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산(九峰山, 441.3m) - 대룡산(大龍山, 899m)

 

산행일 : ‘12. 12. 15(토)

소재지 : 강원도 춘천시 동면과 동내면, 그리고 홍천군 북방면의 경계

산행코스 : 구봉산전망대 휴게소구봉산428봉안부사거리명봉(643m)갑둔이고개헬기장대룡산고은리(산행시간 : 5시간10분)

함께한 산악회 : 안전산악회

 

특징 : 구봉산과 춘천의 진산인 대룡산은 ‘호반(湖畔)의 도시’ 춘천을 동남부에서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들로. 춘천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산이다. 그 이유는 시가지(市街地) 인근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利點)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전형적인 흙산이 걷기에 편할 뿐만 아니라, 능선을 걸을 때 한눈에 들어오는 춘천시가지의 조망(眺望)이 한껏 호쾌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좋은 점은, 다양한 등산 코스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체력(體力)과 시간 등을 고려해 적당한 코스를 오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산행들머리는 ‘구봉산 전망대휴게소(춘천시 동면 만천리 소재)

중앙고속도로 춘천 I.C에서 내려와 46번 국도를 타고 양구방면으로 달리다보면 채 10분이 안되어 산행이 시작되는 ‘구봉산 전망대휴게소’에 닿게 된다. ‘구봉산 전망대휴게소’는 춘천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서, 서울로 치면 남산과 같은 곳이다. 이곳도 남산과 마찬가지로 춘천의 청춘남녀들로부터 데이트코스로 사랑 받는 곳이라고 한다. 2층으로 된 하늘다리라서 불리는 전망대(展望臺)와 휴게소, 그리고 연인(戀人)들의 필수코스라는 카페 등 쉼터를 고루 갖추고 있다.

 

 

 

46번 국도를 건너면 곧바로 산행들머리이다. 입구에 ‘산불조심’ 안내판이 서있으니 참조하면 된다. 물론 춘천시민들이 자주 찾는 ‘근교 산’인지라 들머리에 이정표(구봉산 0.6Km, 명봉 4.4Km) 하나 안 보일 리가 없다.

 

 

들머리로 들어서자마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수월하게 오를 수 있도록 침목(枕木)으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거기다 산길의 폭까지 제법 여유로우니 가쁜 숨만 조금 고른다면 큰 부담 없이 정상에 이를 수가 있다. 정상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등산로 주변은 온통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가끔 참나무들이 섞여있지만 소나무들에 가려 섞여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소나무 숲속을 걷는 산행은 언제나 즐겁다.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소나무향을 맡노라면 마음은 자연스레 행복해지기만한데, 거기다가 건강에 좋다는 피톤치드(phytoncide)까지 듬뿍 들어있다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는가. 산길 주변의 나무들이 하나같이 제멋대로 자랐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행복한 웰빙(well-being)산행에 나무의 생김새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산길 주변에는 가끔 군(軍)의 벙커(bunker)가 눈에 띈다. 이곳은 6·25 당시에 격전지(激戰地)로 유명했으며, 그 후로도 오랫동안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행 중 한분의 말에 의하면 부근에는 아직까지도 미확인 지뢰지역이 남아 있다고 한다. 뭔가 꺼림칙하지만 지정된 등산로만 따른다면 설마 불상사까지 생길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정상으로 오르다보면 반반하지만 별로 넓지는 않은 공터에 장의자가 놓여있는 것이 보인다. 장의자의 맞은편 귀퉁이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명봉 3.8Km/ 감정리 1.5Km/ 구봉산전망대 0.6Km)에는 이곳이 구봉산의 정상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정표에 속아서는 안 된다. 진짜 정상은 공터에서 좌측(북쪽)으로 100m쯤 더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널따란 공터로 이루어진 구봉산 정상에는 그 흔한 이정표 하나 없이, 오석(烏石)으로 만들어진 자그만 정상석 하나만이 외롭게 지키고 있다. 정상에 서면 춘천시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봉의산을 중심으로 시가지와 의암호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 보인다. 멀리 아파트 뒤로 마적산이 선명하게 들어오고 그 오른쪽으로 오봉산과 부용산도 보인다. 과연 오봉산이 춘천 근교의 그 어느 산에서 보다 가장 자세히 시내를 볼 수 있었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춘천시가지의 반대편에는 오늘 가야할 대룡산이 뚜렷하다.

