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산((蓮花山, 1,172.1m) - 대조봉(大祖峰 1,135.5m·)

 

산행일 : ‘13. 3. 9(토)

소재지 :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산행코스 : 태백여성회관→약수터→투구봉→연화산→송이재→대조봉→위령탑(산행시간 : 4시간20분)

함께한 산악회 : 기분 좋은 산행

 

특징 : 깊은 산속에 들어앉다보니 집을 지을 땅이 넉넉하지 못했던 태백시는 황지천(川) 골짜기를 따라 기다랗게 도시가 만들어져 있다. 그 황지천의 동쪽 둑 역할을 하고 있는 산이 바로 연화산과 대조봉이다. 물론 서쪽은 함백산과 태백산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동안 태백산이나 함백산 등 인근의 유명산에 가려있었으나, 최근 들어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태백시에서 이 산을 중심으로 명품 둘레길을 만든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산 자체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내세울 것이 없으나, 백두대간이나 낙동정맥 등 주변 산군(山群)들에 대한 조망(眺望)이 뛰어나다.

 

 

산행들머리는 태백시 여성회관

38번 국도를 이용해서 태백시까지 온 다음, ‘황지교 사거리(태백시 황지동)’에서 35번 국도로 옮겨 장성동 방향으로 달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문곡동에 이르게 된다. 문곡역(驛) 앞의 소도천과 황지천이 합류하는 곳에서 왼편의 황지천을 건너면 태백시 여성회관이다. 다리 건너 들머리에 상장초등학교가 있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여성회관 앞 산행안내도 : 여성회관⟷정상 2.4Km, 정상⟷송이재 2.2Km)

 

 

 

 

여성회관 담장을 따라 시작되는 산길로 접어들면 테니스장 뒤에서 산자락과 만나게 된다. 산에 들어서자마자 만나게 되는 ‘김해 김씨’의 무덤을 지나면 곧바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오르막길에 설치된 통나무계단은, 오른편에 쇠파이프로 난간을 만들어 사람들이 잡고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계단이 끝나면 작은 능선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 등산로는 왼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며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능선 위 이정표 : 연화산 정상 2.2Km/ 여성회관 0.2Km).

 

 

 

 

능선을 오르다 산의 사면(斜面)을 가로지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뫼오름 샘터’(이정표 : 정상 1.9Km/ 여성회관 0.5Km)’에 이르게 된다. 샘터는 지붕을 씌워 등산객들이 비를 피하며 물을 마실 있도록 해 놓았고, 샘터 주변에는 나무 벤치에다 운동기구까지 구비해 놓아 쉼터를 겸한 체육공원으로 조성했다. 그런데 역기의 생김새가 조금 특이하다. 역기의 추(錘)를 탄광(炭鑛)에서 사용하던 광차(鑛車)의 바퀴를 활용한 것이다. 탄광도시 다운 신선한 발상이다.

 

 

 

샘터를 지나면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위로 향한다. 비록 계곡이지만 물기 한 점 없는 것을 보면 장마철에나 물이 흐르는 개울인 모양이다. 중간에 태백시에서 조성한 둘레길(이정표 : 정상 1.8Km/ 연화산 전망대 1.6Km/ 연화산 유원지 1.9Km/ 여성회관 0.6Km)을 가로지른 후, 다시 산길로 접어들어 잘 자란 잣나무 숲을 통과하면 곧이어 주능선 위(이정표 : 정상 1.5Km/ 여성회관 0,9Km)로 올라서게 된다. 등산로는 이곳에서 또 다시 둘레길과 만난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가까이 지났다. 태백시가 조성한 연화산의 둘레길은 ‘고원 700 산소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둘레길은 총 16Km로서 대산아파트와 대림아파트 뒤편 연화산 쉼터에서 시작해 치유의 숲, 체험의 숲, 오름뫼, 연화산 유원지, 검둥골, 송이재를 거쳐 연화산 쉼터로 돌아오도록 되어있다. 해발 680m에서 900m사이의 고도(高度)를 유지함으로서 건강을 겸한 조깅과 가족단위 산책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능선안부에서 투구봉까지가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코스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왔다갔다 갈지(之)자를 만들며 경사(傾斜)를 누그러뜨리기도 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길가에 로프를 매달아 놓아 오르는 사람들이 붙잡고 오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30분 조금 못되게 치고 오르면 투구봉이다. 산등성이에 툭 튀어나온 바위전망대인 투구봉은 한마디로 조망(眺望)이 뛰어나다. 발아래에는 태백시가지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는 태백산과 함백산, 금대봉과 대덕산 등 백두대간의 헌걸찬 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다. 남쪽에는 저 멀리 달바위봉까지 눈에 들어온다. 투구봉은 봉우리에 비녀를 닮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비녀봉이라고도 불린다.

