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산(東臺山, 1,433m)-두로봉(頭盧峰, 1,421m)

 

산행일 : ‘13. 1. 12(토)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진부면과 대관령면, 그리고 강릉시 연곡면의 경계

산행코스 : 진부령 휴게소→동대산→차돌백이→신선목이→두로봉→두로령→북대사→상원사 주차장(산행시간 : 6시간40분)

함께한 산악회 : 산과 사람들

 

특징 : **오대산(五臺山)은 주봉인 비로봉(毘盧峰, 1563m)과 호령봉(虎嶺峰, 1566m) 상왕봉(上旺峰, 1491m), 그리고 동대산(東臺山, 1433m)과 두로봉(頭盧峰, 1421m) 등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산행은 그 중 2개 봉우리를 답사하는 코스로서, 전형적인 흙산(肉山)이기 때문에 특별한 볼거리는 제공하지 못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대산 하면 대개 비로봉이나 상왕봉만 머리에 떠올릴 뿐 두로봉과 동대산은 낯설어한다. 주봉인 비로봉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위치한 탓에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답사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찾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이다.

**) 오대산(五臺山)은 불교(佛敎)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오대산의 '오(五)'라는 숫자는 석가모니, 관음보살, 문수보살, 대세지(미타)보살, 지장보살 등 이른바 오류성중(五類聖衆 : 本佛을 따라다니는 다섯 종류의 성자들)을 뜻하고, '오대(五臺)'란 다섯 부처들이 상주하며 설법하는 성지(聖地)로서, 동쪽의 만월대와 서쪽의 장령대, 남쪽의 기린대, 그리고 북쪽의 상삼대와 중앙의 지공대를 일컫는다. 자장율사는 각 대에 각각 암자(庵子)를 지었는데 그 이름이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남대 지장암, 북대 미륵암, 그리고 중대 사자암이다. 이중 중대 사자암 바로 위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는데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산행들머리는 진부령 주차장

영동고속도로 진부 I.C에서 내려와 오대산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오대산 푯말을 보고 6번과 59번 병합(倂合) 국도(國道)를 따라가면 된다. 월정사로 들어가는 길과 나뉘는 병안삼거리(진부면 간평리)에서 계속해서 병합도로를 따라 우회전한 뒤, 고개를 따라 올라가면 산행이 시작되는 진고개 정상에 이르게 된다. 산행들머리인 진고개는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연곡면의 경계를 가르는 고갯마루이다.

 

 

 

‘진고개 휴게소’ 앞의 6번 국도(國道)를 건너, 맞은편(서쪽) 언덕으로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언덕위로 올라서서 잠시 걸으면 출입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리려고 설치한 목책(木柵) 문(門)이 보인다. 이어서 119의 구조표시 팻말인 ‘오대02-01’이 나타나는데, 이 팻말은 두로봉까지 일정한 간격이 없이 계속해서 나타난다. 언덕 위로 올라서니 젊은 남녀 한 쌍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 걷기는커녕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 정도로 거센 돌풍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잠잠해질 때를 이용해서 언덕구간을 빠져나가지만,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까지 떨쳐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거센 바람이 차지는 않다. 불행(不幸)중 다행(多幸)인 것이다.

 

 

 

산으로 접어들면 들머리에서 잠깐 완만(緩慢)하게 이어지던 산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파르게 변해버린다. 하긴 1.7Km의 구간에서 고도(高度)를 500m 가까이 높이려면 별 수 없었을 것이다. 길이고 뭐고 산은 온통 눈으로 포위되어 있다. 다행이도 먼저 지나간 사람들이 러셀(russell)을 해 놓아서 걷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발걸음을 옮기는 데는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자칫 발이라도 헛디뎌 눈에 빠지기라도 할 경우에는, 허리까지 차버리는 눈으로 인해 혼자서는 결코 빠져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진고개를 출발해서 얼추 한 시간 남짓 지나면 ‘동피골 삼거리(이정표 : 동대산 30m/ 동피골 주차장 2.7Km/ 진고개, 1.7Km)’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동피골 야영장’을 거쳐 상원사로 갈 수 있다. 설마 동피골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우리 일행 중 몇 사람이 동피골로 내려갔다고 한다. 아마도 상원사 근처에서 그들만의 볼거리를 찾았나 보다.

 

 

 

 

삼거리에서 3분 정도 더 걸으면 헬기장을 겸한 동대산 정상이다. 헬기장 치고도 너른 측에 속하는 정상은 산의 넓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자그마한 정상표지석이 지키고 있고, 그 뒤에 구조표시 팻말(오대02-05)이 세워져 있다. 날씨가 맑을 경우에는 이 곳 동대산에서 두로봉과 상왕봉을 거쳐 비로봉, 호령봉으로 이어지는 오대산의 산줄기가 장엄하게 펼쳐질 텐데 아쉽게도 오늘은 조망(眺望)을 일절 허락하지 않고 있다.