 

 

 

 

명봉으로 가려면 우선 아까 지나왔던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로 돌아내려와 한다. 삼거리에서 이정표가 지시하고 있는 명봉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명봉으로 가는 길 역시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소나무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아까보다는 참나무의 개체수가 많이 늘어 있다. 산길은 비교적 뚜렷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삼거리에서 내려서면 얼마 안 있어 공무원교육원 갈림길(이정표 : 명봉 3.0Km/ 공무원교육원 1.1Km/ 구봉산 0.8Km)과 만천리 갈림길(이정표 : 명봉 2.9, 순정마루 2.19Km/ 만천리 1.0Km/ 구봉산 1.0Km)이 나오고, 이어서 완만한 오르막길을 짧게 오르면 나무벤치가 있는 428봉(이정표 : 명봉 2.7Km, 대룡산 6.5Km/ 구봉산 1.1Km)이다. 428봉에서 산길은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면서 급하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멈추세요! 길을 잘못 들었네요.’ 앞서가던 선두그룹이 되돌아 올라오며 내지르는 소리다. 오른편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산길이 뚜렷하게 나 있는데도, 길 위에 쌓인 눈 때문에 무심코 직진해 버린 것이다.

 

 

 

 

 

428봉으로 다시 되돌아와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방향을 튼다. 이 길도 역시 초반에는 급하게 고도를 낮춘다. 이어서 나타나는 완만(緩慢)한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점점 참나무들이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어지는 산길은 별다른 특징이 없는 능선이 계속되다가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 무렵쯤에야 능선 안부 사거리에 이르게 만든다.(이정표 : 명봉 1.5Km, 대룡산 5.3Km/ 구봉산 2.3Km/ 만천리 1.2Km/ 감정리 1.0Km)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가까이 지났다. 안부를 지나면 또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부담 없는 산길에서 콧노래라도 부르다보면 이번에는 이념의 현장을 만나게 된다. 한편에는 오로지 소나무들뿐이고, 다른 한편에는 참나무 일색이다. 어쩌다 남의 땅을 침범한 나무들이 보이지만, 세상을 살다보면 어찌 그런 못된 놈 하나 없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네 동화에도 청개구리라는 글이 보이는 것이다.

 

 

 

 

경사가 완만한 능선을 어느 정도 걷다보면 왼편에 낙엽송(落葉松 : 일본이깔나무) 군락지가 보이고, 조금 더 오르면 왼편으로 흐르는 널따란 임도가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산길 주변을 철망(鐵網)으로 막아 놓아 놓고, 통행을 제한하는 표지판 아래에 강원도산림개발연구원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산림 보호지역인 모양이다.

 

 

 

계속해서 진행하면 오른편이 시원스럽게 벌목되어 있고, 그 덕분에 춘천시가지와 봉의산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진행방향에는 명봉이 까마득하게 솟아 있다. 그리고 뒤에는 지나온 구봉산 능선이 오밀조밀하게 따라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개활지(開豁地)를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왼편에 식목(植木)지역을 끼고 오른 후, 이번에는 로프가 매달린 가파른 오르막길을 길게 치고 오르면 오른편 비탈에 기대어 지어진 나무테크 전망대(展望臺)가 보인다. 순정마루라고 불리는 곳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남춘천쪽 마을들과 삼악산이 잘 조망(眺望)된다. 삼악산의 왼편에 보이는 산은 금병산일 것이다. 전망대 뒤편 산길 가에 보이는 순정마루 안내판은 ‘만천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세운 것인데, 춘천의 해와 달이 뜨는 밝은 봉우리 명봉의 순정마루(533봉)가 조망이 좋은 곳이니, 유명, 축령, 북배, 명지, 화악, 용화산과 춘천분지(盆地)를 잘 관찰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또한, 이 산 주변의 마을과 산을 설명하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삶의 모습을 바라보고, 오늘이 기다리는 내일이 올 것이니까 이어지는 숲길에서 자신의 삶을 비춰보라고 권하고 있다.

 

 

 

 

순정마루를 지나 거두리 갈림길(이정표 : 명봉 0.6Km/ 거두리 1.6Km, 만천리 1.9Km/ 순정마루 0.06Km)을 지나 한번 더 가파르게 치고 오른 후에는 완만(緩慢)한 등산로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등산로 주변은 참나무들이 하늘을 뒤덮을 듯이 우거져 있다. 엉성하게 쌓아올린 돌탑이 있는 봉우리(이정표 : 명봉 0.2Km/ 순정마루 0.2Km)를 지나 어설픈 바윗길을 잠깐 치고 오르면 드디어 명봉정상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30분 가까이 되었다. 구봉산 정상에서 명봉 정상까지는 대략 2시간 정도가 걸린다.