 

 

투구봉에서 바라본 연화산

 

 

투구봉에서 다음 봉우리인 무인산불감시탑이 있는 봉우리까지는 금방이다. 봉우리에 오르면 산불감시탑 앞에 작은 나무기둥이 세워져 있는 것이 보인다. 나무기둥에는 ‘잠봉(簪峰)’이라고 적혀있고, 기둥의 상단에는 못처럼 생긴 쇠파이프가 박혀있다. ‘비녀 잠(簪)’를 썼으니 비녀봉인 모양이고 위에 꽂혀있는 쇠파이프는 비녀를 의미하는 모양이다. 내가 알기로는 투구봉의 다른 이름이 비녀봉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아스럽다.

 

 

 

잠봉에서 진행이 난감해진다. 능선의 길을 잔뜩 쌓인 눈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별수 없이 산의 사면(斜面)을 따라 억지로 길을 만들면서 산행을 이어간다. 당연히 산행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다. 눈 쌓인 능선을 우회(迂廻)해서 맞은 편 바위봉우리 위에 오르면 다시 한 번 시야(視野)가 뻥 뚫린다. 물동이바위라고 불리는 봉우리로서 바위에 올라서면 일망무제(一望無題)가 따로 없다. 남쪽과 서쪽의 조망(眺望)이 막힘없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발아래 태백시가지의 고층아파트들은 마치 성냥갑을 닮았고, 도시를 가로지르는 도로들은 마치 실핏줄을 연상시킨다. 태백시를 감싸고 있는 함백산과 금대봉, 은대봉, 대덕산이 거미줄처럼 이어지고, 남서쪽에는 태백산의 헌걸차게 솟아 있다. 동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름답다고 소문난 백병산을 비롯해 두타산과 청옥산 등 고산 준봉들이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물동이바위에서 연화산 정상은 금방이다. 두세 평이나 됨직한 좁다란 정상에는 삼각점(장성24/1995재설)과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주변에는 통나무를 이용해 벤치를 만들어 놓았다. 연화산 정상도 조망(眺望)이 뛰어나다. 서쪽에는 태백산에서 함백산을 지나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동쪽에는 낙동정맥의 유령산이 코앞이다. 그리고 남쪽에는 청옥산과 달바위봉이 하늘 아래에다 병풍(屛風)을 두르고 있다. 연화산 정상은 옥녀봉(玉女峯)이라고도 불린다. 먼 옛날 홍수로 인해 천지가 온통 물에 잠겼을 때, 이곳 연화산 정상만은 온전했다고 한다. 이때 옥녀와 유령산(우보산) 갈미봉의 갈미(삿갓의 강원도 사투리)를 쓴 남자가 이곳에서 홍수를 피했었고, 그 둘은 물이 빠지자 결혼해서 세상에 자손(子孫)을 퍼뜨렸다고 한다. 그래서 연화산의 서쪽 기슭에는 옥녀가 머리를 풀고 엎드려 있다는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 명당이 있다고 전해진다. 투구봉에서 연화산 정상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린다.

 

 

 

 

정상에서 송이재로 내려가려면 아까 올라왔던 길의 반대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내려서자마자 앞을 가로막는 암벽(巖壁)을 왼편으로 우회(迂廻)하고 나면, 산길은 아래를 향해 곧으면서도 가파르게 고도(高度)를 떨어뜨린다. 가뜩이나 가파른데 눈까지 두텁게 쌓여있어서 내려서기가 만만찮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산길을 따라 길게 안전로프가 매어져 있기 때문이다.

