

은대봉 아래를 지나다 보면 동부지방산림청장이 세워놓은 ‘산림유전자원 보호림(구역)’이라는 경고판이 눈에 띈다.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 일대 100ha에 분포한 주목 119본과 갈뫼나무 외 137종을 절취할 경우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단다. 아까 들머리에서 보았던 경고판에서 태백시 화전동 일대의 20ha의 주목도 보호하고 있다고 했으니, 아마 오늘 만나게 되는 식물들 중에서 어느 것 하나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얘기일 것이다.

 

 

 

 

은대봉 정상은 헬기장이다. 한쪽 귀퉁이에 조그만 정상표지석이 세워져있다. 밋밋한 봉우리만 생각하고 조망(眺望)을 기대해선 안 된다. 주위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온통 시야(視野)를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오르는 길에 보았던 매봉산의 풍력발전기까지도 나뭇가지 사이로 숨어버렸다. 은대봉 정상은 평원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널따랗고 평평한 안부이다. 주위의 숲은 대부분 신갈나무, 자작나무(사스레나무)도 많이 눈에 띈다. 자작나무 숲은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들기 때문에 자못 생경(生硬)스런 느낌으로 다가온다.

 

 

은대봉를 지나면서 등산로는 갑자기 고도(高度)를 낮춘다. 그러나 짧고 급하게 고도를 낮춘 후에는 유연하게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다. 쉼터까지 2㎞ 정도 되는 구간은 오르막 보다는 내리막 위주로 이어지기 때문에 걷기에 부담은 없다. 등산로 주변의 신갈나무들이 점점 굵어지더니 어느새 짙은 숲을 만들어 내고 있다.

 

 

 

숲길을 걷다보니 오른편 숲속에 온통 빨갛게 타오르고 있는 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카메라에 가을 풍경을 담아보려고 숲속으로 들어섰더니 평소에는 쉽게 눈에 뛰지 않는 마가목이다. 군락지(群落地)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함백산에는 마가목의 개체수가 많았다. * 마가목(mountain-ash), 주로 산지에서 자란다. 높이 8m 정도이나 고산지대에서는 2~3m의 관목상으로 자란다. 꽃은 5∼6월에 가지 끝에 복산방꽃차례(複揀房花序)를 이루며 흰색으로 피고, 열매는 둥글며 9∼10월에 붉은색으로 익는다. 옛날부터 풀 중에서는 산삼이 제일이지만 나무 중에서는 마가목을 으뜸으로 여겼었다. 신경통, 요통, 위장병, 양기부족 등에 널리 이용되는 만병통치의 귀한 약재이다. 열매는 시금털털하면서 쓰고 매운 맛이 섞여 있는데, 먹으면 기침과 가래를 없애는 효과가 있다. 허약한 사람이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마가목 열매로 담근 술을 마시면 튼튼해진다. 또한, 마가목 껍질은 중풍, 고혈압, 위장병, 기침, 신경통, 류마티스관절염 등에 좋은 효과가 있다.

 

 

은대봉을 출발해서 한 시간이 채 안되어 만나게 되는 쉼터는 흙산에서는 보기 힘든 널따란 바위 몇 개가 놓여있다.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쉬어가라는 의미에서 쉼터로 불리고 있나보다.

 

 

 

쉼터를 지나면서 주위의 나무들이 서서히 굵어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힘찬 근육을 자랑하는 고목(古木)들로 변해있다. 숲길은 기묘하게 생긴 고목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고 있다. 초록 이끼를 두른 아름드리 참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모진 풍파에 시달려온 탓인지 생긴 모양새부터가 기묘하다. 그늘마저 초록빛으로 빛나는 오래된 숲길이다. 짙은 숲의 아름드리 고목 사이를 흘끔거려본다. 혹시라도 ‘숲의 정령(精靈)’들이 몸을 숨기고 있지나 않을까? 정령 대신에 누군가가 흙을 파헤친 흔적들만 자주 눈에 띈다. 필시 멧돼지의 흔적일 것이다. 길가의 숲에서 멱을 감듯 몸을 뒤챘는지 뻘건 흙이 드러나 있다. 멧돼지가 그리 만만한 동물이 아닌데도 별로 무섭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마 반대방향에서 오는 등산객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함백산을 찾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이다. 1500m가 넘는 고산(高山) 중에서 이곳 함백산처럼 접근성이 편리하고, 산을 오르기가 수월한 산도 많지 않을 것이다.