 

 

 

동대산에서 두로봉으로 가는 길은 우리나라의 척추(脊椎)에 해당하는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마룻금을 따라 걷게 된다. 능선은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온통 원시림(原始林)으로 둘러싸여 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은 되었음직한 참나무들이 즐비하다. 정상을 내려와 10분 정도 걸으면 헬기장(구조 표시 : 오대02-06)이 나오고, 다시 20분 조금 넘게 걸으면 1300고지((이정표 : 두로봉 5.0km/ 동대산 1.7km)이다.

 

 

 

 

 

 

대간의 마룻금을 따라 걷다보면 사람의 손때를 전혀 타지 않은 태고(太古)의 신비를 만나게 된다. 오늘 걷는 능선은 낮게는 1200m에서 높게는 1400m의 높이를 유지한다. 능선은 자연스레 땅과 하늘의 경계(境界)를 나누고 있다. 능선의 오른편은 급경사(急傾斜)의 벼랑, 날씨가 맑으면 조망이 시원스럽겠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반면에 능선의 왼편은 밋밋한 경사(傾斜)의 고원(高原)으로 이루어져 있다. 능선에는 수백 년은 먹었음직한 나무들이 즐비한데, 그보다 더 오래 묵은 나무들은 고목(枯木)으로 쓰러져가고 있다. 어떤 고목은 사람의 몸뚱이를 집어넣고도 남을 만큼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고, 또 어떤 고목들은 자신의 썩은 육신(肉身) 안에 다른 새 생명들을 키워낸다. 그야말로 자연의 섭리(攝理)를 보여주는 것이다.

 

 

 

 

 

동대산을 출발해서 1시간을 조금 넘기면 길가에 현재의 위치를 ‘차돌백이’라고 표시하고 있는 산행안내판이 하나 보인다.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차돌로 보이는 지형지물(地形地物)이 보이지를 않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금만 더 걸으면 그 궁금증을 저절로 풀리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안내판에서 3분쯤 걸으면 등산로 오른편에 제법 커다란 바위가 보이기 때문이다. ‘차돌백이’는 세 개의 하얀색 석영(石英)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석영(차돌)은 이산화규소(二酸化珪素, silicon dioxide)로 이루어진 규산염 광물(鑛物)로서 유리 광택을 내며, 무색의 순수한 것은 수정이라고도 부른다.(차돌백이 이정표 : 두로봉 4.0Km/ 동대산 2.7Km)

 

 

 

 

 

차돌백이에서 신선목이로 가는 길은 작은 봉우리를 여러 개 오르내리지만 진행하는데는 별로 부담이 없다. 봉우리와 안부 간의 고저(高低) 차이가 크지 않을뿐더러 경사(傾斜)까지 완만(緩慢)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속도(速度)를 낼 수는 없다. 갈수록 눈의 양이 많아지고, 러셀도 약하게 되어 있는 탓에 발걸음을 내딛기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차돌백이’에서 30분 넘게 걸으면 헬기장에 이르게 되고, 또 다시 30분 가까이 눈길과 씨름하다보면 신선목이다. 신선목이는 평원(平原)을 연상케 할 정도로 넓고 평평한 안부로서 자작(사스레)나무들이 주위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이정표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이곳에서 왼편으로 내려가면 신선골을 거처 상원사로 가게 된다.

 

 

 

 

신선목이에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아마도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일 것이다. 신선목이에서 40분 가까이 가파른 오르막과 씨름하다 보면 작은 헬기장에 이르게 되고, 다시 30분 조금 못되게 올라가면 삼거리(비로봉 5.7Km, 상원사 주차장 7.6Km/ 동대산 6.7Km)에 이르게 된다. 이곳 삼거리에서 왼편(남서쪽)으로 진행하면 두로령을 거쳐 상왕봉과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한강기맥이다. 한강기맥이 이곳에서 분기(分岐)해서 나가는 것이다. 참고로 두로봉 정상은 이곳에서 20m 정도 비켜나 있다.

**)백두대간은 이곳 두로봉에서 지맥(支脈) 하나를 만들어 낸다. 바로 한강기맥(漢江岐脈)이다. 한강기맥은 오대산 두로봉을 기점으로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경기도 양평 양수리까지 약 162㎞의 산줄기다. 기맥은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에 속하지는 않지만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와 오대산, 계방산, 운무산, 용문산, 유명산 등 비교적 큰 산들을 거치기에 정맥(正脈)에 못지않다고 평가된다. 참고로 남한에는 금남(금강), 금북(호서), 땅끝, 영산(영산북), 진양, 팔공, 한강, 한북(오두), 호미(형남) 등 9개의 기맥(岐脈)이 있다.

 

 

 

 

 

 

두로봉 정상은 동대산과 마찬가지로 널따란 헬기장을 겸하고 있다. 정상석도 역시 넓이에 어울리지 않게 왜소(矮小)하기 짝이 없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상왕봉과 비로봉, 그리고 호령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장쾌(壯快)하게 조망(眺望)된다고 하지만, 오늘은 아쉽게도 이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동대산에서 두로봉까지는 3시간30분(점심시간 20분 포함)이 걸렸다.