 

 

 

 

급경사(急傾斜) 내리막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서면 산길은 경사(傾斜)를 누그러뜨리기 시작한다. 대림․대산아파트 갈림길을 지나, 얼마간 더 진행하면 널찍한 임도(林道)에 다다른다(이정표 : 송이재 0.2Km/ 대산아파트 1.0Km/ 연화산 유원지 6.3Km/ 연화산 정상 2.0Km). 이어서 임도를 건너 맞은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보잘 것 없는 봉우리이기에 그냥 지나치면, 산길은 오른편으로 급하게 방향을 틀면서 송이재가 저만큼에 보이는 임도 위에 내려서게 만든다. 정상에서 송이재까지는 40분 정도가 흘렀다.

 

 

 

 

‘송이재’는 태백에서 통리로 넘어가는 38번 도로상에 있는 야트막한 고갯마루이다. ‘송이재’에는 연화산 방향에 큼지막한 표지석이 서있고, 대조봉으로 가는 길은 표지석에서 통리방향으로 50m쯤 떨어진 지점의 반대편 언덕으로 열린다. 송이재에 대조봉 등산안내도가 세워져있으니 참조하면 산행에 도움이 될 것이다.

 

 

송이재의 맞은편 언덕은 공동묘지(共同墓地)이다. 등산로 이정표는 오른편으로 우회(迂廻)하라고 되어있지만 무작정 공동묘지로 들어서고 본다. 첫 번째로 올라야할 봉우리가 공동묘지 바로 뒤에 보이기 때문이다. 비록 길은 보이지 않지만 별 어려움 없이 봉우리 위로 오를 수 있다. 봉우리 위에서 아까 이정표가 제시했던 등산로와 만난 후, 잘 닦인 등산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면 이번에는 황지동(태백시)에서 올라오는 임도(林道)와 만나게 된다.(이정표 : 대조봉 2,155m/ 바람불이 500m/ 송이재 500m)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50m쯤 진행하다, 다시 왼편 능선으로 접어든다. 산은 펑퍼짐한 지형(地形)으로 완만(緩慢)한 산길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길가에는 아름다리 잣나무와 낙엽송들이 번갈아가며 숲을 만들어낸다. 길의 흔적도 뚜렷할뿐더러 이정표까지 심심찮게 나타나기 때문에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다. 모처럼 여유를 부려볼 수 있는 구간이다.(이 구간의 중간쯤에 있는 봉우리 위 이정표 : 대조봉 1,505m/ 송이재 1,150m)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걷는 것도 잠시, 또 다시 임도를 만나게 되면서 산행은 고역(苦役)으로 변해버린다. 임도 건너편 능선이 만만찮은 것이다. 온통 잡목(雜木)으로 우거진 급경사(急傾斜)지대에, 가시넝쿨까지 뒤엉켜 있어 발걸음을 옮기기가 힘들 정도이다. 거기다 한술 더 떠 간벌목(間伐木)까지 마구 버려 놓아 애를 먹인다. 아무래도 여름철에는 이 코스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겨울철인데도 이렇게 통행이 힘들 정도이니, 만일 여름철에 잡목과 가시넝쿨이 우거져버리기라도 할 것 같으면, 아예 길이 보이지도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고단한 오르막길을 20분 정도 치고 오르면 드디어 날등에 올라서게 되고, 이어지는 산길은 등산로도 뚜렷해지고 능선의 경사(傾斜)도 완만(緩慢)해 진다. 고도(高度)의 차가 거의 없는 작은 봉우리들 몇 개를 오르내리다보면 마지막 날등에 올라서게 된다. 대조봉이 바로 지척으로 올려다 보인다. 날등을 내려서면 곧바로 널따란 헬기장이 나온다.(헬기장 이정표 : 대조봉 330m/ 노인회관 2,100m, 위령탑 1,900m/ 송이재 2,330m)

 

 

 

헬기장을 출발해서 마지막 오르막길을 10분 남짓 오르면 드디어 대조봉 정상이다. 대조봉의 정상은 서너 평도 채 안될 정도로 좁은 분지(盆地)이다. 주위의 나무들을 베어내고 만든 공터의 한 중앙에 정상표시석과 삼각점(태백 424./2004 복구)이 있다. 대조봉 정상은 듣던 것과는 달리 조망(眺望)이 별로이다. 북에서 서쪽으로 금․은대봉과 함백산, 태백산, 그리고 동쪽에서 남쪽으로 낙동정맥의 산릉(山稜)이 펼쳐지지만 온전한 모습은 아니고 나뭇가지 사이로 어렴풋이 나타날 따름인 것이다. 송이재에서 대조봉 정상까지는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된다.(정상의 이정표 : 화전교 2,724m/ 송이재 2,655m, 노인회관 2,425m, 위령탑 2,225m)