 

 

 

 

숲의 공기는 걷는 내내 반팔 서늘하다. 아마 가을이 이미 깊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걷는 길섶의 가을꽃들은 몇 장 남지 않은 마지막 꽃술들을 떨어뜨리고, 길가의 나무들도 서서히 노랗고 붉은 색깔의 옷들로 갈아입고 있다.

 

 

 

쉼터에서 중함백(1508m)으로 오르는 구간은 경사(傾斜)가 심한 오르막길이다. 그러나 힘들다고 짜증낼 필요는 없다. 일단 정상에 오르고 나면 그 고생에 대한 보상(補償)은 충분히 받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중함백 정상에는 너른 바위 몇 개가 놓여있어 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일단 정상에 올라서면 함백산이 눈앞에 가까이 다가오는데,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주목과 어울리고 있는 광경(光景)이 가히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펼쳐지고 있다. 지금까지 지나온 능선의 조망과, 고한읍과 태백시가 내려다보이는 것은 보너스이다.

 

 

 

 

중함백에서 함백산 정상을 향해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이어지는 완만(緩慢)한 산길을 얼마간 걸으면 오늘 산행의 주인공인 주목 한그루가 보인다. 나무 앞에 매달린 이름표 하나, 보호수(保護樹)란다. 이어 나타나는 너덜지대를 지나면 별로 높지 않은 봉우리 아래에서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곧바로 진행하면 산허리를 돌아 만항재(2Km)로 이어지고, 함백산 정상(1Km)으로 가려면 왼편에 보이는 오르막길로 올라서야 한다.

 

 

 

 

 

중함백에서 함백산 정상까지의 구간은 주목군락지(群落地)이다. 함백산에서 만나는 나무를 떠올리라고 한다면 아마 이곳의 주목군락과 은대봉에서 만난 산죽(山竹)일 것이다. 우리나라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나무도 만항재로 내려가는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의 막바지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숲이 전부일 정도이니까...주목지대는 급경사가 시작되는 능선의 산록에 주로 분포되어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은 아예 가지가 없거나 잘리고, 한쪽으로만 무수히 많은 가지가 뻗어나간 주목, 주목을 보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고들 말하는데 과연 저 주목은 몇 년을 살아온 것일까? 대부분의 나뭇가지들은 말라비틀어져 있고, 푸른 잎이 붙어있는 가지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주목군락지가 끝나면 주변의 풍물(風物)은 급격히 변한다. 산행 내내 보이던 신갈나무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어른의 허리에도 못 미치는 관목(灌木)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덕분에 함백산 정상을 지키고 있는 돌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인지 쑥부쟁이를 비롯한 들꽃들의 개체수도 늘어나 있다.

 

 

함백산 정상은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구태여 바위들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보통 바위봉우리라고 하면 바위가 통으로 이루어진 것이 일반적인데, 이곳은 큰 바위덩어리들을 얼기설기 쌓아 놓은 것 같은 형상(形象)이기 때문이다. 하긴 함백산 같이 전형적인 흙산(肉山)에 통으로 이루어진 바위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것이다. 정상의 제일 높은 지점에는 공들여 쌓은 돌탑이 우람하게 서있고, 그 앞에 돌로 제단(祭壇) 형태의 축대를 쌓은 위에 정상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이곳도 근처에 있는 태백산과 같은 신령스러움이 있는지 정상표지석 앞에서 고사(告祀)를 지내고 있는 스님일행이 눈에 띄었다. 하긴 함백산이란 '크게 밝은 산'이란 뜻이니 어찌 신령스럽지 않겠는가?

 

 

 

함백산 정상에서의 조망은 너무나 좋다. 남쪽의 태백산을 위시로 해서, 북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산인 금대봉과 매봉산, 그리고 서쪽의 백운산, 두위봉, 장산 등 산세(山勢)가 대부분 1400~1500m급의 산들이기에 거대하고 웅장하기만 하다. 서쪽 저 멀리에 백운산이 강원랜드 카지노 건물들을 머리에 얹고 있고, 동쪽 매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풍력발전기는 그 날개를 힘겹게 돌리고 있다. 이국적인 풍경이다. 다만, 하나 아쉬운 것은 정상 근처의 통신(通信) 시설물들이 눈에 거슬린다는 것이다.