 

 

 

구봉산과 마찬가지로 널따란 분지(盆地)로 이루어진 명봉의 정상에는 스테인리스stainless steel)로 만들어지 정상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그 옆을 정상표지판보다 더 큰 이정표가 지키고 있다. 명봉 정상은 의외로 조망(眺望)이 트이지 않는다. 사방이 잡목(雜木)으로 둘러싸여 시야(視野)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명봉에서 대룡산으로 가다보면 간혹 보이는 바위마다 눈을 수북이 뒤집어쓰고 있는 돌탑들을 하나씩 올려놓고 있다. 특이한 점은, 완성된 것이 없이 하나 같이 미완성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명봉 바로 아래에서 왼편으로 느랏재로 가는 길이 나뉘고(이정표 : 대룡산 3.7Km, 거두리 2.4Km/ 느랏재 3.3Km/ 명봉 0.1Km), 이어서 약간 가파른 내리막길은 짧게 내려선 이후부터는 산길은 완만(緩慢)하게 이어진다. 다시 왼편에 낙엽송지대를 낀 순한 산길을 잠시 걸으면 갑둔이고개(이정표 : 대룡산 3.1Km/ 거두리 1.8Km/ 명봉 0.7Km, 느랏재 3.5Km, 구봉산 4.5Km)이다. 명봉과 대룡산의 경계인 갑둔이 고개는 옛날 도로가 없었을 때에 거두리 주민들이 상걸리로 넘어 다니던 고갯마루이다. 비록 이정표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왼편으로 내려가면 상걸리로 내려가게 되는 것이다.

 

 

 

갑둔이고개를 지나 왼편에 잣나무 군락(群落)을 끼고 잠깐 더 걸으면 다시 거두리 갈림길(이정표 : 대룡산 2.9Km/ 거두리 2.5Km/ 명봉 1.4Km)을 만나게 되고, 이어서 곡선(曲線)으로 예쁘게 휘어진 침목(枕木)계단을 올라서서 얼마간 더 걸으면 길이 두 갈래(이정표 : 대룡산 2.7Km/ 명봉 1.5Km, 구봉산 3.2Km/ 대룡산 제2활공장)로 나뉜다. 오른편은 제2활공장을 거쳐 대룡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왼편으로 진행할 경우에는 주 능선을 따라 대룡산 정상으로 가게 된다.

 

 

 

왼편 주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너무 가파르지도, 그렇다고 만만할 정도로 완만(緩慢)하지도 않다. 능선을 따라 오르다보면 ‘후드득’하며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하늘이 맑기 때문에 비(雨)가 올리는 없는데,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떨어지고 있는 것일까? 조금만 유심히 바라보면 그 원인은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다. 나무위에 얼어있던 상고대가 따뜻한 기후 때문에 녹으면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떨어지고 있는 얼음덩어리들 중에서 일부는 혹여 머리에 부상을 입힐까 걱정이 될 정도로 굵은 것도 간혹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면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모든 나무들, 아니 온 산이 온통 얼음으로 덮여있다. 나뭇가지뿐만 아니라 나무줄기까지도 온통 얼음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다. 그 얼음들이 햇빛에 반짝이면 주변은 갑자기 ‘동화의 나라’로 변해버린다. 나무마다 영롱한 수정 구슬을 달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어찌 이곳을 감히 인간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다들 입을 다물 줄을 모른다. '오늘 여기 온 사람들은 모두 복 받은 사람들이네요' 길을 가다가 만난 어느 등산객의 말마따나 모두들 복을 듬뿍 받았나보다. 그래서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것이고...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광경을 차곡차곡 가슴에 담다보면 어느덧 산길은 제1활공장 갈림(이정표 : 대룡산 1.5Km, 수리봉 7.0Km/ 명봉 2.7Km, 구봉산 4.4Km/ 제1활공장)이다. 삼거리에서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잠시 후에 활공장에 이르게 된다. 활공장은 시야가 시원스럽게 뚫리는 곳이니 잠깐 걸음을 멈추고 조망을 즐겨보는 게 좋다. 왼편 대룡산 방향에는 녹두봉과 수리봉 능선이 이어지고 있고, 시원스럽게 뚫린 중앙고속도로 오른편에는 금병산이 우뚝하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춘천시가지가 펼쳐지고, 그 뒤에는 삼악산이 버티고 있다.

 

 

 

활공장에서 길게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이정표 : 대룡산 1.3Km, 수리봉 6.8Km/ 명봉 2.9Km, 구봉산 4.6Km/ 제1활공장/ 임도) 임도가 보이지만, 왼편 능선으로 올라선다. 계속해서 환상적인 경치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보면 여기저기서 후드득거리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거기다 간혹 ‘털썩’하며 무언가 큰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후드득’하는 소리는 나무위에 두텁게 매달린 얼음 수정들이 떨어지는 소리이고, ‘털썩’하는 소리는 얼음수정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지가 부러져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이다. 그만큼 나뭇가지에 매달린 얼음 덩어리들의 크기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그 얼음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기라도 할 경우에는. 나뭇가지들에 매달린 얼음들은 찬란히 빛나는 보석들로 변해 버린다.