 

 

 

하산은 다시 헬기장으로 돌아와 태백시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헬기장에서 태백시로 내려가는 길은 차량통행이 가능한 임도(林道)이다. 이 임도는 태백시가 우리나라 제일의 석탄생산지로 전성기(全盛期)를 누리던 시절 석탄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오가던 도로였다. 광산(鑛山)들이 문을 닫고 떠나버린 후에 임도로 활용하고 있는데, 그 흔적을 다 지워버릴 수는 없었던지, 아직까지도 임도 바닥에는 시커먼 석탄가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임도는 전망대의 구실을 하고 있다. 왼편으로 시야(視野)가 열리는데 태백시가지와 건너편 태백산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임도를 따라 5분쯤 내려오면 산길은 임도를 버리고 왼편 능선으로 향한다(이정표 : 위령탑 1,440m, 노인회관 1,640m/ 대조봉 785m). 능선은 휘파람이 절로 나는 길이다. 굴참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진달래나무가 골고루 섞여있는 부드러운 흙길을 따라 다시 10분 정도 더 걸으면 아까 헤어졌던 임도를 다시 만나게 된다. 임도에 내려서면 갑자기 왼편에 자작나무 숲이 멋지게 펼쳐진다. 작년에 시베리아의 톰스크에서 보았던 자작나무 숲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이색적(異色的)이다.

 

 

 

 

임도를 100m쯤 따르던 산길은 또 다시 왼편 능선으로 접어든다. 이어서 산길은 뛰어난 전망대를 겸하고 있는 노인회관 갈림길(이정표 : 위령탑 800m/ 노인회관 1,000m/ 대조봉 1,425m)을 만나게 된다. 갈림길이 있는 벼랑에 서면, 발밑에 태백시가지가 널따랗게 펼쳐지고, 태백산과 함백산이 시가지 뒤를 병풍(屛風)처럼 둘러싸고 있다.

 

 

 

산행날머리는 산업전사위령탑(産業戰士慰靈塔)

갈림길에서 위령탑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이번에는 잣나무 군락(群落)이 맞는다. 바닥에는 솔가리가 수북이 쌓여있어 폭신폭신 한 것이 여간 고운 게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걷기가 무척 사납다. 경사(傾斜)가 급한 내리막길에 낙엽(落葉)이 두텁게 쌓이다보니 오히려 미끄러워져버린 것이다. 조심스럽게 잣나무 숲을 통과하면 오늘 산행이 종료되는 산업전사위령탑이다. 정상에서 위령탑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산업전사위령탑(産業戰士慰靈塔), 이 탑(塔)은 태백권내 광산에서 석탄생산을 하던 중 사고로 순직한 광산근로자들의 영령(英靈)을 봉안(奉安)하여 위로하기 위해 만든 탑으로, 태백시에서는 매년 1회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내가 이곳 태백(당시는 삼척시 황지읍)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1년 봄이었다. 공직자로서의 첫 보직이 이곳에 있던 중앙행정기관의 지방사무소였던 것이다. 태백에서의 생활은 낯설기만 했다. 관리자로서의 가슴 뿌듯함보다는, 생전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 더 힘들었던 것이다. 내가 느낀 태백시는 온통 ‘검정 색’이었다. 당시에는 산은 물론이고 물빛도 검정색이었으며, 심지어는 공중을 떠도는 바람까지도 석탄가루를 잔뜩 머금었었다. 하긴 당시 강원도에서 전국 석탄 생산량의 70퍼센트를 생산하고 있었으니 보이는 것마다 석탄(石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 이곳에서는 2만 명이 넘는 광부(鑛夫)들이 석탄을 캐고 있었고, 그들 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캔 석탄이 우리나라의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음을 감안하여 그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위령탑을 세운 것이다. 참고로 탑의 광차(鑛車) 모양 기단 전면에는 갱내에서 석탄을 캐는 광부들의 모습이 동판에 조각되어 있고, 탑신(塔身)의 탑명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휘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