 

 

 

정상에서 남쪽 방향으로 눈을 돌리면 발아래로 뱀처럼 꽈리를 틀고 있는 만항재가 내려다보이고, 그 왼편에는 대한체육회의 '태백선수촌'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상에서 만항재 방향으로 내려오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왼편으로 가면 군부대(軍部隊) 통신시설 입구, 만일 승용차를 이용해서 함백산 정상까지 올라왔었다면 차량은 이곳 어림에 주차(駐車)되어 있을 것이다. 걸어서 만항재로 내려가려면 오른편 돌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된다.

 

 

 

함백산 정상에서 만항재로 내려가는 하산(下山)길은 가파른 내리막길, 그것도 꽤나 길게 이어진다.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듯 길가에 로프를 매어 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내뿜는 숨소리는 거칠기 그지없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끝나면 다시 동네 뒷동산 같은 편한 길이 이어진다.

 

 

 

 

만항재에 가까워지면서 길섶의 야생화(野生花)의 개체수가 늘어나기 시작한다. 야생화를 즐기며 여유를 부리다보면 저만큼에 대한체육회(大韓體育會) '태백선수촌'으로 들어가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도로변에 산악회의 관광버스가 주차되어 있고, 차량 곁에서 20여명이 둘러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다. 아마 저들은 가파른 능선위에 놓인 함백산을 오르기에는 힘들이 부치나보다. 이곳에서 정상까지 오르는데 1시간이면 충분한데도 말이다

 

 

대한체육회 선수촌로 가는 도로(道路)에서 만항재까지의 대간(大幹)길은 편하다. 길섶에는 어김없이 들꽃들이 길동무가 돼 준다. 군락을 이루고 있는 벌개미취, 마지막 숨결을 다하고 있는 엉겅퀴, 그리고 습기가 촉촉한 풀섶에는 어김없이 물봉선이 방긋 웃고 있다. 고저(高低)가 심하지 않은 능선을 따라 몇 번 오르내리면 저 멀리 화방재가 내려다보인다.

 

 

 

 

만항재로 가는 길가에는 갖가지 들꽃들이 무리지어 피어있다. 들꽃으로 치장한 정원(庭園) 같은 느낌이다. 비록 초가을 날씨에 생기를 잃고 있지만,,, 노루오줌은 보라색 꽃잎이 생기를 잃은 지 오래이지만, 샛노란 마타리는 아직도 그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거기다 제철을 만난 들국화에다, 비록 꽃은 이미 져버렸지만 열매가 익어가고 있는 어수리가 어울리고 있으니 ‘산상(山上)의 화원(花園)’이라고 불리는 애칭에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만항재

만항재에 내려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산상의 화원’이라고 쓰인 간판이다. 간판 뒤로는 널따랗게 야생화 정원을 조성해 놓았다. 그 넓이가 무려 10만 평 가까이 된단다. 정원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길가에는 이곳에 심어져 있는 야생화의 이름표가 꽂혀있다. 산나리, 투구꽃, 어소리, 자주꽃방망이, 산 솜방망이, 동자꽃 등등... 저런 이름을 가진 고산식물들이 한꺼번에 꽃들을 피워낸다면 이곳은 이름 그대로 ‘산상의 화원’ 아니 ‘천상(天上)의 화원(花園)’으로 변할 것이다.

* 태백과 정선, 영월의 경계에 놓인 만항재를 이곳 사람들은 ‘산상(山上)의 화원(花園)’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해마다 여름이면 하늘 숲 정원에서 ‘고한 함백산 야생화축제’를 연단다. 이 정도의 야생화군락(野生花群落)을 산을 오르는 수고 없이 즐길 수 있는 곳은 아마 이곳 만항재뿐일 것이다. 이곳까지 버스가 운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항재(1330m)는 남한(南韓)의 허다한 고개 가운데서도 가장 높고 험한 고개이다. 고갯마루에는 간이매점이 있다. 아니 동동주를 팔고 있으니 주막(酒幕)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감자전 한 접시에 동동주 한 되를 시켜놓고 히치하이킹(hitchhiking)을 노려본다. 만항재는 들꽃들의 천국인 ‘산상화원’으로 소문이 난 탓에 평소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우리도 대구에서 온 산악회의 관광버스를 얻어 타고 고한읍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