 

 

 

 

활공장을 내러 서서 대룡산까지는 이어지는 능선은 완만한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룡산을 0.9Km쯤 남겨놓은 고은리 갈림길 어림에서는 춘천에서 가장 높은 산답게 왼편에 협곡이 펼쳐지기도 하는데, 그 사이사이로 내다보이는 파란하늘이 나뭇가지에 얹힌 하얀 상고대와 어울리며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해 내고 있다.

 

 

 

 

대룡산으로 향하는 능선을 걷다가 오른편에 있는 KT송신탑을 지나면 드디어 대룡산 정상이다. 대룡산은 산의 생김새가 한 마리의 용이 드러누워 있는 형상과 흡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여매압산(女每狎山)이라고도 불렸다는데, 산세(山勢)가 부드럽고 여성스럽다는 게 그 이유라고 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4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명봉정상에서 이곳 대룡산 정상까지는 대략 1시간30분 정도가 걸린다.

 

 

대룡산 정상은 다른 산들에 비해 조금 특이하다. 20평 남짓한 분지(盆地) 위에다 나무테크로 단(壇)을 만들어 놓고, 그 위에다 정상표지석을 세워 놓은 것이다. 정상석 뒤 국기봉에는 태극기가 매달려있고(그래서 정상석 하단에 깃대봉이라고 적혀있나 보다), 그리고 전면(前面) 10m정도 떨어진 언덕에는 나무테크로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춘천시가지와 그 뒤에 버티고 있는 산군(山群)들이 한눈에 들어오련만, 아쉽게도 산하(山河)는 짙은 구름에 가려버렸다. 전망대 왼쪽에 설치된 지명(地名)이 적힌 전경사진으로나마 다소나마 위안을 삼으며, 삼악산과 계관산 그리고 북배산, 가덕산, 봉의산 등과 춘천댐, 의암호가 함께 어우러지는 매력적인 춘천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정상에서 고은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면 금방 임도(林道)에 닿게 된다. 산길은 임도에 내려서지 않고 왼편 능선으로 다시 올라서고 있지만 구태여 산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오른편에 보이는 널찍한 임도를 따라 내려가도 조금 후에는 산길과 다시 만나(이정표 : 고은리 2.9Km/ 정상 0.5Km)기 때문이다. 거리만 더 먼데다 볼거리까지 없는 산길을 고집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이다.

 

 

 

임도를 벗어나 고은리로 내려가는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들면 길은 최악(最惡)으로 변해버린다. 길이 가파른데다가 절반쯤 녹은 눈으로 덮여있어서 무척 미끄럽기 때문이다. ‘어~’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뒤뚱거리기를 몇 번인가 하다가 드디어는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나뿐만이 아니다. 앞에 가는 집사람의 뒷모습도 가관이다. 스틱에다 아이젠까지 중무장을 했지만 도무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어~엄마야!’ 드디어는 집사람도 더 이상은 버티지를 못하고 눈길에 드러눕고야 만다. 어제 내린 비에도 불구하고 산에는 눈이 수북이 쌓여있다. 겨우 발목을 덮을 정도이니 많은 양은 아니지만 걷는 데는 여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다. 따뜻한 기온으로 인해 눈이 녹아서, 질퍽거리는 눈길은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미끄럽기 때문이다. 문득 ‘세상만사 세옹지마(世上萬事 塞翁之馬)’라는 말이 떠오른다. 기온이 따뜻해서 산행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데, 그 따뜻한 기온이 눈을 녹여서 걷는 데 여간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산 길의 구경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등산로주변에서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하는 나무들이다. 참나무 일색이던 것이, 낙엽송으로 변하는 가 했더니만, 어느새 잣나무 군락(群落)로 변해있다. 그러다가 잣나무가 너무 많다 싶으면 산길은 어느새 제멋대로 생긴 소나무 숲 아래를 통과하고 있다.

 

 

 

대룡산 정상에서 40분 조금 넘게 내려오면 고은리까지 800미터가 남았음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보이면서 산길은 갑자기 여유로워진다. 경사(傾斜)의 가파름은 여전히 변함없지만, 길의 폭이 넓어져서 마음만이라도 여유로워진다는 얘기이다. 이정표에서 다시 100m쯤 더 내려오면 임도(林道)와 만나게 된다. 널따라면서도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한 임도에서 여유를 부리다보면 개울가에 이르게 되고, 이어서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아치(arch)형 다리를 건너면 산행이 종료되는 고은리 주차장이다. 대룡산 정상을 출발한지 1시간이 가까이 지났다. 내리막길이 미끄러운 탓에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