 

 

 

두로봉 삼거리에서 서쪽의 북대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갑자기 산행 속도가 더뎌진다. 쌓인 눈의 양(量)도 많아졌을 뿐더러 러셀까지 거의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먹은 대로 걸을 수가 없어서 가뜩이나 짜증이 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등산로 주변의 풍경(風景)을 감상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는 것이다. 등산로 주변에 주목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어떤 것은 속이 텅 비어있어 어른들도 통째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이다. 누군가 주목을 보고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고 했는데, 주목들은 저렇게 양(兩) 천년(千年)의 경계를 힘들게 버텨내는가 보다. 그러나 이곳의 주목군락은 그 크기나 생김새가 태백산이나 함백산에 비해 약간 뒤떨어진다. 주목 군락(群落)의 사이사이에는 자작나무(사스레)들이 무리를 지어 늘어서 있다.

 

 

 

 

두로봉을 출발해서 거의 한 시간이 다 되어서야 두로령에 이를 수 있다. 그만큼 눈 때문에 진행속도가 더뎠다는 의미이다. 커다란 ‘백두대간 기념비’와 무인산불감시탑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로령은 평창군 진부면의 옛사람들이 홍천군 내면의 창촌장을 보러 다닐 때 넘나들던 고갯마루이다.(두로령 이정표 : 상왕봉 1.9Km, 비로봉 4.1Km/ 상원사 주차장 6.4Km/ 내면분소 10.1Km/ 두로봉 1.6Km)

 

 

 

 

두로령에서 **북대사까지의 1.4Km는 자동차가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널따란 임도(林道)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길도 걷기에 힘들기는 매 한가지이다. 임도에도 역시 수북하게 눈이 쌓여 있어서, 러셀을 해 놓은 부분만 밟고 진행해야 되기 때문이다. 두로령을 출발한지 30분 가까이 지나면 북대사에 이르게 된다.(북대사 이정표 : 북대사 20m/ 상원사 주차장 5.0Km/ 두로령 1.4Km)

**) 북대 미륵암(北臺 彌勒庵), 상원사 입구에서 두로령으로 이어지는 임도(林道)를 따라 북쪽으로 4km 가량 올라간 상왕봉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시대 중기(新羅時代 中期)에 백련사(白蓮社)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그 뒤의 역사(歷史)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수반으로 한 오백 나한(羅漢)을 모시고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왕사를 지낸 나옹화상이 수도하던 곳으로 오대(五臺)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전망이 좋다.

 

 

 

북대사에서 상원사로 내려오는 하산(下山) 길은 차량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다(사실 북대사에 참배하러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승용차를 이용한다). 굽이굽이 돌아 내려오는 임도가 지겨운 사람들은 북대사 갈림길에서 상원사 방향으로 약400m정도에 있는 오른편 오솔길로 접어들면 된다. 오솔길로 내려서는 입구는 금(禁)줄이 쳐져있고, 그 앞에 국립공원관리소에서 세워놓은 ‘출입금지(出入禁止)’ 경고판이 세워져 있지만 20분을 절약할 수 있는 이 길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산행날머리는 **상원사 주차장

오솔길은 비탈진 사면(斜面)을 뚫고 이어진다. 그러다가 잠시 능선길이 보이더니, 이내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경사(傾斜)가 보통 급한 것이 아닌데도, 계단이나 로프 등 안전시설(安全施設)은 일체 찾아볼 수 없다. 하긴 통행(通行)을 금지(禁止)하고 있는 길에 안전시설을 설치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경사를 이기지 못한 길은 갈지(之)자로 또아리(똬리)를 틀면서 고도(高度)를 낮추어 간다. 비정규(非正規) 등산로에 들어서서 20분 정도를 급경사(急傾斜)와 싸우다보면, 아까 헤어졌던 임도와 또다시 만나게 된다. 도로(道路)를 따라 또다시 20분 조금 못되게 걸어(약 1.5km) 내려오면 산행이 종료되는 상원사 주차장이다. 참고로 이 오솔길은 겨울철에는 이용하는 것을 삼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경사(傾斜)가 너무 가팔라서 웬만한 안전장비도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 상원사(上院寺), 월정사(月精寺)의 말사(末寺)로, 월정사와는 이웃하고 있다. 원래의 절은 724년(신라 성덕왕 23)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었던 자장(慈藏)이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종각(鐘閣)만 남아있고 다른 건물들은 8·15광복 후에 재건한 것이다. 보유 문화재(文化財)로는 동종(銅鐘 : 국보 36호), 목조문수동자좌상(木彫文殊童子坐像 : 국보221호), 목조문수동자좌상복장유물(木彫文殊童子坐像腹藏遺物 : 보물 793호) 등이 있다. 참고로 요 아래에 있는 월정사(月精寺)는 서기 634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慈藏)스님이 세운 절인데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다가 1964년 이후 탄허(呑虛) 스님 등에 의해 중건됐다고 알려졌다. 조선왕조실록 등 사서를 보관하는 사고(史庫)가 있었다.